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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0 (16:37) from 129.206.196.45' of 129.206.196.45' Article Number :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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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색채론"의 구조와 그 현대적 의미




괴테 "색채론"의 구조와 그 현대적 의미1)

장 희 창 (서울대)



1. 뉴튼의 색채 이론과 괴테의 색채론의 차이

 대략 1790년과 1810년 사이에 걸친 연구에 의해 완성된 괴테의 "색채론"은 1810년 5월 18일에 완성되었다. 라이프치히 시절부터 빛과 그림자, 색채 현상 등에 관한 관심을 보이던 괴테가 색채 현상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첫번째 이탈리아 여행 동안이었다. 이탈리아의 예술 작품들과 예술가들을 접한 괴테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회화의 채색에 있어서의 규칙과 법칙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이탈리아로부터 돌아온 괴테는 색채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고, 1790년 1월 궁정 고문관 뷔트너(Büttner)에게서 빌린 프리즘을 들여다 보는 순간 색채 생성의 원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즉, 당시의 지배적인 색채 이론이었던 뉴튼의 광학을 반박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를 직관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프리즘을 통해서 들여다 본 괴테는 검은색과 흰색이 서로 만나는 경계선 상에서, 화가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알려져 있는 양극적 현상, 다시 말해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이 대립적으로 생겨나는 것을 보았다. 요컨대 밝은 면이 어두운 면 쪽으로 다가가면 청색 띠(Saum)와 청자색의 테두리(Rand)가 생겨나고, 반대로 어두운 면이 밝은 면 쪽으로 다가가면 주홍색 테두리와 황색의 띠가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였다. 괴테가 여기에서 내린 결론은 색채 현상이란 밝음과 어둠의 만남, 그리고 그 경계선(Grenze) 상에서 주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뉴튼의 광학 이론에 의해서도 설명가능한 것이었다. 즉, 프리즘을 통하여 흰색의 넓은 평면을 관찰할 때, 평면의 모든 지점에 색채 스펙트럼이 생겨나는데, 이 각각의 색채 스펙트럼은 평면의 가운데 부분에서는 서로 겹치기 때문에, 섞여서 흰색이 된다.1) 다만 겹침이 불완전한 가장자리의 한쪽 면에서는 청색과 청자색이 그리고 그 반대쪽 면에서는 황색과 주홍색이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처럼 뉴튼 광학에 따르면 색채의 생성은 단색(單色) 광선들의 결합 유무와 그 정도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뉴튼에게 있어서 색채란 그 관찰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객관적 실체이다.

 반면에 괴테는 색채 현상을 밝음과 어둠의 양극적 대립 현상으로 보면서, 인간의 감각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색채 자체의 실체를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이 이후 그의 색채 이론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괴테 당대는 물론 그 이후에도, 수학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한 괴테의 색채 이론은 거의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괴테는 자신의 문학 작품들은 다른 사람들도 쓸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의 색채론만큼은 독창적인 것으로서 자신의 불멸의 업적이며, 자기야말로 이 위대한 자연의 대상에 관하여 수백만 중에 올바른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호언장담하기까지 한다(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1823년 12월 30일). 그리고 뉴튼의 이론은 순수한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쳐부수어야 할 <바스티유의 요새>라며 적대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색채 이론은 색채의 심미적인 효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병리색에 대한 독창적인 설명에 의하여 일부 화가와 생리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을 뿐, 물리학의 주류로부터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산업사회의 모순이 심화되고, 도구적 사고방식과 무한 성장에 의한 문명의 자기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되면서 괴테의 색채론이 하나의 대안으로서 일부 물리학자들을 비롯한 연구자들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었다.2) 괴테가 "색채론"의 명백하게 드러난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론에 집착했던 이유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괴테는 그의 색채론을 통하여, 데카르트와 갈릴레이 그리고 뉴튼에서 출발한 자연과학의 기계론적, 환원주의적 사고 방식이 초래할 위험성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괴테는 자신의 색채 이론이 인정받지 못했던 것을 원통해 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즉 근대 자연과학의 주류와 대척 관계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현대에 다시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우선 괴테의 색채 이론의 대강을 검토해보자.


