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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5/06/12 (07:17) from 129.206.196.51' of 129.206.196.51' Article Number :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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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복제: 그 가능성과 위험성







인간복제: 그 가능성과 위험성



토론자

  김흡영 교수 (강남대 신학과)

  박충구 교수 (감신대 신학과)

  장회익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홍영남 교수 (서울대 생물학과)



사회자

  길희성 교수 (서강대 종교학과)



길희성:인간의 과학기술이 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달에 착륙하고, 화성을 탐사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최근의 생명공학 부분에서 더욱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생명 그 자체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기존의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복제양 돌리의 탄생으로 인해, 인간복제도 기술적으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데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은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킬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가 겪어본 적이 없는 매우 난감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며, 기존의 종교적 관념마저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얼마 전 11개월 된 아들을 불치병으로 잃은 미국의 한 남자가, 아들의 세포를 채취하여 인간복제를 허용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의 토론은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 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하였습니다. 우선, 본격적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 홍영남 교수님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홍영남:제가 60년대에 생물학과를 들어갔을 때는 DNA가 있다는, 그리고 그것이 이중 나선으로 되어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독일에 유학 갔을 때, 그곳에서는 이미 유전학의 문제가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복제를 위해 생물학 분야가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이야기 되고 있었고, 생물학 중에서도 유전학이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식물(植物)'을 가지고, 필요에 따라 형질을 변경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왔습니다. 복제 문제에서 식물이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오래 전부터 식물 복제는 이루어져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인간 중심적 견지에서 식물은 신경도 없고 아파하지도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포유동물인 '돌리(Dolly)'가 탄생하면서 인간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커다란 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동물복제는 기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확률 자체는 매우 희박합니다. 돌리의 경우 270여 번의 실험 끝에 한 번 우연히 성공한 것입니다. 돌리 이후에도 실험상의 에러는 계속 발생했습니다. 인간복제의 경우, 정말 사람을 가지고 그런 에러의 과정을 거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안 윌무트(Ian Willmut)도 실험에서 실패한 수많은 양들을 보면서, 인간복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입장을 갖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많은 미숙한 양을 버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복제를 할 때 버려야 할 것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지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복제는 의외로 단순한 기술입니다. 아주 미세한 것을 볼 수 있는 현미경 하나와, 그 세포에 집어넣을 수 있는 아주 미세한 유리관만 있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조작의 섬세함입니다. 황우석 교수가 세계적 학자인 이유는 그런 조작의 섬세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인으로서의 세밀한 감각이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미 1930년대에 슈페만(Hans Spemann)은 유리관으로 도롱뇽 수정란에서 핵을 이식했으며, 배발생 단계에서 배엽상에서 인위적 조작으로 머리를 두 개 만들기도 하고, 눈을 없애기도 하는 실험을 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인간의 세포는 매우 작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이고, 점차 현미경이 발달하면서 조작하는 것도 세밀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황우석 교수는 양보다 인간이 더 복제하기 쉽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인간복제는 생식세포 간의 수정에 의한 것을 뛰어 넘어서 체세포의 유전물질인 핵을 추출해, 핵을 제거한 난자에 집어넣고, 그 난자가 분열하면 나와 똑같은 개체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100% 나와 똑같은 내가 태어나는 것이고, 지금 그것이 포유동물에서 성공한 것입니다.

 인간복제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처럼 제도적 감시의 틀이 엉성한 곳에서는 이미 진행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생명공학은 큰 공장이 필요 없습니다. 세포가 곧 공장인 셈이죠. 그러므로 섬세한 손과 집중력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인류복지를 위해 사용된다면 좋겠지요. 길희성 교수님이 이야기한, 그런 불행을 입은 사람이 다시 아들을 갖는 것은 가능합니다. 단 돈이 많이 들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미숙하고 잘못된 생명체를 쉽게 버릴 수만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상 낙태가 허용되는 나라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무튼 시카고대학의 시드(Richard Seed)박사가 2, 3년, 아니 10개월 만에 인간복제를 할 수 있다고 공언한 것은 맞는 말입니다.



