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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4/07/21 (04:26) from 80.139.185.135' of 80.139.185.135' Article Number :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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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131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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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131가지 이야기 2


 지은이:유재덕
 발행인:이재승
 펴낸곳:하늘기획

 
        차례

   1부 연약함이 주는 기쁨

 1. 시끄러운 까닭
 2. 죽어도 좋다
 3. 고난의 이유
 4. 조금만 밀어 줘도
 5. 말없는 위로
 6. 예수님의 자비
 7. 늙어감에 관하여
 8.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
 9. 자기 몫의 재능
 10. 가장 행복한 순간
 11. 연약함이 주는 기쁨
 12. 믿음의 사람
 13. 나를 사랑하셔요
 14. 씨앗
 15. 나누면 커지는 사랑
 16. 그리스도의 지체
 17. 장미 그림
 18. 영원한 삶
 19. 섬김과 자유

   2부 최선을 다하라

 20. 아버지의 약속
 21. 49 빼기 19는 49
 22. 궁금해요
 23. 약속의 실천
 24. 노력
 25. 가장 천한 일
 26. 어떻게 하나
 27. 천재와 연습
 28. 생각하라 그리고 계산하라
 29. 노장의 승리
 30. 포기만 하지 않으면
 31. 아이의 꿈
 32. 포기를 모르는 사람
 33. 최선을 다하라 1
 34. 최선을 다하라 2

   3부 그리스도인의 향기

 35.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
 36. 나무는 열매가 결정한다
 37. 함께만 하면
 38. 회개
 39. 은퇴는 없다
 40. 내가 아니면 자식이라도
 41. 귀중한 선물
 42. 선교사 답지 않은 선교사
 43. 웨슬리의 믿음
 44. 코리 텐 붐의 용서
 45. 코리 텐 붐의 하나님
 46. 그리스도의 향기
 47. 용서하는 삶
 48. 하나님은 계시다
 49. 걸식 전도
 50. 40인의 병사들
 51. 초청
 52. 전도지 한 장
 53. 대적하지 말라
 54. 외모

   4부 가슴에 계신 주님

 55. 말이 아닌 행동으로
 56. 교회를 망치는 지름길
 57. 예배에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이유
 58. 진짜 믿음
 59. 농부의 감사
 60. 악마의 전략
 61. 감사하는 믿음
 62. 행동이 말한다.
 63. 가슴에 계신 주님
 64. 예배의 본뜻
 65. 이미 받은 응답
 66. 기도
 67. 예수 그리스도는
 68. 말이 아닌 행동으로
 69. 축복
 70. 악한 이들에게로 가라
 71. 응답하시는 하나님
 72. 성경이 나를 발견했다
 73. 포기할 수 없는 성경
 74. 세뇌

   5부 희망이 사라진 마을

 75. 후회
 76. 세계를 바꾼 생각
 77. 생각을 바꾸면
 78. 입맛 때문에
 79. 기대
 80. 희망이 사라진 마을
 81. 닭이 된 독수리
 82. 준비 기간
 83. 빈센트 반 고흐
 84. 세상을 뒤집어 보면
 85. 자신을 지키기
 86. 유혹과 양심
 87. 악마의 도구

   6부 나무와 샘

 88. 악행의 몫
 89. 결정의 어려움
 90. 선입관의 결과
 91. 완벽
 92. 펜의 무게
 93. 약속
 94. 화를 다스리는 법 1
 95. 화를 다스리는 법 2
 96. 완전히 다른 임종
 97. 무지와 가짜 기둥
 98. 진정한 권위
 99. 나무와 샘
 100. 거울의 도시
 101. 기쁨이 빠진 수고
 102. 착각
 103. 하나님의 응답
 104. 서두르지 마라
 105. 재미 때문에
 106. 욕심의 끝
 107. 말이 필요 없는 사람
 108. 정직하라
 109. 비난을 이기는 법
 110. 누가 성인인가
 111. 가장 강한 것
 112. 사랑이라는 돌
 113. 혀
 114. 사진사 입장
 115. 용감한 사람
 116. 양도둑과 성인
 117. 안전 운행
 118. 행복한 사람
 119. 양심의 실천
 120. 순서대로
 121. 책임
 122. 누구나 필요한 격려
 123. 전문가의 몫
 124. 원수를 사랑하라
 125. 전갈의 속성
 126. 시기 때문에
 127. 모욕
 128. 모범의 힘
 129. 하나의 희생
 130. 선한 싸움
 131. 목숨을 다한 사랑
 
    보석 같은 이야기

 옛날 인도의 갠지스 강가에 살면서 그물로 생계를 유지하던 어부가
있었습니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작은 돌이 가득 든 가죽주머니가 발부리에
채였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강에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자가 되면 큰 집에서 살아야지."
 어부는 이렇게 말하면서 돌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을 꺼내 던지며
 말했습니다.
 "하인들을 거느리고 산해진미를 먹어야지."
 돌이 마지막 한 개만 남을 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던졌습니다. 어부가 마지막
돌을 강에 던지려는 순간 달빛을 받은 돌이 이상하게 반짝였습니다. 어부는
그제서야 그 돌이 무척이나 귀한 보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보석과도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석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힘겹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
이야기는 보석처럼 예기치 않은 빛을 발휘합니다.
 덕분에 엄청난 사상이나 교훈과는 거리가 먼, 그리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
않은 짧은 이야기 한 토막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용기를 되찾거나
힘에 겨운 순간들을 넘기기도 하고, 또 끝없는 방황을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 이야기의 힘을 익히 아셨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실 때 비유와 이야기들을 활용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감히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장면들을 마음
속에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고,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우화를 연구한 적이 있는 마틴 루터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이야기들 속에
담긴 지혜를 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그런 이야기의 힘을 염두에 두면서 아름답지만 소박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 엮었습니다. 어찌 보면 내용들이 서로 일관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바탕에 흐르는 주제는 따스함과 희망, 그리고 사랑입니다. 이 때문에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과 관계된 것들은 될 수 있으면 내용의 확인을 거쳐서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했으며, 우화의 경우에는 약간의 손질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말미에는 성구를 일일이 포함시켜서 묵상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버거운 삶을 강요받고 있는 지금, 모쪼록 이 책에 실린
짧은 이야기들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삶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하거나
의미를 확인하게 하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 그리고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곁에서 함께 하는 이들과 정성을
다해서 아름답고 깔끔하게 이 책을 꾸며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유재덕
 
    1부 연약함이 주는 기쁨

 다른 사람들을 넉넉히 염두에 두라. 누군가 그보다 낫게 여기지 말라.
전철을 밟는 데 얼마나 걸릴 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연약하다. 다른
이보다 강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토마스 아 캠피스
 
    1. 시끄러운 까닭

 목동이 나이팅게일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목동이 기르는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는 너무 아름다워서 마을 전체에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나이팅게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서 우쭐했습니다.
때문에 나이팅게일의 노래횟수도 점차 줄어갔습니다.
 어느 날 소를 끌고서 들로 나간 목동이 나이팅게일에게 노래를 한 곡 불러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나이팅게일은 주인에게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개구리들이 너무 시끄럽게 굴고 있어요. 저 개구리들 때문에 노래 부를
마음이 나지 않아요. 개구리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저 소리를 어찌 하지
않고서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구요."
 그러자 목동이 퉁명스레 나이팅게일의 말을 받았습니다.
 "물론 들리지. 그러나 네가 조용하게 때문에 내 귀에 소리가 들리는 거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 12:2)
 
    2. 죽어도 좋다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라이베리아로 간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멜빌 콕스는
아주 짧은 기간의 선교를 수행했지만 아프리카 선교 역사에 결코 지워질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콕스가 1833년에 서아프리카로 떠난다고 말하자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들 했습니다. 백인이 아프리카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일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멜빌 콕스는 주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계획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서 기도하며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그가 웨슬리언 대학교에 초대를 받아서 강연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콕스는
자신의 아프리카 선교 계획을 학생들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학생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조롱조로 말했습니다.
 "미리 당신의 관을 준비하고 떠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자 콕스가 그 학생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아프리카에서 죽는다면 나의 묘비에 글을 써 주시오."
 학생이 물었습니다.
 "뭐라고 써 드릴까요?"
 "천 명이 쓰러져도 좋다. 아프리카가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이 선교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
 학생은 그런 그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멜빌 콕스는 계획대로 서아프리카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지 5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콕스는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의 믿음을 잊지
않았고, 그의 원대로 묘비에 글을 남겼습니다.
 '천 명이 쓰러져도 좋다. 아프리카가 돌아올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로마서 14:8)
 
    3. 고난의 이유

 브루스 굳리치는 텍사스 A&M 대학교의 학군단 예비 학생이 되었습니다.
기숙사에 묵고 있던 브루스는 어느 날 밤 상급자들의 지시 때문에 달리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던 브루스가 그만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입학식을 치르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비극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브루스의 아버지는 하교 당국, 교수진,
학생들, 그리고 예비 학생 운영위원회 앞으로 각각 편지를 한 통씩
띄웠습니다. 사람들은 브루스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 아들 브루스 굳리치가 맞이한 죽음에 대한 대학교 당국과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관심과 배려에 관해서 가족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우리는 학군단에서 보여준 우리 아이에 대한 찬사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가 짧은 기간 동안 학교에서 머물며 전도할 때도
별다른 제지를 않은 것에 대해서 특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브루스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이번 일에 대해서 그 어떤 나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실수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브루스는 이미 주님과 약속이 되어
있었고 이제는 하늘에 있는 그분의 집에서 안전하게 거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되면 이런 말이 한 가지 대답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지내게 될 곳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요."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이사야 61:3)
 
    4. 조금만 밀어 줘도

 텍사스의 유명한 부자가 딸을 위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엄청난
토지와 수만 마리의 가축들, 그리고 수백 개의 유전을 소유한 이 부자는
29개의 침실과 수영장이 달린 대저택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딸을 소개할 목적으로 인근의 훌륭한 젊은이들을 모두 초대했습니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 부자는 참석자들에게 수영장 주위로 모이도록
발표했습니다. 부자는 엄청나게 커다란 수영장 주위에 모인 참석자들에게 한
줄로 늘어서게 하고 나서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듯이 수영장에는 뱀과 악어들이 가득 차 있다. 누구라도
뛰어들어서 반대편까지 헤엄치면 백만 달러의 상금이나 천 에이커의 토지 혹은
내 딸과 결혼할 수 있는 영광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
 부자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맞은편에서 어느 청년이 고함을 치며 물
속으로 뛰어들더니 맹렬히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전문적인 선수의 속도와 거의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청년이 수영장 끝에 도달해서 물 밖으로 나오자
부자가 청년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자네는 백만 달러를 원하는가?"
 청년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부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땅을 원하는가?"
 청년은 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것도 사양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내 딸과 결혼을 하고 싶은 거로군."
 "아닙니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부자가 깜짝 놀래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젊은이가 바라는 게 무엇인가?"
 청년은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물기를 힘주어 닦아 내면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뒤에서 저를 밀었던 친구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
 
    5, 말없는 위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에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여왕은 어느
평범한 농부의 아내가 아기를 잃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 역시 깊은 슬픔을 겪은 터라 농부의 아내 이야기를 듣고도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여왕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서 농부의 아내를 찾아
나섰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여왕 때문에 농부의 아내는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대하는 여왕의 태도에 마음이 놓인 그녀는 곧 다시 평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왕은 얼마 동안 농부의 아내와 함께 머물다가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왕이 떠나고 나자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서 농부의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왕님이 무슨 말씀을 하던가요?"
 그러자 농부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왕님은 내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저 내 손을
끌어다 두 손으로 잡아주셨을 뿐입니다. 그리고서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고 함께 울라(로마서 12:15)
 
    6. 예수님의 자비

 시카고에 있는 구세군 집회처에서 부스 터커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자비에
관해서 설교했습니다. 터커가 설교를 모두 마치고 단상을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어느 사내가 거의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 그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저처럼 당신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또 자식들이 이 세상에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어머니를 찾아 대며 울고 있다면 지금처럼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못하실 겁니다."
 며칠이 지난 뒤에 안타깝게도 터커의 아내가 기차가 탈선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시카고로 운구되었고 전도집회가 열렸던
장송에서 장례식이 엄수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에 터커는 아내의 말없는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참석자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전에 어떤 분이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 예수님의 자비에 대해서 설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만일 그분이 지금 이곳에 있다면,
그리스도로 충분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내 가슴은 찢어지도록
아프지만, 예수님은 제게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그 사람에게 예수님이 내게
위로가 된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린도후서1:6)
 
    7. 늙어감에 관하여

 시인 헨리 에드워즈 롱펠로우는 나이를 지긋하게 먹어 백발이 다 되어도
여전히 원기가 왕성했습니다. 누군가 시인에게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롱펠로우는 꽃이 만발한 사과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보시는 저 나무는 나이를 아주 많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저
나무에 피어 있는 꽃보다 예쁜 꽃을 결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 나무는
해마다 새 가지를 낸답니다. 나도 저 나무처럼 매년 새로운 가지를 조금씩
낼뿐이지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언 16:31)
 
    8.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

 두 사람이 모두 대머리인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가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있었습니다. 낙관주의자가 먼저 말했습니다.
 "역시 대머리는 좋아요. 우리는 힘들여서 머리를 빗질할 필요가 없지
않아요?"
 그러자 비관주의자가 말했습니다.
 "아, 하지만 우리는 씻어야 할 얼굴이 너무 넓지 않소?"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의 차이는 이렇든 크게 벌어져 있습니다.

 비관주의자는 비가 오면 땅이 질척거릴 것이라고 말하고
 낙관주의자는 먼지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한다.
 낙관주의자는 오늘이 더 낫다고 하고
 비관주의자는 어제가 더 나았다고 말한다.
 낙관주의자는 벌을 보고 꿀을 만드는 곤충이라고 하고
 비관주의자는 사람을 쏘는 곤충이라고 말한다.
 낙관주의자는 살아 있는 것이 기쁘다고 하고
 비관주의자는 죽어야 하는 게 슬프다고 말한다.
 낙관주의자는 지금보다 더 나쁘지 않아서 기쁘다고 하고
 비관주의자는 지금보다 더 좋지 않으니 속상하다고 말한다.
 낙관주의자는 악 속에서 선을 찾고
 비관주의자는 선 속에서 악을 찾는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요엘 2:23)
 
    9. 자기 몫의 재능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를 동생으로 둔 어느 벽돌공이 하루는 자신이 일하는
건설 회사 사장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장은
벽돌공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동생을 두었으니 자네는 참으로 좋겠군."
 사장은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벽돌공이 마음을 상했을까봐 신경을 쓰면서
계속 말했습니다.
 "물론, 재능이란 자고로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겠지.
심지어 같은 가족끼리라도 말일세."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벽돌공에게 사장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밝혔습니다.
 "왜냐하면 제 동생은 벽돌 쌓는 것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자기 집을 지어 주는데 동생은 그 비용이라도 지불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점에 대해서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답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로새서 3:17)
 
    10. 가장 행복한 순간

 1982년 어느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트럭과 부딪친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가서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승용차를 운전하던 여인은 이후로 그 무서운
날이 있기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사고가 있기
전까지 능력 있는 남편의 보호를 받으면서 마치 소녀처럼 마냥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사고는 그녀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그녀는 6주 동안 혼수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의식을 되찾고 나서
자신의 흉측하게 변한 얼굴과 사라져 버린 한쪽 팔, 그리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를 본 뒤로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신도 거울 보는 일을 극구 피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무려 70회가 넘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녀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은 텔레비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목사가 인도하는
전도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고 이후로 7년 동안 숨어 지내던 그녀는 더 이상 숨어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구원하기 원하시며 자신이 겪는 고통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은둔생활을 끝내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쳐질 나신의 흉측한 모습이 걱정되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녀는 누구를 만나도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어느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28:15)
 
    11. 연약함이 주는 기쁨

 18세기말과 19세기 초반의 재능 있는 영국 시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조지
고든 바이런을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탄탄히
자신의 입지를 굳혔고 냉소적이며 비장할 뿐만 아니라 낭만스런 글의 특징을
따서 바이런풍이라는 시적 경향이 생겨날 정도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도 몹시 부러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월터 스코트가 바로 그였습니다.
 바이런 경과 월터 스코트는 둘 다 절름발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생활태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이런은
자신의 다리가 멀쩡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기회만 있으면 계속 불평을 해댔습니다. 스코트는 정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스코트는 자신의 연약함을 기뻐하는 듯했습니다.
 한 번은 바이런이 스코트를 만나게 되자 이렇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당신의 행복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내가 누리고 있는 명성을 모두 주겠소."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지난 장애에 대해서 서로 반응이 달랐습니다. 바이런은
그것을 빌미로 방탕한 생활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스코트는 오히려 용감한
삶을 통해서 자신의 기준과 가치를 체현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
 
    12. 믿음의 사랑

 윌리엄스는 현재 인도네시아 영토가 된 칼리미나탄에 수백 개의 교회를
개척한 선교사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보르네오
봅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백혈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봅 피어스 박사가 윌리엄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찾아갔습니다.
 윌리엄스와 함께 피어스 박사가 강가를 걸어가다가 한 소녀가 대나무 자리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서 소녀가 강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윌리엄스는 그 소녀가 암에 걸려서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피어스는 크게 화를 내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저기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아이가 어째서 진흙 속에 누워 있는
건가?"
 윌리엄스는 소녀가 본디 밀림에서 자란 탓에 병원보다는 시원한 강가에
있기를 원하고 있고, 그날은 특별히 그곳에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피어스 박사에게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습니다.
 마음이 누그러진 피어스 박사가 소녀 옆으로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깡마른
손을 잡으며 이마에 손을 얹은 채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소녀가 피어스
박사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했고, 윌리엄스는 피어스에게 소녀의 말을 통역해
주었습니다. 소녀는 고통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백혈병에 걸려서 살날이 불과 1년이 못 남았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고통인지 잘 알고 있던 피어스 박사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소녀를 붙잡고 한참을 울고 난 뒤에 피어스 박사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수면제 병을 꺼내어 윌리엄스에게 주면서 소녀가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수면제 병을 받아 든 윌리엄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피어스 박사가
싱가폴까지 가서 약을 구하기까지 열흘이라는 기간이 걸렸고, 이 볼품없는
소녀 때문에 그가 열흘 밤을 잠못들고 뒤척이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시편 40:12)
 
    13. 나를 사랑하셔요

 대학에서 사회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앤서니 캠폴로가 청소년 휴가 캠프를
인도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캠프에 참가한 가운데는 어쩌다가 발작을 일으키면
온몸이 마비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마음씨 고약한 아이들은 그것을 빌미로
삼아서 기회가 닿기만 하면 그 학생을 놀려 주었습니다. 그가  질문이라도 할
경우에는 아이들은 일부러 그의 흉내를 내면서 어눌한 말투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때문에 학생은 캠프장에서 언제나 따돌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밤 학생이 속한 캐빈에서는 전체 모임이 있기 전에 갖는 경건회를
이끄는 인도자로 그를 뽑았습니다. 학생은 같은 캐빈에 속한 아이들이 자신을
경건회 인도자로 선택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규칙에 따라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이미 흥미를 잃은 아이들이 자신을 앞에 내세워서 한껏 웃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학생은 자신이 인도자로 지명되자마자 거리낌없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가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물론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발음하는 데는 정상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학생의 말은 간단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요. 그리고 나도 예수님을 사랑하고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말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중학생들은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 명의 청소년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캠프장 전체에 예기치 못한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앤서니 캠폴로는 몸이 성치 못한 어느
중학생의 증거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청년들과의 만남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에베소서 5:2)
 
    14. 씨앗

 신문 편집장과 교사, 그리고 장로교 목사를 지낸 일라이아 러브조이는
강단을 떠났습니다. 러브조이는 신문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남부와 북부 사이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피하고 평화로운 노예해방이 실시되는 것이 신문이라는 무기를 택한 그의
꿈이자 목표였습니다.
 흑인이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러브조이는 노예제도라는
인간의 지독한 범죄와 영원히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후로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협박은 물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온갖 횡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신문사는 계속해서 습격을 받았지만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타협을 하는 게 나의 임무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나는 결코 그럴 수
없다. 나는 사람보다 하나님이 더 두렵다. 원한다면 나를 어찌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생명을 바칠 것이다...."
 사실이었습니다. 나흘 뒤에 그는 어느 폭도들의 손에 의해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를 살해하는 일에 가담한 사람들은 누구도 기소를 당하거나
고발되지 않았고, 오히려 러브조이를 옹호하던 사람들이 기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살인자들 가운데는 앨턴시의 시장으로 뽑히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때문에 누구도 러브조이를 승리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러브조이의 순교 때문에 커다란 감동을 받은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일리노이주 의원에 당선되었고, 결국에는 러브조이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러브조이라는 씨앗 때문에 열매를 맺게된 그
젊은이의 이름은 에이브러험 링컨이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15. 나누면 커지는 사랑

