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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7/05/30 (06:58) from 84.173.185.218' of 84.173.185.218' Article Number :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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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학파




인터뷰/ 미셸 페로


(사진/프랑스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로 한국을 방문한 미셸 페로.)

미셸 페로(67·파리7대학 명예교수)는 프랑스와 유럽의 역사학계에서 여 성사 전문가로 이름 높은 역사학자다. 71년 그가 쓴 박사학위 논문 <파업 하는 노동자들>은 프랑스 전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파업과 경제적 주 기의 상관관계를 계량적 산출로 다룬 전무후무한 작업이란 점에서 평가받 았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에른스트 라브루스로부터 역사학의 과학화와 엄 격한 실증주의를 이식받아 ‘라브루스의 딸’로 불리는 페로는 ‘아날학 파’의 제3세대로서, 노동자 계급을 사랑하는 사회주의자이자 인권활동가 로서, 대중적인 논문을 발표하며 여성학계의 대모로 활동중이다.

조르주 뒤비(1919∼96)가 죽은 뒤 페로는 두 사람이 함께 펴냈던 기념비 적인 총서 <사생활의 역사> <서양에서의 여성사>의 유일한 편집자로 남았 다. 이 책이 번역된 나라들을 돌며 여성사 연구자들과 긴밀한 연대를 이 루고 있는 그가 일본을 거쳐 주한 프랑스대사관 초청으로 서울에 왔다. 한국 경제에 깊은 관심을 나타낸 미셸 페로를 본지가 단독 인터뷰했다. -당신은 왜 여성사를 택했나.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성사를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페미니즘은 여성사의 한 부분이다. 페미니즘은 근·현대의 최근사일 뿐 만 아니라 권력과 정치의 문제에 집중돼 있다. 여성사는 인류가 존재했을 때부터 남녀 사이의 차이점을 다루는 역사다. 남과 여가 같이 살 때, 그 위치상 남성이 남성의 가치로 모든 걸 평가해온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 남녀간의 문제를 파악하는 게 여성사다.

-여성은 역사에서 소외되어 온 주변인인가.

=늘, 어느 곳에서나 그랬던 건 아니다. 다만 공적인 장에서, 특히 권력에 서 항상 소외돼 있었고 불평등을 당했다. 그래서 나는 <공적인 여성>이란 책을 썼다.

-진정한 여성해방이란.

=선택이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

-세계 곳곳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현재의 인문사회과학은 지금의 인류사가 보여주는 그 복잡다단함을 분석 할 도구를 잃었다. 돌파구를 열 새로운 학제적 연구 방법이 나와야 한다.

-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시대는 역 사의 끝에 와있나.

=나는 종말을 믿지 않는다. 후쿠야마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를 얘 기한 것 같다. 그러나 종말은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 21세기엔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지키되, 좀더 인간적인 역사를 이뤄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젊은 세대가 할 일이다.

-최근 프랑스의 역사학 연구 동향은.

=‘아날학파’ 이후 그만큼 주도적인 흐름은 아직 없다. 현재는 크게 세 가지 방향이 눈에 띤다. 첫째는 신(新)문화사다. 역사를 정신분석, 언어, 담론, 신화, 이미지 등의 질적인 사료로 다루는 방법이다. 일종의 미시( 微視)사학이다. 둘째는 신정치사다. 전통적인 정치사와 다르게 좀더 철학 적인 경향으로 역사를 본다. 셋째는 종교사 또는 인류학적 태도다. 역사 를 사람에 대한 연구로 보는 관점이다.

-당신은 50년을 역사학에 바쳤다. 역사란 무엇인가.

=시간 속에서 시대에 따른 변화의 양상을 잡아내 이해하려는 것. 이해한 뒤 행동하는 것.

-‘한국 여성사’를 쓰려는 학자들에게 주고싶은 말이 있다면.

=용기를 가져라. 혼자 하지 말고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함께 토론을 통한 공동작업을 하라. 서재에 틀어박힌 아카데믹한 연구를 지양하고 현장에서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페로는 12일 오후 숙명여대에서 ‘여성사, 역사의 침묵’이란 주제로 강 연을 한 뒤 13일 한국을 떠났다.


