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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6/02/05 (09:43) from 129.206.197.132' of 129.206.197.132' Article Number :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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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에 있어서 “진리 게임”의 의미




푸코에 있어서 “진리 게임”의 의미

The Meaning of Michel Foucault's “Truth Game”









경북대학교








󰁵 목  차 󰁵
 


 

Ⅰ. 서론

Ⅱ. 진리의 문제

     1. 진리의 역사

     2. 진리 게임

Ⅲ. 진리 게임의 문제화

     1. 진리 게임과 권력

     2. 진리 게임과 주체

Ⅳ. 결론









<요약>




이 글의 목적은 지금까지의 푸코에 대한 담론-권력-지식 중심의 분석에서 벗어나서, 그의 진리 게임을 통해서 권력과 주체가 어떻게 설정되어지는가를 분석해 봄으로써 권력과 주체의 구성에 관한 문제를 새롭게 접근해 보는데 있다.

그의 진리 게임이 전략적으로 지식의 생산, 주체의 실천, 권력 관계, 자아에의 관계를 구성하고 통제한다는 점을 밝혀 줌으로써, 이들의 문제에 대한 근대 인간학적이고 관념론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서 근대적 사고의 단절과 주체의 구성에 관한 문제를 새롭게 해 보도록 하는 데 이 글의 의의가 있다.  

이상과 같은 분석을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는 그의 진리 게임에대한 분석을 통해 진리 게임이 전략적으로 지식의 생산, 주체의 실천, 권력 관계, 자아에의 관계를 구성하고 통제한다는 점을 밝혀 줌으로써, 이들의 문제에 대한 근대적 사고의 한계를 부각시킨다고 보인다. 나아가서 진리 게임을 통한 주체의 자유로운 실천이 능동적 주체를 형성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단절시키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 진리 게임이라는 개념을 전개하였다고 보인다. 이를 통해서 그는 근대적 권력 관계에서 “게임”으로 전개되는 “구별짓기”를 폭로한 것이다. 그것은 곧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주어졌던 특권적 인식을 해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제어 : 푸코, 진리 게임, 주체, 권력, 윤리, 문제화.







Ⅰ. 서론




이 글의 목적은 푸코(Michel Foucault)의 진리 게임을 중심에 두고 그와 관련된 권력, 주체, 진리의 의미를 논하는데 있다. 푸코를 그의 진리 게임을 통해서 이해하는 접근은 우리 학계에서 주요 쟁점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그의 말기 저작을 중심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 개념은 전기 저작과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개념들을 하나로 엮어서 이해해 볼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아직도 우리 학계에는 자신이 읽은 푸코만이 진짜 푸코라고 우기는 독단에 빠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논쟁에서 벗어나서, 이 글에서는 그가 다루었던 다양한 주제들을 대립 관계 내지는 상이함 속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하나로 연결해 볼 수 있는 한 개념으로 진리 게임을 택하였다. 그 이유는 진리 게임이라고 하는 틀 속에서 그의 권력 관계, 해방, 저항, 자유의 실천, 주체, 윤리, 성, 진리, 빠르지아, 그리고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 시사하는 바에 한층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1963년 󰡔임상 병원의 탄생󰡕에서 새롭게 출현한 임상 의학에 의해 진리 게임이 전개됨을 보여준다. 이어 그의 󰡔말과 사물󰡕의 서문에서도 서구 문화의 에피스테메의 불연속이 드러나는 단면에서 진리 게임의 전개를 보여준다. 그후 1975년 출판된 󰡔감시와 처벌󰡕에서도 근대 규율 권력이 새로운 진리 게임의 전개를 통해서 출현함을 보여준다. 그의 후기 저작에 속하는 󰡔성의 역사󰡕 시리즈에서도 진리 게임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성의 역사 1권󰡕에서 보여지는 진리 게임은 신체를 대상으로 한 근대 권력의 “구별짓기”에 의해 복종하는 주체가 권력 관계에 연결되는 위치에 자리 잡도록 하는데 있어서 성에 관한 진리를 통해서 그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그 후속 작품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개인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진리 게임인데, 그것은 권력에 복종하는 주체가 아니라 “존재의 미학”(aesthetics)이라고 하는 윤리적 주체가 되기 위해 자유의 실천이라고 하는 형식을 통해서 자아에 관한 성적인 진리에 복종하는 진리 게임이다. 그뿐만 아니라 1983년 “빠르지아의 문제화”1)와 1984년의 대담인 “자유의 실천으로써의 자아에의 배려”2)에서는 성에 관한 진리를 넘어서 자아에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주체의 존재의 미학을 구현하기 위한 진리 게임의 전개에 대해 깊게 논의하였다. 나아가 그는 다른 문화권과 비교해서 서구에 유래가 없는 발전 가능성을 부하였던 힘이 바로 다양한 진리 게임을 가능하게 했던 문화적 특성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3) 데에서도 그가 진리 게임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을 통해서 일관되게 짚어 볼 수 있는 진리 게임은 그다지 국내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물론 그의 진리 게임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 글은 이러한 그의 진리 게임을 진리, 권력, 주체의 관계 속에서 그 현실적 의미를 논의하는데 있다.













