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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라이에르마허의 주관주의 신학 방법론

슐라이에르마허의 주관주의 신학 방법론

목 차

Ⅰ. 서론
Ⅱ. 슐라이에르마허 신학 방법론의 사상적 요소
1. 계몽주의와의 융합
2.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 낭만주의
3. 종교적 감정 강조: 경건주의
4. 교의적 체계 거부: 직관주의
Ⅲ. 신앙주의와 객관주의 비판
1. 신앙주의
2. 객관주의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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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명 천안대학교  
학술지명 진리논단  
ISSN   
권   
호 7  
출판일 2002.   







슐라이에르마허의 주관주의 신학 방법론1)


주만성
2-837-0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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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대체로 18세기 계몽주의 이전에는 연역적 신학 방법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가 계몽주의 사상이 등장하면서 신학 방법은 연역적 기조에서 귀납적 기조로 돌아서게 된다. 그러나 귀납적 신학 방법론으로 인한 하나님의 초월성 위협, 즉 연역적 신학 방법의 위기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칸트, 헤겔, 슐라이에르마허의 하나님의 내재성 강조는 신학 방법론의 또 다른 새로운 양상을 초래했다.

특히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 방법론이 신학사에 끼친 영향은 획기적이다. 계몽주의 이후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내재성이 강조되는 각종 신학 방법들은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 방법론의 영향2)이며 또 다른 한편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이 강조된다면 이것은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 방법론에 대한 반동으로 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3) 요컨대 그의 신학 방법론은 신앙주의와 객관주의에 대한 반동이다. 본 논문에서는 신앙주의와 객관주의 양자 모두를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 제시를 자처하며 등장한 슐라이에르마허의 주관주의 신학방법론에 대하여 당대의 사상과 관련하여 살펴보고 신앙주의와 객관주의에 대한 새로운 비판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러려면 먼저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에 있어 방법론의 문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에 대해서는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자들의 활발한 연구가 있었고 또 진행되고 있다.4) 그런데 대체로 그들은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에서 교의학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크리스챤은 상당한 분량을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51-69, 79-86)과 신론 및 삼위일체론(94-106), 죄론과 구속론(107-132)등을 다루고 있으며5) 게리쉬는 스트라우스와 같이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의 중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론에 있다고 보았다.6) 또 다른 슐라이에르마허 연구가들은 신론이 그의 신학의 중심을 이룬다고 보았으나 사실 슐라이에르마허에게 있어 신론은 그의 최대의 약점이기도 했다.7) 그의 『종교론』같은 작품에 대해서도 연구가들은 체계적으로 토론 된 신론이 없거나 전혀 신론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8)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이란 교의학적인 것이 아니다. 브로밀리는 그의 책에서 이런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는 슐라이에르마허가 교의(Dogma)를 감정의 응시의 결과이며 감정에 대한 일반적 표현이라고 말한 점을 지적했다.9) 한편 슐라이에르마허 시대가 계몽주의 물결로 인해 교의에 대해 강한 반발의 시대였으며 슐라이에르마허 역시 그 물결을 타고 있었다는 것은 Hubert Cunliffe-Jones의 책에서도 그 일면을 잘 살펴볼 수 있다.10) 따라서 슐라이에르마허 신학을 교의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슐라이에르마허에게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교리들을 그 나름대로 특이하게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상과 갈등 속에 있던 기독교의 교리를 설득하기 위하여 그가 취한 신학적방법과 접근법11)이었다. 그 방법론이란 전통적 신앙주의와 계몽주의 이후 나타난 객관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한 주관주의적 신학 방법론이다.

비록 타이스가 그의 논문에서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 방법론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역시 교의적인 명제 재배열의 주요한 변화에 초점을 가지고 있으며12)Van Harvey 같은 학자가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에 있어 오류를 지적하면서 주관주의를 언급13)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방법론으로 연결되기보다는 범신론적 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18세기 계몽주의이래 신앙주의 혹은 객관주의와 관련하여 신학 방법론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 슐라이에르마허가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Stanley J. Grenz와 Roger E. Olson이 공동으로 저술한 20세기 신학14)에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의 하나님 내재성 강조가 그의 신학 방법론에서 말미암은 것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신학 방법론이 신앙주의나 객관주의와의 관련 속에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Ⅱ. 슐라이에르마허 신학 방법론의 사상적 요소
상술한 바와 같이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방법론은 계몽주의 이전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 신앙주의 신학방법론에 대한 반동이다. 아울러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인한 학문의 객관주의적 접근이 신학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이것은 결국 슐라이에르마허에게서 내재성을 강조하는 주관주의적 신학 방법론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의 신학 방법론은 당대의 사상적 영향과 무관하지 않음으로 그의 방법론 이해를 위해 그에게 끼친 사상적 영향과 관련하여 살피는 것이 좋겠다.

1. 계몽주의와의 융합
슐라이에르마허의 하나님의 내재성 강조 신학 방법론은 18세기에 나타난 계몽주의를 거론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계몽주의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문제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다.15) 이 시대의 사상가들은 이제 교리를 더 이상 교회 교의로서 이미 수용된 체계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고전적인 신학적체계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지적 토론을 해결 할 수 없게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지식인들은 종교적 신념들에 대해서는 판별이 가능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제시하는 것들로 제한하려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도록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이 계몽주의이다.

계몽주의는 르네상스라는 기초 위에서 중세적 사고와는 궁극적으로 다른 근본적인 사상의 변화를 초래했다.16) 계몽주의 이전 시대에는 안셈(Anselm, 1033-1109)17)의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라는 명제는 지식 추구에 있어 지배적 사상이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이 명제는 바뀌어 "나는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것을 믿는다"라고 선언하게 되었다.18)

교부시대 이래로 중세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라 할 수 있는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초월성에 기울어져 있던 신학의 균형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깨어지고 말았다.19) 이성을 중시하는 이 시대가 기독교 신학의 기초와 방향을 모두 뒤엎어 놓아버렸기 때문에 계몽주의 이후에는 그 이전의 기독교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였다.20)

그런데 계몽주의와 같은 획기적 사상의 출현은 역사적, 사상적 배경 없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계몽주의의 출현은 그 때까지의 사회, 정치, 지적 요소들이 모여 돌출 된 것이다.21) 17세기에 소위 30년 전쟁22)으로 인한 유럽사회의 황폐화가 있다. 그 전쟁으로 인한 골 깊은 갈등은 상이한 기독교 신앙고백들의 대결양상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전쟁은 교리적 논란이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회의를 초래했다. 이런 종교적 싸움 외에도 당대의 비판적인 정신에 걸 맞는 지성적 행로를 열어 놓은 것은 상호 연관되어있는 두 혁명, 즉 철학과 과학 분야에서의 혁명이었다.23)

계몽주의에 대한 철학적 영향은 현대 철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사상가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데카르트는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학적 논증의 엄격성을 모든 지식 분야에 소개하려 했다는 점에서, 막 부상하고 있는 이성의 시대의 표상이 되었다.24) 그가 수학적 지식을 우위에 두었던 것은, 수학은 이성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는 경험적 관찰로부터 유래하는 지식 보다 훨씬 더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성의 제 1원리로 ‘회의(懷疑)’를 도입했다. 그러나 그 다음 세기의 어떤 경험주의자들과 달리 회의주의로 나가지는 않았다. 그 반대로 그의 회의는 확신을 낳게 된다. 왜냐하면 이성이 모든 것을 의심할 때 그 회의 의 주체-그 회의를 하고 있는 그 개인-가 존재한다는 확실성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언이 생기게 된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와 같은 사상은 그 이후의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이후로는 신적인 계시가 아니라 사고하는 주체가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데카르트가 시작한 이러한 사고 운동은 신학을 난관에 빠트렸다. 신학자들은 이제 계몽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이성의 우위를 인정하고 합리주의적 철학에 기초하여 신학을 하든가, 아니면 이성 자체만으로는 영원한 실재들에 대한 지식을 창출할 수 없다고 해야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25) 데카르트 외에 이와 같은 사상에 힘을 실어준 사람으로는 볼프(Christian, Freiherr von Wolff, 1679-1754)26)와 로크(John Locke)등이 있다.27)

철학분야에서 일어난 혁명 외에 계몽주의를 낳은 또 다른 원인은 중세의 세계관과는 급진적인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 과학 분야에서의 혁명인데 새로운 사고의 중심을 이룬 것은 우주관의 변화였다. 이것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이 발단이 된 것이다.28) 이러한 우주관의 변화는 중세적 관점이 제시했던 천국은 공간적으로 지구 위에 존재하고 있고 지옥은 그 아래 놓여 있다고 하는 우주의 삼층적 구조를 배격하는 것으로, 이것은 물질세계 자체를 이해하는 관점과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적절한 접근 방식에서 일어난 변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29)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데카르트나 갈릴레오와 같은 사상가들이 개척한 새로운 방법론을 지식의 모든 분야에 적용했다. 자연 과학 뿐 아니라 정치학, 윤리학, 형이상학, 신학 등도 이 과학적 표준 규정에 맞춰 보고자 했다.

