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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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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적 소개



제 5호(2001년 봄)

민중신학개론/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적 소개
이 정 용


내용 2003/05/03


민중신학개론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적 소개

이 정 용 (전 Drew University 교수)


1. 민중의 의미

이 책에 기고한 분들과 필자는 "민중"이라는 단어를 한국의 가난하고 억압받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지만,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이라는 말이 한국에만 있는 고유한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이라는 단어를 외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minjung"이라고 사용한다. 따라서 한국인이 아닌 외국사람이 민중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만 - 매우 어렵다. 그러나 민중이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 보려는 시도는 민중신학에 대해서 더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 기고한 몇몇 학자들이 민중이라는 말을 이런 저런 모양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민중신학자 가운데 한 분인 안병무 교수는 "'민중'이라는 단어는 '예수'라는 말처럼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말"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민중은 통전적이며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실체이기 때문에 어떤 범주 안에 가둬 둘 수 없다. 만약 민중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억지로 내린다면 이는 곧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이 되고 공론(空論)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민중이라는 말의 정의를 내리는 일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민중이라는 말이 한국어로서 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성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단어를 영어나 다른 어떤 외국어로 억지로 번역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서 민중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가장 가까운 의미를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예를 들면 민중이라는 단어가 북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사는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일 등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민중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 즉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의미를 개발해 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민중"이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와 포괄적인 특성들을 밝혀 보려고 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민중이라는 단어는 두 개의 중국글자 "民"과 "衆"의 한국어 합성어이다. "民"의 문자적인 의미는 "사람들"(people)이고, "衆"의 의미는 "많은 무리"(mass)이다. 이 두 글자를 합하면 "많은 무리의 사람들," 또는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말을 한국 상황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민중신학의 초기 역사에서 이 말이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문동환은 민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용어는 평민들이 양반계급 즉 지배계급에 의해서 억압받았던 이조시대(1392-1910)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 . . . . 그 당시에는 양반계급에서 제외된 사람은 모두 다 민중이었다. 일제 36년 동안(1910-1945)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소수 그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민중 신분으로 전락하였다. 오늘날 민중이라는 용어는 현 독재체제에서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 그룹에서 제외된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문동환의 말대로 우리가 민중을 이해한다면, 소수 엘리트 그룹이나 양반들(상류계급)에게 억압받는 보통 사람들이 민중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상류층과 중산층 그리고 하류층 사람들이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분류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억압자들과 억압받는 자들, 또는 양반과 평민을 구분하는 일은 한국의 민중을 이해하는 데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이러한 분류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지식적인 조건들의 차이들을 포괄하는 분류이다. 만약 민중이 단지 사회경제적인 차원만을 고려한 분류에서 나온 결과라면, 민중은 마르크스주의의 용어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동일시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이 보다는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민중은 한국 역사의 주체인 모든 보통 사람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민중은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고, 정치적으로는 약자이며, 사회적으로는 불우한 사람들이지만,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는 부유(rich)하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민중이 단지 가난하고 약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은 한국인들의 토착문화적인 유산, 역사적인 유산의 보지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교육 등 여러 가지 제도들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마음대로 조종하는 소수 엘리트 그룹에 의해서 민중은 지금까지 억압받아 왔다. 그러므로 민중의 소외는 곧 한국 사람 전체와 한국 역사의 소외를 의미한다. 더욱이 민중을 억압하는 일은 한국 사람 자체를 억압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민중을 한국 사람과 한국 역사와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우리는 민중이라는 실체가 한국 사람 자체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민중을 정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민중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러한 민중의 의미는 성서신학자 문희석의 실용적인 정의에 잘 정리되어 있다. 문희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중은 정치적으로는 억압받는 사람들이며, 경제적으로는 착취당한 사람들이고 사회적으로는 소외된 사람들이며, 문화적인 혜택이나 교육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문희석이 정리한 민중에 대한 이러한 실용적인 정의는,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거의 모든 제삼세계 사람들을 다 포함할 수 있을 만큼 포괄적이다. 그러나 민중이라는 말의 특수정의와 일반정의를 둘 다 손상시키지 않고 살리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신학적인 작업 과정에서는 이 둘의 균형을 잘 유지할 필요가 있다.


2. 역사적인 배경

민중신학은 한국 사람들의 상황신학이며 토착신학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 사람들의 경험과 배경에 대한 지식 없이는 민중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사를 연구해 본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로부터 억압받고 착취당하며, 인간성을 말살 당한 이야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4천년이 넘는 한국 민족사 가운데서 평화를 누리고 자주적인 독립을 향유한 기간은 그렇게 길지 못했다. 한국 사람들은 주변 강대국들의 그늘 아래서 살아 왔다. 한국은 세계 제2차대전 이후에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국사람들이 열망해온 통일과 자주독립의 기회를 빼앗아 가버렸다.
고난받는 민족인 한국 사람들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으로는 제2이사야가 말한 "고난의 종"과 비교하는 일일 것이다. 어떤 일본 역사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역사는 그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외국의 억압과 침략으로 말미암아 고난당하고 파괴당한 역사이다." 외국의 억압 때문에 생긴 고난의 와중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외국의 점령 세력에 동조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이기적인 사람들은 엘리트 그룹 즉 지배계급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을 억압했다. 그 결과 한국의 보통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한국 사회의 엘리트에 의해서 이중으로 억압받아 왔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의 일차적인 초점은 이러한 엘리트에 의해서 억압받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의 문제에 맞춰졌다.


