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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7 (20:33) from 84.173.105.244' of 84.173.105.244' Article Number :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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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에도 철학이 필요한가?



뇌과학에도 철학이 필요한가?  / 박제윤   


"철학과 뇌과학"이란 말은 "Neurophilosophy"(Patricia Churchland)란 책을 번역한 이름입니다.

다음은 '뇌과학' 연구에 '철학'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저자의 의도를 알아볼 수 있는 내용으로 '서문'과 '본문'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일반적 개요

원시 습지로부터 꾸물거리고 나온, 우리의 진화적 조상들은 자신들의 내부에 대단히 놀라운 창조물, 즉 흥분성 세포(excitable cell)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세포는 이웃 세포로 작은 전자 효과를 전달할 수 있으며, 유사한 흥분성 세포들끼리 무리를 이루어 적절하게 흥분할 수 있어서, 유기체(생명체)가 움직일 수 있고, 그래서 먹이를 먹고, 도망하고, 싸우기도 하며, 번식하는 일도 가능하다. 흥분성 세포들에 의해서 외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아 움직이는 피조물들은 외부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움직이는 피조물들에 비해 처음부터 유리한 생존 능력을 갖는다. 분명히, 포식자들이 없는 곳으로 도망하고 먹이를 먹어야 하는, 유기체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에 대한 '표상을 얻을 줄 아는' 세포를 가진 더 행운의, 유기체들에게 어쩔 수 없이 먹이가 될 운명에 놓인다. 자신이 처한 상황마다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행동목록을 복잡하게 늘려가면서, 환경을 표상하는 능력 또한 증가되어왔다.

우리 자신들의 뇌는, 외부 세계에 대한 풍부한 표상을 선별적으로 어떻게든 담아낼 수 있는, 거대한 덩어리의 흥분성 세포들이며, 근육으로 하여금 기본적으로 먹이를 먹고, 도망하며, 싸움하고, 번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을 잡아내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이야기도 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다른 종들(species)의 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는 그 자신과 다른 뇌들에 대한 정보를 가질 수 있지만, 명백히 우리들이 그런 정보들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뇌에 대해서 탁월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의 뇌는, 사물들에 대해 '상식적 개념'이란 편안한 굴속에서 비틀거리며 나와, '태양'을 신이 몰고 다니는 황금마차가 아닌 '핵폭발(nuclear fire)'로 표상하게 되었으며, '지구'를 네 모퉁이에서 통통한 볼을 가진 아기천사가 바람을 불어대는 판(sheet)이 아닌 '태양 주위를 달리는 구(ball)'로 표상하게 되었고, '심장'에 대해서는 영혼을 넣어 조리하는 가마솥이 아닌 '혈액 펌프'로 표상하게 되었다. 우리는 또한 우리 뇌를 이해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뇌'가 '뇌'를 탐구하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뇌는 한 편으로 태양이나 심장에 대한 탐구에서 방해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오해를 짊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런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통찰하고 이해하는 방법까지 밝혀낼 수 있는, 그런 뇌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제기된다. "뇌를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들의 '상식적 개념들'은 앞으로 우리가 발견할 개념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없을까?" 이런 질문들은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철학적 문제와 관련된다. 예를 들어, "'심적 상태(mental states)'는 '뇌 상태(brain states)'와 같은가?" "심적 상태가 뇌 상태로 환원될 수 있는가?" "환원될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있는가?" "'창발적(emergent) 속성'이 무엇이며, 그런 것들이 있기는 한 것인가?" "만약, 창발적 속성이 있다면, 주관적 관점에서 무엇이 특별하다는 것인가?" "'의식 경험'이 생리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표상(representation)'이란 무엇이며, 뇌는 자신의 외부 세계를 어떻게 표상할 수 있는가?"

이런 철학적 질문들은 아주 일반적이고 폭이 넓다는 점에서 개괄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그런 질문들은 경험적으로 규정된 다음과 같은 개괄적 질문들과 아주 다르지 않다. "어떻게 색깔 시각이 만들어지는가?" "뇌가 어떻게 학습하고 어떻게 정보를 저장하는가?" "표상은 무엇이며, 외부 세계를 어떻게 표상하는가?" "인간의 뇌는 그 똑똑함보다 더 복잡한 것인가?" (그래서, 결국 뇌가 뇌를 밝혀내지 못할 것인가?)