요컨대 계몽주의 시대의 몇 가지 원리들은 곧 ‘이성’, ‘자연’, ‘자율’, ‘조화’ 등이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가 가르침의 직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논리에 호소한다든지, 이것은 성경 말씀이니까, 또는 이것은 기독교의 교리이니까 라는 식으로 호소하는 것이 신앙이나 행위를 부추기는 수긍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제는 개인이 권위에 대한 그런 종류의 모든 외적 주장들을 시험해 보려 들기 때문이다.30) 결과적으로 계몽주의자들은 ‘적합한 방법론’을 높게 평가했다.31)

그러나 18세기가 다 끝나 갈 무렵 계몽주의 시대는, 특히 영국에서 그 수를 다하게 된다. 거기에는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이 끼친 영향이 크다. 이 때쯤 많은 사상가들은 혹은 회의론에 빠져서,32) 혹은 종교적 상대주의 때문에33) 이성의 종교를 내던져 버리게 된다. 이 사상가들은 결국 이성은 신, 도덕성 그리고 삶의 의미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들을 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가 그 종말을 고했을지라도, 신학은 결코 과거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었다. 지나간 18세기는 두 가지 대안만을 남겨 놓은 것 같았다. 성경과 교회의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을 강조하는 전통적 기독교의 강조점을 택하든지, 아니면 개인적 지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가 낳은 근대의 회의주의적 합리주의를 따르든지 해야 했다. 칸트 이전 시대에 대한 맥기퍼트(McGiffert)의 기념비적 연구서에서 결론 내리고 있는 것처럼, "18세기 말의 종교적 위기는 심각한 것이었다."34)

그러나 19세기의 어떤 신학자들은 그 선택들에만 묶여 있기를 거부했다. 물론 그들도 이제 더 이상 이성의 시대를 거슬러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경과 교회의 권위가 영원히 실추되었기 때문에 신학은 예전의 신앙 체계를 결코 다시 부활시킬 수 없었다. 이제 신학이 계몽주의 시대 이전의 교리적 정통으로 회귀한다는 것이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그들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회의주의적 합리론을 유일한 대안으로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이 새로운 종류의 지성들이 계몽주의의 여파를 인정하면서도 진보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계몽주의의 기본 취지를 용인하면서 동시에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길들을 모색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계몽주의가 이룬 진보적 결과들을 수용하면서도 계몽주의를 넘어서 그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중세적 균형이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그 어간에 신학의 연역적 작업과 귀납적 작업 사이에 어떤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계몽주의 이후 신학자들은 인간 생활 안에 종교라는 어떤 특정의 자리를 정함으로써 계몽사상에 의해 초래되었던 곤경을 넘어서고자 했으며, 또한 그 결과로 위로부터의 신학과 아래로부터의 신학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고 했다. 그러한 유의 첫 시도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35)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헤겔36)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위로부터의 신학, 즉 하나님의 초월성 위협에 대한 극복에 있어 간트와 헤겔의 제안보다 훨씬 더 혁신적인 것은 슐라이에르마허의 제안이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칸트를 넘어 인간의 자의식 안에서 가장 깊은 요소인 것으로 보여지는 절대적 의존의 종속적 경험의 신뢰라고 보여지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37) 그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전적으로 의존하는 감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38) 그는 하나님의 초월성이 위협을 받는 이성 시대에 신학의 근거를 찾기 위하여 ‘감정’에 주목했다. 그의 대안은 그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특별한 경험, 곧 직관적 삶을 종교의 중심으로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이와 같은 발상이 기독교 신학에 끼친 영향력은 뉴턴이 물리학에, 프로이드가 심리학에, 그리고 다윈이 생물학에 끼친 것과 같다고 하겠다.39)

2.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 낭만주의
슐라이에르마흐 신학의 방법론적 맥락을 형성시켜 주었던 새로운 상황은 낭만주의 운동이었다. 물론 낭만주의는 종종 퇴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을 묘사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함에 있어서는 비난과 비판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용하는 낭만주의는 종교생활을 감상적으로 만드는 주관주의와 관련 된 것이다.

레데커는 낭만주의를 초기 낭만주의, 즉 극단적인 낭만주의 와 후기 낭만주의로 나누고 있는데 슐라이에르마허의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초기 낭만주의가 결정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레데커는 슐라이에르마허가 종교적 낭만주의자라는 점에서 낭만주의적 생활 방법을 지적인 것이나 정치적인 형태로 나타내는 슐레겔이나 아담 뮐러와 차이가 있고 시적이고 심미적 형태로 나타내는 노발리스와도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사상은 여러 면에서 슐레겔이나 노발리스의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초기 낭만주의에서 슐레겔 형제들이 사용한 ‘낭만적’이라는 개념은 독일어 Roman-소설 또는 허구-에서 나온 형용사인데 이 단어는 18세기 말에 대단히 유행한 것으로 ‘허구적인 것’, ‘시대와 동떨어진 것’을 의미하거나 ‘인간정신-감정-의 최초 행위에 홀로 접근할 수 있는 감상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 노발리스는 낭만주의의 본질을 마술적인 이상주의로 보았다. 노발리스에게 있어서 낭만적으로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사물에 보다 높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유한 속에서 무한 한 것을 발견하는 것, 즉 사물의 보다 깊은 의미와 존재를 꿰뚫어보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신비의 길은 내부로 뻗어있다. 영원성은 우리 속에 있다"40)고 했으며, "하나님은 내가 그를 믿는 순간에 존재한다"41)고 했는데 초기 낭만주의에는 분명히 두 가지 근본적 동기가 있다. 감각의 소재는 개체적 자아, 즉 개인의 본성이다. 이 본성의 움직임은 환상적인 것, 즉 마술적인 것에서 나타난다. 둘째 동기는 감각의 본능은 무한하다는 것이다. 무한을 향해서 움직이는 것이 유한 속에서 발견된다고 했다. 이와 같은 이상주의는 슐라이에르마허와 통하는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종교의 본질을 사유도 행위도 아닌 직관과 감정이라고 했으며 종교는 우주를 직관하는 것이며 우주 자신의 표현과 행위 안에서 경건하게 우주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고 아이와 같은 수동적인 태도로 우주의 직접적인 감화 영향으로부터 감동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42) 그는 또 직관을 항상 어떤 개체적인 것이며 직접적인 지각으로 보고 종교 역시 그러하다고 했으며 직관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전체로 종합하는 일은 이미 감각의 일이 아니며 추상적인 사유의 일이라고 정의한다. 즉 종교는 우주의 존재와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곧 개개의 직관과 감정에서 성립한다고 보고 이 직접적인 경험들은 다른 것에 관계하거나 의존하지 않는 단독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논리적인 관계에 대해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 것은 종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종교의 본질에 가장 반대되는 것이라고 본다.43) 이와 같은 사상은 확실히 그 당시 계몽주의의 냉엄한 이성주의에 반발한 낭만주의에 가깝다.

