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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6/02/14 (10:57) from 129.206.196.86' of 129.206.196.86' Article Number :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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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의 인간지성론




인간지성론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김성우


존 로크(1632-1704)
경험론과 자유주의의 아버지로서 평생 독신으로 생활하였다.

지성의 기능은 순전히 사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인도하기 위해서 인간에 주어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인도함에 있어서 기대는 마지막 의지처는 그의 지성이다."



세속의 철학자
로크는 영국의 철학자로서 홉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의 철학자들과 갈릴레오, 하비, 보일, 뉴턴 등의 과학자들과 거의 동시대의 삶을 살았다. 그는 경건주의적 자영업을 하는 농촌의 중산층 집안 출신이다. 그 아버지는 서머셋 지방의 법률가로서 그 지방 치안판사의 비서이자 완고한 의회주의자이었고 어머니는 경건하고 인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는 챨스 1세가 통치하던 1632년에 서머셋에서 태어났다. 1649년 왕권주의를 지나치게 추구하던 챨스 1세가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군에 의해 처형되어 영국이 공화국으로 되던 직전인 1647년에 그는 청교도 혁명 전에 아버지의 상사였다가 국호의원이 된 파팸 의원의 지명을 받아 런던의 웨스트민스트 학교(당시 교장은 특이하게도 왕당파인 버스비였다)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받은 교육으로 말미암아서 로크는 훗날 뛰어난 철학자가 되기 위한 학문적 기초를 닦았고, 당대의 정치계에 발을 내딜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로크는 1652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가장 비중 있는 칼리지인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입학하였다. 그는 여기에서 어린 시절의 편협한 경건주의와 웨스트민스트 시절의 왕권주의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서 종교적 관용을 강렬하게 외치는 분위기를 만나게 된다. 그는 나중에 옥스퍼드에서 행해진 교육방식인 스콜라 학풍을 맹렬하게 비난하였지만, 이곳에서 논리학, 문법, 수사학, 그리스어와 도덕 철학, 계속해서 역사와 히브리어까지 폭넓게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티렐과 같이 평생을 함께할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고 많은 여인들에게 열렬한 연애의 쏟아 붓기도 했다. 1658년 그는 석사 학위을 수여받고 선입연구원으로 선출되었다. 이 때의 그는 훗날 관용과 저항권과 같은 자유주의 사상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과는 달리 국가의 권위를 우선하는 권위주의자였다. 실제로 그는 명예혁명 이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보수주의자의 기질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재산 관리를 꼼꼼히 하는 편이었고 그의 임대인들에게는 결코 관대한 편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는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의 기질을 지닌 듯하다. 그가 자유주의 사상가로 알려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단에 서지 않고 그 당시 영국의 정치가 소용돌이치는 한 가운데에 서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아주 특별한 만남들이 찾아왔기에 가능하였다.
첫 번째 만남은 새로운 철학과 과학 이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새로운 이론들은 지나치게 혁신적이서 기존의 강단에서는 교과목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데가르트의 방법적 회의주의는 그를 사로잡았지만, 이보다 더 영향력을 발휘한 철학은 가상디의 에피쿠로즈적인 원지론과 쾌락주의였다. 이러한 철학들의 영향을 받아서 로크는 실험적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당시에 대학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자연과학인 의학에 몰두하였다. 1650년대에 옥스퍼드에서 자연 일반의 경험 연구와 인간 육체의 경험 연구를 옹호하면서 실험적 자연과학을 연구하던 모임이 왕권주의가 회복된 후 챨스 2세의 인준을 받아서 왕립학회를 창립하였다. 이 학회의 지도적인 창설자였던 로버트 보일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로크는 자신의 인식론에 기초적 가설인 미립자 이론을 알게 된다. 또한 로크는 유행병과 천연두 연구의 권위자인 토마스 시든햄과 의학을 공동으로 연구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그는 1668년에 왕립협회 회원이 된다. 그리고 1675년에 가서 그는 의학사 학위를 수여받아 개업의가 되었다. 운명은 역설적으로 그가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의학으로 그를 세속 정치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1666년 여름 옥스퍼드에서 로크는 근처의 온천으로 놀러온 앤소니 애슐리 쿠퍼 경(샤프츠베리 백작 1세)과의 아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로크의 학술과 화술에 매료된 쿠퍼 경은 그를 개인 가정의로 초빙하였다. 서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던중에 1668년 쿠퍼 경의 간종양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여 그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로크는 대단한 신뢰를 얻게 되었다. 1672년 샤프츠베리 백작이 된 쿠퍼 경은 빠르게 정치적으로 승진하게 됨에 따라서 그의 조언자이자 비서인 로크도 현실 정치에 많이 관여하게 된다. 사프츠베리 백작은 종교적 관용을 허용하는 정치가 외국과의 무역 증진을 통한 경제 번영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정치가였기 때문에 로크는 초창기의 권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주의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또한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백작을 포함한 여러 지우들과의 토론 모임을 통해서 종교와 도덕의 인식론적인 문제와 맞딱트리게 되어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지성론》의 1차 초고로 알려진 초고 A를 1671년에 작성하게 되었다).
챨스 2세가 왕권적 절대주의를 표방하던 프랑스와 비밀리에 손잡고 카톨릭 신자인 제임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샤프츠베리는 이를 반대하는 '초록리본회'를 결성하였다. 이 모임이 나중'휘그당'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반명에 왕당파는 '토리당'으로 불리웠다. 토리당이 권력을 쥐고 있었으므로 휘그당은 감시받거나 쫓겨다녀야 했다. 휘그당의 지도자인 샤프츠베리의 혁명 계획이 실패하고 휘그당의 제임스 암살계획이 발각되어 휘그당원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자, 휘그당을 지지하던 로크도 1683년에 네달란드로 피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유럽 서적의 중심지인 네덜란드에서 《인간지성론》을 다듬을 수 있었고, 그곳의 관용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관용 편지》를 작성한다. 한편 영국에서 제임스 왕이 지나친 카톨릭 위주의 정책과 친프랑스적인 정책을 폄으로 말미암아 강력한 절대왕권의 대두를 두려워하는 휘그당과 토리당 모두를 적으로 만들었다. 이들이 1688년 프랑스 절재왕정의 강력한 맞수이자 챨스 1세의 손자이고, 제임스 왕의 맞딸로서 여전히 개신교 신자인 메리의 남편인 오렌지 공 윌리엄을 맞아들여 행한 개혁이 바로 '명예혁명'이었다. 다음 해 로크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57세가 될 때까지 출간한 저서가 하나도 없던 로크는 1689년에 《관용 편지》, 《정부론》, 《인간지성론》을 연달아 발간한다. 1704년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로크는 계속 좋은 글들(1693년의 《교육론》, 1695년에 익명으로 발간한 《기독교의 합당성》이 대표적인 작품)을 썼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

