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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5/10/30 (19:59) from 129.206.196.55' of 129.206.196.55' Article Number :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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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역사하심에 경계선 긋지말라




http://www.chtoday.co.kr/news/pd_4364.htm
  


“주님의 역사하심에 경계선 긋지말라”

김경재 교수, “배타주의..잘못된 선민의식의 산물”

▲종교다원주의가 결코 기독교의 복음을 약화시키고 종교혼합주의를 만든다거나 기독교 선교를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김경재 교수. ⓒ송경호 기자
크리스천인 길희성 교수(서강대 불교학)가 '종교다원주의자'임을 자처하며 <보살예수>를 발간, 최근 신학계와 한국교회에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올바른 태도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종교간 열린 시각과 대화의 창구를 뚫어내고 싶었다”고 말한 <보살예수>의 저자 길희성 교수, "종교다원주의, 이제 침묵하지 말고 씨름할 때다"라고 강조한 감신대 이정배 교수(조직신학)에 이어 이에 대한 담론이 한국교회에서 더 이상 묻혀져서는 안될 중대한 과제임을 강조하는 한신대 김경재 교수(신학과)를 만나 인터뷰했다.

종교다원주의가 한국기독교에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종교다원주의라고 하는 표현은‘~론’이라고 표현해야 적절할 것 같다.‘~주의’라고 하면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처럼 어떤 신조를 절대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굳어진 자세, 폐쇄적, 독선적 자세가 연상되게 하기 때문이다.

종교다원론의 입장을 피력하는 근본적인 의도는 지구촌 시대,“인류 속에 부정할 수 없이 살아 숨쉬는 아주 긍정적인 종교들이 기독교 외에도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종교들은 그것이 문화와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종교라면 거론할 필요가 없지만 그들 안에도 치유의 은사, 영성, 인간의 심성을 개발하는 순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종교들을 지금까지 정통 기독교의 생각처럼‘우상종교, 거짓종교, 정복시켜 버려야 할 대상’ 이런 식의 접근으로 취급해서는 해결이 안된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을 때는 그러한 주장이 먹혀들어갈 지 몰라도 기독교를 포함해서 6대 종교의 범주에 드는 불교, 유교, 원불교, 카톨릭 등을 그렇게 대한다면, 절반 가량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다만 2천만 이상은 타종교인들인 한국의 상황에서는 이런 기독교의 입장을 존중한다거나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한다. ‘신앙적으로 열심이 있구나’이렇게 보는 게 아니라, 다만 독단과 아집의 종교단체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전도와 선교의 길이 막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넓고 큰 눈으로 종교다원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날마다 일상적인 가정생활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사회 미래의건전한 발전, 그리스도교의 지속적인 선교를 위해서라면, 종교다원론의 담론은 묻혀둘 문제가 아닌 목회자, 신학자들이 끄집어 내어 진지하게 씨름하고 생각해야할 중대과제다.

‘종교다원론이 복음을 약화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라며, 우려의 입장을 표하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독교의 복음을 약화시키거나 종교혼합주의를 만든다거나 기독교 선교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종교다원론을 매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대개 종교다원론에 대한 책과 그 내용을 한번도 진지하게 공부해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다원론자들을 보면 이들은 세계 여러 곳곳에서 이런 고민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신앙없고 경박한 사람이 아니고 복음전파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종교다원론의 담론을 주장하는 기독교인, 크리스천 학자들로서는 대표적으로 돌아가신 변선환 선생이나 서강대 길희성 교수 이러한 분의 궁극적인 연구의도는 한국기독교가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창조주 하나님, 만민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한국교회와 성전, 종파 안에만 지나치게 가둬두었던 폐쇄적이고 독선적 선민의식을 지적하고, 온 세상 만민을 사랑하셔서 모두 인류가 구원 얻기를 바라시는 마치, 햇빛과 단비를 누구나 할 것 없이 고루 고루 내리시려는 정말 하나님다우신 하나님을 소개하려 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보수적이고, 닫혀진 마음으로 종교다원론을 적대시하거나 비진리로 규정하는 주장과 그런 신학이야말로 실질적으로는 그들은 기독교신앙을 파수하고 바르게 지켜나가는 첩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면, 도리어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고, 사랑의 하나님인데 아주 편협하고 공격적이고 무자비하고 인정사정 없이 그런 하나님으로 소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국에 그리스도가 전래된 것은 카톨릭이 220년, 개신교가 120년이 막 지났다. 개신교로 말하면 아무리 오래된 믿음의 가정이라도 4대 이상이 없다. 4대 이전의 하나님은 예수님을 들어본 적도 믿어본 적도 없고 이 세상을 살았다. 분명 이 세상에 우리에게 생명을 남겨준 우리 조상들은 불교, 유교 천교도를 믿으면서 진실과 선을 나름대로 추구하고 사랑과 진리를 목말라 했을텐데 반종교다원론자들의 논리는,‘우리들의 조상님들이 하나님도 없이 마귀를 섬기면서 우상숭배를 해서 120년 전까지 그렇게 살았다’고 가르치는 셈이 된다.

