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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20:49) from 84.173.102.152' of 84.173.102.152' Article Number :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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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넘어서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넘어서

김 재 영

1900년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맞아 윌리엄 톰슨(켈빈)은 볼티모어에서 "열과 빛에 관한 역학적 이론에 드리워진 먹구름"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그는 물리학자의 하늘은 대체로 맑으며, 다만 에테르 속을 움직이는 지구의 운동을 설명하는 문제와 흑체 복사와 관련하여 에너지 등분배 정리가 입자 모형과 걸맞지 않는 문제, 이 두 문제만이 작은 먹구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두 작은 먹구름은 20세기에 전혀 새로운 물리학으로 자라났다.

20세기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로서 "물리학의 세기"를 꼽는 이들이 염두에 두는 것은 특히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이 가져온 사상적 및 사회적 영향력의 심각함일 것이다. 등분배 정리의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던 양자역학은 새로운 원자이론으로 거듭남으로써 현대물리학에서 예전에 뉴턴 역학이 누리던 영예를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 1960년대의 소위 극소전자공학 혁명의 주된 토대가 됨으로써, 사회적 및 기술적 반향의 측면에서도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지위에 이르렀다. 그런데, 양자역학에 대한 과학사상적 측면은 오랜 논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충분히 고찰되었다고 보기 힘든 면이 있다. 양자역학의 해석을 둘러싼 논의들은 대중과학서적 뿐 아니라 물리학자들에게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가 되어 왔지만, 대체로 단편적이거나 다소 신비주의적인 관점이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양자역학의 해석과 관련된 문제들 덕분에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철학적 및 사상적 논제들이 더 구체적이고 적합한 테두리와 대상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양자역학의 표준적인 해석으로 흔히 여겨지는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 CIQM)의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최근까지의 논의를 개괄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폰노이만, 윌러 등의 프린스턴 해석(PIQM),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한 앙상블 해석(EIQM), 에버렛 등의 다세계해석(Many World Interpretation, MWI), 결흩어짐(decoherence)을 중심으로 한 정합적 역사 관점(Consistent History Perspectives, CHP), 최근에 제시된 머민(N.D. Mermin)의 이타카(Ithaca) 해석(IIQM), 우리나라의 장회익 교수 등의 서울해석(SIQM)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후의 서술에서 모호함이 없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양자역학을 디락(P.A.M. Dirac)과 폰노이만(J. von Neumann)의 책에 서술된 형식이론으로 정의하고, 독자가 이 형식이론을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기로 한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


일찍이 보어(Niels Bohr)의 오랜 동료였던 로젠펠트(Lon Rosenfeld)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용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 용어는 "마치 양자역학에 대해 여러 가지의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었다. 로젠펠트가 보기에 양자역학에는 "오직 하나의 해석이 있을 뿐이고", "사람들이 양자역학의 해석이라고 말할 경우에 정작 그들이 말하려는 것은 양자역학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로젠펠트의 관점은 어떤 수학적 형식이론이 있을 때, 그에 대한 해석이 이 형식이론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전제에서 비롯한 것이며, 이후의 역사적 전개에서 볼 때, 양자역학은 수학적 형식이론에서 유도되지 않는 별도의 해석규칙을 필요로 함이 분명해졌다.

1920년대 후반에 등장한 양자역학은 처음부터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혔다. 올바른 물리학은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형식이론을 넘어서는 직관적이고 일상적인 관념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그다지 자연스럽거나 편안하지 않았던 양자역학은 탄생 때부터 모두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론이 아니었던 것이다. 1927년 9월에 볼타(Alessandro Volta)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모인 코모(Como) 학회에서 보어는 "양자 가설과 원자이론의 최근의 전개"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양자역학의 핵심은 이른바 양자가설로 표현될 수 있다. 이는 모든 원자 수준의 현상에 고전이론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불연속성, 아니 개별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플랑크의 작용량 양자로 상징된다."고 지적하면서, 양자역학이 이제까지의 물리적 개념을 전혀 새롭게 재정식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1927년 10월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회 솔베이 회의나 1930년의 제6회 솔베이 회의에서 양자역학의 기초에 관한 논쟁은 매우 뜨거웠다. 보어는 이 논쟁의 대부분에서 자신이 코모 강연에서 제창했던 상보성 개념에 기초를 둔 양자역학의 해석을 당시의 물리학자들이 받아들이게끔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로젠펠트가 양자역학의 해석에는 오직 하나의 해석이 있을 뿐이라고 자부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보어, 하이젠베르크, 보른, 디락, 파울리, 폰노이만 등으로 대표되는 CIQM의 주요한 내용은 교과서적으로는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양자계의 상태는 파동함수로부터 결정되며, 파동함수의 절대값 제곱은 측정값에 대한 확률밀도함수이다. 둘째, 모든 물리량은 관측가능량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특히 서로 양립하지 않는 물리량들(예를 들어 위치와 운동량)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동시에 원하는 임의의 정확도로 측정값을 정할 수 없다. 세째, 양자계는 파동으로서의 속성과 입자로서의 속성을 상보적으로 가지며, 이러한 상보성은 모든 물리적 대상에서 발견된다. 네째, 측정의 순간에 '파동함수의 오그라듦'(collapse of wave function)으로 대표되는 불연속성과 양자도약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다섯째,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의 사고실험과 관련하여 양자계는 근원적으로 비분리성(non-separability) 또는 비국소성(non-locality)을 갖는다.

