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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20)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39
Delete Modify 김균진 Access : 12689 , Lines : 22
시간, 역사 그리고 종말 - 시간과 역사의 끝, 종말론의 의미
시간, 역사 그리고 종말 - ④ 시간과 역사의 끝, 종말론의 의미

블랙홀이 아닌 화이트홀로서의 종말론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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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시대는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와 위기 가운데 있다. 유전 인자의 개조와 생명 복제, 생태계의 총체적 위기, 새로운 과학 기술을 통한 지구촌의 총체적 파멸의 위험성, 인류의 도덕적 타락과 부패 등 현대 세계의 위기 상황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며,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세계의 종말을 외치는 말세적 종말론이 등장함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말세적 종말론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과 역사는 우주적 대재난과 파멸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세계의 진리의 일면을 말하고 있다. 즉 불의와 죄악으로 점철된 이 세계의 시간과 역사는 끝날 수밖에 없으며 또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자비하고 불의한 세계, 그의 시간과 역사에 대한 부정이요 심판의 선포이다. 그것은 ‘부정적인 것의 부정의 보편성(P. Tillich)’을 나타낸다.
이러한 말세적 종말론에 있어서 종말은 finis 곧 ‘끝남’ 내지 ‘소멸(annihilatio)’로 이해되며,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역사의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종말론은 세계의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eschaton) 혹은 일들(eschata)에 관한 이론을 뜻한다. 그러나 ‘모든 날들의 마지막 날’에 일어날 종말은 이 세계의 시간과 역사에 대하여 긍정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시간과 역사의 마지막 끝남을 뜻할 뿐이다. 그것은 죄악된 이 세계의 시간과 역사에 대한 심판과 그들의 끝남이라는 의미 외에 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부정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종말론의 이러한 통속적 이해에 반하여 성서는 종말에 대한 하나의 다른 이해를 보여 준다. 곧 만물이 하나님과 화해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역사의 성취가 시간과 역사의 종말로 제시된다(에베소서 1장, 골로새서 1장). 여기서 종말은 역사의 성취와 목적 곧 telos로 이해된다. 세계의 불의하고 죄된 형태는 불에 타 소멸되어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 시간과 역사가 새로운 형태로 시작되는 것이 역사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성서는 ‘이제는 죽음과 슬픔과 울부짖음과 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라는 표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요한계시록 21장).
이러한 의미의 종말은 역사적 차원과 초월적 차원을 가진다. 역사적 차원에서의 종말은 역사의 미래로부터 현재 속으로 와서 현재의 상황을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향하여 변화시키는 종말의 현재적 역동성을 가리키며, 초월적 차원에서의 종말은 모든 현실과의 동일화를 거부하고 역사의 ‘새로움(Novum)’으로 머물러 있는 미래성을 가리킨다. 그것은 역사 안에서 모든 사물을 개방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역사의 초월적 미래로 머물러 있다. 여기서 종말은 말세적 종말론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미래로부터 현재 속으로 오고 있다(in coming). 따라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흐르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미래는 과거적인 것으로부터 되어져 가는 것 곧 future(라틴어 fieri 곧 to become)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현재로 오는 것 곧 advent(ad+venire 곧 to+to come)를 뜻한다.
