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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22)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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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과 복지의 증진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과 복지의 증진

IMF경제관리 시대에 부치는 사회윤리적 단상



강원돈1)




I. 머리말


지난 2월 말 신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적 발전"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하였을 때, 국정지표가 제대로 설정되었다고 기대를 건 사람들이 많았다. 국가주도자본화 과정에서 쌓였던 폐해들을 익히 경험하였던 사람들은 시장경제가 시장원리에 의해 작동되면서 자원의 효율적인 할당이 이루어져 국민경제와 기업의 합리성이 향상되고, 참여 민주주의가 강화되어 시장의 실패로 인해 억눌리는 사회정의와 환경정의가 바로 세워지기를 기대하였던 것이다.

IMF의 경제관리 아래서 커다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적 발전"이라는 선언은 많은 의미를 함축할 수 있다. 제1기 노사정 대타협을 경험한 이후에 어떤 사람들은 경제위기를 노동과 자본의 동등성 원칙에 입각한 참여 민주주의 방식으로 풀 경우, IMF 시대의 위기관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IMF 시대 이후의 새로운 시장경제 모델도 세워질 수 있다고 기대를 걸기도 하였다. 그러나 IMF에 경제주권을 넘겨준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이 민주주의의 기반을 사실상 잠식하거나 껍데기만 남길 수 있다는 우려도 그에 못지 않게 확산되고 있다.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관치금융에 길들어진 금융제도와 더 이상 세계경제체제에서 수익성을 실현할 수 없게 된 재벌구조의 개혁에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이 프로그램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배제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지적하기 시작하였다.

이 글에서 나는 IMF 시대의 위기관리에 필요하고 IMF 시대 이후의 새 경제 모델을 구축하는 데 고려하여야 할 민주주의의 과제와 복지 문제를 점검해 보려고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자동적으로 양립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이 매우 어려운 역사적 과제에 속하며, 발전된 나라들에서조차 시장경제가 이제까지 보장해 왔던 복지가 "삶의 질"의 요구를 실현하는 데 크게 미흡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두 주제들은 광범위한 의제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제약되어 있는 이 강연에서 모든 의제들을 다 다룰 수 없고, 또 다루어질 의제도 상세하게 논의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나는 매우 원칙적인 생각들을 밝힘으로써 차후의 의제들을 개발하고 토론하기 위한 물꼬를 트는 데 만족하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는 한국경제의 위기구조를 분석하고IMF 경제관리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데서 시작한다.


II. 한국경제의 위기구조와 IMF 경제관리의 문제점들


IMF의 경제관리 아래 있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단순히 외채위기로만 해석하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외채위기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시세차익을 노려 순식간에 손을 바꾸며 몸집을 불려가는 투기자본의 농간 때문에 발생하였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를 너무 한쪽으로만 보는 관점이다. 국제투기자본의 폐해를 강조하고 이를 규율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위기는 궁극적으로 개방경제 체제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었던 국민경제와 기업의 비효율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수준과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수준을 가지고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국의 기업들은 공장의 가동률을 높임으로써 자본의 감가상각 당 매출액 비교에서 국제적 우위를 차지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지만, 이 전략만으로는 한국 모델을 익히 배워 모방한 후발국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어려웠다. 한국 기업들이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시장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된 지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이른바 "글로벌 경영"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방식은 물론 투자자본을 집중하여 선진기술의 개발과 고부가가치 품목의 생산에 나서면서도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른바 "글로벌 소싱"을 추구하는 선진기업들의 경제정책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점을 일단 차치해 두더라도, 문제는 이러한 글로벌 경영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을 해외단기차입에 의존하였다는 데 있었다. 외채위기는 이와 같은 기업들의 전략적 실패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기업들의 전략적 실패는 국민경제의 자원배분의 비효율성과 맞물려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이래로 임금수준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내수시장이 확대된 것은 국민경제의 내포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안고 있었지만, 금융여신이 거대기업집단들에 집중되어 자원의 배분이 애초부터 왜곡되어 있었던 것이 큰 문제였다. 많은 경우 거대기업집단들에 수직적으로 편입된 중소기업들의 발전은 크게 제약되어 있었고, 투자와 소비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장애물들(특히 지하투기자본과 높은 시장이자율)도 여전히 철거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미래를 위한 산업구조 조정정책과 투자유도정책을 통해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드높이기 위해 국가의 활동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정부는 "세계화"의 신화와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왜곡된 경제구조에서 기왕에 발생한 거품은 해외차입금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서 국민경제의 여러 부문에서 갑작스럽게 더 부풀어올랐다. 이 거품은 해외단기차입금이 썰물과 같이 빠져나가면서 터지기 시작했고, 엄청난 외채위기가 국민경제와 기업활동의 숨통을 죄기 시작하였다.

