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icle Bank

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9/07/06 (16:00) from 61.73.110.38' of 61.73.110.38' Article Number : 588
Delete Modify 왕치현 Access : 3881 , Lines : 555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Download : Whang-Erinnerung.pdf (375 Kbytes)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 프리쉬의 드라마 󰡔안도라󰡕의 구조
왕치현(인하대)
1. 들어가며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기억이란 기억의 여신인 므네모시네 mnemosyne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기억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그녀의 딸들이자 학예의 여신인 뮤즈 Muse들
의 창조물을 즐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음은 멜로디로 이루어지기 전에 흩어
져 버릴 것이고, 모든 시어는 한편의 시가 되기 전에 귓전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1)
연극 또한 이와 같은 이유에서 기억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시와 음악이 그러하듯이 연극이 연극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관객의 기억을 필요
로 한다. 무대 위의 사건들이 플롯과 줄거리로 구성되기 위해서도 기억이 필요하고,
또 이 줄거리가 갈등과 카타르시스를 유발하기 위해서도 기억이 필요하다. 기억은 무
대 위의 언어와 행위를 흩어진 파편으로 이해하지 않고 연결된 의도로 이해하기 위
한 필수적인 도구이자, 이를 관객의 내면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하지만 무대 위의 사건이 관객의 내면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관객의 개인적 기억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무대 위의 사건을 무대 밖의 현실과 연결하는 기억은
관객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사회적인 기억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무대 위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그 사건의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기억의 메카니즘을 동원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은 더 나아가서 무대 위의 사건을 자신의 과거의 체험, 또는 역
사적 사실 등과 대비하게 되는 경우에는 공연시간 동안의 기억을 초월하는 보다 광
범위한 기억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 경우의 기억은 연극이 공연되는 객관적인 시
* 이 논문은 인하대학교의 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집필되었음(31482-01).
1)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고하였음. 다우베 드라이스마, 정준형(역): 기억의 메타퍼. 서
울: 에코리브르, 2006. P. 13.
17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간을 뛰어넘는 역사적인 기억이라 하겠다.
연극은 이러한 점에서 기억의 예술이다. 무대 위의 몸짓과 언어들이 의미 있는 하
나가 되기 위해 기억이 필요한 예술이며, 무대가 선택한 사회적 주제들이 무대 위에
서 살아나기를 희망하는 기억의 예술이며, 또한 이러한 것들이 잊혀지지 않고 무대와
관객의 내면, 그리고 역사 속에 살아 숨쉬기를 추구하는 기억의 예술이다. 결국 연극
은 기억을 사용하는 예술이자 기억을 저장하는 수단이다.
인간은 기억의 소멸에서 오는 무상함에 맞서고자 기억의 보조수단을 고안하기 시
작하였다.
가장 오래된 기억 보조수단은 ‘이미지’이며, 그 후 ‘문자’가 고안되었다. 상형문자,
도형, 초상화 같은 온갖 종류의 그림과 부호가 기억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되었고, 차
츰 문자가 이를 대체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기억의 보조수단은 또한 그에 상응하는 기록과 저장의 도구를 필요로 하였
다. 고대에 점토나 밀랍판에서 출발한 저장 도구는 근래에 이르러서 종이를 가장 애
용하는 도구로 선호하게 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미지를 직접 기록하는 인공
기억이 점점 복잡하고 기술적으로도 정교해지면서 사진이라는 기억수단이 나타났으
며, 1895년부터는 영화촬영술의 발명으로 움직이는 이미지까지 기억이 가능해졌다.
오늘날에는 카세트레코더, 비디오, CD, 컴퓨터 메모리, 홀로그램 등 수많은 인공기억
들이 시청각 정보를 저장한다. 이미지와 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었으며,
한 세기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로 기억되고, 반복, 재생된다.
이러한 인공기억들은 인간의 기억을 보조하고 때로는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기억
과 망각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변화시켰다.2) 기억의 저장 가능성은 기억의 가치와
의미를 증대시켰을 뿐 아니라 기억의 기능 또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서 본 논문은 드라마와 기억의 관계를 밝혀보고자 한다.
특히 프리쉬의 드라마가 역사적 과거에 대한 기억과 이를 통한 새로운 기억 창출이
라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과의 연관성 하에서 연구된 경우가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프리쉬의 작품 󰡔안도
라󰡕를 분석의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2) 참조. 다우베 드라이스마, 정준형(역): 같은 책. P. 9~10.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175
이 연구를 통해 기억과 드라마 드리고 기억과 역사의식의 연관관계를 어느 정도
밝힐 수 있기를 희망한다.
2. 기억과 시간
시간이라는 문제는 고대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아우구스티누스,
보에티우스,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부터 현대의 베르그송, 하이데거, 후설에 이르기까
지 수많은 서양 철학자들이 규명하려고 시도해 온 문제이다.
다양한 학설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시간은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객관적 시간
과 시간을 의식함으로 얻어지는 경험적 시간으로 나누어진다.
