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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2 (06:56) from 129.206.196.44' of 129.206.196.44' Article Number :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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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현상과 생명의 초월성




진화 현상과 생명의 초월성




글쓴 이: 송 명수

1. 여는 글



인간은 자기자신을 질문의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 질문을 제기하게 되는 역설적인 존재이다.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우선은 나의 존재의미이다. 그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의 원인에 대한 인과론적 질문일 수도 있고,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의 궁극목적에 대한 의미 질문일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인과 목적은 기능을 통해 단일한 형상 안에 함께 현시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므로, 그의 존재원인은 인간의 동물성에게 이성을 품수해준 신적인 정신이며, 인간의 존재목적은 자신의 이성을 보다 완전히 실현시켜 이 순수 정신적 신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신이 인간의 원인과 목적으로 제시되는 형이상학적 지평 안에서 인간의 세계는 합목적적으로 정위된다. 자연의 법칙은 신의 의지를 드러내며, 인간의 윤리는 신의 의지에 반향하는 인간적 의지의 지표가 된다. 우주 전체는 조화로운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근본적으로 장인과 공작물을 모델로 한 인간적인 시각이었으며, 최소한 목적론적인 이성의 작업시각이었다.



근대에 이르러 수학적 물리학이 발전되면서 원인과 목적이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자연과학은 각 개인의 주관적 세계 너머에 있는 객관적인 세계, 수량화된 물질들과 그들 사이의 수량화된 법칙 세계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의지적인 목적이라는 가설은 필요가 없다. 단지 물질들과 그들 사이의 법칙적인 운동만이 존재하는 것이며, 이들을 수량적으로 표시하면 우리는 그들의 일반적인 원인을 알게 되는 것이다. 칸트는 근대과학의 이러한 세계관적인 전환을 냉엄하게 통찰하였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자유와 목적을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 질서있게 통합되었던 합목적적인 세계는 순수 이성의 세계와 실천 이성의 세계로 분열되었다. 이성의 의미파악에 있어 과학적 원인과 의미를 위한 목적이 분리된 것이다.



목적 지향적 인간의 세계에 대한 두 번째 타격은 진화론으로부터 격출되었다. 진화론에 의하면 역사의 표류 안에서 생물의 종적인 변천과정은 우연적인 돌연변이와 그에 상응한 환경의 자연선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 그처럼 우습고 혐오스러운 이론은 불가능할 듯이 생각되었다. 원숭이의 몸에 다윈의 얼굴을 한 만화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진화론을 상징하는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누적적으로 증가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통하여 생물학적 진화론은 물리학적 유물론과 손잡고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보편화시키게 된다. 이제 종교와 과학은 세계관적인 결별을 수행하고 철학은 어정쩡한 중간위치에 서게 되었다.



과학이 귀납적이고 수학적인 방법론에 의거하여 객관적인 세계를 수량적으로 제시하고, 신학이 역사적 계시에 의거하여 초월적인 세계를 상징적으로 제시할 때, 철학의 임무는 형이상학을 재건하여 분리된 세계를 통합하는 것이었지만, 인식론적으로 보아 그러한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만 것처럼 보였다. 그대신 철학은 자신에게 남겨진 인간의 주관성 안에서 주관적인 의미세계를 종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의미전체성에 의거하여 통합하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철학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본원리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고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0세기 후반은 지속적인 철학의 위축과 생물학의 약진으로 요약된다. 물리학과 화학을 자체 내에 통합하고, 자신의 성과를 동물학과 인간학에 전개하면서 생물학적 진화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통합원리로 자리잡게 된다. 나아가 생물학적 진화론은 인간의 정신영역에까지 침습해 들어와 윤리학과 사회학의 기본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의 고등교육은 이러한 생물학적 성과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으며, 진화론은 이제 문화적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철학과 신학은 근대과학의 모든 증빙자료들과 그 성과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하거나 무대책한 입장을 견지한다. 오늘날 생물학은 DNA 유전자 코드를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한 물질적 대응물로 내놓고 있다. 인간의 정신성은 일련의 우연적 돌연변이의 한 가지 현실태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분자 생물학의 추론이 올바르다고 한다면, 철학은 플라톤 이후의 모든 철학적 개념들을 철저히 재검토해야만 하는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아래에서 현대 생물학적 진화론의 제 원리를 간략히 소개하고 분석한 뒤, 진화론이 제기하는 철학적 인간학의 제 문제를 검토해보고자 ! ! 한다.



2. 근대 자연과학의 방법론



철학이 근대 진화론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근대 자연과학의 이념과 그 방법론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한다. 근대의 자연과학은 방법론적으로 획득된 객관성이란 학문이념을 추구한다. 여기서 방법론적으로 획득된 객관성이란 주어진 물질적 존재자를 수량적으로 환산하여 실험과 검증을 통해 귀납적으로 그 양적인 관계법칙을 발견함을 의미한다. 법칙은 객관적이므로 물질 세계 전반에 적용된다. 이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양적인 관계법칙에 의해 해명된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존재자의 존재의미나 목적에 관심하지 않는다. 질문되는 것은 단지 물질적 존재자의 양적인 상호관계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현상황을 양적인 인과법칙에 의하여 파악함을 의미한다. 시간적 지속을 통하여 공간 내에 물질간의 에너지 흐름의 총량은 일정하며, 단지 에너지의 집중과 확산에 따른 물질의 양태적 변화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사태파악은 결정론적인 기계론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수학, 물리학, 분자 생물학에서의 일련의 학문적 혁신은 이러한 수학적 결정론을 지양하고 개연적인 확률 방법론으로 전회한다.



우주 안의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결정론적 법칙에 의해 설명되는 현상들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결정론적 법칙은 그 법칙의 실현을 위해 전제되는 조건들이 서로 맞물려 주기적으로 충족될 때만 도출될 수 있다. 그런 경우에 우리가 주기적 사건들의 발생조건들을 정확하게 알아내어 그들 간의 상호관계를 도식화한다면, 우리는 다음 번 사건의 발생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의 발생조건들이 서로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도저히 모든 요소들을 분석해낼 수 없을 경우 그런 사건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듯이 보인다. 우주 안에는 이렇게 우리가 결정해낼 수 없는 사건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발생의 빈도수가 주어진 일련의 사건의 경우 P라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이상적인 빈도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결정론적 법칙이 설명하지 못하는 많은 사건들이 학문적으로 예측 가능해진다. 이리하여 자연과학의 방법론은 주기적 사건의 결정론적 법칙과 확률적 사건 발생의 법칙을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하며 역사적인 비결정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오게 된다. 특히 오늘날 진화론의 전개에 있어 확률! ! 적 사고방식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자연과학적 학문 성과가 충분하게 축적되면, 그것은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합적인 상호 일관성 안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근대 과학은 물리학의 혁명을 통해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시각적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것은 기계론적 결정론으로 발전하다가, 개연적인 확률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물리학과 화학, 화학과 생물학이 접속되어 진화론이라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통합이론을 형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의 진화론은 고대와 중세의 형이상학을 대체하는, 근대 자연과학의 방법론과 그 학문 이념의 성과물이라 볼 수 있다.



3. 진화의 현상



우리는 우선적으로 진화의 현상과 학문이론으로서의 진화론을 구별해야만 한다. 밝혀진 사태로서의 진화 현상은 오늘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원초 자료들만 충분히 나열해도 쉽사리 납득할 수 있는 우주의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진화의 자료들은 아직 일관성있는 연결성을 갖지 못하므로 학문 이론으로서의 진화론에는 일정한 해석이 개입할 여지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화론적 해석의 틀을 벗겨내고, 우선 진화의 현상 자체를 알아보고자 한다.



3.1. 생명의 전사: 물리학적 과정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진화의 현상은 우주의 시초에서부터 출발한다. 현존하는 우주는 150-200억년전 대폭발로 시작되었으며, 이때 수소와 헬륨이 발생한다. 수소는 밀집되고 산재하여 대규모 은하를 형성하고, 고밀도의 수소덩이가 열핵반응을 하여 열과 빛을 내는 별들을 형성한다. 수소가 결합하여 헬륨을 만들고 여분의 에너지를 열과 빛으로 방출한다. 별 사이의 공간에 수소기체들이 난류현상에 의해 중력에 따른 응집과 열핵반응이 일어나 균형을 잡는다. 응집한 물질은 80억년에 걸쳐 소모된다. 우리의 태양은 45-50억년전 주변의 수소가 뭉쳐 형성되었다. 태양계의 행성은 태양 주위의 별무리에서 생긴 것으로 그 물질은 초신성의 찌꺼기이다. 지구는 생긴지 50억년 되었으며, 물질의 원자적 운동과 분자적 합성에 의해 지속적으로 그 대기적 환경계가 변화한다. 약 40억년 전 지구에는 메탄, 암모니아, 수소, 헬륨의 대기가 고에너지의 자외선과 감마선 방출로 분자합성이 꾸준히 일어났다. 지각표면과 대기에 화학적 합성에 의해 여러가지 분자물질이 생겨나고, 탄소를 중심으로 한 유기분자의 형태학적 화학적 다양성에 의해 마침내 생명의 ? ! 본萱?위한 필요조건이 완비된다.



