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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8 (09:07) from 129.206.196.145' of 129.206.196.145' Article Number :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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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흘러가지 않는 과거' 문제




독일인의 '흘러가지 않는 과거' 문제
-이그나츠 부비스와 마르틴 발저의 논쟁을 중심으로-


정 시 호(경북대 명예교수)

1. 최근 독어 독문학(Germansitik) 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것은 인문학의 총체적 위기의 부수현상으로서 범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의 게르마니스트인 샌더 길만(Sander L. Gilman: 2000: 84-85)에 의하면 1995년 미국 베닝턴 대학에서는 외국어학과 소속 교수 26명이 해고되고 학과가 통폐합되었다. 또 시카고대학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존 두이가 창설한 전통 있는 교육학과가 폐지되었고 워싱턴대는 사회학과, 뉴욕주립대는 독일어 학과가 문을 닫았다.
미국에서는 이미 70년대에 'Germanistik' 위기론이 대두되어 그 대안으로서 'German Studies'가 탄생했다. 고등학교, 대학에서 독일어를 하려고 하는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이 직접적인 까닭이다. 1978년에 German Studies Association이 조직되고 그 회원은 독일어권에 관심을 가진 역사학자, 사회학자 및 문학자들이었다. 그러면 German Studies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독일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로 볼 수 있다. 게르마니스트 페터 길겐(Peter Gilgen)은 미국의 그것을 "미국적 시점에서 독일문화를 연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FAZ: 19.11.1997) 몇 몇 미국 게르마니스트들은 "독일연구는 최근 30년 간 독일어권에서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및 경제적 발전에 대한 연구"라고 보고 있다(Kurt Mueller-Vollmer: 1995: 156). 30년 간이라는 시간적 제한은 지나치게 현재적이다.
현재 국내의 많은 독어독문학과가 대체로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든다면 부산의 경성대학은 유럽지역학부 독일지역학 전공으로(1980), 마산의 경남대학교는 국제언어문화학부 독일언어문화전공으로(1979), 목포대는 독일언어문화학과로(1995) 학과명칭을 이미 바꾸었거나 바꾸고 있다. 몇 개 대학은 70년대 말에 이미 문화연구를 표방했으니 선견지명이 있었다 하겠다(손은주: 2000: 464-466). 안산의 한양대학에서는 '민족문학연구'에서 '지역언어에 기반한 문화연구'에로 독문과가 현대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국제문화대학 유럽언어·문화학부 독일어권언어·문화전공'으로 개명하고 있다 (탁순미:2000: 469-483).
독일학과 또는 독일학 전공이라는 명칭을 가진 학과는 동국대(1981), 제주대(1981) 및 조선대(1979) 등이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독일학(German Studies)과가 개설된 대학은 대구의 계명대학뿐인 것 같다(1988).
이러한 물리적 구조변화에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문화연구'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어떤 문화인가. 길먼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문화를 가르치는 것이며 문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문학을 가르치는 것이다"(2000:88). 따라서 문화를 강조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가. 독일문화는 독일 경제, 사회, 정치 등을 망라한다. 그렇다면 게르마니스트는 독일정치학, 독일경제학 또는 독일사회학 박사이어야 하는가. 탁순미는 "지역언어에 기반한 문화연구"를 내세우지만 여기에도 고민이 있다. 독일문화를 강의할 때, 우리말 한글교재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 아닌가. 여기서는 독일어 자체가 경시된다. 현재 교양학부 강의 등에서 그러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길겐 역시 이 점을 지적하면서 "(…) 문화학은 문화적 차이를 해명 할 수 있는 언어적 특성을 그 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FAZ 19.11.1997) 이것은 바로 훔볼트적 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좁은 의미에서의 독어독문학 연구가 학제적 연구로 그 폭을 대폭 확장해서 이러한 방향에서의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음은 반길 일이다. (서울대학교의 독일학연구, 김누리, 전영애, 박이도, 김순임, 곽병휴 등의 연구) 필자의 소론 역시 이러한 테두리 내에서의 공부라고 보아주면 좋겠다.