정재숙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http://h21.hani.co.kr/hankr21/K_97CP0188/97CP0188_020.html



2007.05.08 584 호 (p 87 ~ 89)
 


[문화로 찾는 논술 비전|최명희의 ‘혼불’]


식민시대 민초들, 처절한 삶의 기록

노만수 학림논술연구소 연구실장·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  
 

역사를 보는 눈은 과연 몇 개인가. 역사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역사는 특정한 사람·계급·집단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경쟁적으로 투영하기 위해 과거를 ‘입맛에 따라’ 재구성하는 ‘힘의 씨름마당’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바꾸어야 제대로 된 물음이 될 것이다. 이 질문을 이해한다면 역사란 다른 집단에는 상이한 의미를 갖는 논쟁적 용어 혹은 담론이며, 따라서 역사는 필연적으로 문제투성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키스 젠킨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중앙대 2006년 수시1



비주류의 시선으로 역사를 보고 있는 작품들. 1. 영화 `’왕의 남자’. 2. 영화 ‘황산벌’`중 백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던 계백 장군(박중훈 분·왼쪽)과 그의 병사들. 3.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 4. 소설 ‘아리랑’.  

레오폴트 폰 랑케가 이끈 19세기 실증주의 역사학은 1차 사료에 대한 엄밀한 비판과 연구를 통해 역사를 ‘과학성’ ‘가치중립성’ ‘객관성’이란 수식어로 미화했다. 결과는 ‘쓰는 자’의 손만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1841)처럼 승자와 영웅의 역사였던 것이다. 민중을 위한 공간은 텅 빈 채 말이다. 이런 지배자와 영웅 중심적인 정치사에 반기를 든 20세기 ‘사회사’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에 미장이들은/ 어디로 갔던가? 전설의 나라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바다가 그 땅을 삼켜버리던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대동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을 누가 냈던가?/ 그 많은 보고(報告)들/ 그 많은 의문들

- 브레히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연세대 2002년 정시


  






정치사가 ‘위로부터의 역사’였다면 사회사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다. 이런 사회사는 마르크스주의와 1930년대 출범한 프랑스의 아날학파가 주도했다. 물질적 토대(하부구조)가 정치·사상·도덕·문화 등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자에게 계급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나뉘고, 이들의 계급투쟁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 브레히트의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마키 메서가 “먹는 것이 먼저요, 윤리는 나중”이라고 한 말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모든 걸 계급으로 환원하는 마르크주의는 스파르타쿠스·만적·홍길동·홍경래만 주인공으로 삼을 뿐, 지배층의 허위의식을 ‘계급투쟁이 아닌 방식으로’ 조롱한 어우동이나 황진이, 허난설헌의 시각으로는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반면 ‘20세기 역사학의 기린아’ 아날학파는 주류(왕/남성/영웅)가 아니라 비주류(백성/여성/소수자 반영웅)의 시선으로 역사를 보았다. 대의라는 명분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안달하는 남성 영웅들을 향해 전쟁터에 나와서도 두고 온 농토와 가족을 생각하는 ‘역사의 거시기들’(일반 사병=민중)의 시각으로 지배자와 영웅의 역사를 뒤집은 영화 ‘황산벌’도 그런 유다. 장생과 공길이라는 천민 남사당패처럼 신분상 비주류와, 왕이지만 폐비 소생인 연산군이라는 왕가의 비주류가 주인공인 영화 ‘왕의 남자’, 궁중의 여성 요리사가 궁을 요리하는 드라마 ‘대장금’, 공권력 담당 주체의 비주류인 여성 형사 ‘다모’의 시각도 마찬가지, 즉 아래로부터의 시각이다.

동양 역사학을 출범시킨 사마천의 ‘사기’는 천자와 제후, 영웅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민중과 호흡했던 반란자, 코미디언, 자객, 오랑캐, 기인들을 다룬 열전을 둔 기전체라는 점에서 아날학파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아날학파는 또 ‘나라는 망하고 영웅은 간 데 없어도 산천(자연)은 변함이 없다’며 ‘어떤 게 더 장기지속적인가’를 역사의 기둥으로 삼는다. 국가의 정치나 영웅의 삶보다 앞서는 것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지리와 풍토라는 것인데, 길재와 두보의 시가 잘 웅변해준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煙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1353~1419)의 시조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남아 있어 성안에 봄이 오니 초목만 무성하구나(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당나라 두보(712~770), ‘춘망(春望)’

