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icle Bank

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5/06/28 (17:14) from 129.206.196.76' of 129.206.196.76' Article Number : 399
Delete Modify 코레트 Access : 4819 , Lines : 434
마르틴 하이데거에서



마르틴 하이데거에서 '존재의 문제'와 '신의 문제'에 대하여


                                 에머리히 코레트(Emerich Coreth SJ)
                                         구연상 옮김(외대 박사과정)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20년 전 1976년 5월 26일에 죽었다. 그러나 그의 필
생의 철학적 작업은 그 시대의 정신적 삶은 물론 그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의미심장하
게 그리고 다양하게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이데거는 우리들에게 사유의 중요한 동인들
을 주었다. 그러한 동인들을 꼽자면, 무엇보다도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 물음', '현존재'
분석론, 역사적-해석학적 사유에 바탕한 '이해에 관한 이론', '시간 비판' 등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하이데거의 심오하고 고집스런 사유가 남긴 업적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사유를 뒤돌아보는 일에는 칭찬의 말도 필요하지만 또한 그의 사유를 일깨운 비판적
문제들도 필요하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어 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중요한 문제, 아니 아마
도 '중심 문제', 말하자면 하이데거의 사유와 형이상학, 특히 '신의 문제'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하이데거는 전통 전체의 형이상학을 "존재-신-론"(Onto-theo-logie)으로 이해한다.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하이데거가 아니라 칸트이다. 칸트는 이 말을 좁은 의미로, 즉 존재
론적 '신 증명'과 관련해서만 사용했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그 말을 따온 이유는, 서양에서
형성된 형이상학의 전체적 특성을 가리키기 위함이었다. 하이데거가 비록 형이상학을 바로
이러한 "존재-신론적 구성틀"에서 결정적으로 거부하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형이상학의 본질을, 형이상학이 --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 스스로를 이해하는 바
대로 그렇게 꼭맞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가장 먼저 하이데거가 존재론으로서의 형이상학에 대해 취하고
있는, 즉 '존재 문제'에 대해 취하고 있는 관계를 다룰 것이며(1), 다음으로 신학으로서의 형
이상학, 따라서 '신의 문제'에 대한 관계를(2), 그리고 세 번째로 존재와 '신적인 것' 사이의
관련을, 특히 하이데거의 ≪철학에의 기여≫(Beitr gen zur Philosophie)에 따라 살펴볼 것이
다(3).


       1. 존재의 문제

1.1 하이데거가 처음부터 모든 형이상학을 비판적으로 거부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이
데거 자신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수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형이상학이라는 낱말
을 그 제목으로 달고 있는 그의 초기 저술들에서 알아볼 수 있다. 예컨대 프라이부르크 취
임 강연인 <형이상학은 무엇인가?>(1929), 단행본인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1929) 그
리고 강의록인 ≪형이상학 입문≫(1935) 등이 그러한 저술들에 속한다. 하이데거의 주저인
≪존재와 시간≫(1927)에서 이미 '존재의 문제'가 물어지고 있다면, 보다 정확히 말해 "존재
의 의미"에 대한 문제가 물어지고 있다면, 이러한 문제는 형이상학적 사유 전통에서부터 유
래된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듯이, 형이상학적 사유에서 비록 '존재 문제'가 잘못 제기되거
나 가리워져 있을지라도, 그리고 존재가 "망각되어" 있을지라도 말이다.
하이데거는, 자신이 "기초 존재론"(SZ 13)이라 지칭한 ≪존재와 시간≫에서, 형이상학에 대
한 '근거 제시'에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적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존재의 의미에 대
한 문제는 인간적 '현존재'(Dasein)에게 물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자들 가운데 "존
재 이해"(Seinsverst ndnis)로써 두드러진 존재자는 오직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것을 인식할 때면 언제나, 또 다만 그것에 대해 묻기만 하거나 그것을 다루기만 할 때조차
도 언제나, 나는 그것을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서, 즉 "존재자"로서 이해한다. 나는 내가 "존
재한다"('있다')라고 "얘기할"(Ist-Sagen) 때 그것으로써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즉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 있어야만 한다.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이해하는 것은 현존재
에게만 고유하게 속해 있는 "선행적 존재 이해"를 전제한다.
"실존론적 분석론"(SZ 13)은 (그 당시엔 여전히) 후설의 현상학에서 유래된 방법을 사용하
고 있었지만(SZ 33쪽 이하), 그러나 그것은 해석학적 해석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이 분석론
에서 인간적 현존재의 실존론적 '존재 구성틀'의 구조들은 단계적으로 해명되어야만 한다.
이 분석론에서는 동시에 초월론적-철학적 '거슬러 올라 감' -- 즉 "선험 탐구
"(Aprioriforschung)(SZ 50) -- 이 칸트적 의미에서, 그것도 그 당시까지 여전히 생생히 살
아있었던 신칸트주의적 의미에서까지 실행되고 있다. 현존재의 '존재 구성틀'의 현상들은 그
것들의 "의미와 근거"(SZ 35)에 따라, 즉 그것들의 선행적 가능 조건들에 따라 물어져야만
한다. 그렇게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를 제시하기 위해, '존재 이해'의 근원적 구성을 인
간적 현존재의 근거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일은 형이상학에 대한 새로운 근거 제시와 통할 수 있는, 또는 통할지도 모를 단초
이다. 형이상학은, 선행적 또는 근원적 '존재 이해' -- 이것이 비록 존재자에 대한 우리들의
행동관계를 조건짓고 있는 존재에 대한 비주제적 앎일지라도 -- 에 대한 반성에서가 아니
라면 달리 어디에서 근거제시될 수 있겠는가?