그게 어떻게 성서에 핵심되신 사랑의 하나님, 만민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기본신앙과 걸맞을 수 있겠는가? 열심은 있으나 복음주의 신학, 지독한 종교적 이기주의의 태도를 갖고있는 점이 문제다. 자기는 믿어 구원받아 천국갈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지옥의 형벌을 기다리는 자들로 매도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종교다원론을 바라보는 교회와 신학계들의 현황은 어떠한가



▲김경재 교수는 "‘내가 십자가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동족의 구원의 문제를 위해 몸부림친다’는 바울의 고백이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동일한 고백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송경호 기자
신학교만 해도 몇 십개가 된다. 수많은 훌륭한 목회자들이 있지만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기독교 신앙인 답지 않고 윤리적으로도 대단히 비윤리적인 태도다. 바울이 자기 동족 구원을 위해서라면, ‘내가 십자가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동족의 구원의 문제를 위해 몸부림친다’는 심정이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종교다원론’이라는 이야기만 꺼내도, 그런 말을 하는 형제들을 적그리스도로 몰아붙이는 이들의 종교적 오만내지 교만의 태도는 신앙의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것이고, 대단히 바리새인과 같은 면이 있는 것이다.

종교다원론에서도 여러 형태가 있는데, 혼합주의와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종교다원론에 대한 입장이 이렇게 여러 가지인 상황에서 결국 진리와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 것인가

일반적으로‘종교다원론은 종교혼합주의’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데‘종교다원론’담론자들은 알고보면 종교혼합주의를 매우 싫어한다. 이 종교 저 종교 좋은 점을 비빔밥처럼 취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자 하는 것이‘종교혼합주의’인데, 종교다원론자의 입장은‘각각의 종교는 그 종교다워야 한다. 즉 기독교는 진짜 기독교답게, 불교는 불교로서 또 그 색깔과 향기를 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보다 종교가 클 수 없다. 역사상에 나타난 모든 종교들은 궁극적으로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을 증언하고 말씀을 전하고 소개하고 가르치는 길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 자체이신 유일한 하나님 앞에 모든 역사적 종교인들이 겸손해 질 필요가 있다.

개별 종교들의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음을 포용하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우선 앞서 말했지만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개별종교 자체를 무시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이들이 갖고 있는 장점은 살려야 한다. 각각의 모든 종교들은 지질 기후 풍토 역사적 배경, 성장과정 정치적 상황이 다 다르다. 땅의 꽃들이 여러 모양으로 피어날 수 있듯 유형적 특성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경우는 십자가와 어린양, 불교는 수레바퀴 연꽃 연꽃이 상징 아닌가? 어린 양과 연꽃으로서 대비되는 불교와 기독교의 특성이 유형적 특성이라는 것이다. 이 둘은 순수와 순결을 의미하는데, 어린 양은 희생의 제물로 쓰인다는 의미를 추가적으로 준다. 그래서 기독교는 십자가의 희생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극한 뜻이 드러나는 것을 알려주는 종교다.

반면 연꽃은 그 연꽃 뿌리라는 것은 진흙과 오물이 섞여있는 곳에 뿌리를 내려서 그 물을 뚫고 나오는 꽃으로, ‘아무리 세파에 시달려도 인간의 본성을 흐리게 하거나 잃어버리지 말고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평화적 메시지를 준다.

