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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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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존 캅 신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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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존 캅 신학 연구 / 구미정ㆍ양재섭*
John Cobb's Theology in Korea / Mi Jung KOO & Jae Sub YANG



1. 들어가는 말

1925년, 일본 선교사로 활동하던 아버지(John B. Cobb, Sr.)로 인해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존 캅은, 자신의 출생 배경 탓인지, ‘가교(架橋)신학자’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삶의 노정을 올곧게 걸어왔고, 또 걸어가고 있다고 보인다. 평생 동안 그가 다리 놓으려고 애쓴 분야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화이트헤드의 제자인 루머(Bernard Loomer)나 하트숀(Charles Hartshorn)같은 학자들로부터 과정철학을 접한 후, 이른바 ‘제3세대 과정사상가’의 무리에 속하게 된 캅은 오그덴(Shubert M. Ogden), 스톡스(Walter E. Stokes, S. J.), 크리스천(William Christian) 등과 더불어 과정신학을 체계화함과 동시에 더욱 풍성한 내용으로 확장시키는 데 공헌하게 된다. 오늘날 과정신학이 신학함의 범주 속에 지극히 이질적인 요소들을 포용할 수 있는 개방성의 경지에 이르고, 또한 다른 신학의 흐름에까지 그러한 영향을 자연스럽게 미쳐서, ‘사이(inter)’를 고려하지 않는 폐쇄적인 학풍은 그 방법론 자체가 의심스럽게 여겨질 만큼 이른 데에는 특히 가교신학자로서의 캅의 기여가 단연 돋보인다고 하겠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태평양 종교대학 교수인 델윈 브라운(Delwin Brown)은 이렇게 말한다.

캅은 현대 문화의 현저하게 상충하는 진리들을 조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즉, 과학적인 것과 인문학적인 것, 신성한 것과 속된 것,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에 대하여 각각의 본래성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이들을 묶어보려고 하였다.* 대구대학교 필휴먼생명학 연구소/ Philhuman Institute of Life Studies, Daegu University, Korea

델윈 브라운, “미국의 과정신학”, 『과정철학과 과정신학』, 김경재ㆍ김상일 편(전망사, 1988), 253.


‘다름’이 축복은커녕 저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우리네 사회문화적 현실에서 캅은 획일주의가 아니라 대화를 통한 상호변혁만이 상생(相生, 서로 살림)의 지름길임을 권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는 평생에 걸쳐 참으로 다방면에서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전통신학이나 목회학, 상담학 분야는 물론이고, 정치학, 경제학, 생태학, 과학(생명과학)을 비롯, 동양종교(불교)나 서양미술 등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은퇴 이후 최근에는 평신도신학과의 대화에 헌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처럼 그의 신학적 행보가 끊임없는 대화의 연속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과정사상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과정사상의 중심 교훈은 바로 ‘어떤 것도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창조적인 합생(creative concrescense)을 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가교신학자/대화신학자로 불릴만한 존 캅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소개되고 연구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들은 존 캅 연구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을 뿐더러, 어쩌면 가장 늦게 합류한 ‘어린’ 학도들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들이 최근에 캅의 책을 번역하였다는 얄팍한 명분으로 인해 이 귀한 숙제를 떠맡게 된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적임자가 아니라는 솔직한 부담감이, 다른 한편으로는 주최 측에서 ‘가장 작은 자(the least)’에게 믿고 맡겨준 데 대한 감사함이 교차한다. 따라서 글의 전개상 혹시 보이는 실수는 전적으로 필자들의 ‘옅은’ 이해 탓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이 글은 다음의 순서로 전개된다. 먼저, 이 글의 목적이 존 캅의 신학 전반에 대한 연구가 아니고, ‘한국에서의 연구’라는 단서가 붙은 만큼, 그간 우리나라에 번역ㆍ소개된 그의 단행본 저서와 그를 주제로 발표된 논문 및 학위논문을 조사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최근의 그의 신학적 관심이자, 필자들의 관련 분야인 평신도신학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존 캅의 저서 및 번역서, 그리고 그에 대한 학위논문들