 더글러스 모러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몸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모러의
체온은 무려 40도를 넘나들었고 감기와 비슷한 극심한 증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들은 백혈병에 걸린 것으로
판명했습니다. 의사들은 이미 십대가 된 소년에게 그 질병에 대해서 소상히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3년 동안 화학치료를 견뎌야 한다는 것과
화학치료를 받게 되면 머리가 모두 빠지고 온몸이 붓게 된다는 사실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의사들로부터 치료 계획을 전해들은 모러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한참
외모를 가꾸는데 정신이 없을 나이에 화학요법 때문에 제 모습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한 모러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근심이 자리잡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치료가 한참 진행되었지만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갈 뿐이었습니다.
의사들은 그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모러의 소식을 전해들은 숙모가 백혈병에 걸린 조카를 위로하기 위해서
꽃집을 찾아가서 꽃배달을 주문했습니다. 병원에 배달된 꽃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모러는 꽃 사이에서 두 장의 카드를 찾아냈습니다. 한 장은
숙모가 보낸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전혀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더글러스 모러에게. 내가 너의 숙모로부터 주문을 받았다. 나는 브릭스
화원에서 근무하고 있단다. 나도 7살 때 백혈병에 걸렸고 이제 22살을 눈앞에
두고 있다. 행운을 빈다. 내 마음이 너에게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로라
브래들리로부터."
 카드를 단숨에 읽고 난 모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이후로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고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의료진은 소년의 병세가 호전되는 이유를 여전히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더글러스 모러의 병실에는 극도로 정교한 수백만 달러의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었고, 또 수백 년 동안 거듭 축적되어 온 의료기술을 습득한 의료진이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소년의 병은 그리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170달러 짜리 꽃바구니와 화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카드 한 장이 소년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 덕분에 병세까지 크게 호전될 수 있었습니다.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18)
 
    16. 그리스도의 지체

 순간적으로 범한 경솔한 행동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난 어느 사내가 오로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벽돌상자를 운반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이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생소한 세계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는 대신에 건축 현장에서 콘크리트 벽돌을 나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복도의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음악은 삑삑 대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소리로 바뀌었고, 또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말씨는 사무실
직원들과 달리 거칠었습니다. 특히 불평과 위협을 예사로 하는 현장 주임의
욕지거리는 참아 내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젠장, 당신 말이야, 일 좀 제대로 할 수 없어? 평생 당신 같은 작자를
데리고 일해 본 적이 없다고."
 뿐만 아니라 그가 일을 하면서 경험 부족 때문에 범한 실수는 작업장의
사람들 사이에서 거듭 놀림감이 되고 있었습니다.
 "너는 이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셋째 주가 끝나 갈 무렵이 되자 사내는 더 이상 그 일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오늘 오전 휴식 시간까지만 일하는 거야. 그리고 나서 짐을
꾸리겠어."
 그는 아침 일과를 끝내고 점심 시간에 짐을 꾸려서 작업장을 뜨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점심 시간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현장 주임이 그의 임금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주임은 사내에게 봉투를 건네주면서 3주만에 처음으로
예의를 갖추어서 말을 건넸습니다.
 "당신을 아는 부인이 바로 앞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당신의 아이들을 가끔 돌봐 주곤 했다던 대요."
 "누굽니까?"
 현장 주임이 알려준 이름은, 사내와 가족이 예배를 드리러 참석하는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봉사하는 부인이었습니다. 현장 주임은 다른 곳에 작업을
지시하러 바로 그곳을 떠났습니다. 사내는 자신의 급료가 담긴 봉투를 열어
보았습니다. 봉투 안에는 수표와 함께 사무실에서 급료를 지불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그 부인의 메모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 가운데 하나가 고통을 겪으면, 우리 모두가 고통을 겪는
법입니다. 며칠 동안 내가 당신을 위해서 줄곧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사내는 그 메모를 들여다보면서 하나님의 기막힌 순간 포착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부인이 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만 던져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겪는 고통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그리스도의 지체는 있었습니다.
 사내는 메모를 곱게 접어서 윗주머니에 넣고는 도시락 통을 열었습니다.
이후로 그 건축 현장에는 아주 유능하고 활달한 일꾼이 한 사람 더 늘게
되었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고린도전서 12:26)
 
    17. 장미 그림

 미국 화가 존 서전트의 작품 가운데 평단에서 상당한 평가를 얻은 장미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어프로우치 만큼은
완벽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차례 고가에 그림을 매입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서전트는 예외없이 거절했습니다.
 존 서전트가 그림을 팔지 않은 것은 가격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장미 그림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는
몹시 낙심되거나 작가로서의 재능이 의심스러울 때면 그 그림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저 그림을 그렸어."
 그러면 확신과 능력이 다시 회복되곤 하였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이사야 41:10)
 
    18. 영원한 삶

 설교자로 유명했던 W.B. 힌슨이 세상을 뜨기 직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개한 일화입니다. 임종을 맞기 한 해 전에 몸에 나타난 이상한 징후 때문에
힌슨은 평소 잘 알고 있던 의사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이곳저곳을 자세히 살피고 난 뒤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결과를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중병에 걸리셨습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힌슨은 병원을 나서서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5km가 훨씬 넘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리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힌슨은 걸음을 걸으면서 자신이 사랑하던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평소 즐겨 가던 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때가
되면 찾아가서 하나님을 묵상하던 위풍당당한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습니다. 힌슨은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생각하다 보니 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뚫어져라 하늘을 바라보던 힌슨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이제는 너희를 자주 볼 수 없겠구나. 그러나 산아, 네가 사라지는 날에도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강아, 네가 바다로 더 이상 흘러가지 않는 날에도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별들아, 이 우주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려서 너희들이 더 이상 하늘에 빛나지 않는 날에도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린도전서 15:55)
 
    19. 섬김과 치유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칼 메닝어 박사가 어느 모임에 강사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메닝어 박사가 정신건강에 관해서 강의를 끝내고 청중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내가 손을 들고 일어나서 물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신경쇠약에 걸릴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라고 처방을 내리시겠습니까?"
 참석자들은 메닝어 박사로부터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라'는 대답을 듣게
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사람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신경쇠약에 걸릴 위험에 노출되었다면 서둘러서 집의 대문을 걸어 잠그고
철길을 가로질러 길을 떠나십시오. 그래서 자신보다 더 위급한 사람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면 즉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십시오. 그보다 좋은 처방은 없으니까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위기 19:18)
 
    2부 최선을 다하라

 선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은 행동으로 옮길 일을 먼저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위대한 싸움을 벌이는 사람은 누굴까?
그러니 우리의 할 일은 이렇다. 스스로를 제압하려고 노력하기 날마다 더욱
강해지기 그리고 조금씩 선한 쪽으로 나아가기.
 토마스 아 캠퍼스
 
    20. 아버지의 약속

 엄청난 지진이 아르메니아 지방을 덮쳤습니다. 진도 8.2라는 가공할 만한
지진은 단 4분만에 그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하고 무려 3만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지진의 피해 속에서 아내를 무사히 안전한 대피소로
피신시킨 아버지가 아들이 공부하는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무너져 버린 학교 건물 더미로 정신없이 달려갔습니다. 교실에서
공부하다 갑자기 지진을 겪었을 아들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아버지는 경황없이 달려가면서도 자신이 늘 아들에게 했든 말을
떠올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달려가겠다!'
 그러나 막상 건물에 다가가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아들을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겨우 아들이 공부하던 교실의 위치를
떠올리고서 무너진 건물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그 자리에 와서
자식들을 찾아 헤매던 다른 부모들이 그를 말렸습니다. 이미 모든 게 끝나버린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아버지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건물의 조각들을 들어냈습니다.
응급구조 책임자가 아버지를 만류했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남아 있던 가스
때문에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현장에 접근하지 말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생사를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하겠다는 각오로 아버지는 혼자서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루반 이상
동안 쉬지 않고 맨손으로 건물 더미를 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이름을
계속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갑자기 아들의 음성이 무너진 건물
틈에서 들렸습니다.
 "아빠야? 나 여기 있어. 내가 아이들에게 아빠가 틀림없이 우리를 구하러
오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아빠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나를 위해서
달려온다고. 아빠는 정말 약속을 지켰어!"
 아버지가 어서 나오라고 말하자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다른 아이들부터. 나는 아빠가 나를 꺼내 줄 것을 알아. 무슨 일이
있든지 아버지가 달려오는 것처럼 말이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21. 49 빼기 19는 49

 주변 사람들은 중학교 1학년 과정에 다니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49에서 19를 빼면 49, 17에서 3을 빼면 17'이라고 계산하는 아이를 선생님은
물론 어머니까지 포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으려는 자신의 논리를
일기장에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의 일기장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일기장에는
엉터리 같은 수학 논리가 빼곡이 적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아들과
산책을 하면서 허락없이 일기를 본 것을 먼저 사과하고 나서 물었습니다.
 "얘야, 어째서 '49 빼기 19가  49'가 되는지 설명할 수 있겠지?"
 아들은 누구도 들어주지 않으려는 자신의 논리에 아버지가 관심을 보이는
것에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저도 49 빼기 19가 30이 되고, 17에서 3을 빼면 14가 된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모두가 비웃어도 49 빼기 19는 49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뺀다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이 없어진다는 것인데 49에서 19를 뺀다는 것은 19라는
숫자가 없어지는 것 아니에요. 19는 없어지고 49만 남으니까 처음부터 49만
남는 거지요."
 아이는 자신의 논리를 자랑스럽게 설명했습니다. 그 말을 한참 듣고 있던
아버지는 너무 기뻐서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너처럼 수준 있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학교에서는 이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약속을 배우는 곳이다. 그 약속이 바로 49 빼기 19는 30이라는
것이다. 너도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49 빼기 19는 30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너 혼자 연구하고, 생각할 때는 49 빼기 19를 49라고 생각해도 된다."
 아이는 그제야 비로소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인정해 주지 않으려고
했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해가 담긴 그 따뜻한
말 한 마디 덕분에 나중에 세계적인 경제학자는 물론 철학가이자 사회
사상가로도 상당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존 스튜어트 밀.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언 20:11)
 
    22. 궁금해요

 하루는 어느 꼬마가 아빠에게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습니다.
 "아빠, 바람은 왜 부는 거예요?"
 신문을 열심히 보고 있던 아빠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잘 모르겠구나, 얘야."
 꼬마는 여전히 궁금한 듯 눈썹 사이에 주름을 잡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아빠, 구름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아빠 역시 여전히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습니다.
 "확실히 모르겠구나, 얘야."
 꼬마가 물었습니다.
 "아빠, 내가 이렇게 아빠에게 물어도 괜찮은 건가요?"{
 아빠는 전과 다름없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다 뿐이냐, 얘야. 그렇지 않으면 네가 누구에게서 배울 수 있겠니?"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태복음 7:20)
 
    23. 약속의 실천

 아이가 엄마의 치마 끝을 잡아당겼습니다. 설거지를 하느라 정신없던 엄마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이가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결혼할 때 서로에게 뭐라고 말하나요?"
 엄마는 미처 생각지 못한 아이의 질문을 받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설거지가 끝나지 않은 터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성의있게 대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언제나 잘 대해 줄 것을 약속하지."
 그러자 아들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다시 엄마를 올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빠와 언제나 결혼해 있는 게 아니네요?"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베드로전서 1:22)
 
    24. 노력

 베르톨도 드 지오바니는 예술을 뜨겁게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도나텔로의 제자였고, 뛰어난 천재 미켈란젤로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베르톨도를 찾아온 것은 열네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고미술품 관리자이자 조각가였던 베르톨도는
미켈란젤로를 처음 만나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그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고 세월을 허송하다가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많이 보아 온 베르톨도는 어린 천재 미켈란젤로가
진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엄격하게 대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미 열세 살 때 피렌체의 호가 기를란다요로부터 1년 간 그림을 배우기도
했지만 요구처럼 나이를 뛰어넘기에는 어느 정도 무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베르톨도가 작업장에 들어섰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재능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조각 소품을 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베르톨도는
망치를 집어들고서 작업장을 가로질러 가서 몌켈란젤로가 만지고 있던 작은
조각품을 내리치면서 소리쳤습니다.
 "미켈란젤로, 재능은 쓸모 없다. 노력이 중요하다!"
 그제야 스승 베르톨도의 의도를 알아차린 어린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재능을
부지런히 갈고 닦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건축, 조각, 그림의 각 분야에서
르네상스 예술을 대표하는 대가가 되었습니다.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베드로전서3:13)
 
    25. 가장 천한 일

 게르만족의 일파로서 중부 유럽의 섬이나 해안을 습격하고 약탈을 일삼던
바이킹족들은 유럽인들에게 악명이 높았습니다. 9세기경에 아이슬란드에 살고
있던 바이킹족들은 아일랜드에서 이주해 온 소규모의 그리스도인들이 해변가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혀 믿지 않던 바이킹들은 그 아일랜드계 그리스도인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자신들이 가장 하찮게 생각하는 일거리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아일랜드계 노예들은 바이킹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육아 일을 맡아 하면서
부지런히 기독교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3대가 지나자 아이슬랜드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노예로
끌려온 이들이 양육했던 바이킹의 후손들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한 나라를
형성했고, 11세기에 이르러서는 국민투표를 거쳐서 자신들의 국가가 기독교
국가임을 공포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가장 천한 일을 담당한 아일랜드계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가능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5)
 
    26. 어떻게 하나

 새학기가 되어 교실에 처음 들어선 선생님은 조라는 학생 때문에 무척 애를
먹습니다. 조가 보기에 선생님은 곯려 주기 아주 적당한 상대였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주 동안 조와 학급의 분위기를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골탕 먹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조가
하라는 대로 따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선생님은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서 한 번 부딪쳐나 보자는
심정으로 방과후에 조를 불러서 자신을 괴롭히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조는 선생님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만만히 당해 주니까 그렇지요."
 "나도 안다."
 선생님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나는 항상 너 같은 사람들이 두려웠다. 하지만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힘없는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니? 너를 사랑해
주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겠니?"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늘 선생님을 괴롭히던 열 네 살 짜리
악당 소년이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선생님을
괴롭히고 반항하던 모습 뒤편에 숨겨진 괴로움과 외로움과 미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선생님의 진솔한 태도가 혼란스런 아이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잠언 27:5)
 
    27. 천재와 연습

 위대한 스페인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인 사라사테에게 유명한 비평가가
천재라고 추켜세우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화를 냈습니다.
 "천재? 지난 3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 네 시간씩 연습을 했는데
나를 보고 지금 천재라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디모데전서 4:7)
 
    28. 생각하라 그리고 계산하라

 팀 핸슬 교수가 동료 물리학과 교수로부터 시험 점수를 평가해 달라는
이례적인 부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한 학생의 물리학 시험을 0점 처리하려고
하는데, 학생은 자신의 해답이 완벽한 점수를 받아야 한다고 고집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교수와 학생은 제3자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고 중재를 거치자는
의견에 서로 동의하고 동료 교수를 정한 것이었습니다. 시험 문제는
이랬습니다.
 '기압계를 이용해서 높은 건물의 높이를 측정할 수 있는지 증명하라.'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압계를 그 건물의 지붕으로 가지고 가서 줄로 묶어서 바닥까지 늘어뜨린
다음에 그것을 걷어서 길이를 잰다.'
 팀 핸슬은 학생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최고 점수를 받아도 무리가
없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 답변에 최고 점수를 주게 되면 물리학 과목에서 전혀
물리학적인 아닌 사고를 부추기는 꼴이었습니다. 핸슬은 그 학생의 물리학적
수준을 측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핸슬은 학생에게 동일한 문제를 물리학적 방법으로 다시 대답하도록
요구했습니다. 학생도 그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습니다. 그가 5분의 시간을
주자 학생은 부지런히 자신의 답변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학생이 답안지를 읽었습니다.
 "기압계를 지붕으로 가져가서 지붕의 가장 자리에 기대어 세워 놓는다.
기압계를 떨어뜨리면서 스톱위치로 그 속도를 측정한다. 그리고 나서
S(높이)=1/2a(가속도)t제곱(시간)라는 공식을 이용해서 건물의 높이를
계산한다."
 핸슬 교수는 자신의 동료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고 학생에게 최고 점수를
주는 게 어떨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학생은
거의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핸슬은 동료 교수의 사무실을 나서다 말고
학생을 불러서 또다른 해답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야 물론 있지요. 기압계를 이용해서 건물의 높이를 쟬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가령, 날씨가 화창한 날에 기압계를 가지고 나가서 기압계의
높이, 즉 그림자의 길이와 건물의 그림자 길이를 측정하고 단순 비례계산을
이용해서 건물의 높이를 결정하는 겁니다."
 "훌륭하군. 또다른 것은 없나?"
 교수가 다시 물었습니다.
 "있습니다. 교수님이 마음에 드실 아주 간단한 측정법입니다.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에는 기압계를 들고서 계단을 올라갑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벽을
따라서 기압계의 길이를 표시합니다. 그리고 나서 표시된 개수를 세어 보면
건물의 높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주 직접적인 방법이지요.
 물론, 더 정교한 방법을 원하실 경우라면 기압계의 끝을 실로 묶어서 추처럼
흔들면 됩니다. 그리고서 바닥과 건물 옥상에서 중력 가속도의 g(값)를
측정합니다. 그 값의 차이를 가지고서 원칙적으로 건물의 높이를 계산해 낼
수도 있습니다."
 핸슬 교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학생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기압계를 가지고선 건물 지하실로 내려가서 관리실 문을
두들깁니다. 관리인이 용건을 물으면 이렇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실례지만
제게 성능이 좋은 기압계가 있는데 만일 이 건물의 높이를 일러주시면 그것을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가 헤어질 무렵이 되자 교수가 학생에게 작별
인사겸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주게. 자네는 그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었나?"
 학생은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이 시험의 정답을 몰랐다는 사실을 솔직히
시인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학생이 물리학적
능력이 뒤떨어져서라기보다는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문제 해결법에 그리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잠언 4:7)
 
    29. 노장의 승리

 1994년 11월 라스베가스에서 할아버지 복서 조지 포먼과 WBA와 IBF 통합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가 타이틀 매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포먼에게는 에반더
홀리필드와의 세계 타이틀전에서 패배한 이후로 두 번째로 찾아온
기회였습니다.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회가 되었지만 포먼은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챔피언에게도 허점은 있었습니다. 포먼은
무어러의 귀에 레프트 훅을 한 번, 그리고 같은 곳을 세 번 연타하고 난 뒤에
레프트 잽과 이마를 때리는 라이트 강타로 챔피언을 그로기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른손으로 상대의 턱을 후려쳐서 링에 뉘었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포먼은 46세를 2개월 앞두고서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노장이 챔피언의 자리 다시
도전하게 된 과정이 사람들에게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조지 포먼은 알리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뒤에 충격을 받고서 28세의 나이로
권투계를 떠났습니다. 포먼은 목사 안수를 받고서 로드 지저스 크리이스트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문제 청소년들의 안식처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창고를 개조해서 체육관으로 만들고 운동시설을 갖춘 뒤에
모든 청소년들에게 개방했습니다. 그것을 운영하는데 따른 비용은 모두 포먼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능력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38세가 되던 해
포먼은 거의 파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그러나 문을 닫으면 길거리로
돌아가서 범죄에 빠질 청소년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포먼은 먼저 청소년들을 위한 모금행사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기대
밖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다시 권투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38세라는, 권투계에서는 환갑을 넘긴 나이였지만
청소년들에게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겠다는 생각 앞에서는
나이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냉정했습니다. 나이는
물론 몸무게가 무려 150㎏이나 나가는 포먼의 훈련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혼자의 힘으로 훈련을 꾸려
나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몸무게를 130㎏으로 낮추는데 성공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체육위원회는 그의 나이를 문제삼아 경기의 승인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포먼은 청문회장에서 재기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생명,
자유,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스포츠
기자들 역시 그의 복귀에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포먼은 나중에서야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무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용서가 가능했습니다. 그들이 내 마음속에, 그리고 내 정신 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포먼은 이후로 상대를 하나하나 쓰러뜨렸습니다. 물론 패배도 맛보았지만
결국에는 통합 챔피언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패배를
예상했던 무어러와의 시합에 20년 전 알리와의 시합에서 입었던 팬티를 입고
출전했던 포먼은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용기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시편 3:6)
 
    30. 포기만 하지 않으면

 *플라톤은 유명한 "공화국"이라는 저서를 집필할 때 첫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아홉 차례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써
내려갔습니다.
 *키케로는 발성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3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친구들
앞에서 연설을 연습했습니다.
 *웹스터 사전으로 유명한 노아 웹스트는 자료수집을 위해서 대서양을 두
차례나 오가면서 36년에 걸쳐서 사전을 집필하였습니다.
 *존 밀턴은 "실낙원"을 집필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을 얻기 위해서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군사학교를 58명 중 42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흥망사"를 26년 간 집필했습니다.
 *1894년 어느 영어 교사는 자신이 담임하는 십대 소년의 평가서에 "성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음"이라고 기록했는데, 그 학생의 이름은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브라이언트는 시 한 편을 출판하기 위해서 93회나 고쳐 썼습니다. 그리고
시집이 나오자 명작이 되었습니다.
 *1905년 베른 대학교는 어느 박사학위 청구 논문을 "적절하지 못하고
공상적"이라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 논문의 주인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월간 애틀란타의 편집장은 원고 뭉치와 "우리 잡지는 당신의 격렬한 시를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메모를 작가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그 시인은 나중에
퓰리처상을 4차례나 수상했던 로버트 프로스트였습니다.
 *월트 데이비스는 아홉 살 때 소아마비 때문에 전신이 마비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1952년에 올림픽 높이 뛰기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셀리 맨은 다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미국내 수영 신기록을 여덟 개나
보유하였고, 1956년 호주의 멜버른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헝가리의 세계 사격 우승 팀의 일원이자 하사관이었던 카롤리 타카크스는
들고 있던 수류탄이 터지는 바람에 오른손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타카크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왼손으로 사격하는 법을 익혔고
1948년과 1952년에 연속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루 게릭은 어려서 다른 친구들이 함께 야구를 하지 않으려고 할 정도로
실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열심히 운동을
계속했고, 나중에는 명예의 전당에까지 이름이 올랐습니다.
 *우드로 윌슨은 열 살 때까지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마침내 미국의 28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6)
 
