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icle Bank

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9/01/11 (22:31) from 58.227.253.77' of 58.227.253.77' Article Number : 565
Delete Modify 박선웅 Access : 9413 , Lines : 1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연구 - 이데올로기와 재현의 정치






스튜어트 홀의 문화연구 - 이데올로기와 재현의 정치

박선웅(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사회학)


1. 머리말

고전의 중요성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현대의 중심적인 흐름과 문제 그리고 그것의 해결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데 있을 것이다. 고전사회학자들은 사회학의 커다란 경계를 정해주고 특정한 연구 주제를 설정해주었으며 그 주제에 대한 방법론도 제시해주었다. 비교적 최근에 부상한 문화사회학의 영역에서도 고전에 기초하고 있으며 고전사회학자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문화는 고전사회학자들의 중심적인 이슈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베버는 비교연구를 통하여 의미의 문제(the problem of meaning)에 대한 종교적 해답이 인간의 행위를 동기화하며 특정한 제도적 유형과 선택적 친화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의 '카리스마' 개념은 문화와 사회의 구조적 변동을 야기시키는 행위자의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뒤르켐은 원시종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상징체계가 근본적으로 이항대립적 분류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집합의식이 의례를 통해 재생산되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결속이 강화된다는 점을 밝혀주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이데올로기의 기능과 물질적 조건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가 자체의 "역사를 가지지 않는다" (Marx, 1989: 47)고 봄으로써 베버와 뒤르켐과 달리 문화에 대한 연구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그의 추종자에게 문화의 빈상자를 채워야 할 이론적 숙제를 남겨주었다. 단순히 이론적 숙제만은 아니었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에 동화되고 포섭되는 과정을 지켜본 마르크스주의자에겐 실천적 숙제이기도 했다. 마르크스의 숙제를 푸는 데 가장 큰 공헌을-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한 학자들을 꼽으라면, 스튜어트 홀도 그 중 하나임에 이견을 보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홀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문화를 '문제화'(problematizing)시키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문화질서가 어떻게 생산되고 유지되는지, 즉 '선택적 전통'의 작용에 의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생산의 환경과 조건들은 무엇이고, 다른 대안들을 능동적으로 굴복시키고 지배적인 구조 내에서 주변화시키거나 그 속으로 통합시키는 메커니즘은 무엇이며, 사회구성체의 문화들에 대한 특정한 배치가 위계화된 다른 사회적 제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규명하는 작업이다. 간단히 말해서, 문화의 문제화는 이데올로기와 재현의 정치에 초점을 둔다.
위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홀은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 있으면서도 다른 이론적 시각에 대해 개방적이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의 지평을 확대시켜나갔다. 그의 이론적 항해는 문화주의에서 출항하여, 기호학, 알튀세르(Althusser), 그람시(Gramsci), 페미니즘, 정신분석학을 거쳐 최근에는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홀은 이 항해를 하는 동안에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을 정교화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유기적 지식인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홀의 지대한 공헌과 풍부한 이론적 유산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계는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글의 일차적인 목적은 홀의 이론적 항해의 궤적을 추적하고 경험적 연구들을 살펴보는 데 있으며, 이차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문화정치의 이론적 경험적 이슈들을 친숙하게 하는 데 있다. 홀의 방대한 작업을 충분히 다루기에는 주어진 지면 외에도 필자의 지식이 너무 모자라므로, 홀의 이론적 항해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쳤던 초기 문화주의, 구조주의, 그람시, 포스트모더니즘에 초점을 두며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문화주의의 문제틀: 비환원론적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의 모색

스튜어트 홀의 문화연구는 195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여 영국 문화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호가트(Hoggart)의 {교양의 효용}(1958), 윌리엄스(Williams)의 {문화와 사회}(1961), {장구한 혁명}(1965) 그리고 톰슨(Thompson)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1968) 등 문화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출발했다. 문화주의는 문화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연구방법 그리고 경제결정론적인 마르크스주의와의 단절을 시도하면서, 초기 홀의 문제틀을 형성했다.


호가트는 리비스주의의 고급문화/대중문화의 이분법적 틀을 거부하고 생생한 노동계급문화를 하나의 '텍스트'로 해독했다. 이를 통해 그는 한편으로 리비스주의가 폄하한 노동계급문화에서 공동체적이며 자생적인 측면을 부각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산업론이 강조한 노동계급의 수동적 문화수용이 아닌 능동적 문화생산을 조명했다. 그는 노동계급의 문화적 자생성이 상업화된 대량문화의 저속화를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문화주의의 길을 열었다.
윌리엄스는 문화를 인간의 절대적 가치나 문서화된 기록들로 한정하는 리비스주의 전통을 넘어서서 하나의 '총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인류학적 정의를 함으로써 문화주의적 분석의 지평을 확대했다. 그는 문화연구를 "삶의 방식 전체에 내재한 요소들의 관계에 대한 연구"(1965: 63)라고 정의하고, 특정한 집단이나 계급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들의 짜임새인 감성의 구조(structure of feeling)를 시나 건축물,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특정한 시기에 모든 실천과 상호작용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유형들이 어떻게 체험되고 경험되는가를 파악하고자 했다. 윌리엄스의 문화정의는 문화를, 단순히 토대를 반영하고 토대에 의해 결정되는 상부구조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는 속류 유물론이나 경제결정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는 실천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실천의 복합체와 그 속에 내재하며 실천들을 구분해주는 유형과 조직형태들을 '총체성'으로 보면서 '결정'의 문제를 비환원론적으로 상대화시켰다.