물론 슐라이에르마흐의 이와 같은 사상에 대해 변호적 입장도 있다. 그것은 슐라이에르마흐는 낭만주의에 깊이 영향을 받은 베를린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한 모임의 일원이 되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신앙에 대하여 거북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슐라이에르마허는 그들에게 강한 애착을 느끼고 기독교진리를 그들에게 맞게 설명하길 원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가 그의 최초의 역작, 『신앙에 관하여: 신앙을 멸시하는 교양인들에게 쓰는 담화』(On Religion: Speeches to Its Cultured Despisers)는 친구들에게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설득하려는 의도로 쓴 것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권위주의적 도덕주의나 죽은 정통으로서 사람들을 진정한 인간성으로부터 소외시킬 뿐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반의 오해들에 대하여 신앙을 변호하려고 했다.44) 그는 신앙을 ‘멸시하는 교양인들’(독일의 젊은 낭만주의자들)에게 진정한 신앙은 교리와 무관하며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Gefu¨hl)에 관한 문제라고 설득하려 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이 책은 ‘계몽주의화한 경건주의’와 낭만주의를 섞어서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에 관한 교리적이거나 신조적 명제에 복종하는 것과는 다른,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한다.45)

그리고 레데커도 슐라이에르마허의 이 책이 학문적인 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비 신학도들, 즉 종교를 멸시하는 교육받은 자들에게 한 연설이라는 것이다. 형식상 이 책은 설교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며 낭만주의 시대의 정신 속에서 쓰여진 전형적인 문학 작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레데커는 군돌프(Friedrich Gundolf)가 그것을 세련 된 설교와 소 논문을 혼합 한 것이라고 한 비판은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나온 설교 가운데 현존하는 것들을 보면 그것들은 모두 단순한 예배 공동체를 향한 강연으로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책은 문학적으로 쓰여지고 철학적으로 사회 일부 계층을 향한 고백이며 따라서 전문 신학 용어가 아닌 낭만주의 문학의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46)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의 개체성과 보편성의 개념들이 낭만주의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레데커는 그런 주장은 잘 못된 것이며 슐라이에르마허는 일찍부터 개체성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47)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비록 낭만주의 모임의 정회원이었으며 그 문화 속에서 살았지만 그는 낭만적 환상이나 감상주의적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살았다고 말한다.48) 크리스챤도 슐라이에르마허가 계몽주의 신학의 초자연적 교리를 거부했던 낭만주의자들에게 공감하여 그들과 결합했으나 신학과 철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낭만주의에 종속되지 않고 그것을 초월하고 극복했다고 말한다.49)

슐라이에르마허가 낭만주의자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낭만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그것이 피상적이며 무비판적 심미주의나 지적인 정확성과 완전성을 결여한 공허한 종교성을 의미한다면 슐라이에르마허는 결코 낭만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삶과 신앙에 대한 그런 접근 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낭만주의가 냉랭하고 분석적이며 기술적인 이성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상상력과 직관에 의해 현상 배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면 슐라이에르마허는 낭만주의자라는 것이다.50)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의 생동감이라든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힘과 상상력 같은 것을 회복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이 합리주의 때문에 상실되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낭만주의자들은 인공적인 것 보다 자연적인 것, 강요된 것 보다 자발적인 것, 냉랭한 합리성 보다 경험과 감정을, 외적이며 형식적인 것 보다 내적이며 상상적인 것51)을 강조했다. 그런데 우리는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에서 이와 같은 강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 낭만주의가 신학에 미친 영향은 계몽주의 철학의 냉랭한 합리주의에 대한 반작용인데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낭만주의는 인간의 감정과 상상력, 직관 등을 매우 강조하였다. 따라서 자기 실현과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서 시와 음악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이와 같이 감정을 강조하는 낭만주의로부터 현대 문화의 근본 정신과 갈등을 빚지 않을 기독교 재편의 단서를 발견한 것이다.52) 문제는 감정을 신학적 작업을 위한 하나의 자료로서가 아니라 신학 전체를 다루는 도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3. 종교적 감정 강조: 경건주의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에 미친 또 하나의 영향은 경건주의와 관련 된 것이다. 그 경건은 특히 모라비안53)적인 것이다. 물론 그에게 있어 개혁주의적 전통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다.54) 그는 부모의 가문 모두로부터 칼빈주의적 개혁주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 외할아버지와 외증조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친할아버지가 모두 개혁교회 목사였다. 슐라이에르마허 자신도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에 동의하고 개혁교회 목사로 안수 받았다. 실제로 그는 칼빈주의 예정론을 변호했으며 개혁교회 전통에 대해 충성을 자주 고백했다.55)

하지만 그의 가문에는 아울러 경건주의 전통도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고트리프는 개혁파 목사였으나 경건주의에 동조하여 모라비안 경건주의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이 종파는 깊은 종교적 감정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어린 나이에 모라비안 교단의 학교에서 경건훈련을 받았으며 14세 때 회심을 체험하게 된다. 그가 회심을 체험하고 20년 후(1802) 그라덴 나이프를 방문하고 쓴 글에서도 그는 자신이 높은 서열의 모라비안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56)

슐라이에르마허가 만년에 이르러서도 자신이 모라비안 교도라고 고백한 것은 그의 사상형성에 경건주의적 영향이 컸음을 말해 준다.57) 브란트에 따르면 슐라이에르마허에게 있어 종교의 정서적인면 강조, 종교와 철학의 철저한 구별 등은 모라비안 경건주의의 영향이다.58) 크리스챤에 따르면 슐아이에르마허가 종교의 본질을 감정으로 간주한 것이나 "기독교 신앙은 예수에 대한 개인적인 깊은 헌신으로부터 일어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은 모라비안의 영향 때문이다.59) 이 밖에 슐라이에르마허가 『종교론』 제 3강에서 종교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발될 수 있는 것이라는 유명한 이론을 제시한 것도 마찬가지다.60)

한편 그는 『담화』에서 그는 자기 자신이 이어받은 경건주의적 유산과 당시의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었던 낭만주의를 파들어 감으로써 종교의 진정한 본질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종교의 본질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증거나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교의 또는 교회적 의식이나 절차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문화 속에 있는 ‘근본적이고, 쉽게 식별이 되는 통합적 요소’61), 즉 유한한 것들을 통하여 그리고 그들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무한한 것에 대하여 전적으로 의존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다.

슐라이에르마흐가 『담화』에서 주장했던 것은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즉 경건은 종파(형상)의 본질이지만, 그것은 항상 어떤 구체적인 종교의 전통(질료)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쨌든 그는 계몽주의자들이 어떤 구체적인 종교 공동체나 그들의 신학 혹은 예배 형태(‘실증적 종교’, Positive Religion)와는 구별된, 어떤 ‘자연적 종교’를 찾으려 했던 것에 대하여 단호하게 거부했다.62) 그는 『기독교 신앙』에서, 슐라이에르마흐는 신학을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 감정을 말로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63)

