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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8/12/10 (04:57) from 115.138.6.29' of 115.138.6.29' Article Number :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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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신학이 제안하는 오늘날의 영성


과정신학이 제안하는 오늘날의 영성


- 원제 : 과정 영성과 근원적 전일성
PROCESS SPIRITUALITY AND ORIGINAL WHOLENESS


브루스 에펄리(Bruce G. Epperly) 글
박혁순 옮김

여기에서 필자는 ‘근원적 전일성’(original wholeness)의 원리와 과정영성(process spirituality)과의 연관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비록 필자가 수년간 통합 과정신학과 영성의 분야에 종사해왔으나, 내 자신의 과정영성, 즉 “긍정적 신앙의 능력”(The Power of Affirmative Faith)에 대해 집필하고 싶었다.
필자는 과정영성 형성의 제문제를 ‘본질적 선’(essential goodness)이라는 측면에서 서술하고, 삶의 관계성(the connectedness of life)이라는 제반 상황 가운데서 우리의, 선과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경험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성의 형성은 삶의 본질적인 선으로부터 근거하고 있고, ‘신비한 모험’(the Holy Adventure)이 끊임없고도 도전적으로 현존하고 있음으로 말미암으며, 그것의 창조성과 아름다움은 만물에 계시되어있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적 관계성’이 아픔과 고통과 상심의 원인이라는 점이 사실이지만, 하나님과 주변 세계와 우리가 맺는 본질적 관계성 또한 마찬가지로 전일성과 변화와 아름다움과 치유의 근거인 것이다. 영성의 형성은 인식과 변화의 훈련을 통해서 매일의 일상 속에서 바로 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영성의 형성은 우리의 결혼과 파트너십, 가정, 우정, 직장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참여 가운데서 우리로 하여금 전일성, 아름다움, 사랑의 도구가 되게끔 감화한다.
여기서 나는 간단히 과정영성에 대한 기초적 원리들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과정 형이상학들과 과정신학은 그 유한성과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우주적 통찰을 제공한다. 교회의 어느 영적 지도자가 말한 것 같이, 과정-관계적 신학은 “하나님이란 분은 그 구심점이 어느 곳에도 있지만, 그 원주의 경계선은 어디에도 없는 원(圓)”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역동적이며 인격적인 하나님(“그에게 모든 마음들은 열려있고 모든 바램들은 알려진 바 되어있음”)과 나누는 교제 가운데서 살아가고 움직이며 존재한다. 우리는 언제나 신비한 모험의 현존 속에 거하고 있는데, 그것의 현존은 모든 생각, 감정, 꿈, 기억, 어루만짐 그리고 통찰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이다.
과정 신학은 우주가 모든 수준과 모든 계기 속에서 하나님의 영감과 현존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그것은 아래와 같이 영성의 형성에 대해 독특한 이해를 고취하는 우주적 통찰을 제공한다.

1) 우주는 홀로그램과 같고 관계적이다. 경험의 모든 계기들은, 우주의 자기 창조의 모험을 규정짓고 제한하고 감화하는 우주로부터 발생한다. 실존은 심오할 정도로 관계적이다. 그 부분들은 전체를 반영하고, 전체는 각각의 부분들의 역동적인 심미성과 창조성을 반영한다. 하나님은 가능성, 영감, 그리고 모험의 자궁으로서 심오하도록 관계적이다. 귀기울임을 응답에 통합시키는 신적인 친밀성이야말로 모든 인간적 친밀성과 심미성에 대한 원형이다.

2) 역동적인 모험은 불변의 항구성을 내포한다. 삶이란 모험적이다. 크로노스적 시간의 진화적 흐름 가운데에서 카이로스적 계기들은 우주로 하여금 신적 가능성이 고귀하게 육화될 수 있도록, 창조물 사이에 관계성이 맺어지도록 추진한다. 플라톤이 말했듯이, 과정 사상은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이란 “영원성의 움직이는 이미지”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변화하는 세계는 하나님의 무한한 가능성의 비젼을 반영하고, 어느 것도 잃어버리지 않을, 하나님의 온화한 보살핌 속에 세계의 본향(home)을 발견하게 된다.