2. Germanistik 위기보다 더 시급한 것은 독일어 사용의 후퇴다. 이는 슈퍼 강국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 과정에서 영어가 링구아 프랑카로 군사, 경제에서 철학까지, 저급문화에서 고급문화까지 전 영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문화강국인 독일, 일본도 너무나 쉽사리 영어를 수용하고 있다. 곧잘 영어 공용어론이 대두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다. 그런데 독일어 사용후퇴의 중요 요인의 하나로서 필자는 독일인 자신들의 모국어 사용기피증을 들고 싶다.
이 점은 역대 독일연방 대통령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다. 1973년 하이네만은 "독일인이 외래어를 좋아한다는 것은 옛날부터 잘 알려져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2000년 11월 23일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 유산(Gutenbergs Folgen)'이라는 심포지움 개막연설에서 라우 연방대통령은 언어의 상실은 그 언어에 담긴 세계관 상실을 의미하며 언어의 다양성은 바로 문화의 다양성을 보증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나친 영어사용은 독일어 표현력의 빈곤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나는 모든 독일인들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을 찬성하지만 그러나 독일어도 역시 배워야 한다 (Ich bin sehr daf r, dass alle in Deutschland andere Sprachen lernen, aber die deutsche Sprache bitte auch)"라고 말하고 있다(연설원고). 라우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모국어에 냉담한 독일인의 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Sorry fur die versp tete Antwort aber leider hatten wir ein kleines e-mail server Problem. 이 문장은 몇 일 전 필자에게 보내온 어느 독일 호텔의 전자우편 편지이다. 모국어에 대한 애정상실의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심층적 저변에는 나치 과거와의 기억이 깔려 있는 듯 하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1977: Prismen: 30) 라고 말하고 있거니와 홀로코스트는 쇼킹한 역사적 사실로서, '흘러가지 않는 과거'로서 독일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역사가 놀테(Ernst Nolte)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과거' 라고 할 때, '과거'라는 표제어는 당연히 독일과 독일의 나치과거를 의미한다. 모든 과거는 사라지고,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은 뭔가 예외적인 것이 문 제가 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과거가 정상적으로 흘러간다고 해서 그것릉 단순히 '소멸하 는' 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의 시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트 시대는 역사적 작업 을 통해 부단히 현재화된다. 그러나 이때 과거는 분명 동시대인들이 겪었던 억압과 고통이 소멸한 ' 역사화'된 과거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과거는 역사가들에게 '역사'로 주어질 수 있다. 최근에 뤼베(Hermann L bbe)가 강조한 바 있듯이 [나치즘의 과거]는 현상적인 것으로 이러한 억압과 고통 이 소멸되거나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가진 과거이다. 그것 은 본받을 만한 역사상이 아니라 경악스러운 그림으로 되어 있다. 이는 현재라는 시간적 좌표 위에 매달려 있는 단죄의 칼처럼 구체적인 현재로 자리잡고 있는 과거이다(구승회:117-118).

흘러가지 않으려는 이 과거문제는 1986년대의 '역사가 논쟁(Historikerstreit)'과 1996년 '골드하겐 논쟁'으로, 1998년에는 '발저-부비스 논쟁'으로, 2000년에는 다시 '핑켈슈타인(Nroman G. Finkelstein)논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역사가 논쟁은 주지하다시피 하이데거의 제자인 보수적 역사가 놀테가 1998년 6월 FAZ에 실은 위에 언급한 기고문에서 발단되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나치범죄라는 것은 공산주의의 '아시아적 야만'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며 소련 수용소가 아우슈비츠에 앞서 있었으며 그 차이는 다만 가스독살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발단된 논쟁은 다음 세 가지 테마로 요약된다(Vgl. Enzo Traverso: Les. Juifs L' Allemagne ユダヤ人とドイツ: 206)

▶ 유태인 대학살의 특이한 성격의 부정(놀테, 페스트 Joachim Fest) 이것은 결국 가스실 등의 이차적 새로운 것을 제외한다면 공산주의 수용소의 복사판에 불과하다.
▶ 범인과 피해자를 동일 차원에 두고 적군의 점령지역의 독일인의 희생과 나치 수용소의 유태인 희생자를 동일시한다(힐구루버 Andreas Hillgruber).
▶ 국가사회주의를 '전제군주의 시대'에 포함시켜 독일의 과거를 정상화하자는 견해 (힐데브 란트 Klaus Hildebrand)

