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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9/09/11 (09:24) from 203.252.23.203' of 203.252.23.203' Article Number :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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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사본과 구약본문 전승


소위 ‘사해 두루마리’라 불리는 사본들이 발견됐을 때는, 이 두루마리들이 학자들과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로 관심을 쏟게 만들 줄 아무도 몰랐다. 1950년대 이래 여기에 관한 관심은 넓게 확장됐고, 수백 권의 책들과 수천편의 논문들이 이 두루마리들에 대하여 쓰여졌다.

사해 두루마리라는 것들은 무엇인가? 1947년에서 1956년 사이, 와디 쿰란에서 가까운 11개의 동굴들에서 크고 작은 수천의 사본 조각들이 실제로 발견됐다. 그 중 특히 제1동굴, 제4동굴 그리고 제11동굴에서 가장 많은 사본들이 발견됐는데 이것들은 기원전 250~70년 사이의 문서들이다.

히브리어/아람어 성경사본 200~201개가 쿰란에서 발견됐고, 유대 광야의 다른 지역에서 23개의 성경 사본 조각들이 발견됐다. 쿰란 동굴들의 사본 중 거의 190개 정도는 보통 히브리어체, 즉 ‘정방형’ 또는 ‘아람어체’로 된 사본들이고 11~12개의 사본은 고대 히브리어체(paleo-Hebrew)로 되어 있다. 특별하게 여러 사본들이 있는 신명기(30), 이사야 (21), 그리고 시편(36)은 쿰란의 서약자들이 이런 책들에 특별한 관심이 많았음을 보여 준다.

즉 그들은 신명기의 설교 스타일을 좋아했으며 그 책을 모방해서 작품을 썼고, 그들의 신학은 이사야서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리고 그들은 정경 시편을 모방해서 많은 시들을 지었던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이 새로 발견된 사본들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 본문의 연구에 혁명적인 역할을 해 왔다. 성경 본문들의 전승 과정은 여러 면들에서 분명해지게 됐고 쿰란의 두루마리들은 성경책들의 문학적 성장의 마지막 단계들을 이해하는 데도 역시 깊은 관계성을 보여 준다. 쿰란사본이 발견되기 전에 알려진 본문 자료들, 즉 랍비들에 의해 전승되어 오늘날 유대인들의 성경이 된 마소라 텍스트(MT), 유대지역과 경쟁 관계에 있는 북쪽의 사마리아 분파의 오경이 되었던 사마리아 오경(SP), 그리고 헬라어로 번역이 되어 초기 기독교회에 의해 보존됐던 70인경(LXX)들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게 해 준다.

유대 광야에서의 발견은 중세의 MT와 정확히 일치하는 텍스트가 이미 기원전 1세기와 기원후 1세기에 있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2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MT는 변경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경이로움이든지, 혹은 사람의 작품이든지, 이런 서기관의 정확성은 처음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수행되어 왔고, 탈무드의 현인들에 의하여 엄중히 규정되어 왔으며, 중세 랍비 문헌을 통해 영속됐던 것이다.

쿰란의 원시 마소라 사본들은(proto-Masoratic texts) 중세의 자음 본문들과 가까운 편이라 할 수 있다. 쿰란 외의 유대 광야 지역에서 발견된 23개의 텍스트들은 중세의 것들과 훨씬 더 가깝게 일치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소유됐기 때문이다. 쿰란에서 발견된 사본 본문은 다양성을 보여 준다.

