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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6/10/08 (09:52) from 84.173.44.169' of 84.173.44.169' Article Number :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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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회학이론의 핵심쟁점과 그 향방 - 혼돈이론







           21세기 사회학이론의 핵심쟁점과 그 향방*

            --- 신기능주의, 후기구조주의, 혼돈이론을 중심으로 ---




                                               이  흥  탁**













  I. 구조기능이론과 합리적선택모형의            IV. 사회과학과 혼돈이론

            이념논쟁                           V.  사회학과 혼돈이론

  II. 신기능주의의 등장                         VI. 사회학이론으로서 혼돈이론의

  III. 후기구조주의의 난맥상                             문제점과 향후과제



















  I. 구조기능이론과 합리적선택모형의 이념논쟁




    1) 사회구조 중심이론--구조기능이론  




   오늘날 사회학에서 난제로 남아있는 사회구조와 행위자간의 이중성(duality)과 양분성(dualism)에 관한 논쟁은1) 21세기에 들어가서도 쉽게 그 해결책을 찾아 내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 이유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가속화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행위자 보다는 오히려 행위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구조, 특히 정보통신매체가 인간의 사회적행위에 보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가 인간과 기계의 관계로  바뀌어져 가는 것이 과거 산업사회와 구별되는 닥아오는 정보사회의 가장 뚜렸한 특징이라면, 이는 곧 기존의 산업사회에서는 별다른 무리없이 적용되었던 사회학의 제반이론이 정보사회에서는 더 이상 적용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짙어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논문은 1999년도 교내연구비에 의해 작성된 것임

**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교수
















 산업사회의 사회학이론중에서 쌍벽을 이루었던 것은 사회구조 우선론을 견지하였던 구조기능이론(structural functionalism)과 이와 대조되는 행위자 우선론을 주장하였던 합리적선택모형 (rational choice model) 또는 합리적선택이론 (rational action/choice theory; RCT)이었다. 구조기능이론의 핵심내용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위세를 떨쳤던 사회인류학, 특히 말리노브스키의 기능주의이론과 레드크리프 브라운의 구조주의이론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구조기능이론이 사회학에서 확고한 자리를 구축하게된 것은 머어턴 (Robert K. Merton)의 노력에 의한 것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머어턴은 사회인류학에서 협의로 사용되던  ‘기능’의 개념을 보다 광의로 해석하여, 이같은 광의의 개념을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적용하려 하고 있다.

 머어턴은 ‘기능’이란 인간사회 전체가 유지되고 발전해 나가는데 기여하는 인간의 다양한 행위와 각종 사회제도간에 맺어지는 관계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방편 (a way of conceptualizing)이라 설명하고 있다. 즉 그의 주장을 따르면, ‘기능’과 ‘구조’란 개념은 상호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만큼 ‘기능’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회학의 이론들이 단순히 기능이론으로 불리워지기 보다는 구조기능이론으로 불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머어턴이 주장하는 구조기능이론의 특징과 문제점은 어떤 것인가? 우선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행위자가 의도하는 대로 이루어질때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행위자가 의도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행위에서 비롯되는 결과 (consequences)란 행위자가 의도했던 것일수도 있고 반대로 행위자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다(People may intend to do one thing but may produce actions whose unintended repercussions result in a quite different outcome)2)는 사실을 그는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행위의 상당 부분이 행위자의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행위자를 위요(圍繞)하고는 있으나 행위자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체인 사회구조가 행위자의 행위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뜻한다. 행위자의 자의적 내지는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사가 행위자 외적인 성질을 띈 비인간적 (non-human)인 사회구조에 의해 구속을 받는다는 주장은 바꾸어 말하면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감정을 가진 개개인 행위자의 심리상태나 동기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개인의 심리적 동기는 그 개인의 행위와는 별개의 것 (exogeneity of motives)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와같은 이유로 구조기능이을 비판하는 사회학자들은 일찍이 개인의 개인적인 행위뿐만 아니라사회적행위3)를 설명함에 있어 행위자의 자의적인 생각이나 취향이 그 개인의 개인적 내지는 사회적행위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endogenization of actor's preferences)4)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왔었다. 특히 호만스5)를 비롯한 심리학주의를 표방하였던 학자들은 후일 합리적선택모형을 정립하는데 기여할만큼 사회구조우선론보다는 행위자우선론을 제시하였다.




    2) 행위자 중심이론--합리적 선택모형

 사회구조우선론에 대조되는 합리적선택모형(신고전주의 경제학이론에서 비롯된)의 주요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6).

a) 모든 행위자는 어떤 형태의 행위에서건 주어진 외적여건 (exogenous resources/ preferences)을 자기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rationally self-interested) 활용하려하며,

b) 모든 인간의 행위는 행위자 자신의 자의적인 생각에의해 결정되지만 동시에 행위자와 행위의 영향을 받는 상대방과의 이해관계의 상호작용 (actor interdependencies)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으므로,

c) 위의 두가지 조건이 충분히 충족되지 않을 때 행위자는 자기자신이 추구하고자하는 이해관계를 재조정하거나, 또는 행위의 영향을 받는 상대방의 이해관계를 '적절한 정도로 재조정하여‘ (recompute the structure of interdependencies within the specific ranges of actions) 목적한 바를 달성하려 한다.

 이상과 같은 합리적선택모형의 제한성은 위의 ‘적절한 정도로 재조정하여’라는 단서에서도 알수 있듯이, 인간의 모든 행위를 설명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한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의 각종이론에서 합리적선택모형이 거론되는 이유중의 하나는 구조기능주의에서 지나치게 사회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행위자 자신의 자의적인 생각이나 동기가 본의아니게 평가절하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간략하게 합리적 선택모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헤난 (Michael T. Hannan)7)은 개인수준의 합리성 (rationality)과 다수의 개인으로 구성된 집단 또는 조직체수준의 합리성은 본질적으로 상이할 수 밖에없는 것이므로, 사회학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합리적  선택모형으로는 개인수준 (micro-level)의 합리성은 설명가능할지 모르나 집단수준 (macro-level)의 합리성을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즉 올슨이나 마웰8)등이 주장하는 이른바 “책임분산" (diffusion of responsibility)”, 무임승차“ (free-rider), ”공유재“ (public goods), 그리고 ”체제마비“ (system clogging) 문제와 같은 현상은    일개인의 행위에 적용되는 합리적 선택모형으로는 규명될수 없으며, 더욱이 개인은 합리적 선택모형이 전제하는 것처럼 항상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 될 때만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할수 없는 (sub-optimal) 경우에나,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외부의 압력 (coercion)이나 불가항력의 힘9)에 의해 특정의 행위를 수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아마도, 합리적 선택모형의 가장 두드러진 단점은 모든 행위자들은 특정의 행위로 진입하기 전에 이미 표출될 이 행위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결코 특정행위의 수행과정에서 그릇된 정보로 인하여 원래 의도했던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10) 지나치게 단순화된 가정이라 할 것이다.     




