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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1 (01:51) from 80.139.185.135' of 80.139.185.135' Article Number :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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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네빌의 창조론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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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화이트헤디안(Neo-Whiteheadian) 로버트 네빌(Robert
                       C. Neville)의 창조론에 관한 연구  
 
                                           김 성 원 (나사렛대학교, 종교철학/조직신학)
I. 서론

 도덕적 책임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형이상학적 기반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양 윤리학 특히 심오한 성리학에서는 형이상학적인 도와 천리의 개념이 도덕적 당위성을 제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리학에서는 도와 천리에 대한 우주-존재론적 해석을 통해서 도덕적 타당성과 적용성을 학문적으로 정립해왔다. 근대 서양에서는 칸트가 인간의 내면 속에 보편적으로 있는 도덕적 정언명령(transcendental categorical imperative)의 타당성과 사실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이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그만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도덕적 당위성을 찾았다. 도덕적 책임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칸트는 영혼불멸, 신, 정의 개념들을 결국 들여왔다. 논리적 타당성이나 우주-존재론적 당위성이라기보다는 도덕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위해서 사후의 인간존재의 필연성과 책임을 물을 신 그리고 책임의 기준이 되는 정의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필요에 의한 요청으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근거로서 사실상 약하다고 보아야 한다.
 철학적 입장이 칸트 관념철학과 정 반대 입장에 서 있는 화이트해드의 유기체철학에서도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미약하다. 그의 과거소멸론이 도덕적 형이상학에 어려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적 실체(actual entity)가 소멸되면서 함께 사라지는 것으로 보았다. 과거가 사라지면, 사실적 행위의 도덕적 책임 문제에 대한 해석이 어려워진다.
 신화이트헤디안 네빌의 창조론은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우주-존재론적 기반을 함축하고 있다. 그의 창조론은 시간의 문제와 창조주의 관계에서 도덕적 책임의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근거를 지니고 있다. 창조적 신의 기억 속에는 소멸되는 것이 없으며, 세상은 근본적으로 축적되고 지속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Robert C. Neville, Creativity and God: A Challenge to Process Theology (New York: Seabury Press, 1980), 68.
시간의 영원성과 신의 내재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이 도덕적 당위성의 문제에 대한 진전된 아이디어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Robert C. Neville, Eternity and Time's Flow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3) 참조.
이 가능성을 부각시켜서 탐구하고, 발견된 내용이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발전된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본 연구가 다루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이다.  

  20세기 서양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에 한사람인 화이트헤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1세기 혹은 2세기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다보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영향은 심리학 교육학 과학 윤리학 종교학 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중에서 특히 종교와 신학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것 부분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에 대한 해석에는 두 가지 부류로 나타나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전수하고 따르는 우익적 해석이 있는가 하면, 화이트헤드를 비판하면서 그의 유기체 철학을 종교철학 혹은 신학적으로 활용하는 좌익적 해석 혹은 신화이트해디안들(Neo-Whiteheadian)의 해석이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좌익적 흐름이 창의적 이론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과 같이 신화이트헤디안으로 불리는 로버트 네빌의 이론이 창의적 이론으로 부각되고 있다.
 화이트헤드와 네빌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화이트헤드의 유기체론과 네빌의 우주-존재론적 창조론에서 나타고 있다. 두 사람이 과정철학적 틀을 갖고 있으면서 우주-존재에 대한 상이한 해석을 하고 있다. 네빌의 창조론이 어떻게 화이트헤드와 다르게 발전되고 있으며, 이것은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특히 네빌의 창조론이 도덕적 해석을 위해서 화이트헤드보다 진전된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어떠한 면에서 이러한 긍정적 해석이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한국에는 주로 우익적 화이트헤디안의 이론이 전개되고 있으며,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근거로 한 철학 혹은 종교철학과 철학적 신학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에 대한 좌익적 입장의 이론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화이트헤드의 좌익적 해석의 가능성이 중요할 뿐만이 아니라,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철학을 넘어선다는 차원에서 네빌의 이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도덕적 이론의 우주-존재론적 기반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칸트는 필요에 의해서 최고의 도덕적 관리자를 들여왔다. 신화이트헤디안 네빌의 우주-존재론적인 신은 칸트처럼 필요에 의한 요청적 존재가 아니라 근본적인 우주-존재론적 사실로서 논의되고 있다. 네빌의 형이상학적 창조론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도덕적 당위성을 진전시킬 수 있다는 면에서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본 연구는 또한 몇 가지 후속적 연구를 불러올 수 있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의 신은 과학과의 대화를 하는데 적지 않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이안 바보어(Ian Barbour)는 주장하고 있다. Ian Barbour, Religion and Science: Historical and Contemporary Issues, (Harper San Francisco: 1990), 281-304.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신은 제한성을 가지고 있는 신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Robert C. Neville, "The Impossibility of Whitehead's God for Theology." Proceedings of the American Catholic Philosophical Association, 1970, 130-40.
네빌의 신은 물론 형이상학적 신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이면서도 더욱 광의적이다. 과학과 철학적 신학과 대화를 한다면 오히려 네빌의 신론이 더욱 가까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네빌의 창조론에 대한 연구는 도덕의 형이상학적 기반 진전된 정립, 과학과 종교철학과의 대화의 가능성 모색, 동양의 성리학과의 심도 있는 대화 등의 연구를 낳을 수 있는 면이 있다. 동양철학적 내용을 적지 않게 담고 있는 그의 이론은 지구촌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종교철학적 내용이다. 동양에서 네빌의 이론이 소개되고 논의된다면, 적지 않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연구가 나타날 것이다. 그의 성리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해석 그리고 불교의 심오한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동양인들이 진지하게 검토하고 해석하면, 동양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면도 있다.  

