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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1 (00:49) from 129.206.196.181' of 129.206.196.181' Article Number :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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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과학의 성격과 그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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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과학의 성격과 그 한계 - 물리학을 중심으로

소광섭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1. 서론

과학기술에 바탕한 산업사회의 가속적인 발달은 이제 그 유용성의 한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으며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더구나 종말론 등 세기말 현상까지 겹쳐 인류 문명의 대전환이 임박한 듯한 혼란 심리가 퍼지고 있는 가운데 서구 과학에 대한 비판 또는 반성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과학기술 자체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들에 잘못이 있다고 많은 과학자들은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과학기술이 과연 가치 중립적이냐 하는 점도 따져 봐야 할 일이겠고 그보다도 서구 과학기술이 바탕하고 있는 (또는 표방하고 있는) 자연관이 오늘날 산업사회가 직면한 문제점들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서구 과학은 인간과 정신을 대상으로부터 즉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고, 그것이 곧 진리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구과학의 기계적 자연관이 모든 잘못의 주범이라고 할수는 없겠으나 그것이 올바른 자연관이 아니라는 것은 널리 인식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유기체적 자연관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한 신과학 운동도 그 한 예가 되겠다. 그러나 문제는 근대 과학의 자연관을 대치할 새로운 과학의 구체적 예가 없다는 점이다. ○○주의나 XX운동을 하는 것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겠으나 실제로 그것을 구현한 과학이 나와야 비로소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게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근대과학으로서 물리학의 자연관이 갖고 있는 기본 성격과 그 한계를 논의하면서, '한의학'과 '기' 개념이 새로운 자연관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대체적으로 논의해 보았다. 기 개념은 정체를 알수 없는 애매모호한 것이고, 한의학은 과학이라고 부르기에는 덜 정형화된 면이 없지 않으나, 그래도 유기체적 관점을 구현하면서 서구 과학 체계와는 완전히 독립된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 과학의 씨가 들어있다고 생각되며 서구과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2. 물리학의 간략한 소개

