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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1/19 (07:24)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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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과학
인간성의 과학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 유기화학)

 Ⅰ.
 우리는 지금 20세기의 끝머리에 살고 있다. 20세기 즉 백년의 끝일뿐만이
아니라 2천년대를 맞이하려는 천년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영어를 빌리면 두번째
밀레니엄의 마지막에 와 있는 것이다. 이제 2년만 지나면 새로운 세기 그리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과거 백년간 그리고 과거 천년간을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다.
 첫번째 밀레니엄이 끝날 무렵에는 주로 서구사회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실현될 것이라 하여 불길한
예언이 사회에 나돌았고 10세기의 백년간을 구라파인들은 끊임없이 북구인이나
주로 아랍이나 시리아 지방에 사는 유목민 특히 사라센족의 침입과 파괴로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이와같은 이방인들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던 서구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한 그들의 경전인 신약성경의 천년왕국의 종말현상이
다가오고 있다는 풍문과 함께 새로운 정신적 세계가 전개될 것이라는 기대속에서
사회는 몹시 불안한 공포 분위기가 휩싸여 있었다고 한다.
 새로운 정신세계의 출현이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질서의 파괴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사학자들의 견해는 기원
천년을 전후해서 서구사회에는 봉건주의 제도가 정착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혹자들은 봉건혁명이라는 말을 구사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고려조가 서기 918년 시작되고 있으니 첫번째 천년의 마지막 세기
초부터 고려조가 들어서고 1392년 부터는 이씨조선이 1919년까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두번째 밀레니엄은 고려조와 이씨조선의 시대로
집약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일제 식민지 하에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학교서
배워보지 못한 세대로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운운하기란 매우
주저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늦게 철들어 우리나라 역사라고 읽은 것이 함석헌
선생님이 쓰신 <뜻으로 본 한국사>이다. 이 책에 의하면 삼국시대가 끝나고
신라가 통일을 하는데 이 신라의 통일은 '통일이 아닌 통일'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삼국 중의 고구려의 멸망을 '눈부신 활동을 다음 순간에 약속하다가 갑자기
거꾸러진' '순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고구려의 패망을 슬퍼하고 있다. 그래서
당의 힘을 빌려 이룩된 신라통일은 오늘의 민주와 한반도를 합친 대통일국가의
꿈이 깨진 요절로 간주한다. 어떻든 청청강 이남으로 한정된 통일 아닌
분할이라고까지 혹평을 받는 신라가 망하고 고려왕조가 들어서지만 그 고려도
실패로 끝나고 만다. 궁예 왕건이 꿈꾸었던 큰 조선에 대한 열망은 '삼국시대를
말 못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병' 때문에 고려왕조는 결국 '중축이 부러진' '수난의
5백년' 이씨조선으로 이어진다.
 언젠가 아놀드 토인비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인접해있는 나라 한국을 한번 방문에 보지 않겠느냐 라는 권고에 세계사적으로
볼 때 15세기 이후의 5백년이라는 세월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5백년간을 한왕조가 쇄국상태로 지배하고 있었던 은둔의 나라에 볼
것이 무엇이 있다고 그 나라를 방문하겠느냐라는 말로 그 권고를 일축했다는
일화는 나의 뇌리에 남아 있는 슬픈 이야기다. 말하자만 우리나라 역사의 과거
천년간은 실패의 역사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서양사를 논할 때 흔히 4세기 부터 14세기까지의 천년을 중세의 암흑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15세기를 르네상스, 16세기를 종교개혁, 17세기를 과학혁명,
18세기를 계몽주의, 19세기를 역사주의, 그리고 20세기를 과학기술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바터필드의 명저인 <근대과학의 기원>이라는 저서 첫 부분에서 17세기의
과학혁명은 유럽사상 기독교의 출현 이래 그 어떤 사건보다 가장 큰
사건이었으며 그 의미 또한 중차대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유럽의 역사를 구분하는 종교개혁이나 르네상스 등은 과학혁명에 비하면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물론 견해에 따라서는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소위 뉴턴의 고전역학의 패러다임 즉 결정론적
인과율에 그 기반을 둔 오늘의 기술문명을 생각하면 버터필드의 주장에 우리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Ⅱ.
