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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6/03/24 (03:34) from 129.206.196.134' of 129.206.196.134' Article Number :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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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문 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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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유원 선생님의 “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강독 내용을 노트 필기한 것입니다.

Vorrede

Eine Erklärung, wie sie einer Schrift in einer Vorrede nach der Gewohnheit vorausgeschickt wird - über den Zweck, den der Verfasser sich in ihr vorgesetzt, sowie über die Veranlassungen und das Verhältnis, worin er sie zu andern frühern oder gleichzeitigen Behandlungen desselben Gegenstandes zu stehen glaubt - scheint bei einer philosophischen Schrift nicht nur überflüssig, sondern um der Natur der Sache willen sogar unpassend und zweckwidrig zu sein.
서문에서 저작에게 관례에 따라 미리 주어지는 하나의 해명은 – 저자가 저작에서 의도한 목적에 대한, 마찬가지로 저작이 다른 이전의 혹은 동시대의 논저에 대해서 성립한다고 믿는 동기와 연관에 대한 - 하나의 철학적 저작에 있어서는 쓸데없거니와 [철학적 연구라는] 문제의 본성상 더욱이 부적절하고 목적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Denn wie und was von Philosophie in einer Vorrede zu sagen schicklich wäre - etwa eine historische Angabe der Tendenz und des Standpunkts, des allgemeinen Inhalts und der Resultate, eine Verbindung von hin und her sprechenden Behauptungen und Versicherungen über das Wahre -, kann nicht für die Art und Weise gelten, in der die philosophische Wahrheit darzustellen sei.
왜냐하면 서문에서 철학에 관하여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말하는 것이 온당할지는 - 이를테면 경향과 입장, 보편적 내용과 성과의 역사적 [기술적] 보고, 진리에 관하여 이것저것 떠드는 주장과 단언에 대한 관련 - 철학적 진리가 서술되는 방식으로 간주될 수 없기 때문이다.

* übergehen : 이행하다 / 변증법적 이행 -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다음 단계로 접어드는 것.
* Sache - thing, matter, concern, subject / 주제, 문제.
* 일상어가 철학적 술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들뢰즈에게 '기계'는 철학적 술어이듯, 헤겔의 술어인 정신Geist을 이해하는 데에 '정신 차려 이 사람아'의 정신만을 떠올리면 안 된다.
* Angabe : 보고(report)
* Historie : 객관적 사태의 지난 이력, 진리값을 담고 있지 않음.
* 헤겔은 Historie를 다소 경멸적 의미로 사용한다.
* Versicherung : 논증없이 딱 잘라 말하는 것, 단언.
* darstellung : 서술 / "이성적 본질과 의미를 감각적 경험적 매개로 변환하는 것" - Kant.
* <<정신현상학>>은 정신의 분열을 그대로 서술한 것. 내가 나를 지켜봄.

철학적 저작은 어떻게 씌어져야 하는가? 관습에 따라 기술되어서는 안 된다. 맥락과 정황을 벗어나 단정과 요약 형식으로 기술된 서문은 철학적 저작과 거리가 멀다. 글쓰기를 통해 진실에 근접하는 것은 진리를 찾는 철학적 탐구와 흡사하다.

Auch weil die Philosophie wesentlich im Elemente der Allgemeinheit ist, die das Besondere in sich schließt, so findet bei ihr mehr als bei andern Wissenschaften der Schein statt, als ob in dem Zwecke oder den letzten Resultaten die Sache selbst und sogar in ihrem vollkommenen Wesen ausgedrückt wäre, gegen welches die Ausführung eigentlich das Unwesentliche sei.
또한 철학은 본질적으로, 특수한 것들을 자신 안에 포섭하고 있는 보편성이라는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학들보다 더 철학에서는, 마치 목적 또는 최종 성과에 있어서 사상 그 자체가 그리고 더욱이 사상의 완성된 본질이 표명된 것처럼, 본질에 대한 상술(詳述)은 본래 비본질적이라고 하는 가상(假像)이 보다 많이 일어난다.

* Wesen :
- 1. 있음, 존재. Gattungswesen 유(類)적 존재.
- 2. 본질. 헤겔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용어.
* Element : 기본 요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 ausgedrücken : 짜내다 -> 표현, 표명하다.
- 감각적 의미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begreifen(파악하다)의 감각적 의미는 '꽉 쥐다.'
* eigen :자신의 Eigentum : 소유권 / Besitz : 점유(승인되지 않은)
* Ausführung : 상세히 서술, 전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며 기술하는 것, Versicherung과 반대.

* 헤겔은 논리학에서 자연철학으로 그리고 정신철학으로 나아갔다. 정신철학은 주관적 정신, 객관적 정신, 절대적 정신으로 나뉜다. 절대적 정신의 분야로 예술, 종교, 철학을 들 수 있다. 이에 관해 헤겔은 각각 미학강의, 종교철학강의, 그리고 철학사강의를 썼다. 여기에서 철학이 아닌 철학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헤겔은 철학이란 철학사라고 말했다. whole context에서 드러나는 진리의 역사성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In der allgemeinen Vorstellung hingegen, zum Beispiel was [Was zum Beispiel] Anatomie sei, etwa die Kenntnis der Teile des Körpers nach ihrem unlebendigen Dasein betrachtet, ist man überzeugt, die Sache selbst, den Inhalt dieser Wissenschaft, noch nicht zu besitzen, sondern außerdem um das Besondere sich bemühen zu müssen.
이에 반하여 비생동적 정재(定在)로 고찰된 신체의 부분들에 대한 지식이라 할, 예를 들면 해부학이란 무엇이냐 하는 보편적 표상에서는, 사람들은 사상 그 자체를 [이 학의] 이 내용을 아직은 소유하고 있지는 않으며, 그밖에도 특수한 것을 얻으려고 애써야만 한다고 확신한다.

* Vortellung은 감각과 개념 사이의 '표상'이다. 직접적이며 감성적이다. 상기와 상상력과 기억을 합친 개념이다. 스피노자의 imaginatio에 가까움. intelletus(지성)는 Verstand(悟性)와 Vernunft(理性)를 모두 포함한다.
* Kenntnis는 지식(knowledge)이고 Erkenntnis는 인식(Cognition)이다.
* 해부학을 예로 든 것은 죽은 것을 대상으로 한 학문의 보기를 보이기 위함이었다. 헤겔은 진리란 생동적인 것(lebendige)이라고 했다.

- Ferner ist bei einem solchen Aggregate von Kenntnissen, das den Namen Wissenschaft nicht mit Recht führt, eine Konversation über Zweck und dergleichen Allgemeinheiten nicht von der historischen und begrifflosen Weise verschieden, worin von dem Inhalte selbst, diesen Nerven, Muskeln und so fort, gesprochen wird.
더 나아가 학의 이름을 정당하게 지니지 못하는 그러한 지식의 집적에 있어서는, [그런 회화에서는] 사실 내용 그 자체에 대한 그리고 이러한 신경, 근육 등에 대해 말해지기는 하나, 목적과 그러한 보편성에 관한 회화, 역사적 그리고 몰개념적 방식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상례다.

* führen : 지니다. 품고 다니다. 수반하다. (accompany with)
* 학은 지식 생성의 전반을 탐구하는 것이다.
* Dialog는 진리를 얻기 위한 참된 의미의 대화다. Konversation은 단순한 회화에 불과하다. 헤겔은 철학의 역사를, 철학자들이 문제(테제-안티테제)에 대해 대화를 주고 받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Bei der Philosophie hingegen würde die Ungleichheit entstehen, daß von einer solchen Weise Gebrauch gemacht, und diese doch von ihr selbst als unfähig, die Wahrheit zu fassen, aufgezeigt würde.
철학에서는 그에 반해, 그러한 방식이 사용될 수는 있더라도, 그러한 사용이 철학 자체에 의해 진리를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상위(相違)가 일어날 것이다.

So wird auch durch die Bestimmung des Verhältnisses, das ein philosophisches Werk zu andern Bestrebungen über denselben Gegenstand zu haben glaubt, ein fremdartiges Interesse hereingezogen, und das, worauf es bei der Erkenntnis der Wahrheit ankommt, verdunkelt.
그래서 하나의 철학적 저작이 동일한 대상에 관한 다른 연구에 대해서 가진다고 믿어지는 연관의 규정을 통해서, 낯선 관심이 들어오고, 그에 따라 진리의 인식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 희미해진다.

* verdunkeln 어둡게 하다.
* dunkeln 희미해지다.
* auf~ ankommen ~이 매우 중요하다.
* wo + auf = of which -에 대하여
* 낯선 관심 = 쓸데없는 관심
* Fremdung 낯설음 Entfremdung 소외. 이질적인(X)
* Kant와 Hegel은 점층적 글쓰기를 한다.

So fest der Meinung der Gegensatz des Wahren und des Falschen wird, so pflegt sie auch entweder Beistimmung oder Widerspruch gegen ein vorhandenes philosophisches System zu erwarten, und in einer Erklärung über ein solches nur entweder das eine oder das andre zu sehen.
사념(私念)에게는 참과 거짓의 대립이 확고하고 그러면 사념은 또한 현전하는 철학적 체계에 대하여 찬성이냐 반대냐를 기대하곤 하고 설명한 글에서도 다만 찬반만을 보려하곤 한다.

* Meinung 사념, 의견(진리값을 갖지 못한 opinion), 플라톤의 doxa(억견) <-> episteme
* 사념이 하는 일 : 참/거짓 판단, 찬/반 규정.
* entweder A oder B : A냐 B냐

Sie begreift die Verschiedenheit philosophischer Systeme nicht so sehr als die fortschreitende Entwicklung der Wahrheit, als sie in der Verschiedenheit nur den Widerspruch sieht.
사념은 철학적 체계들의 상이성을 진리의 전진하는 전개로써 개념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다만 상이성에서 모순을 볼 뿐이다.

* nicht so sehr als = not so much A as B : A라기보다 B
* Fortschritt 진보
* 지향되어 통일돼 있다. '역사진리관', 철학적 체계 파악의 방법론, 진리론. 헤겔에게는 인식론이 따로 없다. 철학은 실생활 속에서 출발한다. A에서 B로 이행되면 B는 A를 포함한다. 질적인 비약을 이룬 상태다.

Die Knospe verschwindet in dem Hervorbrechen der Blüte, und man könnte sagen, daß jene von dieser widerlegt wird, ebenso wird durch die Frucht die Blüte für ein falsches Dasein der Pflanze erklärt, und als ihre Wahrheit tritt jene an die Stelle von dieser.
꽃봉오리는 꽃의 돌연한 등장에로 소멸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자가 후자에 의해 논박되었다고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열매에 의하여 꽃은 식물의 거짓된 정재임이 밝혀지고, 그것의[식물의] 진리로서 전자[열매]가 후자[꽃]의 자리에 등장한다.

* verschwinden은 disappear보다는 vanish에 가까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
* wider(거슬러서)+ legen(자세를 취하다) = 논박하다.
* Negation : 부정.
* 꽃봉오리에서 꽃으로 그리고 열매로 -> 시간의 개입

Diese Formen unterscheiden sich nicht nur, sondern verdrängen sich auch als unverträglich miteinander.
이러한 형식들은 구별될뿐만 아니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써 배척된다.

* un+verträglich / Vertrag 계약
* 양립할 수 없는 = 용납될 수 없는

Aber ihre flüssige Natur macht sie zugleich zu Momenten der organischen Einheit, worin sie sich nicht nur nicht widerstreiten, sondern eins so notwendig als das andere ist, und diese gleiche Notwendigkeit macht erst das Leben des Ganzen aus.
그러나 그것의 유동적 본성은 그것들을 유기적 통일의 계기로 만들거니와, 유기적 통일에 있어서는 충돌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등한 필연성은 비로소 전체의 생을 이룬다.

* flüssige : 유동적인, 끊임없이 변화하는
* Momenten : 전개과정의 각각 단계, 계기
* gleiche : 평등한, 동등한, 相等한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의 모형은 생물학이다.
*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관념론을 보자. <<독일관념론의 철학>> 1,2는 칸트 이후 철학의 전개를 다룬다. 이것을 읽고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를 읽으면 좋다. 그는 "헤겔은 낭만주의를 합리화한다." 고 했다.
* 사람들이 요즘 벤야민을 많이 읽는데 벤야민을 이해하려면 먼저 칸트를 알아야 한다.
* 계몽주의 계열은 자칫하면 기계론으로 빠지기 쉽고, 낭만주의 계열은 자칫하면 표현론으로 빠지기 쉽다.
* Momenten은 역학에서 빌려온 용어인데 헤겔에게는 모순적인 구성 요소들과 작용하는 역동적 요소를 의미한다.
* "진리는 전체다." - 헤겔

Aber der Widerspruch gegen ein philosophisches System pflegt teils sich selbst nicht auf diese Weise zu begreifen, teils auch weiß das auffassende Bewußtsein gemeinhin nicht, ihn von seiner Einseitigkeit zu befreien oder frei zu erhalten, und in der Gestalt des streitend und sich zuwider Scheinenden gegenseitig notwendige Momente zu erkennen.
그러나 하나의 철학적 체계에 대한 모순[반대]은 한편으로는 그 자체, 이러한 방식으로 개념파악하지 않곤 하고, 한편으로는 또한 파악하는 의식은 대개, 모순의 일면성으로부터 모순을 벗어나게 할 줄 모르고, 자유롭게 받아들일 줄도 모르고, 그리고 투쟁하고 반목하는 듯이 보이는 형태에서 서로에 대해 필연적 계기들을 인식할 줄 모른다.

* auffassen - "A는 A고 B는 B다."라고 단언하는 태도 / Begreifen "둘다 필연적이므로 전체의 계기가 된다."고 보는 태도. 헤겔은 "관념론은 진리의 Moment의 일면성을 고수하지 않는 태도다."라고 했다. 헤겔은 변증법이라는 말보다 사변적(spekulative) 통찰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Die Foderung von dergleichen Erklärungen sowie die Befriedigungen derselben scheinen vielleicht das Wesentliche zu betreiben.
그와 같은 설명에 관한 요구 및 그러한 요구의 충족은 아마도 [철학의] 본질적인 것을 행하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 Foderung : 요구
* Befreidigungen : 충족
* betreiben : 영위하다.
* 이 부분에서 서문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다.

Worin könnte mehr das Innere einer philosophischen Schrift ausgesprochen sein als in den Zwecken und Resultaten derselben, und wodurch diese bestimmter erkannt werden als durch ihre Verschiedenheit von dem, was das Zeitalter sonst in derselben Sphäre hervorbringt?
하나의 철학적 저작의 핵심이 그 저작의 목적과 성과 이외의 어디에서 보다 더 잘 표명될 수 있을 것이며, 후자(목적과 성과)가 다른 동시대인들이 동일한 영역에서 산출하는 것과의 상이성보다 무엇을 통해 더 명확하게 이것이 인식될 수 있을 것인가?

* könnte : ~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 mehr = more
* wodurch : 무슨 수로
* bestimmt = precisely 엄밀하게, definitely 명확하게 (여기서는 후자에 가까움)
* sonst : 다른, 그 밖의
* hervorbringen : 낳아 놓다. 산출하다.
* 이 부분은, 진리를 과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다.

Wenn aber ein solches Tun für mehr als für den Anfang des Erkennens, wenn es für das wirkliche Erkennen gelten soll, ist es in der Tat zu den Erfindungen zu rechnen, die Sache selbst zu umgehen, und dieses beides zu verbinden, den Anschein des Ernstes und Bemühens um sie, und die wirkliche Ersparung desselben.
그러한(통상적인 서문 작성 행위) 활동은 인식의 단초 이상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현실적 인식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면, [그 활동은] 事象 자체를 회피하면서도, 그것(사상 자체)에 대한 진지함과 노고의 외관과 그것들을 현실적으로 등한시하는 이 양자를 연관시키려는 허구적 방책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 wenn : ~라면
* anfangen : 시작하다.
* Anfang : 단초 / "논리학"에서는 시원(始原)으로 번역. cf. arche - 출발점이자 원리인 것.
* wirkliche : 현실적인 / Wirklichkeit : 현실성 - 전과정을 거쳐 생성된 진리. Marx 저작에 자주 나옴.
* Tun : 활동 / Tat : 행위
* Erfindungen : 허구적 방책, 虛構
* rechnen : 계산하다 -> 견적내다 -> ~에 속한다 > ~ 하는 축에 낀다.
* 남김 없이 드러나도록 읽는 태도가 중요하다. Anfang에서 Resoltat까지 역사적으로.

- Denn die Sache ist nicht in ihrem Zwecke erschöpft, sondern in ihrer Ausführung, noch ist das Resultat das wirkliche Ganze, sondern es zusammen mit seinem Werden; der Zweck für sich ist das unlebendige Allgemeine, wie die Tendenz das bloße Treiben, das seiner Wirklichkeit noch entbehrt, und das nackte Resultat ist der Leichnam, der sie hinter sich gelassen.
왜냐하면 사상은 그 목적에서 남김없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술에 있어서 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고, 게다가 성과는 현실적 전체가 아니요, 그 성과는 그것의 생성과 함께 합쳐져서 [현실적 전체이다]. 목적은 그 자체로는 비생동적 보편자이거니와 [목적에 대한] 그 의향이 자신의 현실성을 [아직은] 가지지 못한 단순한 충동인 것과 마찬가지이고, 벌거벗은(노골적인) 성과는 [의향을] 자기 뒤에 남겨둔 시체이다.