실제로 CIQM의 구체적인 내용은 논자에 따라 조금씩 또는 상당히 다르지만, 대개 다음과 같은 보어의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i) 양자역학은 관측자의 지식과 무관한 객관적 실재를 기술하는 이론이 아니라, 오히려 관측자와 대상 사이의 관계를 말해 주는 이론으로서, 주어진 물리량의 측정값들의 확률분포로부터 다른 새로운 관측결과를 예측하게 하는 장치이다.

(ii) 양자계는 실제적인 실험을 통한 관측 또는 측정과 무관하게 개별적인 물리량을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그렇기 때문에 양자역학을 비롯하여 모든 이론에서 측정의 관념이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근본적'이라 함은 이론적인 서술과 별개로 측정의 이론이 따로 마련되어야 하며, 이론적인 서술도 항상 실험실 내에서의 측정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iii) 관측자가 양자계로부터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측정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 측정장치는 고전역학으로 기술되거나 고전역학적 서술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

(iv) 모든 이론에서 사용되는 수학적 정식화나 기호는 구체적인 물리적 또는 실험적 조작에 의하여 정의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번지(M. Bunge)는 이론의 '지시체'(referent)에 대해 논의하면서 코펜하겐 해석을 실재주의, 주관주의, 이원론과 대비시키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실재주의"(realist)는 모든 이론의 '지시체'는 관측자와 전혀 무관한 대상이라고 보는 입장이며, 마흐(Ernst Mach)로 대변되는 "주관주의"(subjectivist)에서는 이론을 감각경험이나 머리 속의 관념 등과 같은 인지행위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본다. "이원론"(dualist)은 이론의 '지시체'로서 물리적 대상과 관측자 둘 다에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입장이다. 이원론에서는 주체와 대상을 섞지 않는 대신에, 주체와 무관하게 객관적인 부분과 인간이 대상을 알기 위해 가하는 조작과 관련되는 부분 모두가 각각 이론의 '지시체'라고 본다. 번지가 보기에, "코펜하겐 해석"(CIQM)은 이와 달리 물리학적 이론의 '지시체'를 쪼갤 수 없는 주체-대상의 한덩어리로 보는 입장이다. 즉, CIQM에서는 양자역학이라는 형식이론이 주체나 대상 어느 한 쪽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항상 함께 '지시'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모든 수학적 공식은 구체적인 관측자나 관측 상황을 고려해야만 비로소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CIQM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장은 어떤 물리량의 값이 측정 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의 해석에서 당시 뿐 아니라 지금의 물리학자들도 심기가 불편함을 느끼는 까닭 중 하나는 고전역학은 물론이거니와 전자기이론과 상대성이론에서조차 수식으로 씌어진 물리량은 우리가 측정을 수행하든 하지 않든 무관하게 그 값을 물리적 대상이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CIQM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양자역학의 해석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불편해 하는 다른 요소들까지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예로서, 최근에 이타카 해석(Ithaca Interpretation of QM, IIQM)을 제안한 머민(N.D. Mermin)의 불만을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머민이 CIQM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은 새로운 해석에 대한 "희망사항" 또는 "요구사항"들에 요약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제대로 된 동역학 이론이라면 CIQM에서처럼 객관적 실재와 관측자의 지식 사이의 경계선이 불분명해서는 안 된다. 물리학이론이 기술하는 대상이 대상에 대한 측정장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하늘의 달이 관측할 때에만 존재한다는 주장만큼 물리학이론의 지위를 폄하하는 것이다.