Ⅱ. 진리의 문제




1. 진리의 역사

근대까지의 진리는 세계 속에 있는 객관적 요소로써 절대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진리는 발견되지 않은 세계와 대비적으로 존재했다. 그래서 인간이 열심히 노력해서 그러한 발견을 해야 했다. 푸코는 이와 같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리의 위상에 도전했다.

푸코가 전통적 진리관에 회의를 품고 이을 “문제화”4)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니체의 저서「선과 악을 넘어서」의 서문이다. 니체는 위의 저서에서 참과 거짓으로 구분되는 이분법적 사고에 의해서 서구의 근대 인간학이 진리의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제기된 문제점에 접근하지 못하였다고 인식한다.5) 진리의 연구가 미리 어떤 타당한 해답을 설정하거나 이분법적 편견에 의해 진행됨으로써 다른 해법의 가능성을 봉쇄시켜 버린다는 점을 그는 제기한다. 그의 방법론은 진리로 가장되어 온 사고 체계나, 절대적이고 독단적인 진리나, 전혀 의심받지 않았던 진리의 가치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있다. 그의 목적이 진리의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 속에 언제나 진리를 밝혀 낼 수 있는 확실한 힘이나 요소가 내재한다고 보는 인식의 거부에 있다.6) 이러한 면에서 진리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집착해 온 사람들과 그를 차별화 할 수 있다. 니체를 통해서 담론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진리의 역할을 분석하는데 확신을 갖게 된 푸코는 “내가 니체로부터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진리가 과학, 담론, 실천에서의 합리성을 진단해 온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담론의 역사의 한 영역으로 본 것이다”라고 고백한다.7)

푸코의 “문제화”는 “서구의 역사에서 진리를 생산하는 방식이 진리가 생산한 효과와 분리될 수 없다”는8) 점에 착안한다. 푸코의 이러한 사고의 전환에 대해 시몬스(Jon Simons)는 푸코가 “진리-말하기”의 형식을 다양화했다고 평가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을 택하는 대신에 “진리에의 의지”가 갖는 효과에 푸코가 초점을 맞추었다고 지적한 것으로서 푸코의 진리에 대한 태도를 적절히 평가했다.9) 사실 진리의 한계에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근대적 인간 과학의 조건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본다면, 적어도 근대적 주체가 과학적 진리에 묶여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한에서는 더욱 푸코의 작업은 유효할 수밖에 없다.

푸코의 “문제화”는 그의 계보학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근대적 합리성의 담론이 근대 권력의 “구별짓기”를 통해서 진리의 권위를 획득함을 그의 계보학은 보여주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근대적 합리성의 담론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이 아닌 역사적 접근을 보여주는 것이고,10) 이러한 점이 바로 그가 근대적 사고를 “문제화”한 것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푸코의 진리에 대한 이해는 이와 같은 “문제화”를 통해서 이해 가능한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있어서 진리는 “담론을 생산하고, 법칙화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절차들의 체계”일 뿐이다.11) 그것은 권력 관계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권력 효과”를 만들어 내고, 권력이 만들어 내는“진리 생산 효과”와12)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를 다른 말로 정리하면 진리는 제도에 의해서 생산되는 정치적인 현상임을 “문제화”를 통해서 그가 보여주는 것이다.13) 푸코의 진리에 대한 “문제화”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개념이 그가 전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게임”(game)이다. 그의 후기 저작에 등장하는 “게임”은 계보학과 “문제화”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필이 집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다.