     II. 신기능주의의 등장

앞서 언급한 구조기능이론의 문제점에 대한 논난은 합리적 선택모형이 대두하기 이전에 이미 신기능주의 (neofunctionalism)란 이름으로 계속되어 왔었다. 물론 신기능주의란 용어가 일반화된 것은 1980년대 중반에 알렉산더 (Jeffrey Alexander)11)가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부터였다. 또한 파슨즈와 머어턴의 기능이론 또는 구조기능이론을 수정하여 새로운 기능주의를 제시해 보고자 노력한 사회학자들로는 독일의 루만 (Niklas Luhmann)12)을 비롯한 대서양 양안의 다수 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미국 사회학계를 풍미하였던 구조기능이론은 왜 이처럼 신기능주의의 도전을 받을수밖에 없었는가? 먼저 구조기능이론은 미시적 측면과 거시적 측면의 양면에서 도전을 받았는데 미시적 측면이란 호만스등이 주장하여 후일 합리적 선택모형으로 발전하였던 행위자 중심이론이며, 거시적 측면에서는 모든 사회현상을 항상성 (homeostasis)과 균형 (equilibrium)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구조기능이론을 정면 부정하는 갈등이론가들, 즉 모든 사회현상은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균형 (disequilibrium) 상태에 있어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conflict-ridden) 이론가들의 주장과 충돌하고 있었다.13)

보다 구체적으로 구조기능이론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조기능이론으로는 사회변동을 설명할수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에 대해 구조기능이론가들은 분화이론 (differentiation theory)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즉, 분화의 논리에 따르면, 사회변동은 “분화와 통합의 부조화” (uneven march of differentiation and integration)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사회 각 조직의 구조기능면에서의 분화는 일단 통합을 거친 후에 다시 분화, 또 재통합이라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분화의 속도나 폭이 통합의 속도나 폭과 동일한 보조를 맟추어 조화있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면 사회변동이 야기될수밖에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분화이론을 따르면, 사회변동은 불균형상태에서 비롯되는 사회불안과 직결되어 있으며, 사회불안은 정치, 경제, 종교등의 구조적인 면에서의 분화가 이들 구조상호간의 관계를 조정하고 결속시켜 주는 통합메카니즘에 의해서 통제될수 없을 때 야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화이론 역시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능주의의 입장이다. 신기능주의 이론가들은 구조기능이론은 역사의 주체인 개개인 행위자를 도외시하고 있을뿐 아니라, 더욱 용납할수 없는 사실은 모든 사회현상을 무목적론적 (non-teleological) 성격을 띈 사회구조만으로 설명하려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만약 구조기능이론이 보다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에만 집착하는 순수한 기능주의적 분석방법 (functional analysis)의 제한된 범위를 벗어나서 행위자의 능동적인 행위를 종요시하는 행위중심의 분석방법 (action analysis)14)을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수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구조기능이론으로는 각 사회가 처해있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니스빗15)같은 사회학자는 구조기능이론이 사회변동을 설명하면서 단순히 체계내적 요인 (endogenous factor)만을 강조한 나머지 특정 사회의 역사적 배경을 도외시한 지극히 몰역사적 ( a-historical)인 분석방법만을 고집하고 있으며 권력다툼과 갈등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위와같은 두가지 비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신기능주의의 아래와 같은 4가지 기본요지이다:

a) 구조기능이론에서처럼 신진화론(neo-evolutionism)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하여 진화론의 원리를 소규모의 개별 단위국가나 사회수준 (societal level)에 국한시켜 적용하기 보다는 최소한 몇 개 이상의 국가나 사회로 구성된 대단위의 국가군이나 사회군 (world systems level)에 진화론의 논리를 적용해야하며16),

b) 사회구조의 분화과정을 설명함에 있어 맹목적으로 진화론의 원리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각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 (historical specificity)을 감안해서 적용해야 하며,

c) 신진화론에서 강조하는 진화론적 보편요소 (evolutionary universals)는 순수히 하나의 모형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조기능이론에서는 이같은 이론상의 모형을 현실사회의 사회구조 자체로 착각하는 이상에 치우친 극단론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같은 이상론으로는 인간사회를 분석할수 없으며17),

d) 구조기능이론은 사회현상을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지나치게 안이한 낙관적인 (complacent liberal optimism)18) 해석을 하고있어 인간사회의 어두운 측면 (seamy side)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상과 같은 신기능주의가 대두할 수밖에 없었는가? 1960년대에 접어 들면서 2차대전후 전세계를 풍미하였던 낙관론이 점차 퇴색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인간역사는 단선적인 발전만을 거듭할수 밖에 없으리라 (straight line of history)19)는 (특히 근대화이론이 핵심을 이룬다) 생각이 설득력을 상실하게 되고, 사회변동이란 근본적으로 진화론의 이론으로는 다루기 힘든 현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의적인 생각과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인간사회의 기능구조적인 분화 (functional-structural differentiation)20)는 그냥 방치해 두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아무런 목적의식없이 표류하게 될것이 분명하므로 구조기능이론에서 그 중요성이 경시되었던 행위자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된 것이다.

