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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5/07/01 (09:42) from 129.206.196.181' of 129.206.196.181' Article Number :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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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결정론(환원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적 고찰






유전자 결정론(환원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적 고찰







Ⅰ. 서론



Ⅱ. 본론

1. 자연선택에 있어서 선택의 단위

  1)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2) 집단 선택(Group Selection)

  3) 혈연 선택(Kin Selection)

  4) 유전자 선택(Gene Selection) - 유전자 결정론(환원주의적 시각)

2. 유전자 선택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스티븐 제이 굴드의 입장

  2) 프란츠 부케티스의 입장

3. 유전자 결정론과 관련된 환원주의에 대한 논의



Ⅲ. 결론



《 참고문헌 》











Ⅰ. 서론

 생물의 사회적 행동을 탐구하는 사회생물학은 다음과 같은 이론을 개진한다.

인간과 동물의 공동 생활은 저마다의 생존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 있으며 자연 선택에 의한 단계를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 생존에 유리한 것으로 입증된 사회적 행동 양식이 선호됨으로써, 생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행동 양식에 대해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살아남았다. 모든 사회적 행동 양식들은 결국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으며 인간에게나 다른 생물에게나 적어도 하나의 유전적 성향이 특정한 사회적 행동 방식에 깃들이게 되는데, 이들 행동 방식 역시 진화가 엮어내는 최적화 과정의 결과임에 틀림없다.

 사회생물학은 1970년대부터 분자생물학적 지식의 후광을 입고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며, 곤충의 사회적 행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낸 에드워드 윌슨이다. 윌슨은 1975년에 『사회생물학 : 새로운 종합』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종합을 기약하고 있는데, 집단생물학, 유전학, 진화생물학적 시각에서 하등 생물에서 고등 사회성 생물, 그리고 인간 집단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통일된 생물학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는 모든 사회 행동은 생물학적 기초 위에 이루어지며, 자연선택에서 선택되는 것은 개체인 듯하나 실제로는 그 개체가 갖고 있는 유전자이며 개체는 유전자가 증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운반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부 사회생물학자들은 '유전자의 이기주의'를 특히 강조했다. 이 '유전자 이기주의'는 동물과 인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윌슨의 책이 출판된 다음 해인 1976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을 출판해서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더욱 극단적인 모습으로 이끌고 나갔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에서 선택의 단위는 '유전자'이고, '모든 생물은 유전자에 의해서 프로그램 된 생존 기계'라는 주장을 폈다. 즉 유전자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언뜻 보기에 이타적인 행동은 실제로는 유전자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연 선택을 얘기하면서 선택의 단위는 '개체'라고 하였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개체간에 일어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선택의 또 다른 개념이 사회생물학 분야에서 발전되었다. 그것들은 집단 선택, 혈연 선택, 유전자 선택이다.
 이 글에서는 동물과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양상인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와 관련하여 선택의 단위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그 중에서 사회생물학의 극단적인 입장으로 볼 수 있는 유전자 선택, 유전자 결정론(환원주의적 시각)에 대해 비판적 고찰을 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자연 선택에 있어서 선택의 단위
1)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의 메커니즘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했다. 다윈의 이론에 따르면 생물은 살아 남아 자손을 만드는 개체 수보다도 더 많은 자손을 만든다. 따라서 태어난 자손들 사이에는 냉엄한 생존 경쟁이 일어난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개체는 그때그때 주어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최적자'들 뿐이고 나머지 것들은 모두 도태되어 사라진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세대를 거치는 동안에 개체 변이가 일어나는데, 우수한 개체 변이를 남기는 자연의 법칙이 '자연선택'이다.
 다윈은 자연 선택의 단위를 개체라고 하였다. 20세기의 많은 진화론자들도 이 견해에 동조하였는데, 예를 들어 에른스트 마이어는 "전체로서의 개체,…… 삶의 모든 단계에서의 개체"가 선택의 단위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자연 선택은 무수히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 없이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진화는 변이를 필요로 한다. 변이를 일으키는 단위는 유전자이다. 그러나  개체는 단지 성장하고 번식하며 죽을 뿐이지 진화하지는 않는다. 진화적인 변화는 상호 작용하는 생물 개체의 집단 속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진화를 일으키는 단위는 종이다. 즉 유전자가 변화하여 개체가 선택되고, 그로 인하여 종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진화는 '생태계의 이익'이나 '종의 이익'을 인식하지 않으며, 조화나 안정성이란 무수한 개체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간접적인 결과이다. 선택의 단위는 바로 개체이고 생존을 위한 투쟁은 개체간에 일어나는 문제인 것이다.

