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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4/05/11 (14:39) from 80.139.165.116' of 80.139.165.116' Article Number :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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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 Whitehead의 교육의 리듬성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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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 Whitehead의 교육의 리듬성 고찰 :
교수-학습에 대한 함의를 중심으로

이효현(공주대)


차례

Ⅰ. 서론
Ⅱ. 교육의 목적과 교육받은 인간상
  1. 교육의 목적
  2. 교육받은 인간상
Ⅲ. 교육의 리듬성
  1. 지적 성장의 리듬성
  2. 자유와 규율의 리듬성
Ⅳ. 교육의 리듬성의 교수-학습에 대한 함의
  1. 교수-학습 여건의 이해
  2. 교수-학습 방법의 이해
Ⅴ.결론


Ⅰ. 서론

본고의 목적은 A. N. Whitehead의 교육의 리듬성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것의 교육적 함의, 특히 교수-학습에 대한 함의를 밝히는 데 있다. 위대한 사상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Whitehead는 그가 당시 관계했던 영국과 미국의 교육 실제에 만연했던 무기력한 아이디어(inert ideas)와 죽은 지식의 주입에 연연하는 교육체제를 비판하였다. Whitehead의 교육에 관한 아이디어는 그가 영국과 미국의 교육 및 과학단체에서 행한 연설을 위주로 엮은 『교육의 목적』에 잘 나타나 있다.
본고의 주된 탐구 대상인 『교육의 목적』에서 Whitehead가 다루었던 아이디어는 지적인 측면에서의 교육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Whitehead가 스스로 밝혔듯이 그가 몸소 겪은 실제 경험의 산물이며, 교육실제에 대한 반성이며, 교육내용을 구성하는 논의의 의미에 대한 비판의 산물이다(1961 : ⅲ).
Whitehead의 사변철학은 흔히 유기체철학 또는 과정철학이라고 한다. 사변(speculate)의 사전적 의미는 아직 밝혀지지 않는 것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말한다. 사변철학은 분명하고 정확하고 확실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찾는 행위가 이성의 근본적인 측면으로 간주하고(김상일, 1993 : 45), 보편타당한 범주나 원리를 찾아내어 정립하고, 이런 범주와 원리들을 기본으로 삼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특수성을 적확하게 기술하는 것이다(문창옥, 1999 : 27).
사변철학이 과정철학인 까닭은 현실적 존재(an actual entity)의 생성방식이 그 현실적 존재의 모습을 결정하기 때문이다(Whitehead, 오영환 역. 2003 : 87). 이것이 과정의 원리이다. 현실적 존재는(actual entity) 궁극적 실재(the final reality)이며(Oliver. 1989 : 115), 이 현실적 존재가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인 경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2003 : 721). 궁극적 실재는 복합된 통일체(a complex unity), 혹은 유기체(organism)이며, 각 통일체 안에 있는 각 요소들은 그 자체로서 유기적 통일체이기 때문에 과정철학은 곧 유기체 철학이다(Mellert, 김상일 역. 1975 : 11).
Whitehead의 유기체 철학의 아이디어와 기본개념은 그물망처럼 연계되어 있으며, 그의 교육적 논의 또한 그의 철학적 그물망 내에서 서로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그의 철학적 사유 내에서 교육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관련되었는지를 밝히는 거시적 접근을 지양한다. 즉 본고는 교육에 관한 그의 아이디어가 집약된 그의 저서 『교육의 목적』을 주된 탐구 대상으로 설정하였으며, 특히 교육의 리듬성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Whitehead의 교육에 관한 많은 아이디어 중, 본고의 주된 탐구 영역을 ‘교육의 리듬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생의 핵심은 주기적(periodic)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1961 : 28). 또한 주기에는 정신성장과 같은 주기가 있으며, 이 주기는 반복적으로 순환되지만 각 순환단계마다 하위단계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리듬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성장의 리듬성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 교육을 생기 없고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1961 : 40).
수학자, 철학자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Whitehead의 삶은 크게 영국의 캠브리지대학 시절(1880-1910)과 런던대학 시절(1914-1924), 그리고 미국의 하바드대학 시절(1924-1947)로 구분된다. 그의 교육적 아이디어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 『교육의 목적』은 주로 영국의 런던대학 시절과 미국의 하바드대학 시절, 교육 및 과학단체에서 행한 강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Hill. 1999 : 41-42).
1980년대까지 미국의 경우 Whitehead에 관한 연구는 주로 신학이나 철학분야에서 이루어졌으며, 그의 철학적 사유와 교육적 아이디어를 교육실제와 교육이론에 적용하고자 하는 연구는 극소수에 불과하였다(Brumbaugh. 1982 : 38). 현대의 교육적 견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듀이, 스키너, 부르너 및 그 밖의 인지주의자들의 사유가 일찍부터 교육이론가들과 실천가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과 달리,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Whitehead의 사유와 교육적 아이디어를 교육실제와 교육이론에 적용하고자하는 시도가 이루어 졌다. 이렇게 Whitehead에 대한 연구가 교육 분야에서 특히 뒤늦게 시작된 이유는 Whitehead 저서에서 나타나는 문체(style)의 어려움, 암시적인 언어의사용, 그의 사유를 드러내기 위한 새로운 언어의 창조 등이 Whitehead의 사유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기 때문이다(Oliver. 1989 : 207).  Malcom D. E.(2003 :  90-91)도 Whitehead의 사유가 교육적으로 일찍이 수용되지 못한 이유를 앞서 논한 이유 외에 미국의 교육에 있어서 듀이의 위치가 너무나 거대했던 점, 실용적(pragmatic)이고 행위 지향적인 학교의 일상이 교육실천가들의 철학적 사유에 도움에 되지 못했던 점, 그리고 Whitehead 자신이 교육자들에게 구체적인 교육적 처방을 제시하지 않은 점 등을 들고 있다.
과정철학과 과정신학에 대한 연구에 이어 1980년대에 이르러 과정철학에 대한 교육적 연구(과정교육; process education)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Claremonte 대학교의 과정연구소(The Center for Process Studies)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987년에는 과정연구소에서 독립된 교육과정철학회(Association for Process Philosophy of Education: APPE)가 결성되었다. 이 학회에서는 교육철학, 교육이론, 교육과정 및 교육일반에 대한 관심을 갖고 1996년 이후 매년 학회지인 Process Papers를 발간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Whitehead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에 이르러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997년 한국에서도 한국Whitehead 학회가 창립되어 매년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국제 Whitehead 학회가 한국화이트학회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교육학 분야에서 Whitehead의 과정철학에 대한 연구는 양적으로 지극히 적으며, 깊이에 있어서도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Whitehead의 교육에 관한 아이디어가 잘 나타나 있고 본 연구의 주된 탐구 대상이기도 한 그의 저서 『교육의 목적』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9장을 제외한 각 장은 1912년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의 국제 수학위원회 교육 분과에서 행한 강연을 필두로, 1924년 미국에 도착한 이후 1928년 미국 메사츠세추주 캠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마지막 강연에 이르기까지 교육단체나 과학 단체의 모임에서 발표된 내용들이다.
Whitehead가 『교육의 목적』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의 교육에 관한 아이디어는 영국의 교육체제를 준거로 한 것이어서 당시 그의 학문적 활동무대였던 미국의 교육체제 준거와 다소 다르다. 그러나 그러한 준거는 단순한 비유에 자나지 않으며 일반 원리는 두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된다(1961 : ⅲ). 이 말을 좀더 확대하면 Whitehead의 교육적 아이디어는 그가 언급한 대로 영국과 미국의 교육적 체제의 준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의 교육체제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교육적 체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다음 Ⅱ장에서는 Whitehead가 주장하는 교육의 목적과 교육받은 정신의 최후모습인 스타일에 대해 고찰한다. 그런 다음 Ⅲ장에서는 Whitehead가 논했던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고 교육받은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한 교육실제에 대한 안내이며, 생과 유기체의 고유한 특징인 지적 성장의 리듬성에 대해 고찰한다. 그리고 이 지적 성장의 리듬성에 내재된 두 가지 원리인 자유와 규율로 규정되는 교육의 리듬성에 대해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Ⅳ장에서는 이러한 교육의 리듬성이 교수-학습 현상을 이해하는데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고찰한다.


Ⅱ. 교육의 목적 및 교육받은 인간상

‘교육의 목적’은 Whitehead의 교육에 대한 아이디어를 집약한 그의 저서의 제목인 동시에 그 책의 제 1장의 주제이기도 하다. Whitehead는 교육의 목적을 ‘학습자의 자기발달을 자극하고 안내하는 것(1961 : ⅲ)’, ‘삶의 모험을 위한 훈련’, ‘삶의 기예를 터득하는 것(1961 : 48)’,  ‘지식을 활용하는 기예의 습득(1961 : 16)’ ‘능동적인 지혜의 생산(1961 : 32)’ ‘삶의 모험을 위한 훈련(1961 : 97)’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받은 정신의 최고의 모습을 스타일(style)로 규정하고 있다(1961 : 24).
이하에서는 Whitehead가 다양하게 표명한 교육의 목적의 성격과 그러한 교육의 목적이 실현된 교육받은 사람의 정신적 특성인 스타일에 대해 논의한다.


