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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6/10/20 (20:38) from 84.173.71.34' of 84.173.71.34' Article Number :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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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적 전통의 신비적 세계관과 베버의 공동체 지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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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지적 전통의 신비적 세계관과 베버의 공동체 지향성(1):

 베버의 공동체적 특수주의 이 논문의 게재를 추천해 주신 익명의 논평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게재되므로 더욱 그러하다. 1995년도에 같은 제목으로 한국 사회학회 편집 위원회에 처음 제출된 이후 수년 동안 이 논문의 게재를 거부하는 논평자들의 논평과 이에 대한 필자의 반론이 있었고, 또 이로 인해 몇 차례의 재심사가 있었지만 결국 게재가 거부되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한국 사회학의 발전을 위해 공개 토론의 기회를 주도록 여러 번 요청했지만 논평자의 신분을 밝힐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재심 논평자들 중에도 공개 토론을 추천한 분이 있었다). 필자는 이에 승복할 수 없어 1999년 9월 새 편집부에 이 논문을 다시 제출했고, 이제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수차례의 심사를 거치는 동안 필자의 학문 발전에 도움을 준 논평자들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하지만 논문 내용과 관련이 없는 몇몇 인신 공격성 논평들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윤 원 근

 본 연구는 독일 지적 전통의 신비적 세계관이라는 맥락 속에서 베버의 공동체 이데올로기를 조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베버에게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존재였다. 이것은 그가 인간 존재를 특정 문화 공동체의 규범을 삶의 궁극 원리로 삼는 문화적 존재로 규정한 데서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근대 시민 사회를 합리화의 결과로 인한 가치 중립적 상황으로 특징지웠는데 이것은 특수한 민족 공동체의 입장에서 근대 시민 사회의 보편적 가치 규범이었던 자연법 사상을 해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베버의 이러한 공동체 이데올로기를 가치 중립성론을 위시해서, 종교적 세계관의 합리화론, 민주주의론, 정당성의 세 유형론, 심정 윤리과 책임 윤리론,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론 등을 통해 밝혀 보려고 한다. 본 연구는 근대 시민 사회를 부정하는 베버의 모습을 명료하게 보여줄 것이다.

Ⅰ. 문제 제기

 독일 지적 전통의 근저에는 ‘유한이 무한을 붙잡을 수 있다’고 보는 신비적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윤원근, 1994). 본 연구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베버의 사회학 전체를 조명하려는 시도들 중 하나로서, 베버의 공동체 지향성을 고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필자가 구상하고 있는 시도 전체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본 연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흔히 베버의 사회학은 마르크스의 망령과의 싸움으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베버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서 마르크스의 사상과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뢰비트, 1986; Bendix, 1977). 첫째, 양자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립된 이해 관계에 있는 두 계급의 이념적 대변자였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적 무기로 생각했으며, 베버는 부르조아지의 내면 세계 분석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둘째, 마르크스는 경제적 측면에서 역사적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 일원론자였던 반면에, 베버는 경제 중심적 역사 해석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접근의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정치적인 요소와 관념적인 요소의 역할 또한 강조한 다원론자였다. 세째,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가 시초에 결말을 잉태하고 내재적인 필연적 법칙에 따라 그 결말을 향해 전개된다고 본 결정론자였다. 이에 반해 베버는 역사의 우연성을 강조한 비결정론자였다. 그는 역사를 무수히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전개되는 이질적 연속체로 보았다. 그래서 그에게 역사적 과정은 의도치 않는 결과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었다. 네째,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적 분석과 역사적 과정이 일치한다고 생각한 실재론자였기 때문에 그에게서는 사실과 가치가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베버는 이론과 실재를 동일시하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명목론자였다. 베버에 있어서 이론은 자기 발견적(heuristic) 도구의 역할을 하는 허구적 구성체였기 때문에 사실과 가치는 결코 결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근대 자본주의를 인간 소외의 절정으로 간주하였지만 소외가 없는 이상 사회의 임박성을 예언한 낙관론자였다. 이에 반해 베버는 근대 세계의 합리화 과정을 환영하면서도 합리화의 비합리성에 절망한 비관론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베버 사회학의 한 면에 불과하다. 시야를 넓혀 독일의 지적 전통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마르크스의 사상과 베버의 사상은 독일의 신비적 세계관과 공동체 지향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와 베버가 여러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른 한 면에서 베버의 사회학은 영국적 전통에서 유래하는 근대 시민 사회와의 싸움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시민 사회를 비판하는데 있어서 베버는 마르크스와 공동보조를 취한다. 본 연구는 바로 이 점이 베버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말하면, 독일의 지적 전통 속에는 서로 대립하는 여러 학파들의 계보가 존재하고 있으나 이상하게도 시민 사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데 있어서는 완전한 일치를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기존의 연구들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물론 기존의 연구들에서도 마르크스와 베버의 독일적인 지적 배경이 자주 언급되어 왔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 사상의 독일적 배경으로서 헤겔(Hegel)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Feuerbach)의 유물론이 논의 되어 왔다. 그리고 베버 사상의 독일적 배경으로서 신 칸트 학파, 독일 역사학파, 딜타이(Dilthy)의 생철학 등이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베버의 사상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개별적인 관련성보다는 독일의 지적 전통 전체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필자는 앞서 마르크스의 사상 전체를 독일 지적 전통의 신비적 세계관과 공동체 지향성이라는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일관성있게 재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윤원근, 1995). 본 연구에서는 베버의 사상 전체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와 달리 베버의 사상은 복잡·다양하며, 산뜻하고 궁극적인 공식화를 결여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다. 그는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았고, 어떠한 체계도 형성하지 않았으며, 그의 지적 결과물들은 불충분하게 통합되어 있기에 그의 사상 속에서는 몇 개의 근본적인 개념들이나 가정들에 근거해 있는 통일된 이론적 “구조”를 발견할 수 없는 것처럼 간주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베버가 마르크스 사상의 “과도한 단순화”를 경고하였다고 해석하였다(Andreski, 1984: 4). 안드레스키는 이러한 사실 때문에 베버가 자신의 작업을 계승하는 학파나 제자들을 남기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아마 이러한 통설 때문에 지금까지 특정한 관점에서 베버의 사상 전체를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별로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통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베버의 저작은 고도로 통합되어 있으며, 따라서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의 “인격(Persönlichkeit)” 개념 Persönlichkeit는 ‘개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베버의 사회학에서 인격은 개성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인격 = 개성의 등식이 성립된다.
은 필자의 이러한 생각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베버에게 “인간은 세계에 대해 의도적인 태도를 취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문화적 존재”(Weber, 1949: 81)인 동시에 “일정한 궁극적인 가치 및 삶의 의의에 대한 내적 관계의 항상성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성적 존재”(헨리히, 1983: 138)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가 자연의 사건처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문화적 존재인 동시에 이성적 존재인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관적으로 선택한 궁극적 가치와 생의 의의에 대해 “의식적인 항상성”과 “내적 무모순성”을 성취하는 것이다(헨리히, 1983: 137, 140). 베버는 이것을 “인격”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격은 가치 합리적 행위(심정 윤리)와 도구(또는 목적) 합리적 행위(책임 윤리)의 결합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인격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생의 무의식적인 식물적, 반사적 토대에의 예속을 벗어나야 될 뿐만 아니라 기질, 기분, 감정 등에 의해 방해 받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헨리히, 1983: 137). 베버에게 있어서 이러한 인격의 성취는 최고의 도덕적 명령이다. 인격의 이같은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베버의 사회학적 저작들은 그 자신이 선택한 궁극적 가치를 중심으로 일관성 있는 통일체를 구성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의 산물로 간주될 수 있다. 만약 그의 지적 산물들이 이처럼 통일체를 구성하고 있지 않다면 베버는 인격이 되는데 실패한 셈이 된다. 헨리히(1983: 133)는 “막스 베버의 윤리학은 그의 방법론과 동일한 원리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 원리에서 과학론의 통일성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비이담(Beetham, 1974)은 베버의 사회학이 그의 정치적 관심과 분리되어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 연구는 헨리히의 입장을 지지한다. 베버의 저작에 대한 총체적인 논평에서 안드레스키는 정신병적 경력에도 불구하고 베버가 그의 저작에서 감정을 잘 통제하여 건전한 분석과 냉정한 용어 사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인격’을 성취하기 위한 베버의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필자는 베버가 마르크스의 경우에서처럼 무한을 붙잡으려는 신비적 세계관에 기초한 독일의 공동체 이데올로기를 계승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사회학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차이가 있다면 마르크스가 모든 사람이 본질적 자아의 무한성을 향유하는 평등한 ‘사회 공동체’를 실현하려고 했던 반면 베버는 이것을 환상으로 보고 특정한 인간만이 본질적 자아의 무한성을 향유하고 그 외의 인간은 유한한 현상적 자아로서 봉사하는 불평등한 ‘민족 국가 공동체’를 지향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베버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근대 시민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 해결 방식에서는 상반되었던 것이다.   
 베버의 저작이 복잡하고 다양한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각 주제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사회학에 대한 연구를 3부로 구상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전체 구도 안에서 베버의 공동체 지향성만을 자세하게 살펴 보려고 한다. 이 연구에 이어 필자는 베버의 공동체 지향성이 기반하고 있는 그의 신비적 세계관과 그가 지향한 공동체의 구체적인 모습과 특징을 별도로 연구해 볼 예정이다. 연구 결과가 말해주겠지만 이 세 가지는 서로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는 통일체이다.
베버의 민족 공동체적 열정은 기존의 베버 연구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진부한 사실이다(휴즈, 1979; 코저, 1994; 아롱, 1994).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그의 사회학적 논의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시도는 별로 없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민족 공동체적 열정이 그의 방법론의 기초인 가치 중립성을 필두로 해서 종교적 세계관의 합리화론, 민주주의론, 정당성의 유형론,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론,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론 등 그의 여러 사회학적 논의들에서 어떻게 논리적으로 일관성있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밝혀 보려고 한다. 이 점이 본 연구의 중요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베버 사회학의 독일적 맥락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독일의 시민 사회 형성 과정에서 공동체적 특수주의가 어떻게 표출되었는지를 간단하게 고찰한 다음, 베버의 사회학에서 이러한 특수주의적 가치 지향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베버는 흔히 사회 과학자들 사이에서 자유주의의 문제점과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천박한 낙관적 자유주의자와는 질이 다른 자유주의자(Rossides, 1978; 전성우, 1992; 박성환, 1992)로, 관념론과 실증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이 사이에 다리를 놓은 인물(휴즈, 1979)로, 그리고 과학적 공평무사성의 모범적 인물(뢰비트, 1986)로 칭송된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이와 다른 베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Ⅱ. 독일의 공동체적 특수주의

