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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9/12/20 (02:30) from 211.212.69.10' of 211.212.69.10' Article Number :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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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신학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맞서서


본회퍼의 신학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맞서서

몰트만


디트리히 본회퍼는 베를린대학교 신학부에서 가르치는 경험은 물론이고 1931년 목사 안수를 받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친구이자 전기 작가인 에버하르트 베트게는 그것을 가리켜 “신학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말한다. 본회퍼는 그 시기에 교회를 “교회론”이라는 학술적 신학의 연구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인다움을 구현하는 고유의 장소로 여겼다. 1933년에 이루어진 히틀러의 집권, 나치의 “독일 기독신자들”에 맞선 고백교회의 투쟁, 유대인박해와 군비 확장을 보면서 본회퍼는 신학을 대학과 교회를 위한 학문의 자리에서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자리로 끌어내려야 할 절박함을 느꼈다. 그때부터 본회퍼의 신학과 전기는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진 신학이 되었다. 1933년, 그는 대학사회에서 쌓은 자신의 이력을 내던졌다. 나치당이 독일 대학의 신학부들을 “통합시켰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본회퍼는 자신이 신학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기 시작했고, 삶의 자리에서 결단해야 하는 것을 신학적으로 숙고하기 시작했다. 그의 개인적인 실존은 신학적 실존이 되었다. 게다가 그의 신학은 정치 신학이 되었다. 그의 개인적인 삶이 정치적으로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영향력이 지닌 매혹적 신비에 다가서게 된다. 그것은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순교하기까지 그가 생생히 살아 보인 신학이라고 하겠다. 그가 생생히 살아 보인 신학은 굳이 두 나라를 거명하자면 한국과 니카라과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꼬드기고 있다.




본회퍼가 처형되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그가 힘겹고 위험한 시기에 자신의 신학을 펼치면서 보낸 세월은 1933년부터 1943년 체포될 때까지 고작 10년뿐이었다. 그가 1943년 4월부터 1944년 10월까지 “감옥에서 보낸 서신들과 문서들”을 읽어보라. 그러면 비할 데 없이 탁월한 신학을 맛보게 될 것이고, 엄청난 매력과 본회퍼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교리체계라든가 교의학을 물려준 바 없다. 다만 자신이 생생히 살아 보인 신학과 생성중인 신학을 남겼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삶이다




비좁은 감방에서 본회퍼의 사상은 이전보다 훨씬 폭이 넓어졌다. 그는 시선을 교회에서 세계로 돌렸다. 그는 세속 세계의 자유, 현세적인 삶의 가치, 구약성서 특유의 사신(使信), 지상의 아름다움과 현세적인 삶의 기쁨을 발견했다. 그는 신앙을 “전부를 건 행위, 생명을 건 행위”로 여겼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새로운 종교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부르시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뜻밖에도 “자연스러운 신심”과 교회와 무관한 “미지의 기독교,” 이른바 그의 가족이 생생히 살아 보인 기독교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현세를 충만히 살면서” “믿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 그가 말하는 현세성은 교양인들과 안락하게 사는 사람들의 “천박하고 속된 현세성”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을 늘 생생히 의식하는” 현세성이었다. 감방 안에서 본회퍼는 세속적인 것을 희생시키는 종교성에 맞서 싸웠을 뿐 아니라 생명력을 희생시키는 영성과도 맞서 싸웠다. 그에게 신앙은 죽기까지 삶을 긍정하고,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고, 하느님이 세상에서 겪으신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세상 한가운데 현존하심을 알았다.




본회퍼는 두 영역, 곧 하느님과 세계라는 상반된 영역에서 전통 신학 사상을 극복했다. 그는 “삶의 다양한 음악,” 삶의 아름다움, 삶의 기쁨과 아픔 속에서 믿고자 했다. 그는 구약성서의 아가(雅歌)를 아꼈고, 모든 열정을 기독교적으로 억누르는 것을 증오했다. 그는 실제적인 삶을 구성하는 기쁨과 저주라는 대극에 깊이 몰두했고, 음악의 대위법을 자신의 새로운 신학 연출법에 끼워 넣었다. 신앙이 “정선율(定旋律, cantus firmus)”이라면, 대위법은 삶의 다양한 음에 어울린다고 하겠다. “우리가 이처럼 다양한 음 속에 있게 될 때, 삶은 비로소 온전해진다. 또한 우리는 ‘정선율’이 지속되는 한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하느님이 “삶 한가운데 피안으로 계시는” 까닭에 우리는 삶 한가운데서 신앙을 붙잡아야 한다. 교회는 마을 한가운데 머물러야지 삶의 가장자리나 묘지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