2) 집단 선택(Group Selection)
 스코틀랜드의 생물학자인 V. C. 윈 에드워즈는 그의 저서인 『사회 행동과 관련한 동물의 분산』에서 최소한 사회 행동의 진화에서는 선택의 단위가 개체가 아니라 집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딜레마에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했다. “만약 개체가 오직 생식상의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만 투쟁하는 것이라면, 그토록 많은 숫자의 종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맞춰 그 개체 수를 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 전통적인 다윈주의적 입장은 먹이, 기후, 포식이라는 외부 압력에서 대답을 구한다. 즉 일정 숫자의 개체가 먹이를 얻게 되면 다른 개체들은 굶주리기(또는 얼어죽고 먹히기) 때문에 개체 수가 자연스럽게 조정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에드워즈는 동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의 제약을 측정하고 그 제약에 맞춰 스스로 번식을 조절함으로써 자기들의 개체 수에 균형을 잡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사고 방식이 다윈이 주장한 '개체선택'에 위배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왜냐하면 다수의 개체가 그들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의 생식을 포기하거나 제약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에드워즈는 대부분의 종이 다소간 다수의 별개 집단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일부 집단은 자신들의 번식을 조절하는 방법을 전혀 진화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집단에서는 개체선택이 최고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그 집단은 조건이 바람직한 시기에는 개체 수를 늘려 번성하지만, 불리한 시기에는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어 심각한 피해를 입거나 심지어는 멸종할 수도 있다. 한편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개체가 자신들의 번식을 희생하는 조절 시스템을 발달시키는 집단도 있다. 이러한 집단은 좋은 시기에도 나쁜 시기에도 생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주장대로라면 진화는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이지 개체간의 투쟁이 아니다. 그리고 집단이 각 개체의 이타적 행동에 의해 자신들의 개체 수

를 조절한다면, 그 집단은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사회 조직이라는 것은 전진적 진화를 하는 능력과,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체로서 완성되어 가는 능력을 가진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그는 이러한 관점으로 대부분의 동물 행동을 재해석했다. 즉 환경이란 생식을 위한 차표를 어느 한정된 매수만 인쇄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들은 상습화된 경쟁이라는 정교한 시스템을 통해 차표를 얻기 위해 서로 싸운다. 육생종의 경우에는 한 구획의 땅이 한 장의 차표에 상응하기 때문에 동물들(대개 수컷)은 그 구획에 대해 일정한 태도를 취한다. 이 싸움에서 진 쪽은 패배를 인정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주변부로 물러난다.
 우열 관계의 계층 구조를 갖는 종의 경우에 차표는 장소에 따라 적절한 숫자만큼만 할당되기 때문에, 동물들은 순위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인다. 그 경쟁은 주로 위협이나 엄포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차표를 둘러싼 경쟁을 벌일 뿐이다. 이러한 경쟁은 누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제비뽑기와 같은 것으로서, 적정한 매수의 차표를 나누어주는 것이 누가 이기는가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에드워즈는 "경쟁의 상습화와 사회의 확립이란 실제로는 동일하다"라고 하였다.
 그는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거나 함께 모여 지저귀는 등의 단체 행동이 개체 수 조사를 위한 유효한 장치이며, 이 장치는 집단선택을 통해 진화한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새의 울음소리, 여치와 귀뚜라미 그리고 개구리가 내는 진동음, 물고기가 물 속에서 내는 소리, 반디의 명멸 등도 그런 장치에 속한다고 말했다.
 에드워즈의 책이 출판된 뒤 다윈주의자들은 그를 공격하였다. 에드워즈의 관찰 자체는 대부분 인정했지만, 오히려 그 사실들을 개체 선택의 실례로 재해석하였다. 만약 수컷과 암컷의 성 비율이 50 : 50이고, 성적 경쟁