3. 종교적인 뿌리들

한국 사람들의 종교적인 성향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 그리고 신흥종교 등 여러 종교전통들이 섞인 혼합주의적인 종교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무당종교로 알려진 샤머니즘은 한국 사람들의 토착종교이며, 민중의 종교와 가장 밀착된 종교이다. 유교와 도교는 주전 50년경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전래되었다. 이 종교들은 지배계급 즉 상류계급이 가난한 사람들과 하층계급을 지배하는데 사용되곤 하였다. 불교는 기원후 4세기에 한국에 들어 왔으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국가 종교가 되었고 14세기 후반까지 번성하였다.
불교 다음으로 유교가 오백년 동안 이조의 국가 종교가 되었다. 유교가 지배한 이조시대에 양반(지배계급)과 상민(하층민)의 구별이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민중의 특성들이 이 기간에 형성되었다. 유교가 남자들과 엘리트들에게 매력이 있었다면, 이조시대에 샤머니즘은 여자들과 상민들의 종교로서 기여하였다.
이조 말기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새로운 종교들이 생겨남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1910년의 한일합방은 한국 사람들의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 주었다. 새로운 종교들 가운데서도 동학 즉 천도교와 증산교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 종교들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의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민중 투쟁에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1880년대에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전파된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는 데 영향력을 가장 많이 미친 종교들 중의 하나였으며, 해방을 위한 민중 운동을 일으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위에서 살펴 본 한국 역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민중신학이 발전되기까지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이제 한국 땅에서 생겨난 민중신학의 출현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4. 민중신학의 출현

우리는 민중신학의 출현을 당시의 상황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 세계적인 시대의 흐름이 한국에서 민중신학이 출현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와 제삼세계에서 계속 확산되고 있었던 해방신학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특히 전체주의 정부들 치하에서 오랫동안 억압을 받아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해방운동들은 피압박 민족들이 독립해방의 길을 가도록 강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 정부가 해방운동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검열했기 때문에, 한국 신학자들 중에서 소수만이 해방신학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한 교회 지도자들 대부분은 그들의 신학적인 경향이 매우 보수적이며 근본주의적이었다. 세계의 다른 여러 곳에서 발전되고 있는 해방신학과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한 신학자들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립상황으로 말미암아 한국신학자들은 그들 자신의 독창적인 토착신학을 개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해방운동이 한국의 초기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민중신학 발전의 출발점을 우리는 1960년대 초에 시작된 도시산업선교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열심있는 크리스챤들은 이 도시 산업선교 운동의 일환으로 최소한 6개월 이상 도시 산업공단에서 복음전도자로서 그리고 노동자로서 자원해서 일했다. 출발 당시의 목적은 "영적"인 복음화였지만, 불의가 판을 치고 노동 조건이 열악하고 부당한 것을 보고 크리스챤 노동자들은 사회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사도의 직을 수행하는 일이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대 초에 몇몇 도시산업선교 단체들이 노동자들을 혹사하는 산업체들과 투쟁하기 위하여 생겨났으며, 노동조합을 새로 결성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개선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죠지 오글[George Ogle]은 이 도시산업선교 단체들이 결성되고 활동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한편 많은 기독교 단체들, 즉 에큐메니칼 기독교 청년 연합회, 교회 여성 연합회, 정의구현 사제단, 가톨릭 청년 노동자 연합회, N.C.C.의 인권 위원회 등이 인권과 정의를 확립하는 일을 위해서 함께 연합하였다.
인권과 사회정의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고 있던 이 시기에, 민중 즉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대중들에 관한 신학적인 관심이 대두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악습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불의가 신학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인권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신학자들이 잔학한 박정희의 독재정권에 의해서 각 신학교와 대학의 강단에서 쫓겨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했다. 이러한 고난과 억압을 경험한 신학자들이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민중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신학자들은 그들이 봉사해야 할 대상을 학식 있는 엘리트들에게로부터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바꾸게 되었다(이 과정에서 그들은 제삼세계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크게 일어나고 있는 해방운동들로부터 영감을 얻게 되었다). 이 신학자들은 그 자신들을 민중과 일치시킴으로써, 한국의 억압받는 사람들과 똑 같은 고난과 고통을 경험했다.
만약에 민중신학이 "상아탑" 속에서 발전되어 왔다면, 민중신학은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민중신학이 민중의 경험들, 즉 감옥에서의 고문, 지하운동, 공장과 농촌에서의 비인간화와 같은 경험들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민중신학은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힘과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는 해방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이 신학자들은 가난하고 억눌린 대다수의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민중의 경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기 시작하였다. 나치정부에 저항한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리스도는 고난과 투쟁의 시련을 겪고 있는 약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다고 주장했는데, 민중신학자들은 본회퍼의 이러한 주장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는 가난하고 약하고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설 뿐만 아니라, 지배자들인 엘리트들로부터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오셨다고 민중신학자들은 믿게 되었다.
정의와 해방을 위해서 투쟁할 때에 이들 민중신학자들은 예수가 보여 준 모범에 따라 민중의 편에 서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경험과 참여를 통하여 민중신학은 한국 땅에서 탄생하였다.