    31. 아이의 꿈

 저녁 식사가 끝나자 아이는 혼자서 놀고 아버지 어머니는 자신들이 마치지
못한 일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간이 흐르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일에 열중했습니다. 마침 보름달이 떠서 밝은 달빛이
집안으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어머니의 시선이 시계에 가서 멈추었습니다.
 "얘야, 잠잘 시간이다. 먼저 올라가거라. 엄마가 나중에 따라 올라갈 테니."
 여느 때처럼 아이는 두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에 아이의 잠자리를 확인하러 간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아이는 달빛이 비치는 모습을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얘야, 무슨 일이니?"
 "달을 보고 있어요."
 "이제는 잠을 자야지."
 아이는 잠자리에 들기를 망설이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언젠가는 달을 걸어다닐 거예요."
 이 아이가 바로 나중에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서 온몸의 뼈가 성한
곳이 없었지만 끈질긴 재활 치료를 받아서 결국에는 회복되었고, 32년 뒤에는
전 인류를 대표한 열두 명의 우주 비행사 가운데 한 명이 되어 달 표면을 직접
걸었던 제임스 어윈입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로마서 8:25)
 
    32. 포기를 모르는 사람

 미국 흑인 지도자 말콤 엑스의 전기를 집필하였고 10년에 걸쳐서
"뿌리"라는 저서를 발표해서 전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던 알렉스
헤일리의 고통스런 이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해안 방위대에 입대한 헤일리는 작가가로 입문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는 항해 중에도 타자기를 늘 옆에 끼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히 여러 출판사에 글을 보냈지만 8년 동안
무려 1백 통이 넘는 거절 편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헤일리는 38세에 방위대를 나와서 전업 작가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알아주는 출판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매일 16시간씩 글을 썼지만
소득은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돈까지 모두 써
버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정어리 통조림 몇 개와 18센트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는 39세가 되던 해에 흑인 지도자 말콤 엑스와 인터뷰를 해서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말콤의 자서전까지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1년에 걸쳐서 집필한 그의 자서전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8개 국어로 번역된 그 책은 무려 6백만 부 이상이 팔려
나갔습니다.
 헤일리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서 전해들은 가족사를 책으로
엮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준비 기간을 2,3년 정도로 잡았지만
그것은 그저 예상일 따름이었다. 그는 전국의 도서관과 문서 보관소를 샅샅이
뒤졌고 결국에는 자신의 조상들이 끌려왔던 아프리카까지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 사이 출판사로부터 받은 선금은 물론 빌려 쓴 돈까지 바닥이 났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회의가 찾아 들기 시작했습니다.
 헤일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일에
매달렸습니다. 노예로 끌려온 7대조 할아버지 쿤타 킨테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려고 남아프리카에서 미국까지 가는 화물선을 타고서 10일 동안 밤마다
속옷만 입은 채 밤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 의도한
대로 책을 집필하기까지 그는 비용으로 8천 불을 썼고, 50만 마일을
여행했으며, 또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남들은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는 55세가 되던 해에 헤일리는 "뿌리"를
출판했습니다. 소설은 31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8백만 부 이상이 팔려
나갔습니다. 덕분에 그는 당대의 최고 작가가 되었으며 명예학위만 3백 개를
받았습니다. "뿌리"는 텔레비전 시리즈로도 제작되어 우리나라에까지 방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헤일리는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8세라는 늦은 나이에 작가에
길에 들어서서 55세에 절정에 도달했던 헤일리의 이력은 15년으로
마감되었지만, 그런 그를 두고서 너무 짧은 작가의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전도서 7:8)
 
    33. 최선을 다하라 1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정치가 헨리 키신저가 "백악관의 시절들"(The
White house Years)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한 일화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어느 교수는 학생들에게 그 과제물들을 돌려주었습니다. 그
과제물 밑에는 '이것이 최선을 다한 결과일가?'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과제를
작성했습니다.
 학생들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작성한 자신들의 과제를 교수에게
제출했습니다. 교수의 반응은 똑같았습니다. 과제물에는 여전히 '이것이 최선을
다한 결과인가?' 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교수에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학생들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서관으로
몰려갔습니다.
 그 과정은 이후로도 열 차례나 계속되었습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것입니까?"
 열 번 이상 과제물을 작성했던 학생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결과가 그것입니다."
 교수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내가 읽어보지요."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시편 101:6)
 
    34. 최선을 다하라 2

 해군 제독 하이먼 리커버는 오랫동안 해군을 지휘했습니다. 강직하고 곧은
그의 성품 때문에 사람들은 늘 지지자와 비판자로 갈렸습니다. 그는
핵잠수함의 승무원들을 일일이 면접을 거친 위에야 승선시키기로
유명했습니다. 그와 면접한 군인들은 언제나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위협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역시 오래 전에 리커버 제독의 지휘를 받으면서 핵잠수함에
승선한 적이 있었습니다. 카터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내가 핵잠수함 프로그램에 지원하자 리커버 제독이 그 일에 적합한지 면접을
실시했다. 내가 제독을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커다란 방에
앉아서 두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대화의 주제를 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당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시사 문제, 승무원의 자질, 음악, 문학, 해군 전략, 전자공학,
포격법--을 선택했다.
 제독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그 난이도는 점점 높아갔다. 내가 자신
있게 선택한 분야에 대해서 내가 거의 제대로 아는 게 없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내 눈을 주시했고, 웃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었다.
 그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것을 통해서 그때까지의 실점을
만회하려고 생각했다.
 "해군 사관학교의 성적은 어느 정도였는가?"
 나는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에 이미 조지아 테크 대학교에서 1년을
공부했기 때문에 학업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820명 가운데 59번째였습니다."
 나는 등을 의자에 붙이고서 내게 돌아올 칭찬을 기대했다. 그러나 칭찬 대신
또다른 질문이 날아들었다.
 "자네는 최선을 다했나?"
 "예, 제독님."
 그 순간에 사관학교 시절의 생활이 떠올랐다. 나는 그곳에서 연합국, 적국,
무기, 전략 등에 관해서 조금 더 열심히 익혔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도 그저 단순한 인간일 따름이었다. 나는 결국 침을 삼키고 입을 열고
말았다.
 "아닙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독은 한동안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의자를 돌려 앉으면서 면접을
끝냈다. 그러면서 지금껏 결코 잊은 적이 없는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지?"
 나는 몸을 떨면서 잠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그 방을
나섰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도전서 4:2)
 
    3부 그리스도의 향기

 겸손하면 할수록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할수록 더욱 지혜롭게 되고 더 큰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
 
    35.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지하운동"을 비롯해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루마니아
당국의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선교에 힘쓴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가
부카레스트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범브란트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에 러시아인 교인이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범브란트의 교회는 오로지 루마니아어로만 예배를 진행했지만 그 나이든
교인은 한 번도 교회를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범브란트가 설교하면 그는
러시아어로 된 성경을 펴서 읽었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는 루마니아어를 전혀 모르면서도 예배시간마다 빠짐없이
참석하는 러시아 교인의 믿음 생활이 걱정되었습니다. 하루는 예배가 끝난
뒤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에게 물었습니다.
 "보세요. 나는 당신이 참석하고 있는 교회의 목사입니다. 당신이 읽는
성경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싶으니 아무 곳이나 한군데를 찾아
읽고서 나에게 설명해 보십시오."
 그러자 늙은 러시아 교인은 까맣게 손때 묻은 자신의 성경을 펴서
고린도전서 1장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범브란트 목사에게 막힘 없이
설명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자기는 복음을 심었고 아볼로라는 사람은 물을
주었으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이나 아볼로도 아닌 하나님만이 참된 분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바울도, 아볼로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범브란트 목사님은 어느 정도나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범브란트 목사는 루마니아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믿음까지 걱정스러웠던 이
늙은 교인의 예상치 못할 정도로 깊이 있는 성경 해석을 듣고서 너무 기쁜
나머지 와락 껴안았습니다. 범브란트는 생각했습니다. 언어의 장벽이 은혜를
가로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린도전서 3:7)
 
    36. 나무는 열매가 결정한다.

 존 웨슬리의 부친 새무얼 웨슬리는 링컨셔의 엡워스 교구를 담임한 헌신적인
목회자였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새무얼은 내세울 것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거칠고 사납기로 소문난 교구민들 가운데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새무얼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까지 행패를
부리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새무얼은 부인 수산나와의 사이에 19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빠듯한
교구목사의 수입으로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고, 때문에 언제나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새무얼의 가족은 늘 화목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무얼의 가정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위기가 몰아닥쳤습니다.
1709년 2월 9일 한밤중이었습니다. 새무얼을 싫어하는 교구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불이 새무얼의 사택에 일어났습니다. 15분만에 집은
물론 가구와 의복, 책 그리고 사무엘이 평소에 집필했던 원고까지 모두 불에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불길을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어린
존을 두 명의 이웃이 가까스로 구해 내자 새무얼이 말했습니다.
 "동네 여러분, 어서 이리들 오십시오. 우리 모두 무릎을 꿇읍시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모두 살려주셨습니다. 집이 완전히 불에
타 버렸지만, 이 아이들만 있으면 나는 부자입니다."
 새무얼 웨슬리가 엡워스에서 40년 동안 봉사하며 남긴 목사로서의 업적은
겉으로 보기에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형제에게로 이어진 새무얼의 믿음은 전세계를 변화시켰고,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린도후서 4:16)
 
    37. 함께만 하면

 1893년 12월 4일 카나다 토론토 출신으로 선교회(SIM)를 창립한 월터
고언즈와 로랜드 빙햄, 그리고 뉴욕주 버팔로 출신의 토머스 켄트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니거 강과 강 사이에
위치한 사하라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6백만 수단 사람들 사이에 전도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고언즈와 켄트는 기후와 풍토병을 견디지 못하고서 그곳에 도착한 지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로랜드 빙햄은 어쩔 수
없이 카나다로 돌아갔지만 그곳에서 다시 선교협의회를 조직해서 1900년에
아프리카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노력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로랜드 빙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빙햄이 1901년에 파송한
선교진이 니거 강으로부터 804km 떨어진 파티기에 선교 본부를 차리는 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로 선교사들은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서 활발한 선교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선교회(SIM)가 최초의 선교사들을 나이지리아에
파송했을 때 고언즈는 스물 다섯 살, 빙햄은 스물 한 번째 생일을 보낸 지
불과 2주가 지난 다음이었고, 켄트는 스물 세 살이었습니다.
 그 세 사람이 수단 지역 선교사를 자청했던 이유는 몸집이 아주 작은 어느
스코틀랜드 출신 부인의 간절한 호소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조용한 거실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딸을 중국으로, 그리고 맏아들(월터 고언즈)을 아프리카의
수단으로 부르신 과정을 상세히 털어놓았습니다.
 로랜드 빙햄은 그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수백만 킬로미터의 거리와 그곳에 사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내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마치고 나서 수단이라는 짐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이 아프리카로 떠난 지 1년 반 뒤에 빙햄만이 혼자서 카나다로
돌아왔습니다. 월터 고언즈와 토머스 켄트는 나이지리아의 내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나는 고언즈 부인에게 아들의 유품 몇 가지를 가져다 드리려고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두 팔을 벌리고서 나를 맞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이 말했습니다. '빙햄씨, 만일
내가 아들 월터만 혼자 수단으로 보내서 죽게 하려고 했다면 그 아이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집을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로랜드 빙햄은 고언즈 부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커다란 감명을 받고 새롭게
힘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수단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 20)
  
    38. 회개

 17세기의 존 엘리엇은 뉴잉글랜드의 족장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노인은
말씀을 따라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엘리엇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 땅에서 27년간 함께 살아온 당신들은 어째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지 않은 거요. 당신들이 보다 일찍 하나님에 관해서
알려주었다면 우리는 많은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오. 당신이 보다시피 지금
우리는 죄 가운데서 이렇게 늙어 버렸소."
 엘리엇은 노인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일찍 전도하지 않은 것을 회개합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베드로전서 3:15)
 
    39. 은퇴는 없다

 로버트 제프리 박사는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두
손에 피를 묻힌 채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손에는 피가 흥건했습니다. 피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좇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집밖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집 주변에는 마침 흰눈이 쌓여
있었고, 그는 눈으로 손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 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손을
닦다가 두려워 들어서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뛰었습니다.
 악몽에서 깨어난 제프리는 어째서 자신이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꿈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한 까닭을 알 수
없던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이 꿈은 무슨 뜻입니까? 저는 당신이 두렵지 않고 당신에게서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제 손에는 핏자국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보혈로 눈보다 더 희게 깨끗해졌습니다."
 로버트 제프리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카나다 신문사 사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경제적으로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귀족의 품위를
갖춘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여느 사람과는 다른 삶을 선택했습니다.
극동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청년기를 보냈으며, 장년이
되어서는 미주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 동분서주했습니다.
 한참을 기도하던 제프리에게 어느 순간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향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겔 3:20)
 그때 자신이 미루어 둔 일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은퇴할 나이가 되어
포기하려 했던 보르네오와 세레베스 지역의 전도였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은퇴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시기에 그는 다시 가방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임이로라(고린도전서 9:16)
 
    40. 내가 아니면 자식이라도

 중국 내지 선교회를 만든 허드슨 테일러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은 그레이튼
기니스 부부가 있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설교를 듣고 두 사람은 미전도
지역으로 가서 평생 선교에 헌신할 각오를 했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허락하지
않자 선교자로서의 꿈을 접는 대신 런던의 빈민가에서 선교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열심히 감당했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여러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윗필드가 14세에
세례를 받고 나서 부모처럼 선교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윗필드는 의사가 되어
중국에서 선교할 생각으로 부지런히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가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갑자기 닥친 어려움 때문에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헤어지고 어머니만
남게 되었습니다. 윗필드는 자신의 생각을 근본부터 다시 점검했습니다.
홀로된 어머니를 영국에 남겨 둔 채 자신이 중국에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그에게 선교사의 길을 가도록 재촉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어머니만 홀로 두고 그렇게 먼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겠느냐? 나는 너희 모두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단다. 너는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윗필드는 그런 어머니의 소원대로 중국 내지 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중국의
호난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은 인구가 3천 5백만 명에 달했지만 주민들 가운데
기독교 전도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는 호난에서 27년 동안 봉사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0:15)
 
    41. 귀중한 선물

 스탠포드 켈리가 흑인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독립했지만 국토의 75퍼센트가
산지인 탓에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아이티에서 전도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교회 모두가 추수감사절로 기분이 들떠있었습니다.
교인들은 모두 특별헌금을 준비해서 추수 감사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어느
소년도 역시 헌금을 마련하고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가 모두 끝나고 난 뒤에 헌금을 정리하던 집사들은 평소보다 엄청나게
많은 헌금액에 놀랐습니다. 대개의 헌금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유독
누군가 바친 헌금의 액수가 많았습니다. 집사들이 수소문한 결과 그 헌금은
소년이 바친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은 추수감사절 축하 잔치에 소년이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이 소년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소년에게 어떻게 그토록 많은
특별헌금을 할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돈은
말을 판 가격이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또다시 추수감사절 축하 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입고 갈 옷이 없었거든요."
 고국으로 돌아온 스탠포드 켈리는 여러 교회들을 돌아다니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소년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그가 한 교회에서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자 잘 차려입은 어느 부인이 손가방에서 돈을 꺼내면서 말했습니다.
 "이 돈으로 아이티에 살고 있는 그 아이에게 옷을 사입히시죠."
 그러자 켈리는 정색을 하면서 부인에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그 소년 이야기를 말씀드린 것은 옷값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소년의 헌금이 귀했던 것처럼 당신도 하나님을 위해서
귀중한 선물을 드리라는 뜻이었습니다."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고린도후서 8:24)
 
    42. 선교사 답지 않은 선교사

 중궁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어느 교회에 강사로
초대받았습니다. 선교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는 그를
별로 내켜하지 않는 사내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강사가 입은 갈색 비단
양복이 구겨져서 초라하게 보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자 강사의 목소리는 작고 가냘펐으며 몸은 허약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선교사는 중국에서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손수건으로 자주
입을 닦아 냈습니다. 사내는 그런 강사의 모습 때문에 남자 답지 못한
선교사라고 단정을 내렸습니다.
 이윽고 모임이 모두 끝나자 사내는 선교사에게 도전적으로 다가가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것들에 관해서 따져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어째서 그렇게 약해 보이십니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선교사님의 복장이나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전혀 선교사처럼 보이지
않는군요."
 그러자 선교사가 이야기했습니다.
 "아, 이 양복 말입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중국에서 25년 사역을 하느라 제가
떠날 때에는 양복이 낡아서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봉사하는 마을의
신자들이 모은 돈으로 비단을 사서 내게 양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는 재봉틀이 없어서 일일이 꿰매서 만들어 주었습니다."
 선교사는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연신 손수건으로 입을 닦아 냈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사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선교사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제 목소리가 이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폭행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전  도를 할 때 깡패들을 만났는데 그 중 한 명이 제
목을 누르는 바람에 후두가 완전히 망가져서 타액선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만을 가지고서 선교사에게 따져 들었던 사내는 사연을 알게 되자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서만 선교사를
평가했던 사내는 더듬더듬 그에게 사과하고서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사내는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자신의 행동을 크게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헌신적인 선교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실천했습니다.
그런 그 사내의 모습 때문에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역시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예레미아 20:9)
 
    43. 웨슬리의 믿음

 프랑스에서 일어난 피의 대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존 웨슬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역사학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웨슬리가
자신의 동생 찰스 웨슬리와 더불어 신앙운동을 벌이던 시절에는 그런 그의
사역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성직자들은 존 웨슬리를
이단으로 간주했으며 교회 밖으로 내쫓기까지 했습니다.
 그에 대한 온갖 좋지 못한 소문들이 떠돌았고 온갖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물론 사회와 교회의 지도층에서는 그를 반대하는
책과 전단들을 뿌렸습니다. 폭도들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그것들을 지극히 정상으로 받아들였으며
자신이 하나님을 순종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루는 존 웨슬리가 말을 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길을 가다가
사흘 동안 한 번도 자신에게 핍박이 가해지지 않은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사흘 간 그 누구도 벽돌이나 계란을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서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자신이
죄를 짓고 타락해서 박해가 주어지지 않은 것인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만일 자신이 잘못한 게 있으면 알려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마침 길 건너편에 있는 울타리 한쪽 끝에서 어느 사내가 그 기도 소리를
듣고서 존 웨슬리를 알아보았습니다.
 "잘 됐어. 저 감리교 목사를 이번 기회에 단단히 손을 봐주고 말겠어."
 그리고는 벽돌 하나를 집어들고서 웨슬리를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고약한
사내가 던진 벽돌은 다행히 웨슬리를 살짝 비켜서 날아갔습니다. 그러자
웨슬리는 그 사내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크게 기뻐하며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괜찮았군요. 제가 아직도 당신의 임재 가운데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편 16:8)
 
    44. 코리 텐 붐의 용서

 얼마 전에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피난처"의 저자 코리 텐 붐 여사는
유대인들을 구출하는 데 참여했다는 죄목으로 나치가 세운 라벤스부르크 집단
수용소에서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녀는 네덜란드
사람이었습니다. 마흔이 넘은 여자에게 나치는 목욕 시간이 되면 나치 전위대
경비병 앞에서 발가벗은 채 순서를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경비병들은 그런
그녀를 비롯해서 다른 여자 죄수들을 잔인하고 조롱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을 도우려다 죄인의 신세가 된 코리 텐 붐은 그
수모를 견디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녀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떠올렸습니다.
자신처럼 발가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려서 모든 사람의 멸시를 온몸으로
견디어 내신 그리스도 예수를 떠올리자 코리 텐 붐의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목욕을 할 때마다 겪어야 하는 경비병들의 싸늘한 눈길은 더 이상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이미 거치신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코리 텐 붐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집필했던 "피난처"라는 저서가
영화로 제작되자 누군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코리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책과 영화에서 하나님이 하셨던 일이 굉장하지
않으세요?"
 그러자 코리 텐 붐이 대답했습니다.
 "맞아요. 대단하시지요. 하지만 나는 그저 내가 죄수번호 66730을 달고 있던
한 명의 죄수였을 뿐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런 코리 텐 붐은 수용소 생활을 끝내게 되자 하나님께 독일을 제외한 어느
곳이든지 가서 일을 하겠노라고 서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에게
독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그녀 자신 뿐만이 아니라
독일인들의 치유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코리가 독일의 어느 강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강단을
향해서 걸어나왔습니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갇혀 있던 수용소를 관리하던 교도관들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사내는
코리에게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침묵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 사람과 동료들이 제
여동생을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한으로
응어리진 그녀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나를 위해서 저 사람을 용서해 주어라."
 코리는 손을 내밀어 사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용서의 말을 사내에게 건넸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로마서 12:17)
 