푸코의 ‘진리 게임’을 보다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비트겐스타인의 ‘언어 게임’을 먼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게임에 대한 분석에서 푸코와 비트겐스타인은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트겐스타인은 그의 저서 「철학의 연구」 7장에서, 언어의 유용성과 “게임”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그는 여기서 문법과 언어 행위에 관해서 설명하였다.14) 그는 일상 생활에서 전개되는 언어에 대해서 언어학적 차원을 넘어서 분석해 내고 있다. 즉 “언어 게임이라는 단어 속에는 언어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삶의 한 모습이고 생활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다고 이해하였다.15) 게임의 참여자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 그들의 모습을 형성한 후에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 그는 주목하였다. 그래서 게임의 연출자들, 연출자들과 게임, 연출자들과 게임의 매체 사이에는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관이 있다고 그는 이해한다.16) 그것을 그는 규칙으로 보고, “우리가 언어 게임에서 규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게임 속에서 매우 다양하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하여, 바로 게임의 규칙에 주목하였고, 또한 게임들에서 이기기 위해서나 상호 교류하기 위해서 그리고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하나의 성취 가능한 목표를 갖는다고 인식한다.17) 푸코의 “게임”의 개념에서도 비트겐슈타인에서처럼 전략, 목표, 규칙의 의미로 적용되고 있다. 그는 게임이라는 말을 진리 생산을 위한 규칙들의 총체적 조화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것은 모방도 오락도 아니다. 그것은 어떤 결과를 유도해 내려는 절차들의 전체적인 조화로 설명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절차의 원리들과 규칙들로 기능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는 찾고자 하였다.18)

일반적으로 게임의 개념에는 유희(entertainment)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들이 게임의 실제 진행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푸코는 이러한 게임의 개념들에서 벗어나서, 규칙들을 준수함으로써 주어지는 특수한 목적이나 결과를 보장해 주면서, 절차들이나 규칙들을 만들어 내는 게임의 역할을 찾아내고자 하였다. 행정부와 같은 하나의 통치 체제를 통해서 드러나는 규칙들이나 절차들을 접할 때, 이들은 권력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권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푸코가 확인한 게임도 절차나 규칙들이 중요하게 작동할 뿐만 아니라 철저히 성취 가능한 목표를 향해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게임의 진행에 있어서 저항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게임의 규칙들에 따라 게임이 진행되도록 하는 참여자들의 묵시적인 동의가 있다고 이해한다. 특정한 게임에는 그 진행의 전제 조건에 대한 동의도 있다. 그러한 게임의 규칙들은 게임 안에서만 권위를 행사한다. 규칙들은 게임의 결과를 결정하지는 않더라도 게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이기 때문에 규칙들의 융통성이 존재한다.19)

그의 게임에 대한 이해는 바로 “진리 게임”이라는 합성어로 등장한다. 진리 게임은 행동을 명령하고 지도하는 일련의 규칙들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그는 중요하게 보았다. 규칙을 준수한다고 하여 게임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정확히 준수하더라도 게임에 질 수도 있다. 게임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행운도 있어야 하고 기술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규칙들을 준수해서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승리의 기회를 부여하는 의미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의 참가자에게 성공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가 본 진리 게임은 그것의 권력과의 의존 관계 때문에 규칙들이 제공하는 행동에 대한 명령이나 지도에의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그는 보여준다.20)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규칙의 총체성에서 드러나는 조화의 감각이 게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강조한다. 게임이 바로 어떤 결합 형태를 내포하기 때문에, 진리 게임은 인간 행위와 삶에서 총체성을 유도해 낼 수 있는 것으로 그는 이해한다. 특수한 게임에 있어서 총체성은 게임과 그것의 빈틈없는 완결성을 묘사해 주는데 이용되는 담론들 속에서 최고로 나타난다고 보는 그의 인식에서, 우리는 그러한 담론들과 그것들의 목적 속에서 위안을 찾도록 학습해 왔다는 우리들의 현실을 이해해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그의 “게임”의 이해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결과를 발생시킨다. 첫째는 진리 게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서 절대적 진리의 개념이 거부된다는 점이다. 게임은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기준에 따라 규칙들과 절차들과 진리를 형성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게임은 경험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여기서 능률성은 간결함과 정밀함 그리고 적절함을 의미한다. 진리 게임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들은 이러한 능률성에 관련된 문제를 다시 진리 게임 자체에 위탁하게 된다. 진리 게임에는 일련의 자기 정당화와 자기 지속성을 위한 규칙들을 갖는다.  이러한 규칙들은 진리들을 생산하고 합법화한다. 푸코는 진리들이 일련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지식이나 담론들이 자체적으로 갖는 관계이다.21) 이것이 바로 푸코가 게임을 사용해서 나타내고자 했던 자기 정당화의 특성이라고 이 글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진리는 과학이나 담론이 외재되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나 제도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되고, 또한 그것은 그러한 역사 발전에 영향을 준다고 볼 때, 푸코가 “진리 자체는 담론의 역사에 내포되어 있으면서도 담론과 실천에 본질적인 영향을 준다”22) 고 본 것이다. 역사 속에서 진리에 의해 전개되는 결과들이 게임의 진행 방식에 따라 평가되도록 한다는 것은 진리 게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리 게임의 규칙들을 명백히 하고자 하는 것도 게임에 내포된 진리의 확실성을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둘째로 게임을 통해서 그들의 규칙들과 절차들을 형성해 왔던 체계를 밝히는 것이다. 푸코에 의하면 진리 게임은 그들의 규칙과 절차 뒤에 있는 문제들을 은닉시키고자 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형벌의 집행을 통해서 사회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푸코는 말한다. 게임의 기능은 바로 이러한 규칙들과 절차들을 밝혀 내어서, 이들에 대한 환상 같은 오류를 벗기는 것이다. 그래서 규칙들과 절차들은 특수한 기술들에 의해서 변화를 겪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기술들에 의해 주도되는 체계들로 보이기도 한다.