1.2 그러나 하이데거에서 이러한 단초는 어떤 다른 방향에로 이끌린다. 존재는 시간 속에서
또는 시간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우리는 불안과 염려에 의해 규정된, '존재 가능'에 대
한 지속적 '기획 투사' 속에 살고 있다. 즉 이해를 통한 존재자와의 왕래라고 일컬어진 우리
들의 "세계"를 형성해 주는 고유한 '존재 가능성들'을 기획투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속에서 우리는 존재를 無(Nichts)로서, 즉 "내던져져 있음"에 대한 경험 속에서, '있어 왔
음'('지나가 버렸음')의 無['더 이상 있지 않음']로서, 또 '빠져 있음'의 현상에서, 현재의 無
['지금 있지 않음']로서, 그리고 우리 현존재를 철저히 조율하고 있는 "죽음에로의 존재
"(Sein zum Tode)에서, 미래의 無['아직 있지 않음']로서 경험한다.
존재의 無性(Nichtigkeit)은, 프라이부르거 대학 취임 강연인 <형이상학은 무엇인가?>에서
더욱 농후해진다. 존재의 의미는 무 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고, 존재 그 자체를 무로서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존재는 무 속으로 들어서 있음을 뜻한다"(32). 덧붙임글
(Nachwort)에서(1943), 하이데거는 無를 "존재의 너울"(Schleier des Seins)로서 해석한다
(51). 그러나 여기서 의미되어 있는 無는 '완전히 공허한 無'가 아니라 오히려 존재자의 '아
님'(das Nicht, 否定), 즉 존재자에 대립된 '다른 것'(타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無는 본디
존재로서 있어온다"(45).
따라서 많은 이들이 하이데거의 초기 철학을 궁극적으로 허무주의(Nihilismus)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후에 국가 사회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던 알프레드 델프(Aflred Delp)
는 자신의 책 ≪비극적 실존≫(Tragische Existenz)(M nchen 1935)에서 매우 비판적으로,
그 당시 많은 주목을 끌면서 하이데거의 허무주의와 대결을 벌였다. 다른 측면에서, 하이데
거의 확실한, 그러나 일면적 추종자인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가 쓴 ≪L'etre et le n
ant≫(존재와 무, Paris 1943)는 완전한 허무주의, 즉 '비극적으로 영웅적인 결단성'을 견디
어 내야만 하는 "부조리한 현존재"를 대표하는 책이다. 그fj나 이러한 허무주의는 결코 하이
데거에 근거한 것일 수 없다. 그것은, 하이데거 자신이 후에 말하듯이, 하이데거와는 "아무
런 공통점도" 갖고 있지 않다.
1.3 그러나 하이데거가 형이상학으로부터 점점 더 많은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강의는 비록 1935년에 행해졌지만, 출판은 그보다 훨씬 후에야 이루어졌던 ≪형이상학
입문≫ 이래로 그러하다. 그 이후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에 대한 신뢰를 더 이상 공언하지 않
으며, 오히려 언제나 거듭해서 그리고 점점 더 날카롭게 서양 전체의 형이상학을, 그것이 "
존재 망각"(Seinsvergessenheit)에 지배되어 눈멀어 있다고, 즉 형이상학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하이데거가 사물 또는 대상으로서 이해한 존재자뿐이라고 비난한다. 반면 존재는
존재자의 근거로서 "망각되고", 존재자의 순전한 '존재자성'으로서 오해되며, 심지어 존재에
대한 문제조차 물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진다.
전체 형이상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거부는 어떤 특정한 학파나 방향을 형성하는 것도, 또 그
것이 철학의 한 개별 분과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은 "철학의
이제껏의 전체 역사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 형이상학에 따른 전체 역사는 존재의 망각
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형이상학에 대한 이러한 이의가 이해하기 여렵긴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이제까지의 철학자들에 대한 "비난", 즉 '존재 망각'이 마치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의 탓
으로 돌려지는 '거절'(Versagen)과 같다는 비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문주의
편지"에서 뚜렷하게 된 것처럼, 그러한 '거절'은 전통 철학자들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온 '존
재의 역운', 즉 '존재 망각'의 시대가 그 속으로 "내던져져" 있는, 그래서 단지 존재자만을
나타나게 하는 그러한 '존재의 역운'인 것이다(≪인문주의에 대한 편지≫ 75쪽 이하 참조).
그러나 하이데거의 이의는 다음과 같이 계속 된다. 형이상학적 사유는, 존재자를 계산하여
지배하기 위해, 즉 근대 기술에서 그 완성된 모습을 드러낸 것과 같이, 존재자를 인간의 지
배하에 두기 위해 존재자를 대상화한다. 근대 기술의 [본질로서] '이쪽으로 세워진', "몰아
세우기 틀"(Gestell)은 존재를 "그릇되이 세우며"(verstellen), 따라서 그것은 허무주의에로
이끌려 간다. 기술이 형이상학적 사유에서 유래된 것인 한, 허무주의 또한 자신의 근원을 형
이상학에 둘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 허무주의는 형이상학의 본래적인, 그러나 지금껏 숨
겨져 온 본질, 즉 존재 그 자체가 無와 같기 때문에, 형이상학 자체가 허무주의라는 사실을
드러낸다(≪숲길≫ 245쪽).