길희성:결국, 생식세포가 아닌 일반 체세포에서 추출한 핵을 난자에 이식해, 간단히 유전정보가 똑같은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것은 장기복제입니다. 인간복제와는 달리 장기복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그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고, 윤리적으로도 논란을 덜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부분적 복제라 할 수 있는 장기복제에 대해서도 홍영남 교수께서 좀 더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홍영남:아마도 등에 인간의 귀를 달고 있는 쥐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경우 수정 후 세포분열을 시작해 착상이 될 때까지 대개 100개의 세포로 분열합니다. 100개가 되면 가운데가 조금 비게 되는 상태에서 착상이 됩니다. 지금 똑같은 사람을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착상이 될 때까지의 100개의 세포 하나 하나가 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개의 세포기 때까지는 똑같은 사람 네 명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수정란을 분열시켜 네 개가 되었을 때 나누기 쉽고, 그 각각을 배발생 시켜 100개 세포를 만들고 착상시켜 모체에 넣으면, 똑같은 생물체가 넷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법적으로는 이것을 금지할 것이 확실합니다. 세포군이 착상 후에는 배엽을 형성하면서 기관이 될 부위가 나타납니다. 이때, 어떤 기관을 만들게 혹은 못 만들게 함으로써, 특정한 장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현재는 인간 장기와 크기가 비슷한 돼지를 이용하여 장기를 이식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생물체가 다르므로 면역적 문제가 생겨, 괴사합니다. 그 괴사를 피하기 위해 돼지세포에 인간의 면역체계를 적중하여 형질전환 된 돼지를 복제하여 인간에게 장기이식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 기술적으로 거의 완성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장기복제와 장기이식은 매우 쉬워질 것입니다.

 '귀'라든가 다른 기관이 될 수 있는 세포를 흔히 신문에서는 '간세포(幹細胞)'라고 쓰는데, 정확한 표현은 '줄기세포(stem cell)'입니다. 그 골격이 되는 조직 세포를 채취해 쥐의 등에서 분열 시키면서 그 자리에 귀 모양의 틀을 놓아 귀의 형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면역적 문제 때문에 자기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므로 엉뚱한 사람이 '머리 없는 자기'를 만들어 필요에 따라 쓸 수 있게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길희성:그러면 줄기세포가 수정란에서 배발생하여 언제쯤 채취할 수 있습니까?



홍영남:14일 이후면 가능합니다.



길희성:그렇다면,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14일 이후의 추출입니까?



홍영남:그렇습니다.



길희성: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인간생명을 어디까지 다루게 할 것인지,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지가 심각한 과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종교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 박충구 교수와 김흡영 교수께서 말씀해 주시죠.



박충구:인간복제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찬반 논쟁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과학자들 대부분은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는데, 그것은 생명에 대한 기능론적 이해를 갖고, 부분적 문제들을 해결해 갈 수 있다는 입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반대론은 종교적, 존재론적인 생명의 의미에서, 생명을 기계론적 구조가 아닌 온전한 하나의 유기체적 구조로 보아 생명에 대한 과학적 조작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1993년에 조지워싱턴 대학의 제리 홀(Jerry Hall)교수 팀이 인간배자를 인위적으로 나누어 복제하는 일을 했을 때, 반대 여론이 들끓어 결국 두 사람은 교수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1997년에, 영국 에딘버러의 로슬린 연구소의 생명발생학자인 윌멋(Ian Wilmut)박사가 체세포 복제를 통해 돌리(Dolly)를 만들어낸 후의 여론조사를 보면, 생명문제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져, 복제가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도 확대되었습니다.

 기독교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우선 로마 가톨릭의 윤리적 판단의 범주는 생명의 존엄성입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할 때 모든 조작 행위는 생명 존엄성에 대한 파괴이므로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보수적인 분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개신교, 특히 미국 연합감리교회나 미국 그리스도교회 등 큰 교단들은 선별적인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복제 기술을 통해 생명을 온전하게 치유하는 것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생명의 변종을 만든다든지, 특정 목적으로 우생학적으로 더 나은 인간종을 만든다든지, 개인이나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생명을 조작하는 것 등은 반대하는 것입니다. 한편, 미국연합감리교회와 그리스도교회는 혹시라도 과학자들이 인간을 복제해 냈을 경우까지 예상한 백서를 냈습니다. 이 백서는 만약 인간이 복제되어 나온다 할지라도 그 인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로서의 영적,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길희성:인간복제는 조금 후에 논의하도록 하고, 우선 장기복제의 유용성에는 많은 분들이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장기복제를 하려면 수정란에서 배아상태로 들어간 생명체를 조작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즉, 생명이란 무엇인가, 어디에서부터 생명으로 봐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흡영 교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흡영:과학자들도 아직까지는 복제인간을 만들어 그 장기를 이식한다는 발상은 하지 않는 듯합니다. 지금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동물, 그 중에서도 가능성이 높은 것이 돼지라고 보는데, 아직 면역체계의 차이를 기술적으로 완전히 극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해결되어가고 있고, 황우석 교수는 적어도 2002년까지는 그 기술이 완성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체세포를 가지고 돼지를 통해 장기를 복제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기복제를 옹호하는 입장일 뿐입니다. 동물애호론자, 환경론자들에게서는 여전히 이견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어느 시점부터 생명이라 볼 것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의 입장이 조금 다릅니다. 가톨릭은, 인간의 영혼이 수정된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관계성을 갖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정된 시점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고, 당연히 낙태도 반대하는 것입니다.