푸코는 게임의 규칙들이 변화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준다. 변화의 어려움이 변화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들은 진리 게임에 의해서 확산되어지는 지식에 맞추어서 행동할 수도 있고, 이와 반대로 행동할 수도 있다. 그것은 진리 게임과 뒤엉켜서 상호 중복되어 서로를 강화시키며, 서로 지도하고 영향을 주고 단련시켜서 그들의 능력을 합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른 한편, 저항은 진리 게임이 만들어 내는 환상과 착각에 의해서 제약을 받아 강력한 합리성과 개인적 의지로 나타날 수 있다. 의지는 인간에 대한 계몽적 개념과 관계가 있다. 즉 인간이 합리적 의지를 부여받은 자율적 개인으로 부각될 수 있는 점이다. 이러한 개념이 부각되는 것은 과학적 발견의 산물이기보다는 특수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에 우리가 인간을 의지의 동물로 본다면, 우리의 합리적인 능력이 우리에게 진리, 확실성, 안정성을 부여한다면, 그때는 우리는 이러한 가정이 모순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결론의 바탕에 깔려 있는 전제조건의 착오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진리 게임이 의지의 작용을 부각시킴으로서, 진리 게임이 이러한 개념을 만들고 퍼뜨린다는 사실을 또한 은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진리 게임에서 부각되는 진리는 어떠한 확실성도 안정성도 시간적 절대성도 그리고 관념이나 형식의 절대성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진리 자체는 결코 배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상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생성되는 상황 속에서, 진리는 특수한 게임의 기준에 적합한 평가 속에서 권위적이고 유용한 기구로 남게 된다고 이해된다.




2. 진리 게임




푸코는 그의 특유한 방법인 “진리 게임”(games of truth)이라는 것을 도입해서 지식의 표준화, 지식의 기준을 발전시키고 확산시키는 제도들, 자신을 주체화시키는 절차들을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이를 통해서 그는 어떻게 그리고 왜 사건의 진술이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이들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했다.

그가 이 용어를 도입한 이유는 인류의 문화 속에서 형성된 지식들(특히 경제학, 생물학, 정신의학, 약학, 형벌학)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방식의 역사로 그려내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23)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인간들이 자신들을 이해하는 특수한 테크닉과의 관계에서 적용되는 매우 특수한 “진리 게임”으로써의 이러한 과학을 분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 자신을 지식의 주체로 만듦으로써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법칙들과 기술들을 진리 게임이 만들어 낸다는 점을 강조한다.24)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바로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는 체계(system)이다. 지식의 기준이 바뀌면 다른 지식이 생산되고 그것의 정치적 함의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 게임”은 진리와 자아와의 상호작용에 관해서 푸코가 의문을 품었던 것을 시험해 보는 하나의 시도이기도 하다.

