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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18)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36
Delete Modify 박순영 Access : 8056 , Lines : 23
시간, 역사, 그리고 종말 -  서양의 시간인식과 역사의식
시간, 역사, 그리고 종말 -  서양의 시간인식과 역사의식

과거누적 시간관과 미래진보 시간관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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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의 끝, 아니 일천년의 끝에서 우리는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천년을 맞는다는 설레임도 있지만 ‘과연 새로운 천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는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종말론을 낳고 허무주의와 같은 세기말 현상을 불러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이 세기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대답은 자명합니다. ‘1999년’이라는 ‘시간’이 지금은 세기말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즉 ‘시간’을 ‘인간이 자신의 삶을 틀지우려는 편의에서 만든 하나의 형식이고 허구인 관념’으로 파악한다면 지금은 ‘1999년’도 아닐 것이고 세기말도 아니며 그저 무한히 영원한 흐름의 한 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해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나아가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에 이번 ‘시간’ 학술기획에서는 인간이 시간을 인식하게 된 경위와 시간이 인류의 진보와 문화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한 분석, 아울러 종말론에 관한 탐구 작업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 엮은이글 -

“시간이란 무엇인가요? 누가 내게 묻지 않는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겠는데, 만약 누가 내게 물어서 그걸 설명하라면 나는 모릅니다.” (어거스틴, 『고백록』)
시간은 무한히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 그리고 한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은 지금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일 뿐 우리는 시간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가 없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시간 그 자체는 계속 직선적으로 비가역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일상적인 시간개념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인식에 기초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서양의 많은 사상가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고 지각하고 있는 시간이 진정한 시간일까에 대해서 부단히 물음을 제기해 왔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어거스틴을 들 수 있다. 전자는 시간을 운동과 변화에서 일정한 연속성의 개념으로 파악하였고, 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시간을 기억에 근거하여 인간의 의식(영혼)과 관련시켜 해명하였다. 이 두 전통에서 서양의 시간인식이 다양하게 전개되어 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인식은 자연과학에서 이해하고 있는 시간인식의 기초를 놓아주었다. 그에게서의 시간은 물질의 존재 방식이다. 왜냐하면 시간 바깥에서는 물질적인 변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늘 변화 속에 있으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말하자면 존재하는데 지속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 시간은 운동의 수(數), 즉 운동의 과정에서 먼저와 나중으로 헤아릴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시간은 운동과 변화 속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시간은 운동을 통해서 드러나고 운동은 시간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그리스 철학적인 시간인식과 과학적 시간인식은 대체로 시간의 흐름이 직선적이며, 시간의 매 단위는 동일하여 같은 값을 가지고 일정한 방향을 향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시간을 탈 주관적으로 파악함은 시계나 달력에 의한 객관적 시간 측정을 인간의 사회적인 삶에 이용하기 위해서거나 사건의 지속을 객관적 시간으로 측정하기 위한 목적이었기도 하다. 이런 시간인식이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지배적인 사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시간의 축적 과정이 곧 발전이라는 진보 사상으로 이어져서 과거와 현재의 집합은 미래의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미래는 인간의 노력으로 형성 가능하다는 낙관주의를 낳게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그리스적, 과학적 시간인식은 서양 근대의 문명화를 위한 추진력이 되어 왔다. 이런 시간인식에 토대를 둔 서양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20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치지 않음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다른 신화적, 종교적인 의미가 함축된 시간의식의 전통이 있다. 히브리인들은 결코 직선적으로 진행되어 매 시간의 단위가 동일한 값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던 그리스 철학자들과는 달리 시간은 성취된 시간과 성취되지 못한 시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로써 이들은 시간을 인간의 행위에 관련시켜 현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형성적인 미래가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 미래는 현재 시간에 대립되는 영원에 대한 단순한 갈망이나 몰입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의식을 가동시키고 때로는 채찍질하듯, 매 순간의 값이 다른 시간을 위해서 준비하는 자세의 종말론적이고 묵시적인 기대와 비전으로서의 미래였다. 그리스 철학자들도 시간의 인간 인식 관련성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으나, 히브리 종교적 시간인식에서처럼 그다지 철저하지는 않았다.