결국 슐라이에르마흐는 직관을 통하여 하나의 대안적 접근 방법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 곧 실재 전체에 대한 의존 감정에 주목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보다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으로 보여질 수 있다면 천문학의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슐라이에르마흐는 합리주의와 기독교의 정통 사이에 놓여져 있는 궁색스러운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권위적 명제가 신학의 근거가 되기보다 인간의 경험, 특히 절대 의존 감정이 그 근본이 될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64) 그는 경건이라는 것에 대해 일체의 형이상학적인 것이나 도덕적인 것을 결부시키기를 꺼려하고 있으며65) 그것을 체계화시키기도 거부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사상은 결국 신학방법에 있어 주관주의를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4. 교의적 체계 거부: 직관주의
슐라이에르마허는 종교는 교의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교의를 형이상학이 종교 안에 혼합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교의는 종교 자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종교는 교의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는 것이다.66) 그에 의하면 교의는 단지 종교적인 직관을 추상적인 것으로 표현 한 것에 불과하거나 종교심의 본래적인 작용에 대한 자유로운 반성이거나 혹은 종교적인 견해와 일반적인 견해를 비교한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신앙을 ‘멸시하는 교양인들’(독일의 젊은 낭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쓴 저술 활동을 진정한 신앙은 교리와 무관하며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Gefu¨hl)에 관한 문제라고 설득하려 했다. 이 책은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에 관한 교리적, 신조적 명제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67) 그런가하면 슐라이에르마허는 직관들을 하나의 체계로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있다. 철학은 지식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편적인 지식에로 모이도록 하는 것이나, 종교는 믿고 느끼려는 사람들을 하나의 신앙이나 감정으로 모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개별적인 직관이나 감정이 종교의 요소인 것이다.68)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브란트는 두 가지 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그 말의 인식적 또는 의도적인 의미가 섞여 있는 경우로서 "정의는 낮은 도덕적 가치라는 것을 나는 느낀다"와 같은 진술에서 볼 수 있다고 했고, 또 다른 하나는 비의도적 의미로 "나는 슬프다" "나는 기쁘다"와 같은 것이라 했다. 전자에 있어서는 감정이 다른 어떤 사실에 대한 의식을 나타내며 이해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후자에 있어서는 주어가 어떤 종류의 감정을 알고 있다는 인식적, 의도적 요소가 있기는 하나 그것이 주어 저편에 있는 어떤 대상과 관계를 가지고 있진 않다. 브란트는 이상의 두 가지 용법 가운데 슐라이에르마허가 후자의 의미에서 감정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69) 따라서 그는 종교적인 직관이 개별적이며 비체계적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종교가 사유의 체계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한 것과 종교에 있어서 개체의 찬양 등은 그가 종교를 주관적인 기분의 문제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가능케 한다.70) 그에게 있어서는 우주에 대한 직관이 하나의 계시이다. 그러나 자기의식이라 할 수 있는 우주의 직관과 하나님의 계시는 구분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계시관은 인격적인 하나님이 자신을 의식적으로 인간에게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슐라이에르마허는 이러한 계시를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으로 주관적이다.71)

신학적 방법에서 슐라이에르마흐가 이룬 혁신은 이른바 "믿는 주체로 돌아가라"(turn to the believing subject)는 데 있다. 신적인 계시에 의한 정보의 어떤 체계가 아니라 믿는 자들의 경험이 신학의 기준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신학이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의식’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기독교의 교리적 형식을 끊임없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학의 비판적 과제는 교회의 설교나 교리적 형식이 당대에 일구어 놓은 기독교의 ‘하나님-의식’에 대한 최선의 분석에 엄밀하게 일치하는가를 보고서 그들 중 얼마만큼이 유지될 수 있으며, 얼마만큼이 완전히 폐기되어야 하며, 어느 만큼이 수정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72)

그에게 있어 규범적 성경의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다. 성경이 특별한 것은 그것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종교적 경험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특정의 역사적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해석하는 모든 시도들에 대한 모범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73) 그에 따르면, 성경은 그것이 그리스도 자신의 ‘하나님-의식’을 순전히 반영하는 한에서, 그리고 어디에서든 성경을 통하여 그러한 ‘하나님-의식’의 순수한 모델이 나타날 때마다, 기독교 신학을 위한 하나의 상대적 권위를 가진다. 성경에서 도출된 교의거부는 자연히 초자연적 범주 제거로 나타난다. 슐라이에르마흐가 초자연이라는 범주를 제거하여 과학 시대의 기독교가 당면하는 문제에 대한 편리한 해결책을 찾았다.

Ⅲ. 신앙주의와 객관주의 비판
요컨대 결국 위에서 언급된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 방법론은 신앙주의와 객관주의에 대한 반동이다. 그러나 그는 그 비판의 방향을 바로 잡지 못함으로 주관주의로 흐르고 말았다. 우리는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신앙주의와 객관주의는 그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다음과 같이 비판되고 보완되어 신학 방법론에 적용되어야 한다.

1. 신앙주의
신앙주의는 베크(Beck)가 말했듯이 신학자는 반드시 자기의 모든 자료를 성경으로부터, 오직 성경으로부터만 모아야 하며 철학적인 모든 이론뿐만 아니라 교회의 전통적인 교리들까지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며 신학자의 사명은 성경에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는 진리를 재생산하는 일뿐이며 그렇게 함에 있어 성경 그 자체가 제시하는 방법만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계몽주의자들과 슐라이에르마허의 이와 같은 신앙주의적 신학 방법에 대한 반동은 옳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신앙주의는 따르지 않는다. 이 방법론은 성경이 논리적인 체계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기록으로서 성경이 따르는 순서는 논리적이 아닌 역사적인 순서라는 사실, 신학은 인간 의식이 제것으로 삼아 소화하고 신학자의 자신의 시대에 맞는 언어 및 과학적 형식으로 표현 된 바 하나님에 관한 해설이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신학자는 결코 아무런 전제 없이 신학을 연구할 수 없으며 언제나 특정한 교회적 입장을 나타내고 어떤 개인적인 확신을 담고 있어서 그것이 자연히 자신의 저작에 반영된다는 사실 등을 충분히 고려치 않고 있다.74)

하지만 신학 방법을 전개함에 있어 성경에 대한 경솔한 배제는 삼가야 한다. 신학적 권위의 궁극적 원천은 하나님에게서 발견해야 한다. 사실상 종교적 권위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데 대해서는 신학자들 간에는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권위가 어떻게 인간에게 알려지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권위의 원천이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성경이다(눅 13:5; 행 1:5; 유다서 25; 롬 9:21; 13:1; 계 6:8;9:3,10,19 등). 인간은 각종 오류에 기울어져 있으며 인위적인 종교를 날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기록으로 남을 필요가 있었다.75) 그것이 성경이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는 위탁(또는 대리)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가 선지자/사도를 통해서 성경에 나타났기 때문에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권위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신자의 신앙과 실천을 위한 규범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신앙이나 실천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최종적 권위를 가지며, 성경의 가르침은 바로 하나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76)

제임스 바(James Barr)는 이렇게 언급한다. 세상에는 모종의 권위를 갖고 있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규범적인 것’이 최고이며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 우리가 만일 성경을 ‘규범적’이라고 한다면, 성경은 최고의 법정이요, 최고의 검정이며, 그 판결에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굴복해야 된다는 뜻이다.77) 앙겔(J. William Angell)에 의하면 규범적 권위는 세 가지 요소를 내포하는데 즉각적 이용성(immediate availability),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 궁극적 주장(ultimate claim)이 그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즉각적 이용성이란, 권위 있다고 제시된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어서 그것을 발견하거나 이용하는데 혼돈이나 어려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권위는 공적이고 개방되어야 한다. 그것은 숨겨져 있어서는 안 된다. 내재적 가치란, 권위의 가치가 자명하고 독자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권위의 진리성은 공리적(axiomatic)이어야 하고, 그 권위의 힘은 그 자신의 정합성과 제일성에서 유래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극적 주장이란, 인정된 권위가 최종적인 조정관이며, 최고의 법정이란 뜻이다. 어떤 주장의 진리성이나 정당성은 이 권위에 입각해 결정되어야 하며, 일단 결정되고 나면 그 결정에 순복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는 논의할 수 있겠지만 그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없다.78)

성경은 위와 같은 규범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고, 그 내재적 가치는 내증과 외증에 의해 잘 나타나있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권위 위에 군림하는 최종적 권위이요, 모든 신앙적 실천적 문제를 타결 짓는 최고의 권위의 것이다. 성경의 판결에 불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판결에 불복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모든 논쟁을 마무리짓는 하나님의 음성이요, 따라서 그것은 재판관이라고 불리는 것이 옳다.79) 그러므로 우리는 신학적 작업의 주 자료를 진리에 대한 유일한 표준이며, 순수한 규범인 성경으로부터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신학적 진리를 표현함에 있어 유일한 표준이며, 순수한 종교의 유일한 규범"으로 보지만 그러나 보조적 자료들로서의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 그리고 교회의 전통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조적 자료들의 긍정적 측면과 함께 그 한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준거 기준이 되고 아울러 신학을 함에 있어 성경이 그 일차적 자료가 되고 원전이 된다고 함에 있어서는 추호의 의심과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신학을 함에 있어 성경 하나만 그 자료로 삼을 수는 없다. 투레틴, 카이퍼, 바빙크, 톤웰, 기라르듀 같은 개혁주의자들도 성경을 가리켜 유일한 원리(principium unicum), 즉 신학의 유일한 원천이요 규범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80)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것은 신학자가 하나님의 일반계시로부터 하나님에 관한 어떤 지식을 전혀 얻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인간이 하나님의 일반계시로부터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은 그것을 오직 성경에 비추어볼 때 왜곡된 부분들이 교정되고 해석된다는 뜻이다.81)