피퍼(Ernst Pieper)는 다음 몇 가지를 더 추가하고 있다. (Piper: Historikerstreit 過ぎ去ろうとしない過去:237-238)

▶ 역사는 의미를 부여하고 국가 정체성의 담당자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 역사는 정치적 논쟁의 도구로 악용되는 것이 아닌가.
▶ 연방공화국은 어떠한 자기이해를, 어떠한 역사적 이미지를 가져야 하는가, 우리가 얻으려 고 노력하는 것은 헌법지향적 애국주의(헌법애국주의)인가 아니면 국민의식을 지향하는 애국주의(국민애국주의)인가
▶ 역사학은 '역사화'되어야 하는가 그렇잖으면 '도덕화'되어야 하는가.
▶ 1944년부터 45년간의 겨울, 독일 동부방면의 독일군은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 독일은 1945년 '해방'되었는가.
▶ 독일제국의 붕괴는 제3제국의 범죄에 대한 답인가.
▶ 나치체제의 죄악과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이즘 죄악간에는 '인과적 연관'이 있는가.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나치의 범죄적 과거를 상대화함으로써 독일의 과거를 정상화해서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소망이 잠재해 있다. 이러한 수정주의자들의 견해는 물론 진보주의 진영에서의 비판을 받고 있다.
'골드하겐 논쟁'은 현재 하버드 대학 교수인 골드하겐(Daniel Jonah Goldhagen)의 저서『Hitler's Willing Executions: Ordinary Germans and the Holocaust』가 출판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 논지는 유태인 학살에는 평범한 독일인들도 가담하였다는 사실이 이제 학문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상화를 희망하는 독일인들을 또 다시 좌절하게 하는 것이었다. 공개 심포지움에서 권위있는 역사가 크비트(Konrad Kwiet), 바우어(Yehuda Bauer) 또는 브라우닝(Christopher Browning) 등은 하겐의 절제 없는 일반화와 반유태주의의 역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조모조목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역사가들의 학문적인 비판에 대해서 일반 청중들은 차가운 침묵으로 일관했던 반면에 자신의 취약한 테제를 방어하려고 애쓰는 골드하겐에는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는 사실이다.(이진모: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평범한' 독일인들의 역할: 역사비평 1998 봄: 249-267 주로 참조)
언론은 -우파, 좌파를 막론하고 골드하겐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었다.『타게스 슈피겔』에서 하일브룬(Jakob Heilbrunn)은 골드하겐이 드디어 " 독일인들의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제2차 전범재판을 개최하러 과거로부터 온 보복자, 검사"노릇을 한다고 비난했으며 『슈피겔』의 아우크슈타인(Rudolf Augstein)은 골드하겐을 독일인의 '사형집행자'로 묘사했다. 우파계열의『융에 프라이하이트』에서 슈빌크(Heimo Schwilk) 골드하겐의 책을 "독일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과거의 죄를 기억시키려는 정기적인 시도의 하나"라고 분개했다. 역시 보수계열인『디 벨트』에서 요스트 놀테(Jost Nolte)는 '그 과거'가 계속 쫓아다니기 때문에 "결코 시지프스의 운명에서 헤어날 수 없도록 골드하겐 같은 팜플릿 저자 따위에 의해 반복해서 지옥으로 떠밀려지는 불행한 독일인에 대해 비통해하며, 골드하겐이 말하는 독일인 전체의 '유죄'를 주장하는 테제 역시 '인종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이진모: 252).
이러한 제도적 비판에 대해 골드하겐 테제에 대한 일반 청중들의 박수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골드하겐의 문제 제기가 갖는 현재적 의미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까.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고자 하는 독일인들의 숙연한 자세 때문일까.
귄터 그라스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마르틴 발저는 1998년 10월 11일 독일서적협회의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다음 두 가지 문제점을 언급함으로써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독일역사에서 나치범죄 문제를 어떻게 자리 매김 하느냐 하는 문제와 이러한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독일 인 의식 속에 어떻게 자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와 더불어 '기억(Erinnerung)'이라는 어휘를 나치즘을 역사 속의 '절대적 악'으로 규정하는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 발저의 연설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비난받고 있는 잊을 수 없는 수치인 역사적 짐을 알고 있다. 그 수치 때문에 우리 를 비난하는 지성인들은 그렇게 우리를 비난함으로써―바로 잔인한 기억 의해서 비난했기 때문에 잠시동안이나마 면책될 수 있고 한 순간 가해자에게보다 피해자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착가 에 빠질 수 있다.
(…) 진지한 사람이면 아무도 아유슈비츠를 부인하지 않는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아 우슈비츠의 잔인성을 달리 해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대중매체가 이 과거 때문에 나를 비난한다면 우리들의 이 수치를 계속 제시하는 데 대해 그 무엇이 거부감을 가지게 하는 것을 느낀 다. 우리들의 수치를 끊임없이 제시해주는데 대해 감사하는 대신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나는 최 근 10년 동안 왜 과거가 전과는 다르게 제시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 시선을 돌리지 못하도록 그 무 엇이 내 마음 속에 있음을 느끼면 우리들 수치의 비난에 대한 동기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래서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동기가 아니라 현재적 목적을 위한 수치의 도구화가 그 동기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기쁘다 (…) (발저의 연설문:1998: 45).