근대 과학은 수학을 강조한 학자적 전통과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장인 전통이 결합하여 생겨났다. 근대 과학의 정초와 관련해서 데카르트가 전자를 대표하는 철학적 작업을 했다면 로크가 후자와 관련한 철학적 작업을 했다. 데카르트가 수학에 정통한 반면, 영국의 왕립 과학 협회원들과 친분을 맺고 그 자신이 의사이기도 한 로크는 실험 과학에 정통하였다. 로크의 《지성론》은 윤리학과 계시 종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일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부상하고 있던 실험 과학을 인식론적으로 (겸손한 의미에서) 근거 설정하는 기획이기도 하다. 로크의 《지성론》이 위에서 언급한 점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두 가지 기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두 가지 기획이란 개연성의 인식론과 확실성의 인식론이다. 자연을 인식의 영역으로 보고 도덕을 요청의 영역으로 보는 칸트 이후의 철학적 전통과는 달리 로크는 자연 과학은 개연성의 인식론과, 윤리학은 확실성의 인식론과 연결시킨다.
▣ 내용의 주제별 분석


1. 학문의 분류

로크는 《지성론》의 4권 맨 마지막 장인 21장의 제목을 '학문[근대 과학]의 구분에 관하여'(Of the Division of the Sciences)라고 달았다. 그는 인간 지성의 범위에 들어오는 것을 세 가지로 본다. 첫째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들의 본성과 그것들의 관계 그리고 그것들의 작용 방식이며 둘째는 합리적이고 자발적인 행위자로서 인간 스스로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이들 양자에 대한 지식이 획득되고 전달되는 방식과 방법들이다. 학문도 이 인식 대상의 종류에 따라서 3가지로 구분된다. 자연 철학, 실천 철학, 기호학이 그것이다. 로크는 이러한 학문의 구분을 인간 지성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장 일반적인 구분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드는 이유는 인간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1. 사물 자체를 진리의 발견을 위해서 성찰하고, 2. 인간 자신의 힘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인 인간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목적을 획득하기 위해서 성찰하고, 3. 위의 어는 경우이든 거기에서 마음이 사용하는 기호와 기호들의 올바른 질서를 더 분명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성찰한다는 점이다. 사물, 행위, 기호는 지적 세계의 삼대영역으로 간주된다.
1. 자연학(physica) 또는 자연 철학(natural philosophy)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그것들의 구성, 속성, 작용들에 대한 지식이다. 이때 사물은 물질과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가리킨다. 이런 분야에 속하는 것은, 그것이 신이든 천사든, 정신이든, 몸이든, 수나 도형 같은 그것들의 어떤 성질(affection)이든 간에, 인간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학문의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bare) 사변적인 진리이다. 하지만 자연은 신의 지혜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 철학은 과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의 형이상학'으로서 '자연의 과학을 설명하기 위한 맥락을 제공한다.' 이러한 로크의 자연 철학관은 자연 실체에 대한 과학(scientia)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회의론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연에 관한 모든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회의론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당시 형성중이던 실험 과학에 기초를 부여하기 위해서 《지성론》에서 개연성의 인식론을 기획한다.
2. 실천철학(practica)은 좋고 유용한 것을 획득하기 위하여 인간 자신의 능력과 행동을 바르게 적용하는 기술이다. 이런 명칭에 속하는 것 중 가장 비중 있는 것을 로크는 윤리학(ethics)이라고 생각한다. 윤리학이란 행복(로크에게는 최고 목적)으로 인도하는 인간 행위의 규칙 및 척도와 이것들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을 찾는 학문이다. 따라서 이 학문의 목표는 진리에 대한 단순한 사변이나 지식이 아니라 옮음과 이것에 도달하기 위한 행동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로크의 윤리학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사람들이 참다운 원칙으로부터 연역해 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하는 규칙이고, 다른 하나는 이 원칙을 실천하려는 참다운 동기와 준수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윤리학을 로크는 도덕성(행복을 얻기 위한 인간 행동의 규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도덕성 또는 도덕 과학은 수학과 마찬가지로 증명 과학에 속한다. 로크는 《지성론》에서 확실성의 인식론을 통해서 이 증명 윤리학을 자신의 윤리학적 기획으로 설정한다.
3. 기호학(semeiotike, the doctrine of signs)은 통상 논리학(logike. logic)이라고 불린다. 이 학문의 일은 사물을 이해하고 다른 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마음이 사용하는 기호(관념과 낱말, 즉 사물의 기호[표상]가 관념이라면 관념의 기호[표상]가 낱말)의 본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학문에는 기호의 오용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이루어지는 '비판'도 포함된다.
이러한 로크의 학문 분류에 따른다면 《지성론》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차원은 근대 과학적 인식론이다. 로크는 뉴턴이나 보일 그리고 호이겐스 같은 과학자들이 더 효과적으로 새로이 실험 과학을 건설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땅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underlabourer)의 역할을 자청한다. 로크는 데카르트보다 훨씬 겸손한 건축적 은유를 사용한다. 여기에는 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상이한 견해가 깔려 있다. 데카르트는 형이상학이 개별 과학에 대한 선험적 기초를 제공하고 인식론이 올바른 과학적 방법을 규정한다고 보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로크는 과학을 행하는 당사자 자신들에게 더 많은 자율과 권위를 부여하고 철학이 과학에 영향을 끼치는 한에서 철학의 과제는 충분한 과학적 연구를 행하지 않고서 지식을 참칭하는 사람들의 과장되고 무의미한 주장을 발가벗기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겸손한 로크의 생각이 근대 정신과 과학의 주류가 된다. 이런 생각이 구체화 된 것이 바로 《지성론》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이 지금까지 《지성론》을 해석해온 주류를 이루고 있다.
둘째 차원이 바로 윤리(증명 윤리학의 기획)와 종교적 차원(이성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통한 광신주의 비판)이다. 이 차원은 《지성론》의 2권보다는 4권을 중심으로 읽으면 분명히 드러난다. 로크가 《지성론》의 탐구를 하도록 그에게 동기를 부여한 관심사는 어느 정도까지 이성과 경험이 도덕적 그리고 종교적 진리를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론적 해석이 오랫동안 로크의 윤리적 관심과 이 관심의 중심적 위치를 망각하게 했다. 도덕 철학이 《지성론》의 역사기술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현상은 최근에서야 비로소 출현한다.
셋째 차원은 비록 《지성론》의 중심부분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지성론》3권에서 다루어진 언어철학 또는 기호학이다. 3권 전체가 언어와 기호 문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차원도 분명히 존재한다.