이와 같이, 생명의 전사는 의식이 없는 물질들이 물리학적 법칙에 따라 상호운동하며 분자적 원소 수준에서의 화학적 법칙에 의거하여 고분자 합성이 거의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결국 물리화학적 진화는 대폭발 이후의 물질과 그들 사이의 역학적 운동에 의해 시작한다. 물질은 우주 공간 안에서 끊임없는 운동 상태에 있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원자 하부의 세계는 인간의 관찰과 예측이 불가능한 불확정성의 운동세계이다. 그러나 원자들이 결합되어 형성되는 분자 세계는 이미 확고한 안정성을 지닌다. 분자 세계는 수소 원소를 기초로 하여 주기표에 나타나는대로 보다 고밀도의 세분화된 분자 구조를 갖는 원소 계열들로 이루어진다. 이때 분자 간의 화학적 결합은 이미 음각과 양각이 서로 들어맞아 서로를 붙들어 매는 공간적 형태를 구성한다. 이러한 융합방식은 생명의 기본요소가 되는 고분자 단백질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3.2. 생명의 탄생조건: 화학적 과정



40억년 전의 지구 표면에는 탄소화합물과 물, 암모니아로부터 다수의 화합물이 형성되어 아미노산이나 뉴클레오티드의 전신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지표면에 핵산과 단백질의 기본 성분이 고농도로 녹아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날 이러한 상황을 재구성 해놓은 실험실에서 놀랍게도 이들의 원료가 되는 폴리펩타이드가 스스로 합성되고 있다. 따라서 40억년 전의 지구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면 생명의 기본요소가 되는 단백질과 핵산의 우연적인 융합이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복제가 가능한 고분자의 형성이 실제로 발생해야 한다. 실험에 의하면, 하나의 배열순서를 가진 폴리뉴클레오티드의 고리가 그에 상응하는 염기를 자발적으로 형성하여 상보적인 배열을 가진 폴리뉴클레오티드의 고리를 유도하게 된다는 사실이 실증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30-35억년전 최초의 생명이 나타나 자기구조를 유지하며 동일한 구조를 지닌 개체를 만든다. 이때 자신과 동일한 분자를 다시 생산하고 통합하는 분자반응들의 연쇄체계가 생긴다. 이 그물체는 주위 공간에 대해 자기 경계를 스스로 정하며 자기를 생산한다. 바로 이 분자적 상호작용의 그물이 최초의 생명체이다. 여기서 효소와 같은 단백질은 생물의 합목적적 기본 분자인자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화학적인 관점에서 본 생물은 생장과 증식을 위해 수천가지 화학반응을 수행하는 화학적 기계이다. 한 유기체의 거시적 구조는 자기 내부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율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 건설적 상호작용은 미시적으로는 분자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단백질이 이 기능을 맡고 있다. 단백질이 화학기계의 활동방향을 제시하고 기능을 수행? ! 玖?기계 자체를 조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단백질의 자기 합성 능력을 가동케하는가? 모든 합목적적 성능은 단지 단백질의 입체적 특수성에 기인한다. 미시적인 에너지 운동에 따른 원자들의 상호 접속시에 단백질 구성 분자의 입체적 모양이 다른 분자를 분별적으로 결합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백질의 자기 합성구조는 생명 현상의 발생구조를 이해하기위한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3.3. 단백질의 합성구조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순차적 중합반응에 의해 고분자합성된 것이다. 그런데 모든 생물에서 발견되는 아미노산은 20여종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물의 거시적 구조의 엄청난 다양성은 결국 미시적 수준에서는 아주 간단한 단일구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의 화학반응은 각각 독특한 효소 단백질에 의해 선택적으로 발생한다. 각 효소는 특정 반응에만 촉매작용을 한다. 효소는 자신의 입체적 특수성에 의거하여 단백질과 기질 사이의 입체적인 특수성을 지닌 복합체를 형성하여 복합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반응을 촉매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효소 단백질은 어떻게 하여 이러한 선택적 화학반응을 일으키는가? 그것은 분자 수준에서 작용하는 〕恪?법칙에 의거한다. 모든 화학적 결합에는 활성화 에너지가 소모된다. 분자결합은 전자궤도를 공유하는 공유결합이나 비공유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때 초기의 잠재 에너지와 결합 후의 잠재적 에너지 사이의 결합시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활성화 에너지라 한다. 효소 단백질의 합성은 비공유 결합인데, 이 비공유결합 반응의 활성화 에너지는 매우 낮으므로 반응은 신속히 일어난다. 따라! ! 서 비공유결합의 상호작용에서 얻어지는 생명의 구조가 즉시 해리되지 않고 지속적인 안정성을 획득하려면 그것은 고분자적 다중결합이어야만 한다.



이렇게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형태 발생은 궁극적으로는 단백질의 입체 특수성에 기인한다. 단백질 분자는 비공유결합에 의한 하부단위 화합물을 갖는데, 이 하위 분자의 화학적 배열은 하나 하나 기하학적이어서 대칭조작에 의해 다른 화합물로 전환된다. 이렇게 반복성있는 기하학적 법칙에 따라 그 형체가 형성된다. 이러한 자발적 질서형성에 의해 복합입자들의 구조가 형성된다. 개개의 분자는 함께 구조를 구성할 상대 분자를 식별하는 성질 이외에는 어떤 활성도 갖지 않지만, 이러한 분자의 합성이 누적되면 무질서한 혼합물 안에서 질서와 구조적 분화가 나타나며 기능이 획득된다. 이러한 화학적 상호작용은 분자결정을 형성하는 상호작용과 동질적이다. 다분자로 구성되는 복잡한 구조체에 관한 전반적 도식은 구성요소의 각 부분에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만, 각 구성요소가 집합함으로써 비로소 실질적인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생명체의 핵에서부터 세포분열을 거쳐 유기체가 형성되는 과정은 원자들이 상호 결합하여 분자를 이루는 과정이나, 분자들이 상호 결합하여 고분자를 이루는 과정과 동일하다. 단지 생물의 경우에는 이? ! ??고분자 결합체가 유기적 단일성을 이루며 자기 복제를 한다는 새로운 현상에서 구별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기체의 형성과 자기복제를 담당하는 요소가 바로 DNA이다.



3.4. DNA의 복제구조: 분자 생물학적 과정



DNA에 의한 단백질 구조의 유전적 결정은 일단은 어떤 특정한 단백질에 대응하는 아미노산 잔기의 배열순서를 결정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합성된 단백질의 삼차원적 구조는 그 구조를 결정하는 유전자의 정보보다 훨씬 풍부한 기능을 갖게 한다. 유전정보는 초기조건 하의 단 하나의 구조만 실현하는데 비해 이제 삼차원 구조의 형성에 따라 정보가 풍부해지는 것이다. 폴리펩타이드의 구상구조가 형성된 뒤,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세포내 소기관이 형성되고, 세포간 상호작용으로 조직 및 기관이 구성된다. 선행단계의 생성물 간 자발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보다 고차적인 질서를 가진 구조와 기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의 기능적 단백질의 개체발생 안에 생물권 전체의 기원과 그 혈통이 반영되어 있다. 오늘날 박테리아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화학적 기구는 구조와 기능에 있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즉 세포의 화학이 생물권 전체에 걸쳐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단백질의 입체적 결합능력을 결정하는 아미노산과 뉴클레오티드는 DNA안에 알파벳처럼 기록되어 생물권 내에 펼쳐져 있는 각 종의 구조와 성능을 불변적으로 복사한다. DNA의 불변적 복제의 비밀은 비공유결합에 의해 복합체를 형성하고 있는 이중나선의 입체화학적 상보성에 있다. DNA의 이중나선의 입체화학적 구조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4개의 염기의 배열순서에 의해 결정된다. 그 결과 복합체의 입체구조는 이차원적으로 표현된다. 한쪽은 각 점에서 상보적인 염기짝을 내포하며, 다른 쪽은 이 짝들의 무한한 배열을 잠재적으로 내포한다. 이중나선중 어느 한쪽 고리가 주어지면 이 고리를 구성하는 염기에 의해 미리 정해진 상대방의 염기가 단계적으로 선택되어 연결됨으로써 다시 상보성을 가진 상대고리가 만들어진다. 이제 두 줄의 고리가 각각 그에 대해 상보적인 구조를 가진! ! 고리의 합성을 지령하여 복합체 전체가 재구성된다. 전체로 볼 때 염기쌍의 배열은 완전히 자유롭다. 염기쌍의 모든 가능한 배열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각 고리분자는 뉴클레오티드라는 공유결합에 의해 연결되어 자신을 유지한다. 정보전달은 극도로 높은 충실성을 갖지만 미시적인 반응이므로 때로는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3.5. 돌연변이의 발생: 진화의 필요조건



뉴클레오티드의 배열을 아미노산 배열로 번역하는 메커니즘 안에서 번역기구의 한 구성요소의 구조가 변화하면 해석이 달라져 돌연변이를 초래한다. 변이는 번역시에만 발생한다. 단백질이 변조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백질의 구조와 성능이 변화하거나 그 변화가 유전되는 가능성은 없다. 유전은 환경과 교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자적 차원에서 교란이 축적되면 거시적인 구조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교란은 DNA배열에 우발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복제 메카니즘은 이를 충실하게 복제하여 마침내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돌연변이는 뉴클레오티드의 한 쌍이 다른 쌍에 의해 치환되거나, 결손되거나, 부가되거나, 도치 중복 치환 융합되어 섞임으로써 발생한다. 이와 같이, 진화는 복제의 불완전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생물계의 교란은 구조의 붕괴를 초래하지만, 생물권의 우발적인 교란은 진화의 근원이 되며, DNA의 복제 덕택에 이 교란이 유전되어 완전히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한 것이다.