그런 질문들은, '철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든 혹은 '신경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일반적으로 탐구되어야 할 것들이며,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철학과 신경과학 모두 본래부터 가지고있던 질문들이다. 어째든, 그런 질문들을 던지게 만든 동일한 호기심이 있었으며, 어쩌면 그런 질문들을, 철학이나 신경과학 혹은 심리학을 위한 질문이라고 따로 보기보다는, '뇌와 마음' 혹은 '마음-뇌'에 관한 질문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행정가들은, 사무실 공간과 급여를 제공하는 한, 행정적으로 연구 작업을 구분할 목적이 있기는 하겠지만, 연구 방법을 명령하거나 손쉬운 대가를 요구하여 방해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연구 업무를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며(신경과학 내에서도 연구 업무의 구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분야별 구분이 방법론에서 근본적 차이를 인정하거나 정당화하려들지 말아야 함을 주장할 뿐이다.

철학적 문제들은 한 때 선험적으로(a priori) 대답을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며, 그런 대답은 하여튼 순수한 이성(pure reason)으로, 즉 경험적 사실에 속박되거나 오염되지 않은 사색으로 발굴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었다. 경험 없이 확신을 얻어내는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그 독단적 태도는 과학에 대해 '반-지성적'이라며 조롱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며, 특히 그 철학이 '심리철학'일 경우 '신경과학'에 대해 그런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콰인(Quine)의 저작, 「말과 대상(Word and Object)」과 셀라스(Sellars)의 저작, 「과학, 지각 그리고 실재(Science , Perception and Reality)」의 출판으로, 철학은 기껏 '경험과학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철학적 문제들과 대답들이 다소 개괄적이긴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론이 다소 관찰로부터 구별된다고 할지라도, 최종적으로 관찰될 수 있어야 관심 받게된다. 이따금, 이론물리학에서처럼, 이론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매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결국 찾아내기는 할 것이다.

과학이 이런 저런 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를테면, 과학은 '실제 공간'이 '비-유클리드 공간'임을 발견할 수 없으며, '심적 상태'가 '뇌 상태'라고 발견할 수 없다는) 선험적 논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단지 이따금 일부 철학자들에 의해서 '상상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의존한 논의에 불과하다. 경험적 세계에 관해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경험적 세계에 관해서 '이미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의존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모두 '무지(ignorance)하거나 유연하지 못한 상상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확신하고 있는 바는, 마음-뇌 기능의 비밀을 풀어줄 연구 전략으로, (철학, 인지심리학, 그리고 인공지능 연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상위-하향(top-down) 연구 전략'과 (신경과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하위-상향(bottom-up) 연구 전략'이 서로 별개로 추구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두 연구 전략이 서로 유익하게 상호 영감을 불어넣어 주어, 두 연구 전략이 갖는 이론들 사이에, 모델들 사이에, 그리고 방법론들 사이에 풍부한 상호-진화를 일으키게 하여, 서로 정보를 제공하고, 교정시키고, 고무시킬 것을 전망한다.

신경과학자로서, '커다란 질문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에 대한 이해와 함께 (현장 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적절한 포괄적 체계'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만약 신경과학자들이 달콤한 맛에 빠져 사소한 것에 만족하거나, 혹은 막대한 인력을 들여 연구하면서 막다른 곳에 막혀 주춤거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연구에 대해 반드시 철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철학자로서는, '신경과학에 어떤 진보가 있는지' 이해하는 일은 다음과 같은 문제, 즉 '표상이 세계와 어떻게 관계하는지', '표상이 본성적으로 명제적인지 아닌지', '유기체가 어떻게 학습하는지', '심적 상태가 뇌 상태에 대해서 창발적인지 아닌지', '의식 상태가 단일 종(kind)의 사태인지 아닌지', 등등의 문제에 대한 이론들을 지지하거나 거절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만약, 철학자들이 세계에 대한 '상식적 개념'이란 좁은 협곡 속에 갇혀있지 않으려면, 혹은 자신들의 독단에 빠져 자신들의 생각을 부풀리는데 만족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신경과학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 책을 소개함에 있어, 나는 마음-뇌에 관한 통합이론(unified theory)을 발달시켜줄 아주 일반적인 체계를 대략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그 이외에, 철학, 심리학, 신경과학이 서로 영감을 불어 넣어줌으로써,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상위-하향 연구와 하위-상향 연구가 서로 영감을 줌으로써 얻게 될 풍부한 결실과 흥분을 기대한다.