결국 보니까, 기독교와 불교는 각각 가지고 있는 보편종교로서의 나름대로의 위대성을 갖고 있다. 즉, 우리 쪽에 있는 강점을 저 쪽이 갖고 있을 수 있고, 우리가 갖는 강점을 저쪽이 갖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종교다원론의 자세는 이것도 좇고 저것도 좇자는 것이 아니다. 종교다원론이 역설하고 싶은 것은‘타종교는 서로 마음 문을 열고 상대를 인정하자. 관용의 정신을 갖고 서로를 배우자. 서로를 배우면 내가 그만큼 풍요로워진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진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에다 내가 꿰뚫지 못한 불교의 정신적 차원을 배우면 서로 창조적 변화를 지향해나가는 것이지 이것이 곧 복음의 약화라든지 정체성의 포기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종교다원론의 진의는‘대화’를 통해 하나되는 세계를 이루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종교다원론의 의미를 규명하는 것은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인류의 궁극적 문제해결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문제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맞는 말이다. 종교다원론은 어떤 이론이나 학자들의 공리공담이 아니다. 종교의 마지막 목적은 실질적으로 고통당하는 생명을 살려내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공동체로 바꾸자는 것에 있다. 지구촌의 생명을 위협하는 근본적인 문제들, 빈곤, 자연재해, 폭력, 생태 위기 모든 심각한 인간들을 비인간화시키는 어느 종교 혼자서 풀어낼 수 없다.

기독교가 아무리 위대해도 세계 전체 60억 인구 중 카톨릭, 개신교 다 합쳐서 15억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지구의 모든 문제는 다시 말하지만,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세계 다른 종교인들과 손을 맞잡고 해결해야 하기에 종교다원론은 단순히 이론이 아닌, 대화협력의 길을 열어주고 인간 사회를 보다 건강한 인간사회로 만들자는 데 필수불가결한 논의과제라고 볼 수 있다.

종교다원론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하셨는데, 이에 대한 신앙적 접근은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 궁금하다

신앙에 철이 들어서 보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이 그렇게 옹졸한 하나님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지구촌에 살고 있는 행성의 조그만 별을 만드신 하나님 뿐만 아니라, 은하계의 수천억 대은하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라 믿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을‘기독교’라는 종교만의 하나님, 기독교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는 하나님, 기독교 신자들만 가려서 사랑하는 하나님, 옹졸하고 좁은 하나님으로 어떻게 제약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예배의 자세 그리고 경외하는 자세가 아니다. 종교다원론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 하라. 지금은 하나님을 기독교가 독점하고 자기들이 지켜드린다는 망상에서 깨어나야 할 때다. 하나님은 지금 모든 종교를 합한 것보다 더 크시고 높으시고 영원하시고 신비로우신 분임을 깨달아야 한다.

중세기의 마틴 루터가 하나님을 교회의 바벨론 포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교회가 중세기에 로마카톨릭에 갇혀서 교회로써의 역할을 못하니까 교회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고 비유했던 것. 그런데 요새가 바로 그렇다. 그래서 종교다원론의 출현은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게 하고 우리가 버려야 할 생각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지도자들이 근시안적인 생각을 벗어 버려야 한다.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을 꿰고 있고, 그 기독교 종파 안에서만, 교회팻말과 예배당 안에서만 역사하시는 것처럼 생명, 창조 , 만유의 하나님을 기독교가 독점하려고 하는 태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벨론 포로 상태로 만드는 것, ‘이것을 깨트려야 한다’는 것이 종교다원론의 진의다. 결국 우리의 외침은‘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자’는 뜻에 있다.

한국기독교의 현실은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갇혀있고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김경재 교수는 "종교다원론이 역설하고 싶은 것은 '타종교인끼리 서로 마음 문을 열고 상대를 인정하고 관용의 정신을 갖고 서로를 배우자'"라는 것임을 강조한다. ⓒ송경호 기자
“거듭 당부하지만 우리 기독교인의 자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구원의 뜻을 막힘없이 사랑, 희생, 봉사의 자세로 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신 그 분의 일하심, 그리고 권능과 능력과 한계설정의 책임은 기독교의 몫이 아니다.