3.6. 자연선택의 과정: 진화의 충분조건



돌연변이라는 우연이 DNA구조에 통합되면 기계적으로 충실하게 복제되고 해석되어 수많은 복사체를 탄생시킨다. 이로써 우연은 필연성과 확실성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진화와 자연도태가 지속적인 진보처럼 생각되는 것은 단지 외부조건과 변이의 결과 간의 또다른 우연적 상호작용에 기인한다. 돌연변이에 의한 신종 단백질은 생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지를 시험받게 된다. 여기서 생존하는 돌연변이는 기존의 합목적적 장치의 시종일관성을 감소시켜서는 안되며,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도태에 의해 판단되는 것은 합목적적 성능이며 건설적이고 제어적인 상호작용의 그물망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의 전체적 표현이다. 이것이 겉보기에 진화 자체가 어떤 기획을 수행하는듯이 보이게 하지만, 여기에는 우연과 시험이 있을 뿐이다. 시험을 거쳐 살아남은 DNA는 생식을 거쳐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이렇게 보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식을 바탕으로 30억년을 거슬러가는 생명계열의 후손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들은 난세포와 정자가 합쳐 생긴 하나의 생식세포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식현상이란 한 개체에서 일정과정을 거쳐 같은 부류의 다른 개체가 생기는 현상이다. 아마 최초의 자기생산개체는 주위의 다른 물체와 부딪쳐 조각나며 발생했을 것이다. 여기서 차츰 자기 내부 역동성을 바탕으로 분열할 수 있는 변이체들이 생겼을 것이다. 앞 세대의 구조적 형태를 전달하는 유전은 증식 때마다 일어난다. 전달과정에서 변이가 생기면 처음 개체와 조직은 같지만 구조가 다른 개체가 생긴다. 유전과 변이가 보존될 것인가는 각 개체의 개체발생 전개상에 달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명체가 돌연변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명계의 다양한 발생나무를 가지뻗어 나가며 오늘날의 생태계를 이루어낸 것이다.



3.7. 진화 현상에 대한 점검



우리는 여기서 굳이 식물학과 동물학을 거쳐 인간에까지 이르는 진화 과정을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분자 생물학 차원에서 인간과 박테리아의 DNA 구조형식은 동일한 것이다. 생식을 통해 한 생명체의 생식세포가 형성되면, 최초의 생식세포는 감수분열을 통해 세포들을 증식시키고, 이들은 서로 연결된 세포들과 상호연결되어 마침내 하나의 성숙한 유기체를 형성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초기에 합성된 DNA의 염기서열에 따라 일관된 조작을 수행하는 것이다. 생태계에 현존하는 각종 생명체들의 유기적인 자체내 합목적성은 결코 환경에 스스로를 적응하며 목적지향적으로 교정한 결과물이 아니라, 초기 DNA의 유전과 변이에 의해 결정된 유기적 조직이 환경적 조건과 상응하여 생존해낸 모습일 뿐이다. 그러므로 각종 박테리아,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명체의 자체내 합목적성은 목적지향적인 방향성을 지니고 진화한 것이 아니라, 애당초 DNA의 유전과 변이과정 안에 잠재되어 있던 가능성들 중의 일부가 실현된 모습에 불과하다. 우리는 과학적 연구를 통해 밝혀진 진화의 현상에 대해 일종의 통합적 시각을 제시하? ! ?진화의 이론들을 살펴보고 비판한 뒤, DNA 안에 숨겨진 진화론의 인간학적 함축의미를 구명하고자 한다.



4. 진화론



진화론은 다윈에 의해 최초로 학문적인 이론으로 제시되었으며, 그 이후 물리학, 화학, 고생물학, 지질학, 분자생물학, 식물학, 동물학, 의학 등 자연과학 전반의 누적적인 발전 결과 꽤 상세한 자료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학문 이론으로서의 진화론은 적어도 세 가지 전개 방향을 갖는다. 그것은 우선, 네오 다위니즘의 스펙트럼과, 물활론으로 파악되는 샤르탱과 화이트 헤드의 목적론적 진화론, 그리고 무목적적이지만 일정한 방향성을 드러내는 생명충동으로서의 베르그송의 진화론이 있다. 진화론에 대한 최대의 문제점은 과연 생명 현상 안에 어떤 목적론적인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우리는 각 진화론의 입장을 살펴보고 간략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4.1. 다윈의 진화론: 진화론적 계통발생의 단초



찰스 다윈에게 진화론의 착상을 제공한 것은 오늘날까지도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구성하고 있는 멜더스의 '인구론'이다. "인구는 억제하지 않는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생활물자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것이 '인구론'의 요지이다. 이제 논점을 생물계 전체에 적용시켜 보면 생물에 대한 식량공급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생존경쟁에 유리한 변이를 하는 것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번식할 것이다. 이러한 착상은 비글호의 항해 중에 관찰한 여러 생물현상들에 의해 더욱 보강되었다. 지역에 따라 분포된 종들의 점진적인 변화는 생물의 진화를 통해서만 설명가능하였다. 동물은 인간보다 더 급속하게 증식하므로, 생태계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인구의 억제와 같은 효과를 환경이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제 한 가축의 새끼들도 모두 다른 것은 개체에도 변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육가는 우수 품종의 새끼를 선택하여 육종한다. 그런데 자연계에서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카니즘이 육종가의 역할을 대리한다. 환경에 따른 생존에 유리한 변이를 가진 생물은 생존하여 자손을 남기지만 불리한 변이를 가진 것은 멸종? ! 求?것이다. 기후나 음식물이나 기타 환경 요인의 변화에 따라 변이는 미세하고 무한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선택은 외적 메카니즘에 의한 우연적 사건이지 생명의 내적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진화란 목적이 없는 자동적 진행이다.



적자생존이란 교훈을 간직한 진화론은 기회의 균등이라는 민주주의 이념과 경쟁에 의한 생존투쟁이라는 자본주의 이념에 생물학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동시에 진화론을 배격한 종교와 신학은 무한대의 진보를 이념으로 한 근대 사회로부터 격리되기 시작한다. 한편 한동안 진화론에 무관심했던 철학은 뒤늦게 철학적 인간학이란 주제로 인간의 생물학적 기반에 관심하게 된다. 이성을 최종 준거로 하는 철학은 인간 생명의 우연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은 어떤 목적론적인 이성의 작용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에 다윈의 진화론은 이미 네오 다위니즘이란 이름으로 굳건한 성채를 쌓아놓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샤르뎅과 베르그송의 진화론을 살펴보고 나서 변화된 현대의 네오 다위니즘의 주장을 살펴보겠다.



4.2. 베르그송의 진화론: 생명의 약동



베르그송은 진화의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결정론적 해석은 수락할 수 없었다. 가령 우연에 의한 '자연선택'이란 현상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진화의 과정에는 지속적인 복잡성의 발전이 목격된다. 고도의 복잡성은 고도의 위험부담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만일 생존만이 진화의 유일한 요인이라면 진화는 가장 단순한 유기체의 수준에서 멈추고 말 것이다. 그러나 개체 일부의 변이는 전체 유기체의 상호조절과 적응을 요구한다. 이것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 합목적성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진화과정에 목적성을 인정할 수도 없다. 진화과정이 이미 예정된 목적을 지향한다면, 그것도 역시 일종의 결정론인 것이다. 오히려 베르그송에게 생명이란 창조적인 새로움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발견되는 생명의 약동은 유전자의 세대를 거쳐 통일성을 유지하는 생명의 원초적 충동이다. 이 충동이 새로운 종을 낳는 변이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충동은 불활적인 물질의 저항에 직면하여 발랄한 충동을 행사하며 진화의 계열에 새로운 길을 뚫는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개체 안에서 생명의 충? ! 오?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그 생물학적 기원은 동일한 것이지만 결코 일관적으로 진화된 하나의 계열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발전과정에서 분리된 세 가지 생명 경향이 성취된 모습이다. 식물계는 고정성, 안정성, 불감성을 갖지만, 동물은 운동성과 의식성을 지닌다. 곤충들은 본능적인 삶을 살고, 척추동물은 지능을 지닌다. 여기서 본능이란 자기 유기체의 부분을 사용하는 능력이며, 지능은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도구인(homo faber)로 정의된다. 지능은 삶을 위해 실천적인 정향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지성은 단지 대상을 물질적으로 파악하고 모방하는 능력일 뿐이며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결여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성은 순수한 삶의 내적 지속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본능적 충동은 삶의 발랄한 작용을 감지한다. 그러므로 반성적 의식의 직관만이 생명의 충동을 이해하고 현실을 파악하며 형이상학의 세계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의 이해에 있어 베르그송의 핵심적인 전제는 창조적인 생명의 충동이 바로 변이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가 현대 진화론에서 수용될 수 있다면,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론은 진화의 현상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를 우리는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는 또 하나의 진화론적 목적론자 떼이야르드 샤르뎅의 진화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4.3. 샤르뎅의 진화론: 오메가 포인트