생각해보면, 심리철학자들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서 적어도 도움이 된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런데, 혹자는 신경계에 관한 '경험적 사실들'이 '심리철학 연구'에 적절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논박을 다시 내놓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원론자들(dualists)의 주장처럼, '마음'은 '뇌'와 별개로 구분되는 존재이며, 따라서 뇌에 관한 정보는 마음에 대해서 그다지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못한다(8장)는 주장을 내놓을 수 있다. 혹은, 다음과 같은 주장들도 가능하다. 비록, 유물론(materialism)이 참이라고 할지라도, 심적 상태에 대한 특징적 속성들은 뇌 상태에 대해서 창발적(emergent)이다(8장). 신경과학적 발견들이 너무 자잘한 것들이라 큰 규모의 질문들에 적절하지 못할 것이다. 혹은, 신경과학은 방법론적으로 '구조적' 이론으로 규정할 수 있는 반면,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상위-하향적 어떤 방법으로) 찾는 것은 심적 처리과정의 '기능적' 특징들이다(9장). 신경과학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그 이유들 모두가 명백하게 형편없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하여튼 틀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논의들이 어떻게 틀렸는지도 보여주겠다.

그런 반면에, 신경과학자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려는) 철학적 탐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또한 명백하다. 환원(reduction)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까? 현상들의 동일화(identifications)가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 어떤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할까?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표상한다(representing)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마음-뇌 기능에 대한 통합 설명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언어와 세계는 어떻게 관련되는가? 많은 철학자들이 보기에는, 신경과학자들은, 보다 크고 개괄적 질문에 대답하거나, 자신들의 '지배하는 패러다임(governing paradigm) 총체'를 시험하는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거의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그저 무난한 보조금 계획서를 작성하고 모험적이지 않은 연구에 착수하고 싶어 할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신경과학자들은 보다 커다란 질문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경우,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론', '의미', 그리고 '설명'의 본성에 대해서,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 실증주의자들의 구시대적 발상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그런 잘못이 얼마나 흔히 일어나는지 확인시키려는 것은 아니며, 분명히 철학자들이 그렇게 지적할만한 어떤 사실적 근거가 있음을 지적할 뿐이다. 분명히, 우리들은 논리적 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 전성기 이래에 '과학의 본성'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있었으며, 지난 두 세기 동안 과학사(history of science)와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에 대한 기초 작업이 충분히 이루어졌음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 두는 것은, '철학적 탐구'와 '철학적 통찰'을 일관성 있고 흥미 있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며, 그래서 깊은 이해를 줄 정도로 충분히 상세한 설명을 주면서도, 신경과학자들이 고통스러운 난해함으로 포기하지 않도록, 분명하고 깔끔한 설명을 주어, "철학적"이란 말을 세계에 대한 나뿐 의미로, 즉 편협하고, 무지몽매하며, 무딘 것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철학적 논의는 단지 꼬불꼬불한 복잡한 길로 들어서게 만들기 쉬우며, 그래서 주된 논의를 흩트리지 않고 유지하겠다는 내 의도가 형편없이 망가질 위험도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통합이론이다. '마음-뇌가 그 어떤 것이라도 무엇을 어떻게 표상하는지'에 관한 이론과, '행동에 기초가 되는 계산 처리과정의 본성'에 관한 이론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이론을 고안하려는 선별적 노력은, 신경생리학적, 동물행동학적, 그리고 심리학적 사실들을 포함한 모든 차원의 경험적 연구결과에 의해 제약받을 수 있다. 게다가, '무엇이 이론으로 보일 수 있을지' 그리고 '마음-뇌 작용의 기초 원리들이 무엇일지'에 관련된 전-이론적 육감에 의해 영향받을 수 있다. 어쩌면 보다 근본적으로, 심지어 '그런 계획이 합리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에도 영향받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뇌에 대한 '통합이론', 즉 '모든 차원의 기술(description)을 통괄하는 이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물론 오랜 시간동안 우리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전형적으로 상당히 모호하면서도 우스꽝스런 막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 그 생각은, 과학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진보할 것이라는 막연한 이상에 불과한, 명료하지 못한 개념으로 있어왔다. 결국, 철학은 신경과학의 발달을 무시해온 경향이 있었으며, 상당히 자신의 길만을 걸어왔다. 마찬가지로, 신경과학자들도 철학자들이 '지식'과 '심적 상태'의 본성에 대해 무엇을 말하게 되었는지 개의치 않고 연구해 왔다. 아주 유사하게, 어느 쪽도 다른 쪽이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두 분야는 각기 상당히 독립적인 발달사를 가지고 있다. 서로 접촉하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그래서 언제나 '심신 문제(mind-body problem)'에 대해서 일관성이 없는 언쟁을 지속했다.