따라서 참 의미의 종말론은 소위 세계의 마지막 날에 일어날 환상적 일들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는 물론 세계와 역사를 그들의 참된 목적(telos)을 향하여 변화시켜나가는 동시에 역사의 초월적 미래로 남아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현실에 관한 이론이다. 불의한 세계에 대하여 그것은 ‘부정의 이론’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희망의 이론’이다. 그것은 주어진 현실에의 좌절과 안주를 거부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의 정신을 일으키는 원천이 된다. 주어진 사회 질서를 고정시키고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운명론과 결정론, 윤회적 시간이해와 역사이해는 종말론을 통하여 거부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의미의 종말론은 이상적 세계를 동경하여 불의하고 비인간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이것을 변혁하고자 하는 유토피아 사상의 근원이 되었다. 이것을 우리는 먼저 12세기 카톨릭 교회의 예언자요 성자로 존경받던 요아힘 폰 피오레(Joachim von Fiore)의 종말론에서 발견한다. 요아힘은 ‘성부의 시대’와 ‘성자의 시대’ 다음에 올 ‘성령의 시대’ 곧 역사의 이상적 시대를 묘사한다. 그가 묘사하는 성령의 시대는 세속의 부와 권력을 누리던 당시 카톨릭 교회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된다. 에른스트 블로호(Ernst Bloch)가 그의 『희망의 원리』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피오레의 성령의 시대는 사회계급의 차별과 사유재산과 성직자 계급이 없는 시대, 모든 사람이 더 풍성한 은혜와 사랑과 친구의 상태에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역사의 목표로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사회와 교회의 변혁을 요구하는 사회―유토피아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근대 유토피아 사상의 아버지 토마스 모어(Thomas Moore)는 프란시스 교단의 수도사가 되기 위하여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나중 카르토이저 수도원(Kartaeuserkloster)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헨리 8세 때 영국의 재상이 된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하였고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출판하였던 1516년, 무어는 당시 영국의 비참한 사회―경제적 상황과 영국 교회의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섬 유토피아(nova insula Utopia)』를 출판한다. 이 책에 의하면 모든 악의 원인은 소유와 부를 추구하는 데 있다. 사유재산 제도가 모든 악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유토피아적 세계는 사유재산 제도가 없을 것이다. 돈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진다. 따라서 범죄의 원인과 뿌리가 없어진다. 불평등한 재산 분배가 없으므로, 거기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거지가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고 건강을 유지할 것이다.
또한 종말론은 근대 계몽주의의 진보신앙과 목적론적 역사 이해의 원천이 된다. 20세기의 유명한 헤겔 연구가 뢰빗트(K. Loewith)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근대의 진보신앙과 목적론적 역사 이해는 종말론의 ‘세속화’의 귀결이다. 계몽주의의 아버지 렛싱 그리고 칸트는 교육을 통하여 인간의 이성과 윤리성이 참된 것과 선한 것을 스스로 인식하며, 그러므로 성직자와 교회의 제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 ‘마음의 내적 순수성을 가진’ 완전한 인간의 통일된 세계, 모든 인류의 연합된 시민사회를 역사의 목적으로 제시한다. 헤겔(Hegel)의 철학 체계는 ‘정신으로서의 하나님(Gott als Geist)’이 자기를 대상 세계와 완전히 동일시 할 수 있는 세계, 진리와 자유가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의 목적으로 제시한다. 세계사는 이 목적을 향한 ‘자유의 역사’로 파악된다.
칼 맑스(Karl Marx)에 이르러 종말론은 무신론적 정치 이데올로기로 발전한다. 그의 사상에 의하면 역사의 목적은 ‘하나님 없는 하나님의 나라’ 곧 공산주의 세계에 있다. 이 세계에는 사유재산과 직업에 따른 인간의 차별과 소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소외에 대하여 환상적 위로를 제공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기독교 종교는 자연적으로 사라진다. 공산주의 사회는 ‘역사의 해결된 수수께끼’이다. 20세기 희망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호는 맑스의 뒤를 따라 무신론적 입장에서 종말론의 사회―유토피아적 차원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 없는 하나님의 메시아적 나라’의 실현과 ‘초월 없는 초월’을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참으로 ‘하나님과 같은 인간(homo sicut Deus)’의 나라가 아니라, ‘인간 늑대(homo homini lupus)’의 세계가 되며, ‘초월 없는 초월’은 결국 내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종말론은 시간과 역사의 끝남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그들의 참된 목적과 성취에 관한 이론이다. 그것은 시간과 역사가 지향해야 할 참 목적을 제시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내적 동인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역사의 새로움으로 존속함으로써 모든 사물의 개방성을 근거시킨다. 이리하여 종말론은 주어진 현실의 절대화를 거부하고 미래를 향하여 그것을 개방시키는 역사의 원동력이 된다. 종말론의 참 의미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틀을 떠날 때, 종말론은 세속적 진보신앙과 무신론적 정치 이데올로기로 변질하며, 무신론적 정치 이데올로기는 이 세계의 인간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세계를 그 자신 안에 폐쇄하고 무자비한 독재 체제로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말론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다.


http://chunchu.yonsei.ac.kr/chunchu/view_article.phtml?id=136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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