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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6/02/12 (21:08) from 129.206.196.31' of 129.206.196.31' Article Number :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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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빛과그늘




인공지능의 빛과그늘

이 기 호

 

Ⅰ. 서 론

 

우리는 이미 사람의 능력보다 빠른 계산과 작업을 수행하는 컴퓨터를 만들고 있다. 이 컴퓨터는 연구실이나 사무실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도 아주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예전에 글을 모르는 사람을 `문맹'이라고 했듯이 요즈음은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을 `컴맹'이라 부른다.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도 컴퓨터가 유용한 도구임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면서 더욱 우리의 생활 속으로 잠입해 오고 있다. 나아가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를 앞에 두고 "과연 인간과 같이 생각하는 기계가 가능한가?"라고 물음을 가진다. 이러한 물음의 제기와 그 대답의 모색이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 불리는 연구의 출발점이다. 인공지능은 명령해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변화된 상황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연구이다.

누구나 컴퓨터의 동작 원리를 조금만 알게 된다면 컴퓨터가 우리의 두뇌와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유사함이 있다는 사실이나 점점 더 인간의 지능과 비슷한 기계가 제작 될 것이라는 예언만으로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말할 수 없다. 여기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검토 작업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완성을 위해 기술(technology)의 발전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의 연구가 과학 이론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연구는 그 초기 연구자들을 지배했던 철학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그러한 가정의 철학적 장점과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철학적 논의를 통하여 인공지능의 한계를 검토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인공지능의 연구 성과들은 철학적 문제 해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과 철학은 연합 할 수밖에 없는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철학은 그 시대 그 사회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과제, 근원적인 문제에 관여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인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 가는 컴퓨터와 이를 한층 높은 단계의 지적 활동으로 이끌어 가는 인공지능을 철학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꼭 필요한 철학의 과제 중의 하나이다.

본 논문의 주제는 인공지능의 구현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 말하는 인공지능의 빛이란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의 두뇌를 인위적으로 확장하고 인간의 사유를 정보처리 과정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고, 그늘은 현재로서 인공지능 구현을 위한 기술상의 여러 가지 문제와 인간의 생각하는 기능에 대한 밝혀지지 않은 많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제는 여러 분과 학문의 주제가 될 수 있겠지만 본 논문에서는 철학적인 문제로서 그 원리적 가능성의 모색과 그 이론의 바탕에 깔려 있는 가정에 대한 고찰이 될 것이다.

본 논문의 목표는 자연 지능에 대한 기계적 모의의 원리적 타당성을 제시하고 나아가 인공지능 구현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지 과학의 출발 과정과 방법을 정리하고, 인공지능 구성의 철학으로 현재 공존하고 있는 인지 과학의 방법론인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를 고찰 할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의 비판적 지적인 창조성의 문제, 의미론의 문제, 인식론의 문제의 논의를 통해 인지적 기능의 기계 모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Ⅱ. 인지 과학의 태동과 방법

 

1. 인지 과학의 태동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정서를 경험하며,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람을 닮은 기계를 꿈꾸어 온 인류의 상상력이 풀지 못한 해묵은 궁금증의 하나일 따름이다. 인공지능을 구성하려는 희망의 연원은 고대의 희랍신화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대장장이 신이 용광로에서 인간처럼 행동하는 청동 인간을 제작하고, 피그마리온(pigmalion)은 상아로부터 여인을 빚어내어 사랑을 했다. 최근에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지능을 가진 괴물이 등장하는 소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물들의 제작에 담긴 흥미로운 일화들은 자연적 지능을 인공물로 모의하려는 인간의 열망이 담겨져 있지만 논증 가능한 이론적 탐구의 차원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시도들이 독립된 학문으로 발족한 것은 1956년이다. 매카시(J.McCarthy) 는 민스키(M.Minsky), 사이먼(H.Simon), 뉴웰(A.Newell)과 인간처럼 지능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는 모임에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말을 맨 처음 사용한다. 그러나 드레퓌스(H.L.Dreyfus)는 인공지능 구성의 철학은 지능이 어떠한 원리에 의존한다고 본 소크라테스의 철학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이러한 철학의 전통은 플라톤, 홉스, 데카르트, 라이프니쯔 등을 거쳐 현대의 사이먼과 뉴웰로 이어진다고 평한 바 있다.

인간의 사고를 기계화(mechanization)하는 아이디어는 기호 논리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기호 논리학의 개념은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던 독일의 고트프리드 라이프니쯔(Gottfried Leibniz)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1673년에 서로 연결되어 도는 실린더를 이용해서 가감승제(加減乘除)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고, 수학자로 미적분학을 독자적으로 발견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두뇌의 작용을 기호에 의한 논리적인 계산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여 모든 사고를 순전히 연산으로 환원해 버리는 완전히 논리적인 언어의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언어에 대한 생각은 명확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예언적인 것으로 되었다. 이후의 논리학자들은 인간의 연역 추론(deductive reasoning)과정, 즉 보편적 원리를 기초로 하여 논리적 사고의 절차에 의해 새로운 판단을 도출하고 언어로 표현해 내는 과정을 수행하는 기능을 가진 기계의 발명을 꿈꾸어 왔다. 예컨대 드 라 메트리(J.de.Mettrie)는 인간 기계론 에서 생명 활동이나 심리 활동들도 물질의 조직화된 구조에서부터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라이프니쯔 이후 명제 논리, 집합 논리 그리고 기하학, 산술, 대수의 논리적 구조에 대한 이해라는 추상적인 영역에 있어서 근본적인 발전이 있었다. 또한 보다 상위의 추상적 개념인 형식 체계(formal system)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형식 체계들은 무한히 많이 존재할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형식 체계의 능력은 논리학과 대수학의 예와 같이 막강하다. 또한 모든 형식 체계를 원칙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는 것은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보아 크다란 빛이 되었다. 다시 말해 모든 형식 체계의 요소들과 조작들은 적절히 구성된 물리적 장치에 설정하고 조작할 수 있는 종류의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바베지의 예와 같이 적절한 장치를 실지로 만드는 것은 그 크기, 시간 혹은 기술상의 문제로 당장은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의 전자 기술의 발달은 고속도 대용량의 범용 디지털 컴퓨터의 제작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기계들은 형식 체계들의 자동화를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매우 막강한 형태의 계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대의 컴퓨터를 `범용(general-purpose)'이라고 부르는 것은 프로그램이 다르게 된다면, 전혀 다른 정보처리 체계를 본뜰(simulate)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은 적절히 프로그램 된 컴퓨터가 생명체의 신경계에서와 같은 정보처리 체계를 본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만약 컴퓨터가 일정한 기능적 조건을 만족하게 된다면, 이론가들이 말하는 튜링 기계( Turing machine)의 한 예가 된다. 튜링 기계는 제대로 정의된 모든 연산 과정(computational procedures)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런 과정을 실행하는 물리적 체계를 본뜰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연구 프로그램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적절히 프로그램 된 컴퓨터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연산 과정을 기반으로 하는 연속적인 행동을 본뜰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은 문제는 의식을 지닌 지성을 구성하는 활동들이 모두 모종의 연산 과정인가 하는 문제이다. 인공지능의 주도적인 가정은 그런 지적인 활동들이 모종의 연산 과정이라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본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목표는 그런 활동을 본뜰 실제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은 곧바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사람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먼저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기술적인 발전만으로는 인공지능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이론의 진보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론의 진보를 위해서는 마음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하여 철학, 심리학, 언어학, 인류학, 신경과학과 공동 연구를 시작하여 새로운 학문인 인지 과학(認知 科學)을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비로소 마음이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2. 인지 과학 방법

