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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7/11/11 (09:17) from 92.226.128.235' of 92.226.128.235' Article Number :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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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선생의 신학사상 열어보기


안병무 선생의 신학사상 열어보기
                                       2001년 5월 13일 향린교회
1. 안병무와 역사적 예수                                 황 성규

1996년 1월 첫 주일에 안병무는 그가 창립한 향린 교회에서 설교하였다. '산상에서 만난
새로운 한 분'이 그 설교의 주제였다. 그 설교 끝부분을 적으면 다음과 같다.
"어쩌다 내 일생에 주어진 중심 테마가 '예수만'이라는 것이 되었나 하고 생각하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사상적인 혼란이 왔을 때도, 어떤 현실적인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는 예수만을 찾으리라! 그만 붙잡고 가리라! 이것이 내 일생의 재산입니다.
이것이 나를 저 산 정상에 앉게 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 예수를 따르려면
본격적으로 그를 붙잡고 그 산으로 올라가시오. 그것이 힘들겠지만 당신들은 작년과 다른 새
세계를 볼 것입니다. 피안이 아니라 내가 선 현장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안병무의 행복 또 평생의 재산은 예수만을 추구한 것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안병무는 서울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을 뿐 본격적인 신학수업을 하지 않았는데도
중앙신학교(현 강남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그의 주요 신학적 관심은 역시 '역사적
예수'였다. 이 테마가 안병무를 사로잡았고,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아야겠다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역사적 예수를 알아내겠다'는 일념으로 1956년에 독일 유학 길에 올랐다.
"어떻게 헤서라도 역사적 예수 그 사람을 알아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독일에서 10년 세월을
보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2. 역사적 예수 연구 개요
19세기 역사주의적 예수전 연구를 옛 연구(Old Quest)라 하고 그 특징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가 연속성이 없지만 역사적 예수연구는 방법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등장한 양식비평(Formgeschichte)에 의해서 역사적 예수 연구는 사실상
불가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이 연구는 역사적 예수를 찾아 공관서를 연구하였지만 그
연구가 도달한 삶의 자리는 역사적 예수의 삶의 자리가 아니라 초대교회의 삶의 자리였다.
공관서의 예수는 초대교회의 삶과 예배와 신앙을 반영한 분이며, 역사적으로 사신 그대로의
예수상이 아니라 선포된 그리스도 즉 케리그마적 그리스도(Kerygmatic Christ)라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이 케리그마적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사이의
연속성이 없으며 역사적 연구는 불가능하다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역사적 예수
연구가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를 무연구(No Quest)시대라 한다.
양식비평학을 주도한 불트만(R. Bultmannn)은 1926년에 쓴 {예수전}에서 "역사의 예수의
인격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바는 없다"고 함으로써 역사의 예수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 신약학계의 거장 불트만의 영향력은 컸다.
결국 역사의 예수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은 적어도 독일 학계에서는 한
세대를 뚫고 위력을 유지하였다. 1953년 그의 제자 케제만(E. Kaesemann)이 '역사적 예수의
새로운 연구'를 주제로 강연한 것을 계기로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을 긍정적으로 연구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 연구를 역사적 예수의 새 연구(New
Quest)라고 하는데 이는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 그린 역사의 예수에로의 회귀는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불트만이 제기한 저 불가지론을 완전 극복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러한 학문적 풍토에서 역사의 예수를 알아내려고 독일에 간 안병무의 역사적 예수 추구가
학문적으로 매우 어려웠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안병무는 불트만의 신학방법론을 '거의 정확하게 배웠고, 그의 실존주의까지 포함해서 그의
사고의 배후까지도, 그의 모든 것을 마스터했다고 생각한다'고 할 만큼 불트만의 사상에
정통했다. 안병무는 불트만의 역사적 예수에 관한 책이나 논문을 빼놓지 않고 다 탐독했다.
물론 불트만의 방대한 학문에 압도를 당했다고 술회를 한다. 특히 불트만의 공관서 해석
방법론과 그의 실존론적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한 예로, 불트만에게서 신학은
인간학인데 이것이 안병무에게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의 글 여기 저기에서
읽을 수 있다. 불트만에 의하면 신학은 인간학이다.  불트만은 "신에 관한 명제는 모두
동시에 인간에 관한 것이고 인간에 관한 것은 모두 신에 관한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안병무는 바로 이 이론을 그의 민중 이해에 적용한다. '민중을 모르면 예수를 모르고 예수를
모르면 민중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모르면 사람을 모르고 사람을 모르면 하느님을
모른다"는 불트만의 신학 사고를 수용한다. 안병무의 최근의 저서 {공관서의 주제}는 그
출판 연도(1996)에 비해서 그 내용은 오래 전의 것이며, 오늘의 그의 신학 노작의 열매를
맺게 하는 데 기여한 신학의 기초를 반영하는 것이며, 불트만의 성서해석 방법론을
소화해낸, 그리고 신약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주요 저서라 할 것이다.
안 선생은 불트만을 비롯해서 서구신학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안병무가 불트만의
학문이 방대하고 깊어서 학문적으로 도전을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서구신학의
관념론적 그리고 주객도식(主客圖式)의 신학을 비판하고 이에 도전하였으며 특히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한 한 불트만에게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었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안병무의
선언은 "역사적 예수를 모르겠다는 결론밖에는 못 가지고 왔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서구
신학적 방법론으로는 역사적 예수를 모르겠다는 결론일 뿐이지 역사적 예수 추구를 단념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현재 북미에서는 예수 루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를 제 3의 역사적 연구라 한다.
역사적 예수를 전복적 예언자 등 매우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강조하는 경향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R. Funk의 [예수에게 솔직히]나 크로쌍의 [역사적 예수]에서 그려지는 예수의
상이다. 안 선생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하였을까가 매우 궁금한 일이다.