저명한 예수회 출신의 고생물학자 떼이야르드 샤르뎅은 진화론적 과학이론에 형이상학적 철학과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낙관론적으로 종합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진화론의 탄생 이후 많은 이들이 희망해오던 대종합이다. 그러나 과연 그 종합이 과학적으로 납득할만한 전제에서 출발한 것인지는 다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세계는 다양한 유형의 복합으로 체험된다. 과학은 이러한 체험을 분석해서 에너지의 변환에 의해 상호연관된 복합적 그물망 체계로 파악한다. 이렇게 파악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화란 단지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퍼져있는 총체적인 과정이다. 샤르뎅에 의하면 물질 그 자체가 애당초 정신적인 생명을 잠재적으로 간직한 것이다. 따라서 진화란 이 잠재적인 정신의 점증하는 현실화과정이다. 우주의 에너지는 입자들을 서로 결합하는 접선적 에너지와, 이러한 복합적 입자들을 의식에로 고양하는 방사 에너지로 구성된다고 한다. 모든 물질 요소는 외적인 에너지로 현현되는 내적인 생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 내적인 생기에서 생명이 발아한다는 것이다. 지구에서의 생명의 탄생은 유일회적인 현상이며 이로부터 생명의 최종 목적을 향해 진화한다. 생명은 의식과 사고를 향해 진화한다. 의식과 사고의 발생에 의해 우주는 인간 안에서 내면화의 과정을 겪게 되며, 이러한 인간화과정을 통하여 사랑 안에 모든 것의 대통합이 이루어지는 '오메가 포인트'로 나아? ! 4募?것이다. 이러한 전체과정의 근원이자 통합의 중심은 우주에 비해 선재하는 것이며 초월적인 것, 즉 하느님이다. 육화한 하느님, 부활한 그리스도가 바로 우주적 운동의 종착지인 오메가 포인트이며 여기서 하느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된다. 그렇다면 전체 진화과정은 단지 인간화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또한 부활한 그리스도를 통한 신성화의 과정이다. 그것은 전체 우주가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화하는 그리스도발생의 과정이다.



진화론의 이해에 있어 샤르뎅의 핵심적인 전제는 물질이 자체 내에 목적론적인 정신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 이론적 근거는 에너지를 상호작용의 능력, 결합의 능력으로 정의하고, 물질은 복잡화를 향한 상향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물질적 에너지 운동의 역사는 복잡화를 구성하는 진화과정의 역사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핵심적인 문제는 과연 복잡화란 것이 어떤 현상을 지칭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샤르뎅은 복잡화를 물질의 구조적 복잡화로 파악하며 동시에 여기서 의식의 발현을 보고 있다. "생명체의 내부조직이 보다 풍부하고 잘 조정되어 있을수록 그에 상응한 의식은 더욱 완성된 것으로 드러난다." 결국 의식의 집중성과 물질의 합성력은 비례관계를 이룬다는 것이 그의 진화법칙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례관계가 과연 현대 진화론에서 긍정될 수 있는가가 그의 진화론을 검증하는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



4.4 쟈크 모노의 입장: 본질적인 우연



분자 생물학 분야에서의 노벨상 수상자인 쟈크 모노는 진화론의 참된 의미는 생물의 변이와 선택이 모두 철두철미한 우연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역설한다. 생명의 탄생, 그 변이와 선택은 모두 무목적적이고 기계론적인 화학적 작용일 뿐이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배하는 법칙은 오직 본질적 우연일 뿐이라는 것이다. 생물 이전의 분자 수준에서 분자결합은 단지 분자 간의 입체적 구조들이 서로 들어맞을 때 화학반응이 가능해져 발생하는 자연적 과정이다. 그런데 생물의 기본물질인 DNA의 이중나선도 이와 똑같은 입체적 상보성에 의해 형성된 고분자 단백질일 뿐이다. 유전자 속에 유전암호를 간직한 염기배열도 이러한 입체적 상보성에 의거할 뿐이다. 그리고 염기배열의 복제 과정에는 미시적 수준에서 양자역학적 교란이 우연히 발생할 수 있으며 그 결과가 바로 돌연변이이다. 또한 유전암호에 의해 합성되는 고분자 단백질인 폴리펩타이드의 배열도 예측이 절대 불가능한 우연적 합성에 불과하다. 또한 DNA의 지령에 따라 조직된 유기체가 자연에 의해 선택되는 도태과정도 아무 목적성을 찾아볼 수 없는 우연에 의해 지? ! 兀聆構?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아무런 목적없이 기계적인 과정을 통해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 단지 그것뿐인 것이다.



모노는 진화론에 작용하는 '우연'이란 확률적 우연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진행하던 사건들이 서로 교차해서 발생한 본질적 우연이라고 한다. 변이를 낳는 유전 메시지의 복제오류는 이러한 본질적 우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란 자유로운 맹목적 우연의 결과이며, 오직 이것만이 현대 생물학의 관찰과 실험결과에 양립하는 유일한 단 하나의 가설이라고 한다. 따라서 진화론에 합목적성의 개념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모노는 그의 저서 '우연과 필연'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옛 약속, 즉 구약은 산산조각이 났다. 인간은 결국 자기가 우연히 출현하였던 이 무감각하고 망망한 우주 속에 홀로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운명이나 그의 의무는 아무데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위에는 왕국이, 발밑에는 암흑의 함정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다. 그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오로지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진화론의 이해에 있어 모노의 핵심적인 전제는 돌연변이에 작용하는 우연성이 양자역학 수준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지배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여기에서 본질적인 우연을 본다. 그러나 그의 우연이란 개념은 매우 모호한 철학적 개념이다. 모노의 진화론적 입장은 '우연'이란 핵심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통해 비판事?수 있다.



4.5. 도킨스의 진화론: 이기적인 유전자



옥스포드의 네오 다위니즘을 대표하는 리차드 도킨스는 배타적으로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론을 설명한다. 생명체의 실상을 보면 그 주체는 의식도 아니고 뇌도 아닌 바로 유전자라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 모든 생명체는 단지 유전자의 영원한 자기보존을 위해 잠시 몸담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윈의 '최적자'란 개체가 아니라 종이며, 더 자세히 보자면 바로 유전자이다. 유전자가 선택당하는 것이지 개체가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세대를 거쳐 생존하는 것은 바로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기초적인 자기 복제자이다. 생명의 탄생은 겉보기처럼 기적적인 일이 아니다. 생명탄생기의 지구상태를 재생한 실험실에선 생명 단백질의 구성요소인 아미노산, DNA의 구성물질인 퓨린이나 피리미딘 같은 유전물질들이 생성되었다. 여기서 우연히 자기를 복제하는 분자가 생길 수 있는 확률은 무척 높다. 그리고 그것은 단 한번 생기면 족하다. 단 하나의 자기 복제자는 자신과 입체적으로 친화성이 있는 요소들을 얽어맨다. 이 사슬이 쪼개지면 각자는 다시 복제를 계속한다. 이때 복제의 오류가 변이를 가져온다. 여기서 보다 오래 생존하는 변종의 복제자는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성에서 우월한 존재이다. 지속적인 변이과정에서 최초의 세포가 탄생한다. 이제 자기 복제자는 자신이 살아갈 장소를 스스로 창조해낸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그 종류에 따라 다양한 외형과 기관을 보유하지만 기본적인 화학조성은 동일하다. 모두 DNA라는 분자를 위한 생존기계이다. 한쌍의 뉴클레오티드 사슬인 DNA는 A,T,C,G라는 구성단위를 가지고 각 세포의 핵 안에 숨어서 유기체의 생존을 지시하고 있다. 유기체는 사멸해도 유전자는 생명이 존재하는 한 생존한다. 모든 생명의 근본적 단위 및 원동력은 자기 복제자이다. 그리?이러한 유전자는 영원히 산다.



도킨스는 진화론의 전개에 있어 생명의 주체가 유전자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시각이 정당한가는 사태에 비추어 판별되어야 한다. 생명현상을 유전자에로 환원하여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유전자로부터 발생하는 그 모든 다양성과 풍요성에서 파악해야 할 것인가는 생명에 대한 정의의 문제이며, 이 정의를 내리는 자는 판단하는 인간이라는 점이 재인식되어야 한다. 도킨스의 시도를 통해 우리는 생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연과학의 객관성에서 정의될 수는 없는 철학적인 개념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4.6. 마투라나의 진화론: 상호작용 속의 유기체



최근 들어 새로운 페러다임으로 각광받고 있는 '구성주의'는 마투라나의 진화론에 의거한 통합적 이론체계이다. 칠레 출신의 마투라나는 종래의 경직된 진화론에 상호관계에 의한 구조적 접속이란 개념을 가지고 폭넓고 유연한 진화론을 개진한다.



세포란 자기생산 개체의 분자 구성요소들이 상호간의 끊임없는 작용의 그물체 안에 역동적으로 얽혀있는 존재이다. 이 그물체 안에 일종의 화학반응인 물질대사를 통해 새로운 구성요소들이 그 그물체 안에 다시 통합된다. 생물의 자기생산체계는 자기역동성, 자율성에 의존하며, 동시에 이 자율성이란 기능을 스스로 결정한다. 자기생산개체들은 여러가지 구조적 변이를 보이면서, 자기 부류에 특유한 현상계에 생존한다. 이 현상계는 물리적 법칙에 의존하면서도 각 생명 개체의 분자들과 상호작용하는 고유한 방식과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개체들은 단백질의 복제, 복사, 증식을 통해 자신과 동일한 조직을 재생산한다. 앞 세대의 구조적 형태를 전달하는 유전은 증식 때마다 일어난다. 이 전달과정에서 변이가 생기면 처음 개체와 조직은 같지만 구조가 다른 개체가 생긴다. 유전과 변이가 보존될 것인가하는 문제는 각 개체의 개체발생사에 달려있다. 유전과 변이는 생물의 재생산과정에서 전형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여기에는 DNA만이 아니라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막성소기관과 막에 관계된 체계도 함께 작용한다. 그러므로 DNA만이 한 생물? !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정보로 보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다. DNA는 자기생산그물체의 한 구성요소이며 전체체계의 통치체계이긴 하지만, 한 세포의 특징을 구성하고 결정하는 것은 상호작용 그물체 전체이지 세포의 한 구성요소가 아니다.