톰슨은 호가트가 낭만적으로 기대했던 노동계급의 역사적 능동성을 경험적으로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윌리엄스가 정의한 총제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합의된 문화보다는 문화들간의 투쟁, 긴장, 갈등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사회적 의식과 존재와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통해 주어진 조건에서 인간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시했다. 그런 관점에서 톰슨은 의식과 존재를 매개하며 그 둘을 모두 포함하는 경험을 특히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계급이란 구조에 의해 범주화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생산관계에 편입된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연관된 사건들에 대한 체험, 이해와 해석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의식 속에서 생성된다.


호가트, 윌리엄스와 톰슨은 문화분석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홀의 문제틀에 영향을 주었다. 하나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문화를 더 이상 주변적이거나 단순히 반영된 것으로 보지 않는 데 있다. 초기 뉴레프트 운동을 주도했던 이들 문화주의자들은 전후에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구성체의 모습과 모순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제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강한 회의를 갖고, 새로운 사회변동과 이에 따른 문화적 세력 변화를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를 모색했다. 바로 여기에서 홀의 가장 기본적인 문화연구의 문제틀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Hall, 1980a; 1980b; 1992a). 그가 이후에 논의할 기호학, 알튀세르, 그람시 그리고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논쟁을 전개한 것은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를 정교화하기 위한 이론적 항해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중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 묘사된 대중(the mass)은 수동적이고 원자화되어 있으며 저급한 상업문화에 의해 탈정치화된 무리들이다. 이에 반해, 문화주의자들은 역사적 주체로서의 대중의 능동성을 복원하고자 했다. 그들은 엘리트주의적, 도덕적, 심미적인 문화 접근에서 구축한 고급문화/대중문화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대중문화의 자생성과 저항성을 부각시키려 했다. 홀(Hall, 1981)은 대중을 계급적 축으로만 재단할 수 없고 모든 사회적 모순 속에서 지배당하는 여러 층들의 총체라고 보았으며, 대중보다는 피지배 집단의 유기적 결합체를 의미하는 '민중(the popular)'의 개념을 선호했다.


패디 화넬(Paddy Whannel)과 함께 쓴 홀의 첫번째 저작 {민중예술(Popular Arts)}(1964)은 고급문화는 좋고 대중문화는 나쁘다는 인식을 배격했다. 홀은 그런 엘리트주의적 인식이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을 제공하기는 했으나 진정한 대중문화를 재창조하기 위해 현존하는 사회 내에서 성장의 기점을 발견하는 노력을 저해한다고 보았다. 그는 바로 그 지점을 대중성 속에서 작용하는 민중예술에서 찾고자 했다.

이 예술은 비록 '유기적 공동체'의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산물도 아니고 또 '민중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급 예술에 함께 적용될 수도 없는, 민중을 위한 대중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Hall & Whannel, 1964: 59).

그리고 홀은 대중들이 민중예술, 즉 좋은 대중문화와 나쁜 대중문화를 식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홀은 문화주의가 인류학적 문화개념을 도입하고, 경험에 우위를 두고 역사적 행위자를 강조하는 휴머니즘과 문화에 대한 반환원론적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이데올로기적 작용에 대한 이론적인 작업이 미약하다는 점과 실제의 역사적 움직임을 일관성 있게 분석해내는 틀의 부재, 여러 실천들을 '실천일반'으로 환원시키려 하고 여러 영역들 속에 내재하는 공통적이고 유사한 '형식들'을 찾으려는 표현적 총체성에로의 경향성, 그리고 특히 인간의 작용에 제약을 주는 한정적 조건을 간과함으로써 빠지게 되는 주의주의(voluntarism)를 비판했다(Hall: 1980a; 1980b).


3. 구조주의의 비판적 수용: 의미작용과 이데올로기

초기 문화주의의 문제틀은 비록 '토대/상부구조'의 은유로부터 단절했지만 특정한 문화질서가 어떻게 생산되고 유지되는지, 즉 지배적인 문화적 질서가 선호되며 대안들을 주변화하거나 통합하는 과정과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별다른 분석적 유용성을 제공하지 못했다. 홀이 지향한 문화연구의 문제틀은 문화적 실천의 상대적 자율성뿐만 아니라 '지배 내 구조(structure in dominance)'의 문제를 이론화할 수 있어야 했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홀은 구조주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배 내 구조는 또한 인간의 행위를 제약하는 조건이므로, 문화주의의 주의주의를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도 연관되었다.