하이데거는, 순수하게 물질적인, 근본에 있어 맹목적인 '진보에의 믿음'과 기술의 무제약적
지배에 대해 비판적으로 경고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었다. 물론 우리는
하이데거에서도 역시 출구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과학적으로-기술적으로
지배된, 인간을 무겁게 위협하는 세계가 그 정신적 근원들을 근세(Neuzeit)의 철학적 사유
속에, 즉 여기서 형이상학이라는 말 아래 함께 의미되어 있는 사유 속에 두고 있다는 것은
옳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전통 전체에서 나타나는 모든 형이상학에 적중되는가?
그러나 서양 철학의 비중이 플라톤 이래 형상적(eidos-haft), 본질-철학적 특성에 놓여 있었
던 것은 사실이다. 즉 서양 철학에서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본질(essentia) 또는
사물의 '그러함'(Sosein)이었지 결코 존재(esse)가 아니었다. 플라톤에서 '참인 존재'는 "이
데아"가 된다. 이러한 사상은 특히 모든 플라톤적-신플라톤적 '사유 방식'들 속에서 계속 작
용하고 있으며, 근세 합리론에서도 여전히, 다름 아닌 헤겔의 관념론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후설이 '순수 형상적 학문'이라 정의한,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하이데거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현상학에 대해서도 또한 명시적으로 타당하다.
전체 형이상학을 '존재 망각'으로 판결한 것은 즉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자들은
대개, 하이데거의 이의가 부분적으로는 정당하지만, 그러나 모든 것에 타당한 것은 아니며,
적어도 존재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고, 또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했으며, 더 나아가 존재에
관한 중요한 형이상학을 전개했던, 위대한 '존재 사유가'인 토마스 폰 아퀴나스(Thomas
von Aquin)에게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단지 두 비판가, 즉 유명한 ≪
존재와 본질≫(L'etre et l'essence, Paris, 1948)의 저자인 에띠엔느 질송(Etienne Gilson)과
비슷하게 널리 알려진 책 ≪토마스에서부터 하이데거에 이르는 형이상학의 운명≫(Das
Schicksal der Metaphysik von Thomas zu Heidegger, Einsiedeln, 1959)의 저자인 구스타
프 지베르트(Gustav Siewerth)만을 언급하기로 한다. 질송은 토마스의 '존재 이론'을 펼쳐
보여, 그 이론이 다른 모든 일면적 본질주의와 달리 매우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하이데거의 제자인 지베르트는 그것을 넘어 형이상학이 '존재 망각'에로 몰락해 온 역사, 즉
'존재 문제'가 이미 후기 스콜라 학파에서 그리고 근세 철학에서 망각되어 있다가, 하이데거
에 와서야 다시 대두되기까지의 역사를 전개하고 있다. 이 둘은, '존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를 하이데거보다 더 잘 그리고 더 깊게 알고 있었던 철학자로 토마스 폰 아퀴나스를 꼽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옳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라는 말에 대한 토마스와 하이데거의 이해가 완
전히 다르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하이데거에게 문제가 된 것은, 존재자의 내적 원리로서
의 존재, 즉 존재자를 "존재케" 하고, 유한한 세계를 넘어서서, "존재 그 자체"의 '근원적으
로 순수한 현실성'(Aktualit t)(ipsum esse in se subsistens [스스로 존립하는 자체 존재])에
근거하는 '존재의 작용'(actus essendi bei Thomas)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따라서 토마스
도, 하이데거에 따르자면, 존재를 존재자의 "존재자성"(Seiendheit)으로 오해하는 "존재자적"
사유에 속하는 것이지, 존재자 저편의 존재 자체에로 밀고 들어가는 "존재론적" 사유에는
속하지 않는다.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 즉 포괄하며, 역사적으로 지배하는 '존재의 근
거', 다시 말해 자신을 숨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드러내는, 현존재에 가까이 다가오거
나 아니면 현존재로부터 멀어지면서, '존재의 역운'을 정해 주는 '존재 근거'이다. 하이데거
에서 이해된 존재는 형이상학적 '존재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 즉 하이데거가 어느
정도 정당하게, 형이상학은 "존재"를 (그것의 의미에서) 결코 숙고하지 않았고, 따라서 '존재
망각'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만일
존재 그 자체가 '존재의 역사'로 해석된다면, 고전적 전통의 의미에서 이해된 형이상학에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거의 열려 있지 않게 된다. 즉 그 길은 막혀 있다. 이로써 신에로 이른
길, 신에 대한 인식과 신에 대한 이해에로 이르는 길 역시 파묻혀져 있는가? 아니면 신에로
이르는 사유의 '접근 통로'가 하이데거에 의해 가능한 것은 아닌가?