그러나, 이제는 변했다. 심리학과 컴퓨터과학이 발달했을 뿐만 아니라, 신경과학과 철학 역시 발달했으며, 그로 인해서 두 분야는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되었고, 공동 연구가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선 첫째로, 신경과학이 전체 뇌 기능의 기초원리에 관해 이론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그래서 뇌가 어떻게 '표상하고', '학습하고', '행동을 일으키는지'에 관련한 질문에 대답을 내놓기 시작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둘째로, 철학이란 신경과학자들의 연구로 대답될 수 없는 선험적 원리를 탐구하는 분야라서 철학자들만이 그 선험적 원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견해를 많은 철학자들이 포기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철학적 탐구를 위해서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발견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재평가하게 된 것이다. 셋째로, 심리학은, '기억'과 '시각 지각'과 같은, 특정한 심적 처리과정(mental process)에 대한 우리 이해에 대해 보다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면에서 어느 정도의 우리 전통적 개념들이 잘못 이해된 것들이며, 신경 메커니즘의 기능이 어떻게 수행되는지 깨우쳐주었다. 네 번째로, 컴퓨터 과학과 컴퓨터 네트워크 모델링에 대한 연구는 '정보처리', '표상', 그리고 '계산'에 대해 우리가 초기에 가졌던 개념들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들을 가지게 해주었으며, 적어도 일반적 의미에서 '내성적 사고 밑에 존재하는(subintrospective)' '마음-뇌 처리과정'의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가르쳐 주었다.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통합이론'의 우리 기대가 불가능한 먼 이야기가 아닌 시대에 들어섰다. '신경 집단이 어떻게 기능 하는지' 설명해줄 이론을 찾고, 나아가서 '상위-차원 기능'과 '하위-차원의 신경 기능' 사이에 이론적 공유영역을 찾는 일이 진정 얼빠진 과학자들이 어두운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신은, '뉴런이 무엇을 하며,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이해하지 않고 '뇌-행동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신경과학이 그 이론적 기획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경과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나의 그 확신은 더욱 깊어졌고, 그래서 내 철학적 연구의 방향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뇌'와 (뇌가 일으키는) '행동'을 이론화하는 일은 신경계(nervous systems)에 관한 세세한 사실들과 함께 큰 범위의 체계 개념 모두를 이해해야만 한다. 모든 차원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뇌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뇌에 관한 더 좋은 이론적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서 미소 이론(micro theory)과 거대 이론(macro theory), 즉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상호 진화는 이 책 전체에 걸쳐 중요 방법론적 논제이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과 '신경과학'을 서로에게 소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상적으로, 나는 이론적으로 인정될만한 신경과학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하고 싶어했었다. 아주 초기 이론적 발달 단계에서 그런 이상을 추구하기에 어려웠던 것은, '이론적으로 관련된 것이 무엇이며,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 분명 소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실험결과에 대한 이론적 중요성을 평가해줄, 무모하고 당당하며 폭넓게 인정된 이론이 꼭 필요하지만, 신경과학 내에 뇌 기능에 대한 큰 범위의 어떤 이론도 아직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이 말은 어떤 이론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쿤(Kuhn)의 의미에서 어떤 '지배하는 패러다임(Governing Paradigm)'도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한 편으로는 '기초 신경생리학', '기초 신경해부학'을 약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신경학'과 '신경심리학'을 조금 들여다보고 나서, 신경계를 연구하는데 이용된 몇 가지 '방법들'을 정밀하게 다루고자 한다.