우선 구조주의는 문화적인 것의 특수성과 환원 불가능성을 강조한 점에서 문화주의의 인식과 연결되었다(Johnson, 1979: 56-7). 구조주의 관점에서 문화는 단순히 반영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천, 즉 의미작용의 실천(signifying practices)이며, 그 자신의 한정된 산물인 의미를 가진다. 구조주의의 일차적 관심은 의미가 생산되는 방식 혹은 그것을 하나의 실천으로 정해주는 문화의 내적인 형식과 관계에 있다.


소쉬르(Saussure)를 필두로 한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은 의미작용을 언어 속에서 요소들이 선택되고 결합되고 접합되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언어는 개인적 발화자들의 단순한 합계나 개인적 발화들로 환원시켜 파악할 수 없으며, 그것들을 구조화하고 결정하고 제한하는 '관계들의 체계', 즉 문법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구조주의적 분석은 의미작용 실천의 고유한, 즉 환원불가능한 문법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 1972)는 소쉬르의 기호학을 문화의 과학적이고 비환원론적인 연구를 위한 모델로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문화란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을 분류하는 목록이나 분류체계로서, '의식'의 산물이라기보다 역사적으로 일정한 의식형태들을 생산해내는 데 매체가 되는 무의식적 범주들과 틀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의미가 생산되고 변형되는 방식을 파악하기 위해 소쉬르처럼 구조 내부의 관계, 배열, 부분들 간의 접합 논리 등 공시적 분석 수준을 통시적인 것보다 우선시했다.


알튀세르는 기호학에서 강조하는 문화적 문법, 즉 의미작용의 실천을 조직하고 의미를 생산하는 무의식적 범주가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한다는 사고를 함으로써 홀의 지배 내 구조 문제를 풀 수 있는 이론적 실마리를 제공했다. 물론 그의 '상대적 자율성'과 '중층적 결정'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구성체 내의 다양한 실천들의 관계를 표현적 총체성이 아닌 구조적 총체성으로 파악하고 결정성의 문제를 비환원론적 방식으로 공식화하려고 노력한 공헌 역시 간과할 수 없지만, 문화주의에서 무시되어온 이데올로기 개념을 정교화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은-비록 개념적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홀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관념들의 체계가 아니라 물질적으로 존재하고 사람들이 상상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 조건과 맺는 현실적 관계를 체험하게 하는 이미지, 재현, 범주들이라고 했다(Althusser, 1971). 이데올로기는 조건들이 재현되고 체험되는 매체가 되는 무의식적인 범주인 것이다. 또한 그는 이데올로기가 호명에 의해 주체를 구성한다고 했다.


홀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중 하나인 미디어를 분석하는 데 기호학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활용했다(Hall, 1972; 1973a; 1973b; 1974; 1979; 1982). 그는 미디어 담론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을 살펴보고자 했다. 홀은 미디어 연구의 흐름을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크게 3가지로 구분했다(Hall, 1982). 첫번째 시기인 1920년대에서 40년대까지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시각에서 미디어를 대중문화에 부정적인 효과를 끼치는 것으로 보았으며, 두 번째 시기인 1960년대까지 미국의 주류 매스미디어 연구는 다원주의적 시각에서 미디어가 다원화된 사회모습과 이미 성취된 규범적 합의를 반영 또는 표현한다고 보았다. 홀이 주목한 것은 1960년대 이후에 등장한 비판적 미디어 연구로서 미디어의 '의미작용 실천', 즉 실재의 구성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작용과 효과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홀은 두 가지 핵심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첫째, 지배적인 담론이 어떻게 스스로를 유일한 설명으로 확인시키고, 대안적인 혹은 경쟁적인 정의에 대해 제한하거나 금지 혹은 배척을 유지하는가? 둘째, 세상의 사건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을 책임지는 기관들이-현대사회에서는 단연코 대중매체다-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 체제 내에서 선호되는 혹은 제한된 의미의 범위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유지하는가? 이와 같이 어떤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특권적 지위를 주거나 혹은 그것을 선호하는 작업이 실제로는 어떻게 달성되었는가?(Hall, 1982, 임영호, 1996b: 253에서 인용).