에서 성공한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독점한다면 일부 수컷은 자손을 번식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모든 개체는 조금이라도 많은 유전자를 자손에게 전한다는 다윈적인 상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따라서 진 쪽도 자신의 희생이 공통의 이익을 높인다는 사실에 만족해서 기꺼이 그곳을 떠나는 일은 없다. 그들은 그저 패했을 따름이다. 운이 좋으면 다음 번에는 이길지도 모른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 잘 조절된 개체군이 탄생할 수도 있지만, 그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개체간의 투쟁인 것이다.

3) 혈연 선택(Kin Selection)
  집단 선택에 반대하는 것으로 개인적인 이익이 아닌 이타주의적 행동도 살아 남은 가까운 혈연을 통해 유전자를 전파한다는 이기적인 장치인 '혈연 선택'(kin selection) 이론이 주장되었다. 영국의 이론 생물학자인 W. D. 해밀턴은 1964년에 “사회 행동의 유전적 진화”라는 논문에서 '혈연 선택'을 주장하였다. 그의 이론을 요약하면 '혈연자를 돕는 행동을 야기하는 유전자는 선택 상 유리하며 개체군에 퍼질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즉 혈연 이타주의가 동물계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것은 모든 동물이 그런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전자는 처음에는 적어도 긴 선택 사이에 그렇지 않은 유전자를 밀치고 개체군에서 퍼지게 된다.
 해밀턴에 따르면, 자기를 희생하여 혈연을 돕는 이타적 행동은 적어도 그것을 행하는 개체에게 손실을 주지만, 그 개체의 유전자에서 보면 이타적 행동은 득이 된다. 따라서 개체가 하고 있는 이타적 행동이란 실은 유전자에게는 이기적인 행동이 된다.
 인간의 염색체들은 쌍으로 이루어져 있어 염색체 쌍의 한편은 어머니의 난자에서, 다른 한편은 아버지의 정자에서 온다. 형제 자매는 보통 평균적으로 유전자의 절반 가량을 공유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의 책 『다윈 이후』에서 이런 예를 들어서 혈연 선택의 입장을 설명하였다. “4형제가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괴물이 다가오고 있다. 그 중 한 사람만이 그 괴물을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그 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다른 형제들을 구하고 자기를 희생할 수 있고, 반대로 자기 혼자만 달아날 수 있다.” 굴드는 이럴 경우 다윈 식으로는 용감하게 맞서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목숨을 잃지만, 자신의 1.5배를 대표하는 나머지 3형제가 살아남게 됨으로써 자기를 희생한 그 사람의 유전자 150퍼센트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셈이 된다.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할 가능성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에 외관상으로 이타적인 그 사람의 행동은 유전적으로 보아서는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4) 유전자 선택(Gene Selection) - 유전자 결정론(환원주의적 시각)
 혈연 선택이 선택의 단위가 '집단'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명이었던 반면 훨씬 극단적으로 환원주의적인 주장이 1976년에 영국의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선택의 단위는 유전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개체를 선택의 단위로 생각하는 다윈주의적 관점을 버리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하는 요점 중의 하나는 우리들 인간, 그리고 다른 모든 생물들은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라는 것이다. …… 진화를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자연 선택은 가장 낮은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말속에 있다. …… 자연 선택 또는 이기주의의 기초 단위는 종도 집단도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개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모든 종류의 생물)는 그들(유전자들)의 생존 기계 - 유전자라고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도록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전달자이다.

 도킨스는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눈먼 시계공』에서도 그의 주장을 얘기하였다. 도킨스에게도 유전자는 선택 이론의 핵으로 등장한다. 그는 『눈먼 시계공』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자연 선택의 과정에서 유전자들은 항상 저들이 속한 환경 속에서 번성하는 능력에 의해 선택된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환경을 포획자와 기후를 포함한 외부 세계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개개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환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마 각 유전자가 만나는 다른 모든 유전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와 만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대부분은 잇단 개체의 몸 세포들 속에서 만난다. 유전자는 이 몸 세포들 속에 있다. 각 유전자는 몸속에서 만날 확률이 높은 다른 유전자 집단과 성공적으로 협력할 능력이 있을 때 선택된다.

