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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5/08/10 (08:18) from 129.206.196.28' of 129.206.196.28' Article Number :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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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학의 회고와 전망







이 논문은 2004년 2월7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통일연대 학술연구특별위원회와 범민련재미본부, 재미동포서부연합회가 공동주최하고 민족통신, 크리스천헤럴드, 민주노동당 미주후원회, 통일맞이나성포럼, 내일을 여는 사람들이 공동후원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심포지움'에서 발표된 내용은 아니나 자료집에 실은 내용이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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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순경
[이화여대 은퇴교수, 조직신학 박사,한국여자신학자협회 초대회장, 통일연대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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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신학에 이르는 계기들
2. 통일신학의 성서적 근거와 사회역사적 방법
3. 민족 근현대사 맥락에서의 민족문제와 혁명적 민족개념
4. 반공을 넘어서는 교회 선교
5. 민족의 위기를 넘어서는 6·15 남북공동 선언의 실현

이상의 주제들 아래서 지금까지 내가 전개해 온 통일신학을 대략 핵심적으로 회고하고, 오늘 우리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상황과 오늘의 통일의 주제,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의를 짚어보고, 통일된 정의로운 미래의 민족사회창출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1. 통일신학에 이르는 계기들

어떻게 내가 한국신학으로서의 통일신학을 주제화하기에 이르렀는지를 회고하자면, 그것은 항일 민족운동과 1945년 이래의 민족 분단의 맥락에서 발단한 것이다. 1943년 세브란스 고등간호학교(현 연세대 간호대학 전신) 1학년 시절에 나는 몇몇 좌익계 항일운동가들을 만난 적이 있으며, 1944년 몽양 여운형 선생을 동반 김옥선이라는 친구와 함께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신의주 출신인데, 생전에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해방과 분단에 직면해서 나는 나의 존재의 깊이에서부터 들려오는 말을 들었으니, '그리스도교와 공산주의는 만나야 한다. 그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라는 외침이었다. 나는 물론 그 말의 의미를 직관했을 뿐이고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풀어나가야 할 내 평생의 숙제로 내 마음에 잠복해 있다가 내가 우리민족을 생각할 때면 들려오던 말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문제에 부딪혔으니, 그것은 존재와 죽음의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우선 신학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으며, 저 두 가지 문제들이 오늘까지도 나의 신학작업에 있어서 병존하여 작용한다.

1946년 나는 감신대(당시 감리교 협성신학교, 전문대)에 학력미달로 전수과에 입학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정치계의 한 여론조사 때, 나는 몽양 여운형 선생이 주도하던 '인민공화국'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고, "빨갱이 마귀가 거룩한 하나님 동산에 틈타 들어왔다"는 물의를 일으켰고 쫓겨날 지경이었으나, 윤성범 교수를 비롯한 3,4명 학생들의 변호에 의해서 축출은 모면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한국교회의 반공이라는 벽에 부딪혀, 한국교회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하는 물음을 끌어안고, 한없이 어렵고 먼 신학의 길을 걸어왔다. 신학적 주제들이 영원한 미궁으로 나를 빠져들게 하는 것 같고 괴로워하다가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가 섬광처럼 보이는 듯 한 순간이 있었으며, 신학함의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1958년 내가 뉴욕시 Union 신학교 에큐메니칼 회원(Program of Advanced Religious Studies 초청)으로 있을 때, 학기 논문으로 나는 한국교회의 반공문제에 대한 역사신학적 검토를 면밀히 다룬 다음에 '한국교회의 반공은 잘못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의 윤리학 교수 John Bennett와 중국 선교사였던 Van Buren 교수가 내 논문을 주목하고, 자신들의 입장이 원칙적으로는 반공이었을 것인데, 이에 최고의 평점을 주었다는 사실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으며, 그들의 학문적 객관성을 배웠다. 한국교회의 경직된 절대적인 반공 교조주의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통일신학'이라는 명칭을 나는 1980년대 말부터 채용했으나, 통일신학에 이르는 전 단계는 긴 여정이었다. 특히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공표되자, 나는 더 이상 통일문제를 미루어 둘 수 없기에 안식년 연구교수로서 마르크스주의와 역사철학 연구차 1974년 유럽으로 떠났다. 나는 T bingen 대학 내와 대학가에 있는 산더미 같은 마르크스-엥겔스 문헌들에 압도당할 지경이었는데, 초기 마르크스-엥겔스의 책들을 읽었으며, 그들의 사상의 광범위한 영향권을 가늠했다. 또 나는 K. Barth 신학 계통의, 1960년대 유럽의 '신좌파'운동의 대변자인 Helmut Gollwitzer와 그의 후계자 Wm. Fr. Marquardt를 새롭게 발견했다. 나는 통일문제와 더불어 한국신학에로의 전환을 궁리하고 있었는데, 1975년 독일의 동아시아 선교부 주최, 'Deutsch - Koreanische Tagung'을 위한 강연을 그러한 전환점의 계기로 삼았으며, 그 강연에서 비로소 우리 민족 근 현대사를 배경으로 민족분단과 통일문제를 한국신학의 주제로서 설정했다. 그 강연에서 나는 민족과 통일문제는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이외에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 연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1976년 귀국했다.