두 질문은 모두 '의미작용의 정치'에 관한 것으로 '문제적인(problematic)' 사건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의미화하는 미디어의 구조화된 인코딩(encoding)에 초점을 둔다. 바르트(Barthes)에 의한 일차적/이차적 의미작용의 구분에 터하여, 홀은 뉴스의 의미작용을 두 가지 수준으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하나는 뉴스 가치인데, 뉴스에 관한 전문직업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기사를 정교화시키는 것이다. 뉴스 가치는 신문 담론에서 어떤 것이 뉴스 거리가 되는가에 대한 상식-자연스럽게 그리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적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 홀에 따르면, 뉴스 제작자들이 강조하는 균형, 중립성, 객관성, 전문직주의 그리고 합의 등의 원칙들은 그들로 하여금 권력으로부터 자율적인 위치를 점하도록 보이게 하지만, 실제로는 뉴스의 두 번째 의미작용의 수준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 미디어는 보편화된(혹은 합의된) 의미규칙을 활용함으로써 '뉴스 앵글'을 다소 다르게 굴절시키는데, 특정한 방식으로 굴절시키는 것의 배후에는 이데올로기적 주제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그것에 의한 현실의 특정한 재현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점이며, 이로써 이데올로기 자체가 은폐된다. 또한 미디어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작용은 무의식적이며 상식적인 분류체계에 의해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을 범주화하고 '성스러운' 의미를 부여하든지-예를 들어 이성적, 합리적, 정의로운 등으로-혹은 오염시키든지 함으로써-예를 들어 불량배, 음모자, 선동자, 질서파괴자 등으로-그들을 포섭 혹은 배제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뉴스 가치'의 구조는…… 스토리와 사건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준다. 즉, 익명의 사건에다 사회세계에서의 특성, 지위, 위치를 덧붙인다. 그것은 비인격적인 역사적 세력의 배후에서 '드라마' '인간적 관심사'를 찾아낸다. 하지만 이런 기능적인 가치들은 결국 중립적인 가치가 아니다. 알튀세르가 주장했듯이, 어떤 담론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되는 것은 바로 "주체의 범주"를 갖고 작동함으로써, 또 독자가 "친숙한 것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가능해진다(Hall, 1972, 임영호, 1996b: 324-25에서 인용)

이처럼 홀에게 있어서 미디어 담론에 의한 현실의 구성과 여론 형성의 구체적 과정은 '지배 내 구조화된' 과정인 것이다. 특히 권력 엘리트들은 쟁점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자신들이 선호하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자료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며, 기존의 묵시적인 합의를 조성함으로써 여론 형성에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홀은 말했다.


홀은 구조주의 덕분에 문화적인 것을 의미작용의 실천으로 파악할 수 있었으며 그것의 물질적 조건과 한정적인 측면을 고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과 역사성을 중시하는 문화주의의 이론적 환경에서 출발한 홀은 구조주의의 형식주의, 반인간주의와 몰역사성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알튀세르의 이론에 자리잡고 있는 기능주의적 논리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재생산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기능적 작용을 설명해주지만, 그 논리에 따르자면 노동계급이나 일반 대중은 단순히 지배이데올로기의 담지자로서 자본주의 체제에 필요한 순응적인 인간들일 뿐이다. 결국 인간이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능동적 행위자로서의 모습은 구조주의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작동시키는 구조의 기계는 저항, 투쟁, 갈등에 대한 이론적 작업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홀이 이론적 탐험을 시도한 것은 그람시 이론이었다.


4. 구조주의에서 그람시에게로: 헤게모니와 접합

홀에게 그람시의 이론적 매력은 무엇보다도 '헤게모니' 개념에 있었다. 홀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문화적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한정시키는 입장과 달리 "'결정적인 경제적 핵심부'에 대한 지도권을 확보한 어떤 기본적 사회집단이 이 지도권을 시민사회와 국가 전반에 걸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리더십과 권위의 계기로 확대시켜, 일련의 '국가적 과제'를 통해 사회구성체를 통일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유기적 경향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그런 모든 과정을 지칭"했다(Hall, 1980a: 35). 그람시는 기본적으로 물질적 생산이 조직화되는 방식에 토대를 두면서도, 헤게모니가 창출되는 과정을 사회구성체 내의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들간의 관계가 연결되어지는 계기로 파악했다. 이처럼 그람시의 사회구성체에 대한 인식이 유물론적이면서 비환원론적이라는 점에서 홀이 지향하는 문화주의적 문제틀에 적합했다.