1) 존 캅의 저서 목록

존 캅의 제자로서 1975년부터 8년간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과정신학과 동양사상을 연관 짓는 작업을 하였고, 이후 돌아와서는 한국 신학계에 존 캅의 신학을 소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상일은 『동학과 신서학』에서 캅을 가리켜 “신서교(新西敎)의 선구자” 김상일, 『동학과 신서학 : 세계철학 창조를 위한 최수운ㆍ켄 윌버ㆍ존 캅의 대화』(지식산업사, 2000), 5.
라고 평한다. 데카르트-뉴턴에 의해 확립된 기계론적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유기체적 세계관을 옹호하는 과정철학을 신학에 적극적으로 차용, 기독교 전반의 ‘기틀변환(paradigm shift)’을 도모한 캅의 노력이야말로 수운 최제우의 동학운동과 궤를 같이 하는 선구자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캅은 처녀작인 『기독교 신학, 여전히 가능한가?』에서 전통신학과 결별하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그리고 퍼지 이론과 카오스 이론 등을 내용으로 한 20세기의 ‘신과학운동(New Science Movement)’에 의하여 기존 세계 질서의 주축이었던 데카르트-뉴턴적 세계관이 붕괴된 마당에 과연 전통신학이 설 자리가 어디 있느냐고 이 책에서 묻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캅의 초기 질문은 “그의 신학이 출발하는 시원점” 김상일, “존 캅의 생애와 사상”, 『기독교 사상』 367호, 1989년 7월호, 160.
이 된다고 김상일은 덧붙인다.
처녀작 발표 이후 캅은 과정사상이라는 렌즈를 통해 전통신학을 비판적으로 재고함은 물론, 과정신학을 체계화하고 확장하는 일에 매진해 왔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저술활동은 인간학, 상담학, 서양미술, 실천신학, 정치신학, 동양종교(불교), 교육학, 생태학, 경제학, 생명과학, 생명신학, 생명윤리, 평신도 신학 등과의 꾸준한 대화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낳은 저작들을 연대기 순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사상의 창조적인 변천사뿐만 아니라 그 저변에 흐르는 일관된 맥을 눈치 챌 수 있고, 또한 동시에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출산력에 경이와 질투의 복합 감정을 느끼게 된다. 지면관계상 출판사는 생략하였으며, 출판연도 옆의 *표시는 우리말 번역본이 있음을 뜻한다. 참고로, 1990년까지 출판된 캅의 논문 목록과 저서에 대한 논평이 다음의 책에 실려 있다. David Jay Griffin and Joseph C. Hough, Jr.(eds.), Theology and the University: Essays in Honor of John B. Cobb, Jr.(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1), 245-266.


<단독/공동 저서>
ㆍIs Christian Theology Still Possible?, 1959
ㆍVarieties of Protestantism, 1960
ㆍLiving Options in Protestant Theology, 1962
ㆍA Christian Natural Theology: Based on the Thought of Alfred North Whitehead, 1965
ㆍThe Structure of Christian Existence, 1967*
ㆍGod and the World, 1969
ㆍIs It Too Late? A Theology of Ecology, 1971(revised edition, 1995)
ㆍLiberal Christianity at the Crossroads, 1973.
ㆍChrist in a Pluralistic Age, 1975
ㆍProcess Theology: An Introductory Exposition, 1976(with David Griffin)*
ㆍTheology and Pastoral Care, 1977*
ㆍThe Liberation of Life: From the Cell to the Community, 1981(with Charles Birch, revised edition, 1990)*
ㆍProcess Theology as Political Theology, 1982
ㆍBeyond Dialogue: Toward a Mutual Transformation of Christianity and Buddhism, 1982*
ㆍTalking about God, 1983(with David Tracy)
ㆍPraying for Jeniffer, 1985
ㆍChristian Identity and Theological Education, 1985(with Joseph C. Hough, Jr.)
ㆍBiblical Preaching on the Death of Jesus, 1989(with Beardslee, Lull, Pregeant, Weeden, and Woodbridge)
ㆍFor the Common Good: Redirecting the Economy Toward Community, the Environment, and a Sustainable Future, 1989(with Herman Daly, revised edition, 1994)
ㆍDoubting Thomas, 1990
ㆍDeath or Dialogue, 1990(with Leonard Swidler, Paul Knitter, and Monika Helwig)
ㆍMatters of Life and Death, 1991
ㆍCan Christ Become Good News Again?, 1991
ㆍSustainability, 1992
ㆍBecoming a Thinking Christian, 1993*
ㆍLay Theology, 1994*
ㆍSustaining the Common Good, 1994
ㆍGrace and Responsibility, 1995
ㆍReclaiming the Church, 1997*
ㆍFidelity with Plausibility, 1998(with Wesley Wildman)
ㆍThe Wealth or Health of Nations, 1998(with Carol Johnston)
ㆍThe Earthist Challenge to Economism, 1999
ㆍTransforming Christianity and the World, 1999(with Paul Knitter)
ㆍWorld in Process, 2000(with John Jungerman)
ㆍPostmodernism and Public Policy, 2001