 파슨스(Parsons)는 전통적인 공동체적 인간 관계에서 지배적인 가치들과 근대 시민 사회적 인간 관계에서 지배적인 가치들을 유형 변수(pattern variables)의 형태로 제시하였다. 이 유형 변수들 중 특수주의(particularism)와 보편주의(universalism)는 파슨스의 사회학에서 특히 중요한 것으로, 베버의 공동체 지향성에 대한 본 연구의 분석에도 활용될 수 있다.
 특수주의는 상호작용 상황 속에 있는 다른 행위자들에 대한 평가나 판단이 상이한 기준들에 의존하는 반면, 보편주의는 동일한 기준에 의존한다(Turner, 1978: 48). 공동체적 관계는 어떤 행위자가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냐 아니냐에 따라 평가나 판단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특수주의적 가치 지향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이 주로 감정적 친밀성의 정도에 의존하는 공동체적 관계에서 만약 내부인이냐 외부인이냐에 관계 없이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면 그 공동체는 일체감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파슨스의 유형 변수에 의하면, 근대 시민 사회에서의 인간 관계는 주로 감정 중립적인데 비해 공동체적인 전통 사회에서의 인간 관계는 주로 감정적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특수주의적 가치 지향에 근거한 공동체적 삶의 형태를 취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보편주의적 가치 지향의 가장 일반화된 형태는 서구에서 출현한 근대 시민 사회의 정신적 기초인 자연법 사상이었다. 자연법 사상은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 학파에 의해 체계화되어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Cicero)의 손을 거쳐 중세의 카톨릭 사상 속으로 흡수·통합되어 있었는데, 근대에 와서 더욱 보편주의적으로 해석되었다(세이빈과 솔슨, 1990).  
그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내포하고 있었다(최 종고, 1990: 75-126). 첫째, 자연법은 모든 실정법을  초월하는 보편 타당한 객관적 원리이다. 둘째, 자연법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독립된 인격을 가진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이다. 세째, 실정법은 이 자연법에 따라 제정되어야 하며, 자연법에 위배되는 실정법은 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네째, 법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다섯째, 모든 정부는 법에 의해서만 통치할 수 있다. 부르조아지는 시민 혁명의 과정에서 군주의 자의적인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이같은 자연법 사상에 호소하였다(노명식, 1987: 270).
 그러나 여러가지 내·외적 상황 때문에 근대 시민 사회 형성이 늦어지고 있던 독일에서는 이같은 자연법 사상이 일반화되지 못했다. 자연법 사상이 독일에서 배척된 데에는 독일의 정치적 특수성이 크게 작용하였다. 즉,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15-6 세기에 통일된 국민 국가를 형성하였던 것에 반해 독일은 18세기까지 수많은 영방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나폴레옹의 독일 침략은 독일 지식인들로 하여금 통일된 국민 국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였지만 현실적인 통일은 불가능하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독일 지식인들은 민족적 동질감에 바탕한 문화적 민족주의를 추구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시민 개념 보다는 민중 개념이 널리 사용되었다. 문화적 민족주의의 대표적 인물은 헤르더(Herder)였다. 그는 자연법적 보편주의와 반대로 “모든 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문화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를 전개하였다(베빙턴, 1988: 125). 그는 민족성 개념에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고, 인간은 무엇보다도 민족 공동체의 일원이며, 이 공동체를 통해서만, 곧 민족 언어와 전통을 통해서만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였다(홍사중, 1986: 124). 이러한 문화적 민족주의와 공동체 이데올로기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좋은 예가 기에르케(Gierke)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공동체를 독일 고유의 산물로 보고 그것이 다른 나라와 전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나타내었다(윤원근, 1994: 122). 이상과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대부분의 독일 지식인들은 공동체란 좋은 것이며, 시민 사회는 공동체의 와해를 초래하는 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이거스, 1992: 70). 그 예로서 퇴니스를 들 수 있다. 그는 “나쁜 공동 사회라는 표현은 공동 사회라는 말의 의미를 모독하는 것이다”라고 한 반면, 시민 사회를 기초로 하여 형성된 이념형인 이익 사회에 대해서는 “모든 인간이 홀로 존재하며, 고립되어 있고, 모든 다른 사람에 대한 긴장 속에 있다”고 묘사하였다(Tönnies, 1963: 65). 심지어 그는 이익 사회에 대해 홉스(Hobbes)를 따라 “만인에 대한 만인의 잠재적인 적대 관계 또는 전쟁 관계”로 보기까지 하였다((Tönnies, 1963: 34, 77).     
독일 지식인들은 자연법 사상이 전통적 공동체를 와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연법 사상을 수용하지 않았다. 물론 자연법적 사고에 대한 반대는 독일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이후 전 서구에서 자연법적 사고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근대 서구에서 반자연법적 사고가 가장 급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표현된 나라가 독일이었다(이거스, 1992: 24).
그 구체적인 예로서 독일 지적 전통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칸트(Kant), 피히테(Fichte), 헤겔, 독일 낭만주의 사조 등이 거론될 수 있다.
 먼저, 칸트는 이성의 보편적 명령을 도덕의 원리로 삼았다는 점에서 근대 자연법 사상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도덕적 원리는 두가지 측면에서 자연법을 제한하는 것이었다(최종고, 1990: 128-34). 하나는 자연법이 감각적인 현실 세계의 규범이었던 반면에 칸트의 도덕은 비현실의 세계(본체계)에 한정된 추상적 원리였기 때문에 그의 도덕이 현실 세계에 적용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자연법이 인간 본연의 성품이나 행복 추구에 기초하고 있는데 반해 칸트의 도덕은 이것이 무시된 순수 원리였다. 칸트에게는 충동, 본능, 습관, 동정심, 이해 관계, 실용성, 행복주의 등에 따른 행위는 도덕의 범주에 들어 갈 수 없다(램프레히트, 1977: 534). 현실 세계에서 자유와 평등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자연법 사상이 칸트에서처럼 순수 이성으로 순화되어 버리면 그 힘은 현저히 약화되고 만다. 이처럼 현실 세계에 적용 불가능한 칸트의 순수한 도덕 원리는 루소(Rousseau)의 일반 의지(general will)처럼 공동체의 전체 의지를 미화하는 형이상학적 근거가 된다. 세계를 현상계와 본체계로 나누고 자연법을 본체계의 순수 이성 속에 한정한 칸트의 철학은 계몽적 이성의 자연법 사상이 독일에 파급되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계몽적 이성의 과학적 성과를 수용하고자 한 것이었다(최종고, 1990: 127-8; 정문길, 1990: 54-8). 이러한 그의 의도는 계몽주의에 대한 다음의 정의에 잘 나타나 있다. “계몽주의란 인간 스스로가 묶여 있던 미성년의 상태로부터의 해방이다. 미성년 상태란 자신의 오성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미성년의 상태는 그 원인이 오성의 결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오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의 결핍에 있으므로 스스로 묶여 있는 자업자득의 상태이다. [···]너의 본래적 오성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골드만, 1982: 15). 칸트의 이같은 정의는 계몽주의를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곧잘 인용되고 있지만 실은 계몽주의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정의에서 이성(Vernunft)보다는 오성(Verstand)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칸트의 철학에서 오성은 수단의 영역인 현상계의 과학적 지식을 산출하는 인간의 능력이며, 이성은 목적의 영역으로 본체계의 자유로운 도덕적 실천을 담당하는 인간의 능력이다. 따라서 너의 본래적 오성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는 칸트의 표현은 수단적인 과학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라는 의미이며 모든 사람이 도덕적 주체로서 행동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칸트는 모든 사람이 도덕적 주체로서 행동하게 될 상황을 두려워한 것처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는 현상적 자아가 본질적 자아에게 복종해야 하듯이 독일 국민은 당시의 군주였던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공손하게 복종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정문길, 1990: 55).