외채위기의 근원을 국민경제와 기업의 비효율성에서 찾을 경우, 금융제도와 기업의 구조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IMF의 프로그램은 오래 전부터 경제개혁의 핵심과제로 지목되었던 것과 방향을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관치금융의 시대착오성과 관료주의적 부패구조를 타파하자는 논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상호지분출자로 구축된 괴기한 "오너경영"의 독재를 와해시켜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실질적인 시장독점을 의미하는 계열사간 내부거래 관행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기업의 효율성을 드높일 수 없다는 것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만일 시장경제를 건전하게 운영하고자 한다면, 관치금융의 혁파와 재벌구조의 해체를 우회해서 가는 길은 없다. 개방경제체제에서 국민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은 경제운영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이 두 과제는 시급히 그리고 강도 높게 해결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비록 타율적이기는 하지만 IMF식의 강력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한국경제의 병을 치유하는 극약처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주권이 송두리째 빼앗긴 상태에서 진행되는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첫째, 이 프로그램은 국민경제의 내포적 발전가능성을 송두리째 파괴하면서 실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거시경제 수준에서 실천되는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수요부문과 재정지출을 축소시켜서 남는 국민소득을 외채상환에 돌리도록 강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국민경제의 재생산과정에서 내국총생산(GDP)에서 소비와 재정지출의 몫을 뺀 나머지 가치총량은 원칙적으로 자본의 몫인데, IMF의 거시경제적 구조조정은 결국 자본축적 기반을 강화하되, 이를 국민경제 차원에서의 투자로 연결하지 않고 해외로 유출하게끔 하는 데 주안점이 있는 것이다. 부족한 투자활동을 메우는 수단은 해외자본의 투자라고 추천된다. 해외자본의 투자는 어디까지나 초과이윤의 달성을 동기로 하는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보면 잉여의 해외유출이 제도화될 수 있다. 또한 소비부문의 축소가 강제되는 상황에서 상품이 내수시장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않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수출지향구조는 더욱더 경화된다.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여야 외채를 갚을 수 있다는 주장이 큰 힘을 얻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러나 내수기반의 광범위한 축소를 전제로 한 수출경제의 강화는 국민경제의 안정된 균형성장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오늘의 세계무역구조에서 외화 가득성을 결코 기대만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둘째, IMF의 경제관리 아래서 강제되는 수요축소와 재정지출 삭감이 가져 올 사회경제적, 성별분업적, 생태학적 영향은 매우 부정적이다. 거시경제 차원에서 국민소득의 분배가 심각하게 왜곡되리라는 것은 이미 암시하였지만, 요소시장들을 통한 소득분배는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할 몫을 엄청나게 줄이게끔 되어 있다. 실업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노동의 권력은 크게 위축되어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심각한 불균형상태에 이르게 된다. 시장이자 수준이 가파르게 상승함으로써 자본소득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자본소득계층과 노동소득계층의 사회적 처지는 양극화된다.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미치는 구조조정의 여파는 성별분업에도 지극히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여성노동의 차별이 더욱더 심해지고, 여성노동이 노동시장으로부터 급격히 축출된다. 재정지출의 삭감은 시장의 실패를 완화하거나 조절하는 사회간접자본의 조성을 크게 위축시키고 특히 복지정책과 환경정책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다. 보험회계가 고갈되면 보험수익자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며, 대규모 실업에 따른 사회비용이나 외부효과로 인해 점점 더 그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비용은 국가가 제아무리 공익을 우선시한다 하더라도 국가의 재정지출로 적절하게 충당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 아래서 "삶의 질"이 급격히 악화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셋째, IMF의 미시경제적 구조조정은 살아남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수익성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수익성 개념은 개방경제체제에 적응하여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와 맞물려 있다. 개방경제체제에서 경영업적을 측정하는 기준인 수익성 개념은 철저히 미국 모델에 근거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르고 있다. 굳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기업경영의 수익성이 회계 기법상 투명하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이다. 수익성이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데 뺄 수 없는 요소라는 것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기업의 수익성은 자본의 요구를 실현하는 기업의 능력을 의미할 뿐이다. 거기서는 자본의 시장이자를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여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수익성 개념의 실질적 내용이다. 이와 같은 수익성의 실현이 경영의 책임성을 가늠하는 잣대이다. 그렇지 않은 경영은 도덕적 해이로 질타된다.

