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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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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성령이 망각되었다는 표지





교회 안에서 성령이 망각되었다는 표지

조현권(스테파노)|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1. 황제와 주인 혹은 통치자(Imperatrixet Domina)로서의 교회

교회는 본질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외면적인 교회 그 이상이다. 교회는 그저 단순한 어떤 백성이나 작은 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된 백성인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저 단순한 어떤 몸이 아니라 하나의 신비적인 몸이며, 단순히 어떤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인 건물인 것이다. 이렇게 교회에는 보이는 면은 물론이고 안 보이는 면, 물질적인 면과 영적인 면도 있다.

교회상(敎會像)이란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어떤 특징을 드러내는 가를 말하는데, 2000년이 넘은 우리 교회는 여러 가지 교회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각 시대에는 그때 그때의 어떤 역사적인 상황에서 생겨난 고유한 교회상 혹은 교회이해(敎會理解)가 있다. 하느님·인간·세계·역사에 관한 그때 그때의 이해와 파악들은 교회상으로 구체화되며, 말씀·성사·교회의 애덕 활동 안에서 중재되는 구원의 표지들 또한 이 교회상 안에서 구체화된다. 예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영, 말씀과 행위, 신앙과 도덕, 그리스도교와 인류에 관한 그때 그때의 관계가 규명되어 표현·표출된 것이 교회상인 것이다.

성령이 소홀해진 혹은 잊혀진 원인은 신앙·교회·신학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령운동으로 겪게 된 교회의 어려움들, 신자들과 실천 신학 안에서 활동하시는 영에 대한 경시 그리고 서방 신학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경향이 그것인데, 이를테면 은총론(恩寵論)은 한때 삼위일체와 성령에 대한 관점은 도외시한 가운데 그리스도에 편중되어 설명되었다. 이러한 점들이 소위 성령의 망각의 한 원인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을 파악하거나 혹은 성령의 충만함을 깨닫는데 어려워하는 교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뿌리를 박고서 “성령을 소홀히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망각하기까지 하였다. 물론 그러한 생각의 근원은 이미 콘스탄티누스의 전환(개종)의 시기에 있었는데, 이는 교회이해 안에서 한 전환점이 된다. 즉 이를 계기로 그리스도교는 국가의 종교가, 교회는 제국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리 없이 이 전환기까지 교회상이 신약성서적인 교회관념들 안에서 파악될 수 있는 교회이해에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교회는 신적인 구원계획이라는 의미에서 신비(mysterium)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느님의 집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신부 등등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전환 이후에 교회가 국가에 적응함에 따라 교회와 제국의 융합이 시작된다. 교회이해 변천의 한 중요한 계기는 제국적이고 로마적인 모델에 따른 교회적인 직무들의 형성이다. 제국 안에서의 교회, 그 주체는 자명하게 성직자 계급이다. 성직자들은 교회를 지배자들처럼 통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신도들은 성직계급의 신하들이 되었다. 마침내 교회는 제국으로, 황제와 통치자(Ecclesia Imperatrix et Domina)로 파악되고, 점점 더 교계제도(Hierarchia)와 동일시되었다.

제국으로서의 교회상이 그 절정에 도달했을 때는 교회가 교황의 무류성을 공표했을 때이다. 이렇게 하여 교회이해의 열쇠는 교계제도에 있게 된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의 자기이해에 따라서 종합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교회는 지상에서의 하느님의 나라의 현실화를 위해서 교계제도 속에서 살아있는 하느님의 새 백성이다.”1)라는 것이다. 권력을 많이 행사하고 정치 안에 교착된 이러한 교회는 봉사하는 교회 보다는 통치하려는 교회가 될 위험에 빠진다. 그리고 이렇게 지배하는 교회는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실 필요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성령은 봉사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마태 20,28 참조), 봉사하러 오신 주님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마찬가지로 교회는 자신의 협력자이신 성령으로부터 배울 필요도 없고, 그 성령을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각오도 않게 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태 20,28)

그런 까닭에 황제와 주인 혹은 통치자(Imperatrix et Domina)로서의 교회 이해는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망각의 원천으로 보여질 수 있다.


