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icle Bank

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19)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38
Delete Modify 박이문 Access : 7760 , Lines : 24
시간, 역사 그리고 종말 - 문명의 발달과 시간
시간, 역사 그리고 종말 - ③ 문명의 발달과 시간

인간 중심 문명으로의 전환 통한 시간 주체성의 회복

--------------------------------------------------------------------------------

시간의 개념을 떠난 인간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 있다/없다’, ‘시간이 빠르다/느리다’, ‘시간을 아낀다/낭비한다’, ‘시간에 쫓긴다’, ‘시간을 잰다’ 등의 일상적 표현에서 시간은 객관적 대상으로 전제되고, ‘시간이 흐른다/빠르다/느리다’라는 말에서 과거, 현재, 미래로 분절되는 어떤 방향을 향해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존재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시간은 존재의 일부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의 변화를 지각하는 선험적 범주이며, 시간의 흐름을 서술하는 과거, 현재, 미래는 그러한 범주의 구조이다. 어떤 개념을 떠난 범주는 불가능하며, 기호/언어를 떠난 개념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의식이 없는 돌이나 나무는 물론, 기호/언어를 갖지 않는 동물에게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한결같이 변화 속에 존재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그러한 변화, 즉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만이 기호/언어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한 생명체에게 죽음처럼 중요한 것은 없고, 그러한 죽음이 시간의 개념을 떠나서는 인식될 수 없다면, 자신의 삶을 죽음에 이르는 생노병사의 변화 과정으로 의식하는 인간에게 시간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다. 시간을 인식하는 주체라는 점과 시간이 자신의 실존과 뗄 수 없이 얽힌 중요한 문제로 의식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시간적 존재이다.
인간의 생노병사라는 자연적 변화가 시간의 끝 즉 죽음을 뜻하는 이상 그 자연적 한계를 극복하는 문제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시간의 극복은 자연적/물리적 시간의 문화적/정신적 연장과 확대로서만 가능하다. 문명은 이러한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 낸 전략과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은 자연현상에 대한 인위적 대처이며, 문화적 즉 인간에 의한 자연의 재구성이다. 문명의 이같은 기능과 본질은 그 효능성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옛날의 석기 문명이나 현재의 첨단과학기술 문명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자연상태에서 모든 동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순간순간 생존을 위해 긴장하고 자나깨나 약탈자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하며, 깨어 있을 동안은 언제나 약탈자로서 먹이를 찾는 일에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영원한 순간적 현재 즉 시간 밖에서 존재한다. 이런한 상태에서는 삶과 죽음이 다 같이 자연적 변화 즉 시간의 법칙에 따른다. 시간적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순간적 삶의 구조는 인간이 도구/기술을 발명하는 순간 시간적 삶의 구조로 바뀐다. 도구의 발명은 곧 문명의 발명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문명과 더불어 존재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도구를 발명하고 기술을 점차적으로 개선하면서 그는 보다 효율적으로 자신을 자연적 재앙이나 약탈자로부터 방어하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음식을 구하고 예비적으로 비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순간적인 현재를 초월하여 과거를 뒤돌아 보고 미래를 계획할 여유를 갖게됨을 뜻한다. 이러한 여유는 순간에서 시간으로 삶의 구조적 전환을, 이러한 삶의 구조적 전환은 그의 삶의 확대를, 이러한 삶의 확대는 그의 존재의 시간적 연장을, 그의 존재의 시간적 연장은 죽음의 유보를 함축한다.
문명에 의한 시간적 연장 즉 죽음의 유보는 물리적/자연적 및 정신적/문화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물리적/자연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은 소극적으로는 움막을 짓고, 사냥 기구를 발명하고 점차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자연의 재앙이나 위협적 야수로부터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고, 적극적으로는 가옥 건축, 사냥도구만이 아니라 의학적 지식과 기술의 개발로 보다 편안한 거주지를 꾸미고 보다 풍요한 식량을 구비하고, 약과 의술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문명사를 통해서 나타난 인구의 증가, 평균수명의 연장, 물질적 생활의 질적 향상은 바로 위와 같은 사실을 증명한다.