2. "색채론"에서의 색의 분류: 생리색 - 물리색 - 화학색

 괴테는 "색채론"의 머리말에서 색채 연구에 임하는 기본적 태도를 우선 밝히고 있다. 즉, 사물의 본질을 곧바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헛된 일이다. 인간은 사물의 작용을 인식하며, 이러한 작용들의 전체 역사가 사물의 본질을 포괄한다. 예컨대, 한 인간의 성격을 추상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는 헛된 일이다. 그의 행동, 그의 업적을 총괄해 보아야 하나의 성격의 상(像)이 드러난다. 이렇게 말하면서 괴테는 자신의 연구 방식이 선험적인 체계화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음을 밝힌다. 실제로도 그의 색채론은 수없는 실험과 자연관찰, 그리고 수집과 정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관찰에 주로 의존한다고 해서 이론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계를 주의깊게 응시하면서 이론화 한다”3)는 식이다. 이러한 태도는 관찰의 주체와 그 대상의 유기적 연관성을 놓치지 않고, 이론과 경험의 간격을 가능한 한 좁히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의 자연과학 연구 방법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견지되는 태도이다.

 직접적인 관찰과 경험에 바탕을 두므로 괴테가 색채 현상의 연구에 있어서 빛과 눈 사이의 연관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눈의 존재는 빛으로 해서 생겨난 것이다. 눈은 빛과 만나면서 빛을 위한 기관으로 형성되며, 이로써 내부의 빛과 외부의 빛은 서로 감응하게 된다.”("색채론"의 「서론」) 물론 빛과 눈 사이에 친근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둘이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눈 속에 일종의 빛이 들어 있어서,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 미세한 자극이 주어지면 색채가 촉발된다는 것이다. 괴테의 이러한 설명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생리색이다.

 생리색은 색채를 눈에 속하는 것으로, 그리고 눈의 작용과 반작용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보는 경우의 색을 말하는데, 이에 대한 연구가 괴테의 색채론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을 이룬다. 이를테면 선명한 유색의 종이를 적당한 밝기의 흰색 판지 앞으로 갖다 댄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유색의 표면을 어느 정도 응시한 후에 눈을 움직이지 말고 그 조각을 치우면, 바로 그 자리에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이 생겨난다. 즉, 그 자리에 있던 색이 황색(Gelb)이었다면 청자색(Violett)이 나타나고, 주황색(Orange)이었다면 청색(Blau)이, 자색(Purpur)이었다면 녹색(Grün)이 나타난다(§49). 그리고 그 역도 마찬가지로 성립한다. 이때 앞의 색들을 유도색, 뒤의 색들을 피유도색이라고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괴테는 겨울에 하르츠 산지를 여행하던 중 저녁 무렵에 브로켄 산을 내려오면서 보았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낮 동안 눈이 황색의 색조를 띠고 있을 때, 그 그림자 부분은 희미한 청자색이었다. 그러다가 일몰이 다가오자 눈이 아름다운 자색으로 물들었을 때, 그림자 부분은 녹색으로 바뀌었다(§75). 괴테가 유색 음영(farbiger Schatten)이라고 이름붙인 이러한 현상은 색채란 빛과 눈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것이란 그의 색채이론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생리색과 인접해 있으면서, 미미한 정도로 보다 더 객관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 물리색이다. 물리색이란 그것이 생겨나는데 특정한 매질이 필요한 색을 말하며, 그 대표적인 것이 굴절색이다. 이것은 빛이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흐릿한 매질을 통과하는 경우에 생겨난다. 이를테면 태양 그 자체는 무색이지만, 흐린 매질을 통과하면서 황색으로 나타난다. 또 암흑은 흐린 매질을 통과하면 청색으로 보인다. 일출과 일몰시에 하늘이 불그스레하게 보인다든지, 멀리 있는 풍경이 푸르스름한 색으로 보이는 것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 다음으로 가장 객관적이며 지속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 화학색이다. 화학색이란 특정한 물체들에서 유발되고, 다소간 고정되고, 상승되고, 다시 그 물체들에서 떼어내어 다른 물체들에 전이시킬 수 있는 그 어떤 내재적인 속성을 가진 색이다(§486). 이를테면, 강철은 불에 달구면 황색에서 적색을 거쳐 청색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 이것을 색채환이라고 한다. 화학색은 주로 산과 알칼리의 대립에 의해서 생겨난다. 즉 황색은 산의 속성을, 청색은 알칼리의 속성을 가진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생리색에서 물리색을 거쳐 화학색으로 가는 방향, 더 세분화하자면 생리색 - 반사색4) - 테두리색5) - 굴절색 - 표면색6) - 화학색으로 가면서 색의 속성은 점차로 객관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색의 분류에 있어서 눈에 속하는, 주관적인 색이라고 할 수 있는 생리색을 제일 앞에 둔 것에서 괴테 색채론의 중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있다.


