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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4/03/07 (07:19) from 80.139.170.129' of 80.139.170.129' Article Number :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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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탈근대의 변증법

  <발제문> 근대와 탈근대의 변증법 ①


진중권 (문화평론가, 『아웃사이더』편집위원)


'탈근대'로 말로 표현되는 경향은 결코 단일한 흐름이 아니어서, 그 안에 서로 구별되면서도 밀접하게 연관된 몇 가지 측면을 포괄하고 있다.

첫째는 정치적 층위이다. 전통적인 서구의 민주주의는 룻소가 말한 소위 '일반의지'의 구현을 지향한다. '일반의지'란 사회를 이루는 개인과 집단들의 특수 이익의 교집합이므로, 거기에 들지 않는 특수 의지는 정치의 영역에서 다수결을 통해 간단히 배제된다. '탈근대'의 사상에는 이 동일성의 폭력(?)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가 '다수에 의한 지배'인 이상, 그것의 정치적 이상이 완성에 도달해도 어차피 "정상 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맞서는 '탈근대'의 사상은 소위 '비정상'이라 하여 이 '일반의지'의 밖으로 배제되고 추방된 개별자, 소수자를 배려하는 새(新)정치 혹은 탈(脫)정치를 예감한다.

둘째는 철학적 층위이다. 그 다양한 서구 철학의 흐름을 한 마디로 특징짓는다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데리다가 지적한 대로 서구의 철학을 로고스 중심주의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서구의 근세 철학 역시 대개 그가 말한 '현전의 형이상학'으로 분류할 만한 것들로 이루어져 왔다. 길게 보면 플라톤 이후의 서구의 형이상학 전체, 짧게 보면 오늘날 서구의 문명을 만든 근세 철학 자체가 서 있는 이 '지반'은 모든 철학자들에 의해 별 의심 없이 전제되어왔다. 그러나 이 지반 위에서 이루어진 담론의 놀이가 이제 더 이상 생산적인 결과를 낳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탈근대의 사상에는 이제 그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이는 서구 형이상학의 지반 자체를 뒤엎으려는 급진적인 전복의 의지가 담겨 있다.

셋째는 문화적 층위다. 포스트모던의 담론은 건축을 매개로 하여 일어났다. 60~70년대의 건축계의 특정한 흐름이 '탈근대'에 관한 담론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기에서 '포스트모던'은 무엇보다도 인터내셔널 모던에서 벗어나려 하는 특정 양식의 이름이 된다. 하지만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데에 기여한 것은 미국에서 등장한 여러 문화적 트렌드들이다. 여기에서 '포스트모던'은 혼성모방과 같은 특정한 문학적 양식을 가리키게 된다. '탈근대'라는 용어가 가장 오용되는 곳이 바로 이 문화의 영역이다. 정치적, 철학적 측면에서는 근대와 탈근대가 비교적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여기에서는 그 구별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개념의 혼란이 생긴다. 가령 료타르 같은 사람이 '탈근대'의 예술적 표현으로 간주한 것은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우는 대중문화의 현상이 아니라 '모더니즘', 즉 20세기에 시작된 아방가르드의 예술실험이었다.