 환언하면, 인간사회가 현상태에서보다 한층 향상된 수준에서 새로운 사회균형을 이룩하는 데는 우리사회가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길잡이인 행위자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신기능주의는 앞서 언급한 합리적 선택모형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양자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는 사회구조와 행위자의 중요성은 다같이 인정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사회구조에 보다 큰 비중을 두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사회구조는 거의 도외시한체 행위자의 중요성만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다시 한번 신기능주의의 요지를 간추려보면, 구조기능이론에서 강조하는 사회구조나 사회체계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요구조건들 (societal system needs)에 추가하여, 신기능이론에서는 이제까지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던 집단권력투쟁 (power conflict)이나 행위자들간의 이해관계의 갈등 (conflict of interest among the collective actors), 그리고 이같은 권력투쟁이나 갈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전혀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가 하는 문제까지도 폭넓게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III. 후기구조주의의 난맥상




 비록 신기능주의가 사회구조와 행위자 양자의 중요성을 다같이 인정은 하였으나, 역시 사회구조중심적인 속성은 떨쳐 버리지 못하였다. 즉 신기능주의는 사회구조와 행위자간의 연계, 또는 사회학이론에서 거시적인 사회구조중심이론과 미시적인 행위자 중심이론간의 관계 (macro-micro linkages)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는 못하였다.

신기능주의가 이처럼 사회구조와 행위자간의 관계를 설명해주지 못하자 아예 사회구조와 행위자간의 구분마져도 부정하는 이른바 역분화이론(de-differentiation theory)이 대두하였으니 이를 일컬어 후기구조주의 (post-structuralism)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한다.


 후기구조주의가 표방하는 3가지 주장은 다음과 같다:

a) 반근본주의 (anti-foundationalism) --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적용될수 있는 어떤 종류의 확실한 이론도 있을 수가 없으며 덧없고 부질없으며 혼돈에 가득차 있는 사회현상을 하나의 단순화된 논리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간사회에 최소한의 질서가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혼란스런 상태에 있는 사회학자들의 머리속에나 남아 있는 허황한 것일뿐이며, 진화론과 신진화론에서도 알수 있듯이 자연과학분야는 달리 사회과학분야에서는 통시적으로 적용가능한 일반이론 (trans-historical generalizations)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일종의 비관론을 펼치고 있다.

b) 실종된 행위주체 (decentred subject) -- 모든 사회현상은 이같은 사회현상을 야기시킨 행위자가 있어 행위자의 의도대로 나타나게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모든 사회현상은 행위자 자신의 궁극의 목적에 따라서 또는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되는 것이 아니고 행위자를 에워사고 있는 제반 사회여건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후기구조주의는 오히려 구조기능이론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c) 이론과 실제간의 연관성 부정 -- 후기구조주의에서는 사회학의 제이론이 실제 사회현상을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반영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실제 사회현상이란 인간이 임의로 도출해내는 이론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통시적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continues in time)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환언하면 후기구조주의 이론가들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책” 이라는 단어 (signifiant)와 “책”이라는 물건 그 자체 (signifie)간에는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이론이란 공허한 것일뿐 구체적인 현실을 파악하는데 하등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회학자들이 제시하는 이론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현실사회를 임의로 사회학자들의 머리속에서 그려낸 어설픈 이론으로 해명하려 하기보다는 아예 이론 그 자체를 “해체” (deconstruct)해 버리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극단론을 펴고 있다.

 이론이 현실사회를 대변해 주지 못하는 이상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을뿐이며, 특히 유의해야할 점은, 기존의 모든 사회학이론들은 한결같이 실존하지도 않은 사회현상을 엄연히 실존하는 것처럼 전제하고 있으며, 마치 추상적인 이론과는 별개의 성질인 객관적인 실체 (extra-theoretical material existence)가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이같은 객관적인 실체 역시 공허한 환영에 지날뿐이라는 주장이다. 그 이유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들 “구체적인” 실체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론을 도출해 내는데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의 이같은 지나치게 상대주의적인 생각은 현실사회를 분석하는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혼란과 혼돈만을 가져올 가능성이 짙다. 그러면 왜 이와같은 지리멸렬하게 보이는 다분히 비관적인 생각이 지배적이 되었을까? 이는 곧 구조기능이론과 이와 정면 대립되는 합리적 선택모형이 다같이 현실사회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데 대한 하나의 “세기말적인” 역작용의 형태로 나타난 현상이라 할수 있겠다. 우선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몇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a) 베버가 주장한 바와같이 현대사회의 가속화되고 있는 기능분화 (functional specialization), 그리고 효율성과 이해타산성 (efficiency and calculability)을 중시하는 풍조는 인간을 한낱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같은 현상은 인간에게 보다 폭넓은 자유를 가져다 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를 박탈하여 인간을 이른바 탈인간화 (de-personalization)의 상태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폭넓게 자유로이 행동할수 있는 자의적인 선택이나 판단의 여지를 상실하고 극심한 혼돈속에 갇혀 있다.

b) 인간들이 이제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해왔던 언어의 의미마져 퇴색해버린 상태에서, 해괘한 추상적인 수학공식 (abstract mathematical formulae)이 언어를 대체하는 기현상이 노정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거의 완벽하게 보이는 이들 수학공식들도 그 내면을 파고들어가 보면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으로 점철되어 있어 이제까지 우리들이 확신하고 있던 시.공간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 자체가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았음을21) 재차 확인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c) 이러한 와중에서 사회학이론에서 이제까지 거의 의심할 여지없는 “진리”로 신봉되어 왔던 기간 이론 자체가 도궤되는 양상으로 치닫게 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맑스는 그의 자본론에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한가지 방편으로 경제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좋으나, 맑스이론의 치명적인 모순점은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현상이란 화폐나 노동자의 몸둥이와 같은 물질적인 성질을 띈 것 (materiality of the economy)22)으로만 착각하고 모든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후기구조주의에서는 화폐를 단순히 하나의 물질로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고 화폐라는 하나의 물질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화폐를 위요하고 전개되는 인간관계, 즉 화폐라는 물건이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 갗추어 져야할 인간관계의 표상 (money as a symbol system)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다시말하면 후기구조주의에서는 화폐로 대표되는 경제가 단순히 생산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던 맑스의 자본주의 논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관계에서 비롯되기 훨신 이전에 이미 일반대중의 소비양상에서 비롯된다는 색다른 주장을 하고있다.