3) 인과관계는 인접적(immediate)이면서도 비공간적이다. 우리의 희망, 기도, 꿈 그리고 행동들은 우주를 가로질러 발산된다. 기도, 기공(氣功), 원격 지향, 치유적 심상은 시공간의 직선적이고 인접적인 경험들을 초월하는 특별한 것을 만들어낸다.(Prayer, energy work, distant intentionality, healing imagery make a difference that transcends linear and contiguous experiences of time and space.) 타자를 위한 우리의 깊은 보살핌은, 전일성과 아름다움이라는 숭고한 모체를 창조하는데, 거기에서부터 그들의 매 순간의 경험이 일어나게된다.

4) 신(神)경험을 포함한 우리의 경험은 본질상 처음에는 무의식적이다. 영성의 형성은 의식적인 경험을 창조적 관계성과 신적 영감의 깊은 경험의 차원으로 옮기려 한다. 우주에 대한 각각의 경험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존과 더불어 아름다움 그리고 전일성에 대한 하나님의 목표들을 통한 중재로써, 우리의 신비한 모험에 대한 경험은 처음에는 “말 할 수 없는 깊은 탄식” 가운데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영감은 성서에 대한 묵상, 신학 그리고 신비적 경험을 통해 얻어진 지혜를 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꿈, 직관, 초과학적 경험 그리고 동시발생적인 조우를 통해 우리에게 오게 된다.

5) 창조성과 자유는 경험의 각각의 계기를 특징지운다. 우리는 우리의 자기 창조에 있어서 무능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다. 우리 환경의 소산으로서 우리의 창조성과 자유는 제한적이다. 우리를 발생시킨 우주는 (우리를) 제한하기도 하며 감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계기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가능성으로 잉태되어 있다. 각 계기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신성을 육화하며 우주의 충만함을 포용한다. 빅터 프란클이 말했듯이, 과정사상은 모든 계기가 연유하는 우주를 인간이 바꿀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아름다움, 전일성, 사랑, 그리고 미래의 자기 결정을 촉진시키는 가장 제한적 조건들마저 해석하는데 있어서 자기 창조의 모든 계기 가운데서 우리가 자유롭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대한 예술가로서,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안료로부터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6) 나비효과 - 미세한 변화가 거대한 변화를 낳는다. 각각의 계기에 있어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창조성과 부동성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미미할 수 있으나, 각 계기의 유한적 선택들은 나중에 우리의 삶과 전지구를 변화시킬 수 있다. 자기 창조에 대한 우리의 유한적 계기들은 우리 자신의 특질을 형성하면서도 우주를 가로질러 방사된다. 관계와 자기 이해에 있어서 가장 미미한 변화는 결국에 전일성 그리고 조화를 낳을 수 있다.

7) 우주의 목적은 경험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탐색을 포함한다. 우주는 아름다움과 경이가 가득한 공간이다. 우주의 충만함 안에서 창조란 “선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빛은 존재하는 만물에 퍼진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그리고 아이의 웃음 또한 그러하다. 모든 면에서 만물은 아름다움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담지한다. 우리가 우리의 사상과 활동으로써 이 아름다움을 훼손한다 해도 우리는 삶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말살할 수 없다. 혼돈은 신적 질서를 이길 수 없고 어둠은 빛을 정복할 수 없으며 죽음은 생명을 이겨낼 수 없고 증오는 사랑을 물리칠 수 없다. 풍요로운 삶을 향한 신적 목표는, 전일성 및 전체의 행복과 더불어 부분의 아름다움에 참여하면서 만물에 흘러넘친다.

