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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1 (03:04) from 217.95.17.226' of 217.95.17.226' Article Number :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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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의 도전과 전망




종교학의 도전과 전망  

배국원 / 침례신학대 교수. 종교철학.





종교학의 도전

우리나라에서 ‘종교학’은 아직 친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기상천외한 이름의 학과들을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이지만 ‘종교학과’를 설치한 대학은 아직까지 다섯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셀 수 있을 만큼 영세한 위상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에서 종교학과는 고사하고 아예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까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도 있다.

사실 한국은 대단히 종교적인 나라이다. 각 종파와 종단에서 발표한 신자들의 숫자를 합했더니 우리나라 인구의 꼭 두 배가 되는 통계가 발표되었던 적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全 국민의 절반이 불교 신자이고 또 다른 절반의 절반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부정할 길 없는 우리의 종교현실이다. 이렇게 종교성이 강한 나라에서 역설적으로 ‘종교’라는 개념이 상당히 푸대접을 면치 못하고 있음은 흥미롭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은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확인하는 데 극히 인색하다.

자신의 불교적 신앙 혹은 기독교적 신앙의 내용이 ‘종교인’이라는 일반적인 명사로 표현될 때 어쩐지 왜곡되고 평가절하 되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많아도 ‘종교인’이라는 명칭은 낯설고 별별 종교가 성행해도 정작 ‘종교’라는 개념은 인기가 없다. 신학과와 불교학과 등을 설치한 대학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것도 모자라서 우편통신대학까지 극성인데 ‘종교학과’는 여전히 썰렁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종교학의 위상은 분명히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20세기 후반부에 들어서 영국과 독일 등 서구 여러 나라와 특히 미국과 캐나다에서 종교학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여 왔다. 태어난 지 불과 100여 년이 지난 종교학은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철학이나 신학에 견주어 볼 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학문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느 국사학자가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신라가 ‘후진적 건강성’을 가졌다고 지적한 것처럼 종교학이라는 신생학문은 특히 北美대륙이라는 학문적 후발국가에서 이러한 후진적 건강성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부여받았는지도 모른다.

미국 내에서의 종교학의 성장을 손쉽게 감지할 수 있는 예는 일반 서점에 한번 들러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가령 영어로 읽을 수 있는 불교 경전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된 불경보다 더 많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어려운 남방불교와 티베트 불교에 관한 엄청난 분량의 서적들이 ‘종교’분야 서가를 장식하고 있다. 또 주자朱子, 왕양명王陽明, 퇴계退溪 등 성리학자들과 더불어 루미Rumi, 알 가잘리al-Ghazzali 등 이슬람 철학자들의 저서에 대한 충실한 번역본들도 사이좋게 진열되어 있다. 이처럼 일반서점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세계 여러 종교전통에 관한 다양한 저서들이야말로 곧 종교학이 이룩한 성과를 웅변해 주고 있다.

미국에서 종교학의 위상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지난 20여년 간 어지간한 대학마다 종교학과가 다투어 설치되어서 현재 1,200여 곳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신학과Theology Department들이 종교학과Study of Religion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고 소규모 대학에서 학부생들을 위하여 제공되던 ‘철학’ 교양과목들도 이제 ‘종교와 철학Religion & Philosophy’이라는 명칭 아래 강의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종교학은 전통적인 신학과 철학의 학문적 위치를 위협할 만큼 북미 대학사회에서 중요한 분야로 떠오르게 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신학과 철학의 명칭이나 편제의 변경이 아니라 종교학이 신학과 철학의 내용 자체에 미치는 영향이다. 종교학은 지난 2천년 동안 때로는 상호 보완적으로 때로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왔던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새로운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흔히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복음과 문화, 케류그마와 필로소피아kerygma and philosophia, 신앙과 이성,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신의 도성都城과 인간의 왕국 등의 이항대립으로 표현되는 문제의식이 서구 기독교 역사 전체를 관통하여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각각 독특한 뉴앙스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큰 범주에 놓고 볼 때 역시 신학과 철학이라는 두 학문적 영역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신학과 철학은 서구적 지성이 씨름하여 온 모든 문제를 상징한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1600년 전에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토로하였던 말은 아직도 서구인들의 의식 깊은 곳에서 맴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신과 나의 영혼을 알기 원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가? 그렇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젊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뇌하였던 ‘神과 자아’라는 궁극적인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학문적 소산이었던 신학과 철학에게 종교학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던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종교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과 자아의 문제가 결코 서구인들만의 문제의식이 아니었으며 기독교신학과 서구철학만이 그 해답을 독점하고 있는 학문도 아니라는 점이다. 종교학은 절대자를 찾는 갈망이 수많은 다른 종교 전통에도 뚜렷하였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종교학은 참된 자아의 실상을 추구하는 열정이 다른 문화에서도 지극하였음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 즉 종교학이 제공하는 전망은 첫째, 서구의 전통적 문제의식이 얼마나 세계적, 보편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 그 해답은 얼마나 서구적, 한정적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처럼 종교학은 기존의 서구신학과 철학의 내용이 편협하였음을 폭로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해체’하고 ‘건설’하려는 이중적 계기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디컨스트럭션deconstruction’이라는 현대의 유행어는 흔히 오해되듯 단순한 해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destruction) 또한 건설의 동기를 포함하는 것이다(de-construction). 바로 여기에 종교학이 신학과 철학에 던지는 도전의 의미가 있고 그것은 곧 종교학의 포스트모던적 성격을 지시한다.