 

전통적으로 마음에 관해서는 종교, 예술 및 철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다가 심리학이 철학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마음을 분과 학문에서 다루게 되었다. 인공지능학의 등장과 신경 과학의 새로운 발달이 계기가 되어 인지 과학(認知 科學)이 마음의 과학으로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인지 과학은 종래의 심리학, 인류학, 철학 등에서 마음에 관한 자료를 흡수하여 하나의 학제적 연구로 탄생한다.

`마음의 과학'이라고 불리는 인지 과학이 태동하면서 심적 작용의 주체와 심적 상태 그리고 심적 과정에 대한 본격적인 해명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전의 연구들은 대체로 원리적이고 사변적인 논의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제시된 이론의 타당성이나 효율성을 검증해 볼 수 있는 수단 역시 충분치 못했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행위에 대한 경험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기 시작함으로서 인지 과학이라는 분야는 활기 차게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인지 과학은 다학문적(多學問的), 학제적(學際的) 과학으로서 인지 및 인지와 관련된 심적 현상을 해명 해 보고자 하는 과학적 연구이다. 인지 과학은 마음, 컴퓨터, 두뇌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인지 현상의 연구는 심리학, 컴퓨터 과학, 신경 과학이 수렴되어 접근되어야 한다. 언어는 인지의 주 도구이며 형식이다. 언어 과정이 인지 과정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언어학적 연구가 요구된다. 새로운 과학으로서의 인지 과학 형성과 그 학문적 기초의 문제는 철학의 문제이다. 동시에 인지는 인간이라는 종과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 위에 축적되었고 함께 나누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인류학적 연구가 인지적 접근에 의한 마음의 연구에 있어서 불가결 해 진다. 더욱이 점점 고도화되어 가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데 관련한 윤리적, 종교적, 사회적 문제 발생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마음에 대한 인지적 연구는 자연히 종래의 학문적 경계를 넘어서 여러 학문들이 연결되어 학제적으로 연구하는 종합적 연구 접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종합적 접근이 바로 인지 과학이다.

인지 과학의 관심은 마음의 내적 구조, 정보의 수용, 저장, 검색, 변형, 전달, 지식의 활용 등을 중심으로 모아졌다. 비록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심적 현상에 관한 여러 검증 가능한 모델 및 이론이 배출되었다. 특히, 최근 컴퓨터의 급속한 발전은 이러한 모델이나 이론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이자, 그 타당성의 시험 수단을 제공하게 되었다.

현재의 인지 과학의 탐구 전략이자 방법론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계산 주의(computationalism)와 연결 주의(connectionism) 라는 접근 방식이다.

계산 주의는 인지 과학의 초기 연구를 촉발시켰던 패러다임이며 디지털 컴퓨터로 통칭되는 대부분의 컴퓨터 모델과 규칙 기반적(rule-based) 인공지능 이론이 근거하고 있는 입장이다. 계산 주의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계산 가능한 기호 처리 체계로 간주하고, 복잡하고 다양한 인지적 행위가 구성 단위들의 유한하고 결정적인 조합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결 주의는 최근에 와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인지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신경망(neural network) 모델과 병행 분산처리적(PDP: Parallel Distributed Processing) 인공지능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 입장이다. 연결 주의자들은 마음을 두뇌와 같은 복잡한 연결망의 작동 체계로 간주하고, 인지적 행위가 구성 요소들의 형식적 계산이 아닌 다른 인과적 상호작용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계산 주의의 패러다임이 튜링기계라면 연결 주의의 패러다임은 인간의 뇌이다. 이 두 방법론은 인지 과학의 영역에 제안되는 대부분의 인지 모델과 이론이 구성되는 토대이자, 실현 가능한 컴퓨터 모델이 설계되고 그 효과가 검증되는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인지 과학의 양대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는 인공지능 구성의 철학으로서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Ⅲ. 인공지능 구성의 철학

 

1. 계산 주의

 

계산 주의(computationalism)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하나의 정보처리 과정으로 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판단하는 등의 마음의 작용을 근본적으로 일련의 계산이 행해지는,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으로 본다. 이런 아이디어는 인공지능 연구에서 컴퓨터 개발을 촉진시켰으며, 역으로 컴퓨터란 개념 자체가 인지 과학을 위한 이론적 모델로서 기여하기도 한다.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인간의 뇌와 마음에 각각 대비시키고 있다. 나아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컴퓨터 개발을 위한 노력이 가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계산 주의는 현대 과학의 산물인 컴퓨터를 새로운 도구로 삼아 지능을 모의함으로써, 컴퓨터도 인간과 같은 마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는 야심찬 작업이라 볼 수 있다.