2. 성령이 망각된 결과로서의 1054년의 동방이교(東方離敎)

동방과 서방교회 사이에 생겨난 이교의 배경엔 로마 교황과 비잔틴 대주교라는 교회의 두 권력이 있었고, 독일 황제와 비잔틴 황제라는 세상의 두 권력도 있었다. 그 분쟁문제는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와 로마 교황의 자기이해의 차이, 스스로를 세속적인 황제로 이해하고자 한 통치자들과 교회의 정치에 있어서의 긴밀한 결합 그리고 로마식으로 이루어지는 제국과 제정에 관한 동방과 서방 사이의 격렬한 논쟁을 야기하였다. 그러나 정치상황과 마찬가지로 동·서방교회의 상호 불신 또한 1054년의 비극적인 교회분열의 원인이 된다.

이교의 깊은 이유 역시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망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성령께서 믿는 이들을 하느님과 서로 간에, 또 세상과 함께 일치시킨다는 분이시라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교회는 자신이 성령 안에서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가고 또 그렇게 자신이 성령과 하나임을 깨달아 가는 가운데, 그 성령께서 모든 믿는 이들을 하느님 안에 하나가 되도록 돌보신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 안에서 사랑의 일치 자체를 확증하는 저 원리가 바로 성령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교회는 눈이 멀었던 것이다.

분열과 분리를 야기하는 모든 것은 성령과 조화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의식이 잊혀졌다는 것은 교회 일치의 원리로서의 성령의 특성 또한 잊혀졌다는 것을 말한다.


3. ‘필리오케(Filioque)’ 논쟁

지난 호에서는 “교회 안에서 성령이 망각되었다는 표지”라는 주제로 1.황제와 주인 혹은 통치자(Imperatrix et Domina)로서의 교회, 다음으로 2.성령이 망각된 결과로서의 1054년의 동방이교(東方離敎)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이어서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필리오케(Filioque) 논쟁에 대해서 살펴본다.

‘필리오케(Filioque)’라는 말은 ‘~와 성자’라는 뜻의 라틴어로서 성령의 이중적인 발출을 표현하는 교의적(敎義的) 문구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신경(信經) 혹은 신앙고백문(信仰告白文)에 이 문구를 삽입하는 문제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간에 마찰이 있었다. 즉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라는 신앙고백에서,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성자에게서도 발출하신다.”는 서방교회의 표현이 동방교회에 문제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마찰은 지난 호에서 살펴본 1054년의 동방이교(東方離敎)를 야기한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필리오케 논쟁의 배경과 역사 속에서의 전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내에서의 성령의 근원은 무엇인가, 즉 성령이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유래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소위 ‘필리오케 논쟁’이라고 한다. 필리오케 문제가 동방과 서방으로 완전히 분열되기 이전 교회의 신학적 논쟁에 있어서의 중심문제는 아니지만 그 영향은 컸으니, 8세기에 이 문제로 동방과 서방 두 교회 사이에서 격렬한 신학적 논쟁이 생겨난 것이다. 초 세기의 그리스도교 가르침에 있어서의 동방과 서방 교회 간의 신학적 전통과 이해의 차이를 보여주는 이 논쟁에서 교회 안에서 성령이 잊혀졌다는 일면도 드러나며, 이는 결국 두 교회가 가진 성령 이해의 차이점에 관한 문제이다.

필리오케 논쟁은 라틴교회(서방교회)가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25/381)의 신앙고백에 필리오케를 추가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데서 생겨났다. 문제가 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한 아리우스주의(Arianismus)를 대항하여 개최된 니케아에서의 첫 제국시노드(1차 니케아 공의회, 325)에서 정의되었고 서방교회에서 지배적이던 경향, 곧 “아들(그리스도)은 아버지와 동일본질(             )”이라는 사고방식이었다. 라틴교회, 곧 서방교회는 이 필리오케를 통해서 성부와 성자가 신성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했으니, 결국 필리오케 논쟁은 아리우스주의를 반대한 그리스도론적인 관심사에서, 또한 라틴교회가 가졌던 삼위일체신학에 있어서의 전형적인 강조점에서 생겨나고 전개된 것이다.