 과거 천년간의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 17세기의
과학혁명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까닭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과학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소위 중세기의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천년의 종교적 굴레로부터 비로소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뉴턴의 생존시에 런던의 거리에 성행하였던 어린이들의
노래가 '하나님이 뉴턴 있어라 하시며 세상에 빛이 있었다'라는 가사로
시작되었겠는가? 뉴턴보다 46년 늦게 태어난 포프 Alexander
Pope(1688-1744)라는 시인이 뉴턴의 서거에 즈음하여 지은 추모시의 첫 소절이
바로 이 어린이들의 동요를 그대로 인용한데서 이와같은 사실은 널리 알려졌던
것이다.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사람이 죽은 다음의 세계를
상징화하려고 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아무리 짧게 계산하더라도 10만년은
되리라고 생각되는 그 옛날에 사람의 조상인 네안더타르 사람들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데 여러가지 재물과 같이 동쪽에서 서쪽을 향한 앉은
자세로 매장을 하였다던가. 때로는 여러 종류의 꽃으로 침상을 만들어 그 위에
죽은 사람은 눕혀서 매장을 한 사실이 밝혀진데서는 우리는 죽음과 사후의
세계를 이미 선사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그리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즉 인류의 삶을 지탱해온 하나의 장르는 분명히 인간의 종교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종교가 제도화하면서 그리고 제도화된 종교가 일부 소수의
권력층에 귀속됨으로써 소위 서구 역사에서 중세기의 암흑시대는 유래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따라서 15세기의 르네상스는 바로 인간성의 회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를 문예복고文藝復古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사람의 본래의
모습을 찾자는 데 있었다고 보아서 대과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기에 바로
그 다음 세기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종교의 굴레에서 다시 한번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17세기의 과학혁명에 의해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17세기의 과학혁명은 중세기의 인간해방운동의 완성이었다고
해석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17세기의 과학혁명은 바로 중력重力이라는 중심개념의 출발에서 비롯된다.
뉴턴의 세계는 질점質點, Mass-point의 운동계運動系였다. 그리고 운동의 변화는
힘에 의해서 생긴다는 사실에 뉴턴은 주목하였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어떤 물체고 그 물체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뉴턴은 간파한 것이다.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과와 땅 사이의 관계나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달과 지구와의 관계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물체간에 작용하고 있는 인력引力이었다. 즉 물체간에 발생하는 운동은 바로
물체간에 작용하고 있는 인력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그리고 운동은 힘에 의해서 생기며 이 운동의 원인인 힘을 올바르게 수학적으로
정식화定式化시킬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뉴턴이었고 그 정식화된 방정식이 바로
뉴턴의 운동방정식이었다. 이 뉴턴의 운동방정식에 따라 사과의 낙하운동이나
천체의 궤도운동이나 또는 그와같은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달의 영양으로
발생되는 바다의 간만조현상등이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일식과
월식 그리고 한 달을 주기로 달의 모양이 변하는 현상까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만유인력과 그에 따르는 운동방정식이 수학적으로 정립된 이후의
영국사회는 완전히 일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매사에 간섭하던 하나님의
힘은 뉴턴의 운동방정식과 만유인력의 정식화를 통해서 기계적인 힘으로
탈바꿈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시계를 만들 때까지만 필요한 존재요, 그
이후에는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소위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확립되기에 이른다.
 17세기의 영국에서 개화되었던 과학혁명이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그 무대가
영국이 아닌 대륙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18세기를 계몽주의의 시대 또는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계몽주의하면
우리는 불란서의 백과전서파를 연상하게 되고 산업혁명이라면 영국의
방적紡績산업을 연상케 된다.
 18세기를 통해서 인간의 사고구조에 또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진보Progress라는 개념이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보라는 개념이 18세기에 들어서서 비로소 정착되었다는 점은 매우
놀랄만한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의 사고구조에 있어서 진보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지만 불과 2백 내지 3백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세계는 어제와 오늘이 다를 바가 없었다. 환갑을 지난 노인이 지나온 60평생의
삶을 회고해볼 때 나아진 것이라곤 별로 실감할 수가 없었고 머리에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겪은 쓰라린 경험 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속에 그리운 곳과 때가 있다면 그것은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였고 요순시대였다. 그런데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어제와
오늘이 달라졌다. 어제보다 오늘이 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것을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긴 개념이 진보였다.
