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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의 삶에 있어서 영성의 문제




1994년 6월 19일 (23) / 김경재 목사




크리스챤의 삶에 있어서 영성의 문제




야고보서 1장 27절 한구절만 읽습니다. 이 구절은 장공 김재준 목사님께서 소위 히브리적 영성의 마그나 카르타라고 말씀하시던 구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개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영성이 말로 설명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우선 듭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는 말도 있고, 중세 신비가들도 영성의 깊은 문제에 들어가면 될 수 있는데로 말을 하지 않다는 것이 관례이고, 불교 같은데도 선종 쪽에서는 불입문자라해서 문자, 글, 말, 언어성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서는 드러내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영성의 문제를 우리가 말로서 말을 매개로 해서 한시간동안 생각해본다는 자체가 상당히 제한이 있고 한정이 있습니다만, 그렇지만 언어성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고 또 성경은 기본적으로 말씀의 신앙위에 서 있기 때문에, 그 한계를 느끼면서도, 언어를 가지고 영성문제를 몇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영성(靈性, Sprituality)의 바른 이해


1. 영성이란 영이신 하나님과 그 분의 형상을 닮아 지음받은 인간과의 분리할수 없는 관계성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생명의 자기-초월성과 초월적인 것의 내재성을 말합니다.

창세기의 인간창조설화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흙으로 지음받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生氣,너샤마)을 불어 넣으시니 '살아있는 생명체'(生靈,네페쉬 하야)가 되었다(창2:7)고 나옵니다.

인간은 본래 영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만이 영이시라고 그리스도교 인간학은 출발합니다. 인간은 본래, 흙이요 먼지, 곧 생물적-심리적- 정신적 존재이지만 영은 아닙니다. 인간에게 영성이 인간생명현상의 특징으로서 나타나는 근거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영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본래는 자성(磁性)을 지니지 않던 쇠붙이가, 자기(磁氣)를 지닌 물체와 접촉 관계함으로서 자기감응(Magnetic induction)을 일으켜, 자성(磁性)을 지니게 되는 것과 비교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있는 한, 그는 영성적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영성은, 인간이 자기 소유형태로 지니고 있는 인간 그 자신의 인간학적 자질이거나 재능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내주와 사귀임 속에서 관계형태로서만 끊임없이 형성되는 은총의 선물이자 과제인 것입니다.


2. 인간의 영성은, 인간성의 신비요 비밀인 '하나님의 형상'이 꽃피고 실현되는 가운데서 드러납니다. 인간은 누구나 모두 영성적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적 현존과 생명의 입김의 텃치를 받고있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성은, 특별한 영적 은사 곧 방언, 신유, 예언, 환상, 묵시등등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한 인간성 바로 그 자체가 인간의 영성이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인간의 영성은 그러므로 인간 재능의 어느 특수한 자질이거나, 인간 존재의 어떤 특정 부분이 아니라, 총체적 인간이 창출해내는 총체적 인간의 생기있는 삶입니다.


3. 인간의 영성은 경건성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경건성'이라는 개념이 다분히 도덕적 개념으로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에, 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인간의 영성은 인간현상의 다른 측면들 곧 지성, 감성, 덕성들을 통하여 발현되지만, 영성은 인간의 지성-감성-덕성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성은 초월자와의 수직적 관계성 안에서, 평면적 인간 속성을 항상 초월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지금까지의 인간 영성에 대한 종교현상학적 서술을 요약하건데, 영성은 인간의 본성 속에 이미 현재하는 '초월의 내재'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맘데로 처분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관계성 안에서 발현되어야 할 '초월의 강림'이며, 이에 응답하는 인간의 모습으로서 '자유와 사랑 안에서 춤추는 하나님의 형상의 구체화'라는 것입니다. 중국 한문글자 영성(靈性)이라는 글자가 그것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교 영성의 특징


영성은 모든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양식이자, 인간성의 가장 심원한 비밀이기때문에, 모든 종교들은 다 영성적입니다. 그러나 세계종교는 문화, 역사, 전통의 영향 안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다운 영성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특징을 다섯가지만 지적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성령 안에서 '자유와 사랑의 영성'입니다. 그것의 기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의 신비를 닮음이며, 그 구체적인 삶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낸 영성입니다.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하신 자유와 사랑 안에서 영원히 충만한 사귀임과 창조행위 안에 있는 신비자 입니다. 인간의 영성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러한 신적 속성을 닮아 '사랑과 자유 안에서 사귀이고 창조하는 충만한 삶' 그것입니다. 그 구체적 원형모델이 곧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골1:15, 2: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은 한마디로 '예수의 생명을 닮아 사는 영성'입니다. 예수를 따라, 그의 계명을 기쁨으로 실천하는 제자직의 영성입니다.