탈근대의 수용

한국에서 '탈근대'는 서구와는 조금 다른 맥락을 갖는다. 이 나라에서 탈근대는 주로 현실 사회주의 몰락에 따를 정신적 공황을 배경으로 수용되었다. 한때 세계를 해석하는 틀이 되어주었던 거대 서사가 갑자기 붕괴하자, 거기에 따르는 세계관의 공백을 메워줄 대체 이념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탈' 해야 할 '근대'는 무엇보다도 근대의 적자인 사회주의 사상으로 이해되고, 이는 곧 근대적인 '해방의 서사'에 대한 필요 이상의 혐오감과 적대감으로 이어졌다. 사회에는 냉소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좌파 인텔리겐차들을 정치의 영역에서 문화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겨 광범하게 탈정치화한다. '탈근대'의 사상이 본디 급진성과 보수성을 모두 가진 양날의 칼이라면, 이 땅에서 '탈근대'는 거대 서사의 횡포에 대한 반성과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감성을 길러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 반면, 보수적인 사회의 정치적 보수주의를 한층 강화하는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편 철학적 영역에서 탈근대는 프랑스 철학의 압도적인 득세로 나타났다. 철학의 공용어가 독일어에서 불어가 바뀌어 버리고, 사회의 철학적 마인드 자체가 헤겔에서 니체 지향으로 바뀌어 버린 듯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근대 철학의 폐기가 차분한 학적 검토 없이 이루어진 느낌이 있다. 그 때문에 '탈근대'의 이름으로 거의 자살 테제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상대주의적인 주장들이 검증의 의무를 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남용되고 있다. 근대철학 혹은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탈근대'의 비판은 물론 적절하고 정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근대에 대한 비판이 반드시 '이성'과 '대화'와 '합의' 자체를 불필요하게, 혹은 불가능하게 여기는 강한 테제들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이런 학적 논의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화의 영역에서 탈근대의 현상은 주로 탈정치적인 '대중문화'로 나타났다. 민주화의 진전과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근대적 해방 서사에 입각한 이념 문학의 실천이 붕괴하고, 그 논리적 대립물을 이루던 엘리트주의적인 순수문학마저 상업화의 물결 속에서 지위를 위협받는 가운데, 90년대에는 탈이념적인 대중문학이 대두하는 결과를 낳았다. 학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의 구별이 약화되고, 엘리트 문화와 대중문화를 가르던 벽이 무너지고, 혼성모방이나 패러디와 같은 문학적 장치가 유행처럼 범람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대중이 문화의 주체로서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다른 한편 거기에 따르는 문화의 상업화, 그리고 예술의 진정성의 상실은 우려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 한국의 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은 아마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까지 열거한 것이 한국적 탈근대의 세 얼굴이다.

탈근대의 전통

'근대'와 '탈근대'의 대립은 흔히 프랑스적 사유와 독일적 사유의 대립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푸코, 데리다, 들뢰즈, 료타르 등 '탈근대'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프랑스의 사상가들이며, 여기에 대항하는 해석학과 의사소통이론은 독일의 전통이다. 그리하여 근대의 형이상학에 대한 탈근대적 비판이 프랑스적 기원을 갖는 것이라고 오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의 형이상학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은 실은 독일에서 먼저 일어났다. 푸코와 들뢰즈가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니체가 이미 독일철학의 전통에 속한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서구 철학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로 규정한 바 있고,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언어 논증'으로 근대 철학의 지반을 이루는 현전의 형이상학을 무너뜨렸다. 벤야민은 일찍이 '변증법적 종합'이 아닌 인식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아도르노는 일찌기 자본주의 비판과 관련하여 동일성의 폭력을 얘기한 바 있다.

독일에서 '탈근대'라는 지적 유행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데에는 정치적 지형과 문화적 전통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탈근대' 사상의 합리적 핵심이 이미 독일철학에 의해 선취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철학자들에게는 아마도 탈근대 사상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그 부정적 측면, 즉 논리의 비약과 어법의 과격성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법도 하다. 바로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프랑스의 담론에 "노출증"이라는 딱지를 붙이게 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적어도 프랑스의 사상가들이 독일의 철학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역사 속에 이미 존재했던 탈근대의 전통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이데거과 비트겐슈타인을 다시 읽고, 한때 잊혀졌던 벤야민과 아도르노를 다시 기억해 낸 것은 프랑스의 사상가들이 퍼뜨린 지적 유행이 이들에 대한 새로운 독해의 코드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현전의 형이상학'을 비판했다고 하나, 사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에는 데리다의 것보다 명료하고 결정적인 논증이 담겨 있다. 흔히 탈근대의 사상이 자칫 실천적 맥락을 찾지 못하고 탈정치화한 문화론으로 흐르곤 한다면,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비판에는 비교적 뚜렷한 정치적 지평이 존재한다. 아울러 이들의 자본주의 비판에는 프랑스의 담론에는 완전히 빠져 있는 탈근대적 요소, 즉 생태학적 관점이 들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독일의 사상가들의 경우 탈근대적 비판을 철학적 상대주의로까지 극단화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근대'의 긍정성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면, 그리하여 '근대와 탈근대의 변증법'을 실현하려 한다면, 무엇보다도 근대와 탈근대의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고, 근대와 탈근대의 문턱에 자신을 위치시켰던 독일 사상가들, 특히 비트겐슈타인,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상을 하나의 준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알브레히트 벨머 / 이주동, 안성찬 옮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변증법』, 녹진, 1990)