게다가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구조주의의 비역사성과 형식주의, 이론주의적 경향을 수정할 수 있게 해준다.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과정은 구체적인 사회형태, 경쟁적인 세력들의 세력균형 그리고 역사적 국면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며, 그만큼 헤게모니의 획득 여부도 특정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코 보장되지 않으며 우연적(contingent)이다. 따라서 이에 관한 분석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이며 국면적(conjunctural)일 수밖에 없다. 홀은 특정한 국면에서 알튀세르가 개념화한 이데올로기의 작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람시의 사고에서 이데올로기적 영역이 헤게모니 획득을 위해 대중의 동원과 동의를 둘러싼 경합과 투쟁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홀은 그람시로부터 단지 이데올로기를 투쟁이라고만 말한 알튀세르의 이론적 제스처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지속적으로 고정된 상태가 아닌 특정한 투쟁현장의 일시적인 정복으로 봄으로써 지배와 저항의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했다. 이로부터 홀은 "문화나 일상적인 언어영역 속에서 자본주의체제의 '지배성'이 구현된 것(즉, 이데올로기적 지배구조)을 밝혀내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저항과 변화의 가능성"을 읽어내고자 했다(임영호, 1996a: 20).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에 내포된 국면에 대한 강조, 집단들간의 세력균형, 지배 이데올로기의 의미작용, 그것에 대한 저항과 투쟁 등의 착상은 홀의 접합이론의 틀 속에서 결합된다. 접합이란 어떤 조건하에서 두 개의 다른 요소를 서로 통일시킬 수 있는 연결형태를 의미하며, 그것은 반드시 필연적이거나 절대적이지 않다. 홀은 접합이 특정 시점에서의 다양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이루어지는 임의적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구조의 결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동시에,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주어진 의미에 저항할 수 있는 주체의 능력 역시 이 접합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았다(Fiske, 1996: 218). 홀의 접합개념은 일방적인 이데올로기적 지배가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 세력간에 전개되는 의미작용의 정치를 의미한다. 이로써 사회는 특정한 역사적 세력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접합과 재접합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가운데 역사적으로 구체적, 다중적, 모순적인 결정인을 갖는 복합적인 통일체로 규정된다. 사회의 '통일성'은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과 이데올로기(혹은 담론들)의 접합의 결과가 되는 셈이다(Grossberg, 1996a: 156). 홀은 헤게모니와 접합이론을 갖고 구조, 행위, 그리고 특정 국면 등의 세 가지 분석 수준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람시의 이론적 영향은 홀의 미디어, 하위문화, 국가와 시민사회제도, 대처리즘 등에 대한 국면분석 그리고 정체성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홀은 미디어 자체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정교화되는 영역이면서 또한 저항 이데올로기와 서로 부딪치는 장소이기도 한데, 경합하는 사회적 세력들이 자신들의 상황정의에 사람들이 좀더 귀를 기울이게 하려고 노력하는 양측의 전략으로 인해 방송은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Hall, 1974). [기호화/기호해독](1980c)에서, 홀은 미디어 수용자를 단순히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는 수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메시지를 다양하게 해석하며 의미를 생산하는 능동적 주체로 파악했다. 그는 독자들의 해독방식을 헤게모니적 지배적 정의를 따르는 '선호적' 해독 기본적으로 지배적 정의를 따르지만 부분적으로 대안적인 의미를 생산하는 '타협적' 해독, 그리고 지배적 정의를 거부하는 '대항적' 해독으로 구분하여 미디어 담론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투쟁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복 가능성을 이론화했다. 또한 홀은 미디어 담론이 지배적인 의미규칙에 따라 일탈적 의미를 내포하는 기표를 특정한 저항세력에게 접합함으로써 '정치적인 일탈자(political deviant)'를 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분석하고(Hall, 1973b; 1979),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지배적인 의미체계로부터의 탈접합 그리고 의미전복을 위한 재접합의 실천으로 규정했다(Hall, 1982).


문화적 영역에서의 지배와 피지배 간의 갈등과 투쟁은 홀의 하위문화 연구에서도 핵심적 주제였다. 홀은 권력의 중심에 있지 않은 집단이나 계급이 자신의 종속적인 위치나 경험을 그들의 문화 내에서 표현하고 표출하는 가운데 하위문화가 형성되고, 하위문화는 "지배문화에 종속될 뿐만 아니라 투쟁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적응을 시도하거나 협상, 변용, 저항 또는 그것의 헤게모니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고 했다(Clarke et al., 1976). 홀이 하위문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하위문화의 구성원들이, 비록 그들의 계급을 규정하는 경험이나 조건의 결정론적인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테디 보이(teddy boy), 모드(mod)나 스킨헤드(skinhead)에서 보듯이 그들의 독특한 의상, 말투, 레저, 라이프스타일, 사회적 관계, 가치 등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통해 지배문화를 문제화시킴으로써 그들이 부딪치는 물질적, 계급적 경험 등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에 대해 다른 문화적 반응이나 해결책-예를 들면 지배문화의 변용이나 전복 등-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수인종, 여성, 동성애 집단, 히피, 펑크 등 주변화된 소수집단의 하위문화가 지배 이데올로기의 지배성이 가장 취약하다는 점에서 '진지전'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볼 수 있다(임영호, 1996a: 21).


홀의 구체적인 역사적 국면분석은 헤게모니와 대중으로부터의 동의를 창출하고 생산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관심이 정치구성체, 국가와 시민사회 기구, 제도적 정책과 실천 등에 접목되면서 이루어졌다(Hall et al., 1978; Hall, 1988; 1996). 특히 홀은 영국의 신보수주의인 대처리즘이 진보적 정당의 정치적 기반인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받으면서 출범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자 했다. 홀은 1979년 영국의 총선에 앞서 대처의 이데올로기적 전략, 즉 바로 전 해의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 동안 인플레이션에 항의하며 일어난 저임금 공공 서비스 노동자들의 폭동을 생활수준의 잠식과 협정 임금차를 지키려는 노력으로 해석하지 않고, 대신에 무방비의 병자, 노인, 중환자 그리고 죽은 후에도 매장되지 않은 일반 민중에게 거만하고 비인간적이고 냉담한 노조의 힘을 휘두른 것으로 해석하도록 의미작용을 부여한 것이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홀은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했던 노동조합이 신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적 전략에 의해 재편된 세력균형과 투쟁조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굴복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또한 홀은 탈산업사회, 포스트포디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지칭되는 '새로운 시대'의 의미 속에 반드시 신보수주의의 정치적 의제가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새로운 변화들과 대처리즘과의 이데올로기적 접합을 독해했다.