이 다양성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 두루마리 사본들의 서로 다른 기원을 반영해 주는데 아마도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그것들이 완전 일치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의 이러한 다양성은 내용이나 철자법 등 여러 부분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서 MT의 본문 순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신명기 27장에 명한대로 요단을 건너자마자 제단을 세운 것이 아니라 8:30~35에 정복과 관계된 여러 활동들 다음에 세운다. 이와 달리, 쿰란 사본 4QJosha에 보면, 그 줄(Ulrich은 이 사본의 본문 출처를 8:34-35; X ; 5:2-7로 표기한다)의 시작에 이 제단은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세워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 쿰란의 사본들과 다른 본문 증거들과의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4동굴에서 나온 예레미야 사본들(4QJerb,d)에서 나타난다. 이 사본들의 본문은 LXX처럼 사람 이름과 제목들을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MT보다도 짧다. 예를 들면, 4QJerb에서 렘 43:6은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라고 읽는 대신에 ‘느부사라단’이라고 읽고 있다.

쿰란 분파들의 성경적–비성경적 (사본들의) 서기관들은 그들의 철자법, 문법적 형태 그리고 서기관들의 관습을 통해서 구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쿰란 두루마리들의 본문 불일치는 예외적인 소수가 아니라, 전반적인 현상인 것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전역으로부터 쿰란으로 옮겨진 이 두루마리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본문의 다양성이란 단적인 특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쿰란의 문서들은 그 특징을 따라서 다섯 그룹으로 나눌 수가 있다. 52개의 오경 본문들 중 46개는 분석 자료로 사용하기에 충분히 긴데, 그중 52%(24개 본문)는 MT(혹은 MT와 SP와 공히 가까운 것들)를 반영하고, 37%(17개 본문)는 어느 것과도 가깝지 않으며, 6.5%(3개 본문)는 SP를 반영하며, 4.5%(2개 본문)는 LXX와 가까운 본문이다. 오경사본들은 특히 MT에 많이 기울고, 오경 외의 성경책의 사본들은 독립적인 계열에 속하는 것이 많다.

쿰란에서 여러 다양한 그룹들의 본문들이 병존한 것으로 보아서, 고대 이스라엘 세계에서, 어떤 (특정) 본문이나 본문의 그룹이 이스라엘 전체 국가적인 권위를 가지고 받아들여진 것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특정 환경에서는 특정한 텍스트가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가 확신하기는 MT는 성전 주변에서 받아들여진 텍스트였으며, 따라서 다른 곳들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 것이었다. 이 본문의 가장 순전한(purest) 형태는 마사다와 바르코크바의 용사들이 머물렀던 지역들에서 발견됐는데, 이들은 아마도 성전에 있는 ‘권위(master) 두루마리’에서 필사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 광야에서 발견한 헬라어 사본들은 겨우 27개로서 무시할 수도 있는 숫자다. 쿰란의 거주자들이 헬라어를 실생활에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아마도 최소한 그들 중 몇 명은 헬라어를 알았을 가능성이 있는데, 왜냐하면 헬라어 성경 사본 조각들이 제4동굴과 제7동굴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쿰란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사본들은 쿰란 공동체가 성경 본문에 관해서는 열려 있으며 오직 MT에만 제한적으로 묶여 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른 유대 광야 지역들은 유대 국수주의적인 집단이었음을 보여 주는데, 이는 그들의 성경 텍스트가 원시 랍비적(원시-마소라) 본문들에 근접하는 히브리어(MT) 본문과 그 히브리어 본문을 지향하는 LXX의 랍비 개정판들뿐이기 때문이다.

J. O’Callaghan과 C.P. Thiede 등의 학자들은 쿰란의 헬라어 사본들이 신약의 부분들(막, 행, 딤전, 롬, 약)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 사본들이 정말 신약 본문의 부분들이라면 이것은 분명 학계와 기독교 세계에 있어서 획기적인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본들의 신약과의 동일시는 무리다. 쿰란의 헬라어 사본들은 너무 작은 조각들에 불과하다.

가장 큰 조각이라고 해봐야 각 줄에 3~4 글자, 그리고 5줄 정도밖에 지나지 않고, 이것들을 신약 본문을 반영하는 조각으로 여기고 복원하려면 엄청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도의 작은 조각들이라면 신약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본문들과의 동일시도 시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본 조각들은 외경인 에녹서의 일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신약의 저작들은 쿰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189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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