 반면, 개신교는 딜레마에 빠져 있고, 그 입장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는, 특수한 상황에서 낙태의 경우 여성의 주권을 인정해 주어야 하므로 모호한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반적 기조는 인간복제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직 개신교의 구체적 모델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인간복제 연구에 대해 반대(red light)나 찬성(green light)도 아닌 애매한(yellow light) 입장인데, 개신교도 이 애매한 옐로우 라이트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길희성:난소를 누가 제공하느냐, 대리모의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과연 수정란 그 자체를 생명으로 보느냐, 14일까지 배아가 되면 그것을 조작할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매우 민감한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충구:생명에 대한 정의는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래 전 가톨릭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이론을 따라, 남자아이의 경우 수정된 후 6주, 여자아이는 13주 정도에 하나님이 영혼을 불어 넣어주신다는 것이 통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생명공학 문제가 대두된 이후부터는 '수정 즉시'라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수정되어도 한 5, 6일은 모태 안에서 착상되지 않은 채 부유하고, 자연 배출되는 것도 50-60% 라고 한다면 그 이론도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수정하여 착상된 후 14일 이론입니다. 배포기 상태를 지나 14일을 넘어가면 중추신경계가 형성되어, 최소한의 느낌을 갖는 생명의 기초단위가 된다는 입장입니다.

 또 하나는 간세포들이 일정하게 분화된 세포가 되어 생명의 목적을 진행하는 단계이므로 14일 이후는 완전한 생명이지만, 14일 이전에는 느낄 수 없으므로 세포 덩어리로 간주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자들의 일반적 정의였습니다. 최근 일본이 공식적으로 14일 전후해서 배아를 실험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서 영국은 이미 이를 합법화했습니다.

 생명 발생의 초기단계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14일 전후가 제일 중요한 연구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되도록 그 생명을 생명 발생의 후반 단계에서 정의하려고 하고, 생명존엄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수정 즉시' 라는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한편, 생명의 존엄성 문제를 다룰 때, 간접적으로 인공유산 문제가 따라옵니다. 사실 인공유산 문제에 있어 13주 이론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엄밀한 논의를 하려면 이 둘을 일치시켜야 하는데, 이는 상당한 딜레마이고, 객관적 정의를 내리는 것도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길희성:기술적인 문제 한 가지를 명료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줄기세포를 얻으려면, 14일에서 분화되기 시작할 때 얻어야 합니까, 아니면 그전에라도 얻을 수 있습니까?



홍영남:14일까지 분열하는 100개의 인간세포 각각은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세포입니다. 착상된 후 내배엽, 중배엽, 외배엽을 만들어 일단 분화를 시작하면, 생물체는 장기의 각 부분이 될 것들이 결정됩니다. 그것이 14일 이후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명의 정의로 다섯 가지가 있었습니다. 수정란을 생명으로 인정하자는 것, 14일 착상설, 60일이 되면 감각과 자기 존재를 안다는 뇌기능설, 그리고 28주 이후가 되어 체외생존능력이 있을 경우 생명체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이 진통분만설입니다. 이는 민법 형법의 적용에서도 다릅니다.



장회익:지금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생명은 모두 '낱생명'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낱생명은 독자적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구상에 생명이 생길 때부터 전체 생명과의 연관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낱생명은 각자의 상대적인 독자성을 어느 정도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라고 하는 낱생명, 즉 하나의 인간이 언제부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체성의 획득은 연속적 성격을 가지며, 여러 단계를 거쳐 얻어지는데 그 가운데도 결정적 변화를 하는 몇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 수정이 될 때가 하나의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 외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몇몇 단계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언제인가 하는 것이 관심사인데, 아마 어느 정도 자기 의식을 가질 때가 아닌가 합니다. 결국 성인이 되기까지 모두 연속적인 단계를 거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 대 '비인간'으로 보아 절대적인 차이를 가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도 비인간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연속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 대 비인간의 구분을 절대적 기준으로 생각하고, 특히 가치문제에서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존엄하고 인간생명 아닌 것은 도구적이라는 생각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라든가 모든 것은 연속적인 것, 즉 인간 아닌 다른 생명하고도 어떤 의미에서 연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인간, 비인간을 결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길희성:넓은 안목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잘 짚어 주신 것 같습니다.