그람시의 영향은 홀의 후기작업의 중심 주제였던 정체성의 연구에서도 지속적으로 발견된다(1986; 1997a; 1997b). 이에 대해서는 홀의 마지막 이론적 항해지인 포스트모더니즘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다음 절에서 논의를 하겠다.


5.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 담론 그리고 정체성의 정치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홀의 입장은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포스트모던한 새롭고 통일된 역사적, 사회적 조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포스트모던 조건은 모더니즘이 진행되면서 그 속에 내재되어 있던 일련의 다양한 경험들이 불균형하게 발전된 것이나 혹은 오래된 확실성이 위기에 처하기 시작한 방식에 명명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질적으로 모더니즘과의 절대적 단절을 의미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문화분석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적용하여 문화나 일상적인 언어영역 속에 스며든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지배 내 구조를 밝히고 동시에 그것에 대한 저항적 실천과 변화의 가능성을 읽어내려 했던 홀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투쟁과 저항의 가능성을 배제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새로운 변화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대한 적응만을 제시하는 실천적 메시지에서 모순되는 세력이나 반대 경향 그리고 저항의 가능성 자체를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Grossberg, 1996b: 132).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데는 담론의 자율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도 있다. 홀은 사회적 실천의 언어적, 담론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담론의 의미작용이 완전한 자율성을 가지며 어떠한 결정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인식에는 반대했다(임영호, 1996a: 19). 투쟁과 변화의 가능성을 남겨두지 않는 경제적 환원론이나 결정론을 거부했듯이, 홀은 실천 가능성을 배제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적 결정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홀에게 있어서 이데올로기나 담론의 의미작용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것이며, 이데올로기 투쟁 역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투쟁의 넓은 영역 내에 위치하고 특수한 사회적 조건하에서 그것들과 접합된다.


담론의 결정성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홀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대안 없는 해체론적 문화정치를 제시하거나 재현의 부정으로 인해 이데올로기 작용이나 투쟁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비판했다. 재현 행위와 의미작용의 종말을 말하고 의미의 존재 자체까지도 부정하는 보드리야르와 같은 시각과는 달리, 홀이 보기에 한 가지 의미규칙의 파괴는 의미규칙의 다원화로 이어지며, 그럼으로써 오히려 기호화 과정이 더욱 풍부해진다. 다시 말해서, 홀은 문화의 생산과 소비양식이 질적으로 변화한 것이지 재현 자체가 붕괴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Grossberg, 1996b: 136-37). 또한 푸코가 이데올로기적 차원이 포함되지 않은 담론을 논의하는 것에 대해, 홀은 이데올로기를 간과하고 저항의 문제를 개념화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를 전형적인 아나키스트라 불렀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로스버그가 지적하듯이 둘은 주체에 대한 사고와 정치적 전략 면에서 유사하다(Grossberg, 1996b: 166). 두 입장이 모두 통일되고 안정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주체의 설정을 문제시하며 대중을 수동적으로 조작되는 존재라기보다는 능동적인 투쟁의 지점(site)으로 보고 있다. 정치적 전략과 관련하여, 특정 권력이나 지배관계에 대항하는 국지적 투쟁을 수반한 연대성을 강조한다는 점도 홀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홀의 탈식민 담론과 정체성 연구는 푸코에게 상당한 이론적 빚을 지고 있다.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으로서 영국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조국에서도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성장배경으로 인해 홀은 문화적 정체성과 자리매김(positionality)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고향을 잃고 전세계로 흩어져야 했던 유태인들에 비유하여 디아스포라적인 체험이라고 규정했는데, 지구화의 거대한 흐름을 통해 세계적인 것과 국지적인 것이 접합되는 상황하에서 이제 사람들은 디아스포라적인 정체성을 일반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후기 근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안정적이고 통일된 정체성으로부터 이질적이고 모순적이며 파편화된 정체성의 전환을 의미하는 포스트모던한 체험은 곧 디아스포라적 경험이기도 한 것이다(Chen, 1996: 490). 홀은 통일되고 응집적인 정체성은 이제 환상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문화적 재현체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형성, 변형, 해체, 재구성되는 '포스트모던 주체'를 상정했다.


이런 관점에서, 홀은 자신의 독특한 식민지적 긴장의 경험을 토대로 백인 중심적 혹은 서구 중심적인 지배담론에 의한 문화적 정체성의 형성과 문제점에 접근하면서, 왜곡된 정체성을 폐기하고 중심과 주변의 해체를 요구하는 탈식민주의 담론을 발전시켰다(Hall, 1992b). 특히 그는 백인 중심의 영국 정체성 혹은 '영국스러움(Englishness)'에 의문을 제기했다. 홀에 따르면, 영국스러움과 같은 민족 정체성은 민족문화 등 결코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적 레퍼토리의 재구성을 통해, 파편화된 이질적 주체들의 정체성을 하나의 "응축되고, 동질적이며 통일된" 구성체로 주조된 것에 불과했다(Hall, 1997a: 22). 그런데 영국스러움의 민족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은 동시에 '비영국스러움'에 대한 범주화, 즉 타자로 분류되는 소수민족과 인종은 순수한 영국스러움에 대립되는 존재로, 그것을 오염시키는 존재로 따라서 억압되거나 제거되어져야 할 존재로 위치지어진다. 홀은 전지구화의 물결이 민족국가나 민족경제의 경계를 허무는 상황하에서, 민족 정체성은 대처리즘에서 나타나듯이 더 공격적이고 편협하며 배타적인 형태의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에 의해 창출될 위험이 높다고 했다.