 여기서 유전자란 대체로 복제자를 뜻한다. 도킨스는 생식 행위를 통해 만들어지는 생물체를 이 복제자와 구별했다.
 그렇다면 사회생물학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생물체로 하여금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유전자이다. 생물체는 그들의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해 모든 가능한 짓을 다한다. 한 생명체는 유전자들의 이기주의에 봉사하고 이 유전자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러한 유전자 결정론은 거꾸로 사회적 행동의 여러 측면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도킨스의 입장에 따르면, 진화는 저마다 더 많은 자신의 복제를 획득하려는 유전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이다. 그는 생물을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존하도록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로 본다. 또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여러 현상들도 유전자 이기주의의 결과로 돌린다. 이 생존 기계는 자신의 적응도를 극대화시키는 원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도킨스는 진화를 이기적인 유전자의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보았다.

2. 유전자 선택에 대한 비판적 고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개념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비판이 있다. 여기서는 스티븐 제이 굴드와 프란츠 부케티스의 입장을 살펴보자

1)스티븐 제이 굴드의 입장
 스티븐 제이 굴드는 도킨스의 주장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하였다. 아무리 큰 힘을 유전자에 부여한다 하더라도 유전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유전자가 자연 선택에 직접 노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선택은 유전자를 직접 볼 수 없고 유전자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직접 고를 수 없으며, 그 매개체로서 생물의 신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세포속에 숨겨진 DNA의 지극히 작은 조각인데, 선택이 보이는 것은 생물의 개체이다. 선택이 어떤 개체를 선호하는 것은 그 개체가 특정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굴드의 입장에 따르면, 특정 형태에 관여하는 개별 유전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유전자들이 서로 협동해서 신체의 거의 대부분을 구축하기 때문에 모든 생물의 몸은 개별 유전자에 의해 구축되는 각 부분으로 분해될 수 없다. 그러한 유전자 작용은 변화 무쌍한 일련의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몸의 일부분은 유전자가 변형된 것이 아니며, 선택은 각 부분에 직접 작용하지도 않는다. 선택은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여러 부분들이 전체적인 조합으로 그 생물에게 유리함을 주기 때문에 생물체를 그 전체로서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한다.
 굴드는 도킨스의 이론이 서구의 과학적 사고에 얽혀있는 몇 가지 악습인 원자론, 환원주의, 결정론 등에서 유래했다고 하였다. 그것은 전체란 모두 기본적인 단위로 분해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미시적 단위의 고유 성질이 거시적 결과를 낳으며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그리고 모든 사건이나 사물을 명백하고 예측 가능하고 결정적인 원인을 갖는다는 사고 방식이라고 하였다. 그는 생물은 유전자들의 융합 이상이고, 몸의 여러 가지 부분은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하며, 몸은 선택에 노출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변형되는 식으로 작용하는 수많은 유전자들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굴드는 인간에게 있어서 사회적 행동은 인간의 유전자 구조가 폭넓은 행동양식을 허용하여 교육, 문화, 계층, 지위, 자유의지라는 무형적인 요소들이 인간의 유전자가 허용하는 광범위한 행동의 영역에서 어떻게 행동을 재현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하였다.