서구 근대과학을 크게 나누면 물리과학 physical science 과 생물과학 biological science 으로 가를수 있겠다. 물리과학은 그 대상이 모든 자연현상이고, 학문방법은 물리학을 기초로 하며 다루는 대상의 특수성에 따라 여러 갈래의 전문분야로 나뉘어진다. 예를들어 천문학, 기상학, 화학, 지질학 그리고 공학 분야들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을 구체적 대상에 따라 적절히 적용하여 탐구한다. 생물과학은 아직도 생명 현상을 그대로 묘사하고 파악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기술적 descriptive 측면이 많기 때문에 물리학의 한 응용분야라고 볼수는 없다. 그러나, 분자생물학 이나 생화학등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근대 생물학은 화학에 바탕한것이고, 화학은 물리과학의 한 갈래 (원자 및 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물리과학)란 점에서 생물학도 급속히 물리과학의 영역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극단적으로 생명체도 물리화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는 유물론적 견해가 가능한데, 물론 이것은 '동물기계론'을 생각한 데칼트의 '근대정신'이 구체화되고 정밀하게 발달한 것에 불과하다. 생물과학이 물리과학의 한 분야로 환원될 수 있을런지의 문제는 여기서 다룰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또한 생물과학은 필자의 전공분야가 아니라서 자세히 알지 못하므로 역시 논외로 하고, 물리과학에 한정하여 고찰하겠다. 물리과학 역시 분야가 다양하지만 학문의 기본성격과 방법론은 물리학 Physics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모든 논의를 순수 물리 (응용 물리가 아닌)를 중심으로하여 진행하겠다.
물리학의 역사적 발달 과정을 대강 훑어보면 물리학의 분야와 목표에 관해서도 어느정도 짐작할수 있다. 코페르니크스, 케플러, 갈릴레오 등 근대과학의 창시자들은 주로 천체의 운동, 자세히 말하면 태양 주위에 있는 행성들의 궤도 운동의 관측과 이론적 설명을 다루었다. 뉴턴이 운동방정식과 만유인력법칙을 발견하여 근대과학의 전형을 확립하게 되자 천체의 운동은 물론 지상의 모든 운동과 물체의 구조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 분야를 '고전역학' classical mechanics 이라 부르며, 일상 생활의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실용적으로 유용하며, 고전역학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은 우리의 일상 경험과 잘 일치한다. 그리고 고전 역학이 제공하는 자연관은 오늘날에도, 현대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자연관과 별로 다를것이 없다.
고전역학의 현상 설명 능력은 너무도 압도적인 것이었기에 마치 '모든 자연 현상'을 다 포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 또는 최종적인 이론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고전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도 사실을 많이 있었다. 예로 빛(광학)과 전기, 자기(자석현상)들은 고전역학의 개념틀(힘,질량,가속도 등)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것이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일단 고전역학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막스웰 방정식 Maxwell equations 으로 최종 정리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역학적 현상을 설명하는 뉴턴역학과, 전자기와 빛 현상을 설명하는 막스웰의 전자기장이론 이라는 두 개의 독립된 이론체계가 생겼고, 이 둘이 상호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겨났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뉴턴의 권위를 의심치 않았으며 따라서 역학의 개념체계 안으로 막스웰 이론을 끌어들일 궁리를 하였다. 막스웰 자신도 '전자기장' electromagnetic field을 역학적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한 예로 '빛'은 전자기의 파동인데 이러한 파동이 생성되고 진행하려면 매질 medium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이것은 역학체계에서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도입된 개념이 '에테르' ether 인바, 모든 공간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는 아주 단단하면서도 다른 물체의 운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매우 모순적인(적어도 아주 이상한) 물질이다.
기존의 이론체계에 물이 안든 젊은이, 아인시타인은 역학에 구애받지 않고 막스웰 방정식 자체의 성질을 고찰하여 '광속불변의 원리'를 찾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상대성 이론'을 구성했으며, 나아가 뉴턴역학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20세기 물리학 혁명이 태동되었다.
고전역학으로 다룰 수 없었던 또 하나의 분야는 이른바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들 즉 물질의 합성과 분해에 관한 현상들이었다. 이것은 18세기에 이르러 근대적 화학으로 발달되었고, 19세기 후반에 물리학자들이 물질구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원자의 연구는 급진전되었으며, 20세기 초에 고전역학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기묘한 현상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플랑크, 아인시타인, 보어, 슈뢰딩거, 하이젠버그, 디락 등 여러사람에 의하여 전혀 새로운 방정식 체계로 원자 현상들을 정식화 하는데에 성공하였으나, 일상적 개념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기묘함은 오느날까지도 논의가 진행되는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멀리 그리스시대의 데모크리토스 때부터 철학적 관심사였던 물질의 궁극에 관한 논의는 20세기 초반의 양자역학의 성립과 원자에 관한 확실한 이해로 어느정도 끝맺음에 가까이 온 듯 하였다. 그러나, 원자보다 더 미세한 구조가 발견되면서 진짜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원자보다 더 작은 핵이 발견되고, 이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종류의 소립자가 발견되고, 또 그보다 더 작은 쿼크가 나타나는 등 물질의 궁극에 관한 연구는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좀더 심각한 측면이 있다. 소립자의 현상을 더 미세하게 알려면 그만큼 더 높은 에너지를 내는 큰 기계(가속기)가 필요해지고 따라서 '거대한 연구(Big science)'가 되며, 현재 이미 가속기의 건설과 운영은 한 나라에서 담당하기 어려운 규모가 되었다. 따라서 경제적 현실성 때문에 소립자 연구는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이미 그 시점에 가까웠다고 볼수 있는 형편이다. 실험이 따르지 않는 물리학은 있을수 없다. 단지 수학이 되거나 혹은 데모크리토스 처럼 철학을 하는 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잠깐 정리를 해보면 고전역학 체계로 설명할수 없는 현상중 빛과 전자기에 관한 연구에서 막스웰 방정식과 상대성 이론이 나왔고, 원자 등 물질의 구조에 관한 연구에서 양자역학과 소립자 이론이 나왔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주로 시공간의 성격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양자 물리에서는 물질현상을 주로 다룬다. 이 두이론을 통일하려는 노력은 현 물리학계의 가장 활발한 연구 분야중 하나가 되었다. 즉 상대성 이론과 양자 물리의 통합(또는 시공간과 물질의 통일)이 당면 연구과제이며, 이것이 코페르니쿠스 이래 갈릴레오, 뉴턴, 막스웰, 아인시타인, 하이젠버그 등이 해온 정통 물리학의 핵심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할수 있다. 이 과제가 해결된다면 시공간과 물질의 본성에 관한 또 한 번의 과학 혁명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3. 근대과학으로서 물리학의 기본 성격