귀국하자 나는 한편 항일민족운동사와 분단사를 더듬더듬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역사신학'이라는 주제 아래서 대학원 세미나를 열었다. 그러나 이 주제는 학생들에게 완전히 생소하고 그들은 오리무중이었다. 다른 한편 나는 교회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의 집회들에서 통일강연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대체로 냉담했다. 그 이래로 나는 연구논문들과 강연들에서 한국교회의 반공노선을 반성서적이고 반민족적이라고 논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의 통일신학은 주로 한국교회를 비롯한 남한의 반공·반북 노선에 대한 비판으로서 부정적(negative)작업에 치중해 왔는데, 물론 그것은 민족과 교회에 대한 긍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국교회와 신학의 일반적인 냉담과 무관심 속에서 통일신학의 그러한 작업은 참으로 힘겨웠으며, 통일신학의 긍정적인(positive) 차원에 대한 작업도 부정적 작업과 마찬가지로 힘겹고 외롭다. 나는 자주적인 우리 민족의 존속의 위기에 직면해서 통일신학의 밝은 전망을 기대할 수 없고, 위기감의 절규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감신대가 웨슬리 탄생 300주년 기념행사에 오늘과 같은 통일신학 강연의 자리를 허용해 준 사실이 내게 커다란 격려와 위로가 되는 바이다.

2. 통일신학의 성서적 근거와 사회역사적 방법

우선 우리는 구약의 구원사(Heilsgeschichte) 전통의 출발점인 B.C. 1250년 경의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초기 이스라엘 민족사회 건설이라는 민족 사회 혁명에서 통일신학의 패러다임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출애굽 사건은 애굽 제국주의 지배 아래서의 노예된 이스라엘 민중의 해방, 아마도 인류 역사상 최초의 노예 민중의 해방사건이다. 그 사건은 가나안 땅 봉건적 도시국가들의 지배 아래서의 '농민항쟁'(G. E. Mendenhall), 가나안 땅에 이미 출애굽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일부 이스라엘, 근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던 '하비루'( piru) 민중과 여러 부족들의 연합(N. K. Gottwald)에 의한 반제·반봉건 항쟁 운동의 동력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동력에 힘입어 가나안 땅 민중의 봉기로 건설된 혁명적 초기 이스라엘의 민족사회가 창출된 것이다. 나는 Drew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이수하던 시절 초기 이스라엘 민족사회 정초시에 출현했다고 추정되는 '야웨의 백성' (암 야웨)-라는, 즉 야웨 하나님과의 계약의 백성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면서, 이 개념으로써 우리 민족 근현대사에서의 피억압민족을 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숙고했다. 출애굽 사건과 초기 이스라엘 민족사회는 모든 피억압 민족의 해방과 모든 민중의 사회해방의 패러다임으로서 해석되어야 한다. 어떻게 B.C. 1250 ∼ 1050년 경의 이스라엘 역사가 그러한 보편사적인 타당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창조자·구원자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신앙에 의해서 형성된 구약의 구원사 전통에 함유된 의미이다.
우리는 구원사적 신앙의 그러한 의미를 B.C. 6세기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기로부터의 해방, 말하자면 출애굽 사건에 버금가는 출바빌론 사건을 선포하는 제 2이사야(이사야 40-55장)에서 명확하게 전형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야웨의 종'에 대한 제 2 이사야의 네 편의 시(42:1-4; 49:1-6; 50:4-11; 52:13-53:12) 중에서 특히 넷째 편은 야웨의 종, 고난의 종을 선포하는데, 그는 이스라엘과 열국들의 죄악 아래서 대속적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난을 받으며, 그의 대속적 고난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사는 보편사적인 구원의 의의를 지니게 된다. 이와 같이 제 2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주어진 신적인 계약이 '민족들에 비치는 빛'(42:6)이라고 선포한다. 계약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이 지니는 구원사적 의의는 여기서 창조자·구원자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민족들에게 중재하는 보편사적인 빛이다. '야웨의 종'은 이스라엘 민족과 민족들의 죄악 아래서, 이들을 위하여, 이들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대속적인 중재하는 고난이다. 이스라엘의 초기 민족사회 창출은 본래부터 그러한 중재하는 대속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한 구원사의 보편사적 의미는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열강들 아래서 고난받은 우리민족사를 구원사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는 빛을 비쳐준다.