  연구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사유적(speculative) 방법과 기술적(technical)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경우에는 논리적 연속성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논리적 연속성(consistency)과 부합성(coherence) 그리고 경험적 타당성(adequacy)과 적용성(applicability)이 핵심적인 방법으로 사용될 것이다. Alfred North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 corrected edition by David Ray Griffin and Donald W. Sherbune (New York: Fortress Press, 1978), 2-3.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그의 사유철학을 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부가적으로 유비적 사유(analogical imagination)의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과 네빌의 종교철학 혹은 철학적 신학 그리고 부분적으로 동양의 성리학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유비적 방법이 유용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지구촌 맥락에서 다양한 학문적 내용을 검토하고 비교분석하고 종합하는 과정에서 유비적 방법은 불가피하다.
 유비적 사유의 방법은 차이성이 있는 곳에서 유사성을 찾아 핵심적 의미를 규명하고 명료화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거나 기존의 아이디어를 쇄신하는 것이다. David Tracy, Analogical Imagination: Christian Theology and the Culture of Pluralism (New York: Crossroad, 1986), 423. 트레시의 유비적 사유의 방법은 신-인간-세상의 관계에서 사용되는 유비적 사유 방법이다. 그러나 동서양의 형이상학이나 철학 개념과 아이디어를 비교하고 분석하며 해석하는 경우에 유사한 개념이나 아이디어들의 만남과 대화를 위해서 유비적 사유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혹은 같은 서양이나 같은 동양에서 학자들 간의 학문적 내용을 비교하는 데에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
물론 유비적 사유는 애매성이 있으며 명확성의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비적 방법은 한 가지 사고유형의 틀을 넘어서 다양한 사고와 비교 접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에 많은 도움을 준다.
 기술적인 방법으로는 주로 문헌 연구가 될 것이다. 네빌의 저서와 논문 그리고 네빌의 사상에 관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자료는 주로 영문으로 되어있으며, 자료 수집은 용이할 것으로 본다. 네빌은 아직 생존해 있는 사람으로서 직접 대면과 자문을 통해서 그의 창조론에 대한 도덕적 해석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II. 시간의 소멸론과 영속론

  한국에는 네빌의 이론이 아직 소개되지 않은 상황이며 본 연구보다 선행된 것은 한국에는 없다. 몇 차례 한국에 와서 강연을 하였지만, 그의 후속적인 연구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미국종교학회(AAR)와 형이상학회에서 그의 이론이 진지하게 몇 차례 다루어졌다.  네빌은 미국의 종교학회(AAR)장과 형이상학회장 역임했다.
그러나 미국에도 그의 창조론에 도덕론을 접목시켜서 해석하여 탐구한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을 넘어서는 여러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차원에서 네빌의 창의적 창조론이 학자들의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창조론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분야에 적용되어 해석되고 검증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창조론의 도덕적 해석 가능성에 대해서는 논의 된 것은 미약하다. 본 연구는 네빌의 우주-존재론적 창조론을 중심으로 도덕적 해석에 대한 일보 발전된 기반이 될 수 있는 이론들을 탐구할 것이다.  본 연구는 부분적으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의 종교적 해석 가능성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화이트헤드의 한계성을 검토하면서, 신화이트해디안 네빌의 창조론의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신화이트해디안의 입장을 취하겠다는 의미도 아니고, 반대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을 충실하게 따르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신학적 해석에서 화이트헤드 철학이 지니고 있는 한계성을 비평적으로 검토하면서 새로운 우주론적 이해를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한국적 맥락에서 신화이트해디안의 유기체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러 가지 논쟁의 대상이 되고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주로 화이트헤드의 합성론과 네빌의 창조론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그와 관련된 시간론 감지론 신론을 다루고자 한다. 접근 방법은 단순히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분석 비평하는 차원을 넘어서, 적용이 가능한 동서양의 철학과 신학적 내용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접근하고 한다. 화이트헤드의 긍정적인 면에 대한 찬사는 접어두고, 단지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요소들 몇 가지만 다루고자 한다.
 
   일차적 주제는 창조론에서 시간론에 관한 것이다. 시간에 대한 이해가 도덕적인 문제와 우주론적인 문제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네빌의 시간론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화이트헤드의 과거 소멸론을 다루고자 한다. 화이트헤드 시간론의 핵심은 과거 소멸론이다. 과거는 각 사실적 실체(actual entities) 혹은 사건(event)이 끝남과 함께 영구적으로 소멸(perpetual perishing)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29.
록크(Locke)의 시간론에 근거한 주장이다. 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고, 같은 생각을 두 번 할 수 없고, 같은 경험을 두 번 할 수 없다는 이해에서 시간은 영원히 소멸되는 것으로 보았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29.
화이트헤드의 과거 소멸론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있다. 과거는 있는 것이다. 특히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기억 속에 있으며, 우주-존재론적으로 과거는 현재의 조건적 요소로 존재한다.
 뉴톤에게 있어서 사실적 실체는 움직이고 변하면서 시간과 함께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록크에게 있어서는 각 사실적 실체가 소멸되면서 그와 함께 했던 시간도 영구적으로 소멸된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도 록크의 입장을 따라서 시간의 소멸론을 주장했다. 새로 합성되는 사실적 실체가 완성(complete)되면서 소멸되고 시간도 없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쪼itehead, Process and Reality, 81-82. 완성은 즉각적 소멸이며, 결코 있는 것이 아니다. Ibid., 85. 그러므로 과거는 없어진다.
세상에 존재와 시간은 되어가고 소멸되는 과정에서 결코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플라톤이 Timaeus에서 “결코 진정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never really is)라는 말을 인용해서 베르그송(Bergson)의 ‘공간론 반박’을 설명한 말이다. Process and Reality, 82.
모든 시간이 소멸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과거가 소멸된다고 언급하는 것이 정확한 말일 것이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사실화된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화이트헤드의 시간은 근본적(fundamental)인 것이다. 사실적 실체가 생성되는 것을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았다. 모든 만물이 생성되고 합성되는 현상의 기반으로서 시간은 근본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시간은 순간적이지만, 그 순간도 두께를 가지고 있다. 사실적 실체가 합성되면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기반으로서 현재 시간은 두께를 가지고 존재한다. 현재의 시간은 사실적 실재이다. 그러나 현재는 사실적 실재이지만, 미래는 아직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는 영구적으로 소멸되는 것으로 보았다.
  네빌에게 있어서 과거는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화된 과거로 남아서 새로 일어나는 사건에 조건적 요소가 된다고 보았다. 동양철학의 시간처럼 순환적이거나, 화이트헤드처럼 과거가 소멸되거나, 칸트처럼 시간을 관념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영원한 것으로 보았다.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연결(conjunction)되어서 영원히 있는 것으로 보았다. 아직 사실화되지 않은 미래와 창조된 사물이 존재하는 현재와 창조현상이 마무리된 사실적 실체의 과거가 부품적으로 연결(conjoined parts)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시간은 공간적 현상의 근본적인 것이며,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어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시간은 세상의 사물과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소멸론은 우주론적 문제보다도 윤리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책임론에 있어서 문제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가 소멸되면 사실화된 행동의 책임을 찾아낼 근거가 없어진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흘러간 결과로서 남아있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없어진다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대안이다. 네빌의 시간의 영속론은 도덕적 해석의 기반으로 적합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도덕성은 개인의 경험에서 중요성에 대한 균형 있는 합리적 선택(selectiveness)을 하는 것이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15.
각 사실적 객체의 합성은 내적으로 결정되어 있고 외적으로 자유롭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27.
그러므로 도덕적 책임은 미래에 관련된 것을 결정하는 것에 달려있다. 상대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높은 등급을 추구하는 것은 도덕적 책임에 의해서 이해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222.
궁극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도덕적 책임의 전부라고 화이트헤드는 언급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책임은 주어진 데이터의 한계성에 따라서 제한될 수 있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tiy, 255.
그러나 문제는 낮은 등급은 선택하고 중요성의 균형이 약한 결정을 하였을 때에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어렵다. 약한 결정과 선택은 새로 나타나는 사실적 실체에 감지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과거와 함께 영원히 소멸되고 만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서 새로 나타나는 사실적 실체에 영향을 미친다.  