2. '신 문제'

2.1 전쟁 이후 시기의 저술들에서 하이데거는 "신과 신들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하이데거가 형이상학적 '존재 이해'에 가까이 다가가고, 심지어 그리스도교적 신앙
에 문을 열고 있다는 견해를 일깨우거나 강화했다. 하이데거는 보다 이전에, 그의 철학이 무
신론(無神論, Atheismus)이라는 비난에 대해, <근거의 본질에 관하여>(1929)라는 글에서,
현존재를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서 해석함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신에로 나
아갈 수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의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도 또 부정적으로도 결정할 수 없
다"(≪숲길≫, 39)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가 단지 물어질 수만 있기 전에도, 우리는 가장
먼저 "현존재에 대한 충분한 개념"을 획득해야만 한다(같은 곳). 모든 것은 열린 채로 있고,
신에 대한 문제는 결코 물어질 수 없다.
하이데거는 후에 '신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말한 바 있다. "인문주의 편지"(1947)에서
하이데거는 다시 무신론의 비난을 물리친다. "신의 현존에 대해서도, 그리고 또한 신의 '존
재하지-않음'에 대해서도 전혀 결정되어 있지 않다"(≪인문주의≫, 101). 따라서 하이데거의
사유는 "결코 유신론에 대해 찬성하려 하지 않았다. [그의] 사유는 무신론적이지 않듯이 또
한 유신론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무차별적 태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
려 사유로서의 사유에게 정립되어 있는 한계들을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고, 더 나아가,
사유에게 '사유해야만 하는 것'으로서 주어진 것을 통해, 즉 존재의 진리를 통해 주어진 것
이다"(≪인문주의≫, 75). 여기서 진리(비은폐성)는, 스스로를 우리들에게 열어 보이거나 또
는 우리들에게서 스스로 달아나는 존재, 즉 스스로를 숨기거나 또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
재의 '역사적으로 운명적인 섭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의 힘 밖에 놓인다.
왜냐하면 "인간은 존재 그 자체에 의해 존재의 진리 안으로 '내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
그것도 존재자가 존재의 '빛'(Licht) 속에서, 존재하는 그 존재자로서 나타나기 위해서 말이
다. 존재자가 나타나는지, 나타난다면 어떻게 나타나는지, 신과 신들, 역사와 자연 등이 존재
의 '밝은 터'(Lichtung) 속으로 들어와, 현존하고 부재하는지,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지 등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존재자의 다가옴(Ankunft)은 존재의 보냄(Geschick)
에 기인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남은 문제는, 인간의 본질이 이러한 보냄에 상응하는지, 즉
그것에 적합한지 하는 것이다"(≪인문주의≫, 75쪽). 많은 문제를 던지고 있는 이러한 글은
얼마나 파국적인가!
모든 것은, 우리가 적합하게 그것의 섭리에 순응해야만 하는 존재의 보냄에 의해 결정되는
가?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결정과 책임에서 면제되어 있는가? '존재의 보냄'이 예컨대 아돌
프 히틀러(Adolf Hitler)나 스탈린(Stalin)을 일컫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그
러한 '보냄'에도 단지 적합하게만 응답해야 하는가? 그러한 보냄의 섭리에 순응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대항했던 사람들은 역사적 과제에 보다 잘 그리고 보다 올바르게 응답했던
것은 아닌가? 그리고 신이 멀리 떠나 버린 "궁핍한 시대"(d rftige Zeit)에 신에의 믿음을 고
백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신앙을 또한 철학적으로 근거 제시하며 증거하는 것 역시 역사적
과제일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과제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 그
것에 "빠져 버리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들의 시대에 대한 "본래적" 연구가 놓여 있는 것은
아닌가? 시대의 정신 또는 몰정신(沒精神, Ungeist)에 반대해서, 즉 포스트모던적 유행에 반
대해서, 형이상학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그때 하이데거를 증인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은가?
존재 또는 비존재, 신 또는 신들, 이 모든 것은 하이데거에서 열린 채로 있다. 모든 것은 존
재의 '보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신 문제'에 대해 결코 무차별적인 것은 아
니라고 한다. 그것은 오히려 '신 문제'를 전제한다. 왜냐하면 "존재의 진리에 대한 문제에서
부터 사유하는 사유는, 형이상학이 물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시원적(始原的)으로(anf
nglicher) 묻기 때문이다. 존재의 진리에서부터 비로소 '聖스러움'(das Heilige)의 본질이 사
유될 수 있다. '성스러움'의 본질에서부터 비로서 신성(神性, Gottheit)의 본질이 사유되어야
한다. 神性의 본질이 비추는 빛 속에서야 비로소, '神'이란 낱말이 무엇을 명명(命名)해야
하는지가 사유되고 얘기될 수 있다...만일 인간이, '신 문제'가 오로지 그 속에서만 물어질
수 있는 바로 그 차원(次元, Dimension) 속으로 사유해 들어가기를 그만둔다면, 인간은 현재
의 세계사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神이 가까이 오는 건지 아니면 멀리 달아나는 건지를 진
지하게 그리고 엄밀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하는가?"(≪인문주의≫, 102쪽). 그러나 이러한 차
원은, "존재의 '열림터'(das Offene)가 밝혀져 있지 않고, 밝혀지면서 인간에게 가까이 있지
않다면, 닫혀진 채로" 있을 것이다"(≪인문주의≫, 103쪽).