필리오케 논쟁의 배경으로 라틴교회가 가졌던 성부와 성자 상호간의 사랑이라는 성령에 대한 성찰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성부와 성자의 신성에 있어서의 동일성을 고백하는 라틴교회의 입장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특히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430)인데, 이는 그가 성령을 무엇보다도 성부와 성자 상호간의 사랑으로서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시며, 이 발출은 성부와 성자 서로간의 사랑이라는 하나의 원리에서 이루어진다.

성부와 성자 간의 사랑으로 성령을 표현한 아우구스티노의 이러한 사고는 안셀모(Anselmus +1109), 아카르트(Achard von St-Victor +1171 ), 리카르트 (Richard von St-Victor +1173),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74), 토마스 데 아퀴노 (Thomas de Aquino +1274)같은 서방교회의 여러 신학자들에게서도 발견되는데, 동방교회는 이 주제에 관하여 거의 숙고하지 않았다.

서방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르면 성부와 성자는 공동체적이고 상호적인 사랑 안에 서로 결합되어 있으며, 성령은 그 자체로 신적인 호의와 성부·성자 서로간의 사랑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를 낳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한다.”고 가르친 서방교회의 가르침은 당시로서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리오케가 곧바로 신앙고백문에 첨가된 것은 아니었다. 서방의 사람들, 특히 황제들이 필리오케가 교회의 가르침으로서 전체 교회의 신앙고백 안에 채용되기를 바랐지만, 당시 교황들의 동의는 아직 없었던 것이다.

필리오케는 아리우스주의가 계속해서 스페인에서 세력을 떨쳤기 때문에 톨레도 공의회(447)에 가서야 일종의 공의회적인 신조(信條)로 언급되었고(a patre filioque procedens :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와서), 마침내 6세기 말에 톨레도의 세 번째 시노드(589)에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본문 안에, 정확히 말하자면 신앙고백문의 보충으로 첨가되었다. : “또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 스페인 내에서의 일이었다.