계산 주의는 종종 `계산적 모델', `기호 조작 주의', `고전주의'라고 불려 진다. 그 요점은 심적 과정을 정보의 유한한 계산적 처리 과정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보(information)란 기호(symbol)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이 의미(意味)가 할당되고 해석된 기호는 아니다. 정보는 시스템 사이의 소통을 위해 생성되고, 전달되고, 수용되는 신호(signal)로서, 그 신호를 사용하고 해석하는 지적인 주체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흔히 정보로 간주되는 명제나 진술은 계산 주의에서 정보와 구별되어야 한다. 명제나 진술은 정보에 담겨져 있는 것, 혹은 정보처리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며, 인지 체계에 의해 해석된 것이다. 따라서 계산 주의에서 말하는 정보나 기호는 단지 명백한 심적 표상에 대응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계산(computation)'이 의미하는 바도 전통적 의미에서 산술(arithmetic), 즉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은 아니다. 계산에는 일반적인 정수, 실수의 계산 및 미적분을 포함하여 논리학자나 컴퓨터 과학자가 사용하는 논리 연산으로서의 계산, 즉 `AND', `OR', `NOT', `XOR'와 `IF THEN ELSE ' 등 비교(comparison)와 분기(branch)의 개념도 포함된다. 또한 공학자가 사용하는 바와 같은 실체의 기계 속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과정, 예를 들어 컴퓨터 칩속의 `게이트(gate)'나 `플립플롭(flip-flops)'의 작동도 계산의 개념에 포함된다. 다시 말해 계산은 컴퓨터에서와 같이 일련의 정보처리 과정을 총칭하는 말이다.

계산 주의에서 정보의 계산적 처리가 `유한한' 과정임을 유의해야 한다. 사람과 같은 자연 지능이든 컴퓨터와 같은 인공지능이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작동하는 시스템인 이상 무한한 양의 정보를 무한한 시간 동안 처리할 수는 없다. 자연 지능은 생물학적 제한, 즉 호흡, 온도, 영양 등등의 조건에 제약을 받는다. 반면, 컴퓨터는 유한한 용량의 메모리, 회로망, 연산 속도 등의 제약을 받고 결정적으로 전기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정상적인 작동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흔히 수학자들이 생각하듯 계산을 무제약적인 과정으로 간주하는 것은 추상적인 계산 이론에서는 타당하지만 계산 주의의 본질과는 어긋나는 점이다.

`정보'와`계산' 그리고 `유한한 절차'에 대한 위와 같은 의미를 고려해 볼 때 계산 주의가 현재의 컴퓨터 모델과 상통하는 것임을 인정할 수 있다. 디지털 컴퓨터 모델의 경우 내부에서 일어나는 기본적 과정은 단순한 양들의 형식적인 계산 과정이고 직접적으로 믿음이나, 지식 또는 통속 심리학의 설명에 도입되는 고유한 심적 범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국 계산 주의는 마음 현상과 지능적 행동에 대한 설명이 마음을 계산적 과정의 합성으로 간주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계산은 그 시스템의 상태에 대한 형식적, 물리적 속성 위에서 수행된다. 즉 인간과 컴퓨터가 모두 기호를 조작하는 물리적 기호 체계(physical symbol system)라는 기호 체계 가설로 출발한다. 그 가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마음은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이다.

정보처리는 계산, 기호를 조작하는 과정이다.

컴퓨터의 프로그램은 기호를 조작하는 체계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컴퓨터의 프로그램으로 모형화될 수 있다.

 

기호 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계산 주의는 오늘날 인지 과학자들에 의해 그 한계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지적 받고 있으며, 재해석의 노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계산 주의가 얼마만큼 타당성과 신뢰성을 확보 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인지 과학에서 계산 주의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 연결 주의

 

연결 주의(connectionism)는 전통적 이론인 계산 주의와 같이 인지를 정보처리 과정으로 보지만 정보의 처리 과정이 직렬적(serial) 계산이 아닌, 병렬적(parallel) 처리 방식으로 본다. 계산 주의에서는 정보처리를 알고리즘화하여 프로그램 한 후 현재의 컴퓨터 위에 인간의 인지구조를 이식시키고자 한 것이라면, 연결 주의는 외부의 자극에 따라 신경세포가 자율적으로 학습을 하여 지적 정보가 처리되는 인공지능 연구 방법론이다.

인간의 뇌가 약 140억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각 신경세포는 동시에 작용하는 병렬 처리의 형태를 취한다는, 뇌에 대한 연구에 의해 영감을 받아, 이를 병렬 분산적 계산 요소들의 대규모 연결망에 의해 모의해 보고자 하는 것이므로 신경망 모델이라고도 한다. 이 연결망이 수행하는 계산은 연결 정도의 분포에 의존적이며, 각 계산 요소는 수치적 가중치가 부여된 연결 체계를 통해 서로의 활성화 값에 영향을 미친다. 이 접근법의 매력은 다수의 연결된 망상 구조가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연결망은 스스로의 가중치를 조절해 가는 독자적인 절차를 가질 수 있으며, 감추어진 장치(hidden unit)는 망 체계를 학습해 가는 데 있어서 어떤 계산을 수행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 할 수 있다.

연결 주의는 신경망 모델이나 그와 관련된 이론들이 근거하고 있는 기본 입장으로서 종종 계산 주의를 대치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은 두뇌의 신경 구조와 그 기능이 계산 주의에 함축되어 있는 것과는 다른 구조와 작동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연결 주의자들은 심적 표상이 계산 주의자들이 말하듯 기호(symbol)로 간주될 수 없으며, 표상의 처리도 명제적인 단선적 조작이 아니라 여러 수준이 중첩된 대규모의 연결망 속에서 병렬적으로 처리된다고 주장한다.

