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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5/08/07 (22:00) from 129.206.196.68' of 129.206.196.68' Article Number :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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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론, 철학의 세속화인가 세속의 철학화인가






철학의 세속화인가 세속의 철학화인가  ....김용옥론

■ 이상수  한겨레21 기자
 



Contents
1. 인연분(因緣分)
2. 길은 작은 성취에서 가려진다
3. 키치인가 철학인가
4. 지식의 시대에서
지혜의 시대로
5. 철학의 세속화와
세속의 철학화


1. 인연분(因緣分)

내가 김용옥의 글을 처음 접한 건 87년 봄이다. 그때 난 사회혁명을 꿈꾸며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우연히 신문을 들췄는데 거기 공안당국이 발표한 ‘금서 목록’이 있었다. 전두환과 그 졸개 파시스트들이 정한 금서라면 반드시 찾아 읽어야 직성이 풀리던 당시의 나로서는 공안당국의 금서 목록이야말로 내가 뭘 더 찾아 읽어야 할지를 알려주는 참으로 유익한 정보였다. 다른 금서들은 이미 읽은 것이거나 내용을 짐작할 만한 것이었는데, 유독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책이 한 권 끼여 있었다. 제목은 《루어투어 시앙쯔》.

당시 내 일당은 4200원이었고 책값은 상·하권 각각 4000원이었다. 나는 내 이틀치 일당을 기꺼이 털어 이 책을 구했다. 안양 시내에 있던 경기서점 주인 아저씨는 이런 금서를 다락에 따로 잘 모셔뒀다가 아는 얼굴이 찾으면 목소리 죽이며 은근히 내주곤 했다. 밤 10시까지 잔업, 또는 새벽 3시까지 철야를 되풀이하던 중노동의 나날, 나는 이 예외적인 금서를 밤을 꼬박 새워가며 사흘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은 중국 현대작가 라오서(老舍)가 쓴 《루어투어 시앙쯔(駱駝祥子)》라는 소설을 김용옥의 부인 최영애 연세대 교수가 옮기고 김용옥이 ‘잔잔한 미소, 울다 울다 깨져버린 그 종소리─최근세사의 한 반성으로’라는 장문의 ‘푸는 글’을 덧붙인 독특한 성격의 책이었다. 특히 김용옥의 ‘푸는 글’로 인해 이 책은 단순한 번역소설이란 장르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 책이 금서가 된 까닭은 단순했다. ‘적성국가’인 ‘중공(中共)’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공안당국의 심모원려 덕분에 나는 공장 다니던 시절 김용옥의 독자가 되었다. 소설도 재미있었지만, 그의 ‘푸는 글’은 당시로선 매우 참신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은 혁명의 열기로 가득찼던 당시 한국사회에서 누구도 제기하지 못한 매우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혁명은 비판적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 일단 소수 정객에게 장악되었을 때 그 혁명에다가는 모든 비판을 마비시킨다. 과연 혁명은 이렇게 자신없는 것일까?”1)
그 뒤로도 나는, 비록 금서는 아니었지만, 그의 책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여자란 무엇인가》, 《절차탁마 대기만성》 등을 계속 찾아 읽었다. 그의 글은 자신의 다른 책들을 계속 찾아읽지 않으면 못 배기도록 만드는 매우 효과적인 자가 선전 장치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40대의 소장학자로서 뿜어낸 언설 가운데 몇 가지 명제는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다음의 구절들은 그의 책에서 어느 80년대 공장 활동가가 인상깊게 읽은 것들이다.

“역사에 뿌린 피는 말러버리는 법이 없다.” (《루어투어…》, 윗대목 73쪽) “이론이 없는 실천은 결국 이론이 있는 실천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동양학…》, 70쪽) “생각이 참으로 깊어지면 실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절차탁마…》, 5쪽)
이런 정도의 구절이 김용옥의 본령인 것은 물론 아니다. 그의 진정한 미덕은 다른 데 있다. 고전 해석에서 조금도 모호한 구석을 남겨두려 하지 않는 솔직하고 철저한 태도, 상말과 험담도 불사하며 자신의 논지를 전투적으로 펴는 뚜렷한 주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전통을 하나로 아울러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는 대담한 스케일 등은 학자로서 그의 중요한 미덕이었다. 그런 미덕으로 말미암아 그의 책은 중국 고전 해석과 방법론 등 쉽지만은 않은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일반인에까지 독자층을 넓혀갔다. 학문을 학자들 사이의 암호체계로 남겨두지 않고 웬만한 학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낱낱이 풀이한 일은 그의 큰 공로다. 이 점을 우선 분명히 해두겠다.

그러나 그의 책에는 독자에게 호오의 감정을 동반하도록 만드는 군더더기가 늘 함께 따라다닌다. 어떤 군더더기는 그의 책이 대중에게 친화력을 지니도록 작용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글의 참맛을 가시게 만들기도 하고, 나아가 그의 철학적 작업의 성취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먼저 그가 대중화 전술로 사용한 군더더기가 어떻게 그의 철학적 성취를 방해했는지 시험삼아 한번 말해보겠다.



