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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4 (22:38) from 129.206.196.125' of 129.206.196.125' Article Number :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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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科學 science]

요약정보
자연 및 사회에서의 사물과 과정의 구조와 성질 등을 조사하여 그 객관적 법칙을 탐구하는 인간의 이론적 인식활동과 그 소산인 체계적·이론적 지식, 즉 개념·가설·법칙명제·이론의 총체. 이것은 세계를 정신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하려는 인간의 다양한 인식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형태이다.

내용
자연 및 사회에서의 사물과 과정의 구조와 성질 등을 조사하여 그 객관적 법칙을 탐구하는 인간의 이론적 인식활동과 그 소산인 체계적·이론적 지식, 즉 개념·가설·법칙명제·이론의 총체. 이것은 세계를 정신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하려는 인간의 다양한 인식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형태이다. 또한 이것은 오늘날 사회적 분업의 특수한 영역으로서 수백만 사람들의 직업이 되는 등,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제도가 되고 있다. 과학은 크게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원래 과학은 인간의 실천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왔다. 인간은 자연을 변화시키는 생산활동의 과정에서, 자연과 사회를 대상으로 관찰·실험·조사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지식을 정리·분석·종합해서 개념과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실천에 의해 검증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객관적 법칙을 명확히 세워왔다. 이리하여 그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몇 가지 기본법칙에 의거하여 관련된 모든 현상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체계를 완성해내기에 이르렀다. 즉, 과학은 인간의 실천적 활동에 의해 성립하며, 실천이 제기하는 과제를 이론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발전해 왔으므로, 실천의 다양화와 발전에 따라 끝없이 진보발전을 계속해간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분화(differentiation)·특수화(specialization)의 경향과 더불어 널리 몇 개의 분야에 걸친 통합(integration)·보편화(universalization)의 경향으로 생물물리학 및 사이버네틱스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인식활동이 낳은 과학은 보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 의거하여 개념적·논리적·추상적 사고를 통해 구성된 정식의 체계, 즉 이론이다. 그 특징은 실천을 통해서 검증된 법칙으로 객관적 진리라는 점에 있다. 인간은 과학에 의해 자연과 사회의 법칙을 고의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이 뜻하는 바를 실현시키며,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측도 할 수 있게 되었다.


1 과학의 방법
과학연구의 방법은 과학혁명기라 할 수 있는 16세기 말∼17세기에 걸쳐 그 기초가 확립되었다. 이 기간 동안 I. 뉴턴에 의해 뉴턴역학이 확립되었으며, 해석기하학(解析幾何學)·미적분학(微積分學) 등이 창시되었다.

(1) 실험과 관찰

⑴ 실험적 방법의 탄생:17세기는 근대과학의 성립·발전에 획기적인 시기가 되었지만, 그 전제가 된 것은 16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생산기술체계였다. 즉,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장인적(匠人的) 전통으로 유지되어 오던 기술이, 공장제수공업기에 근대기술의 선구자로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16세기의 대표적인 과학자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N. 코페르니쿠스, 근대해부학의 시조로서 생물학과 의학의 토대를 이룩한 A. 베살리우스, 신성폭발(新星爆發)을 관측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우주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T. 브라헤, 그리고 W. 길버트·G. 갈릴레이·J. 케플러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1600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길버트의 《자석(磁石)에 대해서》는 근대실험법의 시초로 평가된다. 