* nicht A sondern B : A가 아니라 B다.
* erschöpfen : 다 길어 내다. 남김없이 길어 내다. Erschöpfung
* Ganze : 전체.
* bloße 뒤에 ist가 생략되었음.
* Treiben : 충동
* nackte : 벌거벗은, 노골적인 cf. "노골적인 현금 계산..." - <<공산당 선언>>
* A의 목적과 성과가 있고, B에 대한 목적과 성과가 있다. 이 둘은 비교, 검토하고 따져 묻는 곳에서는 사상 - 전체의 계기 Momente 로 파악하는 - 이 없다. 운동할 수 없다. 데꾸보꾸(과속방지턱)를 만나면 차가 서야 한다.

- Ebenso ist die Verschiedenheit vielmehr die Grenze der Sache; sie ist da, wo die Sache aufhört, oder sie ist das, was diese nicht ist.
마찬가지로 상이성은 오히려 사상의 한계다. 그것(상이성)은 사상이 멈춘 곳에 있고, 달리 말해서 그 상이성은 사상인 바가 아니다.

* Grenze : 경계선. 이 단어가 나오면 7-80%는 칸트를 염두에 두고 썼음을 알아야 한다. 비판 Ktitik 은 이성의 한계를 밝히는 것이요, 따라서 경계를 나누는 것이다. 앞으로 읽다보면 "말뚝"이 나올 것이다. 추후 설명.

Solche Bemühungen mit dem Zwecke oder den Resultaten, sowie mit den Verschiedenheiten und Beurteilungen des einen und des andern, sind daher eine leichtere Arbeit, als sie vielleicht scheinen.
목적이나 성과에 관한 마찬가지로 하나의 철학적 체계와 다른 쳬계를 평가하고 상이성을 알아내는 그러한 노고는, 그것(노고)이 보이는 것보다는(보기보다는) 쉬운 작업이다.

* Bemühungen : 노고
* mit : ~에 관한
* des einen 다음과 des andern 다음에 "철학적 체계"가 생략되어 있다.
* 가장 쉬운 것이 원본과 번역본을 비교하거나 다른 책과 비교하여 논평하는 것이다. 동서비교철학처럼 황당무계한 것도 없다. "어떤 식으로 내재적인 연관성이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다.

Denn statt mit der Sache sich zu befassen, ist solches Tun immer über sie hinaus, statt in ihr zu verweilen und sich in ihr zu vergessen, greift solches Wissen immer nach einem Andern, und bleibt vielmehr bei sich selbst, als daß es bei der Sache ist und sich ihr hingibt.
그러한 활동은 사상과 관계하는 대신에 항상 사상은 넘어가 있다. 그러한 앎은 사상 안에 침잠하고 자신을 사상 안에서 망각하는 대신에 항상 타자를 추구하고, 사상의 곁에 있고 사상에 몰두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곁에 머물러(자기 사상을 고수하여) 있기 때문이다.

* befassen : ~에 관계하다.
* überhinaus : [구렁이 담넘듯] 넘어가다. / übergehen : [변증법적으로] 이행하다.
* verweilen : 담그다. 침잠하다.
* nach + greifen : ~을 추구하다.

- Das leichteste ist, was Gehalt und Gediegenheit hat, zu beurteilen, schwerer, es zu fassen, das schwerste, was beides vereinigt, seine Darstellung hervorzubringen.
가장 쉬운 것은 내용과 실질을 가진 것을 평가하는 것이요,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며, 가장 어려운 것은 양자를 결합하고, 그래서 양자(평가하고 파악하는 것)에 서술을 부여하는 것이다.

* Gedigenheit : "와꾸"의 반대 의미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 Substanz : 실체
* 비교가 가장 쉽고 파악이 좀 더 어렵고 이 둘을 결합하여 비판적으로 재사유하는 것이 가장 어려움.

Der Anfang der Bildung und des Herausarbeitens aus der Unmittelbarkeit des substantiellen Lebens wird immer damit gemacht werden müssen, Kenntnisse allgemeiner Grundsätze und Gesichtspunkte zu erwerben, sich nur erst zu dem Gedanken der Sache überhaupt heraufzuarbeiten, nicht weniger sie mit Gründen zu unterstützen oder zu widerlegen, die konkrete und reiche Fülle nach Bestimmtheiten aufzufassen, und ordentlichen Bescheid und ernsthaftes Urteil über sie zu erteilen zu wissen.
교양의 단초(출발점) 그리고 실체적 생의 직접성(무매개성)으로부터 탈각하려는(애써 벗어나려는) 것의 단초는 항상 보편적 법칙과 관점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고, 비로소 事象 일반의 思想으로 스스로 애써 올라서고, 그에 못지않게 근거를 가지고 사상을 지지하거나 논박할 줄 알아야 하고,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규정성에 따라 파악하며,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에 관한] 정연한 결정과 진지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것으로써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 Anfang : 단초, 출발점.
* substantiellen : 실체적 -> 띨띨한, 덜 떨어진
* 실체적 생이란 주객 미분(未分)의 상태다. 소박한 상태. 종교 같은 것.
* Cogito ergo Sum 은 근대적 의미의 주객 분리 의식이다.
* 이 패러그래프는 일반적 의미의 교양인을 설명한다.
* 이성이 이끄는 것이 인식 Erkenntnis 이라면 오성이 이끄는 것이 지식 Kenntnis 이다.

Dieser Anfang der Bildung wird aber zunächst dem Ernste des erfüllten Lebens Platz machen, der in die Erfahrung der Sache selbst hineinführt, und wenn auch dies noch hinzukommt, daß der Ernst des Begriffs in ihre Tiefe steigt, so wird eine solche Kenntnis und Beurteilung in der Konversation ihre schickliche Stelle behalten.
이러한 교양의 단초는 그러나 이윽고 충실한 생활의 진지함에게 자리를 내줄 것인데, [진지함은] 사상 그 자체의 경험에로 [우리를] 이끌어줄 개념의 진지함이 자신의 심저에 이르는 것이 덧붙여진다고 해도, 회화에서는 그러한 지식과 판단은 자신의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 3격 ~ platz machen : 3격에게 자리를 내주다.
* "개념의 진지함이 자신의 심저에 이르는 것" : 뽕을 뽑는 것.

Die wahre Gestalt, in welcher die Wahrheit existiert, kann allein das wissenschaftliche System derselben sein. Daran mitzuarbeiten, daß die Philosophie der Form der Wissenschaft näher komme - dem Ziele, ihren Namen der Liebe zum Wissen ablegen zu können und wirkliches Wissen zu sein -, ist es, was ich mir vorgesetzt.
진리가 현존하는 참된 형태는 오로지 [진리의] 학적 체계일 수 있다. (체계일 수밖에 없다.) 철학이 학의 형식에 더 접근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기도(의도)하는 - 愛知(앎에 대한 사랑)라는 명칭을 벗어놓을 수 있고 현실적 지가 되려는 목표에게 - 바이다.

* 이 부분은 외워야 한다. 헤겔리안(헤겔의 방법론을 취하는 자)의 기초가 되는 부분이다.
* mitzuarbeiten : 기여하다.
* "현실적 지" : episteme에 근거한 sophia
* 진리는 학적 체계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 헤겔리안, 맑시스트, 들뢰지안, 니체똘마니, 그람시안 등은 그를 좋아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 헤겔의 시도는 플라톤 이래의 서양 철학의 개념을 바꾸려는 시도다.
* Yovel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역사적 버전으로 보면 철학의 종말이다."
* 플라톤의 <<국가>>는 Aufstieg에 대해 언급한다. "철학은 올라섬이다." 지리산 꼭대기까지 등정한 사람에게는 모든 등정 과정이 함축(지양, 통일)돼 있다.
* 역사가 체계를 만들고 체계 - 절대자에 다다르면 알 수 있는 - 속에서 역사를 쓰는 것, 이것이 헤겔의 자세다.

Die innere Notwendigkeit, daß das Wissen Wissenschaft sei, liegt in seiner Natur, und die befriedigende Erklärung hierüber ist allein die Darstellung der Philosophie selbst.
지가 학이어야 한다는 내적 필연성은 자신의(지의) 본성에 놓여 있으며, 그리고 이전에 관한 만족하는 설명은 철학 그 자체의 서술일 뿐이다.

* "지가 학이어야 한다는" : 체계를 가리킨다.
* Darstellung :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하는 것, 즉 역사.
*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의 부제를 "...역사철학적 탐구"라고 적었다. 헤겔리안이라는 의미다.

Die äußere Notwendigkeit aber, insofern sie, abgesehen von der Zufälligkeit der Person und der individuellen Veranlassungen, auf eine allgemeine Weise gefaßt wird, ist dasselbe, was die innere, in der Gestalt, wie die Zeit das Dasein ihrer Momente vorstellt.
외적 필연성은 그러나 개인과 개별적 동기들의 우연성은 별개로 하고, 하나의 보편적 방식으로 파악되는 한에서, 내적 필연성인 것이요, [다시 말해서] 시대가 내적 필연성의 계기들의 定在를 어떻게 표상하는가 하는 형태 안에 놓여있다.

* 외적 필연성 = 시대의 요구.

Daß die Erhebung der Philosophie zur Wissenschaft an der Zeit ist, dies aufzuzeigen würde daher die einzig wahre Rechtfertigung der Versuche sein, die diesen Zweck haben, weil sie die Notwendigkeit desselben dartun, ja weil sie ihn zugleich ausführen würde.
철학을 학에로 고양시킬 때가 되었다는 것, 이것을 지적하는 것은 따라서 이러한 목적을 가진 시도에 관한 유일하게 참된 정당화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시대)은 목적의 필연성을 입증할 것이요, 아니 왜냐하면 시대가 동시에 목적을 실현하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유일하게 참된 정당화" = 쉽게 말해 "때가 됐어요."라는 뜻.
* 로크가 1)스콜라적 전통과 2)대륙의 합리론에 맞섰듯, 헤겔은 1)Romantik 과 2)Verstand오성적 태도에 맞섰다.

Indem die wahre Gestalt der Wahrheit in die Wissenschaftlichkeit gesetzt wird - oder, was dasselbe ist, indem die Wahrheit behauptet wird, an dem Begriffe allein das Element ihrer Existenz zu haben -, so weiß ich, daß dies im Widerspruch mit einer Vorstellung und deren Folgen zu stehen scheint, welche eine so große Anmaßung als Ausbreitung in der Überzeugung des Zeitalters hat.
진리의 참된 형태가 이러한 학문성에 있어서 적립된다고 할 때, 혹은 같은 말이지만, 진리가 개념에서만 자신의 현존의 장면을 가진다고 주장될 때, 나는 후자(이러한 주장)가 요즘 사람들의 신념 속의 만연 만큼이나 거대한 월권을 가지는(행사하는) 표상 및 그것의(표상의) 귀결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안다.

* so A als B : B만큼이나 A한
* 장면 = "환경"

Eine Erklärung über diesen Widerspruch scheint darum nicht überflüssig; wenn sie auch hier weiter nichts als gleichfalls eine Versicherung, wie das, gegen was sie geht, sein kann.
[그런 까닭에] 이러한 모순에 관한 하나의 해명은, 비록 여기에서 해명이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하나의 단언 이상의 것일 수는 없기는 하나 쓸데없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해명 = "모순의 해명"

Wenn nämlich das Wahre nur in demjenigen oder vielmehr nur als dasjenige existiert, was bald Anschauung, bald unmittelbares Wissen des Absoluten, Religion, das Sein - nicht im Zentrum der göttlichen Liebe, sondern das Sein desselben selbst - genannt wird, so wird von da aus zugleich für die Darstellung der Philosophie vielmehr das Gegenteil der Form des Begriffs gefodert.
다시 말해서 즉, 진리가 다만 한편으로는 직관, 한편으로는 절대자의 무매개적 지, 종교, 존재 - 신적 사랑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 자체의 존재 - 라고 불리는 것 안에서 또는 오히려 그러한 것으로서만 존재한다면, 그것의 [낭만주의자로서의] 입장에서는 동시에 철학에서의 서술에 대해서 오히려 개념의 형식에 반대되는 것이 요구된다.

* 각각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다.
직관 -> 셸링
절대자의 무매개적 지 -> 야코비
종교 -> 슐라이어마허
신적 사랑 -> 노발리스
* Anschauung :
1) Kant의 시간, 공간, 수동적 직관
2) Weltanschauung세계관의 觀(view point)
3) intuition - 단박에 때려잡는 것.
* 벤야민, 루카치, 하우저 - 가령 <<예술의 사회학>> - 의 책을 볼 때 직관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중에서 어느 것인지 구별해 읽어야 함.
* 개념의 형식에 반대되는 것 = 쉽게 말해 "발광하는 것"

Das Absolute soll nicht begriffen, sondern gefühlt und angeschaut, nicht sein Begriff, sondern sein Gefühl und Anschauung sollen das Wort führen und ausgesprochen werden.
절대자는 개념적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요, 느껴지고 직관되어야만 하고, 절대자의 개념이 아니라 절대자의 감정과 직관이 주도적인 발언권을 가져야 하며 진술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das Wort führen : 주도적인 발언권을 가지다. (말빨을 세우다.)
* 이 부분은, 헤겔이 파악한 로만티커의 절대자 진술 방식이다. 여기에서 절대자란 "절대적인 것"의 의미다. 벌린에 따르면 낭만주의자냐 아니냐 하는 기준은 자신의 태도에 대한 신념이다.

Wird die Erscheinung einer solchen Foderung nach ihrem allgemeinem Zusammenhange aufgefaßt, und auf die Stufe gesehen, worauf der selbstbewußte Geist gegenwärtig steht, so ist er über das substantielle Leben, das er sonst im Elemente des Gedankens führte, hinaus, - über diese Unmittelbarkeit seines Glaubens, über die Befriedigung und Sicherheit der Gewißheit, welche das Bewußtsein von seiner Versöhnung mit dem Wesen und dessen allgemeiner, der innern und äußern, Gegenwart besaß.
그러한 요구의 출현이 자신의 더 보편적 연관에 따라 파악되고 자기의식적 정신이 현재에 서 있는 단계에서 보여진다면 정신은, 정신이 이전의 사상의 장면에서 영위했던 실체적 생을 넘어서 있다. [정신은] 이러한 신앙의 무매개성을 넘어서 있고, 의식이 자신의 존재와의 화해 그리고 존재의 내적이고 외적인 보편적 현재에 관해서 가지고 있던 확신에서 나오는 만족과 안심을 넘어서 있다.

* 실체적 생 = "종교적 신앙" 같은 것.
* 이 부분을 알기 쉽게 다시 서술하면, "그러한 요구의 출현을 더 보편적 연관에 따라 파악하고 (넓은 견지에서 파악해보고) 자각적 정신(철학적 정신)이 현재 서 있는 단계로 보자면(철학사의 맥락에서 살펴보자면)
* 화해 = "합치하는 것", "자아가 분열되지 않았다는 것"
* 헤겔의 저술 중《Glauben und Wissen》 "信과 知" ( <<믿음과 지식>>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 가 있다. 여기에서 지는 Knowledge가 아니다. 믿음은 무매개적이고 지는 매개적이다. 매개적이란 것은 쪼개는 것이다. 분열Entzweiung이다. 무매개적 정신이 촘촘하게 쪼개진 자기의식적 단계를 거쳐 인식에 이르고 매개된 정신으로 돌아온다.
* <<자본론>>이 상품편으로 시작되는데 상품을 분석해보면(쪼개보면) 자본주의 생산 요소가 어떻게 매개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 내적이고 외적인 보편적 현재 -> 철학사의 입장에서 보면 Kant 철학의 단계로 볼 수 있다.

Er ist nicht nur darüber hinausgegangen, in das andere Extrem der substanzlosen Reflexion seiner in sich selbst, sondern auch über diese.
그것(정신)은 그것(실체적 생)을 넘어서 정신의 자기자신에로의 몰실체적 반성이라는 또 다른 극단에로 옮겨갔을 뿐만 아니라, 후자 즉 반성 또한 넘어서 있다.

* Extrem - 철학사의 중요한 계기를 가리킨다.
* 철학사로 파악해 보자.
1) 그것(신앙)을 넘어서고
2) 다른 극단으로 옮겨가고
3) Reflexion반성을 넘어서 (Kant, 계몽주의의 완성)
4) 어디로? -> 나 헤겔이 제시하겠다.

Sein wesentliches Leben ist ihm nicht nur verloren, er ist auch dieses Verlustes, und der Endlichkeit, die sein Inhalt ist, bewußt.
정신의 본질적 생은(상황은) 정신에게 상실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은 스스로가 이러한 상실을 알고 있고, 정신의 내용인 유한성임을 알고 있다.