    45. 코리 텐 붐의 하나님

 코리 텐 붐은 나치 수용소에서 4개월 간 독방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침침한 바닥에는 더러운 물이 고여 있었고 옆방에서 다른 죄수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 올 때는 마치 자신이 고문을 받는 것처럼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녀는 그때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한번은 벽에 등을 기대고서 마치 나를 짓누르는 벽을 밀어내기라도 하듯이
손을 뻗쳤습니다. 그리고는 공포에 질려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 견딜 수
없어요. 이제는 믿음도 없습니다.'"
 코리가 자신의 연약한 믿음을 고백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상한 방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가 갑자기 코리의 눈에 띄었습니다.
개미는 걸음을 옮기다 물이 있는 것을 보자 순식간에 벽에 난 조그만 구멍으로
달려들어갔습니다.
 "그때 마치 주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 개미를
보아라. 바닥에 물이 있는 것을 보고 숨을 곳으로 달려가지 않느냐. 코리, 너의
약한 믿음을 보지 말아라. 내가 너의 피난처이다. 저 개미와 같이 나에게로
달려오너라.'"
 그녀는 그 일을 통해서 용기를 회복했으며, 결국에는 수용소 생활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코리는 33년 동안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고난과 기쁨에 관해서 증거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는 집이 없었습니다. 8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호화로운
집이었습니다. 영화 감독 친구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면서
말했습니다.
 "코리, 이렇게 좋은 집을 주시다니 하나님은 좋은 분이 아니오?"
 그러자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수용소에 있을 때도 좋은 분이셨지요."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시편 91:9)
 
    46. 그리스도인의 향기

 소련이 해체되지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젊은 목사가 채 복음을 전해
보지도 못하고 14년 동안이나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교도소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교도소에 자신의 목회지로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교도소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를 찾아냈습니다.
젊은 목사가 복음을 전하려고 대상자로 선택한 그 사람은 살인자였는데, 너무
잔인해서 교도소의 간수들까지도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교도소에서는 하루 12시간씩의 노동을 의무적으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목사는 그를 위해서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서 교도소의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계속해서 힘겨운 중노동을 해야
했지만 그는 살인자의 구원을 위해서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다른 죄수들이
노동에 지쳐서 곯아떨어졌을 때도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살인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언젠가 젊은 목사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눈물을 흘려 가며 기도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뒤에 서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가 돌아서자 살인을
범했던 죄수가 노려보면서 물었습니다.
 "당신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젊은 목사가 대답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이오."
 "무엇을 위해 기도하지?"
 그는 눈물을 닦으면서 다시 대답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소."
 살인자는 그 말 한 마디에 가슴이 녹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의
변화는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즉시 교도소 전체로 퍼졌습니다. 결국에는
교도소 소장의 귀까지 그 일이 드리어갔고, 그는 사정을 파악하려고 젊은
목사를 호출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저 나는 그를 위해서 기도를 했을
뿐이고 그를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좋소, 나는 신 따위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소. 그렇지만
내가 목격한 이런 변화는 환영이오. 그러니 당신은 그 살인자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좀 더
일이 쉬운 식당에서 일하도록 하시오."
 그 교도소는 소련에서 두 번째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지만 젊은 목사 때문에
얼마 뒤에는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면서 교도소는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교도소 당국도 젊은
목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 젊은 목사는 소련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로 보내졌습니다.
당국은 그에게 만일 그곳에서도 이전처럼 똑같은 변화가 일어나면 일찍
출옥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목사는 아내에게 고통스러운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결정을 이해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는 그때 자신이 교도소에서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교도소
당국의 석방 지시를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린도후서 2:15)
 
    47. 용서하는 삶

 앙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앙리코는 건축업자였습니다. 그는 어느 늦은 밤에 밖으로 나가서 자신이
목재를 쌓아 둔 뜰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트럭이 멈추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개의 그림자가 목재가 있는 곳으로 접근했습니다.
앙리코는 잠시 걸음을 멈춘 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이럴 때 저는 어찌 해야 합니까?"
 그러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몰래 트럭에 목재를 나르고 있는
사내들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분주히 목재를 나르는 사내들을 아무 말
없이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앙리코가
사내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목재들을 어디에 사용하려고 하는 겁니까?"
 사내들이 목재의 용도를 이야기하자 앙리코는 다른 목재더미를 가리키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습니다.'
 "그런 용도라면 저쪽에 있는 나무들이 더 좋겠군요."
 트럭에 목재들이 가득 차자 사내 하나가 앙리코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자네는 훌륭한 도둑이야!"
 "이런, 나는 도둑이 아니오."
 앙리코의 부인에 사내는 코방귀를 뀌었습니다.
 "자네가 도둑이 아니라니? 자네는 지금까지 이 한밤중에 우리를 도와주었지
않나.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말일세."
 "그렇소. 나는 당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소. 그렇지만 나는
도둑이 아니오. 당신이 보시다시피 이곳은 내 땅이고 이 목재들은 모두 내
것이기 때문에 나는 도둑이 아니올시다."
 그러자 두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랬습니다. 둘은 앙리코를 피해서 줄행랑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앙리코가 사내들의 앞을 급히 가로 막으며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목격했지만 경찰을
부르지 않기로 결심했소. 당신들은 어떻게 사는 게 바른 삶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내가 당신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싶소. 당신들은 저 목재를
가져가도 좋고. 하지만 당신들은 먼저 내가 하려는 말을 잘 듣기 바라오."
 그는 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앙리코에게 복음을 전해들은 두
사람은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회심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나중에 목사가 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앙리코가
용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언 24:29)
 
    48. 하나님은 계시다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동독 당국은 학생들의
기독교 신앙을 깨뜨리려는 정책을 집요하게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가령,
교사는 학생들에게 책상에 엎드려 하나님께 사탕을 달라고 기도하게 합니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사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여러분 이제 알았죠?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정부에 사탕을
달라고 구해 봅시다."
 그리고 나서 교사는 정부를 대신해서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사탕을
나누어줍니다. 하루는 그 교사가 학생들을 모두 일어서게 하고서 자신이 하는
말을 따라 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
 학생 하나가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요."
 나이 어린 여자아이가 자신의 말을 거부하자 교사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교사는 어린 학생을 본보기로 삼기로 결심했습니다.
 "너 오늘 집에 가서 '하나님은 없다.'라는 말을 50번 써 오거나."
 아이는 집에 돌아가서 부모와 이 문제를 놓고서 기도한 뒤에 '하나님은
있습니다.'라는 글을 50번 썼습니다.
 다음 날 학생이 써 온 종이를 확인한 교사는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하나님은 없다.'라고 70번 써 오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네 부모는 심각한 일을 당할 거다."
 아이는 이번에도 부모와 기도하고 난 뒤에 '하나님은 분명히 있습니다.'라고
70번을 써 가지고 학교에 왔습니다.
 교사는 어린 학생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교사는 얼굴을 붉히며 마지막으로 경고했습니다.
 "내일 학교에 올 때 '하나님은 절대 없다'라고 100번을 써 가지고 오너라.
만일 이렇게 계속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경찰서에 가서 너와 네 부모를 신고할
테다. 그렇게 되면 너와 네 부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거다."
 소녀와 교사 사이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둘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그 사건을 알게 되었고 그 일이 어떻게 전개될 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린 소녀의 부모는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고
있었지만 고난을 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소녀는 다시 '하나님은
절대 있다.'라고 100번을 썼습니다. 다음 날 소녀가 적어 온 것을 본 교사는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습니다.
 "좋다. 경찰에 가서 너를 고발하면 하나님이 너를 돕는지 어디 두고 보자."
 교사는 운동장으로 가서 자전거를 타고 정문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사가 갑자기 자전거에서 나가 떨어졌습니다. 교사는
심장마비를 일으켰습니다. 그 광경을 교실 창문을 통해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이미 숨이 끊어진 선생님의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한 아이가 크게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있다."
 그러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나머지 아이들이 함께 따라 했습니다.
 "절대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편 14:1)
 
    49. 걸식 전도

 인도에서 일하던 영국인 관리 프레드릭 터커가 우연히 구세군 신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이었지만
인도인들 모두가 구원받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그 방법을 찾으려
기도하던 차에 구세군 신문을 접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신문을 읽고서
구세군식 전도방법이 인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을 굳혔습니다.
 관리는 곧 휴가를 얻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구세군 대장 윌리엄 부스를
만났습니다. 처음에 부스는 그 관리의 열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구세군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희생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리는 인도로 돌아가서 정부에 사직서를 내고 다시 부스를
찾아와서 선교사가 되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열심히 아니라 재정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구세군으로서는 인도에까지 선교사를 파송할만한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은 구걸하면서 다닐 생각입니다."
 부스는 터커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세 명의 영국인들과
함께 인도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돈 한푼 지원 받지 못하고
전도에 뛰어든 그들은 자신들이 종교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인도인들이
입는 긴 옷에 특별히 물감을 먹여서 입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밥그릇을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어먹고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프레드릭 터커와 함께 근무했던 영국인 동료 관리들이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터커의 행동은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재정이 부족해서 걸식을 하면서 전도하는 터커의 일행은
영국인들의 품위와 위신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한 관리들에 의해서 체포되어 한
달 동안 갇히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터커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인도인들이
발행하는 신문사들이 그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영국인 관리들의 처사에
항의하는 현지인들의 집회가 줄을 이었습니다. 결국 총독도 자유롭게 풀어
주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렇게 구세군은 터커의 걸식 선교 덕분에 인도 대륙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시편 62:5)
 
    50. 40인의 병사들

 유명한 로마제국 12군단에 소속된 40명의 그리스도인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군단장이 그들에게 황제의 명령을 전달했습니다. 황제 리키리우스는
모든 군인들에게 이교도 신들에게 제사하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병사들은 황제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군단장에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갑옷과 투구 그리고 우리의 몸까지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당신은 절대 그것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320년 겨울의 일이었습니다. 군단장은 40명의 병사들을 얼어붙은 호수로
행진하게 했습니다. 그는 병사들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살든지 아니면 옷을
벗고 죽든지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병사들은 스스로 복장을 풀고 얼음
위로 걸어갔습니다.
 병사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얼음 위에서 추위를 견뎠습니다. 그들은 밤새
서로 부둥켜안은 채 찬양을 불렀습니다. 매서운 추위에 병사들은 체온이
급속히 떨어졌습니다. 병사들은 서로 격려했지만 추위 때문에 차례차례 목숨을
잃어 갔습니다. 결국 한 명만이 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병사는
다른 병사들의 죽음을 보고서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호수 가로 나와서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다.
 바로 그때 병사들을 남아서 끝까지 감시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장교가
있었습니다. 장교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다가 마지막 병사가 그리스도를
부인하자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서 재빨리 옷을 벗고 얼음 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떠나 버린 그 병사의 자리를 찾아가서 앉았습니다.
다시 40명이 채워졌습니다.
 아침이 되자 밝은 햇빛이 호수를 비추었습니다. 그러나 40명의 병사들은
이미 얼음 위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이 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시록
2:10)
 
    51. 초청

 빌리 그레이험이 노바 스코티아의 헬릭스에서 열리는 전도대회 강사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빌리 그레이험은 일정을 하루 앞당겨서 그곳에 미리
도착했습니다. 전도대회는 이미 시작되었고, 대회가 열리는 장소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빌리 그레이험은 모자와 검은 안경을 착용하고서 한창 대회가 진행 중인
장소의 뒤쪽 잔디밭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대회 강사가 설교를 끝내고 참석자들을 상대로 결단의 초청을
하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빌리 그레이험은 그 시간을 이용해서 개인전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빌리 그레이험이 설교자의 초대에 열심히 귀기울이는 것처럼 보이는 앞에
앉은 노신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혹시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신다면 선생님과 함께
앞으로 나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노신사는 빌리 그레이험을 위 아래로 훑고 난 뒤에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정색을 하며 빌리 그레이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일 빌리 그레이험 목사님이 초청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린도전서 3:21)
 
    52. 전도지 한 장

 인도의 캘커타 시내에 어느 여자 선교사가 택시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창밖을 구경하던 선교사에게 네 명의 청소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옷차림은
물론 얼핏 보기에도 행동이 거친 청소년들이었습니다. 그녀에게 갑자기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차를
내리는 것은 아주 위험스런 행동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자신이 지니고 다니는 핸드백을 뒤져보았지만 전도지 한 장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고 전도지를 둘둘 말아서 밖으로
던졌습니다. 전도지는 청소년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서 떨어졌습니다. 마침
그것을 암비라는 청소년이 집어들었습니다.
 본디 암비는 자신들의 문자 언어가 없는 소수 부족 출신이었지만 캘커타에서
지내면서 영어를 읽고 쓰게 되었습니다. 암비는 선교사가 던져 준 전도지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결국에는 대학에 들어가서 중세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을 마친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속한 부족의 문자 언어를 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언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국제성서공회(LBI)는 30개 국가로부터 헌금을 모아서 암비가 번역한
신약성경을 출판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암비는 그 돈으로 1만 부의
성경을 찍어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 모두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선교사가 차창 밖으로 던진 바로 그 전도지
한 장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브리서4:12)
 
    53. 대적하지 말라

 18세기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조나단
웨드워즈는 예일대 출신으로 초기 미국 신학을 대표하였습니다. 인격이 바탕이
된 그의 설교는 단조로웠지만 회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정도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에드워즈의 영적 지도력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에드워즈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어느 사내가 그의 사역을 방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에드워즈에 대해서 악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나쁜
소문을 퍼뜨려서 에드워즈의 명성을 깎아 내리고 품위를 손상시킬
생각이었습니다. 사내가 퍼뜨린 소문이 입빠른 몇몇 사이에서 오르내리다가
결국 마을 전체로 번져 나갔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이 교회 지도자들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직접 에드워즈를 찾아와서 소문의 진상을 밝히도록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자신을 방어할 목적으로는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노라고 고집을 세웠습니다.
 소문이 계속 번져 나가자 에드워즈의 친구가 더 이상 참다 못해서 그를
찾아와서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네 어쩐 일인가? 자네를 비난하는 소문에 대해서 해명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건가?"
 에드워즈가 대답했습니다.
 "하고 싶지. 굉장히 하고 싶다네."
 친구가 간곡히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이라도 하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신원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는가? 나는 내가
직접 신원하기보다는 하나님이 하시기를 원하네. 내가 나를 변호하겠다고 해도
하나님은 허락하실 걸세. 그러나 내가 잠자코 있다면 하나님을 나를
변호하시려고 하늘과 땅을 움직이실 걸세. 하나님의 신원이 나의 것보다는
훨씬 더 낫겠지."
 에드워즈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문을 퍼뜨렸던 사내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에드워즈가 전혀 반발을 보이지 않자
이중으로 양심이 찔려서 회중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이사야 49:4)
 
    54. 외모

 1884년 어느 젊은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꽃다운 아들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던 부모는 그를 기념하는 건물을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부는 그 일
때문에 당시 하버드 대학교 총장으로 있던 찰스 엘리엇을 만나기로 미리
예약을 히 두었습니다.
 약속 시간이 되어 수수한 차림의 부부가 총장실에 들어서자 엘리엇은
의례적으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부부가 엘리엇 총장에게 아들을
위해서 기금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는 순간 엘리엇이 그들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습니다.
 "혹시 아드님을 기념하는 장학금을 생각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그러자 부인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보다 좀 더 구체적인 것, 즉 건물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엘리엇은 짐짓 걱정하는 투로 말했습니다.
 "건물을 세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니 수준에 맞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엘리엇의 생각을 확인한 부부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난 뒤에 아무 말없이
총장실 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나자 엘리엇으로 하여금
책상을 치면서 크게 후회하게 만든 소식이 총장실에 날아들었습니다.
 한 해 전에 아들을 기념할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서 하버드 대학교
총장을 찾아와서 의논했던 그 노부부는 리랜드 스탠포드 주니어 대학교 캠퍼스
안에다가 자신들의 생각을 실천했습니다. 그 기념관 건립에 소요된 비용이
무려 2천 6백만 불이었습니다. 그 학교는 오늘날 스탠포드 대학교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야고보서 2:1)
 
    4부 가슴에 계신 주님

 그리스도면,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그분으로 충분하다. 그분은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고 따라서 그분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오늘 우리를 위하다가도 내일에는 등돌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바람만큼이나 변화가 심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원히 성실하시다.
 토마스 아 캠피스
 
    55. 말이 아닌 행동으로

 D.L. 무디가 효과적인 대중 전도라는 주제의 토론을 위해서 개최되는
전국적인 규모의 회의에 참석자 인디애나폴리스를 방문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그곳에 도착한 무디는 늘 그렇듯이 복음성가 인도자인
아이라 생키와 함께 거리로 나가서 노방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무디는
생키에게 먼저 상자 위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도록 요청했습니다. 생키가
노래를 시작하자 거리를 오가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이번에는 무디가 상자에 올라가서 간단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서
그들 모두를 대회가 열리는 가까운 장소로 초대했습니다.
 대중 전도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기 위해서 전국에서 파송된 대표자들이
모이기로 예정된 장소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디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들
들으려고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무디는 그들 앞에 나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회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이름표를 붙인 참석자들이 하나
둘씩 강당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회의 참석자들은 적잖이 당혹스러웠습니다. 효과적인 전도 방법에 관해 서로
토론을 벌이기 위해서 먼 거리도 마다 않고 달려온 그들의 자리는 이미
인디애나폴리스 지역 주민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석자들의 모습을
본 무디가 갑자기 설교를 멈추고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모임을 끝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대중에게 접근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기 위해서 우리 형제들이 멀리서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회의 참석자들은 그날 저녁 무디의 도발적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
3:18)
 
    56. 교회를 망치는 지름길

 *교회나 교회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 굳이 참석해야 한다면
늦게 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씨에는 집에서 쉰다. 다른 사람이 갈 테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할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그대로 실천한다.
 *헌금이나 십일조를 절대 드리지 않는다. 나머지 사람들이 낼 테니까.
 *사람들을 만나도 먼저 웃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아는 체를 할
테니까. 그리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교회 분위기가 너무 차가운 것 같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절대로 교회의 일을 맡지 않는다.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열심히
비난한다.
 *위원회에 배치되지 않더라도 겉으로는 여유있는 표정을 지으며 전혀
속상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위원회에 배치되면 이유를 달지 않고 더 이상 참석하지 않는다.
 *이것저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을 경우에 할 말이 없으면 납작 엎드린다.
 *그렇지만 모임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처리했어야 했는지 사람들에게
유창하게 이야기한다.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하려 들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할 일을 맡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일어나서 외친다. "저들이
작당을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안 해도 될 일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이 그 일을 같이 하자고 권하면 언제나 그렇듯이 슬쩍
빠져나간다. 내가 아니더라도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늘 있는 법이니까.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린도전서 12:27)
 
    57. 예배에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이유

 찬송가 작곡가인 프랜시스 해버걸은 날씨가 궂은 날 교회에 참석해야 할
8가지 이유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주일을 축복하신다. 태풍이 불어도 예외는 아니다.
 *목사가 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궂은 날씨 때문에 그가 집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커다란 도움이 되는 기도와 설교를 놓칠 수 없다.
 *중요한 사업이라면 비가 와도 집에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쁜 날씨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드러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다.
 *궂은 날씨 때문에 교회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화창한 주일도 역시
놓치고 말 것이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8:20)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어느 정도의 주일을 허락하실지 알지 못한다.
지상에서 마지막 주일을 등한히 하는 것은 하늘에서 맞이할 첫 주일을 절대로
준비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
 
    58. 진짜 믿음

 프랑소와 페넬롱은 루이 14세의 궁정 설교자였습니다. 어느 주일에 국왕과
수행원들이 예배에 참석하러 교회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설교자를 제외하고
예배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루이 14세가 페넬롱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오?"
 그러자 페넬롱이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오늘 폐하께서 예배에 참석하시지 않는다고 미리 발표했었습니다.
폐하께옵서 누가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고 또 누가 폐하께 아첨을 하고
있는지 직접 보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에스겔
33:31)
 
    59. 농부의 감사

 커다란 도시에서 학문을 어느 정도 닦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이 시골에
사는 농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새벽부터 종일 부지런히 밭에
나가서 일했고, 도시 사람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농부는 고된 하루를 마친 뒤에 도시 사람과 식탁을 마주했습니다. 농부는
준비된 음식을 들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경건하게
올렸습니다.
 그러자 도시 사람이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루 종일 밭에서 직접 수고해서 먹을 것을 마련했는데 어째서
그렇게 기도를 하는 겁니까? 당신이 이 정도의 생활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기도를 해야 하는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농부가 도시 사람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내 농장에는 당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게 있소."
 도시 사람은 그게 누구인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돼지라오. 주인인 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이를 가져다주어도 돼지라는
짐승은 당연하게 생각할 뿐 전혀 감사를 모르지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로새서 3:17)
 
    60. 악마의 전략

 악마 대장이 작은 악마들을 불러서 시험을 치르게 했습니다. 그 시험을
통과하면 작은 악마들은 어엿한 신분으로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자랑스러운 일을 하게 될 터였습니다. 악마 대장이 부하들에게 어떤
기술로 사람들이 죄를 짓게 만들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작은 악마가 말했습니다.
 "저는 아주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할까 합니다. 사람들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니 마음껏 죄를 지으며 인생을 즐기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두 번째 작은 악마가 말했습니다.
 "저는 조금 더 교묘한 방법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지옥은 없으니 마음껏 죄를 지으며 인생을 즐기라."
 끝으로 세 번째 작은 악마가 말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지적인 방법을 활용할 생각입니다. 사람들에게 서두를 것이
없으니 마음껏 죄를 지으며 인생을 즐기라고 말입니다."
 작은 악마들의 전략을 다 듣고 난 악마 대장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잠언 24:33)
 
    61. 감사하는 믿음

 믿음 좋은 랍비 모세가 먼 나라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랍비 모세는
당나귀와 수탉 한 마리 그리고 등을 하나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의 여관 주인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방을 내주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숲에서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는 듯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잘 하시는 일이야."
 랍비 모세는 잠을 자기 전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 등에 불을 붙였지만 그만
바람이 세게 불어서 등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성경을 치우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잘 하시는 일이야."
 그런데 밤중에 들짐승이 몰래 수탉을 물고 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둑들이 당나귀마저 훔쳐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모세는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줄 알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잘 하시는 일이야."
 랍비는 잠자리를 수습하고 여관에 묵기 위해 다시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간밤에 마을에는 군사들이 쳐들어와서
주민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병사들이 랍비
모세가 잠을 자던 그 숲을 지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등이 깨지지 않았더라면 병사들에게 발각되었을 것이고, 수탉이
짐승에게 물려 가지 않거나 도둑들이 당나귀를 끌어가지 않았더라면 그
울음소리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것까지 생각이 미친
랍비 모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잘 하시는 일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62. 행동이 말한다

 악마가 자신의 충직한 심부름꾼 가운데 하나를 불러서 임무를 맡겼습니다.
 "너는 저 마을로 내려가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믿게끔 설득하도록
허여라."
 악마의 심부름꾼은 명령대로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마을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아주 유심히 관찰하였습니다. 그가 보니
마을 사람들은 온종일 싸움을 하고, 죽이고, 거짓을 말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심부름꾼은 마을의 상황을 살피고 나서 주인에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심부름꾼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오자 악마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그렇게 빨리 믿게
만들었느냐?"