1. 교육의 목적
Whitehead의 교육에 관한 아이디어는 그가 당시 몸소 교육자로 몸담았던 영국과 미국 교육의 실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Whitehead는 지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따분한 인간을 단지 박식한 사람이라고 단언하고 있다(1961: 14). Whitehead가 판단하건대, 교육역사상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배움의 전당으로서의 학교가 검증되지도 않았으며, 활용되지도 않으며, 참신한 조합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무기력한 아이디어(inert ideas)’를 지나치게 부과하였다는 점이다. 즉, 인류를 위대한 것으로 진일보하게 하였던 모든 지적 혁명은 무기력한 아이디어에 대해 치열하게 저항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감심리학의 감상적 무지와 틀에 박힌 교육적 도식(educational scheme)으로 말미암아 학교는 무기력한 아이디어를 전달하는데 급급해 왔다(1961 : 14). 이때 무기력한 지식이란 지식의 소유자에게 절로 위엄을 부여하는 인습처럼 지혜와 동떨어진 단순한 지식이다. 즉 지혜란 지식이 유지되는 방식이며, 지식을 활용하고 자신의 현재경험과 관련짓고 새로운 문제해결을 위해 능동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도구이다. 이러한 지식은 ‘요란한 꽹과리(mere sounding brasses)’에 지나지 않는다(1961 : 71).  Whitehead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식이 지적 교육의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이지만 거기에는 모호하지만 보다 위대하고 중요한 한 가지 목적이 있다. 고대인들은 그것을 ‘지혜(wisdom)’라고 불렀다. 물론 지적 토대 없이 지혜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쉽게 지식을 획득할지라도 여전히 지혜롭지 않을 수 있다.
지혜는 지식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지혜는 지식을 다루고, 관련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지식을 선택하고, 우리의 현재 경험에 가치를 증가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지식의 이런 측면이 지혜이며, 이것이 획득 가능한 가장 본질적인 자유이다. 고대인들은 지혜가 지배하는 지식의 필요성을 현재의 우리보다 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교육에서 지혜를 추구함에 있어, 그들은 슬프게도 실수를 범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은 철학자들로 하여금 젊은이에게 말로 쏟아 붓도록 함으로써 지혜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1961 : 71).

이러한 지혜가 아닌 지식의 전수에 급급한 교육의 그릇된 모습은 비단 고대인들의 교육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Whitehead는 영국 수학위원회 대표자 취임 연설을 통해 현대교육과정의 문제점을 학습자의 삶과 유리되고 활용되지 못하는 고립된 죽은 지식의 전달에 급급한 당시의 영국교육의 그릇된 모습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내가 강조하는 해결책은 현재의 교육과정의 생명력을 죽이는 교과의 단절성(disconnection)을 근절시키는 것이다. 교육에는 단 하나의 교과만이 있다. 그것은 교과가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삶(life)이다. 이 하나의 총체적 단위인 삶 대신에 대수를 가르치되 그것에서 어떤 것도 수반되지 않으며, 기하를 가르치되 그것에서 어떤 것도 수반되지 않으며, 역사를 가르치되 그것에서 어떤 것도 수반되지 않고 있다. 모국어와 관련지어 다른 언어를 가르치나 결코 숙달되지 않으며, 그 무엇보다 슬픈 것은 문학을 가르치되 그 문학은 세엑스피어의 희곡을 세세히 암기해야할 철학적 주석과 문제와 특정 인물에 대한 짧은 분석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세세한 것들의 나열이 우리가 삶을 영위하면서 알고 있는 그러한 삶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세세한 목록은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자 할 때 마음속에 있는 내용을 대충 나열한 것이어서 각각의 내용을 어떻게 관련지어야 할지 끝까지 결정하지 못한 어설픈 목록에 지나지 않는다(1961 : 18).  

죽은 지식(dead knowledge)과 무기력한 아이디어(inert ideas)가 지배하는 교육체제에 저항하며 Whitehead가 추구했던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앞서 논한 대로 Whitehead는 교육의 목적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 바, 이러한 다양한 표현은 서로 유리된 것이 아니라 밀접히 일관되게 상호 관련돤 교육 목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다양하게 표현된 Whitehead의 교육목적에 대해 좀더 상세히 논하겠다.
학생은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성장하는 유기체이며, 교육의 목적은 학생의 ‘자기발달(self-development)을 자극하고 안내하는 것’이다(1961 : ⅲ). 또한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전 생애 동안 끊임없이 쏟아질 현상의 흐름인 ‘삶을 이해하게 하는 일반적인 원리를 알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할 아이디어는 소수의 중요한 것이어야 하며, 이 소수의 중요한 아이디어는 학습자가 현재 처한 상황(here and now)에 맞게 제시되어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것으로 구조화하여 실제 환경 속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변형되어야 한다(1961 : 14). 여기서 자기 발달은 학습자의 삶 속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현상을 학습자 스스로 실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Whitehead는 학습자의 자기발달을 저해하며 정신적 부패를 야기시키는 교육실제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두 개의 교육적 계율(educational commandments)을 선언하는데, 그것은 “너무 많은 교과를 가르치지 말라”와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철저히 가르쳐라”는 것이다(1961 : 14). 이 두 가지 계율에 대해 Whitehead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하고 있다.

너무 많은 교과 내용의 일부분만 가르치면 그 결과는 생명의 불꽃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된 아이디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제공되어야할 아이디어는 소수의 중요한 것이어야 하며, 그것들은 모든 조합이 가능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이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지금-여기(here and now)의 실제 환경 속에서 이것들을 적용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은 교육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발견의 기쁨을 경험해야 한다. 아이들은 발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전 생애 동안 쏟아질 현상의 흐름을 이해하게 하는 일반적인 아이디어들(general ideas)이다(1961 : 14).

Whitehead에게 있어서 학습자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소수의 일반적 원리이며, 이 소수의 일반적 원리는 학습자가 현재 처한 상황에 맞게 변형된 것이어야 하며, 학습자가 생활 속에서 직접 활용하여 학습자 스스로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유용한 교육은 다양한 구체적 사안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상의 기초가 되는 몇 개의 일반적인 원리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이는 실제 생활 속에서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세세한 것을 잊어버릴지라도 직접 접하는 환경에 무의식적인 감각으로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학습자가 배운 일반적 원리의 실제적 적용은 『교육의 목적』 전체에서 일관되게 강조되고 있는데(1961 : 9, 33, 56, 64 ), Whitehead는 이를 ‘확장성(extension)’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Whitehead는 대수학과 마찬가지로 기하학과 기하학 도법(Geometrical Drawing)은 기하학적 아이디어를 단순한 원을 그리는 것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하면서  확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등학교의 경우에 있어서 실제 측량과 도해작성(기하학의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측량용 평판(plane table)을 이용한 실제 측량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하학적 진실을 바로 적용하여 생생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한 제도기구나 측량자의 측쇄(surveyor's chain)와 컴파스는 학생들로 하여금 일정 공간을 측량하고 정량(survey and mensuration)하는 것에서 작은 구역의 도해를 작성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훌륭한 교육은 가장 단순한 기구로부터 최고의 정보를 얻는데 것에서 찾을 수 있다. .....
내가 의미하는 것은 해당교과(기하학)에 대한 모호한 강의가 아니라 정확한 이론적 지식의 도움을 받아 실제 사실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진지한 탐색을 뜻한다(1961 : 22).

Whitehead는 학습자의 원리 또는 일반적 아이디어의 이해를 통한 실제적 적용인 확장성을 강조하면서 교육의 목적을 ‘지식을 활용하는 기예(art)를 습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달리 표현하고 있다(1961 : 34). 이는 교육을 ‘삶의 기예를 이해할 수 있게 개인을 안내하는 것’이란 표현과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Whitehead가 말한 대로 삶의 기예란 실제 환경과 직면한 생명체의 잠재력을 표현하는 다양한 활동을 완전하게 성취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실제 환경과 직면한 생명체의 잠재력을 표현하는 다양한 활동을 완전하게 성취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961 : 48).
Whitehead는 삶의 기예를 터득하는 것, 즉 지식을 활용하는 지혜의 획득이 교육의 목적이라는 점을 대학 교육의 성격과 기능을 강조하는 연설에서는 ‘삶의 모험을 위한 훈련’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다(1961 : 93). 한마디로 ‘삶의 모험’으로서의 교육은 구체적 삶 속에서 지식을 유지하는 방식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Whitehead는 이러한 지적 모험을 상상적 숙고(imaginative consideration)라고 하면서, 상상적 숙고는 이전의 것과 새로운 것을 통합시켜서 지식과 삶의 열의(the zest of life)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역할, 즉 현재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지식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1961 : 93).
삶의 모험으로서의 교육과 삶의 모험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상상적 숙고에 대해 Whitehead는 대학의 기능이라는 주제의 1927년 미국경영대학원 위원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교육은 삶의 모험을 위한 훈련이다(education is discipline for the adventure of life). 연구는 지적 모험이다. 그리고 대학교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공유하는 모험의 장이 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다루고자 하는 지식이 ‘신선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거나 또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세계에 새롭게 적용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지식은 물고기 이상으로 신선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없다. 여러분은 오래된 것, 즉 어떤 낡은 진실을 다룰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지식의 바다에서 막 꺼낸 것처럼 그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싱싱한 상태로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만 한다(1961 : 97). .....
대학의 정당성은 대학이 배움에 대한 상상적 숙고(imaginative consideration)를 통해 옛것과 새 것을 결합시킴으로써 지식과 삶의 열의의 관계를 계속 유지시키는데 있다. 대학은 지식을 전수하지만 상상적으로 전수한다. 이점에 실패하는 대학은 존재 이유를 갖고 있지 못한 대학이다. 상상적 숙고에서 생기는 상기된 분위기가 지식을 변형시킨다. 그것은 모든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바쳐진다.  그것은 부담스럽게 기억해야할 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꿈에 대한 느낌(the poet)과 우리의 목적의 원형으로서 에너지를 충전시킨다(1961 : 93).