물론 여기서 발저가 주장하는 것은 과거 나치의 범죄를 부인하거나 독일인의 책임을 변명, 회피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비난받고 있는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짐'을 모든 독일인들은 잘 알고 있다. 발저는 말한다. "이 수치를 비난하는 지성인들은 우리들에게 그 수치를 비난함으로써 약간이나마 잠시간 죄책감을 덜 수가 있고 심지어 가해자라기보다 피해자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잔인한 기억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1998: 44) 기억하기에는 괴롭기 짝이 없는 기억을 통해서 그 수치를 비난한다는 것은 그 만큼 심적 괴로움을 겪었으므로 오히려 덜 괴롭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독일인들의 죄책감을 도구화한다는 것은 마치 시지프스처럼 영원히 그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수치를 도구화한다"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도구로는 우선 악기를 들 수 있다. 그와같이 아우슈비츠 학살이라는 범죄사실을 도구화하고 의식(儀式)화해서 -악기연주 하듯이- 수시로 독일인들의 마음을 괴롭힐 수 있다. 필자가 보건대 발저 연설의 기본 취지는 50년 전의 나치범죄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되지만 지나치게 그 죄의식에 스스로를 자폐 시켜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고 본다.
발저의 이러한 기본 입장은 새로운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부에 '홀로코스트 기념관(das Holocaust-Mahnmal)'건립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도 분명히 들어 나고 있다. 이 건조물에 대해서는 10년 넘게 건립과 설계에 대해 논의를 해 오다가 마침내 1999년 6월 25일에 연방의회는 미국인 페터 아이센만의 수정안을 받아들여 건립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그러나 발저는 "어떠한 국가도 자국의 최대 수치를 기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은 "우리들의 수치를 기념화"하는 것이라고 반대했다(Klotz/Wiegel:1999:133).
기념물(Mahnmal)을 세우게 되면 '공허한 제식(leere Rituale)'이 될 것이며 훼손을 도발할 것이며 스프레이를 든 청소년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우선 무엇이 눈에 띌 것인가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매일같이 이와 관련된 신문기사 제목을 보게 될 것이다. 기념관을 감시한다는 것은 '그로테스크(v llig grotesk)'한 짓일 것이다. 어떠한 '거대한 석물에 의한 기념비적 표현(monstr s-steinernen monumentalen Ausdruck)'도 우리의 양심을 표현할 수 없다. 차라리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클렘페러(Victor Klemperer)의 일기를 읽고 드레스덴으로 가서 유태인들의 흔적을 찾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발저의 생각이다 (Michael Jeisman[Hg.] Mahnmal Mitte: 1999:278-9).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우슈비츠는 일상적 위협이나 수시로 동원할 수 있는 위협수단 또는 도덕적 몽둥이(Moralkeule) 이나 다만 규정연기라도 되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러한 제식화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입술기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이제 정상적 민족이며 독일사회는 보통의 사회라고 말한다면 어떠한 의심을 받을 것인가?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 토론에서 후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양심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사 람들이 무슨 짓을 했는가에 대해 읽어 볼 것이다. 그들은 수도 중심부에 축구장 크기의 악몽을 콘 크리트화 해 놓은 것, 수치를 기념화 시켜 놓은 것을 볼 것이다 (Klotz/Wiegel:10).