연결 주의는 흔히 병행 분산 처리적 접근 혹은 신경망 모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연결 주의는 지금도 이것을 토대로 한 인지 이론들이 다방면에서 분화와 변모를 거듭하고 있고, 학자들마다 계산 주의와 관련하여 해석상 상당한 불일치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 특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핵심은 "심적 과정이란 신경 구조와 같은 대규모 연결망 속에서 활성화 (activation)의 정도가 다른 구성 요소들 사이의 연결 통로와 연결 강도의 차이에서 야기되는 정보의 변형이다."라는 것이다.

연결 주의는 흔히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잘 알려진 디지털 컴퓨터와 인간의 두뇌 사이의 차이점에 주목 할 때 강한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1) 계수적(計數的) 기능 단위 대(對) 의사(擬似) 계수적 기능 단위:

컴퓨터의 기본적인 기능 단위는 `켜짐(on)'과 `꺼짐(off)'의 상태만을 갖는 이진(二進) 스위치이다. 이에 반하여 두뇌의 기본적인 기능 단위는 연속적인 변량(continuous variables)이 상호 작용하는 뉴런(neuron)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뉴런들의 활성화 정도와 뉴런들 사이의 연접(synapses)에서 일어나는 형태는 계수적(計數的, digital), 단속적(斷續的)인 것이 아니라, 의사(擬似)계수적(quasi-digital) 혹은 상사(相似, analogue)적이다.

2) 직렬 계산 대 병렬 계산:

현재의 계수형 컴퓨터의 표준적 구조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보관하는 `기억장치(Memory)'와 그 정보를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CPU: Central Processing Unit) 내의 `수리 및 논리 연산기(ALU: Arithmetic and Logic Unit)'는 한 순간에 오직 하나의 연산(operation)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일견 대량의 다중적인 작업이 순식간에 처리되는 것으로 보여도 실상은 시분할 된(time shared) 상태에서 여러 연산이 직렬적(serial)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업의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앙처리장치를 구성하고 있는 소자(素子)들의 반응속도가 빨라져야 한다.

이에 비해서 두뇌 속에는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과 중앙 처리를 담당하는 부분이 명백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뉴런 하나 하나가 독립된 처리기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뉴런들 사이의 복잡한 연결망에 비추어 볼 때 두뇌 속에서의 정보 처리는 한 뉴런의 작동이 동시에 다른 뉴런들의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즉 대량의 병렬(parallel)처리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이런 방식에서는 기본적인 기능 단위들의 처리 속도가 작업의 성과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뉴런의 반응 속도가 컴퓨터에 비해 훨씬 느린 수백 분의 일초(대략 20 mili seconds)임에도 불구하고 지적 과제가 능숙히 처리되는 것은 바로 병렬 처리의 결과이다.

3) 일반 목적의 하드웨어 대 특정 목적의 하드웨어:

일반적인 컴퓨터의 경우 동일한 정보가 중앙처리장치나 기억장치의 종류(ROM, RAM, MT, CD)에 상관없이 처리되거나 수록될 수 있듯 컴퓨터의 각 부분은 일반 목적(general-purpose)에 맞게 여러 용도로 사용될 수가 있다. 그러나 일단 내부 구조가 형성된 후에는 한 부분의 장애는 전체 시스템의 기능에 치명적 영향을 끼친다. 반면에 두뇌의 기능은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의 기능의 차이와 역할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의 성질과 처리 방식에 따라 각 부분이 분화되어 있다. 두뇌는 비록 각 부분이 특정화되어 있으나, 한 부분이 손상을 입을 경우 다른 부분이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생물학적인 융통성이 허용되어 있다.

4) 하드웨어의 불변성 대 하드웨어의 가변성:

컴퓨터가 단지 고정된 일이 아니라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물리적 구조로서의 하드웨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으로서의 소프트웨어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두뇌 내에는 예를 들어 뉴런의 연접(synapses)에서의 응답 특성이 변화하는 것을 연결 구조의 변화인지 프로그램의 변화인지를 명확히 구별할 수 없는 것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명백한 구별이 없다. 두뇌 내에서의 기능 변화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되는 혈액과 호르몬 성분의 변화와 같은 화학적 요인에 대응하는 것이 컴퓨터 내에는 없다. 이점에서 두뇌 내부에는 심적 기능의 처리 과정 가운데서 끊임없이 하드웨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차이점에 착안하여 연결 주의자들은 인지 과정이 계산 주의에서 말하는 분절된 정보의 계산적 처리 과정이 아니라 연속된 정보가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는 역동적 과정으로 파악한다. 연결적 시스템의 기본적 요소나 변수들은 현행의 폰 노이만식의 컴퓨터 이론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기호 보다 낮은 단계의 것들, 즉 명제적 기호보다 더 원초적인 하위 기호들이며 처리 과정도 명백한 상위 표상들의 형식적인 조작이 아니고 시스템의 직렬적 조작에서 발생하기 쉬운 오류에 잘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이 뚜렷이 구별되어 있고, 또 고정되어 있는 계산주의적 모델과는 달리 연결망 자체가 바로 작동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사실상 상위 개념적 차원과 하위 신경적 차원 사이에 어느 차원의 어느 기능이 실재하여 그것들의 총체적인 인지 활동으로서 인간의 마음이 정립되는가에 대한 실재론적 의문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 기호적 차원은 그 동안 계산 주의 모형으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정보처리 과정을 중간 단계에 설정하여 인지의 역동성, 개성, 맥락 의존성 등을 담아 내려고 한 점에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음의 존재 구조의 계층성 혹은 중층성을 상정하는 입장에서 볼 때 그 출발점으로서 하위 기호적 차원의 의미는 중대하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가 입력 지식의 처리기 이상의 형식적 제한성을 벗고, 연결 주의의 모형이 개척하고 있는 자율적 학습 구조의 발전이 있다고 본다면 외부 환경과 스스로의 상호 작용에서 인지의 확장과 학습의 성과를 담보해 내는 이 모형의 창조적 생산적 기능 구조의 시사는 매우 주목 할 만하다.