8) 하나님이란 분은 그 중심이 도처에 있으면서도 그 원주의 경계선은 어디에도 없는 원과 같다. 각각의 계기는 하나님이 그것을 육화함으로써 생성된다. 신비한 모험은 만물들을 통해 일어나고,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그것들을 조성하며, 우주적 모험의 거대한 순례로 참여시키기 위해 그것들을 초청한다. 우리는 언제나 신성한 기반 위에 서있다. 각각의 계기들과 만남들은 일종의 “이콘”(icon)인데 이 창을 통해 우리는 우주의 무수히 다채로운 육화들 속에서 우주의 정신을 간파하게 된다.
아픔, 고난, 죄악 그리고 상심은 실제적이지만 그것들이 궁극적이지는 않다. 영원히 현재적이며 끊임없이 창조하는 ‘중심’(하나님을 말함: 역자주)은, 단지 파멸되고 거절된 것처럼 나타난 것들을 구속(救贖)하고 변화시키는 참신한 대안들을 산출한다.

9)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하나님을 경험한다. 과정신학은 하나님이모든 경험 속으로 들어오며, 또 영성의 형성이라는 훈련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정신학은 기도 응답, 은사의 실현, 직관, 꿈, 방언, 환상 등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과 교통한다는 신비주의적이고 은사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의 통찰을 긍정한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명상적인 철학의 모험이란 비행기의 비행과 같다고 했다. 다시 말해, 구체적 경험이라는 지상에서 출발하여, 형이상학적 일반화의 지평 위로 솟아오르다가, 나중에는 형이상학적 일반화와 구체적인 경험을 통합하여 지상으로 귀환한다는 것이다. 영적 여정도 같은 형식을 취한다. 즉, 종교적 전승들은 신비한 모험과의 신비적, 직관적 그리고 도덕적 조우라는 강렬함으로부터 출현하는데, 그러한 독특한 경험들이 현실 실제의 특징을 조명한다는 확신에 의해 고무되어 신학적 상상과 반성을 이루면서 천상으로 솟아오르고, 경험의 일상적 세계의 측면에서 이런 형이상학적 비젼을 개정하고 해석하게 된다. 종교적·영적 형성은 심오하게도 구체적이고 본래부터 실천적인데, 즉 그것들은 세계를 단지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영성 형성의 훈련은 우리의 신학적 사색에 대해 증거와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실제(reality)에 대한 우리의 비젼과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형성하고 또한 형성된다.
영성의 형성은 모든 상황 가운데서 전일성과 아름다움을 지켜보고, 선택하고, 긍정하려는 탐구 작업에 의해 고무된다. 전일성은 정적인 침전물이 아니라 경험의 모든 계기 속에서 조건 짓고 반영되는 경험과 유산의 영원하고 역동적인 흐름이다. 과정 영성의 형성은 2천년간의 기독교 영성의 형성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로부터 예수와 마리아에게까지 이어져오는 기나긴 영성의 전승을 긍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구체화, 관계, 전일성, 창조성, 자유, 사회적 책임, 그리고 우주적 계시의 긍정이라는 측면에서 영적 형성의 과정을 구성하게 된다. 과정사상을 뒷받침하는 로고스-소피아 신학은 범세계적으로 선언한다 : “진리, 치유, 아름다움, 그리고 전일성 등 무엇이든 현존하며 하나님은 그것의 출처가 되신다.”


과정 영성의 순례

전일성을 향한 하나님의 가진 목표의, 의식적이며 의도적인 구현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대하기 어렵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있다고 느낄 때, 하나님의 경이로운 은혜는, 모든 만남과 경험 가운데 엮이면서, 우리를 변화시킨다. 아래에 소개될 영적 규율들은 전일성의 의식적 경험 보장하지는 않으나, 우리 삶의 각 계기 속에서 하나님의 목표에 우리 자신을 정렬시키는 가능성에 관해 우리를 각성시키고, 모든 만남과 경험 속에서 관계적 우주가 선사하는 것들로 우리를 개방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은혜가 충만하고, 변화에 대해 개방적인 과정 영성의 형성은 모험적인 방식들로 전통적 관습들을 구체화시킨다. 필자가 제안하는 영성 형성의 실제적 면모는 친밀하게 개인적이면서도 각 개인의 영적 여정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변화와 적응에 있어서도 무한히 개방되어있는 것이다.