한편, 홀은 그가 "전지구적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렀던 새로운 형태의 전지구화 물결이 초래할 수 있는 '탈식민지적' 정체성 문제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포스트모던 형태의 전지구화는 미국적 대중문화가 주류를 형성하고 지배적인 세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지역의 토착문화와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부각시키는 다민족적이며 탈중심적인 성격을 갖는다. 식민지 담론에 의해 주변화되고 왜곡되어진 소수 민족이나 인종은 이제 자신의 관점에서 고유의 전통, 역사, 문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포스트모더니티의 전지구화에 의해 지나치게 위협을 받을 경우, 대처리즘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수주의와 근본주의에 의해 배타적인 정체성이 구축될 위험이 있다고 홀은 지적했다.


홀에게 있어 정체성은 문화정치의 핵심에 놓여 있으며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산물이다. 홀은 정체성을 형이상학적 주체에서처럼 본질적인 '무엇'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다양한 사회적 세력들의 이데올로기 전략과 경합에 의해 자리매김되어지는 것으로 보았다(Hall, 1997b). 그는 주체가 담론에서 그리고 그것에 의해 위치지어지며, 담론은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그것과 접합되고 투쟁을 통해 재접합된다고 보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홀의 정체성 연구는 그가 오랜 기간을 통해 추구해왔던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와 재현의 정치를 분석한 표본이라 하겠다.


6. 맺음말

끝으로 홀의 문화론을 정리해보면, 우선 그는 초기 문화주의로부터 경제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되었다. 호가트의 노동계급문화에 대한 텍스트 분석, 윌리엄스의 인류학적 문화개념, 톰슨의 노동계급의 문화적 형성은 홀로 하여금 문화를 내용(what)으로부터 방식(how)으로 혹은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대중성의 수동적 의미를 능동적인 역사적 주체로서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홀은 기호학으로부터 무의식적 범주 혹은 분류체계로서의 문화, 의미작용 실천의 이항대립적 원리, 의미작용의 자의성 등을 배웠으며, 알튀세르 덕분에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상대적 자율성의 개념화뿐만 아니라 의미작용의 실천을 조직하고 의미를 생산하는 무의식적 범주가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한다는 사고를 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홀은 미디어 담론에 의해 구성된 현실의 재현이 지배적인 의미규칙에 따라 지배를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홀은 비로소 구조주의와 문화주의, 구조와 행위를 매개할 수 있었다. 홀에게 헤게모니 창출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투쟁은 기표와 기의, 즉 특정한 사회적 존재나 사건과 특정한 의미의 접합, 탈접합 그리고 재접합의 과정이었다. 홀은 정체성이 하나의 응축되고 동질적이며 통일된 구성체가 아니라 파편화되고 이질적이며 모순된 주체가 문화적 레퍼토리에 의해, 내러티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을 공유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다양한 사회적 세력들의 이데올로기 전략과 경함에 의해-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자리매김된(혹은 접합된) 주체라고 했다. 따라서 홀은 정체성이 문화정치 영역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화를 문제화'하려는 홀의 문화연구를 정치적 실천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형태의 지배는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전제된다면, 정당성의 자원은 언제나 문화적 의미체계로부터 동원된다. 누가 지배하고 지배받을 것인가, 누가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선택되고 배제될 것인가 혹은 인정되고 거부될 것인가, 누가 이 사회의 영웅이며 적인가, 누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등의 문제는 그 문제가 어떤 의미, 상징, 가치에 의해 재현되는가, 즉 접합의 양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이 바로 홀이 강조하는 바이다.


이와 같이, 홀의 문화연구는 문화,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의 관계를 조명하는 데 많은 이론적 시사점을 준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미작용의 정치를 경험적으로 살펴보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홀의 이론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몇 가지 질문을 던지자면, 우리의 지배적인 문화적 문법은 무엇이며, 그 문법에 따라 미디어 담론이 특정 사건에 대해 어떻게 재현하는지, 미디어뿐만 아니라 다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예를 들면 학교, 종교기관이나 정당-는 지배적 담론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사회적 세력이 그리고 왜 특정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가담하는지, 저항세력은 어떤 의미규칙에 의해 어떤 상징을 동원하는지 등은 앞으로 우리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지형과 상징투쟁의 역동성을 이해하기 위해 제기되고 연구되어야 할 이슈들이다.