III. 무에서 유의 창조론

  두 번째로 창조론 자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적인 창조론에서는 신은 신외의 모든 존재들을 창조한다. 신의 창조는 절대적인 형이상학적 원리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창조한다. 세상의 모든 우연적 존재들을 창조한다. 그러나 신은 어떤 식으로든지 피조물에 의해서 변화되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신은 세상의 우연적 현상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독립적이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신은 완전한 불변적 존재이다. 오직 신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서 세상이 창조되고 운행된다. 세상이 창조되는 것은 신의 본질적인 내용과 상관이 없이 일어나는 것이고, 창조현상은 어떤 형태로도 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세상은 신의 창조행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창조현상은 값없이 조건 없이 그냥 이루어진다고 전통적인 창조론은 주장하고 있다. 소위 순수한 은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의 핵심은 사실화 작용(the act of actualization)으로서 합성(concrescence)이다. 원래 합성이란 단어는 라틴어 con+crescer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함께 성장한다”(to grow together)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주의 유기체적 현상의 궁극적 실체(reality)는 합성의 과정(process)이라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 합성현상이 스스로 일어나는 작용이냐 아니면 신적인 행위에 의해서 일어나는 창조적 현상이냐가 논점이 된다. 화이트헤드는 합성이 스스로 일어나는 작용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합성원리는 신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네빌은 반대로 세상의 조화와 합성작용은 신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화이트헤드 우주론에는 오직 자가창조(self-creation)만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창조라는 어휘 사용을 꺼리고 있다. Alfred North Whitehead,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Macmillan Company, 1933), 236. 그러나 그의 유기체 철학에서 창조성(creativity)이나 피조물(creature)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합성원리를 자가창조로 묘사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특히 네빌의 창조론과 고전적 창조론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유기체론을 비교할 때에 유비적 해석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적 실체의 과정은 오직 한 가지 현상인 자가창조만 있을 뿐이다. 한 가지 행위만이 궁극적으로 존재가 존재되게 한다. 이것은 창조성과 피조물이 두개의 사실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한 실체는 자가창조적 피조물(self-creating creature)로서 존재한다. Alfred North Whitehead, Religion in the Making (New York: MacMillan Company, 1926), 102.
사실적 실체의 주관적 목적(subjective aim)이 새롭게 생성되는 피조물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69.

 그러나 네빌의 창조론은 그러한 자가창조적인 면을 지양하고 있다. 창조자가 세상을 창조해가는 것으로 보았다. 창조행위현상 자체는 조건적 요소와 본질적 요소가 사실적 조화(de facto harmony)를 이루는 현상이며, 사물의 존재론적 정체성(identity)도 조건적 요소와 본질적 요소의 조화에서 나타난다.
비결정적 기반(indeterminate ground)에서 결정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적 조화의 창조는 무시간적 창조(non-temporal creation)현상이다. Robert C. Neville, The Tao and the Daimon: A Segments of a Religious Inquiry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82), 188-189.
그러나 그것은 우주론적으로 무시간적 공(空)이지 존재론적으로는 있는(being) 것이다. 네빌은 어려서 어거스틴이 신은 시간 안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 신의 무시간적 창조는 어거스틴의 신과 시간에 이해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것과 상호 관계적으로 존재한다. 무시간적 창조는 시간을 근본적인 것으로 이해한 화이트헤드와 다른 면이다. 창조현상 자체는 우주론적으로 무신간적인 것이지만, 세상의 존재는 상호 관계 속에서 있는 것이고,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우주론적인 면에서 연결되어 존재한다.  
   네빌의 창조론은 비결정적 기반에서 결정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창조현상이다. 사물이 어떤 존재로 결정(determination)되는 것은 존재의 새로움(novelty)을 향한 창조현상이다. Robert C. Neville, God the Creator: On the Transcendence and Presence of Go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8), 114.
비결정적 기반을 동양의 무극(無極, the Ultimate of Non-being)과 유비적으로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결정화 현상은 사물이 사실화되고 창조적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비결정적 기반은 무(nihilo)이고 결정적 현상은 창조이다. 그래서 네빌은 무에서의 창조(creation ex nihilo)라는 고전적인 개념을 새롭게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가능성(potentiality)이 사실화되는 것을 창조라고 보는 화이트헤드의 유기체론에서 진전된 것이다. Robert C. Neville, God the Creator, 100.