이 책은 나침반을 만드는 기술자와 그것을 이용하는 선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편찬되었다. 그는 의사였지만 자철광(磁鐵鑛)으로 구(球)를 만들어 그 위에 자침(磁針)을 매달고 실험을 하여, 지구는 자석이다>라고 한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였다. 갈릴레이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사용되고 있던 분쇄기·기중기(起重機) 등 여러 기계에 착안, 그 기능을 고찰하여 《레 메카니케》를 저술하여, <기계는 물체의 운동상태를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또한 그는 1583년 진자(振子)의 등시성(等時性)을 발견하고, 91년 피사의 사탑(斜塔)에서 유명한 <낙체실험(落體實驗)>을 행하였다. 그리고 17세기 초에는 낙하속도가 낙하시간에 비례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증하기 위해 <경사면의 실험>을 하여 가속도의 법칙을 발견했다. 자유낙하는 너무 빨라서 당시의 기술로는 포착해 낼 수 없었으므로, 천천히 낙하시키기 위해 경사면을 이용하였다. 이 실험은 오늘날 실험실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실험의 착안과 발상의 기본이 되었다. 그는 이러한 성과를 《신과학대화(新科學對話, 1638)》에 집약해서 근대역학이 확립되는 길을 열었다. 또한 갈릴레이는 1609년에 배율 30배의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관측을 하고, 목성의 위성(衛星), 달의 요철(凹凸), 태양의 흑점 등을 발견하였다. 케플러도 1609, 19년에 화성의 운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행성운동에 관한 법칙을 발표했다. 갈릴레이는 스스로의 관측 결과에 의거, 《천문대화(天文對話, 1632)》에서 지동설을 주장하여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W. 하비는 《동물의 심장 및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1628)》를 출간하고, 최초로 혈액이 전신을 순환하는 것을 관찰하여 실험적으로 명백히 하였으며, 생물학, 특히 생리학 분야에 실험적 방법을 부여했다. 17세기 중반 이후에는 새로운 수단으로서 현미경을 사용한 생물학 연구가 시작되어, 65년 R. 훅이 세포를 발견하고, 73년 A. 레벤후크가 적혈구를 발견하는 등 근대생물학의 기초가 마련되어 갔다. 이러한 실험적 방법의 성립과, 그와 함께 점차 풍부해진 자연인식의 방법이 같은 시대의 철학자인 F. 베이컨·R. 데카르트 등에 의해 과학방법론, 즉 종합·분석·귀납·연역법으로서 일반화되었다.
⑵실험적 방법의 역할:실험이 과학 연구방법의 기초로서 확립된 것은 17세기였지만, 실험도구 및 장치가 충분히 그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의 결과 공작기계기술이 발달된 이후부터였다. 예컨대 19세기의 T. 영·A.J. 프레넬 등으로 시작되는 광학연구, 특히 19세기 중기 이후 광속도(光速度) 측정에 대한 A.H. 피조의 실험(1849, 51), 마이컬슨-몰리의 실험(1886∼87) 등은 기계공작기술의 진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세기에는 열역학(熱力學)과 전자기학(電磁氣學)이 형성되어, 역학과 함께 고전물리학의 3대 분야가 확립되었다. 열역학은 열동력의 이론으로서, 산업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1800년 전지(電池) 발명은 전기시대로 가는 문을 열어, 패러데이-맥스웰의 고전전자기학 체계가 19세기에 확립되었다. 한편 A.L. 라부아지에의 《화학강요(化學綱要, 1789)》로 시작되는 근대화학은, J.J. 베르셀리우스의 《원자량(1814·1826)》, J. 리비히의 《기(基)의 개념(1832)》 등에 의해 19세기에 체계화되었는데, 그 실험수단은 물리학 분야와는 조금 다른 면에서 발전했다. 오래된 실험수단은 연금술 이후의 기술적 전통 및 광산·야금기술과 위스키 제조에 이용되는 증류기술 등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화학분야에서 장인적 기술이나 매뉴팩처 생산기술로서 유지·발전되어 갔다. 대혁명 전 프랑스의 특권 제조업체들은 그 기술을 유지하였는데, 그 기술적 전통이 화학자를 낳는 하나의 배경이 되었으며 이러한 것이 무기화학·유기화학 등의 실험기술의 기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근대화학의 고전적 기초는 19세기 초부터 전반기에 걸친 원소분석 실험기술의 발전, 증류·분류(分溜)·재결정화·여과(濾過) 등 화학 고유의 조작, 실험기술의 발전 위에 확립되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생물학에서는 19세기 초부터 실험생리학의 성립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기초를 다진 사람이 C. 베르나르이며 19세기 후반에 L. 파스퇴르·R. 고흐에 의해 미생물학의 길이 열리고, 1880년대에 중요한 병원균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생물학이 전체적으로 실험적 과학으로서 그 위치를 확립한 것은 1890년경이다.