3.1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의 자연관의 다른점

고전 물리학이라 함은 뉴턴역학과 중력법칙 그리고 빛과 전자기 현상에 관한 막스웰 방정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제반 현상을 다루는 물리학이라 하겠다.(이 외에 열현상을 다루는 열역학과 통계물리를 포함시켜야 하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현대 물리학은 대체로 20세기 초에 시작된 것으로 특수 및 일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소립자 물리학 등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현대 물리학은 일상적 경험에서 얻어진 고전 물리적 자연관을 크게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때로는 과장되어 소개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여기서는 먼저 자연관의 바뀐 측면을 대략 정리해보고, 다음 소절에서 고전 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이 공유하고 있는 물리학의 기본성격을 논의하고자 한다.

A. 시간과 공간

고전역학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 할수 있다 : 시간은 관찰자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로서(절대적 시간관), 과거에서 미래로 무한히 흐르며, 전 우주 공간에 걸쳐 동일하게 흐르는 보편적 존재로 물질의 상태나 운동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흐른다. 공간 역시 관찰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재로서(절대적 공간관), 물질과 사건이 존재하는 배경을 제공하며 이들에 의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은 상호 독립적 존재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서 '빛'은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상대성 이론은 다음과 같이 시공간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 시간과 공간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연속체인 시공간으로 보아야 한다. 시공간은 관찰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상대적 시공간 ; 관찰자에 따라 시간의 길이가 달라질수 있다.) 시공간은 물질의 운동과 분포에 따라 휘어지는 등 영향을 받는다. 만유인력(중력)은 시공간의 휘어진 상태를 나타낸다. '빛'은 시공간의 성격 규정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즉 '광속 일정의 원리'에서 시공간의 변환 규칙이 결정된다. (관찰자에 따라 시간이 늘어난다고 할 때 그 변화량을 결정함)

B. 우주

고전역학적 시공간관에서 우주는 무한히 광막한 공간에 퍼져있는 물질(별등)의 분포로 상상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주는 무한하든 또는 유한하든 간에 역학 이론을 따른 계산을 해보면 자체 모순이 있다. 이 사실은 뉴턴이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고전역학적 우주관은 존재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진지한 과학적 논의의 대상이 된적이 없었다. 과학적 우주론이 가능해진 것은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부터 인데, 시공간과 물질의 분포가 하나의 동력학적 체계를 형성하여 수학적 방정식으로 취급할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주는 매우 빠른 속력으로 팽창하고 있으며 (이는 은하의 관측으로 밝혀졌었고, 일반 상대론과 합치되는 결과이다) 약 200억년 전 쯤에 대폭발(Big Bang)이라는 태초의 순간이 있었고, 매우 높은 온도의 상태로부터 점점 식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초기 우주의 특성에 관한 연구는 소립자 물리학을 써서 할수 있으나, 태초 당시의 연구는 현재의 이론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우주의 미래가 어떻게 될것인지 (계속 팽창이냐 또는 재수축이냐)의 문제도 미해결의 과제이다.