796년 프랑크 왕국 아킬레이아의 파울리노 총대주교(Paulinus +802)는 프리울리의 시노드에서 필리오케의 신경 안 삽입을 옹호하였고, 800년 경부터는 전 왕국의 미사에서 암송되기 시작하여 다른 교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847년에 프랑크 왕국의 수도자들이 예루살렘에서 필리오케를 신경 중에 노래하자 동방교회 수도자들이 이에 크게 반대하면서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를 접한 레오 3세 교황은 교의적인 문제에서는 필리오케를 인정하지만 신경 안에 필리오케를 삽입하는 것은 거절하였으며, 필리오케가 없는 원래 형태대로의 신경을 희랍어와 라틴어로 작성하여 성 베드로의 묘지에 기탁된 2개의 은제 테이블에 새겨 넣으면서까지 그 사용을 막고자 하였다. 그러나 필리오케는 미사 중 계속 낭송되게 되었는데, 언제 본격적으로 로마교회에 도입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1013년 교황 베네딕도 3세 때에 황제 하인리히 2세의 청원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서방교회가 필리오케를 신앙고백 안에서도 인정한 반면에, 동방교회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바와 같이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출하시는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분명하게 알아들었다.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한 15,26)이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그런 까닭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의 본문은 단지 “또한 성부에게서 발하신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서로 다른 가르침이 전개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후에 동방의 그리스에서는 2차 니케아 공의회(787)가 “성부에게서 성자를 통하여(ex Patre per Filium) 발하신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라는 콘스탄티노플의 타라시우스 총대주교(Tarasius +806)의 신앙고백 형식을 받아들인다. 이는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보다 차이를 강조하는 양식인데, 이러한 배경에서 동방교회는 전체 교회적인 동의가 없는 필리오케의 첨가를 사랑과 일치에 반하는 죄로 여겼다. 서방에서 의미확대가 아니라 순수한 해설로 간주된 것이 동방에서는 신앙의 오류와 이단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콘스탄티노플의 포시우스 총대주교(Photius +897)는 867년부터 일련의 저술을 통해서 라틴교회의 필리오케를 단죄하고, 성령은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출한다는 가르침을 공식화하면서 필리오케 문구를 신경에서 삭제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마침내 1054년 이러한 동방교회를 상대로 “너희는 필리오케를 없애버렸다.”고 제기한 서방교회 흠베르트 추기경(Humbert +1061)의 고발은 (필리오케) 첨가에 대한 논쟁을 더 악화시켰고, 다른 문제들과 더불어 서로를 파문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다가 필리오케는 갈라진 동서방 재결합 공의회라고 할 두 교회의 일치협의에서, 곧 1274년의 2차 리옹 공의회와 1438/39년의 페라라 - 플로렌스 공의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되어, 이제 미사의 신앙고백에도 첨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서방교회에서만 가능했으니, 동방교회는 단순히 승인만 하였지 사용은 거절한 것이다. 게다가 동방교회는 훗날 이 동의까지 철회하였고, 콘스탄티노플에서 1484년에 열린 시노드에서는 정식으로 페라라 - 플로렌스 공의회의 신앙고백을 배척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서방교회에 속하는 우리들은 오늘날 필리오케를 고백하고 있다. 즉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라고 신경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필리오케 논쟁의 배경과 역사 속에서의 전개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다음 호에서는 계속해서 ‘필리오케와 동·서양 교회의 성령이해’ 그리고 ‘성령망각의 간접적인 증거로서의 필리오케 논쟁?’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월간 빛, 2003년 7월호]


교회의 성직자 중심화

* 신심운동에 대한 교회조직의 적대시

중세기에 교회 내의 신심운동과 수도생활, 이 두 가지 생활양식은 똑같이 취급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조직이 신심운동을 수도원에서 하는 운동으로 이해했고, 수도원 밖에서의 신심운동은 정통을 떠난 분파, 곧 사이비라고 여겼다는 말이다. 신심운동은 수도원생활 아니면 사이비라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영성운동은 수도생활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중세교회의 계급의식으로 갖게 된 확신에 따르면 하느님께 봉사해야 할 종교적 생활은 오로지 굳건한 수도자신분의 조직들 안에서 영위되어야 했다. 이러한 생활만이 규칙과 규율로써 종교인의 생활과 행동을 모든 타락으로부터 보호하고 동시에 교회의 전체 질서 안으로 편입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로써 이 질서들에 구속되지 않고 종속되지 않는 모든 신심생활과 수도원생활의 양식들을 따르지 않는 신심운동들은 모두 교회와 참된 종교에서 이탈하여 사이비가 되고, 껍데기뿐인 종교가 되며 이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중세기의 모든 신심운동들은 ‘vita religiosa(수도생활)’의 교회적인 양식 안에, 즉 수도회에 들 것인지, 아니면 교회적인 질서에서 풀려나 그로써 교회로부터 결국 갈라지든지, 즉 사이비가 되거나 이단이 되든지 하는 기로에 서있었다.”1)

중세기의 수많은 신심운동을 수도원 내에서가 아니면 사이비라는 식으로 내리는 이 이원법적인 판단은 정당한 것이었을까? 다른 많은 건전한 운동들을 처음부터 제외시켜 버리지나 않았을까? 교회는 과연 신심운동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고, 그들을 이단으로 심판해야만 했으며, 마침내 그 추종자들을 파문으로 벌해야만 했을까? 그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잘 알려진 종교재판과 마녀재판들인데, 이런 재판을 행함에 있어서 교회직무수행자들은 마치 그들에게만 성령이 주어져있고, 그들만이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처럼 흔히 행동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성령에 반대해서 행동하였고, 그래서 “중세기의 교회는 성령을 길들이고 제도 속에 묶어두었다.”는 오늘날의 공공연한 비판은 정당해 보인다.