한국기독교 현실을 보면 말로는‘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 봉사한다’고 하지만‘예수님도 하나님도 우리 총회 우리 교단이 결정한 한계 밖을 나갈 수 없소’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오늘날 기독교는 건전한 세계의 지성인들로부터,‘기독교의 모습이 공격적이고 평화와 사랑을 가르쳐내는 종교답지 못하다’며 조롱받고 비판받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형국이다.

지난 70-80년대 한국교회의 비약적 성장은 부인할 수 없다. 지구촌 전체를 볼 때도 한국교회 성장 가운데 임하신 성령의 역사를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너무 자족하고 교만해져서 세계전체의 오늘의 사회의 사람들의 간절한 영적 고민과 신음을 듣지 못하면 불행으로 다가올 것이다.

70-80 년대 대형집회를 통해 있었던 급성장의 목회전략을 오늘 다시 반복한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똑같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요즘 대형교회 물량적 성장에‘너희들끼리 잘해봐라’그런 투로 비판적이며 냉소적이다. 실제로 본인이 학술 프로젝트를 앙게이트 조사를 해 본 결과, 한국교회에 대한 냉소적 시각은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 더 문제는 지도자들이 이런 현실은 조금은 알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것은 목회자들이 교파나 교단을 떠나서 순수하게 목회에 전념을 해야하기 때문에라고도 할 수 있지만, 여하튼 목회자들이 한국사회 문명사회의 추세를 개괄적으로 감지하는 데 있어 매우 둔감한 것 같다.

그러나 변화하고 있는 시대, 종교다원론의 담론은 회피하려 해도 할 수 없다.그리고 한국 기독교 부흥의 역사가 매우 특수한 한국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가 좋게 말하면 다른 종교와 경쟁, 안 좋게 이야기하면 타종교와 대치상황에 있었다. 하지만 불교, 유교 이런 종교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기독교가 이 땅에 발을 내딛기 전까지 하나님의 깊은 섭리 안에서 그 나름대로의 순기능적 역할을 감당했다.

이 시대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가를 반성하면서 조상들의 종교에 대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 우리 복음의 위대한 생명의 진리를 겸손히 전하는 자세를 취해야 선교의 문이 열린다.

개화기 때처럼 ‘기존의 모든 것은 우상이고 미신이다’ 라는 투로 배타주의적 입장을 취하면 취할수록 종교의 문은 닫히고 한국사회는 기독교에 대해서 뒤돌아 서버릴 것이다. 이 것이 걱정이다.

또 당부하지만, 정말 선교의 문을 정말 변화된 지구촌 시대, 다양한 문화가 열려져 있는 다문화 시대에서 기독교 복음의 위대한 진리성을 증언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교를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지혜를 모으고 새로운 종교의 정책을 모색해봐야 한다”

다른 종교를 이해하고 새로운 종교의 정책을 성경적으로 만들어 목회현장에 보급하기 위해 종교다원론의 담론 방향성과 미래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종교다원론에 대한 담론은 계속 신학교와 목회자들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고 풀어야 할 문제이지만 하루 아침에 업그레이드(upgrade) 될 수 없다고 본다. 다 학교를 들어가려면 초중고 과정이 있듯 종교간 상호관계를 보는 시각의 진전도 배타주의 포용주의 포괄주의 이렇게 입장이 여러가지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약 70-80%가 거의 배타주의로 교육되어 왔다. 타종교는‘우상이고 비진리이기에 대화할 필요가 없다. 타종교를 대함에 있어 '대화거절, 공격, 멸절'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번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발언이 이런 입장을 담고 있어 문제였다.

서구역사의 20세기 초 로마카톨릭이 그런 입장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2 바티칸 공의회 때, 종교다원론을 존속할 수 없는 연고로, 포용주의 입장이 공식화 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넓은 경륜 속에 있는 종교는 기독교보다는 못할런지는 몰라도 그 내용 안에 부분적으로 진리와 구원이 있다. 그러므로 대화와 협력을 하고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관용의 마음 포용의 마음을 갖으라’이게 포용주의인데, 한국은 그 포괄주의의 입장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 포괄주의 입장까지만 개신교가 전환을 해도 굉장히 새로운 진전을 이룬 셈이다. 교회가 갑자기 종교다원론으로 변화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사실은 포용주의와 다원주의는 물론 다르지만 그 차이가 백지장 한 장 차이일 뿐이다”