* Endlichkeit : 유한성
* 여기에서는 일반적 의미의 '정신'이다. 헤겔의 술어가 아니다.

Von den Trebern sich wegwendend, daß er im Argen liegt, bekennend und darauf schmähend, verlangt er nun von der Philosophie nicht sowohl das Wissen dessen, was er ist, als zur Herstellung jener Substantialität und der Gediegenheit des Seins erst wieder durch sie zu gelangen.
찌꺼기에서 스스로 몸을 돌리고, 정신이 나쁜 상태에 있음을 고백하고 저주하면서도 정신은 이제 철학에게, 정신이 무엇인지에 관한 지(知)라기보다는, 저 [주객미분의] 실체성과 존재의 견실함의 회복으로 비로소 다시 철학을 통하여 도달할 것을 갈망한다.

* "찌꺼기에서 몸을 돌리고..." - <누가복음>에 나오는 말이다.
* nicht sowohl ~ als ~ = not so much ~ as ~
* Hertellung : 회복
* <<정신 현상학>>은 청년 헤겔의 마지막 저술이다.
* 실체성이란 계몽주의(회의주의)다. 정신의 노동이 필요한데 돌아가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

Diesem Bedürfnisse soll sie also nicht so sehr die Verschlossenheit der Substanz aufschließen, und diese zum Selbstbewußtsein erheben - nicht so sehr ihr chaotisches Bewußtsein zur gedachten Ordnung und zur Einfachheit des Begriffes zurückbringen, als vielmehr die Sonderungen des Gedankens zusammenschütten, den unterscheidenden Begriff unterdrücken und das Gefühl des Wesens herstellen, nicht sowohl Einsicht als Erbauung gewähren.
이러한 요구에게 철학은 따라서 실체의 폐쇄성을 개시(開示)하고 후자(실체)를 자기의식에로 고양해야 한다기보다는, 혼돈의 의식을 사유된 질서에로, 개념의 단순성에로 되가져와야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사상의 분별을 뒤섞고 구별하는 개념을 억누르고 존재에 관한 감정을 회복해야 하고 [한마디로] 통찰보다는 신앙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 이 부분은 앞의 내용을 풀어 쓴 부분이다.
* 실체를 자기의식에로 고양한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 일단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키워드는 "자기의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4세기 조선을 놓고 세계사 연표를 보라. 인구조사를 한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 500년 넘은 관료제 국가다. 그러나 유럽인들에게 국가는 기본값(디폴트)이 아니다. 몰생각적으로 그냥 받아들였던 것을 의심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것, 이 텍스트를 실체가 아닌 matter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Das Schöne, Heilige, Ewige, die Religion und Liebe sind der Köder, der gefodert wird, um die Lust zum Anbeißen zu erwecken, nicht der Begriff, sondern die Ekstase, nicht die kalt fortschreitende Notwendigkeit der Sache, sondern die gärende Begeisterung soll die Haltung und fortleitende Ausbreitung des Reichtums der Substanz sein.
아름다운 것, 신성한 것, 영원한 것, 종교(믿음) 그리고 사랑은 깨물고 싶은 욕망을 일깨우기 위해 요구되는 미끼다. 개념이 아니라 탈자[法悅]가 차갑게(냉정하게) 전진하는 사상의 필연성이 아니라 덕양하는 영감이 계속되는 실체의 풍부함[풍부한 내용]의 지탱과 지속적 확산이라 한다.

* 세상이 복잡할수록 사람들은 Ekstase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 로만티커들이 이러한 것을 선보인다. 사람들은 이것을 덥석 물고 진리로 나아가려 한다.
* 부르디외의 <<나는 철학자다>>를 보자. "방법 훈련의 일환인 이 텍스트는 고발의 지평과는 다른 곳에 있다." -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Dieser Foderung entspricht die angestrengte und fast eifernd und gereizt sich zeigende Bemühung, die Menschen aus der Versunkenheit ins Sinnliche, Gemeine und Einzelne herauszureißen und ihren Blick zu den Sternen aufzurichten; als ob sie, des Göttlichen ganz vergessend, mit Staub und Wasser, wie der Wurm, auf dem Punkte sich zu befriedigen stünden.
긴장된 거의 열광적으로 흥분된 것처럼 보이는 노고가 이러한 요구에 상응하거니와, [노고란] 인간을 감성적인 것, 조야한 것, 개별적인 것의 탐색으로부터 구출하고 그들의 시선을 별들에로 향하게 하려는 것이다. 인간이 신적인 것을 전혀 잊어버리고 마치 벌레처럼, 먼지와 물(더러운 물)로 한 순간에(순간순간을) 만족하며 연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 이 부분은 단테의 <<신곡>>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 부분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과 대응한다. 정신은 갈 곳을 모르고 절대지로 향하는데, 이것은 단테의 여정과 동일하다. 올라가 보고서 처음 올라가는 사람처럼 서술하는데 이러한 자기 객관화는 철학자, 단테의 태도다.

Sonst hatten sie einen Himmel mit weitläufigem Reichtume von Gedanken und Bildern ausgestattet. Von allem, was ist, lag die Bedeutung in dem Lichtfaden, durch den es an den Himmel geknüpft war;
예전에 사람들은 사상과 형상의 광대한 풍부함으로써 천계를 장식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한 의미는 [존재하는 것이] 그것을 천계에 연결시켜주는 빛의 실 가운데에 놓여있다.

* Lichtfaden 은 천계와 세속의 연결 고리라고 파악하면 된다.

an ihm, statt in dieser Gegenwart zu verweilen, glitt der Blick über sie hinaus, zum göttlichen Wesen, zu einer, wenn man so sagen kann, jenseitigen Gegenwart hinauf.
존재자일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그것(빛의 실) 속에서, 시선을 "이" 현재에 머무르는 대신에, 이 현재를 넘어서 신적 존재에로, 이를테면 피안의 지금(현재)으로 미끄러져 올라갔던 것이다.

Das Auge des Geistes mußte mit Zwang auf das Irdische gerichtet und bei ihm festgehalten werden; und es hat einer langen Zeit bedurft, jene Klarheit, die nur das Überirdische hatte, in die Dumpfheit und Verworrenheit, worin der Sinn des Diesseitigen lag, hineinzuarbeiten, und die Aufmerksamkeit auf das Gegenwärtige als solches, welche Erfahrung genannt wurde, interessant und geltend zu machen.
정신의 시선이 억지로(강제로) 세속적인 것에로 향해져야 했고 그것(세속적인 것)에 있어서 고착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만 초지상적인 것만이 가지고 있던 저 명석함을 이쪽(세속)의 감각이 놓여 있던 몽매함으로 혼미함으로 이끌어오고, 그 안에는 경험이라고 불리는 현재적인 것 그 자체에 대한 주의에 관심을 갖게하고 유효하게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 경험론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는 부분이다.
*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 에띠엔느 질송은 <<철학과 신>>에서 "가장 한심한 것은 지적인 노고에 대한 까닭없는 경멸이다." 라고 썼다.

- Jetzt scheint die Not des Gegenteils vorhanden, der Sinn so sehr in das Irdische festgewurzelt, daß es gleicher Gewalt bedarf, ihn darüber zu erheben. Der Geist zeigt sich so arm, daß er sich, wie in der Sandwüste der Wanderer nach einem einfachen Trunk Wasser, nur nach dem dürftigen Gefühle des Göttlichen überhaupt für seine Erquickung zu sehnen scheint.
지금은 정반대의 것이 필요한 것 같아 보인다. [사람들의] 심성이 너무 세속적인 것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그 심성을 세속적인 것 위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똑같은 힘이 필요하다. 정신은 가련해 보여서, [정신이] 사막에서 나그네가 한 모금의 물을 찾듯이(갈구하듯이) 자신의 청량제를 위하여 신적인 것 일반에 관한 가련한 감정을 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 Sinn : 심성, 人心 으로 해석해야 할 때가 있다. Vorstellung을 무조건 '표상'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문맥에 따라 '상식',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 옮겨야 할 때도 있다.
* Gewalt : 권력(힘) / Macht : 권력(권능). 카네티의 <<권력과 대중>>에서 권력은 Macht다. 고양이와 쥐가 있다. 쥐는 고양이가 노려보지도 않는데 고양이를 두려워한다. 이때 고양이의 권능Macht이 행사되고 있는 것이다.

An diesem, woran dem Geiste genügt, ist die Größe seines Verlustes zu ermessen. Diese Genügsamkeit des Empfangens oder Sparsamkeit des Gebens ziemt jedoch der Wissenschaft nicht.
정신에게 만족스러운 후자(가련한 감정)에서 정신의 상실의 크기가 측정될 수 있겠다. 받는 것의 이러한 만족이나 주는 것에의 인색함은 그렇지만 학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 크기를 보니 - 그렇게 작은 것에 만족하는 것을 보니 - 상실의 크기를 -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었는지를 - 짐작할 수 있겠다.

Wer nur die Erbauung sucht, wer seine irdische Mannigfaltigkeit des Daseins und des Gedankens in Nebel einzuhüllen und nach dem unbestimmten Genusse dieser unbestimmten Göttlichkeit verlangt, mag zusehen, wo er dies findet; er wird leicht selbst sich etwas vorzuschwärmen und damit sich aufzuspreizen die Mittel finden.
경건한 신심만을 추구하는 사람, 자신의 정재와 사상의 세속적 다양성을 안개 속에 감추고 이러한 신성함의 막연한 향유를 희구하는 사람은 어디서 막연한 향유를 발견할지를 [신경써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쉽게 자기 스스로 열광하고 그것으로써 활개치는 어떤 수단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 "irdische Mannigfaltigkeit des Daseins und des Gedankens" - 이것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 정재 : 삶의 현장
* Glauben : 믿음(신앙) / Erbauung : [순정주의에서 나온] 경건한 마음.

Die Philosophie aber muß sich hüten, erbaulich sein zu wollen. Noch weniger muß diese Genügsamkeit, die auf die Wissenschaft Verzicht tut, darauf Anspruch machen, daß solche Begeisterung und Trübheit etwas Höheres sei als die Wissenschaft.
철학은 그러나 신심이 깊어지고자 하는 것(신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더욱이 학을 단념하는 이러한 만족은 그러한 감격과 혼미함이 학보다 더 고차적인 어떤 것이라고 하는 요구(주장)를 해서는 안 된다.

Dieses prophetische Reden meint gerade so recht im Mittelpunkte und der Tiefe zu bleiben, blickt verächtlich auf die Bestimmtheit (den Horos) und hält sich absichtlich von dem Begriffe und der Notwendigkeit entfernt, als von der Reflexion, die nur in der Endlichkeit hause.
이러한 예언자적인 [티를 내는] 말을 하는 사람은 곧바로 [사태의] 핵심과 심저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한정(경계)을 경멸적으로 바라보며 다만 유한성 안에 머물러 있는 반성을 멀리하듯이 개념과 필연성을 고의로 멀리한다.

* 그럼 학적인 것은 대체 어떤 것이냐?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
* Horos : 그리스어, "말뚝". 경계, 한계, "여기까지가 내땅이다.", 개념의 정의, 곧 Kritik.

Wie es aber eine leere Breite gibt, so auch eine leere Tiefe, wie eine Extension der Substanz, die sich in endliche Mannigfaltigkeit ergießt, ohne Kraft, sie zusammenzuhalten - so ist dies eine gehaltlose Intensität, welche als lautere Kraft ohne Ausbreitung sich haltend, dasselbe ist, was die Oberflächlichkeit.
그러나 공허한 넓이가 있듯이, 공허한 깊이도 있으며, 유한한 다양성 안에서 넘치지만, 그 다양성을 끌어모을 힘은 없는 실체의 외연이 있듯이, 확장 없이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는 단순한 힘으로서, 같은 말이지만 피상적인 것인 내용 없는 내포도 있다.

Die Kraft des Geistes ist nur so groß als ihre Äußerung, seine Tiefe nur so tief, als er in seiner Auslegung sich auszubreiten und sich zu verlieren getraut.
정신의 힘은 오로지 힘의 발현 만큼만 크며, 정신의 깊이는 정신이 자신의 전개에서 자기로 확장하고 자기를 상실하는 것을 감행하는 것 만큼만 깊다.

*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을 보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다시 쓴 것 같이 보일 것이다.
* 정신은 자신을 발현시킬 때에만 스스로 알게 된다.
* 순정철학으로서의 칸트에게는 모헙이란 없다.
* 철학의 무기력함을 체험했던 헤겔의 상황을 보자.

- Zugleich wenn dies begrifflose substantielle Wissen die Eigenheit des Selbsts in dem Wesen versenkt zu haben und wahr und heilig zu philosophieren vorgibt, so verbirgt es sich, daß es, statt dem Gotte ergeben zu sein, durch die Verschmähung des Maßes und der Bestimmung vielmehr nur bald in sich selbst die Zufälligkeit des Inhalts, bald in ihm die eigne Willkür gewähren läßt.
그와 동시에 이러한 몰개념적 실체적 지가 자신의 고유함을 존재 속에 가라앉히고, 참되고 신성하게 철학적 사색을 한다고 사칭한다면, 지는 신에 귀의하는 대신에 기준과 규정의 무시를 통하여 오히려, 한편으로는 자기자신 안에서 내용의 우연성을, 한편으로는 내용 안에서 자신의 자의성을 방치하고 있을 뿐임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 Self-identity : 이성 개념, 실천, 역사적 상황에서 "구축"되는 것이다. 이것은 넓은 의미의 경험(Erfahrung)이다.

- Indem sie sich dem ungebändigten Gären der Substanz überlassen, meinen sie, durch die Einhüllung des Selbstbewußtseins und Aufgeben des Verstands, die Seinen zu sein, denen Gott die Weisheit im Schlafe gibt; was sie so in der Tat im Schlafe empfangen und gebären, sind darum auch Träume.
[그런] 사람들은 실체의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스스로를 내맡기기 때문에, 자기의식을 덮어씌우고 오성을 포기함으로써, [그들이] 잠든 사이에 신이 지혜를 부여한 자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들이 그렇게 잠잘 때 수태하여 출산한 것도 역시 꿈이다.

* "잠든 사이에 신이 지혜를 부여..." - <시편> 127장 2절.

Es ist übrigens nicht schwer, zu sehen, daß unsre Zeit eine Zeit der Geburt und des Übergangs zu einer neuen Periode ist.
그런데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요, 새로운 시기에로의 이행의 시대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 Yovel의 주석을 보자. 탄생의 시대라고 말하면서 "예수 탄생의 메타포가 맴돌고 있다."고 쓰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철학적 의미의 탄생이다. 즉, 칸트를 가리키는 것인데, 인간의 자율성에 의해 도덕 법칙이 확립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인식의 주체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두 번째로 프랑스 혁명의 업적이다. 프랑스 혁명의 첫째 업적은 free and equal individual 을 현실에서 드러내 보였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나폴레옹 법전이다.

그런데 free and equal individual 은 지나친/성급한 정치 실험이었다. 이것은 공포 terror 체제를 불러왔다. 헤겔은 이를 극복하고 "편안한 정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Der Geist hat mit der bisherigen Welt seines Daseins und Vorstellens gebrochen und steht im Begriffe, es in die Vergangenheit hinab zu versenken, und in der Arbeit seiner Umgestaltung.
정신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정재(생활)와 표상의 세계와는 절연하고, 그것을 과거 속에 묻어버리려 하고 있고, 자신의 변형에 몰두(착수)하려고 한다.

Zwar ist er nie in Ruhe, sondern in immer fortschreitender Bewegung begriffen.
과연 정신은 결코 정지하는 일이 없고, 항상 전진하는 운동에 몰입해 있다.

* in et begriffen sein : -에 종사하다.
* 정신의 개념을 가장 생동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Yovel은 "정신은 어떤 특정한 주어진 상황을 넘어서려는 영원한 운동(활동)이다."라고 했다.

Aber wie beim Kinde nach langer stiller Ernährung der erste Atemzug jene Allmählichkeit des nur vermehrenden Fortgangs abbricht - ein qualitativer Sprung - und itzt das Kind geboren ist, so reift der sich bildende Geist langsam und stille der neuen Gestalt entgegen, löst ein Teilchen des Baues seiner vorgehenden Welt nach dem andern auf, ihr Wanken wird nur durch einzelne Symptome angedeutet;
그러나 아이는 오랫동안 조용히 영양을 섭취한 후에 최초의 소리가 단지 양적으로만 증가해 온 진보의 저 점진성을 갑자기 중단하면서 이제야 아이가 탄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스스로 형성하는 정신은 새로운 형태로 향하여 성숙해가고, 자신의 선행하는 세계라는 건물의 작은 부분들을 차례로 해체하는데, 세계의 동요는 개개의 징후를 통해서만 암시될 뿐이다.

der Leichtsinn wie die Langeweile, die im Bestehenden einreißen, die unbestimmte Ahnung eines Unbekannten sind Vorboten, daß etwas anderes im Anzuge ist.
현존하는 것에 만연하는 경박함 및 권태, 미지의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다른 어떠한 것이 임박해 있다는 전조다.