--------------------------------------------------------------------------------


□ 참고문헌

임영호. 1996a,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과 그 함의], 임영호 편역,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_____ 편역. 1996b,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Althusser, Louis. 1971,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 in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Chen, Kuan-Hsing. 1996, "The Formation of a Diasporic Intellectual: an Interview with Stuart Hall," in David Morley & Kuan-Hsing Chen (ed.), Stuart Hall: Critical Dialogues in Cultural Studies, London: Routledge.
Clarke, John, Stuart Hall, Tony Jefferson and Brian Roberts. 1976, "Subculture, Cultures and Class," in S. Hall & Tony Jefferson(eds.), Resistance through Rituals: youth subculture in post-war Britain, London: Hutchinson, 박명진 외 편역, {문화, 일상, 대중}, 한나래.
Fiske, John. 1996, "Opening the Hallway: Some Remarks on the Fertility of Stuart Hall's Contribution to Critical Theory," in David Morley & Kuan-Hsing Chen(eds.), Stuart Hall: Critical Dialogues in Cultural Studies, London: Routledge.
Grossberg, Lawrence. 1996a, "History, Politics and Postmodernism: Stuart Hall and Cultural Studies," in David Morley & Kuan-Hsing Chen (eds.), Stuart Hall: Critical Dialogues in Cultural Studies, London: Routledge.
_____. 1996b, "On Postmodernism and Articulation: An Interview with Stuart Hall," in David Morley & Kuan-Hsing Chen (ed.), Stuart Hall: Critical Dialogues in Cultural Studies, London: Routledge,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Hoggart, Richard. 1958, The Uses of Literacy. Harmondsworth: Penguin.
Hall, Stuart. 1972, "The Determination of News Photographs," Working Papers in CulturalStudies, no.3,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_____. 1973a, "The 'Structured Communication' of Events," in Obstacles to Communication Symposium, Paris: UNESCO.
_____. 1973b, "Deviancy, Politics and the Media," in M. McIntosh & P. Rock(eds.), Deviancy and Social Control, London: Travistock.
_____. 1974, "Media Power: The Double Blind," Journal of Communication, vol. 24, no.4,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_____. 1979, "Culture, the Media and the 'Ideological Effect'," in James Curran et al.(eds.), Mass Communication and Society, Berverly Hills: Sage.
_____. 1980a, "Cultural Studies and the Centre: Some Problematics and Problems," in S. Hall et al.(eds.), Culture, Media, Language: Working Papers in Cultural Studies, 1972-1979, London: Hutchinson/CCCS,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_____. 1980b, "Cultural Studies: Two Paradigms," Media, Culture and Society, no.2,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_____. 1980c, "Encoding/Decoding," in S. Hall et al.(eds.), Culture, Media, Language: Working Papers in Cultural Studies, 1972-1979, London: Hutchinson/CCCS,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_____. 1981, "Notes on Deconstructing 'the popular'," in Raphael Samuel (ed.), People's History and Socialist Theory, London: RKP.
_____. 1982, "The Rediscovery of 'Ideology': Return of the Repressed in Media Studies," in Michael Gurevitch et al.(eds.), Culture, Society and the Media, London: Methuen,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_____. 1983, "The Problem of Ideology: Marxism without Guarantees," in Betty Matthews(ed.), Marx: A Hundred Years On, London: Lawarence & Wishart,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_____. 1985, "Signification, Representation, Ideology: Althusser and the Post-StructuralistDebates," Critical Studies in Mass Communication, vol.2, no.2,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_____. 1986, "Gramsci's Relevance for the Study of Race and Ethnicity," Journal of Communication Inquiry, vol.10, no.2.
_____. 1988. The Hard Road to Renewal: Thatcherism and the Crisis of the Left, London: Verso.
_____. 1992a. "Cultural Studies and Its Theoretical Legacies," in Lawrence Grossberg et al.(eds.), Cultural Studies, London: Routeldge.
_____. 1992b. "The Question of Cultural Identity," in Stuart Hall et al. (eds.), Modernityand Its Futures, Cambridge: Polity Press.
_____. 1996, "The Meaning of New Times," in David Morley & Kuan-Hsing Chen(eds.), Stuart Hall: Critical Dialogues in Cultural Studies, London: Routledge.
_____. 1997a. "The Local and the Global: Globalization and Ethnicity," in Anthony King(ed.), Culture, Globalization and the World-System,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_____. 1997b. "Old and New Identities, Old and New Ethnicities," in Anthony King(ed.), Culture, Globalization and the World-System,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Hall, Stuart, Chas Critcher, Tony Jefferson, John Clarke and Brian Roberts. 1978, Policing the Crisis: Mugging, the State and Law and Order, London: Macmillan.
Hall, Stuart & Paddy Whannel. 1964, The Popular Arts, London: Hutchinson.
Johnson, Richard. 1979, "Histories of Culture/Theories of Ideology," in Michele Barett et al.(eds.), Ideology and Culture Production, London: Croom Helm.
Levi-Strauss, Claude. 1963, Structural Anthropology, vol.1, New York: Basic Books.
Marx, Karl. 1989, The German Ideology,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Thompson, E. P. 1968,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Harmondsworth: Penguin.
Williams, Raymond. 1961, Culture and Society, Harmondsworth: Penguin.
_____. 1965, Long Revolution, Middlesex: Pelican.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