󰡔성의 역사 1권󰡕에서 보여준 방법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그는 󰡔성의 역사 2권󰡕에서 자아에 대한 자아의 관계의 설정을 통한 자아의 주체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진리 게임”과 주체 형성의 연관성을 밝히는 문제에 집중해 왔다는 의미이고, 이 문제를 “권력 관계”와 “진리 게임”의 관계 분석에서 보여준 “구별짓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였다.25) 그가 󰡔성의 역사 2권󰡕에서 정신 치료법, 의학, 생물학, 교도소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특수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주체화된 자아가 어떻게 “진리 게임”을 펼치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그의 초점은 주체화되는 방식에 있다. 이러한 자아에 관한 묘사는 자신의 과거의 모든 작품에 관해서 진리 게임을 스스로 시험해 보고 있다고 본다.26)

이러한 그의 기획에 따라, 그의 “진리 게임”은 역사적 경험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를 통해서 참과 거짓의 게임들을 하는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를 미쳤다고 인식할 때, 스스로를 환자라고 인식할 때, 스스로를 살아 있고 말을 하고 노동을 하는 존재로 인식할 때,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을 처벌할 때 자신의 본질을 생각하기 위해 제시하는 진리의 게임은 무엇인가? 인간 존재가 스스로를 한 개체로서 인식하였을 때의 진리 게임은 무엇이었던가?”27) 그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 주체가 과학이나 과학적 모델의 모습이나, 제도나, 윤리적 실천에서 어떻게 진리 게임을 통해 형성되는가 하는 점이다.28)

과학적 방법이나 의학, 일반 법률, 통치의 다양한 면들, 교육, 우정, 가족 관계, 애정 관계 등의 여러 가지 형식에서 전개되는 진리 게임들은 주체의 형성이라는 시각에서 인식해 볼 수 있다. 그런데 푸코에게서 진리 게임의 여러 형식을 구조화하거나 해설적 설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Ⅲ. 진리 게임의 문제화




1. 진리 게임과 권력




권력 관계는 진리 게임에 의해서 관리되고, 동기가 부여되며, 그 범위 안에서 성립됨을 푸코는 보여준다. 그것은 권력이 진리 게임에 의해서 창출된다는 뜻이 아니라, 권력 관계가 진리 게임에 의해서 구성된다는 의미임을 앞에서 보았다. 진리 게임이 만들어 낸 규칙들은 담론을 통해서 실천의 표준들(standards)이 된다. 이러한 표준들은 어떤 행위 양식을 정당화시키고, 그와 다른 것을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제도는 표준을 설정하고 이를 더욱 강화시켜 준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는 항상 저항의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지적한다.29) 예를 들면, 의사는 건강의 분야에서 권위를 갖는다. 의사의 권위는 건강에 대한 충고를 함으로서 주어진다. 이러한 충고는 위생학, 운동, 영양학 등에 관한 것이다. 의사로부터 충고를 받아서 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환자이다. 게임에 의해서 의사는 권력을 갖고 있고, 환자는 그렇지 못하다. 의사의 견해는 가치가 있지만 환자의 견해는 그렇지 않다. 의사는 전문 지식을 갖고 있지만 환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권위를 갖는 쪽과 권위가 배제되는, 두 가지 목소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게임의 연출자인 것이다. 또한 환자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설정해 주는 규칙들과 표준들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환자는 자신의 의견을 강조함으로써, 그리고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나아가서 의사를 감시함으로써, 이러한 권력 관계에 수동적인 구성원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인 구성원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권력 관계도 변하게 된다. 환자가 전혀 권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진리 게임이 만들어 낸 권력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질서의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질서가 도전을 받고 변할 때까지는 환자의 역할은 지식과 권위가 없는 것에 속하게 된다.30)

권력 관계에서 차지하는 참여자들 사이의 실제 역학 관계는 담론의 실천을 통해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푸코의 주장은 담론의 실천을 일련의 불연속적인 단편들로 본다. 이러한 단편들의 전략적 기능은 불안정하고 형체도 없는 것으로 보았다.31) 그는 담론 전략이 “말해진 것들과 숨겨진 것들, 감추어진 것과 언표화된 것들, 그리고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각기 다른 효과들(말을 하고 있는 사람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권력의 위치에 따라, 그가 위치하고 있는 제도적 상황에 따라)에 따라 다양하고 변화 무상하게 구성됨”을 강조하였다.32) 담론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권력의 수단과 효과를 잘 보여 줄 수 있지만, 또한 그것은 권력의 장애물, 저항이 시작되는 지점, 전략에 반대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그는 밝힌다. 담론은 권력을 전달하기도 하고, 권력을 생산하기도 하며, 권력을 강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파괴하고, 폭로하고, 권력이 약화되도록 하기도 하며, 권력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음을 그는 강조하였다.33)