나는 '신경과학'을 소개함에 있어 상당히 많은 양의 연구 자료들을 남겨두어야 했던 점을 상당히 아쉽게 생각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대를 갖는다. 즉, 충분한 설명을 주어서, 이제 철학자들이 두려움 없이 신경과학에 대한 교재와 논평을 읽을 수 있으며, 10장에 제시한 새롭게 떠오르는 '이론 체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다. 나는 그 이론 체계를 '큰 범위의 뇌 기능 이론이 어떤 모습이 될지' 보여주는 예로 제시했지만, 동시에 아직 어느 것도, 지금까지 그 어떤 이론도 '지배하는 패러다임'의 자격을 얻지 못했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철학자들에게 신경과학에 대한 소개를 함에 있어, 그들은 신경과학의 어떤 사실들이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좌절시킬 수 있는지 자세히 안내 받고 싶어 할 것이다. 나는 그런 방향에 맞춰 몇몇의 사례들을 제시하긴 했지만, 내 주된 논의의 초점은, 모든 기술(description) 차원에서,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통합적·포괄적 이론'의 본성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만약, 철학자들이 그런 질문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과학이 신경계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무식한 수준은 아닌 것일 수 있다. 더구나, 만약 10장에서 논의된 이론 체계가 옳은 것으로 판결 난다면, 적어도 마음에 관한 일부 전통적 철학적 질문들은, 마치 노병처럼, 단지 사라질 뿐이며, 그 자리에 아주 다른 문제들이 나타날 것이다.

제 2부에서, 나는 신경과학자들에게 철학을 소개하려고 하였으며, 주로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에서 다뤄지는 심리철학(philosophy of mind)을 소개하였다. 철학자들이 '마음-뇌에 대한 통합이론이 어떻게 생긴 것일지' 생각할 때, 수많은 문제들(예를 들어, '심적 상태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명하려면, 한 이론이 어떤 자격을 가져야 하는가?)이 관련된다. 일부 철학자들과 철학적 분위기를 가진 일부 신경과학자들이 보기에는, '마음-뇌에 대한 통합이론을 내 놓는다'는 것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로 보일 수 있으며, 심지어 터무니없는 목표로 보일 수도 있다. 그 일부 이유는 '심리학적 기술 차원의 설명'과 '단 세포 차원의 설명' 사이에 커다란 개념적 차이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이유는, '표상'과 '계산(computations)'의 본성에 대한 뿌리 깊은 이론에서 나왔다. 또 다른 이유는 '상호-이론적 환원의 본성을 잘못 이해한'데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추상적 차원에 대한 많은 논제들은 여전히 상당히 논쟁 중이며, '관습적 지혜'는 아주 큰 연못에 떠있는 작은 수련(lily pads) 다발과 같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특정한 핵심 논제에 대해 분명한 발전을 이루었으며(예를 들어 '비-물리적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 발전으로 이 논의의 결과들이 명료하게 될 수 있다. 심리철학을 소개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런 문제들을 충분히 명확히 하려는 것이며, 그래서 모든 종류의 '상식적 혼란'을 정화시키려는 것이다. 다른 일부 이유는 신경과학자들에게 '이런 추상적 문제들이 어떻게 다가올 수 있는지' 하나의 조망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런 조망이 결코 무엇에 대한 완전한 대답은 아니지만, 내가 이해하는 한, 철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에 의해 형성된 견해이다. 이 조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뚜렷한 모습을 갖는다. 하나는 '우리 정신생활의 본성에 관해 가장 뿌리깊은 확신조차도 궁극적으로 수정될 수 있다'는 주장이며, 다른 것은 '일반적으로 과학에 대한 상호-이론적 환원 이론'으로 표현된다. 이 두 모습은 마음-뇌에 대한 '통합이론'을 찾는 시도를 지지하며, 모든 차원의 기술에서 '이론들의 상호-진화'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신경과학과 관련된 철학적 논란의 골격은 '마음-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통합 이론의 본성과 그 가능성에 대한 포괄적 문제로 나타난다. '상호-이론적 환원 가능성'을 논의함에 있어서, 나는 일차적으로 신경과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다른 과학의 이론들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하는 까닭은 신경과학이 상대적으로 젊기 때문에, 이런 과학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놓고, 오랜 역사와 성숙된 이론들과 풍부한 이론적 진화를 가진 다른 과학들을 냉정하게 조사해봄으로써,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들이 가려낼 수 있을 때에, 그 논제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호-이론적 환원은 이론들의 역사적 진화의 모습이며, 따라서 실제 예들을 참조함으로써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 조망의 밑그림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분명히 다른 철학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 연구에 전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대를 갖는다. 즉, 신경과학자들이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면서 연구하고 있는 과학을 적절하게 파악할 정도로 충분한 일관된 그림이 제시되었으며, 당황하지 않고 관련된 철학적 문헌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설명이 제시되었다는 기대이다.