둘째, 동역학 이론의 서술은 교량규칙이나 해석규칙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런 점에서 '측정의 이론'과 별도로 규정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실증주의자(또는 경험주의자)들처럼 양자역학을 단순히 어떤 일련의 측정값들과 이후의 일련의 측정값 사이의 연관만을 계산할 수 있게 해 주는 알고리즘으로 보는 관점은 부적절하다. 제대로 된 물리학이론이라면 측정을 수행하든 하지 않든 대상을 원하는 만큼 기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째, 머민은 양자역학의 확률적 특성은 고전통계역학에서처럼 대상의 상세한 내용을 관측자가 모두 알 수 없다는 관측자의 한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제대로 된 동역학은 앙상블 뿐 아니라 개별계를 기술하는 데에도 적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머민의 요구사항은 단지 앙상블 해석이 필연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단 하나의 개별계에 대해서도 확률분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째, 머민은 고전적인 영역 같은 것을 상정할 필요가 없어야 함을 주장한다.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측정장치 같은 것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완결될 수 있는 동역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폰노이만 이후의 측정의 동역학적 이론에서 측정과정이 양자동역학으로도 서술될 수 있는지 아니면 고전동역학으로만 서술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가 되는 것은 동역학에서 '측정'이 하는 역할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다섯째, 아인슈타인의 국소성은 물론이거니와 서로 매개하는 상호작용이 없는 임의의 두 계에 대해서도, 한 계의 사실적인 상황은 다른 계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조작과도 무관해야 한다. 양자역학을 통하여 물리적 실재를 완전히 기술할 수 있으며, 아인슈타인의 국소성도 성립한다고 가정한 뒤에, 이것이 물리적 실재로 여길 수 있는 것에 어떤 제한을 가하는가를 살펴보자는 것이 머민의 생각이다. 이는 우선 실험을 통하여 확증된(또는 확증된 것으로 여겨지는) 자연과학의 논의를 받아들이고, 이로부터 정당화될 수 없는 선험적인 가정들을 제거해 나가자는 제안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희망사항은 진지한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생각해봄직한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로 양자역학의 국면은 새로운 응용분야를 찾아 새로운 수학적 형식론을 다듬어 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물리학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감에 따라 실사구시적인(pragmatic) 논의가 아니면 연구비를 확보하기조차 힘들어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에 맞물려,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는 물리학의 문제로는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대부분의 교과서는 수학적으로 어떻게 양자역학 문제를 풀 수 있는가에 집중되었고, 해석 문제가 제기될만한 주제를 다룬 물리학 논문들은 대개 코펜하겐을 언급하면서 보어의 저작 몇 개를 각주에 넣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결국 CIQM의 실제 내용은 물리학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많았지만, 아인슈타인도 논쟁에서 패배했고, 하이젠베르크조차 결국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면서 보어에 설득당하자, 현장의 물리학자들은 이 '난해한' 문제가 모두 CIQM을 통해 해결되었다고 간주해 버림으로써, CIQM은 양자역학의 해석에서 지배자가 되었던 것이다.


환원주의적 해석


파동역학이 학술지에 모습을 나타낼 무렵부터 이미 이 새로운 형식이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쉬뢰딩어(Erwin Schrdinger) 자신은 쉬뢰딩어 방정식에서 유도되는 연속방정식


∂/∂(eψψ*)=-∇ㆍ/(ieh/4πm)(ψ∇ψ*-ψ*∇ψ)


을 바탕으로 "어떤 의미에서 원자의 정전기 및 정자기 모형을 말할 수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eψψ*는 전자의 전하밀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를 더 발전시킨 마델룽(Erwin Madelung), 콘(Arthur Korn) 등의 유체역학 해석(hydrodynamic interpretation)에서는 파동역학은 다름 아니라 점성이 있는 압축성 전자기유체의 역학이라고 보았다. 파동역학이 색다른 것은 일종의 탄성포텐셜로 해석할 수 있는 항이 덧붙여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파동역학을 기존의 잘 알려진 이론으로 환원하여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틀어 환원주의적 해석(Reductionist Interpretation, RIQM)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계보에는 드브로이(Louis de Broglie)의 파일럿 파동(pilot wave), 봄(David Bohm)과 비지에(Jean-Pierre Vigier)의 '운동의 양자이론'(quantum theory of motion), 헝가리의 야노시(Lajos Jnossy)와 치글러-나라이(Maria Ziegler-Nray)의 정교한 유체역학모형 등이 포함된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 더 세밀하게 체계화된 봄의 역학은 양자역학의 모든 예측과 양립하면서 동시에 고전역학적 직관에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운동의 양자이론'으로도 불리고 '인과적 해석'(causal interpretation)이라고도 불리는 봄의 역학에서는 파동함수가 일종의 유체역학적 상태를 기술하는 것으로 본다. 다만, 이 유체를 구성하는 개개 입자들은 더 하위의 숨은 매질입자들과 상호작용함으로써 불규칙한 요동(양자포텐셜로 기술되는)에 놓이는 것으로 본다. 양자포텐셜을 만들어내는 숨은 매질 입자의 성질이 평범한 물질과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이 해석은 어떤 의미로는 19세기의 에테르 이론의 부활로 볼 수도 있다. RIQM은 고전역학의 직관은 구해 냈지만, 그 댓가로 이해하기 힘든 또 다른 개념을 만들어내야 했다. 물리학자들이 RIQM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는 RIQM은 CIQM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RIQM은 CIQM을 넘어서려는 이후의 노력에 중요한 교두보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양자역학의 측정의 문제


이후의 서술에서는 논의를 좀더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양자역학의 해석 전반을 얘기하기보다는 이른바 '양자역학의 측정의 문제'를 중심으로 CIQM에 대한 대안적 해석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양자역학의 측정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세 언명에 대하여 비정합성이 있음을 뜻한다.