3. 괴테 색채론의 구성원리: 양극성, 상승, 총체성

 이상에서 간단히 소개한 색채 현상들을 지배하는 원리는 괴테에 의하면 양극성의 원리, 상승의 원리, 총체성의 원리이다. 양극성과 상승의 원리는 노년의 괴테에게 있어서는 색채 현상 뿐 아니라, 모든 자연 현상과 인간의 삶에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원리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총체성이라는 것도 앞의 두 원리가 구체적인 현상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양극성은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자연의 원리이다. 빛과 암흑이 함께 작용하면, 어느 쪽의 활동이 우세한가에 따라 색채는 두 방향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대립은 플러스(+)와 마이너스(-)라는 기호로 간단하게 표기할 수 있다(§ 696). 즉 플러스에 속하는 것은 황색, 작용, 빛, 밝음, 강함, 따뜻함, 가까움, 밀침, 산과 같은 것이며, 마이너스에 속하는 것은 청색, 탈취, 암흑, 어두움, 약함, 차가움, 멈, 끌어당김, 알칼리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여러 대립의 쌍들은 다음에 보게 되겠지만, 괴테의 색채론을 비롯한 자연과학 이론의 기본개념을 이루는 원현상(原現像, Urphänomen)의 다양한 사례들이다.

 상승의 원리는 다음의 예를 들어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프리즘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들여다 보면, 황색은 주황색을 거쳐 적색으로 상승하고(짙어지는 대신에 어두워진다), 청색은 청자색으로 상승한다. 상승된 대립색들인 적색과 청자색이 결합하면 자색이 된다. 그리고 기본색인 황색과 청색이 결합하면 녹색이 된다. 이로써 다양한 색채들간의 대립쌍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색채환(色彩環, Farbenkreis)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승 현상은 한가지 방법으로만 고정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자색의 경우는 다양한 방식의 상승에 의해서 생겨날 수 있다. 물리색의 경우, 즉 프리즘 실험에 있어서는 청자색 띠와 주홍색 테두리를 겹치는 경우에 생겨나며, 화학색에 있어서는 상승이 계속되어 정점에 도달하는 경우에 생겨나고, 생리색의 실험에 있어서는 그것의 대립색에 의해서 유도된다.

 총체성의 원리는 앞의 두 원리에 의해 생겨난 색들이 그 대립과 조화된 모습을 색채환의 원주상에서 일목요연하게 보이며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총체성의 원리는 생리색의 경우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의 눈이 어떤 특정한 색을 지각하는 순간, 우리의 눈은 그와 대립되는 상보적인 대립색(komplementäre Gegenfarbe), 즉 색채환 상에 있어서 정반대편에 있는 색을 생성시킨다. 이처럼 각각의 유도색은 반드시 거기에 대응하는 피유도색을 생성시키며, 그러한 대립색들로써 색채환 전체가 가득 메워지게 된다(§60). 이처럼 눈은 자기 고유의 총체성을 요구하며, 자체 안에 색채환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황색에 의해 유도된 청자색 속에는 적색과 청색이 들어있으며, 청색에 상응하는 주황색 속에는 황색과 적색이 들어있고, 녹색은 청색과 황색의 결합이며 적색을 유도한다. 그리고 이처럼 결합된 구성요소들이 총체성 속에서 그 조화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조화로운 대립들에서 생겨난 이러한 총체성의 심미적 효과에 대해 괴테는 “자연은 총체성을 통해서 자유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다”는 말로써 의미심장하게 정리한다(§813). 그런데 색채 현상의 이러한 총체성은, 시각(視覺)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자연의 본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 인간의 감각과 자연의 본질을 매개하는 원현상의 개념이 위치하고 있다.