종교학의 포스트모던적 의미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신선하지도 않게 되었다. 1980년 《르몽드Le Monde》紙가 ‘지금 유럽에 포스트모던이라는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고 보도할 때만 하여도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는 서구 지식인들을 전전긍긍하게 내몰던 정체불명의 개념이었다. 불과 10년 전 우리나라에 이 말이 처음 거론되기 시작하였을 때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은 무슨 유령영화를 대하듯 불편해 하면서도 자꾸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였었다.

고전적 종교학자인 루돌프 옷토Rudolf Otto가 말하듯 이른바 ‘두려우면서도 황홀한 신비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 같은 이중성이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를 더욱 유행시키게 하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포스트모던은 더 이상 두렵지도 신비롭지도 않게 되었다. 밝은 조명 아래 정체가 드러난 초라한 유령같이 포스트모던은 이제 그 정체를 우리에게 드러내고 말았다. 이제 분명해진 것은 포스트모던이 더 이상 소문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포스트모던은 풍문이 아니라 실재이고 21세기 벽두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숨쉬고 있는 삶의 환경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하려는 수많은 시도들 가운데 가장 간략하게 그 정체를 요약하는 말을 뽑는다면 아마도 안드레아 후이센Andrea Huyssen이 말한 ‘백인 이후에, 남성 이후에, 기독교 이후에’라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 백인들의 정치적, 문화적, 사상적 종주권이 심각하게 도전 받고 있다는 것과 남성 중심의 세계해석이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지시한다. 그리고 서구인들의 궁극적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고 의심받고 있는 기독교도 역시 극복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학이라는 학문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백인 이후에, 남성 이후에, 기독교 이후에’라는 공식을 제일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고 있는 지적 활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기독교 이후에After Christianity, Post-Christianity’의 지평을 준비하는 종교학은 전적으로 포스트모던的 학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우선 종교학은 그 발생 동기부터 ‘기독교 이후에’라는 지평을 열기 위하여 태동한 학문이었음을 분명히 지적할 수 있다. 종교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막스 뮐러Max Mu?ler는 종교학이 전통적 기독교 신학이 탐구하였던 신과 인간 이해를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직시하였다.

‘하나의 종교만을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알지 못한다He who knows one, knows none’라는 그의 격언은 이른바 ‘비교종교학’의 토대가 되어서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비교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종교학은 신학자들로부터 부단한 경계와 감시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캠브리지의 로버트슨 스미스Robertson Smith와 소르본느의 알프레드 로와지Alfred Loisy 사건이 보여주는 것 같이 초기 종교학자들은 신학자들의 감시와 감독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종교학자들과 신학자들 모두에게 이러한 갈등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기독교 이후’에 대한 종교학의 성과는 단적으로 말해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the religion가 아니라 여러 종교들 가운데 ‘하나의’ 종교a religion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는 데 놓여있다. 역사적으로 서구인들은 기독교만이 유일하고 유효한 신앙형태라고 간주하여 왔다. 그러나 종교학은 세계에 다른 수많은 종교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나름대로 그 신자들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제공하여 준 신앙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종교만이 유일하다는 발상은 타종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되고 자신의 신앙만이 유효하다는 생각은 오만의 소산이다. 종교학자들은 특히 신앙의 의미에 관한 오만과 편견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한다.