 전통적인 창조론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 관계를 대칭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필연적 창조는 필연적 피조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연적 피조물이 존재한다. 절대적 신의 창조는 절대적인 것이 피조 되어야 하는데, 상대적인 것이 존재한다. 화이트헤드는 그렇기 때문에 우연적 존재는 자가창조 되는 것으로 보았다. 사물의 대칭적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네빌은 자가창조가 아니라 창조자에 의해서 우연적 존재들이 창조되는 것이고, 비결정적 기반에서 결정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Robert C. Neville, A Theology Primer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1), 40.
중요한 점은 창조 과정에서 신은 세상의 창조자로서 자신을 창조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상의 근원자이면서 내재해서 창조성으로 사물에 작용한다. 도덕적 신과 비도덕적 현상의 비대칭적 상이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면에서 일보 발전된 생각이다.

IV. 창조자 신론
 
  셋째로 신론을 다루고자 한다. 네빌의 신론에 대한 오해가 종종 있다. 네빌의 신은 과정철학에다가 기독교 혹은 서구의 전통적인 창조주 신을 접목시킨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전통적인 신은 시간과 원인을 배제하고 창조론을 언급하고 있다. 영원과 시간 혹은 원인과 존재의 관계적인 면에서 신과 세상은 비연속적이다. 그러나 과정신학과 네빌의 신론은 시간과 원인을 배제한 비어있는 면을 채우는 공헌을 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신론을 보완적 측면을 함축하고 있다.
  먼저 화이트헤드의 신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론 입장에서 형성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움직임에는 목적론적 원인자(final causes)를 세상을 움직이도록 행동하는 존재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는 형상적 원인(formal cause), 질료적 원인(material cause), 효율적 원인(efficient cause), 목적론적 원인(final cause)에 의해서 세상이 움직인다. 그의 목적론적 우주론은 목적론적 원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동적동자(unmoved mover)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적 개념을 화이트헤드가 사용한 것이다. 존재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동적 동자(unmoved mover), 동적 동자(moved mover), 동적 비동자(moved mover), 그리고 비동적 비동자(unmoved unmover)가 있다. 비동적 동자는 우선적 동자(prime mover)로 이해되기도 한다.
화이트헤드는 신의 기능이 각 객체의 실체가 사실화되도록 유도(lure)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Alfred North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344.
그러니까 신이 정한 목적을 향해서 각 사실적 실체들이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신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신은 강제적이 아니라 설득적이다.
  이 문제는 신의 강제적인 결정론을 따르는 어거스틴과 칼빈의 이론과는 대치되는 것이며, 웨슬리안 알미니우스 신학의 유도적 신에 더 가깝다. 이러한 면을 보면서 존 캅(John B. Cobb, Jr.)은 웨슬리안 신학을 저술했다. John B. Cobb. Grace and Responsibility: A Wesleyan Theology for Today (Nashville: Abingdon Press, 1995).
그러나 캅은 제목은 웨슬리안 신학이지만 내용은 과정신학이라고 못 박았다. 과정신학적 언어로 웨슬리의 사상을 해석하는 내용이다. John B. Cobb, Grace and Responsibility, 12.
여하튼 신의 유도적 기능은 웨슬리안 신학자들에게 수긍이 갈 수 있는 면이다. 포드(Lewis S. Ford)의 과정신학적 신론과 모양이 비슷한 것이다. Lewis S. Ford, The Lure of God: A Biblical Background for Process Theism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8).
그러나 신은 유도적 역할 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강제적 역할을 하는 면이 있고, 창조적인 면도 있다.
  화이트헤드가 언급한 신은 형이상학적 원리로 작용한다(God exemplifies the metaphysical principles)는 사실을 네빌은 따르지 않았다. 네빌의 신은 창조자로서 “단일 무시간적 결정”(one non-temporal determination) 현상의 근원이 된다. Robert C. Neville, God the Creator, 115.
단일 무신간적 결정이란 한 가지의 창조행위가 시간 없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결국 비결정적 기반에서 결정적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인데, 비결정적 기반이 창조의 근원으로서 신적인 것이며, 결정적 현상들에 의한 창조적 사물이 존재한다. 결정적 현상은 유도적인 면보다는 결정적인 면이 크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가 만들어진다는 차원에서 창조적인 면을 함축하고 있다. 내가 나 된 것은 신의 결정적인 면이 크며, 선택적 결정에서는 유도적인 면도 있고, 앞으로 나의 존재 양식에는 창조적인 면도 함축하고 있다.  
  여기서 단일적 현상이란 사실적 실체가 결정되는 것은 오직 한가지로만 된다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선택이 있지만, 결정은 하나로 귀결되어서 사실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자연의 완고한 규범적 현상이다. Robert C. Neville, Puritan Smile: A Look Toward Moral Reflection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87), 123.

  화이트헤드의 신론의 제한성은 네빌에 의해서 날카롭게 지적되었다. 네빌에 따르면 화이트헤드의 신은 사실적 실체를 감지할 수 없다. 그것은 왜 세상에 이런 사물이 존재하고 저런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신은 종교적으로 약한 모습을 한다고 보았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적으로 궁극적인 것은 창조성이다. 창조성과 끊임없는 합성과정이 세상의 흐름이다. 신은 창조성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왜 끊임없는 합성작용이 일어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신은 무엇이 세상을 만들고 옳은 것(the right)이 무엇이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네빌의 신은 세상의 존재론적 근원으로서 창조자 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네빌의 창조자 신의 외적 유형은 삼위일체적 형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신론이나 창조의 이론과는 매우 차이가 있다. 창조자 신(God the creator), 자발적 창조성(spontaneous creativity), 그리고 창조 행위(act of creation)가 창조현상의 핵심적인 요소들로서 신적인 것이다. Robert C. Neville, A Theology Primer, 29; Robert C. Neville, Behind the Masks of God: An Essay toward Comparative Theology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1), 2.
창조자 신은 창조의 근원을 의미하며 시간을 초월한 존재이다. 자발적 창조성은 창조의 근원이 내재해서 사물에 창조성으로 함께하고 있다. 도가 사물에 있고 사물이 도안에 있다는 장자의 아이디어를 네빌은 인식하고 있다. Robert C. Neville, Behind the Masks of God 참조.
창조행위는 사물의 창조현상을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한 면에서 네빌의 신은 사물과 함께 있다. Robert C. Neville, God the Creator, 115. 비결정적 기반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조적 현상은 무시간적이고 영원한 것이다.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서 일어나는 창조현상은 무시간적이다.
다시 말하면, 신은 세상을 무에서 창조하는 근원적 존재이다. 창조 행위는 세상의 모든 결정적인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 창조행위는 자신을 창조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신은 비결정적 존재이다. 존재론적으로 신과 구별되는 것은 결정된 존재이다. 신은 비결정적 기반 혹은 존재의 기반 자체(Being-itself)이다. Neville, God the Creator, 1-119.