 다음으로, 피히테는 자연법 사상을 칸트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는 인도주의, 자유주의, 인민주권 등을 포함하고 있는 자연법 사상을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홍사중, 1986: 126). 나폴레옹의 군대가 독일을 침략했을 때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책을 썼던 피히테는 독일적인 공동체적 특수주의의 강력한 주창자였다. 그는 (절대) 자아와 독일 민족 공동체를 동일시하였으며,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과 독일인이 된다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러셀, 1988: 998). 뿐만 아니라 그는 이에 근거하여 인류 전체가 개인주의적인 시민 사회로부터 공동체적 삶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하고, 이를 위한 독일 민족의 정신적·도의적 사명을 역설하였다(홍사중, 1986: 126). 피히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직 독일 국민만이 그의 국가 이익 속에서 모든 인류를 포괄할 수 있다. 이성의 본능이 사라지고 이기주의의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모든 다른 나라의 애국심은 이기적이고 편협하며 인류에 적대적이다.”(Niebuhr, 1964: 90). 이와 유사한 독일 문화 사명론이 베버의 저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베버가 지향한 공동체의 모습을 취급하는 다른 논문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세번째로 헤겔의 공동체적 특수주의는 그의 역사 철학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인간 역사를 자유를 향한 이성의 자기 실현 과정으로 보았다(헤겔, 1980).  그가 말하는 이성은 자연법적 이성과 다르다. 자연법적 이성은 추상적인 도덕적 명령으로서 고정 불변하고, 시대와 장소에 구속되지 않는 초역사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만물의 실체이고 본질(헤겔, 1980: 53)인 헤겔의 이성은 역사 속에 내재하면서 개별적인 현상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성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헤겔은 역사 속에서 자신을 실현해 가는 이성의 포괄적인 목적 속에서만 개인은 존재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기 때문에 자연법 사상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자연적 권리들을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믿었다(램프레히트, 1977: 552).
 이처럼 역사적 이성을 통해 자연법적 이성을 무효화시킨 다음 헤겔은 민족 공동체를 삶의 최고 원리로 삼았다. 그는 이성이 역사 속에서 민족 국가를 매개로 하여 자신의 본질을 실현해 간다고 하였다. 그는 민족 국가를 참된 「역사적 개체」, 「도덕적 전체」, 「정신의 객관태」, 「지상에 존재하는 신의 이념」 등으로 다양하게 지칭하면서 민족 국가만이 역사 철학의 본래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드레이, 1980: 142). 이같은 논리에 바탕하여 그는 특수한 개인들이 공동체적 통일성을 통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민족 국가가 특수한 개인들의 이기적 욕망에 의해 기계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시민 사회보다 높은 단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홍사중, 1986: 129). 민족 공동체와 시민 사회에 대한 헤겔의 이러한 견해는 공동 사회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그리고 이익 사회를 기계적인 집합체나 인공물로 간주하는 퇴니스의 견해와 같은 맥락 속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 낭만주의 사조의 공동체적 특수주의는 그것의 형식 해체적 자유관에 잘 나타나 있다. 텐브록(Tenbrock, 1986: 274)에 의하면, “낭만주의는 ··· 그 어떤 객관적 한계(형식)도 인간에게 두어서는 안된다는 절대적 자유를 선언했다. ··· 인간의 유일한 정의는 무한한 것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관은 보편적 규범을 상정하는 자연법적 사고와 대립되는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하(Schleiermach)는 자연법이 인간 생활을 획일적인 도덕적 틀에 한정시키고 있다고 비판하였는데(Niebuhr, 1964: 85-6) 이것은 낭만주의의 반자연법적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자연법은 죽은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다.
 역사 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낭만주의적 자유는 個體 思想으로 표현되었다. 개체 사상은 역사를 끊임없는 생성과 변전의 장으로 보고, 역사 속에서는 모든 것이 일회적이고 비반복적이며 그 자체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는 사상이다(이민호, 1988). 그러므로 개체 사상은 자연히 사건들의 다양성과 이질성, 역사의 맹목성과 우연성을 강조하며, 역사의 발전을 부정하게 된다. 때문에 개체 사상은 보편적인 합리적 세계 질서를 상정하는 자연법적 사상과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이거스, 1992: 64). “모든 시대는 신에 직결된다”(이민호, 1988: 29)는 랑케의 말이나 “모든 사건은 영원에 참여한다”(베빙튼, 1988: 113)는 부르크하르트(Burchhart)의 말은 이러한 개체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이 개체 사상은 민족 공동체적 삶을 최고의 원리로 삼는 특수주의를 확립하는근거가 되었다. 낭만주의자들은 역사적 개체 중 민족 국가를 최고의 개체로 간주하고 각 민족의 관습과 신념을 고유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로 이해하였다. 이같은 견해를 바탕으로 그들은 주로 민족의 역사를 탐구하는데 열중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은 과거를 미신적, 야만적으로 본 계몽주의의 역사 발전 모델을 비판하였다(베빙튼, 1988: 113, 115). 그들에 의하면, 과거는 민족의 정신적 원형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민족을 유기체와 같은 것으로 보아 하나의 생활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활 원리를 “민족 정신(Volksgeist)”이라고 불렀다. 낭만주의자들은 이 민족 정신이 언어, 법, 관습, 문학, 신앙 등에 침투되어 있다고 보고 각기 자기 분야에서 민족 정신을 발견하고자 하였다(지명렬, 1984: 66, 71).
 이처럼 독일의 지적 전통에서는 칸트처럼 자연법을 본체계 속에 한정하였든, 피히테처럼 모든 규범으로부터 벗어난 (절대) 자아를 상정하였든, 또는 헤겔처럼 자연법적 이성을 역사의 변증법적 이성으로 변질시켰든, 아니면 낭만주의에서처럼 개체 사상을 주창하였든 그 방식에 있어서는 상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연법 사상을 반대하고 공동체적 특수주의를 옹호하는 지속적인 경향이 노정되어 왔다. 마이네케(Meineke, 1990: 431)는 이같은 독일 지적 전통의 반자연법적 사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자연법은 ··· 이성을 모든 개인에 있어 동일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이성의 모든 판정과 명령에 절대적인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 최선의 국가 형태는 보편적인 도덕률에 전적으로 복종해야한다는 요구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독일에서 인간은 이성 및 이성의 이상, 그리고 이성의 명령 등의 보편적인 타당성이나 동일성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Ⅲ. 베버의 사회학과 공동체적 특수주의

 베버의 사회학적 사고도 이와 같은 독일의 반자연법적인 공동체적 특수주의의 맥락 안에서 해석될 수 있다. 박성환(1992)은 베버의 사회학이 계몽주의의 자연법적 사고에 반대하는 독일의 문화 사회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상론한 바 있다.
물론 그는 법 사회학에서 자연법이 한 국가의 실정법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보편적 규범이었음을 인정하였다(Weber, 1968: 867). 그는 자연법을 “이성의 카리스마(charisma of Reason)”라고 부르면서 그것을 역사적 과정에서 나타났던 카리스마의 마지막 형태라고 하였다(Treiber, 1985: 845). 그러나 베버는 종교적 세계관의 합리화로 가치 중립이 요구되는 근대 서구 사회에서는 자연법이 실정법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외에도 베버는 마르크스주의, 꽁뜨의 진화론, 역사주의의 유기체적 성장 이론, 지적 회의주의, 실증주의, 법적 합리주의, 현실 정치(Realpolitik) 등의 출현으로 자연법적 신념이 약화되었다고 하였다(Weber, 1968: 874).   
가치 중립성론, 종교의 합리화 과정에 대한 설명,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정당성의 세 가지 유형론,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의 구분,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관 등과 같은 주제에는 자연법 사상과 대립되는 공동체적 특수주의가 잘 나타나 있다.

 1. 가치 중립성

 베버의 가치 중립성 논의는 근본적으로 자연법적 사고의 해체를 의도하고 있다. 가치와 사실을 분리하고 가치를 주관적인 결단의 영역으로 보는 가치 중립성은 자연법과는 달리 객관적 가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그의 가치 중립성 원칙에 의하면, 이성적·과학적 논의는 무엇이 객관적 사실인지를 가릴 수 있지만 무엇이 객관적 가치인지를 가리지는 못한다. 베버는 이성을 의지보다 우위에 두는 주지주의자가 아니라 반대로 의지를 이성보다 우위에 두는, 즉 의지를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성을 수단적인 것으로 보는 주의주의자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베버 해석에 있어서 대부분의 혼돈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통찰하지 못한 소이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타당한 가치를 위한 최소한의 공통 분모를 도출하려는 시도를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았다.
 베버에 있어서 가치 선택은 주관적 결단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이한 가치들 간에 갈등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가치 중립을 상이한 가치들 간의 투쟁으로 묘사한 다음 글에 잘 나타나 있다(1949: 57).

[우리는] 지식의 나무를 먹어버린 시대의 운명이 ··· 다음과 같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최고의 이상들은 항상 다른 이상들과의 투쟁 속에서만 형성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상들이 우리에게 신성한 것만큼 다른 이상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신성하기 때문이다.

