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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6/02/16 (06:56) from 129.206.197.124' of 129.206.197.124' Article Number :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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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






  비율클리드 기하학의 세계


(1) 비유클리드 기하학

 19세기 초반에 나타난 두 가지의 놀랍고도 혁명적인 수학의 발달을 알아보자. 첫 번째 발견은 1829년경에 나타난 것으로 친숙한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매우 다르고 그 자체로 무모순인 기하학의 발견이었다. 두 번째 발견은 1843년경에 나타난 것으로 실수계의 통상적인 대수학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수학의 발견이었다.

 이제 우리는 1829년경에 나타난 무모순의 기하학인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우선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평행선의 공준”은 다른 가정들로부터 유도될 수 없고 독립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같은 가능성을 생각해내기 위해서는 비범한 상상력이 요구되었다. 왜냐하면 2000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은 유클리드 기하학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하학임에 틀림없으며 그에 반하는 어떠한 기하학 체계도 모순이 없을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에 대한 전통적인 편견으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행선 공준의 독립성을 어렴풋이 알아챈 최초의 사람은 독일의 가우스, 헝가리의 보야이, 러시아의 로바체브스키 등이었다. 이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평행선 공준에 대한 플레이페어의 명제를 통해서 세 가지 가능성을 고려함으로써 그 주제에 접근했다. 즉 주어진 직선 위에 있지 않은 주어진 점을 통과하면서 주어진 직선과 평행인 선(유클리드의 의미에서)은 ‘꼭 하나 존재하거나’(이것이 유클리드의 평행선의 공준) 또는 ‘하나도 없거나’또는 ‘둘 이상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세가지 상황은 각각 직각의 전제, 둔각의 전제, 예각의 전제 등과 동치이다. 그들의 선구자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직선 크기의 무한성을 가정함으로써 두 번째 경우는 쉽게 제거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경우에서 모순을 찾을 수 없었던 그들은 각각 그 가정하에서 무모순인 기하학을 생각해 내기에 이르렀다. 다른 두 사람의 연구 결과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 각자는 그것의 고유한 흥미에 이끌려 이 새로운 기하학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실제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예감한 최초의 사람은 가우스였을 것이다.


(2) 비유클리드의 기하학이 발견되다.

그러나 수학 황제의 영광을 누리고 있었던 가우스는 이 미지 세계의 탐험 결과가 자신에게 미치게 될 지도 모를 불리한 영향에 겁을 먹어 자신이 본 것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보야이와 로바체프스키 두 사람이 신세계의 최초의 발견자가 되었다. 혁명가적인 기질을 타고 난 젊은 보야이는 이 미지의 나라에 대담하게 발을 딛었을뿐만 아니라 힘이 다하도록 그 연구에 몸을 바쳤다. 로바체프스키는 자신이 발견한 세계의 위대한 미래를 굳게 믿고 마지막까지 이 땅을 가꾸었다. 이보다 조금 뒤에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가우스의 제자 리이만은 대학 교수 취직 시험장에서 공간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여 스승 가우스를 놀라게 했다. 한 마디로 말해 공간은 ‘휘어지는 정도’(곡률)가 일정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 보면 전혀 휘어지지 않은 공간, 즉 곡률이 0인 공간이 유클리드 공간이고, 안으로 휘어진 공간, 즉 곡률이 마이너스이고 일정한 공간이 로바체프스키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공간은 밖으로 휘어지는 공간, 즉 곡률이 플러스이고 일정한 공간이 바로 리만의 기하학이다.


(3)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

가우스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칸트의 유클리드적 공간관이 널리 일반에 보급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칸트처럼 유클리드 기하학이 ‘선험적 종합 판단’이라고 한다면 이 기하학의 반대 명제를 생각할 수 없고 따라서 이것과 다른 기하학을 구성할 수 없다. 또 ‘선험적 판단’이라는 권위 때문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아예 존재 이유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 이후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달은 결과적으로 그의 유클리드 기하학 및 공간에 관한 선험설을 무너뜨렸다.

이 ‘공간 선험설’에 대해 공간 직관설을 내세운 것은 엔리케스(Federigo Enriques, 1871 - 1946)였다. 그는 <과학의 제 문제>(Problemi della Scienza, 1906)에서 기하학은 감각적 재료로부터 추상화한 개념을 특수한 감각적 재료에 의해 통일한 것이라는 생각을 펴고 있다. 예를 들면, 시각적인 입장에서 ‘투영 기하학’이, 그리고 촉각의 입장에서 계량적 기하학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직관설에 따르면 공간은 선험적 개념은 아니지만 유클리드적 공간관의 입장에 서 있다는 점에서는 칸트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어쨋든 기하학적 공간은 단순히 시각이나 촉각으로부터 얻은 직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에 틀림없다.

한편, 기하학은 경험적·선험적 또는 직관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히 형식 논리적인 학문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 즉 수학은 공간이나 시간의 관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형식논리학처럼 시간, 공간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직 관계만을 다루는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형식 논리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수학이란 기호 논리학의 법칙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수학상의 참된 공리는 무모순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수학상의 공리는 순전히 논리적인 형식론에 따진다면 논리의 전제로서 단지 모순이 없는 것이기만 하면 될 터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경험적 요소를 인정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 추리의 형식 그 자체도 외부 세계의 현상을 경험하고 그 영향에 대응한 이성의 활동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요컨데, 수학은 자연계의 경험과 무관한 것이 아님과 동시에 경험에 의해 지배받는 것도 아니다. 수학의 지식을 빌어 객관 세계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현상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수학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첫째로,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논리적으로 동치이다.

둘째로, 이 두 기하학은 함께 경험적 실재성을 지닌다.

셋째로, 이른바 선험설, 직관설, 형식설 등은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충분한 설명 원리가 되지 못 한다.

와 같이 말할 수 있으나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가장 편리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즉 유클리드 기하학은 논리상 가장 간단하고 경험적 세계와도 충분히 접근하고 있으며 실제 근사적 측정의 결과는 모두 유클리드 기하학과 일치한다. 그렇다고 이 기하학이 경험적 세계를 설명하는 유일한 원리가 아니라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http://home.megapass.co.kr/~hoamji/mathstor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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