 그러나 뉴턴의 고전역학이 바로 진보라는 개념을 사람의 사고구조에 안에
정착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것은 아니었다. 물론 뉴턴의
패러다임이 천문학에서 거둔 성공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뉴턴의 천재적인
두뇌에서 창출된 만유인력과 운동의 법칙이 모든 학문분야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이나 지질학 그리고 채광採鑛이나 방적에 뉴턴의 수학적
공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구조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그의 피러다임이 그후 잠자고 있었던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제이콥 브로노프스키Jacob Brinowski는 그의 유명한 저서 <인간
등정登頂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에서 영국의 산업혁명은 그것만의 고립된
혁명은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삼각혁명三角革命의 하나며 다른
둘은 1775년에 시작된 미국혁명과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혁명이었다-하나의
산업혁명과 두개의 정치혁명을 한 꾸러미에 집어넣으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혁명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산업혁명은 그와같은
사회변동을 영국적 방법으로 표현한데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영국혁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그는 기술하고 있다.
 여하튼 영국의 산업혁명은 17세기의 과학혁명의 주인공인 뉴턴이 노년기에
접어들고 있을 때, 다시 말해서 그의 왕성한 학문에 대한 정열이 시들어 가고
있을 때 당시의 정치 문화 및 모든 학문의 중심지였던 번화한 런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소위
말해서 '쟁이'들에 의해서 영국의 산업혁명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영국의전
국토의 운하망을 설계한 사람은 일자무식꾼인 제임스 브린들리James
Brindler(1716~1772)였고, 철학자 신학자 그리고 화학자로 불리는 조세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1733~1804)를 위시해서 제철업자이며 187년에 최초로
철선鐵船을 건조한 존 윌킨손John Wilkinson(1728~1808), 요업과 제련업製鍊業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죠시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1736~1819) 등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웅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업혁명은 어느 의미에서는 동력혁명動力革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력은
이런 뜻에서 새로운 인류의 우상으로 등장한다. 한 가문에서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명문가의 자손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미국의 지성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헨리 아담스Henry B. Adams(1838~1918)가 60세 가까운 나이에
새삼 구라파를 여행하면서 구라파의 성당문화聖堂文化를 성모 마리아 즉 생명의
원천인 다산성의 여신에 대한 흠모의 발로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는
1900년에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에서 느꼈던
도덕적인 힘을 미국사람들은 바로 다이나모Dynamo 즉 발전기에서 느끼고
있다고 간파한 것은 20세기의 기술문명이 바로 에너지의 문명으로 귀착된다는
사실과도 연관되어 주목된다. 어떻든 1824년에 프랑스의 엔지니어였던
카르노Nicolas L. S. Carnot(1796~1832)가 증기기관을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
<열원동력 및 이를 이용한 원동기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열역학熱力學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열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자연과학자나 공학자가 아니더라도 널리 일반인에게 알려져 잇는
'엔트로피entropy'의 법칙이라고 불리고 있는 열역학 제2법칙의 기초를 닦아 놓은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세기에 진입하기 이전에 소위 뉴턴의 패러다임으로 불리는 결정론적
인과율과 18세기 산업혁명 내지는 계몽주의 사상으로 배태된 진보의 개념이
결합됨으로써 근대성Modernity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Ⅲ.