제 1부와 제 2부는 많은 점에서 서로 독립적 분야로, 본질적으로 각자의 역사를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분야에서의 기획이, '마음-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론을, 단지 꿈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고안하려는 노력으로 모아지고, 제 3부는 그 모아진 노력의 결실이다. 제 3부에서, 나는 신경과학의 '이론적 자격과 의미'를 논의하고, 서로 관련된 세 가지 예를 통해서 태동하는 이론들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뉴런 행동에 의한 몰 효과(molar effects)'를 설명하기에 아주 적절한 '큰 범위의 이론적 체계'의 예를 보여주며, 동시에 철학적 연구와 신경과학적 연구가 함께 노력한 예를 제공한다. 이렇게 '신경생물학에 근거한 뇌 기능 이론'이 철학자들에게 흥미를 주는 커다란 이유는 그 이론들이 '표상'과 '계산'을 규정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토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고 본다면, 그 세 가지 예들은, '표상'과 '계산'에 대해 오직 '심리학적 이론'에 의해서만 연구될 수 있다는, 주장의 반례가 될 수 있다.

'표상의 본성'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고, 목표물을 잡아낼 수 있고, 혹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설명해줄 토대가 되는 까닭은, 우리가 그런 성취에 대해서 심리학적 용어로 생각할 것인지 아니면 신경생물학적 용어로 생각할 것인지 대답해줄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표상에 대해 작용하는 그 처리과정, 즉 '계산'에 대해서도 역시 같은 이야기가 통한다. 표상과 계산에 관련된 문제들은 오래 동안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에 관한 '철학적 이론'의 핵심이었으며, 이제는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이론'의 중심 논제임이 분명하다. 제 3부의 이론적 예들에 대한 나의 선택은, '우리가 표상한다'는 것이 무엇일지에 관해, 극히 전통적인 철학적 편견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뇌가 어떻게 표상하는지'에 대해 신경과학이 우리에게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준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다.

분명히, 내가 특정한 이론적 탐구를 선택적으로 논의한 것은 오직 '철학'과 '신경과학'이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둔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론적 예들이 나의 상상을 자극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실로, 나는 그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상당히 벅차다는 실질적 이유, 즉 이만하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끝내려 한다.

지금까지 나는 '철학과 신경과학의 상호 협력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심을 기울여 왔지만, 나는 또한 '동물행동학(ethology)'과 관련 '심리학적 과학연구들(psychological sciences)'도 그런 전망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분야의 학문들도 '마음-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통합 이론'을 얻으려는 기획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경 메커니즘에 관련해서 정확히 무엇이 설명될 수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행동적 변수(behavioral parameters)를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서, 예를 들어 심리학에 의해 제안된 인지적·하부-인지적 처리과정에 대한 이론들이 신경생물학적 이론들과 상호-진화할 것으로 기대되며, 이런 이론들은 앞으로 발생할 상호-이론적 환원의 예가 될 듯 싶다.

그렇지만, 나는 동물행동학과 심리학적 과학연구들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다. 첫째, 마음-뇌에 대한 통합 이론의 가능성을 대표적으로 반대해온 입장은, 그 주제가 아주 일반적이고 아주 추상적인 사고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으로 철학적 논제이다. 만약, 통합 이론에 대한 탐구의 정당성을 방어해야할 경우, 나는 그런 반대입장에 대해 철학적 대답을 내놓아야만 한다. 둘째, '표상'과 '표상의 본성'에 대한 화제는, 비록 심리학적 과학연구들이 적절한 원리와 관련 자료들을 제시하는 한에서 내가 논의에 끌어들인다고 하더라도, 전적으로 철학적 문맥에서 논의되어왔다. 비록 그렇더라도, 심리학과 동물행동학에서의 내 연구가 불충분했으며, 이것 자체가 스스로 세 번째 이유인 동시에 실질적 이유이기도 하다. 즉, 이 책은 이미 충분한 논의를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신경과학'과 관련된 '심리학적 과학연구들'에서 상당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흥분된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기대를 갖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신경과학이 '과학'인 때문이며, 그 연구가 무지의 벽을 넘어 놀라운 새로운 발견을 주면서, 우주의 일부 모습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또한 그 연구는 우주의 아주 특정한 영역인 '우리 자신'을 직접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두개골 속에 축적된, 거대한 흥분성 세포 집단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솔직한 의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이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발견하는 중이다. 이것은, 그 의문의 본성 상,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배움이 없는 사람이든 학자이든 간에, '누구라도' 철학적으로 상당히 알고싶어하는 부분이다.