이와같은 이유로 후기구조주의에서는 자본주의사회의 맹점을 비판하면서 맑스가 강조하였던 생산양식에 집착하기 보다는 맑스가 철저하게 도외시 하였던 소비양식 (mode of consumption) 또는 문화양식 (mode of culture; mode of signification)23)에 모든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같은 후기구조주의의 입장은 비단 사회학에만 국한되었던 것이 아니고 문학, 철학, 심리분석학이나 심지어 기호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사회학에서는 행위자와 사회구조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미시적방법과 거시적방법론의 차이마져도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단론으로 치닫고 있어, 후기구조주의는 하나의 통일된 이론으로 불리워지기 보다는 모든 것을 모두 수용하려는 이른바 잡동사니 역분화 (free for all strategy of de-differentiation) 논리라 부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 같다24).

 그러면 이상과 같은 후기구조주의가 사회학의 제반이론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그 후유증은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가? 앞서 잠깐 언급한 바와같이 무엇보다도 혼란스런 후기구조주의는 사회학이론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위세를 떨쳤던 자본주의 사회현상에 대한 맑스의 정치경제학적 분석방법을 흐려놓는데 일조를 하였다 (물론 여기서 맑스의 정치경제학적 분석방법이 다른 어떤 분석방법보다도 우월하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후기구조주의 이론가25)들은 맑스의 자본론 핵심논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기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자본주의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상품생산이 아니라 상품소비라 강조하고 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상과 같은 후기구조주의 이론가들의 “소비 우선론” (primacy of consumption)은 이미 맑스가 그의 Grundrisse에서 변증법의 논리를 제시하면서 “상품생산이란 소비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상품의 소비가 없는 곳에 상품생산이 있을수 없으며, 이는 곧 상품의 소비가 상품의 생산을 우선할 수 밖에 없다26)” 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후기구조주의가 기존의 사회학이론의 미비한 점을 부분적으로 지적하여 줌으로서 기존 사회학이론의 각종 기본가정들 (basic presuppo sitions)을 재고하는데는 일조를 하였다고 하겠으나 인간사회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데 치중함으로서 사회학이론을 한층  발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발전을 저해시킨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면 여기서 구체적으로 후기구조주의가 기존의 사회학이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바우만27)의 주장을 토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a) 후기구조주의는 인간사회는 기계처럼 단순한 원리로 설명가능한 것이 아니고 복잡다단한 성질을 띄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즉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구조주의, 기능이론, 구조기능이론, 합리적선택모형등은 한결같이 모든 사회현상을 단선적인 수학공식으로 설명할수 있으리라는 가정을 하고 있으나, 후기구조주의에서는 이같은 가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후기구조주의는 인간사회를 단순한 기계체계 (mechanical system)로 생각하지 않고 기계체계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복합체계 (complex system) 또는 혼돈체계 (chaos system)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면 복합체계 또는 혼돈체계28)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첫째, 복합체계에서는 기존의 통계처리방법으로는 예측불능한 사회현상이 다반사로 나타나게 된다. 사회의 각종 역동적인 측면과 이 역동적인 힘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돌출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은 불가능하며,

 둘째, 통계 숫치의 크기와 이 숫치의 크기가 가지는 의미간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찾아볼수 없다(significance and statistical numbers have parted ways)는 주장이다. 즉 통계숫치로는 아주 미미한 것으로 처리되어  전혀 사회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리라 생각되었던 사회현상이 인간사회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게 되는데도 이와같은 미미하고 하잖게 보이는 사회현상을 기존의 이론으로는 예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b) 기존의 사회학이론에서는 사회전체가 나가야 할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는 하나의 통일된 주동세력 (goal-setting agency)이 항상 있는 것으로 가정하여 왔으나, 사실은 하나의 통일된 주동세력에 의해서 인간사회가 유지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잡다한 군소의 세력들이 난립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영위, 발전되는 만큼 하나의 통일된 이론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 후기구조주의 주장이다.

 이같은 후기구조주의의 입장은 다음에 설명할 혼돈이론에서 또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IV 사회과학과 혼돈이론




 1. 혼돈이론의 적용범위




 인구나 환경문제를 전공하는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이라면 아마도 혼돈이론에 대한 논의에 많이 접할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로지스틱 진화론 (logistic evolution)29)이나 創發論者들(emergent evolutionists)이 주장하는 創發的構造 (emergent structures) 또는 創發的 進化論 (emergent evolution)등은 이미 인구나 환경정책 수립이나 사회학에서 사회운동 또는 사회변동을 설명하는데 일상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상태이다.

 우선 언뜻 보기에 사회과학도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생각될지도 모를 혼돈이론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시도하기 전에, 구체적인 최근의 사회현상을 실예를 들어 혼돈이론의 개략적인 설명에 대신하고져 한다. 먼저 사회과학분야중에서도 방법론 면에서 가장 발전된 분야로 불리워지고 있는 경제학에서 환경문제를 다룸에 있어 정통적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론과 대비하여 혼돈이론을 어떻게 새롭게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 보자30).




    (가) 환경문제에 대한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입장


    (a) 경제체계는 환경체계와는 별개로 하나의 독립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b) 사회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론은 인간사회를 다분히 역사성을 무시한

        기계에 비유하고 있다. 즉 양자물리학이전의 논리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c) 사회현상은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의 논리로 설명가능 할뿐 아니라, 단선적인

        (linear)논리로 설명가능하다. 시장경제란 항상 균형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 환경문제에 대한 혼돈이론의 입장31)




     (a) 경제체계는 환경체계와 역동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환경문제를 떠나서 경제문제를

         논할 수가 없다

     (b) 경제적인 현상은 역사성을 도외시하고는 다루어 질 수 없는 것이므로, 양자물리학 이전의

         물리학이론 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을 다루는 생물학이나, 기후학 (climatology), 또는  혼돈            이론을 다루는 수학 (post-chaos math)의 논리로 제반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

         해야 한다. 인간사회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명체에 보다 가깝다

     (c) 시장경제원리는 원천적으로 불확실성에 기초를 두고 있어 단선적인 논리보다는

         비단선적 (nonlinear)논리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제까지의 경제학이론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회과학의 이론들이 일,이차방정식수준의 단순논리로만 사회현상을 설명하려 하였기 때문에 보다 복잡다단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는 부족함이 많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그러면 사회학의 경우는 어떠한가?