2. 길은 작은 성취에서 가려진다

단도직입적으로, 그의 글을 읽으며 나를 가장 아쉽게 만들었던 군더더기는 그가 자신의 작은 성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대목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온 점이지만, 그의 글에는 자화자찬과 자기과시가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일일이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그의 초기 저작에서는 이런 자화자찬과 자기과시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튀어나왔다. 그의 책은 내용 때문에 읽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런 과대망상적 나르시시즘이 역겨워 읽기 어려웠다.2)

그의 글에는 남다른 통찰이 번뜩이는 구절이 많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문장에, 그런 구절에서 받은 감동을 깨끗이 씻어가는 낯뜨거운 자화자찬이 붙어나오는 예는 부지기수이다. 그건 바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이얀 쌀밥 위에 시뻘건 굵은 황토지렁이가 하나 처억 걸쳐 꿈틀거리는”3) 형국이다. 지나친 자화자찬이나 자기과시욕을 보며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주역(周易)》 <단전(彖傳)>의 지은이도 겸괘(謙卦)에서 말하지 않던가. “사람들은 가득 채운 이를 미워하고 겸손한 이를 좋아한다(人道惡盈而好謙)”고. 겸괘 얘기가 나온 김에 시험삼아 한번 말해보자. 겸괘의 괘상은 “땅 속에 뫼가 묻혀있는”4) 모습이다. 뫼란 본디 땅 위에 솟아있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위로 솟을 수 있음에도 땅 속에 묻혀있는 뫼라면 대체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야말로 산채로 묻히는 활매(活埋)를 자청한뫼라고나 해야 하지 않을까. 임제(臨濟)의 활매와 왕부지(王夫之)의 활매를 강론한5) 김용옥이 자기를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목에 이르면 나는 분노가 치밀어 그의 책을 내던지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쓰라리다. 자기를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진리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인간의 철저한 행동”6)은 전혀 다른 맥락의 얘기이다.

나는 자기가 쓴 글을 굳이 ‘졸고(拙稿)’나 ‘졸저(拙著)’라고 낮추어 표현하는 데 찬성하지 않는다. 학문적 레퍼런스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서 그 글이 단지 자신의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서투르다(拙)’는 평을 붙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건 쓸 데 없는 지난날의 과겸(過謙)이다. 자기 글을 스스로 인용할 때라도 그냥 자기 이름 석자(또는 두자나 네자)를 그대로 적어 인용하는 게 객관적이고 좋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나는 김용옥처럼 자신의 책을 두고 “두번 다시 양보할 수 없는 천하의 명저” 따위와 같은 군더더기를 붙이는 것도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7)

도대체 이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뭐가 그리 아쉬워서 사소한 성취에 대한 집착을 그토록 놓아버리지 못하는가. 일찍이 장자(莊子)는 “길은 작은 성취에 가려지고 말은 꾸밈에 가려진다”8)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지금 하는 말은 그의 흠을 잡기 위한 게 아니다. ‘과장법’이라는 그의 습관적인 레토릭을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그가 자신의 작은 성취<小成>에 가려 큰 갈래<道>를 잡아내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그가 만약 작은 성취에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더 큰 갈래를 잡아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령 그가 《도올선생 중용 강의》에서 언급한 ‘천지 코스몰로지’란 학설에 대해 시험삼아 한번 말해보자. 그는 《논어(論語)》에는 ‘천(天)’이란 글자와 ‘지(地)’란 글자가 따로 쓰였지만 {중용}에는 ‘천지(天地)’란 글자가 함께 쓰였음을 지적하며, 《논어》와 《중용》 사이의 언제인가에 ‘천지 코스몰로지’가 등장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천지 코스몰로지가 텍스트 크리티시즘에 명료한 기준을 제공한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천지라는 말을 가지고 텍스트에 서열을 정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천지론에 관해서 논문을 쓸 때는 김용옥의 학설로 반드시 인용하고 써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장사의 밑천이므로 심각한 얘기입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것을 마치 자기 얘기인양 훔쳐다 막 쓰지만 (…) 내 사상을 활용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도둑질은 하지 마세요.” 9)
‘천’이나 ‘지’ 같은 단순사가 먼저 쓰이다가 ‘천지’라는 복합사로 발전하는 것은 언어 발달의 상식적인 과정이다. 단순사와 복합사의 발전관계를 텍스트 크리티시즘에 이용한 예는 김용옥 이전에 이미 있었다. 가령 장다이녠(張岱年)의 제자 류샤오간(劉笑敢) 싱가포르 국립대학 중문과 교수는 1987년에 펴낸 《장자철학과 그 전개》(莊子哲學及其演變)라는 책에서 도(道), 덕(德), 성(性), 명(命), 정(精), 신(神)이라는 여섯 개의 단순사와 도덕(道德), 성명(性命), 정신(精神)이라는 세 개의 복합사를 통해 《장자》의 내편이 외·잡편보다 연대가 빠르다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10) 그에 따르면, 《장자》 내편에는 도(42회), 덕(34회), 명(16회), 정(2회), 신(20회) 등의 단순사는 쓰였지만(‘성’은 한번도 안 쓰였음), 도덕, 성명, 정신 등의 복합사는 한번도 쓰이지 않은 반면, 외잡편에서는 도와 덕, 성과 명, 정과 신을 연용해 도덕(16회), 성명(12회), 정신(8회)이란 복합사로 쓰는 경우가 상당수 나타난다. 이는 내편이 외·잡편보다 성립 연대가 빠르다는 매우 객관적인 증거이다.