단세포의 개체 차원을 넘어 다수의 세포들이 구조적으로 접속되어 하나의 다세포적인 체계를 이룰 수 있다. 다세포적 체계 안에서 각 세포들은 주변 세포로 이루어진 환경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각자 자기 생산을 실현한다. 이러한 다세포적 체계는 각 세포의 개통발생사를 통해 서로 상보적인 세포들이 융합하여 단일체를 이룬 결과이다. 이러한 메타세포체는 세포들의 미시적 현상계와는 다른 거시적 개체발생의 영역을 갖게 된다. 다세포생물은 각 세포들의 총합이 아니라 하나의 개체로서의 전체이다. 그것은 하나의 세포로부터 발생하며, 이런 점에서 단세포와 동일한 개체발생을 한다. 유전된 개체의 구조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방식을 결정하며, 따라서 자신의 세계를 결정하고 그 안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각 생물의 유전된 구조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조건을 결정하며, 그 상호작용에 의해 유발될 수 있는 구조변화의 폭을 결정한다. 따라서 환경과 생물의 구조적 역동성에서 생물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그 생물의 구조이다. 개체가 환경과 파괴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지 않는 한, 환경의 구조와 개체의 구조는 서로 어느 정도 어울린다. 환경과 개체는 서로에게 구조변화를 발생시키며 서로를 선택한다. 결국 환경과 생물의 구조접속은 상호적이어서 유기체와 환경이 상호 변화하는 것이다. 유기체는 생식단계마다 변화하고 환경은 부분과 전체의 역동성에 따라 변화한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지 않는다. 단지 개체발생에 필요한 전제조건만 충족되면 그것은 살아간다. 따라서 환경을 최적으로 이용하는 진화란 없다. 오로지 유기체와 환경이 구조접속 관계 속에서 적응과 자기생산의 보존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난 결과는 예측하기 불가능하다. 그것은 물론 우연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과학적 설명체계를 내놓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신경계를 가진 동물들은 일종의 창조적 자유를 경험한다. 신경계란 그물처럼 서로 얽힌 여러 순환관계로 된 기제로서, 유기체가 조직을 보존하는 데 본질적인 내부 상태들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신경계는 작업의 폐쇄성을 가진다. 신경계란 개체 내부구조의 상관관계일 뿐이다. 그러나 이 신경계의 내적 흥분관계에 따라 동물은 행동한다. 결정론에서 보는 바와는 달리 신경계는 환경에서 입력되어 들어온 정보를 표상화하는 도구가 아니다. 신경계는 자신의 구조에 따라 작업할 뿐이며, 환경의 구조는 신경계의 변화를 유발할 뿐 결정하지 못한다. 생물은 신경계의 상태변화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환경에 대한 합목적적 반응이라기 보다 신경계의 내적 상관관계에 따른 자율적인 작업에 불과하다. 유기체의 상태변화가 자신의 구조에 상응할수록 유기체의 상태변화는 주위 환경과 더 잘 어울리게 된다.



신경계를 가진 유기체들이 재귀적 상호작용을 주고 받음에 따라 함께 공생하게 되는 공동개체가 발생한다. 유성생식을 하는 유기체들은 생식을 통한 개체 발생을 위해 3차 질서의 접속이 필요하다. 사회적 체계란 3차 등급의 개체이다. 이제 3차 등급의 접속과 함께 독특한 문화적 현상계가 함께 생겨난다. 사회적 환경이 지닌 의사소통적 역동성의 틀 안에서 개체발생적으로 생겨나 흉내를 통해 퍼져서 여러 세대를 거쳐 안정하게 남아있는 행동양식을 문화적 행동이라 한다. 이때 공동체를 3차 등급의 개체로 본다면 의사소통이란 정보전달이 아니라 각 체계의 구조적 역동성에 따른 상호작용일 뿐이다. 의사소통을 통해 집단으로서의 개체는 그 자신의 적응을 보존하는 것이다. 여기서 집단으로서의 개체의 생존이 문제가 될 때, 그 집단의 구성원의 개별성은 별로 중요시되지 않는다. 집단을 연구하는 동물학에서 집단을 위한 개체의 희생사례는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적 체계는 언어영역에서 구조적으로 접속된다.



언어영역의 적응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의 사회체계는 개인적 창조성을 확장한다. 이리하여 인간의 사회체계는 다른 사회체계와 달리 구성원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인간적 사회의 체계는 말에 의존한다. 영장류의 계통은 천5백만년을 지속하였다. 군집, 대면성교, 언어사용과 같은 인간적 특징이 드러나는 것은 약 3백만년 전이다. 군집에 따른 분업과 협업이 발생하고 언어적 재귀과정을 통해 말이 생겨났다. 이렇게 재귀적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개인들이 서로를 고유명사로 부를만큼 개성화되었을 때, 자아가 각성된다. 인간의 언어능력은 뇌의 좌반구에 위치하며, 여기서 의식, 자기의식, 정신이 발생한다. 의식의 각성은 오직 사회적 영역에서의 언어를 통해서만 일어난다. 의식이 언어의 나라 안에 있기 때문에 인식활동도 여기서 발생하고, 또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적 재구성도 말 안에서 형성된다. 우리는 말 안에 있다.



인간의 인식활동은 외부의 객체와 무관하다. 객관성이란 주체의 착각이다. 두뇌는 환경의 반사체계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폐쇄된 체계로서 세계의 사태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며, 그 원본은 소실된다. 인식활동은 우리 몸을 이루는 다세포적 발생조직과 구조, 신경계의 작업적 폐쇄성, 언어적 영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식활동은 내부와 외부로 구분할 수 없는 환경과 유기체의 상호작용 안에서 작용한다. 이 상호관계에서 안과 밖의 기준점은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우리 주변의 세계는 사회 안의 인간들이 의사소통을 통해 다른 이들과 함께 내놓은 '어느 한 세계'이다. 생물학적 조직과 구성이 다른 생명은 다른 세계, 자신에게 고유한 세계를 산다. 우리의 객관적 인식내용에는 우리의 주관적 인식구조가 새겨져 있다. 우리의 인식은 말을 통한 공동체적 인식이며, 우리의 삶은 오직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한 공동의 삶일 뿐이다. 여기서 사랑은 유기체의 한 역동적 구조 양식을 규정하는 감정으로서, 사회적 삶의 작업적 응집성을 산출하는 상호작용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요소이다.



마투라나는 DNA 위주의 네오 다위니즘적 진화론을 지양하며 구조적 역동성 안에서 생물의 진화현상을 설득력있게 해명하고 일종의 생물학적인 인간학을 개진한다. 진화론에 있어 마투라나의 핵심적인 전제는 진화론 자체가 인간의 인식활동의 한 산물이며, 진화론이란 인간적 관점에서 파악된 생명현상의 설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으로 이러한 진화론의 이해는 진화론을 구성하는 인간의 인식활동을 이해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순환체계가 바로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자기생산체계의 한 예이다. 생명체는 환경과 다른 생명체계와 상호작용하는 자기의 고유한 자기생산체계 안에서 폐쇄적으로 작용하는 순환적 그물조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은 재귀적인 자기생산체계이다. 가령 "이 문장은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문장은 재귀적이다. 자기 자신이 재귀적으로 자기 자신을 해명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령 신경계는 흥분의 강도만을 전기자극화할 뿐, 외부의 자극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나의 현실은 나의 자기생산체계 안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나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생명체는 환경과의 상호! ! 관계에서 자기 체계내에 에너지와 물질을 유입시켜 폐쇄적인 활동(가령 물질대사)를 수행하며 항상 운동하는 가운데 자신의 안정적인 구조를 보존한다. 이러한 재귀지시적인 체계행동이 바로 자기생산이다. 이러한 자기생산은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의 상보성에 기인하며, 또한 개체의 전체 체계와 그 체계의 환경과의 공동적 진화에 의한 균형의 산물이다. 양자 수준까지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구조와 자신의 기능 간에 전체적인 상보성을 가지며, 생명체에선 이러한 상보성이 개방된 에너지 체계에 의해 자율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마투라나의 구성주의는 상당히 설득력있는 진화론을 제시해준다. 우리는 아래에서 다양한 진화론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해보면서 다시 마투라나의 입장에 대해 반성해 보겠다.



4.7. 각 진화론적 입장에 대한 비판



우리는 진화의 현상이 하나의 학문적 이론으로 성립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알아보기 위하여 금세기의 각종 진화론적 입장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들의 입장이 진화의 현상을 자체내에 통합적으로 수용하며 월권행사 없는 적절한 이론체계를 제시하고 있는지 가늠해보자.