[다음은 이 책의 본문 내용 중 일부입니다.]

뇌 기능을 이론화한다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며,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철학적' 차원의 연구라도 그렇다. 신경과학단체에 모인 무리들 중에 무작위로 신경과학자 한 사람을 뽑아서 그 분야에서 이론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아마 다음과 같은 대답들 중에 하나 혹은 모든 대답을 듣게될 것이다. (1) "뇌 구조에 관한 상세한 지식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이론화할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2) "이론화에 이용 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아직 실험을 거친 것들이 아니며, 게다가 실험 신경과학에 적절하지 못하다." (3) "그런 웃기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 ((1)에 대한 상세한 해석을, Selverston 1980에서 보라.)

아마 누구라도 이런 정서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려면 누구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며, 따라서 반드시 어떤 결과물을 얻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적어도 실험하고 있을 때만은 대개 그 사용 기술과 방법, 그리고 절차가 아주 분명해야만 한다. 해부하고, 전극을 꽂아 놓고, 신경전달 물질을 뿌리는, 등등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실망스럽게도 이론화 작업에 있어서는 그 연구 기술과 방법들의 형체가 없다. 의지하고 따라야 할 어떤 지침이나 잘 갈고 닦은 방법도 없으며, 단지 "좋은 아이디어를 내봐."라는 공허한 권유가 있을 뿐이다. 더구나, 그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방법을 찾아 낼만한 어떤 이론을 밝혀내야 하므로, 어떤 아이디어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험으로 이끌어 가는 데에는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해야 하는 실질적인 부담이 있다. 만약, 그 이론이 좌절되는 일이 생기면, 흔히 그렇듯이 성숙된 패러다임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그 연구는 경력에 재앙이 된다. 그래서, "이론화하는 일은 이론가들에게나 맡겨야 한다."는 정책을 채택하는 것을 결코 불합리하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그렇지만, 이론의 가치는 실험 연구를 촉발하고 구성하는데 있으며, 그래서 좋은 이론은 중요한 실험 결과를 얻어내도록 문을 열어주게 마련이다. 이론을 회피하면 자료 수집이 무작위로 이루어지고, 그렇게 모아진 자료는 사소한 것들이기 십상이다. 이것은 현재 신경과학의 상황에서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과학자들도 지적하는 것으로, 많은 연구 제안들이 결코 진정한 가설들에 의해 동기화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는 중요한 결과를 기대할만한 커다란 연구 계획에 의해 착수되지 않고, 단지 그 연구자들이 어떤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단지 얻을 수 있는 측정만을 더 많이 얻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바로 그 '기술'이 다른 방법들을 제치고 그 연구 계획을 구성하고 주도하는 꼴이 된다. 그런 식의 연구에 의해 얻어진 정당화는 '아마-어쩌면'이라는 두 박자이다. "만약 … 라면, 아마 … 이고, 그래서 내 결과는 어쩌면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동기화 된 연구 결과란 아주 거대한 자료들의 축적일 뿐이며, 그 적절성은 신만이 알 것이다. "모든 연구 결과들이 다 중요하다."거나 "중요함이 밝혀질 것이다."라는 생각은 "귀납론자 오류(inductivist fallacy)"의 한 보기가 된다. 귀납론자의 전략에 따르면, 반드시 먼저 모든 자료들을 모은 후에 이론화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 과학 절차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드물게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보다는 마음속에 특정한 의문을 가지고 '본질'에 접근함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이 경우 그 의문들은 어떤 가설의 문맥에서 산란되어진다. (Popper 1935, 1963) 예를 들어, 클릭(Crick)과 왓슨(Watson)이 어떻게 DNA 분자 구조를 발견했는지 생각해 보라. 분명히, 우선 모든 자료들을 모으고 그것들을 한 곳에 던져놓는 식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한 가설을 시도하고 그 가설에 맞는 증거를 폐허 속에서 찾아보았으며, 다시 다른 가설을 꿈꾸고 실험하기를 계속하여, 적절한 것을 찾을 때까지, 창의적으로 반복해 나아갔다. 무작위로 자료를 모으는 모험으로 모아진 수많은 자료들은 쓸모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번에 신경과학단체에서 보여준 연구자들의 간결한 보고들 중에 적어도 몇 개는 "아마-어쩌면" 두 박자를 뻔뻔스럽게 보여주는 예가 되는 헛수고들이다.