① 상태벡터 ψ는 어떤 대상이든지 대상의 물리적 상태에 대한 완전한 기술을 제공한다.

② 대상을 정의하는 동역학적 특성함수로서의 하밀토니안 연산자로부터 구성된 시간흐름 연산자를 Ut라 할 때, 상태벡터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ψ(t)=Utψ(0)와 같이 결정론적으로 또는 유니타리하게 변화한다.

③ 모든 관측가능한 물리량에 대하여 자기수반 연산자가 대응되며, 그 관측값은 항상 그 연산자의 고유값 중 하나가 되는데, 대상계가 벡터 ψ로 기술되는 상태에 있을 때, 관측결과가 특정의 고유값 a(대응되는 상태벡터는 φa)가 될 확률은 보른의 해석 규칙을 따라


Prob(a|ψ)= |<ψ|φα>|2/|<ψ|ψ>|2


으로 주어진다. 단, φa는 고유값 a에 대응되는 상태벡터이다.

측정의 과정이 실제적인 물리학적 과정에 대한 기술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셋째 언명 ③은 둘째 언명 ②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왜냐 하면, 보른의 해석 규칙은 측정 전에는 ψ로 기술되는 상태에 있던 대상이 측정 후에는 φa로 기술되는 상태에 있게 됨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예로서, 양자계가 (3/5)ψ1+(4/5)ψ2라는 힐버트 공간의 벡터로 기술되는 상태에 있을 때를 살펴보자. 여기에서 ψ1과 ψ2는 어떤 물리량(예를 들어 스핀) A의 가능한 측정값이 a1과 a2, 이렇게 두 값 뿐이라고 할 때, 각각의 가능한 측정값에 대응되는 상태를 가리키며, (3/5)ψ1+(4/5)ψ2로 기술되는 상태는 이 두 상태가 각각 확률 9/25, 16/25로 중첩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에 쉬테른-게를라흐 장치와 같은 측정장치를 작동시켜, 물리량 A의 값이 a2임을 알았다고 하자. CIQM에서는 이 상황을 측정 직전에는 (3/5)ψ1+(4/5)ψ2로 기술되는 상태에 있던 대상이 측정 직후에 ψ2로 기술되는 상태로 오그라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측정자와 측정장치가 심각한 역할을 한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 오그라듦은 둘째 언명 ②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CIQM은 어떻게 이런 오그라듦이 가능하게 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보어는 이러한 양자 도약이 필연적인 것으로 보고, 측정장치가 거시적이며 고전역학적인 대상이기 때문에 측정과정은 고전역학적으로 기술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입자-파동의 상보성을 넘어서는 고전역학-양자역학의 상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철학자 카트라이트(N. Cartwright)는 양자역학의 측정 문제는 이론제국주의(theory imperialism)를 극복하는 이론다원주의(theory pluralism)의 필요성을 확연하게 보여준다면서 측정의 양자이론은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폰노이만은 측정의 과정까지를 모두 양자역학의 틀 내에서 기술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투사가설(projection postulate)을 도입하여 측정이 개입했을 때의 '과정 1(R과정)'과 측정이 개입하지 않았을 때의 '과정 2(U과정)'를 구분함으로써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고자 하였다. 이것은 앞의 둘째 언명 ②를 수정하여, 유니타리한 시간흐름과 갑작스런 시간흐름이라는 두 종류의 시간흐름이 있다고 보는 것에 해당한다. 폰노이만은 측정과정을 대상계와 측정장치 사이의 물리적 상호작용으로 기술하면서, 측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느 단계에선가 측정장치의 눈금이 여러 가능한 값의 중첩이 아니라 명확한 한 값으로 투사(project)된다는 가설을 도입해야 함을 밝혔다. 흔히 정통해석(orthodox interpretation)이라 할 때에는 폰노이만의 형식이론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 해석은 제창자와 위그너(Eugene Wigner)나 윌러(J.A. Wheeler)와 같은 지지자들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있었기 때문에 프린스턴 해석(PIQM)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논의는 수학적 형식이론 속에서 측정과정을 분명하게 다루었고, 양자역학의 측정의 문제를 상보성과 같은 철학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동원하지 않은 채 명료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진일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투사가설은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단지 '측정의 문제'를 좀더 깨끗하게 정식화한 것에 불과하며, 해결책을 제시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앙상블 해석과 숨은변수이론


