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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6/02/05 (09:56) from 129.206.197.132' of 129.206.197.132' Article Number :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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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이론이 묻는다 물리적 실재를 완벽히 아는가?






양자이론이 묻는다 물리적 실재를 완벽히 아는가?













△ 이중원/서울시립대 교수·과학철학 jwlee@uos.ac.kr

20세기 현대과학의 혁명, 특히 현대물리학의 발전에 상대성이론 못지 않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론이 있다. 바로 양자이론이다. 양자이론은 미시세계의 사물들이 거시세계의 그것과는 달리 불연속적이고 확률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고 운동한다는 충격적 내용을 던져 주었다. 3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뉴턴-패러다임이 완벽하게 해체되는 순간이다.

뉴턴은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 곧 인과적이고 결정론적인 관계들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뉴턴이 보기에 이 우주는 신의 완벽한 창조물로서 규칙적이고 조화로운 존재이며, 따라서 자연법칙에 의해 언제나 정확하고 완벽하게 예측될 수 있다. 또한 뉴턴은 “자연을 수학의 언어로 쓰인 교과서”로 보고 이런 결정론적 우주를 수학(언어)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믿었다. 자연을 수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험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한다는 도구적 유용성의 차원을 넘어서서 존재 그 자체를 그려낸다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아인슈타인조차도 신의 완전함, 그 신이 창조한 우주의 결정론적 속성, 그리고 수학을 통해 이 우주를 완전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뉴턴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새로이 등장한 양자이론은 이러한 믿음들을 근본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양자(量子) 개념은 빛 에너지가 고전적인 경우처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어떤 연속체가 아니라, 띄엄띄엄 불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에너지 양자로 되어 있다는 막스 플랑크의 주장에서 출발하였다. 1900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19세기 말에 쏟아진 빛의 복사현상에 관한 실험결과들을 고전 이론들이 설명하지 못하자, 이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였다. 이 과정에서 플랑크는 이런 양자 개념을 가정하면서, 이는 단지 수학적 기교일 뿐 물리적 의미가 전혀 없다고 강변하였다. 플랑크는 이를 끝까지 관철시켰고, 그래서 양자이론도 평생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사적 아이러니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1905년 광양자(光量子) 가설을 통해, 플랑크와는 달리 빛이 실재하는 입자임을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이렇게 아인슈타인은 초기 양자개념의 확립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양자이론 자체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막스 플랑크 양자개념 가정









△  양자이론에 따르면 빛은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지만 둘을 동시에 엮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림은 고전역학 세계에서는 관찰로 확실히 알 수 있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현상이 확률로서만 설명될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양자이론에 따르면 우연 혹은 확률과 예측 불가능성이 이 우주를 지배하게 된다. 곧 양자이론은 비록 우리가 우주의 현재상태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의 상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오직 확률적 예측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정론적 사고에 대한 전면 부정이다. 또한 올바른 과학이론이라면 실재하는 우주를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하는데, 양자이론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아인슈타인이 양자이론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이유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양자이론이 어떤 이론이기에 이러한 불만들이 터져 나올 수 있는가?

양자이론이 사물의 운동 또는 현상을 서술하는 방법은 고전역학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하나의 사고실험 예를 통해 비유적으로 살펴보자. 영화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주인공 ‘갑’은 어떤 때는 ‘지킬박사’로, 어떤 때는 괴물 ‘하이드’로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은 고전역학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갑’이 설령 어떤 법칙에 따라 ‘지킬박사’에서 ‘하이드’로, 혹은 ‘하이드’에서 ‘지킬박사’로 변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갑’의 상태로서 허용 가능한 것은 언제나 ‘지킬박사’ 아니면 ‘하이드’ 둘 가운데 하나다. 둘 모두가 동시에 ‘갑’의 상태를 구성하는 데 참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양자이론의 관점에서는 다르게 서술된다. 실제로 사람들이 ‘갑’을 보았을 경우, 목격한 것은 분명 ‘지킬박사’ 아니면 ‘하이드’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갑’의 상태로 허용 가능한 것은, 고전역학의 경우처럼 ‘지킬박사’ 아니면 ‘하이드’ 둘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목격(관측)하기 전의 ‘갑’의 상태는 고전역학의 경우와 달리, 일반적으로 ‘지킬박사’와 ‘하이드’ 모두가 동시에 참여하는 잠재적 가능 상태로 규정된다. 여기서 ‘지킬박사’와 ‘하이드’ 각각은 일정한 확률 혹은 잠재성을 갖고 ‘갑’의 상태 구성에 동시에 참여한다. 이는 결국 어느 특정 순간에 ‘갑’이 둘 가운데 하나의 상태에 있었다 하더라도, 이후에 관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일반적으로 둘 모두가 공존하는 잠재적 상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연 혹은 예측불가능한 우주’ 제기
‘예측 가능한 우주’란 뉴턴 패러다임 흔들어
‘미래는 확률적 예측만 가능’ 결정론 해체
현상 설명력·적용범위 등서 가장 성공한 이론
과학기술뿐 아니라 철학발전에 큰 영향