객관적 시간은 자연 과학에서 말하는 시간이다. 뉴턴에 따르면 우리는 폭과 높이
와 깊이로 정의되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 뉴턴에게 공간은 절대이고 시간은 우
주에서 균등한 속도로 흐르는 독립적 차원을 갖는 절대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고전
물리학은 시간을 일직선으로 간주한다. 일직선으로 이해된 자연 과학적 시간의 핵심
은 19세기까지 절대의 진리로 받아들인 뉴턴의 역학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절대시간의 개념에 의심을 품게 되었고 공간조차도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생각할 때 절대적인 것은 유일하게 광속뿐
이었다. 시간의 상대성은 입자 물리학에서도 실험적으로 입증되어 왔다. 시간과 공간
은 구별할 수 없는 연속체인 ‘공간-시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뉴턴의 3차원 공간의
세계는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는 4차원 시간의 우주로 대체 되었다. 결과적으로 현
대 물리학에서 현상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으로도 명확히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3)
이런 객관적 시간, 다시 말해 결정론적 시간은 현재, 과거, 미래를 일직선상의 점
으로 생각하며, 이런 점들은 또한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인과론적
결정론에서는 현재, 과거, 미래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과거는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지만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은 아니다. 따라서
인과론적 결정론은 인간 의식 속에 반성되고 수정되는 의식의 시간과는 다르다.4)
3) 참조. 김규영: 시간론. 서울: 서강대학교, 1987. P. 7~23.
17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객관적 시간에 의해 측정될 수 없는 시간이 내적 경험을 통해 의식에서 얻어지면
그것은 주관적 시간이 된다. 주관적 시간은 양으로 치환할 수 없는 질의 개념이자 인
간의 심리적 경험에서 출발하는 시간으로, 현대 작가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온 시
간은 바로 이 주관적 시간이다.
베르그송은 주관적인 시간을 문학의 주된 기법으로 확립한 철학자이며, 그의 지속
이론은 프루스트나 페기 그리고 윌리암 포크너 같은 작가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활동은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시간보다 ‘의식의 직접적인 소여’(베르그송)의
시간과 밀접히 관련된다고 볼 때 일반적으로 시간에 대한 문학의 관심은 베르그송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5)
그러나 객관적, 주관적 시간의 구분을 떠나 시간을 해명하려는 인간이 시도는 본
질적으로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불가해한 작업이다. 시간의 문제는 시간의 본질에 있
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관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
다. 시간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면 인과론적 계기성만이 남지만 인간의 경험과 결부하
여 내면적 의식의 관점으로 볼 경우, 시간은 계기성을 초월하여 보다 광범위한 가능
성을 갖게 된다. 이 경우 내면적 의식의 요체는 기억이며, 따라서 시간과 기억은 매
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6)
기억이 시간과 자아의 구조를 해명하는 관건이 됨을 최초로 인식한 사람은 아우구
스티누스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의 앞부분에서 기억이 한 개인이 살
아온 일생을 어떻게 재구성하여 작용하는가를 ‘문학적’ 형식으로 보여준 후 자기의
시간론을 전개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기억의 힘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마음이 그 무수한 것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기억은 그것들을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억 속을 달리고 날
아도 어디도 끝은 없다. 숙명적인 인간에게조차 기억은 그처럼 크고 위대한 생명의
4) 참조,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서울: 민음사, 1993. P. 34~39. 예를 들어 데리다는 nun(now)
을 點(점)(points)들의 연쇄로 보았다(Margins of Philosophy, 37).
5) 주관적 시간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 김영민: 현상학과 시간. 서울: 까치, 1994.
6) 기억이 인간의 마음이나 자아와 관련지을 때 과거는 기억 속에 남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
억(memoria)속에 남은 과거를 “과거의 현재(a present of things past)”라고 부른다. 또한 미래는 아
직 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다가올 것을 기대(expectation)하여 존재하므로 미래도 “미래의 현재(a
present of things future)”라고 부른다.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177
힘을 지니고 있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을 통해서 내
면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기억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보
여주었다. 이것은 기억을 통해 자아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기억의 기능과 유사하
다. 기억이 시간과 관계될 때 기억의 중요성은 부각된다.
베르그송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기억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관심을 집중시킨 대
표적인 철학자이다.
베르그송은 그의 두 번째 저서 󰡔물질과 기억 Matter and Memory󰡕(1913)에서 기억
은 의식과 무의식, 생명과 물질을 양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한
다. 라이프니쯔는 물질을 순간적인 정신이라고 정의했지만, 베르그송은 “물질은 끊임
없이 다시 시작하며 현재에 존재한다. 이것이 물질의 근본 법칙이며 이때 필연성을
성립한다.”고 정의한다. 󰡔물질과 기억󰡕에서 베르그송의 주된 목적은 의식의 본질은
기억이며, 이 기억의 존재는 신체 질서와 무관한 독자적 실재성을 가지고 있음을 밝
히는데 있다.7)
베르그송에 의하면 의식은 언제나 실천적인 생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의식은
끊임없이 행위와 그 결과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결핍된 존재인 인간이 끊임없이
행동하려 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현재의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고 행위에 빛을 줄 수
있는 실용적인 기억만을 떠올린다. 행동에 필요하지 않는 순수 기억은 억제한다.