 악마의 심부름꾼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것과 똑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활 그 자체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태복음 23:26)
 
    63. 가슴에 계신 주님

 광야에서 홀로 지내면서 믿음을 닦던 어느 은둔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말로는 모두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끔찍한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참다 못해서 주님에게 가냘픈 목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발 저를 도와주소서."
 그러자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이미 네 안에 들어와 있다. 지금 나는 제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있느니라."
 은둔자가 미심쩍은 듯 다시 물었습니다.
 "만일 주님이 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계시다면 제 가슴이 여전히
아픈 까닭은 무엇 때문입니까?"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잊고 있었구나. 내 머리에는 가시관이 씌워져 있느니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64. 예배의 본뜻

 헤르메스는 설교를 잘 하기로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이 꽤 높았습니다. 그가
설교단에 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였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헤르메스의 말 한 마디
한마디, 몸짓 하나 하나를 마치 금쪽이나 되는 듯이 받들었습니다.
 하루는 헤르메스가 막 설교를 시작하려는 순간 아이 하나가 시끄럽게
울어댔습니다. 엄마가 급히 아이를 달랬습니다. 겨우 아이를 달래 놓고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또다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교회 안에 있던 아이들이 덩달아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온
교회가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헤르메스는 참다 못해서 아이들을 모두 교회 밖으로 데리고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엄마들은 헤르메스의 그 말에 정신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교회 마당에 아이들을 풀어놓았습니다. 아이들이 노느라 정신이 없는 틈에
그들은 헤르메스의 설교를 들으려고 다시 교회를 들어갔습니다.
 정상적으로 설교를 하게 된 헤르메스는 조용한 교회 안을 둘러보면서 달변을
토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한창 설교가 진행되고 있는데 마당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시끄럽게 웃어대는 바람에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헤르메스는 마당 쪽으로 급히 걸음을
옮기면서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아이들과 노닥거리는 자가 누구든지 간에 혼쭐을 내주고야 말겠다."
 그러나 마당에 들어선 헤르메스는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교회 밖으로 내쫓은 아이들을 다름 아닌 주님께서 함께 놀아 주고
계신 까닭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16)
 
    65. 이미 받은 응답

 먹을 것이 모두 떨어진 거지가 두 눈을 감고서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먹을 것이 없습니다. 빵을 살 수 있는 돈을 주옵소서. 너무 배가
고픕니다."
 거지는 점심때가 지났지만 그 기도를 계속 반복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이슥해져도 거지는 기도를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먹을 것이 없습니다. 빵을 살 수 있는 돈을 주옵소서. 너무 배가
고픕니다."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던 거지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미 네 기도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하나님, 제게는 아직 돈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눈을 뜬 적이 없으니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느냐?"
 그 말씀에 거지가 눈을 떴습니다. 자신의 앞에 은화 한 자루가 놓여
있었습니다. 은화는 아침에 처음 기도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줄곧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지는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어서 하나님의 응답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한일서 5:15)
 
    66. 기도

 위대한 작곡자 하이든은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 그런 사실을
밝히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다른 유명 음악가들과 함께
지내다가 육체 노동을 하고 난 뒤에는 어떻게 피로를 푸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서 서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좋은 술 한 잔보다 더 좋은 게 없지 않겠나?"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영감이 떨어지면 일을 멈추고 친구를 찾아 나서지. 그러면 언제나
기분이 상쾌해진다네."
 또 한 사람이 궁금한 듯이 하이든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하이든, 자네는 쌓인 피로를 어떻게 푸는가?"
 "나야 기도를 하지. 수십 년 동안 그렇게 기도를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가뿐해지더군."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편 145:18)
 
    67. 예수 그리스도

 F. 맥도웰 감독이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선교 상황을 점검하다가
인도의 한 마을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감독이 선교지를 찾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날 밤에 예수님을 믿는 40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제대로 먹고
자고 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감독은 그들의 믿음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믿음을 점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감독이 사람들을 향해서 물었습니다.
 "형제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그러자 즉각적으로 40개의 손이 올라갔습니다. 감독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허름한 차림의 사내를 가리켰습니다. 지목을 받은 원주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감독님,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세주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누구도 우리의 옷자락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을 때 나와 여기에 모인 우리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또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돌아가셨다면 틀림없이
누구나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실 겁니다. 선하신 하나님만이 거리를
떠도는 저희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하실 겁니다."
 감독은 다른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선교지에서 돌아와서 보고를
기다리는 목사들에게 현황을 보고하고 나서 자신의 소감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런 감독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겸손한 사람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증거를 듣기 위해서
해외의 선교지를 직접 방문하는 것은 매우 값진 일입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68. 말이 아닌 행동으로

 데이빗 리빙스턴은 어릴 적에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찾아와서 간증한 어느
중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서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난한
중국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계획을 갖고 있던 리빙스턴은 부지런히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혼란스런 정치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리빙스턴은 선교
목적지를 아프리카로 바꾸었습니다. 이미 의학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올랐던
데이빗이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의 형 존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데이빗이 아프리카로 떠나는 것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개업을 하기만 하면 탄탄한 앞날이 보장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는 네 자신의 소원대로 그 정글의 미개인들 속에서 네 인생이
매장되겠지만 나는 이곳 영국에 머물면서 유명해질 것이다."
 데이빗의 형은 스스로 장담한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공이 확실하게 약속된 스코틀랜드를 떠나서 아프리카의
이름 없는 선교사가 되었던 데이빗은 형의 예상과는 달리 세계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데이빗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14줄로 자세히
소개되었지만 존은 겨우 한 줄이 기록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데이빗의
형으로 말입니다.
 데이빗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벌였던 활동은 눈부실 정도였습니다.
선교는 물론 가난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의료사업, 그리고 지리학적 발견은
물론 동식물에 대한 관찰기록은 영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데이빗이 기도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의
소원대로 심장을 아프리카의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유해는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영국으로 인도되어 왕실장으로 성대하게 장례식이
치러졌고, 유골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제일 높은 제단에 안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베드로전서 5:6)
 
    69. 축복

 F.B. 메이어가 런던에 있는 크라이스트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로 알려진 스펄전은 메트로폴리탄 테버너클에서 매주일
아침 6천여 명의 회중을 상대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글의 설교는 영국은
물론 미국에까지 알려져서 월요일이면 신문에 인쇄되어 전국에 배포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성경 교사로 알려진 G. 캠벨 모건이
웨스트민스트 예배당의 강단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메이어가 메사추세츠주의
노스필드에 초청을 받아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캠벨 모건이 노스필드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모두 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의 탁월한 성경 주해를 들으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스펄과 모건 사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던 메이어는 커다란 고민에
빠졌습니다. 설교자의 신분으로 스펄전과 모건을 질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이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이어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내 작은 양떼를 위해서 '하나님 나를 축복해 주옵소서.
교회의 빈자리들을 채워 주소서. 부흥을 일으켜 주소서.'라고 기도할 때마다
축복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교회의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던 스펄전을 위해서 '하나님 저를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하고, 또 내 교회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의
캠벨 모건을 위해서 '하나님 저를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굳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아도 그들의 축복의 잔이 흘러
넘쳐서 내 작은 양동이까지 채워지고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3:9)
 
    70. 악한 이들에게로 가라

 어느 주일 저녁이었습니다. 구세군을 설립한 윌리엄 부스는 아들 브람웰과
함께 런던시를 걷고 있었습니다. 당시 브람웰의 나이가 12살이나 13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참 길을 가다가 아들을 데리고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들은 전에 없던 아버지의 행동 때문에 깜짝
놀랬습니다.
 술집에는 여자와 남자들로 넘쳐 났으며, 술기운 때문에 얼굴이 붉어진
사람들이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웃고 다투느라 무척이나 소란했습니다. 독한 술
냄새와 담배 연기가 뒤섞여서 어린 브람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생각을 모르는지 한동안 사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브람웰."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가 찾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바로 네가 함께 지내고 또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를 바라는 그 사람들이다."
 몇 해가 지난 뒤에 브람웰 부스는 그 일에 관해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나는 그때에 받았던 감명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로마서 1:14)
 
    71. 응답하시는 하나님

 허드슨 테일러는 범선을 타고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범선은 뉴기니에
이르러서 바람이 불지 않자 추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급속한 조류는 범선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허드슨 테일러가 묵고 있는
객실의 문을 급하게 두드렸습니다. 그가 문을 열자 그 배의 선장이 서
있었습니다.
 "테일러씨, 바람이 불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미개인들이 살고 있는
섬으로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선원들과 함께 온갖 궁리를 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식인종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테일러가 물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도우면 되겠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선장,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배를 완전히 멈추도록
하십시오.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바람이 전혀 없는 판국에 어찌 배를 완전히
멈추도록 지시를 내릴 수 있습니까? 선원들이 제 말을 들으면 아마 정신이
나갔다고 할겁니다."
 그러나 테일러의 고집 때문에 선장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습니다.
 테일러에게는 항해에 필요한 바람이 하나님이 꼭 보내 주시리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45분 정도가 지나자 선장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테일러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만 기도하셔도 됩니다."
 선장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것보다 더 강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1:22)
 
    72. 성경이 나를 발견했다

 뛰어난 설교가이자 주석가였던 G. 캠벨 모건은 19세에 이미 설교가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성경에 대한 의심이 찾아 들었습니다. 찰스
다윈, 존 틴달, 토마스 헉슬리, 허버트 스펜스와 같은 과학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의 저서들이 그의 정신을 흩트려 놓았습니다. 그들의 강연과
토론에 참석하면서 모건은 더욱 더 깊은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제
정상적인 설교는 더 이상 불가능했습니다.
 캠벨 모건은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고 난 뒤에 맞이한 최대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 나름의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는 우선 모든 설교
예약을 취소시켰습니다. 자신이 읽던 모든 책을 벽장에 집어넣고 문을
잠궈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점을 찾아가서 성경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모건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성경에 관해서 가르쳐 준 것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성경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고, 내가 편견을 갖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면, 성경은 직접 내 영혼에 확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는 새로 구입한 성경을 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혼란에 빠뜨렸던
저서들은 벽장에서 나올 줄 몰랐습니다. 한동안 오로지 성경만 읽어 내려가던
모건이 어느 순간에 도달하자 자신도 모르게 불쑥 말했습니다.
 "성경이 나를 발견했다!"
 1883년의 일이었습니다. 캠벨 모건은 새로 얻은 성경에 대한 확신 때문에
설교와 교육에 다시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고, 마침내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연구와 주석에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디모데후서 3:14)
 
    73. 포기할 수 없는 성경

 정치범으로 분류된 러시아계 유대인 아나톨리 슈크란스키는 자유를 찾아
이스라엘로 떠나는 아내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발길을 돌리지
않으려는 아내에게 예루살렘에서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출발은 지연되었고 결국에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슈크란스키는 러시아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모든 소유물을 빼앗겼고, 그가
가진 것이라고야 소형으로 제작된 시편뿐이었습니다. 간수들이 시편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그는 130일
동안이나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독방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비참했습니다. 입을 것은 물론 먹을 것조차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위와 싸워 가며 엄청난 양의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아내와 헤어진 지 이미 12개월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아나톨리 슈크란스키에게 정부로부터 석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1986년 1월,
세계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슈크란스키는 러시아 경비대원들과 함께 미리
약속된 장소로 나갔습니다. 그곳에는 그를 예루살렘으로 인도할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슈크란스키가 막 떠나려는 순간 경비병들은 마지막으로 그에게서 시편을
빼앗으려고 시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잔뜩 긴장했습니다. 성경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슈크란스키에게 러시아 경비병들이 흥분해서 총을
사용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슈크란스키가 갑자기 눈밭에 쓰러지면서
얼굴을 눈 속에 파묻었습니다. 그는 성경 없이는 자유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세웠습니다. 그런 그를 러시아 경비대원들도 더 이상 어쩌지
못했습니다.
 기자들은 자율의 몸이 된 아나톨리 슈크란스키에게 어째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성경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지옥 같은 수용소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풀려나서 자유롭게
되리라는 소망이 아니라 바로 그 시편 성경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내가
나의 생명과도 같은 그 성경을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편 119:97)
 
    74. 세뇌

 2차 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어느 중국인 선교사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는 다행히 요한복음 단권 성경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수용소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다 보니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충분하지 못한 식량과 강제 노역 때문에 차츰 희망을 잃어
갔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매일 밤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자신이 몰래
감추어 들여온 요한복음을 읽었습니다. 그리고서 담요를 뒤집어 쓴 채 한
구절씩 외워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수용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사와 같이 수용소
생활을 하던 동료 수감자들은 대부분 고생스런 생활 때문에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는 수용소에 들어가기 이전처럼
쾌활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보고서 일본군에 의해서 세뇌를 당한
것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흥미를 느낀 어느 기자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선교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녀를 만난 기자는 수용소 생활에
대해서 선교사에게 이것저것 자세히 캐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확실히 그녀는 세뇌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녀를
세뇌시키셨습니다."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시편 119:127)
 
    5부 세계를 바꾼 생각

 살다가 실망스럽고 유쾌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 들어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라. 하나님 안에서 굳건히 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감당하라. 겨울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폭풍 뒤에는 평온이 다시
찾아온다.
 토마스 아 캠피스
 
    75. 후회

 영국의 웨스터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꾸었다. 조금 더 나아가 들고 지혜를 얻게 되자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좁혀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을
변화시키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이다.
 또 그것에 용기를 얻어서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이 변화되었을는지도!'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9:4)
 
    76. 세계를 바꾼 생각

 존슨 앤 존슨사의 직원이었던 얼 딕슨은 매사에 덜렁대는 부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툭하면 부엌에서 칼에 상처를 입거나 불에 데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존슨사에서는 외과용 거즈를 생산해서 팔고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 대용량이라서 작게 베거나 데인 부위에는 사용하기가
곤란했습니다.
 딕슨은 소독솜과 작게 자른 거즈를 반창고 중간에 붙여서 부인의 상처에
붙여 주곤 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매번 그렇게 만들던 딕슨은 그 일이
귀찮아졌습니다. 더 편리한 방법을 찾던 그는 반창고에 딱딱한 크리놀린 천을
붙여 두었다가 필요할 때면 떼어 내어 부인의 환부에 붙일 수 있게 했습니다.
 존슨사의 회장 제임스 존슨이 어느 날 우연히 딕슨이 직접 만든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반창고의 편리함에 관심이 크게 쏠린 그는
딕슨의 아이디어를 제품에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밴드
에이즈라는 이름으로 대량생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편리한 반창고가 없을까?' 하고 궁리하던 얼 딕슨이 일회용 밴드를
생각해 낸 것처럼 많은 질문들이 처음에는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경영대학원 교수로 있는 존 콜린스는 전혀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때문에 세계를 변화시킨 질문들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빛의 파동은 그 속도와 같은 사물에는 어떻게 보일까?(알버트 아인슈타인)
 *쇠로 벌집 모양의 격자무늬 틀에 고무를 부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빌
바우어먼, 나이키 신발 창시자) 다른 신발업자들은 바워맨의 격자무늬 바닥을
보고서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비난했다.
 *어째서 믿을 만한 24시간 우편 배달 서비스가 없을까?(연방 특급 우편
창설자)
 *인체의 내부를 3차원으로 볼 수는 없을까?(갓프리 하운스필드, CAT
스캐너 발명자)
 *녹음기에서 녹음기능과 스피커를 없애고 핸드폰을 달게 되면
어떨까?(마사루 이부카, 소니사 명예회장) 결과는 소니 워크맨.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편 119:18)
 
    77. 생각을 바꾸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축가로서 꽤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약
70여년 전에 일본인들이 도쿄에 지진이 일어나도 견딜 수 있는 호텔을 설계해
달라고 라이트에게 부탁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일본을 찾은 라이트는 호텔
건축 부지를 확인하고서 깜짝 놀래고 말았습니다. 호텔을 신축하려는 장소의
2.4m 아래에는 마치 젤리처럼 유동적인 18m 정도의 진흙 층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라이트가 시추 구멍을 뚫는 곳마다 순식간에 물이 차 올랐습니다. 대개의
사람들 그 정도에서 손을 털고 물러섰겠지만 라이트는 달랐습니다. 건축
부지를 바꿀 수 없는 이상 라이트는 건축방법을 이전과 달리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호텔을 배처럼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지진에는 호텔을 단단하게
짓는 게 아니라 그 충격을 타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생각에
반대했지만 라이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진흙 중에 지지물을 파묻고서 그곳에 외팔 보를 세워서 기초를 세웠습니다.
객실들은 단면을 보면 기차처럼 배치하고 서로 맞물리도록 건축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전기와 수도관은 경우에 따라서
흔들려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수직 기둥에 묶어서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지진이 수반하는 화재를 제압하기 위해서 호텔의 뜰에 대형 수영장을
배치했습니다. 미관을 고려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라이트는 역시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1923년 10월 1일에 도쿄에는 역사상 전례 없는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14만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당시 그리
발달하지 못한 통신체계 때문에 미국에는 그 실상이 전해지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느 신문사의 보도에 따르면 라이트가 설계한 임페리얼 호텔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어느 기자가 그 사실을 확인하러 라이트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러나 라이트는 신문사가 원하면 그런 기사도 가능하겠지만
나중에는 취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호텔이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라이트는 일본에서 전문을 받았습니다. 임페리얼 호텔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히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해서
호텔 측이 객실을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지진 때문에 호텔도 처음에는 화재가
일어났지만 사람들이 호텔 수영장 물을 이용해서 불길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도쿄에는 더 이상 임페리얼 호텔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호텔은
1960년대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진이나 어떤 다른 자연의 재해
때문이 아니라 보다 더 현대적인 건물을 짓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해체한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야고보서 1:2)
 
    78. 입맛 때문에

 토머스 코스틴이 집필한 역사서 "3명의 에드워드"는 14세기의 공작인
레이날드 3세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벨기에 출신인 레이날드는
체중이 지나치게 많이 나가서 별명이 '뚱뚱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크라수스였습니다.
 레이날드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 동생 에드워드는 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에드워드는 레이날드를 체포했지만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노이케르크 성에 방을 하나 마련해서 레이날드가
그곳을 떠날 수 있게 되면 작위와 재산을 모두 되찾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쉬운 조건이었습니다. 방에는 서너 개의
창이 있었고 대문도 열려 있었습니다. 경비병도 역시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레이날드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문은 일반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보통 사람과 달리 몸집이 커다란 레이날드레에게는 무리였습니다.
그가 자유를 얻는 길은 체중을 감량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드는 형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형에게 보냈습니다. 레이날드는 동생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자신이 어떻게 해야 그 방을 빠져나갈 수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음식을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체중은 나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주변 국가에서 에드워드의 잔혹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 갔습니다.
에드워드는 사람들을 보내서 해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형은 죄수가 아닙니다. 그는 어느 때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떠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레이날드는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에드워드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
방을 나설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레이날드 역시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한
해가 지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모두가 길들여진 입맛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베드로후서 2:19)
 

    79. 기대

 흑인 인권운동가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언젠가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프로그램 진행자는 킹 목사를 상대로 인종 문제에 대해서
자극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킹 목사님, 흑인들이 게으르고 성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고 건들거린다는 게
사실입니까?"
 질문자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킹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습니다.
 "사실이라고 할 수 있지요."
 백인 사회자는 킹 목사의 답변에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킹 목사는 자신의 대답에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백인들이 2백 년 간 주장했던 사실이니 당연하지 않겠소? 당신들이 두
세기 동안 흑인들에게 게으르고 성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고 건들거린다고 계속
말해 왔는데 어찌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있겠소?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 12:37)
 