수익성만을 기업이 추구해야 할 최고가치로 설정하고 수익성을 경영의 합리성과 등치시키게 되면, 기업활동의 사회경제적 합리성과 생태학적 합리성은 뒷전에 밀리기 쉽다. 기업의 사회정책과 환경정책은 수익성 실현 요구에 밀려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국민경제가 떠맡아야 할 사회비용과 환경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결국 국민경제의 자원할당의 합리성은 크게 왜곡되고 말 것이다.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전제하는 수익성 개념은 자본의 세계화가 실현된 오늘의 상황에서는 이에 대항하는 모든 대안 개념들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지만, 자본의 시장이자가 고도로 보장되는 미래의 세계는 "노동의 씨말리기"(J.Rifkin)에 터잡은 사회적 피라미드 구조를 불가피하게 할 것이다.

넷째, IMF의 프로그램이 거시경제적 수준과 미시경제적 수준에서 실천하는 구조조정의 자본친화적 성격 때문에 구조조정의 기획과 수행 과정은 철저하게 노동배제적인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외자유치가 관건인 상황에서 노동세계의 불안은 금기시된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이 압도적으로 강화된 상황에서 자본관계를 교란시키는 행위는 적대시된다. 노사안정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노동과 자본의 동반자 관계가 강조되지만, 노동과 자본이 시장경제에서 근원적인 이해관계의 대립을 보인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된다. 노동과 자본이 상품과 용역의 생산을 위해 협조를 강요받기 때문에 노자 파트너 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노자관계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시장경제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노자의 근원적인 대립관계를 애써 감추고 제도적으로 강제되는 협조관계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이 이데올로기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봉쇄되고, 자칫 잘못하면 권위주의 정치의 강화를 통하여, 그렇지 않으면 기껏해야 국가와 기업 가부장제로 분식된 얼굴을 가지고 자본의 이해관계가 일방적으로 관철된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을 강조하지만, 이 개혁의 주체는 오직 자본일 뿐, 노동은 기업의 지배구조에 어떤 역할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의 경영 참가 불가"라는 거듭 천명된 현정권의 기업정책은 물론 기업에서 노동의 기능과 자본의 기능을 원칙적으로 구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옳다. 그러나 기업의 경제정책이 자본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노동의 이해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업의 경제정책을 감독하는 일에 노자가 동등하게 참여하여야 한다는 요구를 "노동의 경영 참가 불가"라는 원칙에 의해 잠재울 수는 없다. 기업의 사회정책과 인사정책, 그리고 환경정책에서도 노자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갈릴 수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서로 갈등하는 노자의 이해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이에 대해 토론하는 흔적은 없다.

거시경제 수준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조직된 것은 노동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대 전진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노사정위원회의 법률적 근거는 없다. 국가개입주의의 큰 틀에서 신집산주의(Neokorporatismus)를 실천한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도 노사정위원회는 국가기본법(헌법)이나 절차법상의 근거를 갖지 못하고 언제나 실용주의적으로 조직되고 운영되고 해체되곤 하였다. 물론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노사정위원회는 노동과 자본이 동등한 사회권력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거시경제 수준의 사회협약을 도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관계가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시장경제에서 이 동등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형식논리적으로 노동의 권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서구의 역사에서 이 강화된 듯이 보이는 노동의 권력은 많은 경우 경제위기의 시대에 자본의 이해관계를 교묘하게 관철시키기 위해 이용되곤 하였다. 자본에 대해 절체절명의 위기가 지나가면 대개의 경우 신집산주의의 기구는 허구화되거나 해체되곤 하였다. 그것은 노동의 이해관계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거시경제 수준에서 조절할 수 있는 기본개념이 애초부터 없었고, 노동의 권력과 자본의 권력이 아직 실질적인 균형상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실천된 제1기 노사정위원회는 크게 보아 자본측에서 재벌의 개혁을 받아들이고 노동측에서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것으로 그 활동이 일단 종결되었다. IMF의 경제관리가 가져온 고통을 서로 분담하자는 것이 큰 취지였다. 그러나 이른바 제1기 노사정대타협을 통해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조절되었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2). 만일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고통이 노동의 일방적 희생을 가져오고 있다면, 제1기 노사정대타협은 오직 국면전환의 의의를 가졌을 뿐, 거시경제 수준에서 노자의 "대립 속의 타협"을 제대로 이끌어냈다고 말할 수 없다. IMF 경제관리 아래서 거시경제 수준에서 시도되고 운영되는 노자 동반자 관계는 기업의 수준에서 관찰되는 것과 똑같은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IMF의 경제관리 아래 있는 한국경제의 위기구조는 위에서 분석한 것과 같이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국민경제와 기업의 효율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은 개방경제의 충격 앞에 있는 우리 경제에 주어진 지상명령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 과제를 수행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이미 분석된 바와 같이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이 마무리지어져서, IMF 시대 이후의 한국경제를 새롭게 건설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민주주의의 몇 가지 개념들을 검토하면서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과 복지증진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III.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