C. 물질의 본성

일상 경험에서 얻게 되는 물질관이란 대체로 물질은 물체를 형성하고, 공간상의 일정 위치를 배타적으로 점유하며, 이 물체들은 결합하여 더 복잡한 물체를 만들 수 있고 분해되어 더 간단한 부품들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정도 일 것이다. (철학적 또는 과학적으로 좀더 생각을 해보는 사람은 이 물체들의 분해가 한없이 계속될것인가 또는 어느선에서 멈출까 (원자개념) 하는 문제에 봉착할것이겠지만 이 문제는 소립자 물리에서도 답을 얻지 못한 상황이니 일단 논외로 하겠다.) 그러면 매우 작은 알갱이까지로 나누어본 물질의 성격을 요약하면, 알갱이 들은 개체로서 낱낱이 분리되어 셀수 있으며, 공간을 배타적으로 점유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세상은 이런 물질 알갱이들이 복잡하게 모여 있는 것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알갱이 물질이 전부라고 할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빛'은 어떤가? 뉴턴과 그 추종자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빛 역시 아주 작고 날렵한 '빛알갱이'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광학의 발달과 막스웰 방정식의 정립으로 빛은 알갱이가 아니고 '파동'에 불과함이 밝혀졌다. 파동은 알갱이와 같은급의 존재가 아니고, 알갱이들 집단의 운동형태에 불과함으로 부차적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빛파동'을 하는 원물질이 있어야 할것이고 이를 가상적으로 '에테르'라고 명명 하였다. 물론 아인시타인이 이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었고 따라서 알갱이와 동급의 존재로서 파동인 빛의 위치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전물리학에서는 자연을 구성하는 두 개의 독립적인 개념으로 알갱이(입자)와 파동이 있게 되었고, 그 성격을 개념적으로 따져 보면 알갱이거나 파동이지 알갱이 이면서 파동일수는 없다고 생각 되었었다. 그러나 실제 실험의 결과는 빛과 원자들은 알갱이 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하는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물질의 이해할 수 없는 특성을 수학적으로 다루는 체계가 양자 역학이라 할 수 있다.

D. 인과율

인과관계는 시간적으로 전후관계에 있는 두 사건사이에 필연적 관련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고전물리에서는 '결정적 인과율'이라해서 초기의 상태가 주어지면 미래의 상태가 방정식에 의해서 완전히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현재의 세계를 완전히 안다면 미래를 모두 알수 있다고 할수 있다.
현대물리에서는 몇가지 측면에서 인과율에 수정이 가해졌다. 먼저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광속도의 제한 때문에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사건이 빛으로 연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양자물리에 의하면 입자의 상태 자체를 완전히 알수 없다. (불확정성 원리) 그리고 초기상태에서 미래상태로의 시스템의 시간적 변화는 완전히 결정되지만(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함) 그 미래상태를 알아내기 위하여 관측을 하면 오직 확률적 정보밖에 못얻는다. 이른바 '확률적 인과론'은 이를 의미한다. 끝으로 과거 20여년간 발달된 혼돈 chaos 이론에 의하면 고전역학에서조차도 현재의 상태를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이며, 이때 생긴 작은 오차는 지수함수적으로 급격히 커지게 되므로 미래에 대해서 전혀 예측 불가능해진다. (자연은 결정적 인과율에 따라 진행 하더라도 그 상태들을 인간이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합하면, 인과율이란 틀은 그대로 있으나 복잡미묘하게 발전되었다고 보겠다.