어거스틴의 시간인식은 이런 종교적 근원에서 나온다. 그가 시간의 주관적―내적인 의미를 부각시켰다고 하여 철학자들은 시간과 관련된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어거스틴을 언급한다. 어거스틴의 시간 이해는 인간의 영혼이 신에 대한 관계의 시간성에서 보고 있다. 세계 안에 있는 존재자들과는 독립된 영혼의 시간 운동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왜 『고백론』에서 시간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기억(menoria)을 분석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는 기억이란 말을 천국에 존재하는 시간을 기억함이라는 의미에서 상기란 말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시간의 세 양식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기억, 직관, 기대로 분류하여 인간적 행위와 체험으로 관련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영혼에는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현존하기 때문에 현실에 존재하는 시간은 현재뿐이다. 영혼 밖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의 기억에서만이 시간 연관이 가능하고 현재의 상태를 그의 역사의 경과로서 인식하는 열쇠가 있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감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열쇠를 갖는다고 말한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영원한 현재 속으로 진입하는 신의 개입을 『신의 왕국』에서 말한다. 원래 이 책은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의 변호를 위해서 쓰여진 글인데, 그 속에서 그는 세속적인 역사의 시기를 6기로 나눈다. 그 마지막 시기에 그리스도와 함께 신의 천년 왕국이 시작되며 이것이 역사의 절정이라고 말한다. 어거스틴의 신의 왕국에 대한 표상은 세속 국가에 대항하는 교회의 큰 변호가 되었으며 중세를 거쳐 우리 세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철학적 발상을 제기하는 중요한 모형이 되어 왔다. 그리고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세계사의 철학에 중요한 의미를 던졌다.
헤겔은 그의 역사철학에서 자연계의 변화가 비록 다양하더라도 되풀이되는 순환에 불과하며, ‘권태롭기까지 하다’고 하면서, ‘새로운 것은 오직 정신의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변화 안에서만 생긴다’고 했는데, 그의 역사철학도 기독교적인 구속사 의식과 어거스틴의 종말론적인 역사의식의 철학적인 변형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시간 이해 역시 세계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존재를 해명하기 위한 현존재 분석의 토대가 바로 죽음에 이르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 자기 결단으로 다가오는 긴박한 시간성에 대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시간의식은 종교적인 의미를 함축하면서 역사의식과 역사철학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비서양권의 시간인식은 이와는 그 유를 달리한다. 동양의 자연관은 순환적인 구조에서 발전적이거나 목적론적―종말론적인 시간 이해를 산출해 주지 않는다. 인간의 끝은 자연이고 자연의 끝은 인간이라는 발상에서는 서양의 시간 이해와는 다른 사고를 창출하게 된다. 말하자면 시간의식은 다분히 문화적인 문맥에 따라 달리 규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1936년 「미국 인디언의 우주에 대한 모델」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이어 『언어, 사고, 실재』(1956)를 쓴 오르프(B. Whorf)는 미국 인디언들이 유럽인들과는 전혀 달리 시간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그의 이론에 따르면, 미국 인디언 중 호피(Hopi)족에겐 축적적인 시간개념, 시간의 차원적인 표상, 기수(基數), 시제의 복수형, 시―공에 대한 유비 등이 결여되어 있고 과거와 현재의 구별이 없어서 이를 부사(副詞)를 곁들이거나 말의 문맥에서 파악하도록 하며, 시간이라는 말 자체가 부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표준 유럽의 언어와 사고방식에 있어서 완전히 구별됨 말한다. 문화마다 다양한 시간인식은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다양한 통로를 열어준다.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비밀이다. 그 비밀의 샘에서 인간은 무한한 크기의 지혜와 삶을 길어낸다. 시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신의 삶이 답이다. 독일 소설가 미카엘 엔데(M. Ende)가 쓴 『모모』는 동화적인 기법으로 다룬 소설이다. 그 내용의 핵심은 수수께끼 같은 시간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는 거기서, 이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은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http://chunchu.yonsei.ac.kr/chunchu/view_article.phtml?id=136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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