그런데 제2 이사야에 의한 미래투사로서의 계약의 백성의 보편사적 의의는 시상(詩像)으로 머물러 있으며,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차원에서부터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로 넘어와서, 역사의 현장에서 세계의 죄 때문에, 세계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신 역사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제 2 이샤야의 고난의 종에 관한 예언자적 시상은 미래의 차원인데 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역사의 현재에서 일어난 종말적 사건이다. 제 2 이사야의 고난의 종도 종말론적 미래를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 종말론적 미래는 현재화되고 사건화한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구약의 구원사 전통에서의 계약의 백성 이스라엘과 고난의 종의 의미를 새롭게 재포착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비추어서 저 구원사적 의미가 오늘의 우리의 역사사회적 현실에도 타당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종말적, 궁극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그것이 모든 민족사에서의 대속적인 고난을 조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민족사를 논할 수 없으므로, 다만 전형적으로 우리민족의 근현대사에서의 고난, 열강들의 지배세력들 아래서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의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조명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민족 근현대사에서의 고난은 세계의 불의한 제국주의·식민주의·분단세력들 아래서 일어난 것으로서 이들 때문에, 우리민족을 위해서 일어난 대속적인 의미를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의 지배세력들, 근현대사적으로 말하자면 제국주의·자본주의 식민주의, 이것과 결탁한 우리민족의 분단세력들 아래서의 모든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의 승리이며, 역사와 사회에서 작용하는 불의한 지배세력들과 사망의 권세에 대한 신적인 의의 승리이다. 그러한 부활의 능력은 불의한 사회역사를 변혁할 수 있는 신적인 종말적인 혁명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종말적, 궁극적 의미는 바로 그의 부활에서 확증된다. 모든 죄악과 사망의 권세에 대해서 그가 단번에 유일회적으로 죽으시고 사셨다는 초대교회의 선포가 바로 모든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넘어설 수 있는 혁명의 능력이다.
고대교회가 로마제국의 권력구조와 얼크러지면서, 근현대의 프로테스탄트 개신교 혹은 개신교 선교가 서양의 자본주의·식민주의적 세계 팽창세력과 결탁하면서, 서양과 아시아 교회들이 대체로 미국의 자본주의 지배세력에 편승하면서, 서양과 아시아 교회들이 이 세력의 요람에서 냉전시대에 사회주의권을 적대시하게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을 상실한 셈이다. 한국교회의 반성서적, 반민족적 반공·반북노선은 그러한 세계 그리스도교의 산물이다. 한국교회가 반공·반북노선을 고수하면 고수할수록, 미 신제국주의·자본주의 세력과의 결탁을 강화시키게 된다. 통일신학은 그러한 고리를 풀어놓으려고 근 30년 동안 교회의 반공·반북의 오류를 역설해 온 것이다. 그러한 잘못된 결탁과 고리에서 해방되어야만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또 세상에 대해서 자유할 수 있고, 복음과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올바르게 봉사할 수 있게 되리라.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계의 지배세력들의 죄악 때문에, 세상의 해방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세상과의 중보자·화해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과 화해하시고 교회에서 화해의 사역을 부여하셨다(고후 5: 14f., 18)는 말씀에 비추어서, 한국교회는 저 잘못된 결탁과 고리를 벗어버리고, 반공·반북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분단을 넘어서는 화해의 사역과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니, 그러한 화해의 사역이 바로 새로운 민족선교일 것이다. '북한선교'라고 외치면서, 한국교회는 남한교회와 교파들을 그대로 북녘 땅에로 연장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오히려 북한의 사상과 체제에 접근하면서, 이것을 새로운 민족선교의 계기로 선교신학을 민족선교로서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대적하는 세상과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시고 세상을 그의 나라로 이끄시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반공·반북의 파수꾼으로서 북한의 붕괴를 계속 획책하면서 어찌 선교를 운운할 수 있겠는가?

