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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8/01/03 (22:17) from 85.176.233.244' of 85.176.233.244' Article Number :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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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미 광야시험 기로에 있다









 
김경재 교수 “한국교회, 이미 광야시험 기로에 있다”
신년 인터뷰(2) “양적 성장은 이제 그만...정돈할 기간 가져야”
 




















▲한국 교회가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내실화를 기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김경재 교수 ⓒ고준호 기자



 

본지는 한 해를 시작하며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길자연 목사(왕성교회)에 이어, 두 번째 순서로 김경재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와의 신년 대담을 가졌다. 김경재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교회가 성장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교회의 거룩성 회복을 위해 치열하게 갱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평양 대부흥 운동과 같은 대형 회개 집회가 대중적인 자기 과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장로 대통령이 당선된 시점에서 타 종교권의 오해를 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17대 대선에서 장로 대통령이 선출됐다. 앞으로 한국 기독교계의 책임도 크다고 느껴지는데 장로 대통령이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올바르게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기독교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0년된 정권이 교체되고,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이명박 정권을 택한 이유는 바로 경제문제 때문이다. 그 1등 공신으로 소위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가 손꼽히고 있다. 기독교가 할 일은 경제 문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하나의 생명 공동체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지 않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생명 공동체를 말한다. 사회 복지와 더불어 소외자와 함께 하는 인간 공동체를 실현해야 한다. 교회는 경제 성장 3,4만불 시대를 노골적으로 외치는 이 시대에 오히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사회는 ‘잘 살아 보자’로 시작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바르게 살자’이다. 이 문제를 교회가 해결해야 한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실용주의에 들떠 있다. 경제 성장이 모든 가치를 우선한다는 성장 제일주의가 보수 기독교가 추구한 ‘교회 성장론적’ 사고방식과 코드가 맞다는 것에 위기가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는 한 쪽은 ‘기독교 대통령’, 한 쪽은 ‘천덕꾸러기 기독교’라는 극과 극의 위치에 서 버렸다. 이번 대선으로 인해 가장 긴장하고 주목하고 있는 쪽이 불교계 지성인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웃 종교에 대해 조금만 부주의해도 큰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 실질적으로 가장 골치 아픈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아닐까 염려된다.  한국교회는 이제 겨우 자기 반성을 위한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보수 기독교계가 지지한 당선자가 생겨나 버렸다. 한국 기독교의 70%를 장악하는 보수 기독교계가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일이 옳다는 식으로 변질될까봐 우려된다. 교회의 거룩성 회복을 당부하는 시대적 요청을 망각하고, 자기 성취나 도취에 빠져버리진 않을지 걱정된다.”



-2007년은 평양대부흥 1백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그러나 대부흥을 기대한 한국교회는 오히려 아프간 사태 등의 사건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야 했다. 진정한 부흥은 어떻게 이뤄진다고 보는가.



“우리는 예수의 3가지 광야 시험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이 시험에 들어간 한국 기독교는 ‘실패하고 낙제하느냐’, ‘합격 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시험의 도입부를 보면 예수께서 광야의 시험을 받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라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이다. 뭔가 의미있는 대의 명분을 가진 일을 시작할 시점에 기독교에게도 그 유혹이 올 수 있다.



세 가지의 시험을 오늘날에 적용하면, 경제제일주의, 정치 권력과의 야합, 종교의 대중적 자기 과시의 유혹으로 볼 수 있다. 종교 지도자들이 큰 일을 도모할 때 결정적인 유혹이 온다는 것이다.



작년에 평양 대부흥 운동에 수고하신 분들은 나 역시도 존경하는 분들이셨다. 특히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가 없었다면 마음이 더욱 아팠을 것 같다. 대중이 요청하는 사탕 발림의 복음을 전해서 겉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현실 교회는 역사에 유례가 없을만큼 모독을 받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였다. 그날 우리는 10만명이 모여 일사불란하게 회개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이런 운동에 빛이 있고 그림자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회개가 자기 과시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일반 교회들도 새벽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한다고 현수막에 내 거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골방에 들어간 회개 기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의 신앙 양심이 저급화되고 세속화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리어 이 세상에 속했지만, 속하지 않은 것 같은 신앙인의 향기와 숭고함을 우러나올 수 있는 인물을 많이 내야 한다.



길선주 목사님은 물론이고, 장기려 박사님, 김용기 장로님 같은 훌륭한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들은 모였다하면 세를 과시하는 대형집회를 연다. 이런 집회를 일반 사람들이 봤을 때 개신교의 힘을 무시하진 않지만, 존경하지도 않는다. 그 안에 경건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제 교회 개혁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실추됐던 교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들이 제시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해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초기 기독교는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민족들은 ‘야소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존경했다. 지금은 전체 인구의 24%를 차지하지만 ‘한국교회에 (민족의)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장과 양의 문제로 본질을 착각해서는 안된다.