5. 민중 경험의 결정체인 한

민중경험의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는“한”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고난의 형태이다. 민중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한이라는 말은 정의하기가 힘들다. 한은 고난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한은 고통받은 경험들의 결정체이다. 한이란 부당한 고난에 대해서 보복하고 싶으면서도 보복하지 못하고 참고 견디면서 고통하는 감정의 결정체이다.
한은 한국 민중들이 경험하는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아닌 사람은 쉽게 민중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민중신학자들은 말한다. 한이라는 경험과 가장 비슷한 것으로는 미국의 흑인들이 경험하는"우울증"(blues)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은 종종 "원한"(grudge) 또는 "분개"(resentment)라고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 말들이 한과 똑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다. 문희석은 한을 "민중이 계속해서 불법의 대상이 될 때 민중의 분노와 분개는 내면화되고 점점 심화되어 가는데, 이것이 바로 한이다" 라고 정의한다. 한은 개인에게나 집단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데, 민중의 삶을 억압하고 뒤엉키게 하는 무의식적이면서도 의식적인 정신적인 힘의 누적된 상태를 말한다.
연세대 교수를 역임했던 서남동은 이야기를 통해서 한에 대한 의미를 밝혀 보려고 했다. 필자는 Y.H.무역회사의 숙련된 기능공이었던 김경숙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한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김양은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와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전국 섬유노동조합 Y.H.무역지부에 가담하였다. 1979년 8월 9일 김양을 포함한 200여명의 조합원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Y.H. 조합 간부들을 석방해 줄 것과, 폐쇄 결정을 내린 그들의 회사 공장을 다시 열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기 위하여 신민당 당사에 갔다. 8월 11일 1,000명의 경찰들이 개입해서 조합원들을 해산시켰다. 경찰들이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김양이 죽었다. 당시 21살밖에 안된 김양은 조합의 실행위원회의 위원이었다. 김양은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장에서 노동하던 8년 동안에 과로해서 코피를 흘린 적이 수도 없이 많았으며, 3개월간은 봉급도 받지 못하고 일했으며, 헐벗고, 굶주렸고, 겨울에는 난로도 없이 일했다고 썼다. 김양은 노동운동을 통하여 이러한 악조건들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녀는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것이다. 김양의 죽음은 800만 한국 노동자들의 한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한은 죄 없이 당하는 고난이 쌓여서 생긴 것이다. 1980년에 독재정부는 광주 시민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데모를 한다는 이유로 2000명 이상의 무죄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는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족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한이 맺히게 되었다. 한은 민중의 경험이다. 한국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한이 맺힌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외국의 침략자들과 지배자들의 희생제물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신학은 한의 신학이다. 기독교 사제는 한의 사제이며, 그리스도는 민중들을 한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다. 한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민중은 해방을 얻게 된다. 한을 푸는 방법을 단(斷)이라고 말하는 데, 단이란 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을 의미한다.


6. 민중신학의 구원론으로서의 단(斷)

한은 불의 때문에 맺혀서 풀리지 않은 감정과 고난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 일했다. 이런 의미에서 민중신학자들은 한의 "사제들"이다. 그러나 한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죄는 아니다. 한은 죄, 곧 지배계급의 죄 때문에 생겨났다. 그러므로 한을 푼다는 것은 죄를 용서하는 것, 혹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구원과는 다르다. 한은 정의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불의가 존재하는 한, 한은 치유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한을 푸는 길은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에 있어서는 정의가 용서나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용서도, 사랑도 없다. 정의만이 한으로 생긴 상처를 치료하며 민중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회복시켜 준다.
단은 한을 푸는 것을 의미한다. 단은 악과 억압의 고리를 만들어 내는 한의 사슬을 끊는 것이다. 단이라는 개념은 김지하가 드라마틱하게 꾸민 장일담 이야기에 나타나 있다. 장일담은 해방의 설교자이며 한의 설교자인데 지배계급에 의해 결국은 체포되어 사형당한다. 장일담의 머리는 잘리었지만 장일담과 배신자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장일담의 머리가 배신자의 몸통에 붙고, 배신자의 머리는 장일담의 몸통에 붙는 일이 벌어진다. 장일담의 한이 단을 통해서 풀린 것이다.
단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자기부정이며,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김지하는 말한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자기부정이나 자기희생을 통해서 한을 끊을 수 있다. 김지하는 자신이 한의 사제라고 말한다. 단으로서의 자기희생에 대하여 김지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모든 안락과 평안으로부터, 소시민적인 꿈의 순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속의 늪으로부터 단절시킨다. 이것이 내 신앙의 전적 내용이다. 격렬한 자기 부정만이 나의 혈로임을 안다. 나그네로 떠나자! 모든 것을 버리고! 미혹은 이제 끝난다. 아아! 내게는 아픈 저 허공의 외줄을 타고 가는 얼음재비의 슬픈 행위. . . ." 김지하가 말한 자기 희생은 한을 끊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사회적, 집단적 측면에서 볼 때 단은 세속 세계의 변혁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단은 인간사회 전체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는 정의롭게 되고 한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김지하는 인내천 즉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천도교(하늘의 길)의 중심사상을 사용하여 사회적, 개인적 혁명을 해석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혁명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밑바닥은 하늘이다. 그런고로 밑바닥을 들어올려 위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혁명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단계로 발전한다: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는 첫째 단계"(시천주), "하나님을 몸으로 성숙시키는 둘째 단계"(양천주), "투쟁을 실현해 내는 셋째 단계"(행천주), "죽음을 초월하여 부활한 청명하고 소박한 민중 투사로 사는 넷째 단계"(생천주). 이러한 네 가지 단계가 천도교로부터 들어와서 기독교 사상에 적용되었다.16 첫째 단계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깨닫는 단계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한다. 둘째 단계는 하나님에 대한 자각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자라도록 허락하는 단계이다. 셋째 단계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믿는 바를 실천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의 불의를 극복하도록 한다. 마지막 단계는 세상을 변화시킴으로써 불의를 극복하는 단계이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땅 위에서 실현된다. 단은 이러한 네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한을 푸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것이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의 과정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민중신학의 주제는 민중과 민중의 경험이다. 민중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지배계급의 불의 때문에 민중이 겪는 고통의 경험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해방을 위해 일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핵심이 된다. 해방의 열매를 맺는 것은 메시야 왕국 즉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 위에 수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을 해방시키고 메시야 왕국을 수립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성령의 활동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민중신학의 중심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해방 사건, 성령의 활동, 메시야 왕국 등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7. 신학의 중심 예수 사건

