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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6/08/27 (20:31) from 84.173.105.244' of 84.173.105.244' Article Number :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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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이해 지평 넓힌 대니엘 데닛




“진화과정서 의식 나왔듯 로봇도 의식 생길 것”
“물질에 불과한 뇌에서 어떻게 의식이 나왔나”
인간 지능과 의식 신비화에 맞서
“인간·침팬지·로봇은 근본적으로 같다”
동물행동학자 도킨스한테 결정적 영향 받아
과학·공학 넘나들고 대중적 글쓰기도 능한 철학자



 

 

▲ 굴드와 데넷은 한때 서로를 존중하는 반대자였으나 <다윈의 위험한 생각> 출간 이후부터 사이가 틀어져 1997년 <뉴욕서평>에서는 앙숙이 되었다. 즐거웠던 한때.

 

과학속 사상, 사상 속 과학/ 16 마음의 이해 지평 넓힌 대니엘 데닛

강아지나 고양이와 한 지붕에 사는 사람들은 늘 ‘자식’ 자랑에 침이 마른다. “그놈 참 똑똑해. 내가 뭘 원하는지 아는 눈치야. 내 마음을 읽는 것 같아.” 과연 그들은 주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오히려 이 질문은 동물 인지 연구자들에 훨씬 더 어렵다. 그들은 침팬지가 과연 다른 개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가를 놓고 최근 수년 동안 결론 뒤엎기를 반복해왔다. “있는 것 같긴 한데 경험적으로 입증하긴 쉽지 않고 그렇다고 없다고 말하기는 꺼림칙하고.”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마음 읽기의 명수들인가? 독심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마음 읽기란, 다른 개체의 믿음과 욕구, 그리고 그 믿음과 욕구에 의해 그 개체가 행동한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영화 <레인 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은 이 마음 읽기 능력에 문제가 있는 자폐증 환자로 나온다. 그는 기억력은 비상하지만 만 4살 아이들이면 대개 문제없이 수행하는 마음 읽기를 매우 어려워한다. 최근에 심리학자들은 자폐증을 마음 읽기 능력의 손상 때문에 생긴 병으로 본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면 부모들이여 기뻐하라.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는 남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마음 읽기 능력에 대한 이런 동물 및 인간 인지 연구를 촉발시킨 이는 동물행동학자도 발달심리학자도 아니다. 다니엘 데넷(Daniel C. Dennett), 그는 지난 30여년 동안 <내용과 의식>, <지향적 태도>, <다윈의 위험한 생각>, <마음의 종류>, <뇌자녀> 등에서 ‘지향성’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발전시켜 마음 읽기 능력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힌 철학자다. 지향성은 ‘무언가에 관한’ 것이며 마음 읽기란 ‘어떤 주체의 정신 상태에 관한’ 믿음, 곧 2차 지향성과 동일하다. 그는 미국 터프츠대학의 인지연구소 소장이고 대학 석좌교수이며 인지과학 분야에서 늘 혁신적인 주장을 펼쳐 논쟁의 한복판에 서 온 세계적 석학이다.


박찬호가 던진 공에 마음이 있나





박찬호가 던진 공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그 공이 마치 믿음과 욕구를 가진 양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물리법칙만 잘 알고 있으면 된다. 또한, 매일 아침에 울려대는 알람시계의 작동을 이해하기 위해 시계의 마음을 읽으려 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알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 집 강아지가 갑자기 껑충껑충 뛰는 행동, 옆집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물리법칙 혹은 설계원리만을 들이댄다고 해서 이해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넷은 바로 이 대목에서 ‘지향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행위자가 어떤 믿음과 욕구를 가지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는 그런 태도 말이다.

인간과 동물의 지향성은 데넷에게 진화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다윈의 위험한 생각>과 <마음의 종류>에서 도드라져 보이듯이, 데넷은 당대 철학자 중에서 진화론을 자신의 철학에 가장 진지하게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주류 과학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진화론에 대한 철학적 반성은 뒷전이고 응용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으로, 몇몇 진화론자들에게는 “초극단적 다윈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진화 전쟁’에서 자신의 독특한 목소리를 결코 낮추지 않았다.

이렇게 그가 진화론에서 자신의 지적 샘물을 길어 올리게 된 데에는 옥스퍼드대학의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을 읽고 난 뒤부터 데넷은 줄곧 진화 전쟁에서 도킨스의 강력한 동맹군으로 활약해왔다. 1997년에 <뉴욕 서평>을 통해 하버드대학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와 벌였던 설전은 어느덧 진화학도들에겐 하나의 전설이다. 굴드는 <다윈의 위험한 생각>에 씌어진 자신에 대한 비판에 격분해 급기야 데넷을 ‘도킨스의 애완견’이라고 칭했고, 이에 질세라 데넷은 굴드를 ‘뻥쟁이’라 응수했다. 과학 논쟁은 때로 정치 공방보다 더 노골적이다.