탈역사

한국에 들어온 '탈근대'의 사상에 대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는 정치적 측면이다. 정치적 측면이란 한 담론이 구체적 현실 속에서 갖는 화용론적 의미를 가리킨다. 동일한 담론이라도 상이한 맥락 속에서는 그 쓰임과 의미가 달라진다면, 하나의 담론을 들여 올 때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은 그 담론의 사회적 맥락이다. 그 담론을 낳은 사회와 그 담론을 이식할 사회의 상이한 맥락과 상이한 해석학적 지평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담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 탈근대의 사상은 철학적으로 매우 급진적인 담론이다. 하지만 이 담론을 낳은 사회와 그것을 수용할 사회의 구체적인 지평에 대한 고려가 없을 때, 급진적인 담론이라도 얼마든지 보수적으로 실천될 수가 있는 것이다.

'탈근대'의 사상을 대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볼프강 벨쉬가 지적한 것처럼 거기에 내재된 보수주의적 해석의 잠재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의 '탈근대'는 실천적으로 정치적 보수주의로 귀결된 감이 있다. 가령 우리의 탈근대는 공론의 영역을 확보하자는 주장을 "동일성의 폭력"이라 비난하고, 대화와 토론의 실천을 "통약불가능성" 테제로 봉쇄하고, 이성의 결여를 '이성의 과잉'으로 오진하고 거기에 "로고스 중심주의"라는 딱지를 붙였다. 시민 사회를 이끌어 갈 근대적 주체의 형성이라는 요구에는 "주체의 죽음"으로 대답했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에 "역사의 종언"이라는 찬물을 끼얹고, "거대서사의 종말"을 선언함으로써 평등한 세상을 꿈꿀 권리를 철학적으로 앗아가 버렸다.

벤야민은 "역사 속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역사로부터의 해방"을 얘기한 바 있다. 여기에는 '탈역사'라는 '탈근대'의 모티브와 함께 아직 구원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지는 알 수 없어도, 적어도 이 구절은 과거처럼 '역사적 텔로스'를 설정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해방을 사고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지만 '탈근대'에서 말하는 '탈역사'에는 바로 이 '해방'의 요소가 탈각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하여 "시간은 과거로부터 단순히 미래로, 하나의 굵은 실선을 따라 흐르지 않는다"(김진석, 『초월에서 포월로』, 솔, 1994. p.54)는 언급은 역사로부터 일체의 구원의 희망을 앗아가 버리는 말처럼 들리게 된다. "시간의 흐름이 다양화되고 다수화된다"는 말은 더디 가는 어느 사회의 시계를 있는 그대로 축성하는 보수주의자의 목소리가 된다.

물론 역사에 종말은 없다. 그렇다고 "해방"의 서사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역사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상정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목표를 설정하는 일체의 행위가 그릇된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이 전세계적으로 단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캘린더의 다수성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점점 하나가 되어 가고 있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단일한 시간의 경험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서구의 시계로 우리의 시간을 재는 것'이 무조건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서구의 현실에 비추어 그보다 한참 뒤쳐져 있는 우리 사회의 보수성을 비판한다고, 그것이 곧 제국주의적인 서구중심주의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우리의 시간을 우리의 시계로 잰다'는 것이 반드시 해방적인 것도 아니다. "주체 91년", "헤이세이(平成) 13년" 따위의 "다양화하고 다수화한" 년호는 그 어떤 보편시간 이상으로 폭력적이다.


http://artnstudy.com/_Webzine/Nowart/foru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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