삶 속에서 환경과 직면하여 일반적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Whitehead는 ‘지혜’란 말로도 표현하고 있다(1961 : 26). 앞서 말한 대로 지적 교육의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은 지식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혜이다. 지혜는 지식이 유지되는 방식으로 지혜는 우리의 현재 경험에 가치를 증가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것이며. 이러 지혜의 획득이 가장 본질적인 자유이다. 이렇게 볼 때 교육의 목적이 지식을 활용하는 기예라고 함은 결국 지혜의 획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고찰한 Whitehead의 교육의 목적은 ‘학습자의 자기발달을 자극하고 안내하는 것’, ‘삶의 기예를 터득하는 것’, ‘지식을 활용하는 기예의 습득‘ ‘삶의 모험을 위한 훈련’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부연설명하자면 자기발달로서의 교육은 학습자 스스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강조한 것이며, 삶의 기예로서의 교육은 생애 동안 쏟아질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리를 실제로 적용하는 능력을 강조한 것이다.  
다양하게 표현된 이러한 교육의 목적은 한 마디로 학습자에게 능동적인 지혜를 생산하도록 돕고 안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Whitehead는 이를 교육의 전일적 목적(its whole aim)이라고 표현하고 있다(1961 : 46). Whitehead는 교육의 모든 문제는 당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준비, 즉 적합한 아이디어와 적절한 행동으로 당면 순간에 알맞은 준비 일 따름이며, 자발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발성을 북돋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교육은 그릇된 교육임에 틀림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육의 전일적 목적은 능동적 지혜의 생산이기 때문이다.

2. 교육받은 인간상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인간은 교양(culture)과 전문지식 둘 다를 소유한 사람이다. 전문지식은 출발의 근거를 제공하며, 교양은 심오한 철학과 지고한 예술로 한 인간을 안내한다(1961 : 13). 그렇다고 해서 교양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교수요목(one course of study)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특별한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한 가지 교수요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일반교양 교육을 위해 과해지는 것은 전문적으로 탐구되어야 할 특수교과이고, 일반적 지적 활동을 육성하는 길의 하나는 전문적으로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은 분절된 교과의 내용이 아니라 그 교과가 구현하고 있는 아이디어인 것이다.  
Whitehead는 교양인이 지녀할 특성으로서 지식을 실제 생활 장면에 적용함으로써 이룩되는 학습 통합의 수준을 한층 더 올려서 아이디어의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김복영. 1999 : 131). 다시 말해 전체적 연관성을 볼 수 있는 일련의 아이디어를 다른 것과 관련시키는 안목을 가지게 되는 것이 교양인을 위한 교육에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안목 또는 아이디어의 구조는 특수 교과에 대한 전문적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김종서 외. 1997 : 61). Whitehead는 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교육이 전달해야하는 것은 아이디어의 힘, 아이디어의 아름다움, 아이디어의 구조에 대한 친근감이며, 이와 함께 삶을 영위하면서 지니고 있어야할 고유한 준거를 지닌 특별한 지식이다.
아이디어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특별한 탐구의 영향 속에서 자라는 세련된 정신의 한 측면을 나타낸다. 이것은 전체 체스판을 볼 수 있는 눈, 즉, 다른 부분에 대한 하나의 통일된 아이디어를 볼 수 있는 안목(eye)을 의미한다. 오직 전문적인 탐구만이 일반적인 아이디어의 정확한 형태, 다시 말해 아이디어의 관계와 삶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것으로 파악하게 한다. 엄격하게 도야된 정신은 더 추상적이면서 더 구체적인 두 가지 모두인 것이어야 한다(1961 : 23).   

다시 말해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소수의 중요한 몇 가지 일반적인 아이디어이며, 특히 아이디어의 아름다움과 아이디어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  인류를 위대한 것으로 전진하게 했던 지적혁명은 무기력한 아이디어에 대한 저항인 바, 이 무기력한 아이디어가 교육을 쓸모없고 해롭게까지 했음은 물론 인간의 정신적 부패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받은 정신적 특성 중에서 가장 준엄한 것(the most austere)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스타일에 대한 의식(the sense for style)이다. 스타일은 더 이상의 낭비 없이 예견되는 결과의 직접획득에 대한 동경을 근거로 한 미적 감각이다. 미술에서의 스타일, 과학에서의 스타일, 논리학에서의 스타일, 실제 실행의 스타일 등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미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획득과 자제이다. 한 교과에 대한 사랑은 정신의 갑판 위를 걷는 몽롱한 기쁨이 아니라 그 교과의 탐구 속에 구현된 스타일을 사랑하는 것이다(1961 : 23).
스타일은 교육받은 정신이 최후에 얻은 것이며, 유용한 것이며, 전일적 존재(the whole being)로서의 한 개인에게 깊이 스며 있는 것이다. 스타일은 궁극적인 정신의 도덕성(the ultimate morality of mind)이다. Whitehead는 스타일이 지닌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스타일은  궁극적인 정신의  도덕성이다. 스타일에는 그리스 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운명과 같은 모호한 형태의 그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힘(power)이다. 스타일은 힘을 새롭게 하는 것이며, 힘을 자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원하는 목적을 획득하는 힘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1961 : 24).
 
여기서 스타일이 지닌 도덕성은 가치의식이다. 왜냐하면 도덕성은 중요성에 대한 의식(the sense of importance)으로 과학이나 종교에서도 궁극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궁극적인 원동력은 경이, 호기심, 복수심, 경배, 자신을 초월한 그 무엇으로 자신을 통합하려는 격렬한 욕망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이 가치에 대한 의식은 우리의 삶에 엄청난 노고를 강요하며, 이것을 무시했을 때, 삶은 아주 소극적인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이 궁극적인 힘이 가장 잘 스며들어 나타나는 것이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 즉 성취한 완벽함에 대한 심미적 의식(the aesthetic sense)이다(1961 : 49).  
그렇다면 스타일의 유용성은 무엇인가? 스타일을 통해 사소한 문제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에 이탈됨 없이 목적을  달성하며 행동의 효과는 확실해지고 무엇보다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마지막 선물인 통찰력(foresight)을 갖게 된다. 또한 스타일을 통해 힘이 증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정신이 쓸데없는 것에 분산되지 않음으로써 목적을 보다 잘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1961 : 24). 스타일은 아마추어가 가질 수 없는 전문가의 독점적인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스타일은 전문적 탐구의 결과로써 교육받은 사람이 성취해야할 가장 고귀한 목표이며, 사람됨의 극치이며(김종서 외. 1997 : 62), 성취한 완벽함에 대한 심미적 의식이다.
이상으로 Whitehead의 교육의 목적과 교육받은 정신의 이상적인 상태인 스타일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렇다면 교육의 목적과 교육받은 정신의 마지막 모습인 스타일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이하에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Whitehead의 지적 성장의 리듬성과 교육의 리듬성에서 찾고자 한다. 왜냐하면 지적 성장의 리듬성은 인간 정신 발달의 고유한 특성이며, 교육의 리듬성은 지적 성장의 발달에 적용되어야 할 두 가지 원리인 자유와 규율의 관계로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Ⅲ. 교육의 리듬성

교육의 리듬이란 교육적 경험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어떤 원리를 말한다(1961 : 26). Whitehead가 1922년 런던기술대학 협의회에서 행한 연설의 주제이기도 한 교육의 리듬은 교육실제에 적용되어야 할 일반적인 원리에 대한 주장으로서 모든 탐구양식은 학생의 정신 발달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학생에 의해 행해져야 하나, 그렇지 못하고 있는 교육실제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는 핵심 개념이다.
이하에서는 지적 성장 또는 지적 발달의 3가지 단계, 즉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일반화의 단계와 교육의 리듬성에 내재된 자유와 규율의 성격에 대해 고찰한다.

1. 지적 성장의 리듬성
생의 핵심은 주기적(periodic) 성격을 띠고 있으며, 주기에는 정신 성장과 같은 주기도 있다. 이 주기는 반복적으로 순환되지만 각 순환 단계마다 하위 단계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Whitehead는 이러한 정신 성장의 특성을 ‘리듬성(the rhythm)’으로 규정하고, 정신 성장의 리듬성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 교육을 생기 없고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주된 원인으로 간주한다(1961 : 27).
주기성을 띄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지적 성장은 세 단계, 즉 낭만의 단계(the stage of romance), 정확의 단계(the stage of precision) 그리고 일반화의 단계(the stage of generalization)로 구분된다(1961 : 28-29)
낭만의 단계는 최초로 이해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교과는 가능성이 반 정도 열려있는 탐색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사실에 대해 즉각적으로 인식하고, 사실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간헐적으로만 이루어지며, 단순한 사실로부터 탐색된 적이 없는 사실들 간의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흥분이 수반되는 단계이다.
정신 발달의 주기의 첫 단계인 낭만의 단계로 학습자를 안내하기 위한 핵심개념으로 Whitehead는 흥미와 향유를 들고 있다. 즉 흥미 없는 발달은 일어날 수 없으며, 유기체를 가장 알맞은 자기 발달로 안내하는 것이 향유이다. Whitehead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흥미가 없다면 정신발달이 이루어 질 수 없다. 흥미는 주의 집중과 이해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막대기를 사용하여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고, 즐거운 활동을 통해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다. 흥미 없이 발달은 일어나지 않는다. 살아있는 유기체를 가장 적합한 자기 발달로 향하도록 자극하는 자연스런 방식은 향유(enjoyment)이다. 유아들은 엄마와 부모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킨다. .......
기쁨은 창조적 생명력을 위한 정상적이고 건강한 박차(spur)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더 큰 직접적인 기쁨의 유혹에 자신을 맘대로 방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그 자체로 즐거운 자연적인 활동통로를 따라 발달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1961 : 41).

