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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17)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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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여성 신학(Ecofeminist Theology)
생태 여성 신학(Ecofeminist Theology)


문영석
(서강 대학교 수도자 대학원 강사/환경 신학)


  하느님께서는 전혀 인간과 닮으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성을 구별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영(靈)이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의 '완전성'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어떠한 완전성, 즉 어머니, 아버지, 배우자의 완전성을 반영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편, 370항).

  지난 호에 언급한 이코페미니즘이 생태학과 여성학의 조우(遭遇)라면 이번 호에서는 이코페미니즘과 신학의 접목에 대하여 이야기하여 보겠다. 1960년대 이후 전통 신학은 여러 가지 다양한 도전들을 받아 왔다. 해방 신학, 흑인 신학, 여성 신학, 과정 신학, 실존 신학, 문화 신학, 사신(死神) 신학, 정치 신학, 생태 신학 등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다양한 신학적 발제들은 모두 전통적인 신학의 방법론에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기하면서 이 시대의 거대한 사회 문화적 변혁에 응답하려는 새로운 신학적 해설들의 시도였다. 현대의 그리스도교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도전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질문은 종교 자체의 생명력에 관한 문제이다. 개념적으로 세속화에 대해 말하건 현대주의적 영향에 대해서 말하건 간에, 역사적으로 이 시대만큼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소멸, 신의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서술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그러므로 오늘과 같은 문화적 위기의 시대에서 문명의 새로운 정신적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신학자들은 물려받은 전통들을 해체하고 새로운 개념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카우프만(Gordon Kaufman)1)은 강조한다.

  1. 이코페미니즘과 신학의 조우(遭遇)

  1960년대 북미에서 일어난 두 가지 커다란 운동은 환경 운동과 페미니즘의 태동(胎動)이었으며 이 두 가지 운동이 서로 조우하여 연계되면서 1974년 생태 페미니즘(Ecofeminism)으로 확장 전개되었고 급기야 이런 사상은 신학과 만나면서 같은 해에 이코페미니즘과 신학을 잇는 첫 번째 책, [새 여성, 새 땅]이 로즈마리 래드포드 류터(Rosemary Radford Ruether)에 의해서 발간되었다.
  류터의 생태 여성 신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가이아와 신](Gaia and God)은 종교에 관한 역사적 분석 이론이자 신학에 관한 생태론적 재해석이다. 계약, 성사, 영성 그리고 정책 등의 실천과 개념 유형을 이용하면서 현대 문화 안에서 종교적 전통의 갱신을 추구한다. 류터는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서구 문화 유산인 고대 근동, 히브리즘, 그리고 헬레니즘의 세계관과 여기서 피어난 창조 설화, 죄에 관한 개념들을 분석하면서 이에 대한 생태론적 치유를 다루고 있다. 그녀는 생태계의 위기가 일차적으로는 서구의 신학적 전통에 형성된 "존재의 계층적 사슬"(hierarchical chain of being), "지배의 사슬"(chain of command)2)과 같은 개념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구별 그리고 하위 계층은 상위 계층에게 지배당해야 한다는 이원적이며 대립적인 인간 이해와 세계 이해에서 유발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사고 방식에서 형성된 여성과 남성, 지배자와 피지배자와 같은 상호 대립적인 관계 구도들과 관념들이 결국은 인간도 한 구성원인 생태 공동체(biotic community)까지도 파괴로 이끌어 왔다고 주장한다.3) 이와 같은 대립 구도적 시각은 여성을 남성이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국한시키며, 나아가 여성`=`자연이라는 등식이 사용되곤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이원론적 개념의 모형은 근대 서구 사회를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기타의 세계에도 매우 큰 영향을 주어 왔다. 이처럼 여성, 자연, 종족, 계급과 같은 네 가지 억압 구조의 연쇄 고리를 실라 콜린즈(Sheila D. Collins)는 "연쇄 기둥"(interlocking pillar)4)이라고 하는 반면, 류터는 이를 "상호 구조성"(interstructuring)5)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처럼 불연속적으로 이원화된 세계관에서는 두 개의 쌍 중 한 쪽은 목적을 위한 수단의 영역으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분은 존재물에 내재된 고유한 가치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유용성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따라서 이들 사이에는 상호 협동적 행위보다 경쟁적 행위가 권장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속 구도적 개념의 고리를 끊어 버리지 않고서는 온전한 세상의 구원과 치유를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코페미니즘이란 기존의 철학, 과학, 종교 안에서 형성되어 온 문화 비판을 토대로 형성된 운동이자 이론이다. 이들은 서구 유럽의 문화적 유산이 여성과 자연에 대해 이원론적 억압이라는 사고를 만들어 낸 유다-그리스도교의 전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분석을 시도한다. 비옥한 옥토가 아닌 황량한 사막이라는 자연 환경에서 태동된 유다교는 따라서 자연계를 지배하는 초월적 신의 힘을 더욱더 요청하게 되었고 이런 초월적 신관에 의지한 인간 이해로 후기 그리스도교는 인간 중심주의적 문화와 신학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상이 바로 환경 파괴를 낳은 현대 서구 기계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이다.6) 이들의 주장은 수직적, 군주적, 가부장적인 신관(神觀)이 자연의 신성함과 그리고 그 신성한 영역으로부터 지구와 여성을 소외시켜 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패권적, 권위적인 그리스도교의 기존의 신학적 개념들을 좀더 건설적, 상황적, 페미니스트적 그리고 상호 유기적 신학의 새로운 모형을 창출하려고 노력한다.
  최근의 생태 여성 신학은 서구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신우주론(new cosmology)을 기반으로 한다. 우주론은 류터의 말대로 과학적, 사회-윤리적, 그리고 신학과 영성에 기반을 둔 세계관의 합성물이며 그 동안 그리스도교가 구원의 역사에서 지구의 역사를 배제시킴으로써 생태계의 파괴를 촉발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코페미니즘과 새로운 우주론의 결합은 기왕의 인간 중심주의에 기반을 둔 종교적 전통과 그에 따른 세속적 가치와 의미 등에 근원적인 비판을 감행한다. 그러므로 현대 우주 과학은 그 동안 제대로 기능을 못해 온 우주론을 개선하여 새로운 우주론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전의 기계적 비활성적 우주론에서 유기적이고 살아 있는 우주론으로 역사적 전환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
  생태 여성 신학자들 중에서도 류터는 신과학(新科學, new science)과 우주론의 유기적인 관점(Gaian view)에 입각한 생태 여성주의적 신우주론(神宇宙論 theocosmology)을 주장하는 반면, 맥페이그(McFague)는 "하느님의 몸으로서 세상"(the world as the body of God)이라는 은유적 신학(metaphoric theology)을 통해서 신학과 생태학이 조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니스 피터스(Denise Peeters)는 류터의 노선을 따라, 가이아 이론(Gaia theory)이야말로 생태계의 치유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사상을 위해서도 최선의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신학의 패러다임이 이미 시대 착오적이며 따라서 새로운 신학은 새로운 환경 윤리와 함께 만물을 유지시키고 생산하는 "가이아와 함께 가이아 안에서 역동적 힘의 신비"(the mystery of power-within and with power-with Gaia)로서 성령의 재발견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태 여성 신학은 신과학에 의존하고 있는 우주론이 기존 신학의 본질적 구성 요소들에 대해 비판을 감행하면서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환경은 사회이며, 사회는 생태계를, 생태계는 생물권을, 생물권은 전 우주를 그 환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 생태 여성 신학이 기존의 문화 전통과 신학에 던지는 물음들