2. 객관주의
계몽주의 이후 근대와 현대의 주도적 지식 이념은 객관주의로서82) 이것은 신학 방법론에도 영향을 끼쳐 신학적 작업에 있어 검증과 실증을 요구하고 있다. 객관주의에는 중요한 특색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 객관주의는 정확하게 형식화된 지식을 선호한다. 확정과 불확정의 경계선에 있는 지식은 확정할 수 있는 지식으로 환원하고 환원이 되지 않는 지식은 배제한다. 측정 가능하고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 가능한 것 외에, 부정하거나 모호한 것은 철저히 불신한다. 둘째, 객관주의는 환원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볼 때 수학과 물리학이 학문의 전형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모든 지식은 끝내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볼 때 오직 물리적 현실만이 참된 현실로 인정되고 환원할 수 없는 것은 참된 현실로 보지 않는다.83) 요컨대 객관주의는 형식화된 지식의 선호, 환원주의, 실증주의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84)

이와 같은 객관주의는 연구자의 인격성과 주체성을 배제하고 오직 ‘객관성’만을 유일한 가치로 수용하는데 이것을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간과 관련된 현상을 탐구하는 인문, 사회과학, 그리고 심지어 종교학이나 신학에까지 적용하고자 한다. 객관주의는 무엇보다도 인격적, 개인적, 주관적 요소를 과학적 지식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저들은 인격적, 개인적 요소는 지식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신빙 가능한 지식 체계에서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85)

이에 대해 폴라니와 같은 과학 철학자들이 객관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인간적인 지식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성경이 검증 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거부하고 신학에 있어 실증적 증거를 제시하라고 할 때 이와 같은 객관주의에 대해 폴라니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물음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첫째, 이론 구성과 수용은 관찰과 실험에 의존하는가? 둘째, 형식화된 지식만이 과학적 지식일 수 있는가? 셋째, 과학적 지식은 가치 평가를 배제하는가? 하는 것이다.

폴라니의 진술은 새로운 이론을 수용할 것인가 또는 거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될 때는 발견과 검증이 그렇게 선명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1920년대만 하더라도 상대성 이론은 실험을 통해 검증될 수 있는 예측을 그렇게 많이 내어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상대성 이론이 참된 것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까지 관찰을 통해 알고 있던 여러 현상을 단 하나의 합리적 원리를 통해 추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론이 수용되는 데는 관찰과 실험보다는 개별 이론이나 설명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힘이 더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폴라니는 강조한다.86)

그리고 무엇보다 객관주의의 맹점은 신앙주의에서와 같이 학문하는 학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문적 지식을 획득하고 수정하고 전수하는 과정을 만일 객관주의적 지식 이념이 표방하는 것처럼 그려본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87) 이것은 오직 성경 본문만을 신학의 권위적 요소로 인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신앙적으로 느끼고, 느낀 바를 해석하고, 지식으로 생산하는 인간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학적 작업은 일절 불가능하다.

삶과 지식의 유리, 성경과 이성의 유리, 성경과 경험의 유리, 이런 것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객관주의적 지식 이념이 산출한 결과다. 신학 하는 사람의 고유한 활동과 지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신앙주의 및 객관주의의 비판과 그 극복은 시급한 과제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객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신학의 학문적 지식의 성격을 가장 적합하게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론은 무엇인가? 『인격적 지식』 4장에서 폴라니는 지식을 개인적, 인격적 성취로 보는 대안적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학문이 지닌 여러 측면가운데 특별히 어떤 규칙으로도 말할 수 없는, 그래서 개인의 인격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측면에 대해서 그는 우리의 지식체계에 언제나 암묵적 차원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지식은 비록 현실과의 연관이 수없이 많은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해도 모종의 현실 연관성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암묵지의 개념이 지닌 존재론적 차원이다.88)

이것과 구별해서 암묵지의 ‘인식론적 차원’이 또한 거론된다. 어떤 지각 행위에도 우리 자신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사진을 판독하고 내시경을 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눈이나 손에 대해서 초점적으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이 대상을 향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몸에 대한 의식은 암묵적으로 항상 그곳에 수반되어 있다. 그것이 아무리 고도의 과학적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 지식을 가능케 하는 지적 수단이나 도구에 의존하듯이, 신뢰는 기본적으로 인격적 행위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말할 수 있다.89) 명시적 지식에는 늘 암묵적 요소가 조건으로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여러 요소들을 통합하는 ‘인격적 행위’가 여기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그가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결코 명확하게 말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언어, 우리가 사용하는 상징 언어들은 언제나 완전히 말 할 수 없는(ineffable)불확정성의 여지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엄밀하게 경계를 치고 규칙을 정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고에나 언제나 규칙과 경계선을 넘나드는 애매한 영역이 존재한다.90) 지식은 이런 의미에서 완전히 명시화 될 수 없고 언제나 암묵적 차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91) 이렇게 볼 때, 학문 방법론에 있어 일반적인 객관주의적 자세는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 모두에 맞지 않고 신학에 있어서도 그렇다.

학문적 방법에 있어 믿음은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서양 중세만 하더라도 말과 텍스트는 거룩한 것으로 신적인 기원과 권위를 가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근대 실증주의는 오직 경험과 이성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신념과 믿음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예술적 경험이나 신화적 상징들도 의미 없는 것으로 배제되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어떤 지식도 가능하지 않다. 믿음은 모든 지식의 원천이고, 이와 관련된 암묵적 동의와 지적 정열, 관용구의 공유, 문화 유산,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에서의 소속은 사물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형성하는 원동력이 된다. 요컨대 ‘믿음의 틀’이 없이는 어떠한 지적활동도 있을 수 없다.92)

이제 이 ‘믿음의 틀’이 무엇인가 좀 더 생각해보자. 암묵적 지식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지식, 즉 한 인격자가 성취한 지식이다. 한 인격적 개인이 없이는 지식은 성취되지 않는다. 암묵적 조건들은 오랜 과정을 거쳐 한 전통 안에서 한 인격적 개인을 통해서 형성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주의 지식 이념은 이러한 암묵적 요소와 그와 연관된 믿음 또는 신뢰를 제거해 버렸다. 객관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믿음’은 고작해야 주관적 의미만을 갖는다. 그러므로 객관주의는 만일 우리가 믿음을 지식의 기초로 삼는다면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한다.93)

그런데 어떤 믿음을 참된 것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 또는 방법이 문제다. 근대의 객관주의적 인식론은 이러한 기준 또는 방법을 토대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데카르트의 인식론은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에서 일반적으로 참된 것으로 수용된 이론에서도 이 토대를 찾을 수 없음을 데카르트는 경험하였다. 경험, 타인, 사람들의 의견, 그리고 사람들의 전통은 확고 부동한 지식의 토대와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진리와는 동떨어진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데카르트는 어떤 방식으로든 설득 당해서 갖게된 확신(신념)과는 달리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과학적 지식’을 얻고자 하였다. 폴라니의 이른바 ‘믿음의 프로그램’은 의심을 지식의 출발점으로 삼은 데카르트적 지식이론을 밑에서부터 뒤집는 이론이다. 여기서는 의심이 아니라 믿음이 지식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제 또다시 믿음을 모든 지식의 원천으로 인정해야 한다. 암묵적 승인과 지적열정, 관용구와 문화 유산의 공유, 같은 생각을 하는 공동체에의 귀속, 이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사물을 지배할 때 의존하는 사물의 본성에 관한 우리의 관점을 형성하는 힘들이다. 어떤 지성도 아무리 비판적이고 독창적이라 하더라도 그와 같은 믿음의 틀을 떠나 작동할 수 없다.94) 폴라니가 보여준 것처럼 자연과학조차도 인격적 통합 행위에 근거한 지식이라면 신학은 한층 더 치열한 인격적 참여가 개입된 학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신학적 작업을 위해 그가 말하는 사람의 인격적 신뢰를 넘어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믿음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신학은 증명할 수는 없으나 믿지 않을 수 없는 공리적 명제에서 출발한다.95)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이성적 공식화(rational fomulation)를 제공하려는 노력이며96) 방법론적으로 결합되고 연결된 인식의 체계적 통일을 지향하는 체계화된 지식이다. 주관주의와 객관주의는 이와같은 측면을 모두 무시했다.