3. '사건의 신학'
안병무는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의 신학'에 대해서 '사건의 신학'을 주장한다. 그리스도론과
관련해서 안병무가 문제삼는 것은 예수를 인격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안병무 역시
이전에는 예수의 인격(persona)에 매료되어 개인으로서 예수를 추구하였다. 그런데 그가
1970년대 한국의 분단현실과 유신군사독재체제의  박해 속에서 예수를 인격으로가 아니라
사건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그의 신학에 전환점이 생겼다.
그는 불트만과 달리 십자가를 정치적 사건으로 봄으로써 역사적 예수 추구룰 계속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상황 특히 정치적 상황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그로
하여금 과감하게 사건으로서 예수를 추구하게 한 것으로 생각한다. 가령 안식일 논쟁에서
예수의 선언(2:27)은 '배고픈 민중의 현장'을 중심에 놓을 때 비로소 예수의 저 위대한
선언의 의미가 제대로 밝혀진다는 것이다. "서구 신학자들처럼 민중의 배고픈 현장을 쑥
빼버리고 예수의 말만을 중시하는 것과 사건을 먼저 중심에 두는 나의 방법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신학이 '사건의 신학'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에게서 '예수 사건은 결코 2000년 전에 일회적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고 지금도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역사 전반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마가복음 1장 14-15절에 대한 해석이다. 안병무는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14a)에 예수가 갈릴리로 간 상황을 주목한다. 예수가 갈릴리로 간 것은 갈릴리에서의
예수의 삶과 사명을 성격화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예수가 갈릴리로 간 것은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라고 본다.
이러한 예수의 삶을 전승한 주체는 기독교 공동체보다는 예수 사건의 목격자들인
민중들이다. 안병무는 "예수사건의 전승모체"라는 논문에서 케리그마를 전승한 기독교
공동체 전승과 예수 사건을 목격한 민중 전승을 상정한다. 그는 교회가 공식화한 케리그마는
제도화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 수는 있으나 사실과 다르고 예수의 민중의 감정과 크게
유리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케리그마 신학이 예수 사건의 역사성을 제쳐놓고 신학적 의미
추구에 치중한다면, 민중에 의한 예수전승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
전승은 유언비어 형태를 빌렸다고 본다.
이러한 예수전승 담지자가 민중이었고 그들이 전승한 "예수의 수난사 전승 속에는 바로
자기들 자신의 실존적인 상황이 반영되었다"고 함으로써 안병무는 예수의 수난의 삶과
민중이 처한 상황의 유사성에서 민중은 위로를 받았으며 예수의 전승은 이야기 형식으로
전승 된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예수 사건의 민중전승자들은 예수 사건의
목격자였지만 정치적 상황과 제도적 교회의 위치에 있어서 그 사실을 공적으로 전승할 수
없었던 민증들이었다.

4.예수는 민중이다
"예수와 민중"이라는 논문에서 안병무는 예수가 교제한 무명의 오클로스로서, 병자들 세리와
창기 및 죄인들, 가난한 자들 그리고  여인들을 주목한다. 그들은 체제와 기득권자들에
의해서 철저히 소외당한 자들이다. 예수는 그들의 친구다.
전통적인 그리스로론은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예수의 역할 곧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메시아로서 일관하지만, 민중의 예수전승에서는  예수의 역할(기적)이  오클로스의 청원에
응답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병자들,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 그리고
여인들의 장에서 그들과 더불어 그들의 소리를 하나님께 대변하는 이가 예수이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 편에서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고난 당하는 민중) 편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다. 그 예수는 민중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있다. 그는
민중을 위해서 존재한다(막 2:17).
그러면 예수와 민중은 어떤 관계인가? 안병무에게는 예수가 곧 민중이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 성서적 전거는 요한복음 1장 29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이다. .
여기서 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독일 학자 몰트만(J. Moltmann)의 반론은 속죄의 양으로서
그리스도와 민중을 동일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몰트만은 안병무 로부터 타당한
답을 얻고자 했고 안 선생도 그럴 계획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병무의
답의 일단을 추론하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종교적인 영역에만 국한시켜 해석하는 고정 관념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예수를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사건으로서 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유념할 일이다.
우리는 안병무가 그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을 인내를 갖고 따라가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에게서 민중의 고난은 개인의(Individual)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Collective) 것이다. 한
사람이 당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집단이 당할 고난을 그가 대신해서 당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한국 땅에서 고난 당하는 사람을 향해서 말하는
것이 왜 안 되느냐고 항변한다. '세상 죄를 지고 간다'는 말은 종교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말 그대로 세상 죄이다.  세상의 모순된 구조에서 오는 고통을 우리 모두가 다
받아야 할 터인데, 그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민중들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1970년 이후 전태일 사건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고난과 죽음을 개인의 것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안병무의 사건의 신학을 접한다. 전태일
사건은 서재의 안병무를 현장으로 끌어 낸 결정적인 사건이다. 그에게 전태일이 자기 고통의
문제를 자기 개인에게 한정하지 않고 노동자 전체의 문제로 승화시킨 데에 민중적 메시아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안병무는 전태일이 메시아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전태일에게서
이렇게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와 민중의 등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가 자주 인용하는 성구는 히브리서 13장
12-13절이다. "주님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니 우리도 성문 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읍시다." 여기서 성문 밖이란 소외당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인데 바로 거기서 그리스도 사건이 일어나고 있고 현재의 그리스도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수난 현장이 바로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이렇게 예수는 고난의
현장 속에 현존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다른 성서적 전거는 마태복음의 최후의 심판
비유이다(2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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