김용옥이 ‘천’과 ‘지’라는 단순사와 ‘천지’라는 복합사의 관계를 텍스트 크리티시즘에 처음 이용했다고 치자. 그러나 그것은 이미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방법론을 빌려 그것을 구체적인 하나의 사례에 적용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공식은 이미 나와있고, 그 공식을 이용해 문제를 하나 푼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설혹 ‘천지 코스몰로지’가 아주 대단한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지적 결벽성을 강조해온 김용옥이라면 그것을 자신의 창견(創見)이라고 내세우며 “장사의 밑천”으로 삼기에 앞서, 단순사와 복합사의 관계를 텍스트 크리티시즘에 이용한 사례는 지금까지 어떤 게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소개했어야 했다.

그의 창견에 대한 불행한 후일담을 하나 덧붙이자. 그는 《중용 강의》에서 이렇게 썼다.

“《맹자》라는 서물에는 천지 코스몰로지가 없다! (…) 《중용》이라는 책의 탄생은 천지 코스몰로지가 보편화된 이후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 천지코스몰로지가 텍스트 크리티시즘에 명료한 기준을 제시한다고 봐요. (…) 《중용》과 《주역》은 동일시대의 동일한 의식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나는 이것을 전한대(前漢代)라고 생각합니다. 이 판단은 분명한 이유가 있고 정확합니다.”11)
이 책은 그의 강의를 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논지가 정연하게 서 있지 않지만, 정리해보면 이렇다. 《맹자》 때까지도 이른바 그가 말하는 ‘천지 코스몰로지’는 보이지 않고, 《주역》의 <계사전(繫辭傳)>과 《중용》에 가서야 보인다. 천지 코스몰로지가 언제 등장하는지에 대해 김용옥이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논지 전개의 결론을 보면 천지 코스몰로지의 등장은 한나라 때에 가서야 가능해진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전자(장자를 말함: 인용자)의 인간론적 관심(anthropological concern)은 전국(戰國)시대의 정치적·사회적 혼란 속에서 어떻게 나의 초탈된 의식의 행복을 확보하는가 하는 개인주의적 관심을 반영한다고 하면 후자(열자를 말함: 인용자)의 우주론적 관심(cosmological concern)은 정착된 한제국(漢帝國)의 정치적 안정 속에서 새로운 우주의 질서를 정착시키려는 과학적 관심을 반영한다고 할 것이다.”12)
전국시대의 혼란기에는 개인주의적 인간론적 관심이 드높고, 한제국의 안정기에는 우주론적 관심이 등장할 수 있다는 그의 파악은 매우 도식적이고 관념적인 접근이다. 그는 그가 도식적으로 설정한 천지 코스몰로지의 등장 시점을 기준으로 《중용》과 《주역》의 <계사전>이 “동일 시대의 동일한 의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것은 “전한대(前漢代)”라고 단정한다.

그가 이런 내용을 열정적으로 강의하던 95년 1월은 이미 중국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죽간(竹簡) 850여 쪼가리가 20세기의 공기를 1년 이상 숨쉬고 있던 시점이었다. 93년 겨울 허베이(湖北)성 징먼(荊門)시 궈디앤(郭店)의 초나라 무덤에서 발굴해낸 이 죽간들은 98년에야 《곽점초묘죽간(郭店楚墓竹簡)》13)이란 제목의 영인본으로 풀이글과 함께 출간됐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적어도 김용옥은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것이다. 그가 “텍스트 크리티시즘”의 “명료한 기준을 제공한다”고 자랑하는 창견 ‘천지 코스몰로지’, 그가 《중용》과 《주역》 <계사전>을 한덩어리로 묶어 한나라때의 문헌으로 단정하는 데 결정적인 기준 노릇을 한 ‘천지 코스몰로지’가, 한나라보다 최소한 200년은 앞선 시절의 물건인 죽간본에 이미 웅장하게 드러나 있다. 죽간본 {노자}에는 갑조·을조·병조의 세 묶음이 있는데, 그중 마지막인 병조와 분리할 수 없는 <태일생수(太一生水)>라는 편이 있다. 이 편에는 김용옥이 ‘천지 코스몰로지’라고 불렀던, 천지대대(天地對待)·음양대대(陰陽對待)·정반대대(正反對待)의 사유에 기초한 우주 발생론이 이미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고 있다.14) 이 점은 김용옥도 잘 알고 있다.15)