⑶발견의 의미:실험·관찰에 의한 발견은 과학체계의 형성·전개에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 ① 발견이 이론을 검증함으로써 그 이론의 체계를 완성시키는 경우:이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예로 1848년의 해왕성의 발견을 들 수 있다. 뉴턴역학은 《프린키피아(1687)》에 의해 체계적인 기초가 완성되었는데, 그것은 기하학적 표현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그 후 수학해석의 발전에 의거해서 그 해석적 표현을 한 것이 역학적 천문학을 발전시킨 J.L. 라그랑주의 《해석역학(解析力學, 1788)》과 P.S. 플라스의 《천체역학(天體力學, 1799∼1825)》이며, 이것에 의해 뉴턴역학을 토대로 하는 역학적 자연관이 확립되었다. 그 상징적 사건이 1846년 J. 애덤스·U.J.J. 르베리에에 의해 각각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해왕성의 존재에 대한 예언이다. 해왕성은 천왕성의 궤도혼란의 관측에서 궤도가 계산되고 그 존재가 예언되어, J.G. 갈레가 그것을 바탕으로 관측·발견하였다. 또 하나의 예로서 88년 H.R. 헤르츠에 의한 전자파(電磁波)의 존재에 대한 실험적 증명을 들 수가 있다. 헤르츠는 79년 <전자적인 힘과 전기편극(電氣偏極)과의 관계의 실험적 증명>에 대한 연구를 시작, J. 맥스웰의 변위전류(變位電流)의 실험적 증거를 덧붙여 공중에 전자적인 횡파(橫波)가 존재하는 것을 실증했다. 전자기학은 1856년∼65년 맥스웰의 몇몇 연구논문과 그것을 집대성한 《전기자기론(電氣磁氣論, 1873)》에 의해 장(場)의 이론으로서 체계화되었다. 맥 스웰의 최대 공적은 M. 패러데이의 전기학 연구에 수학적 표현을 부여하여 전파(電波)의 존재를 예언한 것이다. 헤르츠의 성공은 전파의 존재에 대한 실험적 증명일 뿐 아니라,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승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헤르츠의 실험은 빛의 본질이 전자파라는 맥스웰의 예언에 한층 더 실체적 근거를 주게 되었으며, 학문체계의 발전에 대한 공헌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검증 이상으로 적극적인 의의를 갖는다. ② 이론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현상 또는 대상을 발견하는 경우:이 경우의 예로서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을 들 수가 있다. 헤르츠의 실험은 당시 진공 속에서의 전자적 매체로서 에테르의 존재를 실증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은 지구의 에테르에 대한 상대속도의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빛을 어떤 매질(媒質)의 진동으로 간주하고서 그 매질을 처음으로 <에테르>라 명명한 사람은 훅이며, 빛의 파동설을 체계적으로 전개한 최초의 학자는 17세기말 C. 호이겐스였다. 이후 파동전파매체로서의 에테르의 본질이 문제가 되어 19세기에 들어 빛의 파동설은 프레넬 등에 의해 새로운 전개를 보였고, 19세기 후반 맥스웰이 빛의 전자파설(電磁波說)을 제기하여, 그 매체로서의 에테르의 본질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당시의 주류적 견해였던 프레넬의 <수반계수개념(隨伴係數槪念)을 동반한 정지 에테르이론>에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은 부정적인 결과를 주었다. 이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학자가 H.A. 로렌츠이며, 그의 <수축가설(收縮假說)>이 마이컬슨-몰리의 실험결과를 설명했다. 이 가설은, A.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출현에 의해 에테르개념을 부정한 형태로 이론적으로 완성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에테르개념을 부정했다기보다는 불필요하다고 보고 소거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에테르 개념은 진공 속에서의 전자기력을 전하는 장(場) 그 자체로서의 에테르개념의 중추개념, 상대성이론, 장의 양자론을 거친 후 물리적 진공의 본질적인 문제로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③ 발견적인(heuristic), 또는 우연적인 발견의 경우:이런 발견의 일례로 E. 러더퍼드 등에 의한 원자구조의 발견이 있다. 