“교회조직이 성령을 독재했다, 곧 길들이고 제도 속에 묶어두었다.” - 이러한 주장에는 제국으로서의 교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교회의 성직자 중심화에 그 이유가 있다. 성직자들이 누린 ‘교육에 대한 독점’과 ‘신분에 대한 특전’이 중세기적인 ‘교권주의(敎權主義, Klerikalismus)’의 배경이 되었다. 이와 함께 교회조직은 교황을 우두머리로 하는 교회계급적인 조직이 되고, 이 교회계급적인 조직은 바로 성직자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교황이 이 체제구조의 추축이 되고 서방교회가 소위 로마교회 안에서 부각되게 되었으니 (가톨릭교회 = 로마교회), 이제 중앙집중적인 교황조직이 고대교회의 주교적·종교회의적인 구조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2)

로마적임 혹은 로마적인 것이 거의 최종적으로 교회의 한결같은 시금석이 된다. “교회는 단지 (아직 토마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을) 신앙고백과 성사 안에서의 공동체로써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직무와 특히 로마주교 아래 생활하는 공동체인가로써 결정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의 법률적인 체제와 로마적임으로 정의된다. … 교회는 로마 국민의 모임처럼, 프랑크 왕국이나 베네치아 공화국처럼 보일 수 있고 만져질 수 있게 된 것이다.”3)
  
지난 호까지 “교회 안에서 성령이 망각되었다는 표지”라는 큰 주제로 1.황제와 주인 혹은 통치자(Imperatrix et Domina)로서의 교회, 2.성령이 망각된 결과로서의 1054년의 동방이교(東方離敎), 3.필리오케(Filioque) 논쟁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이번 호에서는 4.교회의 성직자 중심화 중에서 ‘교회조직이 신심운동을 어떻게 적대시하였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계속해서 ‘교회의 성직자 중심화가 평신도의 위치와 전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월간 빛, 2003년 9월호]


* 평신도의 위치



“로마교황 아래 성직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회.”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바로 이전 시기까지의 교회를 잘 드러내는 말이다.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의 역할은 성직자에 비해 너무나 미미한 것이었다.



물론 당시 교회가 평신도를 엄연히 교회의 일원으로 제시하기는 한다. 외형상으로는 공의회 이전의 교회가 평신도를 교회의 한 일원으로 포함하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상을 갖추었었다는 말이다. 한 예로 구 교회법(1918)은 교회가 성직자 혹은 교회계급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평신도도 본질적으로 교회에 속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니, 법규 제683조항은 목자들과 양들,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함께 교회를 건설한다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실제적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보호한 당사자들은 순전히 교회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고, 그와 반대로 평신도들은 교회조직에 있어서 중요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교회의 ‘고유하고 영적인 국면(eigentlichen, geistlichen Dimension)’의 대리자로서 그리고 영적인 능력의 소지자로서 성직자들(Geistliche)은 명백하게 평신도 위에 있었고, 일부는 심지어 교회와 명확하게 동일시되었다.(성직자교회)”1) 성직자와의 차이를 강조하는 듯한 ‘평신도’라는 단어가 표현하듯이, 평신도들은 성직자들에게 국외자(局外者)들이었던 것이다. 때때로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을 심지어 ‘적(敵)’으로 이해하기까지 하였는데, 보니파시우스 8세 교황은 ‘Clericis laicos’라는 교서(1296)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평신도들이 성직자의 적들이라는 것은 멀리는 고대(古代)가 증언하고 있고, 현재의 경험도 그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2)