Ⅳ. 결론
슐라이에르마허는 신앙주의적인 정통적 접근 방법은 권위적 신학이 되게 해서 인간의 창의력을 질식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교회의 교의와 하나님을 혼동케 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일단 계몽주의의 반란은 옳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울러 계몽주의로 말미암은 객관주의적 접근방법은 신학을 일종의 종교 철학이나 별다를 것이 없게 만들었다는 것을 직시했다. 슐라이에르마흐는 신앙주의와 객관주의 이 두 가지 대안들을 대신하여, 신학을 하나님에 대한 인간 경험의 성찰로 간주함으로써 신학의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그에게는 영원하고 권위적인 명제들이 아닌 종교적 경험이 신학적 성찰의 진정한 근거가 되게 되었다.97)

그는 인간을 희생시키고 하나님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양자 모두를 어떤 고유의 방법으로 묶을 수 있도록 기독교 교리의 재편을 시도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기초를 실천 이성에 두려 했던 칸트의 시도나 절대 정신이 역사를 통하여 진행하는 것을 탐색하는 새로운 사변적 합리주의에 신학의 기초를 놓으려고 했던 헤겔의 노력과 함께, 계몽주의의 여파 속에서 신학을 시도했던 주요한 노력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슐라이에르마흐의 신학자적 위대성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인간의 감정과 직관을 종교의 본질로 규정한 것은 칸트나 헤겔이 행위와 사유를 인간 정신의 종교적인 기능으로 간주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것이며 종교적인 감정과 감각적 감정을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았다. 따라서 개별적 직관과 감정을 강조함으로써 주관주의로 흐르고 말았다. 그는 또한 신앙주의와 객관주의를 바로 극복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감정’은 신앙주의와 객관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세운 신학적 수단이다. 감정은 신학의 자료가 될 수는 있지만 방법론적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학적 권위의 원천을 경험에서 발견하려고 하는 노력은 필연코 주관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98) 우리는 이를 조심해야 한다.

신학 방법론에 있어 주관주의뿐만 아니라 객관주의, 신앙주의도 문제가 된다. 객관주의는 개인의 정감적 요소와 참여를 배제하고 연구 대상으로부터의 거리와 분리를 선호한다. 그러나 ‘주관적’요소란 것은 학문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이 과학사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감정, 열정 등은 지적 활동에 매우 중요한 몫이 있다. ‘주관적’요소에는 과학을 과학으로 형성하는 논리적 기능이 있다.99) 객관주의는 이 주관성을 거부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또 신앙주의의 문제는 성경만을 신학적 자료로 삼는 것이다. 성경이 비록 신학의 제 일차적 자료이긴 하지만 오직 명시된 규칙만이 중요하다면 학자가 개입된 학문적 노력과 판단은 여기서 아무런 필요가 없게 된다. 성경해석은 이성을 떠나서는 이루어 질 수 없다. 또한 신학적인 주장이 성경과 이성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거의 경험적 기반이 현재의 경험적 요소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신학적 주장이 타당성을 지니게 된다.100)