김흡영:과학자가 보는 입장에서는, 모든 과학현상 속의 공통분모를 온생명, 낱생명으로 보게 되고, 생태학적 문제 등과 관련시키지만, 신학에 있어서 출발점은 영혼입니다. 즉, 생명의 기초를 물질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보는 것입니다. 핵심적 이슈는 이런 상황에서, 영혼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길희성:엄격히 말해 인간은 존엄하다는 사회적 통념과 종교적 신념은 하나의 신화입니다.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가진 신화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포적인, 생물학적인 성격 때문만이 아니라, 영혼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이런 주제를 과연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흡영:그 주제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짚어야 할 것은, 우리의 세계관, 우주관, 생명 이해에 대한 새로운 생물학의 도전입니다. 특히 세포 이전의 유전자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유전자 환원주의, 유전자 결정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 핵심 이슈가 될 것입니다. 인간 대 비인간의 구분을 절대적 기준으로 생각하고, 특히 가치문제에서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존엄하고 인간생명 아닌 것은 도구적이라는 생각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길희성:인간존엄성 문제는 우선 '괄호치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이 실험할 때, 인간존엄성을 손상하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생명이란 것을 건드린다는 면하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인간 존엄성의 근거인 영혼의 문제 등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박충구: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학적 근거로서 이야기되는 것은 영혼설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인간,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입니다. 윤리학적으로 보면 그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측면에서 인간해방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인간 존엄의 근거를 하나님의 창조에 둘 경우 잘못하면 인간만이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과 주장의 토대로 작용할 수 있어, 인간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생태문제, 환경문제 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영혼설은 인간정신의 메타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만이 독특하게 사고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고, 공동선의 문화를 형성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런 인간의 정신력의 정수에는 영적인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영혼을 증명해 보라고 한다면 아퀴나스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말할 경우, 정신만이 아니라 영혼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신학적 전제일 뿐이라는 한계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길희성:그 문제는 추상적이고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이며, 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피조물이라는 존엄성의 자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을 복제할 때, 그 복제된 인간도 어떻든 인간으로서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제된 인간도 인권을 갖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논의의 현실성을 더하기 위해, 도대체 누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어떤 이유로 복제를 하고자 하는지 논의해 봐야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흡영:지금까지는 일단 배아복제가 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된 것 같습니다. 장기복제, 건강증진 등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리고, 생후 11개월 만에 죽은 아들에게 삶의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절박한 사정이나, 최근의 라엘리언 집단처럼 공식적 신조로 복제를 추구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복제의 일반적 수요를 제외하고, 제가 걱정하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 인간복제가 진행될 때의 폐단입니다.



길희성:그 주제는 마지막에 다루도록 하고, 자기 필요에 따른 의도적 복제와, 어린아이의 죽음에 대한 보상의 마음에서 나온 것과 같은 복제는 다른 것 같습니다.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사회에서 그런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김흡영:한국의 경우 후손이 끊어지면 당연히 복제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적 상황에서 복제기술이 상당히 일반화되면, 아들을 일류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우수한 머리를 갖도록 하기 위해 복제기술이 사용될 우려가 있습니다.



홍영남:인간복제를 추구하는 경우, 사실 긴박한 문제들이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다운증후군과 같은 경우 40세 전후로 죽도록 수명이 정해진 경우입니다. 그런데, 염색체를 조사하여 이상을 발견하면 그것을 없앨 수 있습니다. 즉, 21번째 염색체가 세 개일 경우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이런 것까지 막는 것은 너무한 것 같습니다.

 염색체 이상이 있는 부부가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8살 정도면 빈혈로 죽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빈혈은 조혈모세포를 넣으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체외수정 후 수정란에서 염색체 배열을 확인하고, 정상적 세포를 뽑아 '아담'이라는 정상적인 남동생을 탄생시켰고, 그 남동생으로부터 조혈모세포를 뽑아 누나를 치료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분명 복제기술을 사용한 불법이지만, 과연 비난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길희성:완벽한 기술에 언젠가는 도달할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텐데, 동물도 아닌 사람의 경우 낮은 성공률과 기형아와 미숙아 문제 등의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우려 사항을 조금 더 논의해 보았으면 합니다.



방청석:사회자도 모두에서 인간복제와 장기복제를 구분하였는데, 사실 장기복제에 대해서는 옹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복제는 확실히 존엄성 문제에 대해 규정할 필요가 있지만, 장기복제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안경이나 시계가 몸의 연장으로서 필요하듯이, 건강을 위해 추구하는 장기복제에 대해서는 옹호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길희성: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정란에서 14일 정도는 경과해야 만들어지는 기간세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장기배양을 위해서는 배아에 폭력을 가하는 것이겠죠.