하지만 실용적인 기억은 현상에 대한 부분적 지각밖에 제공하지 못하는데 반해 순
수 기억은 실재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인식을 제공한다. 결정론의 시간은 행동에 유
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기계 기억이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시간으로
실재에 대한 부분적 인식만을 제공한다. 그러나 순수 기억은 인과론적으로만 작동하
7) 참조. 김진성: 베르그송 연구. 서울: 문학과 지성, 1985. P. 165. 베르그송은 플라톤 이래 기억의
문제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철학자였다. 베르그송의 지속하는 자아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
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자아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성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덧없는 만물 유전의 변
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왜냐하면 지속의 질적 변화와 창조를 가능케 하는 근거는 바로 과거의 보
존, 즉 기억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속은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흐르고 순수한 변화를 의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흐름을 지배하는 항존성의 인자를
포함하고 있다. 시간 속의 물질세계는 부단히 소멸하여 변한다. 그러나 생명과 의식은 과거를 자
기 내부에 보존함으로서 물질적 시간성인 미래로만 진행하는 시간을 극복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힘은 생물학적, 심리학적 의미에서 기억이다.
베르그송의 글은 “물질과 기억” 236쪽의 원문은 김진성의 책에서 재인용.
17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던 과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아를 회복하게 만드는 기억이다.
기억은 지금까지 죽었던 과거의 실재 세계를 만나게 해준다. 이런 기억은 현실에
있어서 우연한 감각을 통해서 생긴다. 이런 감각으로 인해 자아는 시간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기억을 마음속에서 일깨운다. 이 기억은 시간의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
시켜 주며, 창조적인 힘을 통해 우리에게 잃어버린 과거를 대면하게 해준다.
데리다 역시 시간과 기억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조금 전의 말은 다음의 말에 흔적으로서 보존 또는 유보되어 있으며,
이때 흔적으로서의 보존이 바로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은 기억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인간의 뇌에 새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따라서 기억은 곧 유
보이며 보존이다.
따라서 데리다에 의하면 현재란 기억과 기대의 흔적 사이에 있는 주름에 불과하
며,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로 분열되는 시간을 인식하고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
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기억도 차이이며 간격도 차이이기 때문이다.8)
3. 기억과 역사
기억은 과거를 표상하는 한 양식이며, 과거의 일을 재현하는 능력이다. 현재의 시
점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회상과정에 기초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의 과거표상
에 수정이 가해지기도 하고, 또는 과거표상이 현재를 지배하기도 한다. 결국 기억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9)
기억의 과정에서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재현되는가 하는 문제에는 기억주체의 현
재적 관심과 기억행위의 현재적 맥락이 개입된다. 그러므로 개인기억이든 집합기억
이든 기억은 그것이 존재하는 시공간에 따라 광범위한 변이를 보이게 되고, 그 결과
단일 사건에 대해서 상호모순적인 복수의 집합기억이 성립할 수도 있는 것이다.10)
8) 데라다의 ‘기억’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서울: 민음사, 1993.
9) 기억의 형태, 종류, 메카니즘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하였음. 알란 J. 파킨, (이영애/박희경
역): 기억의 실제와 응용. 서울: 시그마프레스, 2001.
10) 나간채 외(공저): 기억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 서울: 역사비평사, 2004. P. 11~23.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179
할프바흐 Halbwach가 언급했듯이 기억의 역사성은 바로 이 점에서 근본적인 논란의
소지를 갖는다. 그에 의하면 기억은 오히려 인공적이기 때문이다.11)
󰡔안도라󰡕에서도 등장인물들의 기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된다. 그들은 안드
리의 살해에 대해 사실을 증언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자
신의 기억을 떠올릴 뿐이다. 따라서 전면장면에 등장하여 털어놓는 그들의 언어는 개
인의 기억 속에서 왜곡된 또 다른 하나의 역사일 뿐이다. 그들이 체험한 과거의 사실
에서가 아니라 현재 그들의 입장에서 과거를 기억하며, 심지어 현재 그들이 처한 상
황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조작하고 있다. 기억은 이미 객관성을 상실하고
상황적, 자의적, 역사적인 의도 속으로 침잠하고 말았다.
그러나 관객은 등장인물들의 기억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목도한다. 등장
인물들은 그들이 전면장면에 나오기 바로 전 장면에서 그들의 기억과 배치되는 행동
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관객들은 기억과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등장인물의
행동과 진술은 왜 서로 다른가? 그들의 기억은 왜 왜곡되어 있는가? 역사적 진실이
란 과연 무엇인가? 기억은 역사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이제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
은 관객의 몫이 된다.
이렇듯 기억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될 수도 있다. 기억은 스스로 하나의 사건과 상
황을 만들어내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역사에 동조하거나, 새로운 역사를 만
들어 내거나 또는 극단적인 경우 기존의 역사와 대립한다. 따라서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극단적인 경우 기억은 현재의 기억상황에서 출발하는 과거에
의 간섭이며, 과거를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현재의 의미를 조작하려고 하는 음모이
기도 하다.
결국 기억된 역사적 사건은 기억 그 자체로서보다 하나의 독립된 객관적 대상체로
재현된다. 따라서 재현은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나 모방이 아니라 심지어 또 다른 하
나의 실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사물이 기호로 대체되고 현실의 모사나 이미
지, 즉 시뮬라크르들이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는 곳에서는 기억과 사실의 관계는 역
전된다. 더 이상 흉내 낼 대상, 원본이 없어진 시뮬라크르들은 더욱 실재 같은 극실
재(하이퍼리얼리티)를 생산해낸다. 더 이상 사실은 없고 어느 의미에서는 사실과 기
11) Halbwach, M.: On collective Memory. Chicago: 1950. S. 27~30.
18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억의 구별도 없는 것이다. 이제 기억에 의해 재구성된 시뮬라크라는 스스로 역사가
된다.12) 기억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역사가 사실로서의 역사를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4. 기억과 무대
연극은 어느 예술장르보다도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며, 따라서 변증법적이다.