 1980년대 출판된 라는 리프킨Jeremy Rifkin의
저서는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판되어 많이 읽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책에서 리프킨은 소위 기계적인 세계관으로 세 명의 건축사의 합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 명은 베이컨Fransis Bacon(1561~1626), 데카르트Rene
Decarte(1596~1650) 그리고 뉴턴Isaac Newton(1642~1727)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베이컨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호머의 업적을 가리켜 '논쟁을 일삼는
지식'일 뿐이라고 일축해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때까지 그리스 사람들이
추구했었던 형이상학적인 '왜'에 대한 물음 대신에 사물의 '어떻게'를 밝히는 것이
학문의 길이라고 베이컨은 믿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탠포드 대학의 해킹Ian
Hacking교수가 엮은 라는 책에서 매릴랜드 대학의
샤피어Dudley Shapere교수는 이와는 정반대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즉
바터필드의 말을 빌려서 같은 데어터를 새로운 사고구조에 딸 전혀 다른 틀로
다시 배열해 보면 그곳에 나타나는 결과는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즉 17세기의 과학혁명의 저변을 흐르고
있는 철학은 놀랍게도 베이컨의 경험주의Baconian empiricism에 융합되어 있는
것이아니라 플라톤의 합리주의Platonic rationalism 에 접목되어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교수인 롤스톤Holmes Rolstone
II박사는 1987년에 발간된 그의 저서<과학과 종교Science and Religion, A
Critical Survey>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즉 뉴턴에 이르기까지
중세기의 철학은 사인설 즉 질료인 Material, 형상인 Formal Cause, 작용인
Efficient Cause, 그리고 목적인 Final Cause 중에서 형상인과 목적인을 사물의
일차적인 설명으로 간주하였고 질료인과 작용인을 이차적인 불충분한 설명으로
간주한 반면에 17세기 과학혁명 이후의 과학은 이 순서를 뒤집어 놓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사물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일차적인 설명을
질료인과 작용인에서 찾았고 제3, 제4의 원인의 추그는 무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롤스톤은 과학혁명을 설명의 혁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요 사회학자인 콜링우드Robin G.
Collingwood(1889~1943)가 그의 명저인 에서 천동설이
지동설로 전환된 소위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을 그때까지의 자연계를 유기체로
간조하는 모든 기존의 이론을 붕괴시켰다고 말한 것은 오늘의 관점에서 되돌아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그야말로 모든 자연현상을 수식화할 수 있다는 확신에 기초를 둔
근대의 특징을 윤평중 교수는 그의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다.
 "모던이라는 말은 기술적으로 앞서있고, 물질적으로 부유하며 사회적.종교적
권위라는 미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상징했다. 모던이라는 형용사는
무엇보다도 인간 이성에 대한 굳은 믿음과 더불어서 삶과 사회가 전반적으로
합리화(이성화)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세계관적
토대로서의 현대성의 이념은 이성적인 인간, 인간의 인식에 표상될 수 있는 실재,
실재를 구성하는 계랑화될 수 잇는 본질적인 법칙, 그리고 그 법칙의 합목적적
진보성에 대한 신념으로 특징지어진다."
 샤피어 교수의 말대로 17세기의 과학혁명이 베이컨의 경험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플라톤의 합리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은 본인의 말대로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라고 평가되지만 이와같은 중장은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거의 상식솨되어 있는 상황에서 현대성의 이념은 어떤 의미에서는
형이상학의 ㅣ완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와같은 견해는 17세기의 과학혁명이 사람을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당시의 인간해방의 환호가 다시 사람들을 또 다른 굴레 즉 과학적
이성이라는 사슬로 묶게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필자가 1960년대 초에 수년간 미국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미국사회에서
공해라든가 환경오염이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현대성이라는 패러다임 아래 꿈꾸고 있었던 인류의 미래는 장미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필자가 최초로 기술문명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를 읽은 것은 1969년
출판된 코올더Nigel Calder 의 <테크노폴리스 Technopolis> 라는 책이었다. 나는
1972년에 이 책의 일본어 역서를 처음 대할 수 있었는데 코올더는 이미 이
저서에서 오늘날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기술문명이 갖다준 가지가지의 과제들을
폭넓게 섭렵하고 있다. 한 장을 할애서 '우리를 우롱하는 컴퓨터' 라는 제목으로
컴퓨터 문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지금 다시 들추어 보아도 신선한 감을
안겨주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군사독재정권하에서 '공해'라는 말 자체가 타부시 되고
있었지만 아마도 훗날 사학자가 인류의 문화사를 정리할 경우에는 1972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UN이 주관한 세계인간환경회의는 하나의 이정표로 기록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기념적인 모임의 텍스트로 작성된 듀보와 워드 공저로 나온
라는 저서 역시 길이 금자탑으로 남을 것이다. 요즘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NGO(Non-Goverment Organization>에 속하는 로마클럽의 제일
보고서 <성장의 한계 The Limits to Growth>이 발표된 해는 1972년이다.