러더퍼드는 α선 산란현상(散亂現象)의 연구에서 큰 각도로 산란되는 α입자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고 원자의 핵구조모델(중심에 단단한 심지를 포함하는 구조)을 알아냈으며 그것으로 산란을 설명했는데, 이것은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발견의 하나이다. 또 진공방전 실험중에 이루어진 W.K. 뢴트겐에 의한 X선 발견은 한층 우연성이 높은 발견이다. 화학에서는 1856년 W.H. 퍼킨이 퀴닌을 합성하려던 도중에 퀴닌은 생기지 않고, 그 대신에 생성된 적갈색의 침전물을 처리해서 아닐린 염료인 모브를 얻은 경우 등을 비슷한 예로 들 수 있다. 어떤 실험과정에 수반되는 현상으로서 일정한 우연성을 갖고 전혀 예기치 않은 사실이나 규칙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연한 발견은 이후에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

(2) 기본 개념과 이론의 구성

과학은 자연과학·사회과학의 구별 없이 모든 분야에서 몇 개의 기본개념을 토대로 그 지식체계가 구성된다.
⑴고전역학의 경우:17세기에 성립한 뉴턴역학은 선행성으로 하여 이후의 모든 자연과학의 틀이 되었다. 뉴턴역학에서의 기본개념은 <공간> <질량> <운동량> <힘>이다. 《프린키피아》에서는 서두에 정의를 서술하고, 제1∼제 3 의 운동법칙이 공리(公理)로서 주어져, 거기에서 모든 이론체계가 연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의 고전역학은 해석역학으로서 매우 정밀한 수학적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물리학으로서의 본질에서 보면 《프린키피아》에 쓰여진 것과 기본적으로 동등한 것이다.
⑵19세기의 여러 과학의 경우:라부아지에·J. 돌턴에서 D.I. 멘델레예프에 이르는 과정에서, 19세기에 성립된 근대화학의 기본개념으로는 <원자> <분자>의 개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열역학은 19세기에 <에너지>의 형태전환과 그 이동에 관계되는 현상의 과학으로서 성립했고,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전자장(電磁場)>의 방정식에 의해서 모두 기술되는 체계로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생물학에서는, 예컨대 <종(種)>의 개념 등을 들 수 있다. 19세기까지 성립한 근대과학에서의 이러한 기초개념, 즉 질량·에너지·장·원자·종 등은 넓은 범위에서는 기본적으로 그대로 현대과학으로 계승되고 있다. 물론, 그 내용파악은 깊어지고, 기본개념·기본량으로서의 이론체계상의 위치는 변화해왔으며, 또 그 변화 속에서야말로 현대과학의 본질이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⑶기본개념의 수량적 표현:물리학·화학 등의 기본개념은 기본량으로서 수량적 표현이 가 능한 양이며, 기본적으로 측정가능한 양이다. 수량적으로 표현됨에 따라 정밀과학으로서의 체계적 구성이 한층 보기 쉬운 형태가 되고 가설의 실험적 검증도 한층 보편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정밀과학으로서 사실상의 필요조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생물학 등에서는 모든 분야가 측정가능하고 양적 표현이 가능한 개념으로 성립된다는 것은 곤란하며, 종 개념의 경우에서처럼 무의미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수량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⑷상대성이론의 경우:19세기의 근대과학에서 20세기의 현대과학으로의 체계적 변혁은 A.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1905년의 특수상대성이론과 15년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시작되었다. 뉴턴역학에서는 시간·공간은 물질 및 그 운동에 대해 각각 밖에서 부여된 상호 독립적인 고정된 틀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 의미에서는 <절대시간> <절대공간>이었다. 맥스웰의 전자기학에서도 이 점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場)의 방정식에서 기술되는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뉴턴역학을 특징짓는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에 만족하지 않고, 그 <장의 개념> 속에 이미 특수상대성이론으로 계승되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공간은 4차원의 민코프스키시공(時空)이라고 파악되어, 이미 상호 독립이 아니라 물질의 운동을 매개로 결합한다. 