  신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이해에 따라서 도덕적 책임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해석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네빌에게 있어서 자유는 신의 결정적 행위의 결과로서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자유는 스스로 창조하는 행위로서 자유이다. 스스로 창조하는 행위에 의해서 존재가 있게 된다. 오직 한 가지의 스스로 창조하는 행위에 의해서 자유가 있다. 화이트헤드의 자유론보다 훨씬 제한된 자유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네빌의 자유는 여전히 신에 의한 창조적 자유이다. 칼빈의 신의 예정론적 자유론과 유사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네빌의 창조자 신은 우연적 세상을 창조하고, 세상의 창조자로서 자신을 한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우연적세상의 창조는 합성원리에 의해서 스스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네빌은 신은 자신을 세상의 창조자로서 창조한다고 보았다. 그런 맥락에서 신은 불변적 존재가 아니라 가변적 존재이다. 신이 스스로 창조된다는 차원에서 신은 변화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창조자 신은 가변적이고, 우연적 세상과 같이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신론에서 불변적인 절대적 신과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세상의 비대칭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문명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서 도는 새로운 맥락의 도로 스스로 변화한다. 도가 도를 도 되게 하는 것이다. 기술문명시대에 신은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면서 창조적 신으로 존재한다. 천리가 기술문명시대에 도덕적 당위성을 제공하는 규범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천리는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천리가 새로운 맥락에서 천리 되게 하는 것이다. 시간을 근본으로 한 우주-존재의 흐름에 따라서 신은 신이 되도록 창조되는 것이고, 도는 도를 만들어가고, 천리가 천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네빌의 창조자 신과 도와 천리가 상대주의(relativism)를 따르거나 맥락적(contextual)으로 해석되는 것은 잘못이다. 네빌의 창조자 신은 우주-존재론적 원인으로서 태극이나 도와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것이다.
  조화를 위한 도덕적 당위성은 창조자 신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다. 창조자 신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것은 조화의 복잡성(harmony of complexity)을 유발 시킨다. 세상은 조건적 요소와 본질적 요소의 조화 현상이다. 그런데 조화에는 복잡성과 단순성이 있다. 즉 조화의 복잡성과 조화의 단순성이다. 선과 악, 조화와 부조화, 질서와 무질서 등이 공존한다. 이들은 공존하면서 맥락과 견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둘 다 조화적인 면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성은 비도덕적 성향으로 해석될 수 있고, 단순성은 도덕적 성향을 해석될 수 있다.
  거기에는 조화와 도덕의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창조자 신의 결정은 조화의 복잡성과 조화의 단순성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도덕적 패턴은 도덕적 당위성의 기반이 된다. 도덕적 패턴인 도와 천리를 따르는 것이 조화의 단순성(harmony of simplicity)을 이루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도와 천리는 창조자 신을 함축하고 있지만, 창조자 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부재한 것으로 본다.
  특정한 패턴들은 관계적 모양을 가지고 있다. 조건적 요소와 본질적 요소의 조화에서 도덕적 행위가 이루어진다. 도덕성은 관계적 패턴을 따라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주어진 현재 경험에서 최상의 가능성(the best possible)을 모색하여 사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당위성이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조화에 존재하는 것이고, 관계적 패턴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Robert C. Neville, The Puritan Smile: A Look Toward Moral Reflection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87), 74.
 
  규칙성과 질서의 정도는 조화를 이루는 패턴의 패턴(patterns of patterns)의 종류와 정도에 달려 있다. Neville, Puritan Smile, 74.
실제적인 조화에서 패턴은 조화를 이루는 구성요소에 의해서 정의된다. Neville, Puritan Smile, 74.
도덕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패턴을 따라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동시에 패턴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도덕성은 패턴과 구성요소의 관계에서, 1) )어떤 가치가 성취될 것이며, 2) 같은 구성요소가 다른 패턴에서 어떤 다른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 3) 그리고 같은 패턴에서 다른 구성요소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의 변수들을 분석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Neville, Puritan Smile, 75.
도덕적 해석의 다원적 특성을 보게 하는 분석의 원리이기도 하다. 히틀러는 유태인에게 나뿐 사람이지만, 가족과 부하들에게는 유익한 면이 있다. 암세포 자체는 인간에게 나쁜 것이지만, 암세포 자체는 번성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도덕적 해석의 다원성에서 여전히 도덕적 당위성을 장기적 패턴에서 찾을 수 있다. 히틀러는 장기적 패턴에서 복잡한 조화를 이룬 것이고, 암세포는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다.
  패턴에는 질적인 패턴과 양적인 패턴이 있다. 그런데 이 두 패턴은 분리될 수 없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233.
이 두 패턴이 서로 같이 있으면서 합성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 패턴에 의해서 도덕적 가치가 결정된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면서 알 수 있는 예측적 패턴(predicative pattern)이 있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280. 화이트헤드는 감성적 패턴(emotional pattern)도 언급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다.
미래적 조화를 위해서 예측적 패턴을 따라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은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여전히 합성의 원리에 의해서 형성되는 자가 패턴이다. 이 패턴은 현재와 미래적인 것이지, 사실화된 패턴의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가 패턴과 무과거적 패턴은 도덕적 상대주의와 도덕적 허무주의라는 비평을 넘어서기 어렵다.
  물론 네빌의 창조론 속에 패턴도 자발적 창조성(spontaneous creativity)에 의해서 일어난다. 자가패턴적 현상을 함축하고 있지만, 창조적 자가패턴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기서 도덕성은 규범적 우주 속에서 신적인 것의 발견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도덕적 분별은 심오한 것이고, 가치와 선택과 실천에서 오랫동안 경험한 것에서 발달한다. 직관적으로 갑자기 나타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지속적인 교육과 경험이 필요하다. Neville, Puritan Smile, 111. 네빌이 맹자의 이론을 빌려서 언급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축적된 도덕적 분별력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에서 이야기하는 연륜의 중요성을 함축하고 있다.  측정과 패턴은 조화의 요소이다. Neville, Puritan Smile, 119.
규범적 우주(normative cosmos)에서 도덕적 패턴은 질적이고 양적인 면에서 존재한다. Neville, Puritan Smile, 116-135.
규범적 우주의 창조적 패턴 속에서 신적인 것과 도덕성은 연계되어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V. 감지론과 조건적 결정론