한국 개신교는 지난 30년동안 양적 성장을 해 왔다. 지금은 자기 정돈의 기간이며 내실화할 때이다. 향후 5년은 이 일에만 전심전력을 해야 한다. 먼저는 겸손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너무나 오만 방자해있다. 한국 사회를 한국 교회가 좌지우지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개신교 인구 850만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타 종교인이다. 기독교가 안하무인이라는 사회적 지탄에는 자기 분수를 알라는 시대적 요청도 포함돼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위대한 자는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할 것을 요구한다. 향후 5년, 10년은 철저한 교회의 정화, 정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소위 말하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각 교단 총회장 선출 과정에 수억에 달하는 선거 경비가 든다는 말을 듣고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관례로 생각한다면 교회가 대사회 앞에 서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진다.



중세 시대보다 교회가 더 타락한 모습이다. 평신도 지도자나 신학자나 할 것없이 명예심, 금권욕으로 썩어 문들어진 문둥병 환자같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축복이다, 은혜라고 말하며 세계와 한국 복음화를 말한다면 자기 진실을 은폐하고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집안을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년 아프간 피랍 사태로 인해 한국 교회의 선교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어왔다. SBS방송의 모 프로그램에서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노방 전도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선교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학원 선교나 아프간 사태,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선교 방식의 문제도 결국은 하나로 통하는 이야기다. 구원을 체험한 순수한 감격과 감사의 열정으로 하는 선교는 지속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방법론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너무나 구태 의연해 있다. 특히 공공 교통 수단에서 전도가 이뤄진다면,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기본 윤리도 지키지도 않으면서 무슨 종교인가’하는 핀잔을 살 수밖에 없다.



17세기부터 구 기독교 국가들은 제3세계에 대한 식민지 정책을 펼쳤다. 당시 선교사들은 복음만 전한다는 취지로 해외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을 태운 배는 대포로 무장한 군함이였다. 정치, 경제적인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기독교가 전파된 국가들은 지금은 전부 기독교를 배척하고 있다. 정복적이고 공격적인 기독교 포교나 신앙인의 자세라면 신뢰할 수 없다는 그들의 항변이다.



타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 신학에 이미 40년은 뒤떨어져 있다. 선교를 함에 있어, 타 종교도 그 시대의 언어와 종교로서 인간다운 삶의 길을 가르친 하나의 종교로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시각으로 바꾸는 데에만도 한국교회는 최소한 10년은 몸부림쳐야 할 것이다.



선교 신학의 정립 자체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신으로 선교를 해선 안된다. 십자가를 지신 이의 마음, 못 박하신 그 마음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지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철저한 섬김이였다. 자연스럽게 전파되어야 한다.”



▲김경재 교수는 향후 10년간 철저한 교회 정화와 정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고준호 기자
- 최근 대광고에 소송을 제기한 강의석군이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에서 승소했다. 이로 인해 학원
선교가 위축될 염려가 있다. 또 한편에서는 한국교회가 선교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강 군의 이야기는 이미 대법원의 판결까지도 나왔지만 미션 스쿨에서 예배를 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의무적인 채플에 대해 전국의 대학에도 그런 반발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이 시대에 맞게. 제대로 된 채플 교육을 한다면 (그들도) 반대하지 않는다. 채플을 기독교 교리를 강요하거나 선교 활동의 장으로 보는 시각이 철저하게 혁신돼야 한다.



학원 선교의 방법론이 다양화되고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중,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때도 자신이 학교를 선택할 수가 없다. 경건한 교회 장로의 아들, 딸이 불교 사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의무적으로 법당에 들어가 예불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다. 학교의 예배 방식을 다양한 문화적 형식으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한신대학교도 1학기에 10주동안 예배를 드리는 데 음악예배, 연극예배를 도입하거나 저명한 기독교인 과학자를 초청해 특강을 열기도 한다. 학생들도 참석해보면, 신앙 양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줄 알고 안심한다. 그것마저도 참석하기 싫다고 하는 학생들은 교목실에 신청을 하면, 기독교 저서 몇 권을 추천해 준다. 대신에 독후감을 써서 학점을 이수하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운영의 묘를 살린다면 얼마든지 건학 이념과 교목실을 운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먼저는 사학 관계자들의 사고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고, 종교 교육을 하는 지도 교사들이 훨씬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철학, 종교학 박사 학위를 이수한 사람에게만 종교 지도교사를 하도록 허락할 만큼 높은 수준의 실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내에 이슬람들의 활동이 캠퍼스를 주축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슬람의 확산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인 한국교회를 향해 한마디 조언을 해달라.