    80. 희망이 사라진 마을

 어느 마을에 세 아들을 둔 촌장이 있었습니다. 세 아들은 저마다 특별한
재능을 한 가지씩 지니고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올리브나 무를 키우는
재능이 있어서 그 기름으로 연장과 옷을 바꾸곤 했습니다. 둘째는 양치기라서
양들이 병들면 회복시키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습니다. 셋째는 춤을 썩 잘
추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모두들 따분해 하거나 일에 지쳐 있을 때면
춤을 추어서 힘을 북돋워 주는 게 셋째의 지능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급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집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에 마을의 일이 걱정된 아버지는 세 아들을 불러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없더라도 마을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을 거다. 너희 모두가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집을 비운 동안 그 재능을 지혜롭게 잘
활용하면 마을에는 어떤 후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돌아왔을 때는 우리
마을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떠났지만 한동안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겨울이 닥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년처럼 걱정하지 않고 겨울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겨울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기온도 더 떨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올리브나무도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아들의 재능으로도 나무를
회복시키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땔감이 떨어지자
올리브나무를 잘라서 사용했습니다.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자 또다른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눈과 얼음
때문에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식량이 판매하는 상인들의 발걸음이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은 식량이 떨어지자 둘째에게 몰려왔습니다. 둘째는 양을 내놓으라는
마을 사람들의 요구를 한동안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허기진 이들을 물리치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양들은 아껴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첫째도 그런 둘째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식량과
땔감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촌장의 두 아들도 한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긴 겨울을 지내면서 추위에 사기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음식과 땔감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장래를
걱정했습니다. 그리고서는 더 나은 곳을 찾아 한 집 두 집 짐을 싸서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봄이 되었습니다. 매서운 추위도 한풀 꺾인 어느 날 촌장이
돌아왔습니다. 멀리서 마을을 바라보던 촌장은 자신의 집 굴뚝에서만 연기가
솟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서둘러서 돌아온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찌된 일이냐? 마을 사람들은 다 어디로 떠나고 우리 가족만 남았느냐?"
 첫째 아들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마을 사람들이 올리브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가 막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둘째도 고개를 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역시 양떼를 돌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진
사람들이 양들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모두 내어 주고
말았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목자 자격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이 겪었을 마음 고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추위는 물론
동네 사람들의 거친 행동까지 모두 감내 해냈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이 짐을 꾸려 마을을 떠난 것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가진 재능을 사람들을 위해서 지혜롭게 사용했구나.
올리브나무와 양떼의 희생도 부득이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이 떠난 것은 어찌된 것이냐? 먹을 것과 땔감이 부족하지 않았을 텐데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거지?"
 셋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섰습니다.
 "아버지 돌아오셔서 기뻐요. 진짜 어려웠어요. 먹을 것과 땔감이 모두
떨어졌는데 제가 노래하고 춤추는 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앞에서 춤을 추려고 힘을 아껴두고 있었지요."
 아버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아들에게 춤을 추게
했습니다. 자신이라도 아들의 춤을 보고서 기쁨과 용기를 찾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셋째 아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했습니다. 긴 겨울 동안 앉아서
다리를 쓰지 않은 바람에 굳어 버려서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슬퍼서 화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셋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 본디 강했다. 사람들은 땔감이나 식량이 없어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버티지 못한 것이다. 네가
춤을 추어 그들에게 힘을 주었다면 마을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마을은 황폐해지고 너는 불구가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 하면 좋겠느냐?"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찬송하리이다(시편 71:14)
 

    81. 닭이 된 독수리

 어느 농부가 독수리 어미가 떠나 버린 둥지에서 알을 하나 주웠습니다. 그는
알을 가져다가 자신의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의 둥지에 넣어 주었습니다. 암탉은
그것이 자신의 알인 양 다른 것과 함께 부지런히 품어서 부화시켰습니다.
 졸지에 운명이 바뀌게 된 독수리는 언제나 자신이 닭이라고 생각하고서 다른
병아리들이 행동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주인이 설거지를 하고 버린
물에서 밥알을 주워먹었고, 다른 병아리들과 함께 땅을 파서 지렁이를 잡기도
했습니다. 날개를 퍼덕이고 머리를 고추 세우고서는 꼬꼬 울기도 하면서 몇
걸음 날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독수리도 무척이나 늙었습니다. 어느 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나는 거대한 새를 보았습니다. 그 새는 날개를
활짝 편 채 기류를 타고서 높은 하늘을 유유히 날았습니다. 이미 닭이 되어
버린 독수리가 옆에 있는 늙은 닭에게 물었습니다.
 "저기 높은 하늘을 나는 멋진 새의 이름이 뭐지?"
 그러자 늙은 닭은 하늘에 슬쩍 눈길을 주고 난 뒤에 잘 아는 듯이
말했습니다.
 "저것은 독수리라는 새야. 새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자네는
꿈도 꾸지 말게. 저 친구처럼 되기란 불가능하니까 말일세."
 그리하여 독수리는 그 새에 대해서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닭이라고 생각하며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에베소서 5:1)
 
    82. 준비 기간

 중국의 동부 지방에 새로 이사온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무엇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보아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 지방 농부들이 대나무를 키우는
방법이었습니다. 농부들이 심은 대나무는 다른 곳과 달리 제대로 자라지
않았습니다. 장사꾼이 농부들에게 어째서 그런 대나무를 심는지 물었지만
그들은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해가 지나도 대순은 돋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사꾼은 그것을 보면서 농부들의 어리석음을 탓했습니다. 대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는 땅이거나 아니면 대나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4년이 되었지만 대나무는 여전히 순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것에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들의 할 일을 할뿐이었습니다.
 그런데 5년째가 되자 대나무 밭에서 갑자기 죽순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대나무들은 마치 마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하루에 한 자도 넘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대나무들은 6주가 채
되기도 전에 무려 15미터 이상이 자라나서 빽빽한 숲을 이룰 정도가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그제야 칼을 꺼내 들고서 대나무를 베어 냈습니다.
 장사꾼은 그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궁금해서 묻자 비로소
노인 하나가 대답했습니다.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모소라는 이름을 가진 이 대나무들은 순을 내기
전에 먼저 뿌리가 땅속에서 멀리까지 자라기 시작한다네. 그리고 일단 순이
돋으면 길게 뻗은 그 뿌리들로부터 엄청난 자양분을 얻게 되어 순식간에 키가
자라는 것일세. 5년이라는 기간은 말하자면 뿌리를 내리는 준비 기간이었던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도서 3:1)
 
    83.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가 벌목이 한 창 진행되고 있는 소나무 숲을 스케치하며
거침없이 손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벌목꾼 가운데 한 사람이 가끔씩 와서는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큰 소리로 낄낄거렸습니다. 고흐는 이
남자가 무엇 때문에 그리 웃어대는지 이유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나무를 그리는 게 재미있습니까?"
 그러자 남자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래. 정말 재미있소. 당신은 미친 게 틀림없소!"
 고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일 나무를 손질하고 보살핀다면 나는 미친 걸까요?"
 "물론 아니오."
 고흐가 또다시 물었습니다.
 "열매를 딴다면 미친 겁니까?"
 "나를 놀리는 거요?"
 "좋아요. 그렇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나무를
베면 미친 걸까요?"
 "아, 아니오. 나무는 베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나무를 심을 수도 있고 돌볼 수도 있고, 밸 수도 있지만
그림으로 그리면 미친 것이로군요. 그렇죠?"
 그 농부는 다시 이를 모두 드러내고서 히죽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맞았소. 그런 식으로 거기에 앉아 있으면 분명히 미친 짓이오. 온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거든."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여호수아 1:6)
 
    84. 세상을 뒤집어 보면

 세상을 뒤집어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도 합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엘 코데츠 호텔을 보다 높게 증축할 당시의
일이었습니다. 증축을 담당한 건설회사에서는 승강기 공사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습니다. 증축한 부분에까지 승강기를 설치하려고 보니 각 층마다
방을 없애고 새로 승강기 통로를 만들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건설회사의 일급 엔지니어들이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모였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이 높이 올라가고 있는 호텔을 바라보면서 고민을
털어놓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어느 한 인부가 지나다 말고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이해할 수 없군. 어째서 엘리베이터를 건물 밖으로는 세울 생각들을 하지
않는 거지?"
 인부의 이 한 마디 덕분에 멋진 항구를 바라볼 수 있는 옥외 전망용 투명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졌습니다.
 한 가지 더. 사일러스 맥코믹이라는 사내가 머리를 깎기 위해서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이발사들이 기계를 이용해서 머리 깎는 모습을 보자 맥코믹에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농부들이 곡식을 걷을 때 저 이발 기계의 원리를 이용하면 어떨까?"
 그는 이발소를 나서자마자 자동차에 거대한 머리깍기 기계를 달아서 넓은
밀밭을 추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농부들의 고생이 훨씬 줄어들게 된
것은 물론입니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9:39)
 
    85. 자신을 지키기

 A,J. 머스트가 남긴 여러 일화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머스트는 베트남 전쟁
당시에 밤마다 촛불을 들고 백악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벌이는 반전
시위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기도 했지만 혼자서 외롭게 서 있어야 하는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인 사람들의 숫자에 관계없이 매일 밤마다 촛불을
들고 시위를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방송기자가 빗속에 촛불을 들고 어 있는 머스트를 취재하러
다가왔습니다. 기자는 그와 대화를 나누다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머스트씨, 당신이 밤에 혼자서 촛불을 들고 백악관 앞에 이렇게 서 있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고 이 나라의 정책이 바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천만에요. 나는 이 나라의 정책을 변화시키려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이 나라가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
 
    86. 유혹과 양심

 프랑스의 국무총리이니 조르주 클레망은 강직하고 양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호랑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는 기자가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어째서 보통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합니까?"
 "내가 진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어려운 때이기 때문에
온 국민은 근검절약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회 지도급 인사들과 정치인들도 당신을 싫어하는
겁니까?"
 "내가 부정부패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나는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올바른 정치인은 당신뿐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가 올바른 정치인들입니다. 단, 유혹을 받지
않는 한 말입니다."

 *사곡한 무리는 결실이 없고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욥기
15:34)
 
    87. 악마의 도구

 악마가 다른 곳으로 가게를 이전하기 위해서 가게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헐값에 내놓았습니다. '장소 이전, 재고 정리'라는 간판이 걸리자 많은
사람들이 삽시간에 몰려와서 악마가 사용하던 물건들을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사람이 가게에 전시된 물건 가운데 가장 값비싼 것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재고 정리라고 하면서 이 물건은 어찌 이렇게 비싼 겁니까?"
 악마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도구이기 때문이오. 그것만 있으면 누구의
인생이든지 하찮은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어떤 계획이든지 무력화시킬 수
있소이다."
 손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악마가 말했습니다.
 "저 도구를 나는 '포기'라고 부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누가복음
22:32)
 
    6부 나무와 샘

 자신을 잘 살피라.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겨냥한 판단이 그릇된 경우가 자주 있을 수 있겠으나, 자신에게는 진정으로
솔직해질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
 
    88. 악행의 몫

 온갖 악행을 일삼는 감옥의 부책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모욕은 물론 어떻게든 고통을 주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
사실을 파악한 당국은 감옥의 총책임자에게 고약한 부책임자를 체포해서
구금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는 부책임자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오늘 새로운 죄수를 감옥에 수용하게 되었으니 감방을 하나 준비해 두게."
 부책임자는 간수를 하나 데리고 가서 감방 가운데 가장 형편없는 것을 하나
골랐습니다. 햇볕이 전혀 들지 않고, 습기가 흐르고, 또 두 걸음밖에 걸을 수
없는 그건 감방이었습니다. 부책임자는 거기에 곁들여서 제일 나쁜 매트리스를
준비하도록 간수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부책임자는 자신의 선택 때문에 겪게
될 죄수를 생각하니 흐뭇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가서 상관에게
보고했습니다.
 "죄수를 들여보낼 수 있는 감방이 완료되었습니다."
 총책임자가 말했습니다.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
 그는 부책임자를 대동하고서 준비된 감방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새로 오는 죄수에게 이것보다 나은 감방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부책임자가 대답했습니다.
 "소장님은 너무 마음이 약하십니다. 그런 배신자에게는 이런 감방이 꼭
알맞습니다."
 그러자 총책임자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네가 바로 그 배신자다. 들어가라."
 그리고는 감방의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기 4:8)
 
    89. 결정의 어려움

 어느 농부가 자신의 농장에서 함께 일할 일꾼을 고용했습니다. 농부는
일꾼에게 제일 먼저 창고를 페인트로 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끝내기 위해서는 사흘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꾼은 하루만에 그 모든 일을 마쳤습니다.
 다음 날 농부는 일꾼에게 농장 식구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나무를 베어
땔감을 마련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일을 마치려면 나흘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꾼이 그 일을 하루 반나절만에 끝마치자
농부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평소에 해 오던 일 처리
속도와 너무도 달랐습니다.
 일꾼의 능력을 알게 된 농부는 그를 데리고 창고로 갔습니다. 창고 안에는
밭에서 거둔 감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수확을 한 지 이미 오래지만
손이 달려서 미뤄 두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감자의 양이
적지 않았지만 이미 일꾼의 솜씨를 이미 직접 확인한 주인은 부담 없이 일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농부는 일꾼에게 감자를 세 가지로 분류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한 쪽은
종자로 쓸 수 있는 감자. 가운데는 겨울에 돼지 사료로 사용할 감자, 그리고
또다른 쪽에는 시장에 내다 팔 감자로 일일이 구분해서 쌓게 했습니다. 농부는
감자를 분류하는 일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꾼의 솜씨 정도면
천천히 해도 하루가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이 되자 농부가 창고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농부는 창고의
일이 거의 마무리되었으리라고 기대하고 창고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일꾼은
그때까지도 농부가 지사한 일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된 일인가?"
 농부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일꾼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시키기는 일이라면 그 어느 것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지만, 제 마음대로 결정해야 하는 일은 정말이지 곤란합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야고보서 2:12)
 
    90. 선입관의 결과

 선입관에 따라서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왜곡되어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습니다. 뉴욕시에 거주하는 중산층 백인들에게
지하철역의 모습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의 중앙에는 두
명의 사내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백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흑인이었습니다.
 실험자는 그 사진을 사람들에게 잠깐 동안 보여주고 난 뒤에 다시 설명을
덧붙이면서 내용을 확인시켰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한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고, 나머지는 작업복
차림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칼을 들고 위협했고 나머지 사람은 돈을 꺼내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실험자는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신분을 기록하도록 설문지를
돌렸습니다. 흥미롭게도 뉴욕의 중산층에 속하는 백인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그들은 백인을 회사의 중역, 그리고 흑인은 노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칼을 들고서 상대방을 위협하며 돈을 뺏는 강도는 흑인
노동자이며, 지하철역에서 돈을 뺏기는 낭패를 겪는 사람은 백인 중역이라고
그들은 설문에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실험자가 다시 내보인 사진을 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은 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자신들이 설문에 응답한
내용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깔끔한 차림의 양복을 입은 회사 중역은
흑인이었고, 작업복 차림으로 칼을 들고 돈을 뺏는 사람은 백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갖고 있던 선입관 때문에 자신들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내용을 왜곡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태복음 15:14)
 
    91. 완벽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지휘자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동료 피아니스트 아루투르 루빈슈타인이 초대하는 저녁 식사에
참석했습니다.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라흐마니노프는 루빈슈타인에게 그레이그
피아노 콘첼토가 그 어떤 곡보다 위대하게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루빈슈타인이 얼마 전에 그 곡의 녹음을 끝냈다고 말하자 라프마니노프는 그
자리에서 꼭 들어보겠다고 고집을 세웠습니다. 식사가 모두 끝나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루빈슈타인이 자신의 갓 나온 음반을 서재에서 가져왔습니다.
루빈슈타인이 그레이그 피아노 콘첼토를 틀었습니다. 누가 들어도
루빈슈타인의 연주라고 인정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그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레이그 피아노
콘첼토가 끝나갈 무렵 라흐마니노프가 갑자기 눈을 뜨면서 말했습니다.
 "피아노가 조율이 안 했어."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편 143:2)
 
    92. 펜의 무게

 1863년 1월 1일 정오에 있었던 일입니다.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선언하는 법안에 서명하려는 순간 어쩐 일인지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러다가 링컨은 바닥에 펜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해서 두 차례나
거듭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대통령의 모습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내무 장관으로 있던 윌리엄 씨워드가 급히 대통령에게 다가가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손이 떨렸소. 그래서 지금은 오른손이 마비가 될 정도요.
만일 나의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면 이 법안 때문일 것이고, 나의 영혼도 그
안에 담겨 있소. 그런데 내가 서명을 하다가 손을 떨게 되면 나중에 서류를
검토하던 사람들이 '그가 주저했다'고 말할 게 아니겠소."
 그리고 난 뒤에 링컨은 펜을 집어들고 탁자로 돌아가서 천천히, 그러면서도
과감하게 자신의 이름을 법안에 적어 넣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잠언 3:35)
 
    93. 약속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될 때의 일이었다. 한 분대가 무인도에 정찰을
나갔습니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분대원들은 경계를 느슨히 했고,
바로 그 순간에 적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런 적군의 총격
때문에 분대원들 가운데 병사 하나만이 겨우 진지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진지로 돌아온 병사는 상황을 보고한 뒤에 부상 때문에 남겨 두고 온 전우를
찾으러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중대 하사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사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사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럴 수 없어. 그는 이미 죽었어. 자네가 가도 어쩔 수 없다고. 이번에는
자네의 목숨마저 위태로우니 그만 포기하도록 하게."
 병사는 하사에게 사정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우와 함께 부대로
귀환할 터이니 꼭 보내 달라고 하사에게 매달렸습니다. 고집을 꺾지 않으려는
병사를 하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현장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얼마 뒤에 병사는 자신이 말했던 대로 부상을 입고 낙오한 전우와 함께
부대로 귀환했습니다. 그러나 전우는 이미 숨이 끊어진 다음이었고, 그를
데리러 갔던 그 병사마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부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사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습니다.
 "봐라. 내가 가지 말라고 했을 때 가지 말았어야지. 전우는 죽었고, 자네는
중상을 입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러자 병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 친구가 살아 있었습니다. 저를
보고 '네가 올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데 어찌 제 목숨을 구하겠다고 친구를
적지에 홀로 남겨 둘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
 
    94. 화를 다스리는 법 1

 오래 전에 스탠더드 정유회사의 중역 한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회사는 2백만 불 이상의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당시 회장은 존
D.록펠러였습니다. 중역들은 록펠러에게서 떨어질 불호령과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방책을 찾기 위해서 온갖 궁리를 다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은 예외였습니다. 에드워드 T.베드포드가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록펠러와의 면담을
자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록펠러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포드가 거대한 스탠더드 석유 회사 왕국을 움직이는 록펠러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책상에 엎드려서 무엇인가 부지런히 연필로 적고
있었습니다. 베드포드는 그를 방해할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없이 서서
기다렸습니다. 몇 분이 지나자 록펠러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 베드포드로구만."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습니다.
 "당신도 우리가 입은 손실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베드포드는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 문제를 놓고서 줄곧 생각했었네. 그것을 가지고 그 문제의
장본인과 논의하기에 앞서서 몇 가지 사항들을 정리하고 있었지."
 베드포드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종이의 머리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xxx의 장점들.' 그리고 그
밑에는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 그 사람의 장점들이 목록으로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최근의 실책을 상회할 정도로 여러 차례 이익을 낸 바 있는
이전의 세 가지 사례들도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베드포드는 그런 록펠러의 태도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후로 그때의 교훈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욕을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쁠 때면, 나는 책상에 앉아서 그 대상의 좋은 점들을
가능한 한 많이 찾아내어 목록으로 작성합니다. 그 목록이 완성될 즈음이 되면
늘 정확한 관점을 갖게 되고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됩니다. 이 습관 덕분에
회사에 기여한 중역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었는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나는 사람을 다루어야 하는 이들이라면 누가 되었는지 간에 꼭
들려줍니다."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누가복음 6:37)
 
    95. 화를 다스리는 법 2

 남북전쟁이 진행될 당시 에이브러험 링컨의 비서였던 에드윈 스텐튼은
자신이 보인 편파적인 행동 때문에 어느 장교로부터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스탠튼이 돌아와서 링컨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그 장교에게 따끔한 내용의 편지를 쓰도록 제안했습니다.
 스텐튼은 대통령의 권유대로 강력한 내용을 담은 서한을 작성해서 링컨
대통령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을 어찌할 셈인가?"
 링컨이 물었습니다.
 예상 밖의 질문을 받은 스텐튼은 놀라면서 대답했습니다.
 "보내야지요."
 링컨이 머리를 저었습니다.
 "자네는 그 편지를 보내고 싶지 않을 걸세. 그것을 난로에 집어넣게. 나도
화가 치밀면 그렇게 편지를 쓰지. 그것은 좋은 편지야. 자네가 편지를 쓰는
동안 감정이 많이 풀렸을 테니까 말일세. 그것을 난로에 집어넣게. 그리고
가서 다시 편지 한 통을 쓰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복음 13:35)
 
    96. 완전히 다른 임종

 사람들은 똑같이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 맞이하는 임종은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경건한 성경학자이며 주석가였던
매튜 헨리는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전념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매튜 헨리는 하루를 거르지 않고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깨달은 놀라운 진리들을 자신의 주석에 기록했습니다. 마침내 임종을 맞이하게
된 매튜는 자신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가 임종 때 남기는 유언들을 잘 기록해 온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네. 나의 유언은 이렇네.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과 교제했던 삶이야말로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에게 가장 편안하고 가장 기쁜 삶이었다."
 그런데 이런 매튜 헨리와 아주 대조적으로 임종을 맞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볼테르는 생전에 기독교를 비판하는 발언을 자주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다른 종교처럼 기독교도 한 세기가 지나면 사라져 버리고 성경은 동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볼테르도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괴팍해진
볼테르를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조차 가까이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볼테르는 벽을 바라보며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받은 채 죽을 것이다."
 그의 임종을 지켜본 간호사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럽의 모든 부를 다 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절대 임종을 맞이하는
무신론자의 침대에 가고 싶지 않다. 너무 무서운 경험이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편 150:6)
 