낭만의 단계는 정신발달의 처음단계이며 정확의 단계에서는 배경이 되어 정확의 단계를 계속유지 시키고, 일반화의 단계가 다시 되돌아오는, 말 그대로 배움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차지하는 ‘신성한 땅(the holy ground)’이다(Whitehead. 1961 : 14, Hills. 1998 : 21).
정확의 단계는 지식이 증가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관련성의 폭보다는 형식의 정확성이 중시된다. 이 단계는 언어의 경우 문법의 단계이다. 즉 주어진 자료에 대한 분석 방법을 조금씩 학생들에게 수용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전통적인 학교 교육은 거의 유일하게 이 단계를 지나치게 강조하였다는데 문제가 있다.
분명한 것은 정확의 단계는 그 이전 단계인 낭만의 단계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략적인 상태로 이미 모호하게나마 이해해 왔던 사실들이 없다면 정확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분석은 진정한 의미에서 분석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단순한 사실에 대한 일련의 의미 없는 진술에 지나지 않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사실들 간의 관련성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 단계에서는 낭만의 단계에서 이해한 사실(the facts of romance)은 아이디어를 개방시키고 체계적 질서를 이끌어내면서 다른 사실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 체계적 질서를 통해 낭만 단계의 일반적인 과제를 밝히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일반화의 단계는 명확한 훈련의 결실이 나타나며 최후의 성공을 맛보는 단계이다(1961 : 30). 분류된 아이디어와 적절한 기법이 더해져 낭만의 단계로 돌아가는 단계이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는 일반규칙과 법칙들을 공식이나 세세한 예증의 상태로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며 학생들은 자기 자신의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앞서 교육의 목적에서 논하였듯이 학습자들은 적절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당면한 삶의 경험을 해결하기 위해 각자가 효과적인 개별자(an effective personal)로서 자발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의 전일적 목적(whole aim)은 능동적 지혜의 생산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반화의 단계에서 학습자들이 갖추어야 할 정신적 상태는 원리의 적극적 활용을 지향하여 세부적인 것에서 벗어나 잘 이해한 원리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습관으로 지혜를 최종적으로 소유하는 단계이다. 이러한 지혜의 획득을 Whitehead는 정신적 습관(a mental habit)의 획득이라고 한다(1961 : 36).  대학 교육은 특히 이러한 정신적 습관의 형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Whitehead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후의 실제 생활 속에서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세세한 것들을 잊어버릴지라도 무의식적인 상식에 의해(by an unconscious common sense) 직접 접하는 환경에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을 떠올릴 것이다. 학생들이 배운 것은(learning)은 교과서를 버리고, 강의 노트를 태우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외웠던 세세한 것들을 다 지워버리고 난 연후에야 쓸모가 있다. 여러분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세세한 것들은 태양과 달처럼 너무나 분명한 사실로 여러분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며, 여러분이 가끔 필요로 하는 세세한 것들은 참고서를 뒤져서 충분히 알 수 있다. 대학의 기능은 사소한 것을 버리고 원리를 중시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원리는 말로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여러분이 흠뻑 빠져야할 원리는 형식적 진술(a formal statement)보다 차라리 정신적 습관(a mental habit)이다. 그것은 한 사례의 형태를 띈 환경 속에서 적절한 자극에 대해 정신이 반응하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활동하지 않는다. 정신의 배양(mental cultivation)이란 정신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 만족스럽게 정신이 기능하는 방법을 획득하는 것이다(1961 : 36).

지금까지 지적 성장을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일반화의 단계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 세 단계는 엄격하게 독립된 주기로 나타나기보다는 보다 큰 혹은 보다 작은 주기와 관련되어 위계적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내적인 정신활동은 여러 가닥의 실로 짜여진 망과 같아서 일률적으로 확대시킨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정신발달은 그 자체가 여러 주기가 짜여져 하나의 리듬으로 나타나며 그 전 과정은 내부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동일한 일반적 성격을 지닌 보다 큰 주기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지적 성장의 리듬성의 첫 번째 특징인 ‘주기의 위계성’이다.
지적 성장의 리듬성의 두 번째 특징인 ‘주기의 교체성’은 한 주기 내에서 각각의 단계는 지배적 성격을 띠며 교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일반화의 단계는 교대로 순환하며 나타나지만 어느 특정 시기에는 이 중 한 단계가 지배적인 특징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세 단계는 고립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는 다른 단계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떤 식으로 간여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것이 지적 성장의 리듬성의 세 번째 특성인 ‘주기내 각 단계의 관계성’이다. 부연설명하자면 정확의 단계가 지배적일 때 낭만의 단계는 배경이 된다. 분명히 알아야 할 과제에 대해 탐색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낭만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낭만은 획득해야 할 목표인 균형 잡힌 지혜의 한 요소이며, 유기체는 자신의 이해력이 낭만에 의해 신선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주어진 과제의 열매를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961 : 44). 또한 정확의 단계는 세부적인 것에서 벗어나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지향하는 잠재적인 습관을 형성하여 낭만의 단계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Whitehead는 지적 성장의 리듬성 즉, 한 주기와 다른 주기와의 위계성, 주기 내 지배적 단계의 교체성 그리고 한 주기 내 각 단계의 관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압축하여 말하고 있다.

한 주기 내의 순환단계 내에는 작은 소용돌이가 있어서 매일, 매주, 매 학기 마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여기에서 모호한 가능의 상태로 어떤 주제를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관련 세부사항을 숙달하고, 관련된 지식에 비추어 모든 주제를 결합한다.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흥미를 유발하고, 기법을 요구하고, 성공의 희열을 느끼게 하지 않으면 학생들의 지적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들은 낙담할 것이다(1961 : 47).

2. 자유와 규율의 리듬성
앞서 지적 성장의 리듬성의 성격을 ‘한 주기와 다른 주기와의 위계성’, ‘주기 내 지배적 단계의 교체성’ 그리고 ‘한 주기 내 각 단계의 관계성’으로 규정하였다. Whitehead는 이러한 지적 성장의 자연스런 발달에 적용되어야 할 두 가지 원리를  ‘교육의 리듬성’으로 규정하면서 그 두 가지 원리를  ‘자유’와 ‘규율’로 규정하고 있다(1961 : 39).
Ⅱ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지식의 획득이 지적 교육의 중요한 한 가지 목적이지만 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 목적이 있는 바, 그것은 지식이 유지되는 방식인 지혜의 획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의 목적은 지혜의 획득이며, 삶의 기예를 터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지식을 수반한 자유에 의해서 가능하며, 지혜를 획득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지식은 규율을 통해 질서있게 정돈된 사실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와 규율은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사항이다(1961 : 39).
Whitehead는 교육의 리듬성인 자유와 규율의 특징과 교육의 리듬성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 교육의 실패를 가져왔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상적으로 구안된 교육의 목적의 모습은 규율이 자발적인 자유선택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자유는 규율의 경우처럼 가능성의 확대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원리, 즉 자유와 규율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 속에 잘 조정(adjust)되어 개인의 자연스런 발달 방향과 상응해야 한다. 자연스런 발달의 흐름에 대한 자유와 규율의 적용(adaptation)이 내가 강조한 교육의 리듬이다. 확신하건대 수많은 과거의 실망스런 (교육의) 실패는 이러한 리듬의 중요성에 주의를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다. 교육의 시작 단계와 마무리 단계에서 교육의 주된 모습은 자유이지만, 자유가 규율에 종속되어야 할 단계도 있다. 자유와, 규율 그리고 자유의 뚜렷한 순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정신적 발달은 이런 순환과 이 순환들의 순환도 있다. 가장 작은 형태의 순환은 하나의 단위세포, 혹은 벽돌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성장의 단계는 그러한 세포의 유기적 구조와 같다. 하나의 그러한 세포 같은 구조를 분석할 때 첫 번째 자유의 기간을 낭만의 단계, 중간의 규율의 기간을 정확의 단계, 그리고 마지막 자유의 기간이 일반화의 단계이다(1961 : 40).