본회퍼는 구약성서의 시각으로 신약성서를 읽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삶을 사랑하고, 마치 모든 것이 세상과 함께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세상을 사랑할 때에만 죽은 자의 부활과 새로운 세상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율법을 자신에게 적용할 때에만 은혜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본회퍼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대지에 성실히 머무르고, “초현세적인 희망에 관해 말하는” 자들을 믿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초현세적 희망에 관해 말하는 자들은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전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가 가장 큰 죄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지를 모독하는 죄가 가장 끔찍한 죄다.”라고 본회퍼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인용하여 말한다. 1920년대의 종교사회학자들도 니체의 그 말을 기독교적인 희망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할 것을 촉구하는 지령으로 이해했다. 말하자면, 내세의 천국에 초점을 맞춘 희망에서 장차 도래할 그 나라와 하느님의 정의가 다스리는 새 땅에 초점을 맞춘 희망으로 옮겨가라는 것이다.




젊은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도 거기에 속했다. 1932년, 그는 주기도문의 “당신의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에 대해 강의하는 자리에서 “대지와 하느님을 아울러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를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인간을 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종교적 둔세(遁世)라는 배후세계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대지로 돌려주어 대지의 신실한 자녀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느님을 대지의 주인으로 사랑하고, 대지를 사랑하는 자는 대지를 하느님의 대지로 사랑한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를 구하는 교회를 좋든 싫든 간에 대지의 자녀들과 현세주의자들로 이루어진 동아리 속으로 밀어 넣는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대지에서 일어나는 부활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본회퍼가 1943년 감옥에서 이처럼 대지에 성심을 다해야 한다는 초기의 통찰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한다. 그가 지상의 악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지에 성심을 다했기 때문이다. 대지에 성심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새로운 관점, 곧 그리스도 신앙의 “진정한 현세성”을 뒷받침하는 신학적 근거라고 하겠다. 이 대지 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고, 이 대지 위에서 그의 부활이 일어났다. 대지는 장차 하느님의 정의가 보금자리를 치는 처소가 될 것이다.




대지에 성심을 다해야 한다는 본회퍼의 사상은 혁명적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제시하는 희망은 구원의 동경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동경은 대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천국)을 지향한다. 어린이들은 “하느님, 나로 하여금 믿음이 깊게 하셔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기독교인의 부고(訃告)에는 “믿음이 깊은 사람은 죽어서 하늘(천국)에 올라간다.”고 인쇄되어 있다. 그 속에는 무의식적인 세계부정이 도사리고 있다. 하늘(천국)이 진짜 고향이 되면, 이 땅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이 땅에서 머무를 수 없게 되기에 이 땅을 착취하고 쓰레기만 남기게 될 것이다. 종교적 세계부정의 다양한 형식들이야말로 환경파괴와 지구의 생태학적 재앙에 대하여 책임져야 할 쪽이다. “당신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소원에는 대지를 배반하던 의식에서 대지에 성심을 다하는 의식으로의 전환이 깃들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본회퍼가 제기한 신심, 곧 대지에 성심을 다하는 신심이 필요하다. 새로운 생태 신학이 출현하여 종교적 세계부정과 실제적 세계부정에 맞서야 한다. 천사들이 하늘에 속해 있다면, 우리 인간은 대지에서 태어났고, 현재에도 장래에도 이 대지에 속해 있다. 대지, 곧 정의가 깃든(벧후 3,13) 새 땅의 구원 없이는 인간의 구원도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세계정치를 하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지구정치다. 우리는 세계경제에 몸담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지구경제다. 우리는 세계 종교대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대지의 안식을 존중하는 대지의 종교다. 우리는 세계화의 의미를 인터넷과 사이버월드로 생각하고 있지만, 정말로 세계적인 것은 이토록 경이롭고 깨지기 쉬운 지구(대지)다. 본회퍼는 생태계 위기에 대하여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대지에 성심을 다하는 그의 신학은 탁월한 생태 신학이라고 하겠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계몽을 이런 식으로 뜻매김했다. “인간이 자신의 미성숙 상태, 곧 누군가 다른 이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오성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그래서 칸트는 인간을 격려하여 인간 “자신의 오성을 이용하게” 했다. 본회퍼는 마지막 서신들에서 “성숙한 세계와 세계의 자율”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칸트 식 계몽 개념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근대라는 시대에서 위대한 문화적 진보를 보았다. 그것은 사람들이 마치 하느님이 없다는 듯이 살고 생각하고 느끼는 성숙한 세계로 이어져 있었다. 그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이며 자연과학적인 작업가설로서의 하느님을 한물 간 퇴물로 여겼다. 그는 이러한 “작업가설”을 무너뜨리고 “하느님 없이 삶을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지적인 성실성”이라고 확언한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성숙한 세계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그리스도는 삶의 한복판에서 인간을 붙잡는다.” 거기에서 출발하려면, 세계가 성숙했음을 인정하고, 근대 인간을 그의 가장 튼튼한 자리에서 하느님과 대결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종교 없는 세계 한가운데서 “성서의 개념들을 비종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본회퍼는 그 해석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가장 변증법적인 공식을 물려주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알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인식에 이르게 하는 분이시다.…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 없이 삶을 완성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분이시다. 우리와 함께하는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는 하느님이시다(막 15,34).…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없이 살고 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근대의 성숙한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를 본다. 청년 헤겔처럼, 그는 근대 세계에서 하느님을 내쫓는 과정을 새로운 골고다로 해석한다. “하느님은 자신을 이 세상에서 십자가로 내쫓으신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자신의 전능이 아닌 자신의 약함과 고난으로 우리를 도우신다.” 바로 “여기서 세속적인 해석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단히 대담하고 자의적인 해석이자, 근대 세계를 기독교 세계로 여긴 최근의 신학적 해석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먼저 다음과 같은 분석이 적합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보자. 근대 세계 안에서도 성숙한 인간은 극히 드물다. 나치 통치와 공산주의 통치 속에는 당의 지도를 받지 않고 자신의 오성을 이용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인간은 극도의 미성숙 상태에 머물렀고, 정치적 이념적으로 규정된 어법들만을 이용해야 했다. 오늘날 그것은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공정성, 차별 없는 표현으로 번역됨. 언어나 용어로 성별, 인종, 특정 문화집단을 차별하거나 소외시키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용어―옮긴이)를 의미한다.