E. 관찰

고전물리에서 관찰의 역할은 이미 주어진 것을 찾아내는 정도의 역할로만 인식되었었다. 특히 이론의 형성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현대물리에서는 관찰이 매우 중요해지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관찰자'의 운동이 이론 구성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즉,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공간이 어떻게 달라보이는가에 관심을 갖게된 것이다. '관찰수단'으로서 빛의 특성 또한 상대성 이론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시공간의 성격은 광속일정의 원리에 의하여 규정될뿐만 아니라, 시간과 길이의 단위도 빛을 이용하여 정의되고, 우주 공간에 어떤 직선을 정의하려면 역시 빛을 사용해야 한다. '관찰행위'가 사물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미치는 영향을 고찰하여 불확정성 원리가 나오는데, 이 원리는 양자역학의 기본틀을 제공한다.

3.2 물리학의 기본성격

앞 소절에서 고전물리와 현대물리의 자연관을 비교하였다. 이제 고전물리는 물론 현대물리에서도 여전히 갖고 있는 물리학의 기본 성격을 몇가지 논의해보겠다.

A. 정신과 물질의 분리

근대과학을 특징 짓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은 '나누어 볼수 있다'는 생각이다. 맨 첫 번째로 정신과 물질 (또는 心과 物)을 분리할 수 있다고 보며 물리적 자연은 물질만의 현상으로 정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본다. (극단적인 견해에서는 있는 것은 물질뿐이며 정신따위는 없다고 본다) 이 가정은 종교와 과학의 분리 (자연현상에서 신(神)의 간섭을 고려할 필요없음), 물활론 등 '전근내적' 미신으로부터의 해방 등 다양한 함의를 갖겠지만 근대과학 자체의 발달과 그 응용에는 커다란 기여를 했음을 인정해야 겠다. 현대물리학도 여전히 이 가정을 굳게 지키고 있다. 양자물리의 해석상 모호성 때문에 의식(마음)과 물질의 상태간에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는 것처럼 얘기되는 경우들이 없지 않지만, 이는 상상의 자유정도로 밖엔 인정되고 있지 않다.

B. 주관과 대상의 분리

'인간의 주관에 관계 없이 객관적 대상으로서 자연현상이 있다.'는 생각은 철학자들에게는 문제가 있는 진술로 보이겠지만, 고전물리에서는 당연한 기본전제이었고, 양자물리에서도 과학철학적 논의를 할 때를 빼면 여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물리에서 관찰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이 다루는 대상, 즉 실험하고 조작할 수 있는 객체로서 자연의 실재는 언제나 전제되고 있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작업태도를 자성이 부족한 순박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과학자들이 이 태도를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나온 어떠한 과학적 사실도 주관과 대상의 분리를 부정하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한 바 없다는 점이다. (물론 과학철학적 논의에서는 양자적 현상을 가지고 주관과 대상의 분리불가를 보여준는 것이라고 주장들 하지만, 실제 과학활동에서 이러한 주장이 어떤 영향력도 발휘한 적이 없다.) 따라서 확실성을 존중하는 과학자들은, 주관과 대상이 분리될수 없다는 철학자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C. 물질의 분할(환원주의)

주관과 정신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은 연구대상이 되는 계 system와 그 주의환경 environment으로 분리될수 있다. 연구대상인 물리계는 다시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점점 더 작은 것으로 나누어가면 자연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를 찾을수 있고, 이 기본요소의 성격을 파악하면 자연은 원칙적으로 모두 이해가 된 셈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원주의 reductionism로 물리학에서는 원자론(소립자 물리), 생물학에서는 세포이론(유전자 이론) 이 대표가 된다. 이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이를 대체하는 구체적 과학이 나온 예는 없다고 하겠다.

