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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1/28 (20:07)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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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과학과 현대과학의 철학적 배경
Holonomic Knowing
김 상일

근대과학과 현대과학의 철학적 배경


오늘 강의할 주제를 현대과학의 정신과 신바람이라고 정했는데, 상당히 어려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현대과학의 정신을 얘기하고자 할 때, 먼저 현대과학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먼저 규명해야 합니다. 현대과학이라는 용어는 New age Science, 더 줄여서는 신과학이나 양자물리학 등으로도 불려지는데, 이 용어들은 현대과학의 다른 명칭들입니다.

그러면 현대과학이 아닌 과학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뉴턴의 과학, 곧 고전과학 또는 근대과학입니다. 과학자로서는 뉴턴이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뉴턴의 과학이 벌써 낡은 과학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전적 뉴턴의 과학에는 서너가지의 특징이 있는데, 그 특징들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고, 따라서 이것을 극복하려는 것이 현대과학입니다. 1988년에 범양출판사에서 나온 신과학운동이라는 책을 보면, 현대(신)과학의 정신이 여러 학자의 글 속에 잘 집약되어 있습니다.

뉴턴-칼데시안적 세계관을 분석해 보면, 뉴턴은 과학자이고 칼데시안은 철학자인데 그들이 갖고있는 세계관이 거의 같습니다. 한 사람은 자연과학자로서 물리의 세계를 다루었고, 한 사람은 철학자로서 정신의 세계를 다루었지만, 두 사람은 동일한 정신을 갖고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과학의 사명과 철학의 생명은 '분명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고전과학의 기본적인 정신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현대과학이라고 할 때는 여러분들이 얼핏 생각하기에는 더 정확하고 더 분명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현대과학이 아닐까 하고 판단하기 쉬운데,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입니다. 현대과학의 정신은 20세기로 넘어와서, 정확히 말하자면 1900년 12월 14일에 프랑크가 상수함수를 발견하던 날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고전과학과는 반대로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하고 비결정적이고 필연이 아닌 우연적인, 이런 것들이 현대과학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존재하는 것이란 무엇인가'는 질문이 우리에게 던져졌다고 합시다.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여기에 백묵이라는 실체(實體)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그것을 파악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 백묵을 파악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가 라는 의문들에서,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의심할 수는 있어도, 의심하고 있는 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다시말해서 객관적 실체가 정확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꾸 그 실체를 의심하다 보니까 의심한다는 그 자체가 축적되므로, 의심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어떤 실체를 의심하고 의심하는 주체인 나마저 의심한다면, 객관성을 생각할 여지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근대 17세기에 등장하는 서양과학이 정확하고 분명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에 와서 고전적 과학정신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고, 이 때 아이러니컬하게도 수학에서는 비결정성이, 물리학에서는 불확실성이 출현하여 과학정신의 대전환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과학정신의 전환 (Paradigm Shift)
그러면 현대과학의 정신이 고전과학에 비해서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먼저 언급하고, 그 다음 구체적으로 과학자들의 과학실험 속에서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제일 처음 달라진 점은 분명 정확성에서 비결정성, 불확실성, 우연성, 애매모호성 등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렇게 과학의 정신이 확 바꿔지는 것을 Paradigm shift라고 합니다. 패러다임은 범형(凡形) 또는 범례(凡例)란 뜻이고, 우리말로는 틀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어떤 틀 속에서 법칙이나 공식들을 짜놓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번 그 틀이 바뀌면 과학의 진리 전체가 바뀌어집니다. 과학의 진리가 바뀌면 잇달아 철학의 체계도 바뀌게 되고, 기존 종교의 우주관도 바뀌어져서, 인문사회계열 학문에 큰 영향을 줍니다.