김용옥은 <태일생수> 장을 논하면서 자신의 ‘천지 코스몰로지’가 이제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를 언급했어야 정당하다. 그게 학자의 양심이니까. 학자의 학설은 그릇될 수도 있다. 더구나 20세기 들어 발달한 고고학 발굴 성과는 고전 연구에서 문헌자료에만 의존해 세운 가설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그게 그릇된 학설이었음을 깨달았다면 빨리 독자들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가 학자에겐 있다. 공구(孔丘) 선생도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진짜 허물이라고 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고 하시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 텍스트 크리티시즘이 필요 없다거나 그것이 하찮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작은 성취에 대한 자기만족이 어떻게 사람의 눈에 비늘을 씌우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 코스몰로지’ 같은, 그야말로 게송(偈頌)을 하나 얻은 듯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를 얻으면 인두겁을 쓴 존재인 바에야 어찌 아니 기쁠손가. 그러나 그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라고 내세우는 언설은 철학적으로 아무런 중요성도 지니지 못하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진정한천재(天才)들의 행동은 참으로 군더더기에 무신경하다. 아인슈타인이나 에어디쉬 같은 사람들을 보라. 군더더기에 집착하는 일은 오로지 천재(淺才)들의 일인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김용옥도 아마 존경할, 장주(莊周) 선생이 군더더기를 얼마나 비웃었는지에 대해서는 김용옥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스스로 드러나는 법이고 거인의 몸집을 헝겁조각으로 가릴 순 없다. 태산을 옮기는 것은 우공(愚公)조차 가능할지 몰라도 태산을 통째로 파묻어버리는 것은 절대군주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냅두더라도 빛나는 통찰은 그 울림이 향기처럼 그윽하게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김용옥 자신이 텔레비전에서 비틀즈의 노래 “냅둬유!(Let it be!)”에 대해, 이소라의 검은 드레스에 굵직한 침방울까지 튀겨가며 그렇게 열정적으로 강의하지 않았던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토록 감동을 안겨주고선, 왜 그 감동을 싹 반납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는가. 그 스스로 ‘철학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어찌 그런 사소한 통찰을 얻은 데서 그리도 큰 만족을 느끼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통찰에 집착하는 건 썩은 쥐를 물고가는 올빼미가 행여 누가 이 맛있는 식사를 빼앗아 먹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거나 다를 게 없다. 올빼미는 행여 멀리서 날갯짓 소리만 나도 “꽥!(?!)” 소리를 지른다. 상대가 기자 나부랭이가 됐든 저잣거리 시정잡배가 됐든. 도올, 그럴 필요 없지 않은가. 구만리 장천 위에서 원추(?)가 날아간 것일 뿐이니.

나는 김용옥의 이런 모습이 매우 실망스럽다. 그래서 평소의 나답지 않게 좀 독하게 얘기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김용옥이 자신의 성취를 객관화할줄 모른다는 점이다. 자신의 성취에 대해 타자의 눈으로 바라볼 줄 모른다는 뜻이다. 오로지 그런 사람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신의 책이 “두 번 다시 양보할 수 없는 천하의 명저”라는 따위의 분별 없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작은 성취에 대한 자기만족은 큰 통찰을 얻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큰 통찰은 표절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다. 어떤 철학자의 본원적 통찰은 누구도 표절할 수가 없으며 흉내낼 수도 없는 것이다. 거꾸로, 그런 근원적 통찰을 남긴 사람이라야 우리는, 또는 철학사(哲學史)는, 그를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누가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을 표절할 수 있겠으며, 누가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을 표절할 수 있겠는가? 김용옥이 ‘철학하는 사람’이라면, 진정 절박한 마음으로 서둘러야 할 일은 사상의 큰 갈래를 잡는 일이지, 작은 성취를 돌아보며 누가 행여 이 탁월한 창견을 표절할까 노심초사할 일은 아니다. 나는 지금 김용옥의 인성에 결함이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게 결코 아니다. 철학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쓸데없는 군더더기에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옥은 아는 것은 많지만 자기 사상이 없다. 지식은 많이 쌓았지만 자기 사상의 핵심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누가 표절한다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명제가 지금 김용옥에게 있는가? 대답해보라.