2. 본유관념 비판

로크의 이성적 신앙의 출발점과 기초가 되는 것이 본유관념 비판이다. 본유관념 비판은 《지성론》 1권에서 3장으로 구분되어 다루어진다. 이 논의가 그 책의 맨 처음에 다루어지는 것이 매우 이 책의 성격(특히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 책의 2, 3, 4권의 논의는 바로 이 1권의 논의를 기초로 해서 이루어진다. 본유관념 비판을 하기 위해서 단순 관념의 기원에 관한 경험주의 분석이 필요했고 또한 본유관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 존재가 증명지의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영원하고 보편적인 도덕 척도로서의 자연법에 대한 자연적 인식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와 연관해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지성론》은 로크와 그 친구들이 도덕성과 계시 종교의 문제를 논의할 때 생긴 난점을 해소하기 위한 인식 비판으로서 의도된 저작이었다는 사실이다.
《지성론》의 초고로서 1671년에 쓰여진 초고 A는 이러한 논의가 행해진 직후에 쓰여졌다. 이 초고 A에 대한 불만을 느낀 로크는 그 해에 다시 더 산뜻하고 질서 있게 그의 생각을 정리한다. 이 글이 바로 초고 B이다. 그러나 이 글도 완성되지 못했다. 초고 A와 B 그리고 《지성론》을 비교해 본다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난다. 초고 A는 로크의 최초의 거친 생각을 담고 있다. 초고 A가 인간 지식의 범위라는 중심 문제를 건드리는 반면에 초고 B는 이 지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선행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초고 A는 《지성론》의 4권에 해당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고, 초고 B는 주로 《지성론》의 2권의 문제들을 소박하게 다루면서 1권의 중심 문제인 본유관념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초고 B에서 약간 다루어진 본유관념 비판에서는 《지성론》과는 달리 실천적 본유 원리를 먼저 다루고 사변적 본유관념은 충분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1685년이라고 날짜가 박혀 있는 글은 《지성론》의 1권과 2권의 초고이다. 이는 초고 C라고 불린다. 그런데 1671년의 초고 B나 1685년의 초고 C나 1690년의 《지성론》초판이나, 이 세 글에서 다루어진 본유관념에 대한 세 장은 그 재료(내용)라는 측면에서 주목할만한 변화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로크는 1671년이나 1690년이나 거의 같은 생각을 했음이 드러난다. 단지 실천적인 원리에서 이론적인 원리로 이행해간 초고 B의 순서가 초고 C에서는 뒤바뀌고 있다.
이런 논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째로 로크의 인식비판의 중심문제가 계시 종교와 도덕성 등 실천적인 차원과 관련한 인간의 지식의 범위(4권)이고, 둘째로 이 문제를 다루는 선행 문제로 본유관념 비판(1권)과 이에 대한 인식론적 근거로서 단순 관념 기원에 관한 경험주의 분석(2권)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유관념 비판에서도 처음에는 이론적 원리보다는 실천적 원리들이 먼저 고려되었다는 것은 그 비판이 실천적인 문제들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나중에 《지성론》의 초판에 추가된 인격의 동일성이나 광신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미 밝힌 대로 로크 시대의 종교적인 논쟁과 연관이 있다. 이러한 논의들도 본유관념 비판이 야기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로크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본유관념 비판은 이론적인 문제이기에 앞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3. 개연성의 인식론