서양의 과학은 17세기 뉴턴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뉴턴이 과학의 정신을 공식으로 만들고 수치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 동양에서도 서양보다 앞선 과학이 있었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수치로 공식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적 개념의 과학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뉴턴과학에서 현대의 양자역학으로 넘어온 사실은 엄청난 과학정신의 전환이고, 또 이것은 동서양 과학의 개념까지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데카르트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나 불변하는 수학의 공식이 있다는 차원에서 신(神)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즉 선천적인 종합명제,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영원히 존재했던 진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영원불멸하는 신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러한 신의 존재양태 및 개념까지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틀'이라는 말은 틀릴 수 있다는, 시대가 변하면서 바뀔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패러다임의 저자인 토마스 쿤의 공헌이란, 마지막 절대진리로 여겨졌던 과학적 진리마저 영구불변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짜놓은 틀이기 때문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연하면 확실한 것에서 불확실한 것으로 과학정신이 전환되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약 300년동안 지속되었던 뉴턴과학의 틀이 어떻게 전환되었나를 살펴보겠습니다. 뉴턴은 데카르트처럼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실체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여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 쪼개고 또 쪼개서 한없이 미분을 시킬 때, 최후에 남는 알맹이가 나무를 나무되게 하는 것이라고 뉴턴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알맹이 속에는 입자가 있어서 그 입자에 살이 붙어 나무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발상을

요소환원주의(Reductionism) 또는 본질주의라고 합니다. 이런 요소환원주의는 무엇을 쪼개고 또 쪼개서 더 쪼갤 수 없을 때에 어떤 알맹이가 있고, 그 주변의 물질은 알맹이에 전부 귀속되어버리므로 결국 이 알맹이만이 전체로서 중요하고 주변의 요소들은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요소환원주의에서 전체는 중요하고 부분은 필요없다는 식의 전체와 부분을 갈라놓는 과학정신이 생겼습니다.

요소환원주의자 곧 본질주의자들은 나무가 나무되게 하는 알맹이와 쇠가 쇠되게 하는 알맹이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나무의 알맹이는 따로 있고 쇠의 알맹이 역시 따로 존재한다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만물은 각자 그 고유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요소환원주의라고 한 것입니다. 요소환원주의와 본질주의가 물리학에 국한되어 있을 때는 그 한계를 몰랐지만, 뉴턴 데카르트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는 서양의학의 정신에서 그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서양의사들은 인체의 오장육부를 볼 때, 간(肝)은 간으로서 고유한 실체이고, 폐(肺)는 폐로서, 위(胃)는 위로서 고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간에 병이 나면 간만 고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을 합니다. 심지어 얼굴에 있는 눈, 코, 귀, 입 등의 기관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안과, 치과, 이비인후과 등으로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요소환원주의에 입각하여 병을 치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막다른 한계점에 도달했고, 이런 의학정신으로는 결코 인간의 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 실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양사람들이 한의학을 미신처럼 여기고 서양의학에 의해서만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추측하지만, 실제 많은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서양의학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동양의 침술이나 지압, 한약 등을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선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직접 본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 동양의학은 몸 전체를 유기적으로 곧 전체적으로 파악합니다. 발가락에 무좀이 생기면 발가락에 무좀약을 바르지 않고 간을 치료하잖아요. 간이 허할 때 무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12경락(經絡) 중 간경(肝經)이 발가락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무좀균이 실제로 있지만 무좀균이 있다고 해서 다 무좀에 걸리는 것은 아니거든요. 간이 약해졌을 때 무좀균이 활성화되어 무좀이 생기는 걸 모르고, 무좀균만 박멸시킨다고 되겠습니까? 간을 보호하여 강하게 해주면 무좀은 자연히 없어집니다. 또 북한에서는 눈병이 났을 때 발가락을 실로 묶으면 낳는다고 합니다. 눈과 발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대표적으로 서양의학의 정신이 뉴턴 데카르트적 요소환원주의에 기초했다고 볼 때, 현대과학의 정신은 부분이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부분이라는 상호 유기적인 개념입니다. 그리고 현대과학의 정신은 나무를 나무되게 하는 고유한 입자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모든 존재를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존재에는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는 사상처럼, 쇠의 궁극적인 것과 나무의 궁극적인 것이 서로 같을뿐 아니라 유기적으로 얽혀있다고 봅니다. 또한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고, 만물은 하나의 유기체로 얽혀져서 생성 변화한다고 봅니다.