3. 민족 근현대사적 맥락에서의 민족문제와 혁명적 민족개념

한국신학으로서의 통일신학은 민족분단의 역사적 현실 분석과 이것을 넘어서는 통일된 새로운 민족사회 창출을 주제로 한다. 한국신학은 서양신학의 과거와 현재를 한국에 도입하면서 한국적 현실에 입각해서 비판적으로 해석, 평가 할 수도 있고, 우리 민족의 종교, 문화, 사상의 비판과 재해석을 위주할 수도 있고, 한국여성신학은 한국여성의 문제상황을 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이 민족문제 혹은 통일문제와 무관한 듯이 다루어진다면, 몰역사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 분단문제는 민족 전체의 존속과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며, 한국신학은 한국의 역사적 현실과의 씨름, 한국상황이 도대체 옳으냐 잘못되어 있으냐 하는 물음에 '그렇다', '아니다'라고 결단하고 대답해야하는 씨름이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가 그렇게 결단하고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종말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종말적 미래에서부터 현재적 사회현실에 처해있는 우리에게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하며, '미래에서부터 오시는 하나님'이 성서적 신앙의 표식이다. 그러한 하나님은 불의한 역사적 사회현실을 변혁하게 하는 성령의 능력으로서 교회에 다가 오시고 사회현실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신다. 교회와 신학이 그렇게 오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결단하느냐에 따라서 한 역사적 시대를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가 운명적으로 판가름 난다. 통일은 우리민족이 자주적으로 존속하느냐 아니면 미국과 같은 초강국이 조종하는 우주적 자본주의 지배세력에로 영원히 편입되어 버리느냐 하는 민족의 역사적 존립문제를 짊어지고 있다. 자주적 민족이 존립하고, 존속해야만 그러한 초강국 지배세력이 견제되고 변혁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1976년 유럽에서부터 귀국한 직후에 민족개념을 규명하기 위하여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피지배 민족이라는 민족개념은 일제하에서의 항일민족운동에서부터 이끌어내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 통일문제의 핵심으로 작용하는 민족개념은 항일민족운동의 좌우 연합전선에서도 작용했지만 특히 1945년 이래의 통일운동사에서부터 이끌어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민족신학을 논하기 시작했다. 민족은 민족사 전체에 걸쳐 형성된, 주어진 영토에서 혈연과 문화적 삶의 공동기반에서 형성된 사회집단의 한 단위로서 일반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러나 민족 근현대사의 항일민족운동에서의 피억압 민족 개념은 그러한 일반적인 민족개념으로써 다 설명되지 않는 해방과 투쟁이라는 역사·사회 변혁의 새로운 요인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민족 개념이 항일민족운동사와 통일운동사에서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역사 문헌들에 있어서 분명히 규명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남한 역사가들은 서양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근대의 민족개념과 민족주의를 프랑스 혁명 이래에 대두한 서양 근대 국가들과 자본주의 발달에 입각해서 규정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근대의 부르주아 민족개념이다. 우리의 근현대 민족사에서 주제화된 민족개념도, 한편 남한의 일반적인 의식구조에서 고려하자면 대체로 그러한 서양 근대의 자본주의 부르주아 민족개념과 동일하다. 서양의 자본주의 세계 팽창주의 조류의 맥락에서 전래된 선교와 조선 그리스도교와 한국교회의 민족의식도 그러한 서양 자본주의 부르주아 민족개념과 대체로 동일하다. 이 계통의 민족의식 혹은 민족개념이 대체로 반공·반북노선, 이른바 친미 자유민주주의와 결탁해온 것이다. 여기서는 항일민족운동과 통일운동에서의 피지배 약소민족의 해방과 통일운동에서의 '민족해방'이라는 주제에 함축되어 있는 혁명적 민족개념, 저 자본주의 부르주아 민족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민족개념이 무효화되어 버린다.