 베버는 이처럼 객관적으로 타당한 가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치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을 절대적 다신론(absolute polytheism)(Weber, 1949: 17; Gerth & Mills, 1958: 147)이라 하였다. 그에 따르면, 정치, 경제, 지식, 예술, 성, 민족 문화와 같은 삶의 각 영역들은 원래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나 보편적인 기독교 윤리의 침투로 자율성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합리화로 기독교 윤리가 약화되면서 각 영역들은 자율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베버는 이러한 상황을 그리이스적 다신론의 재연으로 보았다. 베버는 이러한 상황을 고대의 신들이 무덤으로부터 일어난다고 묘사하였다(Gerth & Mills, 1958: 149).
이것이 절대적 다신론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리이스 시대에는 각 영역이 인격 신의 형태로 표현되었던 반면 근대 세계에서는 비인격적인 힘(impersonal forces)의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고대의 신들이 각자의 위엄을 위해 투쟁한 것같이 근대적인 삶의 각 영역 또한 자신들의 위엄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게 된다(Weber, 1949: 17; Gerth & Mills, 1958: 149). 그는 삶의 영역 간의 이같은 무규범적인 투쟁을 정상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지난 천년 동안 서구 문화가 기독교의 도덕적 열정에 몰두하고 있었다고 비판하면서 이같은 투쟁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Gerth & Mills, 1958: 149). 가치 중립적 상황에 대한 베버의 이러한 묘사는 근대 서구 사회를 선과 악의 피안에 서 있는 상황으로 묘사한 니이체(Nietzsche,1980)의 입장과 아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니이체와 베버의 사상적 유사성에 대한 논의는 Schroeder(1987: 207-21) 참조. 전성우(1992: 44)는 베버가 니이체의 허무주의를 수용하였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이겨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즉 “모든 무의미성에도 불구하고”를 고수했다는 점에서 니이체와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베버가 니이체와 같은 “초인의 대두에 대한 예언자적 열정을 택하지 않고 ··· 끝까지 학문적 담론 능력을 유지하려고” 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니이체가 생의 무의미성에 좌절하는 체념적 인간을 가장 싫어했다는 사실, 그리고 베버 역시 니이체의 초인과 다름 없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니이체가 시적이고 경구적으로 표현한 것을 베버는 학문적이고 논리적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외에 양자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는 각 영역 간의 갈등이 치열해서 하나님(God)과 악마(Devil) 사이의 투쟁처럼 화해될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Weber, 1949: 18).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베버의 입장은 모든 상이한 가치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관용하는 ‘가치 다원주의’(박성환, 1992: 180; 전성우, 1992: 26)가 아니라 “가치 적대관계”(스미스, 1991: 73)라고 할 수 있다. 전성우(1990: 44-5)는 이러한 투쟁이 “적나라한 양육강식”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베버의 사회학 속에 마련되어 있다고 보고, 그것을 “학문이 요구하는 담론적 규칙의 보편성”이라고 불렀다. 즉, “베버에게 학문은 상호경쟁하는 세계관과 그 궁극적 가치에 있어서 화합할 수 없는 윤리들이 서로 만나고, 논리적-방법론적인 규칙의 준수라는 조건하에 서로의 공통점과 불일치점에 대해 이성적으로 명료해질 수 있는 유일한 담론의 무대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 담론이 서로 투쟁하는 가치들을 보다 보편적인 가치를 통해 중재할 수 없고 기껏해야 서로가 어떻게 화해 불가능한지를 확인하는데만 그친다면 결국 가치들간의 양육강식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학문적 담론은 상이한 가치들 간의 대립이 투쟁을 통해 해결될 수 밖에 없음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장이 되고 말 것이 아닌가? 때문에 참된 가치 다원주의는 자연법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가 인정될 때만이 가능하다.
그는 인간이 직면해야 하는 이같은 가치 선택을 궁극적 결단의 연속이라고 불렀다(1949: 18). 근대인의 상황에 대한 베버의 이러한 묘사는 흥미롭게도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 나타난 전통적인 일본인의 삶에 대한 묘사와 너무나 흡사하다. 그녀(1993: 188이하)에 의하면, 전통적인 일본인은 인간의 삶의 영역을 “지도 위의 여러 지역처럼 명확히 구별된 몇몇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즉, 일본인은 인생을 츄(忠), 코(孝), 기리(義理)(이것은 다시 세상에 대한 기리의 영역과 이름에 대한 기리의 영역으로 나뉘어 진다), 닌조(人情)와 같은 양립할 수 없는 영역들로 나누어 놓고, 이들 중 어느 것에 충성할지를 ‘주관적 결단’에 의해 선택한다. 하나의 영역이 선택되면 나머지는 경시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경시한 영역들과 결산을 행하는데 그 방법으로 일본인은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일본인의 행동 방식을 “도덕의 원자론”이라고 불렀다. 베버의 “절대적 다신론”은 이와 다르지 않다. 참고로 말하면, 파슨스(Parsons, 1968: 610, 618)는 베버의 이념형적 방법을 “유형 원자론(type atomism)”이라고 비판하였는데 이것은 가치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츄를 최고의 가치로 보고 다른 삶의 영역들을 이 밑에 포섭하였던 것처럼 베버도 다양한 삶의 영역들을 민족이라는 최고의 가치 밑에 포섭시키고 있다. 필자는 󰡔국화와 칼󰡕을 읽으면서 베버가 추구한 모델이 일본에서 거의 완벽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자연법과 같은 보편적 규범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환상으로 보았다. 베버가 자연법 사상을 '환상'으로 보았던 반면에 마르크스는 그것을 '허위의식'의 대표적인 예로 간주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 계급의 특수 이익을 대번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것인양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허위의식이다. 마르크스는 근대 자연법의 자유와 평등 사상이 외관상 영원한 진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 시장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육체 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 사이의 부자유하고 불평등한 계약을 은폐시키면서 지배 계급인 자본가 계급의 특수 이익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비판하였다(마르크스와 엥겔스, 1989: 93).

 이처럼 보편적 규범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의 가치 중립성은 민족 공동체의 특수 규범(실정법)을 궁극적인 삶의 원리로 선택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베버(1949: 15)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 주목하라. “우리는 윤리적 명령이 문화적 가치들과 동일하다는 슈몰러(Schmoller)의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관점(베버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문화적 가치들이 모든 종류의 윤리와 불가피하고 화해불가능한 충돌 속에 있을 때라도 그들은 의무적이기 때문이다”(강조는 원문에 의한 것임).
이러한 반자연법적인 태도는 종교적 세계관의 합리화에 대한 그릇된 설명으로 이끌어 간다.

 2. 종교적 세계관의 합리화

 앞에서 언급했듯이 베버는 종교적 세계관의 합리화로 인해 근대 서구에서는 자연법적 신념이 더 이상 실증법의 기초가 될 수 없는 가치 중립성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그의 특수주의적 가치 지향에 기인한 그릇된 추론의 결과이다. 종교의 합리화 과정에 대한 설명은 그의 사회학 전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므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베버는 가치 중립적 상황이 고대 유대교에서 출발하여 중세 카톨릭을 거쳐 근대 칼빈주의에서 끝나는 서구 종교의 독특한 합리화 과정의 결과 출현한 것으로 설명하였다(Kalberg, 1980: 1146). 서구 종교의 기초가 된 유대교는 처음부터 온갖 형태의 비합리적인 주술적 구제 탐구를 철저히 거부한 고도로 합리적인 종교 윤리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유대교의 윤리적 구제 방법은 아시아적 제 종교의 온갖 구제 방법과는 현저히 달랐다(베버, 1989: 11). 그런데 윤리적인 종교일수록 합리적인 지식에 호소해서 신정론(theodicy)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Gerth & Mills, 1958: 355). 신정론의 문제는 세계를 하나의 의미있는 통일체로 해석하고자 하는 지적 욕구로서 모든 종교에 고유한 것이다. 따라서 베버는 신정론의 문제를 종교의 합리화 과정을 주도하는 “내재적인 자기 법칙성(Eigengesetzlichkeit)”으로 보았다(Parsons, 1968: 571).
 모든 종교는 상이한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신정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상이하다. 비윤리적인 아시아의 제 종교는 주로 주술적 수단과 신비적 지식에 의해 신정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고도의 윤리적 종교였던 유대교는 합리적인 지식을 통해 신정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베버의 종교 사회학의 전반적인 논지에 의하면 합리적 지식을 통한 신정론 문제의 해결이라는 이 길이야말로 근대 서구의 운명을 결정지은 주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였다. 그 이유는 윤리적인 종교와 합리적인 지식이 일종의 모순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종교와 합리적 지식은 전혀 상반된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본다. 종교는 우주 전체를 윤리적 인과응보의 체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반면 지식은 기술적 조작의 대상인 자연적 인과성의 체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Gerth & Mills, 1958: 355). 윤리적 종교는 자신의 신정론을 위해 합리적 지식에 호소한다. 그러나 지적 성실성이라는 자체적인 규범을 가지고 있는 합리적 지식은 자신을 양육시킨 윤리적 종교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 윤리적 종교와 합리적 지식 사이의 모순에 대한 이같은 논의는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에 대한 마르크스의 논의와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역사의 발전에 대한 베버의 종교적 설명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서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설명과 유사한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첫째, 마르크스에게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이 역사 발전의 추진력이듯이 베버에게는 윤리적 종교와 합리적 지식 사이의 모순이 종교적 합리화 과정의 추진력이다. 둘째, 마르크스에게 역사가 생산력의 증대 과정이듯이 베버에게는 역사가 합리적 지식의 증대과정이다. 세째, 마르크스에게 증대되는 생산력은 결국 역사를 폐기하듯이 베버에게는 증대된 합리적 지식이 결국 종교를 폐기한다.   
유대교-카톨릭-칼빈주의로 이어지는 서구의 종교적 발전과정은 이와 같은 모순관계 속에서 합리적 지식이 증대되는 과정, 지식의 나무를 먹는 과정이다.
 베버는 이 과정을 탈주술화 과정 또는 종교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과정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전성우, 1986a: 16). 그는 이 과정이 칼빈주의의 운명 예정(predestination) 교리에서 정점에 달했다고 보았다(Weber, 1980: 105). 즉, 신(God)의 절대 주권론을 포함하는 칼빈주의의 운명 예정 교리는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우주 전체에 대한 신의 주권을 가장 강력하게 고양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신정론이 결국 유대-기독교의 유일신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베버의 논지는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생산력을 산출한 자본주의가 역사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마르크스의 논지를 생각나게 한다.  
이러한 신의 죽음과 동시에 객관적으로 타당한 가치로 간주되어 오던 자연법적 신념이 실정법의 기초로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가치 중립적 상황이 근대 서구에서 출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치 중립성 시대의 도래를 칼빈주의와 연결시키는 이와 같은 베버의 설명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자연법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은 칼빈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독일의 루터주의였다. 이를 위해 루터와 칼빈의 종교 사상을 간단하게 비교·검토할 필요가 있다.
 루터와 칼빈은 모두 기독교의 도덕법인 십계명을 신이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 놓은 자연법으로 보았지만 그것에 대한 태도는 서로 달랐다. 루터는 신의 법을 행위로 나타내야 구원된다는 카톨릭의 객관적 형식주의가 종교적 위선을 만연시켰다고 비판하면서 종교의 내면성을 강조하였다. 루터의 내면 지향적 종교관은 그의 사상의 기반이 되는 以信稱義(justification by faith) 교리 이신칭의 교리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며,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신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의로운 것으로 인정받아 구원된다는 것이다.
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교리에 의하면, 기독교는 외적인 행위의 종교가 아니라 내면적인 고백이나 동의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틸리히, 1987: 294-6). 이에 반해 칼빈은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를 기독교 사상의 핵심으로 받아들였지만 루터와 달리 구원받은 자는 더 열심히 신의 법을 준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칼빈은 기독교가 내면적인 동기를 중요시하는 종교인 동시에 외면적 행위도 중요시하는 종교임을 강조하였다(니이젤,  1988: 261-76). 신의 법(자연법)에 대한 이러한 루터와 칼빈의 상이한 기독교관은 시민 사회 형성 과정에서 상이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먼저 법의 중요성을 간과한 루터의 내면 지향적 기독교관은 교회 조직의 중요성을 무시하게 되었다. 그의 교리는 신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하여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차이를 없이한 만인 성직자론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영적인 평등주의는 교회 내에 완전한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회 내에 무정부주의를 초래하였다(브린턴, 1989: 320). 그 결과 루터 교회는 교회 조직의 권한을 세속적인 영주나 제후의 손에 넘겨주게 되었다. 루터 교회에서는 영주나 제후가 교인 훈련, 교회 재산 관리, 교직자 임명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교리조차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브라트, 1986: 241; 세이빈과 솔슨, 1990: 478-82). 그 결과 독일 교회는 영주 권력의 가장 신뢰할만한 지주가 되었다. 즉, 독일 교회는 상부권력에 대한 복종의 의무를 설교하고 영주 권력에 대한 신주설을 뒷받침해줌으로써 독일적 루터주의의 특징인 숨막힐 정도의 편협한 보수적 정신을 배양하였다(하우저, 1989: 125). 이에 반해 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칼빈은 루터의 만인 성직자론을 받아들였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독자적인 교회 조직을 확립하는데까지 나아갔다(브라트, 1986: 240). 뿐만 아니라 칼빈은 신의 뜻(법)을 실현하는 도구로서 교회와 국가의 중요성을 똑같이 강조하면서도 이 둘의 기능을 엄격히 분리시켰다. 그리하여 그는 국가의 행정력이 교회 조직 내부에까지 손을 뻗칠 수 있는 소지를 없애 버렸다. 그 결과 칼빈의 신학 사상을 받아들인 곳에서는 국가가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청교도들의 활동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교회는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 선봉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루터는 세속적인 정치 권력이 신의 의지를 구현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세속적 문제에 관해서 영주나 제후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다(트뢸취, 1990: 64). 이것은 루터가 보편적 규범이었던 신의 법을 역사 속에서 세속적 권력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상대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거스, 1992: 67). 그러나 칼빈은 신의 법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겨진 도덕의 완전한 표준으로 보고(칼빈, 1989: 415, 526-7) 세속적인 권력자도 이에 복종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 법을 무시하는 부당한 집권자에 대해 저항권을 인정하였다(칼빈, 1989: 631). 신의 법의 보편성에 대한 칼빈의 강조는 세속적 권력에 의해 제정된 실정법을 초월하여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이론적 근거를 재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그 결과 그것은 중세 말기의 민족 국가 형성과 더불어 대두된 실정법 지상주의 근대 정치학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정치 사상은 이러한 실정법 지상주의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 사상은 실정법을 종교적으로 신성시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종교를 부정한 마키아벨리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를 견제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루터와 칼빈의 이상과 같은 차이점들은 주로 루터주의의 영향권 하에 놓인 독일과 칼빈주의가 득세한 서유럽 사이에서 다른 형태의 사회가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서유럽에서는 보편적인 자연법 사상에 기초한 합리적 시민 사회가 형성된 반면, 독일에서는 독일 민족 고유의 공동체적 일체감을 유지하고자 하는 특수주의적 가치 지향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루터 종교 개혁의 특수주의적 성격은 그가 후대의 독일 지식인들에게 교회를 개혁한 세계적 지도자 보다는 독일 민족의 영웅으로 간주된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이상의 사실은 베버의 설명과는 달리 칼빈주의가 자연법 사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근대적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베버 스스로도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였다. 예를 들면, 한 곳에서 그는 “근대 자연법의 형성은 부분적으로 합리주의적 종파들에 의해 제공된 종교적 동기에 근거하였다.”(Weber, 1968: 868)고 하였으며, 다른 곳에서 그는 “오늘날 우리들 중 누구도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양심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은 그 종파들의 근본적 개인주의에 은혜를 입고 있다.”(Alexander, 1983: 123). 이 외에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금욕적 집회와 종파는 근대 ‘개인주의’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초들 중의 하나를 형성하였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구속으로부터 그들의 근본적인 단절과 더불어 인간은 인간에게 보다는 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그들의 해석방식은 특히 중요했다.”(Gerth & Mills, 1958: 321)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베버는 칼빈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영국과 미국에서는 여전히 자연법 사상이 계속해서 객관적으로 타당한 가치 규범의 역할을 하고 있는(Bendix, 1977: 421) 반면에 독일에서는 역사학파 법 이론이 이성의 추상적 규범인 자연법을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민족 정신의 표현으로 변질시켰다(Weber, 1968: 867)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자연법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단정하고 그 원인을 칼빈주의가 가져온 종교적 세계관의 합리화에 귀속시키는 베버의 설명은 그가 독일의 반자연법적 시각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중요한 표시이다. 이처럼 합리화의 결과 자연법이 실정법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그의 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속에도 나타나 있다.  