민중신학의 핵심은 초대교회가 선포한 복음, 즉 케리그마가 아니라 예수 사건이다. 예수의 사건 이후에 형성된 케리그마는 초대교회가 신약성서의 메시지를 통일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다. 예수사건이 총체적이고 역동적이며 변화적인 데 반하여, 케리그마는 관념적이고 정적이며 비변화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민중신학은 예수 사건에 근거하고 있는 데 반하여, 전통적인 서구신학은 케리그마에 근거하고 있다. 예수 사건은 서남동이 성령의 운동이라고 불렀던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해서 바로 한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 추구하는 일은 2천년 전 유대 땅에서 일어난 예수 사건을 어제와 오늘 한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수 사건과 연결시키는 일이다.
그러면 예수 사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해방의 사건이며, 고통과 죽음과 부활의 사건이다. 예수의 고통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마가복음의 오클로스는 - 오클로스는 민중이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해방 받았다. 그러므로 예수 사건은 해방 사건을 의미한다. 해방 사건이 있을 때는 언제나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다. 해방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이러한 예수 사건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1970년대의 경험이 해방을 위한 민중들의 투쟁 - 예수 사건의 구현 ㅡ 의 초점이라고 할지라도, 이 경험들은 과거와 미래를 인식하는 중심점이 된다. 이는 우리가 출애굽을 유대교의 초점으로 보는 것과 똑 같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해방을 위한 과거의 여러 가지 민중투쟁 사건이 예수 사건의 구현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해방을 위한 민중투쟁 사건들 중 이미 잘 알려진 몇 가지 과거 사건들을 든다면, 12세기의 고려시대의 농민 반란 사건에서 나타난 망이와 망소이의 봉기(서기 1176년), 1198년의 노예 해방을 위한 만적반란 사건 등이 있고, 19세기에는 1811년에 있었던 홍경래의 농민 반란 사건과, 1862년의 임술년의 반란, 1894-95년의 동학(천도교)난 등 중요한 민중투쟁 사건들이 있었다. 1919년의 3.1 독립운동과 1960년의 4월 학생 혁명, 1980년 5월 18일의 광주 민주항쟁 등은 민중 해방을 위한 대단히 중요한 사건들이었다.
민중신학자들이 이상과 같은 모든 사건들을 예수 사건의 구현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민중신학에 의하면, 예수 사건은 모든 해방 사건의 원형(archetype)이다. 이 해방 투쟁의 원형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하여 한국 땅에 나타나며, 성령의 움직임과 활동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예수 사건의 중요성은 복음서에 나타난 역사적인 예수를 연구할 때에도 이해되지만, 성령으로 활동하시는 우주적 예수를 통해서도 이해된다. 그러므로 성령의 활동이 민중신학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8. 성령의 활동

안병무는 마가복음의 역사적인 예수와 예수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데 반하여, 서남동은 성령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다. 해방 운동들에서 나타난 예수 사건은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발을 딛기 훨씬 이전에 이미 한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은 성령이 활동하심으로 가능했다. 영으로 오신 하나님의 임재는 민중들의 해방운동의 전제조건이다. 민중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성령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버지나 아들로서의 하나님 보다 더 하나님의 활동을 설명하는 데 적당한 분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고,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해방을 위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성령으로서 이해할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고 민중신학자들은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서 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성령은 역사 속에 늘 함께 계신다. 그래서 12세기에 한국에서 일어났던 민중운동들이 성령의 역사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이 한국의 문화를 배경으로 출현했기 때문에 민중신학에는 샤머니즘적인 세계관이 스며들어 들어 있다. 샤머니즘에 의하면 모든 일은 영 혹은 영들의 조화로 나타난 현상이다. 영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샤머니즘은 믿는다.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성령의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민중신학은 한국 땅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화와 종교 형태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민중신학은 비역사적인 기독교의 특성에도 관심을 가진다. "성령론적" 혹은 "영적"인 접근 방법은 기독교를 정말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기독교가 될 수 있게 해 준다고 그들은 말한다.
성령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민중신학은 기독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 접근방법은 전통적인 서구신학에 더 얽매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서남동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것을 전통적인 기독론적 해석과 구별하여 성령론적-역사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상징인 천년 왕국의 관점에서 볼 때, 성령론적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플로리스 요아킴의 해석에 따라 서남동은 천년 왕국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다시 소개한다. 천년 왕국은 성자를 능가하는 성령의 제3시대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접근 방법에 따르면 동방정교가 인식한 것과 같은 삼위일체의 순위는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이 접근방법에 의하면 아들을 능가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를 능가하는 아들이 되며, 또한 성령을 능가하는 아들이 아니라 아들과 아버지를 능가하는 성령이 된다.
삼위일체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인식은 콘스탄틴 제국의 기독교회의에서 결정된 교리들과는 다른, 흥미로운 발전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콘스탄틴 이전의 신학이며 어떤 면에서는 오순절적인 신학이다. 콘스탄틴이 국교로 인정한 기독교는 지배그룹의 종교이며 권력지향적인 종교이다. 민중신학은 이러한 신앙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성령 운동은 교회를 발단시킨 원동력이었다.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움직인 것은 성령의 힘이었다. 이와 같이 정의를 실현하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성령의 힘이다. 성령의 힘에 의해서 예수 사건은 구현된다. 만약 성령의 힘이 없었다면 예수 사건은 머나먼 옛날에 한번 일어났던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민중신학에 의하면 성령 운동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기독교 전통과 명백한 관련을 갖지 않은 한국과 그 밖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하나님의 활동은 성령 안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억압받는 상황으로부터 민중을 해방시키는 모든 행위는 예수 사건, 또는 하나님의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이해 하에서는, 제도적인 기존 기독교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민중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민중의 해방과 그들의 한을 풀기 위한 성령의 직접적인 활동이다. 세상이 교회 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정의로운 세상이 메시야 왕국의 상징이다.