이 새로운 혁명적 민족개념은 1920년대 전후에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항일 민족운동에서 발단했다. 예컨대 그 개념은 1927∼31년의 좌우연합으로 형성된 신간회(新幹會)라든지, 해외에서 전개된 항일 좌우연합전선, 1945년 해방정국에서의 인민공화국, 좌우합작운동, 1945년 이래의 통일운동사에서 작용한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은, 말하자면 민족사의 명맥을 지니는 종교, 문화, 사상의 유산들을 포괄하면서 미래의 통일된 새로운, 정의로운 자주적 민족사회 혹은 민족공동체 창출이라는 목표를 함축하고 있다. 민족이 왜 존립, 존속해야 하는가?

오늘날 민족 혹은 국민국가는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 이래 세계 유일의 초강국 미국의 지배 아래서의 '지구 자본주의'(Grobal Capitalism)에로 편입되고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해 있다. 민족금융과 기업, 민족 경제란 지구 자본주의의 궤도에서 초국적 투기자본과 기업들에 의해서 소멸해 버릴 운명에 처해있다. 민족이 존립해야할 이유는 민족국가와 민족사회가 그러한 세계의 지배적 금융투기와 기업들에 의해서 조종되고 빈익빈 부익부라는 세계상황을 심화시키는 비인간적이고 불의한 세력을 견제하고, 민족·민중의 평등권을 쟁취하는, 미래의 새 민족사회와 세계사회의 창출을 위한 혁명적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약소민족 혹은 약소민족들의 해방투쟁에 함축된 그러한 혁명적 주체력이 이제 세계의 지배적 금융투기와 기업들의 수중에로 소멸되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역사변혁의 주체를 나는 민족·민중·여성이라는 주제로서 재설정했다.

민중과 여성의 사회적 평등권 실현이 없이 민족해방과 평등이란 없으며, 민중은 노동자 계급이라는 개념보다 폭 넓은 정치·경제적 평등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회계층을 포괄하는, 정의로운 민족사회와 세계사회 창출을 지향하는 역사적 주체력을 대표하며, 이러한 사회해방과 평등권 쟁취 없이 여성 해방과 평등권이란 성립되지 못한다. 여성은 민족·민중해방과 평등권 쟁취에 동참하고 여성의 평등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과 더불어 역사 사회 변혁의 자유한 주체가 될 수 있다. 통일신학은 그러한 민족·민중·여성이라는 주제를 성령론과 구원론, 종말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비추어서 일반 민중운동이나 사회운동 이상의 신학적 인간학의 차원으로서 전개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형태로 역사와 사회에 오시어, 역사와 사회로 하여금 세계의 불의한 지배력과 사망의 권세를 돌파해 나가도록, 미래의 종말적 구원에로 행진하도록 하는 능력이다.

4. 반공을 넘어서는 교회선교

반공을 넘어서는 교회선교는 남북의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주하는 교회의 사역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민족선교를 의미하며, 이것은 먼저 남한교회가 북한의 사상과 체제에의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시도 없이 남한교회가 북한 선교를 운운한다는 것은 세계의 자본주의적 지배세력과 결탁해온 교회를 그대로 북녘 땅에 이식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교는 남한교회를 갱신할 수 없고, 따라서 세계 교회에 새로운 선교의 전망을 열어놓지 못한다. 교회가 어떤 사상과 체제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대립한다면, 교회는 신앙의 자유와 신적 화해의 사역을 상실하게 된다. 통일신학은 북한의 체제와 사상에의 교회의 접근을 평탄하게 하려고 노력해왔고 북한도 그리스도교에의 접근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의 상호접근을 위하여 주체사상에 대한 신학적 재해석이 필요하다.