2.2 비슷한 표현들이 ≪숲길≫(1950)에서, 특히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라는 니체의 말
>(193-247쪽) 그리고 "궁핍한 시대에 무엇을 위한 시인인가?"는 횔덜린의 말과 관련된 <무
엇을 위한 시인인가?>(248-295쪽) 등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다. 거기에 릴케(Rilke)과 관련
된, 그러나 사태적으로 다른 곳들과 일치하는 짧은 글이 나온다. 즉 "'구원받지 못함'으로서
의 '구원받지 못함'(Unheil[멸망])은 우리에게 구원(救援, das Heile)을 느끼게 한다. '구원적
인 것'(Heiles)은 '聖스러움'(das Heilige)을 부르면서 [우리들에게] 눈짓한다. '성스러운 것
'(Heiliges)은 '神스러움'(das G ttliche)을 묶어 놓는다. '신적인 것'(G ttliches)은 신을 가깝
게 한다."(≪숲길≫, 294쪽). 시인들은 "'세계의 밤'(Weltnacht)의 깜깜한 어둠 속으로 도망간
신들의 흔적을 '죽을 자들'에게 가져다 준다." 다시 말해 "궁핍한 시대의 시인들"은 "'聖스
러움'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다(같은 곳).
이로써 하이데거 자신 역시, '세계의 밤'의 캄캄한 어둠 속 멀리에서 '성스러움'을 예감하
고, 그것을 노래부르면서 [우리들에게] 눈짓하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들" 가운데 드는 셈이
다.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숨기듯이, 하이데거의 진술들 또한 신탁(神託)같이 어둡다.
하이데거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러나 모두가 그가 낸 수수께끼에 매달려 있는,
존재의 진리를 신화적이고 시적인 언어의 베일로 감싸는 그러한 고독한 사유가이려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로써 우리는 무엇을 얘기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신의 결여(缺如)"(Fehl Gottes)
에 의해 규정된 "궁핍한 시대"에, 그리고 '신적인 것', 즉 "신 또는 신들"이 멀리 물러나 버
리고 마는 "세계의 밤"(Weltnacht) 가운데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을 멀리했을지도 모
를 인간들의 '탓'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힘으로는 바꾸어 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존재
의 보냄'(Seinsgeschick)이다.
우리들에게는 '신적인 것'에 대한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신의 결여"를 통해, 정확
히 말해, "명백하고 뚜렷하게 인간들과 사물들을 자신에로 불러모으는" 하나의 신의 "결여"
(≪숲길≫, 248쪽)를 통해 규정되어 있는 "세계의 밤"이다. 하이데거는 -- 휄덜린과 더불어-
- , 오래 전에 "달아났던" 고대 그리스의 신들을 생각하며, 또 그리스도교적 믿음의 신도 생
각한다. 그러나 이 신 역시 멀리 "물러나" 버렸다. 왜냐하면 현대 세계에서 믿음은 더 이상
인간의 '공유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따라서 그것은 우리들의 세계에 어떠한 통일성도 주지
못하고, 또 우리들의 세계를 통일적으로 간직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신이 멀리
달아나 버렸던가? 아니면 인간들이, 이러한 세계에 마음을 빼앗겨, 신으로부터 달아나 버렸
던가?
하이데거는 '세계의 운명'(Weltgeschick)이 바뀌기를, 그래서 '신적인 것'이 되돌아와 우리
들에게로 다시 가까이 와 스스로를 계시하기를 배제하려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
히려 그는 그러한 것을 원하고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원받지 못함'이 깊어지면 깊어
질수록, 그리고 '세계의 밤'이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구원'이 다가오는 소리는 더욱더
커진다. "'구원받지 못함'으로서의 '구원받지 못함'은 우리에게 구원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숲길≫, 294쪽). 가장 커다란 궁핍은, '구원받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 "궁핍한 것이 없음
"(Notlosigkeit)이다. 궁핍을 알아듣는 자만이, '구원받지 못함'이 뒤바뀐다는 것, 그래서 '신
적인 것'이 자신의 가능적 도래지(到來地, eine St tte seiner m glichen Ankunft)를 발견한
다는 것을 기다릴 수 있고, 그것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즉 현대적 '존재의 운명'
아래서는, 신과 '신에 대한 인식'이 철학적 사유의 과제는 아니라고 한다.
형이상학은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자에 대한 "대상적" 사
유이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은 신 또는 '신적인 것'을, 비록 최상의 존재자로서이긴 하지만,
존재자로서 그리고 물건으로서 또는, 비록 '근원-사물'(Ur-sache[原因], causa prima[제일
원인])로서이긴 하지만, 사물로서 사유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러한 사유는 "존재를 잊어
버렸거나"[존재 망각] 또는 "존재를 떠나버렸기"[존재 이탈] 때문이고, 따라서 형이상학은, "
존재 그 자체가 無이기" 때문에(≪숲길≫, 244쪽), 근본에 있어 허무(虛無)주의(Nihilismus)
이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이 이렇게 된 까닭은, 하이데거가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형이상학
의 存在-神-論적 구성틀"에 있다. '신적인 것'의 되돌아옴의 '사건'은, 그것을 위한 '때'(die
Zeit)가 "존재의 역사상" 무르익고 있다면, 형이상학적 사유를 통해서는 일어날 수 없고, 오
직 '존재의 운명'이 방향을 바꿈으로써만 가능하다. 존재는 언제 그 방향을 바꿀 것인가?
존재는 스스로를 어떻게 내보여야 하는가?