  일부 사회학자들32)의 주장이긴 하지만, 맑스가 그의 자본론에서 변증법의 논리를 전개하였다는 것은 바로 혼돈이론의 논리가 사회학의 이론전개에 일찍부터 적용되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는 주장에서도 알수 있듯이, 헤겔이나 맑스(특히 엥겔스)가 제시한 변증법의 논리가 혼돈이론의 논리에 아주 근접하고 있음을 알수가 있다. 심지어 일부 사회학자들은 혼돈이론이 변증법의 논리에 기초를 둔 과학적사회주의의 핵심논리(the advent of chaos theory provides fresh backing for the fundamental ideas of scientific socialism)와 일치하는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여기서 엥겔스가 주장하였던 변증법의 논리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유물론을 철저하게 신봉하였던 엥겔스는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는 사회현상은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변증법의 논리로만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즉 예측불허의 기상이변과 같은 자연현상이 변증법의 논리로 설명될수 있듯이 역사를 통하여 끈임없이 발생하는 사회의 각종 돌출사건들 역시 변증법의 힘을 빌려야만 설명할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 기후학에서 기상이변을 혼돈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음은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사회현상 역시 혼돈이론으로 설명 가능함을 말해주고 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혼돈이론의 핵심내용이라 불리워지는 分岐現象 (bifurcation; period doubling)33)은 자연과학에서는 유전학의 원리와 일맥상통하며, 사회과학에서는 맑스와 엥겔스가 주장하는 중세봉건사회가 근대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는 원인과 과정을 동시에 설명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환언하면, 유전학에서 논의되는 인간과 침빤지의 원초적인 유전학적 차이 (difference in basic genetic make-up) 는 순수 양적인 면에서는 원래 별차이가 없었겠으나 (단지 2%보다 적은 차이밖에 없다) 이같은 미세한 양적 차이가 누적되면 어느 특정 시점에서 마치 혼돈이론에서 분기현상이 돌출하듯이 질적인 면에서 완전히 구분되는 인간과 침빤지의 차이로 돌변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혼돈이론에서 논하고 있는 세칭 “나비효과” (butterfly effect)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이와같은 혼돈이론가들의 주장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세봉건사회가 근대자본주의 사회로의 누적적인 양적 변화 (accumulation of quantity)가 아닌 “질적 변화” (qualitative jump)를 이룩한 것도 혼돈이론의 분기현상과 하등 다를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혼돈이론이 변증법의 논리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증거가 되며, 변증법의 논리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停滯狀態 (static state; being) 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過程 (dynamic process; becoming)34)을 보다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오히려 헤겔이나 맑스, 엥겔스가 혼돈이론의 선구자라는 주장마져 대두하고 있다.

 최근 사회학에서 어느정도까지 혼돈이론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가를 설명하기위해 오늘날 혼돈이론과 創發論의 중심지의 하나라 불리워지는 산타페연구소 (Santa Fe Institute)의 활동상황을 예를들어 보기로 한다35). 현재 미쉬간대학교 교수이자 산타페연구소의 기간요원인 (SFI science board member) 홀란드36)에 따르면 아직 사회학에서는 물리학이나 생물학에서처럼 혼돈이론이 무리없이 적용될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는 혼돈이론의 핵심부분인 창발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창발현상에 대한 우리들 (산타페연구소 사회과학분야 이론가들)의 입장은 마치

     음란물이 무엇인가를 하나의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판결을 내릴수는 없지만

     그러나 음란물이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판사의 처지나 다름이

     없다. 즉, 무엇인지 아직은 정확하게 규명은 하지 못하고 있으나 창발현상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부인하지 않는다.“37)




 특히 사회학을 비롯한 사회과학분야에서 혼돈이론이 적용되는 현상을 정확하게 밝히기 어려운 것은 개개인 인간이 개별적으로 행하는 행위가 어떤 특정 시점에서 상호교차 (interactions)하는 일종의 극한 상황 (critical mass)에서만 혼돈이론이 적용되므로 정상적인 상황에서 개개인 인간간에 맺어지는 대부분의 행위에서는 혼돈이론의 원리를 규명해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혼돈이론의 특수성을 이들 산타페 이론가들은 다음과 같은 실예로 부연하여 설명하고 있다. 콜럼비아대학 사회학교수이기도 한 스타아크 (David Stark)는 소집단이론에서 많이 인용되는 “도적의 곤경” (prisoners' dilemma)이론에서38)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로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도적)들은 자기자신이 불이익을 당하면서까지 공범자인 상대방 죄수(도적)가 방면될수 있도록하는 증언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지만, 어떤 특정의 극한상황 (분기현상이 나타나는 시점과 일치한다)에 다다르게되면 “자신이 상대방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게되면 상대방도 반드시 자기자신에 유리한 증언을 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죄수(도적)들로 하여금 이제까지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는 증언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말끔히 싰어버리게 만든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과학에서와는 달리 사회과학에서는 극한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가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같은 이유가 사회학에서 혼돈이론이 더욱 혼돈스럽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호만즈39)가 주장하는 기존의 구조주의 또는 교환구조이론으로는 왜 이제까지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위를 결코 하지않으려던 죄수(도적)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자신이 아닌 공범인 상대방 도적에게 오히려 유리한 증언을 자청하게 되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즉 이처럼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혼돈스런 상태는 혼돈이론의 힘을 빌려야만 해명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또 한가지 더 예를들면, 동구지역 일부 국가와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시장경제체제로 급속한 재편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대단위의 부정부패가 만연하였고, 이같은 전대미문의 부정부패는 시장경제가 자본주의사회를 탄생시키는 지름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게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 동구지역과 중국에서는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하는 순수 자본주의 경제체제도 아니요 또 그렇다고하여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처럼 정부에 철저하게 의존하는 기업형태40)도 아닌 이른바 “뫼비우스 끈 형태” (moebius-strip ownership)를 띈 제3의 경제체제41)가 진화론의 창발현상처럼 의외로 싹트게 (emerge)되었다는 주장이다.