통계역학의 성공은 물리량이 측정과 무관하게 실재한다는 관념에 좋은 모범이 되어 주었다. 열역학, 특히 둘째법칙은 어쩔 수 없이 통계적 또는 확률적으로 물리적 상황을 기술해야 함을 보여주지만, 이는 단지 우리가 대상계의 개별적인 상태를 일일이 추적할 수 없다는 실제적인 한계를 말할 뿐, 확률이론이라는 탁월한 도구를 쓰면 결국 실험실에서 관측할 수 있는 물리량의 값과 이론에서 상정하는 물리량의 값 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앙상블 해석(Ensemble Interpretation, EIQM)과 그 확장판인 '숨은변수이론'(hidden variable theory)은 이런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깁스(Gibbs)의 앙상블 개념처럼 똑같이 준비된 많은 수의 양자계에 대한 서술이라고 보면 양자역학의 해석을 둘러싼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에서 말한 '측정의 문제'를 예로 들면, EIQM에서는 1억개의 똑같이 준비된 대상계 중 5천만개는 물리량 A의 값으로 a1을 '소유하고' 있고, 나머지 5천만개는 a2를 '소유하고' 있다고 본다. 1억개의 대상계 중 어느 것이 a1을 '소유하고' 있는지 말해 주는 숨은 변수를 알 수 있다면, 이 숨은 변수에 대한 기대값 또는 확률분포가 곧 중첩상태 (3/5)ψ1+(4/5)ψ2에 대한 기대값 또는 확률분포를 준다는 것이다.

숨은변수이론의 관심은 "상태 벡터와 함께 덧붙여지는 변수(숨은 변수)들의 값을 주면, 개개의 측정에 대해 (고전역학에서처럼) 정확한 결과를 결정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변수들이 있어서, 양자역학적 상태를 이 변수들로 규정되는 상태들의 통계적 앙상블로 간주할 수 있는가 여부"였다. 쉽게 말해서 똑같이 준비된 앙상블에 또다른 확률분포를 부여해서,


〈A〉ψ=〈ψ|Aψ〉=∫Λ A(λ)dμ(λ)


와 같이 쓸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1950년대 이후로 숨은변수이론의 가능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면서, 일련의 금지정리들이 증명되었다. 글리슨(Gleason)의 정리, 코흔-쉬페커(Kochen-Specker)의 정리, 야우시-피론(Jauch-Piron)의 정리 등은 양자역학의 예측과 양립하는 숨은변수이론이 만족해야 할 조건들을 새로이 제시해 주었다. 이 논의들을 통해 양자역학적 상태를 통계역학에서처럼 처음부터 대상이 '소유하고' 있는 물리량의 값들에 대한 통계적 앙상블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코흔-쉬페커 논변의 예로서, 스핀 1인 점알갱이에 대해 세 물리량 Sx2, Sy2, Sz2을 생각하자. 이 세 물리량은 서로 교환되므로 표준적인 양자역학의 형식이론에서 동시에 측정될 수 있다. 만일 이 점알갱이가 세 물리량의 값을 처음부터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각 물리량의 가능한 값은 0 또는 1(단, ħ=1)인데, 셋을 더하면 항상 2가 되어야 하므로, 셋 중 둘은 1이고 나머지는 0이어야 한다. 그러나 간단한 기하학적 방법을 써서 이렇게 값을 할당하는 것이 모순을 초래함을 보일 수 있으며, 이는 대수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1989년에 그린버거(D.M. Greenberger), 호른(M.A. Horne), 자일링거(A. Zeilinger)는 세 개의 두 상태 계로 구성된 복합계에서 대상이 물리량의 값을 '소유하고' 있다는 가정이 모순을 일으킴을 보였다.

숨은변수이론에 대한 가장 유명한 금지정리는 아마도 벨(J.S. Bell)의 정리일 것이다. 1964년 벨은 임의의 국소적 숨은변수이론에서 양자역학과 양립하지 않는 부등식을 유도할 수 있음을 보였다. 이 부등식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a) 실험결과가 측정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b) 두 부분계가 있을 때, "계 S2에 대한 실험결과는 이 계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다른 계 S1에 대한 측정장치의 세팅과 무관하다는 두 가정이 필요하다. 편광 캐스케이드를 이용한 아스펙트 등의 실험은 벨의 부등식을 만족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양자역학의 예측과 매우 잘 일치하였다. 결국 EIQM과 그 연장선에 있는 숨은변수이론은 어쩔 수 없이 CIQM에 또다시 참패한 꼴이 되었다. 물론, 이제까지의 금지정리나 실험결과와 양립하는 다른 형태의 숨은변수이론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방향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했다.