1)다윈은 진화론이라는 이론적 계통발생의 시조가 된다. 어떤 형식으로든 후대의 진화론은 다윈이 제공한 이론적 시각의 틀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윈의 이론적 시각은 어떠한 전제를 가지고 있는가? 다윈은 자신의 학문적 방법론은 베이컨의 구상을 따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학의 객관성이란 이념과 그 객관성을 보장하는 경험적 방법론 절차를 의미한다. 그러나 동물학의 영역은 물리학과 같은 수학적 법칙을 가질 수 없다. 수학적 법칙은 동일한 관계를 가지는 대상들에게 예외없이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므로 자신의 이론적 지평 안에서는 자연과학의 이념인 객관성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적용되는 법칙이며, 그 자료는 동물계에서의 몇 가지 종들의 분포상들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귀납을 위하여서는 여러가지 가설적 전제가 필요하게 된다. 다윈이 현상에서 발견한 것은 몇 가지 종들의 점진적인 변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돌연변이, 투쟁 속의 적자생존, 자연에 의한 선택과 도태라는 유비적 개념들이 우연이라는 전제를 ! ! 깔고 사용되었다. 이 개념들은 멜더스의 '인구론'과 가축의 품종개량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상당히 의인적인 뉴앙스를 풍기며, 그 덕분에 스펜서와 같은 철학자를 통해 쉽게 사회적 진보주의, 그리고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로 변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윈이 의미하고자 했던 것은 변이의 발생과 변이된 개체의 생존에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은 우연적으로 충족된다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을 역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 필요충분조건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진화론의 올바른 발전은 '우연'의 의미를 밝히고 그 필요충분조건들을 드러내는데 있었다.



2)베르그송은 생명의 충동이 돌연변이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생명체의 내적인 지속을 비지성적인 반성 속에서 직관할 때 각 생명체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기하는 동일한 생명의 충동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베르그송의 진화론을 먼저 생물학적으로 살펴보고, 다시 철학적으로 검토하겠다. 우선, 생물학적으로 볼 때, 변이의 현상은 DNA의 복제시에 발생하는 오독에서 발생한다. 이중나선이 새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염기쌍이 다른 쌍과 엉켜서 치환되거나, 떨어져 나가거나, 떨거지가 달라붙어 있거나, 겹쳐서 복사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DNA는 분자적인 수준에서 자신의 입체적 선택성에 근거하여 아주 정확한 복제를 수행하지만, 전체 생명체의 복제 빈도수를 고려해볼 때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실수의 발생 확률은 상당히 커진다. 확률이 누적적으로 높아질 때, 변이의 실제 발생은 거의 법칙이 된다. 일단 DNA 텍스트 상에 화학적 오타가 발생하면 그것은 자체 교정이 불가능한 '사실'이 되며 이에 따라 변이된 개체가 자동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화학적 오타는 미시적 차원에! ! 서의 물질적 에너지 운동에 의한 DNA의 입체적 선택성에 대한 교란이다. 즉 DNA의 분자결합이 주변의 에너지 흐름과 충돌되어 발생한 사고이다. 그렇다면 변이는 역시 물리 화학적 상호작용의 소산이다. 변이가 DNA 자체 내에 잠재한 어떤 경향이라면 우리는 생명의 충동이 작용할 여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변이는 DNA의 에너지 흐름이 주변의 에너지 흐름과 상충되어 발생하는 것이므로 DNA 자체 내의 자발적인 창조성으로 볼 여지가 전혀 없다. 오히려 생명의 충동은 복제되어 형성된 개체단위로서의 생식세포의 발생으로부터 일깨워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생명의 충동에 대한 비지성적인 직관이란 인식론적인 혼동에서 오는 방법론이다. 비지성적인 직관을 본능적인 직감 내지 거의 선불교적인 공감적 깨달음이라 하여도 그것은 교감신경계의 활성화에 불과하며, 이러한 신경계의 자극은 다시 지성적으로 해석되게끔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이해방식이다. 그러기에 베르그송도 생명의 충동을 설명하는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생명의 충동이라는 베르그송의 개념은 진화론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소중한 단초가 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으! ! 로나 철학적으로나 철저하게 그 근원으로 소급되지 못하였으므로 크게 생산적인 결실을 낳지 못하였다.



3)샤르뎅의 목적론적 물활론은 의식의 집중성과 물질의 합성력이 비례관계를 이룬다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미시적 수준의 입자들은 객관적인 법칙성이 아닌 불확정성 속에서 활동하지만 분자 수준에서는 이미 안정된 물질의 합성력을 보이고 있으며, 동시에 물리 화학적인 법칙에 정확하게 순응하고 있다. 고분자 합성이 일어나면서 그 법칙성과 안정성은 더욱 증가하여 마침내 생명체를 낳게 된다. 생명체는 다양한 의식수준을 현상하면서 마침내 유기체가 최고도로 합성된 인간 안에서 자기의식 수준에까지 고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진화론은 생명체 이전의 단계에서는 아주 잘 들어맞는다. 그러나 현대 동물학의 연구는 인간의 생물학적 유기체는 동물들 안에서 전혀 최고의 합성력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지각에 있어 잠자리의 시각상이 인간의 시각상보다 저능한 합성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박쥐는 레이다와 동일한 원리에 의한 초단파 반사에 의해 물체를 인식한다. 따라서 인간이 최고의 의식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인간의 신체가 최고도의 물질적 합성력을 가지고 있다? ! ?것은 수긍될 수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대 진화론에서는 물질적 합성력은 여러가지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해나갈 수 있으며 인간은 그 중의 어중간한 어느 한 위치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다른 동물에 비하여 우월한 인간의 신체적 합성력은 뇌의 크기에 의존하며, 그것은 결국 의식적 통합에 의존하는 것이다. 진화의 계열에 있어 의식에로의 상승계열과 신체 기관적 합성력의 상승계열은 비례하지 않는다. 따라서 샤르뎅의 우주적 진화론은 생명나무의 수형도를 잘못 이해한 가설로 그친다. 생명체는 존재하는 한 적응한 것이다. 따라서 생명에 관한한 의식에로의 상승방향을 물질적 상승방향과 연관시켜선 안된다. 인간에로 이르는 진화의 계열은 범물활론과는 다른 범주의 파악방식을 요구한다.



4)분자 생물학자 모노는 진화론의 메카니즘은 철두철미한 우연, 본질적 우연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본질적 우연을 '독립적으로 진행하던 사건들이 서로 교차해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그가 염두에 두는 우연적 사건이란 결국 DNA의 에너지계에 주변의 양자적 에너지계가 교차해 들어와 발생하는 돌연변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본질적인 우연인가? 이것은 지구의 공전주기가 태양과 달의 인력 외에도 수성, 금성, 화성, 목성 등의 위치간섭에 의해 교란받는 것과 동일한 유형의 현상이다. 쉽게 말해 이것은 일종의 나비효과이며, 일기예보의 경우와 같이 함수 체계 내에서의 변수들이 너무 많아 우리가 완전한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것만을 의미한다. 오히려 여기에는 에너지 역학적인 어떤 법칙이 미시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미시적 수준의 양자 역학에서는 마치 본질적 우연과 같은 불확정성이 작용하긴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정성은 객관적 법칙의 부재에 의한 무질서에서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미시적 수준에서의 입자와 그 속도의 상관관계를 인간의 수준에선 객관화할 ! ! 수 없다는 관찰자 측의 문제에서 발생할 뿐이다. 결국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은 본질적 우연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인식론의 문제이다. 객관성이란 인간의 관념?대한 인식론적 재성찰이 요구되어 인식일반의 이해에 대한 재정립이 요구되는 것이다.



5)도킨스는 개체의 존재론적 우연성의 문제는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우연성의 이면에는 유전자의 불멸성이라는 법칙이 숨어있다는 것을 밝힌다. 생명체가 살아있다라기 보다 오히려 생명체의 각 세포 안에 유전자가 군집하여 살고 있다. 개체로서의 생명체는 사멸해도 그의 자손을 통해 유전자는 세세대대 생존한다는 것이다. 변이가 일어나도, 그것은 변이된 개체와 종의 문제이지, A,C,G,T라는 4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DNA는 얼굴만 바꿔가며 동일한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전자 결정론을 넘어서는 유전자 주체론이며 생명의 개념을 확대하여 생명의 기초적 구성요소인 유전자를 생명의 핵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시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생명의 정의를 유전자에로 환원해야만 하는 필연성을 진화의 현상이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의 현상은 생명의 정의를 위한 아무런 자료도 제공하지 않는다. 분자 생물학의 발전에 의해 과거에 자명하게 생각되었던 종, 개체, 생명 등의 핵심 단어가 문제시되게 되었다. 정의란 본질을 전제하는데, 오늘날 생물학에서 영구불변한 본질을 인정하기는 매우 힘들게 되었다. 진화라? ! ?과정이 개념의 경계설정을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과학은 본질을 정의하지 않고, 자기설명적인 개념(heuristic notion)을 사용한다. 따라서 하나의 핵심개념은 그 개념과 연관된 모든 현상이 밝혀져야 비로소 해명되게 된다. 그런데 진화론이 3차원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발생학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할 때,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은 도대체 우리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능한 해결책은 도달할 수 없는 객관성의 이념을 포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인식적 한계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는 인간이며, 인간으로서의 인식론적 한계 안에 갖혀있다. 인간의 해석隙?순환 속의 이해현상이 진지하게 긍정될 때 과학적 방법론도 인식론적 전환을 겪게 될 것이다.