    

   2. 사회변동과 혼돈이론의 연원




  사회학에서 혼돈이론의 연원을 찾는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혼돈이론이 사회학이란 학문의 영역에서 논의 될 수밖에 없게된 근본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나 다를바 없다. 우선 이해를 돕기위해 사회변동론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기존의 사회학이론을 따르면, 사회변동을 다루는 사회학의 이론은  두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진화론의 원리를 따르는 신진화론 (neo-evolutionism)이고 둘째는 역사학주의 (historicism)이다. 신진화론의 경우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창발현상과 같이 이미 혼돈이론이 깊숙히 침투해 있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으나 역사학주의의 경우는 혼돈이론의 영향을 받지않은 “불모지”로 남아있어, 역사학주의를 좀더 자세히 분석해보면 왜 혼돈이론이 사회학에서 다루어 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쉽사리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먼저 역사학주의가 사회변동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그 핵심요지를 살펴보자:




(1) 사회변동이란, 규모에 상관없이,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예측불능의 비정상적인 현상이며,

   인간사회에서 사회변동이란 遍在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특정 상황에서만 偏在할 뿐이다.

(2) 사회변동은 일정한 방향이 없이 무질서하게 이루어 진다. 따라서 사회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사회변동의 방향성 (directionality)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 사회변동이란 사회체계내재적 (endogenous)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체계 외적인

   요소 (external forces)에 의해서 야기된다.

(4) 사회변동은 누적적 (cumulative)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단위의 사회변동이 소규모

   의 사회변동이 누적된 결과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아무런 역사적 근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사회변동에는 일관된 어떤 법칙성도 찾아 볼수 없다.

(6) 사회변동에는 진화론과 같은 하나의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역사학주의의 입장을 분석해본다면 사회변동은 혼돈에서 시작하여 혼돈으로 끝을 맺는 어쩔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팽개쳐 놓을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와같은 혼돈상태에서 사회변동을 주동하는 근본원인을 찾아 보고자 뛰어든 이론이 혼돈이론인 것이다. 즉 어떻게하면 혼돈의 극치같이 보이는 사회변동현상에서 한줄기 질서를 찾아낼수 있을까 고심하는 자들이 혼돈이론가들이다. “혼돈속에서 질서” (order out of chaos)를 찾으려 시도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인지가 어느 정도까지 사회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해 낼수 있을까를 점검해 보는 작업에 비유된다고 하겠다. 좀더 극단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혼돈이론을 통하여 인간은 어떻게보면 그들 인지의 한계를 저울질하려하고 있는것일지도 모를일이다.

 여기서 굳이 자연과학도들이 논하는 혼돈이론의 원리를 자세히 제시할 필요는 없겠으나, 사회학분야에서도 혼돈이론이 적용되고 있는만큼 이해를 돕기위해서 우선 간략하게 이 이론의 내용을 살펴보자. 뉴욕과 같은 번잡한 도시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한결같이 혼란과 무질서의 연속같이 보이는 곳에서 거대한 도시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외견상 무척이나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상을 꽤뚤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에대한 해답은 곧 혼돈이론42)이 어떤 경위를 거쳐 사회과학의 영역으로까지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데서 자연히 찾아지게 된다.

 먼저 혼돈이론에 관련된 기초적인자료 몇가지를 제시하기 전에 앞에서 언급한 복합이론 (complexity theory)과 혼돈이론의 차이점에 대하여 살펴보면43) 복합이론은 모든 사회현상은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있는 기존의 이론들과 혼돈이론간의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즉 기존의 이론들은 모든 사회현상은 안정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예측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에, 복합이론은 기존이론에 비해서는 사회현상의 안정성이나 예측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혼돈이론에서는 모든 사회현상은 불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예측불능의 상태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같은 혼돈상태에서부터 통일된 법칙들을 찾아내어 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복합이론도 혼돈이론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생명체의 진화나 환경문제등을 논할 때 거론되는 혼돈이론은 거의 대부분 순수 혼돈이론보다는 복합이론의 성격이 짙다.

 혼돈이론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예는 아래와 같다.

(1) 왜 각종 사회운동, 폭동이나 군소규모의 소요사태는 난데없이 발생했다가는 곧 소멸되고 마는가?

(2)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뿐 아니라 문화마져 다른 두 지역에 동일한 사회구조가 생성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왜 각종 사회변동이 아무런 예고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나게 되는가?

(4) 왜 인간들은 무리를 형성하는 즉시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하나의 실체 (a single entity)로 돌변하는가?

(5) 의사결정을 잘못한 조직체들도 쓰러지지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6) 우리들이 계획한 일들이 왜 계획대로 실천에 옮겨지지 않고 중도에서 좌절되고 마는가?

(7) 조직체의 장이 결정한 사항이 반드시 그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8) 40여년에 걸친 구소련의 동구권 지배가 왜 1989년에 갑자기 막을 내리게 되었을까?




 이상에서 열거한 사회현상에 대해 혼돈이론이 이제까지 기존의 이론들이 시원하게 해답을 제시해주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보다 명확한 해답을 시도할수 있게된 것은 아마도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고성능 컴퓨터의 등장으로 가능해 졌을 것이다. 이와같은 주장은 혼돈이론이란 원천적으로 역동적 체계이론 (dynamic systems theory)에서 비롯되었다는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일부 학자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속도가 각종이론의 발달 속도를 앞지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혼돈이론의 등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44)













       VI 사회학과 혼돈이론




 이상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혼돈이론이 적용될수 있는 영역은 다양하다. 산타페연구소의 CAR (computer-assisted reasoning) 연구논문45)이나 엑슬로드의 논문46)으로 짐작할수 있듯이 혼돈이론이 실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적용될수 있는 영역은 다양하다. 특히 오늘날 사회학이나 행정학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조직이론에서는 사이보그 (cyborg)형태의 이른바 준생물학주의 (quasi-biologism)이론을 적용한 조직이론이 대두하고 있다. 이는 곧 이제까지는 조직환경의 외각을 형성하고 있어 조직체내의 인간관계에 간접적인 영향만을 끼쳤던 정보통신기기가 조직체내의 인간관계에 인간자신들 못지않게, 오히려 인간이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좀더 극단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오늘날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정보통신기기를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는 “인간이 통신기기 속에 파묻히게되고” (embodying human agency in material artefacts)  “인간이 통신기기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려” (man becomes the physical appendage of the machine) 인간과 기계를 구별할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47)    