* 헤겔 철학이 가지고 있는 비서구적 방식이다. 모순을 긍정한다.
* 모순율이란, "어떤 것이 A이면서 '동시에' -A일 수 없다." 이다. 헤겔의 변증법에 따르면 "어떤 것이 A이면서 -A일 수도 있다." 여기에는 '동시에'가 빠진다. '시간'이 개입되는 것이다.

Dies allmähliche Zerbröckeln, das die Physiognomie des Ganzen nicht veränderte, wird durch den Aufgang unterbrochen, der, ein Blitz, in einem Male das Gebilde der neuen Welt hinstellt.
전체의 면모를 변경하지는 않는 이러한 점진적인 와해는 출현을 통해 중단되는데, 출현은 번개처럼 한 번에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드러내 준다.

* 여기에서의 Aufgang은 프랑스 혁명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징후가 누적되다가 한 번에 출현했다.
* <<정신현상학>>서문에는 헤겔의 핵심적인 술어들이 모두 등장한다.

Allein eine vollkommne Wirklichkeit hat dies Neue sowenig als das eben geborne Kind; und dies ist wesentlich nicht außer acht zu lassen. Das erste Auftreten ist erst seine Unmittelbarkeit oder sein Begriff.
그러나 이 새로운 것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완전한 현실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되겠다. 그 최초의 출현은 자신의 직접성 혹은 개념일 뿐이다.

* Begriff(개념)에 관해 알아두자.
1) 완전히 전개되어 자신과 합치된 것(=완전한 현실성)
= all developed and compassed self.

2) 미전개된 시초, 직접적인 것이되 완전한 현실성의 씨앗을 내포한 것
-> Unmittelbarkeit를 쓴 것은 이것의 의미를 가리킨다는 뜻이다.

* 이것을 Conception(임신, 수태의 의미 포함)으로 영역한 것은 아주 적절하다.

Sowenig ein Gebäude fertig ist, wenn sein Grund gelegt worden, sowenig ist der erreichte Begriff des Ganzen das Ganze selbst.
건물의 기초가 놓여졌을 때, 건물이 완성된 것이 아니듯, 전체의 개념에 도달했다 해서 전체 자체는 아니다.

Wo wir eine Eiche in der Kraft ihres Stammes und in der Ausbreitung ihrer Äste und den Massen ihrer Belaubung zu sehen wünschen, sind wir nicht zufrieden, wenn uns an dieser Stelle eine Eichel gezeigt wird.
우리가 떡갈나무의 힘있게 뻗어나간 줄기와 뻗어나간 가지와 무성한 잎을 보기를 원한다면, 후자 대신에 도토리를 제시할 때 우리는 만족하지 않는다.

So ist die Wissenschaft, die Krone einer Welt des Geistes, nicht in ihrem Anfange vollendet.
마찬가지로 정신세계의 왕관인 학은 학의 시초에서 완성되어 있지 않다.

* Anfang : 출발점, 미전개된 시초. "시원(始原)"
* 정신의 완성 측면에서 보면 Anfang은 미숙이다.
* 반면, 이전 시대를 살펴보자면 Anfang은 Resultat다.
* <<정신현상학>>에는 1) System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과 2) 전진하는 운동 안에 있는 사람이 있다. 인간이란 분열된 자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식"을 한다는 것이 이 의미다.

Der Anfang des neuen Geistes ist das Produkt einer weitläufigen Umwälzung von mannigfaltigen Bildungsformen, der Preis eines vielfach verschlungnen Weges und ebenso vielfacher Anstrengung und Bemühung.
새로운 정신의 시초는 다양한 교양 형식의 광범위한 변혁의 산물이고, 겹겹이 얽힌 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분발 및 노고의 대가다.

Er ist das aus der Sukzession wie aus seiner Ausdehnung in sich zurückgegangene Ganze, der gewordne einfache Begriff desselben.
그 단초는 그 계기와 확장으로부터 자기에로 되돌아온 전체요, 생성된 전체의 단순한 개념이다.

* Sukzession : 시간적 측면 / Ausdehnung : 공간적 측면, 따라서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고 펼쳐졌던"의 의미.
* 단순한 -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는 면에서 보면 단순한 것이다.

Die Wirklichkeit dieses einfachen Ganzen aber besteht darin, daß jene zu Momenten gewordne Gestaltungen sich wieder von neuem, aber in ihrem neuen Elemente, in dem gewordenen Sinne entwickeln und Gestaltung geben.
이러한 단순한 전체의 현실성은 그러나 저 계기로 형성된 형태들이 다시금 새롭게, 그러나 자신의 새로운 장면에서 [새롭게] 생성된 의미에 있어서 전개되고 형태가 주어진다는 것에서 성립한다.

* <<신곡>>에서 단테를 이끌고 가는 베르길리우스(천국까지 가본 사람)는 또 다른 단테다.
* Wirklichkeit : 실현태, 실현된 것.
* Anfang이 어떻게 전개되는 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 각각의 계기를 거쳐 Wirklichkeit로 간다.
* Anfang에서 Wirklichkeit로 가려면 각각의 조건들이 덧붙여져야 한다. 그때그때의 형태들이 생긴다. 여기에서 의미도 발생한다.

Indem einerseits die erste Erscheinung der neuen Welt nur erst das in seine Einfachheit verhüllte Ganze oder sein allgemeiner Grund ist, so ist dem Bewußtsein dagegen der Reichtum des vorhergehenden Daseins noch in der Erinnerung gegenwärtig.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의 최초의 출현은 단지 겨우 자신의 단순성 속에 덮여쌓여있는 전체 혹은 자신(전체)의 보편적 근거일 뿐이지만, 의식에게는 이에 반해서 선행하는 정재(삶)의 풍부함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현전한다.

* 보편적 : (막연한) 추상적 보편.
* 사람(존재자 일반)을 규정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 "有", "있음"이다. 이것은 헤겔 논리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Erinnerung : "안으로 집어넣는다"의 의미. 내재화.
* dialog를 통해 틀린 것은 폐기하고 옳은 것은 내재화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변증법이다. 변증법적 지양이란, 서로 모순돼 보이는 것의 상위 레벨에서 그것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헤겔 역사 철학의 기본 개념이다.

Es vermißt an der neu erscheinenden Gestalt die Ausbreitung und Besonderung des Inhalts; noch mehr aber vermißt es die Ausbildung der Form, wodurch die Unterschiede mit Sicherheit bestimmt und in ihre festen Verhältnisse geordnet sind.
의식은 새로이 출현하는 형태에서 내용의 전개와 특수화가 없음을 아쉬워한다; 더우기 그러나 의식은, 그것(형식의 완비)을 통해서 구별이 확실하게 규정되고 형식의 확고한 관계에로 정립되는 형식의 완비가 없음을 아쉬워한다.

Ohne diese Ausbildung entbehrt die Wissenschaft der allgemeinen Verständlichkeit, und hat den Schein, ein esoterisches Besitztum einiger Einzelnen zu sein; - ein esoterisches Besitztum: denn sie ist nur erst in ihrem Begriffe oder ihr Innres vorhanden; einiger Einzelnen: denn ihre unausgebreitete Erscheinung macht ihr Dasein zum Einzelnen.
이러한 [형식의] 완비가 없으면, 학은 보편적 오성성(이해가능성, 이해)을 결여한다. 그리고 몇몇의 개인의 비교(秘敎)적 소유물이라는 가상을 가지게 된다; - 비교적 소유물 : 왜냐하면 학이 단지 겨우 자신의 개념 안에 있거나 혹은 자신의 내적인 것만이 현전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개되지도 않은채 출현하여 정재를 개별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 Verstand : 오성 / Vernunft : 이성 / intellekt : 지성.
* "오성적 독단" : 1) A와 B는 다르다. 2) A와 B는 다르기는 하나 C라고 하는 전체의 계기들이다. 2의 태도를 인정하지 않고 1만을 고집하는 태도.

Erst was vollkommen bestimmt ist, ist zugleich exoterisch, begreiflich, und fähig, gelernt und das Eigentum aller zu sein.
비로소 완전히 규정된 것이어야만 공교(公敎)적이고, 파악될 수 있고, 그리고 배워서 모든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있다.

Die verständige Form der Wissenschaft ist der allen dargebotene und für alle gleichgemachte Weg zu ihr, und durch den Verstand zum vernünftigen Wissen zu gelangen ist die gerechte Foderung des Bewußtseins, das zur Wissenschaft hinzutritt; denn der Verstand ist das Denken, das reine Ich überhaupt; und das Verständige ist das schon Bekannte und das Gemeinschaftliche der Wissenschaft und des unwissenschaftlichen Bewußtseins, wodurch dieses unmittelbar in jene einzutreten vermag.
학의 [이해하기 쉬운] 오성적 형식은 모든이에게 제시된,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 평탄하게 만들어진 학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오성을 통하여 이성적 지에로 도달하려 하는 것은, 학으로 지향하는(학에 뜻을 두고 있는) 의식의 정당한 요구다; 왜냐하면 오성은 사유 즉, 순수자아 일반이기 때문이요, 오성적인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이고 학과 비학적 의식의 공통된 것이어서 그것을 통해 후자는 직접 전자(학)에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 순수 자아 일반- : 칸트가 규정한 것이다.

Die Wissenschaft, die erst beginnt, und es also noch weder zur Vollständigkeit des Details noch zur Vollkommenheit der Form gebracht hat, ist dem Tadel darüber ausgesetzt.
학은 처음으로 시작하고, 그에 따라 세부 항목들의 완전함(충실함)에도, 형식의 완비에도 가져오지 못한 학은 그런 점에서 비난에 내맡겨져 있다.

Aber wenn dieser ihr Wesen treffen soll, so würde er ebenso ungerecht sein, als es unstatthaft ist, die Foderung jener Ausbildung nicht anerkennen zu wollen.
그러나 후자가 학의 본질을 겨냥한 것이라면, 그 비난은 저 [형식의] 완비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부적절한 것만큼이나 부당한 것이다.

* 자 그럼 어떤 비난을 받고 있는지, 그런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앞으로 전개될 것이다.
*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고 나면, 칸트, 마르크스를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정신현상학" 관련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Dieser Gegensatz scheint der hauptsächlichste Knoten zu sein, an dem die wissenschaftliche Bildung sich gegenwärtig zerarbeitet und worüber sie sich noch nicht gehörig versteht.
이러한 대립은, 현대의 학적 교양이 해결하려고 애쓰는 그리고 장애에 관하여 아직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은 가장 주요한 쟁점(장애)처럼 보인다.

* ebenso ~ als ~ : ~ 만큼이나 딱 ~ 하다.
* Knoten : 쟁점, 착종점.
* "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Anfang에서 경험과 계기를 거쳐 절대적 정신에 이르는 것이다.
* Romantiker는 형식의 완비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열정적 태도만 요구한다.
* 헤겔의 출발점이야말로 낭만주의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이를 "낭만주의의 합리화"라고 말했다. 여기서 낭만주의는 내용을 가리키며 합리화란 바로 형식의 완비를 가리킨다. 따라서 헤겔의 작업은 "낭만주의와 계몽주의의 지양, 통일"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 계몽주의는 정서를 배제한다. 계몽주의는 목적이 없다. 그 과정에서 철저히 오성적 태도로 사물을 분별하고 정리정돈하면 끝이다. 프랑스 철학에 관해 흔히 갖고 있는 편견이 있다. 프랑스 철학은 낭만적인 것과 거리가 멀며 가장 기계적이다.
*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보라. 유리알 유희는 정신의 유희, 관조다. <<싯타르타>>는 정신현상학의 서사 버전이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나에 선행하는 텍스트에서 그 해답을 구한다.
* 여기에서 "이러한 대립"이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이다. 계몽주의, 낭만주의라고 할 때 "- 주의"는 학적 태도, 경향으로 이해해야 한다.

Der eine Teil pocht auf den Reichtum des Materials und die Verständlichkeit, der andre verschmäht wenigstens diese und pocht auf die unmittelbare Vernünftigkeit und Göttlichkeit.
한편은 소재의 풍부함과 오성성을 뽐내고, 다른 편은 오성성을 업신여기고 무매개적 이성성과 신성함(신성성)을 뽐낸다.

* 소재의 풍부함 :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가능한 모든 경우를 열거하라."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것이 소재의 풍부함이다.
* 오성성 :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
* 헤겔은 매개적 이성성을 중시한다. 변증법은 신비주의의 주문이 아님을 명심하라.
* 루시엥 골드만의 <<계몽주의의 철학>>은 낭만주의 입장에서 쓴 계몽주의에 관한 책이다. 훌륭하다.

Wenn auch jener Teil, es sei durch die Kraft der Wahrheit allein oder auch durch das Ungestüm des andern, zum Stillschweigen gebracht ist, und wenn er in Ansehung des Grunds der Sache sich überwältigt fühlte, so ist er darum in Ansehung jener Foderungen nicht befriedigt, denn sie sind gerecht, aber nicht erfüllt.
전자(계몽주의자들)의 부분이 진리의 힘만을 통해서건, 다른 후자(낭만주의자들)의 성급한 태도를 통해서건, 전자가 침묵에 이르렀다고 해도, 그리고 사상(事象)의 근거에 관하여 압도당했다고 느낀다 해도, 바로 그 때문에 저 요구에 관하여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 요구는 정당하지만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저 요구" : 학을 지향하는 정신의 정당한 요구, 세부의 충실과 형식의 완비.

Sein Stillschweigen gehört nur halb dem Siege, halb aber der Langeweile und Gleichgültigkeit, welche die Folge einer beständig erregten Erwartung und nicht erfolgten Erfüllung der Versprechungen zu sein pflegt.
그들(계몽주의자들)의 침묵은 절반은 승리에 기인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권태와 무관심에 기인하거니와, 그것은 끊임없이 자극된 기대와 그 약속의 충족이 일어나지 않은 결과인 것이 상례이다.

In Ansehung des Inhalts machen die andern sich es wohl zuweilen leicht genug, eine große Ausdehnung zu haben.
내용에 관하여 전자들은 거대하게 확장하는 것을 때때로 잘 충분히 수월하게 해낸다.

* 여기에서 "전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가네꼬 다께죠는 "셸링과 그 아류"로 본다. Metzke는 《Hegels Vorreden》에서 "낭만주의자들의 세부"로 본다. 거대한 학문 체계를 세우려는 낭만주의자들일 수도 있고 소재의 풍부함을 추구하는 계몽주의자로 볼 수도 있다. 해명이 모호한 부분이다.

Sie ziehen auf ihren Boden eine Menge Material, nämlich das schon Bekannte und Geordnete, herein, und indem sie sich vornehmlich mit den Sonderbarkeiten und Kuriositäten zu tun machen, scheinen sie um so mehr das übrige, womit das Wissen in seiner Art schon fertig war, zu besitzen, zugleich auch das noch Ungeregelte zu beherrschen, und somit alles der absoluten Idee zu unterwerfen, welche hiemit in allem erkannt, und zur ausgebreiteten Wissenschaft gediehen zu sein scheint.
그들은 다양한 소재, 즉 이미 숙지된 것과 정돈된 것을 그들의 지반으로 끌어오고 (기반으로 삼고), 그들은 특히 기묘한 것과 호기심있는 것에 관여하기 때문에 지(知)가 자기 나름대로 이미 알고 있는 그밖의 것을 더욱 많이 소유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와 동시에 또한 정리되지 않은 것에 정통한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에 따라 모든 것(萬有)은 절대적 이념에 종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써 모든 것에서 인식되고 확장된 학에로 성장(진척)된 것처럼 보인다.

* All is in flux 는 "만물은 흐른다" 보다는 "만유(萬有)는 흐른다"로 번역하는 것이 적당하다. All은 모든 존재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 "절대적 이념"은 모든 것을 상대하고 또 포괄하는 절대자를 의미한다. 절대신인 것이다. *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에서 피히테, 셸링 나오는 부분을 읽어볼 것.

Näher aber diese Ausbreitung betrachtet, so zeigt sie sich nicht dadurch zustande gekommen, daß ein und dasselbe sich selbst verschieden gestaltet hätte, sondern sie ist die gestaltlose Wiederholung des einen und desselben, das nur an das verschiedene Material äußerlich angewendet ist, und einen langweiligen Schein der Verschiedenheit erhält.
그러나 이 확장을 더 상세하게 고찰해 보면, 확장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 자신에게 여러가지 다른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성취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오히려 학장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의 몰형태적인 반복이거니와 그것(하나이고 동일한 것)이 상이한 소재에 외면적으로 적용되고, 상이함이라는 지루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 äußerlich : 내용과는 무관한
* Schein : 假象, 외관, 겉모습
* 칸트를 비판할 때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곤 한다.
* 피히테, 셸링을 이해하려면 칸트의 '주관'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Die für sich wohl wahre Idee bleibt in der Tat nur immer in ihrem Anfange stehen, wenn die Entwicklung in nichts als in einer solchen Wiederholung derselben Formel besteht.
이념은 그 자체로는 물론 참되나, [이념의] 전개가 동일한 공식의 그러한 반복에서만 성립한다면, 사실상 다만 항상 그것의 단초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 출발점에서 진전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Die eine unbewegte Form vom wissenden Subjekte an dem Vorhandenen herumgeführt, das Material in dies ruhende Element von außenher eingetaucht, dies ist so wenig, als willkürliche Einfälle über den Inhalt, die Erfüllung dessen, was gefodert wird, nämlich der aus sich entspringende Reichtum und sich selbst bestimmende Unterschied der Gestalten.
아는 주관에 의해 부동의 형식이 현전하는 것(다양한 소재들)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닌다면, 소재가 이 정지된 장면 속으로 외부에서부터 잠겨버리면, 이는 내용에 관한 자의적 착상과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것의 충족이 아니다. 즉, 자기로부터 생겨나는 풍부함(풍부한 내용)이 아니요, 형태에 관한 자기자신의 규정적 구별이 아니다.