즉, 지적 성장의 세 단계인 낭만의 단계가 자유를 특징으로 하는 단계라면, 정확의 단계는 규율의 단계 그리고 마지막 일반화의 단계는 다시 자유의 단계이다. 이러한 순환은 가장 미시적인 형태의 순환으로 세포구조와 같은 것이며, 순환에는 이러한 세포구조가 결합되어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이루는 보다 큰 순환도 있다.
이제 가장 미시적인 구조로 정신성장의 각 단계마다 나타나는 자유와 규율의 특성에 대해 좀더 고찰해 보자.
첫째, 자유와 규율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낭만의 단계에서 강조되어야 할 특징은 자유이다. 이 단계에서 교육의 과정에서 강조해야 할 내용은 흥미와 향유, 쓸모없는 지식의 해악성, 그리고 인간지성의 자연스런 열망에 대한 강조이다. 즉 흥미 없이 발달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살아있는 유기체를 자기 발달로 자극하는 자연스런 방식은 향유이다. 문제는 흥미를 유지하되 목표와 너무 이탈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즉 흥미에 수반되는 규율의 엄격성은 장기적으로는 학생이 지혜를 획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long time good)이어야 한다(1961 : 41). 또한 한 개인에게 위대함을 모든 단계의 직접적인 경험을 변형시킬 수 있는 지식이다. 이런 지혜와 동떨어진 단순한 지식은 쓸모없는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것은 해롭기조차 하다. 낭만의 단계에서 인간 지성은 새로운 환경에 접할 때 아이디어와 경험이 뒤섞인 가운데 다소 혼미한 상태(ferment)로 진행된다. 즉 새로운 사고에 익숙해지고, 의문을 제기하고, 해답을 추구하고, 새로운 모험의 결과로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주지하는 과정이며 어린아이들에게 종종 혼란(ferment)의 상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 지성의 자연스런 열망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도움과 규율이 필요하다. 즉 아이들의 지적 성장에 맞게 환경을 선택하고 개인의 필요에 맞게 변형되어야 한다. Whitehead는 낭만의 단계에서의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교육의 어떤 부분도 규율과 자유 없이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러나  낭만의 단계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자유이며, 그래야만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 알려고 하고 행동하려 한다. 성장하는 정신이 낭만의 코스를 달리기도 전에 엄격한 규율을 강조할 때 아이디어를 동화하는데 장애가 발생한다. 낭만과 격리된 이해란 있을 수 없다. 과거 수많은 실패의 원인은 알맞은 낭만의 위치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낭만의 모험 없이는 자발성이 결여된 생기 없는 지식을 얻을 뿐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지식도 갖지 못하고 아이디어를 경멸하기조차 한다(1961 : 43).

둘째, 자유와 규율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정확의 단계에서 강조되어야 할 특징은 규율이다. 정확의 단계는 분명한 지식을 통해 보다 확연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며, 상식적 요구와 맞게 자료를 다루게 되며, 교과의 두드러진 특징을 기억하게 된다. 즉 할당된 과제의 정확한 숙달이 요구된다.
심지어 기본적인 세부사항과 중요한 정확한 일반적인 지식에 대해 알게 하고. 기능을 숙달하게 하기 위해 강압적인 방법을 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가르칠 수도 있다. 마치 시를 쓰기 위해 반드시 운율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교각을 세우기 위해 재료의 강도에 대해서 알아야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1961 : 44). 물론 이때의 강압적 방법은 앞서 장기적으로는 학생의 자기 발달에 도움이 되는 규율의 엄격성이어야 한다. 규율은 자유를 건전하게 제한  하는 요소이다.
정확의 단계 동안에 낭만은 배경이 된다. 즉 규율이 강조되나 그 바탕에는 자유가 자리 잡고 있다. 아무리 규율을 요하는 정확한 지식의 습득을 강조할지라도 낭만의 특징인 자유는 균형 잡힌 지혜의 한 요소이며, 이해가 낭만에 의해 유지될 때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규율을 요하는 흥미를 말살하여 목표달성에 실패할 수 있으며, 반대로 너무 짧다면 학생들이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발성과 훈련 혹은 자유와 규율은 둘 다 필요한 것이지만 훈련은 자발성을 죽이기 쉽다는 점이 교육의 불행한 딜레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itehead는 흥미를 희석시키지 않고 모든 학생의 정확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교사가 천재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1961 : 45).
마지막으로 낭만의 단계에서의 자유, 정확의 단계에서의 규율에 이어 일반화의 단계에서 강조되어야 할 특징은 다시 자유이다. 일반화의 단계에서 학생들의 정신은 난삽한 것에서 엄격한 체계를 갖춘 것으로 채워지고 새로운 것을 생산하기를 원하는 효과적인 개별자로서 다시 낭만 단계의 드넓은 모험 속으로 되돌아간다(1961 : 46). 정확의 단계가 정확한 지식의 획득을 통해 원리의 이해로 성장하는 단계라면 일반화의 단계는 원리의 적극적 활용을 지향하여 세부적인 것이 잠재적인 습관의 상태로 물러나는 단계이다. 앞서 말한 사례의 형태를 띤 환경 속에서 적절한 자극에 대해 정신이 반응하는 성향인  정신적 습관(a mental habit)이 형성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의 핵심은 수동적으로 훈련받은 상태에서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적응하는 정신의 발현(the emergence)에 있다(1961 : 46). Ⅱ장의 교육의 목적에서 논했듯이 이 단계는 삶을 영위하면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적 원리를 능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단계이다. 물론 이 단계 동안에도 정확한 지식이 왕성하게 성장하는데, 그 이유는 정신이 정확한 지식의 위력을 경험했고 일반적인 원리의 진실성과 설명의 함축성(richness of illustration)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의 성장은 어떤 적극적인 모험적 사고에 의해 유발되는 우연적 사건처럼 점차 비의식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자유와 규율이라는 두 측면에서 볼 때 이 단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규율을 바탕으로 하여 자유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Whitehead는 모든 교과와 모든 유형의 학생 또는 개별 학생들에게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교육의 추상 공식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단 하나의 공식이 있다면 그것은 리듬적 파동의 공식(the formula of rhythmic away)이다(1961 : 44). 다시 말해, 초기단계에서의 발달은 자유를 강조해야 하나 이후의 중간 단계에서는 할당된 과제의 정확한 숙달인 규율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다시 학습자의 능동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자유를 강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어느 단계에서나 자유와 자율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서로 관계한다. 특히 중간 단계, 즉 정확의 단계가 처음 시작될 때의 규율은 외부에서 강요된 규율일 수도 있으나 중요한 규율은 ‘자기 규율(self-discipline)이다(1961: 44, 49).
결국 교육의 리듬성은 지적 성장의 자연스런 발달에 적용되어야 할 자유와 규율의 리듬성이며 이것이 모든 교과와 모든 유형의 학생과 개별 학생에 적용되어야 할 단 하나의 공식인 리듬적 파동의 공식이다.
Whitehead는 교육의 본질은 종교적이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1961 : 25). 종교적 교육은 의무와 경외심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의무는 현상의 과정에 대한 통제 가능성에서 생기며, 경외심의 토대는 현재로서, 현재는 존재의 완전한 총체적 모습을 지닌 채로 과거와 미래로 이어지며 시간의 흐름은 영원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의무의 토대가 되는 통제가능성은 자기규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임에 반해, 경외심의 토대가 되는 한 개인의 현재성은 개인의 내부에서 흥미와 관심을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자발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Whitehead는 미시적 구조의 지적 발달에서는 물론 종교교육과 같은 거시적인 생의 높은 단계에서의 리듬적 발달의 일반 법칙 역시 자기 발달로 안내하기 위한 자유와 자기규율로 구성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리듬적 발달의 일반 법칙을 (종교 교육이라는) 생의 보다 높은 단계에서 분석하고 있다. 즉, 최초의 깨우침과 규율 그리고 보다 높은 비행을 통해 결실을 구현해야 한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발달의 원리는 내부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발견은 우리 자신에 의해 이루어지고 규율은 자기 규율이며, 결실은 자신의 자발성에 의해 성취된다(1961 : 49).


Ⅳ. 교육의 리듬성의 교수-학습에 대한 함의

이하에서는 앞에서 논한 지적 성장의 리듬성과 교육의 리듬성이 교수-학습의 이해에 어떤한 의미를 제공하는지 교수-학습의 여건(datum)과 교수-학습의 방법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교수와 학습의 개념은 구분 가능하고 마땅히 구분하는 것이 각 개념이 포함하고 있는 현상을 분명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교육 실제에 있어 교수와 학습은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제적 현상(actual events)으로 교육의 과정에 나타난다. Whitehead는 교육의 실패를 낳은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로 감상적 심리학과 실제와 유리된 교육을 들고 있다(1961 : 14). 이런 이유로 이하에서는 앞서 논한 교육의 목적과 스타일 그리고 교육의 리듬성을 중심으로 한 Whitehead의 주장이 실제적 과정으로서 교수-학습의 여건(datum)과  교수-학습의 방법의 이해에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지 살펴본다.

1. 교수-학습 여건(datum)의 이해
 여건은 유기체의 성격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유기체의 성격을 결정하는 모든 환경을 의미한다(Whitehead, 오영환 역. 2003 : 721).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유기체의 성격은 여건, 즉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교수-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혹은 변인이라는 용어 대신에 여건(datu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교수-학습에 관여하는 여건은 개별적 또는 일시적으로 간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가. 유기체로서의 학습자
교육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든 교육체제는 유기체적 운명을 가지고 있다(1961 : 80). 학생은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교육의 가장 유사한 비유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음식물을 소화하는 것과 같다(1961 : 42). 학생들은 매순간 살아 있어서 조각 그림 맞추기(a jig-saw puzzle)처럼 파편 조각으로 쪼갤 수 없다(1961 : 44). 유기체로서의 학생은 아무 음식이나 외부에서 주어지는 대로 소화할 수 없다.  
앞서 교육의 리듬성을 지배하는 두 가지 원리는 자율과 규율임을 살펴본 바, 이 자유와 규율은 학습자 스스로의 자발성을 통해 유지되고 적응될 때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교육의 전일적 목적은 능동적인 지혜의 생산이며, 이 능동적 지혜의 생산은 최종적으로 학습자의 학습에 대한 자발적 헌신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을 살아가는 이도, 생애 동안 쏟아질 현상의 흐름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자도 개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사의 역할은 학생의 자기 발달을 안내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유기체로서의 학습자에 대한 교사의 역할은 학생에게 인격적 감동을 주어 배움의 열정을 일으키고, 보다 넓은 지식과 배움과 삶의 확고한 목적을 갖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것이다(1961 : 49).