 조직이론에서 특히 혼돈이론이 각광을 받고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기존의 이론들이 지나치게 조직체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협화음을 하나의 하잘 것 없는 현상 (noise)으로 가볍게 다루었기 때문에 조직이론 자체가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조직체내에서의 의사결정은 항상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은 마치 혼란스런 우주 (chaosmos)48)의 원리를 질서정연한 우주 (cosmos)의 원리로 설명하려는 것이나 다를바 없었다는 생각이다. 조직체내의 모든 인간의 행위가 합리적 선택모형에서 전제로하고 있는 것처럼 합리적으로만 이루어 진다는 가정에 바탕을 둔 대부분의 조직이론이 왜 사회현상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가는 이미 여러 학자들에49) 의해 지적되고 있을뿐 아니라, 기업경영부분에서도 급변하는 시장경제 체제속에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혼돈이론의 원리를 도입하여 종래의 기업경영방법을 바꿀수 밖에 없는50) 상황으로 바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학영역에서는 어떤 분야에서 주로 혼돈이론이 적용 가능한가를 살펴보자.  

이제까지 사회학에서 가장 어려운 난제로 남아있던 사회구조와 행위자간의 관계, 즉  거시적접근방법과 미시적접근방법의 연계, 개인우선론과 사회우선론의 문제는 혼돈이론의 힘을 빌리면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제까지 단선적 논리에서는 개개인 인간이 모여서 집단을 형성한다는 주장만 되풀이 해 왔을뿐, 왜 어떤 결정적인 순간 (critical point)에 일단 형성되었던 집단이 순식간에 와해되는가는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였다. 또 한가지 더 쉬운 예를들면 해변가에서 모래를 쌓아 올리면 모래성이 만들어지는 현상은 기존의 사회학이론으로도 무리없이 설명될수 있지만, 일단 만들어진 모래성에 계속 모래를 쌓아 올리게되면 어느 시점에서 모래성 자체가 마치 산사태를 만난것처럼 무너지게 되는 이치는 비단선적인 혼돈이론을 적용해야만 해명할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형적인 혼돈이론의 예는 로지스틱 곡선의 형태로 나타나는 도시인구의 급증현상51), 하품이 주위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전염되듯 확산되는 현상, 그리고 왔쯔의 흑인난동과 같은 군집행동이 삽시간에 걷잡을수 없이 근접지역이나 원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확산되는 현상으로 이같은 “비정상적인” 현상은 오로지 혼돈이론을 적용하여야만 설명될수 있다. 이와 유사한 실예로 환경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각종 사회정책52)과 화폐를 위요하고 전개되는 인간관계53) 역시 혼돈이론에서 다루어지는 창발현상의 대표적인 예라 할수 있을 것이다. 슈타우브만에 따르면54) 화폐를 매개체로 전개되는 인간관계란 단순히 두사람 또는 세사람이 가지고 있는 금전의 교환에 지나지 않는 개개인의 단순한 행위로 해석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화폐라는 물건 때문에 두사람 또는 세사람사이에 전에는 찾아볼수 없었던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게 되며, 새로히 형성된 인간관계는 화폐이전에 존재하였던 인간관계와는 질적인 면에서 구별되는 창발현상을 나타낸다는 주장이다.

 좀더 자세히 짐멜이 그의 “돈의 철학” (The Philosophy of Money)55)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현상이 혼돈이론으로 어느정도 설명가능한지 살펴보자. 먼저 짐멜은 단순히 물건으로서의 가치 (substance value)만을 보유하고 있던 화폐가 미묘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보다 고차원의 기능적인 가치 (functional value)를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혼돈이론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화폐의 가치란 기존의 경제학이나 사회학이론에서 주장하듯이 단순히 한사람에 또 한 사람을 추가하는 (doubling) 데서 자연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니므로 구조기능주의나 합리적 선택모형으로는 화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인간관계를 깊이있게 분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혼돈이론가들이 분명히 밝히고자하는 내용은 화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근본적으로 분석의 틀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화폐교환이란 단순히 두사람이상의 사이에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의 총합 (summation of individual acts)이 아니라 이들 인간관계 총합을 훨씬 능가하는 초개인적인 (supra-individual) 성질을 띄게되는 만큼 화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든 사회현상을 호만즈등이 주장하였던 교환구조이론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와같이 단순한 사회현상의 묘사에만 치우치지않고  특정의 사회현상이 어떻게 원래의 모습이 완정히 바뀔정도로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여 원래의 상태(initial condition)와는 전혀 다른 형체로 나타나게 되는가는56) 오로지 혼돈이론의 힘을 빌려야만 해명할수 있으리라는 주장이다. 이는 마치 인간의 사회적 행위가 그 인간의 육체를 형성하고 있는 체내의 조직이나 그 사람의 심리상태로 설명될수 없는 바와 마찬가지로 화폐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이들간에 맺어지는 권력관계를 떠나서는 설명할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화폐로 맺어지는 인간관계를 단순히 금전관계로 볼것이 아니라 금전관계보다 더욱 복잡한 형태로 나타나는 권력관계로 보아야 하는데, 이처럼 금전관계가 권력관계로 변하는 과정은 단선적인 기존의 신기눙주의나 후기구조주의이론으로는 분석자체가 불기능 하다는 주장이 사회학자들간에 대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VI 사회학이론으로서 혼돈이론의 문제점과 향후과제




일부 사회학자들이 이미 지적한 바와같이57) 후기구조주의는 향후 사회학이론의 발전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것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현대사회의 혼란스런 사회현상들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이 혼란과 혼돈속에서 질서를 찾아 보고자하는 시도마져 포기한 자들이 바로 후기구조주의 이론가들이라는 혹평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상태에서 절망하기 보다는 자연과학의 이론을 빌려서라도 혼돈속의 사회현상을 어떻게하던 규명해 보고자 시도하고 있는자들이 혼돈이론가들이다.