* "아는 주관" : 칸트, 피히테의 '선험적 주관'
* "이 정지된 장면" : 형식.
* "부동의 형식" : 하나이고 동일한 것, 즉 공식.
* Subjekt : 주관/주체. 블로흐의 "Subjekt-Objekt"는 "주관-객관"으로 번역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주체를 가리킨다.

Es ist vielmehr ein einfarbiger Formalismus, der nur zum Unterschiede des Stoffes, und zwar dadurch kommt, weil dieser schon bereitet und bekannt ist.
그것은 오히려 단색의 형식주의이거니와 그것은 다만 소재의 구별에 이르기는 하나 과연 구별이 이미 준비되어 있고 숙지되어 있기 때문에만 [그 구별에] 이르렀을 뿐이다.

* 구별이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단조로운 것이다. 피히테는 변증법도 정-반-합의 공식으로 '형식적으로' 설명한다.
* 크리스티안 볼프의 형식주의 - 스피노자의 기하학의 방법론을 [기계적으로] 따른다.

Dabei behauptet er diese Eintönigkeit und die abstrakte Allgemeinheit für das Absolute; er versichert, daß die Ungenügsamkeit mit ihr eine Unfähigkeit sei, sich des absoluten Standpunktes zu bemächtigen und auf ihm festzuhalten.
거기에서 형식주의는 이러한 단조로움과 추상적 보편성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형식주의는 그것(단조로움과 추상적 보편성)과 더불어 불충분하다는 것이, 절대적 입각점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하고, 그것(입각점)을 고수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라고 단언한다.

Wenn sonst die leere Möglichkeit, sich etwas auf eine andere Weise vorzustellen, hinreichte, um eine Vorstellung zu widerlegen, und dieselbe bloße Möglichkeit, der allgemeine Gedanke, auch den ganzen positiven Wert des wirklichen Erkennens hatte, so sehen wir hier ebenso der allgemeinen Idee in dieser Form der Unwirklichkeit allen Wert zugeschrieben, und die Auflösung des Unterschiedenen und Bestimmten, oder vielmehr das weiter nicht entwickelte noch an ihm selbst sich rechtfertigende Hinunterwerfen desselben in den Abgrund des Leeren für spekulative Betrachtungsart gelten.
이전에는 어떤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상할 수 있다는 공허한 가능성이 하나의 표상을 반박하기에 충분했지만, 그리고 동일한 한갓된(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 가능성, 즉 보편적 사상이 현실적 인식의 적극적 전(全) 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마찬가지로 비현실성의 형식에 있는 보편적 이념에 비현실성이라는 모든 가치가 귀속됨을 보며, 구별된 것과 규정된 것의 해소(해체), 또는 오히려 구별된 것과 규정된 것의 더이상 전개되지도 않
고 더욱이 그 안에서 정당화되지도 않는 구별된 것과 규정된 것의 공허함의 심연으로 내팽겨치는 것을, 사변적인 고찰 방식으로 간주하는 것을 본다.

* 셸링은 어떠한가. "형식주의에는 이런 면도 있다."
* "leere Möglichkeit" : 형식주의
* 낭만주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Schwärmerei - 열광, 맹신, 광신, 열정적 태도.
* 사변 : 고도의 관조
* 엥겔스,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 “독일 관념론의 핵심적 문제는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이다.”

Irgendein Dasein, wie es im Absoluten ist, betrachten, besteht hier in nichts anderem, als daß davon gesagt wird, es sei zwar jetzt von ihm gesprochen worden, als von einem Etwas, im Absoluten, dem A = A, jedoch gebe es dergleichen gar nicht, sondern darin sei alles eins.
어떤 정재가 절대적인 것 안에 어떻게 있는지를 고찰하는 것은, 여기서는 그것에 대해 말해지는 다음과 같은 것에서만 성립하며, 지금은 그것에 대해 하나의 어떤 것에 대한 것으로서 얘기되고 있으나, [그런데] A는 A라는 절대적인 것 안에서는, 그러나 그와 같은 것(구별되는 것과 규정되는 것)은 전혀 없고 오히려 그(절대적인 것) 안에서 모든 것은 하나다.

* Dasein : 특정 시간, 공간에 처해있는 존재. 나, 여러분. 서양의 사상은 Dasein정재와 Absolute절대자의 극명한 구분, 이원론이다. 절대자의 세계는 Idea인데 여기에 가까워지기 위해 recollection이 필요하다. 이 두 경계에 서 있는 존재가 Jesus Christ다.
* 낭만주의는 태도를 중시한다.

Dies eine Wissen, daß im Absoluten alles gleich ist, der unterscheidenden und erfüllten oder Erfüllung suchenden und fodernden Erkenntnis entgegenzusetzen - oder sein Absolutes für die Nacht auszugeben, worin, wie man zu sagen pflegt, alle Kühe schwarz sind, ist die Naivität der Leere an Erkenntnis.
절대적인 것 안에서 모든 것은 같다는, 이 [딱] 하나의 지식을 (고작 그 지식 하나 갖고서) 구별하는 그리고 충족된 [인식에게] 혹은 충족을 추구하는 그리고 요구하는 인식에게 대립시키는 것은, 혹은 자신의(지의) 절대자를, 그안에서 사람들이 말하곤 하듯이, 모든 소가 검은 밤이라고 언표하는 것은 인식에서의 공허함의 소박성이다.

* 셸링을 비판하는 부분이다.

- Der Formalismus, den die Philosophie neuerer Zeit verklagt und geschmäht, und der sich in ihr selbst wieder erzeugte, wird, wenn auch seine Ungenügsamkeit bekannt und gefühlt ist, aus der Wissenschaft nicht verschwinden, bis das Erkennen der absoluten Wirklichkeit sich über seine Natur vollkommen klar geworden ist.
요즘의 철학이 고발하고 매도했던 그리고 그것(형식주의)이 그것(요즘의 철학) 자체 안에서 다시 생겨난(출생한) 형식주의는, 그것의 불충분함이 숙지되고 감지되어 있다 하여도, 절대적 현실성에 대한 인식이 자신의(인식의) 본성에 관해서 완전히 명료하게 자각할 때까지는 학으로부터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 absoluten Wirklichkeit : 정재와 절대자의 학적 연관을 찾고자 하는 의도.

- In der Rücksicht, daß die allgemeine Vorstellung, wenn sie dem, was ein Versuch ihrer Ausführung ist, vorangeht, das Auffassen der letztern erleichtert, ist es dienlich, das Ungefähre derselben hier anzudeuten, in der Absicht zugleich, bei dieser Gelegenheit einige Formen zu entfernen, deren Gewohnheit ein Hindernis für das philosophische Erkennen ist.
보편적 표상(일반적 상식)은, 만일 그것이 표상의 실현의 시도인 것에 선행한다면, 후자(표상의 실현)의 파악을 쉽게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편적 표상의 개요를 여기에 예시(豫示)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며, 동시에 이번 기회에 그것의 관용(慣用)이 철학적 인식에 장애가 되는 몇가지 형식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 "가르칠 것을 생각해서 공부해라."
* Rück : (몸을 뒤로) 당김. 잠깐 멈추어서 보면.
* 서양 문헌에서 sicht(보는 것)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봄Seeing"의 철학으로서의 서양 근대 사상을 떠올려야 한다.
* 형식주의를 [비학적 인식이라고] 비판했는데, 이제 나의 진리론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 "das Absolute ist Subjekt." "절대자는 주체다."

==== 여기에서 섹션이 바뀐다 ======

Es kömmt nach meiner Einsicht, welche sich durch die Darstellung des Systems selbst rechtfertigen muß, alles darauf an, das Wahre nicht als Substanz, sondern ebensosehr als Subjekt aufzufassen und auszudrücken.
체계 자체의 서술을 통해서만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나의 견해에 따라 [볼 때], 모든 것은, 진리를 실체로서가 아니라(실체로서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주체로서 파악하고 표명하는 것에 달려 있다.

* 이탤릭으로 표기된 부분이 중요하다.
* Yovel이 주석서 16-19쪽에서 주체로서의 절대자를 해명하듯, 월터 카우프만이 그러하듯, <<정신현상학>>을 해석하는 모든 연구자는 이 부분을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 코제브와 장 이뽈리뜨의 해석이 주류이기는 하다.

Zugleich ist zu bemerken, daß die Substantialität sosehr das Allgemeine oder die Unmittelbarkeit des Wissens als diejenige, welche Sein oder Unmittelbarkeit für das Wissen ist, in sich schließt.
동시에 실체성은, 지에 대하여 무매개성인 존재와 같은 것을 자기안에 포함하듯이, 지 자체의 보편적인 것 혹은 무매개성을 포함한다는 것이 주목되어야 한다.

* '무매개성'이란 접근이 안된다는 뜻이다.
* 실체성에 포함되는 두 가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 여기서 '보편적'이란 단순하다는 뜻이다.

- Wenn, Gott als die eine Substanz zu fassen, das Zeitalter empörte, worin diese Bestimmung ausgesprochen wurde, so lag teils der Grund hievon in dem Instinkte, daß darin das Selbstbewußtsein nur untergegangen, nicht erhalten ist, teils aber ist das Gegenteil, welches das Denken als Denken festhält, die Allgemeinheit, dieselbe Einfachheit oder ununterschiedne, unbewegte Substantialität, und wenn drittens das Denken das Sein der Substanz als solche mit sich vereint und die Unmittelbarkeit oder das Anschauen als Denken erfaßt, so kömmt es noch darauf an, ob dieses intellektuelle Anschauen nicht wieder in die träge Einfachheit zurückfällt, und die Wirklichkeit selbst auf eine unwirkliche Weise darstellt.
신을 유일한 실체로서 파악하는 것이 그 안에서 이러한 규정이 표명되었던 동시대인들을 격분케했다면 그 근거(이유)는 한 편으로는 이 점에서 이 [규정] 안에서는 자기의식은 단지 몰락해 있을 뿐이요, 유지되지 않는다는 직각적(直覺的) 확신에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러나 사유로서의 사유를 고수하고 보편성 그 자체를 고수하는 반대[입장]는 동일한 단순성 혹은 구별 없고 운동 없는 실체성이다. 셋째로 사유가 실체 그 자체의 존재를 자기와 합일시켜서, 무매개성 혹은 직관을 사유로 이해한다면, 더욱이 이런 지적 직관이 타성적인 단순성으로 되돌아가지 않는지 아니면 현실성 자체로 비현실적 방식으로 서술하는지가 문제된다(중요하다).

* 세 가지를 비판한다.
1) 스피노자 - 지에 대한 무매개적 실체성
2) 칸트, 피히테 - 추상적 인식의 무매개성
3) 셸링 - 신비적 직관. 무매개적 실체를 인정하며 그것을 없애려고 지적 직관을 이용한다.

* 피에르 마슈레(진태원 역), <<헤겔 또는 스피노자>>를 참조할 것.
* 케인즈,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에 "데카르트가 멈춰선 곳에서 스피노자가 시작했으며 포괄적인 통일로 해소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 헤겔은 스피노자에 대해서는 저강도 전략을 쓴다. 동시대인들이 격분한다고 하면 엄청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얍삽한 레토릭이다.
* 근대인이 피곤한 것은 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적인 인간이 등장하면 열광한다. 파시즘도 여기에서 나온다.
* 헤겔 철학을 한 마디로 말하면, "자각적 정신을 갖고 살자."는 것이다.
* 이 부분을 이해해야 힐쉬베르거 철학사의 칸트-헤겔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 '운동 없는'에서의 운동이란 물리적 의미가 아니라, 사유 속에서 계속 무언가를 전개하는 것, 즉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의 뜻이며 따라서 운동이 없다는 것은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 직관(Anschauung)이란 말이 나오면 이것이 칸트의 직관인지 지적 직관(한 번에 때려잡는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 칸트의 직관은 시간, 공간 개념이 개입한 것이다. 감관으로 12개의 카테고리에 체 치듯, 수동적으로 감각 데이터를 기다리는 것이다. 벤야민이 "미디어가 달라지면 직관도 달라진다."고 했는데 칸트의 직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간 공간 개념이 바뀐다는 뜻이다.

* 실체성에 대립하는 사유(자기의식적 사유)가 있다. 사유가 실체성에 개입하여 실체성을 움직인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Gestalt(형태)를 내놓는다. 반성(부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유의 매개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이 "현실성(Wirklichkeit)"이라고 볼 수 있다.
* 아도르노의 글이 꽤 난해한데 헤겔의 현실성 개념을 숙지하면 에세이처럼 읽을 수 있다.

Die lebendige Substanz ist ferner das Sein, welches in Wahrheit Subjekt, oder, was dasselbe heißt, welches in Wahrheit wirklich ist, nur insofern sie die Bewegung des Sich-selbst-setzens, oder die Vermittlung des Sich-anders-werdens mit sich selbst ist.
생동하는(사유의 대상이 되는) 실체는 더 나아가서 실체가 자기자신의 정립의 운동인 한에서, 또는 자기가 타자로 되는 것의 자기자신의 매개인 한에서 주체인 존재요, 또는 같은 말이지만 참으로 현실적인 존재다.

* 헤겔은 이러한 진리주체론을 역사철학에 그대로 가져다 쓴다. '생동하는 실체'는 '생동하는 인간'으로 볼 수 있다.
* 장 이뽈리뜨는 "헤겔 철학은 인식론이자, 존재론이자, 역사철학이다."라고 했다.
* 오늘 배운 내용을 생각하며, 여러분이 갖고 있는 철학사 책에서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를 살펴 보라.
* 근대는 불행의 시대다. 데카르트가 자각적 인간을 선보이면서 그 불행이 시작되었다.

Sie ist als Subjekt die reine einfache Negativität, eben dadurch die Entzweiung des Einfachen, oder die entgegensetzende Verdopplung, welche wieder die Negation dieser gleichgültigen Verschiedenheit und ihres Gegensatzes ist; nur diese sich wiederherstellende Gleichheit oder die Reflexion im Anderssein in sich selbst - nicht eine ursprüngliche Einheit als solche, oder unmittelbare als solche, ist das Wahre.
생동적 실체는 주체이기 때문에 순수한 단순한 부정성이요, 바로 그것 때문에 단순한 것을 둘로 쪼개는 것 또는 다시 이런 몰교섭적 차이와 차이의 대립의 부정인 대립하는 이중화다. 이렇게 스스로를 회복하는 동등성 또는 타자존재에서 자기자신으로의 반성(되돌아옴) 만이 - 원초적 통일 그 자체 또는 무매개적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 진리이다.

* Negativität : 1) 순수하고 단순한 부정성 2) 단순한 것을 분열시키는 작용
* einfache : 꽉 막힌 단순한 놈
* "나는 주체다." = "나는 나를 부정(의심)할 수 있다."
* 실존 철학은 부정의 철학이다.
* 분열 => 이중화(분열된 자아를 관조함) ----> 삼중성(정반합의 표현 대신 이 말을 사용하라.)
* "타자존재에서 자기자신으로의 반성" : 변증법적 귀환

Es ist das Werden seiner selbst, der Kreis, der sein Ende als seinen Zweck voraussetzt und zum Anfange hat, und nur durch die Ausführung und sein Ende wirklich ist.
진리는 자기자신의 생성이요, 자신의 종국을 자신의 목적으로서 전제하고 단초로 삼고 그리고 [목적의] 실현과 자신의 종국을 통해서만 현실적인(현실성을 갖게 되는) 원환이다.

* 이 부분은 외울 것.
* "자기자신의 생성" = 자기자신이 되어가는 과정, 자기자신을 생성하는 과정, 자기 도야 Bildung.
* A --(Negation)--> - A --(Reflexion)--> + A
* 헤겔 철학의 도식이다. 헤겔과 회의주의의 중요한 연결 고리.
* 질적으로 고양된 자기(목적)는 동시에 질적으로 고양되지 않은 자기(출발, 단초)다.
* 여기서의 원환(동그라미)은 용수철 운동 같은 원, 즉 진전의 과정으로서의 개곡선인 원이다.