로크의 인식론은 전통적이 스콜라철학의 삼단논법을 비판하면서 데카르트의 근대인의 철학에 자극 받고 베이컨 우파인 왕실과학협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역사적이고 평이한 방법"에 따라 진행된다. 그리고 가상디의 경험주의에 영향을 받아서 《지성론》2권에서 관념 기원에 관한 경험주의적 분석을 시도한다. 하지만 4권은 데카르트의 직관지를 인식의 최고 모델로 삼고 감각지를 제일 낮은 단계에 배속시킨다는 점에서 가상디의 경험주의와 구별된다. 가상디의 경험주의는 지식 경험주의이고 로크의 경험주의는 개념 경험주의이다.
지식 경험주의는 모든 명제적 지식이 경험적이어서 궁극적으로 감각지에 근거를 둔다고 주장하고 개념 경험주의는 지식이 아니라 이 지식의 재료가 되는 관념이 경험으로부터 파생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념 경험주의는 지식 경험주의보다 훨씬 약한 경험주의이고 따라서 귀납적 일반화 외에도 보편이나 추상 관념들의 형성을 인정한다. 로크도 《자연법론》을 쓴 초기 시절만 해도 수학적 지식과 공통 관념이나 공리도 감각에 의해서 이성에 주어진 것이라는 주장하는 강한 의미의 경험주의자였지만 1671년의 《지성론 초고 A》에서 이러한 주장을 보편적 지식의 개념을 가설적이고 결과적으로 선험적이라고 보는 주장으로 대체한다. 로크는 지식의 재료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가상디적인 신에피쿠로스주의자이고 그 재료로 만들어진 지식의 모델과 관련해서는 데카르트주의자이다. 로크의 인식론의 이중성(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로크는 도덕성의 인식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는다. 그는 특이하게도 자연과학적 인식에 대해서는 회의한다. 이는 그가 스콜라철학의 실체관에 기반을 둔 국교회의 독단론과 비관용 정책 그리고 양심과 직접적 계시를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확신하는 청교도적인 광신주의를 비판하고자 하면서도 이들이 일으키는 대립과 갈등이라는 문화적 위기를 확고한 도덕적 규범의 기초 위에서 극복하고자 의도하였기 때문이다. 확실성의 인식론은 다음 장에서 해명하기로 하고 우선 자연과학과 관용이론(독사적 실천의 한 예)의 기반이 되는 개연성의 인식론을 살펴보자.
로크는 가상디의 회의론의 영향을 받아서 외부 대상에 대한 직접적 인식에 대해서는 회의한다. 그런데 《초고 A》에서 지식은 실재하는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관념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는 새로운 지식관의 씨앗이 출현하기 시작하지만 분명히 정식화되지는 못한다. 1690년에 출판된《지성론》4권에서 비로소 지식은 관념들 사이의 일치와 불일치의 관계에 대한 지각이라는 새로운 지식관이 공식적으로 등장한다. 이로써 인간 지식의 한계는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선명하고 분명한 관념이 없는 경우에는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관념을 가지는 범위보다 더 나아가서 지식을 가질 수는 없다." 전지한 신과 비교해볼 때 불완전한 인간은 그 조건에 의해서 지식의 범위는 매우 협소하고 무지의 폭은 훨씬 큰 존재자이다. 예컨대, 인간은 "부피, 모양, 크기에 대해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는 물체 일반의 제일 성질들에 관해서 관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물체들의 더 큰 부분들의 특정한 부피와 모양과 운동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작동의 여러 힘과 효능과 방식에 대해서 무지하다.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우리가 매일 보는 결과가 산출된다. 이런 적용들은 어떤 것들에 있어서는 너무나 멀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것들에 있어서는 너무나 미세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감추어져 있다." 물체들의 이러한 특성이 인간의 지식에 제약을 가하기 때문에 "거대한 무지의 심연"이 드러난다. 인간의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의 것들에 대해서 인간은 추측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것들에 대해서 선명하고 분명한 관념들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로크는 보일의 미립자 이론을 도입한다. 미립자 이론에 따르면 물체는 이를 구성하고 있는 감각할 수 없는 미립자 또는 원자로 되어 있다. 로크는 보일의 미립자 이론을 받아들여서 지각의 인과작용에 대한 해석과 물질의 본성에 관한 해석에 이 이론을 적용하였다. 보일은 연장되고 나누어지고 침투할 수 없는 실체가 모든 물체에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물질과 부분들로 나누어지고 물질을 언급한다. 그런데 그 물질의 각각의 부분들이 그 자신의 크기와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부분들은 너무 작아서 단독으로는 감각될 수는 없다. 그는 크기와 모양을 물체의 제일 촉발이라고 말하고 이것들을, 자신들 때문에 물체에 속하는 덜 단순한 성질들(색깔, 맛, 냄새)과 구별한다.
이러한 제일 성질과 제이 성질의 구분이 보일에게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연적 현상에 대한 역학적 설명들을 허락하는 가설을 제기하고 역학적 설명들은 모양과 크기와 운동/정지의 관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보일은 스콜라철학자와 연금술사의 실재적이고 신비스런 성질들과 실체적 형상의 관점에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그는 다양한 현상을 가능한 한 소수의 기본 개념들로 설명하고 이 개념들을 감각경험으로부터 직접 도출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러한 보일의 제일 성질과 제이 성질의 구분과 미립자 가설에 기반을 둔 자연 과학의 경험주의를 로크는 그대로 수용한다. 로크는 《자연 철학의 요소들》에서 보일에서 영향 받은 (물론 가상디의 원자론의 영향을 받은) 주장을 한다. "이런 작고 감각할 수 없는 미립자의 모양과 부피와 운동에 의해서 모든 물체의 현상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기계론(mechanism)이라고 명명된다.
인간은 물체들의 이러한 미세한 입자들의 기계론적 촉발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의 예민한 감각기관을 결여하고 있으므로 그 물체들이 속성이나 작동방식의 무지에 대해서도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을 언젠가 시험들을 통해서 알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로크는 물체에 대한 지식의 문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인간의 인식 기능의 유한성과 물체에 관한 미립자 가설이 "자연 물체에 관한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우리의 확실한 지식을 방해한다. 그리고 우리의 이성이 우리를 이 점과 관련해서는 특정한 사실의 문제를 넘어서 거의 더 멀리 데려가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학은 수학이나 윤리학과 같은 (증명) 과학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자연적인 사물에서 인간의 노력이 실험 철학을 진전시킬지라도 과학적인 것은 여전히 우리의 손밖에 있다." 자연 물체와 관련해서는 특히 그 미립자들의 제일 성질에 대하여서는 인간이 완전하고 충분한 관념을 결여하기 때문에 과학적 지식이나 확실성 또는 증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연성만이 가능하다.