 

3. 계산 주의 대 연결 주의

 

현재 인지 과학과 과학 철학에서 활발하게 논쟁 중인 두 주제는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이다. 인지 및 인지와 관련된 심적 현상의 해명을 목적으로 하는 인지 과학에서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는 경합하고 있다. 여러 인지 과학자들은 계산 주의 혹은 연결 주의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반대편에 있는 이론을 비판한다. 튜링의 자동자 이론과 메쿨로치의 신경망 모델이 나타난 이후, 두 이론은 서로 각자의 이론이 심적 현상을 해명하는데 더 적합하다고 주장해 왔다.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의 첨예한 경쟁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로센브러트(F.Rosenblatt)의 퍼셉트론(Perceptron)을 빌미 삼아 벌어진 논쟁이다. 퍼셉트론은 신경망을 최초로 실현한 것이다. 퍼셉트론의 영향력은 수많은 학자들과 기술진들이 계산 주의보다 연결 주의의 연구에 몰리게 만들었다. 연구 인력과 자금을 빼앗긴 이러한 상황에서 계산 주의 진영에서는 반격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공지능의 대부인 민스키는 페퍼트(S.Papret)와 함께 퍼셉트론(Perceptron) 이란 책에서 퍼셉트론을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개념상의 한계를 낱낱이 지적하였다. 이를 계기로 신경망 이론의 열기는 급격히 냉각되어 1970년대 말까지 홉필드(J.Hopfield)에 의해 겨우 명맥만 유지되었다. 이후, 계산 주의는 인공지능 언어,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의 개발로 활기차게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지각 능력, 상식 추론 능력 등 많은 문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 했다. 1980년대에는 이러한 계산 주의의 한계 때문에 그 대안으로 신경망 이론이 다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도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의 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인공지능을 대표하는 양 패러다임인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는 도저히 만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통합된 모델이 가능한가?

공용현은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는 서로 대립되는 패러다임이다. 계산 주의에 근거한 인지 이론과 연결 주의에 근거한 인지 이론은 전제의 논리적 구조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각각이 이론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존재론적인 가정이 다르고, 핵심 용어들과 논리적 장치들이 서로 상충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단순성'이라는 기준을 사용해서 계산 주의를 선택할 수 있다."라고 한다.

최훈은 그의 논문에서, 포더와 필리신의 경우 연결 주의를 기호 표상 체계의 구현에 관한 설명뿐이라고 이해하며, 스몰렌스키는 연결 주의가 고전주의의 구현이 아니라 세련(refinement)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한 것을 소개한다.

연결 주의가 계산 주의의 라이벌이든, 구현이든 그것은 별로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는 밖으로 드러나기에는 대립하고 있는 이론으로 보이지만 분명 이들 방법론은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존재 할 것이다. 또한 실제로 인공지능을 설계하는데 있어 이 두 패러다임은 모두 이용되고 있으며, 단지 부분적인 우위만을 점유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로서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 중에 한 패러다임을 선택한다는 것은 오판의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즉 아직은 미지수이다. 지금으로서는 단지 둘 다 필요한 방법론이라 하겠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를 상호 보완적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다음 장에는 계산 주의와 의결 주의의 수렴 가능성을 토대로 인공지능의 비판적 지적으로 창조성의 문제, 의미론의 문제, 인식론의 문제를 정돈하고 자연 지능의 인공적 모의의 원리적인 가능성을 제시 해 보고자 한다.

 

 

Ⅳ. 인공지능을 둘러싼 문제와 그 해결 가능성

 

1. 형식 체계와 창조성의 문제

 

논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이 대상 세계를 모의하는 데 필요한 규칙 또는 방식이다. 대상 세계의 특정한 관계를 표상하여 그 관계로 인하여 일어나는 변화를 미루어 알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논리의 기능은 추리의 기능이라고도 한다. 추리해서 설명하고 이해하고 예측도 하는 것이다.

컴퓨터와 사람은 추론 체계를 지니고 있지만, 기계의 논리와 사람의 논리는 다르다고 여겨진다. 컴퓨터는 엄밀한 형식논리를 바탕으로 추리를 진행해 나간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형식 논리 외에 귀납(induction), 유추(analogy), 변증(dialectics), 귀추(abduction)와 같은 비형식적 논리를 통해 추리를 진행해 나간다. 인간이 기계와 달리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비형식적 논리를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들의 부분적인 유사성에서 공통점을 추출하여 일반개념을 형성한다거나, 어떤 상황 속의 여러 다른 요소들 중 상대적인 중요성을 식별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인간의 삶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비형식적 종류의 추리 능력은 인간들 사이에 있어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보통 상식이라 불리는 것이다.

인공지능 구현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논변 중 하나는 기계가 과연 이런 다양한 추리 능력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의 디지털 컴퓨터는 분명히 형식적 추론 기계이다. 내부의 연산 작용은 정확하게 연역 논리의 규범을 따르고 있다. 만약 인간의 추리 과정을 컴퓨터로 대신하게 하려면 먼저 그것을 형식 체계 내에 담아야 한다. 건전한 형식 체계는 그 속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분명하게 정의되어야 하고 모순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의 추리에는 종종 애매하고 모호한 용어가 사용되고, 때로는 모순적인 정보들이 함께 처리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컴퓨터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결정적 이유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컴퓨터가 아직 인간 수준의 비형식적 추리를 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현재의 컴퓨터와 같은 형식 체계 내에서는 전제에 없는 결론이 도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귀납적 추리와 변증법적 사고의 본성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논쟁 중인 논리 철학의 해묵은 주제이기도 하지만 귀납적 결론이나 변증법적 결론에는 전제에 함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추리 과정에 도저히 컴퓨터가 흉내낼 수 없는 모순이 허용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아무리 사고를 유연하게 한다고 해도 `둥근 삼각형'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사고에 이러한 논리적 모순이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비형식적 추리나 사고방식들의 계산 가능성은 열려 있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은 애매 모호한 용어나 값들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컴퓨터의 형식 체계의 한계성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비록 내부적으로 이진화(二進化)된 연산 과정이 수행되고 있지만, 컴퓨터 역시 이치논리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 추리의 이런 측면들은, 확장된 현대의 연역 체계 -다치논리(many valued logic), 양상 논리(modal logic)등- 를 컴퓨터 추리에 도입함으로써 다루어 볼 수 있다. 이 시도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최근 이 영역에서 퍼지이론을 사용해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볼 때 분명하다.