Das Leben Gottes und das göttliche Erkennen mag also wohl als ein Spielen der Liebe mit sich selbst ausgesprochen werden; diese Idee sinkt zur Erbaulichkeit und selbst zur Fadheit herab, wenn der Ernst, der Schmerz, die Geduld und Arbeit des Negativen darin fehlt.
신의 생명과 신적 인식은 따라서 물론 자기자신과의 사랑의 유희로서 언표되어도 좋겠다. 이러한 이념에 부정적인 것의 진지함, 고통, 인내, 노고가 없다면 이러한 이념은 경건함에로 그리고 진부함에로까지 전락한다.

* Spiel : <<유리알 유희>>의 그 유희다.
* 경건함 : 아무 생각없이 믿는 것.
* 신적 이념이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과정을 적은 것이 역사 철학이다.

An sich ist jenes Leben wohl die ungetrübte Gleichheit und Einheit mit sich selbst, der es kein Ernst mit dem Anderssein und der Entfremdung, so wie mit dem Überwinden dieser Entfremdung ist.
즉자적으로 저 [신의] 생명은 물론 자기자신과의 투명한 상등성과 동일성이요, 타자존재와 소외는 진지함이 아니고, 이러한 소외의 극복도 그러하다.

Aber dies An-sich ist die abstrakte Allgemeinheit, in welcher von seiner Natur, für sich zu sein, und damit überhaupt von der Selbstbewegung der Form abgesehen wird.
그러나 이러한 즉자(신적 생명)는 추상적 보편성이요, 대자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그것의 본성이 그에 따라서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형식의 자기운동이 도외시되어 있다.

Wenn die Form als dem Wesen gleich ausgesagt wird, so ist es eben darum ein Mißverstand, zu meinen, daß das Erkennen sich mit dem An-sich oder dem Wesen begnügen, die Form aber ersparen könne; - daß der absolute Grundsatz oder die absolute Anschauung, die Ausführung des erstern oder die Entwicklung der andern entbehrlich mache.
형식은 실재와 같은 것이라고 언명된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식은 즉자 또는 실재로 만족하는 반면에, 형식은 생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 절대적 근본명제 또는 절대적 직관이, 전자의 실현(상세한 수행)이나 후자의 전개는 필요하지 않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Gerade weil die Form dem Wesen so wesentlich ist, als es sich selbst, ist es nicht bloß als Wesen, d.h. als unmittelbare Substanz, oder als reine Selbstanschauung des Göttlichen zu fassen und auszudrücken, sondern ebensosehr als Form und im ganzen Reichtum der entwickelten Form; dadurch wird es erst als Wirkliches gefaßt und ausgedrückt.
그것(실재)이 자기자신에게 본질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형식은 실재에게 본질적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무매개적 실체, 또는 신적인 것의 순수한 자기직관으로 파악되고 표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형식으로서도 파악되고 표명되어야만 하고, 전개된 형식의 전체 내용의 풍부함에서도 파악되고 표명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현실적인 것으로서 파악되고 표명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소박한 실체성'이라는 말이 나오면 파기해야 마땅한 것을 가리킨다. 소박한 실체란 즉자적 단계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헤겔의 절대적 진리는 노자 도덕경의 道 개념과 유사한 점이 많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flux인 것이기 때문이다. 루카치는 "철학은 분열에 대한 대답이다."라고 했다. 의식이 분열한다는 것은 세상물정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즉 知Wissen의 단계다. 외화/소외를 경험하고 나서 겸손과 자기반성(Self-Reflexion이란 Bildung, 즉 교양)이 더해지면 "회복된 실체성"이 된다. 알것 다 알면서도 소박한 것. 예수가 "주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나이다."라고 했을 때 '소박한 실체성'에 관해 이야기 한 것이다. 서양 근대인이 처해 있는 상황이란 절대적 기준이 없는 사회다. 따라서 자기 분열에 결연하게 맞서서 외화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진리주체론이다. 현상학이 추구하는 것은 episteme가 아니라 sophia 또는 phronesis다.

Das Wahre ist das Ganze. Das Ganze aber ist nur das durch seine Entwicklung sich vollendende Wesen.
진리는 전체다. 그러나 전체란 자기 전개를 통해 스스로를 완성하는 실재다.

Es ist von dem Absoluten zu sagen, daß es wesentlich Resultat, daß es erst am Ende das ist, was es in Wahrheit ist; und hierin eben besteht seine Natur, Wirkliches, Subjekt, oder Sich-selbst-werden, zu sein.
절대자에 관해서는 우리는 '절대자는 본질적으로 결과이다'라고, 즉 '절대자는 종국에서야 비로소 절대자의 참된 모습이 드러난다'라는 것이 말해져야 한다. 바로 이점에 현실적인 것, 주체, 자기 형성이라고 하는 절대자의 본성이 성립한다.

* 고전을 읽으며 현재 상황에 맞게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 시대의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며 읽어야 한다. 헤겔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은 왜 이 자리에 절대자라고 쓰셨나요?" 우리는 절대자란 존재가 신이 아닌, 모든 것을 겪고 다 이긴 존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So widersprechend es scheinen mag, daß das Absolute wesentlich als Resultat zu begreifen sei, so stellt doch eine geringe Überlegung diesen Schein von Widerspruch zurecht.
절대자가 본질적으로 결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해도, 그러나 약간의 숙고는 이러한 모순의 외관을 수정한다.

Der Anfang, das Prinzip, oder das Absolute, wie es zuerst und unmittelbar ausgesprochen wird, ist nur das Allgemeine.
단초, 원리 혹은 최초의 무매개적으로 언표된 절대자는 고작 [추상적] 보편자일 뿐이다.

* "추상적"이라는 것은 非진리라는 뜻이다.
*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에서는 arche(원질)에 관한 것은 있었으나 prinzip이 없다.

Sowenig, wenn ich sage: alle Tiere, dies Wort für eine Zoologie gelten kann, ebenso fällt es auf, daß die Worte des Göttlichen, Absoluten, Ewigen u.s.w. das nicht aussprechen, was darin enthalten ist; - und nur solche Worte drücken in der Tat die Anschauung als das Unmittelbare aus.
내가 '모든 동물들'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이 동물학으로 간주될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신적인 것,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 등등이라는 말들이 그 안에 포함돼 있는 것을 언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임은 명백하다 - 그리고 다만 그러한 단어들은 사실상 무매개적인 것으로서의 직관을 표명할 뿐이다.

* 학은 보편언명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Was mehr ist, als ein solches Wort, der Übergang auch nur zu einem Satze, ist ein Anderswerden, das zurückgenommen werden muß, ist eine Vermittlung.
그러한 단어 이상인 것은, 단순히 하나의 명제로의 이행조차도 타자로 된 것을 포함하고 있거니와 그것(타자로 된 것)은 철회돼야 할 것이요, 이 이행은 [결국] 하나의 매개이다.

* "절대자는 거시기다."라고 했다 치자. 그러면 그 수준 이상이라는 말이 아니라 거기에 다른 뜻이 덧붙여진다는 말이다. 타자가 되는 것이다.

Diese aber ist das, was perhorresziert wird, als ob dadurch, daß mehr aus ihr gemacht wird denn nur dies, daß sie nichts Absolutes und im Absoluten gar nicht sei, die absolute Erkenntnis aufgegeben wäre.
매개는 그러나 [무매개적 직관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기피되는 것이거니와, 매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것 안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매개로부터 그 이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통하여, 절대적 인식[자체]이 단념되기나 할 것처럼 기피한다.

Dies Perhorreszieren stammt aber in der Tat aus der Unbekanntschaft mit der Natur der Vermittlung und des absoluten Erkennens selbst.
이러한 기피는 그러나 사실상 매개의 본성과 절대적 인식 그 자체를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 진리는 무한자인데 "유한자를 매개로 하여 운동해가는 무한자"이다. 역사에서 이벤트1, 이벤트2, 이벤트3 이렇게 각각의 유한자가 있다. 이것을 매개로 세계 정신이 전진해 간다.
* manuscript 게시판에 올려둔 "헤겔 철학 개념 일별"을 읽어보라. 시험 보겠다.

Denn die Vermittlung ist nichts anders als die sich bewegende Sichselbstgleichheit, oder sie ist die Reflexion in sich selbst, das Moment des fürsichseienden ich, die reine Negativität oder, auf ihre reine Abstraktion herabgesetzt, das einfache Werden.
매개는 스스로 운동하는 자기자신과의 상등성이요, 또는 매개는 자신에로 [귀환하는] 반성이요,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자아라고 하는 계기요, 순수한 부정성이요 또는 부정성을 순수하게 추상해서 말하면, 단순한 생성이기 때문이다.

* einfache는 이탤릭으로 처리돼 있다. 여기서 '단순함'이란 진리와 거리가 먼 단순함이 아니라 '중첩된', 그러니까 변증법적 생성의 의미다.
* 앞의 말을 풀어서 다른 말로 설명하는 이런 글쓰기 방법을 익혀라.
* 사전 읽기를 습관화하라. 단어로 말할 것을 명제로, 명제로 말할 것을 추론으로 하다 보면 그것이 바로 글이 된다.      

고대 그리스 문화의 구조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1),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2)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3),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와 자아, 천공의 불빛과 내면의 불꽃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서로에 대해 결코 낯설어지는 법이 없다. 그 까닭은 불이 모든 빛의 영혼이며, 또 모든 불은 빛 속에 감싸여져 있기 때문이다.4) 이렇게 해서 영혼의 모든 행위는 의미로 가득 차게 되고, 또 이러한 이원성 속에서도 원환적 성격을 띠게 된다.5) 다시 말해 영혼의 모든 행위는 하나같이 의미 속에서, 또 의미를 위해서 완결되는 것이다. 영혼의 행위가 이처럼 원환적 성격을 띠는 이유는 행동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6), 영혼은 자기자신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기 때문이고, 또 영혼의 모든 행위는 영혼 그 자체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에서 독립적으로 되면서 자기자신의 중심점을 발견하고서는, 이로부터 자신의 둘레에 하나의 완결된 원을 그리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본래 “고향을 향한 향수7)”이자, “어디서나 자기 집에 머물고자 하는 충동”이라고 노발리스8)는 말한 바 있다. - 게오르그 루카치(지음), 반성완(옮김), <<루카치 소설의 이론>>, 심설당, 1998, 25쪽.

1) [새로운 것이 나와도 스스로에게 기인한 것이기에] 익숙해 있으며
2) 전유한다. appropriation / 소외가 없다.
3) zu Hause : 집에 있는 / bei sich selbst : 자기 곁에 있는 Beisichselbstsein : 자기곁에있는존재 -> 마치 "거울 앞에 선 누이" 같은.
4) 주관과 객관의 합일
5) "진리는 원환의 과정이다." 자아와 천공이 서로에게 근거가 되고 맞물려 돌아간다.
6) "운동하는 중에도" -> "개념이 운동하면서도"
7) Heimat
8) 로만티커

* 헤겔은 근본적으로 낭만주의자다. 철학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낭만주의자들과 다른 것은 진리의 획득 방법이다. 헤겔 철학을 공부하려면 반드시 낭만주의를 먼저 공부해야 한다.

서사시의 시대
그렇기 때문에 삶의 형식으로서뿐만 아니라, 문학의 형식을 규정하고 또 그 내용을 부여하는 것으로서의 철학이란, 언제나 내부와 외부 사이의 균열1)을 말해 주는 하나의 징후이며, 또 자아와 세계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고 영혼과 행위는 서로 일치하지 않음을 말해 주는 하나의 표지이다. 행복한 시대가 아무런 철학도 갖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까닭에서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이러한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철학자이자 또 모든 사람이 각각의 철학이 지니는 유토피아적 목표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2) 왜냐하면 이때에는 행복한 시대의 지도를 그리는 일 이외에 참된 철학의 과제란 달리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깊은 내면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충동3)이, 그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영겁의 시간 이래로 자신에게 주어진 형식, 즉 구원을 가져다 주는 상징으로서 자신을 감싸고 있는 형식에 대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규정해 보는 일4)이 아니라면 선험적 좌표(transz-endentaler Ort)5)라는 철학의 원초적 문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같은 책, 26쪽.

1) '분열'로 고쳐 읽어라.
2) 빈델반트 - "로마시대는 安心立命의 시대다." -> 철학이 없는 시대였음, 스토아 철학? 그것은 처세술에 가까웠다.
3) 존재에 관한 물음
4) 철학적 과제
5) 경험 이전의 좌표, 형이상학적 좌표

* 주객 미분의 상태는 "소박한 실체성"의 단계다. 즉 고대란 "소박한 인륜"의 시대다. 근대 이후는 "고양된/도야된 인륜"의 시대다. 헤겔이 <<법철학>>에서 말하는 바다.
* 소설이란 무엇인가. 루카치는 "파편화된 인간 모습을 그대로 [주절주절]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Das Ich, oder das Werden überhaupt, dieses Vermitteln ist um seiner Einfachheit willen eben die werdende Unmittelbarkeit und das Unmittelbare selbst. - Es ist daher ein Verkennen der Vernunft, wenn die Reflexion aus dem Wahren ausgeschlossen und nicht als positives Moment des Absoluten erfaßt wird.
자아 또는 생성 일반, 이러한 매개작용은 매개작용의 단순성이기 때문에 바로 생성하는 무매개성이요, 무매개적인 것 그 자체이다. - 그것은 그런 까닭에, 반성이 진리로부터 배제되고 절대적인 것의 적극적(중요한) 계기로서 되지 않는다면, 이성의 오해다.

* 여기서 자아는 순수 자아, 아무런 규정도 되지 않은 상태다. 순수자아와 생성일반이 같다고 했는데 헷갈린다. 어떻게 같을까. 헤겔 철학에서 완전하게 운동하지 않는 자아는 없다. 본성상 어쨌든 운동을 한다. 단순한 자아가 운동을 시작하면 매개작용이 시작된다. 최초 단계에는 아주 단순하다. 얼핏보면 무매개적인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생성하는 것이다.
* "매개작용의 단순성 때문에" = "매개작용이 아주 단순한 상태에 있을 때는"
* 이성의 오해 = 이성을 오해한 [것이다]
* 칸트는 오성Verstand과 이성Vernunft을 구분한다. 오성은 경험에 의해 주어진 것들(데이터)을 [직관의 형식으로 받아들여] 조직하고 [오성의 카테고리가] 질서를 부여한다. 이성은 경험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종합의 능력, 즉 인식의 선험적 원천들로 이루어진 총체다. -> 헤겔도 이러한 개념 규정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이성은 절대자와 동일시할 수 있다.
* 진리의 계기가 반성인데, 일체의 반성도 없다면 진리 개념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 무매개적인 것은 없다는 뜻은, 세상과 단절되어 외따로 혼자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Sie ist es, die das Wahre zum Resultate macht, aber diesen Gegensatz gegen sein Werden ebenso aufhebt, denn dies Werden ist ebenso einfach und daher von der Form des Wahren, im Resultate sich als einfach zu zeigen, nicht verschieden; es ist vielmehr eben dies Zurückgegangensein in die Einfachheit.
반성은 진리를 결과로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자신의 생성에 대한 이러한 대립은 역시 폐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생성도 똑같이 단순하며 따라서, 단순한 것으로서 성과에서 나타난다고 하는 진리의 형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생성은 오히려 바로 이러한 단순성에로 귀환한 존재인 것이다.

* 반성을 통해서만 진리를 얻을 수 있다.
* aufheben은 지양하다의 뜻이다. 헤겔 철학의 술어로서 'aufheben'은 보존과 폐기의 의미를 모두 지닌 지양이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지양하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폐기하다'가 적절하다. 왜냐면 아직 "현상학" 단계(앞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고유의 술어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 Wenn der Embryo wohl an sich Mensch ist, so ist er es aber nicht für sich; für sich ist er es nur als gebildete Vernunft, die sich zu dem gemacht hat, was sie an sich ist. Dies erst ist ihre Wirklichkeit.
태아는 물론 즉자적으로는 인간이긴 하지만 그러나 대자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대자적으로 태아가 인간인 것은, 이성이 자기를 즉자적인 것으로 만든 이성으로서만 그러한 바이다. 이것이(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이성의 현실성이다.

* "이것이 비로소 이성의 현실성이다." = "이성이 현실적으로 드러났다."
* nur als gebildete Vernunft -> 이거면 인간이다. 그런 뜻.
* "형성된 이성" = "운동을 통해, 반성을 통해, 성과를 이룬, 자기 전개하는 이성"
* 그 바로 뒷부분은 "형성된 이성"을 풀어서 다시 쓴 것이다. 같은 내용, 즉 운동 과정을 설명한다. "형성된 이성이 있는데, 이 이성은 이성이 즉자적으로 있는 바로 되어간다. 즉자 an sich => 대자 für sich => 즉자(대자+즉자) an und für sich

Aber dies Resultat ist selbst einfache Unmittelbarkeit, denn es ist die selbstbewußte Freiheit, die in sich selbst ruht, und den Gegensatz nicht auf die Seite gebracht hat und ihn da liegen läßt, sondern mit ihm versöhnt ist.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그 자체로 단순한 무매개성인데, 왜냐하면 성과가 자기의식적 자유이고, 이 자유는 자기 안에 안주해 있고 대립된 것을 몰아내서 그대로 [몰아낸 채로] 거기에 방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립자와 화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 자유는 정치,사회적 자유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자유다. 즉, 고향으로 돌아간 존재.
* 헤겔의 진리주체론이다. 이제 목적론이 나온다. 칼 포퍼가 그리도 싫어하고 반대했던 그 목적론 말이다.