2.3 하이데거가 신과 '신적인 것'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그리
스도교적 '신 이해'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그리스도교에로 단지 한
걸음만이라도 내디딜 필요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결코 함께할 수 없었던) 그러한 기
대를 품었던 사람들은 결국 실망하고 말았다. 하이데거는 '신에 대한 믿음'에로는 한 발짝도
내딛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하이데거의 거부는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또한 신
의 절대적 존재에 다다르기 위해, 하이데거에서의 "존재"를 형이상학적 '존재 개념'의 의미
로 해석하려 했던 사람들조차 점점 더 분명하게 반박되었다. '存在는 이름없이 일어난다
'(anonymes Seinsgeschehen)는 것을 주장하는 하이데거와 그리스도교에서 믿어지는, 영원
히 무한한, 살아있는 그리고 인격적인 神 사이에는 근본적인 그리고 한없이 깊은 대립이 존
립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만일 하이데거가 옳게 이해되었다면, 그가 결코 그리
스도교적으로 해석되거나 형이상학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하이데거
가 "존재"라는 말로써, 또 "존재 자체"라는 말로써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교적 '신 이해'와
는 결코 통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아니 그의 사유 속에서는, 사람들
이 그의 사유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신을 위한 어떠한 자리도 비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했다.

3. 존재와 신

3.1 이러한 주제는 하이데거가 죽은지(1976) 한참 후에야 ≪철학에의 기여≫(Beitr ge zur
Philosophie, 1989)의 출간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논의되었다. 펴낸이에 따르면, 하이데거는
그 책을 이미 1936-1938년 사이에 썼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그 책을 출간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가 이 책 또한 출판을 위해 유고에
서 제외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지금 ≪존재와 시간≫ 이후의 두 번째 주저라고
칭찬하는 것은 매우 지나친 것이다. ≪철학에의 기여≫는 주저가 아니며, 결코 완성된 "작품
"도 아니며, 오히려 기획들과 '사유 실험'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며, 사적으로 쓰여진 것
이고, 너무 많은 반복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으로 어두운, 신화적이고 시적인
그리고 예언적인 정열을 담고 있다.
그러나 ≪철학에의 기여≫는, 여기서 전개된 사유 방식에서 유래된 후기 저술들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그것과 관련하여 내가 그 책으로부터 길어올릴 수 있는 것은, 단
지 일관된 또는 해명의 폭이 보다 넓어진 몇몇 측면들뿐이다.
이미 오래 전에 하이데거는 자신의 사유의 "전회"(轉回, Kehre[돌아가기])를 어둡게 암시한
바 있다(≪인문주의≫, 72쪽 참고). 그 이후로 이러한 전회가 언제 일어났고, 또 그 전회가
본질적으로 어디에 서 있는지와 관련된 많은 해석과 수수께끼가 있어 왔다. 지금 우리는 그
전회가 ≪철학에의 기여≫가 실제로 쓰여질 때쯤(1936-1938) 해서 일어났다는 것, 따라서
사람들이 이제껏 추측했던 것보다 훤씬 이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전회"가
본래적으로 사유의 '방향 전환'이나 심지어 사유의 '전도'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이전
에 이미 그 소질로서 갖고 있던 바의 '근본 특징들'이 이제 보다 뚜렷이 그리고 보다 날카
롭게 전개되는 것임도 알고 있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전회를 가장 단순히, 존재가 더 이상 인간적 현존재와 그의 '존재 이해'
에서부터 해석되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현존재가 존재 그 자체로부터, 존재가 "현현(顯現)
하는 곳"(Da des Seins)으로서, 즉 "존재가 밝아 오는" 장소(Ort der Lichtung des Seins)로
서 이해된다고 도식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이데거의 후기 저술들이 알려 주
는 바처럼, 이러한 "전회"에서 '근본적으로 존재-역사적인 사유'에로의 '방향 전환'이 수행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이데거는 ≪철학에의 기여≫에서 자의적인 언어로써, 용어들의 철학적 사용법을 피해서, '
사건'(Ereignis)으로서의 '존재'에 관해, 존재의 진리의 다가옴에 관해, 신들의 달아남과 다
가옴에 관해, "마지막 신의 '스쳐 지나감'"에 관해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말은 그리스도교
적 '신의 믿음'을 명시적으로 거절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곧바로 모든 그리스도교적 철학
에 대한 거부인 것이다. 하이데거가 여기서 "그리스도교적"이란 말을 사용한다면 -- 이러한
일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 , 그것은 언제나 단지 그 말을 비판적으로 거절하는 가운데
그것과 거리를 두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일 뿐이다. 우리가 시적 언어의 깊고 어두운 의
미에 눈멀지 않기 위해선, 하이데거가 얼마나 원칙적으로 모든 "그리스도교적인 것"을 거부
하는지에 주목해야만 한다.
그러나 ≪철학에의 기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근본에 있어 이러한 정도에 머무르는 것
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즉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형이상학에 대한 거절, 곧 서양적
사유, 특히 그리스도교적 사유의 전통 전체에 대한 거절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로써 이성적
인 그리고 사태적으로 논증하는 모든 철학에 대한 거절이기도 하다. 이러한 철학의 자리에
신화적-예언적 사유가 들어선다. 하이데거는 -- '로고스'로부터 신화에로 -- '뒤로 거슬러
오르면서'(im Sprung zur ck), 초기-그리스적 사유에로 '뒤돌아가면서'(im R ckgang) "다른
시원"을 놓고자 한다. '다른 시원'은, 말하자면 존재를 진리의 '사건'으로서 내보이는 '존재-
역사적' 사유를 일컫는다.