컴퓨터 프로그램에서는 명제들이 기호로 표시되고 추리 과정이 명백하게 기술된 유한한 절차(procedure) 즉 형식적 규칙(formal rule)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은 본질적으로 논리적 계산 과정이다. 따라서 문제 영역이 명확히 정의되고 알고리즘(algorithm)만 제대로 구성한다면, 해답(또는 해답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추리 방식을 실제의 문제 상황에 적용시키게 되면, 번번이 `조합의 폭발적 증가'(combinatorial explosion)라고 알려진 곤경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이 같은 경우, 적절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의 추리처럼 문제를 단순화시켜 불필요한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 휴리스틱(heuristic) 즉 `어림짐작의 방법(rule of thumb)'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방법에서의 생략은 대체로 논리적이 아니라 자의적이다. 따라서 잘못된 결론이 유도될 수 있고, 또한 지나친 생략은 평범하고 진부한 결론을 도출하게 될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방법은 잘 정의된 특정한 문제 상황에 대해서는 그런 대로 기능을 발휘하겠지만, 문제 상황이 조금만 변경되어도 적절한 해답을 찾는 데 실패하고 만다. 이점에서 컴퓨터의 기계적 추리는 나름대로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유연한 인간의 추리를 아직까지 제대로 모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귀납적 추리를 통해 얻게 되는 이른바 창조적인 결론들을 컴퓨터의 기계적 추리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는가? 헴펠(C. Hempel)은 `넓은 의미의 귀납'을 `좁은 의미의 귀납'과 대비시키며, 우리가 자연과학의 법칙이나 이론을 얻을 때 인간의 사고가 `창조적 비약'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 과정을 이끄는 데 있어서 관찰된 자료의 양이나, 분류와 분석의 정확성은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창조성(creativity)이란 용어는 참으로 정의하기 힘든 말이다. 이것은 우발적인 성공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창조에 대한 무제약적인 일반적 주장에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져야 할 것이다. 창조적 추리란 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 오히려 창조적 직관이라는 용어가 더 어울릴 것이다. 창조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어진 영역에서 고려되고 평가 될 성질의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창조적이라고 믿어 왔던 많은 사실들이 추리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자유로운 추측들 중에서 반박되지 않고 살아 남아 유용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어떤 것이라면, 다시 말해 창조적 사고가 실은 시행착오의 연속선에 놓여 있는 것이라면, 수많은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컴퓨터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 전혀 부적절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연결 주의에서는 창조성을 전체론적인(holistic) 종합에 의한 창발적(emergent)인 결과로 이해한다. 그들은 이러한 창발적 속성이 신경망 모델에서는 시냅스 연결이 갖는 강도 또는 가중치(weight)로 구현 가능하다고 한다.

 

2. 자연 언어와 의미론의 문제

 

컴퓨터에 의한 자연 언어 처리는 컴퓨터 성능이 향상되고 현실적 요구가 가중되면서 인공지능 영역의 핵심적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에 의한 `문자 인식', `음성 식별',` 기계 번역' 등 세부 영역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컴퓨터에 의한 자연 언어 처리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드레퓌스(Dreyfus)와 써얼(Searle)로 대표되는 이 진영에서는 현행의 컴퓨터 이론 혹은 모델이 인간의 고유한 언어 현상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모델이 아니라 주장한다.

써얼(Searle)은 컴퓨터의 언어 이해가 불가능함을 `중국어 방(Chinese Room)의 논변'이라고 알려진 일종의 사고 실험을 통해 증명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은 추론 형식으로 간추려 제시한다.

 

1.두뇌는 마음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2.구문론이 의미론이기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3.컴퓨터 프로그램들은 그들의 형식적 혹은 구문론적인 구조에 의해 모두 정의된다.

4.마음은 심리적 내용을 갖는다. 특히 마음은 의미론적 마음을 갖는다.

 

그러므로,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도 그 자체로서는 어느 체계의 마음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요컨대, 프로그램은 마음이 아니며 프로그램만으로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그의 논변 밑바탕에는 좀처럼 반박하기 힘든 근본적인 가정이 깔려 있다. 그 가정이란 컴퓨터는 두뇌와 달리 지향성을 일으키는 인과적 힘을 지니지 못하므로 순수하게 형식적인 프로그램은 구문론적 운용은 가능하나 의미론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써얼(Searle)에 의하면, 의미 있는 기호들이란 지향성을 일으키는 진정한 인과적 힘을 가진 어떤 것 속에서만 구체화되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의미 있는 기호들을 지닌다. 그러나 컴퓨터는 그런 것들을 지닐 수 없다. 더 엄밀히 말해서 신경 단백질은 가능하지만 금속이나 실리콘 조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두뇌의 생화학적 속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앞에서 소개된 바 있는 `물리 기호 체계'(physical symbol system)를 거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유 기체로서의 컴퓨터 하드웨어는 본질적으로 심적 기능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지향성에 관한 써얼(Searle)의 가정 자체는 근거가 탄탄하지 않다. 그와는 달리 브렌타노(Brentano)는 지향성을 순수히 심리적인 것으로 보고 있고, 치좀(Chisholm)은 논리적 개념으로, 턴넷(Dennett)은 이것이 도구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지향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한갓 추측에 불과하고, 컴퓨터의 언어 이해 불가능성을 주장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전통적으로 구문론과 의미론은 구분되어 왔다. 그러나 하위 수준의 구문론으로부터 상위 수준의 의미론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둘을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공용현은 카드섹션이 진행되는 운동장을 `중국어 방'의 변형으로 제시한다. 또한 `중국어 방 논변'의 대응으로 `한국어 방 논변(Korean room argument)'이라고 호칭되는 사고 실험도 제시되었다.