4. 확실성의 인식론

로크가 《지성론》의 2권에서 경험주의 원칙을 주장한다. 그는 마음이 어떤 글자, 즉 관념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라고 가정한다. 로크의 이러한 경험주의 원칙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재료인 관념의 기원과 관련해서 주장된 것이다. 그런데 기원의 문제와 정당성의 문제는 (칸트가 사실의 문제와 권리의 문제를 구분했던 것처럼) 구분되어야 한다. 로크는 지식 재료의 발생을 경험으로부터 기술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지식의 재료인 관념(《지성론》2권의 중심 주제)에 대해서는 경험론적인 태도(관념의 기원에 관한 경험론적 분석)를 보여주고 이와는 달리 관념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지식(《지성론》4권의 중심 주제)에 대해서는 합리론적인 태도(지식의 수학적 모델)를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러한 해석의 어려움이 생긴다.
우선 로크가 지식을 어떻게 정의하고 그 단계를 구분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식은 오직 "관념들의 연관과 일치 또는 불일치와 모순에 대한 지각"일 뿐이다. 이러한 일치를 더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로크는 이 일치를 네 가지 종류로 환원한다. 1. 동일성 또는 상이성, 2. 관계, 3. 공존 또는 필연적 연관, 4. 실재적 존재(real existence). 이 네 가지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의 전부를 포괄한다. 그는 동일성과 공존을 "긍정과 부정의 근거"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이는 이 두 가지가 동일성과 필연성을 강조하는 논리적 차원에 속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로크가 이것들에 관해서 드는 예를 살펴보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있다." "인간은 인간이다." "흰 것은 무엇이든 희다."지금 열거한 명제들은 동일성(A=A, A≠­A)에 기반을 둔 자명한 명제(tautology)들이다. 공존 즉 "두 관념 중 하나가 가정되는 그 주체 속에 다른 하나도 또한 필연적으로 있어야만 한다는 그 관념들 사이의 필연적인 연관"에 관한 예로 "두 물체가 같은 장소에 있을 수는 없다"를 로크는 들고 있다.
더군다나 동일성과 필연적 공존을 포함하는 관계 일반이 경험적 기원으로부터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논의를 로크가 하는 이유는 혼합 양태와 관계가 경험적인 서술(감성의 수동성)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혼합 양태와 관계는 관념들의 조합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생겨날 때 인간 지성의 능동적인 작업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또한 관계에 대한 예로 수학적 명제(전체와 부분의 관계, 전체는 동일한 단위들의 일정한 합)를 로크는 든다. "같은 것에서 같은 것을 취하면 남아 있는 것도 같을 것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과 같다." "한 손의 다섯 손가락에서 두 개를 취하고 다른 손의 다섯 손가락에서도 두 개를 취한다면 양손에 남아 있는 손가락의 수는 같을 것이다." 지금까지 동일성과 공존과 관계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로크가 지식의 모델을 논리학이나 수학 같은 명제(선험적 명제나 분석 명제)에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로크는 지식을 정의할 때 '연관'이나 '모순' 같은 논리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로크의 지식에 대한 논의는 합리론적인 색채가 강한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크의 인식론에 있어서 관념 발생에 대한 심리학적 기술(경험론적 설명)과 지식에 대한 합리론적 모델은 서로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 로크가 직면한 이유는 그가 본유관념을 비판하기 위해서 경험주의 원칙을 내세웠지만 수학과 논리학의 확실성에 기반을 둔 지식관을 상당히 존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로크가 수학적-논리적 필연성을 경험주의 원칙(심리학적 기술)으로는 정당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이유는 로크가 이 수학적-논리적 필연성을 새로운 윤리 규범을 정초하고 이 규범의 구속력(obligation)을 입증하기 위한 모델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로크는 지식의 재료인 관념은 경험주의의 관점에서 다루고 그 재료로 만들어진 지식은 합리주의의 관점의 대표 모델인 증명의 관점에서 다룬다.
지식은 개연적인 지식(로크의 생각에 의하면 신념)과 엄밀한 의미에서 확실한 지식으로 나누어진다. 자연과학과 정치기술과 의학은 개연성의 영역의 속하고 수학과 윤리학 (그리고 규범적 정치철학)은 확실성의 영역에 속한다. 여기서 로크의 윤리학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윤리학이 수학과 같은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은 근대 초기의 합리론자들의 전형적인 이상이다. 로크는 윤리학과 관련해서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다를 바가 없는 방법적 이상에 고착되어 있었다. 이러한 방법적 이상(윤리학의 기하학화)이 《지성론》에서 증명 윤리학의 기획으로 등장한다.