오늘의 환경문제를 다룬 효시적인 지침서라할 것이다. 벌써 4반세기 전의 것이니
상세한 데이터에는 다소의 착오가 있겠지만 바탕에 깔린 철학과 그 방향제시는
지금도 충분히 유효하다. 이 책이 발행되었던 당시의 타임지인지 뉴스위크지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하튼 인류의 역사를 움직인 책이 네권 있다면 첫째가
성경이요 둘째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며 셋째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고
네 번째가 바로 <성장의 한계>가 될 것이라는 이 책에 대한 소개가 나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이와같은 서평은 지금도 과히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세계교회협회WCC의 주최로 1974년 6월말에 루마니아의 수도
부크레슈티에서 개최된 '인간발전을 위한 과학과 기술 Science and Technology
for Human Development'이라는 주제 아래 44개국에서 130명에 달하는 각계의
저명인사들ㅇ이 참여한 국제회의에 참석했었던 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루마니아는 당시 공산정권 하의 동구권이었으며 좀체로 한국인의 참석은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때마침 일본 와세다대학에 교환교수로 동경에 머물고 있었던
필자에게 WCC의 초청장이 의외로 날라와, 와세다대학의 객원교수라는 자격으로
나는 이 유익한 국제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회의에서 많은
저명한 세계적인 학자들과 열흘씩이나 같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을 지금도 매우
뜻깊게 생각하고 있지만 특히 이제는 고인이 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기술사 교수였던 린 화이트 Lynn Townsend White Jr.
(1907~1987)박사 부부의 인자하고 온화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1970년대 초에
미국의 동부에 몰아 닥쳤던 히피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그의 유명한 글
'생태계 위기의 역사적 기원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이라는 논문이 <사이언스> 지에 발표된 것이 1967년 3월이었다. 이 글은 수없이
인용되었고 또 회자되었지만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있는 르네 듀보가 1972년에
발행한 <내재하는 신 A God Within> 이라는 저서에서 화이트 교수가 주장한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자연보존의 생활태도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베네딕트 수도회의 자연경영의 생활태도는 오늘의 기술문명을 평가하는데도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사료된다.
 과거 2~3백년간을 지배해온 소위 '현대성 Modernity'이라는 패러다임의 내용은
이미 언급한대로 결정론적 또는 기계론적 인과율이라고 해석되는 뉴턴의
고전역학과 산업혁명 또는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진본사관의 결합으로 집약되는
바 바로 이 '현대성'의 비극적 결정은 아무래도 1945년 8월 9일의 원자탄의
투하라는 대사건으로 상징될 거이다. 여기서 새삼 원자폭탄이라는 인류역사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는 가공할 새무기의 출현에 대하여 길게 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라는 그 모더니티를
고민하며 자기의 삶으로 직접 저항하다가 급기야는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그 생을
마무리한 헝가리 출신의 아서 케슬러Arthur Kastler(1905~1983)의 <야누스>라는
저서는 현대의 기술문명의 방향을 명쾌하게 제시한 명저로 길이 남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가 이 저서의 첫머리에 '포스트 히로시마Post Hiroshima'라는
영문의 머리 자를 따서 PH라는 새로운 기원을 제안한 것은 인류존망의
위기의식에서 나오는 호읍에 가까운 절규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발간된 해가
1978년이고 보면 러시아 모스크바 태생으로 197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알리아
프리고진 Ilya Pregogine을 연상케 한다. 논리적 환원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ㅈ어서 물리학을 공부한 학도답게 훌로그래피라는 물리현상을 내세워
홀론Holon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일본어 역본은 아예 번역본의 제목
자체를 <홀론혁명>이라고 한 것은 저자의 심증을 충분해 헤아린 결과라고
사료된다. 어떻든 앞에서 지적한 코페르느쿠스의 전환이 유기체라는 개념을
완전히 불식시켰다는 그 유기체의 개념이 다시 부활한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유기체의 철학은 화이트헤드Alferd North Whitehead (1861~1947) 의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에서 비롯된다. 화이트헤드의 거작으로 위명을
떨치고 있는 <과정과 실제Process and Reality>를 독파하는데 몇 교수들과 땀을
뺏던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지금도 그의 용어와 자세한 내용을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때마침 우리나아에서 화이트헤디안으로
평생을 보내신 연세대의 오영환 교수의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이라는
저서가 최근에 발행되어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입게
되었다. 이 저서의 제2장이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으로 되어 있는데 이 장의
'맺는 말'에서 오교수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인간존재의 충분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조화'에 있다.