흔히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함께 간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고 역사적으로도 증명되지 않은 명제이다3). 민주주의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될 수 있지만, 그 본령은 인민의 지배이다. 인민의 지배는 사회공동체와 국가공동체의 규율을 인민 스스로 제정하여 스스로를 그 통제 아래 둘 때 완성된다. 시장경제는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재화와 용역의 교환을 위해 있고, 따라서 시장업적을 제공할 수 없는 것은 시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유효수요가 없거나 시장업적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일단 시장에 참여할 수 없다. 만인의 참여가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경제는 정치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재화와 용역의 교환을 규율하거나 시장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시장주체들의 권력이다. 시장주체들은 시장에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그들의 권력을 적나라하게 행사한다. 지금까지 시장권력들을 규율해서 공정한 교환 혹은 등가교환을 실현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많은 노력이 있어 왔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장권력의 민주주의적 규율은 공정한 교환과 공익의 실현을 위해 필수불가결하지만, 여전히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역사적 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적인 문제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생산물시장에서의 공정한 교환을 위해 이제까지 고안된 최선의 장치는 독과점 규율이다. 이 교환은 가격 메커니즘에 의해 규율된다고 굳게 믿어지고 있기 때문에 가격 메커니즘을 교란할 수 있는 요인들을 배제하는 것이 생산물시장 규율정책(Ordnungspolitik)의 핵심과제가 되는 것이다. 가격 메커니즘이 과연 생산물 시장의 규율정책의 패러다임이 될 정도로 신뢰할 만한 것인가는, 가격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더불어, 따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독과점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시장경제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독과점의 폐해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공정한 경쟁에 입각하여 경제활동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없다.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4) 일례로, 감추어진 독과점 행위인 재벌그룹의 내부거래 관행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왔는가를 생각해 보면 족하다.

요소시장에서의 공정한 교환은 사회정의 문제의 본질 문제이다. 요소시장에서의 교환이 시장주체들의 권력에 의해 공정하지 못하게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영리와 가계가 역사적으로 분리되면서 나타난 요소시장들, 곧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은 노동의 권력과 자본의 권력이 직접 투쟁하는 자리이다.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에서 형성되는 임금과 시장이자는 이 투쟁의 결과이며, 국민소득의 분배에서 노동의 몫과 자본의 몫도 이 투쟁에 의해 결정된다. 이 투쟁은 요소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많은 경우 격화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어느 시장경제에서도 요소시장을 지배하는 불투명성이 제거된 적은 없다.

불투명하기는 경제를 위해 자연을 동원하고 활용하는 데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부를 측정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없다. 자연을 동원하여 활용하는 데 투입되는 자본과 노동의 양이 자연자원이 가질 수 있는 시장가치이다. 이 시장가치만이 시장경제에서는 중요하다. 생태계의 안정과 저(低) 엔트로피의 희귀성을 시장가치로 환산하는 방법은 시장경제의 조직원리 자체로부터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경제를 위한 생태계의 동원과 활용에서 관찰되는 것은 교환가치를 중심에 놓는 가치이론의 자연망각이고 자연에 대한 경제의 폭력이다.