6)마투라나의 진화론은 인식론적 반성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신경계는 폐쇄된 체제로서 외부세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조에 따라 흥분강도만 전달할 뿐이며, 뇌는 자신의 구조에 따라 인간에게만 적절한 외부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세계의 객관성은 인간의 인식구조가 외부에서 받은 흥분과 자극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는가라는 정도에 달린 것이지만, 객관성 그 자체란 인간에겐 불가능하고 단지 인간적으로 구성된 객관성, 인간이란 종에게만 공통된 객관성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경험적으로 관찰된 현상의 기술적 묘사는 그에 상응하는 신경계의 특정 흥분상태들의 인간적 구성방식의 소산일 뿐이다. 우리의 감각적 경험의 밑바닥에 인간의 구조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와 내부의 함께 흔들림이라는 순환관계 안에서 우리의 인식이 성립한다. 세계를 구성하는 인간적 인식의 뿌리는 인간의 생물학적 바탕에 근거한다라는 통찰에서 그의 진화론이 출발한다.



인간의 인식이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라면, 생물에 있어서도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는 그 생물의 자기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생물의 기초단위인 세포의 자기생산체계의 활동 자체가 이미 그 세포의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이다. 더우기 세포의 자기생산체계는 DNA의 배타적인 명령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포 단위에서 이미 전체적인 체계와 구조가 세포막과 핵과 여러 분자요소들의 물질대사나 복제행위들을 자율적으로 조정해나가며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체계는 다세포 유기체와 군집적 유기체로 나아가며 동일한 작용방식의 질적인 심화와 풍요화를 이루어 나간다. 각 생명체는 각자의 환경권 안에서 자기생산체계를 자율적으로 운영하여 자기의 세계를 구성하는 나름대로의 인식자들이다.



이와 같이 작업효과를 갖는 자기생산체계라는 이해범주를 통해 마투라나는 종래의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을 지양하고, 생물 고유의 각 활동성을 각자가 선택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일종의 인식행위로 파악한다. 여기서 인식이란 단어는 이성의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효과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폐쇄적 자기생산체계에 따라 외부의 자극을 선택하여 자신의 구조에 따라 재구성한 뒤 활동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산다. 개미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다르다. 개미의 세계는 개미의 자기생산체계에 의해 구성된, 그들 고유의 세계이다. 마투라나의 이러한 진화 이해는 상당히 깊은 철학적 함축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를 훗설의 발생학적 현상학의 선험적 주관과 연결하여 고찰하려 한다.



5. 훗설의 선험적 주관:진화의 선험적 주체



의미구성을 주요 범주로 하는 훗설을 진화론과 접맥하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훗설 후기의 발생학적 현상학은 의식의 발생이 본능과 충동에 근거한다고 보아 독특한 선험적 모나드론을 제시한다. 우리는 여기서 마투라나의 자기생산체계와의 연결점을 발견한다.



발생학적 현상학이란 시간성에서 본 의식의 내적 흐름을 발생적 계기에 따라 파악하는 것으로, 이렇게 파악된 의식 안에는 언제나 '보다 더 사념함'이라는 배경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평적 배경의식은 노에마적 통일체를 향한 의식뿐만이 아니라 감정, 기분, 충동과 본능적 욕구까지 포함하는 다층적 지평의식임이 밝혀진다. 이러한 다층적 구성의 위계에서 지향성의 심층을 차지하는 가장 근원적인 토대는 바로 수동적 종합의 영역에 있는 본능이다. 본능적 지향성은 무의식적 본능 외에도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본능적 지향성까지 포함한다. 가령 인식의 영역에서는 이미 감각단계에서 원초적인 객관화의 본능이 작용함으로써 감각자료들의 수동적 종합이 보다 높은 단계의 단일 표상에로 지향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식 이전의 단계에도 신체적 욕구와 연결된 비객관화적 본능이 존재한다. 이 원초적 구성의 영역에서 이미 인간은 본능적 충동에 의해 세계를 향해 있게 된다. 본능적 충동은 '보다 더 활동함'을 통해 지평 자체를 형성한다. 결국 발생적 현상학은 본능적 지향성에서부터 무한한 통각체계의 형성을 통해 구체적인 ! ! 선험적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대상 구성의 가능성의 근거는 결국 우리의 의식이 언제나 이미 보다 더 높은 단계의 의미로 초월한다는 통각적 구성작용에 존재한다. 이러한 초월작용의 발산중심으로서의 선험적 주체를 초월적 모나드라 부른다. 그것은 세계를 구성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현실적이며 가능적인 총체적 의식의 삶이며, 완전한 구체성 속에서 파악된 자아이다. 선천적 본능들에서 출발하여 보다 더 큰 의미를 향해 초월해 나감이 선험적 모나드의 존재방식이다. 일단 이런 방식으로 선험적 모나드가 파악되면, 선험적 모나드란 존재하는 모든 생물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는 자기 존재로 이해된다.



훗설의 선험적 모나드란 자기의 활동을 초월적으로 종합하여 구성하는 활동주체로서의 자아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의 차원은 발생학적으로 볼 땐 본능적 충동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험적 모나드란 자기생산체계를 가진 생명 개체의 활동중심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개체의 활동은 세계 구성적이란 점에서 일종의 인식행위로 파악된다. 이리하여 생명체 일반은 제각기 생명나무의 가지뻗기에 매달려 있는 선험적 모나드들로 파악된다. 이들은 자신의 진화 계열 안에서 자신에게 고유한 세계를 구성하며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선험적 자아들인 것이다. 여기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3차적 개체, 즉 군집생활을 하는 개체들은 각 종에 고유한 상호주관성에 의거하여 자기들만의 객관적인 세계를 갖는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 종의 한 구성원으로서 각자가 구성한 세계를 상호주관적인 객관성 안에서 서로에게 내놓는 것이다. 이렇게 파악할 때, 훗설의 선험적 현상학과 마투라나의 자기생산체계적 진화론은 진화의 현상을 상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험적 자아의 '보다 더 많이 사념함'이란 특성, 즉 초월성이 ! ! 생물의 유기체적 전체성을 부분적 요소로 환원하지 못하게 하며, 오히려 자신의 환경계를 개방하여 보다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게 하는 것이다.



6. 융의 집단무의식과 초월적 진화론



해부학을 전공한 의사 출신의 분석심리학자 체.게.융은 인간 무의식의 집단적 심층을 탐색하면서도 진화론적인 시각을 잃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인간의 무의식은 인간이란 종에 고유한 선험적 의미구조를 드러내준다. 인간의 집단무의식은 다층적인 구조를 현상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계통발생적인 생물학적 진화과정과 다소 상응하는 구조를 갖는다.



페르소나란 3차 등급의 개체인 사회의 기능에 동일시된 자신의 얼굴이다. 이것은 2차 개체로서의 자신의 개성을 상실한 모습이다. 2차 개체로서의 개인은 의식에 의해 자기동일성을 파악한다. 그러나 융에 의하면 이러한 인간의 의식이란 진화의 산물인 것으로 본다. 원시인들은 의식의 상실, 즉 넋이 나간 상태를 마음의 병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여전히 의식의 빛이 없었던 무의식 상태의 태고적 혼돈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의식 이전에 인간의 진화적 계통에서 발생했던 무의식의 층은 우선 자신의 동물성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그림자로 나타난다. 그림자는 억압된 개인 무의식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인류 공동의 야수성이다. 인간의 의식이 자신의 그림자를 드러내고 통합하여 화해를 하게 되면, 그 밑에 인간에게 공통된 양성적 인격이 드러난다.



발생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되기 이전에 하나의 양성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의식적 자아가 자신을 생물학적 남성이나 여성으로 동일시할 때, 남자에게는 아니마라는 원형이, 여성에게는 아니무스라는 원형이 무의식 안에서 작용하게 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외부의 이성에게 투사되어 애욕을 불러일으키나, 그것은 다시 자신 안에 통합되어 단지 그것이 양성으로서의 나 자신이라는 것이 인정되어야 자신과의 화해가 달성된다. 화해하고 보면 아니마란 인간의 기분과 반응, 충동 등 자발적인 심리 요인의 선험적 요소인 것이다. 아니마와 타협을 하면 아니마 뒤편에서 작용하는 의미의 원형이 드러난다.