9. 메시야 왕국과 천년왕국

민중신학에 있어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통치하실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우기 위해 오시는 메시야에 관한 것이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바라는 유일한 간절한 희망은 정의를 회복하고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오시는 메시야 즉 의로운 통치자의 출현이다.
메시야 왕국의 상징은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보다는 천년 왕국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서남동은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님 나라가 통치자들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어 온 반면에 천년 왕국은 민중들이 열망하는 상징이었다." 하나님 나라 개념이 추상적이고 비정치적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개념은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을 강조하는 천년왕국 사상은, 초대교회가 관심을 가졌던 메시야 왕국 즉 예수가 재림함으로써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의 개념과 훨씬 더 밀접하게 잘 어울린다. 예수가 선포했던 하나님 나라는 피안의 어떤 공간도 아니고, 사후의 현실도 아니었다고 민중신학자들은 강조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현실 상황에서 실현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세상을 의미했다.
민중신학이 그리고 있는 메시야 왕국은 다윗 왕국을 이스라엘 땅 위에 역사적으로 회복하려 했던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신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메시야 대망은 민중이나 가난하고 억압받는 다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경우에, "민족주의적 메시야니즘," 혹은 "정치적인 메시야니즘"으로 변질되기 쉽다. 정치적인 메시야니즘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에, 메시야적인 정치나 진정한 메시야니즘은 민중을 섬기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배자-메시야니즘과 민중-메시야니즘, 즉 정치적 메시야니즘과 메시야적 섬김은 엄격히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적인 메시야니즘을 대표하는 거짓 메시야들은 황제들, 공산주의 지도자들, 군사정부 기술관료들이다. 예수는 참 메시야였지만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지는 않았다. 메시야 왕국의 실현은 주님이 재림할 때에 이루어진다. 메시야 왕국 건설은 천년 왕국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대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재림함으로써 천년 왕국 즉 메시야 왕국은 이 땅 위에 건설될 것이다.


10. 방법론적인 문제들

대부분의 제삼세계 신학들처럼 민중신학도 상황신학이다. 민중신학은 기본적으로 해방을 위한 민중들의 실천적인 투쟁과정에서 생긴 성찰이다. 사회정치학적인 해석이 민중신학의 중요한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종종 "한국 민중의 사회전기"라고도 불리운다. 이러한 종류의 신학은 종종 "위"에서 보는 신학이 아니라, "아래"에서 보는 신학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민중신학자들은 그들의 방법론을 정의할 때 "귀납법"이라는 말을 더 즐겨 사용한다.