<편저서>
ㆍThe Later Heidegger and Theology, 1963(with James Robinson)
ㆍThe New Hermeneutic, 1964(with James Robinson)
ㆍTheology as History, 1967(with James Robinson)
ㆍThe Theology of Altizer: Critique and Response, 1971
ㆍMind in Nature, 1977(with David Ray Griffin)
ㆍProcess Philosophy and Social Thought, 1981(with Widick Schroeder)
ㆍExistence and Actuality: Conversations with Charles Hartshorne, 1984(with Franklin Gamwell)
ㆍThe Emptying God: A Buddhist-Jewish-Christian Conversation, 1990(with Christopher Ives)
ㆍThe Green National Product: A Proposed Index of Sustainable Economic Welfare, 1994(with Clifford Cobb)
ㆍSearching for an Adequate God, 2000(with Clark H. Pinnock)
ㆍSpeaking of Religion and Politics, 2000
ㆍProgressive Christians Speak, 2003


2) 존 캅 저서의 우리말 번역 및 학위논문 현황

이상에서와 같이 방대한 존 캅의 저작들 가운데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예상 외로 많지 않아 안타깝다. 여기서는 한국에 번역된 존 캅의 저서들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고, 존 캅에 대해 다룬 논문 및 학위논문들을 소개함으로써, 한국 신학계에서는 그에 대한 연구가 주로 어떤 측면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번역서>
ㆍ『존재구조의 비교연구』, 김상일 역, 전망사, 1980.
ㆍ『과정신학과 목회신학』, 이기춘 편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1990(4판)
ㆍ『과정신학과 불교』, 김상일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ㆍ『과정신학』(데이비드 그리핀 공저), 류기종 역, 황소와 소나무, 1993/2002(2판)
ㆍ『건강한 기독교를 위한 평신도 신학』, 김종순 역, 성서연구사, 1996.
ㆍ『교회 다시 살리기』, 구미정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
ㆍ『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 이경호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2002.
ㆍ『생명의 해방 : 세포에서 공동체까지』, 구미정ㆍ양재섭 공역, 한길사, 2004(예정)

<존 캅에 대해 다룬 저서>
ㆍ김경재ㆍ김상일 편, 『과정철학과 과정신학』, 전망사, 1988.
ㆍ김상일, 『동학과 신서학: 세계철학 창조를 위한 최수운ㆍ켄 윌버ㆍ존 캅의 대화』, 지식산업사, 2000.
ㆍ장왕식, 『종교적 상대주의를 넘어서: 과정신학으로 종교다원주의를 넘어서기』, 대한기독교서회, 2002.

<존 캅에 대해 다룬 논문>
ㆍ서남동, “존 캅의 신학사상 스케치”, 『기독교사상』237, 1978년 3월.
ㆍ김경재,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과정신학과 불교」에 대한 서평”, 『기독교사상』 354, 1988년 6월.
ㆍ김상일, “존 캅의 생애와 사상”, 『기독교사상』 367, 1989년 7월.
ㆍ송성진, “존 캅의 기독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 『기독교사상』 445, 1996년 1월.
ㆍ소기석, “존 캅의 ‘과정중 대안’으로서의 종교다원주의에 관한 연구”, 『종교와 문화』 6, 2000년 5월.