요소시장을 통해 각각 조달된 노동력과 자본은 생산과정에 투입된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거기서 자본과 노동력은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시장을 위한 생산에서 노동력과 자본은 서로 불가분리적이고 상호불가결하다. 이 점만 보면, 노동과 자본의 협력은 생산을 위해 강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품생산에서 노동력은 자본의 감독과 명령 아래 놓이고 노동업적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조직된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관계는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역사적 조건이다. 거기서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이 노동협약에 따라 노동시간 동안 자신의 인격으로부터 노동력이 분리되는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따라서 두 가지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지배관계로부터 민주주의적 협력관계로 전환시키고, 노동력을 투입하는 생산과정을 인간화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은 앞에서 말한 몇 가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그 과제로 한다. 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념들이 역사적으로 제시되었지만, 경제 민주주의 개념은 퍽 설득력이 있다. 독일의 경우, 경제 민주주의는 초기 자본화 시대에 프랑크푸르트 제헌의회(1848-49)에서 노동자동맹에 의해 극히 초보적인 개념이 제시된 이래로 1920년대에 납탈리(Fritz Naphtali)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오늘날에는 생태학적 정의까지 고려하면서 시장경제를 규율하는 틀로 구상되고 있다. 경제 민주주의의 핵심은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불투명한 폭력을 제거하여 경제주체들의 민주주의적 참여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경제 민주주의를 참여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경제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필요불가결한 전제로 삼고 있지만, 정치적 민주주의만 가지고는 시장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데에는 미흡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경제 민주주의는 일단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에서 노동의 단결권이 확보되어 자본의 권력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단결의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어려운 과제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단결권의 행사와 관련해서 여전히 해결하여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다. 경제 민주주의는 단결권에 입각한 노동의 권력형성을 통해 노동의 이해관계를 자본의 이해관계에 대항시켜 균형을 유지시키는 데 주안점이 있다. 시장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대립 속의 협조"라고 볼 때, 노동과 자본의 권력균형을 이루는 것은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과 자본의 권력균형을 전제로 해서 경제 민주주의는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세 가지 심급을 설정한다. 하나는 거시경제적 사회협약이고, 이 사회협약은 단순한 노사협약의 수준을 넘어서서 국민소득의 적정분배를 통해 소비와 투자의 균형을 추구하고자 한다. 국민소득에서 소비(노동)의 몫과 투자(자본)의 몫이 적정하게 결정되면, 균형성장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고, 국민경제의 자원할당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성장의 속도조절정책, 투자정책, 구조정책 등이 거시적으로 입안될 수 있다. 최근에는 국민소득의 분배에서 노동의 몫과 자본의 몫 이외에 자연의 몫을 어떻게 배정하여 국민경제의 환경친화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도 다루어지고 있다.


또 하나의 심급은 미시경제적 수준에서의 노자관계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과제가 설정된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이 최대한으로 발휘되는 산별 수준에서 노사협약을 체결하여 이 노사협약의 구속력을 산별 산하 사업장에서 관철시키는 것이 그 하나다. 이것은 자본의 권력이 노동의 권력을 압도할 수 있는 개별 사업장에서 체결되는 노사협약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극도로 불리할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방책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산별 노동협약이 이제까지 거의 실천되지 않았고, 요즈음 일부 산별노조 차원에서 초보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형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기업 차원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 속의 타협"을 제도적으로 도출해 내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주식법과 회사법이 앵글로색슨 지역과는 다르게 법제화되어 있어서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 감독위원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거기서는 주주총회에 의해 이사회가 선임되어 자본의 집행기구 기능을 수행하고, 다시 주주총회는 감독위원회를 선임하여 이사회의 활동을 감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제 민주주의는 자본의 집행기구가 입안하고 집행하는 기업의 경제정책, 인사정책, 사회정책이 자본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노동의 이해관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하여, 자본의 집행기구를 감독하는 감독위원회에 노동측과 자본측이 동수로 참여하여 각각의 이해관계를 적정하게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기업 수준에서 경제 민주주의는 감독위원회 구성의 노자동등권 확보를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자산의 형성에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주체적 지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노동자들의 생산자산 참여는 기업 수준에서 노동과 자본의 기능을 혼융하자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의 생산자산 형성에 노동자들의 지분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주체의식과 책임을 강화하는 효과가 크다고 보고 있다.