3.2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는 존재자의 존재도 아니고 또 신의 "존재 자체"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존재 망각'에 빠져 있는 형이상학과 관련된 것들이다. 하이데거에서 존재 그 자
체는, 그가 '존재 그 자체'라는 말을 말하거나 그것을 지시하는 한, '이름없는(anonym), 비
인격적인 힘'으로서, 즉 모든 것을 지배하고, 우리에게 우리가 "적합하게 응답해야만" 하는
역사적 운명을 정해 주는 '힘'(Macht)으로서 사유되어 있다(≪인문주의≫, 75쪽). 하이데거
에서의 '존재 그 자체'는 근본에 있어 고대 그리스에서의 "모이라"(Moira[운명]), 즉 인간과
신들을 다스리는, 벗어날 수 없는 "아낭케"(ananke[필연성])이다. 하이데거는 또한 불교와 같
은 동아시아의 사상들 속에서 자신의 사유와의 친밀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러나 하이데거
는 먼저 오랫동안, 그가 언제나 거듭해서 되짚어 보곤 했던 초기-그리스의 사유가들, 예컨
대 아낙시만드로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등과 더불어 사유했다. 이러한 사유가들
에게, 모든 사유와 이해의 마지막 지평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운명적인 '존재의 역사'의
근원이 놓여 있다. "신과 신들"이 나타나는지, 그리고 나타난다면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존
재의 운명 속에 근거한다"(≪인문주의≫, 75쪽).
이와는 달리 ≪철학에의 기여≫의 많은 진술들에서는 '신적인 것', 신 그리고 신들이 '존재'
의 지평 속으로 들어올 수 없는 듯이 보인다. 다시 말해 '신적인 것'의 "본질"은 존재를 넘
어서 있거나, 보다 낫게 말해, 존재 밖에 있다(≪철학에의 기여≫, 244쪽). 그러나 神性
(Gottheit)은,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위해, 존재를 "필요로 한다"(같은 책, 243). 이것은
마치 존재가, 자신의 진리를 현존재 속에서 "떠오르게" 하기 위해, 현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존재는, 그것이 신들의 신과 '神들이 되는' 모든 것(alle G tterung)이
필요로 하는 바 '그것'으로서 인식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위대함에 다다른다"(같은 책,
243). 그러므로 존재는, 신성에 의해 "필요해져 있기" 때문에, "사이"(Zwischen)(같은 책,
244)로서 입증되며, 말하자면 존재는 존재자와 신들의 사이에서 "신들에 의해 필요해진 것
이고, 존재자로부터 빼앗아 온 것이다"(같은 곳). "존재는 존재자보다 결코 더 존재하는 것
도 아니고 또한 신들보다 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신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같은 곳). 존재는 "存在하지" 않고, 오히려 "있어온다"(west). 신들은 "결코" 존재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들은 존재보다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존재하는 것인가? 이러한 명
백한 모순들에서 우리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냉정히 묻는다면, 이때 이미 형이상학
적 사유가 재발하는 것인가?  논리학은 사실 하이데거에서 단지 형이상학의 기형적 잔재에
불과하며, 따라서 형이상학과 함께 "극복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신적인 것'에 관해 그
어떤 것도 진술할 수 없다는, 순수하게 부정 신학적인 표현인가? 만일 신들이 전혀 "존재하
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無로서 "있어오는가?" 그렇다면 "존재와 무는 동일한 것"인가?(같은
책, 266쪽 이하 참고).
3.3 여기서 우리가 이해하는 "전회"는 사유의 '방향 전환'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
이데거에서 오히려 '존재의 일어남' 그 자체에서의 "사건"(Ereignis), 즉 스스로를 숨기는 진
리'에서의, 존재의 '밝아짐'과 '물러감'에서의, 신들의 가까움과 멂 그리고 다가옴과 달아남
에서의, 마침내 "마지막 신의 스쳐 지나감", 즉 마지막 신의 '가까이-다가옴'과 동시에 '멀
리-달아남'에서의 "사건"이다. 한편에서 다른 편에로의 방향 전환은 언제나 일어난다. 그것
은 "사건"이다. "존재는 '사건'으로서 있어온다"(같은 책, 256). '사건'은, 어떤 것이 "발생한
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건'은 신을 인간에게 맡기는 것( bereignet)이고,
인간을 신에게 넘겨주는(zueignet) 것이다(같은 책, 280쪽). '전회'는 끊임없는 '전도'(顚倒,
Umkehr), '전향'(轉向, Abkehr) 그리고 '회귀'(回歸, Wiederkehr)를 의미하며, 따라서 하나
속에서 둘 다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존재와 무는 동일한 것인가"?
하이데거는 "마지막 神의 스쳐 지나감"을 알리고 있다. 이로써 신에 대한 문제, 즉 하나의
신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지가 오랫동안 결정되지 못하고 만다.