통일신학은 주체사상에 대한 포괄적 신학적 재해석을 아직 시도하지 못했으며, 그러한 과제를 후진들에게 남겨둔다. 여기서 다만 부분적으로 일별 하자면, 주체사상의 문화사상 혁명, 사회혁명, 과학혁명이라는 3대 혁명이 북녘 땅에서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 또 그 현실적인 문제들이 무엇인지 또 동유럽과 소련이 붕괴된 오늘의 세계 상황에 직면해서 어떻게 지탱되고 발전될 것인지 하는 문제들을 보류하고서, 원칙적으로 혹은 형식적으로 고려할 때, 그러한 3대 혁명은 우리 나름대로 오늘의 민족과 세계상황에서 재해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사상혁명은 세상의 불의한 권력구조와 경제구조 속에서 그 넘어 저편의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변화시키는 훈련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사상혁명은 신학적으로 부활의 새사람의 형상에 비추어서 포착되고 종말론적으로 재해석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혁명의 원리는 전세계를 지배하는 오늘의 지구 자본주의 병폐들을 넘어서 미래의 새로운 민족사회와 세계사회를 창출하려는 우리의 비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로 해석될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과학혁명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 발달과 세계의 냉전상황에서 파괴된 자연생태계를 복원하면서, 자연과학을 정의롭고 평등한 인간사회에 복무하게 하도록 하는 방향에로 재해석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교회와 신학이 한계상 세계의 변혁 혹은 혁명사상을 창출할 수는 없다. 혁명사상은 세계 내에서부터 대두한다. 역사와 사회변혁을 위주하는 근현대의 혁명사상은 마르크스주의에 의해서 대표된다. 세계교회는 대체로 이에 대립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에 내포된 계기, 교회로 하여금 불의한 세계사회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또 이러한 세계사회에 복음을 새롭게 선포할 수 있는 기회를 대체로 상실하고, 약소 피억압 민족들과 세계의 변혁의 물결에 역행해 왔다. 교회는 세계 내적으로 주어지는 혁명사상을 포착함으로써 복음과 하나님나라 선포를 늘 새롭게 수행할 수 있다. 신앙의 자유는 미래에로, 변혁에로 무한이 열려있어야만 종말적 미래로부터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의 징조들을 세계의 혁명사상들에 의해서 판별해 낼 수 있다. 동유럽과 소련이 사회주의권이 붕괴했다고 해도, 마르크스주의 혁명사상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체사상과 세계의 변혁 세력들 배후에 살아있다. 교회선교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역사와 사회전반, 세계 전반의 일대 혁명을 의미한다는 것,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주어져 있는 불의한 역사와 사회에서의 변혁세력들을 포착하여 선포할 때에, 교회는 사회역사에 동참하게 된다. 교회선교는 그러한 의미에서 올바른 민족선교 혹은 민족화해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그의 자유하고 의로운 주재권, 사랑과 평화와 평등이 지배하는 세계 사회의 실현을 위한 주재권을 의미한다.

5. 민족의 위기를 넘어서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실현

2000년 6월 13∼15일 남북정상회담에 의해서 성사된 6·15선언은 55년간의 분단사를 넘어서는 역사적인 신호탄이다. 그러나 그 실현은 남한의 반공·반북 기득권 수구세력의 제동과 미 부쉬정권의 대북 전쟁음모와 적대정책의 덫에 걸려있다. 남한 교회의 수구파는 물론 이러한 세력들의 편에 있으며, 대다수의 교회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신학은 이러한 남한교회의 반민족적 상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1994년에 성립된 조-미 제네바 합의에 대한 부쉬정권의 와해작전과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 때문에 불거진 북의 핵개발 문제는 북의 전력난 해결, 대미 방어책, 대미협상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대두한 것 같다. 북한 붕괴 혹은 남에로의 북 흡수통일을 꿈꾸는 남한의 수구세력과 교회는 부쉬정권이 대북전쟁이라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국민을 그러한 방향에로 책동하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이 우리 민족의 수호신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북한은 전력생산을 위해서 핵개발이 필요하다고 공언했으며, 그러나 체제 안전보장을 위하여 대미 불가침 협정에 따라 핵개발을 포기하겠다고 대미 2자 협상을 요구해 왔으나 부쉬정권은 대 이라크 전쟁에 광분하여 북한의 요구를 회피하고 북핵문제를 UN 안보리에 회부하고 한 미 일을 비롯한 다자간 협력에 의한 대북압력을 고수해 왔다. 러시아의 푸틴은 북한의 요구대로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과 핵무기 개발 포기의 일괄타결을 위한 조-미 협상을 제안했으며, 일본당국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공언하다가도, 부쉬정부와 자체내 수구세력의 압력 아래서 미국이 대북전쟁을 일으키면 이에 동반자로서 합류할 기세로 일본의 법적 조처를 추진시키고자 한다. 노무현 정권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절대 안된다고 주장하면서도 부쉬정권과 남한의 반북 수구세력의 눈치를 보느라고 북핵포기를 주장하면서도 북의 체제안정보장 요구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5월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한국문제 전문가, 카네기 재단의 샐리그 해리슨(Salig Harrison)과 그이외 양식있는 미국 지식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부쉬와의 회담에서의 한국의 대미관계를 종전처럼 끌려가서는 안된다고, 부쉬 정권의 한반도에서의 전쟁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부쉬를 설득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강조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에 즈음한 한국시민사회...300인 선언"도 그가 대미 자주적 외교와 미국의 전쟁도발을 결단코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대통령이 부쉬 면전에서 북핵 포기요구와 동시에 북의 안전 보장요구를 대변하고 중재하는 평화적 해결을 주장할 것인가? 그가 그렇게 하다면, 남한의 역대 정권들의 대미 관계를 넘어서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6.15 선언 실현과 통일은 멀고 먼 일이 될 것이다. 그뿐이랴, 우리 정부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전쟁 도발 가능성을 시인하는 셈이다.