4. "색채론"의 기본개념으로서의 원현상(Urphänomen)

 괴테에게 있어서 색의 생성은 앞서 보았듯이, 우선 빛과 암흑의 대립관계에서 생겨난다. 빛으로부터 황색이 생겨나며, 암흑으로부터 청색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두 색은 순도가 높아지면서 각각 적색이 된다. 이것이 기본색(Grundfarbe)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흐릿한 물컵은 빛을 배경으로 하면 황색으로, 어둠을 배경으로 하면 청색으로 보인다. 괴테는 이처럼 자연에 대한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 지각하게 된 현상들을 수집하고 정돈해 나가면서, 그러한 현상들이 생겨나게 된 불가결한 조건들을 세세하게 밝히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들로부터 색채 현상의 규칙들과 법칙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과 법칙은 논리적 추론이나 가정을 통해서 오성에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상들을 통해서 직관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175). 이를테면, 한편으로는 빛과 밝음과 같은 원현상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암흑과 어둠 같은 원현상이 있으며,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흐림이라는 원현상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들로부터, 마찬가지로 서로간에 대립을 보이는 색채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괴테는 직관에 비친 현상으로부터 발견한 이러한 원현상의 배후로 더 파고 들어갈 경우 필연적으로 인간의 감각과는 동떨어진 <추상화>의 위험이 시작된다고 본다(§177). 현대의 물리학자들이 괴테의 색채 이론의 현재적 의미를 보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괴테에 의하면, 인간의 감각은 건강한 한에 있어서 대상들 사이의 관계, 특히 인간과 여타 존재 사이의 관계를 참 모습 그대로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182). 그러므로 괴테는 원현상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 배후에서 그리고 그 위에서 더 고차적인 것을 발견해 내려는 자연과학자들의 태도를 병통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연의 탐구자는 원현상들을 그것들의 영원한 안식과 장려함 속에”(§177)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괴테는 이러한 원현상에 대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경탄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1829년 2월 18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경탄이라네. 우리가 원현상을 보고 경탄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네. 더 높은 것은 허락되지도 않고, 더 이상의 것도 그 뒤에서 찾을 수 없으니 말이지. 이것이 한계라네. 하지만 원현상을 목도한 인간들은 보통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네.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난 후 즉시에 뒤집어서 그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려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말일세.”

 요컨대 괴테는 원현상을 인간에게 적합한 인식과 직관의 형식으로 간주하였다. 즉 원현상들 속에서 인간은 자연의 힘을 상(像)으로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힘은 괴테가 말하는 바 자연언어(Natur- sprache)를 통하여 모습을 나타내는데, 그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은 다양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그 근본요소들은 언제나 동일하다. “살며시 작용하는 추(錘)와 평형추에 의해 자연은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며, 그에 따라 여기와 저기, 위와 아래, 이전과 이후가 생겨나며, 이들을 통해서 공간과 시간 속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이 제약된다.”(「머리말」)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인 운동과 제한으로부터 다(多)와 소(小), 작용과 반작용, 행위와 고통, 밀쳐들어감과 머뭇거림, 격렬함과 누그러뜨림,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발견되며, 그 각각에 적합한 이름이 붙여진다. 괴테는 이러한 보편적인 표기, 즉 자연언어를 통해 모순양립적인 자연의 현상을 포착하려 했고, 그러한 원현상을 색채론에 적용하려고 했다.