하지만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서로 대립하는 곳, 그곳에서 어떻게 성령이 활동하실 수 있을까? 교회조직과 성직자중심화에서 비롯한, 성령에 대한 눈에 띄는 소홀함의 결과들은 상당하였고, 종교개혁가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음의 글을 인용한다. : “교황청과 그 밖의 성직자들이 종교적인 정신과 사목의 열정을 적게 가지면 가질수록 금전에 대한 그들의 욕심도 그 도를 더해갔고, 제국교회재정계획(Fiskalismus)의 사상은 분노를 일으켰다. 그들은 머리를 짜낸 요금과 세금제도 그리고 다소간의 자발적인 기부금, 종국에는 대사헌금들로 교황청의 금고를 채우고자 했다. 많은 경비를 필요로 하는 속된 궁중생활과 지나친 건축활동, 나아가 과다한 전쟁비용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계속해서 재정궁핍 중에 있었다. 종교개혁 발발의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대사거래의 스캔들이 이 제국교회재정계획과 관련된다는 것은 확실히 우연이 아니다.”3)


* 전례에 끼친 영향들



이러한 성직자 중심화는 또한 전례의 계속적인 발전에도 저해가 되었다. : “교회의 성직자 중심화는 또한 전례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름 아닌 전례도 점점 더 성직자에게 고유한 일이 되었고, 백성은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퇴화되었으며, 마침내 완전히 탈락되어버렸다. … 중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자신을 어떻게 체험하였던가? 교회는 미사성제의 테두리 안에서 신자들의 공동체로 자신을 배워 알았는데, 이 공동체는 믿음과 세례 안에서 하느님을 통하여 그리고 하느님을 위하여 거룩하게 된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신적인 구원경륜 혹은 구원계획의 부분으로 그리고 천상과 현세 사이에서의 성사적인 일치로 자신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 미사성제적인 교회체험은 교회적 생활의 성직자 중심화와 법제화 그리고 개별화의 진행 중에 점점 더 소멸되어 버렸다.”4)



평신도가 전례적인 형성에 능동적인 참여를 못하고 실제적으로 제외되어 있었던 이러한 상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일반적인 사제직을 강조함으로써 비로소 개선되었다. 공의회에서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 사제직의 완성”(전례헌장 7)으로, “교회생활의 정점과 원천”으로 나타난다. 전례를 통하여 성직자와 평신도들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리스도가 완성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실현된 구원활동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한다.5) 전례적인 축제가 순전히 거룩한 행위이기 때문에 교회는 전례적인 공동체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모인 공동체”에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전례가 오직 성직자에게만 집중된 곳, 그곳에서는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일하시고 우리 모든 약함을 떠맡고 계신다.”는 사실은 망각된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로마 8,26-27)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 성직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평신도를 위해서도 - 기도하신다는 인식에서 알 수 있는 것은(무엇보다도 하느님께 공식적으로 기도를 올리는) 전례가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바로 성직자들 안에서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 속에서도 활동하시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령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잊혀져 왔었는지, 다시 말해 ‘성령의 망각(Geistvergessenheit)’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다음 호부터는 교회론과 성사론 안에서 일찍이 성령의 역할을 어떻게 파악하였는지, 또 어떻게 해서 그 역할을 소홀히 여겨왔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월간 빛, 2003년 10월호]


교황 레오 13세는 정당하게 자기 시대의 ‘  성령의  망각(Geistvergessenheit)’을 비판하였다. 성령에 대한 회칙 〈Divinum illud munus(1897)〉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종종 성령에 대한 빈약한 인식만을 가지고 있음”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그의 이름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심행위 안에서 그렇게 자주 입술에 오르내리지만, 성령에 대한 신앙은 짙은 어둠으로 덮여 있다!”1)라고 말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까지 신학 안에서 간과되었던 성령론의 특수한 위치를 인정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해서 성령의 망각은 그리스도교 신학들의 운명적인 주제로 여겨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새로운 신학 논문들 또한 신학과 교회 안에서의 이러한 성령의 망각을 드러내고 있다. 먼저 미국에서 잊혀진 성령을 뜻하는 《The Half-Known God(반만 알려진 하느님)》이란 제목의 책이 출판되었는데, 여기에서 성령은 그리스도교 신학 안에서 소홀히 취급된 의붓자식으로 여겨졌다. 성령론은 1957년에 이르러서는 소홀히 여겨지다 갑자기 유명하게 된 주인공 신데렐라에 비유하여 신데렐라 이론(a Cinderella Doctrine)으로 표현되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성령이 성령강림 때처럼 교회력의 한 주일에만 중심에 서 있기 일쑤라는 것과 교회에 오가는 신자들 스스로 성령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으며,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생활에 있어서 성령은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유감으로 여겼다.