1) 귀납법
민중신학은 귀납법을 사용한다. 귀납법은 대부분의 전통적인 서구 신학이 사용했던 연역법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연역적인 방법은 실제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면, 절대적인 진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신학적인 전제들이 신학을 지배한다. 이러한 신학들은 추상적인 가정들에 의해서 통제되고 조정된다. 실제로, 모든 신학적인 작업은 관념론적인 가정 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신학은 부자 계급을 옹호해 왔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신학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지배계급의 도구가 되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귀납적인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귀납적인 방법은 어떤 조건들이나 가정들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귀납적인 방법은 다만 예수 사건 즉 해방 운동 사건에 대해 숙고할 따름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귀납적인 방법은 관념이나 지식적인 가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해방 투쟁 사건이요, 이것이 신학 작업의 기초가 된다.
왜냐하면 행동이 개념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민중신학은 하나님의 활동의 실제적인 사건, 즉 한국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해방 투쟁에서 드러나고 있는 예수 사건을 가지고 시작한다. 하나님이 민중을 해방시키려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한국에서 일어난 모든 해방 운동들의 기본형(prototype)으로 사람들이 간주하고 있는 메시야적인 동학 운동이다. 하나님의 해방 행위는 억압적인 일본의 압제에 항거하는 동학 혁명에서 나타났다. 동학 혁명은 포학한 폭압정치에 항거하는 민중 봉기였다. 동학 혁명은 파라오의 지배에 항거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봉기와 많이 닮았다. 동학 혁명은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로 간주되기 때문에, 동학 즉 천도교는 민중신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서남동과 마찬가지로 김지하는 민중신학을 전개하기 위하여 기독교와 동학을 결합하려고 시도하였다.
민중신학은 귀납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해방 행위는 신학적인 숙고와 이론의 출발점이 된다. 하나님은 행위, 즉 가난하고 억압받은 사람들을 해방하는 행위 속에서만 자신을 나타내신다. 해방 운동을 위한 실제적인 사건 만이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내 보여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중을 위한 신학을 하는 방법으로서의 귀납적인 방법은 사색만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2) 이야기신학의 방법론
민중신학은 이야기를 통하여 가장 잘 전개될 수 있다. 해방을 위한 혹은 해방의 실제적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이 민중신학의 내용이 된다. 교육을 받지 못한 민중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야기 형식을 이용한다. 히브리 성경에서,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과 갈릴리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며, 하나님의 계시는 이야기를 통해서 나타났다. 기독교 성경에서, 복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무슨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 형태로 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학적인 사색들은 예수를 믿었던 보통 사람들이 말했던 이러한 이야기들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까지 신학이라고 불러 온 과거의 신학은 사실상 인간사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러한 행위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민중신학은 두 가지 형태의 이야기 즉 실화와 민담을 신학의 소재로 삼는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중신학자들은 민담을 민중의 경험을 이해하는 자료로 사용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탈춤과 한국적 오페라인 판소리, 그리고 샤머니즘의 의식인 굿 등에서 재연되고 노래로 불려진다. 실화와 민담은 민중의 마음 속 깊이 간직된 감정, 세속적인 언어, 억압적인 상태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하는 효과적인 도구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민중들의 사회정치적인 전기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전기도 전달해 준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과 숨어서 비밀스럽게 말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공개적인 이야기들은 지배계급이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비밀스런 이야기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다. 억압하는 사람들은 민중의 실상을 이야기해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억압자들의 관심은 민중의 실상을 왜곡시켜 민중을 조작하고 조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민중의 실상이란 10대의 공장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상황, 군법회의에 회부된 학생들의 고문, 정치범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소외당한 민중의 고난 등이다. 이러한 민중의 이야기들은 당국에 의해서 은폐되고 신문에 실릴 경우 검열을 받았다. 문희석은 말하기를 한국에서 소문의 약 80%는 뉴스 자체보다도 더 정확하다고 한다.“소문들”을 통하여 민중은 진실을 알게 된다. 소문은 민중의 실상을 전달해 주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진실도 의심할 여지 없이 소문들을 통해서 퍼졌다. 예수는 버림받은 사람들, 창녀들,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아마도 이들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자기들끼리만 은밀하게 말했을 것이다. 아마도 예수 당시의 유대인이나 로마인들 가운데서 지배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에 관한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지배계급들이 원했던 것은 군중들을 속이기 위하여 예수에 관해서 거짓 이야기들을 퍼뜨리는 것이었을 것이다. 예수와 예수의 부활에 관한 진실은 비밀스럽게 전해졌다. 억압적인 사회에서 예수의 고난에 관한 진실은 이러한 비밀스런 소문들을 통해서만 전달되었다. 그래서 민중신학은 민중이 경험한 진실을 말하는 방법으로 소문들을 사용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해방사건들과 고난 당하는 민중의 경험들은 이야기를 통하여 전달되어 온 것이지, 조직신학이나 교의학적 방법으로 전달되어 온 것이 아니다. 전통신학이 초월적이고 연역적이라면, 이야기 신학은 내재적이며 귀납적이다. 전통신학은 지배자들의 신학인 반면에, 이야기 신학은 민중의 신학이다.


11. 전통적인 접근방법들을 역전시킴

제삼세계 신학의 접근 방법을 따르는 민중신학은 오랜 전통을 가진 서구의 신학접근 방법에 도전하고 있다.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서 사회, 정치, 문화적인 요소를 힘주어 강조함으로써 어느 정도 새로운 유형학을 만들어 냈다. 민중신학에서 민중의 문화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변형시키려는 경향을(문화를 변형시키는 그리스도와는 반대로)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은 기독교가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그리고 민중을 해방하기 위한 사회의 구조적인 개혁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민중신학은 역사와 문화에서 지배계급과 그리스도가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거부한다. 민중신학은 지배계급이 역사의 주체이며 규범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을 부인한다.
민중신학이 사회, 경제 분야를 분석함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의 분석방법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역전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사회, 경제, 정치 질서를 역전시켰다. 사회, 정치적인 구조의 개혁 없이는 민중 즉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이 역사의 주체가 되며 문화의 규범이 될 수는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민중을 억압하는 구조가 현존하는 한에는 민중의 참다운 해방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 실존을 초월하기 위한 상징적인 다양한 해방예술들 즉 탈춤, 무당굿, 판소리 등은 민중해방을 실제적으로 가져다 줄 수 있는 방법은 될 수 없다. 여기에 바로 민중신학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보다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와 더 밀접한 관련을 갖는 이유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주체가 될 때, 부유한 사람들은 객체가 된다. 주체의 존재는 객체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둘 다 모두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역사에서 민중의 역할이 주체로 역전되었다는 것은 사회 정치적인 구조에서 엘리트의 역할이 역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의 최종단계에서 민중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인 구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 민중신학은 구원사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역전시키려고 시도한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는 구원사의 주체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실존의 주체로서 간주되어 왔다. "자아"(I)로서의 그리스도 즉 인간 실존의 주체로서 그리스도는 구원사의 핵심이다. 민중신학은 이러한 관념을 역전시킨다. 민중신학에 따르면, 민중은 구원사의 주체가 되며, 그리스도는 민중의 종으로서 구원사의 객체가 된다. 이와 같이 민중신학은 그리스도의 종 되심을 자유롭게 해석한다. 하나님의 화육이신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봉사하러 오신 종이다. 그리스도는 민중에 봉사하기 위해서 오셨고 그 자신을 민중의 한 사람으로 인식하셨다. 서남동의 견해에 따르면, 민중이 주인의 역할을 하고 그리스도가 종의 역할을 한다: "민중신학에서는‘민중’이라는 개념이 예수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예수가 민중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안병무의 입장은 예수를 민중과 동일시하지만, 그리스도와 민중 사이에서 이러한 역할의 역전은 민중신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적 함의에 대한 이해와, 그리스도의 이미지에 대한 문화적인 변형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것 같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비교해 볼 때, 민중신학은 훨씬 더 포괄적이며 통전적이다. 비록 라틴 아메리카 상황에서 억압받는 다수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범주의 용어로 정확하게 분류될 수 없다고는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자들이 사용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분석은, 그들의 토착적인 종교와 문화적인 요소들이 그들의 신학적인 작업에서 폭넓게 탐구되지 못했다는 인상을 - 최소한 나에게 - 준다. 민중신학의 강점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사회정치적인 전기를, 그들의 토착적인 종교와 문화적인 요소들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민중은 프롤레타리아와는 다른 존재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고, 정치적으로는 억압받으며, 사회적으로는 소외되었으나, 그들은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그들은 역사의 주체이다.