결흩어짐과 정합적 역사 접근


양자역학의 해석은 결흩어짐(decoherence)이라는 개념을 통해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CIQM이나 PIQM에서는 이른바 '파동함수의 오그라듦'이나 '투사가설'은 단지 가설로 제시되었을 뿐 구체적인 메카니즘이 없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경계선이 불명확해진다거나 양자역학에 '측정이론'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면모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주렉(Wojciech Zurek) 등은 대상계와 측정장치 외에 '환경'이라는 세번째 부분계를 도입하고, 매우 많은 자유도로 이루어져 있는 '환경'과 측정장치의 상호작용을 고려함으로써,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측정장치의 눈금들 사이에 중첩(또는 양자 결맞음, quantum coherence)이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메카니즘을 고안해 냈다. 실제적으로 그럴듯한 조건에서 결흩어짐이 일어나는 시간은 대상계가 안정하게 되는 데 걸리는 이완시간에 비해 10-40배 정도로 계산되는데, 이렇게 결흩어짐이 빨리 일어난다면, 관측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측정장치는 명확하게 한 눈금만 가리키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결흩어짐은 "양자세계로부터 고전적 세계가 나타나는" 메카니즘이 될 수 있으며, '투사'의 좋은 모형이라 할 수 있다.

벨은 양자역학이 "모든 실용적인 목적에 대하여"(for all practical purposes, FAPP) 성공적임을 인정했지만, 결흩어짐과 같은 메카니즘은 양자역학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측정 이전에 대상의 상태는 여러 상태의 중첩('and')으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중요한 핵심이라면, 측정의 결과는 이 값 아니면 저 값의 택일('or')이 되어야 한다. 벨에 따르면, "어떤 방식으로든 양자 결맞음이 사라지게 하면 'and'가 'or'로 바뀐다는 생각"은 "원래의 이론을 어림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폐기하고 대치하는 것"이다.

결흩어짐 자체만으로는 투사가설의 한 구체적 메카니즘을 제시하는 데 그칠 수 밖에 없겠지만, 이 개념은 곧 독자적인 해석 대안으로 발전하였다. 일찍이 1957년에 에버렛(Hugh Everett III)은 "우주 파동함수의 이론"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에서 이른바 상대상태 해석('relative state' interpretation)을 전개했고, 이는 드윗(B. de Witt) 등을 통해 다세계해석(many world interpretation, MWI)으로 발전하였다. 에버렛은 '투사'가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고 일축하면서, 관측결과와 관련하여 세계는 끊임없이 갈래질한다는 관념을 제시했다. 이는 특히 '우주 전체의 파동함수'와 같은 관념을 염두에 둘 때, 관측자라는 특별한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결흩어짐과 MWI가 만나면서, 양자역학을 더 확장하여 '상태'라는 개념 대신 '역사'(histories)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접근이 나타났다. '역사'는 대략 말해서 시간에 의존하는 사영연산자의 시간순서곱으로 정의되는데, 결국 양자역학이 원하는 것은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지는 사건의 연속선 속에서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고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므로, 결국 '역사'라는 개념이 중심에 놓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이제까지 성공적이었던 양자역학의 예측과 걸맞기 위해서는 일련의 조건들이 부가되어야 한다. 이를 가리켜 정합적 역사 접근(Consistent History Approach, CHA) 또는 결흩어진 역사 접근(decoherent histories approach, DHA)이라 부른다. 그리피스(R. Griffiths), 옴네스(R. Omns), 겔만(M. Gell-Mann), 하틀(J. Hartle) 등이 대표적인 논자이다. 어떤 이들은 결흩어짐과 CHA를 신정통해석이라 부르면서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명실상부한 대안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누구나 이에 동의하는 상황은 아니다.


최근의 새로운 해석들


머민(N.D. Mermin)은 최근에 "양자역학의 이타카 해석"(IIQM)이라는 이름으로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머민은 CIQM에 대한 불만사항과 새로운 해석에 요구되는 희망사항을 개괄한 뒤에, 대안적 해석을 위해 전형적인 양자역학에서 근본으로 삼고 있는 '상태'라는 개념을 공략하고 있다. '상태'의 개념은 힐버트 공간 정식화에서는 힐버트 공간의 한 원소나 힐버트 공간에서 작용하는 단위자국류 연산자(normalized trace class operator) D로 표상되는데, '상태'의 개념 대신에 부분계들 사이의 '엇물림'(correlation)을 더 근원적인 개념으로 본다면, 앞에서 말한 '희망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머민의 주장이다. 머민이 사용하는 '엇물림'(相關關係, correlation)이란 용어는 "둘 또는 그 이상의 부분계로 구성된 복합계에서, 각 부분계에 국한되어 정의된 관측가능량들의 텐서곱에 대한 기대값(평균)으로 주어지는 동시확률의 분포(joint probability distribution)"로 정의된다. 머민은 여기에 덧붙여 '내적 엇물림'(internal correlation), '외적 엇물림'(external correlation)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내적 엇물림'이란 주어진 계에 대하여 그 계를 구성하는 부분계들에 대하여 정의된 엇물림이며, '외적 엇물림'이란 주어진 계를 한 부분계로 하는 더 큰 복합계를 상정하여, 그 복합계의 부분계(주어진 계를 포함하여)들에 대하여 정의된 엇물림이다. 즉, 두 부분계에 대하여 A=A⊗I, B=I⊗B와 같이 정의된 관측가능량은 각각의 부분계에 국한되어 있다. 이 때, 이 두 관측가능량에 대하여 평균값 <A⊗B>=Tr(DA⊗B)을 '엇물림'이라 한다. 머민의 양자역학의 해석, 즉 IIQM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Mermin; IIQM]

(i) 대상계에 대한 상태를 기술하는 상태연산자(밀도행렬)는 그것이 1차원 사영연산자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로 그 대상계의 근본적이고 객관적인 성질이다. 즉, 소위 '혼합상태'(비순수상태)가 '순수상태'보다 덜 근원적이라고 할 수 없다.