박충구: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듯합니다.『Nature』 5월 4일자 기사를 보니, 줄기세포를 수정란이 아닌 척수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커다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홍영남:장기복제가 그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복제의 '비용'과 관련됩니다. 대전의 생명공학연구소에 발가벗은 쥐가 한 마리 있습니다. 그 쥐가 사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 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돼지의 장기가 인간과 비슷하기 때문에 해부학적 연구는 충분히 되었습니다. 하지만, 돼지를 사용하려면 그 돼지가 무균 상태에 살아야 하고, 그것을 위한 장치가 엄청나게 투입되어야 합니다. 돈이 무척 많이 든다는 이야기이므로,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면역체계까지 해결할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해지면 부자들은 할 수 있겠죠.



박충구:지난 2월 『Nature』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를 보니, 그 동안 인간의 유전자를 연구하기 위해 세계가 지출한 돈이 30억 불인데, 작년 1년 동안 세계의 약학회사들이 유전공학에 투자한 돈은 287억 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을 복제한다든지, 특정한 사람이 자기가 살기 위해 장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고비용을 감수하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리처드 시드 박사는 300만 불 정도의 비용을 들이면 인간 복제가 언제라도 가능하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이 약학적으로 다양하게 응용될 가능성이 있고, 이미 막대한 자본이 여기에 투자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홍영남:휴먼 게놈 프로젝트에서는 지금까지 총 DNA의 서열만을 읽었는데, 최소한 10년은 더 있어야 염색체 안에서 DNA 유전자 정보를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 읽으려면 엄청난 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합니다. 생물정보학이 각광받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염색체 이상에 대해서는 현재도 100% 찾아낼 수 있습니다.

 복제된 인간을 도깨비처럼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이 선택권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지만 그 생명 자체는 우리와 똑같은 생명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보다 더 진화된 생명일 것입니다.



길희성:인위적 과정을 통해 나타난 인간의 존엄성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간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충구:10여 교단의 입장을 조사해 보았는데, 유전자 결정론적 시각을 응용하는 것은 모든 교회가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결정론을 받아들일 경우 인간 정신과 영혼의 자유의 문제가 생기고, 인간의 운명과 미래까지도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결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교단적 입장에서는 인간복제를 기본적으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입장은, 생명의 종(種)의 안정성을 과학자들이 존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되어 태어난 인간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이므로, 교회는 그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길희성:장회익 교수는 인간의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인위적으로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초월적 능력 자체도 자연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냐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소 철학적 문제가 개입되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장회익:지금 인간이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을 활용해도 좋은가 하는 문제는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언젠가는 그 능력을 활용해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것을 활용할 정도로 지혜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즉, 그 어떤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해 된다 안 된다 하기보다는, 우리가 상황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이해한 후에 이를 결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유전자를 통해 결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주변 환경도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정신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주위의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처음 가졌던 유전자가 곧 '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오직 유전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협동적으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길희성:그렇다면, 복제된 인간이 인격성이 없다는 생각은 문제가 있겠군요.



장회익:복제된 인간은 또 다른 인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11달 된 아이의 죽음이 안타깝다고 하여 그를 복제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그 아이는 복제를 통해 재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란성 쌍둥이와 같이 자기와 매우 닮은 사람이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이 곧 내가 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굳이 아이가 필요하다면 입양을 하거나, 다른 아이를 낳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자기 세포를 가지고 인간복제를 하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세포를 가지고 복제를 하면 자기가 계속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맹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진정 자기를 자기로 만드는 것은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체적 삶의 총체입니다.



길희성:유전자 정보를 맹신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흡영:기독교의 일반적, 전통적 입장은 파악된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전자결정론,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인 것 같습니다. 신학적 차원에서는 복제기술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것이라는 입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에 관한 학술지 『Zygon』의 편집자였던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는 인간을 "Created Co-creator"로 보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도전은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읽었던 성서를 다시 읽게 합니다. 창세기 1장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지금 과학이론으로 본다면 하나의 복제라고 볼 수 있으며, 특히 창세기 2장에서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탄생했다는 것은 오늘날 인간복제라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없이 잉태되었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최초의 복제인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급진적 태도는 다소 우려가 되긴 하지만, 사실 복제 테크놀로지에 의해 성서를 새롭게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그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지만, 신학적으로는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이 있을 것입니다. 필립 헤프너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의 형상을 더 발전시킬 창의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며, 문제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맞게 간수하고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가장 실천적인 문제는, 한국의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윌머트는 인간복제를 반대합니다. 그는 돌리 복제를 실험하면서도, [스

코틀랜드 생명과학윤리위원회] 위원이고,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교회가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실험을 자기 신앙과 관련하여 고뇌했습니다. 그리고 휴먼 게놈 프로젝트를 처음 책임졌던 이도 윤리적 문제로 인해 결국 중간에 그만뒀습니다. 그가 이 프로젝트의 윤리적 한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서구 생명과학자들은 윤리적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한국 생명과학자들도 과연 그러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 보고 싶습니다. 이 윤리성의 문제는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며, 또한 신학자와 종교학자, 철학자는 종교를 가진 과학자들이 어떠한 입장을 갖추어야 할 것인지 그 지표를 정리해 주어야 합니다.