요즈음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업활동을 통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웃 주민들과 자연환경의 이익을 어떻게 기업내 의사결정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은 현재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경제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제 민주주의의 세 번째 심급은 작업장이며, 작업장의 민주주의적이고 인간적인 형성이 그 과제로 설정되고 있다. 작업장에서의 노동관계를 민주화하고 노동조건을 인간화하는 일은 작업장에서의 노동과정 형성에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관계가 첨예하게 드러날 수 있는 현장에서 자본의 기능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일방적인 지배관계가 아니라 쌍방적인 협력관계로 전환시키고, 노동자들의 인간생태학적, 심리학적, 정신적, 육체적 요구를 고려하여 생산공정을 조직하는 것이 작업장 민주화와 인간화의 핵심 과제다.


IMF의 경제관리 아래 있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타개한다고 하면서 경제 민주주의의 몇 가지 원리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한가한 말장난이 아니다. 물론 경제 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국민국가 수준의 틀에서 발전되었기 때문에 외환위기에서 비롯된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보완할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세계금융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대한 화폐자본의 폐해를 민주주의적으로 통제하는 방책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국민국가 수준에서 실천되는 경제 민주주의는 충분한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세계금융시장의 민주주의적 규율은, 만일 여러 국민국가들이 정치적 이성을 발휘하여 산업자본으로부터 이탈하여 "카지노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들을 연출하고 있는 금융자본의 재갈을 잡고자 한다면,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IMF의 신자유주의적이고 화폐주의적 접근이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IMF의 특별인출권을 이용하여 세계화폐를 창출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세계화폐가 창출되는 그 순간 IMF는 세계무역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자금흐름의 왜곡을 처리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질 수 있다. IMF의 특별인출권을 발행하는 조건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가령 브라질의 아마존 산림지역을 보존한다는 정부의 약속에 근거해서 특별인출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한다면, 브라질은 외채를 갚기 위해 아마존 지역을 무리하게 개발해서 지구의 허파를 파괴하는 일을 중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존 열대 우림의 파괴에서 비롯되는 생태학적 재앙을 피하는 데 드는 비용이나 이를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안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대책은 없을 것이다. 금융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화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수단도 여러 가지로 강구할 수 있다. 주식시장과 환시장, 채권시장을 통해 빛과 똑같은 속도로 손을 바꾸는 금융자본의 상당부분을 시장진입을 위한 예탁금 형태로 묶어 두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고, 시세차익의 상당부분을 자본소득세의 형태로 환수하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렇게 퍼낸 가치총량의 상당부분을 환경보호기금으로 전환시킨다면, 무한히 팽창되는 가치생산을 둔화시켜 전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일은 그러나 세계금융시장의 민주주의적 규율이 가능할 때에만 비로소 성사될 수 있다. IMF나 IBRD(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가 종래의 지배구조를 청산하고 원칙적으로 각 회원국의 동등한 의사결정권에 입각한 민주적인 기구로 재편성된다면 셰계금융시장의 민주주의적 통제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5)


만일 안정된 노사관계가 경제위기 극복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면,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서는 거시경제 수준과 미시경제 수준에서 나타나는 노동과 자본의 본원적인 대립과 제도적으로 강제되는 협조관계에 대해 투명해져야 한다. 빚을 갚기 위해 노동과 자본이 국민소득으로부터 나누어 받을 몫은 물론 작아졌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 노자의 대립은 당연히 첨예화된다. 이 자연발생적인 노자갈등을 정치적 이성으로 푸는 것이 앞으로의 핵심적 과제이다. 노자안정은 노사갈등의 마찰비용을 줄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노자안정은 노자 동반자 관계를 강조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하고 거시경제 운영에 적정한 노동과 자본의 몫이 투명하게 제시되지 않고서는 노자합의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질적 국민소득이 외채상환 때문에 엄청나게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소비와 투자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세계경제와 교통하는 내포적인 국민경제의 틀을 강화하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조정책과 투자정책은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노자의 대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의 감가상각 대 매출액 비교에서 국제적 우위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국민경제의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을 갖추려면, 세계경제에 대해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안정된 균형을 유지하는 국민경제의 재생산이 가능해야 한다.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산업부문들의 유기적 연관이 극대화되어 국민경제의 자원할당의 효율성이 적정한 수준에서 확보되지 않고서는 결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민경제의 틀을 짤 수 없다.