사상(事象)의 동시성 인식의 상대성과 광속도불변성(光速度不變性)에서 출발하는 이 이론은 오늘날의 물리적시간·공간인식에 이르는 혁명의 첫걸음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변혁을 더욱 진전시킨다. 즉,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공간이 아직 민코프스키시공으로서, 밖에서 부여받은 틀로서 존재하며, 그 기하학이 기본적으로 유클리드성을 유지한 상태인 데 반해,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 내에서 어느 기하학이 통용되는 것인가는, 거기에 분포하는 물질의 상태로 결정하게 되었다. 즉, 4차원 시공의 기하학을 결정하는 거리텐서가 중력퍼텐셜이라는 물리량과 연결되게 된 것이다. 철학의 카테고리로서 존재한 시간·공간이 이상의 의미에서 본래적으로 물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질(질량)분포↔중력퍼텐셜↔거리텐서와 같은 형태로, 물질·공간·시간의 본질적 연관이 비로소 물리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또 특수상대성이론은 에너지와 질량과의 양적 동등성이라는 인식을 가져왔다.
⑸양자역학의 경우:상대성이론이 기본적 카테고리로서의 장의 개념에 의거해서, 시공과 물질과의 상호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혁을 추진해 온 데 대해서, 양자역학(1925∼27)은 입자성(粒子性)과 파동성(波動性)이라는 물질의 두 가지 측면을 확률밀도로서의 파동함수 로 표현함으로써, 물질관과 물질의 운동을 규정하는 인과법칙성(因果法則性)의 변혁을 가져왔다. 예컨대 <불확정성 원리>의 문제가 그것이다.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적 차원에서의 관측량으로서의 물리량에 대한 기본적 조건의 하나를 부여하여, 마이크로 레벨에서의 관측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식견을 줌과 동시에, 양자역학이 거기에서 출발하여 그 인과법칙을 구성하는 원리가 된다. 그리고 이 양자역학이 바로 특수상대성이론과 결합됨에 따라 상대성이론적 양자역학과 장의 양자론이 성립(1928∼29)되었다. 여기에서는, 진공은 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공의 물리화에 호응한 형태로 가상적 입자의 생성·소멸이 실행되는 물리적 진공으로 파악되며, 는 공간에 분포하는 장의 연산자(演算子)가 된다. 이렇게 해서 출발한 장의 양자론은, 단수명(短壽命)으로 생성·소멸하는 소립자의 묘상(描像)을 부여하는 이론으로서의 소립자론에서 근간이 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기본적 카테고리로서의 장의 개념 및 에너지와 질량과의 양적 동등성이라는 인식이 그 기초가 되었다. 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공개념의 근본적 변혁과 양자역학에 의한 물질의 운동법칙 변혁의 결합과정에서, 장의 개념이 공통의 기본카테고리로서 규정적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화학에서는, 그 중심과제인 화학결합의 본질에 관해 양자역학을 적용하는 것으로(하이틀러-런던의 이론, 1927) 그 해명을 위한 기본원칙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분자·원자·화학결합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⑹여러 개념의 통일적 파악:이상과 같이 보면, 상호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19세기의 뉴턴역학·맥스웰전자기학·열역학·화학 등의 여러 기본개념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상호연관에 대한 인식이 한층 깊어져 통일적으로 파악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개별 과학에서의 실험수단 및 이론수단 등이 더욱 고도화·전문화되고 특수화·분화되어 가므로 개개의 과학자가 모든 과학체계에 대한 통일상(統一像)을 구성하는 것이 곤란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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