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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5/06/27 (18:46) from 129.206.196.46' of 129.206.196.46' Article Number :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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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Hermeneu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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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Hermeneutics)

1. 해석학 : text의 올바른 이해를 중심과제로 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석학(hermeneutic)이란 용어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전령인 헤르메스에서 유 래(헤르메스의 역할이 신과 인간을 중재하여 신의 말을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바 꾸어 전하는 것)
특히 르네상스 시기의 고전에 대한 문헌학적인 연구와 성서의 통일적 해석을 위한 기술로서 여겨지던 해석학이 학문적인 외양을 갖추게 된 것은 Schleiermacher에 와 서이며 Heidegger와 Gadamer에 와서 해석학은 더욱 심호되어 해석학적 철학이 성립한다.

- 슐라이어 마허의 해석학
슐라이어마허는 피히테의 초월철학과 낭만주의를 자신의 체계 안에 흡수해서 그 때까지의 무르익은 해석학적인 통찰을 정리하고 그의 이전의 Ast나 Wolf등의 실제의 성서 해석이나 실용적인 법 해석에서 얻은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해셕학적 통찰의 한계를 극복하고 모든 text에 구별없이 적용되는 이해의 방법으로서의 보편적 해석학이 이념을 제시하여 해석학을 학문으로서 성립시켰다.
그는 이해를 저자의 정신적 과정의 추체험(追體驗: Nacherleben)으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저 자의 창작활동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정신적 내용물을 객관적으로 외화하는 과정임에 반하여 이해활동이란 그 객관화되어 고정된 표현을 통해 그것이 연원한, 저자의 정신적 삶에 도달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슐라이어마허는 이해를 문법적 해석 -텍스트의 의미는 저자와 그의 원 독자들이 공유하는 언어의 영역을 기준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과 심리적 해 석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체계화시켰다.
그는 또한 독일 관념론 철학작인 피히테의 영향으로 저자의 부분적인 생각들은 활동적이며 유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주체의 통일성에 관련되어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개체 성과 전체성의 관계를 낭만주의 해석학의 촛점으로 부각시켰고 이로부터 유명한 '해석학적 순환'의 테제를 정립했다.

- 딜타이(Diltheyr)의 해석학
그의 중심문제는 "모든 인간 연구의 기반이 되는 이해행위의 본성은 무엇인가?"
딜타이는 자연과학적 인식이 인간의 경험의 총체로서의 '생'을 적절히 인식할 수 없으며 그 런 한에서 인간의 정확한 이해헤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자연과학적인 인식의 기초를 세운 것처럼 『역사적 이성 비판』을 통해 인간 연구의 인식론적 기반을 세우려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연과학의 정태적인 범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우리 존재의 역동성, 역사성의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은 '생' 그자 체의 경험-느낌, 의지-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하며 어떤 외부적인 범주-예를 들어 자연과학의 '힘'-를 통해 인식될 수 없다.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로크, 칸트 등의 '(자연과학적으로) 인식 하는 주체'의 혈관에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정신과학 vs. 자연과학

정신과학의 대상은 인간의 내적인 과정에 영향을 줄 때에만 의미있는 그러한 사실 또는 현 상이다.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대상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은 대상 그 자체의 성격이 아니라 대상과 인식주관의 관계에서의 맥락이다. 정신과학의 영역에서는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는 다가갈 수 없는 타인의 내적 경험의 이해-이것은 곧 이해 대상이 속해있는 사회 역사적 인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러한 이해가 가능한 것은 나의 정신적 경험과 타인의 정신적 경험의 유사성 때문이다.

설명은 인과적인 범주를 통한 인식방법이며 그 안에서 개체는 단지 일반적인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받아들여지나 인간의 내적 삶의 의미를 인식하는 방법인 이해의 영역에서 는 개체는 개체 그 자체로 평가된다. 이렇게 정신과학은 환원주의적이고 객관주의적인 자연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 삶, 즉 인간 경험의 총체성에 도달하여야 한다.