Das Gesagte kann auch so ausgedrückt werden, daß die Vernunft das zweckmäßige Tun ist. Die Erhebung der vermeinten Natur über das mißkannte Denken, und zunächst die Verbannung der äußern Zweckmäßigkeit hat die Form des Zwecks überhaupt in Mißkredit gebracht. Allein, wie auch Aristoteles die Natur als das zweckmäßige Tun bestimmt, der Zweck ist das Unmittelbare, Ruhende, das Unbewegte, welches selbst bewegend ist, so ist es Subjekt.. Seine Kraft zu bewegen, abstrakt genonmen, ist das Für-sich-sein oder die reine Negativität. Das Resultat ist nur darum dasselbe, was der Anfang, weil der Anfang Zweck ist; - oder das Wirkliche ist nur darum dasselbe, was sein Begriff, weil das Unmittelbare als Zweck das Selbst oder die reine Wirklichkeit in ihm selbst hat. Der ausgeführte Zweck oder das daseiende Wirkliche ist Bewegung und entfaltete Werden; eben diese Unruhe aber ist das Selbst; und jener Unmittelbarkeit und Einfachheit des Anfangs ist es darum gleich, weil es das Resultat, das in sich Zurückgekehrte, - das in sich Zurückgekehrte aber eben das Selbst, und das Selbst die sich auf sich beziehende Gleichheit und Einfachheit ist.

상술한 것(진리주체론과 진리전체론)은 또한 이성(정신)은 합목적적(목적에 부합한) 활동이라고 표명될 수 있겠다. 오해된 자연의 오인된 사유 위로의 고양(자연을 오해하고 사유를 오인해 자연을 사유의 상위개념으로 설정해놓는 것, 낭만주의자들의 자연찬양을 비판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적 합목적성의 추방(외적 합목적성이란 자연을 도구로 보는 것으로 사유 밑에 자연을 두는 것인데 이를 추방한다는 것은 반대로 사유 위에 자연을 올려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은 목적이라는 형식 일반의 신용을 떨어뜨렸다(목적이라는 형식을 재검토해야한다). 그러나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을 합목적적 활동으로 규정하듯이, 목적은 무매개적인 것, 정지해있는 것, 그 자신은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운동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주체다. 운동을 일으키는 주체의 힘은, 추상적으로 보면, 대자적 존재 혹은 순수한 부정성이다(순수한 부정성이요, 대자적 존재이다). 결과가 단초와 동일한 것은 다만 단초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현실태(Energeia)가 현실태의 개념인 것은 다만 목적으로서 무매개성이 자기 혹은 순수한 현실태를 자기자신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현된 목적 혹은 정재하는 현실적인 것은 운동이고 전개된 생성이다; 바로 이러한(생성의) 불안(운동의 측면으로 정지하지 않은)은 그러나 자기이다; 그리고 단초의 저 무매개성과 단순성에게 자기(Selbst)는 동등하거니와 그것은 자기가 결과요, 자기에로 돌아온 것(귀환한 것)이기 때문이요, 자기에로 귀환한 것은 그러나 바로 자기요, 그리고 자기는 자신이 자신과 관계하는 동등성이요 단순성이기 때문이다.

* 프란시스 맥도날드 코퍼드, <<종교에서 철학으로>> (이대출판부) 읽어보라.

Das Bedürfnis, das Absolute als Subjekt vorzustellen, bediente sich der Sätze: Gott ist das Ewige, oder die moralische Weltordnung oder die Liebe u.s.f. In solchen Sätzen ist das Wahre nur geradezu als Subjekt gesetzt, nicht aber als die Bewegung des sich In-sich-selbst-reflektierens dargestellt.
절대자를 주체로서 표상하려는 요구는, 신은 영원한 것, 도덕적 세계질서 또는 [신은] 사랑이다 등등의 명제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한 명제들에서 진리는 다만 바로 주체[주어]로서 정립될 뿐이요, 그 자신이 자기자신에로 [귀환하는] 반성하는 것으로 서술돼 있지는 않다. (서술된 것은 아니다.)

* Subjekt : 주관/주체/주어
* Gott ist das Ewige : 주어 + 술어. Gott가 주어라면 - 일상 문법과는 관계없이 - 그 역인 "영원한 것은 신이다", "도덕적 세계질서는 신이다"도 성립해야 한다. 술어로 갔다가 되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Es wird in einem Satze der Art mit dem Worte: Gott angefangen. Dies für sich ist ein sinnloser Laut, ein bloßer Name; erst das Prädikat sagt, was er ist, ist seine Erfüllung und Bedeutung; der leere Anfang wird nur in diesem Ende ein wirkliches Wissen.
이러한 종류의 명제는 신이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이 말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소리요, 한갓된 명칭에 불과한데, 술어가 비로소 신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술어는 신의 [충실한] 내용이고 의미다. 공허한 단초는 다만 이러한 끝에 와서야 현실적 지가 된다.

* 주어는 공허한 내용일 뿐이고 술어가 덧붙여져야만 현실적 지가 된다.
* Kant, <<순수이성비판>>의 문제 의식이 무엇인가. "어떻게 선천적(a priori) 종합판단(synthese)이 가능한가?"다. 이 물음은 대답하기 아주 어렵다.

- 분석판단 : 예)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 => 진리값은 필연적으로 참이나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진 못한다. 동어반복이다.
- 종합판단 : 예) 모든 까마귀는 검다. =>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나 진리값은 바뀔 수 있다. 귀납의 한계다.
- 칸트의 과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Insofern ist nicht abzusehen, warum nicht vom Ewigen, der moralischen Weltordnung u.s.f., oder, wie die Alten taten, von reinen Begriffen, dem Sein, dem Einen u.s.f., von dem, was die Bedeutung ist, allein gesprochen wird, ohne den sinnlosen Laut noch hinzuzufügen.
그런 한에서 [사람들이] 무의미한 소리를 아직 덧붙이지 않은 채, 왜 영원한 것, 도덕적 세계질서 등등에 관해서만 말해지지 않는지 혹은 고대인들이 하였듯이 존재일자와 같은 순수개념에 관해서만, 의미인 것에 관하여 말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 바로 그런 측면에서 ~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정말 모르겠다.)
* 의미없는 주어는 이야기하지 말고 술어만 이야기해도 됐을텐데 굳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Aber durch dies Wort wird eben bezeichnet, daß nicht ein Sein oder Wesen oder Allgemeines überhaupt, sondern ein in sich Reflektiertes, ein Subjekt gesetzt ist. Allein zugleich ist dies nur antizipiert.
그러나 이 단어(신)를 통하여 [정립된 것은] 존재, 실재 또는 보편적인 것 일반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자신으로 반성된 것 다시 말해 주체라는 것이 설명된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것(주체)은 다만 예견되어 있을 뿐이다.

* "주어는 말할 필요 없겠네?" => 이건 아니다. 주어를 말해야 한다.
* 고대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술어와는 무관하게, 신이란 자기자신에로 귀환한 실재라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아니겠는가.

Das Subjekt ist als fester Punkt angenommen, an den als ihren Halt die Prädikate geheftet sind, durch eine Bewegung, die dem von ihm Wissenden angehört, und die auch nicht dafür angesehen wird, dem Punkte selbst anzugehören; durch sie aber wäre allein der Inhalt als Subjekt dargestellt.
술어는 그것의 거점으로서의 그 점(견고한 점)에 고착되어 있거니와, 그것은 [고정된] 점에 관하여 아는 사람에게만 귀속되고, 이 점 자신에게는 귀속한다고 간주되지는 않는 운동을 통해서만 그러하다. [주체인 점 자체에 속하는 운동을 통해서만] 내용이 주체로서 표현될 것이다.

* 신은 이러이러한 존재라고 '예견되어 있을 뿐이다.' 달라붙는 술어를 자신도 알아야 하는데 알고 있는 사람만이 아는, 주체 그 자체는 알지 못하는 그런 운동에 의해 부착된다. => 외재적 운동.

In der Art, wie diese Bewegung beschaffen ist, kann sie ihm nicht angehören; aber nach Voraussetzung jenes Punkts kann sie auch nicht anders beschaffen, kann sie nur äußerlich sein.
이러한 운동의 성질상 [운동은] 그것(고정된 점)에 속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러한 [고정된] 점이 전제된다면 운동은 다른 성질을 가질 수가 없고 다만 외연적일 뿐이다.

* Bewegung, 왜 "운동"이란 말을 쓸까. "개념의 운동" 왜 꼭 그렇게 써야 했을까. 이것은 연구해볼 만한 주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Kinesis는 변화 일반(change in general)을 가리킨다. 실체적 변화(substantial change)와 우연적 변화(accidental change)다. 데카르트는 <<철학원리>>에서 A->B, 이러한 장소의 이동만이 운동이라고 했다.

Jene Antizipation, daß das Absolute Subjekt ist, ist daher nicht nur nicht die Wirklichkeit dieses Begriffs, sondern macht sie sogar unmöglich, denn jene setzt ihn als ruhenden Punkt, diese aber ist die Selbstbewegung.
절대자는 주체라고 하는 저 예견은 그런 까닭에 이러한 개념(주체)의 현실성이 아니요, 현실성을 더욱이 불가능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왜냐하면 전자(그 예견)는 [주체라는] 개념을 정지된 점으로 정립하고 있으나 후자(개념의 현실성)는 자기 운동이기 때문이다.

Unter mancherlei Folgerungen, die aus dem Gesagten fließen, kann diese herausgehoben werden, daß das Wissen nur als Wissenschaft oder als System wirklich ist und dargestellt werden kann. Daß ferner ein sogenannter Grundsatz oder Prinzip der Philosophie, wenn es wahr ist, schon darum auch falsch ist, weil er Grundsatz oder Prinzip ist.
상술한(언급된) 것에서 도출되는 다양한 귀결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것이 강조될 수 있거니와, 지는 다만 학[적]으로서만 또는 체계로서만 현실적이며 서술될 수 있다는 것이요, 더 나아가 이른바 철학의 근본 명제 또는 원리는 그것이 참된 것이라 해도 그것이 다만 [아직 전개되지 않은] 근본 명제로서 혹은 원리로서만 있다 하는 이유로 이미 또한 거짓인 것이다.

* "진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 여기서 知(앎)는 '참된', 에피스테메로서의 진리에 가깝다.
* "철학적 지식은 학적으로 체계적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 Wissenschaft는 Wissen의 체계라는 말이다.
* 칼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체계적 사회주의"다.
* 딜타이는 인문학이란 말 대신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이라고 썼다.
* arche(원질)는 Anfang이거나 Prinzip이다.
* bestimmen(규정하다)은 영어로 determine(결정하다)으로 흔히 번역된다. bedingen은 condition(조건 지우다)인데 bestimmen의 원뜻은 determine과 condition의 중간쯤 된다. 영어판을 읽어도 괜찮지만 핵심 술어들은 독일어로 알고 있어야 한다. 유려한 문장은 번역본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 칸트와 헤겔이 다른 점, 그것이 24번째 패러그래프에 나온다. 어떤 것을 체계로 간주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서로 입장을 달리 한다.
* 어린 아이가 탄생했다 -> 아이=사람의 출발점 -> 그러나 사람이기는 해도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아직은 사람이 아니다. "아직 전개되지 않은 근본 명제이거나 원리이기 때문에 진정한 철학은 형성되지 않았다."
* Yovel의 코멘트를 보자. "Ground Principal은 아직 complete system이 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근본 명제에 비판을 가하고 논박해야 한다."

- Es ist deswegen leicht, ihn zu widerlegen. Die Widerlegung besteht darin, daß sein Mangel aufgezeigt wird; mangelhaft aber ist er, weil er nur das Allgemeine oder Prinzip, der Anfang, ist.
그런 까닭(아직은 근본 명제이고 원리인 한)에 그것을 반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반박은 그것의 결함이 밝혀지는 것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근본 명제는 그것이 다만 [추상적으로] 보편적인 것 또는 원리, [또는] 단초이기 때문에 결함을 가지고 있다.

* 비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전개된다. 제1테제를 논박하는 것, 이것이 '부정적/변증법적' 단계다. 그 안에 들어가서 한계를 드러내 주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적극적/사변적' 단계에 이른다. Spekulation.
* 인류가 찾은 진리 추구의 최고 방법은 대화다.

Ist die Widerlegung gründlich, so ist sie aus ihm selbst genommen und entwickelt, - nicht durch entgegengesetzte Versicherungen und Einfälle von außen her bewerkstelligt.
[어떤] 반박이 철저한 것이려면(제대로 된 반박이려면) 그것은 근본 명제, 원리 그 자체로부터 취해지고 전개되어야 할 것이요, [근본 명제에] 대립되는 단언과 착상을 통하여 외부로부터 실행된 것이 아니다.

* "그 자체로부터 취해지고 전개되는 것" = 내재적 비판
* Yovel - "철학적 교설(doctrine)에 대한 변증법적 논박은 전체의 파괴가 아니라 교설을 전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 내재적 비판 = 규정적(한정된) 비판
* 이 부분 굉장히 중요하다. 내재적초출(內在的超出). Das Neue. "새로운 것이 안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을 현실에 적용한 것이 마르크스의 혁명이론이다. 칼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실수한 것은 "Marx는 Canvas theory다."라고 파악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전면 부정의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관해 철저히 연구했던 까닭은 그 결함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Sie würde also eigentlich seine Entwicklung und somit die Ergänzung seiner Mangelhaftigkeit sein, wenn sie sich nicht darin verkännte, daß sie ihre negative Seite allein beachtet, und ihres Fortgangs und Resultates nicht auch nach seiner positiven Seite bewußt wird.
만일 반박이 자신의 부정적 측면만을 주목하고 반박의 진행과 결과를 또한 결과의 긍정적 측면에서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해되지 않는다면 반박은 그러므로 본래 근본 명제의 전개이고 [바로] 그런 까닭에 근본 명제의 결함의 보완일 것이다.

- Die eigentliche positive Ausführung des Anfangs ist zugleich umgekehrt ebensosehr ein negatives Verhalten gegen ihn, nämlich gegen seine einseitige Form, erst unmittelbar oder Zweck zu sein. Sie kann somit ebensosehr als die Widerlegung desjenigen genommen werden, was den Grund des Systems ausmacht, besser aber als ein Aufzeigen, daß der Grund oder das Prinzip des Systems in der Tat nur sein Anfang ist.
단초의 고유한 긍정적 실현은 동시에 거꾸로 말하면 [긍정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단초에 대한 다시 말해 최초에는 무매개적인 또는 목적이라고 하는 단초의 일면적 형식에 대한 부정적 태도다. [단초의 긍정적] 실현은 마찬가지로 체계의 근거를 이루는 것(단초)의 반박으로 간주될 수 있겠으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체계의 근거 혹은 원리가 사실상 다만 체계의 단초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 Anfang = beginning(귀납의 출발점)이거나 origin(기원, 연역의 대전제, 그 안에 다 있는 것)이다. 탄생이란 생겨나기 이전 단계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 "무매개적" = "Moment로 매개되지 않은"
* 목적 = 실현되지 않은 목적
* 반박의 긍정적, 부정적 의미를 모두 알아야 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전개는 칸트에게는 없다. 칸트는 전통적 합리주의(연역)의 입장이다.
* 논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반박의 부정적 측면만 주목하지 말고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 면을 알아야 한다.

* 현상학 서문의 술어를 이해하면 헤겔 철학 전체를 알 수 있다.
* 헤겔 철학사 강의는 힐쉬베르거 철학사 같은 철학사가 아니라 형이상학이다.
* "Enzyklopädia(哲學的諸學集成)"은 1부 : 논리학 2부 : 자연철학 3부 : 정신철학으로 나뉜다. 정신철학에는 '주관적 정신 영역(인간학, 현상학, 심리학)', '객관적 정신 영역(법철학, 역사철학)', '절대적 정신 영역(예술-미학 강의, 종교-종교 철학 강의, 철학-철학사)'이 있다. 여기에서 철학사는 "from 파르메니데스 to 헤겔"이다. 파르메니데스가 테제1을 제시하고 그 결함을 플라톤이 보완하고 향후 전개되어 나(헤겔)에게까지 온 것이다. 헤겔에게 역사란 선행하는 것의 논박 과정이다. "후행하는 것이 선행하는 것의 진리다."
* 지금까지 '진리 주체론', '진리 전체론', '합목적적 진리론', '진리 체계론'에 관해 언급했다. 이 네 가지 의미를 집약하면 "진리는 정신이다." 앞으로 그것을 다룬다.    

Daß das Wahre nur als System wirklich, oder daß die Substanz wesentlich Subjekt ist, ist in der Vorstellung ausgedrückt, welche das Absolute als Geist ausspricht, - der erhabenste Begriff, und der der neuern Zeit und ihrer Religion angehört.
진리는 체계로서만 현실적이라는 것, 혹은 실체는 본질적으로 주체라는 것은 절대자를 정신으로 언명하는 표상에 표현되어 있으며 - [정신은] 가장 숭고한 개념이며 근대와 그 종교에 속하는 개념이다.