1) 과정 영성의 형성은 단지 우리의 인생, 관계들로 짜여진 우주, 그리고 하나님의 모험적인 영의, ‘말로 하기에 너무 깊은’ 신비한 탄식에 귀 기울이기 위한 헌신에 근거하고 있다. 인식의 문들이 신적 계시로 개방될 때 삶의 모든 계기들은 하나님의 현현인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모든 경험을 통해 모든 음성과 움직임들을 통해 말해 옴에도 불구하고, 은총의 교향악 내에 모든 소리들을 엮어 짜는 “조용하고 세미한 음성”에, 그리고 잡다한 경험 속에서 하나님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영적 모험 내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요란한 시간들 한 가운데서,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0) 하고 권고하고 있다. 정적 가운데 우리는 창조질서와 우리 자신들을 통해 말을 걸어오는 “말로 할 수 없는 깊은 탄식”으로 우리의 의식을 옮겨오게 된다. 집중적인 귀 기울임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공동체를 향한 보다 넓은 목적들을 보게 될 뿐만 아니라, 한순간 한순간 우리 인생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을 직관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귀기울임”이란 경험과 각 경험 내의 신적 현존의 전체성에 대한 우리의 의도적 수용성을 위한 메타포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의 감각들을 통해 중재되는데, 우리는 그 빛을 보고, 하나님의 어루만짐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하나님의 풍성함의 향내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2) 창조적 귀기울임과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의 현존에 대해 우리가 깨어있는 한편, 우리는 또한 묵상 기도의 적극적 집중 속에서 하나님과 조우한다. 과정 영성은 의향적 집중을 포함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특정해 기도 단어에 집중하고 무의식을 정화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깨어있기 위한 “향심기도”의 부흥은 실제에 대한 과정-관계적 비젼을 반영하는 것이다. 향심기도 가운데서 자아의 모든 수준 속에서 우리의 전체적 자아를 경험하여 자아의 참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을 초극하게 된다. 잡념이 생기면 우리는 그것을 부인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다시) 우리의 기도 중심으로 돌아오면서 그것들이 사라지도록 한다. 하나님과 함께 공유하는 중심을 주위로 하여 우리의 경험 전체를 포용함으로써 우리는 지혜와 수준에 있어서 성장하게 되고 고요한 중심 계기를 생생한 일상적 경험의 드라마로 가져오게 된다. 듣기기도와 향심기도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신비한 모험의 한 가운데에 처해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우리의 과거, 우리의 환경, 그리고 하나님과의 창조적 관계성이 역동적이고 끊임없이 현존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전일성을 경험하게 된다. 향심기도와 듣기 기도는 삶의 놀라운 모험들로 항구적 경험을 참여시킨다. 친밀하게 실재하고 있으며 무한정하도록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관계들, 사회적 참여, 그리고 영적 성장이라는 미지의 전선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3) 상상력과 전일성 : 과정 사상의 중심에는 신적 상상력이 놓여있다. 왈터 브뤼그만이 말했듯이, 과정 영성은 예언자적 상상력, 즉 현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상황에 대안을 구상하는 능력이 종교적 경험의 핵심에 위치한다고 하는 것이다. 질서뿐만 아니라 새로움의 원천으로서 하나님은 건강, 전일성, 그리고 자기 각성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예견하게끔 우리를 초청한다. 점차적으로 신적 상상력은 (사물들을) 색다르게 보도록 우리를 부른다. 상상적 영성은, 어느 특정한 도전적 상황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리는 빛처럼 치유적 상상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처료를 받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신적 빛을 경험하는 것, 현재에 대한 대안들을 상상하는 것 또는 과거나 미래 사건 속에 우리의 동반자로서 그리스도를 마음에 그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고통스런 과거 사건 속에서 그리스도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치유하는 동반자가 되는 “기억들의 치유”는 과거란 결코 정적이거나 폐쇄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 변형 내지는 재해석, 즉 치유 될 수 있는 것이라는 비젼에 의거한다. 패션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서를 상상력 있게 읽을 때면, 성서의 말씀들은 그 페이지를 뛰어넘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영신수련(The Spiritual Exercises of Ignatius of Loyola)이라는 예수회의 방법과 베네딕트 교단의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 방법에 의해 시행된 이런 형식의 성경공부는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게끔 독자를 고무하게 된다. 혈루병을 앓는 여자가 되어본다든지, 혼수상태 중인 여자아이의 부모가 되어본다든지, 바다에 폭풍우가 내릴 때 제자들이 되어본다든지, 또는 빈 무덤가의 여인들이 되어보는 것으로써 우리 인생의 구체적 실제들에 반응하는 가운데 우리를 하나님의 신실한 동반자로 부르는 현재적인 말씀으로서의 성서를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거룩한 상상력을 통해 매일 시간흐름에 스며드는 것이다.
상상력은 타자 가운데 신적 임재를 경험하는 것에로 우리를 초대다. 뻔하고 피상적인 것을 초월하여 봄으로써, 거룩한 상상력은 각자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임재로 우리를 일깨워주고, 전일성에로의 예기치 못한 가능성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조화를 발견하고 구체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신적 상상력에로의 깨어남은 “길 없는 때에 길”을 창조한다.
과정신학이 제안하는 성경 읽기란 독서, 설교준비, 회중석에서 설교 듣는 것과, 집에서 조용히 묵상하는 것 등을 상상적 해석법의 부분으로 보는데, 그 가운데서 이 세계 내의 하나님 말씀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은 끊임없이 우리에 부딪치게 된다.