연극은 단순한 모방과 재현의 차원을 넘어 관객과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며, 사회적 사실과의 거리 속에서 평가되어진다는 점에서 우선 사회적이다. 연
극은 현장에서 벌어지고 보여지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관객이 감동하거나 동의하
거나 동요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연극의
사회적, 문화예술적 기능은 오래 전부터 주목되어 왔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기억이 시간적 맥락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
석과 이에 근거한 현재에 대한 새로운 의도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연극은 역사적이다.
문학과 예술의 기본적인 기능이 그러하기도 하거니와, 특히 연극은 그 작업의 구체성
과 직접성으로 인해 그 연극이 선택한 주제 및 그 연극이 공연되는 시대와 직접적으
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연극의 역사성은 급기야 관객의 역사적 의식의 변
화까지 확대되곤 하였다.13)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차원과 역사적 차원이 작가와 연출가, 연기자 그리고 관객
과의 상호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연극은 일방적인 예술장르가 아니라,
상호 소통적이며 변증법적인 예술장르이다. 연극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연극은 관객과 및 사회와의 끊임없는 상호관계 안에서 상이하고도 풍부
한 의미와 실천이 생산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연극은 사회적 현상을 통해 태어나며, 또한 연극적 기억에 의해
12) 참조. 브드리야르, J.(하태환 역): 시뮬라시옹: 포스트모던 사회문화론. 민음사: 1999.
13) 재현이란 단순한 모방이 아니며, 단순한 흉내내기 역시 재현이 될 수 없다. 즉, 연극 역시 현실을
단순히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이 아니다. 파커와 폴락(Parker and Pollock, 1981, 119쪽)은 “예술이
란 거울이 아니다. 예술은 기호(sign)들의 형식화된 공식 내에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들을 재현한
다.”면서 연극이란 이념적 힘으로서,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181
사회는 자신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안치운의 말대로 연극은 무대적 재현을 통하여
현실을 연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연극적 사실을 통하여 현실을 바꿔놓을 수도 있
게 되는 것이다.14)
따라서 역사적 기억의 무대적 재현은 공연이란 양식을 통하여 기억과 경험을 그대
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의 무대화란 공연 속에 기억과 경험이 함축적으로 들
어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이 공연이란 형식 안에 들어옴으로써
비로소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새롭게 자신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무대는 이제 행위를 떠나 그 행위의 역사성과 그 의
미의 역사성을 획득하게 된다.
5. 기억의 무대적 형식: 󰡔안도라󰡕의 경우
이 부분에서는 프리쉬의 드라마 󰡔안도라󰡕를 예로 들어 시간과 기억이 어떻게 작품
의 구조와 주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프리쉬의 드라마 󰡔안도라󰡕에서는 두 개의 줄거리가, 엄밀히 말해서 세 개의 줄거
리가 동시에 진행된다.
유대인으로 지목된 안드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후 안드리-이야기)를 다
루고 있는 첫 번째 줄거리는 12개로 나뉘어져 있는 단편(12 Bilder)으로 만들어져 파
편적으로 진행된다. 안드리의 죽음 이후에 이루어지는 관련자들의 진술 및 심경 고백
을 다루고 있는 두 번째 줄거리는 피의자 및 참고인의 진술 형식으로 만들어져 12개
각 단편들의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제시된다. 󰡔안도라󰡕에는 그 외에도 사실상 하나의
이야기가 더 존재한다. 아버지 칸과 그의 옛 연인 세뇨라 사이의 과거 사랑이야기인
세 번째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무대 위에서 제시되지는 않지만 줄거리 속에 녹아들어
전체 줄거리에 원인과 동력을 제공한다.
첫 번째 줄거리이자 유대인으로 잘못 지목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안드리에 관한
이야기인 안드리-이야기는 4월 23일 성 게오르그절 St. Georgstag에 시작되어(AD
14) 안치운: 공연예술과 실제비평. 서울: 문학과 지성. 1993, P. 152.
18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463)15) 그의 사망 다음날, 즉 유대인색출 Judenschau이 있었던 9월 15일(AD 549) 바
로 다음 날에 종료된다. 또한 안드리-이야기는 안드리와 바블린의 나이가 언급되는
것을 토대로 보았을 때 한 해에 일어나는 일로 판단된다. (AD 466; 494; 522)
하지만 이렇게 전반적인 시간대를 유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드리-이야기의
12개 단편 각각에 정확한 시각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각 줄거리의 인과
론적인 순서로 보아 12개의 단편이 객관적인 시간 속에서 계기적인 순서로
sukzessive Zeitordnung 나열되어 있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프리쉬에 의하면 줄거리의 인과론적 전개는 매우 중요하다.16) 그에 의하면 하나의
상황은 앞서 일어난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즉 하나의 사실은 기억에 의
해 원인이 되고, 그 원인은 그로부터 유래하는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안도라가 “발단-절정-대단원의 고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언급한 비슬링 Wysling이나,17) 안도라의 형식을 고전드라마의 형식과 비교한 뤼티
Lüthi의 관찰 등은 모두 적절한 판단이라고 할 것이며,18) 또한 고적적인 형식을 취함
에도 불구하고 5막이 아닌 12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것에 대해 관심을 보인 슈네츨러
-수터 Schnetzler-Suter의 관심 역시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 하겠다.19)
15) 작품 󰡔안도라󰡕를 인용할 경우는 다음 전집의 8권을 사용하였다. 이후로 작품 인용은 기호 AD와
인용쪽수를 병기하는 것으로 축약한다. Frisch Max: Gesammelte Werke in zeitlicher Folge.