하나님의 초월성만을 강조한 균형 잃은 신앙주의는 계몽주의를 낳았으며, 이성으로 기울어진 계몽주의적 객관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왜곡시켰으며, 계몽주의로부터 하나님의 초월성 위협을 방어하고자 내재성으로 치우친 신학은 주관주의로 흘러 성경의 규범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계몽주의의 영향아래 발전된 객관주의는 오늘날 과학주의 접목되어 또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의 초월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상적 흐름은 오늘날 온전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모두를 위협하는 현대 신학적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앙주의, 객관주의, 주관주의를 모두 극복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대한 균형 있는 신학적 작업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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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신학 방법론에는 크게 위로부터의 신학과 아래로부터의 신학이 있다. 위로부터의 신학은 신의 계시와 은총으로부터 시작해서 신학적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고 아래로부터의 신학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서 신학적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신학은 연역적(Deductive)이고 아래로부터의 신학은 귀납적(inductive)이다. 주관주의적 신학 방법론은 아래로부터의 신학에 속한다. 또 신학방법론은 그 유형에 있어 다양하다. 해석학적 신학 방법론, 철학적 신학 방법론, 경험적 신학 방법론, 종교 사학적 신학 방법론, 혹은 그 외에도 여러 유형의 신학 방법론이 있을 수 있고, 또 학자에 따라 다양한 신학 방법론이 있을 수 있지만 본 논문은 신학 방법론 중에서도 그 원리적 측면을 중심으로 다룬 것이다.
2 크리스찬은 슐라이에르마허 없이 19세기와 20세기 신학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그를 새로운 신학과 새로운 학파가 아닌 새로운 시대를 태동하게 했던 소수의 신학자 가운데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C. W. Christian, Friedrich Schleiermacher, 11-12.
3 칸트, 헤겔, 슐라이에르마허 이후 칼 바르트, 에밀 브룬너, 루돌프 불트만 등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초월성이 강조되다가 폴 틸리히와 과정신학자들에게서 다시 하나님의 내재성이 강조되고, 디트리히 본훼퍼를 비롯한 일부 세속신학에서는 급진적인 내재성이 해방신학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위르겐 몰트만을 통해 나타난 희망의 신학에서의 초월성과 판넨베르그의 이성과 희망 안에 계신 하나님의 초월성,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을 통한 하나님의 내재성 강조 등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오가는 신학적 간격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바르트 같은 경우 슐라이에르마허의 내재성에 반해 하나님의 자유로서의 초월성을 강조했으며, 그는 슐라이에르마허 때문에 일생을 고민하고 그를 극복해보려고 시도했던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Karl Barth,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trans., Douglas Horton(Boston: The Pilgrim Press, 1928), 43.; Karl. Barth, The Theology of Schleiermacher(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2), XIII-XVI.
4 그에 대한 평가는 때로 극과 극을 달리는데 리차드 니버는 19세기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 사상에서부터 발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Richard R. Niebuhr, "Friedrich Schleiermacher," A Handbook of Christian Theologians(Nashville: Abingdon Press, 1965), 17. 게리쉬(B. A. Gerrish)도 그의 책제목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슐라이에르마허를 현대신학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B. A. Gerrish, A Prince of the Church: Schleiermacher and the Beginning of Modern Theology(London: Fortress Press., 1984). 크리스챤(C. W. Christian)은 그를 자유주의 신학자의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너무 편협된 것이며 그를 19세기와 20세기의 자유주의 신학보다 더 큰 테두리에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슐라이에르마허를 마치 칸트나 헤겔이 철학에 있어 차지하는 영향과 같이 신학계에서의 슐라이에르마허의 위치가 그러하다고 했다. 다시 말해 신학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로 그를 평가하고 있다. C.W. Christian, Friedrich Schleiermacher(Waco: Word Books, Publisher, 1979), 12. 그러나 슐라이에르 마허가 후대 학자들에게 우호적인 평가만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19세기의 대이단자라는 비판과 동시에 현대신학의 잘못된 방향의 책임이 그에게 돌려졌다. 특히 바르트 학파가 이런 입장을 대변했으며 브룬너, 매킨토쉬 등이 이에 속한다. Stephen Sykes, Friedrich Schleiermacher(Richmond: John Knox Press, 1971), 45-46.
5 C. W. Christian, Friedrich Schleiermacher(Waco: Word Books, Publisher, 1979).
6 B. A. Gerrish, 25.
7 Robert R. Williams, Schleiermacher the Theologian(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8),1.
8 J. Arundel Chapman, An Introduction to Schleiermacher (London: The Epworth Press, 1932), 158.; Carl E. Kreig, "Schleiermacher: on the Divine Nature," Religion in Life, 42(Winter, 1973), 515.
9 Geoffrey. W. Bromiley, Historical Theology(Grand Rapids, Michigan: Eerdmans, 1978), 364.
10 Hubert Cunliffe-Jones의 책 A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Edinburg: T&T Clark, 1997), 463을 보라. 슐라이에르마허는 하나님의 일상적 행동을 표현하기 위한 계시라는 용어에 대해 논쟁을 벌이지 않으나 그는 계시가 인지적 인간에게 작용하는 것으로도 생각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계시를 본질적으로 교의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계시를 개인적 의식으로 인한 사고의 표현으로 보며 교의는 또 함축적이라서 계신 된 것이나 계시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교의가 아니라고 했다. Friedrich Schleiermacher, The Christian Faith, edited by Mackintosh and J. S. Stewart(Edinburg: T. & T. Clark, 1989). section 10.; Hubert Cunliffe-Jones, A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490에서 이에 대해 잘 분석하고 있다.
11 그것은 그 이후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을 위해 방향을 설정해 주었다. 그의 동조자들뿐 아니라 그의 반대자들도 신학적 지식을 이룩하는 데 쓰이는 바, 그가 형성시켜 놓았던, 이 새 방법 때문에 그를 자유주의 신학의 원조로 인정하고 있다.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20th Century Theology(Illinois: Inter Varsity Press, 1992). 57.
12 Terrence N. Tice, "Schleiermacher’s Theological Method: with Special Attention to His Production of Church Dogmatics," Unpublished Ph.D. dissertation(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1961), 347, 510.
13 Van A. Harvey, "A Word in Defence of Schleiermacher’s Theological Method," The Journal of Religion, VolXIII(1962), 153.
14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20th Century Theology(Illinois: Inter Varsity Press, 1992).
15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18.
16 Stuart Hampshire, The Age of Reason 17th Century Philosophers(New York: The New American Library of world Literature, 1956), 11.
17 그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본체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으로 설명했는데 하나님에 대해 ‘그는 그 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존재’(that-than-which-on-greater-can-be-thought)라고 했다. "나는 믿기 위하여 아는 것이 아니고 알기 위하여 믿는다"는 그의 말도 이 같은 논리의 기 위에 나온 것이다. 정수영, 『새교회사』(서울: 규장, 1991). 307.
18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17. 그런데 나중에 슐라이에르마허는 그의 책 The Christian Faith의 Title page에 "He who has not experienced will not understand"라고 적어놓고 있다. 게리쉬는 이에 대해 슐라이에르마허가 당시 계몽주의 이성 시대에 기독론과 관련하여 안고 있는 지적인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B. A. Gerrish, A Prince of the Church: Schleiermacher and the Beginnings of Modern Theology, 38.
19 Ibid., 16.
20 하지만 이성의 시대는 사실상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Critique of Pure Reason, 1781)이 출간될 쯤에 이르러 끝이 나게 된다. 이 책은 이성의 시대가 가지고 있던 많은 전제들의 절정이자 그 끝장을 본 도전이 되고 말았다. 역사가들은 18세기의 마지막 몇 해를 계몽주의 시대가 마감되는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Ibid., 17.
21 Hubert Cunliffe-Jones는 17세기와 18세기에 갖가지 상황이 신학적 사고의 지적 풍토를 변화시켰는데 그것들 가운데는 유럽 문화권이 아닌 곳과의 접촉을 의미하는 지리적 발견, 뉴턴의 과학적 발견, 30년 전쟁과 서구교회의 분열, 휴머니스트 전통 등이 있다고 했다. 그의 책 A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Edinburg: T&T Clark, 1997), 462.
22 1618∼1648년 독일을 무대로 그리스도교와 가톨릭교 간에 벌어진 종교전쟁. 그 기간은 대체로 4기(期)로 구분되는데 전반의 2기(1618-1629)는 종교적 색채가 짙고 후반의 2기(1630-1648)는 정치적 색채가 짙다.
23 Ibid., 18.
24 Stuart Hampshire, 17.
25 Justo L. Gonzales,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Nashville: Abingdon, 1975), 3:297.
26 브레슬라우·예나·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의 제자였다. 라이프니츠의 추천을 받아 1707년에 할레대학교 수학교수로 임명되었지만, 독일 루터 교회가 신앙심을 높이기 위해 시작한 종교운동인 경건주의 신봉자들과 신학 논쟁을 벌인 결과 1723년에 대학에서 쫓겨났다. "볼프"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2001. 11. 10자 기사]
27 로크는 그의 책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 as delivered in the Scriptures (1695)에서 성경에 나타난 직접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주장하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입장과 단순한 윤리적 유신론과 조화시키려 했다. 그것은 르네상스 이후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비평의 힘과 이성주의자의 태도를 받아들인, 그러나 반대로 기독교 종교적 전통의 가치의 결심과 열정에 달라붙어 있는 함락된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일례다. 이에 대해 뉴먼(John Henry Newman)은 essay on liberalism in Apologia Pro Sua Vita(1865)에서 이를 ‘반교의적 원리’(Anti Dogmatic Principle)라고 불렀다. Hubert Cunliffe-Jones, A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Edinburg: T&T Clark, 1997), 463.
28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19.
29 Hampsire, Age of Reason, 12-13. Isaiah Berlin, The Age of Enlightenment(Newyork: Mentor. 1956), 16-17.
30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21.
31 Ibid., 27.