의미의 원형은 생명의 신비를 드러내주는 초월성 그 자체이다. 그것은 항상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스스로를 초월적으로 승화해나가는 생명의 에너지이다. 그것은 단세포적 개체 안에 이미 충만한 방식으로 잠재해 있는 인간의 초월적 완성을 드러내준다. 그래서 어린이의 상징을 통해 자신의 실현을 의식에게 요구하고, 현자의 상징을 통해 모순에 빠져있는 논리적 이성에게 갈등의 인내를 충고한다. 의미의 원형을 통해 본 무의식의 핵심부에는 바로 진정한 "자기"(Selbst)가 있다. 우리의 의식적인 자아는 구체적인 나,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활동하는 나,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라 의식의 논리적 여과를 거쳐 추상화된 나일 뿐이다. 진정한 나는 '자기'이며 그것은 선험적으로 의미전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완전성인 것이다. 자기는 이미 언제나 잠재적으로 완전한 것이면서도 언제나 보다 더 현실적으로 완전하게 되어 가는 것이다. 참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나 자신은 잠재적 완전성 안에서 보다 더 현실화된 완전성에로 초극해 나가는 초월성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자기'는 훗설의 선험적 자아와 동일한 사태, 즉 언제나 자기를 초월해 나가는 초월적 자율성으로서의 생명 에너지이다. 더구나 융의 '자기'는 자신의 무의식적 영역 안에 진화의 모든 과정을 발생학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존재이다. 철학과 정신분석학이 의식적 자아의 역사성에 대한 구체적 대면과 성찰과 화해를 요구하고 있듯이, 융의 분석심리학은 생명의 진화과정을 자체 내에 각인해 놓은 '자기'와의 구체적 대면과 성찰과 화해를 통해 불멸의 초월성으로 승화해 나가려는 생명 에너지에게 물길을 티워 주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7. 결론



철학적 인간학은 진화론과의 논의에서 물질적 결정론에 대립한 정신적 자유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진화 현상에 대한 파악은 이러한 논의를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과거의 유물론적 결정론은 자연과학의 객관성이란 이념과, 수량적 법칙파악이란 방법론에서 필연적으로 유래한 세계관이지만, 오늘날 미시적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의 영역에서 이러한 객관성의 이념이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이념이며, 인간적 사태에 적절치 못한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에 대한 발견은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자각하게 만들었다. 인간 인식의 해석학적 순환은 전체라는 체계가 언제나 부분을 선행하여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과 전체의 해석학적 순환이 바로 생명체 일반의 진화의 흐름 안에서 작용하는 일반법칙임을 깨닫게 된다. 원자들이 분자로 합성되고 분자들이 고분자로 합성되는 화학적 작용은 물질적 입자들의 입체적 상보성과 에너지 법칙의 작용결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생명체에서도 동일한 입자들의 입체적 상보성과 에너지 법칙의 작용결과 DNA의 자기복제가 수행된! ! 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체의 이해에서 DNA만을 고려대상으로 본다면 생명체와 물질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사상되고 만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볼 때, 생명체는 언제나 전체가 부분을 선행하여 작용한다. 발생학적으로도 유전물질의 탄생 이전에 자기생산체계를 지닌 생명체가 선행적으로 존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생산체계 전체는 언제나 부분보다 선행적으로 작용하며 부분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포괄하여 조절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생명체의 이러한 자기조절 작용을 자기 생활세계의 구성작용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초월성으로 표현될 수 있다. 단세포 생물도 이미 미시적인 차원에서 개체로서의 자기전체성과 환경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자기 체계 내의 모든 변환을 역동적으로 조절하고 통합해 나간다. 개체가 이러한 자신의 초월성을 씨앗의 형태로 간직한 것이 바로 DNA이다. 그러나 DNA 자체는 생명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물질적 양식의 생명 매개체이다. 오직 수정된 생식세포가 발생하기 시작할 때, 이때 생명의 초월성이 함께 발생하여 DNA의 지령에 따른 세포분열을 감독하며 전체로서의 자기조절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생명체는 발생하는 그 최초의 순간부터 이미 '보다 더 많이 활동함'이란 인식적 초월성을 행사한다. 그것은 결코 부분의! ! 합이 아니라 보다 더 큰 전체 안에서의 구조적이고 통합적인 작용인 것이다. 우리는 의식이 없는 생명체에서 이러한 기능을 생혼이라고 불러왔고, 동물들에서 이러한 기능을 각혼이라고 불렀으며, 인간 안에서 이러한 기능을 본능과 이성과 의지, 즉 영혼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이 모든 기능들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그 질적인 상승이 있어왔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구조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자기생산체계의 개체들의 활동중심을 선험적 모나드, 혹은 '자기'로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무생물의 물질 세계에서는 입자들의 상보성과 역학적 상관관계 안에서의 역동적인 구조변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생물들의 생명 세계에서는 이러한 물질적 법칙에 언제나 선행하는, 유기체 전체를 통괄하는 초월적 자율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초월적 자율성이 바로 옛 철학이 말하는 영혼이다. 각 생명 개체의 초월적 자율성은 전체로서 작용하는 유기체 내의 에너지 체계이다. 그래서 그것은 단지 물리 화학적 법칙만이 작용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체에서는 이러한 물리 화학적 법칙의 작용구조가 변화한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전체가 부분에 선행하는 순환론적이고 재귀적인 역동적 작용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초월적 자율성이 개체에 대한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각 개체의 세계구성방식이 DNA를 통해 복제된 개체에게 전달되며, 이 DNA의 활동개시와 함께 동시에 초월적 자율성이 일깨워져 DNA의 활동 자체를 자신의 부분으로 간주하는 선행적 전체로서 작용한다.



이제 우리는 생명의 본성이 초월적 자율성이며, 언제나 부분에 앞서 작용하는 개방된 전체체계임을 알았다. 따라서 생명의 본성은 물리 화학적 법칙이나 DNA의 활동에서 연역되어 나올 수 없으며, 또 역으로 생명의 현상이 물리 화학적 법칙이나 DNA의 활동으로 환원될 수 없음이 밝혀진다. 발생학적으로 생명이 고분자 단백질들이 합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타났다 하더라도, 생명의 필요충분 조건에는 그 이상의 그 무엇이 요구된다. 초월성과 자율성은 물리 화학적 세계에는 낮선 그 무엇이다. 차라리 우리는 당분간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현상에 대해 신비라는 영역을 남겨주어야 할 것이다.



일단 초월적 자율성을 지닌 생명이 발생하여 자기생산체계를 구축하고 진화과정 안에 들어오게 되면, 유전과 변이에 대한 새로운 반성이 각성된다. 네오 다위니즘 계통의 진화론자들은 변이와 선택이 순전히 우연에 의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시적 수준에서의 에너지 교란도 역시 본질적으론 역학적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우연'이란 말은 순수한 무질서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함수에 대한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변이에 의해 드러나는 생명체의 조직, 구조와 기능은 유전자와 그 변이의 상관관계 안에 숨겨져 있는 가능성의 발현이다. 진화론자들은 변이체들은 복제과정의 실수의 산물이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실수의 산물이 보여주는 엄청난 합목적성이다. 물론 불합리한 조직과 기능들은 도태되어 사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생명체들에서 발견되는 엄청난 합목적성은 DNA와 그 변이의 상관관계 안에 숨겨있는 가능성이 엄청난 지성적 질서를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생물학의 거장 에드워드 윌슨은 지구 상에 현존하는 1억 종에 종당 평균 10억 염기쌍을 곱? ! ?1,000조 염기쌍이 생명의 전체 다양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기에 복사오류에 의해 발생하는 변이의 경우의 수를 곱하지 않은 수치이다. 변이의 경우까지 포함한 생명의 전체 다양성의 가능성은 거의 무한하다. 그것은 비합리적인 무질서에서부터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합목적성을 갖춘 지성적 질서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분포되어 있다. 합목적성이 발현된 변이태는 자신의 환경계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무척 높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 안의 모든 생명체에서 놀라운 합목적성을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DNA와 그 변이의 상관관계 안에 간직되어 있는 놀라운 지성적 질서의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증거가 바로 우리들의 의식이다. 인간의 의식은 유전자의 복제시에 발생한 실수에 의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의 산물인 인간의 의식은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객관적으로 간직되어 있는 지성적 질서를 의식 안에 재구성하여 파악할 수 있는 거의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무의식적인 자연으로부터 탄생하여,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자연의 객관적 질서를 거꾸로 의식해 들어가는 현상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생명의 ? ! 본煊?이어 인간은 존재하는 우주의 두번째 신비이다.



인간이 자신의 초월성을 의식하면서 스스로 구성하는 세계는 초월적으로 열린 세계로 파악된다. 인간이란 종은 초월적인 의미충만을 향하여 운동하는, 그런 종류의 초월적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모든 자기생산체계적 활동은 무한히 개방된 초월성이란 선행지평에서 작용한다. 인간에게 고유하게 개방되어 있는 초월적 영역의 초월적인 그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이란 표상을 통한 그 무엇에로 지향하게 한다. 결국 인간에 관한 한, 생명의 초월적 자율성은 무한한 초월성 그 자체를 지향하는 초월성으로 파악된다. 진화의 현상은 생명의 신비스런 초월적 자율성의 활동이 유전되고 변이를 통하여 다양한 가지성이 발현되는 가운데, 마침내 초월성 그 자체를 지향하는 초월적 자율성의 개체를 이 세상에 낳은 것이다.



진화론의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물질과 생명 사이의 완전한 연속성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생명이란 전체로서의 작용이 언제나 부분으로서의 작용을 선행하는 신비로운 구조를 지닌다. 생명 진화의 계통을 따



라 작용의 성질과 정도는 다양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다세포적 개체의 물질대사 작용일 수도 있고, 소화기관의 작용이 교감신경계를 자극하여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본능적 작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걸어온 진화의 계통은 이렇게 다양한 작용들을 넘어 의식이라는 작용을 발생시키게 되었다. 본능에 뿌리를 박고 탄생한 인간의 의식작용은 감각과 기억의 지능적 수준을 넘어 지성, 이성, 의지의 작용으로 세분화되어 인간적 삶의 다양성을 구성한다. 더구나 인간의 의식작용은 자연에 객관적으로 현시되어 있는 지성적 질서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인식과정에서의 자신의 종적인 한계마저 파악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무의식적 심층기저까지 탐험하면서 무한히 초월적인 그 어디를 지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생명의 진화에 대한 인간적인 의미를 알고 있다. 생명이란 초월적인 자율성의 활동이며, 인간에게 있어 그 초월적인 자율성이란 바로 무한을 향한 도전임을.

크림의 세계에서 따옴



in http://my.dreamwiz.com/korean93/index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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