나. 총체적 삶으로서의 교과
교육에는 단 하나의 교과만이 있다. 그것은 교과가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삶(life)이다. 수학을 가르치든 대수를 가르치든, 기하를 가르치든 철학을 가르치든 총체적 삶과 관련되지 않은 각 교과는 우리가 실제 영위하는 삶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 삶과 관련되지 않은 정보나 지식은 결합 방식을 결정하지 않은 어설픈 표(a rapid table)에 지나지 않는다(1961 : 18).  우리가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은 각 교과에 담긴 정보나 지식이 조각이 아니라 그 교과에 담긴 아이디어의 구조이다. 아이디어의 힘과 아이디어의 아름다움, 그리고 아이디어의 아름다움에 대한 친근감이다. 이 아이디어야말로 우리가 삶을 영위하면서 지니고 있어야할 고유한 준거이다(1961 : 23).
과제의 순서를 정하는 원칙은 쉬운 것을 먼저 가르치는 난이도 준거나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필요한 것을 먼저 가르치는 필요 선행의 원칙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과제가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가장 어려운 과제가 삶에 가장 핵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유아기에 소리를 통해 의미의 상관성을 안다는 것은 매우 힘든 과업이나 유아들은 기적처럼 이 과업을 훌륭하게 해 낸다(1961 :27).
앞서 Whitehead의 교육의 목적 중의 하나가 삶의 기예를 터득하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Whitehead는 무엇을 배우든 중요한 것은 삶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배우는 것이며, 그것은 소수의 중요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삶을 영위하는 동안 갖게되는 당면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점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활용한다는 것은 그것을 흐름(stream)과 관련짓는 것, 다시 말해 아이디어와 관련된 지각, 느낌, 욕망은 물론 사고 작용을 조정해주는(adjusting) 복잡한 정신 활동과 관련짓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활동이 우리의 삶을 형성한다. 나는 단절된 아이디어(disconnected ideas)를 수동적으로 회상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화석화시키는 사람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성(humanity)은 아마도 몇몇 신문 편집자들을 제외하고 그런 방식으로 형성되지 않는다(1961 : 14).

다. 학습자의 현재성
교과에 수반되는 모든 흥미는 ‘지금-여기(here and now)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신적 삶의 실현 가능성은 학습자의 현재성을 고려하여 전달하고 나나 내어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황금률(the golden rule)이다(1961 : 17). 또한 학생의 직접경험과  동떨어진 사상의 분석과 행동의 역사는 단지 소리나는 꽹과리(mere sounding brasses)에 지나지 않는다(1961 : 71). 신성한 땅으로서의 현재성에 대해 Whitehead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단지 언급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원하는 이해는 현재에 대한 이해이다. 과거의 어떤 지식의 유일한 용도는 미래에 대한 채비를 하는 것이다. 현재성(the present)을 무시하는 것은 어린이의 마음에 가장 치명적인 해악을 가하는 것이다. 현재성은 현재 있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The preset contains all that there is). 현재성은 신성한 땅이다(1961 : 14).

지적 발달의 첫 단계이자 교수-학습의 첫 단계인 낭만의 단계는 학습자의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학습자의 현재상태와 관련지음으로써 학습의 내적 동기를 부여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단계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습자로 하여금 학습내용에 대해 모험적으로 탐색하게 하고, 지적향유를 누리게 하고, 지속적으로 학습하게 할 수 있다. 이 낭만의 단계는 정확의 단계에서는 배경이 되어 정확의 단계를 지속 시켜주고, 일반화의 단계에서는 다시 낭만의 단계로 되돌아가는 추진력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낭만의 단계에서 중시되는 학습자의 현재성은 신성한 땅이다.
그러므로 지적 성장의 어느 단계에 있든지 간에 낭만의 단계의 특성인 흥미와 지적 향유를 유지하는 것이 교수 기예(the art of teaching)이다. 낭만은 균형 잡힌 지혜의 한 요소이며, 자신이 이해한 바를 낭만에 의해 신선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유기체는 주어진 과제의 열매를 흡수하지 못한다(1961 : 44).

라. 살아있는 아이디어
Whitehead는 두 개의 교육적 계율을 강조하는 바, 그것은 “너무 많은 교과를 가르치지 말라”는 것과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철저히 가르쳐라”는 것이다(1961 : 14). 교육에서 제공되어야 할 것은 소수의 중요한 아이디어며, 이 아이디어가 모든 조합이 가능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여기서 철저히 가르친다는 것은 학습자들이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학습자가 처한 ‘지금-여기’의 실제 환경 속에서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신의 전 생애 동안 끊임없이 제기될 현상의 흐름을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즉, 소수의 아이디어는 삶이라는 총체적 교과와 끊임없이 관련되어야 하며, 그 관련은 학습자의 현재 삶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생들과 생생하게 대면하는 실제교사에 의해 제작되지 않은 외부 평가자에 의해서 제작된 공통적인 외부시험체제(common external examination system)는 교육에 치명적이며(1961 : 20), 학생 개인의 학식을 테스트하는 외적시험체제 역시 교육적 낭비를 낳을 뿐이다(1961 : 24).
교육의 목적이 학생의 자기 발달을 안내하고 자극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전제의 논리적 가정은 교사 또한 살아있는 사고를 하는 살아있는 사람이어야 한다(1961 : ⅲ).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은 ‘살아 있음’을 유지해야 한다. 교육은 살아있는 교사가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살아있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학생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안내하는 것이어야 한다.

마. 학습자의 자발성
정신발달의 한 주기는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그리고 일반화의 단계 순으로 진행되며 각 단계마다 강조되는 두 가지 원리는 자유와 규율임을 앞서 살펴보았다. 이때 낭만의 단계에서 강조되는 자유는 결국 학생의 자발성을 유도하기 위한 것, 즉 학습의 내적 동기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학습자의 학습에 대한 자발성은 이후 규율을 강조하는 정확의 단계와 마지막의 일반화의 단계로 학습이 진행되는 동안 학습자의 학습참여를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의 리듬성을 지배하는 두 원리인 자유와 규율인 바, 자유는 학습자의 자발성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며, 규율은 자유를 폭넓게 행사함으로써 획득되는 자기 규율이다. 발달의 원리는 내부에서 일어나며, 발견을 하는 것은 개인 자신이다. 중요한 것은 규율은 자기규율이어야 하며, 결실은 자발적으로 성취된 것이어야 한다(1961 : 49).


바. 교육과정의 변형
앞에서 살핀 지적 성장의 세 단계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13세나 14세까지는 낭만의 단계이며, 14세에서 18세까지는 정확의 단계이며, 18세에서 20혹은 21세까지는 일반화의 단계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일반적인 특징들이어서 발달 방식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1961 : 47). 예를 들어 언어의 경우 어휘와 문법 습득의 방식으로 언어의 정확의 단계가 시작된다 해도 과학은 낭만의 단계에 충분히 있어야 한다. 또한 언어의 낭만의 단계는 유아의 발화 습득과 함께 시작되어 일찍 정확의 단계로 옮겨가는 반면에 과학은 이보다 더 늦게 진행된다. 따라서 조기에 과학에 대한 정확성을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의 자발성과 흥미를 앗아가며 아이들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과학 교과를 접할 가능성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과학의 낭만의 단계는 언어에 대한 명확한 공부가 시작된 이후 몇 년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한 개인의 지적 성장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교과마다 지적 성장의 단계가 학습자의 발달시기별로 달리 제공되어야 하는 것처럼 단위 학교의 교육과정 역시 단위 학교마다 달리 구성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한 개인이 처한 현재-지금의 상태가 다르듯이 학교가 현재-지금 처한 환경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생들과 직접 접촉하여 학생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교사 혹은 단위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제작된 외적시험체제는 교육에 치명적이다(1961 : 21). Whitehead는 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학교가 감독 기관에 좌지우지되어 엄격히 제한된 교육과정을 적용한다면, 그것은 교육에 치명적인 것이다. 학교가 교육적 단위라고 할 때, 각각의 학교는 그 학교 고유의 여건이 고려되어야 한다. 어떤 목적을 위해 학교를 구분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과정을 절대시하여 학교 직원들이 수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이점은 기술학교나 대학교 역시 마찬가지다(1961 : 25).