32 David Hume은 계몽주의 시대의 회의주의의 대표자이다. 이것의 전개에 대한 토론을 위해서는 Arthur CFushman McGiffert, Protestant Thought Before Kant(London: Duckworth, 1911), 230-251을 참고하라.
33 Gotthold Lessing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Lessing의 견해에 대한 요약을 위해서는, William C. Placher, A History of Christian Theology(Philadelphia: Westminster, 1983), 249-250를 보라.
34 McGiffert, Protestant. 253.
35 칸트는 계몽주의를 극복하고 종교의 초점을 ‘순수이성’의 영역(오관에 기초한 인식의 영역)에서 ‘실천이성’의 영역(도덕적으로 조건지어진 존재로서의 인간의 경험에 기초한 인식의 영역)으로 옮겨감으로써 초월성과 내재성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려 했다. 칸트는 종교의 적합한 영역으로서 삶의 실천적 영역, 즉 도덕적 영역을 제시한 것이다. 그의 실천이성이라는 것은 사고하는 자가 감각 경험을 가지고는 신이라든가 불멸하는 영혼,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같은 초월적 실재를 논증할 수 있는 능력에 큰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신앙을 인간이성의 또 다른 영역, 곧,‘실천적’ 측면에서의 이성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실천이성 안에 그 적절한 기초를 두고 초월성과 내재성 사이에 새로운 균형을 맞추어 보려 했다.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25. 하지만 그는 그러한 이성을 인간 실존의 도덕적 측면과의 관계 안에서만 보는 한계를 안고 있다. 한편 칸트도 "계몽주의란 무엇인가?"(What is Enlightment?)라고 묻고 그 답변으로서 계몽이란 외적인 권위로부터,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오성을 사용하기를 꺼려하는 것으로부터의 탈피라고 주장했다.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arung?(Berlinsche Manatsschrift, December, 1784) (Gesammelte Schriften, Berlin, VIII, 35.); 콜린 브라운, 『철학과 기독교 신앙』, 문석호 역(서울:기독교 문서 선교회, 1989), 144. 칸트는 나름대로 인간의 지식에 대한 계몽주의적 접근을 확립하기 위한 시도로서 『순수이성 비판』(Critique of Pure Reason: 1781)을 출판했다. 그러나 결국 칸트는 세계를 물자체계와 현실계로 이원화함으로 하나님의 내재성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으로 흐르고 말았다. 칸트의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신학은 인간 중심적이다. 계몽주의에서 말하는 순수이성이든 칸트가 말하는 실천 이성이든 듣게 되는 신의 음성은 인간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소리인 것이다. 초월적 신은 인간의 실천적 이성의 심연 어딘가에서 발견되는 정언 명법의 음성 속으로 묻혀버리게 된다.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31.
36 계몽주의로 인한 하나님의 초월성 위협에 대한 제 2의 대안은 또 한 명의 위대한 철학자 헤겔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는 이 초점을 지적 또는 사변적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헤겔은 이성시대의 경험론자들이 옹호했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대한 강조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오관적 경험이 지식을 위한 유일한 기초라든가 또는 오관적 경험으로부터 관념을 형성하는 것이 지식을 획득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등의 주장은 부인했다. 헤겔은 실재란 활동적이며 발전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G. W. F. Hege1, The Philosophy of Right and Law의 머리말. 정적 존재에 관한 전통적 개념을 그는 과정이라는 동적 개념으로 대치 시켰다.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34. 이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내재성에 있어 헤겔의 견해는 후에 통상 만유재신론이라 불리는 많은 신학적 대안을 위한 모형을 제시하였다. 결국 이후의 모든 만유재신론적 표현은 모두 헤겔을 좇는다.Ibid., 39.
37 Schleiermacher, The Christian Faith, section 3.
38 Hubert Cunliffe-Jones, 503.
39 Ibid.
40 Novalis, Schriften, vol. 2(Blutenstaub)(Stuttgart, 1965), 418.
41 Novalis, Das allgemeine Brouillon, 노발리스의 Gesammelte Werke, vol. 4(Zurich, 1946), 23.에 있다.
42 Friedrich Schleiermacher, Reden uber die Religion, ist edition, R. Otto(ed.)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7), 49. 이 책은 1799년에 초판, 그리고 1806, 1821, 1831년에 수정판이 나왔다. 여기서는 Rudolf Otto가 편찬한 책(Gottingen, 1967)에서 인용하고 Reden으로 약칭한다.
43 Reden, 54-55.
44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41.
45 Keith W. Clements, 24.
46 마르틴 레데커, 『슐라이에르마허의 사상과 생애』(서울: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5), 43.
47 마르틴 레데커, 41.
48 목창균,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 사상』(서울:한국신학 연구소, 1993), 25.
49 Christian, 184.
50 Ibid., 38-39.
51 Alasdair I. C. Heron, A Century of Protestant Thought(London: Lutterworth Press, 1980), 12.
52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43.
53 모라비안 교단은 종교 개혁자 후스(J. Hus)의 감화로 15세기 모라비아와 보헤미아 지방에서 생겨난 보헤미안 형제단으로부터 기원하는데 17세기 30년 전쟁 당시 로마 카톨릭의 박해로 인하여 흩어졌으나 1725년 작센 지방의 헤른후트(Herrnhut)에서 진젠도르프 백작에 의해 재조직되었다.
54 목창균, 19.
55 Gerish, Tradition and the Modern World:Reformed Theology in the Nineteenth Century(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1978), 16.
56 Friedrich Schleiermacher, Aus Schleiermachers Leben in Briefen, Vol. I(Berlin: Druck und Verlag von Georg Reimer, 1860-1863), 294-295.
57 목창균. 20.
58 Richard B. Brandt, The Philosophy of Schleiermacher(Westport: Greenwood Press, 1971), 21.
59 C. W. Christian, Friedrich Schleiermacher(Richmond. John Knox Press, 1971), 36-37.
60 Martin Redeker, Schleiermacher: Life and Thought(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3), 10.
61 Friedrich Schleiermach, On Religion: Addresses in Response to its Cultured Critics, trans. Terrence N. Tice(Richmond: John Knox, 1969), 12.
62 Friedrich Schleiermach, On Religion: Addresses in Response to its Cultured Critics, trans. Terrence N. Tice, 300.
63 Friedrich Schleiermach, The Christian Faith, 2d ed., ed. H. R. Mackintosh and J. S. Stewart(Philadelphia: Fortress, 1928), 76.
64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44.
65 Bromiley, 363.
66 W. Dilthey, Leben Schleiermachers, vol. II-2(Belin: Walter de Gruyter, 1996), 577.
67 Keith W. Clements, 24.
68 목창균, 70.
69 Brandt, 106-107.
70 Ibid., 116.
71 목창균, 77.
72 Friedrich Schleiermach, The Christian Faith, 390.
73 Schleiermach, The Christian Faith. 594.
74 루이스 벌콥 , 68f.
75 김종흡 외, [기독교 강요 상](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4), 131.
76 장두만,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서울: 요단출판사, 1993), 117.
77 James Barr, The Bible in the Modern World, (London: SCM Press, 1973), 23.
78 J. William Angell, "The Place of Authority among Baptists," Greek Orthodox Theological Review 22 (Winter 1977): 447.
79 Robert D. Preus, The Inspiration of Scripture, (Edinburgh: Oliver & Boyd, 1957), 120.
80 A Kuyper, Het Werk Van den Heiligen Geest, Amsterdam, 1838, 405-415; Bavink, Gereformeerde Dogmatiek I, Kampen, 1906, 41-103. Thornwell, Collected Writings, Richmond, Va., 1871, 39-52; Girardeau, Discussion of Theological Questions [Adoption], Richmond Va., 1905, 45.
81 루이스 벌콥 『조직신학 상』, 권수경 · 이상원 역(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8), 67.
82 강영안, 『통일과학 이념과 인문학』(한국철학회) 제 51집 (1997여름) 343-374. 강영안, 『근대 지식이념과 인문학』, (한국 철학회) 제 57집(1998년 겨울), 95-127. 1960년 대 이후에는 현상학과 해석학적 방법론, 또는 맑스주의적 관점과 구조주의 이론이 인문 사회과학에 도입되면서 실증주의적 양적 연구 방법을 지양하고 질적 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기는 했지만 현대 학문은 아직도 전반적으로 객관주의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강영안, "기독교수는 누구인가," 6.
83 강영안, "기독교수는 누구인가," 6.
84 Ibid., 6f.
85 17세기 이후 서양은 회의와 비판을 기본적 지적 태도로 삼았고 어떤 지식이라도 신빙성이 있으려면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배제된 객관성만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오직 명석 판명하게 누구나 지각할 수 있는 것만 지식으로 생각하고 그 외 다른 것은 모두 다양한 의견으로 생각한다면 비판적 검토를 거치지않은 것들, 전통, 권위, 이와 같이 지식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은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강영안, "기독교수는 누구인가," 8f. 17세기 이후 문화는 대체로 이와 같은 방향으로 흘렸고 전통과 권위는 실상 모두 부정되었다. 그 결과, 엄밀한 과학적 지식 외에 모든 가치들 예컨대 종교적 신념이나 도덕적 의식, 미적 감각 등은 모두 주관적인 것으로 분류되고 객관 영역, 즉 공적 공간에서는 사회적 유용성 외에 그 자체로서 어떠한 규범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Ibid., 8.
86 Richard Allen, Polanyi(London: The Claridge Press, 1990), 14.
87 강영안, "기독교수는 누구인가," 7f.
88 M. Polanyi, The Tacit Dimension(Garden City, New York: Double day, 1966), 13.
89 Ibid., 4.
90 M. Polanyi, Personal Knowledge, 87.
91 Richard Allen, Polanyi(London: The Claridge Press, 1990), 39-40.
92 M. Polanyi, Personal Knowledge, 266.
93 강영안, "기독교수는 누구인가," 17.
94 M. Polanyi, Personal Knowledge, 266.
95 하인리히 오트, 「신학해제」 김광식 역(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4), 81.
96 H. Ray. Dunning, Grace, Faith & Holiness(Kansas city: Beacon Hill press, 1998). 9.
97 Stanley J. Grenz & Roger E. Olson, 44.
98 ISBE, s.v., "Authority," by T. Rees, 1:334; Ramm,P.18;G. Herbert Livingston, "Biblical Authority," Asbury Seminarian 30 (Jan. 1975):5; Bruce Shelley, By What Authority? The Standards of Truth in the Early Church, 70-73; P. T. Forsyth, The Principle of Authority, 53-54; EDT,s.v., "Bible, Authority in," by G. W. Knight, 137.
99 강영안, "기독교수는 누구인가," 12.
100 김성원,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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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사항

주만성
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조직신학



슐라이에르마허의 주관주의 신학 방법론
  
제어번호 30009440
저자명 주만성  
학술지명 진리논단  
권호사항 Vol.- No.7 [2002]  
발행처 천안대학교  
자료유형 학술저널
수록면 195-220 (26쪽)  
언어 Korean  
발행년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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