아마도 써얼(Searle)은 이런 식의 언어 이해가 본질적인 언어 이해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 내에서의 처리 과정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어떤 것을 지시하고 또 인과적으로 산출한다는 점에서 이 과정을 전혀 의미론적인 과정이 아니라고 강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일상 언어의 이해가 인공 언어의 이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컴퓨터의 자연 언어 처리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드레퓌스는 "인간의 언어사용은 언제나 어떤 맥락이나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미 파악이나 이해는 이런 맥락이나 상황에 대한 전(前)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것의 형식화는 필경 무한 소급의 문제에 직면한다."라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일상 언어는 빈번히 애매하고 모호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고, 지시사(指示辭)를 이용한 다양한 지칭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글로 씌어진 문장의 구조가 비교적 완벽함에 비해서 대화는 생략 된 부분이 많고 단편적이다. 인간의 언어는 유동적인 일상적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일상 언어의 이런 특성들은 자연 언어를 처리하기 위한 프로그램 설계에 있어서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이 컴퓨터에 의한 자연 언어 이해를 원리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자연 언어 이해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수행하는 담화 상황(discourse situation)에 기계를 적응시켜 나갈 때 단계별로 필요로 하는 여러 다양한 의미론의 이론들이 어떻게 응용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모아질 수 있다. 일상 언어의 난점들은 비록 복잡하기는 해도 대화의 목적을 유도하는 특성, 대화의 현재 초점, 각 참석자의 현재의 신념에 대한 모형, 모든 참석자에 의해 지켜지는 대화 법칙을 고려함으로써 프로그램화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언어 이해가 흉내일 뿐 참된 이해가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컴퓨터의 언어 이해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이해의 기준(criteria)과 이해의 정도(degree)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요구된다. 먼저 사람을 포함한 시스템이 어떤 문장이나 발언을 이해했다고 판정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고려해 보자.

전통적으로 이해란 외적인 행위이기보다는 내적인 심리적 과정이나 사건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해에 관련된 외적 행위란 이해의 내용에 부합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관찰되는 외적 행위가 전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외적 행위로서 이해의 여부를 판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자기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보아 명백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제삼자의 경우는 이 견해가 유지되기 어렵다. 어느 단계에서부터 이해라고 부를 수 있는 징표가 나타나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발언이나 행위를 통해 이해 여부를 판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이해의 최종적 형태인 외적 행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해란 그것이 육체적 행위든 언어적 행위든 궁극적으로 여러 가능한 행위들 가운데서 최적의 것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컴퓨터의 이해와 인간의 이해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경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해의 여부는 입력된 기호들에 상응하여 일어나는 행위의 적합성의 정도 문제이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 볼 때, 자연 언어의 기계적 처리는 가능하며 의미론의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컴퓨터가 자연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자기 의식과 인식론의 문제

 

사람의 여러 가지 인지적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자기 의식'이라고 불려지는 상위 개념의 인지적 기능일 것이다. 인간의 경우 자기 의식의 존재와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데카르트(Descarte)가 그의 철학의 제일 원리로 삼았던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의 도출 과정에서 밝혔듯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기 의식은 서로 상충되는 여러 하위 인지 기능들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고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기존의 신념 체계를 포함한 내부의 인지 체계 전체에 대한 반성을 한다. 또한 최종 행위의 선택에도 결정적으로 관여하며 처리하기 곤란한 일에 직면했을 때 주어진 상황에 처해 있는 자신의 정체성(identity)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반성을 한다.

컴퓨터의 경우에도 자기 의식은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부분적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수많은 하위 단원(module)들로 구성된 시스템으로서의 컴퓨터가 어떤 일을 수행하다 보면 종종 하위 단원들간의 충돌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상위의 인지 기능을 통한 하향식 통제가 가능해야 될 것이고, 이것은 결국 시스템 전체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주어진 일에 대한 자신의 처리 능력을 인지하고 다른 시스템과의 협동을 통해 일을 분담함으로써 업무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의식이 효과적인 컴퓨터가 되기 위한 요건임을 인정한다 해도 과연 이런 기능이 기계에 프로그램으로 적절하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자기 의식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 자신에 대한 자기 반성(self-reflection)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자기 의식을 부정하는 논변들은 컴퓨터가 원리적으로 자기 반성의 기능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괴델(G del)은 "아무리 훌륭한 형식 체계라도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형식적 체계의 무모순성(일관성)은 그 형식 체계 내에서 증명될 수 없다."는 정리를 발표함으로써, 컴퓨터와 같은 형식 체계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먼저, 리삽(LISP)과 같은 회귀적(recursive) 특성을 지닌 프로그램 언어들은 프로그램 내의 어떤 함수(auction) 그 자체를 하나의 함수로 사용하여, 보편 튜링기계로서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악순환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LISP은 시스템 내의 어떤 함수에 관한 반성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LISP과 다른 프로그램들을 포함한 시스템 전체에 관한 반성은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사람의 일상적 자기 의식은 사고의 여러 양상들을 망라한 사고 전체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상위 수준의 것이다.