‘아날학파의 리더’ 페르낭 브로델은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에서 역사를 바다로 비유했다. 바다 표면에는 끊임없이 찰랑대는 파도가 있다. 그 밑에는 해류의 흐름이 있어 비교적 느린 속도로 자기 길을 따라 흘러간다. 다시 이보다 더 밑층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깊은 물이 있다. 우리 눈에는 찰랑대는 파도나 해류 정도가 보일지 모르나 사실 바닷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몇백 m, 심지어 몇천 m나 되는 거대한 심해의 물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일반 역사의 흐름에서는 전쟁, 혁명과 같은 정치적 대사건만 눈에 띄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민중이 영위하는 삶에서는 대사건이 생각만큼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변하지 않는 구조로서의 장기지속(일상생활사)이 역사에서 더 큰 중요성을 지니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임꺽정’ ‘장길산’ ‘태백산맥’ ‘토지’ ‘변경’ 등 20세기 대하 역사소설들은 (의적) 영웅과 정치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등 거시적 정치사라는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작가 최명희가 암투병하며 “정교하게 만든 정신의 끌로 피를 묻혀가면서 새기는 처절한” 노력으로 창조한 노작(勞作) ‘혼불’은 우리에게 역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 작가는 바로 주류와 거시적 시선이 아니라, 삶의 자리를 메웠던 민초들의 삶의 흔적이라는 미시적 일상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라와 백성의 관계는 콩꼬투리와 콩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콩껍질이 말라서 비틀어져 시든다 해도 그 속에 든 콩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터 무수한 열매를 조롱조롱 콩밭 가득 맺게 하나니.” -순종임금 융희 5년 경술 한일합방, ‘혼불’ 1부

‘혼불’ 의 주인공 강모와 강실이는 ‘아리랑’(조정래)의 방대근이나 ‘토지’(박경리)의 길상처럼 독립투사는 아니다. 단지 쌍피 붙는 근친상간의 당사자들이다. 그러나 그들과 그들을 쫓아낸 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은 옛 조상 때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농사짓고 언제나 비슷한 의복을 지어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땅에 발붙이고 살아간다. 그렇게 민중이 생활해오면서 쌓아올린 ‘물질문명’(세시풍속)은 그런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다.

일제의 무단통치와 창씨개명의 일선융합은 단지 한 번의 폭풍우에 지나지 않는다. 폭풍우가 심해(일상사)까지 뒤집어엎을 수는 없다. 폭풍우가 그치면 바다가 원래의 고요로 돌아가듯 물질문명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활동의 성과를 잘 보존하다가 인간의 삶을 복원해준다. 국권을 빼앗겼지만 조선 민중이 언제 일거에 김치와 온돌을 버리고, 스시를 먹고 다다미에서 자며 기모노를 입고 일본식 숯화로 고타쓰와 부뚜막 이로리로 겨울을 나던가.

조선 세시풍속사의 소설적 표현인 ‘혼불’은 역사가 숨차게 돌아가며 사람을 옭아매는 식민의 시대에도 민중이 역사의 주인임을, ‘역사의식’이라는 거대한 이념보다는 역사의 폭풍우 속에서도 제 삶의 자리를 온전히 책임지려 했던 이들의 세시풍속이 결국 ‘땅의 역사를 지켜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여타의 소설처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신채호)이란 당위성으로만 역사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토착적인 서민 생활풍속사를 통해 민족의 삶을 장강의 흐름처럼 묘사하고 있다. 지리나 기후 같은 장기지속적인 조건에 의해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같은 ‘망탈리테(mentalite′s·심성구조=혼불)’를 소설로 풀어놓았다.

36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와 수탈이 아무리 큰 피해를 주었더라도 그것으로 조선의 물질문명인 세시풍속이 일거에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의 장구한 역사가 쌓아올린 물질문명은 늘 복원력을 가지고 있어 충격을 겪더라도 인간의 삶을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되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병자호란 때 끌려간 박씨들이 200년이 지난 뒤에도 최초의 조상이 지닌 놋숟가락과 갓끈을 가보로 지닌 채 집성촌을 이루고 조선의 풍습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며, 얼과 넋은 과학으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혼불’이라고 했다. ‘혼불’에는 인간의 물질문명과 혼불은 함께 지속되고 발전한다는 메시지와 역사를 ‘민중의 일상적 세시풍속(물질문명)’으로 바라본 새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 추천도서 ‘혼불’(최명희, 한길사)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7/05/07/200705070500002/200705070500002_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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