받아들여지기는, 가장 좋은 실험이란 그 결과가 중요한 정보를 낳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실험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가용한 이론적 구조가 더 일관성과 풍부함을 가질수록, 그 질문은 더 올바르고 본질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어떤 이론적 구조가 성숙되면 그 이론과 실험은 서로 공생하여 서로를 풍성하게 할 것이다. 이론이 좋으면 좋을수록, 더 좋은 질문이 실험을 유도할 것이다. 물리학과 유전학은 이론과 실험이 서로 풍성하게 공생했던 잘 알려진 예들이다.

더구나, 실험적 연구가 이론적 가설들로부터 완전히 무관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환상이다. 다른 실험들을 제치고 특정 실험을 선택해야하는 이유가 있는 한, 틀림없이 그 실험을 지배하는 어떤 가설들이 있을 것이며, 그 가설 덕분에 그 실험을 하게끔 유도한 의문이 왜 좋은 질문이고, 왜 그 실험을 더 고려할 가치가 있었는지가 설명된다. 예를 들면, 그 실험 결과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더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데 틀림없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거라는(Kuhn 1962) 식으로 말이다. 비록 엉성하고 모호할지라도, '배경 가정', '직관', '끼워 맞춘 예비 개념들', 등등이 결집된 그 자체가 그 실험 연구를 납득할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이 된다. 따라서, 충실하고 시험될 수 있는 이론이 아닌 것들은 수정되고 도태된다. (이 논점은 신경과학에서 결코 주시 받지 못한 채 사라질 수 없다. 그 예로, 다음의 주석서를 보라. Selverston 1980, 특히 Calabrese 1980, Hoyle 1980, Lent 1980.)

세 번째로 보다 분명하고 적절한 논점이 있다. 이론들은 자료들로부터 저절로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뉴런의 조직화가 어떻게 (속칭) "조절 동작(coordinating movement)"에 성공하는지 설명해야 할 경우, 그 뉴런들의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납득할 '기능적' 설명을 필요로 할 것이다. 분명, 그 구조의 세부 항목들에 대해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비록 그것들에 대해 알게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어떻게 뉴런들이 조직화를 이뤄내는지 설명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 조직화의 기능을 단지 참여한 뉴런들에 관한 자료들로부터 읽어낼 수 없는 것은, 여러 다른 뉴런들 사이, 즉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비-선형적(non- linear)이기 때문이다. 그 조직화가 이뤄내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요소들이 하는 '일'이나, 그 요소들이 하는 '일의 합'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Bullock 1980, Davis 1980 을 보라.)

입력과 출력 조직화의 응답 모습들 사이의 수학적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자료 나열의 결과로 떨어질 무엇이라기보다, 그 무엇에 의해 영감을 받아야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이론'이란 '자료들에 대한 해석'이다. 다시 말해서, 이론은 단지 수집된 자료들의 일반화가 아니다. 더구나, 이론화에 앞서 완전한 자료 수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도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뉴런 혹은 조직화가 하는 일의 어떤 모습이 '구조적으로 적절하게 설명될지 안될지는' 오직 조직화의 기능을 설명할 어떤 이론적 지원 아래에서만 실질적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DNA가 유전 물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뉴클리오티드(nucleotides: 핵산)의 조직이 형질 결정에 관계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비록, 신경과학 내에 이론화에 대한 침묵이 있기는 하지만, 그 침묵 속에 이론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성장하고 있다. 만약, 신경과학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어떤 설명을 시도한다면, 그리고 실제로 어떤 설명이 시도되었다면, 바로 그 동안의 침묵이 이론을 싫어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동안, 신경과학은 이론들을 구성해야만 했던 것이다. 신경과학은, 해부학과 약물학, 그리고 개별 뉴런들에 대한 생리학보다 더 많은 이론들을 가져야 하며, 뉴런들의 연결 패턴 이상으로 더 많은 이론들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하부 조직에 관한 작은 범위의 모델들이며, 물론 더욱 필요한 것은, 뇌 전체의 기능에 관한 거대한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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