Werkausgabe edition suhrkamp in zwölf Bänden. Hrsg. v. Hnas Mayer. Frnakfurt a.M.: Suhrkamp,
1976.
16) Frisch, Max: Dramaturgisches. Ein Briefwechsel mit Walter Höllerer. Berlin: Literarisches
Colloquium. 1976. S. 12f. “Alle meine früheren Stücke suchten ihre Glaubwürdigkeit mit mehr oder
weniger Gelingen darin, daß sie die Fabel als nicht-zufällig demonstrierten, als zwangsläufig unter
den jeweils gegebenen Umständen. […] Wie beim physikalischen oder chemischen Experiment
schafft man sich im Labor die idealen Bedingungen; es wird nur interessant, wenn der Zufall
elimniert ist. Es entsteht, was man ein Modell nennt, das bedeutet: in der Regel, nämlich ohne
störende Zufälle, verläuft die Sache so und nur so.”
17) Wysling Hans: Dramaturgische Probleme im Frischs ‘Andorra’ und Dürrenmatts ‘Besuch der allten
Dame’. In: Schmitz, Walte (Hrsg.): Frischs Andorra. Frankfurt a.M. 1984. S. 134. “Andris Tragödie
scheint auf den ersten Blick nach dem klassischen Schema Exposition- Peripetie- Katastrophe
abzulaufen”.
18) Lüthi Hans Jürg: Max Frisch: “Du sollst dir kein Bildnis machen.” Müchen: Francke, 1981. S. S.
38.
19) Schnetzler-Suter, Annemarie: Max Frisch. Dramaturgische Fragen. Bern: Peter Lang, 1974. S. 80ff.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183
진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두 번째 줄거리는 프리쉬의 일기(Tagebuch 1946~
1949)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프리쉬의 일기에는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의 초기
구상과 그에 대한 단상 및 스케치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그의 일기에서 단순히 거울-모티브 Spiegel-Motiv의 형태로 고안되었던 구상은
실제 작품에서는 전면장면 Vordergrund-Szene(V-Szene)으로 구체화된다. 지그프리드
운셀트 Siegfried Unseld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와 같은 구조변화에 대해 가졌던 작가
의 고민과 그 해결책에 대한 만족감을 확인할 수 있다.20)
두 번째 줄거리, 즉 전면장면은 현재의 시점에서 실연된다, 다시 말해 전면장면은
안드리가 살해되고 난 뒤 수년이 흐른 뒤에, 관객들의 현재적 현실 앞에서 전행되는
것이다.
이처럼 안도라에는 3종류의 시간적 계기성이 존재한다. 칸과 세뇨라의 지나간 사
랑-이야기, 유대인으로 강요된 안드리-이야기 그리고 안드리가 살해당한 뒤 수년 후
에 이루어지는 전면장면이 그것이다. 이 세 이야기는 각자 자신의 계기성을 지닐 뿐
아니라 세 이야기 사이에도 시간적 계기성과 인과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작품 󰡔안도라󰡕와 관련하여 보다 흥미로운 것이 세 종류의 계기적 시간이 무
대 위에서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서로의 계기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대 위에서는 전체 시간이 객관적, 인과적 그리고 계기적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
다. 예를 들어 칸과 세뇨라의 과거에 대해서는 9번째 단편에 이르러서야 관객들에게
전달되며, 첫 번째 전면장면에서는 줄거리상 안드리가 아직 살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
하고 식당주인이 나타나 안드리의 살해에 자신이 책임이 없음을 변론하고 있다.
안드리-이야기와 전면장면의 시간적 상이점은 의상과 공간 그리고 언어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안도라인들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전면장면에 등장하는 것이 아
니다. 식당주인은 “지금은 앞치마를 두르지 않고 jetzt ohne die Wirteschürze”(AD 477)
등장하며, 견습생은 “지금은 오토바이자켓을 입고 jetzt in einer Motorradfahrerjacke”(AD
487) 나타난다. 당시 군인이었던 자는 “지금은 민간인 복장으로 jetzt in Zivil”(AD 503)
무대에 오른다. 안드리의 죽음과 현재의 증언 사이에는 일정한 시간이 흘렀음을 말해
20) Frisch, Max: Brief an Siegfried Unseld. In: Schmitz, Walte (Hrsg.): Frischs Andorra. Frankfurt a.M.
1984. S. 29f.
18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주고 있다. 이러한 시간적 단절과 해체는 조명을 사용해 구분되는 공간적 단절을 통해
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간적 차이를 뒷받침하듯 전면장면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대
사 또한 과거시제로 구사한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과거의 사
건에 대한 기억이 없다. 과거적 사실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그 과거가 기억에 의해
스스로의 인식으로 각인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적 계기성의 파괴, 즉 시간적 해체의 현상이 특히 전면장면에서 두드러지게 나
타나는 것은, 작가 스스로 전면장면을 고안할 때 시간적 단절, 시간적 해체를 직접적으
로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다음의 편지에는 이러한 그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애초에 의도했던 바와 같이, 󰡔안도라󰡕를 집필한 후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한번 자세히 들
여다 보았다. 새롭게. […]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당연하고도 확신이 서는 해결책을 찾았
다. 그것은 모든 안도라인들이(식당주인, 목수, 견습공, 군인, 의사, 목사) 살아남은 자로서
공적인 장소에 나타나 오늘 날의 입장에서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
놓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 시간의 단절로 인해, 다시 말해 무대의 장면과 극중극 장면
이 서로 다른 시간에 벌어지기 때문에, 무대의 장면들은 뒤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내가 원하던 바였다. […] 나는 이 해결책을 찾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21)
전면장면에 나타나는 시간적 해체가 작품의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 대
해서는 많은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지만, 그 해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
이 분분하다.