5. 이성과 신앙

로크의 철학에서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탐구하기 앞서 우선 이성이라는 말이 복잡하기 때문에 이성의 여러 용법을 살펴본다. 로크가 이성을 체계적으로 다룬 부분은 《지성론》의 4권 17장인 '이성에 관하여'이다. 우선 1절에서 로크는 이성이라는 말이 영어에서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첫 번째로 이성은 참되고 선명한 원리를 가리킨다. 두 번째로 이성은 이러한 원리들로부터의 선명하고 공정한 연역(적 추론작용)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 이성은 목적인을 뜻한다. 그런데 로크는 이 세 가지 통상적인 용법들 외에도 이성의 다른 의미를 언급한다. 네 번째로 이성은 인간의 한 기능을 나타낸다. 이 기능을 통해서 인간은 동물로부터 구별되고 동물을 능가하게 된다. 로크에게서 기능으로 간주되는 이성의 큰 용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변적인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적인 용도이다. "지성적 기능은 순전히 사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인도하기 위해서 인간에 주어진 것"이다. 사변적인 용도는 인간의 지식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고, 실천적인 용도는 인간의 동의를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성은 지식과 의견의 양 분야에서 다 소용되는 것이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우리와는 반대로 기독교의 신이 이성의 근거이자 척도였다. 그 당시에 문제가 된 것은 이 기독교적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였다. 그런데 광신주의로 인한 이성의 포기는 분열과 싸움만을 낳았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우선 이 두 영역을 가르는 척도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는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다. 그가 준비한 길은 이성적 신앙이다.
로크가 이성적 신앙으로 가는 길을 걷기 위해서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을 가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당시의 문화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로크는 종교적 광신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로크는 《지성론》4판(1700년)에서 새로이 4권의 19장으로 '광신주의에 관하여'를 추가한다. 이 장은 전체 《지성론》을 해석하고 로크의 관용의 정치와 신념의 윤리와 본유관념설 비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로크는 우선 동의의 척도를 세운다. 그 척도란 "증거들(proofs)보다 더 큰 확신으로는 어떤 명제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척도를 넘어서는 자는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추구하는 자가 될 수 없다. 그는 사심이 있는 자에 불과하다. 그는 진리에 대한 사랑이 아닌 어떤 다른 감정에 의해서 촉발되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판단력의 편견과 타락이 발생한다. 이 편견에 수반되는 현상의 예로 "타인에게 명령하는 권위와 타인의 의견을 규정하는 월권을 가정하는 것"을 들고 있다. 이러한 권위와 월권은 이성의 기능에 폭력을 가하고 정신에 대해 독재를 행하고 진리에게 속하는 특권을 찬탈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행태를 로크는 광신주의라고 명명한다. 광신주의는 "이성과 계시 양자 모두를 앗아가고 그 자리를 인간의 뇌에서 생겨난 근거 없는 환상으로 대체하고 그 환상들이 의견과 행동 모두의 기초라고 간주한다."
그는 이러한 광신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성과 계시를 변증법적으로 규정한다. 이성은 자연 계시이고 계시는 확장된 자연 이성이다. 이성과 계시의 변증법적인 통일에서 이성이 계시의 진리를 확증하므로 이성이 중심 역할을 한다. 이처럼 주의 촛불(이성)과 계시를 이성 중심으로 연관시킴으로써 로크는 이성적 신앙을 주장할 근거를 마련한다. 계시는 이성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계시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성을 멀리하면 이성과 계시라는 두 불을 끄는 셈이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광신주의가 발생하는 까닭은 계시는 쉬운 길이고 이성은 어려운 길이라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확신의 굳건함이 믿음의 원인이 되고 게다가 이것이 옳다는 신념이 진리의 논증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렵고 험난한 길로 간주되는 이성의 테스트가 필요하다. 로크는 기만과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광신주의자가 주장하는 내적 빛을 테스트해야 주장한다. 이는 그 광신주의자가 이성을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로크가 이성을 계시 대신에 의견과 행위의 새로운 척도로 삼았다고 해서 그가 계시를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다. 이성화된 계시는 여전히 계시이다. 이는 다만 이성의 원칙과 신의 말씀(성경)에 일치하는가의 테스트를 거친 계시이다. 여전히 이성 외에도 성경(원래적 계시)은 여전히 규범의 척도로 자리잡고 있다. 로크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는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공통된 표준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문제는 이성을 초월하지만 이성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 이성이 자신에게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에 동의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성의 분명하고 선명한 명령(완전한 관념과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확실한 증거)에 반대하는 권위는 신앙의 문제라는 이름으로 사칭되어도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성이 불완전한 관념을 가지고 있을 뿐 어떠한 지식도 가질 수 없는 영역이다. 이 영역은 인간의 자연적 기능이 발견할 수 없으므로 이성을 넘어서 있는 것으로 '신앙의 고유한 문제'가 된다. 이 신앙의 문제는 이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성은 이런 영역에 관해서는 확실성을 갖지 못하고 단지 개연성에 만족해야 하므로 오류불가능성을 확신하는 주장에 대해서 동의를 포기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두 개의 영역이 구분된다.
"첫째로 그 진리를 우리의 정신이 자신의 자연적인 기능과 개념을 사용해서 판단할 수 없는 명제가 계시된다면 그것은 순전히 신앙의 문제이고 이성을 초월한다. 둘째로 그 정신이 자신의 자연적인 기능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획득된 관념으로부터 규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모든 명제는 이성의 문제이다." 이런 식으로 이성의 문제와 신앙의 문제가 구분된다. 이성은 신앙의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명제에 대하여 개연적인 근거만을 주장하게 되므로 확실한 계시가 이 개연성에 반대하도록 인간에게 명할 수 있다. 이성이 못 미치는 경우에는 신앙이 결정을 내린다. 이때 신앙의 지배는 이성에 폭력이나 방해를 가해서는 안 되고, 모든 지식의 영원한 원천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진리의 발견에 의해서 손상을 입거나 훼방 받지 않고 도리어 도움을 받고 개선되는 한까지 그 신앙의 지배는 지속될 수 있다. 즉 신적 계시에 이성이 복종해야 한다. 이러한 복종이 지식의 이정표를 모두 빼앗는 것도 아니고 이성의 기초를 허무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식의 영역 구분은 종교의 문제와 관련해서 이성에게 여지를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다. 이는 앞서 지적한 계시의 쉬운 길이 인간의 열정과 어리석음과 결합해서 광신주의를 낳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