4) 과정신학이 제안하는 긍정법 : 사도 바울은 그의 독자에게 조언하기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였다. 긍정법의 쓰임, 즉 삶의 보다 깊은 실제들에 관한 긍정적 진술은 우리로 하여금 의식적 경험에로 하나님의 목적들을 가져오도록 해준다. 어떤 이는 긍정법이란 삶의 부정성들에 대한 비실제적 부정일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과정신학이 제안하는 긍정법은 삶의 부정성들을 보다 더 큰 것이자, 삶을 지지해주는 전망 내에 위치시킨다. 그 본질상 구체적인, 긍정법의 효용은 그 어떤 죄악이라도 초월하는 근원적 전일성을 드러내준다.
성서적 긍정법은 다음과 같은 진술들을 내포한다. : “나에게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나를 끊을 수 없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공급하신다”,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깊은 탄식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실제(reality)의 과정-관계적 통찰을 기반으로하고 있는 긍정법들은 또한 다음 진술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신다.
하나님은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공하신다.
나는 신적 모험에 있어서 하나님의 동반자이다.
나는 우주와 연결되어있다.
나는 각 계기 가운데 신적 가능성으로 개방되어있다.
나의 몸은 신적 지혜를 반영한다.
나는 신적 아름다움에 방향 맞추어 있다.

우리의 긍정법에 의한 삶은,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우리의 전일성에로 우리의 시야를 열어준다. 긍정법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인생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들의 광대한 솜씨들을 알아차리도록 도와주고, 우리의 인생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시켜준다.