첫째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조화이며, 둘째는 인간 상호간의 조화이며 셋째는
인간의 지성과 감성 사이의 조화이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의 목표는 바로
이러한 새로운 관점과 세계를 열기 위한 기본도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의 지성과 감성이 각기 별개의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세포의 세계처럼 유기적으로 결합된 관계에 있음을 주장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화이트헤드철학은 일종의 'Eco-Philosophy'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특히 자연과 인간 사이의 조화의 문제에 있다.
또 그것을 생물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생태계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의 공생이 될
것이다. 우리가 미래의 철학을 생각하려고 할 때 그 기초가 될 자연관이나
인간관에 있어 총체적 관점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요구될 것이다. 또한
살아있는 커다란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상호연관성, 상호의존성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유기체론적 철학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요구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IV.
 20세기를 개관할 때 그 전반기와 후반기가 대체적으로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반기를 물질과학의 시대라고 한다면 후반기는 생명과학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905년에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발표되었고 이어서 1912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된다. 그리고 1927년에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원리가
발표된다. 그리고 이미 언급한 1945년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상대성이론과
불확정성원리가 갖는 물리적인 물질세계의 확대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그
새로운 발견이 우리의 사고구조에 주는 영향 또한 매우 크다할 것이다. 그러나
고전역학의 패러다임이 결정론적 인과율이라면 상대성이론이나 불확정성원리가
제공한 패러다임은 통계적 인과율이 그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과율이라는데서 크게 벗어난다고 말할 수 없지만 통계적 인과율에서 부상된
새로운 개념은 우연의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간과해서는 아니될 점은
데카르트 이후 바로 이 순간까지도 끈질기게 우리의 사고구조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이원론의 붕괴이다. 이미 언급한 유기체의 철학도 빠른(????)
이와같은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결국 반이원론적Antidualistic
사고방식이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분야에서 발아된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의
완성이라고까지 표현되는 '현대성'을 창출한 자연과학분야 특히
생명과학분야에서 강도높게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1952년에 왓슨과 크릭에 의해서 DNA의 2중나선구조가 해명된 이후로
지난반세기 가까운 세월에 이룩된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과학적인 성과 이상으로
철학적 내지는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다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1965년에 '산소 및 바이러스 합성에 있어서 유전적 조절에 관한 연구'로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탄 쟈크 모노(1910-1976)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저서에서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의 배열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이제야
일반법칙을 연역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라면서 바로 그
법칙이야말로 '우연'이라는 법칙에 다름아니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과학이란 일체의 내재성을 부인하는 객관적 공준公準에도 그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는 현대사회는
과학이 발견해 준 부富가 힘은 받아들이면서고 과학이 제공한 가장 심오한
메시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메시지란 새롭고도 유일한 지리의
원천을 정의하는 것이며 윤리의 기초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물활론적物活論的
전통으로부터 완전한 절연을 요구하는 일이며 구약舊約을 결정적으로 폐기하는
일이고 신약신약 창조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현대사회는 한편으로는 과학의 덕택으로 얻은 모든 힘을 동원하여 무장하고 모든
부를 향유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  과학에 의해서 그 뿌리부터 흔들려 버린
낡은 가치체제에 따라서 생활하면서 그체계를 가르치고 있다고 현대의 영혼의
질환을 힐책하고 있다.
 모노는 앞으로 밝혀야할 미개혁 분야로서 '생명기원의 문제' 그리고
'유전암호의 기원에 관한 수수께끼', 세번째로 '중추신경계'를 꼽고 있다. 그의
저서가 나온지 30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도 앞으로의 학문의 중심을
뇌과학Brain Science일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의 혜안을 볼 수 있다. 오늘의 컴퓨터 문화도 여기서 출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81년에 '대뇌반구의 기능분화에 관한 연구'로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탄 로져
스페리Roger W. Sperry(1911-현재)는 자기의 전공인 두뇌의 좌반구와 우반구의
절단수술환자를 면밀히 관찰한 임상적 결과를 토대로 <과학과 가치관의
우선순위 Science and Moral Priority >라는 저서를 1983년에 세상에 내놓았다.
인간의 인식과 뇌의 기능과의 관계를 풀이한 그의 새로운 해석은 다음과 같다.