 그러나 혼돈이론을 주장하는 사회학자들이 달성하고자하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학에서 논하는 혼돈이론의 전제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가지 중요 전제조건만 제시하면:




 가) 혼돈이론에서 주장하는 혼돈(chaos)의 개념은 완전 무질서 (complete randomness)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특정 상황에서는 예측불능한 사회현상이라도 자연과학의 논리를 적용하면 부분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앞으로 사회학이론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격변하는 정보사회의 각종 사회현상을 해명하기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자연과학의 이론을 부분적으로나마 수용하지 않을수 없게 될 것이다. 즉 혼돈이론은 자연과학만의 전용물이 될 수 없다.

 다) 그렇다고 자연과학에서 도입된 혼돈이론이 기존 사회학의 모든 이론을 대체하리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마치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론이 뉴턴의 물리학이론을 대체하기 보다는 보완하였듯이 혼돈이론이 사회학에 도입됨에 따라 기존의 사회학 이론의 설명력이 좀더 강화되었을 뿐이다.           

 라) 혼돈이론이 사회학에 도입되면서 모든 사회현상을 단선적으로 해석하려하였던 사회학자들이 사회현상이란 단선적인 이론보다는 보다 고차원의 비단선적 논리로 설명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하게 되었다. 예를들면 환경문제를 다룰 때 자주 거론되는 “게이야 가설” (Gaia hypothesis)58)은 혼돈이론에 바탕을 둔 수학의 논리를 적용해야만 해명될수 있다.

  그런데 혼돈이론이 순수한 이론의 성질이 결여되어 있어 이론으로 불리워 지기보다는 오히려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단순한 하나의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많은 사회학자들의 주장은 앞으로 사회학에서 혼돈이론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더욱이 일부 사회한자들의 항변을 따른다면 혼돈이론은 이론이 아닌 방법론의 특성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혼돈이론을 사회학에서 “이론”으로 수용하게 된다면 단순한 하나의 방법론이 이론으로 둔갑하게되는 기현상을 노정하게될 위험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필자가 계속 주장해온 바와 같이59) 정보사회의 제반사회현상이

기존의 구조기능이론, 신기능주의, 그리고 후기구조주의이론으로는 설명이 어려워 지고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급변하는 정보사회의 이론적인 면에서의 공백을 매꾸어 주기위한 방편으로 등장한 것이 혼돈이론이라는 점이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까지는 그나마 통용이 되었던 종전의 시.공간 개념이 완전히 도궤 (time-space compression)된 정보사회에서 특히 공간을 초월하여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사회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회학자들은 원하던 원치않던 혼돈이론의 힘을 빌리지 않을수 없는 곤경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보다 구체적인 실예를 들어 왜 혼돈이론이 정보사회에서 중요한 사회학의 이론으로 부상할수 밖에없는가를 살펴보자. 구조기능이론, 신기능주의, 후기구조주의는 후기산업사회까지의 1차적 인간관계 (primary relationships)나 2차적 인간관계 (secondary relationships)는 무리없이 설명할수 있었을지 모르나, 정보통신기술 (info-tech)60) 발달의 산물로 등장한 정보사회의 지배적인 인간관계(인간과 기계의 관계?)인 3차적 인간관계 (tertiary relationships)와 4차적 인간관계 (quaternary relationships)는 혼돈이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그 정체를 규명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산업사회와 정보사회의 사회현상간에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간극 (divide)이 넓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논하는 3차적 인간과계란 1차적 인간관계나 2차적 인간관계에서처럼 인간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반드시 실물 (real presence) 두사람 이상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지않고 인간과 인간사이에 기계가 개재하여 인간관계를 저울질 하게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논하는 3차적 인간관계란 두 사람이상이 상호교류는 하되 한사람은 실제인간이나 상대방 한사람은 인간을 대신하는 기계, 즉 가상의 인간 (vitual presence)에 의해서 인간의 역할이 수행됨을 의미한다. 4차적인간관계는 인간관계가 완전히 기계에 의해서 대행되는 경우로 정보사회의 가장 까다로운 사회문제인 전자감시가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61).

 정보사회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못지않게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논할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보통신기술은 단순한 기계의 성격을 상실하고 인간과 거의 대등한 사회적 성격 (social character)62)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많은 혼돈이론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비록 정보사회에서 인간관계를 기계의 작동이나 또는 자연현상을 설명할 때 적용되는 자연과학의 논리로 설명을 시도한다고하여, 정보사회의 인간관계가 과학기술 특히 정보통신기술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기술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로지 사회학영역에서 혼돈이론가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이제까지 사회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거의 되외시 하였던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을 정보사회에서는 사회학의 넓은 영역으로 폭넓게 수용함으로서 과학기술에 의해 보다 많은 영향을 받게될 미래 인간사회를 한층 더 설득력있게 분석해 보자는 것이다. 이른바 과학기술의 사회적수용 (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SCOT)63)은 바로 사회학에서 혼돈이론의 이름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  Summary in English (영문요약)   >










 Sociological Theories of the 21st Century: Their Contentions

     and Perspectives:

  ---Neo-functionalism, Post-structuralism, Complexity & Chaos Theory ---

                          

                                                         Hung-Tak Lee*          

                    

   For an analysis of cyberspace sociality or human interaction in the techno-social sphere of the information society, sociologists in the 21st century would have to come up with a theory or theories entirely different from Parsonian and Mertonian structural-functionalism, neo-functionalism, and from "disorderly" post-structuralism.

   Whether we want it or not, in sociological journals and textbooks, we come across concrete evidences that testify to the usefulness of chaos theory, (not only as a pure theory and but also as a method), in sociological analysis and point out the fact that chaos theory should not be limited to the study of physical events, but should be expanded to cover biological and social phenomena as well.

   Chaos theory has virtually de-constructed the old concepts of social relationships and of community that we have been accustomed to for centuries and does provide a good example that the chaotic dynamics can better elucidate those emergent phenomena for which traditional sociological theories and methods have been proven to be grossly inadequat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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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essor of sociology, College of Social Sciences








▶ 원문 : http://maincc.hufs.ac.kr/~htlee/cwb-data/data/sociology/chaos.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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