권력 관계의 장에서 작용하는 전략적 요소 내지는 언어의 단위들로 구성된 이러한 담론은 같은 전략 내에서도 각기 다르거나 상호 모순되는 담론들도 있을 수 있음을 그는 밝힌다. 그것은 전략에 대항하면서 형체의 변화 없이 하나의 전략에서 다른 전략으로 순환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34)

이와 같이 진리 게임을 통한 권력의 전략은 담론과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것은 그들이 바로 게임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리 게임은 어떤 특수한 사고 방식, 말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에 권위를 부여하고 이를 정당화 내지는 합법화한다. 사고와 화술 그리고 행위는 진리 게임의 목적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그들은 전략적 가치를 갖는다. 담론의 실천 전략이 매우 유연한 이유는 그들이 여러 가지 목적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게임에 적용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담론의 실천은 시간, 공간 그리고 진리 게임의 전체적 상황하에서 그 정확한 기능을 취하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게임은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새로워지고, 새로운 게임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권력의 전략은 지금까지 정치 현실에 퍼져 있는 인식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이다. 권력은 더 이상 억압적이거나, 가혹하거나, 본질적으로 사악한 것이 아닌 것으로 푸코에서 부각된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가 안전과 행복을 보장받기 위해서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푸코의 이러한 권력 개념은 기존의 법률적으로 보장되던 특권을 사실적 인 것으로 교체한 것이고, 금지하는 권리를 전략적 효과를 발휘하는 시각의 것으로 교체한 것이며, 통치권을 세력 관계들이 펼쳐지는 다양하고 유동적인 장에 대한 분석으로 교체한 개념이라고 보인다. 그래서 이러한 권력 전략은 광범위하게 미치면서도 결코 완벽하게 안정을 취하고 있지는 못하는 지배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을 보여 준다.35)




2. 진리 게임과 주체




푸코는 “진리 게임”을 통한 주체의 형성을 보여주기 위해 과거 기독교 세계에서 자행되었던 고백의 실천을 분석하였다. 1215년 참회 성사가 성문화되었을 때, 그 결과는 고백의 기술의 발달이라고 푸코는 보았다. 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이러한 기술이 보급되기 이전보다도 훨씬 중요하게 되었음을 그는 보여준다. 자신에 대해서 진리를 말하는 것과 같은 고백이 확산되고 사회적으로 수용됨으로써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진리를 선언하는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그는 보았다. 푸코는 “진솔한 고백은 권력에 의해서 개별화 과정의 본질적 위치로 자리잡혔다.”다고 이해하였다.36)

고백의 진리와 그 실천에 주어지는 권위는 일상의 많은 실천 속으로 퍼져 왔음을 밝힌다. 고백은 정의의 체계와 의학, 정신의학적 치료, 교육 체계, 가족적 관계, 낭만적인 관계, 친밀한 관계에서 필요에 의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였음을 그는 보여준다. 고백에 내포된 진리 게임은 이러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뿌리 깊이 파고들어 왔다고 그는 보았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들은 고백에 의존해서 개인적 관계를 심화시켜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고백에 의한 진리 게임의 효과를 감각적으로 잘 느끼지 못하고 당연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밝힌다. 그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은밀히 진행되는 “진리 게임”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고백에의 복종은 이제 다양한 측면의 관점을 통해서 교체되고 있고, 우리들 속에 뿌리 깊게 침투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우리들을 구속하는 권력의 효과로 인식하고 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들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있던 진실이 겉으로 표출되어 나올 것을 요구한다. 만약에 그렇게 하는 것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억압적 요소가 그것을 그 자리에 고정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권력의 폭력이 그것을 내리 눌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일종의 해방이라는 형태로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37)

고백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서 진실을 말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백은 우리 자신에 관한 일종의 진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당시의 진리라고 하는 것은 고백의 실천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푸코는 보았다. 그러한 고백의 실천은 고백의 기술을 따르는 것이고, 고백을 위해서 그리고 고백을 통해서 형성되는 권력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고백에 의한 권력 관계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권력 관계, 학생에 대한 교사의 권력 관계, 아이에 대한 부모의 권력 관계,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권력 관계, 정신과 의사와 정신질환자의 권력 관계, 증인에 대한 재판관의 권력 관계, 용의자에 대한 경찰관의 권력 관계, 사건 의뢰인에 대한 변호사의 권력 관계 등에서도 우리는 확인해 볼 수 있다.