즉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적 2원론이나 동물과 같이 조건반사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행동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의식은 인간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 뇌의 기능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적
경험현상은 뇌의 활동에 의해서 현현顯現되는 성질로 인정되며 따라서 뇌기능에
있어서 인과적 결정요소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1백
40억~ 1백 50억개로 추정되는 엄청난 수의 신경세포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뇌의
기능은 지금까지 생각되어온 바와 같이 중심에 그 어떤 스위치보드가 있어서
그곳으로부터 발신되는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거나 또는 일부 행동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외적인 경험과 자극에 의해서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뇌의 3층 구조와 대뇌의 복잡한 진행과정을 통해서 형성되는 제3의
성질이 출현해서 이 새롭게 나타난 성질이 하나의 인과적인 결정요소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상호연결된 제3의 성질은 지금까지 물질과 정신을
설명해 오던 2원론적인 산물이 아니라 1원론적인 소산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인과율은 그 원인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말하자면
미립자에까지 내려가서 그곳을 기점으로 '상향적으로 확대되는 인과율'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서로 작용하여 유기적인 관련성을 유지하면서 그곳에서 우러나온
제3의 성질을 정점으로 하는 '하향적 인과율'이 지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페리 교수는 이와같은 패러다임을
'전체론적 정신주의 패러다임'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스페리 교수의 '전체론적 정신주의 패러다임'과 거의 같은 견해가 최근
분자생물학 또는 분자유전학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면역학
Immunology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남미 칠레 태생이고 현재 파리이공대학 교수로 있는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1991년 5월호 < Immunology Today >라는 학술잡지에 Second Generation
Immune Networks라는 리뷰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흰쥐를 이용한 생체실험을
통해 소위 항체Antibody의 망상구조의 변형을 측정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최근
진행중인 면역 메카니즘을 밝힌 리뷰논문으로서 논문의 전문요약을 옮겨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최근의 면역학 연구에서 면역계의
망상구조를 통한 연구방향은 그 문제설정이 매우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연구초점을 단순히 면역계의 클로닝Cloning반응응답메커니즘에다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면역계의  초클로닝
효과Supraclonal Property 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질은
면역계의 망상구조의 자연적 이완현상과 기억현상에서 현현되는 효과라는
것이다. 최근에 매우 관심을 끌고 있는 자기면역질환의 획기적 치료방법의
발견에서 비롯된 망상의 면역계의 시간에 따른 역학적 변이와 메다역학적
가소성에 관한 연구는 어떠한 바람을 몰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면역계의 위와같은 연구결과에서 얻어지는 결론은 스페리 교수의 '전체론적
정신주의 패러다임'이다. 비단 뇌조직에서 뿐만이 아니라 생체의 조직 전반에
걸쳐서 통용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이다. 바렐라 교수는 이논문
발표에 앞에서 자기의 스승인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공저로<인식의 나무 :
인식활동의 생물학적 뿌리>라는 저서를 1987년에 출판함으로써 '근본적
구성주의'라는 새로운 철학의 장르를 열어 놓았다.
 이 저서의 '책 머리에'에서 "마투라나와 바렐라가 대표하는 체계생물학에서는
'객관적' 현실이란 없다. 삶의 근본조건만 채운다면 살아 있는 체계Lebens
System 는-따라서 또한 사람은-이미 있는 것들에 그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유롭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곧 주체는 겉으로만 객관적인
자기 현실을 창조하는데 결정적으로 참여한다." 하고 소개하고 있다.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과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점>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카프라는 1996년에  <생명의 그물The Web of
Life> 이라는 저서를 내면서 주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인식의 나무'를
원용하고 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면서 이 저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20세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성의 생존The Survival of Humanity이야말로 우리가
생태학적인 문맹ecological illiteracy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생태학적으로 문맹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생태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능력을
뜻한다.
 필자는 이 카프라의 새 저서를 읽으면서 필자가 1971년 말에 번역 출판한
<인간이란 동물>이라는 책을 머리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1968년에 이미 이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 르네 듀보가 출판한 Animal>이라는 퓰리처 수상작품이다. 이 저서의 마지막 장에서 듀보는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온 과학은 사물의 과학Science of Things 이지만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과학은  인간성의과학 Science of Humanity라고 간파하고 있었다.
 이제 20세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려는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성의 과학'의 추구가 될 것이 틀림없다.


http://osp.ymca.or.kr/mail-archive/essay/msg000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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