중국의 중재로 4월23일 조-미-중 3자 회담이 북경에서 열렸는데, 북한의 일괄타결안에 의하면 북한은 핵개발 포기와 핵시설 사찰 수용, 미사일 발사실험 중단과 수출중단, 다자 회담 수용등 미국의 공식요구 조건들을 다 승인하고, 북-미 불가침 협정 요구 대신 협정보다 느슨한 문서화된 불가침 약속, 중유공급, 남북관계발전 및 북-일 관계 개선 방해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쉬정부는 강경하게 북 핵포기 만을 역설하면서, 북한이 대담하게 양보한 타결안에 대해서 침묵하면서, UN을 비롯한 한·미·일을 주축으로한 대북 압력을 촉구하고 있으며, 럼스펠트와 미 국방부는 북녘 영변 핵시설의 폭격과 김정일 정권 축출을 위한 전쟁빌미를 노리고 있다. 전 버클리대학 정치학 교수, 일본과 아시아 문제 연구가인 찰멀스 죤슨(Chalmers Johnson)에 의하면 미 정부의 의도는 대 이라크 전쟁과 복구문제 때문에 UN 안보리니 다자간 회담이니 하면서 시간을 끌고 북핵시설에 대한 폭격의 기회를 노린다는 것이며, 한반도 주변에 첨단 무기등 병력을 증강시키고, 비무장 접경에 배치된 주한미군 제2사단을 한강이남으로 이동시키려한다는 것이다. 남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도 북핵시설 폭격으로 방사능 낙진의 피해를 받을 것이니, 노무현 정권은 미 정부에 끌려가지 말고 주한 미군의 전면철수를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문학자가 이렇게 주장하는데 남한의 기득권 수구세력과 보수주의 교회는 북핵 위협을 과장하는 미 정부와 똑같이 북핵의 평화위협을 외치고 주한미군을 이 땅의 수호자처럼 착각하고 있다. 북한이 폭격당하면, 그것은 한반도의 전면전으로 확전될 것이며 우리 민족의 공멸을 가져올 것이며, 동북아가 요동할 것이다. 북한이 붕괴되면, 북녘 땅이 고스란히 남한의 것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미국은 1955년부터 한반도에서의 전술 핵무기 사용을 주장하면서(1955년 3월 18일 발 "UP-동양" 통신), 1957년 주한 미군의 핵 무장화를 발표했으며 (1983년 합동연감), 1980년대에 조직된 한·미·일 군사동맹 이래 한반도 핵기지화 정책이 보강되어 왔다. 1991년까지 한반도에 총 1070 여개의 핵 무기가 배치되었으며, 한반도에는 핵무기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치된 것이다. 그런데 1991년까지 핵무기가 철거되었다고 공표 되었으나, 군사 전문가들은 한반도에 아직도 핵무기가 존재한다고 또 용산 미군기지 지하에 핵시설이 있다고 전해진다. 1994년의 북-미 제네바 합의에 의하면, 그 제3조는 북한에 대한 핵무기 위협 중단을 약속함에도 불구하고, 2000년 1월에 작성된 미 "핵 전략 검토"와 9월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은 북한을 포함한 7개 국가들에 대한 핵무기 사용에 의한 선제 공격 구상을 확정했다. 미 작전계획 5027은 대북 선제공격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미 CIA 특수작전 그룹은 비밀훈련까지 했다는 것이다. 부쉬 정권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력으로 축출했듯이 김정일 정권 축출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북핵 문제를 빌미로 미 MD 체제 추진에 한국을 이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는 동북아 지배권을 구축하고자 한다. 북한의 붕괴는 우리 민족의 자주권의 붕괴, 미국 지배권에로의 우리 민족 전체의 종속을 가져올 것이다.