<존 캅에 대해 연구했거나 언급한 석사학위논문>
ㆍ윤창용, “실천신학의 Pastoral Care을 위한 과정신학의 인간실존 이해 : 죤 B.캅을 중심으로”, 서울신대, 1992
ㆍ이상혁,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기독론’ 연구: Christ in a Pluralistic Age를 중심으로”, 감신대, 1993
ㆍ서승훈,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론 연구”, 한신대, 1994
ㆍ김진호, “John B. Cobb, Jr.의 그리스도 중심적 종교다원주의 연구”, 호서대, 1994.
ㆍ고진하, “영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적 전인성: Paul Tillich와 John B. Cobb, Jr.을 중심으로”, 감신대, 1998.
ㆍ권홍성, “화이트헤드와 존 캅의 신관에 관한 연구”, 장신대, 1999
ㆍ백옥현,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연구 : 존 캅의 인간론을 중심으로”, 장신대, 1999
ㆍ최재형, “존 캅(John B. Cobb,Jr.)의 종교다원주의 연구”, 장신대, 2000
ㆍ오화철, “존 캅의 환경윤리 분석”, 연세대, 2000
ㆍ김광성, “존 캅의 상호변혁으로서의 대화방법론 연구”, 한신대, 2000
ㆍ곽 근, “생태학적 신학에 대한 연구: J. B. Cobb, Jr.의 과정신학을 중심으로”, 감신대, 2002

ㆍ차진희, “한국적 생명신학 방법론 연구: 혜강 최한기의 기(氣)사상과 과정성령론을 중심으로”, 감신대, 1993
ㆍ박여라, “그리스도교와 타종교의 만남: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1965)과 ‘바아르 선언문’(1990)을 중심으로”, 한신대, 1994.
ㆍ빈상석, “종교 다원주의와 선교”, 장신대, 1996
ㆍ채성신, “자연·인간·신학의 만남 : 생태신학과 생태여성신학”, 장신대, 1999
ㆍ박종현, “과정신학의 하나님 이해”, 장신대, 2000
ㆍ곽두경, “종교다원주의와 한국교회의 선교”, 기독신학대, 2000
ㆍ이송우, “현대신학에 나타난 성령과 생명의 관계이해”, 감신대, 2001
ㆍ전영관, “과정 기독론 소고: 예수 르네상스(Jesus Renaissance)와 비교하여”, 감신대, 2001
ㆍ한용재,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성령의 역할에 대한 연구”, 호신대, 2001.
ㆍ박인철, “종교 다원주의 상황 하에서 예수의 해방적 유일회성”, 감신대, 2002.


3. 한국 신학계에서 조명된 존 캅 사상 분석

신학대학으로는 다소 편중된 감이 없지 않지만 교파적으로 볼 때 비교적 다양한 배경에서 나온 석사학위논문들이 주로 종교다원주의와 생태신학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서 존 캅을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도, 거칠게 구분을 하자면, 종교다원주의로부터 생태신학으로 서서히 중심이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배타주의와 근본주의 성향이 지배적인 한국 교회의 풍토에서 종교다원주의를 입에 담는 일 자체가 사실상 위험과 부담을 동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다(多)종교적 상황과 타종교인들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이 수많은 신학도들로 하여금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를 들여다보도록 한 것 같다.
존 캅의 또 다른 제자인 장왕식은 근저 『종교적 상대주의를 넘어서』에서, 존 힉ㆍ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ㆍ폴 니터 등이 주류를 이루는 ‘신 중심적 다원주의’가 “종교 간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화해의 원칙을 강조하는 데에는 분명히 성공” 장왕식, 『종교적 상대주의를 넘어서: 과정신학으로 종교다원주의를 넘어서기』(대한기독교서회, 2002), 107.
했지만, 또 다른 문제, 곧 자기 신앙의 정체성을 보전하면서 자기 신앙의 대상에게 절대적인 헌신을 바치는 문제에는 실패하였다고 평가한다. 반면에 존 캅이 주장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는 확실히 “화해와 신앙 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 위의 책, 111.
하는데, 그것은 캅의 이른바 ‘절충적 방법론’이 과정사상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가 실체나 본질 혹은 본체를 가지고 있지 않고, 다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생성만 있을 뿐이라고 보는 과정사상의 빛에서 보면, 모든 종교가 하나의 궁극적 실재를 공통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본질주의적 종교론에 경도된 신 중심적 다원주의는 그 자체로 난센스라는 것이다. 캅에 따르면, 실체로서의 종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전통과 운동, 혹은 공동체와 신앙인들, 그리고 신앙체계와 그것을 위한 실천만이 존재한다. John B. Cobb, Jr., "Beyond Pluralism", in Christian Uniqueness Reconsidered, ed. by Gavin D'Costa (New York: Orbis Books, 1990), 83; 위의 책, 114에서 재인용.
모든 종교는 그것이 종교라고 불리기 위해 궁극적 실재를 상정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각각 다른 궁극적 실재를 상정하고 신봉하기 때문에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캅의 종교다원주의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모든 종교는 타당하고, 따라서 나름대로 참 종교이지만, 그것은 모두 동일한 궁극적 실재를 공통분모로 하고 있어서가 아니고, 오히려 각기 독특성과 유일무이성을 갖기 때문이다. 즉, “서로 유사점이 있기에 참 종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점이 있기에 참 종교가 되는 것이다.” 위의 책, 116.

