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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8/11/02 (22:09) from 115.138.4.14' of 115.138.4.14' Article Number :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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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근본실재를 어떻게 사유할까


계량 가능하지 않은 것도 탐구의 대상

[교수신문 공동] 철학은 근본실재를 어떻게 사유할까

2008년 09월 16일(화)

사이언스타임즈는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를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학술 전문 주간지 <교수신문>(www.kyosu.net)과의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 데 목적이 있다. 그 다섯 번째로 자연의 '근본실재'에 대한 물리학과 형이상학의 관점을 각각 살펴본다. [편집자 註]



▲ 고인석 인하대학교 교수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 김성원 교수님,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일에서 철학자들은 경험가능성이라는 테두리에조차 얽매이려 하지 않습니다.”

물리학자는 오늘 그것을 측정할 수 없다면 장차 어떻게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것인지 궁리할 것이고, 또 만일 어떤 이론에 상응하는 측정이 원칙적으로 도무지 어려울 것 같은 상황이라면 그것과 연관된 다른 이론들의 경험적 입증과 이 이론들 상호간의 정합성 등을 통해 일단의 간접적 증거를 확보하려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제기될 만한 물음 하나는 존재를 대하는 물리학자들의 이런 태도가 학문의 분야와 무관하게 당연한 것,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음에 섣불리 답하기 전에 먼저 문제를 조금 더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물리학자들의 이런 태도’를 ‘(직접이든 간접이든 도무지) 경험과 결부시킬 수 없는 것은 존재의 지평에서 다룰 수 없다’는 입장과 ‘재서 수량화할 수 없는 것은 존재의 지평에서 다룰 수 없다’는 입장으로 갈라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 두 경우에 대한 대답은 공통적으로 ‘아니오’이지만, 두 ‘아니오’의 폭과 깊이는 다릅니다.

먼저, 경험가능한 것만을 존재의 범주에 수용하려는 태도는 모든 개별과학에 공통된 요소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진술하는 것은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어리석음의 사례이겠기 때문입니다.



단, 여기서 우리는 과학의 분야들이 저마다 고유한 경험의 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미시적 수준’의 높이 역시 분야마다 다르다는 점 역시 기억될 필요가 있습니다. 대상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잘게 잘라 그 미시적 부분들을 탐구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오늘날 대부분의 자연과학 분야들에 널리 퍼져 있지만, 자연을 잘 이해하려면 어디까지 잘라서 어떻게 들여다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관해서는 분야마다 상이한 감각을 발휘하고 있지요. 원자나 소립자는 분명 ‘자연의 근본 실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매력적인 대답이지만, 그것은 자연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쪼개어 가장 미시적인 수준의 질료에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원자론자들의 생각과 삼라만상의 본질은 그 생성과 변화를 다스리는 수학적 조화에서 파악되리라는 피타고라스적 아이디어를 묶어 계승한 물리학의 관점이 낳은 대답입니다.

한편, 계량가능한 것만이 의미 있는 탐구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의 입지는 당연히 더 좁습니다. (여기서 ‘계량가능하다’는 말은 ‘(그것의) 객관적인 크기를 적절한 단위와 더불어 나타낼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인간의 정신현상이나 사회적 현상과 결부된 개념들의 경우 그런 계량화가 쉽지 않을 것은 빤하지만, 생명현상을 서술하고 설명하는 많은 술어들 역시 계량화와는 그리 친숙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진화생물학의 기본 개념인 적응도(fitness)는 어감상 계량화 가능할 것 같지만 특정한 상황과 진화의 과정을 떠난 ‘X의 적응도’ 같은 것이 수치화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뿐인가요, 물리학과 아주 가까운 화학도 18세기까지는 정량적 과학이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제 철학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철학자는 자연의 근본 존재라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까? 저한테 철학이 지닌 특징 한 가지를 들라 하면 저는 철학이 ‘철학 특유의 대전제’나 ‘모든 철학자들이 공유(해야)하는 시선’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철학자들은 무전제의 탐구, 어느 방향에도 우선성을 주지 않는 시선을 꿈꿉니다. 물론 그것은 허황된 기획이고, 철학자 자신도 그런 실패의 운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허황되다고 해서, 손에 넣을 수 없는 목표라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일에서 철학자들은 경험가능성이라는 테두리에조차 얽매이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앞에서 경험가능성의 범위를 벗어나는 탐구를 무모한 일로 묘사했었지만 철학자들은 그런 탈경계적 사유를 통해 신, 무한, 존재와 무를 사유와 토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고, 나아가 시간-공간, 인과성, 질-양 같은 개념들 그리고 ‘물리적인 것의 범위는 어떻게 규정되는가?’, ‘우리의 경험은 어떤 경우에 신뢰할만한가?’처럼 과학적 자연 탐구 너머에서 그것의 테두리와 기반을 규정하는 사색을 수행해올 수 있었습니다.

자연 탐구는 과학의 몫입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다음에 형이상학이 와서 그의 체계를 완성하듯 오늘날에도 과학은 그것의 영역을 둘러싼 형이상학의 과감하거나 혹은 무모한 사색을 통해서만 그것의 진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독일 콘스탄츠대학교에서 「대응과 상보성: 과학이론의 변동에서 두 요소의 역할」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과학의 지형도』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과학의 조각보 모델: 통합된 과학의 구상」, 「적응주의 대 반적응주의」, 「레플리컨트 레이철은 레이철이 아니다: 기억의 역사성 테제와 심물수반 논제의 신화」 등이 있다.


고인석 인하대 · 철학


저작권자 2008.09.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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