△  1927년 10월24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는 물리·화학계의 토론회인 제5회 솔베이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는 양자역학이 집중 토론됐다. 사진은 양자이론을 개척한 플랑크(오른쪽)와 보어.

바로 여기서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의 상태에 대해서는 오직 확률적인 예측만이 가능하다는 비결정론적 상황이 발생한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또한 ‘지킬박사’와 ‘하이드’ 모두가 동시에 공존하는 잠재적인 양자역학적 상태가, 도대체 자연에 실재하는 무엇을 지시하는지 불분명하다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인슈타인은 1935년 <피지컬 리뷰>에서, 양자이론이 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한다는 면에서 틀리거나 잘못된 이론은 아닐지라도, 실재를 완전하게 표상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비판하였다. 어떤 이론이 완전하다면, 이론 안에 들어 있는 언어적 표상들이 실재하는 대상의 그 무언가를 지시해야 하는데, 양자이론 안에는 그러한 지시가 불명료한 언어적 표상들이 존재하므로, 양자이론은 불완전하다는 주장이다.


여전히 양자이론은 수수께끼


이에 대해 30여년 동안 양자이론의 구축과 완성에 힘써 온 코펜하겐학파의 거장 닐스 보어는, 같은 해 같은 잡지의 다음 호에 아인슈타인의 논문과 동일한 제목(“양자이론은 물리적 실재를 완전하게 기술할 수 있는가?”)의 논문을 발표하여 아인슈타인의 비판을 반박하였다. 그는 상보성 원리의 관점에서, 양자이론은 우리가 접근하는 원자들의 영역 안에서 현상을 완전하게 기술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상보성 원리에 따르면, 우리가 거시세계에서 얻은 용어와 개념들로 항상 미시세계를 기술하므로, 그러한 용어들 자체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러한 한계 안에서 “상호 배타적인 것들”을 상보적으로 사용하면, 충분히 완벽한 기술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보어는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논쟁적인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양자이론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현상을 복잡하게 서술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서술하면 고전역학이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을, 양자이론은 모두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설명적 적합성이 이유라면 이유다. 오늘날 양자이론은 현상에 대한 설명력과 예측력에서 그리고 그 적용범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진보한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분자·원자·소립자와 같은 아주 미소한 대상들은 물론이고 고전물리학이 적용되어온 중간크기의 대상들에 대해서조차, 그리고 최근의 양자 중력 이론에서 보듯 우주의 대상들에게까지 적용되는, 뛰어난 현상 설명력을 갖고 있다. 오늘날 양자이론을 논하지 않고 현대 과학기술을 논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양자이론은 여전히 하나의 수수께끼다. 몇몇 저명한 물리학자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리처드 파인만은 “나는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하였고, 머레이 갤만은 “양자역학은 우리 가운데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사용할 줄 아는 무척 신비스럽고 당혹스러운 학문이다”라고 술회하였다. 아이슈타인과 보어의 논쟁도 처음 제기된 이후 7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상 이러한 논쟁들은 양자이론의 성공과는 별개의 문제들이다. 양자이론 안에 담겨진 개념들의 의미, 양자이론이 자연을 인식하는 방식, 양자이론의 존재론적 기초, 확률에 대한 해석,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조화, 다치 논리(참과 거짓 등 2치 논리와 달리 많은 진리값을 가지는 논리)의 가능성 등 오히려 철학의 주요 문제들에 더 가깝다. 양자이론의 태동이 20세기 철학의 발전에 큰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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