    97. 무지와 가짜 기둥

 1689년 위대한 영국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경이 윈저 시청의 실내
인테리어 설계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는 천장이 여러 개의 기둥으로
지지되도록 설계를 끝내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건축이 모두 끝나고 시
위원회 원로들이 설계대로 건축되었는지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들은 천장이
몇 개의 기둥으로 지탱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렌
경에게 기둥 몇 개를 더 추가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렌 경은 위원회 원로들의 지시가 터무니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설계를 기초로 건축된 천장은 현재의 기둥들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원로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굽히려 들지 않았습니다.
렌 경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지시대로 4개의 기둥을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둥들은 건축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렌 경운 원로들이 원하던 대로 기둥을 더 세웠지만 천장에 닿지 않게 하도록
작업을 지시했습니다. 원로들이 보기에 그 4개의 기둥이 윈저 시청의 천장을
더 안전하게 받쳐 주는 것 같았지만, 그것들은 그저 형식상 서 있는 것들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을 알리 없는 위원들은 기둥을 둘러보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리석은 당국자들을 꼬집은 렌 경의 기둥들은 지금껏 남아 있어서 무지한
관리가 사람들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지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 두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잠언 12:23)
 
    98. 진정한 권위

 매사추세츠주의 주지사 크리스천 허터는 여러 가지 업무로 무척이나 바쁜
공직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전에 긴급을 요하는 투표에 참여하고서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교회 자선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아침과 점심을 건너뛰면서까지 업무를 처리해야 했던
허터는 무척이나 허기에 시달렸습니다.
 허터는 접시를 들고 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음식을 받다가 닭고기 요리를
나눠주느니 어느 여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허터의 접시에 닭 한
조각을 올려놓고서 다음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실례합니다, 부인"
 주지사가 말했습니다.
 "닭을 한 조각 더 받으면 안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부인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한 조각씩 드리기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척 시장기가 돌아서요."
 주지사가 말했지만 부인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조각 이상은 드릴 수 없습니다."
 허터 주지사는 그런 터무니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고집을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혹시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내가 바로 이 주의 주지사입니다."
 그러자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는 당신께서는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제가 바로 닭 요리의 분배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음 분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야고보서 4:10)
 
    99. 나무와 샘

 사막 한복판에 대추 야자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 밑에서는
샘물이 솟았습니다. 불볕이 내려 쬐는 사막에서 그 샘물은 생명의
물이었습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늘 그 아래에 와서 쉬면서 샘물로
목을 축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샘물은 주인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샘물을 찾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돈을 받고 물을 팔았습니다. 사막에서 달리 물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고 샘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샘터를 돌아보던 주인은 대추 야자나무가 물을 흠뻑
머금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슬인 줄 모르는 주인은
엉뚱한 욕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만일 저 나무를 베어 버리면 나무가 머금고 있는 물도 모두 샘에 고일
터이고 그러면 장사도 그만큼 잘될 것이 아닌가?'
 주인은 기막힌 생각을 해낸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칭찬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나무를 베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생각과는 달리 그 샘은 며칠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고 모래바람을 막아 주던 나무가 없어진 샘에서는 더
이상 물이 솟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물과 더 많은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야고보서
1:14)
 
    100. 거울의 도시

 두 사내가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언제나
웃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언제나 찌푸린 인상이었습니다. 두 사내는 순례의
목적지까지 거리를 생각해서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겨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을 여행하다가 거울의 도시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도시 전체가 거울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두 사내는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에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모든 구경을 마치고 도시를 벗어나자 한 사내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그토록 웃는 얼굴이 많으니 참 아름다운 도시야!"
 그러자 찌푸린 인상의 사내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아니, 웃는 얼굴들이라니" 내가 본 것이라고는 모두 찌푸린
얼굴뿐이었는걸."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립보서 3:1)
 
    101. 기쁨이 빠진 수고

 먼 곳에서 귀한 손님이 수도원을 찾아올 예정이었습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수도원 원장은 부지런히 수도원을 정리하고 청소했습니다. 손님이 당도하자
원장은 이곳저곳을 소개하느라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은 왠지
울적하고 심각해 보였습니다. 구경을 모두 마친 손님과 원장이 접대실로
들어섰습니다.
 "보시다시피 우리 수도원은 아주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원장이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습니다. 손님의 응대를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그러자 손님이 되물었습니다.
 "실례지만, 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원장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방금 전에 보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시간에 맞게 기도하고 일하고
있으며, 수도사들은 규칙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옳은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한 가지가 빠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손님이 말했습니다.
 "기쁨입니다. 기쁨이 빠지고 나면 기도와 노동은 고역이 되고 마는
법이지요."

 *항상 기뻐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
 
    102. 착각

 장사로 큰 돈을 모은 부자가 평생 사막을 떠나지 않고 숨어 지내면서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그를 만나서 나름의 인생 고민을
털어놓고 자신으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할 대단하니 지혜를 얻어 갈
생각이었습니다.
 숨어지내면서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은 허름한 거처에서 잘 차려입은 부자를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그의 거처를 둘러본 부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처음 기대한 것을 얻어 가기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부자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군요. 나는 모든 것을 가졌는데 당신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래요. 정말 차이가 크지요. 사실 당신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고,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시편 119:72)
 
    103. 하나님의 응답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봄에 공들여 뿌려서 새순이 돋기 시작한
직물들이 뜨거운 햇볕을 받고 말라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마을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좋기로
다른 곳에까지 소문이 난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얼마 동안을 열심히 기도하자 하늘이 열리면서 천사들이 둥실 거리며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은 저마다 물통을 여러 개씩 들고 있었습니다.
가뭄을 해갈시킬 수 있는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던 마을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천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무엇인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희들은 비를 바라고 기도를 드렸지
물통을 바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착오는 없었소.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크게 기뻐하셨소."
 "그렇다면 이 물통들은 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들은 물을 바랬는걸요."
 그러자 다른 천사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지만 그렇다고 여러분을 응석받이로 만들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를 내리는 대신에 여러분이 스스로 강에서
물을 길어서 작물에 물을 줄 수 있도록 이 물통들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한일서 5:14)
 
    104. 서두르지 마라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느긋하고 태평한
성격이었지만 아들은 늘 급하기만 했습니다. 가을걷이를 모두 끝마친 부자는
달구지에 추수한 곡식을 싣고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로 길을
나섰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달구지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아들이 대신 소를 몰겠다고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아들의 등뒤에서
말했습니다.
 "천천히 가자꾸나. 그리 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어."
 "조금 더 빨리 시장에 도착해야 남들보다 좋은 값을 받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가야지요."
 "아니다. 거리도 만만치 않고 짐을 이렇게 많이 실었는데 소가 탈이라도
나면 어찌 하겠니. 천천히 가자꾸나."
 아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몰라주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장날이
가까워지고 곳곳에서 농부들이 곡식을 실어 나르기 시작하면 힘들여서
일했지만 제값 받기가 쉽지 않을 터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 농부가 도랑에 빠진 수레를 빼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달구지를 세우게 하고서 아들에게 농부를
도와주라고 지시했습니다. 한시가 급하다고 생각하는 아들은 자신의 고집을
접고 어쩔 수 없이 반나절 동안 수레를 빼내는 일을 도왔습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어 가자고 했습니다.
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길을 더 가자고 우기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달구지에 실린 곡식을 배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지나는 말투로 아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은 서두를 때 서둘러야지 늘 급히 서두르다 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었으나 아버지는 역시 서두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달구지를
몰고 가던 아버지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소를 다른 길로 몰았습니다. 이유를
묻자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기왕 집을 나선 김에 작은집에 들렀다 가자. 그리 먼 곳에 살지도 않으면서
서로 얼굴 한 번 보기가 어렵지 않으냐? 이번에 많은 걷은 깨나 조금
나누어주고 가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찾아가자는 아들의 하소연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난 아버지는 회포를 푸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낸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결국 또다시
들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내일은 걸음을 서두르셔야 합니다. 장날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서두를 때 서둘러야지 늘 급히 서두르다 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다음 날 부자는 달구지를 몰고서 산등성이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단풍이 곱게 물든 골짜기를 구경하면서 아들에게 천천히 가자고 했습니다.
아들은 듣는 둥 마는 둥 소를 몰았습니다.
 산 정상에 이르자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쩐 일인지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정오가 되어 마을에 도착한 아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서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장이 열리는 마을에는 말을
탄 도적들이 몰아닥쳐서 쌓아 놓았던 곡식을 모두 털어 간 뒤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사람은 서두를 때 서둘러야지 늘 급히 서두르다 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언 13:20)
 
    105. 재미 때문에

 늘 위엄을 갖추고 신하를 상대해야 하는 임금이 하루는 싫증이 났습니다.
하루도 변함없이 같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을 처리하고 권위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 임금으로서는 견디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임금은 무료함과 판에 박힌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서 광대를 한 명
고용했습니다. 광대는 임금을 위해서 온갖 재미있는 몸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그런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광대는 임금만을 즐겁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궁궐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신하들을 놀려대기 일쑤였습니다. 날이 거듭될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고 결국에는 임금까지 놀림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는
임금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광대의 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신하를
시켜서 그를 감옥에 가두게 하였습니다. 광대는 그것이 임금의 지시라는 것을
알고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그를 형장으로 데려가게 했습니다.
광대는 그것 역시 임금이 꾸민 각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형장에 들어선 광대는 조금 겁이 났습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고 서
있는 망나니를 보자 겁이 덜컹 났습니다. 망나니가 광대에게 무릎을 꿇고서
목을 길게 빼라는 지시를 내리자 턱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광대는 그것이
모두 임금이 꾸며낸 계획이라고 생각했지만 떨리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망나니가 시퍼런 칼을 번쩍 들자 광대가 두 눈을 감았습니다. 망나니는
임금의 지시대로 칼을 내리치는 대신에 광대의 목에 찬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임금이 있는 쪽을 바라보자 그가 웃으며
광대에게 다가왔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너의 무례함을 고치고자 내가 꾸민 일이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거라. 알았느냐?"
 임금이 광대의 고개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광대는 머리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광대는 너무 두려웠던
나머지 칼날이 목에 닿기도 전에 숨을 거두고 만 것이었습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신명기 4:9)
 
    106. 욕심의 끝

 아리따운 처녀가 집 앞에서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녀에게는
왕자님을 만나면 결혼해서 궁궐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었습니다.
처녀는 왕자님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는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처녀의
집 앞을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후로
처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름답게 단장을 한 채 집 앞에서 왕자님을
기다렸습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처녀 쪽으로 더듬더듬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리따운 처녀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얼굴은 물론 온몸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처녀 쪽으로 겨우
다가오더니 처녀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먼 곳에서 우리 집을 찾아가는 길인데 보다시피 앞을 보지
못하니 너무 힘이 드리구려. 나를 좀 안내해 줄 수 있겠소. 내가 은혜는 꼭
갚으리다."
 처녀는 그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으면서 거절했습니다. 자신은 꼭
기다려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처녀의 앞을 지나갔습니다.
 처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모르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왕자님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힘이 들었지만 처녀는 언제 지나갈지 모를 왕자님을 그래도 애써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왕자님이 자신을 보기만 하면 꼭 신부로 삼으리라는
생각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때 허리가 다 꼬부라진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이고서 처녀의 앞을
지나갔습니다. 등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짐은 너무 무거워
보였습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왠지 걱정스러워 보였지만 처녀는
자신이 선 자리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할머니를 돕느라 왕자님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의 갈피를 잡는 사이에 할머니는 벌써 저만큼 갔고
처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해도 왕자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껏 맵시를 부린 자신의
모습을 왕자님에게 보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 초조해졌습니다.
길 쪽으로 나가서 동네 어귀를 바라보았지만 왕자님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처녀가 막 돌아서려는 순간 심하게 몸을 다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다리를
크게 다쳤는지 꽤나 고통스런 얼굴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처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자신은 사냥꾼인데 짐승을 좇다가 그만 말을 헛딛어서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집까지만 데려다 부면 고맙겠다고 했지만 처녀는
역시 거절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
사람은 일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미 저녁이 되었지만 처녀는 여전히 왕자님을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인적이 끊기고 더 이상 왕자가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처녀는 기다렸습니다.
왕자님이 자신의 미모를 보기만 하면 반드시 그의 색시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처녀는 몰랐습니다. 낮에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던 그 사람들을 자세히
바라보면 모두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바로 꿈에
그리던 왕자님의 음성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궤휼로 그 감정을 감출지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잠언 26:26)
 
    107. 말이 필요 없는 사랑

 언제나 발명을 하느라 분주하기만 했던 토머스 에디슨도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청년 에디슨이 첫눈에 반한 사람은 평일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주일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메리 스틸월이었습니다.
 에디슨은 차분하고 아름다운 메리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메리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에디슨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메리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에디슨은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에디슨은 메리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에디슨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어 손톱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메리 역시 동전을 꺼내어 에디슨처럼 손톱을 두드렸습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친구들은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동전으로 손톱을
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표정은 전에 없이 환했습니다. 꼭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에디슨과 메리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결혼 계획을 알리고
나서야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웃었습니다. 곁에 있는 친구들 모르게 에디슨이
동전을 이용해서 모르스 부호로 청혼하자 메리 역시 동전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응답을 한 것이었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복음
20:29)
 
    108. 정직하라

 장사를 하러 먼길을 떠났던 사람이 그만 숲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길을
찾으려고 노력할수록 점점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해까지 떨어진지
이미 오래라서 길을 찾기는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장사꾼은 다시는 숲을
빠져나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 불안해졌습니다.
 한참을 헤매던 장사꾼 앞에 불빛이 보였습니다. 그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성이 나타났습니다. 성문에는
환영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드디어 편히 쉴 곳을 발견한 장사꾼은 너무
기뻤습니다.
 장사꾼이 반쯤 열린 성문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상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처럼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성을 보고서도 아무 것도 없는
듯이 그냥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으로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아니,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어째서 이 성을 못 본 체 하고 그냥
지나치는 겁니까?"
 그러자 성에서 사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이 성은 마법의 성이지요. 그래서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이 성이 보인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지 아는 체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정직하기 때문에 성이 나타난
것이라오. 들어오시오. 성안에 있는 보물이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편
84:11)
 
    109. 비난을 이기는 법

 오랫동안 정계에서 활약한 정치가가 그만 잘못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정치가의 잘못을 머리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평소 그에게 불만이
있던 사람들은 소문을 부풀렸습니다. 평생 쌓아 온 자신의 이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본 정치가는 환멸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차를
몰고서 자신이 자란 고향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정치가는
자신의 사정을 친구에게 소상히 털어놓았습니다. 이미 머리가 히끗히끗해진
정치가의 친구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불평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 있는 거야? 자네가 알다시피 나는 젊음을 다 바쳐서 이
나라를 위해서 동분서주했네. 나보다 더 좋은 일을 한 사람도 몇이 되지 않을
걸세.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부주의해서 범한 실수를 그렇게 부풀려서
공격해도 되는가 이 말일세."
 그때 마침 개가 보름달을 보면서 사납게 짖어 댔습니다. 정치가의 친구가
개를 말리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끄러운 개
짖는 소리와 정치가의 음성이 뒤섞여서 친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자네가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처할 방법을 알고 싶은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세. 저기 개가 짖는 소리를 들어보게. 그리고 저 달을 한 번 쳐다보게.
사람들은 이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자네의 잘못을 가지고 계속 몰아세우고
비난할 걸세.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게. 개가 아무리 짖어도 저 달은 여전히
환히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일세."
 친구가 말을 끝냈지만 개는 여전히 달을 보고 짖었고, 달은 은색 빛을
여전히 내뿜고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다니엘 10:19)
 
    110. 누가 성인인가

 하나님을 믿게 된 어느 젊은이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믿음을 닦기 위해서 황량한 광야로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친구들과 친지들은 그런 그를 걱정하며 배웅했지만 젊은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갔습니다.
 젊은이는 모래밭을 지나서 동굴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동굴이었습니다.
 "그래. 여기라면 하나님과 홀로 지낼 수 있을 거야. 이곳에서는 누구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끼어들 수 없겠지."
 젊은이는 어두운 동굴을 떠나지 않고서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를 시험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러자 젊은이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떠오르고 자신이 미련 없이 버리고 온 세상에서 누렸던 즐거움들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결국 그것들을 모두 물리치게
되었습니다.
 몇 달이 그렇게 지나자 시험은 끝났습니다. 이제 그의 마음은 하나님
이외에는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아서 평화롭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동굴을 떠나서 멀리 떨어진 마을로 가거라. 그 마을에서 구두를
만드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 집에 잠시 머물도록 하거라."
 젊은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리둥절했지만 다음 날 서둘러서 동굴을
나섰습니다. 동굴을 처음 들어설 때와 완전히 달라지 그는 광야의 모래밭을
지나서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을에 당도한 젊은이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사내가 문을
열었습니다.
 "당신이 이 마을에서 구두를 짓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 사내가 대답했습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세요. 먹을 것과 술 곳이 필요하신 것 같군요."
 사내는 아내를 불러서 젊은이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고 잠자리를 마련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젊은이는 그들과 함께 사흘을 지냈습니다. 젊은이는 부부에게
어떻게 사는지 여러 가지를 물었고 덕분에 그들은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는 사흘이 지나자 구두를 만드는 사내와 부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광야의 동굴로 돌아오면서도 젊은이는 어째서 하나님이
자신을 그 집에 보내셨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가 어두운 동굴에 다시
들어서자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소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기를 가진 아내가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두 사람은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돈과 음식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또 믿음이 아주 깊었고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기도를 했습니다.
친구도 무척 많았고, 활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젊은이의 말을 귀기울여 들으시던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너는 훌륭한 성인이다. 그리고 구두를 만드는 사람과 그의 아내도
성인이고."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린도전서
7:24)
 
    111. 가장 강한 것

 옛날에 아주 단단하기로 소문난 쇳덩이가 있었습니다. 도끼와 톱, 그리고
망치와 불꽃이 이 쇳덩이를 깨뜨리려고 시도했습니다. 서로 자신들만이 할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도끼가 제일 먼저 나섰습니다.
 "내가 쇳덩이를 깨뜨리고 말겠어."
 도끼가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쇳덩이에 떨어졌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도끼
날은 무디어 갔습니다. 결국 도끼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톱이 나섰습니다.
 "내게 맡기라고 뭔가 보여주겠어."
 톱은 쇳덩이를 자르려고 노력했습니다. 날카로운 이로 쇳덩이를 잘라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이만 닳고 망가진 채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망치가 톱을 탓하면서 나섰습니다.
 "그것 보라니까! 톱이 아무리 힘을 써도 나보다 나을 수  있겠어? 내가 한
수 가르쳐 주지."
 그러나 망치가 있는 힘껏 내려치자 마자 망치의 머리가 날아갔습니다.
쇳덩이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작고 부드러운 불꽃이 말했습니다.
 "내가 한 번 해 볼까?"
 모두 손을 저었습니다.
 "그만 둬. 네가 어떻게 할 수 있겠니?"
 불꽃은 쇳덩이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쇳덩이가 어찌할 수 없이 스스로
녹아 내릴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린도전서 13:8)
 
    112. 사랑이라는 돌

 한 사내가 마음이라는 도시를 찾아갔습니다. 그 도시의 마음들은 어쩐
일인지 모두 문을 걸어 잠근 채 문을 열어 주지 않아서 마음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사내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마음들이 모두 하나같이 닫혀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문을 두드려도 열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흰 돌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흰 돌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이 돌을 지니고 가도록 하게. 이것만 있으면 어떤 마음이라도 열 수 있네.
아무리 완고한 마음이더라도 말일세."
 사내는 지혜로운 사람이 건네는 돌을 받아 들고서 다시 마음의 도시로
떠났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수많은 마음들이 문을 활짝 열고서 그를
들어오라고 초대하였습니다. 미처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말입니다.
 사내는 그것이 너무 놀랍고 좋아서 돌을 준 지혜로운 사람에게
달려갔습니다.
 "이 흰 돌은 무척 신기합니다. 이 돌 덕분에 아주 쉽게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어떤 마음도 자네에게 문을 열어 줄 것일세."
 사내가 궁금한 듯 물었습니다.
 "이 돌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이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113. 혀

 어느 수다쟁이가 고민을 털어놓으러 랍비 모세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랍비에게 자신은 늘 수다를 떨다 결국에는 싸움을 일으키니 어찌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수다쟁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모세가 초에 불을 붙이고서 물었습니다.
 "당시니은 초의 불꽃을 어떻게 이용합니까?"
 "그야 그냥 내버려두지요."
 랍비가 이야기했습니다.
 "혀도 마찬가지랍니다. 당신이 허를 올바르게 이용하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겁니다."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전도서 5:3)
 
    114. 사진사 입장

 인간의 어리석은 교만을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가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나폴레옹이 그를 맞았습니다.
 "하나님이 곧 이곳에 오실 걸세. 그분이 입장하시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네."
 "나는 못 일어나. 내가 누군데 감히 일어서!"
 무솔리니가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나폴레옹이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는 예의 정도는 지키지."
 두 사람의 말다툼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마키아벨리가
소리쳤습니다.
 '"진정들 하라고!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지."
 잠시 뒤에 '똑똑똑' 하고 점잖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하나님의 입장을
알렸습니다.
 "차려!"
 마키아벨리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사진사 입장!"
 그러자 무솔리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짱을 끼고 가슴을 부풀리고 턱을
내미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하니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6:19)
 