길희성:인간의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적 입장을 가진 이들의 배후에는, 또 하나의 결정론적 사고가 있습니다. 즉, 인간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인간의 행동은 결코 자연을 어길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질서에 도전한다 해도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이렇게 기발한 일을 하는 것도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섭리라는 낙관적 견해인 듯합니다.



홍영남:하지만 인간복제를 창조론과 관련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복제는 '만든 것'이 아니라 '변화시킨 것'입니다. 즉, 있는 것 중 조금 수정해서 고친 것이므로, 생명과학자들은 인간복제와 창조를 같이 놓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자들은 어떤 결정론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생물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이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는 유전자 결정론입니다. 물론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차적이라는 것입니다. 환경을 아무리 바꿔 봐도, 그것이 발현할 유전자 정보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손에게 전달되는 것은 유전자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전자만이 불멸의 코일인 것입니다. 나는 없어지더라도 유전자는 계속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단히 보면 결정은 유전자가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유전자가 결정한다면 사람이 로봇이냐 하는 반대와 함께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전자는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일차적으로는 유전자가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길희성:장회익 교수께서 유전자 결정론을 문제삼은 이유는, 복제를 하려는 사람의 동기가 나를 복제하여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인데, 이 '나'가 무엇이냐 했을 때, 유전자는 똑같을지 모르지만 전혀 다른 '나'라는 것을 주장하신 듯합니다.



장회익: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자기를 자기라고 느끼는 주체적 의식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의식을 가진 판단주체로서의 인간은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그 무엇을 선택하는 선택적 행위가 가능한 존재이며, 과학기술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크게 더 넓어졌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판단력과 책임감을 더 강하게 가져야 하며, 무엇을 기준으로 행위를 할 것인가를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술적으로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멸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희성:인간이 의식이든, 자유든, 초월이든, 기술적 능력이든, 자연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단계로 들어가, 완벽한 기술에 도달하기 전까지 겪게 될 시행착오의 문제점과, 오늘의 생명 경시적 산업사회에서 어떤 문제들이 심각하게 대두되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방청석:사회적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지적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인간복제에 대한 반대론들이 설득력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유일하게 설득력 있는 반대론은, 유능한 세일즈맨의 대량 복제와 같은 상업적 동기에 대한 반대론 정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반대론은, 복제로 태어난 아이들을 누가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과연 그 복제인간들도 가정에서 누리는 사랑의 관계처럼, 사랑을 받으며 성숙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박충구:자연적으로 태어나는 생명은 자신의 생명이 조작 당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는 반면, 인위적 개입으로 만들어진 생명은 자신의 인격적 자유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됩니다. 이는 종교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홍영남:그런 우려는 현 시점에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있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현재 인공 자궁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리모가 되었든, 생모가 되었든,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그 인간은 자신을 조작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할지도 모릅니다. 불완전한 요소를 다 제거하고 태어난 존재일테니까요.



길희성:사실 우리가 복제 자체를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복제의 문제점과 과정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복제를 통해 태어난 인간도 인격적 존재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체될 수 없는 독특한 개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문제로, 완벽한 기술에 도달하기까지 겪을 시행착오와 유전자 조작에 대한 문제를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낙태를 당연시하는 사회, 문화에서 생명복제의 문제를 과연 대수롭게 여기겠는가 하는 문제도 있겠습니다.



홍영남:한 번 수정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험과정에서는 당연히 비정상적인 것이 더 많이 생깁니다. 완전한 개체로 성장할 수 있는 확률은 1%도 되지 못합니다.