5) 관계적 기도충만. 과정-관계적 신학은 일종의 사랑의 형이상학에 기반을 둔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고, 그 안에 기쁨과 슬픔이 영적 파트너에 의해 포함되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이웃과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음에 관한 의식적인 행동이다. 우리의 기도는 우주를 가로질러 방사되고, 우리가 기도해주는 사람들과의 전일성에 공헌하는 것이다. 전일성의 환경을 조성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기도해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보다 훌륭한 제휴 가운데 있도록 해주고, 신적 사역의 증진을 위한 문을 열도록 해준다.
관계적 기도충만은 하나님과 우리가 기도해주는 사람들과의 역동적인 파트너쉽을 포함하도록 도전한다. 타자와 영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말하고 있음을 듣고, 우리가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발견할 수도 있다.
관계적 기도충만은 역동적인 신앙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를 고취시킨다. 예배란 하나님과 타자들을 우리와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포도나무고, 우리는 그 가지이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음으로써, 우리는 기도, 후원, 노래, 희망 가운데 서로서로를 양육하며 많은 열매를 맺는다. 신앙 공동체로써 매개되는 것은 소외와 고독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유전된 죄악의 영향에 대해서도 해독제가 된다. 개인적으로나 공동체내에서나 관계적 기도 충만은 각각의 만남으로 하여금 신적 현현을 만들게 하는 감사의 은사를 불러일으킨다.

6) 몸 기도 : 과정신학은 “만유와 몸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더불어 몸을 위하여 기도한다. 우리의 기도는 몸, 마음, 영혼 그리고 관계들을 이상화하게 된다. 사도바울이 말했듯이, 과정 신학은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간주하고,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도전한다. 과정신학이 함의하는 몸 기도는 다양한 차원들이 있다. 한편으로 과정 영성의 형성은, 예전적 제스쳐, 춤, 요가, 명상적 산보 그리고 기도 산보를 통해 “영혼 감동시키기”를 내포한다. (On the one hand, process spiritual formation involves "moving the spirit,’ through liturgical gestures, dance, yoga asanas, meditative walking, and aerobic prayer walking.)  
과정 영성은 어루만짐의 치유적 힘을 긍정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어루만짐의 결핍과 오용되고 조작된 접촉의 영향으로 인해 고통당한다. 많은 연구결과는 어루만짐이 결여된 아기들이 주기적으로 만져진 아기들보다 보다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고 발표했다. 영성의 전인적인 비젼은 거룩한 어루만짐, 즉 육화의 경이에로 우리를 변화시키거나 일깨우는 어루만짐을 장려한다. 거룩한 어루만짐은 많은 방법 속에서 전달되는데, 안마, 레이키 요법, 안찰, 안수 등이 그것이다. 그것의 전체론적인 시각 속에서 과정 사상은, 식사나, 성생활, 안아주기 등의 일상적 인간 활동들이 치유와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드넓은 관계들 그물망의 일원들처럼, 몸 기도는 육화의 정치학을 긍정함으로써 다른 이의 몸을 보살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소명을 준다. 실로 타인의 행복은 우리의 행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사랑 공동체”의 지체처럼, 우리가 다른 이의 몸을 보살피는 것은 정의와 연대라는 생활방식에 반영된다.