사. 교수-학습 여건의 관계성
유기체는 유기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단순한 결합 이상이며, 이 유기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은 질적 우위를 가릴 수 없이 저마다 고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Whitehead는 생기 없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데 연연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살아있는 지식을 가지고서 삶의 현상을 이해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의 과정에 관련된 여러 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1961 : 17). 성공적인 교육은 교사의 천재성, 학생들의 지적 유형, 학생들의 잠재력, 학교의 현재 여건이 제공하는 기회의 정도, 이러한 여건들의 결합 방식 등 어느 한 요인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생명력이 없는 물체가 아닌 살아있는 학생의 정신을 다루는 한 호기심과 판단력을 갖추게 하고,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해결하고, 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하는 이론의 활용 능력 등은 교과의 시험계획표 속해 정해진 규칙과 같은 것에 의해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 교수-학습의 리듬성
Ⅲ장에서 지적 성장의 리듬성은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그리고 일반화의 단계를 한 주기로 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지적 성장의 한 주기의 특징을 한 주기와 다른 주기와의 위계성, 주기 내 지배적 단계의 교체성, 그리고 한 주기 내 각 단계의 관계성으로 규정하였다.
교수-학습의 과정이 학습자의 지적 성장을 안내하고 촉진시키는 것이라면, 이 과정은 지적 성장에 내재된 원리에 따라야 할 것이다. 교수-학습의 과정은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그리고 일반화의 단계가 하위 수준의 한 주기에서 보다 큰 상위 수준의 주기로 연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한 주기 내에서 교과의 성격과 학습자의 현재 상태에 따라 어떤 단계를 지배적 단계로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주기 내에서 한 단계가 지배적 단계가 될 때, 나머지 두 단계를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지배적 단계 내에 유지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낭만의 단계에서 흥미 유발은 정확의 단계로 나아가는 안내 역할을 해야 하며, 정확의 단계에서 낭만은 사라지지 않고 배경으로 남아 있어야 이후의 학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Whitehead는 이에 대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학습 내용을 가지고 학습자와 직접 대면하며 교수-학습의 실제 과정에 관여하는 교사에 의해 구체적 방법이 구안되고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2. 교수-학습 방법의 이해
Brumbaugh는 과정철학적 입장에서 볼 때 시간 속에 있는 모든 존재의 앎의 단계(phases of concrescence)는 역동적이고, 직접적이고, 비가역적이고(irreversible), 연속적인 특징을 지닌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1982 : 38). 이러한 앎의 단계는 고정된 순서, 즉 최초의 조응(an initial encounter)의 단계, 불안정한 상태의 재조정 단계, 그리고 최후의 안정의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1982 : 4). 바로 이 세 단계가 Whitehead가 말한 지적 성장의 세 단계이며, 학습자의 학습을 안내하고 도와주는 교수-학습의 단계인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만족의 단계이다. 물론 만족의 단계는 앞서 살핀 일반화의 단계를 나타낸다.
이 교수-학습의 세 단계는 어느 단계가 생략된 형태(omission pattern)와 변형된 순서(transposed orders)로 구분되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Brumbaugh. 1982 : 117-120).
첫째 교수-학습의 세 단계 중 어느 단계가 생략된 형태는 다음의 다섯 가지가 있다.


 

(O1)     R′   P′ S′
(O2)     R′   P′ S
  (O3)     R′   P S
  (O4)     R   P′   S′
  (O5)     R   P′ S
   (O6)     R   P S

생략된 패턴 (O1)은  낭만, 정확, 일반화의 세 단계가 모두 생략된 순순한 탐색(detention)의 상태이다. (O2)의 형태는 낭만의 단계와 정확의 단계가 생략된 형태로 여기서 교수-학습은 흥미의 유발 없이 구체성이 결여된 지나친 일반화 위주로 이루어진다. (O3) 형태는 낭만의 단계가 생략된 형태로 정확성과 일반화를 강조하는 학교교육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나 동기부여와 흥미 유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수업이 교사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정확성을 강조한다 해도 일반화가 이루어지는데 한계가 있다. (O4)는 정확의 단계와 일반화의 단계가 생략된 형태로 학생들에게 흥미와 동기 유발은 비록 이루어질지라도 학습 내용의 정확한 이해와 일반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이므로 지속적인 흥미 유지와  동기 유발이 일어나지 못한다. 정확의 단계가 생략된 (O5)는 수업 안내나 도입 부분에서 사용될 수 있는 형태이다. 이중 가장 이상적인 교수-학습의 과정은 위의 세 단계 중 어느 단계도 생략되지 않은 (O6)형태이다.
이 세 가지 형태는 교수-학습의 방법 상 다음 다섯 가지의 변형된 순서로 제시될 수 있다.

(T1)           S    P    R
(T2)           S    R    P  
(T3)           P    S    R
(T4)           P    R    S  
(T5)           R    S    P
(T6)           R    P    S   
       
일반화의 단계부터 시작되는 (T1)과 (T2)는 S모형으로 합리주의적 모델(rationalist models)로서 이미 해당 분야의 지식을 숙달한 전문가들에게는 효과적이나 초보자들은 해당분야의 내용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고 흥미나 동기유발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수-학습이 진행되므로 수업 참여와 내용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T3)와 (T4)는 정확의 단계에서 수업이 시작되는 P 모형으로 여러 면에서 단기간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으나, 문제는 외적 동기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비록 학습이 이루어진다 해도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함께 이루어지지 않을 시 쉽게 잊혀지고 학습한 내용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단점이 있다. 그 이유는 학습(내용)에 대한 학습자의 흥미 유발이나 동기 유발 그리고 학습자의 현재성에 대한 고려 없이 수업이 진행되므로 학습자는 학습에 대한 의의를 내적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T5)와 (T6)는 모두 낭만의 단계부터 시작되는 R모형이나 (T5)는 낭만의 단계 R 다음에 일반화의 단계 S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학습 내용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이해 없이 일반화의 단계로 넘어가는 단점이 있다. (T6)는 변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일반화의 단계 순으로 이어지는 교수-학습의 과정으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앞서 Whitehead의 지적 성장의 리듬을 한 주기와 다른 주기와의 ‘위계성’, 주기 내 지배적 단계의 ‘교체성’ 그리고 한 주기 내 각 단계의 ‘관계성’으로 규정하였다. 교수-학습이 학습자의 지적 성장의 특성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면 - 비록 그것이 최상의 일치(optimal match)이든, 최상의 불일치(optimal mismatch)이든 - 지적 성장의 리듬은 교수-학습의 리듬으로 달리 설명될 수 있다. 부연하자면 지적 성장의 리듬성을 교수-학습의 주기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수-학습 역시 지적 성장의 세 가지 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 교수-학습은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일반화의 단계 순으로 하나의 주기를 이루며, 이 교수-학습의 주기는 보다 작거나 큰 주기의 영향을 받는 ‘교수-학습 주기의 위계성’을 갖는다. 둘째, 교수-학습 주기 내에는 어느 한 단계가 지배적으로 각각 나타나는  ‘지배적 단계의 교체성’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교수-학습의 주기 내에서 각 단계는 나머지 단계와 관련이 있는 ‘주기 내 각 단계의 관계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Ⅴ. 결론

본고의 목적은 A. N. Whitehead의 교육의 리듬성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것의 교육적 함의, 특히 교수-학습에 대한 함의를 밝히는 것이었다.
Whitehead가 표명한 교육의 목적은 한 마디로 학습자에게 능동적인 지혜를 생산하도록 돕고 안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Whitehead는 이를 교육의 전일적 목적(whole aim)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교육받은 인간상으로서, 스타일을 고찰하였는데 스타일은 전문적 탐구의 결과로서 교육받은 사람이 성취해야할 가장 고귀한 목표이고, 사람됨의 극치이며, 성취한 완벽함에 대한 심미적 의식이다.
지적 성장의 리듬성은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일반화의 단계를 한 주기로 하며, 이 주기는, 한 주기와 다른 주기와의 위계성, 주기 내 지배적 단계의 교체성 그리고 한 주기 내 각 단계의 관계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 성장의  자연스런 발달에 적용되어야 할 자유와 규율이라는 두 가지 원리의 적용이 ‘교육의 리듬성’이다. 즉, 지적 성장은 자유와 규율의 긴장과 조화의 문제이며, 이때 자유는 학습자의 자발성을 일으키고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며, 규율은 자기규율이다.
화이트헤드의 교육목적과 교육의 리듬성이 교수-학습의 여건에 시사하는 바는 크게, 학습자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단 하나의 가장 생생한 교과는 삶이며, 교수-학습은 학습자의 현재 상태에서 출발해야 하며, 학습자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학습자들이 생활의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살아있는 폭 넓은 아이디어라는 점이다. 또한 지적 성장의 리듬성을 교수-학습의 방법 측면에서 이해했을 때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일반화의 단계가 각각 생략된 형태와 순서가 바뀐 두 가지 형태로 제시할 수 있었다.
Whitehead의 유기체 철학의 아이디어와 기본개념은 그물망처럼 연계되어 있으며, 그의 교육적 논의 또한 그의 철학적 그물망 내에서 서로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그의 철학적 사유 내에서 교육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관련되었는지를 밝히는 거시적 접근을 지양하였다. 즉, 본고는 교육에 관한 그의 아이디어가 집약된 그의 저서 『교육의 목적』을 주된 탐구 대상으로 설정하였으며, 특히 교육의 리듬성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그러므로 Whitehead의 교육에 관한 많은 아이디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재의 성격, 인간 존재의 특성에 관한 문제, 앎의 문제, 가르침의 문제 등에 관한 그의 과정철학적 관점에 대한 이해와 병행되어야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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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화이트헤드와 교육의 리듬:
교수-학습에 대한 함의를 중심으로  

이현휘(가톨릭대학교)


1. 우리가 화이트헤드를 연구하는 목적 두 가지

1) 기존의 우주론 비판

cf. Philosophy, in one of its function, is the critique of cosmologies. It is its function to harmonize, refashion, and justify divergent intuitions as to the nature of things. It has to insist on the scrutiny of the ultimate of ideas, and on the retention of the whole of the evidence in shaping our cosmological scheme. Its business is to render explicit, and so far as may be efficient, a process which otherwise is unconsciously performed without rational test. SMW(ix-x).