* 이제 진리라는 말 대신 정신이라고 쓸 것이다.
* "근대에 속한다." = 근대에 와서야 이런 개념이 성립되었다. 칸트 이후의 관념론 가리킴.
* "종교에 속한다." =기독교, 철학과 완전한 화해를 이룬 종교. 宥和된. 헤겔의 예술 종교 철학은 종교에 대해 우위인 것이 아니라 종교를 자신의 학으로 포함하는 철학이다.

Das Geistige allein ist das Wirkliche; es ist das Wesen oder An-sich-seiende, - das sich Verhaltende oder Bestimmte, das Anderssein und Für-sich-sein - und in dieser Bestimmtheit oder seinem Außer-sich-sein in sich selbst Bleibende; - oder es ist an und für sich. - Dies An-und-für-sich-sein aber ist es erst für uns oder an sich, oder es ist die geistige Substanz.
정신적인 것만이 현실적인 것이다. 그것은 1) 실재 또는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2) [타자와] 관계하는 것 그리고 규정된 것, 타자 존재이고 대자 존재이며, 3) 그리고 이러한 규정성에서 또는 자기의 밖에 있는 존재이면서도 자기자신 안에 머물러 있는 것 혹은 정신적인 것은 즉자대자적이다. 이러한 즉자대자 존재인 것은 그러나 최초에는 우리에 대해서만 또는 즉자적으로만 정신적인 것이요, 그것은 정신적 실체다.

* "관계하는 것 그리고 규정된 것" = 관계함으로써 규정됨
* 타자와 관계하면서도 자기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 - "즉자대자적 존재"
* für uns : 번역은 '우리에 대해서'로 해석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혹은 '철학적 반성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 für uns oder an sich : 헤겔 철학 체계에서는 완결된 전체계를 관조하는 철학적 반성이 이야기하는 스토리가 있고, 그러한 반성없이 이야기하는 스토리가 있다.

Es muß dies auch für sich selbst - muß das Wissen von dem Geistigen und das Wissen von sich als dem Geiste sein; das heißt, es muß sich als Gegenstand sein, aber ebenso unmittelbar als vermittelter, das heißt aufgehobener, in sich reflektierter Gegenstand.
정신적인 것은 또한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후자(즉자대자적 존재)이어야 하고, [정신적인 것은] 정신적인 것에 대한 지이며 정신으로서의 자기에 관한 지여야 한다. 다시 말해 정신적인 것은 자기에게 대상으로서 존재해야만 하지만 마찬가지로 매개된, 바로 다시 말해 지양된, 자기에로 반성된 대상으로서 존재해야만 한다.

*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 자각적으로
* "정신으로서의 자기에 관한 지" = 자신이 정신임을 아는 지

Er ist für sich nur für uns, insofern sein geistiger Inhalt durch ihn selbst erzeugt ist; insofern er aber auch für sich selbst für sich ist, so ist dieses Selbsterzeugen, der reine Begriff, ihm zugleich das gegenständliche Element, worin er sein Dasein hat; und er ist auf diese Weise in seinem Dasein für sich selbst in sich reflektierter Gegenstand.
정신은 정신의 정신적 내용이 정신 자신을 통해 산출된 한에서 우리에게 있어서만 대자적이다. 그러나 정신이 또한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자각적으로] 대자적인 한에 있어서, 이러한 자기 산출 즉 순수 개념은, 정신에게는 동시에 그 안에서 정신이 자신의 정재를 갖는 대상적인 장면이요, 정신은 이러한 방식으로 정신의 정재에 있어서 자기자신에 대하여 자기 안으로 반성된 대상이다.

* "정신은 철학적 반성의 입장에서 볼 때만 대자적이다."
* "대상적 장면" = 정재를 세워놓는 영역
* "정신의 정재에 있어서 자기자신에 대하여 자기 안으로 반성된 대상이다." = 자신의 전개를 세우면서도 동시에 자각적으로 자기자신으로 되돌아온 대상이다.

- Der Geist, der sich so als Geist weiß, ist die Wissenschaft. Sie ist seine Wirklichkeit und das Reich, das er sich in seinem eigenen Elemente erbaut.
그렇게 전개되어 자기를 정신으로 아는 정신이 학이다. 학은 정신의 현실성이요 정신이 자신의 고유한 장면에 세우는 왕국이다.

* 이 부분은 헤겔의 논리학을 가리킨다. 완전히 자각된 정신, 즉 순수 학문.
* 여기까지가 헤겔의 진리론이다. 학의 규정으로 일단락된다. 이제 정신현상학이란 무엇인지 다룰 것이다. 학은 개인에게 학으로 가는 사다리를 마련해준다.

* 25번째 패러그래프를 다시 정리해 보자. 진리는 체계이여만 하고, 그 체계는 이중적 긴장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순수한 의미의 학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자각된 정신이고 헤겔 철학에서는 논리학을 가리킨다. 학은 정신의 현실성이요 정신이 자신의 고유한 장면에 세우는 왕국이다.
* 앎이란 전체의 계기를 바라보는 태도다. 헤겔의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관념론은 구별해야 한다. 형이상학적 관념론이라고 하여 물질적인 것은 전혀 배제하고 '정신적인 것이 궁극적 실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일반 상식과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상식이 있고,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 관조하는 것이다.

Das reine Selbsterkennen im absoluten Anderssein, dieser Äther als solcher, ist der Grund und Boden der Wissenschaft oder das Wissen im Allgemeinen. Der Anfang der Philosophie macht die Voraussetzung oder Foderung, daß das Bewußtsein sich in diesem Elemente befinde.
절대적인 타자존재(타재)에 있어서의 순수한 자기인식, 이러한 에테르(투명체) 그 자체는, 학의 근거이며 지반이요 또는 지 일반이다. 철학의 단초는 의식이 이러한 장면안에 있을 것을 전제하거나 요구한다.

* "학의 근거이며 지반이요 또는 지 일반이다" = ~ 지반이 지 일반이다. 즉 추상적 의미에서의 보편을 가리킨다.
* "철학의 단초는" = 철학은 처음부터(애초에)
* 26번째 패러그래프에 들어와서는 학은 "Wissenschaft der Logik" 즉 논리학이다. 순수정신의 학인 것이다. Bewußtsein의식은 순수하지 못하다 -> 갈고 닦아야 한다 -> 도야Bildung -> '정신현상학'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Aber dieses Element hat seine Vollendung und Durchsichtigkeit selbst nur durch die Bewegung seines Werdens. Es ist die reine Geistigkeit, oder das Allgemeine, das die Weise der einfachen Unmittelbarkeit hat.
그러나 이러한 장면은 자신의 완성과 투명함 자체를 장면의 생성의 운동을 통해서만 얻는다. 이러한 장면은 단순한 무매개성이라는 양상을 가지는 [추상적] 보편적인 것으로서 순수한 정신성이다.

* 이제 자기 인식, 의식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보자.
* "이러한 장면" = 순수한 자기 인식
* Durchsichtig = see through(視界), 관철함
* "장면의 생성의 운동" = 이것이 정신현상학이다.
* "단순한 무매개성이라는 양상을 가지는" = 단지 그저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고,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는   

Weil es die Unmittelbarkeit des Geistes, weil die Substanz überhaupt der Geists ist, ist sie die verklärte Wesenheit, die Reflexion, die selbst einfach oder die Unmittelbarkeit ist, das Sein, das die Reflexion in sich selbst ist.(초판)

Weil dieses Element, diese Unmittelbarkeit des Geistes das Substantielle überhaupt der Geists ist, ist sie verklärte Wesenheit, die Reflexion, die selbst einfach, die Unmittelbarkeit als solche für sich ist, das Sein, das die Reflexion in sich selbst ist.  (Suhrkamp판)
이러한 장면, 즉 정신의 이러한 무매개성은 정신의 실체적인 것 일반이기 때문에, 무매개성은 변용된 본질성이요, 그 자신은 단순하고 그것만으로는 무매개성 자체인 반성이요 자기자신에로의 반성인 존재이다.

* "이러한 무매개성" = 아직 정신이 전개되지 않은 영역
* 논리학에서 보면 정신현상학은 예비학propädeutik이다.
* "I found myself in forest dark" - 단테, <<신곡>>
* 여기서의 정신은, 정신현상학 단계를 거쳐서 논리학의 출발점에 선 존재다.
* "변용된 본질성" = 이전단계와 달라진, 보다 고양된 본질성에 이른 것. 즉자에서 대자로 외화하고, 즉자대자적 존재로 귀환한 존재.
* "Das reine Selbsterkennen" = 순수한 자기인식, 순수 有. cf. 현상학의 최종단계로서의 "순수 개념". 정신현상학 단계를 거쳐야 이러한 장면이 성립된다.

Die Wissenschaft von ihrer Seite verlangt vom Selbstbewußtsein, daß es in diesen Äther sich erhoben habe, um mit ihr und in ihr leben zu können und zu leben. Umgekehrt hat das Individuum das Recht zu fodern, daß die Wissenschaft ihm die Leiter wenigstens zu diesem Standpunkte reiche.
[논리]학은 학의 편에서 자기의식이 학과 함께 그리고 학 안에서 살 수 있고 또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에테르에로 올라가 있을 것을 요구한다. 거꾸로 개인은 학이 개인에게 적어도 이러한 입각점에로의 사다리를 건네줄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

* 논리학은 신적 정신의 서술이다. 알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다.
* 여기에서 사다리는 현상학이다. 소박한 의식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학에 이를 수 있다. '권리'는 '요구하는 게 마땅하다'로 해석해야 한다.
* 예링, "Der Kampf ums Recht"는 "권리를 위한 투쟁"보다는 의미상 "정의를 위한 투쟁"이 적합할 것이다.

Sein Recht gründet sich auf seine absolute Selbstständigkeit, die es in jeder Gestalt seines Wissens zu besitzen weiß, denn in jeder, sei sie von der Wissenschaft anerkannt oder nicht, und der Inhalt sei welcher er wolle, ist es die absolute Form zugleich oder hat die unmittelbare Gewißheit seiner selbst; und, wenn dieser Ausdruck vorgezogen würde, damit unbedingtes Sein.
개인의 권리는, 개인이 자신의 지의 모든 형태에서 소유하고 있음을 아는 절대적 자립성에 근거한다. 왜냐하면 그 형태들이 학에 의해서 인정을 받건 아니건,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이건, 개인은 [지의] 어떠한 형태에서도 절대적 형식이요, 자기자신에 관한 무매개적 확실성이요 따라서 이러한 표현이 더 좋다면 [개인은] 무제약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 "개인의 권리" = 학에게 자기자신을 위한 사다리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 Yovel : "데카르트와는 달리 확실성에 대한 경험은 헤겔에 있어서 주관적 가치만을 가진다."

Wenn der Standpunkt des Bewußtseins, von gegenständlichen Dingen im Gegensatze gegen sich selbst und von sich selbst im Gegensatze gegen sie zu wissen, der Wissenschaft als das Andre gilt - das, worin es bei sich selbst ist, vielmehr als der Verlust des Geistes -, so ist ihm dagegen das Element der Wissenschaft eine jenseitige Ferne, worin es nicht mehr sich selbst besitzt.
[의식이] 대상적 사물에 관해서는 자기자신과의 대립에 있어서, 자기자신에 관해서는 대상적 사물과의 대립에 있어서 아는 의식의 입각점이 학에게는 타자로 간주된다면 - 그 안에서는 [대상적 사물과의 대립 속에서] 자기자신의 곁에서 자기를 아는 것이 오히려 정신의 상실로서 여겨지는 타자로서 간주된다면 - 이에 반해서 학의 장면은 의식에게는 먼 피안의 것이며, 그 안에서 의식은 더 이상 자기자신을 소유하지 못한다.

* Bewußtseins의식 = natürliche Bewußtsein자연적 의식

Jeder von diesen beiden Teilen scheint für den andern das Verkehrte der Wahrheit zu sein. Daß das natürliche Bewußtsein sich der Wissenschaft unmittelbar anvertraut, ist ein Versuch, den es, es weiß nicht von was angezogen, macht, auch einmal auf dem Kopfe zu gehen; der Zwang, diese ungewohnte Stellung anzunehmen und sich in ihr zu bewegen, ist eine so unvorbereitete als unnötig scheinende Gewalt, die ihm angemutet wird, sich anzutun.
이러한 양편(의식,과학) 모두는 다른 편에게는 진리의 전도인 것처럼 보인다. 자연적 의식이, 무엇에 의해서 끌어당겨지는지를 알지 못한 채로 또한 한 번은 머리로 걸어보려는(거꾸로 서서 가보려고 하는) 시도다. 이러한 익숙치 않은 자세를 취하고 또 그 자세로 움직이려고 무리하는 것은 그렇게 준비돼 있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아 보이는 의식에게 요구되는 억지를 감행하려는 것이다.

* 철학의 세계는 전도된 세계다. 현상학은 순수한 의식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 "철학은 전도된 세계다. 머리로 서서 걸어가려는 시도다." - <<자본>> 서문.
* 중세적 의식에서 막 깨어난 사람들에게 이성주의를 들이대어 폭력적 사태로 귀결되었음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다.

- Die Wissenschaft sei an ihr selbst, was sie will, im Verhältnisse zum unmittelbaren Selbstbewußtsein stellt sie sich als ein Verkehrtes gegen es dar, oder weil das unmittelbare Selbstbewußtsein das Prinzip der Wirklichkeit ist, trägt sie, indem es für sich außer ihr ist, die Form der Unwirklichkeit. (초판)

- Die Wissenschaft sei an ihr selbst, was sie will; im Verhältnisse zum unmittelbaren Selbstbewußtsein stellt sie sich als ein Verkehrtes gegen dieses dar; oder weil dasselbe in der Bewußheit seiner selbst das Prinzip seiner Wirklichkeit hat, trägt sie, indem es für sich außer ihr ist, die Form der Unwirklichkeit. (Suhrkamp판)
학이 그것(학) 자체에 있어서는 무엇이든간에 무매개적 자기의식의 관계에서 학은 무매개적 자기의식과는 전도된 것으로서 나타난다. 또는 무매개적 자기의식은 자기자신의 확신 안에서 자신의 현실성의 원리를 가지기 때문에 무매개적 자기의식이 독자적으로는 학의 외부에 있다면 학은 비현실성의 형식을 지니게 된다.

* 무매개적 자기의식 = 자연적 의식
* 여기에서 "für sich"는 "그것 자체로(독자적으로)"의 뜻
* 무매개적 자기의식이 학을 볼 때면 학을 비현실적 형식으로 본다.

Sie hat darum jenes Element mit ihr zu vereinigen, oder vielmehr zu zeigen, daß und wie es ihr selbst angehört.
학은 그러므로 [무매개적 자기의식의 자기확신이라고 하는] 장면을 [학] 자신과 통합해야 하거나, 아니 오히려 그 장면이 학 자체에 속한다는 것과 또 어떻게 속하는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Der Wirklichkeit entbehrend, ist sie nur das An-sich, der Zweck, der erst noch ein Innres, nicht als Geist, nur erst geistige Substanz ist. (초판)

Als solcher Wirklichkeit entbehrend, ist sie nur der Inhalt als das An-sich, der Zweck, der erst noch ein Innres, nicht als Geist, nur erst geistige Substanz ist. (Suhrkamp판)
[학이] 그러한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다면 학은 다만 즉자적인 것으로서의 내용이고 목적이거니와, 목적은 겨우(아직) 내면적인 것이고 정신으로서가 아니라 정신적 실체인 목적이다.

* "그러한 현실성" = 학은 무매개적 자기의식의 장면이 자신과 하나로 통합해야 하고 학 자신에게 속하며 또 어떻게 속하는지 보여주는 것.
* "겨우(아직) 내면적인 것" = 아직 전개되지 않은 목적.
* "정신" = 내용과 형식이 합체된

Sie hat sich zu äußern und für sich selbst zu werden, dies heißt nichts anders als: sie hat das Selbstbewußtsein als eins mit sich zu setzen. (초판)

Dies Ansich hat sich zu äußern und für sich selbst zu werden, dies heißt nichts anders als: desselbe hat das Selbstbewußtsein als eins mit sich zu setzen. (Suhrkamp판)
이러한 즉자적인 것으로서의, 학은 스스로를 외화하여 대자적인 것으로 생성돼야 한다. 이러한 즉자태(즉자적인 것)는, 자기 의식을 [학] 자신과 하나인 것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 "외화하여 대자적인 것으로 생성되는 것" = 운동
* 이 과정이 '정신현상학'이다.

* 괴테, 헤겔 당시는 독일어의 맹아기였다. 칸트가 그 시대 수준에 걸맞게 썼던 것에 비해 헤겔은 그러하지 않았다(못했다). 어휘는 모자란 반면 삶의 역사적 현실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려 하다보니 어려웠다. 계속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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