7) 영의 생태학 : 삶의 전일성은 우리가 살아가고 활동하고 존재하고 있는 치유의 동아리들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자신의 경험의 중심은 무수한 관계 다발들의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나타나게 된다. 샬롬의 히브리적 개념에 나타난 정신으로 보자면, (존재의) 실제(reality)는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관계들의 끊임없는 그물망이라는 것이고, 거기에서 개인적 행복과 사회적 환경이 끊임없이 서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영성의 형성은 한 개인의 “고독”으로부터 출현하는 한편, 고독과 사회는 끊임없이 서로 서로에게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한 개인이 전일성을 경험함에 따라, 결혼, 가정, 공동체, 국가, 전지구는 변화된다. 반대로, 우리의 관계적, 공동체적, 전지구적 상황이 변화됨에 따라, 개인들은 치유와 전일성을 발견하게 된다. 플라톤이 2천 5백년전에 말했던 것처럼, 사회들이란 “영혼의 양식”의 주요한 조달자들인 것이다. 영성 형성의 과정은 줄기차게 계속되지만, 이 형성의 형태는 대체로 우리 가족들, 학교, 직장, 사회의 가치들로 인해 영향 받는다. 아쉽게도 종교적 제도들은 가장 개인적 영성생활의 끄트머리에 놓인다. 그 끄트머리는 소외와 무시의 장소가 될 수 있으나, 또한 보다 훌륭한 모험을 위한 출발지점이 될 수도 있다. 교회나 여타의 영적 여건들의 두드러진 영향력이 그동안 줄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는 개인을 위해서나 공동체들을 위해 치유적 동아리들을 조성하는 일에 있어서 선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창조적 신학과 영성적 형성을 위한 모체로서의 자리매김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근원적 전일성을 양성하고 유전된 상심에 도전을 가하는 치유적 동아리로서의 소명이 있다. 교회의 역할은 무엇보다 예방적인 데에 있다. 즉 유년기로부터 시작하여 부모 역할을 하면서 늙고 죽을 때까지, 삶의 모든 단계의 변화와 전일성을 위한 기회들을 초기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 부름 받은 한편, 교회는 “죄 편향”의 이해로부터 “건강 편향”의 이해로 옮겨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전일성을 위하여 개인들과 그들의 환경을 엮어내는 일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세 영역이 있다. 그것은 부모역할, 스트레스와 영성, 그리고 경제문제이다. 교회는 건강한 개인과 가정을 양성하는데 부름 받았다. 왜냐하면 가정이란 행복에 있어서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도 가장 파괴적인 행위들의 장이기 때문이다. 배우자간의 영성과 소통과 전일성에 대한 배움의 과정은, 부모로 하여금 그 자녀들의 각 삶의 단계를 바라봄에 있어서 그것들을 어떤 고된 노역이 아니라 하나의 모험으로서 바라보도록 해주는 긍정적인 부모역할을 익히는 기회들로 짜여져야만 한다. 부모의 영성은 이 과정 내에서 필수적이다. 마치 여객기 내에서 공지하기를, 자녀들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기 전에 “부모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십시오” 하는 격과 마찬가지다. 둘째로, 의학적 증거가 시사하듯이, 질병의 80%가 어떤 방식으로든 스트레스와 연관되어있다고 한다. 교회는 영적 기술들을 가정과 직장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방법과 함께 엮어주는 과정을 통하여 영성을 마음, 몸, 그리고 관계들의 전일성에 연결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경제적 변혁에 선봉이 될 수 있다. 아동의 건강에 있어서 기본적이 지표는 그 부모의 경제적인 형편이므로, 전일성의 경제적 생태학은 예방적 차원에서와 대응적 차원에서도 주장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제적 문제에서보다 그 어떤 곳에서도 원죄의 영향력이 명확한 곳은 없다 : 패스트 푸드의 소비는 아마존의 우림지역을 황폐화하는 데 공헌하고 있고, 실업상황은 배우자 학대의 비율을 높이고 있으며, 빈곤은 예기치 못한 임신, 폭력 그리고 마약중독의 가능성을 높이고, 독성에 노출된 작업은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져오는 것이다.
교회는 영적 성장, 경제 정의, 전지구적 보건 관리, 그리고 가정 복리 등에 참여하는 전일성의 생태학을 증진시키는 리더가 되도록 도전받고 있다. 우리는 변화된 가치와 실천을 생산하는 변화된 마음이 요구된다. 우리는 모험과 중재적 은총, 그리고 세계를 보살피는 일에 하나님과 파트너가 되도록 도전하도록 영감을 주는 예배가 필요하다. 근원적 전일성, 또는 우리가 하나님과 우주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 대한 우리의 각성이 각 순간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감성을 고취시키고, 다른 이들 속에서 아름다움에 관한 동일한 경험을 양성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매우 아름다운 것”을 시행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있음을 고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소박한 헌신을 하는 가운데, 우리는 “나비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즉 우리의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은혜롭고 친절한 실천들이 점차로 아름다움과 전일성을 경험하도록 해줄 것이고, 이것은 온화하고도 극적으로 이 세계를 치유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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