3. 키치인가 철학인가

그는 최근 ‘새로운 21세기의 인류의 과제’란 걸 제시했다. 《금강경 강해》에서는 ① 자연과 인간의 슬기로운 공존(ecological concern) ② 모든 종교·이념간의 배타의 해소(religious coexistence) ③ 학문의 생활화(The decompartmentalization of human intelligence)를 ‘과제’로 들었다.16) 그는 {노자와 21세기 [상]}에서도 이른바 ‘21세기 인류의 3대 과제’를 반복해 제시했다. 그 내용은 ①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the Harmony between Man and his Environment) ②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the Harmony between Religions) ③ 지식과 삶의 화해(the Harmony between Knowledge and Life) 등17)으로 《금강경 강해》에서 든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도직입, 그가 최근 외치고 다니는 이 ‘3대 과제’라는 데서는 도무지 치열한 사색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관제 캠페인 냄새가 풍기는 ‘3대’니 ‘과제’니 하는 용어를 선택한 건 그의 취향 또는 몰취향일 것이나, 이 ‘3대 과제’라는 키치 철학이 ‘화해’라는 모호한 말을 들고나온 건 최악이다. ‘화해’란 말은 정치가들이 좋아하는 말이지만, 철학자가 함부로 쓸 개념은 아니다. 치열한 근원적 반성이 결여되었을 때의 화해란 절충과 타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해를 논할 때는 화해 이전의 모순이 어떤 성질의 것이었으며, 그것이 화해의 세계관에서 어떻게 처리될 수 있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이를 밝히지 못할 때는 ‘민화위’ 같은 정치외곽단체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포즈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가 ‘3대 과제’ 가운데첫 번째로 제시한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란 말이 바로 그런 예이다. 이에 관한 그의 해설을 읽어보면 참으로 도식적이고 상식적인 얘기를 키치적인 언설로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들어보자.

“우리나라 일산·분당지구에 단 5도 정도의 지진이라도 발생한다면? (…) 지신(地神)의 진노? 진노에 필요한 것은 화해의 요청이다. 여기 인간과 천지와의 화해,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 인간과 그의 환경과의 화해라는 21세기의 제1주제가 등장하는 것이다.”18)
참고 읽어주기가 안쓰러울 정도다. “지신의 진노?” “진노에 필요한 건 화해?”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이런걸 초논리적 논증이라고 하는가? 나 같은 천학비재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가령 생태주의자들이 이미 다 한 얘기인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자는 얘긴지, 급진 생태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급자족형 공동체의 건설’을 실천하자는 말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듀폰 같은 환경파괴기업조차 자신들이 ‘환경친화적’ 기업이라고 강변하고 나서는 마당에,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문제는 ‘어떻게’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떻게’를 말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화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화해’라는 말 한마디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인류에게 생태 문제는 닥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먹고는 살아야 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과학기술은 스스로의 논리를 따라 끝갈 데를 모르고 생명공학 따위의 첨단기술을 계속 토해낸다. 어찌할 것인가? ‘화해’를 외치면 다 해결된다? 복제양 둘리가 웃다가 스스로 뇌세포를 복제할 얘기다. 김용옥은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일 보고 밑 안닦은 듯 알맹이 빠진 논지 전개를 하는 이들을 얼마나 통렬하게 비웃어왔던가. 지금까지 그토록 구체적이고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던 김용옥조차 이젠 기력이 다했다는 뜻인가? 뒷날 김용옥의 친절한 상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내가 존경하는, 그도 존경하는, 노자 선생 얘기하면서 이런 어정쩡한 ‘화해’를 끄집어낸다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생태 문제는 노장사상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에서 충분히 논리적으로 설명해왔다. 김용옥이 《노자》에서 이른바 ‘3대 과제’를 끄집어낸 것을 정당화하려면, 서방 생태주의의 논리를 뛰어넘는 통찰이 《노자》에 있음을 보여야 온당할 것이다.

‘3대 과제’ 가운데 그의 통찰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명제는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한 가지뿐이었다. 종교간의 배타성이 어느 나라보다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그의 발언은 매우 용기 있는 것이다. 《금강경 강해》에서 그는 기독교의 ‘배타적 전도주의(Exclusive Evagelism)’를 매우 설득력 있게 비판19)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승단을 향해 “스님이 스님이라고 하는 아상(我相)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통렬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길지만 이 대목은 인용할 가치가 있다.