    115. 용감한 사람

 나폴레옹이 가장 용감한 사람이라고 인정했던 마산 내이는 혈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제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결과가 뻔한
싸움에 나서는 쉽지가 않았던지 두 무릎이 심하게 떨려서 말에 오르기조차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마산 내이는 경멸하는 눈으로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면서 크게
소리쳤습니다.
 "마음껏 떨어봐라. 무릎들아! 내가 오늘 네 놈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안다면 그 정도로 떨어서 되겠느냐?"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여호수아 1:6)
 
    116. 양도둑과 성인

 형제가 어릴 적에 양을 훔친 죄로 이마에 '양 도둑'(Sheep Thief) 라는 뜻의
약자인 ST를 새기로 다니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형제 가운데 한 명은
어떡하든지 그 오명을 벗어나려고 먼 지방으로 가서 신분을 숨기고 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이마에 새겨진 이상한 글자가 무엇인지
물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결국
고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 양을 훔쳤다는 사실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나는
이곳에 남아서 나 자신과 이웃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을
하겠다."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는 여전히 성실하게 마을 사람들을 돕고
보살폈습니다. 누가 청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가 없는 마을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먼 외지에서 마을을 찾아온 사람이 이마에 글자가 새겨진 노인을
보았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마의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습니다.
 "오래 전 일이었는데. 자세한 것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마 그 글자가
'성인'(Saint)이라는 낱말의 약자일걸."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이사야 1:18)
 
    117. 안전 운행

 버스 회사에서 기사를 구하는 공고를 보고 세 사람이 지원 서류를 냈습니다.
서류 심사가 모두 끝나고 나자 회사에서는 세 사람과 직접 면접을 치르게
했습니다. 회사의 대표자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높은 절벽의 가파른 언덕 커브 길을 얼마나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가?"
 첫째 사람은 커브 길의 바깥 가장자리로부터 한 발짝 안쪽으로 운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것도 확실하게 말입니다.
 둘째 사람은 그보다는 잘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는 커브 길에서
바깥쪽 바퀴를 절반 정도 내보내고서도 운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셋째 사람은 주저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제 운전 실력으로는 커브 길의 가장자리까지 얼마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자신 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커브 길의
가장자리로 다가가지 않고 최대한 떨어져서 운전하겠다는 것입니다."
 버스 회사에서는 셋째 사람을 버스 기사로 주저하지 않고 뽑았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베드로전서 5:5)
 
    118. 행복한 사람

 토콰토 타소라는 이탈리아의 이름 높은 시인이 한 번은 찰스 9세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오래 전부터 토콰토의 명성을 들어온 터라
이것저것 물을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찰스 9세가 시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누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시오?"
 시인은 곧장 대답했습니다.
 "그야 하나님이 가장 행복하시지요."
 왕이 그에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 다음으로는 누가 가장
행복하겠소?"
 시인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런 하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겠지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전서 11:1)
 
    119. 양심의 실천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백인 정부를 중심으로 흑인 탄압이 아주 심하게, 그것도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본디 그곳은 흑인들이 살던 땅이었지만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백인들이 주인 노릇을 하면서 엄청난 횡포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늘
그런 백인들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거룩한 시온 교회에서는 세족식과 성찬식을 갖기로
했습니다. 성찬식이 있기 전에 세족식을 먼저 실시하기로 한 교회에서는 그날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습니다. 그 교회는 담임하는 목사나 교인들이 모두
흑인들이었는데, 올리버라는 백인 판사를 초대한 것입니다.
 올리버 판사는 흑인들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고, 흑인 목사는 그에게 마사
포트인이라는 여인의 발을 씻어 주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다른 흑인
여성들이 대개 그렇듯이 유모로 취직해서 판사의 자녀들을 오랫동안 양육하고
돌본 여인이었습니다. 올리버 판사는 평소 동료들과 달리 정의에 어긋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소수의 의견도 서슴지 않고 제기할 정도로 양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올리버 판사는 마사 포트인이 잠자리에 든 자신의 자녀들의 발에 얼마나
자주 입을 맞추었는지를 떠올리며 의식 순서에 따라서 그녀의 발을 닦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허름한 흑인 교회의 교인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신문들은 그것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올리버의 행동에 접하게 된 백인 사회는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백인 사회의 왜곡된 여론에 떠 밀려서 올리버는 정든 법복을 벗어야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올리버가 세족식에 참석했던 흑인 교회의 목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그는 본래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들 때문에 올리버가
법조계를 떠나게 된 것에 관해서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올리버가
대답했습니다.
 "그 날 목사님의 교회에서 세족식과 성찬식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내가 평생 몸담았던 사법계의 권위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후로 흑인들이 조촐하게 모여서 예배드리던 거룩한 시온 교회는 발을
닦아주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백인 사회에도 올리버의 영향을
받아서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흑인차별 정책을 비판했으며, 결국에 가서는 흑인들과 손을
잡고서 인종 차별이 사라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5)
 
    120. 순서대로

 1897년 5월 4일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소피 샬로트 알랜콩 공작 부인이
파리에서 자선 무도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런데 무도회장에 갑자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불길은 종이 장식과 간이 벽을 타고서 빠른 속도로 번져
나갔습니다. 은은한 음악과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실내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은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른들은 물론
어린이들까지 서로 뒤엉킨 채 출구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정신없이 서로 부딪히고 걸려 넘어졌습니다. 어린이들의 울음소리와
그릇들이 깨지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파티를 돕던 일꾼들은 미쳐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해
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불길과 연기를 피해서 겨우 단상에 도착한
일꾼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공작 부인이 그때까지도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은
채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일꾼들이 공작 부인을 안내하려고 하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 지위 때문에 이곳에 제일 먼저 들어왔소. 그러니 맨 마지막에
이곳을 빠져나가겠소."
 공작 부인은 일꾼들의 손길을 뿌리쳤습니다. 그녀는 결국 강한 불길 때문에
연회장을 벗어나지 못한 12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야고보서 2:14)
 
    121. 책임

 간호사가 의사를 도우며 하루 종이리 수술에 참여했습니다. 의사가 막
수술을 마무리 하려는 순간 무엇을 깨달았는지 간호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선생님, 거즈를 11개만 제거하셨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거즈는 모두 제거했어. 절개 부위를 이제 그만 덮자고."
 "아닙니다."
 간호사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12개를 사용하셨습니다."
 "내가 책임지지."
 의사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봉합사!"
 "그럴 수 없습니다."
 간호사가 발끈했습니다.
 "환자를 생각하셔야지요."
 의사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발을 들어서 나머지 거즈 한
개를 간호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잘했어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도전서 4:2)
 
    122. 누구나 필요한 격려

 미국 국회 도서관 당국은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물품 상자를 사람들
앞에 제시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파란 상자에는 '1865년 4월 14일 밤
대통령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내용물들'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상자는 에이브러험 링컨이 암살 당한 이래로 줄곧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공개 책임자인 대니얼 부어스틴 박사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상자의 내용물들을 하나 하나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상자에는 다섯 가지
물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A. 링컨'이라고 수를 놓은 손수건 한 장
 *펜을 수리할 때 사용하는 소형 나이프
 *실로 묶어서 고친 안경집
 *5달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는 지갑
 *신문에서 오려 낸 낡고 오래된 기사 몇 장

 링컨의 유품 가운데 스크랩 된 신문 기사 몇 장의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자 부어스틴 박사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신문에서 오려 낸 기사들은 에이브러험 링컨과 관계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기사 가운데는 에이브러험 링컨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언급하는 존 브라이트의 연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평가가 오늘날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1865년 당시에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생전에 그처럼
논란과 시비의 표적이 되었던 대통령도 없었습니다. 찬사보다는 비난을 더
많이 받았던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통령의 비난자들은 무척이나 격렬했고 많았습니다. 단지 링컨의 외모만
보아도 기분이 나쁘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원숭이, 바보,
괴물, 허풍선이 사기꾼이라는 별명이 당연한 것처럼 붙여졌습니다. 뉴욕의
어느 신문은 링컨에 대한 기사를 실을 때마다 대통령이라는 호칭보다는 '길
저쪽에 사는 소름끼치는 비비원숭이'(that hideous baboon at other end of
avenue)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링컨은 자신이 이끄는 나라가 맹목적인 증오와 잔혹한 전쟁 때문에 남과
북이, 또 계층끼리 갈갈이 찢길 것을 염려하면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남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뽑아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배신자로
간주했으며, 북부는 분리주의 움직임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링컨이 달가울
리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존 브라이트의 기사는 아주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브라이트의 것을 비롯한 몇몇 기사는 링컨에게 상당한 힘과 격려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스크랩한 기사들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로
말입니다. 링컨의 유품을 확인하기 위해서 국회 도서관에 모인 사람들은 그
손때 묻은 기사들 때문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제기되는 비난이 너무 심해서 스스로 용기를 잃을 때면 홀로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에 앉아서 자신의 업적을 정당하게 인정해 준 기사들을
주머니에서 꺼내어서 읽곤 했을 링컨을 떠올렸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이사야 26:4)
 
    123. 전문가의 몫

 유명한 여배우 빌리 버크가 여객선을 타고서 대서양을 횡단하고 있었습니다.
버크가 보니 옆 테이블에 앉은 신사가 독감 때문에 크게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옆 테이블로 다가갔습니다.
 "많이 불편하신가요?"
 빌리 버크는 꽤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가 말씀드리지요."
 그녀는 자신의 처방을 신사에게 자신 있게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객실로 돌아가셔서 주스를 많이 드세요. 아스피린을 두 알 잡수시고 담요를
있는 대로 모두 꺼내어 덮고나서 땀을 푹 내세요. 제 말이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거예요. 저는 할리우드에서 온 빌리 버크랍니다."
 신사는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그 여배우에게 소개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메이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메이어 박사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11)
 
    124. 원수를 사랑하라

 오랫동안 서로 반목하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일가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기회가 닿기만 하면 다투는 형제 때문에 집안의 나머지 사람들도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형제를 불러서 얼마 있지
않으면 위대한 랍비가 자신들이 사는 마을을 찾아올 것이니 반드시 만나
보도록 일렀습니다. 그 랍비라면 두 사람을 화해시킬 수 있으리라고 아버지는
확신했습니다.
 드디어 알려진 대로 학식이 높은 랍비가 그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형제도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랍비를 만나기 위해서 미리 약속 시간을
잡았습니다. 랍비는 명성만큼이나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형제로부터
각자의 속사정을 전해들은 랍비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이나 하듯 즉시 두
사람의 해묵은 불화를 해소시켰습니다. 둘은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화해의 포옹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형제가 뿌듯한 마음이 되어 문을 열고 나아가려는 순간 랍비는 모든
유대인들이 그렇듯이 상대방에게 새해를 기념하는 소원을 한 가지씩 빌어
주도록 요청했습니다. 첫째가 동생을 돌아보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네가 내게 원하는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빈다."
 그 말을 들은 동생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습니다. 동생은 랍비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랍비님, 저것 보세요. 다시 한 번 붙어 보자고 말하고 있잖아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4)
 
    125. 전갈의 속성

 어느 경건한 사람이 커다란 나무 아래서 늘 그렇듯 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묵상을 하고 있던 사람이 강을 보니 간밤에 내린 비 때문에 급속히 물이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뿌리에 전갈 한 마리가 겨우 매달려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급한 물살에 휩쓸려 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나무의
다른 뿌리를 잡고 겨우 강둑을 내려가서 전갈을 꺼내어 자유롭게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내밀 때마다 전갈은 꼬리를 세워서 쏘아
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갈이 주는 고통을 참아 내면서 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한참 동안 지켜보던 사람이 참다못해서 나섰습니다.
 "전갈이라는 게 본디 늘 쏘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모르셔서
그러시는 겁니까?"
 여전히 힘들게 나무의 뿌리를 붙잡고서 전갈을 구해 내려고 애쓰던 경건한
사람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내 본성은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낸들 어쩌겠습니까? 전갈이 자신의 본성을 바꾸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
 
    126. 시기 때문에

 늘 자신보다 더욱 잘 나는 새를 시기하는 독수리가 있었습니다. 독수리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새를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활과 화살을
갖춘 어느 사냥꾼이 독수리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소문을 듣자 하니 네가 저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떨구고 싶어한다지?"
 사실이었습니다. 독수리는 자신보다 높고 빨리 나는 그 새가 무척이나
미웠습니다. 그 순간에 사냥꾼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만일 독수리가 깃털을
몇 개 뽑아 주면 그것으로 화살을 만들어서 그 새를 떨어뜨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시기에 눈이 먼 독수리는 아무런 생각없이 깃털 하나를 뽑아
주었습니다.
 사냥꾼이 독수리의 깃털로 만든 화살로 시위를 당겼습니다. 화살이 시위를
떠났지만 그 새는 너무 높이 나는 바람에 근처에도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사냥꾼이 돌아보자 독수리는 두말 없이 깃털을 하나 더 뽑아서 건넸습니다.
사냥꾼이 화살을 날렸지만 표적이 빗나가기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한 독수리는 사냥꾼이 입을 미처 떼기도 전에
깃털을 하나 더 뽑아 주었습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수리보다 더
빨리 나는 새는 사냥꾼의 화살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습니다. 허공을 때리는
화살만큼이나 독수리의 깃털도 줄어 들어갔습니다. 독수리의 여전한 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깃털까지 사냥꾼에게 모두 뽑아 준 독수리는 최후의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독수리에게 마지막 깃털을
넘겨받았던 사냥꾼은 그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지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더 이상 날 수 없게 된 독수리를 힘들이지 않고 잡아서 자신의
망태에 집어넣었습니다.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욥기 5:2)
 
    127. 모욕

 코코넛 나무에 앉은 세 마리의 원숭이들이 주변을 떠도는 이야기를 화제로
삼아서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주름살이 특히 많이 잡힌 원숭이가
이맛살을 찡그리며 다른 원숭이들에게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자네들 알고 있나? 요즈음 이상한 소문이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 말일세.
절대 그럴 리가 없어."
 한창 친구의 털을 고르고 있던 원숭이가 말을 받았습니다.
 "아, 인간이 고귀한 우리 종족의 후손이라는 이야기 말이로군. 어찌 그런
치욕이 있을 수 있는가? 아니, 우리 원숭이들이 언제 아내를 버리거나
아이들을 굶기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들은 절대 그들을 해롭게 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지."
 "그 뿐이야? 원숭이들은 자기 새끼들을 다른 원숭이에게 맡기거나
내팽개치는 법이 절대 없어. 그것을 어찌 어미라고 할 수 있겠어."
 처음 화제를 꺼냈던 원숭이가 친구들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원숭이들이 코코넛 나무 주변에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보지 못했네. 코코넛 나무가 상하면 누구도 코코넛 맛을 볼 수 없지 않은가?"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다른 원숭이가 끼여들었습니다.
 "우리 원숭이들이 절대 하지 않는 것들이 또 있지. 첫째, 고민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 없다. 둘째, 총이나 칼을 가지고 다른 원숭이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셋째. 배가 부르면 절대 더 이상 코코넛을 따지
않는다. 넷째. 재미로 다른 원숭이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러니 결론은 분명하지 않은가? 인간이 우리의 후손이라는 것은 모욕이야.
모욕! 우리가 절대 들어서는 안 되는 모욕이라고!"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128. 모범의 힘

 1865년 어느 주일 아침, 흑인 한 명이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에 있는
아름다운 백인 교회에 들어섰습니다. 예배당에서는 한창 성찬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자 옆 통로를 걸어서 제단 앞으로 나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회중 사이에 즉시 분노가 일었습니다. 공화당 대표로 선거에
나가서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이 노예제도를 반대하자 남부 사람들은 남
캐롤라이나를 선두로 삼아서 11개 주가 아메리카 연방을 세웠습니다. 남부
산업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노예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결국 1861년 북부와 남부는 전쟁을 개시하였고 1865년에
남부가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 한 때 남부 연맹의 수도였던 리치먼드의
백인 교회에서 감히 흑인이 성찬식에 참여하겠다고 앞으로 나선 것이었습니다.
성찬식에서 흑인과 함께 졸지에 포도주를 같은 잔으로 둘러 마셔야 할 입장에
처한 백인들의 자존심은 커다란 상처를 입었습니다. 얼마 전에 겪어야 했던
수치스런 패배의 기억도 함께 떠올린 그들은 흑인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인들이 더 이상 불만을 억누를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에 어느
평신도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헤치고 통로를 지나서 제단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흑인의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다름 아닌 남부군
전체를 지휘했던 로버트 E. 리 장군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남부 출신 가운데 그 누구보다 전쟁의 패배에 대한 회한과 상처가
남았을 로버트 리 장군이 흑인과 더불어 성찬을 받기 위해서 앞으로
나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회중들은 자신들이 잠시
전에 느꼈던 분노와 상관없이 리 장군을 따라서 말없이 일어나 제단 쪽으로
줄을 잇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요한삼서 1:11)
 
    129. 하나의 희생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콰이강 교량 건설 공사에 많은 연합군
포로들을 이용했습니다. 그 공사는 병력과 전쟁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것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했지만 수많은 전쟁 포로들이 희생된 위험한 철도
건설이었습니다.
 하루는 공사에 필요한 연장이 없어졌습니다.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들이
공사를 지연시킬 목적으로 연장을 내다 버린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연장을
포로들의 생명보다 더 중시하던 일본군으로서는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일본군은 전쟁 포로들을 한 자리에 집합시켰습니다. 포로들 주위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에워쌌습니다. 소장이 포로들에게 소리쳤습니다.
 "만일 공구를 가져다 버린 자가 5분 안에 이 앞으로 나서지 않으면 너희
모두를 사살하고 말겠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포로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평소의 잔혹한 일본군 태도를 미루어 볼 때 이제 몇 초 안에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기관총이 불을 뿜을 게 분명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영국군 포로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이 연장을
가져다 버렸다고 자수했습니다. 일본군은 그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습니다. 영국군 포로는 무수한
총알을 맞고서 그만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나서 일본군이 없어진 줄 알았던 그 연장이
발견되었습니다. 누가 감추거나 버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미처 챙기지
못해서 당시의 작업장에서 그대로 발견되었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복음 13:35)
 
    130. 선한 싸움

 신앙생활을 아주 열성인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보기에
어긋난 것은 절대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퍼붓는 말은 거침이
없었지만 냉혹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습니다.
 그에게 어느 날 멀리서 랍비가 찾아왔습니다. 랍비는 사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랍비가 근황을 묻자 사내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세상에 파묻혀서 지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을
위해서 종일토록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그릇되게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과 싸우는 일에 헌신해 왔습니다.
거짓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합니다."
 랍비가 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자네는 상대방을 공격하기에 앞서 그들의 입장에 서 본 적이 있었나?"
 "물론입니다."
 사내가 버릇대로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더 큰 공격력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세밀하게 연구하곤 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들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서 연구를 하는 겁니다."
 사내의 이야기가 끝나자 랍비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내의 이름을 마구 부르며 그에게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내는 랍비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랍비를 말리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랍비의 음성이 낮아졌습니다. 평소처럼 차분해진 랍비가
사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적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네.
자네는 적을 공격할 때 그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 지도 알아야 하네. 자네가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적을 완전히 이해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진리의
종이 되는 것일세."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태복음
7:2)
 
    131. 목숨을 다한 사랑

 1941년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포로 한 명이 탈출했습니다. 그
사실을 보고 받은 수용소 소장 프리쉬는 그날 저녁 포로들을 전부 한 자리에
집합시켜 놓고서 명령을 내렸습니다.
 "도망자를 체포하지 못했다. 그 자 대신에 너희들 가운데 10명이 벙커에
수용되어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하고 죽게 된 포로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스쳤습니다.
소장이 한 걸음 다가서서 맨 앞줄에 서 있는 포로들의 얼굴을 차갑게
노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대상자를 가려내기 시작했습니다
 "너!"
 얼굴이 완전히 백짓장처럼 창백해진 사내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너...너...그리고 너...또 너...."
 그렇게 해서 10명이 모두 가려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내가 울부짖었습니다.
 "오, 불쌍한 내 아내와 자식들...!"
 그 순간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포로의 대열 가운데 한
사람이 이탈해서 소장 앞으로 나섰습니다. 소장이 재빨리 권총을 뽑아
들었습니다.
 "멈춰! 이 폴란드 놈이 왜 이러는 거야?"
 포로는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저 사람 대신 내가 죽겠소."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사제요."
 잠시 동안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소장은 마음을 굳혔다는 듯이
퉁명스레 말했습니다.
 "좋다. 저 자들과 합류하라."
 이렇게 해서 사제는 죽음의 행렬에 합류하여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나중에서야 그가 폴란드 출신의 프란시스코회 소속
막시밀리언 콜베 신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한 생존자는 30년이 흐른 뒤에 막시밀리언 콜베의 희생이
수용소에 갇혀 있던 나머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수용소 전체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우리는 영적인 암흑 속에서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사랑의 기준을 높게 세우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이들처럼 고문을 당하고, 이름과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린,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를 위해서 고통스런 죽음을 자청한
것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인간성이 땅에 떨어지고 폭압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또 절망이 승리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수천 명의
포로들은 세계가 계속해서 존재하리라는 것과 고문을 일삼는 자들이 그것을
파괴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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