  넷째로 다룰 문제는 감지론(theory of prehension)이다. 사실적 실체는 주어진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감지(physical prehension)하고 개념적으로 이해(conceptual prehension)하면서 주관적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 생성된다. 여기서 감지론이란 사실적 실체가 주어진 데이터를 감지(prehension)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이 감지현상은 항상 물리적 감지가 개념적 감지보다 선행적이라는 사실이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247-249
사실적 실체의 주관적 목적(subjective aim)이 형성되는 것은 개념적 감지와 신의 일차적 목적(initial aim) 제시에 의해서 합성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개념적 감지가 먼저 일어나고 물리적 감지가 따라서 발생되는 면을 발견할 수는 없느냐는 것이다. 성적 생각이 성욕의 신체 변화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슬픔을 가질 수 있다. 생각이 신체 변화의 선행적 현상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물리적 감지가 선행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경우에 따라서는 개념적 감지가 먼저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 성리학의 대표자로 알려진 이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 양방적인 면을 함축하고 있다. 이와 기가 화이트헤드의 물리주(physical pole)와 개념주(conceptual pole)와 같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유비적으로 비교하여 타당한 아이디어를 유출해내자는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호발설이란 이가 발하면 기가 따르고, 기가 발하면 이가 타는 현상이다. 세상이 되어져 가는 현상은 궁극적으로는 이기호발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퇴계는 믿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기대승과 율곡에게 있어서 적지 않은 반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화이트헤드의 감지론과 퇴계의 호발설을 비교 할 때에 퇴계의 호발설이 타당성을 갖는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인의예지는 이에 속한 것이고 칠정은 기에 속한 것이다. 인의예지는 개념적인 것이고, 칠정은 기질적인 것이다. 의를 먼저 생각하고 의분과 슬픔이 생길 수 있으며, 괴로움이 있을 때에 지혜로움이 나타날 수 있다. 개념적 감지가 물리적 감지의 선행적 현상으로 있는 것은 화이트헤드의 물리주 우선의 일방적 감지론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여기서 이원론을 따라야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원론은 부합성의 문제로 인해서 화이트헤드는 거부하고 있으며, 여기서도 이원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원론은 부합성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서양의 현대 철학자들은 이원론을 거부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두 가지 라는 주장은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는다.
성리학적 언어로 사용한다면, 이기이원론적 일원론(理氣二元論的 一元論)이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퇴계의 호발설은 화이트헤드의 감지론에 양방적 감지의 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
 물리주가 개념주보다 항상 선행적이라는 것은 명제적 진리나 도 혹은 로고스와 같은 추상적 진리를 외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이 도와 로고스를 외면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영원한 객체(eternal object)가 추상적 실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제(propositions)는 감지(feelings)를 유도(lure)하는 기능이 있다고 믿었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280.
그러나 영원한 객체나 명제를 도와 로고스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은 논의의 대상이 된다. 물리주의 선행성에 반대적 현상의 가능성도 고려한다면, 유기체적 우주의 이해에서 도덕적 당위성의 타당성을 볼 수 있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은 물론 이원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 사실적 실체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유비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유기체적 시스템을 이원론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주의 선행성만 있다고 보는 것보다는 양행성을 언급하는 것이 그의 철학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 더욱 타당성을 갖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미 혹은 진리의 명제가 도덕적 행위의 주체를 조화의 단순성으로 유도할 수 있다.
 네빌은 조건적 요소와 본질적 요소의 조화에서 각 객체의 정체성으로 결정된다고 보았다. 물리주가 우선이고 개념주가 이차적 감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적 요소가 존재하고 본질적 요소가 있다. 퇴계의 호발설에서 이기가 서로 조건적 요소가 되어서 본질적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네빌의 창조론에서 양방적 감지로서의 조건적 현상이 사실상 보완되어야할 면이 있다. 그러나 조건적 요소가 본질적인 도덕적 당위성의 조건이 되는 것은 조화의 단순성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최고의 도덕적 관리자로서 창조자는 도덕적 패탠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VI. 창조론과 도덕적 해석

  결론적으로 네빌의 창조론에서 도덕적 해석의 기반의 가능성을 언급하고자 한다. 네빌의 신은 창조된 사물과 함께 있다. 도덕적 주체와 행동 사이의 조화를 향하여 창조자가 관여하는 것에 도덕적 정체성과 당위성이 있다. 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결과를 경험하는 것이 도의 원리이다. 도는 도를 추구하도록 한다. 바로 도가 도덕적 당위성을 유도하고 판단하는 근본적 기반이 된다. 창조주 신은 미적 창조와 단순한 조화(harmony of simplicity)를 향한 결정을 유도하고 그러한 미를 이루지 못할 때에 복잡한 조화(harmony of complexity)를 발생시킨다. 화이트헤드의 도덕성은 개인의 경험에서 중요성의 균형을 합리적으로 맞추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Alfred North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15. 그러므로 도덕성은 미래와 관계된 것을 결정할 때에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Ibid., 27. 도덕적 책임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에 있다. 특히 주체는 존재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책임을 갖는다. Ibid., 222. 도덕적 책임은 사실적 실체가 아직 사실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궁극적인 명료성(ultimate definiteness)을 드러낼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도덕적 책임은 제한된 데이터와 합성의 범주적 조건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Ibid., 255. 이러한 도덕적 이해는 한 가지 사실적 실체의 생성 현상에서 가능한 일이지만, 일어난 행동의 과거적 현상은 소멸된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을 묻기에 애매한 면이 있다. 그러나 과거로 되어버린 행동은 조건적 요소로 남아서 새로운 피조물의 생성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 도덕적 책임을 논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정체성 확립이 도덕적 가치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네빌이 언급한 것처럼 조건적 요소와 본질적 요소의 사실적 조화가 각 객체의 정체성의 기본이며 도덕적 행위의 기본이다. 사회적 조건이 자신의 본질적 자아와 조화를 이루면서 사회적 정체성이 형성된다. 그러나 모든 객체가 새로운 가능성이 있듯이, 조화를 향한 부조화의 가능성이나, 새로운 창조성을 향한 제한성의 가능성이 있다. 긍정적 조건이나 부정적 조건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하도록 한다는 차원에서는 둘 다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상호관계에서 부조화적 현상은 과거 속에서 일정기간 부정적 가치로 남는다. 부정적 가치는 책임을 불러오는 면이 있는 것이고, 책임적 행동을 통해서 쇄신된 새로움(novelty)으로 발전한다. 도덕적 책임론은 부조화적 현상의 부정적 가치에 대한 감지(prehension)에서 나타난다. 조화와 가치는 시간 속에서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조건적 요소로 남아서 본질적 요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도덕적 책임에 관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우주-존재론적 창조현상을 해석하면서 형이상학적 도덕론에 대한 진전된 아이디어를 제안하려고 하였다. 도덕적 당위성의 문제가 창조적 신과 형이상학적 해석에서 진전된 도덕적 형이상으로 해석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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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교수 글에 대한 논평           김상일(한신대교수 화이트헤드학회 회장)