6.15 선언의 실현은 이제 우리 민족의 존속 여부를 좌우할 관건이다. 6.15 선언 이래 금강산 관광산업, 남북의 경제 교류, 경의선과 동해선 철로 개통 추진, 남북의 학술문화교류등 남북화해의 여건들이 진전되어 왔는데, 미 정부의 제동으로 6.15선언 실현이 지연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부쉬정부를 설득시켜 북의 핵 개발 포기와 더불어 북의 안전 보장을 이끌어내도록,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를 철폐하도록 북을 위하여 중재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 6.15선언 실현을 위한 남북협상을 추진 시킬수 있을지 크게 의심스럽다. 남한 교회는 대체로 그러한 민족위기를 몰인식하고 있으며, 6.15 선언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6.15선언 실현의 과정에서 남북 공조체제가 형성되어야 하며, 이른바 한-미 공조체제는 남북공조체제에 종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6.15선언의 제2항과 관련된 통일방안을 고려해 보자. 제 2항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연방제안의 상호적 종합가능성을 설정한다.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남북위 평화공존과 통일된 하나의 연방제 국가형식을 의미하는데, 사실상 남측의 '연합제안'과 거의 비슷하다. 1995년 '8.15 50주년 민족공동행사'를 위한 민족대토론회에서 발표한 나의 글 "통일운동의 원칙과 방도"에서 나는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의 종합을 시도했다. 남측 연합제의 문제는 그 마지막 단계에 결국 남에로의 북 흡수통일의 원칙에 놓여 있다. 그러한 흡수통일에로 귀결된다면 오늘의 세계상황에서 볼 때, 초강국 미국이 지배하는 지구 자본주의 세계에로 남북이 다 편입되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민족 근현대사에서의 반제 반식민주의 민족해방과 사회해방이라는 투쟁의 의미가 무효화되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쉬정권의 대북 압력, 무조건적인 핵 개발 포기를 요구하면서 국제적으로 경제제재를 획책하는 압력 때문에, 6.15선언 제2항의 이행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노무현 정권은 부쉬정권과 더불어 북 핵포기를 일방적으로 역설하면서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모른 체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의 신적 사역을 수행해야 할 교회는 반공을 넘어서서 조-미 사이를 중재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공의식과 무관심과 무지에서부터 벗어나서 교회가 6.15선언 이행을 우리정부에 촉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민족존립과 민족공멸의 위기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선포될 수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민족과 열국들의 불의와 죄악, 이스라엘의 사회적 위기를 직시하고, 이들을 하나님의 심판대에 세우고 구원의 미래를 선포했듯이, 또 예수 그리스도가 불의한 이스라엘과 로마 제국의 전반에 대립하여 임박해 오는 하나님 나라와 회개를 선포했듯이, 교회는 부쉬정권과 우리 민족의 분단세력들과 민족의 위기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표징으로서의 통일된 새민족 사회를 선포해야 할 것이다. 통일신학은 교회가 우리 민족과 세계상황의 문제들을 직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우리 민족의 새미래를 올바르게 선포하도록 복무하는 신학이다.
- 끝 -

* 이 글은 2003년 5월20일부터 23일 까지 감리교신학대학교가 주최한 웨슬리 탄생 300주년 기념 청년축제의 일환으로 개최한 기념강연의 일부로서 이 강연은 5월20일 정동 제일 감리교회에서 행한 강연이다.


http://www.minjok.com/article/index.php3?type=special&code=1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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