 3.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베버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보편적 가치 규범을 부정하였다. 그는 18세기와 19세기 초에 고전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던 자연법 사상이 더 이상 민주주의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Giddens, 1981: 71). 이러한 그의 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Gerth & Mills, 1958: 149).

미국의 젊은이는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경의(respect)를 표하지 않는다. 전통이나 공적인 지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성공이다. ··· 이것이 민주주의의 의미이다.

 그가 이 글에서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민주주의가 개인의 성공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식료품 상점 주인이 식표품을 팔듯이 교수도 지식을 제공해야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보편적) 가치에 대해 강의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1958: 149). 김용학과 장덕진(1995: 76-7)은 ‘과학에서의 가치판단 문제’와 ‘강의실에서의 가치판단 문제’를 혼돈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전자를 “상황을 불문하고 반드시 지켜야만 할 요구”로, 그리고 후자를 독일의 “특수한 상황”에 근거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베버가 강의실에서 교수의 가치판단을  금지한 것은 강의에서 교수가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던 당시 독일 대학의 권위주의적인 풍토에 한정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적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베버가 강의실에서의 가치 판단 문제를 논하면서 예로 들고 있는 상황은 ‘독일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미국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베버는 “다시 한번 미국의 예를 들겠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이 문제(강의실에서 교수의 가치 평가를 금지하는 문제-역자 주)가 가장 순수하고 본래적인 형태로 관찰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곧 이어 그는 “미국 대학생들은 교수를 식료품 상점 주인이 나의 어머니에게 양배추를 팔듯이 나의 아버지의 돈을 받고 자신의 지식과 방법을 파는 사람으로 인식한다”고 적고 있다(Gerth & Mills, 1958: 149). 따라서 필자는 그들과 달리 베버가 강의실에서의 가치판단 문제도 과학에서의 가치판단과 마찬가지로 합리화된 가치 중립적 상황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요구로 보았다고 해석하고 싶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베버는 민주주의적 인간상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인간이 가치보다는 행복 추구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 그러한 인간을 정신 없는 전문가들과 심정 없는 향락가들인 무의 인간(the nullity)이라고 불렀다(Weber, 1980: 182). 이같은 표현은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기계적인 자본주의적 경제 기구에 갇혀있는 인간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1980: 181-2). 베버 자신이 이러한 인간을 민주주의적 인간이라고 부른 적은 없지만 두 가지 면에서 그의 무의 인간은 민주주의적 인간상과 관련되어 있다.
 첫째, 베버는 근대 서구 사회를 합리적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개체로 특징지웠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자본주의가 근대 서구 사회의 제 현상들을 대표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근대 자본주의적 인간에 대한 베버의 논의는 근대 민주주의적 인간까지 포함하고 있다. 필자는 한 때 베버를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보고 그의 종교 사회학 속에서 개신교 윤리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윤원근, 1987). 그 때 필자는 왜 베버가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관계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민주주의 정신에 대해서는 침묵했는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베버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러한 의문은 풀렸다. 베버가 서구의 근대 시민 사회를 합리적 자본주의라는 측면에서만 이념형적으로 개념화하여, 그것을 칼빈주의와 연관시켜 설명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첫째, 그는 근대 시민 사회가 이룩한 정치적 측면의 업적인 민주주의를 도외시하고 있다. 자본주와 민주주는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자본주의 없이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로 환원될 수 없다. 따라서 노박(1986: 46)의 말대로 그는 자본주의 정신이 아니라 민주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썼어야 했다. 이것의 연장선 상에서 둘째, 베버는 칼빈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련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루이씨(Luethy, 1970)에 의하면, 칼빈주의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측면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칼빈주의가 민주주의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베버의 동료였던 트뢸취(1990), 데이비스(1986), 카이퍼(1990), 브라트(1986), 노재성(1989) 참조. 칼빈주의가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에 대한 베버의 무관심은 칼빈주의로 인해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인) 자연법 사상이 보편적 규범의 성격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그의 잘못된 역사적 설명과 동일한 맥락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서구의 근대 시민 사회에 대한 베버의 편향된 개념화는 민주주의적 가치(자연법 사상)가 독일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면서 효율적인 자본주의만을 수입하여 독일의 부국강병을 도모하려는 “가려쓰기”(丸山眞男, 1988: 281)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가려쓰기는 뒤늦게 위로부터의 근대화에 착수한 독일(그리고 일본)의 정치가들과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전략이었다.   
둘째, 베버의 무의 인간은 그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인용한 니이체의 마지막 인간(last men)(Gerth & Mills, 1958: 143)과 같은 의미로 간주된다. 니이체의 마지막 인간은 근대 서구에서 새롭게 출현한 민주주의적 인간형을 가리키는 것이다. 니이체(1980: 104)는 “마침내 왜소한 우스꽝스러운 종족, 가축의 무리같은 존재, 선량하고 유약하며 범용한 존재가 육성되게끔 되었던 것이다. 즉, 오늘의 유럽인이 말이다.”고 하면서 이러한 인간형이 민주주의의 결과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민주주의 운동은 단지 정치적 기구의 한 퇴폐 형식으로 생각될 뿐만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의 왜소화의 형식, 인간의 범용화와 가치 하락의 현상으로 생각된다”(니이체, 1980: 161-162). 베버도 니이체처럼 민주주의가 자신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는 왜소한 인간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그는 독일인이 행복과 평화를 추구하는 민주주의적 인간형보다는 가치 투쟁에 헌신하는 영웅적 인간형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대학 취임 연설인 󰡔국민국가와 경제정책󰡕에서 평화와 행복의 추구를 통속적인 망상이라고 비난하면서, 경제 정책이 인간 또는 국민의 행복을 목표로 해야한다는 생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베버, 1985: 235-6).

우리들이 행복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며, 미래의 태내에 평화와 인간의 행복이 들어 서 있다고는 망상조차도 할 수 없고, 또한 인간과 인간의 가혹한 투쟁을 겪지 않고 어떤 다른 방법에 의해서 현세의 권력적 지배권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질 않습니다.