교회는 그리스도론을 너무 강조하였고, 또한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성령론적인 국면을 소홀히 하였다. 그 때문에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 골고루 관계되어 이해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도와 대리로서 그리스도 한쪽으로만 치우쳐 이해되었다.

다음의 글들은 우선 교부학에서 시작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를 지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신학 안에서의 성령에 대한 이해를 개략적으로 고찰한다. 이 글들은 특별히 교회론과 성사론 안에서 성령에 대한 주의가 부족하였음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성령에 대한 교회의 이해는 특별히 이 두 영역 곧 교회론과 성사론 안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 성령론적인 관점에서의 교부들의 교회론

하나의 체계적인 교회론을 교부들에게서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론적인 글들을 썼으며, 그 글들은 언제나 우선적으로 교회에 대한 성서적인 관념들과의 관련 안에서 작성되었다.

교부들은 교회를 전체 그리스도교적인 구원경륜의 지평 안에서, 특별히 삼위일체적인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바라본다. 결론적으로 말해 교부들은 성령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글은 몇몇 교부들의 교회론적인 사고들 중에서 성령에 관련된 사고들만을 다룬다.

1) 희랍교부들의 교회론

가) 리옹의 이레네오

리옹의 이레네오(Irenaeus, +202년경)는 자신의 교회론을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일치된 영역 안에서 전개한다. 그가 말하는 교회는 “매일 매일 체험되는 실재이고, … 로고스의 계시 안에서 예수의 구원업적과 하느님에게 돌아가는 세상의 회귀 안에서 앞서 주어진 현실이며, … 프노이마(Pneuma), 곧 영과 성부와 성자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 안에서 정립된 공동체”2)이고, “하느님 자체이신 성자께서 손수 모으신 하느님의 모임”3)이다. 이러한 성령께서는 오로지 교회 안에서 활동하신다.(하지만 성령께서는 교회 밖에서도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스스로 교회로부터 멀어진 자는 영의 공동체와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있는 곳에 하느님의 영이 있고, 하느님의 영이 있는 곳에 교회와 모든 은총이 있기 때문이다. 영은 진리이다.(1요한 5,6 참조) 성령과 관계없는 자는 어머니의 가슴에서 영양분을 받지 못하는 젖먹이와 같으며, 그리스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샘물(묵시 22,1; 요한 7,37-38 참조)도 얻을 수 없다.”4) 그러므로 성령은 마치 어머니이신 교회처럼 양분의 원천이고 제공자이다.


나) 로마의 히뽈리토

서방에서 활동한 마지막 희랍교회 작가인 로마의 히뽈리토(Hippolytus, +235)는 교회를 구원사(救援史)의 범위 내에서 고찰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일치를 이루시고 강화하시는 성령의 힘 안에서 그리고 당신의 고통 안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지으신 혼례복”5)이다. 이 영이 사도들에게 넘겨지고 계속해서 교회 안에 전달된다. 이렇게 영은 주교들과 사도들의 후계자들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계제도는 영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다) 테오도르의 몹수에스티아

테오도르의 몹수에스티아(Mopsuestia, +428)는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성령 피조설파 (聖靈被造設派, pneumatomachi)6)를 반대하여, 성령을 제한 없이 삼위일체적인 영광송(Doxologie)으로 칭송할 것을 주장한다. : “영이 성부와 성자와 불려지고 고백된다는 것은 옳다. 왜냐하면 성령도 저 창조되지 않은 본성으로 있기 때문인데, 그 본성은 영원으로부터 존재하고 모든 사물의 원인이며, 모든 피조물은 이 본성에만 영예를 기울여야 한다.”7)