화이트헤드가 철학 자체를 '과정(Process)'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서양철학이 궁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추구해왔던 것에 대해서,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에 존재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현대과학 정신의 전환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첫째, 분명하고 확실한 것에서 불확정적인 것으로
둘째, 부분과 전체를 분리시켜 파악함에서 부분적 전체, 전체적 부분으로
세째,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다는 생각에서 변하는 과정이 있다로 바뀌어졌습니다.
뉴턴 데카르트적 사고가 사물을 이치론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로만 판단하는 이원론적인 흑백 세계관을 형성한 반면, 현대과학의 정신은 이원론에서 다원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원적이란 Puzzy적(的)이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컴퓨터는 입력되는 다양한 정보를 0과 1로만 처리를 했지만, 퍼지컴퓨터는 0과 1사이의 다양한 가치들을 분별해 줍니다. 예를 들어 이 퍼지기능을 히터에 활용하면, 더울 때에 적당한 온도로 스스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이 아주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이기도 합니다.



과학실험을 통한 Paradigm shift
그러면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이 과학자들의 구체적인 실험 속에서 어떻게 생겼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약 300여 년동안의 꾸준한 과학실험 속에서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첫째로 1900년 12월 14일에 막스 프랑크가 함수를 발표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함수의 원리는 상당히 정치적인 사건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얻어진 것인데, 비스마르크가 알사스로렌 지방을 병합하고 나니 그 지방에서 철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비스마르크는 어떻게 하면 제련을 잘하여 좋은 강철을 뽑아낼까 생각하다가, 빈, 레일리, 프랑크라는 세 독일과학자로 하여금 독일과학연구소에서 연구하도록 했습니다.

좋은 강철을 만들기 위한 실험에서, 빈은 좋은 강철은 빛의 색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발생하는 열의 양과 철에서 나오는 색의 관계를 규명해 들어갔습니다. 온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빛의 색깔이 빨강에서 파랑으로 또 흰색으로 변합니다. 열량과 입자를 수치로 표현해서 각각 100개와 10개가 있다면, 입자 한개마다 열량 10개씩을 균등분배받을 것이라 가정하고 실험했더니(입자=빛), 일정 한계 내에서는 균등분배가 되는데 그 한계를 넘어버리면 균등분배가 되지 않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빨간색에서는 균등분배가 되지만, 파란색에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 다음 레일리는 빛을 입자로 생각하지 않고 파동으로 보고 열량을 배분해보았습니다. 한없이 나뉘어질 수 있는 것이 파동입니다. 여러 색 중 보라색은 파장이 가장 짧습니다. 무한히 나눌 수 있는 것이 파동이라면, 열량도 무한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보라색은 파장이 아주 짧으니까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합니다. 즉 보라색은 많은 열량을 받아서 파장이 생긴 것입니다. 보라색 이전의 빛에서는 각 파장 하나하나에 대해 열량이 균등분배 되는데 비해, 보라색이나 파장이 아주 짧은 빛에서는 이 법칙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여기서 프랑크가 발견한 것이 프랑크 상수인데, 이 상수가 열량을 빛에 따라 골고루 분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균등분배하려 할 때 부딪히는 과학상의 문제가, 사실 과학적으로 쉽게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숫자의 발견으로 좋은 철을 제련할 수 있게 되어 비스마르크는 철혈재상이 되고, 독일이 강대한 나라로 변모해 20세기로 접어들면서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치가 출현하게 된 근본원인이 바로 이 프랑크 상수입니다.

우리나라 도공들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도자기를 구워냈지만, 독일에서는 빛과 열량의 비례역학관계를 숫자로 찾아냈습니다. 이것이 뉴턴과학과 현대과학을 갈라놓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분배의 문제에 있어 무조건적 균등분배가 아니라 일할 능력이나 의욕 등등을 고려해서 분배해야 된다는 이론입니다.