D. 시공간 내의 경험

물질의 분할의 전제 개념은 공간이다. 물질현상이 공간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나아가 모든 현상은,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물질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일지라도 공간내에 있는 것아고 보는 것이다. 공간 바깥의 어떤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달리말해 물리학적 세계관에 따르면 생물 무생물 할것없이 모든 것은 공간내에 있고, 공간내에서 생멸한다. 그러므로 공간의 성격에 의해 자연현상은 규정된다. (예로 물체의 형태는 공간 기하학으로 결정됨) 모든 자연현상은 시간에 따라 계기한다고 보는 것도 현대물리학에서 여전히 유효한 생각이며, 원인은 과거에 있고 결과는 미래에 나타난다는 것도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인과율이 있다는 것도 기본적인 전제로 남아있다.
요컨데 인간이 경험하며 과학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현상은 모두 시공간내에서 일어나며, 시공간을 벗어나서는 있을수 없다는 것이 근본 가정이다. 이 시공간의 구체적 성질, 관찰과의 관계, 시공간과 현상의 관계, 인간과의 관련성 등은 과학의 발전에 따라 달리 보일것이지만, 시공간이 모든 현상의 기저에 있다는 것은 바뀔수 없는 것으로 본다.

4. 근대과학의 한계에 관한 토의

근대과학의 전형으로서 물리학의 기본성격을 소략하게 훑어보았으므로 이제 이들의 한계 또는 부적절성 등에 관해 논의해보겠다. 정신과 무관하고 인간과 분리된 대상으로서 객관적 존재이며 분해와 분합등 조작이 가능한 자연, 이러한 자연을 대표하는 예를 '기계'라 하면 고전물리학은 물론 현대물리학도 여전히 기계적 자연관을 갖고 있다. 물론 이 '기계'의 특성은 정교해지고 기묘해졌으며 컴퓨터처럼 인간의 정신기능 일부까지 닮아가고 있으나 위에 말한의미에서 기계임엔 변함이 없다고 하겠다. 양자역학 해석상의 난해함 때문에 현대 물리학은 기계적 자연관이 아닌 유기체적 자연관을 지지한다는 주장들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받아들일 만한 근거가 없다고 보는 것이 안전하다. 단지 자연이라는 기계가 너무나 현묘해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기계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과, 한걸음 나아가 유기체적 자연관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물리학이 제시해온 이러한 기계적 자연관, 특히 이로부터 파생되는 이른바 과학적 생명관과 서구의학은 현대 산업사회의 여러 가지 병폐와 관련하여, 그것이 갖다준 수 많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정말 잘못된 것은 인간의 욕망임을 잊은채, 모든 악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나 새로운 동양적 자연관이 나온다고 해서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 사라지고 지상천국이 전개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계적 자연관이든 유기체적 자연관이든 그 효용성과 부작용이 함께 따라다니기는 마찬가지 일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유용성 여부의 문제를 떠나서 근대과학적 자연관이 얼마나 타당한것이지, 그 근본적인 한계를 따져보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겠고 또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기계적 자연관은 대상을 부품으로 분해하여 이해할 수 있고, 기본적인 것은 가장 작은 요소들에 있다고 보는 환원주의가 특색인데, 이에 반하여 유기체적 자연관에서는 시스템은 분할해서는 안되는 전체로서 하나인 특성이 더 중요하다는 전일주의 holism를 내세운다. 이 두 견해를 보여주는 적실한 예는 생물들이다. 물리학에 바탕한 서구의학은 세포와 유전자 및 생화학적 반응이 생명현상의 핵심이며 나아가 전부인것처럼 가정하고 연구를 한다. 그런데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상당히 성공적인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분석적 개념은 전혀 없고, 시스템의 평형이란 관점을 갖고 거시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인간 개인이란 시스템에 국한하지 않고 그를 둘러싼 사회와 천지 자연까지도 함께 고려한다.
'환원적 기계'로 자연을 파악하는 서구 근대과학은 생명 및 정신까지도 그 틀에 넣으려는 데서 적지 않은 무리가 따르고 있다. 반면에 '전일적 유기체'로 생명체를 다루는 한의학은 우주자연까지도 같은 태도로 접근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합리적 근거들이 미약하고, 때로 미신과 구분이 안되는 폐단도 생긴다. 이 두가지 과학이 모두 완벽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겠는데, 문제는 이 양자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정립할 것인가에 있다. 쉽게 상보적으로 둘다 필요하다고 말하면 되겠으나 이것은 피상적이고 전혀 도움이 안되는 말에 불과하다. 좀더 실질적으로 이 두 학문분야를 통합적으로 묶을 수 있는 개념체계와 이론이 구성된다면 근대과학은 또 한 번의 도약을 할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서구 과학의 환원주의와 기계적 자연관을 비판하고 새로운 과학의 출현을 요청했지만 근대과학과 그 개념체계가 판이하게 다른 과학의 구체적 예를 제시한 경우가 없었다. 오직 한의학만이 거의 유일하게, 서구의학에 필적할만한 효용성을 가지고, 이러한 예에 속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되며, 따라서 한의학에 대한 종합적이고 집중적인 연구는 근대과학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해서라도 절실히 요청된다고 본다.