2) 프란츠 부케티스의 입장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프란츠 부케티스는 『사회생물학 논쟁』에서 그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회생물학 논쟁』은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에 내제된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부케티스는 사회생물학 논쟁의 배경과 원인을 비판적으로 규명하였다. 그는 사회생물학이 사회·문화적 과정들을 오직 유전자 극대화의 원리로만 설명하려고 할 때 환원주의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고 하였다.
 부케티스는 먼저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줄리앙 드 라메트리의 『기계인간』이란 책을 언급하였다. 라메트리는 인간이 하나의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회생물학이 인간을 '유전 기계'로 규정하는 한 라메트리의 명제와 사회생물학 사이의 연결고리는 뚜렷해진다고 하였다.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기초를 얻는 것은 아직 쉽지 않다. 부케티스는 사회생물학자들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모델일 뿐이고, 그 모델들도 결국에는 유전학과 생물 진화에 대한 보다 광범위하고 심오한 통찰을 통해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사회생물학자, 유전학자, 생태학자들이 함께 하는 학제적 공동 연구라고 하였다. 또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고도로 복잡한 시스템 속성으로서 그것은 전승된 규범, 가치관, 관습 등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하였다.
 부케티스에 따르면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는 하나의 메타포이다. 그것이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다양한 관점을 한 곳으로 모으는 데는 적합하겠지만, 인간을 총체적인 본질에 따라 규정해야 하는 일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인간이 명령하고 조종하며 조작하는 유전자들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생물학이 생물학적 지식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하였지만 이러한 지식들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대신 유전자만을 그려서 보여주는 환원주의적 인간상의 차원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하였다.