고백의 실천은 종교적 범위를 뛰어 넘어서 세속적인 제도 속에까지 침투해 갔다. 세속적 제도는 종교적 실천과는 다른 방법으로 주체의 형성과 발전을 가져 왔음을 그는 보여 준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서 정치적 제도와 체계 속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과정을 그의 󰡔성의 역사 2권󰡕에서 심도 있게 분석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진리 게임과 자아(self)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자아는 규칙들을 내면화하게 되고, 규칙들에 의해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자아의 형성은 훈련, 규칙들과 기준들의 내면화, 그리고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규범들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임을 그는 보여 준다. 자아는 다양한 진리 게임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게임을 통해서 형성됨을 그는 밝힌다. 진리 게임에서 나타나는 자아의 모습은 진리 게임 자체에 의해 독자적으로 정해진 표준에 따라 형성된다고 그는 보았다.

한편 그는 근대 서구에서 자아의 이미지가 독립적, 자족적, 자율적으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 즉 그러한 자아 형성을 위해 진리 게임의 완전하고 철저하며 외부의 요소와 완전 차단된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이러한 서구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러한 자아의 이미지는 근대 서구의 특수한 상황일 뿐이고 그 외의 아시아, 아프리카나 그 외의 다양한 인종들에서는 적용하기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38)

고백을 자아를 형성하는 메카니즘으로 본 푸코는 이것을 육체에 대한 권력의 지배 기술이라고 인식하였다. 푸코는 이러한 정치적 지배 전략을 육체에 대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적 지배라고 보면서 이러한 권력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것은 흩어져 있으며, 담론 속에서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면을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로 조각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각기 다른 도구들이나 방법들로 채워져 있다. 그 결과의 통일된 일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양한 수단들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어떤 특수한 제도나 국가 기구에 한정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의 어떤 방법들을 이용하거나 선택하거나 강요한다. 그러나 그것의 메커니즘과 그것의 효과에 있어서, 그것은 완전히 다른 수준에 위치한다. 기구들과 제도들이 작용하는 것이 바로 권력의 미시 물리학이다. 이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은 이러한 거대한 작용과 신체 그 자체들(물질성과 그들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사이에 놓이게 된다.39)

진리 게임이 전개되는 조건으로 간결하고 빈틈없고 효과가 탁월한 훈육적 기관이 전제된다고 그는 보지 않았다.40) 진리 게임의 결과는 논리적이며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현실 속에 나타난다고 본 것이다. 그것이 그가 본 ‘구별짓기’인 것이다.41) 그러나 게임 자체는 그렇게 조직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진리 게임이 작용하고 있는 단계별 수준은 아주 많다고 보았다. 통합되지 않고 관련되어 있지 않은 많은 메커니즘에 의하면서 진리 게임이 작용하는 여러 단계의 수준이 있다. 게임이 실제로 일어 나는 것은 주체들 사이에서, 그리고 제도들과 주체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상황에 따라서는 진리 게임이 하나 이상일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게임들은 그들의 실천의 장이 다르기 때문에 게임들에 의해서 사용되는 몇몇의 규칙들과 진리들은 완전히 다르기도 하고, 또 몇몇은 비슷하거나 같을 수도 있다. 이러한 실천들은 그들의 효과적인 이행과 감시를 위해서 허용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의해서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갖도록 형성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진리 게임 자체를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유사성 속에서 진리 게임들은 상호 강화된다. 그렇게 해서 어떤 단계에서 저항이 있더라도 그런 저항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한편 푸코는 징계라고 하는 다른 진리 게임의 예를 통해서 형성되는 주체를 밝히고 있다. 그는 「감시와 처벌」에서 일련의 실천이 형성되는데 관해서 추적해 간다. 그것은 규범과 표준들이 훈육적 권력에 의해 형성되고, 그러한 규범에 따라 주체가 훈육적 권력의 실천을 통해서 “구별짓기”라고 하는 전략적 게임에 의해 피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추적한 것이다. 주체가 규범을 내면화하고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규범에 일치하도록 스스로를 점검함에 따라 이러한 게임은 보다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고 보았다.