이러한 발저의 입장은 유명한 문학 평론가 라이히-라니키(Marcel Reich-Ranicki)가 발저의 새 작품 『솟아오르는 샘(ein springender Brunnen)』이 아우슈피츠 또는 히털러유겐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발저는 그것은 시대정신의 거의 무의식적인 희생이며 아우슈비츠를 다루게 되면 어린이의 시점에서의 이야기는 파괴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러한 시대정신적 요청은 미학 앞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라이히-라니키의 마음에 맞추기 위해서 아우슈비츠라라는 단어가 그 소설에 등장한다면 나는 그 소설을 폐기할 수 있다라고 발저는 말하고 있다.

3. 이러한 발저의 견해에 대해 비판의 첫 포문을 연 것은 - 1999년 9월에 세상을 뜬 독일유태인 협회회장이었던 이그나츠 부비스(Ignatz Bubis)로서 발저의 연설에 대해 "이는 역사를 밀어내려는 심리이며 기억을 소멸시키려는 새로운 시도"로서 나치의 과거를 상대화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만약 수치스러운 나치범죄를 회상하는 것을 아우슈비츠를 현재의 목적에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또 다른 정신적 방화(Geistige Brandstiftung)"라고 주장하면서 발저가 과연 평화상 수상자의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Vgl. 강여규:뉴스플러스 161).
부비스는 과거에 이미 주로 극우 측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역사를 변경해서 아우슈비츠를 부인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발저와 같은 독일의 지적 엘리트에 속하는 인사가 그러한 주장을 하게되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제 많은 극우 인사들이 틀림없이 발저를 근거로 해서 극우적 행동을 할 것이다라고 부비스는 우려했다. 그는 발저의 주장은 바로 극우파의 주장이며 나치과거 문제는 수치(Schande)가 아니라 범죄(Verbrechen)이다라고 발저의 표현을 비판했다. 베를린 기념관 건조에 대해서 '축구장 크기 만한 악몽' 또는 '수치의 기념화'란 표현을 사용한데 대해 이것은 인과관계를 전도시킨 것이라면서 그 '수치'는 잊어서는 안될 만한 것이기 때문에 기념되는 것이지 그것이 경고기념물에 의해서 비로소 기념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대해 여러 가지 형식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또 그러한 기념물 건립 을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하한 경우라도 문학적으로도 역시 그 계획을 악몽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되며 더구나 수치의 기념화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 수치가 기념될 만한 것이지 기념물에 의해서 기념화 되는 것은 아니다(Klotz/Wigel:22).