이러한 국민경제의 전체적인 흐름을 인식하면서 노사협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에 산업별 노사협약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발전된 시장경제에서 자본소득자들은 이미 실천되고 있는 이 제도를 깨뜨리고 노사협약을 단위 사업장 수준에서 체결하기 위해 온갖 힘을 다 쓰고 있다. 그것은 오직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이야기밖에는 안 된다. 산업별 이익단체에 속한 기업들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날로 다양한 모습을 띠기 때문에 산업별 노사협약이 큰 실효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산업별 노사협약은 단위 사업장에서 체결되는 노사협약의 적정수준을 법률적 구속력에 버금가는 힘으로 보장하는 데 그 뜻이 있다. 산업별 노사협약 수준 이하로 체결되는 단위사업장 노사협약은 당연히 무효이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는 노사협약은 장려되고 있다. 이러한 유연한 산업별 노사협약 모델에서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더욱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위기에 처한 경제를 수습하는 데에는 이 유연한 산업별 노사협약 모델이 많은 장점을 가진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과 관련해서 이사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감독하는 감독위원회를 설치하려면 주식법과 회사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만일 대립 속에 있는 노자가 합리적인 타협을 이끌어 기업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면, 이 제도는 시급히 도입될 필요가 있다. 노동투쟁의 과격성과 천문학적인 마찰비용이 이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노동투쟁의 과격성은 게임이론의 예에 따르자면 "수인들의 딜레마" 때문에 비롯된다.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토론을 통해 투명한 결론이 내려진다면, 노동투쟁은 미연에 방지될 수 있다. 이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노동투쟁이 발생하는 경우라도 그것은 이 제도 아래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감독위원회는 기업 수준에서 노동의 이해관계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으므로 해외자본의 직접투자가 늘어나는 경우라 해도 미시경제적 수준에서의 소득분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잉여의 해외유출을 극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생산자산의 형성에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문제는 현재의 우리 나라 경제 실정에서 시기상조일런지 모른다. "우리 사주" 제도는, 기업의 주가가 곤두박칠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재산박탈로 이어졌다. 실질소득이 감소되고 주식시장이 경색되어 기업의 증자마저 곤란한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생산자산 형성에 참여하는 일이 기술적으로도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구할 만한 일이다.

작업장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이 있고, 또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들이 많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의 스타일, 기업문화의 문제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끝내겠다.


IV. IMF 경제관리 아래서 복지의 증진을 위한 몇 가지 과제


실질소득이 감소되고 재정지출이 축소되는 IMF의 경제관리 시기에 복지가 후퇴하고 "삶의 질"이 급격하게 악화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밝혔다. 여기서는 복지의 여러 차원들에 걸쳐 일반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을 겨를이 없다. 오늘 복지 문제와 관련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실업 문제와 심화되는 환경 파괴 문제이다.

실업 문제는 IMF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겠지만, 우리 경제 전체의 구조가 상당 기간에 걸쳐 변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조적 실업의 양상을 띠고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발달된 시장경제들에서 이미 나타난 것이지만, 생산비용에서 고정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끊임없이 높아지는 추세에서 기업은 노동절약적 합리화를 통해 시장경쟁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차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실업보험을 도입하고 확충하는 것만으로는 적절한 실업 대책을 세울 수 없다. 물론 실업보험은 실직자들의 유효수요를 적정 수준에서 유지시킴으로써 국민경제의 순환을 부드럽게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실업보험의 제도화가 사회복지제도를 완성한다는 점에서도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기적으로 보면, 실업보험은 노동세계를 인간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사람답게 일할 수 없는 곳에서 일하느니 실업자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실업보험은 국가재정을 악화시키고 국민경제 수준에서 자원할당의 효율성을 왜곡시킬 수 있다. 이것은 현대 복지국가에서 너무나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요즈음에는 실업을 위해 비용을 지출하기보다는 일자리의 유지와 창출을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물론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자리의 수효는 절대적으로 줄어들게끔 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많은 경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있는 일자리를 쪼개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노동시간의 단축과 부분노동에 따른 소득 재조정이 매우 어려운 과제로 등장한다. 그렇기는 해도 국민경제의 균형성장의 틀에서 노동의 몫이 적정하게 주어지고, 다시 이 몫이 일자리에 따라 배분된다면 마찰은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은 자신의 개발, 가족과 이웃을 위한 봉사, 환경보호, 두레 형태의 상호부조를 위해 지출될 수 있으므로 "삶의 질"은 오히려 높아진다. 영리와 가계의 역사적 분리로 인해 강제된 삶과 일의 분열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도 있다.