  예수님께서 여성 해방주의자냐 아니냐는 신학자들간에 논란이 많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맨 먼저 여자들에게 나타났다는 사실이 생태 여성 신학자들에게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여자의 말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법정에서 증인도 될 수 없었던 사회에서 여자에게 맨 먼저 나타나셨다는 사실은 대단히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예수님의 언행이 당시의 화석처럼 굳어 버린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충격이 아닌 것이 없지만, 유다인인 예수님과 이방인인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은(요한 4,4-42), 그것도 공공 장소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는 사실은 당시 사회의 기존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루가 10,38-42)에서도 여자가 토라를 배우는 일이 전혀 허락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성의 역할을 부엌일에만 제한하지 않으시고 당시의 남자들같이 영적이고 지적인 탐구를 좋아하는 마리아를 "참 좋은 몫을 택하였다." 하고 칭찬하신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예수님의 반 성별주의적 태도가 그의 후대 제자들에게 잘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교회 안에서 여자들에게 어떤 공식적 직위도 마련되지 못했고 사도 바오로는 아예 여자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충고하였다(1고린 11,3.7.9). 스위들러(Leonard Swidler)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충고한다.

"이러한 모든 증거들로 미루어 예수님께서 뿌리깊은 남성 주도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존엄과 평등을 강력하게 증진시키고자 하신 것은 명백하다. 예수님께서는 여성 해방주의자이셨다. 그것도 아주 급진적인 여성 해방주의자이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이러한 그리스도를 닮을 수는 없을까?"7)