 자연의 힘은 이처럼 언제나 모순양립적인 형상으로 파악되는데, 괴테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리한다(§739).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결합가능한 근원적 분리를 암시하고 있거나, 아니면 분리가능한 근원적 통일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결합된 것을 분리시키고 분리된 것을 결합시키는 것이 자연의 생명이다. 이것은 영원한 수축과 팽창, 영원한 결합과 분리이며,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활동하며 존재하는 세계의 들숨과 날숨이다.” 이러한 표현은 괴테의 "서동(選)시집"에 나오는 시 「은행잎 Ginko biloba」을 그대로 산문으로 풀어서 해석한 것이라고 하겠다. 요컨대 괴테가 말하는 바 원현상은 인간의 직관을 매개로 하여 드러나는 모순양립적인 자연의 형상이며, 이러한 원현상의 개념이 자연 관찰에 있어서 인간의 감각과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강조하는 괴테의 사고방식의 토대를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원현상을 매개로 하여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는 일종의 조응관계 내지는 일치 관계에 있음이 드러난다. “빛이라든가 색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우리들이 자신의 눈 속에 빛과 색채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외부에 있는 빛과 색채도 알아볼 수 없는 것이라네”라고 괴테는 에커만에게 말한다(1824년 2월 26일). 이러한 안팎의 조응관계에 대한 인식은 괴테의 저작, 특히 그의 노년기 작품의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의 이념을 상징하고 있는 마카리에는 직관 속에서 두 개의 태양, 즉 내부의 태양과 하늘에 있는 외부의 태양을 본다. 눈과 빛의 동일성이라는 연관을 마카리에는 내부와 외부의 빛으로 객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괴츠 폰 베를리힝겐"은 괴테가 22세에 쓴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이 경험에 의해 외부세계의 진실을 알기도 전에 예감으로 쓴 것으로서, 후일에야 그 작품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새삼 놀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동시집" 같은 경우는 그 전체 시구들이 감각과 이념의 통일이라는 원리를 축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여하간 괴테는 감각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내부와 자연은 서로 분리불가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므로 대상을 인간의 감각과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파악하는 뉴튼적인 사고 방식에 괴테가 격렬한 저항감을 느낀 것은 당연했다. 색채 현상에 있어서의 단순한 견해 차이 정도가 아니라, 세계를 파악하는 사유 방식에 있어서의 근원적인 차이였던 것이다.



5. 도구적 합리주의와 생태론적 직관주의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괴테의 "색채론"은 엄밀한 실험과 수학을 토대로 하는 근대 자연과학의 연구 방식과는 그 방법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달랐다. 괴테에게 있어서 자연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감각 인상과 더불어 시작되며, 원현상에 대한 발견을 그 목표로 한다. 그러나 갈릴레이와 뉴튼 이래의 자연과학은 수학적인 기술에 의해서 자연의 영역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힘=질량×가속도”와 같은 식이다. 이러한 공식에서는 어떠한 인간적인 감성이나 관찰자의 개입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괴테 자신도 근대 자연과학의 이러한 기계론적 사고 방식과 추상화가 가져올 위험에 대한 인식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기껏해야 "편력시대"에서 “점증하는 기계의 존재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두렵게 한다. 그것은 마치 뇌우와 같이 천천히, 천천히 구르며 다가온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방향을 잡고 있다. 그것은 다가오고야 말 것이며, 우리를 덮칠 것이다.”라는 정도이다. 기술과 과학의 결합에 의한 세계의 지속적인 변형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괴테 사후 150년 이상이 지난 지금, 뉴튼의 자연과학에 의해서 예정되어 있었고, 괴테가 피하고 싶었던 그러한 세계가 이제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도구적 합리주의>와 <생태론적 직관주의>라고 잠정적으로 지칭할 수 있는 두 가지 사고방식의 차이가 이제 명백하게 드러났으며, 괴테가 뉴튼의 "광학"에 그처럼 거부감을 가졌던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색채론"이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은 괴테가 근대 과학의 토대인 합리주의와 도구주의의 방법론에 대한 강력한 대적자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하이젠베르크, 막스 플랑크, 바이츠제커와 같은 물리학자들에 의해서였다.