복지 문제를 다룰 때, 환경의 질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날 급격한 자본화와 공업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엄청나게 파괴되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환경의 안정을 위해 지출하여야 할 비용은 천문학적일 것이다. IMF의 경제관리 아래서 환경의 질은 더욱더 나빠질 공산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은 환경보호를 소비활동의 차원에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높은 환경의 질을 "소비"하기 위하여 그 비용을 지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환경보호는 엄청난 투자를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연구와 기술개발을 위해 자본이 투자되어야 하고,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도 엄청난 자본을 필요로 한다. 환경기준이 제대로 세워져서 이 기준에 따른 산업활동이 큰 이익을 얻게 한다면, 생산공정의 환경친화성을 보장하는 생산설비의 수요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앞으로 생태계의 경제적 활용에 관한 국제적 기준이 정해져서 각각의 국민경제가 이를 준수하도록 할 경우, 환경친화성은 국가경쟁력의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엘 고어가 천명했듯이, 이산화탄소 등 폐기가스 배출허용권을 각 나라에 배정하여 이를 사고 팔게 한다면, 배출허용권 시장이 조성될 것이며, 배출제한을 위한 투자액과 배출허용권 매입액을 비교하는 가운데 환경보호를 위한 여러 조치들이 강구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태계의 안정과 저(低) 엔트로피의 유지는 단순한 복지경제의 차원을 넘어서서 환경시장을 중심으로 거대한 경제활동 분야를 탄생시킬 것이다. IMF의 경제관리 아래서 우리 경제는 이 점을 내다보면서 생태학적인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환경시장의 도래에 대비하면서 환경친화적으로 생산공정을 조직하고 산업구조를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V. 마침말


IMF의 경제관리로 집약되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IMF 구조조정의 타율성을 우리 국민의 정치적, 사회적 역량을 통하여 주체적 개혁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나는 경제 민주주의 몇 가지 기본원칙들에 따라 이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경제 민주주의는 결코 고정되어 있는 개념의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을 통해 더 많은 정의와 복지를 실현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기획되고 조직되고 전개되는 운동의 한 이름이다.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외부세계에 개방적이면서도 사회정의와 환경정의를 보장하는 지속 가능한 내포형 균형성장 경제를 견실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의 힘이 아래로부터 조직되어야 하고, 국민 모두가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책임 있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새 정부가 IMF 시기의 경제위기를 제대로 관리하고 IMF 이후 시대의 새로운 경제의 틀을 짤 수 있는가의 여부는 민주주의의 틀에서 우리 국민이 정치적, 사회적 역량을 아래로부터 조직하는 것을 도우면서 이 힘과 어떻게 연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에 실패한다면, 현정부는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직역(直譯)하고 신자유주의의 경제원리를 우리 경제에 여과 없이 관철시키는 통로의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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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1998년 5월 25일에 열렸던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98 민중신학 공개 심포지엄: IMF 시대의 위기와 신학의 대안' 때 발표된 강원돈 목사의 글을 수정보완하여 전재한 것이다. 저자는 한국신학연구소 학술부장을 역임하였고,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생태윤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신대학과 성공회 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2) 이 글이 쓰여졌던 지난 4월 초순에는 제2기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진통이 거듭되고 있었다. 오늘의 시점에서 제2기 노사정위원회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만한 새로운 사회협약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3) 근대적 의미의 시장경제는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노동력이 해방되는 역사적 조건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근대 자유주의 이념과 친화성을 띠고 있다. 이 이념은 서구 여러 나라 사회들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구축된 정치적 민주주의를 뒷받침하였지만, 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을 뒷받침하지는 못했다.

4) 나는 신정부가 규율자유주의(Ordoliberalismus)를 표방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진일보한 견해를 표명하였음을 주목한다.

5) 브레튼우즈 협정에 근거하여 설립된 국제금융기구들을 개혁하자는 최근의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제안은 자본 운동의 범세계성을 현실로 인정하면서 각국의 금융구조를 일정한 규준 아래 통일시키자는 것인데, 이 제안이 화폐주의적 발상에서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세계 금융질서의 표준을 누가 정하는가 하는 문제를 정치적으로 결정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in 시대와 민중신학 제5호

1998년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의 위기, 그리고 민중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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