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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4/12/17 (20:31) from 80.139.191.15' of 80.139.191.15' Article Number :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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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신학에 있어서 자연의 이해의 한계





창조와 자연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종교적인 특성을 가졌다. ... 성경에서 자연은 신의 창조물이다. 이 점은 유대교와 기독교 또한 이슬람교에서 수백년에 걸쳐 의심되지 않았다. 중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지구에서 관측을 통해 알 수 있는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리스와 로마 철학의 도움으로 우주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상상이 가능해졌다. 여기서 기하학은 이상적인 도구로 여겨졌다. 삼각형, 사각형, 원 그리고 바로크시대의 타원형은 창조자의 설계를 재구성하는데 동원되었다. ...

신은 기하학자인가? 요하네스 케플러와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실제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천문학적, 물리학적 업적들은 신학적으로 이해되었다. 창조의 근원인 신의 생각을 그들은 추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상상으로부터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에 많은 세계의 모델들이 고안되었다. 이것들 모두는 창조의 설계를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

이러한 관심들로부터 현대 자연과학이 형성되었다. 여기서 신의 생각을 추적하는 것이 문제이고,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정확성이라는 표본은 신의 작품의 경외심에 대응한다. 인간이 책임질 수 없는 것 그리고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주장하지 말지어다.

이런 식으로 규정된 자연의 연구는 발견들을 가능하게 했고, 수백년 동안 참으로 여겼던, 상상했던 그리고 재구성하려고 했던 것들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것들이 엄청난 속도로 발견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야만 했으며, 과학의 진보는 과거의 상상을 없애고 거짓으로 만드는 새로운 상상들을 인정하도록 강요했다.

세계의 이해에 있어 중요한 변환은 고대와 중세의 원모양으로 닫힌 우주에서 근대의 열린, 무한한 우주로의 전이였다. 이 변환은 우선 니콜라스 코페리니쿠스, 토마스 디게스 그리고 죠다노 부로노에의해 가능했다. ... 인간은 이 무한한 세계에서 고향을 잃게되는 처지가 되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공간을 확실하게 해야하며, 여기에는 인간에게 주어진 수단과 방법으로 세계를 적절히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허구가 아니라는 확신이 깔려있다. 그 수단과 방법은 수학과 물리학의 법칙들, 그리고 역학이었다. ...

그 결과 자연과학은 독립된 법칙성을 확보했다. 성경에 나타나는 그리고 신부들과 중세 신학자들이 생각했던 신이란 수학적 계산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는 기껏해야 최초의 원인으로서 아니면 세계라는 기계를 움직이게 한 최초의 시계제작자로서 신이 가정된다. 반면에 그 당시 신학자들은 그들 고유 영역에 주력했다. 즉 인간의 구원과 영생의 추구였으며, 여기서 그들이 자연과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했음이 분명해진다. 그들의 주제는 사건과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아니고, 신의 실재성, 예수가 인류를 위하여 행한 세계 속의 신의 현존이다.

하나로서의 자연이 만약 닫혀진 우주로서 그래서 창조물로 여겨질 수 있었더라면, 자연의 연구는 신학으로서 추진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무한히 끝없는 우주에서 지식의 열려져 있음은 전문화를 강요한다. 인식의 대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점점 더 각 학문은 어떻게 자기영역에 머무르고 어떤 방법론들을 따르는 것이 의미있는지 고려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자연과학과 신학은 근대에 와서 각기 제 갈길을 가게된다. 전자는 자연을 탐구하고, 후자는 인류의 삶의 의미와, 개개인의 실존적인 미래를 묻는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서로 서먹해지고, 각기 고유의 언어가 계발되는데, 여기에 그 둘은 서로 이해될 수 없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그렇게 되고 말았다. 자연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신학에서 사용되는 개념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거꾸로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자연과학의 전공언어를 쫓아가기란 아주 힘든 것이다. 그 둘 사이의 번역 혹은 의사소통이 여기저기에서 요청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서로상호간의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턱도 없이 모자라는 대중화로 종종 끝나버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가 자연과학은 무엇을 그리고 신학은 무엇을 수행할 수 있는가, 무엇이 그 둘의 가능성들인가 그리고 어디에 그 둘의 한계가 있는가를 진정으로 물을 때 한편으로는 특징적인 차이들과 또 한편으로는 명백한 공통성이 드러날 것이다. ...



위르겐 휘브너(Juergen Huebner)의 "자연과학과 신학에 있어서 자연의 이해의 한계"("Grenzen im Naturverstaendnis, in Naturwissenschaft und Theologie", Zum Dialog der Theologie mit den Naturwissenschaften, Peter Beier 편집, Neukirchner, 1997)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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