로크는 말년에 발간한 《지성론》과 《정부론》으로 인해서 유명해진다. 통상적인 견해에 의하면 앞의 책은 베이컨이 제기하고 흄이 완성한 경험주의 인식론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다룬 책이고 뒤의 책은 영국의 명예혁명과 관련해서 휘그적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주창하고 정당화한 책이다. 그런데 그의 자유주의 정치철학과 경험주의 인식론이 대개는 별도로 연구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정치철학 저작에 나타난 자연법 사상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식론적 저술에 나타난 본유관념 비판 및 관념 기원의 경험적 기초론이 서로 잘 들어맞지 않은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로크라는 저자의 통일적 기능은 존재하지 않고 각각의 저서를 각기 다른 저자가 쓴 것이라는 해석을 낳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된다. 과연 로크는 체계적 사유 능력이 부족한 철학자인가?
로크 철학에 대한 지도 그리기, 특히 《지성론》과 《정부론》의 관계에 대한 그림 그리기를 수행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로 작용하는 작품이 바로 《지성론》의 예비적 초고 중의 일부인[지식 B]라고 불려지는 글이다. 이 단편에 의하면 지식은 확실성의 지식과 개연성의 지식으로 구분된다. 확실성에 속하는 것은 참된 관념에 기초한 수학과 도덕성(윤리학)이고 개연성에 속하는 것은 역사와 사실의 영역에 있는 자연학과 정치 기술이다.
로크에 있어서 정치학은 "사회의 기원과 정치 권력의 발생과 범위"에 관한 기하학적인 정초라는 규범적 정치철학과 "사회 속에서 인간을 통치하는 기술"로서의 정치 기술로 나누어진다. 로크는 자신의 저작인 《정부론》을 전자인 규범 정치철학에 배속시키다. 다시 말하면 《정부론》은 역사와 사실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 기술이 아니라 《지성론》의 증명 윤리학적 기획에 바탕을 정치 윤리학이다. 이렇게 되면 "《지성론》 속의 증명적 도덕 지식의 가능성에 대한 로크의 인식론적 옹호가 《정부론》에서 자연법에 대한 그의 의존과 명백한 갈등 속에 놓이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서 《지성론》 자체에서 정치학에 대한 명확한 논의는 없지만 정치적 차원이 존재한다고 보는 해석도 가능하게 된다. 실제로 《지성론》에는 확실성의 인식론뿐만 아니라 개연성의 인식론도 존재하므로 전자에 기초한 규범 정치 철학의 차원뿐만 아니라 후자에 기초를 둔 신념의 정치학적 차원도 존재한다.
이 개연성의 인식론과 신념의 정치학(윤리학)이 (광신주의와 더불어) 그 당시 풍미하던 회의론에 대한 치료약이다. 회의론과 이것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로크가 《지성론》을 지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로크는 《지성론》 속에서 개연성의 인식론을 통해 (이미 그 시대의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무력한 상태에 빠져 있던) 강단 철학의 독단론과 그 당시 유행하던 회의론을 넘어서고자 했다. 이 개연성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신념의 윤리학'이 등장한다. 이 신념의 윤리학은 근대의 여명 무렵에 유럽 문명이 그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전통이 무너지고 여러 견해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위기의 시대를 해결하기 처방으로 기획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찰을 따르면 《정부론》과 연관되는 것은 《지성론》의 증명 윤리학에 기초한 규범 정치 철학적 차원이다. 《지성론》은 보통 자연법 사상에 대한 기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증명 윤리학적 기획에 기초한 자연법의 기하학적 구상을 수행한다. 행복으로 이끄는 행위 규칙(자연법 또는 최고의 도덕규범)을 수학적 공리-연역적 체계처럼 필연적인 연관성에 의해 체계화하려는 시도는 근대 합리적인 자연법론자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정부론》의 기초적 전제가 바로 자연법이다. 그러므로 자연법(최고의 도덕 규범)에 관한 저작은 규범 정치학의 토대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정부론》의 자연법론과 《지성론》의 인식론이 갈등을 일으킨다고 보는 해석은 로크에 대한 부정확한 독해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로크의 초기 작품인 《자연법론》은 규범 정치 철학의 기초인 자연법의 인식을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므로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정치적 성격이 드러난다. 도덕 규범 인식(《자연법론》)과 이 인식에 대한 인식론적 정초(《지성론》)와 이 규범의 제도화(《정부론》)는 서로 분리하여 고려할 수는 없다.
《지성론》의 증명 윤리학적 기획을 염두에 둘 때 《정부론》의 기초가 되는 자연법론이 《지성론》과 모순되지 않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정부론》의 자연법 논의는 《지성론》의 개연성의 인식론과 일치하지 않지만 확실성의 인식론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증명 윤리학적 기획이 《지성론》과 《정부론》을 연결하는 매개 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획이 실패했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보면 두 책이 서로 불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지성론》의 윤리학적 기획이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증명 윤리학이 성공했느냐 다시 말하면 자연법의 인식론적 정당화 작업을 제대로 수행했는가의 문제는 두 책을 정합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또 《지성론》과 《관용 편지》의 관계는 개연성의 인식론과 그에 기반을 둔 정치 기술로서의 종교적 관용의 일관성 속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지성론》의 본유관념 비판과 개연성에 관한 논의가 《관용 편지》의 인식론적인 기초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지성론》을 중심으로 해서 《정부론》과 《관용 편지》가 각각 그의 철학의 전체 구조 속에 자리를 갖게 된다. 게다가 그의 마지막 주저인 《기독교의 합당성》도 《지성론》의 인식론에 담긴 종교적 관점을 제시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유일하게 그의 실명으로 출판된 《지성론》이 그가 익명으로 출판한, 세 편의 걸작인 《정부론》, 《관용 편지》, 《기독교의 합당성》에 대한 인식론적 지도 그리기를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크는 비일관적인 사상가가 아니라 자신의 체계를 완성하지 못했을 뿐이다. 체계의 불완정성이 비일관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참고 문헌과 유용한 사이트