자기 종교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기가 신앙하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타종교를 향해 겸손히 자기를 개방함으로써 더욱 풍부한 신앙적 내용을 얻을 수 있다는 캅의 설명은 그 절묘한 균형감각과 탄탄한 논리구조가 미덕이라 할 것이며, 바로 그러한 장점 때문에 우리네 상황에서 크게 환영받을 만하다고 본다.
한편, 캅은 데카르트-뉴턴 물리학에 의해 만들어진 이신론(Deism, 理神論)에 도전하면서, 아무런 외부의 영향도 받지 않고 고정불변하며 홀로 자족하는 신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사실상 오늘날 많은 생태신학자들은 그러한 구시대적 신 개념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유해하다고까지 평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관계’로 이루어진다는 과정신학의 통찰은, 만물의 상호연관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생태신학과 상통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캅도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른 생물 사이에는 서로가 질적인 영향력을 주고받는 ‘내연적 관계’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캅에게서 하느님은 ‘육화된 로고스’이며, ‘에너지-사건(energy-event)’이고, ‘창조적으로 응답하시는 사랑’이다.
이와 같은 캅의 신관(神觀)은 생태ㆍ생명신학을 연구하는 신학도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신학함의 원천을 제공해준다고 본다. 그리하여 많은 학위논문들이 그의 유기체적 세계관과 생명중심적 가치관, 그리고 생물권 윤리(biosphere ethics)를 소개하며, 저마다 다양하게 생태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한국의 신학대학교에서 나온 이 논문들 가운데 몇몇 작품의 경우, 단순히 캅의 신학적 관점을 소개하고 인용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한국의 전통적인 기(氣)사상이나 불교 사상과 대화함으로써 독창적인 재구성을 도모하는 등, 매우 대담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고무적인데, 왜냐하면 캅 자신이 김상일의 『한철학』 서문에서 밝혔듯이, “과정철학 사상은 그 일반적인 경향에 있어서 전통 동양 사상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 김상일, 『한철학: 한국철학의 과정신학적 해석』(1983, 전망사, 1985 재판), 9.
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매우 성공적인 듯하던 서구 사상은 이제 파국 직전에 처해 있”어서 “지금은 현대 사회생활에 적합한 새로운 양식의 사상이 절실히 요청되어지고 있는 실정” 위의 책, 7.
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에 젊은 세대의 신학도/목사후보생들이 더 이상 식민지 신학의 포로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 구스타보 구띠에레즈의 책 제목이다.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김문호 역 (1986, 한국신학연구소, 1992 5판) 참고.
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모습은 미덥고 희망적이기 그지없는 것이다.