 28주가 되면 복제 실험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형아를 안 만들려고 복제를 하는 그 과정에서 또다른 기형아가 계속 나온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폐기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가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낙태가 마음대로 되는 곳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충구:돌리를 만들어낼 때 277개의 수정란을 사용하여 수정란처럼 조합한 것이 29개였습니다. 그 중에서 한 개만이 성공하여 돌리가 탄생한 것이지요.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과학적으로 그 확률을 높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분자생물학의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완벽한 기술이 나와 시행착오를 극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술을 응용할 때 어떤 삶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는 여전히 문제로 남습니다. 인간을 만들어 낸다면, 보다 훌륭하고 멋있고 잘생기고 튼튼한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내려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기독교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만 우생학을 이용하되, 불완전한 생명을 치유하는 선까지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길희성:유전자 다양성의 파괴라는 것도 복제 반대 이유의 하나로 이야기되는데, 자기를 복제한다든지, 소수의 동일한 유전자를 그대로 남겨 존속시키려는 것은 어떻습니까? 모든 인간을 복제한다면 모르겠지만, 예외적으로 몇 사람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홍영남:그것은 이론적으로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우수집단을 만들어냈다 할 때, 급격한 환경적 변화가 생기면, 다양성이 있을 때는 그 중 하나라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다양성이 없을 경우 한꺼번에 몰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사회는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다양성이라는 것은 자연적으로는 계속 변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생존 능력을 높여가는 것입니다.



김흡영:황우석 교수는 인간복제는 분명히 반대한다고 하면서, 특히 불임전문가가 인간복제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자기 경험에 의하면 복제가 성공했다 할 지라도 결함 있는 개체가 탄생될 확률이 높고, 동물일 경우 폐기 처분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경우는 윤리적 문제가 있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박충구 교수가 이야기한 우생학 문제는 더 심각한 것입니다. 나치와 일본도 우생학을 실천했고, 한국도 우생학에 민감한 나라입니다. 사실상 족보관리는 일종의 우생학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적 상황에서 인간복제가 허용되면 족보를 중시하는 사회 자체가 우생학적으로 나갈 것이 분명합니다.

 고전적인 SF 소설 헉슬리의 [위대한 신세계]나 최근의 SF 영화 [솔져]에서 보듯이, 지금 젊은 세대는 이미 복제인간, 사이버보그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복제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가진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을 예언적으로 이미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빈부격차가 심하고 사회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이 기술이 히틀러같은 편집광적 사람에게 들어갔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불임 문제가 복제로 해결되면, 부부가 '맞춤아기 생산공장' 같은 곳에 가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아이를 주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100% 완성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량품이 나왔을 때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반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족보 중심의 강박관념이 큰 사회에서, 생명과학이 어떤 윤리적 척도 없이 마음대로 발전되었을 때 오는 후유증은 심각할 것입니다.



박충구:생명을 발생시키는 과정에 대한 우려는 당연합니다. 저는 그런 실험이 단순히 생명을 산출해내기 위한 경우에는 비윤리적이라고 규정받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자들이 생명과정을 연구하는 목적이 인간을 복제하기 위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것은 경제성에도, 수요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유전자가 생명의 발전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이런 연구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배아, 그리고 14일 이후의 배아도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우려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영국과 일본이 그것을 허용하려 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원칙적인 면에서 생명손상이라고 하는 것은 도덕주의적 입장은 되지만, 반드시 윤리적인 입장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가져올 다양한 형태의 생명공학적 복지를 생각할 때, 반대했던 사람들도 나중에 가서 그 의료적 복지가 클 경우 모두 혜택을 받으려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요구하는 것은, 실험실 안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과학자들의 숭고한 인류애와 도덕성입니다. 이는 단순한 과학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숭고한 도덕적 기준을 가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길희성:저는 생명공학에 종사하지 않는 것을 아주 다행으로 생각합니다.(웃음) 지금 생명공학 하시는 분들이 무척 고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논의를 마무리할 때가 되어갑니다. 잠깐 문제점을 명료화하면, 인간복제의 경우 한국적 맥락 속에서 족보의식이 매우 강하므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것, 그리고 독재자에게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문제는 생각하기에도 끔찍하고, 사회에서 일어날 경우 강력히 저지해야 할 것입니다.