1. 김성원교수의 글은 한국 화이트헤드 연구에 화이트헤드를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지평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김 교수가 지적한 대로 한국 안에서 화이트헤드연구는 그의 사상을 따르고 응용하여 그것을 전수하는 우익적 일변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미국 클레어몬트를 중심으로 한 과정 사상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을 김교수는 우익적이라 하고, 이에 대하여 미국 동부 보스톤 대학의 네빌을 중심으로 한 화이트헤드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좌익적이라 한다. 그러면서 좌익적 연구 경향을 신화이트헤드적이라 하면서 자신을 이러한 좌익적 입장에 서 있음을 천명하였다. 좌익적 입장은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넘어선다는 차원에서 네빌의 이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도덕적 우주론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366쪽) 고 했다. 우선 던지고 싶은 질문은 헤겔좌파 우파 하듯이 과연 화이트헤드연구에도 이런 구별적 용어가 기존하는지 알고 싶다.
2. 화이트헤드유기체 철학이 도덕적 기반을 만드는 데 부족한 이유는 과거 소멸론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화이트헤드는 로크의 설을 따라 과거는 소멸되고 시간도 없어진다고 보았다고 한다. 과거가 소멸하면 도덕적 기초도 함께 소멸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빌은 과거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고 영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소멸론과 영속론으로 화이트헤드와 네빌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논평자가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화이트헤드는 과거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불멸하며 이는 ‘엄연한 사실’을 만들어 주어 존재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준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한 김교수의 답변을 듣고 싶다.
3. 화이트헤드는 궁극적 범주에 ‘창조성,’ ‘일,’ ‘다’를 포함시켰다. 그리고 ‘창조성’을 ‘신’과 분리시켜 생각했다. 이 점이 화이트헤드 사상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네빌은 신을 창조성에서 분리시킨 것을 비판하여, 그의 책《창조성과 신 Creativity and God》에서 과정신학을 비판한다. 신과 창조성의 문제는 ‘존재론상의 문제(ontology)’, ‘신이 세계에 임재하는 문제(God’s presence in the world)’, ‘세계가 신에 미치는 영향 문제(the world’s bearing on God)’와 같은 여러 문제점들을 일으킨다고 했다(Neville, 1992, 138). 화이트헤드가 ‘신’을 ‘창조성의 피조물’이라고 한 데 대하여 네빌은 오히려 창조성을 비롯한 일과 다 같은 세 가지 궁극성의 범주가 모두 인격신에 의한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네빌은 일단 전통 기독교 유신론적 입장에 서서 화이트헤드의 ‘창조성’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화이트헤드가 ‘신’에서 ‘창조성’을 분리시켜 상위 개념으로 설정한 듯한 과정철학의 신관을 비판하면서 전통 기독교 초월신관을 옹호하려 한다. 화이트헤드는 신의 시원적 본성이 영원대상들을 통일된 신의 이상 속에 귀속시킨다고 본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궁극성의 범주인 창조성은 신의 시원적 본성의 소산자(所産者)이다. 그렇다면 소산자가 어떻게 자기를 낳은 능산자(能産者)를 낳을 수 있는가?
클레어몬트 대학교 과정사상연구소 소속 과정신학자인 포드는 과정철학이 신을 창조성에서 독립시켜 놓아야 할 여섯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즉 그는《기독교 신학을 위한 화이트헤드의 신관 The Viability of Whitehead’s God for Christian Theolgoy》에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화이트헤드 철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창조적 힘 즉 창조성을 신에게서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Ford, 1970, 141)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렇게 구별해 놓아야 신관에서 많은 유리한 점이 생긴다고 했다.
첫째, 창조행위 그 자체에서만 모든 피조물은 신에서 분리된 참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이 자유는 신의 행위에 의해서도, 신의 지식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미 한정되어 있는 요소에 의해서도 간섭이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과정철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모든 사실적 존재는 신의 경험에 기여할 수 있는 궁극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만약 신의 경험이 어느 때나 완전하고 불변한다면 거기로부터 우리의 행동이 더할 수도 뺄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영광을 위해서 어떤 구체적인 의미도 우리 인간들은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직 신만이 능동적이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은 모두 수동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전통신학의 신관이 갖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신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이른바 신정론의 문제이다. 이러한 질문이 생기는 근본 이유는 신을 창조성에서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예 신을 전제하지 않고 무‧도‧기 같은 창조성만을 말하는 동양 전통에서는 선과 악이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선악 대신 ‘길흉(吉凶)’이 문제가 되었다. 이 세계에서 발생하는 잡다한 다양성은 신과 세계의 합작인 창조성에 기인하기 때문에 신에게 선과 악의 원인을 물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신과 창조성의 분리는 신정론이란 난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만약 신과 세계가 공통의 창조성 속에서 합작을 ‘한’다면 양자 사이에는 결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결속 속에서 신이 ‘하’는 행위도 세계 속에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성서의 창조설화도 다르게 이해될 것이다. 신이 혼돈의 무에서 갑자기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인도에 의하여 점차적으로 혼돈에서 질서가 잡혀가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다섯째, 만약 신도 다른 사실존재들과 같이 창조성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그래서 신도 하나의 사실존재라고 한다면 우리의 신에 대한 이해도 형이상학의 한계 안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종래의 신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난제들이 사라질 것이다. 즉 신이 형이상학적 원리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며 그도 하나의 ‘주된 표본’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창조성에는 아직 신적인 요소가 없는 비인격적이다.