- 베티의 해석학적 입장
베티의 가다머에 대한 반대는 ①가다머의 해석학이 인문학의 방법론, 즉 올바른(객관적인) 해석과 그렇지 못한 해석을 나눠주는 잣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②이해행위의 객관성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해 행위의 주관적인 계기(moment)는 해석에 있어 필수적이지만 대상의 이해는 주관적인 실존적 의미 부여 Sinngebung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는 이해의 대상은 인간정신이 지각될 수 있는 형태로 객관화된 것이며 이해 행위란 작품을 만든 사람이 작품에 구현할 수 있었던 의미의 재인식, 재구성이라고 한다. 이 때 이해의 대상은 해석주체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관념적인 객관성을 가지는 것이며 해석 행위는 해 석의 대상에 자신의 주관성을 투사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객관적인 의미형식, 정신의 객관화(objectivation of mind, 객관화된 정신)가 상호주관적인 해석행위의 출발점이자 해석의 결과의 객관성의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해석을 형이상학과 구분시켜주는 요소이다. 그는 "sensus non est inferendus sed efferendus"하는 모토 아래서 Auslegnung을 해석의 유일하게 유효한 valid 형식이라 하고 그것에, 경험에 앞서는 직관과 그 체계의 정합성에 의존하는 speculative Deutung을 대립시킨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객관주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의미 이해의 주목성 (topicality: 실재성 Aktualitat)을 얘기하면서 모든 이해에는 해석자 자신의 거리(stance)와 관심이 개입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해 행위가 단지 수동적인 수용은 아니다. 그러나 텍스 트는, 비록 해석자의 선이해(pre-understanding)에 의해 조명된다 하더라도, 해석자의 그러 한 선이해를 강화해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해석자가 모르는 것, 그래서 해석 자의 이해행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해석자에게 말해주기 위해 있다고 함으로써 가다머를 비판한다.

-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입장
딜타이와 마찬가지로 하이데거도 칸트 철학의 메타 비판으로 자신의 철학을 구성. 하지만 딜타이는 지식의 논리적 기반을 넓힘으로써 이해의 가능성의 조건을 탐구한 반면 하이데거 는 존재론적 관점에서 비판.
하이데거에 있어서 이해란 세계 내 존재의 구성요소로서 이 세계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 라 경험적 수준에서의 실제적인 이해가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의 구조이다. 그런 의 미에서 이해는 모든 해석의 기반이며 존재와 근원을 같이하며 모든 이해행위에 내재해 있다.

해석적 이해의 가능성의 세 조건. 이해의 선구조의 계기

Vorhabe - 미리 가지는 것. 즉 맥락에 따른 의미의 예기
Vorsicht - 미리 보는 것. 이해가 수행될 관점의 수용
Vorgriff - 미리 잡는 것. 우리의 이해는 언어를 통한 이해.

- 가다머의 해석학적 입장
하지만 가다머는 타인의 개성을 직접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정말로 해석자가 자기자신으로부 터 빠져나와서 자신을 저자로 변형시킴으로써 저자의 정신적 과정을 포착하여 저자와 해석 자간의 시대간격(時代間隔:Zeitabstand)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점을 명백히 지적해주고 있는 것이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이다. 모든 이해는 그 상 황의 지평(Situationshorizont)을 가지고 있고 현존재의 근본적인 유한성과 역사성에 따라 역 시 그 이해도 유한성과 역사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유한성은 결코 어떤 결핍 상태, 극복되어져야 할 부족상태가 아니라 현존재의 고유한 근본상태로서 바로 이해의 기반 이 된다. 현존재가 유한적이라는 것은 현존재가 세계내 존재로서 시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기서 현존재의 역사성(과 따라서 모든 이해의 역사성)이 도출된다. 인간이 역사적 존재라는 것은 그가 전승 속에 서 있다는 것(in Uberlieferung stehen)이며 이것은 또한 인간에게 선판단이 주어지고 그의 자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석 주관의 역사성은 그의 판단의 가능근거로서 선판단의 근원이 되는 전통을 필수적인 것 으로 요구하고 우리는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가다머는 사실상 전통은 역사 자 체라로까지 말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해의 대상은 결코 거기에 단지 그렇게 있는 것(was einfach da steht)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주의적 해석학에서 이해를 정신과학의 올바른 길을 인도해 줄 방법으로 보는 반면 하이데거와 가다머에 있어서의 이해란 그것 또한 하나 의 역사적 사건(Geschehen)으로서 고정되지 않고 역사적 변화와 더불어 움직이는 하나의 운동(Bewegung)인 것이다.