3. 유전자 결정론과 관련된 환원주의에 대한 논의
 환원주의는 복잡한 현상의 원인을 보다 단순한 현상에서 구하는 것으로서 복잡한 구조와 속성이 부분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환원주의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함께 근대과학의 중심적인 특성으로 자리잡았다.
 환원주의는 생물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생물학에서 환원주의는 19세기 중반에 기존의 자연철학의 생기설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나왔다. 급진적인 유물론적 환원론자들은 생명현상을 그 생명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의 물리적, 화학적 설명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기계적이고 환원적인 접근은 생물에 대한 미시적인 눈을 제공함으로써 생체분자를 규명할 수 있었고 생물의 독립적인 기능단위인 세포를 발견하게 하였다. 세포학의 도입은 생물학을 탄탄한 기초 위에 올려놓았고 생물학 발전의 획기적인 장을 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생물학의 발전은 20세기 초 슈뢰딩거가 생물학에 양자역학을 도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양자역학자로서 그의 기계론적 환원주의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생명현상을 물리적, 화학적 상호작용으로 환원하는 경향은 분자생물학의 기본 주류가 되었다.  더불어  유전정보의 매개체인 DNA의 발견과 구조결정, 그리고 유전정보전달의 기전 규명으로 생명과학은 혁명적 도약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이와 같이 근대과학의 환원주의는 생명현상의 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돌파구와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환원주의는 분석적이고 부분에서 전체로의 상향접근식의 방법론으로 생명현상의 종합적인 이해를 간과하는 결과를 낳았다. 전일적인(Holistic)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은 전체는 근대물리학적 개념의 부분의 특성과 그 특성들의 조합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부분의 이해에만 집중한 환원주의적 시도는 나무를 보지만 숲을 보지 못하고, 숲을 보지만 그 숲을 둘러싼 구름과 바람을 보지 못하는 오류에 갇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물리학적 개념에 입각한 환원주의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그 부분을 둘러싼 다른 부분들의 복잡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모델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체의 특성은 모델화된 최소단위의 특성보다는 각 부분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혹은 외부환경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을 보더라도 수학적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분자는 수소와 같은 작은 분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생명과 같은 복잡한 계에서는 - 여러 가지 기능들이 상호관계를 맺고 있어서 - 그중 한 요소를 다른 것들과 따로 떼어 양자역학의 원자와 분자의 구조론 및 결합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고 그것을 거시적인 자연현상으로 연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명체가 외부조건에 변화와 상관없이 고도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특성 또한 환원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생리조절 기능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현상의 연구에 있어서, 생물체의 거시적인 행위를 기계론적 환원주의로 표현한다면 생명의 본래의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에 관한 미시적 눈을 제공했던  환원주의는 폐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칼 포퍼는 철학적 환원주의와 방법적 환원주의를 구분하면서 서구과학적 세계관의 오류를 지적하면서도 무조적적인 환원주의의 부정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그는 세계관으로써의 환원주의는 문제이지만 방법론으로써의 환원주의는 미시적인 세계의 이해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생명을 무조건 물리화학적 상호작용으로 환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세포로, 유전자로,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적 과정의 대상으로 나누어 그 특성과 전체의 특성간의 상호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은 아직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종덕은 환원주의가 존재론적 환원주의, 인식론적 환원주의, 방법론적 환원주의로 구분된다고 하였는데, 그도 또한 포퍼와 마찬가지로 환원주의를 무조건 배격하는 풍조를 비판하고, 과정적 방법으로서의 환원주의는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이상원은 인식론적 환원주의와 존재론적 환원주의를 구별하였다. 그는 이렇게 예를 들었다. "인식론적 환원주의자는 사회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개체들의 단순한 합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인간 개체들 각각이 갖는 모든 속성들을 합쳐 놓아도 새로운 단위와 전체로서의 사회가 갖는 모든 속성이 고스란히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행동에 대한 사회생물학의 환원주의적인 주장은 인식적 허구이지 존재론적 실재가 아닌 것이다."
 환원주의는 근대과학과는 필수불가결한 관계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근대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단지 환원주의가 방법적인 범주를 벗어나, 근대과학에 의한 부분의 특성을 생명전체와 절대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해석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환원주의가 그러한 결정론적 세계관을 극복한다면 근대과학이 이제까지 이루었던 여러 장점들을 지속시킬 수 있는 유효한 방법론으로써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스를 대는 데만 매우 익숙한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은 이러한 구분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극단적인 사회생물학자의 경우는 보다 더 심하다. 그는 생물체의 생물학적 행위는 종을 존속시키는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다윈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그 종의 이기적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사회적 가치의 문제, 즉 선과 악의 문제를 유전자로 환원시키고 있다. 생물학적 체계, 즉 몸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한 보조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다. 현재 생명공학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양, 원숭이 등의 동물복제가 가능해졌고, 그 문제는 인간에게까지 돌아오고 있다. 생명공학이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전자 결정론은 위험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인간복제의 경우 환원주의에 입각한 유전자 결정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육체적으로 동일한 인간이 정신적으로도 동일한 것처럼 곡해될 수 있다. 그러나 복제의 가역성은 유전자가 동일한 또 하나의 개체를 만들 수 있다는 과학적인 의미에서의 가역성이지 사회적, 철학적 의미에서의 가역성은 아닌 것이다. 즉 유전자가 동일하다고 해서 똑같은 사회적 행위를 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물론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비슷한 생각의 패턴을 지니거나 동일한 직종에 종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들이 유전자가 사회적 행위에 대하여 일정정도의 영향이 있다는 증거는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유전적 특성이 사회적 행위를 결정하고, 통제한다는 결정론적인 증거는 될 수 없다.
 에드워드 윌슨은 유전력은 인간의 행동적 특성-내향성-외향성 정도, 개인적인 성향, 정신적-육체적 운동, 신경증, 우세성, 우울증 등-에  영향을 미쳐 결국 사회들 사이에 문화적 차이를 유도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유전적 영향에 의한 문화적 차이의 양이 얼마 정도인지를 알기 위한 노력은 사회학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다. 윌슨의 경우는 인간행동에 있어서 비유전적 학습의 역할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리처드 도킨스는 보다 더 극단적이었다. 그는 사회적 행위의 문제를 유전학적인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신체란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계획된 생존 기계일 뿐이므로 사회적 행위 또한 이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투쟁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진화는 집단 내 대립 유전자간의 투쟁이며 유전자의 목표는 집단 내의 확산이며 상대 유전자를 물리쳐 번식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타, 공격적 행동, 모성애, 성 행동, 부부애, 그리고 간음에 이르는 모든 행동은 유전자 수준에서 결정되어 있는 행동패턴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유전적으로 결정되고 통제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생물학적 잠재력을 주장하였다.
 사회생물학은 인간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하였지만, 그것이 행동의 형질에 특정한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환원주의적이고 결정론적으로 흐른다면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많으며, 그렇게 되면 사회적·철학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게 된다.  