포드의 주장을 요약하면, 첫째 신으로부터 나오는 인간의 자유 문제, 둘째 유한한 존재의 본질적인 의미의 문제, 셋째 악의 문제, 넷째 형이상학적 범주들의 창조성 문제, 다섯째 신 역시 창조성에 제약받는다는 신의 유한성의 문제, 여섯째 종교적인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신의 성격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여섯 가지 중요한 문제들이 바로 신과 창조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포드가 창조성과 신을 일치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대하여 여섯 가지로 설명한 데 대하여 네빌은 한마디로 잘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도 둘째도 말할 것 없이 창조성과 신은 일치될 수 없다. 이러한 일치는 인도의 소승불교에서    나 찾아볼 수 있는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만사를 유전하고 변하는 것으로 보는 사상과 일맥    상통할 뿐이다. 나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이며 사실적 인 또는 가능성으로    서의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다. 신은 모든 자기가 지은 상대적인 세계를 떠나 완전히 초월해 있    는 자이다(Neville, 1992, 8).
네빌은 과정신학을 인도 소승불교의 아류 정도로 보고 있다. 네빌은 포드의 여섯 가지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하나하나 대응해 반박하고 있다. 네빌은 화이트헤드의 신관이 갖는 모순을 지적한다. 신도 창조성의 한 사례라 하고는 동시에 왜 신만을 예외적으로 ‘주된 표본’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왜 신에게만 무엇을 시초로 시동을 걸 수 있는 ‘초발심’을 허용하느냐이다. 과정신학의 신은 다른 존재들과 달리 일을 ‘하’게 하는, 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신은 다른 존재들과는 달리 가치를 부여하고 자리 매김까지 하는 ‘주관목적’도 가지고 있다.
네빌이 볼 때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자유는 mixed freedom이다. 사실존재들이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란 신의 초발심과 주관목적에 의하여 족쇄가 채워져 있는 중세적 자유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존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족쇄에 채워진 한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이다. 초발심과 주관목적에 제한된 자유이다. 그리고 이 점이 화이트헤드 신관이 지니고 있는 자가당착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네빌은 창조주로서의 신은 인간이나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른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다고 했다. 피조물은 피조물의 위치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만을 누릴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신은 존재론적으로 ‘구별되지는 않으나(not distinct)’, 창조주로서 ‘독립적(independent)’이어야 한다는 것이 네빌의 주장이다(Neville, 1992, 10).
그러나 네빌이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바로만 이해했더라면 자기의 생각이 화이트헤드의 그것과 서로 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먼저 네빌은 초발심과 주관목적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효능인같이 사건의 처음에 일어나는 원인으로 이해하는 잘못을 범했다. 초발심은 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은 이 세상에 다른 사실존재들과 같다. 그의 초발심도 그의 결과적 본성에 의하여 세계와 더불어 진전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초발심 역시 세계의 발전과정의 산물이다. 결과가 원인이 된 격이다.
네빌은 화이트헤드가 피조물의 입장에서 신의 창조행위를 말한다고 비판한다. 만약 시간적으로 유한한 피조물의 입장에서만 신이 창조행위를 한다고 말하면 결국 신은 유한한 존재가 되기 전에는 그의 독특한 창조행위란 없게 된다는 것이다. 피조물의 선택에 의해서만 신이 작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피조물에만 능동성이 있고 신에게는 수동성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신의 초발심과 주관목적 때문에 즉 신의 능동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유가 제약된다는 주장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화이트헤드가 신의 능동적 창조행위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네빌은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네빌의 비판은 화이트헤드 신관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결과이다. 이에 대한 김교수의 답변을 듣고 싶다.
김교수는 화이트헤드의 신관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관과 일치시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는 능동성이란 없는 수동성뿐이다. 제 자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 점에서는 화이트헤드의 창조성과 같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형상’만이 능동성을 지니고 있으며 질료는 형상에 의하여 조종을 받는다.그런 점에서 화이트헤드의 신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와 일치시킬 수는 없다고 본다.
4. 네 번째로 다룬 문제 가운데 감지론(prehension)의 문제이다. 화이트헤드가 물리적 감응을 개념적 감지 보다 선행하는 것으로 보았고 네빌은 그 반대라고 하면서 성욕의 예를 들었다. 그러나 성욕의 비유의 경우 화이트헤드는 이미 두 감지가 복합화된 상징적 준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사려된다. 그러면서 퇴계의 이기호발론과 이선기후론을 네빌과 일치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는 다분히 율곡의 기발이승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다분히 물리적 감지를 기에 개념적 감지를 이에 일치시키는 전제가 따르고 있다. 이에 대한 정교한 검토가 필요하다.
5. 김교수는 본 논문에서 화이트헤드철학이 갖는 도덕적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네빌의 사상을 가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양자가 모두 전통 신관을 극복하려 한 점에서는 일치한다고 보고있다. 전통 신관을 우익이라 할 때에 화이트헤드가 차라리 좌익이며 네빌은 중도우파로 사려된다. 아무튼 김교수의 말 때로 우익만 있는 한국 화이트헤드학계에 네빌의 좌파적 사상을 소개함으로서 호상간에 변증법 대화를 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김교수의 글에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6. 끝으로 지금까지 한국 우익들이 사용해 오던 용어들과 김교수가 논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 번역에 차이가 있어서 앞으로 용어 통일의 필요성이 있음을 지적해 둔다.  
참고 문헌   
Lewis Ford, Proceeding of the American Catholic Philosophical Association, 1970.
R. Neville, God and Creator, 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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