종교다원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실제적으로 얼마나 되는가

전체 신학자들에서 1-2%, 10%도 안될 정도로 적다. 마음으로 포용주의 입장을 취하시는 분들이 30-40% 이고 50-60%가 배타주의 입장이다. 50-60% 신학자들이 개인적으로 포용주의 입장을 갖는 것 같으나 그런 포용주의 입장을 일반목회자들이나 성도들에게 가르치는데 용기가 없었기에 오늘 한국교회 무지와 혼돈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다원론 담론이 묻혀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신학자들의 용기없음에 그 책임이 크다.

신학자들은 이 종교다원론 논의를 어떻게 다뤄야 하며, 종교다원론 담론이 잘 진행된다면 앞으로 한국기독교의 미래는 어떠하리라 전망하는가

종교다원론의 담론을 세계 곳곳에서 진지하게 진로모색하듯 한국에서도 이 문제는 꼭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한국의 모든 신학자들이 종교다원론에 대한 담론에 동의한다며, 일시에 합창할 수는 없겠지만, 큰 신학적 충격이 없이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포용주의적인 자리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분면 그럼 비기독교인들이 크리스천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고 결국 선교의 문제는 매우 쉬워질 것이다. 종교다원론은 아무래도 종교포용론보다 더 급진적인 것이니까 완전히 한국교회에 먹혀들려면 3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 교계가 종교포용주의 단계로까지 나가지 못한 것은 30-40년 이상 늦은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카톨릭은 바티칸 회의 때 이미 수용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므로 종교포용론까지는 가야 한다.

한편 신학자는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면서 교권이 타락할 때 그러지 못하도록 비판하는 지성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신학자들은 종교다원론의 담론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학자 모두가 종교다원론을 지지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전 단계의 포용주의로의 전진을 위해서라도 신학자들은 종교다원론을 말할 필요가 있다.

상식적으로도 보면, 종교다원론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좁게 보면 뜨겁고 강해보여도 큰 눈으로 볼 때 복음의 선교전진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예수님께서 구약성서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들이신 예언자 정신을 가져야 한다.

예언자의 핵심정신이란 무엇인가? 이스라엘 역사 속에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에 떠돌이같이 아무것도 아닌 백성인데, 하나님의 경륜에서 온 지구의 인류와 만유를 구원하시기 위한 경륜의 도구로 그들을 불러 쓰시고 선별하셔서 선민으로 택하신 것이 아닌가?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으로서의 자기책임을 망각하고‘하나님을 우리의 국가신이고 교주다 이스라엘의 성전만을 지키시는 분이다. 다른 민족을 원수처럼 여기시는 분’이라며, 만유의 주를 국가신 성전신으로 독점하려할 때, 예언자들은‘웃기지 말라. 그런 것이 아니다’‘하나님은 만유의 주, 만군의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법도 사랑을 실천을 하지 않으면 너의 집안부터 그런 심판이 올 것’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선민의식이 잘못갔을 때 생기는 착각을 경고하는 사명, 그리고 회개를 촉구했던 것, 이것이 종교다원론자들의 외침이다. 하나님께서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히 사랑하듯 기독교를 들어 쓰셔서 자신의 경륜을 펼치시나 한국기독교인들이 도무지 납득이 안될지 몰라도 천지의 하나님 천도교, 불자들 유교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을 때 진정 유일신 신앙이 무엇인지를 아는 기독교인이 된다. 그 것을 깨닫기 전에는 자신들의 말로는‘하나님이 유일신’이지만 기독교 종파신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포용주의로 빠르게 바뀌면 바뀔수록 좋다. 몇 년안에 바뀌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이 종교다원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 상황에서는 무리다. 그러나 포용론까지 못갈 것까지 있겠는가? 그러한 신학적 공동적 합의 선언이 나와도 세계는 박수갈채를 보내고 한국 지성인들은 한국개신교에 희망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금같은 배타주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예언하건데 계속 기독교라는 껍데기는 휘황찬란해도 한국기독교는 점점 힘을 잃어서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 중 하나로서 인식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속 교회로부터 이탈해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점점 개신교 숫자는 격감될 것이다.


김지혜 기자 jiheykim@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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