Ⅲ. 결론


 지금까지 자연선택의 단위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들을 간단히 살펴보고, 그 중 유전자 결정론을 중심으로 비판적 고찰을 하였다.
 도킨스의 주장은 생물학결정론(생물학주의)의 입장인데, 생물학결정론은 환원론적 주장을 담고 있다. 생물학결정론은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과 사회적 행동은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규정한다. 생물학결정론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생물학적 특성으로 완전히 환원시켜 버리고, 유전자에 의해 유일하게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유전자 결정론의 환원주의적 시각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굴드는 생물이 유전자들의 융합 이상이고, 몸의 여러 가지 부분은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하므로 유전자라는 작은 단위로 전체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인간을 분자 수준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개체로서 생각해야 한다고 하면서 유기체론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그는 자신의 통일적 전체성에 대한 직관이 옳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는데, 그는 바로 전일적인 세계관을 지닌 사람이다. 부케티스는 사회생물학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유전자만을 생각하는 환원주의적 차원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고 하였다.
 도킨스의 사회생물학적 입장이 복잡한 형태의 원인을 유전자의 행동에서 찾고 개별적인 행동 방식에 대한 책임을 확인할 수 없는 유전자에게 떠넘기는 한 환원주의적일 수밖에 없으며, 환원주의의 비판은 바로 도킨스의 주장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의 환원주의적 시각이 비판받고 있지만, 제레미 리프킨은 『바이오테크 시대』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유전자 결정론적으로 나아갈 것처럼 그리고 있다. 현재 생명공학이 극도로 발달하고 있고,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그러한 연구로 인하여 인간 행동의 원인을 찾고 인간이 암, 당뇨병 등의 질병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  

오늘날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은 자연을 환원주의적 입장에서 보고 자신들의 임무는 생물 유전자를 지속적으로 편집, 조합, 그리고 다시 프로그램화하여 인간을 위해 이용할 수 있도록 좀더 순종적이고 효율적이며 유용한 유기체를 창조하는 위대한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그들은 종종 통합보다는 고립을 , 결합보다는 분리를, 그리고 관리, 육성하기보다는 자연에 대하여 힘을 행사하거나 세력을 확장하기를 좋아한다.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번역하여 소개했던 이병훈은 사회생물학이 사회행동이 어떻게 발달했고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지 결코 그러한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목표의 학문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사회생물학이 가정했던 유전자들은 최근 분자유전학의 발달로 거의 구체적인 실체로서 드러나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를 희생시켜 무한정 증식하려는 이기적 유전자, 공격성 유전자, 동성애 유전자 등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고 하였다.
 유전자 결정론의 환원주의적 시각을 무조건 비판해서도 안되겠지만, 그것은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많고, 인종차별에서 나아가 유전자 불평등까지도 유도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우리 사회가 유전자 결정론적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유전자 결정론의 환원주의적 시각에 대해 더욱 철저한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겠다.







《 참고문헌 》


과학사상 1993년 겨울호 : 이병훈 "진화론의 현대적 이해"


과학사상 1997년 가을호 : 김기윤 "근대생물학에서 본 생명관"


나카하라 히데오미 사가와 다카시, 『이기적인 유전자란 무엇인가 - DNA는 이기주의자!』, 전차과학사, 한명수 옮김, 1994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인 유전자』, 두산동아, 이용철 옮김, 1997(초판 6쇄)


서유헌 홍육희 이병훈 이상원 황상익 공저, 『인간은 유전자로 결정되는가』, 명경, 1995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범양사, 홍동선 홍욱희 공역, 1988


스티븐 제이 굴드, 『판다의 엄지』, 세종서적, 김동광 옮김, 1998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Ⅰ』, 『사회생물학 Ⅱ』, 민음사, 이병훈 박시룡 옮김, 1992


오진곤, 『과학사총설』, 전파과학사, 1996


제레미 리프킨, 『바이오테크 시대』, 민음사, 전영택 전병기 옮김, 1999


찰스 로버트 다윈, 『종의 기원』,홍신문화사, 홍성표 옮김, 1994(초판 13쇄)


찰스 로버트 다윈/리처드 리키 새로 고쳐씀, 『종의 기원』, 한길사, 박영목 김영수 옮김, 1994


최종덕, 『부분의 합은 전체인가』, 소나무, 1995


프란츠 부케티스, 『사회생물학 논쟁』, 사이언스 북스, 김영철 옮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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