  이제까지의 서구 전통 신학은 인간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고, 그 인간은 바로 남성과 동일시 되어 왔으며 그 남성은 또한 서양의 백인을 의미했다. 이런 관점은 전통적으로 하느님을 "몸집과 키가 크고 늙고, 회색 빛 수염이 나고, 파아란 눈을 가진 백인 남성"8)으로 묘사해 왔다. 이런 '백인 남성 신학'(White Male Theology)은 따라서 여성의 경험과 관점을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백인이 아닌 타민족의 경험과 관점도 지나쳐 버렸다는 점이다. 이처럼 왜곡된 신 이해와 결별하고 이제는 지배와 종속에 기반을 둔 '종속의 신학'(theology of subordination)이 아니라, 원래 성서에서 의미하는 인간과 인간의 동등한 관계뿐만 아니라 자연에까지도 그 동등의 개념이 확대된 '동등의 신학'(theology of equivalence)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남성적, 가부장적, 제국주의적, 승리주의적인 신학적 메타포(meta-phor)들이 오늘날과 같은 평등적이며 친생태적 사회에 조화를 이룰 수 없음은 명백하다. 여성 신학은 미래 신학계의 발전에 가장 의미심장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기에 존 컵(John B. Cobb Jr.)9)은 여성 신학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미래를 위하여 현대의 가장 중요한 소리이며, 만일 기성 전통 교회가 여성 신학이 주는 이런 새로운 계시와 지혜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교회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생태 여성 신학은 창조론, 계시론, 인류학, 종말론, 죄에 대한 기존의 개념, 구원론, 성서의 위치와 권위뿐만 아니라 신학적 방법론, 하느님에 관한 교의,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까지도 신학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논의하는 신학이다. 이러한 생태 여성 신학은 기존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기존의 서구 전통에 근거한 교의 신학에 대한 생태 여성 신학의 재구성 시도는 실로 거대한 신학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성 신학의 특성은 문화 신학적 관점과도 맞닿아 있다. 곧 신학이 인간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또한 더 나아가서 신학뿐 아니라 신의 계시는 문화적으로 조건지어진 개념과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인간의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석학적으로 말하면, 계시와 신학은 상호간에 서로 얽혀 있어서 더 이상 그 둘을 따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이른바 가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신학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10) 문화란 삶 전반에 걸친 인간의 행위다. 삶의 신학으로서 문화 신학은 초시간적이거나 초공간적이지 않고 실존적이며 그러기에 역사적이다. 그러므로 시대의 흐름이 갖는 특수한 맥락 안에서 이해된다. 문화 신학의 이런 특징은 실존적이며 역사적인 삶이 전제되지 않아도 이야기될 수 있는 보편적 교리 및 교의 신학과는 이런 점에서 분리된다. 교의 신학은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진리의 보편적 규범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교의 신학 역시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문화 신학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삶의 문화적 지평을 떠나서는 어떤 신학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성차별적 문화권 안에서 행하여진 성서 해석은 그 해석자의 전제, 지적인 개념들, 정치 또는 개인적 편견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여성 신학이 발굴해 내었다는 점이다. 남성 우위적 관점은 신성 불가침의 제도처럼 오랜 역사에서 인간의 의식 안에 깊게 새겨져 왔다. 이처럼 남성 중심적 문화의 관점은 신학이나 역사의 모든 작업을 은연중 결정해 왔으며, 그 결과 그런 작업들을 '남성의 이야기'(his-story)라는 뜻의 역사(history)라고 규정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만약 여성이 그들의 뿌리나 전통을 접하고 싶다면 이러한 남성위주적 관점에서 써 온 역사를 다시 써야 하며, 신학은 그때야 비로소 'his-story'뿐만 아니라 동시에 'her-story'로서 온전한 모습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이다.11) 생태 여성 신학은 주님의 수염을 깎고 치마나 입혀 드리려고 하는 의상 신학이 아니다. 종교의 근본 기능이 인간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 주는 것이라 한다면 현대 신학 또한 새로운 지평 확대를 통해 가부장적 문화 전통 안에서 그 동안 하느님의 부성적 모습만이 일방적으로 강조되고 모성적 모습은 상대적으로 무시되어 버린 하느님의 온전한 참 모습을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태 여성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전통이 여성의 소외와 억압을 합리화하고 강화해 왔음을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기존의 신학, 상징, 제도들을 근본적으로 갱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태 여성 신학은 이런 갱신을 통해서 종교 안의 감추인 거대한 힘과 그리고 기존의 종교적 전통들이 주는 감추어진 가정들 안에 놓인 많은 위험 요소들을 발굴해 내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1) "Nuclear Eschatology and the Study of Religion",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51, 1983년, 13면.
2) "Toward an Ecological-Feminist Theology of Nature", Readings in Ecology and Feminist Theology, Kansas City, Sheed and Ward, 1995년.
3) Gaia and God: An Ecofeminist Theology of Earth Healing, San Francisco, Harper, 1992년, 2면.
4) A Different Heaven and Earth:A Feminist Perspective on Religion, Vally Forge, Judson Press, 1974년, 161면.
5) New Woman/New Earth:Sexist Ideologies and Human Liberation, New York, Seabury, 1975년.
6) Lynn White Jr., "The Historical Root of Our Ecological Crisis", Ian Barbour ed., Western Man and Environmental Ethics, Reading, Mass.:Addison-Welsley Publishing Co., 1973년, 25면.
7) 강남순. [현대 여성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1994년, 150면에서 재인용.
8) Alice Walker, The Color Purple,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82년, 178면.
9) "Roundtable Discussion:The Influence of Feminist Theory on My Theological Work" Journal of Feminist Studies in Religion 7(1991년 봄), 95-126면 참조.
10) 강남순. 앞의 책, 107면.
11) 위의 책, 107-108면 참조.


http://www.cbck.or.kr/pub/samok/s1999/s9907/envir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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