발저와 부비스는 FAZ가 마련한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발저는 연설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비난을 일축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멍에에서 해방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기억을 규정해 줄 수 없으며 독일은 계속 '보호중의 범죄자(ein Straft ter auf Bew hrung)'처럼 취급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부비스는 '정신적 벙화자'라는 비난은 취소했다. "나는 발저씨를 정신적 방화자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이해했다. 그는 오랫동안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설명해 주었다. 그 결과 나는 정신적 방화라는 개념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spiegel.de/kulturarc/pool/walser_in.html). 그러나 연설의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부비스의 말대로 이 테마에 대해 찬·반 논쟁이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가령 언론인 로슈(Lea Rosch)는 아우슈비츠는 발저가 말하는 것처럼 수치가 아니라 유례없는 대 범죄이기 때문에 기념관을 세워 과거가 우리를 미래에로의 길로 인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찬·반 격론의 전모를 소개할 수 없기에 저명한 평론가인 옌스(Walter Jens)의 견해만 덧붙이고자 한다. 그는 그 연설을 "생각할만한 많은 세부사항을 가진, 세밀하게 구조화된 탁월한 연설"이라고 평가하고 기념비 건립에 있어서도 발저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옌스는 "웅장한 기념물로써 수백만의 울부짖음을 극복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 속삭임과 침묵으로써 극복이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다(Mahnmal Mitte:261,280). 따라서 그 대신에 다하우, 부헨발트 및 아우슈비츠 등 기존의 것들을 잘 보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다른 작가들, 예컨대 라이프치히의 뢰스트(Erich Loest)는 발저에 동조했다. "나는 우리는 희생자들이 생명을 잃은 그 곳에서, 즉 부헨발트나 다하우에서 추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작가 지오르다노(Ralph Giordano)는 발저 연설에 대해 자기가 마비될 정도로 경악했다고 말하면서 발저가 과거를 밀어 내버리려는 심리를 지적으로 합법화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4. 도구로서의 홀코스트라는 발상은 유대인 자신들을 위해 필요한 것 같다. 이산된 유대인 사회나 이스라엘에서 적극적인 유대인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 생활의 연속성을 보장해주고 유대인으로서의 삶을 확실히 해줄 수 있는 다른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유대교나 유대철학 또는 히브리어를 진흥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나 지적으로 관심이 적은 사회에서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할 경우, 전통적 유대적 문화에 의거하는 적극적 방법보다는 홀로코스트라는 소극적 수단에 의거한다는 비판이 독일·유대인 중앙평의회에서 나오고 있다.
홀로코스트 도구화는 나아가 상품화되고 있음이 비판되고 있다. 영국 상원의원이며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이마누엘 자코비치는 1987년 11월 예루살렘에서「홀로코스트에 대한 종교적회답」이라는 연설에서 모든 지도적 라비는 홀로코스트가 유례가 없는 잔혹행위이며 이것은 유대인 역사에서 볼 때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주기적인 것으로 파국과 부활의 사이클로 유대인 역사가 성립되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래서 홀로코스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유대적 본질을 존속시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홀로코스트 상품화가 진행되어 작가, 연구자, 영화제작자, 기념비제작자, 박물관계획자, 정치가에 의한 홀로코스트 산업이 형성되었다. 라비나 신학자들도 이 대산업에 가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2000년 봄에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유대인 부모를 둔, 뉴욕 시립대학 정치학 교수인 핑켈슈타인(Norman G. Finkelstein)이『홀로코스트 산업(The Holocaust Industry)』을 출간함으로부터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 저술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독일어 번역판: 14)

나의 부모님은 왜 나치의 대량학살의 왜곡과 악용이 나를 그렇게 분노하게 하는가 하고 가끔 물었 다. 주원인은 이것이다: 비난받아 마땅한 이스라엘의 정치와 이 정치를 지지하는 미국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 대량학살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개인적 동기도 있다. 나는 내 가족 박해 에 대한 회상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의 가난한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유럽으로부터 돈을 갈취하려는 캠페인이 희생자들이 당한 수난의 도덕적 폭을 마치 몬테 칼로의 카지노에 투자하는 것 처럼 축소 시켰기 때문이다(2001: 14).

우리는 역사를 정직하게 보존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유대인 학살의 연구를 통해서 독일인 또는 비유대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정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도덕적 국면을 확대하는 것이다. 많은 공적, 사적인 수단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동원되었지만 그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희생자들이 당한 고통에 받쳐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위상만 상승시킨 것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만시지탄이 있으나 우리는 가슴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비교를 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차이를 설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리의 고통과 저 사람들의 고통을 구분한다면 그것 자체가 한갓 도덕적 익살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핑켈슈타인은 "우리는 고통받고 있는 두 사람을 비교할 수 없다"라는 풀라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미국흑인, 베트남인 및 팔레스티나인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 모두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인 것이다(같은 책: 15). 이러한 입장에서 그가『홀로코스트 산업』에서 분석 입증하고자 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미국화하고 통속화(Verkitschung)하는 것은 희생자들의 존엄성을 모독하 는 것이다.
▶ 관련 이익단체들은 흔히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비용으로써 자기 목적을 꾀한다.
▶ 미국과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해서 홀코스트를 도구화하고 있다.

당연히 또 다시 찬·반의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극우 측으로부터의 박수갈채가 있음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것은 물론 저자가 바라던 바는 아니다. 첫 반박은 독일-유대인인 출판가인 젤리크만(Rafael Seligmann)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Gibt es wirklich eine Holocaust-Industrie? Hg. von Ernst Piper: 2001:17-18).