2. 둘째, 그리스도교적 영성은 '성육신적 영성'의 오리엔테이션을 갖습니다. '성육신적 영성'이란, 말씀이 육신을 입어 그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생명과 빛이 충만하듯이,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전되는 영성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영원과 시간,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하늘나라와 세상역사, 등등이 이분법적인 분리와 갈등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전되는 영성입니다. 몸과 육체성의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며, 단순한 지속이 아니라 창조적 변화이며, 동일차원의 장소이동적 변화가 아니라 차원이 달라지는 생명의 질적 형태변화까지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이 은혜 안에서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성화시키며, 마침내 영화시킬 것을 믿는 영성입니다.


3. 셋째, 그리스도교 영성은 '순례자의 영성'으로서 궁극적 희망 안에서 만물이 변하며, 아직 그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음을 아는 영성입니다. 순례자의 영성은 '이 세상 안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의식'입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우상숭배적 이념과 가치관에 메몰되지 않고 '예언자적 비판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자유'를 지켜내는 복음의 자녀들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순례자들의 영성'은 세상 도피적이 아니라, 강력한 윤리적 참여와 공동체적 사회의 실현을 위하여, 이 역사의 악과 불의에 대하여 비판적 사랑의 저항을 한다는 말입니다. 순례자의 영성은 자연히 공동체적 영성입니다. 신앙을 개인의 내면성의 문제로, 또는 사적인 문제로, 또는 생의 변두리의 문제로 환원시키지 아니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성은 삶의 한 복판에서 초월을 추구합니다.


4. 넷째, 그리스도교 영성은 '말씀의 영성'입니다. 말씀의 영성은 로고스의 영성이며, 항상 인간의 황홀한 신비체험 속에서도 말씀 안에서 자신을 망실치 않게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응답하는 영성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언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체험했던 신앙의 선배들이, 기록하고 증언하고 전승해온 성경에 뿌리 박은 영성입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다른 종교의 경전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자기의 구원경륜과 지혜를 말씀하셨다고 열린마음을 지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말씀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현존하고 역사한다고 믿습니다.


5. 다섯째,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의 형성'을 위해 오늘도 일하는 영성입니다.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의 형성은 기독교 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교회중심주의를 넘어서서, 만유를 그리스도의 심장을 중심으로 유기체적 몸으로 형성해가는 영성입니다. 하나님-인간- 자연은 각각 구별되면서도 분리되지 않은 채, 창조의 영 안에서 생태학적 우주적 한 몸을 이루어간다는 동체의식을 지닙니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게 되는 그 날'(고전 15:28)이 올 때까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지어가는데 삶의 궁극적 의미를 두는 영성입니다.


[3] 영성체험에서 '상보성 원리'와 '반대일치의 역설' 의 중요성


인간이란 영성적 존재이기에 영물이며, 영성적 생명현상은 흔히 논리적 정합성이나, 언어적 명료성으로서 설명될 수 없는 현묘한 생명체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이분법적, 주체객체의 대립구조'를 가지고서는 참된 영성적 생명현상의 체험을 이해 할수도 없고 표현 할수도 없습니다.


1. 성숙한 영성체험은 '개체생명 구원과 전체생명 구원'이 동시적이고 상보적입니다. 개인이 독립된 인격성과 고유한 자기 정체성을 확고하게 확증받고 구원 받는 일과, 개체성이 그 안에서 형성 되는 전체생명, 전체 사회, 전체 역사의 구원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같은 운명인 것입니다. 개인구원없이 사회구원은 없습니다. 개인구원없이 사회구원만 추구하면 전체주의 사회가 생깁니다. 사회 구원없이 온전한 개인 구원 또한 없습니다. 땅 위에 구원 받지 못한 작은 한 사람이 버림받고 있는 한, 하나님의 구원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불교의 한 경전인 유마경엔 '중생이 병들어 앓으니 보디사트바 또한 앓고, 중생의 병이 나으니 보디사트바(보살)의 병이 쾌유하도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영성을 지닌 자는, 자기 생명은 자기 개인의 소유가 아님을 알며, 자기 재산도 재능도 자기 개인의 것이 아님을 알고, 전체생명인 이웃들과 나눔의 삶을 삽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한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다른 생명들의 희비애락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야 합니다. 한송이의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 온 우주가 관여하고 있음을 예민하게 느끼는 감수성에 눈 뜨야 합니다.