영은 변화시키는 힘이며 그리스도의 구원경륜에 있어서의 동행자이다. 성령 덕분에 교회는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보존한다. 그러므로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 없이 교회적인 일치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 “바울로는 모든 신자들이 미래적인 희망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성령의 한 힘 안에서 한 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8)

몹수에스티아에 따르면 직무의 구원적 의미는 영의 협력 없이 적당하게 묘사될 수 없다. 이렇게 교회적인 직무는 성령론적인 기초를 갖는다.

라)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Cyrillus, 444)에 따르면 교회의 구성원은 성령에 연관됨으로써 서로 간에는 물론이고 하느님과도 하나이다. : “우리 모두가 하나이시고 같은 분이신 영, 곧 성령을 모셨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와 또 하느님과 연결되어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우리가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우리 각자 안에 성부의 영을 살게 하시는데, 이 영은 또한 그분 자신의 영이시다. …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안에서 하나이고, …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유일하신 성령과 함께 하는 영성체를 통하여 하나이다.”9)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의 영혼 속에 살기 위하여 교회에 선사하신 것이 성찬례이다. 따라서 만일 사람들이 성찬례를 통하여 성령에 연관된다면 그리스도와 그리고 상호간에 하나가 된다. 영과 성자를 통하여 중재되어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 되며, 모든 것은 영으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성부에게로 인도된다. 이렇게 치릴로는 모상으로 만드는 신적인 본성에의 참여를 명백하게 성령의 내적 거주로 확정한다.

마) 대 바실리오

대 바실리오(Basilius, +379)는 삼위일체에 대한 전체적인 고백에서 특별한 지위의 성령론을 이끌어낸다. : “하나의 영혼은 … 가장 순수한 창조의 영역 안에서, 성자와 성부가 계시는 그곳에서 성령을 보게 된다. 이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본성과 본질을 지니며 선함과 정의, 거룩함과 생명과 같은 모든 특성을 갖고 있으니, 성서가 ‘착한 영’, ‘올바른 영’, ‘거룩한 영’에 대해 누차 말하고 있는 바와 같다. … 한 분이 성부이시고 한 분이 성자이신 것처럼 그렇게 한 분 또한 성령이시다.”10)

성령(聖靈), 곧 ‘거룩한 성령’(마태 3,11 참조)이라는 이름은 영에 대한 원래적이고 고유한 명칭으로써 전적으로 특별히 영적인 것, 순수하게 비물질적인 것과 불가분적인 것을 표현한다. 성령께서는 스스로 생명의 시여자이고 성화의 원천이시며, 그분은 자신의 도달할 수 없는 본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하시기 때문에 인간에게 파악될 수 있다. 성령께서는 오직 자신을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들에게 전하여지신다. 그렇지만 그분이 전하여지시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가 아니라 개개인의 신앙에 상응하여 전하여지신다. 즉 성령께서는 신앙이 큰 사람에게는 아주 충만하게, 신앙이 적은 사람에게는 그만큼 부족하게 전해지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이해 하에서 바실리오는 교회들이 “그 지체들이 오직 하나의 호흡으로부터 혼이 불어넣어진 유일한 몸으로서 성령 안에 뿌리를 박고 사랑 안에 일치되었던” 시기를 그리워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영이 하늘에 있고, 땅을 채우고 있으며, 또 어디에나 있고, 그 무엇도 그를 제한할 수 없다. 그는 온전히 각 사람 안에 있으며 온전히 하느님과 함께 있다. 그는 종으로서 은사들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으로 은총들을 하사한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주시기” 때문이다.(1고린 12,11) 그는 중개자로 보내지지만 자신의 힘으로 활동한다. 그가 우리 영혼들 안에서 살고, 그가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결코 떠나지 않도록 기도하자.”11)

[월간 빛, 200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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