막스 프랑크 자신은 스스로를 뉴턴물리학자로 자처했지, 현대물리학자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상수로 인해 현대과학이 탄생된 것입니다. 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날이 1900년 12월 14일인데, 몇 년 뒤인 1905년에 아인쉬타인이 에너지는 프랑크 상수에 속도를 곱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속도란 빛의 파장과 같은 얘기입니다. 자동문이 열리는 광전효과와 같은 것입니다. 아인쉬타인은 이 법칙으로 노벨상을 수상했지 상대성원리로 받은 게 아닙니다. 속도나 빛의 파장이 세다고 해서 열량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프랑크상수를 곱해야 열량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현대물리학은 29년이 지난 후에 본격적으로 확립되기 시작했는데, 소위 1929년에 '코펜하겐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신과학운동이 시작된 해입니다. 즉 하이젠베르그와 닐스보아 등의 현대과학자들이 닐스보아의 고향인 코펜하겐에 모여 선언한 것으로,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무엇인가'를 밝힌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실체를 본다는 것은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야 가능한 것이고, 이것은 빛의 입자가 보여지는 대상보다 아주 작아야만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전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보여지는 대상이 오히려 빛의 입자보다 작다고 한다면 빛의 입자가 대상의 입자를 부수어 버리므로 빛이 입자에 반사되지 못하여 우리의 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를 규명함에 있어 첫번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빛의 입자가 크다는 것은 열량이 많아져서 밝다는 것을 의미하고, 빛의 운동량이 커져서 밝으면 대상의 위치가 더 잘 보여야 함에도 오히려 더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이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대상의 위치를 확인함에 있어 빛의 세기의 강약을 고민한 것입니다. 뉴턴 데카르트적 세계관에서의 빛을 밝게 하면 더 잘 보인다는 논리가, 오히려 밝게 하면 더 보이지 않게 된다는 현상이 첫번째 결과입니다.

두번째는 과거의 뉴턴이 1666년에 빛은 입자라고 생각했는데, 그와는 정반대로 빛은 곧 파동이라는 얘기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빛이 만약 입자라면 어떤 대상을 관통했을 때 직진운동을 해서 대상 그대로의 그림자가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아래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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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S1 |      
     |               |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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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   |       
     | 빛 →→→→→     →→→→→→    S2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S3 |    
     |               | |              | |   |      
     |               +-+              +-+   |      
     |              1차벽           2차벽   |       
     +--------------------------------------+      
              그림  < 쌍구멍 실험 >      
1차 벽은 구멍이 하나인데, 이 구멍을 쉽게 통과한 빛이 두번째 벽의 구멍(S1, S2, S3 ...)들 중 어느 구멍으로 나갈지는 이제 어느 과학자도 장담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확률론이 생겨나고 또 여러 구멍 모두로 나갈 수도 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하이젠베르그와 닐스보아 등의 현대과학자들이 뉴턴 데카르트적 세계관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위와 같은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또 위치와 운동량은 서로 반비례하는 관계가 있다는 것도 밝혔습니다. 과학자들은 위치와 운동량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면, 어떤 물체가 적당한 -Zero or 무한대가 아닌 것- 위치와 운동량을 가질 때 이것들을 곱한 것이 프랑크 상수보다 크거나 같아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만일 프랑크상수가 없다면 '위치가 Zero, 운동량이 무한대'가 된다든지 혹은 '위치가 무한대, 운동량이 Zero'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위치와 운동량을 곱한 것이 프랑크 상수보다 크거나 같아야 한다는 것은 둘 중 어느 하나도 Zero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Zero가 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수치가 바로 프랑크 상수입니다. 하이젠베르그는 위치와 운동량의 곱이 프랑크 상수보다 크거나 같다는 것으로서 노벨상을 탔습니다.