▶ JCC(Jewish Claims Conference)가 생존자 수를 부풀렸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 홀로코스트는 힘있는 가담자들의 의식적 전략으로서 미국 유대인들의 정체성의 중심이 된 것이 아 니라 심하게 세속화된 유대 사회의 심리적 동기를 가진 대리행위로서 정체서의 중심이 된 것이다.
▶ 반 유대주의는 유대인과 그 기관들의 병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병인 것이다.
▶ 미국 유대인들은 2차 대전 동안 박해받았던 유럽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에 많은 압 력을 행사했다.
▶ 미국 정부는 예컨대 유대인인 국무장관 키신저는 용-키푸-전쟁(Yom-Kippur-Krieg) 때, 이스라엘 에 많은 압력을 주었고
▶ 미국-유대인들 조직의 압력이 없었더라면 동유럽의 비유대인 강제 노동자들은 대부분 보상금을 받 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젤리크만이 핑켈슈타인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비판을 파괴적 논쟁으로 처리한다면 잘못이다. 그의 비판은 자극적이다. 무엇보다도 세제처럼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논쟁에 많은 논객과 언론이 참가했다. Die Woche는 핑켈슈타인을 지지하면서 바이스하우스(Gizella Weisshaus), 촘스키 및 놀테의 동조적 의견을 게재했다. 물론 많은 비판적 견해가 뒤따랐다. 흥미있는 것은 이러한 견해가 주로 미국, 이스라엘 및 독일 유대인들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저명한 독일인 역사가 몸젠(Hans Momsen), 놀테, 베를린 기념관(Berliner Gedenkst tte)관장 뤼뤂(Reinhard R rup), 헤르베르트(Ulich Herbert) 및 SPD 연방의원 로베(Reinhold Robbe) 정도가 관심을 표명했을 뿐이다. 그들은 대체로 부정적 입장에서 독일에서의 토론을 바람직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이 바로 독일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dpa 기자인 그림(Rudolf Grimm)은 "독일 역사가들은 종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화제에 대해 금기(Tabusierung gegen Themasierung)"(Piper: 32-33). 프라이부르크의 역사가이며 나치 강제노동연구 전문가인 헤르베르트는 SZ의 기고에서 핑켈슈타인의 중심 명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 미국에서의 홀코스트 기억과 미국 중동정책의 인과관계적 관련성 설정은 오류이며 음모론적이다.
▶ 홀로코스트의 특이성과 통속화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때때로 나타나는 음모론적 논의는 그의 논거를 약화시키고 있다.
▶ JCC가 보상금을 목적과 달리 사용한다는 비난은 핑켈슈타인이 제시한 바로 그 증거들에 의해서 대부분 반박된다. 이 문제는 결국 법정에서 해명될 수 있다. 생존자 수에 대해서는 그는 전혀 모르 고 있다. 게다가 그는 미국-유대인 단체들의 압력에 의해서 대부분 비 유대인인 동 유럽 강제노동 자들이 보상금을 받게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헤르베르트 역시 전적으로 부인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책은 선동으로 이용될 수 있다. (…) 무엇보다도 홀로코스트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서 집중적으로 논의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뉴욕 타임스의 기고가이며 독일문제 전문가이기도 한 헤일버른(Jacob Heillbrunn)은 그 책은 "자신을 영웅시하고 인공적 논쟁을 일으키려는 신경증적 극단주의자의 명제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침묵을 요구하면서 홀로코스트로부터 이익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이 책에 고소하고 있는데 바로 이 고소로부터 그 자신도 이익을 보려고 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런던대학의 교수이며 홀로코스트 전문가인 롱어리치(Peter Longerich)는 독일에서의 호의적 논의는 이 책의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 저자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의 책은 '이제는 충분하다(endlich genug)'라는 널리 퍼져있는 무형의 감정에 영합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 기념문제는 민주주의를 위한 생존문제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의 특이성 명제에 대해서도 롱어리치는 최근 와싱톤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출간한 종족학살에 관한 전문지에서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특이성이 밝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Piper:21-22)
노빜(Peter Novick)은 그의 저서『미국생활에서의 홀로코스트(The Holocaust in American Life)』에서『홀로코스트』를 '광기 어린 수다'라고 혹평하고 있다. 그는 미국-유대인 엘리트가 특히 홀로코스트 문제와 특이성 명제와 관련해서는 결코 동질적 집단이 아니라 극히 이질적 집단이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핑켈슈타인이 던진 몇 가지 중요한 물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온 화제라는 사실을 덧붙이고 있다(Piper:25).