일부 생물학자들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해도 그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그의 철학은 그의 진화론 없이는 전혀 힘을 못 쓰기 때문이다. 그의 물음을 보라. ‘무가치, 무의미, 무기능에서 어떻게 가치, 의미, 기능이 나왔는가? 규칙에서 어떻게 의미가 나왔는가? 물질에 불과한 뇌에서 어떻게 의식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나올 수 있는가?’ 결국 그는 지금 “물이 변하여 어떻게 포도주가 되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물음들은 “미물에서 어떻게 인간과 같은 종이 나왔는가?”라는 진화론의 물음과 근본적으로 닮아 있다. 실제로 그는 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진화론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성서에서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을 기적이요 신비라고 묘사한다. 데넷은 기존 철학계도 인공지능, 지향성, 의식, 그리고 자유의지를 논할 때 그와 유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람들은 ‘로봇이 인공지능을 진짜로 가질 수 있는가, 의식을 가진 로봇이 가능한가’라는 식의 물음을 던지면서 인간의 지능과 의식 등을 암암리에 신비화 혹은 차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그의 <설명된 의식>은 의식 탐구에 대한 탈신비화 선언이다.

어쩌면 그는 평생을 이 신비화, 차별화 프로그램에 맞서 싸운 용감한 지식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지능과 의식이 출현했듯이, 그와 동일한 과정을 통해 로봇도 지능과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침팬지, 인간, 그리고 로봇은 근본적으로 같다. 곧, 하나의 “다윈 알고리듬” 혹은 “다윈 기계”일 뿐이다. <자유가 진화한다>(2003)에서 그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행복한 동거를 주장하며 인간을 “선택 기계”라고 부르기도 했다. 존 설을 비롯한 인공지능 반대자들과의 유명한 논쟁에서도 그는 이와 동일한 정신을 초지일관 유지했었다.


동물 마음 읽으며 아프리카 초원에


그는 안락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의 꼬리를 좇아가는 식으로만 일을 하는 철학자가 결코 아니다. 아니 그런 철학을 혐오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는 철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과학과 공학을 넘나들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몇몇 과학적 탐구에는 결정적 훈수를 두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이미 1970년대에 스탠퍼드대학에 가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운 바 있으며, 동물들도 마음읽기 능력이 있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초원에 머물기도 했다. 영장류학자들은 당시에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의식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채 식지도 않은 신경생리학 논문들을 제일 먼저 맛보는 지식의 요리사이다.

이것 외에도 그의 삶과 학문적 방법은 철학자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우선 그는 최고의 전문가이면서도 전문가들만을 상대로 글을 쓰는 철학자는 아니다. 예컨대 <다윈의 위험한 생각> 등을 비롯한 몇 권의 저서는 동료들의 머리를 자극하는 책이긴 하지만 교양있는 대중들을 지금도 매료시키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이는 그가 철학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적절한 예제, 그럴듯한 비유, 고품격 농담 등이 넘쳐난다. 실제로 자신의 작업을 아예 “직관 펌프질”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다. 그는 대중들의 직관을 펌프질해서 그릇된 통념들을 날려버린다. 그러니 출판사들은 돈 보따리를 싸들고 그가 붓을 들기만을 학수고대할 수밖에.

그는 여름이 되면 미국 메인주에 있는 농장으로 향한다. 땅을 파고 과일을 담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철학자로서 생각의 밭을 일구고 있다. 17살에 이미 비트겐슈타인과 데카르트의 저서를 읽고 오류를 찾아낸 천재 소년이지만 그는 다른 범생이 천재들과는 달리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는 온갖 재주를 갖고 있다. 조각가, 재즈 피아니스트, 테니스, 스키, 카누 선수, 심지어 항해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그는 몸도 치열한 철학자다.   

▲ 장대익/ 한국과학기술원 강사 daeik@chollian.net  

 

그런 그가 지난 30년 동안 평균적으로 한달에 한 편씩의 논문을 써댔다. 그것도 최고의 학술지들에. ‘원천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며 논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내년 1월이면 종교의 본성에 관한 새로운 책이 출판될 예정이오. 그러면 보나마나 논쟁을 하러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겠지요. 그러니 그때를 피해 내가 좀 한가할 때(?) 오는 것도 생각해 보구려.” 필자가 최근에 그에게서 받은 답장이다. 그는 철학적 난제들만을 골라 씨름하며 치열한 논쟁을 즐기는 이 시대 최고의 논객이며 사상가다.



http://book.hani.co.kr/kisa/section-paperspcl/book/2005/09/0000000002005090119070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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