이처럼 특히 1990년대 이후에 나온 학위논문들이 캅을 다룸에 있어 종교다원주의와 생태신학이라는 커다란 두 축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한편으로, 실천신학적 차원에서 그의 인간론에 주목한 논문이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논문도 눈에 띄고 있어, 앞으로 다양한 주제 아래 캅의 사상을 조명하는 연구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보수우익적 관점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한국의 신학계와 교계 현실에서 존 캅 추종자/연구자들의 입지는 주변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건강한 신학/신앙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목소리’가 들려질 수 있도록 열린 자세로 경청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할 것인데, 바로 이 점이 현재 ‘자폐증에 걸린’ 한국의 기독교인 전체가 풀어야할 공동 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 일에 과정신학의 지혜와 통찰이 크게 기여할 것임은 부언할 필요조차 없다.
이쯤에서, 1980년대부터 한국 신학계에 존 캅을 부지런히 소개하고, 또한 저마다 독창적인 방법으로 존 캅의 신학과 대화함으로써 글자 그대로 ‘창조적인 합생’을 구현하고 있는 신학자들의 공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단연 김상일을 필두로 하여, 김경재, 이기춘, 장왕식 등이 꼽히고, 그밖에도 존 캅의 1978년 첫 방한 당시 예리한 토론 맞수가 되었던 서남동과 서광선 등이 꼽힌다. 결국 캅은 ‘한’철학자, 문화신학자, 실천신학자, 종교철학자, 민중신학자 등과 좋은 대화 파트너로서, 이 땅에 상륙한 셈이다. 당시 캅은 주로 과정신학자/종교다원주의자로서의 면모만 부각된 경향이 짙은데, 이것은 아무래도 1988년에 나온 두 권의 책,『과정신학과 불교』(김상일 역) 및 『과정철학과 과정신학』(김경재ㆍ김상일 편)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캅의 유기체적 세계관과 생명중심적 윤리관에 주목한 학자들이 그를 생태신학자의 범주에 넣어 소개하기 시작하고, 또한 동시에 캅이 저술한 평신도 신학 관련 서적들이 차례차례 번역됨에 따라, 한국 신학계에서도 캅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한국기독교연구소의 공(功)이 큰데, 연구소 측에서는 “21세기 기독교 총서”를 기획ㆍ발간하면서 캅의 책 가운데 Becoming a Thinking Christian(1993)과 Reclaiming the Church(1997)를 선정, 각각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이경호 역, 2002)와 『교회 다시 살리기』(구미정 역, 2001)라는 제목으로 번역ㆍ출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981년에 캅이 저명한 생물학자 찰스 버치(Charles Birch)와 함께 써서 세상에 내놓은 역작 The Liberation of Life: From the Cell to the Community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2003년도 번역연구지원사업에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어, 생물학자(유전학) 양재섭과 기독교윤리학자(생태여성신학) 구미정의 공역으로 『생명의 해방 : 세포에서 공동체까지』라는 제하에 출간될 예정이다.
이상에서, 다소 거칠게 분류하자면, 한국 신학계에 소개된 캅은 1980-90년대에 과정신학자/종교다원주의자로 인기가 있었고, 1990-2000년대에는 생태신학자/평신도신학운동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며, 거기에 더하여 앞으로는 생명신학 및 생명윤리학자로서의 면모가 새롭게 추가될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캅의 저서들 가운데 아직까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분야들, 곧 생명신학 및 생명윤리, 그리고 정치신학과 경제윤리 분야가 관심 있는 학자들에 의해 계속 연구되어, 우리 신학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일조하기를 기대해 본다.