5. 이상 역사가 논쟁과 골드하겐 논쟁 그리고 발저·부비스 논쟁, 이어서 핑켈슈타인에 의한 논쟁의 전말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가 독일 사회에서 반응을 일으키고 일부 수용되는 것은 '정상화(Normalit t)'에 대한 욕구와 전통적 반 유대주의 및 이차적 반 유대주의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바라고는 있었지만 아무도 감히 하지 못했던 타부파괴에 대해 당황해 하면서도 반기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타부를 깬다는 의미에서 추가하고 싶은 것은 바로 얼마 전 출간 된 블랙(Edwin Black)의 500여 쪽이 넘는 방대한 저서『IBM and the HOLOCAUST』이다. 역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폴란드인 부모를 둔 그는 뉴욕에 본부를 IBM이 독일 자회사를 통해서 나치에 협력해서 펀치 카드 기술을 판매해서 히틀러를 도와 주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IBM이 제공해 준 기술로써 나치 독일 및 유럽에서 모든 것을 조직화 할 수 있었고 유태인 신분 확인, 수용소의 강제노동자 및 유태인 관리를 할 수 있었으며 그 대가로 미국의 IBM은 많은 이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IBM의 기술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수를 처리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에 대한 논란도 곧 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발저의 경우에도 그랬던 것처럼 '잘못된 측으로부터의 박수갈채(Beifall von der falschen Seite)'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이웃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8월 13일자 슈피겔에 의하면 유럽연합 이사국내에서 독일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프랑스 외상이 강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통역, 번역비용 문제로 유럽연합내에서 프랑스와 영어만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독일은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하는데 드는 비용은 각자가 부담하고 공식 유럽연합 기록은 회원국 전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며 그 비용은 브뤼셀 측에서 부담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어쨌든 독일인들이 과거의 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국어에 대한 애정마저 상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외교무대에서 독일 외교관들은 독일어 사용을 타부시해 왔다. 헤르티에 재단의 총무이사인 케엘브란트 ― 그는 로마니스트이며 언어학자 ― 는 "독일어의 언어정책은 세련되지 못했다"라고 비판하면서 "(…) 독일정부는 오랫동안 유럽연합에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상용어의 지위를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영국이 들어오고 난 뒤에, 그 전에 이미 독일어가 실제 상용어로 사용되었
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영어를 수용한 것은 독일 외교관들이었다"라고 쓰고 있다(Uncool: die deutsche Sprachpolitik: Merkur,16.7.1999) 이 점은 전 괴테 인스티투트 사무총장 자르토리우스(Jochaim Sartorius)의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지금까지 독일어 정책은 없었다. 제 3 제국에서의 경험 때문에 이 테마는 오랫동안 타부이었다"(K lner Stadtanzeiger: 1.10.1999).
최근에는 여전히 영어교육강조 열풍 속에서도 독일어를 보호 육성해야 한다는 역풍도 일고 있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앞에 소개한 라우 대통령의 연설과 전 베를린 시장 베르테바하(Eckart Werthebach)가 독일어를 법에 의해서 보호하자는 안을 제안한 이후 이에 대한 찬·반의 논의가 분분하다는 사실은 새로운 흐름을 반영한다. 또한 유럽연합은 금년을 '유럽언어들의 해(Europ isches Jahr der Sprachen)'로 정하고 있다. 다양한 언어에 의해서 유럽문화의 다양성을 방어하자는 운동이다. 그 저의는 영어화, 미국화를 그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데 있다. 끝으로 한국의 한 게르마니스트로서 독일인들이 굳건히 독일어를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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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http://kgd.german.or.kr/down/tagung01/0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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