김흡영:그런 문제는 이미 SF 영화로도 만들어져 상영되고 있으며, 일반 대중은 그것을 리얼리티로 받아들입니다. [솔져]라는 영화는, 냉혈한 살인기계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 버려졌다가, 폐기장에서 인간들을 만나 인간성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 복제인간도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복제나 생명공학의 근본적 문제점은, 생명 또는 진화는 그 단위가 천문학적인 것이어서 실험할 기간의 한계를 지닌 인간으로서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는 베스트라 할지라도, 더 큰 스펙트럼(기간)에서도 베스트인가 하는 것을 검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공학이 가장 발달된 영국에서 구제역이나 광우병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길희성:이제 마지막으로 네 분 교수님들의 간단한 정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영남:대중은 생명공학의 가능성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자, 철학자 사회학자들이 너무 추상적으로 인간 존엄성을 가지고 이야기해서는 생명과학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반 대중을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각 학문 분야마다 정의가 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엄성을 막연하게 이야기해서는 서로 대화가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오늘 정리된 것은, 복제로 태어난 인간도 생명체이며 인간이라는 것, 어떤 면에서는 기존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어느 한 곳에서는 인간복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모든 기술을 다 갖추고 있고, 사회적으로 인간복제 실험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리나 신학, 종교학을 하시는 분들이 더 깊이 있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이 수술할 때 인간의 육체를 사람으로 보면 하지 못한다고 하듯이, 생명과학자가 수정란을 보며 실험을 할 때 존엄성을 생각하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차이에 대한 공감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충구:오늘 논의된 문제들에 대해, 서양에서는 ELSI(Ethical Legal Social Issues)라고 해서, 과학자들이 생명공학 문제를 풀어가며 생기는 윤리적이고 법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경우 모든 실험비의 6%를 여기에 투입하게 되어 있고, 미국도 1991년 미국 보건성과 에너지청이 합의한 바에 의하면 연간 연구비의 3∼5%를 이 윤리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 생명공학 문제가 반드시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를 부수적으로 동반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과학자들과 윤리학자들의 이해와 도덕적 판단의 성숙과 일치를 기하려는 것입니다.

 윤리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최근의 스위스 루가노에서 세계의 유수한 학자들이 모여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The Lugano Report, Pluto Press, 1999)를 내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세계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는 40억이므로 실제적인 인구감소정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즉 인구의 증가를 돕는 정책은 오히려 미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생명공학도 이런 관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모든 생명과학의 관계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생명만을 연장하고 우월하게 잘 살겠다고 할 때, 다른 생명과의 공존과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 성서적으로 보면 번영과 축복의 논리보다는 생명과의 평화를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공학의 기술은 자연의 인간을 치유하는 정도까지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만들어 내거나, 변종을 만들거나, 우생학적 적용을 하는 일 등은 오늘의 생태계적 구조나 성서적 시각에서 본다면 새로운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한편 무조건 과학적 기술과 사고를 거절하는 입장보다는, 과학자들의 연구 업적 가운데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그 불행에서 해방시키려는 치료하는 과정(healing process)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광범위해질 것이므로, 그런 측면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장회익:세계가 감당할 인구가 40억이라는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지구의 적정인구가 얼마인가를 우리가 빨리 산정하고 이에 맞춰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잠정적으로 10억 정도로 추산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생태계의 건강이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이것이 지구상에서 50억 년을 더 지속해야 한다는 기준에서 보아야 하는데,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책임이 지금 우리 세대에게 있습니다. 이 생명이 중단된다면 이것은 아마도 우리의 과실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이 전체의 생명을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큰 생명, 즉 '온생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나 이 온생명의 건강을 너무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하자면 '온생명 의사'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온생명은 근자에 이르러 급격한 변화의 와중에 있으며 이 변화의 속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빨라져서 지수함수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리에서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신체적 변화가 이렇게 큰 것은 생리에 이상 징후가 있는 것이고 이는 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기술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이렇게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큰 변화를 주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좀더 거시적으로 보고 그 안에서 문명이 지향할 방향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온생명', 우리 생태계의 건강이 가장 소중한 것이고, 그것이 모든 가치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김흡영:생명과학, 특히 생물학은 21세기에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기독교인들, 특히 신학자, 목사들은 생물학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생명의 본성에 대해 설득력 있는 입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사회경제학이 하나의 의심의 해석학으로 충격을 주고, 프로이드의 심리학과 니체의 철학이 그런 영향을 주었듯이, 생물학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전통적 이해의 편견을 비판적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인간복제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도래할 가장 큰 충격의 하나는 가족문제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복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아버지의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존재인데, 그렇다면 그 복제인간의 가족 내 위치가 무엇인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에서 예수는 유전자적 연속성의 존재(요셉의 친자)가 아니라, 신비적 방식으로 마리아라는 대리모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모친과 형제들이 예수에게 찾아왔을 때 예수는 가족이 무엇이냐고 되물으면서, 가족은 생물학적인 관계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이라는 신학적 관계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장한 가족에 대한 기준은 생물학적 연속성이 아니라 진리와의 관련성입니다. 인간복제의 도전은 가족에 대한 신학적 해석에 새로운 눈을 던져줄 수 있습니다. 성서는 생물학의 환원적 유전자 결정주의와 한국 사회의 혈연 중심적 유전자 결정주의 양자 모두를 거부합니다. 이와 같이 생물학은 성서의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밝히는 역할을 제공합니다. 생물학은 기독교 신앙의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신학 패러다임 창출에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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