슈네즐러-슈터는 전면장면의 의미를 “미래 Zukunft”라고 해석했으며,22) 페터만
Petermann은 이를 “간주곡 Intermezzi”이라고 주장하였고,23) 퓻츠 Pütz는 이를 “선취
Vorgriffe”로 설명하고자 하였다.24)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계기적 줄거리에만 해당
될 뿐, 두 계기적 시간이 상호 간섭함으로써 새로이 생성되는 시간의 해체에 대해서
21) Frisch: ebd.
22) Schnetzler-Suter: a.a.O. S. 40.
23) Petermann, Gerhard Alfred: Max Frisch und die Psychologie. Kritische Anmerkung zu
Interpretationen von “Andorra”. S. 318.
24) Pütz, Peter: Max Frischs “Andorra”-ein Modell der mißverständnisse. S. 40.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185
는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랑에 Lange나 바이제 Weise 같은 학자는 전면장면을 서사극적 요소로 설명하기도
한다.25) 물론 프리쉬의 드라마가 브레히트의 서서적 기법과 세계관을 일정 부분 이
어받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안도라의 경우, 특히 전면장면이 서
사적 테크닉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비더
만 Biedermann이 분명하게 설명하였듯이 안도라의 전면장면에서는 브레히트적인
“비판적 거리 kritische Distanz”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라마의 목표
지향성 die dramatische Zielstrebigkeit des Stücks”이 보다 더 “강조하고 강화되고
unterstreicht und intensiviert” 있기 때문이다.26) 비더만에 따르면 브레히트의 경우와
는 달리 프리쉬의 작품에서는 모순과 오해가 현실 속에서 드러나고 밝혀짐으로써 변
화의 압력 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더욱이 전면장면의 등장인물들이 관객을
향해 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비스듬히 섬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재판관의
역할이 아니라 같은 증인의 입장에 서게 한다는 점에서도 프리쉬의 전면장면은 브레
히트적인 시사적 기능 이상을 의도하였다고 할 것이다.27)
전체 줄거리에 있어서의 시간적 통일의 해체는 작품의 구조와 주제를 결정하는 가
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안도라󰡕에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는가, 혹은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등장인물들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등장인물의 인식은 현재적 시
점에서 관찰되는 현재적 인식이어야 하며, 그들의 과거는 기억으로서 현재의 실체적
진실의 모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5) Lange, Martin-Joseph: Zur Dumension der Zeit und des Raumes im Werk Max Frischs. Diss.
Louisiana. 1973. S. 183-199. Weise, Adelheid: Untersuchungen zur Thematik und Sturuktur der
Dramen von Max Frisch. Diss. Göppingen, 1970. S. 162.
26) Biedermann, Marianne: Das politische Drama von Max Frisch. Lampertheim: Schäuble, 1974. S.
61. “Die Zustände lediglich registriert, Widersprüche und Mißstände in der gegenwärtigen
Gesellschaft aufgedeckt und Hinweise gegeben werden, welche Veränderungen anzustreben seien”.
27) Petersen, Jürgwn H.: Max Frisch. Stuttgart: Metzler, 1978. S. 78. Darüber hinaus reden die
andorranischen Zeugen “anderes als bei Brecht, […] nicht ad spectatores, sondern stehen quer zum
Publikum und sollen auf diese Weise den Zuschauer nicht zum Richter, sondern zum Mitzeugen
machen”.
18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이와 같은 특징에 주목한 일부 학자들은 󰡔안도라󰡕를 분석극으로 이해하기도 하였
다.28)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작가가 분석적 구조를 통해 밝혀내고자 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증인에 의해 관객들은 이
미 안드리가 살해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어떠한 이유와 방법으로 일이 이
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적 계기성의 파괴, 다시 말해 과거와 현재의 동시적 존재라는 프리쉬 작품의
특징은 기억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대입함으로써 그 이해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전면장면의 등장인물들이 발뻼과 부인 그리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관객들은 그들의 기억이 왜곡되어 있으며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면장면에 나와 증언을 하기 바로 전에 명백한 선입견에
의해 실수와 과오 그리고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과거의 사
실과 현재의 기억을 대비시키고 그 기억의 허구를 밝혀냄으로써 현재적 진실의 실체
를 확인하고자 작가는 “각 장면 사이에 절대로 막을 내리지 말 것 keinen Vorhang
zwischen den Szenen”을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안드리-줄거리와 전면장면의 시간적 간섭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생산해 낸다.