그리고 이 연설에서 “우리들이 자손에게 선물로서 보내 주지 않으면 안될 것은 평화라든가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들의 국민적 특질을 지켜가면서 더 한층 발전시키기 위한 영원한 투쟁”(1985: 237)이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결국, 베버는 독일 민족 공동체의 위대함을 궁극적 가치로 보고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독일인이 행복보다는 투쟁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그는 정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처음에는 대의 민주주의를, 나중에는 국민투표적 민주주의를) 지지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헌신 때문이 아니라 그 제도가 관료제를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독일 민족 공동체를 잘 이끌어 갈 카리스마적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Loewenstein, 1972). 배동인(1995: 61)은 이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베버의 반민주적 이해”라고 논평했는데 이는 적절하다 하겠다. 베버는 친구들과의 담화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민주주의에서 국민들은 자신들이 신뢰하는 지도자를 선택한다. 선택이 끝나면 선택된 사람은 ‘이제 당신들의 입을 닫고 나에게 복종하시오’라고 말한다. 국민들과 정당들은 더 이상 지도자의 일에 간섭할 자유가 없다”(Turner & Factor, 1984: 15). 필자는 베버를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확대·해석하는 견해에 대해 좀 더 토론하고 싶다. 전성우(1995: 273-277)는 베버의 지배 사회학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베버가 니이체처럼 민주적 가치(자연법 사상)를 부정한 허무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베버를 계속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해석하고 있다. 먼저, 그는 베버가 결과를 중시하는 책임 윤리에 입각하여 경험적 실제적 차원에서 가치간의 타협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타협의 필요성 마저 인정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276). 이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일차적인 문제는 과연 베버의 사회학 안에 가치들 간의 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장치가 베버에게는 없다. 다만 가치들 간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투쟁만 있을 뿐이다. 베버적인 논리에서 보면, 가치의 타협은 곧 가치의 포기이다. 여기서 두번째 문제가 제기된다. 즉, 보다 상위의 보편적 가치에 의한 중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성공적인 결과의 달성만을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포기한다면 이것은 마키아벨리즘과 무엇이 다른가? 다음으로 전성우는 자연법적 근거 없이도 민주주의는 가능하다고 본다(277). 왜냐하면 한번 정착된 민주주의적 권리들은 자연법적 근거 없이 적절한 제도적 장치와 구조적 권력분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보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적 가치의 계속적인 내면화 없이 제도만으로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베버 당시의 독일은 아직 민주주의의 정착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논의는 설득력을 잃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베버가 노동조합주의자였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베버를 민주주의자로 해석하려 한다(299-308). 즉, 그는 베버가 노동조합주의를 지지한 것을 민주적인 “시민의식과 시민적 행위 양식에 대한 그것의 교육적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307). 그러나 비이담에 의하면 베버에게 노동조합의 문화적 가치는 “노동 계급이 기존의 사회 질서를 수용하도록 교육시키는 중추 기관”으로 간주되었다. 즉, 베버는 노동자의 대중적 규율을 확보하고 조합 지도자들이 노동 계급으로 하여금 국가 정책을 신뢰하도록 하는 수단으로써의 노동조합적 동지애와 연대감을 중시했다(Beetham, 1974: 146). 결국 베버에 대한 전성우의 입장은 민주주의자 없이도 민주주의는 가능하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4. 정당성의 세가지 유형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 규범에 대한 베버의 무관심은 정당성에 대한 논의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정당한 지배의 순수 유형”을 합법적 권위,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의 세가지로 구분하였다(Weber, 1968: 215). 먼저 합법적 권위(legal authority)는 제정된 규칙들의 합법성에 대한 믿음과 합법적 규칙들에 따라 명령권을 획득한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전통적 권위(traditional authority)는 전통의 신성함과 그러한 전통에 따라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의 정당성에 근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tic authority)는 어떤 개인의 예외적인 신성함, 영웅적 자질 또는 모범적인 특질에 대한 헌신과 그러한 개인에 의해 계시되거나 규정된 규범적 질서에 대한 헌신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 유형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정의된 것으로, 내용적인 측면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전통적 권위에서 베버는 그 전통이 민주적 가치에 기반한 것이냐 전제적-가부장적 가치에 기반한 것이냐 하는 차이를 도외시하고 있다. 카리스마적 권위에서도 카리스마의 소유자가 정상적인 유형의 지도자냐 아니면 해적 두목이나 갱두목과 같은 비정상적인 유형의 지도자냐 또는 민주적 가치를 지향하는 지도자냐 독재를 지향하는 지도자냐 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1968: 1111-4). 그리고 합법적 권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는 권력의 통치 수단인 실정법의 내용이 자연법에 일치하는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다. 단지 통치 행위가 비인격적인(impersonal) 법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인격적인(personal) 온정에 의한 것인가에만 관심을 나타내었다(Gerth & Mills, 1958: 299; Weber, 1968: 217-20).
 베버는 이러한 권위의 세가지 유형 중 합법적 권위를 근대 서구의 가장 공통된 정당성의 형태라고 보았다. “합법적 권위의 단초들(beginnings)이 먼 과거 속에서 아무리 많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완전한 발전은 근대의 특징적인 현상”(Weber, 1968: 37; Gerth & Mills, 1958: 295)이라는 것이다. 합법적 권위에 대한 베버의 논의는 법 실증주의자인 옐리네크(Jellinek)와 순수 법학의 창시자인 켈젠(Kelsen)의 법 이론과 유사하다. 옐리네크는 국가를 법적 권위의 유일한 원천으로 보았다(Schapiro, 1983: 22). 켈젠(Kelsen)도 법 질서를 행동하는 국가로 보았다(1983: 23). 켈젠은 베버와 마찬가지로 가치의 문제는 판단하는 주체의 감정이나 욕망에 의해 정서적으로 결정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가치를 제시하는 자연법 이론을 거짓말(플라톤이 말하는 고상한 거짓말)이라고 하였다(Kelsen, 1984). 이것은 가치 중립성의 견지에서 자연법을 환상으로 보는 베버의 태도와 일치한다.
형식적 측면에서 정의된 베버의 합법적 권위는 이처럼 국가와 법을 동일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이러한 법 이론들은 민족 공동체의 전체 의지인 민족 정신을 법의 최고 원천으로 삼은 독일 낭만주의의 반자연법적 법 개념과 같은 맥락 속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합법적 권위를 근대의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본 베버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베버가 말하는 합법적 권위는 프러시아적 관료제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독일에만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노박, 1986: 47). 하이에크(1987: 274)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독일에서는 합법적 지배를 “형식적인 법치 국가”의 개념과 동일시하였다. 이것은 “어떤 명령이 합법적으로 공포되었느냐만을 물을 뿐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수 있는 정의의 규칙이냐를 묻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지 못한다. 차성환(1992: 248 이하)은 베버의 합법적 권위에 나타난 이같은 형식적 법치 국가의 개념과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실질적 법치 국가의 개념을 구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베버의 합법적 권위를 “공공 윤리”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즉, 그는 사적 윤리의 행위를 “대인간적 주종관계에 지향된” 행위로, 공공 윤리적 행위를 “사실적이고 비인격적인 목적에 대한 봉사 의무에 지향된” 행위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그는 공공 윤리의 준거로서 다음과 같은 베버의 논의를 소개하고 있다. “만일 관료가 자신의 일을 가장 이상적인 의미에서 국가 권력 체제의 합리적 규정에 따라서 처리하는 경우에, 관료제적 국가 기구 및 국가에 고용된 합리적인 정치적 인간은 ··· 불의를 처벌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자신의 업무를 ‘인간을 고려함 없이’ 그리고 ‘증오함이 없음과 마찬가지로 또한 편애함도 없이’ 객관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공공 윤리적 행위는 비인격적인 규칙에 대한 지향 뿐만 아니라 보편적 가치 내용에 대한 지향을 포함하는 행위이다. 독일적인(그리고 베버적인) 의미에서의 ‘합법’은 공공 윤리에 아주 중요한 보편적 가치 내용을 도외시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다렌도르프(1986: 333-47)는 독일에서 공공 윤리(그의 표현으로는 공적 미덕)가 부재한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베버는 법 사회학에서 “자연법이 ··· 법적 질서의 유일한 무모순적 정당성의 유형”(Weber, 1968: 867)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지만 가치 중립성의 시대의 도래로 인하여 더 이상 법 체계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가치 중립성 시대에는 민족 공동체의 의지에 기초한 합법적 권위가 가장 적합한 권위 형태이다. 베버를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확대·해석하는 전성우는 여기서도 베버가 법실증주의자가 아님을 변호하고 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는 한편으로는 마치 베버가 실정법의 초실정적 기초로서 자연법을 인정한 것처럼 진술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베버가 합리화의 결과 어떠한 초실정적 기초도 거부한 허무주의자라고 하면서 이를 “베버 해석의 딜레마”라고 얼머부린다(전성우, 1995: 270-2). 뿐만 아니라 그는 카리스마적 지배와 전통적 지배가 정당성의 확보를 위해 마술적 세계상이나 종교적 세계상과 같은 초실정적 근거에 의존하는 반면 합법적 지배는 그 정당성이 “합리적인 관료제에 내재하는 자기충족적 속성”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1995: 280). 여기서 합리적 관료제의 자기충족적 속성이란 “비인격적이고 체계적인 질서, <마치 기술적으로 합리적인 기계같이 기능하는>”(1995: 288) 것을 지칭한다. 이것은 결국 합법적 정당성이 기계처럼 수단으로 봉사하는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가 이후(1995: 288이하)로 정치 영역과 행정 영역을 분리하고 합법적 정당성을 행정 영역으로서의 관료제의 수단성에 국한시켜 논하는 것도 결코 이상하지 한다. 결론적으로 베버의 합법적 정당성에 대해 정리하자먼, 필자의 견해는 이맇다. 즉, 베버의 합법적 정당성은 그것의 수단적 합리성에 있다. 그러나 수단은 목적 없이 독자적으로 존립이 불가능하기에 합법적 정당성은 목적 그 자체인 외부의 초월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 초월적 근거는 베버에게 자연법이 아니라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의지를 통해 표출되는 민족 공동체의 전체 의지인 것이다. 관료제 부분에 가서 상론하겠지만 베버는 관료제를 수단적 지위에 묶어 두기 위해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요구했다. 이러한 사실은 전성우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5.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

 끝으로, 베버의 반자연법적 특수주의는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에 대한 논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는 네가지 행위 유형 중 가치 합리적 행위와 도구 합리적 행위를 각각의 내재적인 평가 기준에 따라 표현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가치 합리적(value-rational) 행위는 “어떤 가치가 윤리적이거나 심미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간에 그 가치 자체에 대한 의식적인 믿음에 의해 결정되는” 행위이다(1968: 24-5). 따라서 가치 합리적 행위자는 행위의 성공적인 결과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자신이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가치에 대해 얼마나 순수한 동기를 유지하느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가치 합리적 행위는 궁극적 가치에 대한 동기의 순수성이라는 내재적인 평가 기준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 기준이 심정 윤리인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도구 합리적 행위는 “상황 내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물체들과 인간 존재들의 행동을 예상하고 그 예상을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이다(1968: 24). 따라서 도구 합리적 행위자는 동기의 순수성에는 관심이 없고, 목적의 성공적인 달성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결과가 도구 합리적 행위를 평가하는 내재적 기준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기준이 책임 윤리인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윤리는 자연법의 보편적 윤리관과 상치되는 것이다.