“현금 한국의 대부분의 스님은 소승(小乘)이다. 따라서 한국불교는 소승불교다. 왜냐? 그들은 법당에 앉아 있는 스님이고 절깐에 들락이는 신도들은 스님 아닌 보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님이 스님이라고 하는 아상(我相)을 버리고 있지를 않기 때문이다. 밥먹을 때도 따로 먹어야 하고, 수도할 때도 따로 결제를 해야하고, 옷도 따로 입어야 하고, 방석조차도 다른 방석에 앉아야 하고, 모든 진리의 척도가 그들 중심이 되어있는 것이다. 공양주보살은 당연히 공양을 바쳐야 할 아랫것들이고, 자기들은 당연히 공양을 받아먹어야 할 윗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스님들이 자신을 보살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들은 아라한이지 보살이 아닌 것이다. 성철스님은 성철스님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성철스님은 곧 성철보살인 것이다. 현재의 스님과 보살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부엌깐의 공양주보살이야말로 스님이요, 료사채의 자신들이야말로 보살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한국의 승려들은 모두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아무개 스님이 아니라, 아무개보살로 모두 그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대승(大乘)이 되는 것이다. 대승의 기준은 ‘큰수레’가 아니다. 대승의 기준은 ‘무아(無我)’일 뿐이다. 무아의 반야를 실천 못하는 자, 남북을 무론(無論)하고, 동서를 막론(莫論)하고, 고금을 물론(勿論)하고 다 소승(小乘)일 뿐인 것이다! 어찌 소승·대승이 고정된 함의나 대상을 가질 수 있으리오!”20)
불교 초기교단에서 승가제도의 보호를 받는 아라한의 특권의식을깨부수고 나온 개념이 바로 ‘보살’이며, 그것이 대승의 정신이라고 보는 김용옥은 이런 논리에 따라 한국의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기독교의 전도주의에 대한 비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불교의 폐부를 찌르는 근본적인 비판이다. 조계종이 한 구석이라도 썩지 않았다면 도올 보살 마하살의 천금과도 같은 문제제기를 두고 하루바삐 무차선회라도 열어서 수용 방안을 논의할 일이다. 종단의 보수성 때문에 그의 문제제기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할지라도, 생각 있는 젊은 중들은 가능한 영역에서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할 일이다. 이 책에서 그가 제시한 종교에 관한 세 가지 명제21) 또한 매우 의미심장한 통찰임을 지적해둬야겠다. 나는 기사를 쓰기 위해 《금강경 강해》를 바삐 대충 훑어보았다가, 이 책의 진가를 발견한 뒤에는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삼세번 외고 다시 읽기 시작해 하룻밤만에 다 읽고 두 손으로 책을 받들고 모든 깨달은 이들을 향해 오체투지 삼배했다.

마지막으로, ‘지식과 삶의 화해’란 과제는 어찌보면 앞의 두 과제를 아우를 수도 있는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를 다룰 때 가장 박력이 없고 논리도 빈곤하다. 《노자와 21세기<상>》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곳(58∼84쪽)과 교육방송에서 이 문제를 다룬 제2강을 보라. 이 문제는 장을 바꿔 따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4. 지식의 시대에서 지혜의 시대로

공자에게는 자공(子貢)이라는 아주 똘똘한 제자가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그가 스승인 공자보다 더 낫다는 평을 듣기도 했던 훌륭한 인물이다. 그는 공자와 매우 가까운 제자였지만, 공자의 사상에 어떤 형이상학적 전제가 깔려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둔재였던 것 같다. 《논어》에는 다음과 같은 두 사람 사이의 유명한 대화가 나온다.

공자가 물었다.
“사(賜: 자공의 이름)야! 너는 내가 뭘 많이 배워서 그것을 달달 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자공이 대답했다.
“당근이죠. 아닙니까?”
공자가 다시 말했다.
“아니지! 나는 하나로 모든 걸 꿰려는 사람이란다.”22)
자공은 ‘지식의 축적’이 학문이라 생각했고, 공자는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아무리 박문강기(博聞强記)할지라도 그것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할 줄 모른다면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식과 지혜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위의 대화에서 자공은 지식을 말하고 있고 공자는 지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공은 공자가 철학선생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공자 자신은 스스로가 철학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김용옥은 자공에 가까울까, 공자에 가까울까. 내가 잘못 본 것이길 바라면서 시험삼아 한번 얘기해보자. 지금까지의 김용옥은 자공에 가까웠다.

그는 “20세기가 인류의 어느 세기보다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의 증대를 가져왔지만, 불행하게도 그에 상응하는 지혜의 증대는 찾아볼 수가 없다”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하며, 정당하게도 “21세기는 지식의 세기가 아닌 지혜의 세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23) 그는 입으로는 “지식의 세기에서 지혜의 세기로의 전환”을 말하고 있지만, 그의 머리는 “지식이 곧 지혜”라고 생각하고 있다. 《금강경 강해》에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장)
김용옥이 성경에서 인용한 사도 바울의 말씀이다. 이에 대한 김용옥의 해설이 절묘하다.