 1941년 부다페스트의 한 강연회에서 발표한 논문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본 괴테와 뉴튼의 색채론」7)에서 하이젠베르크는 괴테의 색채론이 예술과 생리학 그리고 미학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후의 물리학의 발전에 있어서 승리를 거둔 것은 뉴튼의 색채 이론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점점 더 심화되어 가는 자연과학의 추상화는 뉴튼에 대한 괴테의 그 유명한 투쟁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면서 괴테 색채론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긴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자. 근대 자연과학의 커다란 오류 중의 하나는 현실을 객관 세계와 주관 세계로 완전히 나누어버린 데에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의 세계를 수학적인 방법에 의해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는 자연과학의 이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인공적인 관찰 수단을 통해서 감각의 기능을 고도화함으로써 객관 세계의 궁극까지 밀쳐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기만적인 희망이었음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원자 물리학에 있어서 관찰이 관찰 대상에 미치는 변형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요컨대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들은 모든 감각적인 특성을 상실해버렸고, 오랫동안 가장 확실한 것으로 여겨졌던 공간 채움(Raumerfüllung), 특정한 장소, 특정한 운동이라는 기하학적 특성마저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고도로 정밀한 관찰 기구들을 통해서 들여다 본 상은 생동하는 자연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되었고, 자연과학은 실험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이 세계의 어두운 배후만을 다루게 되었다. 자연과학 지식의 엄청난 확장과 풍부한 기술적 가능성에 의해 세계는 완전히 변형되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와 삶은 생존이 더 이상 불가능한 공간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므로 물리학자가 자신의 기구를 가지고 관찰하는 대상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고 한 괴테의 말은 옳았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처럼 자연적인 삶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인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몸을 파는 것에 비유하면서,8) 근대 이후의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르고 있는 과학자들이 악마를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이 입증하고 있듯이, 자연의 기본구조 자체가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직관에 의해서든 그리고 이성적 추리에 의해서든 자연에 대한 접근의 가능성은 열어놓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이젠베르크는 두 사고 방식 사이의 궁극적인 공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괴테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우리가 하나의 기관, 즉 합리적 분석에 의존함으로써 다른 모든 기관을 위축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츠제커도 괴테는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라 오류를 원했다고”까지 말하면서, 괴테의 색채이론이 가지는 의미의 현대성을 애써 부각시키려고 한다. 그는 괴테의 사고방식과 뉴튼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형상 직관>과 <법칙 인식>의 차이로 보면서 그 둘이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다고 본다.9) 괴테의 색채론은 물론 자체 내에 많은 모순을 안고 있긴 하지만, 그 기본 방향에 있어서는 현대 물리학이 초래하는 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츠제커는 하이네를 인용하면서, 괴테의 방법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선박들이 기준으로 삼는 등대가 아니라, 여행객들이 언제나 자신들의 여행의 안내자로 삼는 하늘의 별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스위스의 동물학자 아돌프 포트만은 연극 무대를 비유로 들어,10) 괴테의 색채론을 무대의 앞에서 보는 것, 뉴튼의 방식을 무대 뒤에서 보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두 사고 방식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반면에 괴테 평전의 저자인 프리덴탈은 뉴튼에게 평생 적대감을 보인 괴테의 태도가 부당하다고 말한다. 괴테는 연구자로서의 뉴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뉴튼까지 비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덴탈에 의하면, 괴테는 환영을 상대로 싸웠던 것이고, 그가 그린 뉴튼의 성격상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뉴튼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자기 사상의 잠정성을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겸손한 사람이었던 반면에, 괴테는 절반이라도, 아니 4분의 1만큼의 착상이라도 떠오르면, 그것을 인쇄에 붙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프리덴탈이 보기에 뉴튼은 괴테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계산가가 아니라, 시적 직관에 필적하는 관찰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알브레히트 쇠네 같은 괴테 연구자도 "괴테의 색채 신학"(1987)에서 괴테의 색채론을 <최후의 종교적 절대진리>라고 표현하면서, 괴테의 생활감정과 세계상이 근대 이전의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여하간 괴테의 색채론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지 못할 많은 모순점들이 들어있다. 심지어는 인종편견적인 발상을 보이는 대목까지 있다. 예컨대, 흰색이 가장 고상한 색이라고 주장하면서, 괴테는 피부와 털의 색이 성격의 차이를 암시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까지 한다(§671). 그 피부색이 아주 담담한 색을 나타내며, 그 어떤 특수한 색으로도 기울지 않는 인간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인간의 용모와 색이 동일하게 아름다우며, 오직 습관과 자만에 의해서만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더 선호하게 된다는, 오늘날의 인류학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견해에 대해서는 회의론자의 견해라고 일축해버린다. 이처럼 느낌과 직관에 의존하는 사고 방식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추상화에 빠짐으로써, 그만큼 더 주관적인 편견에 빠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모순점들에도 불구하고, 괴테의 색채론이 재평가를 받는 이유는 명백하다. 자연을 조작과 지배의 대상으로 보면서, 결국은 자기 파괴라는 위기를 초래한 현대의 기술문명과 자연과학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서 괴테가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산업문화의 비극성은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총체성에 대한 직관으로부터 오는 신비한 경험이나 시적인 감수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무엇이든 직접 측량하고 조작하고 분해하려는 욕망에 지배되어 있는 인간들을 양산하는 데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오늘날 점차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생태론적 사고 방식도 괴테의 색채론이 지향하고 있는 관점과 그렇게 멀지는 않은 것 같다. “인간의 손으로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있는 데 대한 근본적인 감각이야말로 모든 진정한 시가 태어나는 모태이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진정한 시인은 본질적으로 가장 심오한 생태론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11)라는 한 생태주의자의 말은 원현상 앞에서의 경탄을 말하는 괴테의 태도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예컨대 원현상에 대한 경탄의 장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파우스트" I부에서 파우스트가 지령(Erdgeist)과 맞닥뜨리는 부분일 것이다. 여기에서 지령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는 생동하는 자연의 생명력이 그 전체적인 모습으로 시인의 직관에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파우스트가 잠에서 깨어나 바라보는 일출 장면이라든지, 무지개를 바라볼 때의 장면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그 앞에서 다만 경탄의 감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원현상이며, 그것들을 넘어서서 사유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는 월권이라는 것이 괴테의 생각이다. 시적 사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경외심의 바탕에는 어떠한 인공적인 조작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세계의 근원적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인식은 자연과학 연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인 괴테의 문학 작품과 삶 자체를 지배하는 원리였다.