한편 그의 진리 게임은 근대 사회에서 훈육적 권력의 확산이 초래한 결과에서 드러나는 주체의 구성을 비판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증주의적이고 해석학적인 인간학이 취하는 지식의 생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주체의 형성을 그는 바로 피동적 주체로 규정한다.42) 또한 감시나 심문이나 훈육의 기술과 같은 개인에 관한 지식의 획득 과정을 용이하게 하는 훈육 기술의 발달에 의존해서 근대 사회가 구성됨을 그는 독자들에게 밝힌다.43) 따라서 적어도 근대에 있어서 개인의 자아에 대한 앎의 방식은 근대적 권력의 적용과 일치하는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또한 근대의 훈육적 권력이 만들어 내는 근대의 훈육적 담론은 지식을 위해 공존하는 상호 긴밀한 권력의 범주들을 생산해 낸다는 사실을 푸코를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다. 건강과 질병, 정상적인 정신과 정신병, 이성과 비이성, 법과 범죄 등에서 보여지는 근대 권력의 “구별짓기”에 대한 이해는 그의 기획의 독보적인 성과이다. 이러한 범주는 그래서 근대적 에피스테메에서 출현한 주체의 창조, 주체의 표준화(규범의 내면화를 통한), 주체의 통제를 포함하게 된다고 본다. 이러한 범주들이 받아들여지면, 강제성이 적용될 것은 분명하다. 각각의 상호 작용 속에서 주체들은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고 영향을 주게 되어 그들을 규범에 따르도록 이끌어 간다고 그는 이해한 것이다. 즉 주체는 서로 영향을 주기 위한 노력을 통해서 서로 서로를 훈육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권력 관계”라고 하는 그의 또 다른 분석 개념 속에서 설명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진리 게임을 통해서 나타나는 권력 관계는 그러한 진리 게임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권력 관계는 특수한 형식을 취하며 그러한 형식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진리 게임은 권력 관계가 고정적이고 필연적으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그는 강조한다. 예를 들면 가부장적 사회를 지지하는 이야기들은 여성에 대한 지배를 유지시켜 준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이야기들이 공상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지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기능하고 창조된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달리 말하면 비록 이야기들이 절대적인 의미에서 참된 것이 아닐 지라도, 끝없는 ‘참’과 ‘거짓’은 인간의 모든 관계를 넘어서서 어디에나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Ⅳ. 결론


지금까지 푸코의 진리 게임을 중심에 놓고 그의 권력과 주체에 관련된 의미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근대사에서 계몽주의적 이상주의나 과학의 발전에 따라 더욱 절대적 진리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를 목격한다. 또한 역사의 어느 특정 시대마다 나름대로의 절대적 진리관을 설정하여 통치 권력의 피라미드를 정당화해 온 사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진리의 인식들이 영원하지 못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구성되는 점을 보아 왔다. 현대 문명 속에서 우리들이 향유하고 있는 진리도 그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다. 푸코는 이 점에 착안하여 전통적 진리 인식과는 다른 방법을 시도한 것이다. 그의 새로운 시도를 학자들마다 다르게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진리 게임을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 권력, 진리, 담론, 윤리, 주체에 대한 의미들이 어렵지 않게 결합될 수 있음을 보았다.

본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푸코가 전통적인 진리의 개념을 전략적 개념으로 수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사상이나 정치 활동에 대해서 계보학적 비판의 가능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진리가 사회적으로 형성되어지는 과정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그는 ‘진리 게임’(game of truth)이라는 용어를 도입하였다. 이 개념을 통해서 그는 진리 게임과 자아의 주체적 실천, 그리고 진리 게임이 어떻게 권력 게임과 결부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상과 같은 분석을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가 자신의 진리 게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진리 게임이 지식의 생산, 주체의 실천, 권력 관계, 자아에의 관계를 구성하고 통제한다는 점을 밝혀 줌으로써, 이들의 문제에 대한 근대적 사고의 한계를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그것은 진리 게임을 통한 주체의 자유로운 실천이 능동적 주체의 형성에 전제조건임을 보여준 것이 된다. 이러한 점은 이 글에서는 취급하지 않았지만 필자의 다른 글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빠르지아의 문제화”를 통해서 그는 깊게 논의하였다.

끝으로 근대적 에피스테메에 나타난 “진리 게임”의 분석을 통해서 푸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바로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단절시키는 것이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근대적 권력 관계에서 “게임”으로 전개되는 “구별짓기”의 폭로이다. 그것은 곧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주어졌던 특권적 인식을 박탈함으로써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주체 구성의 필요성을 인식시켜서 새로운 주체 구성의 방법을 찾도록 하는 경고이다. 그러한 방법으로써, 이 글에서 충분히 논하지 않았지만, 존재의 미학을 통한 주체의 구성을 현실 세계에 구상해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방법은 이 시대에 그 어떤 비판보다도 강력한 비판력을 발휘하여 미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을 일으키게 되었고, “구별짓기” 당한 권력의 틈새에서 ‘내 목소리 내기’에 힘을 더해 주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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