 1) 심정 윤리
 먼저, 심정 윤리에 대한 베버의 정의는 권위의 세가지 유형에 대한 정의와 마찬가지로 형식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연법론에서 윤리나 도덕은 선과 악을 지시하는 보편적으로 타당한 가치 내용을 포함한다. 자연법론자들은 국가 실정법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규범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타당한 가치를 부정하는 베버 베버는 다음과 같이 자문하고 있다. “연애, 사업, 가정, 관직 등과 같은 인간 관계에 대해 동일한 내용의 명령을 확립할 수 있는 윤리가 실제로 존재하는가?”(Gerth & Mills, 1958: 118). 물론 이에 대한 베버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는 심정 윤리에 대한 논의에서 가치 내용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개의 행위자가 궁극적인 것으로 여기는 가치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 없이, 그것에 관련된 동기의 순수성이라는 형식만이 고려의 대상이 될 뿐이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자연법적 가치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상이한 신분과 위계서열 속에 위치한다고 주장하는 가치를 비교해 보자. 심정 윤리에 따르면, 이 두가지 가치 내용 중 어느 것이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다. 행위자가 어느 가치를 수용하든지 그 가치에 동기적으로 순수하게 관련만 되면 심정 윤리라는 관점에서 볼 때 휼륭한 윤리적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인종주의를 궁극적 가치로 삼는 행위자가 순수한 동기로 자신의 가치에 몰입되어 다른 행위자에게 폭력을 가한 경우, 보편적 규범을 상정하고 있는 자연법론자들은 그러한 행위를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베버의 심정 윤리는 그러한 판단의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베버는 심정 윤리에 따라 행위하는 사람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가 비난하는 이유는 심정 윤리적 행위자가 자연법과 같은 보편적인 규범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ethical irrationality)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 비합리성이란 선으로부터만 선이 생기고 악으로부터만 악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악으로부터 선이, 선으로부터 악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1958: 122). 베버는 이러한 윤리적 비합리성에 근거하여 많은 경우에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험스러운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심정 윤리적 행위자는 이같은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을 보지 못하고서 단순히 행위의 동기가 순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실제의 행위 과정에서 전혀 의도하지 못한 나쁜 결과에 직면하게 될 때, 그는 자신에게 보다는 세상이나 인간들의 어리석음 또는 인간을 그렇게 만든 신의 뜻에 책임을 돌린다. 그러므로 베버가 심정 윤리에 따라 행위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윤리적 비합리성에 대한 그의 무지로 말미암은 이러한 책임 회피 때문이다.  

 2) 책임 윤리
 책임 윤리는 동기의 순수성에 관계하는 심정 윤리와는 반대로 목적의 성공적인 달성이라는 결과에 따라서 행위를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 윤리에서는 물질적 대상이든 인간이든 목적의 성공적인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베버는 가치와 동기에 관련된 심정 윤리와 수단과 결과에 관련된 책임 윤리 사이에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1958: 120).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백히 해야 한다:윤리적으로 지향된 모든 행위는 심정 윤리 또는 책임윤리 둘 중의 하나에 의해 인도된다. 그런데 이 둘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대립된 공리들(maxims)이기 때문에 서로 화해할 수 없다.

 베버의 책임 윤리가 이처럼 심정 윤리와 반대된다고 해서 그것이 자연법론적 윤리관과 조화되는 것은 아니다. 심정 윤리는 행위자가 준수해야 할 보편적 규범으로서의 자연법을 부정하지만 행위자가 헌신해야 할 주관적인 가치는 중요시한다. 그러나 책임 윤리는 보편적 가치이든 주관적으로 헌신해야 할 가치든 가치 자체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책임 윤리의 특징은 모든 가치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전성우(1986a: 11)는 이것을 “행위의 내적 자율” 또는 “가치 선택의 자율”이라고 표현하였다. 행위의 내적 자율성을 중심으로 베버의 심정 윤리와 관계하는 가치 합리적 행위와 책임 윤리와 관계하는 목적 합리적 행위(본 연구의 용어로는 도구-합리적 행위)를 비교한 그의 논의는 여기서 인용할 만하다. “가치 합리적 행위란 목적과 수단에 관해서는 자율적인 선택권을 가지지만, 가치는 그 자체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 것이고 또 그런 이상 이 가치의 실현을 위한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행위이다. 이에 반해 목적 합리적 행위는 모든 요소의 자율성이 주어진 행위이다. 특히 가치 합리적 행위와 비교해 볼때 목적 합리적 행위의 경우는 인간 행위의 원래적 주된 동인인 이해 추구가 어떠한 절대적 성질의 가치 규범적 제한도 받지 않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가 “목적 합리적 행위는 행위자들의 대등한 교통관계를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어떤 가치도 그것 자체 절대적일 수 없고 이성적 토론과 설득을 통해서만 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때 그는 베버를 확대 해석하고 있다. 물론 베버에 있어서 가치 판단이 합리적인(이성적인) 토론에서 전혀 다루어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토론은 특정한 판단을 하나의 가치 체계에 자리잡게 하며, 내적 일관성을 지니지만 서로 배타적인 잡다한 가치 체계의 구조를 해명해 준다”(스미스, 1991: 73).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위해서는 Weber(1949: 20-1) 참조. 그러나 베버에 있어서 상이한 가치들은 합리적인 토론과 설득을 통해 그 타당성을 결코 인정받을 수는 없다. 오히려 가치에 대한 합리적 토론은 “서로가 합의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줌으로써 자신의 “가치에 더욱 민감하게”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다(박성환, 1992: 158-62). 베버에 의하면, 가치의 선택은 주관적 “결단”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상이한 가치들 간의 타당성은 “투쟁”을 통해서만 증명된다.
책임 윤리의 이같은 성격은 베버가 책임 윤리의 대표적인 예로 삼고 있는 현실정치(Realpolitik)의 개념에서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에 의하면, 정치는 아주 특별한 수단, 즉 폭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권력과 함께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정치는 오직 폭력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여러 상이한 과제들을 갖고 있다. 결국 이것은 정치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필요할 때에는 폭력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정치의 영역이 철저히 윤리적 비합리성의 영역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Gerth & Mills, 1958: 125).

정치에 종사하고자 하는 자,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자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러한 윤리적 역설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역설의 영향 하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것인가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의 이같은 특성 때문에 그는 정치에 대해 윤리를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그는 그런 사람을 정치적 유아(political infant)라고 불렀다(1958: 123). 베버는 현실 정치의 이같은 특성을  “정치에 몸담는 사람은 ··· 악마적인 힘들과 계약을 맺는 사람”(1958: 123)으로 결론지었다. 결과적으로, 책임 윤리에 근거하는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는, 종교적인 형제애 윤리나 인간 해방의 사회주의 윤리, 또는 인간의 자연적 권리라는 이념을 주장하는 자연법적 윤리는 객관적인 책임감을 결여하고 지적인 흥미만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에 불과한 것이다(1958: 115). 따라서 책임 윤리 역시 보편적 규범을 상정하는 자연법론과 조화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의 결합
 이상에서처럼 베버는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가 결코 화해할 수 없다고 보면서도 한가지 경우에만은 오히려 두 윤리의 결합을 권장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즉 조국(fartherland)을 궁극적 가치로 선택할 때이다. 베버는 조국을 궁극적 가치로 선택한 정치가가 “나는 여기를 고수한다; 나는 이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Here I stand; I can do not other)”라고 하면서 다른 모든 윤리를 희생시킬 때 헤아릴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고 고백하였다(1958: 127). 그는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가 절대적인 대립 관계(absolute contrasts)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 관계(supplements)에 있으며, 이같은 결합 속에서만 정치를 소명으로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인간이 형성된다”고 하였다(1958: 127). 스미스는 베버가 주관적 결단에 의해 ‘민족 국가’를 자신의 궁극적인 가치로 선택하였다고 하면서도 이것을 “변형된 책임 윤리”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1991: 79-83). 먼저, 베버는 두가지 점에서 심정 윤리가 결함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가치 중립성 시대에 심정 윤리는 “지성을 희생”을 강요하는 교조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심정 윤리가 폭력과 같은 도덕적으로 문제시되는 수단의 사용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베버가 책임 윤리를 무조건 선호한 것은 아니었다. 베버는 (심정 윤리의 측면에서) 아무런 신념을 갖지 못한 사람을 “영적으로 사망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에 대한 베버의 이러한 비판을 고려하여 스미스는 베버의 입장을 “변형된 책임 윤리”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는 베버가 민족 국가도 하나의 궁극적 가치로서 심정 윤리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이러한 사실만 알게 되면 베버가 “변형된 책임 윤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민족 국가 안에서 심정 윤리와 책임 윤리의 결합을 시도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베버는 영적으로 사망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서도 지성을 희생하거나 폭력같은 비도덕적 수단을 거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모든 국가의 실정법의 근거가 되며 실정법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자연법에 맞서 실정법은 나름대로의 고유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민족 정신의 표현이라고 본 독일의 특수주의적 전통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Ⅳ. 결론 -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