“이 얼마나 훌륭한 말씀인가? 부분적으로 알던 것이 온전하게 알 때에는 폐하리라 한 것은 곧 부분적으로 아는 것에서 전체적으로 아는 것으로 확대되어 갈 때에, 이런 지식의 확대만으로도 훌륭한 깨달음, 훌륭한 종교가 성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말씀이다.”24)
김용옥의 해설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그에게 속은 것이다. 이 대목은 웃음을 터뜨려야 할 대목이다. 사도 바울은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김용옥은 이 구절을 인용해 “부분적으로 아는 것에서 전체적으로 아는 것으로 확대되어 갈 때에, 이런 지식의 확대만으로도 훌륭한 깨달음, 훌륭한 종교가 성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릴 것이다”라고 한 말을, “어린아이처럼 노는 일의 확대만으로도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과 같다. “부분적인 지식”, “어린 아이와 같은 생각”,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함“을 폐하고, “온전한 지식”, “어른의 생각”,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을 얻음은, 사도 바울에게서는 전자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얻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 후자를 얻은 뒤에 전자를 폐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다. 김용옥은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뒤에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말씀”이라 했는데, 유감스럽지만 그건 전혀 사도 바울의 말이 아니라 오독을 통해 스스로 드러낸 김용옥 자신의 지식관이다.

김용옥은 “지식의 확대만으로도 훌륭한 깨달음, 훌륭한 종교가 성립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는 교육방송 텔레비전 강의에서도 이런 지식관을 부지불식중에 드러냈다. 그는 《논어》에 나오는, “나는 아직 덕을 좋아하기를 섹스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25)는 구절을 인용한 뒤, 자기는 자신 있게 공자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용옥은 식색(食色)보다 공부가 더 재미있는 사람이다!”라고. 여기서도 예민한 독자들은 김용옥이 무엇을 무엇으로 바꿔치기 했는지 알 것이다. 그는 호덕(好德)을 호학(好學)으로 바꾸었다.

물론 본디 의미에서의 ‘공부(工夫)’란 덕을 쌓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일이지 박문강기하는 일은 아니다. 김용옥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26) 그러나 그는 “진정한 공부란 박문강기하는 일이 아니라 덕을 쌓는 일이다”라는 사실조차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김용옥의 텔레비전 강의 제2강을 구해 다시 들어보시라. 나는 그날 그의 강의를 보면서 장자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니 위태로울 뿐이다.”27)
김용옥은 위의 구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장자》에 관한 ‘지식’을 구성하는 중요한 구절이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 김용옥은 다음처럼 말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도 타인에게 지식을 전하는 데 열심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남에게 감추지 아니한다. 아마도 이 세상에 나만큼 대가리 속에 많은 지식의 쓰레기더미를 쌓아올린 자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식이란 나의 것이 아니다. 인류의 갈등(언어)이 공통의 노력을 경주하여 만들어온 것이다. 지식이란 대부분 있는 것을 흡수한 것이지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 그따위 지식을 가지고 자랑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알고보면 도서관 어딘가에 다 꽂혀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을 발견하고 흡수하는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이 깨달음마저 전달할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나는 깨닫고 만다. 인간의 깨달음이란 인간 고존(孤存)의 본연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28)
위의 글에서 김용옥은 자신의 지식의 한계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사실은 두 개의 김용옥이 있다. 하나는 “뭔 또 쓸데없는 업을 지으려구. (…) 그런 네 아상(我相)이나 지우려무나!”29)라고 혼잣말을 하는 지혜의 김용옥이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학문의 적통”이 “노장사상”이라면서, “나는 학문적으로 노장철학 방면에 있어서는 세계적으로 어느 누구도 범치못할 확고한 문헌실력과 학문방법을 다져왔다”30)고 엉뚱한 힘자랑하는 지식수집가 김용옥이다. 노장사상에 대한 지식을 집적하는 일과 노장사상이 몸에 배는 것과는 인연이 없다. 나는 이 말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 그의 텔레비전 강의를 보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통쾌무비했다. 연예인들이 잡담지꺼리 늘어놓는 것보다 얼마나 상쾌한 일인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노자의 간결한 메시지를 마치 그가 늘어놓는 방대한 학설을 섭렵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양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면을 보면서는, 과연 김용옥은 지식 자랑꾼, 지식 장삿꾼이로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지혜의 김용옥이라는 면모가 있다. 나는 그 점에 희망을 건다. 그를 일포일폄(一褒一貶)하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 그의 탓이다. 그가 선승이 아니라 철학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깨달음이란 인간 고존의 본연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란 말의 핑계 뒤로도 숨지 말아야 한다. 그런 깨달음을 지니고 평생을 살았던 노자도 장자도 고타마 붓다도 예수도 입을 열어 가르치고, 만세 뒤에야 올지말지한 어떤 참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지말지한 언어일지언정 남기지 않았던가.