'환원적 기계'의 작동에서는 직선적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인과율이 근본적 전제이다. 그러나 '전일적 유기체'의 한의학에서는 시간적 인과의 연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다. 예를 들어 '혈(穴)'이란 개념은 체계 전체의 특성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국부적 작용의 인과가 시간에 따라 점차 전달돼가는 형태는 아니다. 가시적 비유로 바둑을 들면 '혈'은 판상의 형세에 있어서 결정적 작용을 하는데 그것이 인과적 순서에 따라 작용하지는 않는다. 서구과학은 인과율이 기본적 전제이고, 인과는 시간의 개념위에 가능한 것인데, 이러한 중요한 기초개념(인과,시간)이 불필요하거나, 적어도 중요하지는 않은 자연의 파악법이 있을수 있다면 이것은 근대과학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근대과학 발전의 한 요인은 원시적 물활론이나 생기론에 벗어나서, 자연을 인간과 분리된 객체로서 정신이 업는 물질에 불과하다고 보고, 관찰과 실험 및 조작을 심적 부담없이 할수 있었던 점이다. 그러나 이 '물심(物心)분리와 주객 분리'가 생명체 특히 인간의 두뇌에 까지 적용될수 있는가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근대과학에서는 인간까지도 물리화학적 작용으로 환원시킬수 있다는 관점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바로 서구 과학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서구과학의 극단적 관점을 설파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피상적 대안들이야 많이 있겠지만 설득력 있는, 서구과학처럼 확실하고 힘이 있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물심분리의 한계성을 보여줄수 있는 구체적 개념으로 '기(氣)'를 떠올려 보고자 한다. 기가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기는 정신에 의해서 영향받고, 또 기가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물심 양면에 모두 관련된 중간적 매체일 가능성이 있다. 기의 파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기관련 현상은 인간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분리된 '물체의 실험'에 바탕한 근대과학적 객관성을 확보할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한편 인간과 분리될수 없기 때문에 근대과학의 한계밖에 있으며 근대과학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고 볼수 있다.
기에 관련된 현상들은 시공간이 주는 제약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또한 근대과학의 인과율(시간), 분할성(공간) 등 기초 전제의 재검토를 요청케 한다. 텔레파시나 예언 등은 현대 물리학의 시공간 개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인데, 이런 것들이 정말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어떻게 합리적 사고의 틀로 파악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기에 관한 연구는 이러한 문제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는지 모른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근대과학이 전제로 삼고 있는 물심분리, 주객분리, 환원주의, 인과율, 시공간의 특성 등은 곧 서구과학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는데 이를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을 얻기 위하여 한의학과 기에 대하여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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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 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이성범•김용정 역, 범양사 출판부, 1989
3. F. 카프라,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이성범•구윤서 역, 범양사 출판부, 1985
4. 소 광섭,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한 고찰, 계간 과학사상 10호, 1994 ;

물리학에서 기리학으로, 4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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