(ii) 주어진 대상계의 상태연산자는 그 부분계들에 국한하여 정의된 관측가능량들의 곱의 평균값(엇물림)으로부터 일의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 따라서, 대상계의 '상태'라는 개념을 '엇물림'(또는 동시확률의 분포)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도 좋다.

(iii) 물리적 실재의 근본적이고 환원되지 않는 객관적 요소는 부분계들 사이의 엇물림(correlation)이다. 그러나, 엇물리는 것(correlata)은 물리적 실재가 아니다. [주어진 대상계에 대하여 부분계들의 동시확률의 분포는 물리적 실재이지만, 이 동시확률로부터 정의할 수 있는 조건부확률은 물리적 실재가 아니다.]

(iv) 대상계에 대한 양자역학적 서술은 앙상블로서 뿐 아니라 개별계에 대해서도 유효하며, 파동함수 또는 양자 상태란 그 내적 엇물림의 간결한 요약이다.

(v) 이 엇물림들은 전체 대상계의 관측가능량들의 확률분포를 결정하므로, 개별계에 대하여 근본적이고 환원되지 않는 객관적 성질들은 '객관적 확률'(objective probability)이다.


요컨대, IIQM은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를 모두 '객관적 확률'의 문제로 이전시켰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IIQM은 아직은 논쟁의 영역 안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충분히 성숙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직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는 논의의 여지가 있는 미개척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양자역학에 대한 적절한 해석의 대안이 제시되었다. 장회익 교수와 이중원 교수 등은 양자역학의 해석이라는 문제를 더 일반적인 메타이론의 맥락에서 논의하였다. 이 논의를 굳이 지칭하자면 '서울해석'(SIQM)이라 부를 수 있다. 이론이 실험의 작업결과를 소재로 작업하듯이, 메타이론은 이론의 작업결과를 소재로 작업한다. 메타이론, 특히 동역학 자체를 작업소재로 삼는 메타동역학(meta-dynamics)의 관점에서 보면, 양자역학의 해석규칙은 양자역학의 형식이론 자체에서는 나올 수 없다(아마도 이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의 해석은 양자역학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별도의 규칙으로 주어진다. 물론 이 규약은 형식이론과 잘 맞아떨어지게끔 정해져야 하며, 형식이론을 해석하는 데에 꼭 필요한 규칙만을 선정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양자역학의 가설들'이라고 흔히 지칭되는 양자역학의 출발점이다. 이 '가설들', 즉 해석규칙은 양자역학으로부터 유도되는 것이 아니다. 그 중 어떤 것은 불필요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문제점을 일으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동역학의 해석규칙은 동역학의 형식이론에서 서술되는 '상태'와 실험실에서 맞부딪힐만한 '사건'을 연관짓는 규칙으로 정의된다. 해석규칙은 (a) 물리적으로 또는 조작적으로 정의된 물리량을 형식이론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상하는지, (b) 이 물리량에 대한 '사건'은 형식이론에서 어떻게 규정되는지, (c) 주어진 또는 유도된 '상태'에 대하여 가능한 '사건'을 어떻게 연관지을지, (d)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새로운 '상태'를 부여할지 등과 같은 네 요소로 이루어진다.

SIQM에 따르면 양자역학의 해석규칙은 다음과 같다.


(양자역학의 해석규칙)

(a) 모든 관측가능한 물리량 A에 대하여 힐버트 공간에서

작용하는 선형(자기수반) 연산자 A' 가 대응된다.

(b) 그 물리량이 관측되는 값은 A' 의 고유값 중 하나 a가 된

다.

(c) 대상계의 상태가 벡터 ψ로 기술될 때, 관측결과가 특정의 고유값 a가 될 '사건'의 확률은


Prob(a|ψ)= |〈φa|ψ〉|2


으로 주어진다. 단, φa는 A' φa=aφa와 같이 정의된 바, 고유값 a에 대응하는 고유벡터이다.

(d) 측정을 통해 관측값 a를 얻는다면, 이제 대상에는 이 고유값에 대응하는 고유벡터인 φa를 새로운 상태로 "할당"한다.