12. 비판적인 관점들

민중신학은 아직 발전과정에 있기 때문에, 나는 비판적인 평가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관심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서 몇 가지만을 말하려고 한다. 이러한 나의 관심은 이 책에 기고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1) 포괄성의 문제
민중신학의 공헌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민중을 포괄적이고 통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방법은 성령의 황동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이 될 때, 신학은 그리스도의 행위와 인격에 근거를 둔 배타적인 특성들을 강조하는 경향을 띄게 된다. 아와는 달리 신학이 성령의 활동과 움직임에 그 기초를 둘 때, 신학은 포괄적이 된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모든 사건은 쉽게 성령의 활동으로 귀착된다. 성령으로서의 하나님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적인 상황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토착적인 문화와 종교적인 요소들을 신적인 계시의 부분으로 포함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바로 이 민중신학의 접근방법 즉 통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방법 속에 위험도 들어 있다. 기독교 전통의 일부가 아닌 문화적, 종교적 요소들을 신학적 과정 속에 포함시킨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교, 도교, 유교, 샤머니즘의 요소들을 기독교 신학으로 통합하는 데는 많은 주의가 요구된다. 이러한 노력들은 모든 종교적 현상을 동일한 하나님의 표현(manifestation)으로 간주하려는 라다크리슈난(Radhakrishnan: 인도의 철학자, 정치가, 대통령 :1888-1975: 역자 주)의 경향과 유사한 신학으로 쉽게 빠질 위험이 있고,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혼합주의(syncretism)에 빠질 위험이 있다. 우리는 전에 샤머니즘, 유교, 불교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결국은 동학 즉 천도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가져왔다는 사실에서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민중신학은 그 신학에 비기독교적인 요소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새로운 종교를 탄생시키지 않도록 많은 주의와 경계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기독교의 고유한 기본 특성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기독교 신학에 토착적 요소들을 첨가시키는 일은 아주 민감하고 어려운 일이다. 샤머니즘을 민중신학에 통합시키려는 성급한 시도들이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2) 권위의 출처의 문제
신학은 상황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학의 출처는 상황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대부분의 제3세계 신학들처럼 민중신학도 추상적인 관념들이나 이론들보다는 구체적인 경험과 실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민중신학에 따르면, 민중의 경험이 신학의 규범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민중신학은 그 권위의 출처를 민중의 경험에서 찾는다. 권위의 출처 즉 "권위의 집"에 대한 전통적 사상은 성직계급적(hierarchical)인 구조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든 해방신학은 권위의 출처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방법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민중의 경험을 신학의 절대적 규범으로 삼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지금까지의 전통은 성경과 전통을 기독교 신학의 규범들로 삼아왔다. 예를 들면, 웨슬레는 여기에 이성과 경험, 두 가지를 더한 네 가지를 신학작업을 위한 권위의 출처와 지침으로 삼았다. 이 네 가지 중에서도 성경이 최고의 권위의 위치에 있었다. 이 접근방법은 웨슬레 전통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경전을 신성시하는 전통은 기독교 전통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세계 주요 종교들도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내가 염려하는 것은 민중신학자들이 그들 신학의 규범인 민중경험을 살리기 위하여 성경을 이용하고 성경의 권위를 이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민중의 경험이 신학의 규범이 된다면, 민중의 경험이 도덕적이든 비도덕적이든,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민중의 경험은 거룩하고 신성하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인의 종교적 경험인 한은 성경의 계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상황의 경험을 절대화하는 민중신학의 경향은 민중신학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신학자 가운데 하나였던 서남동의 글에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의 보편적인 규범을 넘어서서 상황을 절대화함으로써 민중신학은 실제로 포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배타적이 된다. 민중신학자들은 이러한 위험 요소를 경계하고 피해야 할 것이다. 민중신학은 성경적 권위의 규범이 신학작업 과정에서 보존되는 방법으로, 민중 경험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잘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진취적인 신학작업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3) 편향성의 문제
또 하나 염려되는 것은 대부분의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을 낭만화하거나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민중을 순결하고 무죄하다고 서술한다. 그들은 죄를 짓는 자들은 통치자들이지 민중은 아니라고 말한다. 민중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죄는 사회적 범주에 속한 것이지 개인적인 범주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약 민중이 순결하고 무죄하다면 민중의 경험은 신학의 규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죄가 없는 것이 아니다. 민중들도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들의 집단 내에 있는 약자들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조작하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민중들과 함께 일하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민중들도 어떤 다른 집단들과 마찬가지로 죄성이 있으며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민중신학은 다른 해방신학들과 마찬가지로, 죄를 사회적 범주로 강조함으로써 개인적인 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관심하는 것은 사회적인 죄와 개인적인 죄가 민중신학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구조적인 죄를 강조한다고 해서 개인적인 죄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건전한 신학은 구조 악과 개인의 죄를 똑 같은 비중으로 함께 다루어야 할 것이다.