2. 성숙한 영성체험은, 체(體)와 용(用), 진리와 은혜, 이(理)와 기(氣), 역동적 생기와 형태적 형식, 등등이 서로 떨어질 수 없고, 혼동될 수 없고, 서로가 서로를 의존하여서만 현실적일 수 있음을 깨닫고, 중용의 자리에서 그 역설적 일치를 체득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배의식, 성경의 문자, 예술표현의 기법과 형태, 사회법, 자연의 법칙 등은 성령의 역동적 활동, 예술가의 샘솟는 영감, 민중의 곤고한 한과 희망, 자연의 놀라운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가로 막거나 억압하는 역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모든 예배순서 의식이나 언어를 버린 절대 침묵의 예배, 일체형식을 부정한 혼돈의 예술, 무정부주의, 자연의 카오스 또한 악마적입니다.

성숙한 영성을 지닌 자는 문자, 의식, 형태, 법칙에 매이지도 아니하고 부정하지도 아니합니다. 그는 그것들을 통하여, 그것들을 넘어있는 실재를 보는 눈을 가집니다. 역설적 차원의 최고상태가 '성속일여(聖俗一如)'입니다.


3. 성숙한 영성체험은 자율과 타율의 이분법적 갈등을 넘어서고 신율적 자유 안에서 숨 쉽니다. 인간의 구원은 자기의 수양과 윤리적 자기 정진 없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인간의 구원은 온전히 은헤로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이라는 전적 타자의 개입의 산물입니다. 종교에는 양면성의 정반대되는 요소가 역설적으로 일치합니다. 종교는 철저한 자기 정진과 자기부정을 요청하는 윤리적 엄숙주의를 요청합니다. 동시에 종교는 철저한 자기방기, 무위(無爲), 빈마음, 어린애다운 천진 난만성을 요청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타력구원의 종교'요, 불교는 '자력구원의 종교'라고 양분하는 사람들은 아직 기독교도 모르고 불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실제로 체험해보지 않은 이론가들의 소리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딸은 자기 병의 치유가 자기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의 은총의 능력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4] 구체적인 영적 수련의 방법들


1. 일정한 기간동안 침묵 가운데서 명상과 정관에 힘쓰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침묵, 명상, 정관은 영성수련의 기본입니다. 그 수련방법은 흐트러진 생명의 관심을 안으로 집중하고, 산만하고 산란해진 영적 감수성을 안정시키고 정화시킵니다. 호흡조절법, 정좌의 자세, 명상과 정관의 태도는 영성수련에 도움을 줍니다.


2. 정한 시간에 성경 읽기와 기도하기를 양분을 취하고 공기를 마시듯이 해야 합니다.

생물학적 몸이, 양분과 공기를 필요로 하듯이, 인간의 속사람의 영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종은 계속 주기적으로 타종함으로서만, 맑은 제소리를 내듯이, 인간의 영성 또한 그러합니다. 이른 새벽, 또는 저녁 잠들기 전, 또는 수요기도회 시간, 또는 목적지에 도착한 직후 어느 때든지 마음 속으로 기도는 영적 호흡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조금씩이라도 항상 읽고 명상하는 훈련이 좋습니다.


3. 생활습관을 가능한 단순하고도 단아한 품위를 지닐수 있도록 가볍게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최대의 적은, 밖으로부터 오지 않고 안으로부터 옵니다. 겉치례, 물질과 시간과 재물의 낭비, 사치스러움, 번거로움안에서 영성이 영글지 않습니다. 단순성은 최고의 예술이며, 정결함과 거룩한 숭고성을 추구해갔던 신앙인들의 단아한 품성은 숙성된 포도주의 향기와 같습니다. 잘 빚어진 술은 어두운 그늘에서 익습니다.


4. 몸의 훈련과 육체노동, 자연과 사물의 바닥을 경험하는 일은 굳어진 영성의 피부를 부드럽게 합니다.

자연 그 자체와 가깝게 하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흙과 친해지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자연을 관광자원으로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되는 경험을 기다립니다. 숲은 최초의 성전이었음을 기억합시다. 높은 산 깊은 골의 등정체험 또한 좋습니다. 서민들의 시장, 병원, 장례식, 사회의 그늘진 곳을 체험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5. 종교적 영성의 목적은 '지금 - 여기'에서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생사를 초탈하여, 이제 지금 내 목숨이 끊어져도 나는 죽지 않는다는 평안한 확신의 자리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위대하다거나 시시하다거나, 그런 등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들이 위대하고, 아름답고,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득도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종교적 영성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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