첫째로, 과거와 현재의 동시적 존재로부터 작가는 지나간 사건을 재차 발구해내고,
그 의미를 오늘에 되살릴 뿐 아니라, 현재가 오히려 과거를 이해하고 규정하는 창구
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과거란 항상 현재의 기억과 시각으로부터 구성
되고 판단되며 평가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번째 단편에서 안드리에게 친절했던 견습생이 9번째 단편에서 정반대
의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전면장면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변화이며, 생존자로만 구성된 전면장면에 이미 사망한 칸과 세뇨라가 등장할 수 있는
것 역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상호간의 관계는 단순히 계기적으로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둘째로, 이와 같은 시간의 동시성과 상호연관성은 우리의 기억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게 해준다. 프리쉬에 의하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건이나 그
28) Lüthi Hans Jürg: Max Frisch: “Du sollst dir kein Bildnis machen.” Müchen: Francke, 1981. S. S.
39. “eine ähnliche Situation wie in Sophokles Ödipus”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187
결과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며 그 것이야말로 본질적인 것이기 때
문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라는 프
리쉬의 주장은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고 할 것이다.29)
12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안드리-이야기에서는 과거가 다루어지고 있으며, 전면장
면에서는 현재가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현실은 과거나 현재만으로 구성되
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현실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현재적 시각에서 드러나고, 그
기억이 현재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가 될 때에 비로소 과거와 현재는 나름대로 의미
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전면장면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판단 역시 그들이 연루
되었던 과거의 사실에 대한 기억과 현재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과거에 대한 인식의 상
호 교차 속에서 비로소 분석되고 판단될 수 이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프리쉬는 안도라의 상황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현재의 증인과
의 대립 Konfrontation des heutigen Zeugen mit dem geschichtlichen Tatort”30)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보았을때, 󰡔안도라󰡕는 4 단계의 통일된 단위체의 형식을 통해 단계적
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이자 가장 작은 통일체는 안드리-이야기를 구성하는 12개의 단편들이다.
12개의 단편들은 각각 완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을 확정할 수 없음에
도 불구하고 인과성과 시간성에 의해 상호간에 번복할 수 없는 강한 계기적 순서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 통일체는 이 12개의 단편이 함께 만들어 내는 안드리-이야기이다. 이이야
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줄거리라는 점에서 스스로 완성된 배타성과 독립성을 갖
는다.
세 번째 통일체는 하나의 단편과 하나의 전면장면이 한 세트가 되어 만들어내는
통일체이다. 이 통일체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기억 및 시각이 상호 조합됨으로써
29) Frisch: Theater ohne Illusion. GW II, S. 335. Wir haben einen Menschen verloren, einen Vater
oder eine Braut; aber für unser Erleben hört es nicht auf, daß wir sie verloren haben. Und es fragt
sich nun, was wir eigentlich zeigen wollen: den Tod, der einmal geschehen und als solcher für
immer vergangen ist, oder unser Erlebnis dieses Verlustes, das immer wiederkehren kann. Das
scheint eine entascheidende Frage.
30) Frisch: Nitizen von den Proben. GW IV, S. 571.
18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종합적 인식을 가능케 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통일체는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를 통해 만들어지는 통일체이
다. 프리쉬의 안도라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동시적이고 종합적인 인식과 시각을 구현
하고자 할 뿐 아니라,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추구
한다. 다시 말해 과거의 역사에 대한 기억이 미래의 사회에 대한 교훈이 되고, 또한
역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이 다시금 과거에 대한 정직한 기억으로 환원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다.31)
그럼으로써 12개의 단편과 9개의 전면장면은 상호 교류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구분을 초월하며 무시간적 순환의 구조 속에 안
착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기억은 과거에 대한 추억이 아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되
고, 우리 삶의 근본적인 진실이 된다.
아버지 칸의 사랑과 좌절은 아들 안드리의 삶과 죽음으로 반복되었을 뿐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안드리의 남겨진 신발은 이러한 사건이 미래에서 역시 반복
될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AD 560) 첫 장면에서 벽에 붓질을 하던
바블린이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금 마당에 붓질을 하는 것 역시 전체 구조의 순환성
을 암시하고 있다.(AD 463, 557)
6. 나가며
연극은 기억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기억은 무대 위의 언어와 행위를 흩어
진 파편으로 이해하지 않고 연결된 의도로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이자, 이를
관객의 내면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의 과정에서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재현되는가 하는 문제에는 기억주
체의 현재적 관심과 기억행위의 현재적 맥락이 개입된다. 그러므로 개인기억이든 집
합기억이든 기억은 그것이 존재하는 시공간에 따라 광범위한 변이를 보이게 된다.
31) Frisch: Gespäch mit Wiese. S. 55 “Meine Stücke sind keine Zeitstücke im landläufigen Sinn. Es
sind immer wiederkehrende Muster, tragische Muster.”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189
󰡔안도라󰡕에서도 등장인물들의 기억은 그 자체로 작품의 주제이자 형식이 되고 결
국은 하나의 또 다른 역사가 된다. 전면장면에 등장하여 털어놓는 그들의 언어는 개
인의 기억 속에서 왜곡된 또 다른 하나의 역사일 뿐이다. 기억은 이미 객관성을 상실
하고 상황적, 자의적, 역사적인 의도 속으로 침잠하고 말았다.
프리쉬는 󰡔안도라󰡕를 통해 역사적 사실이 기억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어지는 가를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왜곡이 역사적 기억을 다시 새롭게 경험함으로써 보완되고 수
정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프리쉬에 의하면 “사건이란, 그것이 비록 지나가버린
것이라 할지라도, 항상 다시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경험이란 기억의 또 다른 형
식이기 때문이다.32)
참고 문헌
1차 문헌
Frisch Max: Gesammelte Werke in zeitlicher Folge. Werkausgabe edition suhrkamp in
zwölf Bänden. Hrsg. v. Hnas Mayer. Frnakfurt a.M.: Suhrkamp, 1976.