컴퓨터의 감독 프로그램(monitor)을 포함한 운영체제(OS: Operating System)가 자기 의식의 기능을 한다고 보는 주장은 상이한 수준의 프로그램 사이에서 모종의 반성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의 기능은 시스템 전체를 조정 관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지 내용 즉 표상 자체를 다루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운영체제에 의한 시스템의 반성은 역시 부분적인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우리가 일단 괴델의 정리를 참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컴퓨터의 자기 의식을 부정하는 논변이 훨씬 우세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관련된 논변들의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괴델의 정리가 부정적 논변들의 결정적 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논변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의 본성에 대한 근거 없는 선입관, 불공정한 적용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공용현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첫째, 괴델의 정리가 모든 인지 체계에 적용되어 사람과 컴퓨터가 공히 영향을 받는다면 사람의 자의식 역시 한계가 있을 것이고 따라서 컴퓨터의 자의식을 부정하는 논변은 그다지 매력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반면 괴델의 정리가 산술 체계와 같은 고정된 순수한 연역 체계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면, 사람이 순수한 연역 체계가 아닌 것처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도 순수한 연역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유독 컴퓨터만 괴델의 정리가 적용되어야 될 정당한 이유가 없다.

둘째, 괴델의 정리가 사람에게만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여 신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의 반성적 사고의 능력에 한계가 없는가? 사람이 `한 순간' 그의 인지 체계 전체에 대해 아무런 제약 없이 악순환이나 무한 소급의 역리에 빠지지 않고 사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만약 그러한 사고가 가능하다 해도 무시간적인 척도에서 `사고의 사고'와 `사고의 사고의 사고' 그리고 `사고의 사고의 사고'가 실상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 아닐까? 자의식에 대한 자의식이란 `고수준의 질서'라는 개념에서 파생된 투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이 과연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한 사람의 의식 속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다른 일들을 분리해 낼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자기 의식의 계산 가능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주제가 동시에 독립적으로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전후로 연결되어 진행된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람의 자기 의식이란 한 시점에서는 인지 체계의 부분에 대한 의식일 수밖에 없고, 극미의 시간 일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과거의 인지 상태 전체에 대한 반성적 의식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되면 자기 의식은 모종의 신비한 과정이 아니라 단기억(short-term memory)을 검색하는 상위 수준의 처리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처리 과정은 특정한 순간의 운영 체계를 포함한 시스템 전체를 검색할 수 있는 상위 단원(module)이 적절한 계기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면 컴퓨터 내에서 원리적으로 모의 가능하다. 따라서 자기 의식을 컴퓨터 내에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이다.

 

 

Ⅴ. 결 론

 

컴퓨터 과학과 신경 과학의 발달로 인지 과학이 탄생했으며 인지 과학은 분과 학문으로서의 성격이 아니라 다학문적으로 인간의 인지 기능 및 심리 현상을 해명하려는 과학적 연구 작업이다. 이러한 연구의 방법론으로 계산 주의와 연결 주의를 살펴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두 방법론의 원리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두 입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서로 같은 목표 하에 상호 보완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의 인지적 심적 과정을 정보 처리 과정으로 보는 진영에서 아직은 `형식 체계에서의 창조성의 문제', `자연 언어 이해에 있어서의 의미론의 문제', `자기 의식에 관련된 인식론의 문제' 등의 많은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구성의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배제시킬 만한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자연 지능의 인공적 모의는 원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데카르트는(Descaarte) 동물의 인지적 기능을 기계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인간에게 있어서만은 육체와 정신을 구분하여 각각 연장과 사유의 속성을 가진 것이라 했다. 곧이어, 사유하는 정신도 결국은 두뇌의 기능일 뿐이라는 기계론의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당시는 신경 과학이 발달되지 못했으므로 설득력 있는 주장일 수 없었다. 하지만 컴퓨터의 등장은 기계론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컴퓨터는 정보처리의 기능을 하는 기계였고 우리 인간의 사유 또한 정보처리의 과정으로 파악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도식적 추리를 생각 해 보자.

 

1. 인간은 동물이다. (다윈)

2. 동물은 기계이다. (데카르트)

그러므로, 인간은 기계이다. (라 메트리)

 

우리는 종의 기원 을 읽지 않아도 1의 가정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연장물(延長物)로서의 2의 가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결론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꺼려 할 것이다. 즉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도덕적이며 정신적 가치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마치 인간을 물질 세계와 독립하여 다른 차원에서 존재한다는 것으로 여긴다. 사실, 자유의지에 관한 철학적 논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해묵은 것이고 기계라고 해도 도덕적인 규율의 적용을 받게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정신적 가치는 무엇인가? 정신적 가치는 아마도 문화적 가치라 해야 될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컴퓨터 문화'나 `기계 문명'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문화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문화를 흡수할지도 모른다.

어찌됐던, 우리 인간은 지능으로 인해 오늘날의 모습을 가질 수 있었고, 만물의 영장이라 불릴 만큼의 우월감과 여타의 다른 생물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인간의 특유한 위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믿어 왔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음을 기계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아마도 심한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마치 다윈(Darwin)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 당시의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과 유사할 것이다. 동물에 대한 선입관과 마찬가지로 기계에 대한 선입관 또한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컴퓨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기계 개념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영리한 기계'(smart machine)이다.

현재 인간은 고유하고 특별한 자신들만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다른 존재와 나누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 시도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론이 등장하고 실제 적용이 현실화되어 우리의 눈앞에 인공지능의 기술을 응용한 제품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인지 과학의 탄생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물론 수억년 간의 진화로 얻게 된 지능을 겨우 몇 십년 간의 연구로 모의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오만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기계는 생각 할 수 없을 것이라 단정짓는 것이다. 우리도 어둠을 찾는 자존심을 버리고 빛을 향한 솔직함으로 인공지능의 연구를 보아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는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생각하는 기계를 실재로 만들려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지능을 기계로 모의하여 인지 활동과 기능에 대한 이해를 위한 모델로 삼으려는 것이다. 지능의 기계적 모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실재로 기계를 만드는 작업의 가능성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논자는 인간의 인지적 기능 전반에 대한 컴퓨터 모의가 원리적으로 가능하다는 인지 과학의 입장에 동의하고자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구현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볼 것이다.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 연구 결과로 생각하는 기계가 만들어진다 해도 과연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문제로 남는다. 어쩌면 정책적으로 인공지능 연구 자체를 봉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는 차츰 부각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수용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신중히 다루어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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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y.dreamwiz.com/reality/data/philosophy_information2_artificia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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