 요컨대 생태론적 직관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는 괴테의 이러한 자세는, 세계를 물질과 에너지의 우발적인 작용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보는 도구적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그리고 그의 "색채론"은 외적 성장으로 치달으면서 안과 밖의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현대 산업문명에 대한 비판서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색채론"의 현재적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정리하는 의미에서 인용하자면. “나는 경탄하지 않는 자들을 미워하네. 왜냐하면 나는 평생 동안 모든 것에 대해 경탄해 왔으니까 말일세.” 아우구스트 대공의 아들을 맡아서 가정교사를 하던 소레에게 괴테가 한 말이다.(1831년 5월 8일)


참고 문헌

1. 일차 문헌

Goethe, Johann Wolfgang von: Werke, Bd. 13 (Hamburger Ausgabe    in 14     Bänden), München 1981.

2. 이차 문헌
Heisenberg, Werner: Die Goethe’sche und die Newton’sche Farbenlehre im        Lichte der modernen Physik, in: Geist der Zeit, 19. Jahrgang, Leipzig     1941.

Heisenberg, Werner: Das Naturbild Goethes und die technisch-naturwissen-schaftliche Welt, in: Goethe-Jahrbuch 1967.

Weizsäcker, Carl Friedrich von: Einige Begriffe aus Goethes Naturwissen-  schaft, in Goethes Werke Bd. 13.

K. R. Mandelkow: Goethe in Deutschland II, München 1989.

Martin, Maurice: Die Kontroverse um die Farbenlehre, Schaffhausen 1979.

김종철: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삼인 출판사, 서울 1999.


출처: 괴테연구학회 / 가우리블로그정보센터(G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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