- 가다머에 대한 하버마스의 이해와 비판

1. 하버마스는 가다머가 이해행위에서 작용하고 있는 반성의 힘을 잘못 파악함으로써 해석 학이 전통연관에 의해 부수주의적인 측면을 띠게 된다고 비판한다. 하버마스는 의식이 역사 성을 가지고 어느 주어진 상황 하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어떤 역사로부터 초월한 관점이 해석자에게 허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자신 의 발생사(Stehungsgeschichte)를 돌아보고 되추적하여 자신의 선입견의 근원, 즉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전통의 뿌리를 살펴봄으로써 그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것이 정신의 반성의 힘이고 또한 비판의식이라는 것이다. 가다머는 이해 안에서 작용하는 반성을 전통의 동화 (Aneigung)라는 측면에로만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2. 하버마스는 가다머에게 '해석학적 선취(Vorgriff)의 불가피성에서 정당한 선판단(legitimes Urtel)의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가다머에게 있어서 이해란 과거와 현재가 작용사적으로 중재되는 사건이기 때문에 선판단 없는 이해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선입견(Voreingenommenheit)으로 폄하된 선 판단의 재평가와 그 원천인 전통의 재인식이 가다머에게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이해의 조건으로서의 선판단의 구조분석이 올바르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비판적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하이데거 식의 해석학적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가다머는 자신의 작업이 해석학의 올바른 방법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해과정을 그대로 묘사할 뿐이라고 하 는데 설사 이해의 전통에 대한 구조적 귀속성(Zugehorigheit)이 사실이라고 하여도 그것으 로부터 현재 진행되는 이해와 그 근거로서의 선판단이 정당하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하버마스는 단지 선판단의 조정으로 도달되는 해석학적 이해가 애당초 절못된 선판단에 의 해서 유도된 이해로 귀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범례로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 (sysematisch verzerte Kommunication)의 영역을 제시한다. 이 영역에서는 해석학적 이해는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고, 그 한계의 극복을 위해서는 메타해석학으로서 심층해석학 (Tiefenhermeneutik)을 수용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해석학적 이해가 도달할 수 없는 바의 왜곡된 의사소통의 근원을 장면적 이해의 방법을 통해서 성취한다. 장면적 이해란 정신분석 학에서 빌어온 개념으로 언어의 체계적인 왜곡으로 이끌었던 최초의 갈등상황 혹은 어린 시 절의 장면을 지적해내어 재구성함으로써 갈등을 유발하는 요구들을 탈상징화로부터 끄집어 내어 다시 상징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 받는다. 이것은 또한 딜타이로부터 설명과 대립 된 관계로 이해되어 온 이해의 개념에 새로운 조망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해석학적 이해와 는 달리 이러한 장면적 이해의 영역에서는 체계적으로 왜곡된 표현들의 의미내용의 원인들 을 추적하여 증후적인 장면의 생성을 그 왜곡 자체의 시초조건과 관련시켜 설명할 수 (erklaren) 있어야 비로소 이해 불가능한 삶의 표현의 의미가 이해(verstehen)되기 때문이다.

3. 가다머는 전승의 존재방식이 언어이고 또한 언어만이 이해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 세계경험의 총체로서 언어는 수평적으로 인간의 실천적인 의사소통의 매개일 뿐 아니라 수직 적으로는 인간역사활동의 담지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다머의 언어에 대한 해석학적 고찰 은 하버마스에게는 일면적인 고찰로 비판된다. 이것은 언어로서 모든 것을 포괄하고자 하여 언어와 대등한 위치를 갖는 여타의 객관적인 연관을 도외시하기에 언어성의 관념론 (Idealismus der Sprachlichkeit)이라는 것이다. 언어 역시 문화적 전승으로서 지배자 및 사회적 권력의 매개로서 작용하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는 것을 가다머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다. 사회적 행위의 전체적인 이해를 위해서 이데올로기 비판은 가다머식의 해석학과는 달리 언어 이외의 다른 객관적인 연관-예컨대 노동(Arbeit)과 지배(Herrschaft)-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범주들의 상호연관에 의해 언어성은 상대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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