내 자신의 신앙이 나에게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신앙 역시 그들 삶에 궁극적 관심으로 소중함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현상학자 크리스텐센Kristensen이 즐겨 말한 것처럼 “모든 신자들은 전적으로 정당하다!All believers were completely right!”라는 관점이 종교학의 방법론적 기본입장이기 때문에 종교학자들은 언제나 모든 종교인들의 신앙세계를 긍정하면서 탐구를 시작한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모카신moccasin을 신고 몇 마일을 걷기 전에는 그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미국 인디언들의 지혜를 본받아 타인의 신앙적 내면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해석학적 연습을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들만이 유독 이러한 독선과 오만의 오류를 범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세계의 대부분 종교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신앙만이 참된 것이라고 고집하고 싶어한다. 가령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힌두교인들이 사실 더 지독한 배타주의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날카롭게 제기되기도 하였다. 모든 다양한 종교들이 결국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Brahman, 梵으로 수렴된다는 주장만큼은 결코 양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교적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으로 유일성唯一性 주장을 가장 강하게 표명했던 종교는 역시 기독교였음을 부정할 길이 없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유일신唯一神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獨生子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의 보편적 교회the Catholic Church’를 고백하였던 기독교인들에게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 nulla salus’는 교리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종교학이 밝혀 주려는 신앙의 다양한 의미는 특별히 기독교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학이 ‘기독교 이후에’를 지향한다고 해서 곧 기독교를 지양한다는 뜻으로 오해되면 안될 것이다. 종교학은 反기독교적 내용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한정된 잣대로 세계와 신과 인간을 해석하여 왔던 서구적 시각을 극복하려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는 헤겔의 지양止揚, Aufhebung 개념이 간직한 깊은 의미처럼 기독교적 시각을 극복하고 고양하여 새로운 변증법적 종합을 이룩하고자 한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학은 ‘기독교 이후’의 반성을 통해 오히려 보다 폭넓고 새로운 지평을 기독교에 선물하여 줄 수 있다고 자신하는 학문인 것이다.

문제의 관건은 종교학의 학문적 성격을 분명히 이해하는 데 놓여있다. 종교학은 세계의 여러 종교들을 연구하여서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즉 개별적 종교들religions, Religionen의 독자성을 충분히 분석하면서 종교religion, Religion의 보편성을 밝히려는 노력인 것이다. 개별적 종교들과 종교 그 자체에 대한 이중적 관심은 종교학의 중요 두 영역인 종교사학宗敎史學, History of Religions과 종교현상학宗敎現象學, Phenomenology of Religion에서 각각 추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종교학은 유독 ‘기독교 이후에’만을 목적한다기보다 모든 ‘개별적 종교들 이후에’ 드러나는 종교의 본성을 알고 싶어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종교학의 ‘종교’ 자체에 대한 열정은 모든 개별적 종교들의 한정적 시각을 필연적으로 해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종교학이 모든 종교와 종교인들에게 위협처럼 여겨지는 소이所以가 있고 그것이 바로 종교학의 진정한 포스트모던的 충격일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문제

종교학의 포스트모던的 성격과 관련하여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문제이다. 종교다원주의 문제가 20세기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과 같은 시기에 종교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종교학과 종교다원주의가 역사적 필요성에 의해 긴밀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여기서 그 역사적 배경을 잠깐 살펴본 후에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종교학의 공헌과 한계를 논할 필요가 있다.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학이 발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던, 즉 후기근대의 기원과 전개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많은 이론들 가운데 특별히 종교다원주의와 연관하여 간단하게 몇 가지 요인을 분석하고 있는 리차드 플란팅가Richard Plantinga의 논의를 소개할 만하다. 그는 근대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종교다원주의 상황을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7개의 변수들을 간결하게 지적한다. 첫째는 ‘콜롬버스 변수Columbus factor’로서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통해 신대륙과 타문화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는 ‘종교개혁 변수reformation factor’로서 천년을 넘게 유럽을 지배해 왔던 가톨릭 교회가 붕괴되고 개개인이 신앙의 자유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는 ‘계몽주의 변수enlightenment factor’로서 전통적으로 절대복종을 강요했던 신앙과 신학의 권위에 대해 이성의 준엄한 심판이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네 번째는 ‘학문적 변수scholarship factor’로서 근대에 들어서서 여러 학문들의 출현, 특별히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출현하게 된 사건을 가리킨다.

다섯 번째는 ‘서구 위기 변수western crisis factor’로서 제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구에 밀어닥친 정치적, 실존적, 사상적 혼란을 지칭한다. 여섯 번째는 ‘아시아 부흥 변수asian renewal factor’로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非서구권 국가들이 대거 독립하게 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는 ‘세계화 변수globalization factor’로서 세계가 하나의 마을이 되어 가는 현재의 추세를 일컫는다.