근대를 “성숙한 세계”로 해석한 것은 한 인간의 개인적인 발전단계들을 번역한 것이다. 사람은 미성숙한 상태로 후견인을 필요로 하다가 열여덟 살이 되면 성년이 된다. 그러한 번역은 과거를 성숙에 이르기 전의 유아기적인 상태로 설명하는 근대의 진보신앙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해석이다. 고대와 중세기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우리보다 미숙한 것도 아니었고 우리보다 성숙한 것도 아니었다.




19세기에 종교 비판이 이루어졌고 21세기가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무종교 시대”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테러의 위협을 받고, 종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으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다시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기독교만 있는 게 아니라 비종교적인 기독교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이 세계에 새로운 종교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제시했다.”는 본회퍼의 명제는 종교적인 기독교와 비종교적인 기독교 모두에게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현세를 충만히 살고 내세를 생생히 살기 위해 개척한 온전한 삶, 곧 사랑받고 치유되고 정당함을 인정받은 삶이다. “성숙한 세계”라는 본회퍼의 해석은 “고난당하시는 하느님”이라는 단어와 관계가 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것은 19―20세기 독일 신학 전체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사상인 싶다. 영국에서는 하느님이 고난당하실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하여 폭넓은 논의가 있었지만, 독일에서는 철학자 게오르크 F. W. 헤겔에게서만 등장한 사상이다. 본회퍼는 “신 없는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고난,” “세속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메시아적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한 편의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곤궁에 처하면 하느님을 찾아가지만, 거처도 빵도 없이 모욕당하는 가난뱅이 하느님, 죄와 약함과 죽음으로 둘러싸인 하느님을 발견하지. 그리스도인은 고난당하시는 하느님과 함께하지.” 하느님의 고난은 그리스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무신적인 세계상황을 감싼다. 그것은 신 없는 세계 때문에 겪는 하느님의 고난이자 그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고난이다. 방금 인용한 시에서 말한 것처럼, 하느님은 폭행자들의 사악함 때문에 고난당하시고, 그들에 의해 희생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거처도 빵도 없이 모욕당하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고난당하신다. 신약성서에서도 그리스도의 고난은 예수만 겪은 게 아니다. 바울 사도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현재의 고난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롬 8,18).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과 파괴와 대량학살을 경험하고 나서 새로운 십자가 신학이 출현하였다. 본회퍼는 게슈타포 감옥에서 편지들을 보내면서 “고난당하시는 하느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는 사상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언급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기독교를 오랫동안 각인해온 형이상학, 곧 고난을 겪지 않고 무감각한 신성의 형이상학을 물리쳤다. 몸소 고난을 겪으며 도우시는 하느님은 천상에 있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군주가 아니라, “어머니처럼 자녀를 업고,” “아버지처럼 자녀를 끌어안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고통과 죄를 업으신다. 하느님은 그리스의 아틀라스 신화처럼 세계가 지옥에 빠지지 않고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계를 자신의 등에 업으신다. 이 세계를 업으시는 하느님이야말로 “소망을 주시는 하느님”(롬 15,13)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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