“종교의 자유가 있고 포교할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슬람의 선교를 교회가 나서서 막을 수는 없다. 전 세계가 이제는 열린 사회이기 때문에, 이웃 종교에 대한 비판이나 정죄, 독선적인 입장은 더 이상 신앙적인 용기로 받아주질 않는다. 오히려 평신도들이 이 문제를 고민하고 전문 직업인인 목사나 신학자들이 분개하고 비판하는 게 현실이다.



이웃 종교와의 대화는 전도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고, 종교 혼합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대화를 통해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정체성은 더욱 명료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한 협조와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 교회의 양적, 질적인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인터넷 상에는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과 기독교의 교리 자체를 혐오하는 안티 기독교들의 활동이 거세지고 있다. 원인은 무엇이며 한국 교회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교회는 세상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공동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에는 기독교가 보이질 않는다. 종교의 왕국에 갇힌 모습이다. 성도가 5만, 10만에 이르는 대형 교회일수록 그것이 작은 세상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교회는 작은 기업체화 되어 버렸다. 일반 기업들처럼 끊임없는 성장과 발전에만 전심전력한다. 교회는 더 높은 차원을 보고 더 높은 가치관을 제시해야 되는 곳인데도 말이다.



지식인들의 교회 비판은 ‘교회가 무슨 거룩한 신앙 공동체냐’ 하는 것이다. 지식인계층을 접해보면 교회를 향한 실망의 정도가 아주 심하다. 교회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성격인 단일성, 보편성, 우주성, 사도성을 현 개신교에선 찾아볼 수 없다는 절망의 표현이 많았다.



즉, 더이상 기독교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종교적인 신앙의 공동체로서 신성함과 자기 절제, 차원이 다른 영성을 기대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종교’라는 이름만 붙인 무한경쟁과 권력 투쟁, 명예욕의 전장이라는 실망이였다.



포괄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더 가차없는 비판이 있었으면 한다. 더 큰 하나님의 매를 맞기 전에 말이다. 비판도 기독교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개화기 이후에 한국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기독교와 한국의 역사는 운명을 같이 해왔고, 기독교가 망하면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나 역사도 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거듭나기 위해 지성인들의 목소리는 겸허히 듣고 자기 성찰로 돌아와야 한다.



아직도 나는 희망주의자다. 바른 목회 운동이나 타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는 아래로부터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 바알에 무릎 꿇지 않는 7000인이 어딘가에는 있을 줄로 안다. 교계의 중앙 지도급 인사들부터 이 시대의 교회 사명을 냉철하게 직시하길 바란다.”



-한국 교회안에 신학 강단과 교단 목회의 현장과의 괴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신학과 목회 현장의 상생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나도 신학계에 40년을 몸담고 있지만 너무 교계 따로, 신학 따로이다. 교계에 몸 담고 있으면 그것만 이끌기에도 벅차해 하는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 아직도 교계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자기 교단, 자기 전공 분야 속에 갇혀 ‘이건 손 못댄다’는 소위, 철밥통 지키는 격으로 앉아 있다.



신학도 너무나 전문화되고 분과화 되어 버렸다. 그들은 한 분야만을 가지고 논문을 쓰고, 신학 전체가 교회를 활성화 하도록 봉사해야 하는 비전 제시에는 도통 무관심하다. 교계는 우리 영역밖의 문제라는 식이다.



정치계만 봐도, 국회의원들이 국정을 이끄는 제1선에서 영향력을 끼치도록,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하고 연구하며 정책을 개발하는 지식인 집단이 있다. 그렇듯 선순환구조로 신학과 교계가 가동되어야 한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교회나 목회자의 정치 참여 문제가 새롭게 거론됐다. 과거에 진보 기독교계도 정치권과의 긴밀한 관계안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향후 5년동안 한국 교회는 세상 정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가.



“지난 10년동안 진보 기독교인들이 정치권에 협조한 일은 옳지 않다고 본다. 정권을 세울 당시에, 최선을 다해서 도왔다면, 그 다음에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왔어야 한다. 백번 양보한다면 두 가지 변명이 있을 수는 있다. 하나는 군부 독재 시절에 민중의 한을 이야기 할 만한 창구가 교회말고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현실 정치에 참여해서 사회를 개혁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공범자로 심판을 받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공과 사를 본받아서라도, 성직자가 정치 권력에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고 본다. 정치 참여가 아니라 성서적인 예언자적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는 보수 기독교계와 현 정부의 코드가 너무 가깝기 때문에 정치적인 밀월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 시대에 교회가 꼭 들어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태복음 6장 33절을 꼽고 싶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뒤에 나온 가르침이다. 요새 말로 말하면 이 세상의 물질적인 필요와 재화들이다. 먼저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이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하셨다. 먼저는 하나님 말씀이라는 성경 본연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할 때다.”

 

김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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