Frisch, Max: Brief an Siegfried Unseld. In: Schmitz, Walte (Hrsg.): Frischs Andorra.
Frankfurt a.M. 1984.
Frisch, Max: Dramaturgisches. Ein Briefwechsel mit Walter Höllerer. Berlin:
Literarisches Colloquium. 1976.
2차 문헌
김규영: 시간론. 서울: 서강대학교, 1987.
김영민: 현상학과 시간. 서울: 까치, 1994.
김진성: 베르그송 연구. 서울: 문학과 지성, 1985.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서울: 민음사, 1993.
32) Frisch: Theater ohne Illusion. GW II, S. 335. “Es ist möglich, daß wir ein Geschehen, auch wenn
es als solches vergangen ist, immer wieder erleben.”
19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나간채 외(공저): 기억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 서울: 역사비평사, 2004.
다우베 드라이스마, (정준형 역): 기억의 메타퍼. 서울: 에코리브르, 2006.
브드리야르, J.(하태환 역): 시뮬라시옹: 포스트모던 사회문화론. 민음사: 1999.
안치운: 공연예술과 실제비평. 서울: 문학과 지성. 1993.
알란 J. 파킨, (이영애/박희경 역): 기억의 실제와 응용. 서울: 시그마프레스, 2001.
Biedermann, Marianne: Das politische Drama von Max Frisch. Lampertheim: Schäuble,
1974.
Halbwach, M: On collective Memory. Chicago: 1950.
Lüthi Hans Jürg: Max Frisch: “Du sollst dir kein Bildnis machen.” Müchen: Francke,
1981.
Petermann, Gerhard Alfred: Max Frisch und die Psychologie. Kritische Anmerkung zu
Interpretationen von “Andorra”. In: Knap, Gerhard P.(Hrsg.): Max Frisch.
Aspekte des Bühnenwerks. Bern/Ff a.M./Las Vegas: Peter Lang, 1979. S.
313-330.
Petersen, Jürgwn H.: Max Frisch. Stuttgart: Metzler, 1978.
Pütz, Peter: Max Frischs “Andorra”-ein Modell der mißverständnisse. In: Arnold, Heinz
Ludwig(Hrsg.): Max Frisch. Tex+tkritik 47/48. München: Beck, 1983. S. 37-43.
Lange, Martin-Joseph: Zur Dumension der Zeit und des Raumes im Werk Max Frischs.
Diss. Louisiana. 1973.
Schnetzler-Suter, Annemarie: Max Frisch. Dramaturgische Fragen. Bern: Peter Lang,
1974.
Weise, Adelheid: Untersuchungen zur Thematik und Sturuktur der Dramen von Max
Frisch. Diss. Göppingen, 1970.
Wysling Hans: Dramaturgische Probleme im Frischs ‘Andorra’ und Dürrenmatts ‘Besuch
der allten Dame’. In: Schmitz, Walte (Hrsg.): Frischs Andorra. Frankfurt a.M.
1984.
기억, 현재 그리고 모델 191
Zusammenfassung
Erinnerung, Gegenwart und Modell Die Struktur von Frischs Andorra
Wang, Chi-Hyoun(Inha Uni.)
Was in Andorra am wichtigsten erscheint, ist, daß Frisch auf der Bühne zwei
verschiedene Zeiten als gleichzeitig präsentieren will, obwohl sie auf vielfältige Weise
visuell voneinander getrennt dargestellt werden. Der zeitliche Unterschied zwischen der
eigentlichen Handlung und der V-Szenen ist eindeutig und intendiert.
Die gesamte Struktur des Stücks hat in diesem Zumenhang nicht nur mit der
Aufdeckung des vergangenen Geschehens und dessen Auswirkung auf die Gegenwart
zu tun, sondern vielmehr zeigt sie überdies die Möglichkeit, daß auch die Gegenwart
durch die Erinnerung an die Vergangenheit einen gewissen Einfluß auf das Leben des
erinnerden Menschen ausüben kann.
Mit dieser Struktur und Technik wird die Vergangenheit mit der Gegenwart und
zugleichgestellt, d.h. sie werden untereinander austauschbar gemacht.
Dadurch kann bestens gezeigt werden, daß die Einflußnahme auf ein Geschehen
nicht unbedingt linear vorwärts, von der Vergangenheit auf die Gegenwart und von der
Gegenwart in die Zukunft, erfolgen muß, sondern auch rückwärts wirken kann, so daß
auch die Gegenwart und die Zukunkt die Vergangenheit beeinflussen können.
Frisch warnt mit seinem Modell Andorra vor dem immer wieder von neuem aufkeimenden
Vorurteil der Mehrheit gegenüber der Minderheit, denn “es ist möglich”, so Max Frisch,
“daß wir ein Geschehen, auch wenn es als solches vergangen ist, immer wieder erleben.”
19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Keyword
(한글/독일어)
프리쉬
Frisch
시간
Zeit
기억
Erinnerung
역사
Geschichte
∙필자 E-Mail: chwang@inha.ac.kr (왕치현)
∙투고일: 2006년 12월 28일/ 심사일: 2007년 1월 15일/ 심사완료일: 2007년 1월 31일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