김용옥은 훌륭한 주석가이다. 최근 펴낸 《이성의 기능》과 《금강경 강해》는 이를 증명한다. 모호한 구석을 남기지 않는 번역과 자신의 이해를 분명히 드러내는 주석은 이 책들의 큰 미덕이다. 그러나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큰 갈래가 없을 때 그것은 문자 그대로 주석에 지나지 않게 된다. 가령 공영달(孔穎達)이나 유월(劉越), 왕선겸(王先謙)·왕념손(王念孫) 부자 등은 우리가 중국 고전을 읽을 때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 매우 뛰어난 주석가들이지만 그들의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제자가 유월의 사상에 관해 철학 논문을 쓰겠다고 하면 김용옥이라도 뜯어말릴 것이다. 혹시라도 김용옥이 《금강경 강해》 앞에 덧붙인 ‘들어가는 말’과 같은 글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피력했다고 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공영달도 《주역정의(周易正義)》에 장문의 ‘서(序)’를 썼다. 그 내용은 현대의 《주역》 연구자들에게도 필수불가결한 정보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그를 철학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김용옥의 책을 허심하게 바라볼 때 그의 최고 성과가 이런 주석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31) 그의 번역은 명쾌하고 조금도 학자로서 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가는 구석이 없다. 한국 학계에서 보기드문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철학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고존의 깨달음의 영역, 그가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전제를 언어로써 드러내야 한다. 그가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다룬 명말청초 철학자 왕부지(王夫之)의 저서에 빗댄다면, 그는 지금까지 《주역내전(周易內傳)》이나 《주역패소(周易稗疏)》와 같은 책들만 써냈다. (물론 《주역내전》은 김용옥의 주석서들과는 달리 충실한 주석이면서도 깊은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그가 주석가가 아니라 철학자라면, 《주역외전(周易外傳)》과 같은 책을 써내라고 기대하는 것은 독자의 정당한 권리다.

5. 철학의 세속화와 세속의 철학화

그는 초기 저작인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에서, 300만 권에 이르는 하버드대 와이드너 도서관의 엄청난 장서를 바라보며 “이 쓰레기같은 책더미 속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또 하나의 책을 추가하지는 않으리라!”32)고 마음속으로 외쳤다고 썼다. 매우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건 하나의 깨달음의 순간이다. 나는 그의 진술의 진정성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책을 쓰지는 않겠다’는 결심과 ‘철학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이 늘 행복하게 같이 갈 수는 없다. 어떤 순간에는 두 생각이 치열하게 갈라서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철학자로서 그릇의 작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는 위 책의 날개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어두었다. “나는 철학을 세속화하지 않습니다. 나는 세속을 철학화할 뿐입니다. 나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철학의 인간화지요. (I do not secularize philosophy. However, I do philosophize the secular. My philosophy, ultimately, is the humanization of philosophy.)” 나는 이 명제를 그의 철학적 작업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인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그는 줄잡아 30권의 책을 펴냈다. 1년에 두 권 꼴로 책을 펴낸 셈이다. 이 방대한 저작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33)

나는 그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또 하나의 책을 추가하지는 않으리라”고 한 결심은 소정의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그의 책은 많은 이들에게 읽혔을 뿐 아니라 자주 베스트 셀러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이것은 대중화 저작의 저자로서 김용옥의 공덕이다. 이 점을 평가하는 데는 인색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는 과연 ‘세속의 철학화’와 ‘철학의 인간화’에 성공했는가. ‘철학하는 사람’임을 자처하는 김용옥이 자문자답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시험삼아 한번 얘기해보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소설이 있다. 70년대 중반 우리 사회를 울린 걸작이다. 지금까지도 읽히는 이 소설은 한국 사회에서 희유하게도 100쇄를 넘겼다. 이 소설의 작가 조세희는 (더러 몇 가지 글을 쓰긴 했지만) 《난·쏘·공》 이후 아무런 작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얀 저고리》란 작품을 십년째 다듬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이미 다 된 원고를 말이다. 내가 존경하고 김용옥이 존경하는 노자 선생은 고작 5천 글자를 남겼다. 《노자》란 책은 5천자 남짓한 작은 책이다. 활자 포인트를 9호쯤으로 작게 해서 빡빡하게 인쇄하면 에이포(A4) 용지 한 장의 앞뒷면에 쏙 들어가는 양이다.

김용옥에게 묻는다. 30권이 넘는 저서를 쌓아두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철학하는 사람’으로서 지은 책이 있는가? 대중화 저작으로서도, 그리고 주석서로서도 세월을 견딜 수는 있다. 그러나 그대에게 철학서로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책이 있는가? 이 질문은 대중화 저자(populizer) 또는 주석가로서의 김용옥을 향해 던지는 게 아니다. ‘철학하는 사람’으로서의 김용옥을 향해 묻는 것이다. 대중화 저자로서 김용옥의 작업에 대해서 나는 매우 높이 평가함을 누차 밝혔으므로 독자의 오해가 없길 바란다. 다시 묻는다. 작가 조세희와 노자를 보라. 나는 조세희에게서 작가정신이란 말의 본디 뜻을, 노자에게서 철학정신이란 말의 본디 뜻을 배운다. 도올, 30권의 저서가 진정 거추장스럽지 않은가? 그대는 진정 세속을 철학화하고 있는가?




http://emerge.joins.com/200003/200003_225.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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