Aaron, R. I. 《John Locke》 (Oxford University Press, 1955).
Ashcraft, R. ed., 《John Locke Critical Assessments》 (Routledge, London and New York, 1991).
Ayers, Michael. 《Locke: Epistemology and Ontology》, vol. 1 (Routledge, 1991).
Chappell, Vere. ed., 《Locke》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Chappell, Ver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Locke》 (Cambridge Universities Press, 1994).
Colman, J. 《John Locke`s Moral Philosophy》 (Edinburgh University press, 1983).
Gibson, James. 《Locke's Theory of Knowledge and Its Historical Relati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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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kie, J. L. 《Problems From Locke》 (Oxford Clarendon Press,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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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uls, Peter A. 《The Imposition of Method: A study of Descartes and Locke》 (Oxford Clarendon Press, 1980).
Tipton, I. C. ed., 《Locke on Human Understanding》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Wolterstorff, Nicholas. 《John Locke and the Ethics of Belief》 (Cambridge Universities Press, 1996).
Woolhouse, R. S. 《The Empiricists》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Yolton, John W. 《John Locke and the Way of Ideas》 (Cambridge University Press,1956).
Yolton, John W. 《Locke and the Compass of Human Understanding》 (Th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0).
우도 틸, 《로크》, 이남석 역, 한길사,1998.
김성우, 〈로크의 과학적 인식론과 도덕적 인식론에 관한 연구〉,건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0.


▣ 글쓴이 북 코스모스 편집진

김성우: 건국대학교 철학박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동의과학연구소 연구원.
E-mail주소: ksw68@hanimail.com
석사학위논문: 〈보편학과 합리성의 문제: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로크의 과학적 인식론과 도덕적 인식론에 관한 연구〉.
논문:
〈라이프니츠 철학 체계의 근거〉 (건국대학교 학술논문집 제49집, 1999).
〈롤즈의 자유주의 윤리학에 나타난 합리성과 도덕성 비판〉, 《시대와 철학》제 18집 (한국철학사상연구회, 1999. 봄).
〈인권의 민주주의와 책임의 윤리〉 (건국대학교대학원 학술논문집 제48집, 1999).
〈푸코의 얼굴 없는 글쓰기의 에토스〉, 《시대와 철학》제 18집 (한국철학사상연구회, 199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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