여기서 A라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A는 틀림없는 물질인데, 휠러 같은 과학자는 이 A가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S1으로 나갈지 S2로 나갈지(쌍구멍 실험)는 결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주 미세한 A이지만 인간을 초월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물질과 정신을 분리시켜 생각한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물질적 정신이고 정신적 물질을 물리학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물리학은 아주 비약하여 신비주의로 넘어가려는 아주 위험한 순간에 와 있습니다. 물론 많은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현대과학의 코펜하겐 정신이란 모든 관찰의 결과를 놓고 보니 어떤 과학자가 실험에 참여했는가에 따라 연구결과가 달라진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의미합니다. 관찰자는 실험에 참가하는 자이지 방관자가 아니란 말이기도 하구요. 이것은 종래의 순수객관성이 와르르 무너지고, 주관과 객관은 하나로 묶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분과 전체
그 다음으로 현대과학의 정신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부분과 전체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상당히 늦게 1960년 경에 와서 진척되었는데, 전체와 부분에 있어서 전체를 강조하면 정치적으로 사회주의가 될 것이고, 부분을 강조하게 되면 자본주의가 될 것입니다. 어느 면에서 모든 학문은 부분과 전체에 대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이 문제가 Holon으로 결정되었습니다. Holon은 Holos(전체)와 On(부분)의 합성어입니다. Holon 에서 나온 파생어로는 Hologram, Holonomic, Holography 등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동성 아트홀에서 Holon 전시회를 가졌는데, 깜짝 놀랄만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사과를 공중에 떠 있게도 하고 나무가 공중에 떠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Holography는 만물을 진동수 즉 파동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가령 돌을 물에 던지면 파장이 서로 얽혀서 Hologram 즉 정보가 됩니다. 그것을 얼려서 그 얼음에 레이져 광선을 쏘이면 그 뒷면에 완전한 자갈 모양이 복원된다는 것이 Holography의 원리입니다. 물론 그 얼음을 깨서 그 얼음조각에 빛을 쏘아도 돌모양이 완전히 복원됩니다. 이것은 곧 물체는 모두 정보의 축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며, 또한 부분과 전체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은 실제생활에도 상당히 많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93년 대전 엑스포의 주제도 Holography 입니다. 이러한 Holon적 사고를 가지게 되면 종래의 Hierarchy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변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이어아키적 사고가 신(神)을 최상위 개념으로 놓고 그 아래에 천사, 인간, 동식물, 무생물을 배열하는 중세기적 위계질서를 형성하여 계급의 문제를 파생시켰는데, 이것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 배경이 홀론적 사고입니다. 이것을 케슬러는 홀론혁명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하이어아키적 사고가 무너지면 소위 맑스가 말하는 계급없는 평등한 사회 즉 Holon적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홀로그램이 각 분야에 어떻게 응용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은 홀로그램의 세계를 내장된 세계라 하고, 뉴턴 데카르트적 세계를 표출된 세계라 하여 구분하고, '내장된 세계는 부분과 전체가 없는 세계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은 표출된 세계이고, 실재세계 즉 내장된 세계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봄은 자신의 물리학자로서의 명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동양의 신비주의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뇌 신경학자인 칼 프리브람을 들 수 있는데, 그는 데이비드 봄의 물리학을 접하고서는 로스페리의 '분할 뇌'이론에 반발합니다. 분할 뇌 이론이란 뇌를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 좌뇌는 합리성이나 이성, 언어 등을 담당하고, 우뇌는 반대되는 비합리성이나 감정 등을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봄의 이론을 접하고 난 뒤 프리브람은 실험을 통해서 좌우뇌 분할이론과 반대되는 홀론적 이론, 즉 좌우뇌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퍼지이론
마지막으로, 현대과학의 정신으로 1965년에 발표된 버클리대학의 이란 교수인 쟈디의 '퍼지이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쟈디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어학자입니다. 제어학이란 뉴턴 데카르트적 사고로 정확성을 기하는 학문인데, 실지로 제어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정확해지지 않고 오히려 비능률적으로 되어버리고, 반대로 대강 어림잡아 설정을 할 때 더 능률적으로 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제어시스템 학자가 퍼지학자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퍼지논리는 애매모호하고 흐리멍텅한 논리라는 말인데, 다시말하면 다가치논리입니다.

예로 중년(中年)의 정의에 대한 변화를 들어보면, 기존에는 45세 정도의 나이를 중년으로 보았는데, 퍼지논리에 의하면 25세부터 점차적으로 중년이 시작되어 45세 쯤에 절정을 이루고 이후 점차로 하향하는 정규분포곡선처럼 중년의 정의가 변하게 되다는 것입니다. 옷을 빨 때도 옷감이나 색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기계에 입력하면 기존의 세탁기보다도 더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퍼지 카메라나 퍼지 에어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뉴턴 데카르트적 사고의 합리성, 정확성, 실재성 등이 불확실성, 다가치성, 가정성으로 전환하였고, 카프라나 쥬커브 등의 학자들이 말하듯이 현대과학의 정신이 한국의 사상, 넓게는 동양사상으로 접근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대과학이 등장하면서 서양의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의 명성을 포기하면서까지 현대과학의 실체가 동양사상과 같다고 앞장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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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력
연세대 신학과 졸업, 동 연합신학대학원 수료 성균관대 대학원 수료 美 필립스대 철학박사

저 서
한철학, 한사상, 한사상의 이론과 실제, 인류문명의 기원과 한, 현대물리학과 한국철학, 카오스와 문명 외



http://ferarri.snu.ac.kr/~maldduk/jsd/forum/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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