2) 개별 분과학문의 근본전제 성찰

cf. Thus one aim of philosophy is to challenge the half-truths constituting the scientific first principles. PR(10)               

<도식화>
개별분과학문의 지평  ~ ex. 교육학 (C)
 (construction)
.........................................................................................................................
              (A) 개별분과학문의 근본전제 ~ ex. 교육철학
철학의 지평
(fundamental assumption)                                                
                            (B) 우주론 ~ ex. 17세기 근대의 세계관


2. 화이트헤드와 교육학의 “접점”

- “교육철학”: 교육학의 근본전제를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에 입각하여 비판적으로 성찰(위의 도식에서 [A]의 영역).
- 『교육의 목적』의 위상: 교육학 저서가 아니라 교육철학의 저서
- 교육학은 『교육의 목적』을 근본전제로 수용하면서 새롭게 “구성”해 내야만 하는 우리들의 과제


3. 연구전략 검토

I. 서론
- “그러나 본고에서는 그의 철학적 사유 내에서 교육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관련되었는지를 밝히는 거시적 작업을 지양한다(화이트헤드의 우주론과 교육철학 간의 관계를 검토하지 않겠다는 얘기. 즉 위의 도식에서 (A)와 (B)의 관계를 더 이상 고찰하지 않겠다는 얘기). 즉 본고는 교육에 관한 그의 아이디어가 집약된 그의 저서『교육의 목적』을 주된 탐구대상으로 설정하였으며, 특히 교육의 리듬성을 중심으로 고찰한다(즉『교육의 목적』을 그 자체로서 자족적인 텍스트로 간주하여 논의를 전개하겠다는 얘기).
- 그러나 이러한 연구전략을 취할 경우『교육의 목적』은 원칙적으로 이해 불가!
- 그것은 결국『과정과 실재』, 즉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을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

II.
1. 교육의 목적   
- “내가 강조하는 해결책은 현재의 교육과정의 생명력을 죽이는 교과의 단절성(disconnection)을 근절시키는 것이다. 교육에는 단 하나의 교과만이 있다. 그것은 교과가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삶이다.”
- “학습자가 배운 일반적 원리의 실제적 적용은『교육의 목적』 전체에서 일관되게 강조되고 있는데 ... 화이트헤드는 이를 ‘확장성’(extension)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 그러나 이 논문의 연구전략은 위의 도식에서 예시한 (A)와 (B)의 관계를 외면함으로써『교육의 목적』을 여타의 영역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있으며(disconnection), 따라서 화이트헤드가 의도했던 여타 분야에 대한 응용 가능성(extension)을 차단하고 있다.
- 화이트헤드의 교육의 목적을 논하는 논문 자체가 “반교육적” 성격을 띠고 있음.


4. 교육철학의 논문인가, 교육학의 논문인가?

II. 교육의 목적과 교육받은 인간상 & III. 교육의 리듬성
- 『교육의 목적』의 내용을 대체로 충실히 요약하고 있는 내용
- 따라서 이 내용은 위의 도식에 입각하여 판단할 때 “교육철학”에 해당하는 내용

IV. 교육의 리듬성의 교수-학습에 대한 함의
- 화이트헤드의 교육철학에 입각하여 “교수-학습”의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내용
- 따라서 위의 도식에 입각하여 판단할 때 “교육학”에 해당하는 내용

<문제점>
-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II & III vs. IV의 내용이 “inconsistent"하다는 것
1) 이 논문의 목표를 “교육철학”으로 상정했을 경우 IV의 내용은 사실상 불필요
- 대신 위의 도식에서 (A)와 (B)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

2) 만일 논문의 목표를 “교육학”으로 상정했을 경우 위의 도식에서 (B)와 (C)의 관계가 주요한 검토 대상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이 논문의 IV의 내용이 핵심으로 부각되어야 함
- 따라서 II & III의 내용은 지금처럼 『교육의 목적』의 내용을 “평면적”으로 요약하는 대신, IV의 내용을 진술하는데 긴요한 내용으로만 엄격하게 한정하여 대단히 압축적으로 진술한 다음,
- 그것에 기초해서 IV의 내용을 구성하는 논리를 치밀하게 제시해 주어야 할 것

1-1) 논문의 목표를 “교육철학”으로 상정했을 경우의 문제점
-『교육의 목적』의 내용을 “평면적”으로 요약하는 내용이 과연 논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cf. Challenges to the conventional wisdom Articles that challenge the conventional academic or policy wisdom are more likely to be published than those that reiterate well known and widely-held views. As one member of the journals editorial board put it: "If nobody is going to disagree with an article, there's no reason to publish it." ~ "Information to Arthurs," International Security

-『교육의 목적』의 요약 내용은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것이지만, 그 책을 읽은 사람들에겐 “진부한 것”이며, 따라서 그 책의 내용 이상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임.

2-1) 논문의 목표를 “교육학”으로 상정했을 경우의 문제점
a) IV-1. 교수-학습 여건(datum)의 이해
- “이런 이유로 이하에서는 앞서 논한 교육의 목적과 스타일 그리고 교육의 리듬성을 중심으로 한 화이트헤드의 주장이 실제적 과정으로서 교수-학급의 여건(datum)과 교수-학습의 방법의 이해에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지 살펴본다. 여건은 유기체의 성격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유기체의 성격을 결정하는 모든 환경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수-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혹은 변인이라는 용어 대신에 여건(datu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교수-학습에 관여하는 여건은 개별적 또는 일시적으로 간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 IV-1, (가) ~ (아)의 내용은 대체로 II와 III의 내용을 다시 요약 반복하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음
- 이러한 연구전략은 위의 도식에서 (A)에 해당하는 교육학의 “근본전제”(fundamental assumption)를 “여건”으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
- 하지만 근본전제와 여건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것
- 근본전제가 특정 진술의 궁극적 기초를 이루는 것이라면, 여건이란 화이트헤드의 우주론(근본전제)을 구성하는 다양한 "technical terms" 중의 하나.
- 따라서 여건을 요인 및 변인과 비교하는 것 역시 적절치 않음
- 여건의 경우 근본전제의 수준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만, 요인 및 변인이란 근본전제 위의 “구성물”의 수준에서 자리하는 것이기 때문
- 위와 같은 혼선은 궁극적으로 화이트헤드의 “사변철학”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결여한데서 여유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음.                       
cf. 사변철학을 깊이있게 이해하기 위해선 다음을 참조
- A. H. Johnson, Whitehead and His Philosophy (Lanha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83), pp. 151-186.
- Creighton Peden, "Whitehead's Philosophy: An Exposition" in Charles Harshorne & Creighton Peden, Whitehead's View of Reality (New York: The Pilgrim Press, 1981), pp. 27-71.
- 요컨대 IV-1의 전체 내용은 "redundant"!
b) IV-2. 교수-학습 방법의 이해
- “Brumbaugh"는 과정철학적 입장에서 볼 때 시간 속에 있는 모든 존재의 앎의 단계(phases of concrescence ?????)는 역동적이고 직접적이며, 비가역적이고, 연속적인 특징을 지닌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앎의 단계는 고정된 순서, 즉 최초의 조응의 단계, 불안정한 상태의 재조정 단계, 그리고 최후의 안정의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바로 이 세 단계가 화이트헤드가 말한 지적 성장의 세 단계이며, 학습자의 학습을 안내하고 도와주는 교수-학습의 단계인 낭만의 단계, 정확의 단계, 만족의 단계이다.”
- 이 논문의 주제를 “교육학” 논문으로 파악할 때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IV-2
- 화이트헤드의 교육철학을 전제한 상태에서 브룸바우를 참고하여 “교수-학습 방법”이라는 교육학의 한 주제를 새롭게 “구성”해 내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
- 이런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선 화이트헤드와 브룸바우를 단순히 조응시키고 있는 위의 논의를 아주 치밀한 논리에 입각하여 구성해 내야함.
- 이런 과제를 선결시키지 못할 경우 화이트헤드의 교육철학과 브룸바우의 교육학은 상호 독립적인 상태로 머물게 됨.
- 또한 V의 결론 부분에선 브룸바우의 논의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교육철학과 교육학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 논문의 전반적인 초점을 예시해 주는 것으로 보임.


5. 표기법, 논리적 일관성 등

- 제목: “A. N. Whitehead의 교육의 리듬성 고찰” ~ “콩글리쉬”?
- 영문 표기를 우리말로 고쳐주어야/ “리듬성” ?   

- 또한 “사변철학”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가 투영된 서론은 전체적으로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음

- IV. 1. 다. “학습자의 현재성”에 동원된 인용문 ~ "out of context"!
- “내가 단지 하고 언급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원하는 이해는 현재에 대한 이해이다. 과거의 어떤 지식의 유일한 용도는 미래에 대한 채비를 하는 것이다. 현재성을 무시하는 것은 어린이의 마음에 가장 치명적인 해악을 가하는 것이다. 현재성은 현재 있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
- 용어번역: "young minds" -> 어린이? cf. 초학자? 청소년?  
- 위의 인용문은 “현재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가 상호 혼융된 화이트헤드의 시간관을 반영한 것.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동등하게 중시되고 있음. 바로 이런 문제가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을 전제한 상태에서 화이트헤드의 저작을 읽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음
cf. 위의 인용문에 이어서 전개되는 내용. “~ 현재는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 그곳은 성소(a holy ground)이다. 그곳은 과거인 동시에 또한 미래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의 시점보다 더 과거에 해당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연대기에 속지 마라. 세익스피어와 몰리에르의 시대는 소포클레스와 버질의 시대보다 더욱 현재에 가까운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 화이트헤드 응용연구의 한 전범
- Douglas Sturm, Solidarity and Suffering: Toward a Politics of Relitionalit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8).
- Douglas Sturm, Community and Alienation: Essays on Process Thought and Pubic Lif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8).
- 더글러스 스텀, 이현휘 역, “노동문제와 활력이 넘치는 민주주의: 확장된 자아의 지평을 향하여,” <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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