4. 나가는 말

화이트헤드는, 모든 생명체에게 세 가지 강력한 집착이 있으니, “첫 번째는 살고자 하는 집착이요, 두 번째는 잘 살고자 하는 집착이요, 세 번째는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집착” A. N. Whitehead, The Function of Reas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29), 8. ; Chales Birch & John B. Cobb, Jr., The Liberation of Life (Environmental Ethics Books, 1990), 106 recited.
이라고 말했다. 생명이란, 우선 살아있기를 힘쓰고, 살되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살고자 하며, 또한 그러한 만족의 증대를 꾀하게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 현실을 보면, 아니 가깝게 우리네 현실만 보더라도 ‘보다 나은 삶’이나 ‘만족감이 증대되는 삶’은커녕 생존 자체가 문제시되는 반(反)생명적 분위기가 압도적인 것을 관찰하게 된다. 이러한 소위 ‘죽임의 문화’가 팽배하게 된 원인으로는, ‘생명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뒤로 한 채, 여전히 서구중심ㆍ개발중심ㆍ남성중심ㆍ이성중심ㆍ기계중심의 낡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의식구조와 사회질서를 들 수 있겠다. 침몰해가는 타이타닉 호에서 단순히 앉는 의자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침몰을 막을 수 없으므로, 문제가 심각하고 절박하고 복잡하게 얽혀있을수록 우리는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접근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제야말로 근본적인 ‘판 갈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라는 뜻이다. 캅의 또 하나의 대표작 『생명의 해방』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판 갈이의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매우 값진 책이라 생각된다.
그 책에 앞서, 전통신학과 결별하는 선언문과도 같이 대담한 제목으로 발표했던 『기독교 자연신학』에서 캅은 이미 현대 이후(post-modern) 혹은 과학 이후(post-science)의 신학을 ‘자연신학’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런데 생물학자 찰스 버치와 공저한『생명의 해방』에 이르면, ‘하느님’ 개념은 어느새 ‘생명’으로 대치된 것처럼 보인다.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정의와 지속가능성(justice and sustainability)’에 헌신하도록 자비로운 손짓으로 유혹하고 초대한다. 우리가 그러한 초대에 스스로를 개방하여, 생명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에 창조적으로 뛰어들 때, 그것이 바로 생명 신앙이요, 생명의 해방을 위한 윤리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때의 신앙과 윤리는 개인의 내면적 각성, 곧 의식혁명의 차원과 그가 속한 사회의 정의로운 재구성, 곧 사회변혁의 차원을 동시에 포함하는 통전적인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친 김에 사족을 붙여본다. 캅은 “생명은 하느님보다 더 크다(Life is bigger than God)”는 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짐작컨대 전적 동의일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교회 다시 살리기”는 결국 교회가 생명 혹은 생명 살림에 헌신함으로써 주어지는 부차적인 은혜가 아닐까? 달리 말하면, 교회가 더 이상 교회(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본래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제도 혹은 구조, 더 유치하게는 건물로서의 교회를 가리킴) 자체를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를 ‘무화(無化)시킴으로써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오히려 ‘죽음으로써 다시 사는’ 이치에 도달하지 않을까?
이것은 교회 내 목회자-평신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양자의 관계가 ‘상생(서로 살림)’의 관계로 되려면, 목회자 편에서는 스스로를 ‘무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고, 평신도 편에서는 스스로가 ‘이미 신학자’라는 정체감과 소명감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캅의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는 바로 그러한 상호변혁을 위한 지침서라 할 것인데, 이 책에서 그는 평신도가 어떻게 전문 신학자들로부터 신학 되찾기 운동에 뛰어들 수 있는가를 교과서처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사실 손톱만한 권력이라도 한번 그 맛에 길들여지면 자발적으로 권력을 포기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기득권자에게 진정한 ‘회개(metanoia)’란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나누어진 힘만이 선한 힘” 도르테 죌레, 『사랑과 노동』, 박재순 역 (한국신학연구소, 1992), 55.
이라는 도르테 죌레(Dorothee Sölle)의 말처럼, 목회자들은 평신도에게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오히려 구원과 해방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온생명이 생명에의 갈망으로 신음하는 이 때, 아직도 생명목회보다는 성장목회 쪽으로 계속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캅의 진언들은 얼마나 도전적인가? 그물망처럼 서로 얽혀있는 유기체적 생명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개교회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경쟁과 분열을 일삼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캅의 도전은 얼마나 예언자적인가? 가부장적 서열주의와 성차별주의, 그리고 군사문화가 고질적으로 내면화되어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캅을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모험인가?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존 캅 연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용기 있고 겸손한 자에게 대화는 얼마나 값진 선물인가?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인간 삶의 전반에 걸쳐 무궁한 지혜와 통찰을 던져주는 존 캅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창조적으로 변혁되어가는 한국 교회와 신학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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