 지금까지 본 연구는 베버 사회학의 여러 실질적인 주제들을 통해 그의 공동체적 특수주의를 고찰해 보았다. 그러나 본 연구는 그의 공동체적 특수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이 주제는 본 연구의 결론을 대신하기에 안성맞춤이라 생각된다.
 베버는 인간을 “세계에 대해 의도적인 태도를 취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문화적 존재”로 규정하였다(Weber, 1949: 81). 인간이 문화적 존재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종류의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즉, 모든 개개인)에게 다 적용된다. 따라서 인간은 세계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의도적인 태도를 취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과 의지를 가질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개성적 존재’이다. 그래서 베버의 사회학에서는 인간 = 문화적 존재 = 개성적 존재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베버는 이 등식을 자신의 사회학의 “초월적 전제”로 삼았다(1949: 81). 인간 = 문화적 존재 = 개성적 존재라는 바로 이 등식이야말로 베버가 가치 중립성이라는 명제 하에서 자연법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고 모든 가치의 주관적(개성적) 근거와 무차별적 동등성이라는 실존적 결단주의를 주장하게 되는 인간학적 정초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인간학적 정초야말로 많은 베버 연구가들이 시민 사회 지지자들의 천박한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참된(또는 영웅적) 자유주의자로서의 베버의 모습을 그려내는 근거가 되었다(Rossides, 1978; 뢰비트, 1986; 전성우, 1992; 박성환, 1992).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인간 = 문화적 존재 = 개성적 존재로서의 베버의 인간학은 이와 달리 자연법적 토대 위에서 시민 사회가 성취한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만인의 평등과 자유를 부정하고 그것을 공동체적 특수주의 속에 가두어 두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베버가 ‘모든’ 인간을 세계에 대해 나름대로 의도적인 태로를 취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문화적 존재 = 개성적 존재로 규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문화라는 개념을 ‘민족 공동체적 개성’에 국한해서 사용하고 있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베버의 사회학에서 문화는 세계에 대한 한 개인의 의미부여(개인적 개성)가 아니라 한 집단의 공유된 의미부여(공동체적 개성)이다. 즉, “문화는 다른 집단이나 사회로부터 한 집단이나 사회를 구분해 주는, 즉 그 개성(Eigenart)을 구성하는 특수한 가치이다”(Beetham, 1974: 125). 그리고 여기서 “개성을 구성하는 특수한 가치”는 바로 민족 공동체의 가치인 것이다. 비이담(125)에 의하면, 문화는 민족 공동체의 개성을 형성하는 복합적 특징들을 지칭하기 위해 베버가 사용한 중심 개념이다.
그에 의하연, 한 문화를 특징지우고 규정해 주는 개성은 민족적 개성이다. 이것은 베버가 민족 문화와 관련해서만 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베버는 한 때 “모든 문화는 민족 문화이다”(Beetham, 1974: 125)라고 썼다.
문화의 개념과 민족 공동체적 개성 사이의 이같은 밀접한 연관성은 베버가 “민족의 의미는 보통 공동체의 개성을 배양함으로써 보존되고 발전될 수 있는 문화 가치의 우위성 또는 적어도 대치 불가능성에 근거하고 있다”(Beetham, 1974: 126)고 말한 데서 명백해진다. 비이담(1974: 127)은 개성을 민족 공동체와 동일시하는 베버의 이러한 태도를 개인주의적 가치에 대한 베버의 헌신의 연장으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는 베버가 이와 반대로 개인의 개성을 민족적 개성 속에 용해시킨으로써 개인주의적 가치의 말살을 의도하였다고 해석하고 싶다.

 물론 베버는 그의 사회학 속에서 여러 종류의 문화 공동체(특히, 종교 공동체)를 아주 중요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민족 공동체가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개성적 공동체였다. 왜냐하면 종교적 이념이 더 이상 객관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없는 합리화된 시대에는 민족 공동체만이 “문화의 운반 수단이며 체현 형태”(Beetham, 1974: 127)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성을 민족 공동체적 개성과 동일시한 베버는 이제 참된 개성적 인간은 그의 개인적 개성이 민족 공동체의 개성 형성에 기여하는 특별한 종류의 인간이라고 보는 엘리트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지식인들이 민족적 이념의 주요 지지자라는 것은 자명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에게 “대중은 엘리트에 의해 유포된 문화적 가치들을 공유하기 전까지는 문화가 없는(kulturlos)” 존재에 불과하다(Beetham, 1974: 127). 따라서 베버에게는 문화적 존재이며 개성적 존재인 인간은 민족 공동체의 개성을 창조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소유한 ‘엘리트적 인간’인 셈이다. 카리스마적 정치 지도자에 대한 베버의 깊은 관심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외견상의 보편적 규정은 실제로는 특정 문화 공동체 내에서만 존재 의의를 가지는 특수한 인간을 지칭하는 것인 셈이다. 비이담(1974: 125)은 전자를 베버의 방법론적 저작들에서 나타나는 문화에 대한 광의의 정의로, 그리고 후자를 정치적 저작들에서 나타나는 협의의 정의로 보면서 이 둘을 구별한다. 이것은 베버의 학문적 저작들과 정치적 저작들이 구별되어야 한다는 그의 입장의 반영인 듯하다. 그러나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베버의 사회학 전체를 통일된 관점에서 재구성하는데 관심이 있는 필자는 이러한 구별에 찬성하지 않는다.
 
 베버 이전에도 독일에서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절대적 자유를 강조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상을 주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가 민족 공동체의 개성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공동체적 자유를 실현하는 위대한 개인을 찬양하는 지적 전통들이 존재했었다. 독일의 지적 전통 속에는 개성(individuality) 숭배 사상으로 인한 딜레마가 존재해 왔다. 즉, 그것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개성 실현에 최상의 가치를 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국가의 개성 실현을 최고의 윤리적 의무로 규정하였다. 그들은 이 딜레마를 논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다만 양자의 “심오하고 신비로운 조화”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주관적 결단에 의한 가치의 선택을 강조하는 베버의 결단주의는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논리적 장치의 구실을 한다(Turner & Factor, 1984: 83-4). 주관적 결단에 의해 민족 국가를 궁극적 가치로 선택한다는 것은 개인의 개성과 민족 국가의 개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의 개체 사상과 신칸트학파의 문화 과학 논리가 그러한 사고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Ⅱ장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서는 후자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칸트는 세계를 현상계와 본체계로 구분하고, 전자는 자연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는 필연의 영역으로 보았던 반면 후자는 절대적 자유의 영역으로서 자연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도덕적 실천의 영역으로 보았다. 신 칸트학파는 이같은 칸트의 사상을 계승하여 문화과학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확립하였다. 즉, 신칸트 학파는 자유의 영역이며, 도덕 법칙의 영역인 칸트의 본체계를 공동체적 삶의 산물인 문화로 대치하였다(벤튼, 1984: 146-160). 그 결과 필연의 영역을 연구하는 자연 과학과 자유의 영역을 탐구하는 문화 과학이 엄격히 구별되었다.

 이 전통은 영국에서 비롯된 시민 사회의 자유 개념을 수용하였지만 그 의미를 반대로 해석하였다(크랜스튼, 1992). 시민 사회의 자유 개념이 보편적인 자유권과 평등권을 충족시키는 외적 자유(외적인 형태로 관찰할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을 확보하는데 큰 관심을 보였다면 독일에서는 내적 자유(외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자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독일의 지식인들은 인간(과 문화)을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과 대립하는 존재로 봄으로써 내적 자유 개념을 정당화하였다. 즉 그들은 인간을 생명이 있고, 정신(이성)적이며, 자유로운 존재인 반면, 자연을 생명이 없고, 물질적이며 필연적인 존재로 보았다. 이러한 구분에 근거하여 그들은 시민 사회의 자유를 물을 먹고 싶을 때 물을 먹는 것처럼 자연적 욕구에 굴복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에게 이것은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표시였다. 반면에 그들은 물을 먹고 싶은 자연적 욕구에도 불구하고 물을 먹지 않고 견디는 정신적 능력을 참된 자유라고 해석하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라고 주장하였다(박세일, 1989; 35-36). 독일의 자유주의자들은 항상 이러한 정신적인 내적 자유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Turner & Factor, 1984: 80-86). 그런데 이 내적 자유는 항상 공동체적 정신(개성)과의 일치를 통해 향유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독일 자유주의자들은 인민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그들은 「인민」을 개별적인 인간의 집합체로 보기 보다는 오히려 민족적 국가적 통일체로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 사람들은 영국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이기를 그만둔 바로 그 때부터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 부르기 시작했다.”(크랜스턴, 1992: 100).   
개성의 실현과 관련된 베버의 자유 또한 바로 이러한 의미 창조적인 내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베버는 시민 사회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는 결코 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행복 추구에 관심을 갖는 시민 사회의 자유인(민주주의적 인간형)을 경멸한 반면, 역사를 상이한 민족적 가치들 간의 투쟁의 장으로 인식하고 자기 민족의 가치의 우월성을 위해 헌신하는 인간을 높이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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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근은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7.6-1999.5 기간 동안 “사회학, 질서의 문제 그리고 세계관”이라는 과제로 학술진흥재단 지원 박사후 과정을 연수하였다. 이 과제는『현상과 인식』1999년 가을호와 겨울호에 게재되었으며, 사회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감의 사회학(Sociology of Sympathy)이라는 새로운 사회학 이론을 제안하고 있다. 현 숭실대 강사. e-mail: ywkm@unitel.co.kr
  
영문 제목 및 초록

The Mystic World-View  of the German Intellectual Tradition and Weber's Community-Orientation(1): Weber's Communal Particularism

                        Yoon, Won-Keun

This study attempts to explore Weber's cummunity ideology through the mystic world-view of the the German intellectual tradition. According to him, a human being was, in nature, a  communal being. This is verified by the fact that he regarded a human being as a cultural being who considers the norm of cultural community as a fundamental principle of life. He characterized the modern civil society as a value-free situation by rationalization, where his strategy was to nullify the thought of natural law as the universal norm of the modern civil society. This study explores Weber's community ideology through the disscussions such as a value-free issue, the rationalization of religional world-view, democracy, three types of legitimacy, the ethics of ultimate end and responsibility, and a human being as a cultural being. This study shows Weber's real aspect of denying the modern civil society clea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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