아니 한번도 결정되지 못했다. 신들은 세어질 수 없다(같은 책, 293쪽 참고). "신들의 많음
(Vielheit)은 수(Zahl)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같은 책, 411쪽). 또 마지막 신은 "계산적 규정
에서 벗어나 있으며"(같은 곳), 따라서 유일신론(Monotheismus), 범신론(Pantheismus) 그리
고 무신론(Atheismus)의 저편에, 즉 도대체 모든 "신론"(Theismus)의 저편에 놓여 있다. 신
의 죽음과 더불어 "모든 신론도 사그라진다"(같은 곳). '마지막 신'은 "가장 극단적인 멂" 속
에 있고, 그리고 동시에 "유일 무이한 가까움" 속에 있지만(같은 책, 412), 그러나 그 神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가까워지고, 또 어떻게 스스로를 내보이는지 등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
다. 우리는 단지 그 '마지막 신'이 역사적으로 "스쳐 지나감"을 기대하기만 하거나, 아마도
그것을 희망하고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신 또는 신들, 존재 또는 비존재 등, 이 모든 것은
잠정적으로 열린 채로 남는다.
3.4 결론하여 나는 단지, 앞의 내용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몇몇 비판적 물음을 던지고자 한
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이데거의 업적 전체가 논란에 부쳐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 하이데거
는 사유의 중요한 동인들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존재와 시간≫에서, 이미 '존재의 문제'라
는 단초를 통해, 현존재의 분석론, 이해에 관한 이론, 역사적-해석학적 사유, '시간 비판' 등
등을 통해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주제, 즉 형이상학과 특히 '신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진지하고 어려운 많은 문제들이 남겨져 있다.
형이상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은 서양 철학의 전통 전체에 해당된 것이다. 그로써 하이
데거는, 서양 철학에서 획득된 개념들, 원리들 그리고 방법들 모두를 포기하려는 것인가? 하
이데거가 신과 신들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의 달아남과 다가옴에 대해 알려 주는 것은 분명,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고 검증될 수도 있을 현상학이나 다른 어떤 사태적 방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것은 단지, 사유의 어떠한 이성적 매개도 배제하고, 어떠한 논리적 '근거 제
시'도 내던져 버리는 직접적 경험만을 요구할 뿐이다. 그것은 철학인가, 아니면 신화론인가?
하이데거는, "다른 시원"을 놓기 위해, 유대적-그리스도교적 믿음까지를 포함한 철학의 전통
전체를 뛰어넘으려 한다. 그러나 이때 하이데거는 다른 방식으로, 즉 '존재의 사유'에로 번
역된 채, 바로 이러한 전통의 내용들, 즉 신의 계시, '구원의 역사'[그리스도 수난사]로서의
역사, '구원을 가져다 주는' 신의 다가옴 등의 개념들을 그리스도교적 전승에서 넘겨받고 있
을 뿐만 아니라, 또한 구약의 유대적 전승에서부터도 "신의 스쳐 지나감"(Pascha, 逾越節[국
경을 넘어감])을 넘겨받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하이데거 자신은 신성에 의해 또는 '존재의
운명'에 의해 예언의 사명을 짊어진, 마지막 신의 예언자로서 행동하지 않는가?
신 또는 '신적인 것'에 관한 하이데거의 이야기는 초기 그리스 시대의 신들에 대한 신화적
믿음에로 되돌아가고 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그 신"(der Gott) 또한 "신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여러 신들이 가능하다는 것은 '하나의 신'의 절대성을 이미 지양한 것이며,
따라서 이 '하나의 신'은 존재하는 것도,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보다 고차의 힘
들이 거주하는 애매한 영역에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또한 하이데거가 말하는 "마지막 신"
도, 우리가 사유를 통해 도달할 수 있고, 비록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개념적으
로 파악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적 믿음의 '하나의 그리고 유일한' 神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하이데거는 '신적인 것'을 동경하고 있다. 그는 '신 문제'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로써 하이데거는 우리 시대의 한 증인이 된다. 신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신과 종교
적 경험에 대한 깊은 동경은 살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동경은, 만일 그것이 참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성적 사유의 반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만일 누군가 자신이 믿는 바가 무엇인
지도 모르는 애매한 신앙인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근거 제시'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해명하고 심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그
차원에서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에서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형이상학에게 존재는 하나의 이름
없는, 역사적으로 지배하는 '운명의 힘'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자의 모든 "존재의 현실성"의
원리이다. 그러나 "존재 그 자체"는 존재의 무제약적이고 무한한 충만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절대적 '존재 근거', 즉 그리스도교적으로 이해해, 역사 속에서도 작용하고, 우리들 속
에 살아 있는, 살아계신 인격적 신이다.
우리가 믿어도 좋은 신은, 하이데거의 "'그 신' 또는 신들"보다 그리고 오지도 있지도 않은
"마지막 신"보다 그 이상이며, 그것도 무한히 그 이상이며, 보다 더 위대하고, 보다 더 존엄
하며, 보다 더 확신할 수 있는 신이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신에게로 가지 않고, 신에게로 통
해 있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제 나지막한 소리로 마지막 물음을 던지면서 이 강
연을 끝맺고자 한다. "마지막 신"에는 어떤 마지막 흔적, 즉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에서처럼
"알려져 있지 않은" 신에 대한 어떤 기념-비(紀念碑, Denk-mal)(행 17:23)가 숨겨져 있는
가?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