민중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접근한 또 하나의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사상이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 계셨다. 그러나 이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이 보편적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안병무는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사랑을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편파성(partiality)을 주장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편파적으로 보는 것은 심오한 신의 본성을 훼손하는 것이 된다. 안병무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선적(preferential)이라기보다는 편파적(partial)이다. 나는 민중신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편파적 사랑의 중요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안병무는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을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사랑하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정의할 때 하나님은 보편적이어야 하고 편견이 없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사랑이 더 "필요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더 사랑하신다. 어린이가 어른 보다 더 많은 돌봄을 필요로 하듯이,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 즉 민중들은 부자들이나 안락한 사람들보다도 더 하나님의 관심과 돌보심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부자들과 힘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이 지배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나타나고, 이 심판이 민중들에게는 해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민중신학이 하나님의 사랑을 선택적으로 보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민중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민중의 해방에서 지배자의 해방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편적인 사랑의 빛에서 이해한다면, 우리는 민중에 대한 하나님의 우선적인 사랑행위가 곧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4) 인권과 인간 중심주의
역사적으로 볼 때, 지배계급에 의한 민중의 비인간화가 한국에서 해방운동을 일으키게 된 제일 원인이었다. 민중의 비인간화를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도는 인간을 신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동학 즉 천도교의 기본사상도 인간을 신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동학의 핵심사상은 인내천 사상 즉 인간의 본성이 곧 신이라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아트만-브라만(Atman- Brahman)의 통일에 대한 우피니샤드(Upanishad)의 가르침과 거의 같은 것이다. 인간의 본성 즉 영혼은 하나님의 본성과 다를 것이 없다는 사상이다. 동학은 인간의 본성을 신격화함으로써, 민중의 인권을 회복하려고 했다. 민중이 전체주의의 폭정 아래에서 무자비하게 억압받으며 짐승처럼 취급받고 있을 때, 이 사상은 혁신적인 새로운 사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내천 사상은 민중신학이 인간 중심주의라는 위험한 사상에 기울어지게 하는 영향도 주었다. 인간성을 신성과 동일시하는 것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에 역행하는 것이다. 인간이 신과 동일시되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지을 수 있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인 신성모독죄에 해당된다.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은 신성과 인간성 사이의 구분을 항상 명확히 했다.
인내천 사상의 위험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의 인간성을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민중신학자들은 한국의 신흥 종교의 하나인 증산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인간성을 신성 위에 놓으려는 사상의 경향까지를 보이고 있다.
신흥 종교인 증산교에 따르면 인간은 신 보다 더 위에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민중의 필요를 채워 주는 수단이 된다. 민중이 하나님 보다 우월하게 될 때, 인간 중심주의의 위험성은 거의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민중은 하나님의 구원사의 주체가 되는 반면에, 하나님은 민중의 객체가 된다. 민중신학은 인간의 위치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신봉하는 한국 토속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유혹들을 배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다. 나는 민중신학이 이러한 종류의 유혹을 끝내는 극복하리라고 확신한다.


13. 결론적 소견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민중의 해방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민중신학자들에게는 이 글에서 언급한 관심사들이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민중신학자들은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한국의 민중 경험의 흐름을 단순하게 성찰하기를 원하고 있다. 안병무가 나에게 말한 대로, 민중신학자들은 가능한 한 개념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개념화는 민중 경험의 역동성을 침체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안병무 교수와 그리고 다른 민중신학자들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민중신학자들과 전통적인 서구 신학자들과의 중요한 차이는, 그들의 사고하는 방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동양적인 사고 방법은 포괄적이며 유기적이다. 동양적인 사고는 관념보다는 행동을 강조한다. 동양적인 사고는 정신 보다는 몸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다. 안 교수가 말한 대로, 서양인들은 마음으로 명상하고 동양인들은 몸으로 명상한다. 이것은 민중신학이 관념이나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중신학자들이 형이상학을 거부한 것은 서구의 철학인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것이다. 민중신학자들이 관념을 거부하는 것은 서구적인 관념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형이상학 즉 주역(I Ching)에서 발견된 변화의 형이상학을 사실상 긍정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민중신학은 통전적이고 상대적이며 역동적인 특성을 가진 동양적인 사고방법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http://minjungtheology.org/magazine/magazine_read.asp?fdMonthSeq=24&fdSeq=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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