물리적/자연적 측면에서의 시간 즉 생명의 연장은 생물학적/육체적 노동으로부터 점차적 해방과 정신적/문화적 공간에서의 내면적/지적/정서적으로 보다 길고 풍요한 내면적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시계의 시간상으로는 동일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선진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양과 성취할 수 있는 일의 수와 체험할 수 있는 정서적 경험의 종류와 폭은 원시사회는 물론 3백년전, 아니 1백년전 선진 사회에서 할 수 있었던 것들과 비교해 볼 때, 그 차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문명은 또한 다양하고 풍요한 삶을 제공한다. 문명의 발달은 시간의 연장과 풍요, 즉 삶의 다양성과 비례한다. 문명은 한편으로는 생물학적/육체적 시간을 연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적/정신적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인간을 시간의 한계 즉 삶의 한계로서의 죽음으로부터 점차적 해방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역사는 곧 문명사이며, 문명사는 곧 시간의 연장사이며, 시간의 연장사는 진보의 역사이다.
그러나 시간 즉 죽음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삶의 시간 연장과 풍요를 위해 고안된 장치로서의 문명이 역설적으로 억압과 죽음의 독촉, 삶의 시간 단축이 될 수도 있다는 모순된 사실을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문명이 다음과 같은 두 측면에서 문명이 삶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이 문명을 위한 수단으로 전주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고안에 따라 제작된 것인 문명은 필연적으로 지적, 물리적 그리고 시간적 투자를 전제한다. 삶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명은 우리의 삶이 누릴 수 있는 지적, 물리적, 그리고 시간적 자원 일부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명은 인간이 삶의 쾌락/가치를 희생한 결과로서만 가능했다는 프로이드의 주장은 옳다. 문명의 발달이 보다 정교하고 거대한 수단적 장치의 개발과 설치를 요구한다면, 문명의 발달은 원래의 목적인 삶의 풍요한 경험을 잠시 희생하고 수단을 위한 지적, 물질적, 시간적 희생의 상대적 증가를 뜻한다.
둘째, 원래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문명은 인간의 삶을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인간을 구속하고, 정서적으로 억압하는 측면을 동반한다. 가전제품, 전화, 자동차, 컴퓨터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러한 물질적 존재들의 구조나 기능에 우선 자신을 신체적으로 적응시켜야하고 그러한 것들의 시간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것들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그리고 복잡한 기술을 습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가 자유롭게 만든 도구적 장치에의 종속과 그에 따른 정서적 억압감과 고통을 의미한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런한 상황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문명의 발달과 병행하여 생산양식이 농경에서 산업으로, 산업에서 정보로 바뀌고, 사회적 관계가 협동체제에서 경쟁체제로 변하고, 인구가 시골에서 도시로 집중되면서 생활의 템포가 가속적으로 빨라졌고,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러한 템포에 맞추어야만 하는 인간은 삶의 주체로서 삶의 시간을 더 갖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기 보다는 시간의 노예로 전락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명이 물질적 풍요와 생물학적 시간의 연장을 제공하더라도 그러한 풍요와 연장의 의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목적과 수단의 전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문명은 어디까지나 삶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 수 없다. 그럼에도 현재의 문명은 날이 갈수록 문명자체의 개발만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문명의 방향이 바뀌자면, 문명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하는 시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내면적 시간이다. 내면적 시간은 물리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가장 철저히 경험하게끔 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시간의 연장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물리적으로만 측정할 수 있는 양적 시간에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만 체험할 수 있는 질적 시간, 빠름이 아니라 느림에서 찾아야 함을 뜻한다. 이같은 시간적 가치관의 전환은 직선적 흐름으로서의 시간인식에서 곡선적 순환으로서의 시간인식으로의 전환을 전제한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문명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구도의 문명이 절실하며, 그러한 구도를 위해서는 정복적 삶의 태도에서 음미적 삶의 태도로, 인간중심주의적에서 생태중심주의적 세계관에로의 전환을 전제한다.

박 이 문
서울대 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포항공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시와 철학』(일조각, 1975), 『문명의 위기와 문학의 전환』(민음사, 1996)외 다수가 있다.


http://chunchu.yonsei.ac.kr/chunchu/view_article.phtml?id=13660501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