이외에도 많은 요인들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이상 일곱 가지 변수들은 특별히 종교적 측면에서 근대로부터 후기근대로의 역사적 이행을 잘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서구 근대시대는 기독교가 자신의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해 갔던 시대였다. 교황의 권위가 고딕 성당의 첨탑만큼 높게 빛나던 중세라는 화려한 계절이 끝나면서 안팎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된 시기가 곧 근대였다. 삶의 모든 분야에서 정보가 증가하고 다원화가 시작되면서 기독교가 자랑하던 ‘하나one’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이제 서구근대로부터 시선을 더욱 넓혀 서구 전체 역사 속에서 종교다원주의의 의미를 조감할 필요가 있다. 저명한 종교학자인 하버드 대학의 윌프레드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는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학의 의미를 ‘제3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는 서구문명의 역사, 특히 기독교의 역사를 3번에 걸친 운명적 ‘만남’으로 해석한다. 그 첫 번째 만남은 희랍문명과의 만남이다. 2천년 전 로마의 속국이던 유대 나라의 변두리 지방이던 갈릴리에서 출발하였던 이른바 ‘예수 운동Jesus Movement’은 불과 2세기만에 全 로마제국에 최대종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성공의 비결은 여러 가지로 분석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당시 주도적 문화였던 희랍문화를 과감히 수용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선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신약성경New Testament》 자체가 희랍어로 쓰여졌다는 사실이 가지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이다. 나아가 희랍철학을 받아들여 신에 대한 체계적 사유를 의미하는 ‘신학theology: theos + logos’을 발달시킨 것도 기독교만이 지니는 독특함이다. 그 결과 서양철학과 기독교신학은 이후 2천년 동안 시대에 따라 애증愛憎이 엇갈리는 동반자로 공존하여 오는 역사를 창출하여 왔다.

스미스가 말하는 두 번째 만남은 중세가 끝난 후 근대문명과의 만남이다. 문예부흥Renaissance과 종교개혁Reformation을 거쳐 정치혁명, 산업혁명, 과학혁명 등 수많은 혁명들Revolutions을 통해 근대세계가 형성되어 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중세 천년 동안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면서 소위 ‘기독교 제국Christendom’을 자랑하여 왔던 기독교는 근대에 들어서서 새로운 위상정립을 요구받게 되었다. 끊임없이 민주화, 산업화, 기계화, 세속화되어 가는 근대사회에서 교황과 교회의 권위는 부단히 추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근대와의 만남은 기독교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남겨서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근대신학, 성서비평학 등의 학문을 발달시켰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근본주의 신학의 갈등이라는 상흔도 근대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 두 번에 걸친 역사적 만남은 서구문명과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던 만남이었다. 이제 스미스는 세 번째 만남의 광장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 역사적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언한다. 그것은 곧 기독교와 세계종교와의 만남이다. 여기서 스미스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만남’의 상호적 의미이다. 진정한 만남이란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일 수 없다. 과거에도 기독교가 많은 다양한 종교들과 접할 기회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他종교들은 단지 기독교가 정복하거나 선교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제 3천년을 맞이하는 기독교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의 여러 종교들과 동등한 자격의 ‘만남’을 시작하고 있다고 스미스 교수는 강조한다.

종교다원주의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스미스의 ‘제3의 만남’ 분석은 간략하지만 명쾌하게 종교다원주의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 주며 나아가 종교학의 의미를 강조해 준다. 즉 첫 번째 만남을 통해 기독교에 철학이 도입되어 ‘신학’이 탄생하고, 두 번째 만남을 통해 과학 등 근대학문이 신학에 접목하게 되면서 ‘근대 자유주의신학’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세계종교들을 연구하는 종교학이 기독교 신학에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등장하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스미스는 ‘종교신학theology of religions’의 탄생을 고대하는 것이다. 철학을 통해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과학을 통해 우주의 은하수에 대한 비밀을 이해하게 된 서구인들은 이제 종교학을 통해 왜 인도인들이 《바하가바드 기타Bhagavad Gita》를 즐겨 애송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도전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란팅가와 스미스의 역사적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오늘날 세계가 더욱더 종교다원주의로 향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선진국가들의 포스트모던 사회는 극도로 다양한 종교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보스톤 대학의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종교시장상황religious market situation’이라는 말로 현재 서구사회의 종교상황을 진단한다. 마치 백화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르듯 자기 취향대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었다는 의미이다. 다른 종교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온David Lyon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의 ‘디즈니랜드 현상Disneyfication’이라는 더 충격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마치 디즈니랜드에 가면 수많은 놀이기구와 캐릭터 인형들이 있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고를 수 있듯이 현대사회의 종교들은 철저히 소비자 중심의 산업이 되어간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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