어떤 면에서는 교과서에 흔히 서술되는 '양자역학의 가설들'과 같은 내용으로 보이지만, 단순히 가설1, 가설2 등과 같이 평면적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해석규칙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보는 요소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해석규칙의 네째 요소에서 새로운 상태는 "할당"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해석규칙과 형식이론 사이의 경계선을 명료하게 함으로써, 해석규칙이 형식이론에서 유도되는 것이 아님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측정을 통해 파동함수가 오그라든다거나 결흩어짐이 생긴다거나 무수히 많은 세계의 갈래질이 일어난다는 얘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앞에서 다루었던 예를 SIQM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3/5)ψ1+(4/5)ψ2라는 힐버트 공간의 벡터로 기술되는 상태에 있는 대상에 대해 측정장치를 작동시켜, 물리량 A의 값이 a2임을 알았다고 하자. 측정 이전에 대상의 '상태'가 (3/5)ψ1+(4/5)ψ2로 기술된다는 것은 가능한 두 '사건' 즉 물리량 A의 값이 a1로 측정될 사건과 a2로 측정될 사건이 각각 확률 9/25, 16/25로 예측됨을 의미한다. 측정 결과 물리량 A의 값이 a2로 측정된다면, 이제 대상에 대해 새로운 상태 ψ2를 할당한다. 이렇게 준비된 새로운 상태로부터 다시 새로운 동역학 서술이 시작된다.

이제 앞에서 요약한 CIQM의 출발점에 대해 SIQM의 대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i) 양자역학은 형식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동역학적 특성'으로 정의된 대상을 인식주체의 영역과 무관하게 서술하는 이론이며, 메타동역학적으로 대상에 대한 '상태'의 서술과 그로부터 관측자가 얻을 수 있는 '사건'의 서술 사이에 명확한 규칙을 제시하는 동역학 체계이다.

(ii) 양자계에 개별적인 물리량이 고유하게 붙박여 존재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측정이란 양자계가 가지고 있던 물리량의 값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다. 실제적인 실험실의 측정 상황은 '사건서술'에 해당되는데, 이는 일종의 물리학적 이론으로서의 '측정의 이론'으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규약적으로 '상태서술'로부터 그에 대응하는 '사건서술'을 얻어내고, 반대로 '사건서술'로부터 '상태서술'을 할당하는 규칙(RULE) 또는 대상의 '상태'를 대상에 관한 '정보'로 해석하기 위한 규칙이 메타동역학적 요소 중 하나로 요청되는 것이다. RULE은 '측정의 이론'과 달리 대상영역에 속한 규칙이 아니라 대상영역과 인식주체영역 사이의 연관에 관한 규칙이다.

(iii) 관측자가 양자계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서 사용하는 측정장치는 대상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주체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측정장치를 기술하는 별도의 동역학 이론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vi) 모든 이론에서 사용되는 수학적 정식화나 기호는 구체적인 물리적 또는 실험적 조작과 연관지을 수 있어야 하지만, 대상-동역학적 서술에서는 수학적 무모순성이 보장되는 한에서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으며, 최종적인 단계에서만 RULE에 의거하여 서술주체로 하여금 사건서술을 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아직 SIQM은 활발한 논의의 장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정합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참신한 해석으로 여겨진다. 이 글에서 SIQM을 소개하는 데에는 이후에 국내에서부터 양자역학의 해석문제에 관한 좀더 진지하고 생산적인 토론이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도 담겨 있다.


글맺음


이제까지 양자역학의 해석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코펜하겐 해석으로부터 그에 대한 다양한 대안적 해석들까지 주마간산격으로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반프라센(B.C. van Fraassen)의 양상해석(modal interpretation), 파이얼스(R. Peierls)의 지식해석(knowledge interpretation), 넬슨(E. Nelson) 등의 통계과정적 해석(stochastic interpretation) 등 이 글에서 개략적으로도 언급하지 못한 접근들이 있다. 양자역학의 해석에서는 '비국소성'이나 '입자-파동 상보성'과 같은 개념을 상세하게 검토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지면상 '측정의 문제'에 국한하여 각 해석의 측면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글 끝에 소개한 간략하지만 대표적인 참고문헌을 통해 좀더 상세한 논의에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이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촉매와 같은 역할을 하기를 희망한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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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이학박사로서 서울시립대, 가톨릭대 등 강사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는 P. Harman, Energy, force and matter: The conceptual development of nineteenth-century physics; {에너지, 힘, 물질: 19세기의 물리학} (성우, 서울, 2000)이 있고 논문은 "동역학의 이론구조 III: 일반 메타동역학", "동역학의 이론구조 IV: 양자역학의 메타동역학", "엇물림은 상태서술을 대신할 수 있는가?: 양자역학의 확률개념을 중심으로 한 IIQM의 비판적 검토를 위하여" 등이 있다.

( zyg@fire.snu.ac.kr)


http://www.kps.or.kr/~pht/10-1_2/010108.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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